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이승만 대통령 계엄령 발동… 장기독재 신호탄

1952년, 피난지 부산은 집권 연장을 꾀하는 이승만 대통령의 무리수로 연일 시끄러웠다. 이대통령은 직선제 개헌을 추진, 연임을 노렸지만 야당의 반대로 계획이 차질을 빚자 정국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비상수단을 강구하던 이대통령에게 1952년 4월·5월에 치러진 지방의원 선거에서의 승리는 낭보였다. 때마침 발생한 서민호 의원 총격사건도 호재로 작용했다. 백골단·땃벌떼·민중자결단 등 정체모를 집단들이 연일 반(反)국회 시위를 벌였다. 관제 데모대가 우마차를 타고 상경했다해서 생겨난 해학성 조어 ‘우의·마의(牛意·馬意)’도 이때 유행했다.

공비소탕을 구실로 1952년 5월 25일 0시를 기해 내려진 계엄령은 장기독재의 신호탄이었다. 신문사가 습격을 받았고 서민호 의원도 다시 구속됐다. 5월 26일, 우리 헌정사에 길이 남을 중대한 사건이 발생했다. 새벽에 정헌주·이석기 등 야당 의원이 구속된데 이어 48명의 국회의원을 태운 전용버스가 통째로 헌병대에 끌려간 것이다. 장택상 총리가 ‘민주주의의 장송(葬送)’이라며 탄식했지만 다음 날에도 검거선풍은 계속됐다. 곽상훈·서범석 등 야당 의원들이 국제공산주의와 결탁했다는 혐의로 구속됐다. 결국 발췌개헌으로 직선제는 관철됐지만 국가폭력이 저지른 그림자는 더욱 짙게 드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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