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미국, 쿠바 피그만 침공

쿠바에 카스트로 정권(1959년 1월)이 들어서고 1주일 뒤 미국이 쿠바의 신정권을 승인할 때 만해도 양국 간의 관계는 우호적이었다. 그러나 카스트로가 쿠바 내 미국 재산을 몰수(1960.8)하고 미국이 이에대한 보복으로 쿠바와의 단교를 선언(1961.1)하면서 쿠바는 미국의 눈엣가시가 됐다.

1961년 4월 17일, 미 CIA로부터 훈련받은 1400여 명의 쿠바 망명객들을 태운 7척의 미 함대가 쿠바 피그만(灣)에 조용히 닻을 내렸다. 쿠바 내 반 혁명세력과 연합,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할 계획으로 쿠바에 상륙했지만, 반 혁명 세력이 미미한데다 망명객 안에 첩자까지 숨어있어 결국에는 참담한 실패로 끝이 났다. 쿠바군의 폭격으로 사흘 만에 200여 명이 숨지고 1200여 명이 체포됐다. 전임 대통령 아이젠하워가 확정한 계획을 그 해 초 갓 취임한 케네디가 장고 끝에 승인해 이뤄진 침공이었지만 실패에 따른 비난의 화살은 케네디가 뒤집어썼다. 국제사회로부터 망신을 산 것은 물론이고, 대 국민사과성명까지 발표하게 돼 지도력에도 상처를 입었다.

이에반해 카스트로는 영광스러운 승리자가 됐고 포로 몸값으로 6000만 달러 상당의 식품과 의약품까지 챙겼다. 쿠바는 이 사건을 계기로 사회주의 공화국을 선포하며 소련에 급속도로 가까워져 이듬해 소련의 핵미사일을 끌어들임으로써 ‘쿠바 미사일 위기’를 촉발시켰다. 뒷날 케네디는 “내가 그토록 어리석었단 말인가”라며 가슴을 쳤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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