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땅 구석구석

[광양 백운산 12㎞ 산행] 해발고도 1000미터가 넘는 5~6㎞ 능선에서 바라보는 장쾌한 조망이 참으로 매력적인 100대 명산이지요

↑ 노랭이봉에서 바라본 남쪽 억불지맥 중 국사봉 능선 (출처 광양시청)

 

☞ 내맘대로 평점(★5개 만점). 등산요소 ★★★ 관광요소 ★★★

☞ 11~12㎞, 6시간

☞ 진틀~병암~신선대~정상(상봉)~노랭이봉~동동마을

 

by 김지지

 

봄날 꽃구경을 떠났다. 2023년 3월 19~21일, 고교 동창인 동정 상록 선근 정형이 2박 3일간 전남 구례와 광양 그리고 경남 하동을 둘러보는 일정으로 진행했다. 4월도 아니고 3월에 꽃구경이라니 의아하겠지만 사실 3월 말의 꽃구경도 볼 만하다. 구례 산동면의 산수유와 화엄사의 홍매화, 그리고 광양 청매실농원의 매화와 옥룡사지의 동백꽃이 상춘객 4인이 만난 봄날의 꽃들이다. 시간에 쫓겨 동백은 만나지 못했으나 산수유와 매화에 취해 상춘(賞春)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꽃구경은 중년 여성들의 전유물처럼 알려졌으나 중년 남성들도 좋아한다는 사실을 새롭게 확인한 생기발랄한 여행이었다. 게다가 이 4인의 중년 남성들은 꽃구경에 더해 산행까지 좋아하니 금상첨화다. 이 글에서는 서울에서 멀리 광양까지 간 김에 오른 광양의 백운산행(11.5㎞)을 소개한다.

전남 구례 산동면 계척마을에서 자라는 산수유 시목(始木). 1천여년 전 중국 산동성에서 가져와 심은 우리나라 최초의 산수유나무라고 해서 ‘산수유나무 시조’로 불린다. 이곳 시목은 할머니산수유 시목이고 인근 다른 곳에 할아버지 시목이 있다.

 

■광양 백운산은

광양 백운산(1222m)은 전남의 2개 시․군, 5개 면에 걸쳐 있는 명산이다. 정상은 광양시 3개면(옥룡 진상 다압면)의 경계에 있다. 높이를 기준하면 전남에서는 지리산의 노고단 다음으로 높고 호남 전체에서는 지리산, 덕유산에 이어 3번째다. 고산준령에 흰구름(白雲)이 깔린다고 해서 이름 지어진 크고 작은 백운산은 국토지리정보원의 ‘산높이 및 위치정보’(2019년) 자료에 따르면 남북한을 통틀어 26곳이다. 알려지지 않은 백운산까지 포함하면 26개보다 많을 것이다. 이 많은 산들 중에서 남한에 소재하면서 고도가 1200m 이상의 산은 세 곳이다. 이곳 광양의 백운산(1222m), 전북 장수군과 경남 함양군 경계에 있는 백운산(1279m), 강원도 정선군 동면과 영월군 상동읍 사이에 있는 백운산(1426m)이다. 100대 명산에는 이곳 백운산과 경기 포천의 백운산(903m)이 올라있다. 이곳 백운산은 백두대간 13정맥의 하나인 호남정맥의 최고봉이면서 끝자락이다. 호남정맥은 백두대간에서 갈라진 금남호남정맥이 전북 장수의 주화산에서 갈라져 내장산을 지나 영산강 유역과 섬진강 유역을 갈라 광양 백운산에서 끝나는 산줄기의 옛 이름이다.

백운산의 매력은 길게 뻗어있는 해발고도 1000m 이상의 능선에서 바라보는 장쾌한 조망이다. 지리산 노고단에서 반야봉, 토끼봉을 거쳐 천왕봉까지 파노라마처럼 이어진 지리산 능선을 조망할 수 있다고 해서 ‘지리산의 전망대’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 더불어 멀리 남해안의 한려수도와 광양만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곳도 백운산 능선이다. 주능선에서 뻗어내려간 지능선들이 남과 동으로 흘러내려 만들어 놓은 4개의 깊은 계곡(성불, 동곡, 어치, 금천)도 백운산을 찾는 이유 중 하나이다. 계곡에서도 백운산 남쪽의 동곡계곡이 가장 크고 길며 수려한 풍광을 자랑한다.

신선대에서 바라본 북서쪽 능선. 가운데가 도솔봉 우측이 따리봉이다.

 

■주요 산행코스는 8개… 옥룡면 동곡계곡에만 4개

백운산에는 들머리를 기준해 광양시가 정한 8개 등산로가 있다. 이 가운데 등산객이 주로 이용하는 들머리는 옥룡면의 동곡계곡에 접해있는 1~4코스다. ▲1코스(4.9㎞) 논실~한재~신선대~정상(2시간10분) ▲2코스(3.3㎞) 진틀~병암~진틀삼거리~정상(2시간) ▲3코스(5.3㎞) 용소~백운사~상백운암~정상(2시간 50분) ▲4코스(9.5㎞) 동동마을~노랭이봉~억불봉삼거리~정상(4시간50분)이다. 코스 설명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종이 지도든 인터넷 지도든 옆에 두고 보면서 살펴보는 것이 좋다. 산행 수준이 보통인 우리가 이번에 진틀~병암~신선대~정상 코스(광양시 기준 2시간)를 올라보니 진틀에서 0.6㎞ 올라가는 병암에서 출발했는데도 2시간 20분이 걸린 것으로 미루어 일반 등산객은 코스마다 30~40분 정도는 추가해야 할 듯하다. 광양시가 계산한 등산 시간은 조망을 즐기지 않는 순수 등산시간을 기준 한 것 같다.

광양시가 분류한 8개 들머리 지도

 

▲광양 21-3번 버스

위에서 언급한 주요 4개 들머리의 공통점은 광양교통 소속 21-3번 버스가 지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버스 노선을 미리 숙지하면 산행이 편리하다. 광양에서 출발한 버스는 동곡계곡 옆 신재로에 자리잡은 논실, 진틀, 용소(용문사), 동동마을을 지나 종점인 논실에서 되돌아간다. 하루 15회 운행하는데 배차간격은 40분~1시간이다.

광양 21-3번 버스 노선. 4개 들머리에 해당하는 정류장만 표시했다.

 

▲1코스(4.9㎞) : 논실~한재~신선대~정상

논실은 광양 21-3번 버스 종점이다. 논실에서 한재를 거쳐 정상까지 5㎞를 올라가는데 한재까지 2.3㎞는 포장도로이고 한재에서 백운산 정상까지 2.6㎞는 산길이다. 한재는 광양시 다압면 하천리와 옥룡면 동곡리 사이에 위치한 큰고개라는 뜻이다.

▲2코스(3.3㎞) : 진틀~병암산장~진틀삼거리~정상

진틀에서 병암산장까지는 0.6㎞ 거리의 포장도로이므로 본격적인 산행로는 병암산장에서 시작한다. 병암에서 정상까지는 신선대를 거칠 경우는 3.2㎞이고 거치지 않을 때는 2.7㎞다. 승용차를 타고 갈 경우 병암산장 안은 사유지라 주차를 금지하고 있다. 산장 직전에 작은 공터가 두어군데 있고 들머리인 진틀휴게소 앞에 너른 공용주차장과 화장실이 있다.

▲3코스(5.3㎞) : 용소~백운사~상백운암~정상

들머리인 용소마을의 버스 정류장 이름은 용문사이다. 산행은 용소~백운사~상백운암~정상 코스로 진행한다. 전체 거리는 5.3㎞이지만 용소에서 백운사까지 3.5㎞가 포장도로이고 백운사가 해발 800m 정도에 위치해 3시간이면 정상까지 다녀올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코스를 찾는 등산객이 많다. 당연히 땀 흘리면서 올라가는 산행의 묘미는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백운사에서 0.9㎞ 올라가는 상백운암은 해발이 1023m나 되어 멀리 광양 앞바다까지 바라보인다.

▲4코스(9.5㎞) : 동동마을~노랭이봉~억불봉삼거리~정상

버스는 동동마을의 동곡보건진료소에서 하차한다. 산행 들머리는 보건진료소 앞 동곡구판장(구멍가게) 옆으로 난 마을길이다. 350년 된 보호수를 지나 동동마을회관 앞에서 왼쪽 길로 들어선다. 마을을 벗어나면 밤나무밭 사이 콘크리트 길이 이어지고 ‘등산로’ 안내판을 따라가면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산길을 500m 정도 오르면 포스코수련관 도로와 만난다. 이후 노랭이봉(1.9㎞)과 노랭이재(1.4㎞) 중 한 곳으로 올라가 능선을 탄다. 승용차로는 동동마을 부근 신재로~약수제단길을 따라 포스코수련관으로 접근할 수 있다. 수련관 입구에는 화장실이 딸린 주차장이 있다.

동동마을 버스정류장. 뒤는 동곡보건진료소다.

 

■우리 산행은 12㎞ 종주 : 진틀(들머리)~정상~노랭이재~동동마을(날머리)

우리 산행은 2코스 들머리인 진틀에서 출발해 정상을 지나 4코스 동동마을로 내려온다. 차를 동동마을에 주차하고 진틀까지는 버스로 이동해 병암~신선대~정상과 노랭이재를 지나 동동마을로 하산한다. 그리하여 동동마을 버스정류장인 동곡보건진료소 뒤 동동마을회관 앞에 주차하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금방 올 거 같지 않아 택시를 불러 진틀로 이동했다. 거리가 멀지 않은데도 택시비를 1만 8000원이나 받아 다소 비쌌으나 망외소득도 있었다. 하나는 진틀에서 병암산장까지 0.6㎞를 걸어 올라가야 하는 시멘트길을 택시 덕에 편안하게 이동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산행 후반 노랭이재에서 동동마을로 내려올 때 지름길 정보를 기사한테 들은 것이다.

 

▲진틀~병암~진틀삼거리

택시 기사 덕분에 들머리가 진틀에서 병암산장으로 바뀌었다. 등산로 표지판을 보니 정상까지 2.3㎞다. 광양시 제작 백운산 전체 지도에 표시된 거리와 비교하면 0.4㎞ 짧다. 우리나라 산의 표지판이 대부분 이런 것을 알기 때문에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등산로는 3월 말에 접어들었는데도 여전히 무채색의 살풍경이다. 등산로 옆 병암계곡은 위에서 굴러내린 거대한 돌들이 차지하고 있다. 계곡과 등산로 사이에 용도와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색 호스가 산 중턱까지 계속 따라와 자연 풍경을 망가뜨린다는 생각을 하며 올라갔는데 나중에 동정이 호스의 정체를 알아냈다며 어깨를 으쓱한다. 알고보니 산중턱에서 고로쇠나무에 구멍을 뚫어 수액을 빼낸 것을 수㎞ 아래 마을의 수액 집수장으로 흘려보내는 고로쇠 수액 송수관로란다. 백운산은 고로쇠 약수의 산지로 명성이 높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채취량을 자랑한다. 틈만 나면 전국을 주유하는 동정의 설명에 따르면 고로쇠의 원래 명칭은 ‘뼈에 이롭다’는 뜻의 ‘골리수(骨利樹)’였는데 고로쇠로 바뀌었다고 한다.

병암산장 들머리

 

조릿대군락과 데크계단을 만날 때까지는 너덜길의 연속이다. 산 위로 올라갈수록 그 흔한 소나무는 보이지 않고 수종이 다양한 게 인상적이다. 나무백화점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다채롭다. 이유를 알게 된 것은 등산로 초입에 세워져 있는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 남부학술림’ 안내판을 보고나서였다. 안내판에 따르면 백운산의 자생수종은 졸참나무, 서어나무, 고로쇠나무, 노각나무 등 천연활엽수이고 조림수종은 독일가문비나무, 잣나무다. 그중에서도 내 눈에 가장 인상적인 것은 노각나무 수피다. 노각나무에 대해서는 이 글 아래에서 소개한다. 백운산의 서울대 학술림 면적은 광양시 전체 면적의 18%나 된다. 그런데 이 학술림을 둘러싸고 10여년 전부터 광양시와 서울대가 갈등을 빚고 있다는 사실을 산행 후 알게 되었다. 배경과 과정도 이 글 아래에서 소개한다.

 

▲진틀삼거리~신선대~정상

병암산장에서 너덜길을 따라 1.6㎞, 50분을 올라가니 진틀삼거리다. 정상으로 바로 올라가는 오른쪽 길은 1.4㎞이고 왼쪽 신선대는 1.2㎞다. 신선대에서 정상까지 0.7㎞이므로 왼쪽 길로 올라가면 정상까지 1.9㎞다. 오른쪽 길로 가면 너덜지대가 아닌 가파른 오르막길을 800m가량 걷고 466개의 데크계단을 오른다. 데크계단이 끝나는 주능선에서 왼쪽으로 0.3㎞ 가면 백운산 정상이다. 우리는 삼거리에서 계획대로 왼쪽 신선대 방향을 선택했다. 전반적으로 급경사인데 이곳으로 하산하는 등산객을 만나 물어보니 삼거리 오른쪽 길이 더 급경사라고 한다.

신선대로 향하는 오름길

 

거대 암봉인 신선대(1198m)에 올라서니 삼거리에서는 1시간 10분, 병암에서는 2시간 걸렸다. 신선대는 주위 경관이 좋아 신선들이 내려와 놀았던 장소라 해서 명명했다는데 전국에 이런 신선대가 부지기수다. 경험상 신선대는 ‘조망 좋음’과 같은 뜻이므로 전국 무슨 산이든 신선대가 있는 곳은 필히 올라가보는 것이 좋다. 신선대에서 바라보는 정상 방향 능선은 군데군데 암릉이다. 마치 먹잇감을 노려보는 거대 육식동물이 등줄기 근육에 한껏 힘을 주고 있는 모습이다. 북서쪽으로는 따리봉~도솔봉~형제봉 능선이 백운산의 조망에 힘을 실어준다. 정상으로 가려면 부분부분 암릉을 지나야 하므로 신선대 아래로 내려와 8부 능선을 타고 정상으로 향한다. 신선대에서 정상 아래 전망데크에 도착하는데 20~30분이 걸린다. 전망데크는 등산객들의 쉼터이면서 백패커들이 즐겨찾는 숙영지이기도 하다. 전망데크 뒤에는 정상을 향해 기어올라가는 모습의 거북이바위가 눈길을 끈다.

신선대에서 바라본 정상 방향 능선(왼쪽)과 신선대 정상목

 

전망데크 바로 뒤 정상은 육산의 한가운데가 불쑥 튀어나온 거대 암봉이다. 암봉 꼭대기에서는 ‘白雲山 上峯 1222m’라고 쓰여진 정상석이 사시사철 눈비바람을 홀로 맞고 있다. 정상에 서니 탁 트인 조망이 압권이다. 사방이 일망무제로 펼쳐진다. 가까이에는 신선대가, 멀리에는 억불봉이 우뚝하다. 억불봉까지 6㎞ 이상의 능선이 뱀꼬리처럼 길게 이어져있다. 이런 모습의 능선을 만날 수 있는 곳은 경험상 지리산, 덕유산, 소백산 등 소수에 불과하다. 멀리 사방을 둘러보면 동과 북으로 섬진강과 지리산 능선, 남으로 남해바다, 서로는 길게 뻗은 능선이 파노라마처럼 보인다는데 봄날의 불청객 황사 때문에 시야가 선명치 않다.

백운산 정상에 선 4인
백운산 정상석(왼쪽)과 정상 아래 전망데크

 

▲정상~노랭이봉

정상에서 내려와 6.3㎞ 떨어진 억불봉으로 향한다. 곧바로 왼쪽의 섬진강 쪽 매봉(3.6㎞)과 내회(3.9㎞)로 갈 수 있는 삼거리다. 다시 7~8분 정도 진행하면 오른쪽 진틀(3.3㎞)로 갈라지는 삼거리이고 그곳에서 15분 정도 더 진행하면 오른쪽 백운사(1.3㎞)로 내려가는 삼거리이면서 헬기장이다. 능선은 야트막한 봉우리의 연속이다. 장시간 산행 때는 이런 봉우리도 힘이 든다. 등산객의 상태를 헤아려 등산로는 봉우리 8부 능선에 나 있다. 능선은 숲이 우거지고 흙길로 된 둘레길 수준이다. 힘든지 모르고 걸어간다. 다만 길 양옆의 나무에 가려 대부분 길에 조망이 없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숲에 가려 보이지 않던 조망은 가끔식 열려 저멀리 뾰족 솟은 억불봉을 보여준다.

백운산 정상 아래 전망데크에서 바라본 억불봉까지 능선

 

비로소 억불봉의 전모를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는 곳은 억불봉에서 0.7㎞ 못미친 억불봉 삼거리 헬기장이다. 백운산에서 5.6㎞ 지나온 지점이다. 억불봉도 당초 우리 산행 계획에 있었지만 이미 10㎞ 정도를 걸었더니 다리에 힘이 풀려 다음으로 미루고 오른쪽 노랭이재와 노랭이봉으로 향했다.

억불봉(1008m)은 백운산 종주의 시작이자 끝이다. 지리산 전망대인 백운산과 지리산을 함께 조망하는 최고 전망대다. 삼거리에서 억불봉(1008m)까지는 왕복 1시간 걸린다. 블로그를 살펴보니 억불봉 능선은 만만치 않은 산길이나 전망은 탁월하다. 억불봉 정상을 앞둔 바위 봉우리에서 북쪽으로는 도솔봉, 따리봉, 신선대를 품에 안은 백운산 능선이, 동쪽으로는 섬진강 건너 천왕봉에서 반야봉을 잇는 지리산 주능선이 한눈에 조망된다. 등산객들이 주로 선호하는 코스는 동동마을~포스코수련관~노랭이재~억불봉 헬기장~억불봉(2.7㎞ / 1시간 40분)으로 진행한다.

노랭이재로 내려가는 길에 설치된 포토존. 뒤가 억불봉이다.

 

억불봉 삼거리에서 노랭이재까지는 0.7㎞를 10분 정도 걷는 내리막길이다. 우리 4인은 노랭이재에서 하산 코스를 달리했다. 노랭이봉까지는 0.3㎞의 완경사 오르막이지만 그래도 무리라고 판단한 상록과 동정은 노랭이재에서 1.3㎞ 내려가는 포스코수련관으로 바로 하산하고 선근과 나는 노랭이봉을 넘어 수련관으로 향하겠다며 헤어졌다. 노랭이봉(804m)은 광양시 옥룡면과 진상면에 걸쳐있는 봉우리다. 신선대와 백운산의 정상 만큼은 아니지만 이곳도 동서남북 조망이 거침없다. 바위를 깎아 세운 듯한 억불봉을 올려다보는 전망대 역할로 태어난 듯 억불봉의 옆 모습을 제대로 조망할 수 있는 멋진 조망처다. 백운산 정상으로 이어진 능선과 그 너머 도솔봉까지 한 눈에 들어온다.

 

▲노랭이봉~포스코수련관~동동마을

노랭이봉에서 수련관은 1.9㎞ 거리이고 경사는 완만하다. 정상적으로 내려가면 하산 때 능선 오른쪽 아래에 포스코수련관이 보여야 하고 613m봉을 지나서는 수련관을 만나야 하며 그후에는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걷는다. 택시기사가 알려준 대로 지름길로 가려면 수련관을 지나 헬기장에서 50m 정도 못미친 지점에서 표지판이 가리키는대로 왼쪽의 동동마을로 내려가면 된다. 마을까지 거리는 0.6㎞ 정도다. 노랭이재에서 수련관으로 룰루랄라 하며 1.3㎞를 걸어내려간 동정과 상록은 그 지름길로 편하게 내려갔다. 동정의 말에 따르면 택시기사가 알려준 지름길이 처음에는 도무지 등산로 같지 않아 의심했으나 결국에는 그 길이 맞다고 알려준다. 표지판에서 지름길을 선택하지 않고 직진해 내려가면 주차장을 지나 동동마을회관에서 산행이 끝난다. 물론 지름길에 비해 한참을 돌아야 한다.

포스코수련관

 

문제는 노랭이봉으로 올라간 선근과 나의 등산로다. 둘 다 초행인데다 지난 가을에 떨어진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어 등산로가 보이지 않았던 게 화근이었다. 우리는 노랭이봉에서 하산하면서 백운산 곳곳에 잘 설치되어 있는 표지판이 이 구간에도 당연히 있을 것으로 믿고 한동안 급경사길을 내려갔다. 길은 낙엽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다. 선근이 아무래도 길이 아닌 거 같다고 했으나 나는 그렇다고 다시 올라갈 수 없으니 그냥 내려가자고 고집했다. 그러다가 나뭇가지에 걸려있는 빨강 노랑 리본이 보였다. 무릇 길을 알지 못하는 산에서 리본은 바다의 등대같은 존재라는 것을 경험상 알고 있는 우리는 리본을 믿고 따라 내려갔다. 여전히 등산로에는 낙엽이 수북했다.

겨우겨우 내려가니 시멘트 임도가 나온다. 네이버에서 지도를 살펴보니 동동마을에서 4.4㎞나 떨어진 지점이다. 동동마을로 가려면 1시간 이상 걸어야 한다. 택시를 부르려 해도 우리 위치가 어디인지 알 수 없어 일단 시멘트길을 따라 터덜터덜 걸어내려갔다. 다행히 임업농장에서 일하는 주민을 만나 물어보니 대나무가 많다고 해서 지어진 죽림마을이란다. 그러면서 표지판이 없어 우리처럼 죽림마을로 내려오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말해준다. 리본은 죽림마을 주민들을 위해 자신들이 달아놓은 것이란다. 주민의 도움으로 지름길을 찾았으나 그래도 30분이나 걸린다.

결국 2시 50분 노랭이재에서 헤어진 동정과 상록이 1시간 뒤 동동마을에 도착한 것과 달리 선근과 나는 2시간 10분이 지난 오후 5시에야 동동마을에 도착했다. 겨울이었으면 해가 떨어져 한참을 고생했을 것이다. 길을 제대로 걸어간 상록과 동정을 기준하면 총 11~12㎞를 걷는데 점심시간을 빼고 6시간 정도 걸렸다. 산행 후 광양시청 신문고를 통해 노랭이봉 하산 등산로의 표지판이 부실하다는 사실을 신고했으나 가타부타 답이 없다.

 

■노각나무

노각나무는 쭉 뻗은 수피(나무 줄기)에 금빛이 살짝 들어간 황갈색 무늬가 독특하면서도 아름다운 것으로 유명하다. 나무박사로 유명한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가 “우리나라 나무 중 수피가 가장 아름다운 나무는 노각나무”라고 말할 정도다. 그래서 나무 선발대회가 있고 그 대회에 수피(나무껍질) 부문이 있다면 노각나무가 유력한 진 후보라는 전문가들도 많다. 노각나무는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특산식물이어서 학명(Stewartia koreana)에 Korea가 들어 있다. 6~7월 여름에 들어서면 잎 사이에서 하나씩 매달려 하얀 꽃이 독특하고 예쁘다. 나무가 단단하고 습기에도 강해 목기, 특히 제기(祭器)를 만드는 최고급 나무로 꼽혀왔다. 독특한 나무 이름은 가지가 사슴뿔처럼 생겼다고 처음에 녹각(鹿角)나무였다가 변한 것이라는 견해가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수피가 비단을 수놓은 것 같다는 의미로, ‘금수목(錦繡木)’ ‘비단나무’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

노각나무

 

■서울대 남부학술림

백운산이 서울대 학술림으로 편입된 것은 일제 조선총독부가 백운산과 지리산 일부 지역을 동경제국대학 연습림으로 지정한 1912년이다. 해방 후에는 미군정이 서울대에 2026년까지 80년간의 장기 임대를 하면서 서울대 학술림으로 계속 유지되어 왔다. 그런데 서울대가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서울대법)에 따라 2011년에 법인화한 후 서울대법 22조를 근거로 백운산 학술림의 무상 양도를 정부에 요구하면서 갈등이 빚어졌다. 22조는 ‘국가는 서울대 운영에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서울대에 이(법인화 이전에 서울대가 관리하고 있던 국유재산 및 물품)를 무상으로 양도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으므로 서울대가 막무가내로 요구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광양시민 입장에서는 2026년 국가에 환수 예정이었던 백운산의 넓은 땅을 돈 한 푼 안내고 자산으로 귀속하려 한 서울대의 요구가 못마땅했다. 그 갈등이 접점을 찾지 못하고 10년 이상 표류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대 남부학술림 안내판

 

■자연향기 펜션

평소 산행기에는 펜션을 소개하지 않지만 드물게 맘에 드는 펜션이 있으면 소개한다. 서울에서 광양까지 내려가 다음날 일찍 백운산에 오르기 위해 동동마을 부근에 있는 자연향기 펜션(010-3039-3622)에서 1박을 했다. 펜션 앞은 동곡계곡이어서 여름이라면 물놀이에 적격이다. 4채의 룸이 있는데 작은룸은 1박에 12만원이고 큰룸은 17만원이다. 우리는 작은룸에 묵었는데 룸 안에 별도의 방이 있어 최대 6인까지 충분하다. 우리 4인 모두 공통적으로 느낀 것은 룸의 안과 밖이 깨끗하고 깔끔하고 잘 정돈되어 있다는 것이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아기자기하게 꾸민 화단이다. 룸 안의 실내장식도 무엇하나 허투루 설치한 것이 없다. 여성 특유의 섬세함이 살아있고 미적감각도 빼어나다. 냉장고도 형식적으로 갖춘 그저그런 냉장고가 아니라 가정집에서 쓰는 큼지막한 냉장고다. 바비큐 시설 등 펜션이 갖춰야 할 것은 모두 다 있다. 젊은 여사장도 친절하다. 오죽 맘에 들었으면 동행한 친구들이 “자연향기 펜션을 예약한 것 하나만으로도 그날 일어난 나의 모든 실수를 용서하겠다”고 농담을 한다.

자연향기 펜션 모습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