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이야기

존 스타인벡 ‘분노의 포도’ 출간

찬사와 비판 동시에 받으며 큰 반향 불러 일으켜

존 스타인벡(1902~1968)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살리나스에서 독일계인 아버지와 아일랜드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고교 시절부터 농장 일을 거들며 학교를 다녀야 했던 그는 1919년 어렵게 스탠퍼드대에 진학해서도 목장이나 공사장, 공장 등에서 일을 하며 주경야독했다. 하지만 가난 때문에 결국 대학을 중퇴하고 고단한 문학청년의 길을 걸었다.

1925년 ‘뉴욕 아메리칸’지의 기자로 입사했으나 기사가 지나치게 주관적이라는 이유로 해고되어 다시 막노동으로 생계를 꾸리며 소설을 썼다. 그 무렵 데뷔작 ‘황금잔’(1929)을 비롯해 여러 작품을 발표했으나 인정을 받지는 못했다. 다행히 노동쟁의 문제를 다룬 ‘승산 없는 싸움’(1936)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이민노동자의 비극을 그린 ‘생쥐와 인간’(1937)이 희곡으로 각색되어 뉴욕 무대에 올려지면서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1936년에는 오클라호마의 이주민 틈에 끼어 서부로 떠나는 고행길을 경험했다. 먹고살기 위해 길 위에서 풍찬노숙하는 가난한 이주민들과의 동행을 통해 그는 미국의 잔혹한 현실을 보았다. 그 경험은 3년 후인 1939년 3월 14일 출간된 ‘분노의 포도’에 그대로 녹아들었다. ‘분노의 포도’는 1930년대 대공황과 한발로 농장을 잃은 소작농들이 중부의 오클라호마를 떠나 서부로 이동하면서 겪게 되는 참상을 그린 소설이다. 1933년부터 3년간 미국 중부 지역에는 한발과 모래바람이 덮쳤다. 경작지는 황무지로 변했고 농민들은 은행 이자를 갚지 못해 토지를 몰수당했다. 그런 농민들을 솔깃하게 한 것은 “일손이 필요하다”는 서부 지역의 대대적인 선전이었다.

소설 속 주인공 조드 일가도 고물 자동차에 가재도구를 싣고 기름진 토지를 찾아 캘리포니아로 향했다. 톰 조드를 비롯해 부모와 조부모, 그리고 누이동생 부부와 어린 동생 등 10명으로 구성된 일행의 이동길에는 예수의 인격화로 보이는 짐 케이시도 동행했다. 그는 교회의 허구성을 비판하고 사람들의 고통 속으로 직접 뛰어들어 그들과 함께 행동한 전직 목사였다. 조드 가족이 캘리포니아로 향하는 66번 도로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민족대이동을 방불케 하는 이주민들의 인파가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들에게 캘리포니아는 찬란한 태양이 떠오르고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이었다. 그 땅이 착취와 질병과 기아의 땅이라는 사실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캘리포니아에 도착했을 때 정말 그곳의 광활한 농장에는 복숭아, 오렌지, 포도 등 과일이 풍성하게 열려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분노를 일으키는 포도였을 뿐 그들과는 아무 관계가 없었다. 배가 고파 버려진 오렌지를 주울라치면 관리인이 오렌지에 석유를 뿌려 먹지 못하게 하고, 강가에 내다 버린 감자를 건지려고 하면 파수꾼이 몰아냈다. 과일 값 하락을 막기 위해 억지로 썩히거나 버리려는 지주들의 탐욕 때문이었다. 이주민들이 최소한의 임금을 달라고 요구하면 자경단을 동원해 무자비하게 탄압하거나 추방하기 일쑤였고 때로는 적색분자 또는 오클라호마 출신의 인간쓰레기를 뜻하는 ‘오키’라는 딱지를 붙였다. 결국 100만 명 이상의 이주민이 영양실조와 굶주림에 허덕였다.

 

 친사회주의 경향의 작가로 이해하면 오산

평론가들은 ‘분노의 포도’가 미국 농업노동자의 비참한 삶을 구약성서 ‘출애굽기’의 구성에 담아 묘사했다고 평했다. 한발, 여행, 캘리포니아라고 하는 3개의 주요 요소 중 한발은 애굽의 박해, 여행은 출애굽, 캘리포니아는 가나안 복지를 상징한다는 것이다. 소설은 찬사와 비판을 동시에 받으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농장주들은 “검은 악마적 창조물”, “증오를 주제로 한 파괴적인 책”이라며 비난했고 일부 도서관은 정치적이고 외설이란 이유로 금서 목록에 올렸다.

스타인벡은 이주민들의 참상을 증명하는 르포 기사를 사진과 함께 ‘라이프’지에 실어 반론을 펼쳤다. 극단적인 찬반양론 속에서 ‘분노의 포도’는 초판이 50만 부나 팔려나가고 정부가 캘리포니아의 철새 노동자들에게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분노의 포도’는 스타인벡에게 1940년 퓰리처상을 안겨주었고 존 포드 감독에 의해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스타인벡은 2차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종군기자로 북아프리카, 영국, 이탈리아 전선 등을 취재하고 1947년 러시아를 여행하고 돌아와 ‘러시아 기행’을 펴냈다. 1952년 출간된 만년의 대작 ‘에덴의 동쪽’은 1954년 엘리아 카잔에 의해 동명의 영화로 제작되어 ‘10대의 우상’ 제임스 딘을 탄생시켰다.

1960년 9월 첫째주 월요일, 어느덧 58세가 된 존 스타인벡은 애견 ‘찰리’와 함께 자신이 설계한 캠핑카 ‘로시난테’(돈키호테의 애마 이름)에 몸을 싣고 미 대륙을 일주하는 여행을 떠났다. 편한 도로 대신 덜컹거리는 비포장도로를 이용해 그가 찾아다닌 곳은 관광지나 대도시가 아니라 미국의 뒷골목이었다. 4개월간 30여 개 주 총 1만 6,000km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닌 경험은 1962년 ‘찰리와 함께한 여행’이라는 책으로 출간되었다. 책은 1960년대 미국 사회의 한 단면을 있는 그대로 생생하게 보여주어 미국에 대한 스타인벡의 각별한 애정을 담았다는 평을 들었다.

존 스타인벡이 한때 미국 사회의 그늘진 곳을 그리고 사회성 짙은 작품을 냈다고 해서 그를 친사회주의 경향의 작가로 이해하면 오산이다. 1951년 6․25 전쟁 당시 소련의 문학작가동맹위원장이 세균전 반대 호소문을 세계 지성인에게 발표했을 때 스타인벡은 선전성과 허위성을 통박하며 미국의 입장을 옹호했다. 1966년 ‘뉴스 데이’지 종군기자로 월남에서 활동할 때 소련의 한 시인이 “당신은 왜 미국의 월남전 개입을 반대하지 않느냐”며 그를 비판했을 때는 “당신이 공산주의자들의 월남 침략을 중지시키기 위해 노력한다면 나도 미국의 월남전 철수를 위해 그만큼 노력할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196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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