20세기 이야기

최인훈 소설 ‘광장’ 발표

 “한국문학 사상 최초로 분단의 문제를 이데올로기적 갈등의 문제로 다룬 기념비적인 작품”

최인훈(1936~2018 )의 소설 ‘광장’은 국내 문인이나 평론가들이 늘 첫손가락으로 꼽는 전후 최고의 소설이다. ‘광장’ 이후 최인훈에게 ‘전후 최고의 작가’라는 찬사가 쏟아질 만큼 ‘광장’이 우리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광장’이 원고지 600장 분량의 중편소설로 발표된 것은 ‘새벽’지 1960년 10월호에서였다.

6․25 전쟁 후 반공소설류가 이데올로기 문학의 정형처럼 굳어 있던 시절에 발표된 ‘광장’은 곧 문단으로부터 “한국문학 사상 최초로 분단의 문제를 이데올로기적 갈등의 문제로 다룬 기념비적인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북한의 공산주의 이념과 남한의 자유민주주의 이념에 대해 냉철한 균형감각을 유지하면서 깊이 있는 비판과 성찰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도 쏟아졌다.

‘광장’은 6․25 후 북한의 석방포로를 싣고 인도로 향하는 타고르호에 탄 이명준이라는 한 젊은이의 회상으로부터 시작된다. 해방 후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던 이명준은 해방 직후 월북한 아버지가 대남방송 시간에 나왔다는 이유로 경찰서에 불려가 고문을 당하게 되자 남한에는 개인의 자유와 인간적 존엄성을 짓밟는 어두운 밀실만 있을 뿐 사회적 정의가 구현되는 푸른 광장이 없다고 생각한다. 떠밀리듯 아버지를 찾아 북으로 갔으나 인민의 공화국을 표방하는 그곳 역시 푸른 광장은 없고 잿빛 광장만 있었다.

실망한 이명준은 북에서 국립극장 발레리나인 은혜를 만나 그들만의 광장을 꿈꾸지만 은혜는 모스크바로 공연을 떠나고 그 사이 6․25 전쟁이 터져 이명준은 인민군으로 낙동강 전선에 투입된다. 전쟁에 회의하던 이명준은 그곳에서 간호병으로 나온 은혜를 우연히 다시 만나 절망적인 사랑을 불태우지만 은혜는 전사하고 명준은 포로가 된다.

수용소에 갇혔다가 석방될 무렵 남한과 북한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입장에 서게 되었을 때 자유주의 남한과 사회주의 북한 모두에 실망한 명준은 제3국인 중립국을 선택하고 인도로 가는 배에 오른다. 뱃머리에서 긴 회상에 잠기던 명준은 자기가 참으로 오랫동안 ‘이데올로기’라는 잣대에 홀려 있었음을 비로소 깨닫고 바다로 뛰어든다.

 

소설사의 측면에서 보자면 1960년은 ‘광장’의 해

소설은 이처럼 이전까지의 갇힌 이념의 틀을 벗어나 남과 북의 체제를 같은 무게로 평가했다는 점에서 4․19를 막 경험한 당시 청년들에게 낯선 충격을 던져주었다. 분단 이후 최초로 남북을 동시에 작품의 무대로 삼았다는 점, 분열된 이데올로기의 비극이 첨예하게 묘사되었다는 점 이외에도 소설이 보여준 눈부신 지적 문체, 지성미 넘치는 철학적 사고, 극명한 체제분석 등은 당시의 독자들에게 센세이셔널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평론가 김현은 “정치사적 측면에서 보자면 1960년은 학생들의 해였지만 소설사의 측면에서 보자면 ‘광장’의 해였다”며 ‘광장’의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

‘광장’은 1961년 3월 원고지 200장가량이 추가된 단행본(정향사)으로 발간되고 이후에도 계속 문장을 다듬는 개작 과정을 거쳐 신흥출판사(1965년), 민음사(1973년) 등에서 출판되었다. 개작에 대해 작가는 “내가 살아 있는 동안 글자 한자라도 다듬어서 미래 독자들에게 주는 것이 내 의무”, “이명준의 선택이야 당시 독자들과 공유하는 역사적 약속이니까 수정 불가능하지만 수사학적 표현을 계속 고칠 것”이라며 계속 개작할 뜻이 있음을 공언했다.

최인훈은 1936년 두만강변의 국경도시 함북 회령에서 태어나 6․25 때 피난민으로 아수라장을 이룬 원산항에서 해군 함정을 타고 월남했다. 이때의 경험은 오랫동안 작가에게 피난민 의식을 심어주었다. 전쟁 후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으나 법과 문학의 갈림길에서 4학년 때 중퇴하고 문학을 평생의 업으로 받아들였다.

1958년 장교로 입대해 군 복무 중이던 1959년 ‘GREY 구락부 전말기’로 ‘자유문학’을 통해 데뷔했다. ‘광장’이 발표될 때도 그는 군인 신분이었다. 이후 ‘회색인’(1963년),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1969년) 등을 발표하고 1970년대 들어서는 희곡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1970년),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1976년), ‘봄이 오면 산에 들에’(1977년) 등을 발표하며 연극을 새 장르로 선택했다. 1994년 발표된 4500장 짜리 대작 ‘화두’는 작가 자신의 내면의식을 두루 건드린 정신적 자화상이라는 평가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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