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이야기

루스 베니딕트, 일본 사회 총체적으로 분석한 ‘국화와 칼’ 출간

일반인을 위한 인류학 강의를 듣고서 절망에서 빠져나와

루스 베니딕트(1887~1948)는 마거릿 미드와 더불어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여성 인류학자다. 그는 뉴욕에서 태어나 두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힘겹게 두 딸을 키우는 어머니의 신경질을 온몸으로 받으며 성장했다. 어릴 때 앓은 열병으로 한쪽 청력까지 잃어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1909년 배서 칼리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교사로 근무했다. 1914년 생화학자와 결혼했으나 자기 정체성 확립이라는 문제를 두고 남편과 갈등을 빚었다. 그런 갈등을 해결해줄 아이를 기다렸으나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한동안 절망에 빠졌다가 1919년 일반인을 위한 인류학 강의를 듣고서 절망에서 빠져나왔다.

인류학을 통해 삶의 전망을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이 서자 1921년 34살의 늦은 나이에 컬럼비아대 인류학과 대학원에 진학했다. 프란츠 보아스 교수의 지도를 받아 대학원을 마친 뒤에는 컬럼비아대의 협력대학인 버나드여대에서 조교로 근무했다.

1922년 마거릿 미드를 처음 만났을 때 미드는 그 대학의 4학년 학생이었다. 이후 둘의 관계는 동료 학자이자 동성애 파트너로 발전했다. 베니딕트는 40대 초반 무렵 자신의 동성애 성향을 인정하고 젊은 화학도와 파트너 관계를 맺었다. 그래도 남편과는 이혼하지 않았다.

베니딕트는 1923년 아메리카 인디언 종족들의 민화와 종교에 관한 연구로 컬럼비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모교에서 인류학과 교수로 봉직했다. 1934년에는 문화의 상대성이 개인의 성격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한 ‘문화의 유형’을 발표해 큰 성공을 거두었고, 1940년에는 ‘종족’을 출간해 미국 인류학계의 대표 학자가 되었다.

‘문화의 유형’은 아메리카 인디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그들의 생활이 근대 서구 문명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그리고 관습과 전통이 인간 행동에 어떤 영향이 있는지를 분석한 책으로, 오늘날 문화인류학의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일본인들의 이중적·모순적 가치관과 행동에 대한 고찰

베니딕트는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1943년 국무부 산하 전시정보국으로 자리를 옮겼다. 임무는 교전상대국의 문화적 특징을 연구하여 미군의 전쟁 수행 또는 전후 대응에 도움을 주는 것이었다.

미 국무부가 그에게 연구 과제를 의뢰한 것은 1944년 6월이었다. 당시 미 정부는 일본과 전쟁을 치르면서 이해할 수 없는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때까지 싸웠던 적들과는 완전히 다른 태도와 행동을 일본군이 보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장차 일본을 점령했을 때 일본인들이 어떻게 대응할지 궁금했다. 그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며, 그들을 움직이는 근본적인 힘이 무엇인지 궁금했던 미 정부는 구체적으로 일본군을 연구하기로 했다. 그 연구를 베니딕트에게 주문한 것이다.

베니딕트는 당황했다. 문화인류학자에게 현지 조사는 연구의 기본인데, 전시 상황에서 교전국인 일본을 방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미국 내 일본인들을 면담하고 책, 논문, 영화, 신문 등의 방대한 자료를 뒤지는 일이었다. 그는 7세기부터 제2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봉건사회의 위계질서와 메이지유신 과정, 가족제도와 조상숭배, 육아 방식 및 사회화 과정, 불교와 신도 등에 이르기까지 일본을 총체적으로 분석했다.

그런 연구과정을 거쳐 1945년 5월부터 8월 초까지 ‘일본인의 행동 패턴’이라는 보고서를 완성했다. 곧이어 전쟁이 끝나자 보고서를 대폭 수정·보완해 1946년 11월 ‘국화와 칼(The Chrysanthemum and the Sword)’을 출간했다. “일본인은 미국이 지금까지 전력을 기울여 싸운 적 가운데 가장 낯선 적이었다”로 시작하는 ‘국화와 칼’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국화(평화)’를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칼(전쟁)’을 숭상하는 일본인들의 이중적·모순적 가치관과 행동에 대한 고찰이었다.

 

전후 미군의 일본 통치에 지대한 영향력 미쳐

그가 보기에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통해 천황을 정점으로 하는 국가적 위계구조를 완성했다. 그 속에서 일본인들은 각자 자신의 ‘알맞은 위치’를 인식하고, 철저히 그 위치에 맞게 ‘합당한’ 행동을 한다. 그들은 이러한 구조 속에서 다양한 ‘온(おん·恩)’을 입고 산다고 생각한다. 온의 원천은 천황, 부모, 조상, 주군, 스승 등 다양하다. 그러다보니 그들의 위계구조는 온의 거대한 그물조직이기도 하다. 그 속에서 그들은 온을 갚기 위해 각각 혼신의 힘을 다한다. 온을 갚는 것은 ‘의무’와 ‘의리’다.

이런 구조 속에서 그가 분석한 일본인은 공격적이면서 수동적이고, 호전적이면서 심미적이고, 무례하면서 공손하고, 충성스러우면서 간악하고, 용감하면서 비겁하고, 경직되어 있으면서 적응력이 뛰어나고, 남의 시선에 온통 신경을 쓰면서도 타인의 눈이 미치지 않으면 쉽게 범죄의 유혹에 빠져드는 이중적인 모습이었다.

더욱 충격적이었던 것은 전쟁에서의 죽음은 정신적 승리라고 외치며 최후까지 절대로 항복을 하지 않을 것 같던 그들이 막상 천황의 패전 선언이 있은 후에는 일사불란하고 유순한 태도로 적이었던 미국에게 복종과 협력을 아끼지 않는 태도였다. “이 책 덕에 천황제의 존속이 결정되었다”는 말이 나올 만큼 ‘국화와 칼’은 미군의 일본 통치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쳤다. 미국에서 비상한 관심을 끌어 무려 35만부나 팔렸다. 일어판은 오늘날까지 250만부 이상 팔렸다. 지금도 여전히 스테디셀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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