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일본의 괴뢰국가 만주국 건국

1932년 3월 1일, 건국이념을 ‘오족협화’, ‘왕도낙토’ 등의 미사여구로 포장한 국가 아닌 국가가 중국 동북 지방에 출현했다. 1931년 9월 만주사변을 일으켜 만주를 점령한 일본이 청조의 마지막 황제 부의를 국가원수격인 집정으로 내세워 수립한 만주국이었다. 오전 9시, “죽음에 직면해 있는 만․몽(滿․蒙) 3000만 명의 민중이 일본군의 힘을 빌어 장학량 등을 구축하자“는 건국선언이 봉천(지금의 심양)에서 발표되었고, 3월 9일에는 부의가 참석한 집정 취임식이 수도인 신경(현재의 장춘)에서 거행되었다. 관동군사령관과 일본의 만주철도 총재를 비롯 만․한․몽․일․조선의 5족 대표 200여명이 참석한 취임식에서는 “종족간의 구별을 없애 왕도낙토를 실현시키자“는 집정선언이 대독되었다.

만주국의 설립을 추진한 것은 일본 관동군 참모들이었다. 그들은 장개석이 중국을 통일해 국권회복의 움직임이 본격화될 경우 ‘만몽 위기’가 닥칠 것을 우려했다. 더욱이 장차 미국과 태평양전쟁이 발발하면 만주가 공장으로써의 가치가 높아질 것으로 내다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국가원수를 따로 세웠다하더라도 정치․군사적 실권이 관동군 손에 쥐어져 있고 경제권 역시 그곳에 진출한 일본 기업들이 갖고 있는 한 만주국은 누가 보아도 일본의 괴뢰국가였다.

9월 15일 일본은 자신의 기득권을 인정하고 만주국의 국방을 관동군에 일임한다는 ‘일․만의정서’에 조인한 뒤 만주국을 국가로 승인했다. 독일과 이탈리아, 스페인도 만주국을 승인했으나 중국 정부가 만주국 설립의 부당성을 국제사회에 호소하고 국제연맹이 1933년 2월 24일 열린 임시총회에서 ‘만주국은 괴뢰국가’라는 ‘리튼 보고서’를 채택하면서 국제사회로부터는 승인을 받지 못했다. 총회가 만주국을 승인하지 않고 만주를 열강의 공동관리 하에 둔다는 권고안을 42대1로 의결하자 일본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다음달 27일 국제연맹을 탈퇴했다. 만주국은 1945년 8월 소련의 참전으로 관동군이 괴멸하고 부의가 소련군에 체포되면서 한순간에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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