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독일 녹색당, 환경정당으로 세계 최초 의회 진출

1983년 3월 6일 독일 녹색당이 수년간 자신의 진입을 거부해 온 연방의회 출입문을 비집고 들어가 마침내 그 두터운 문을 활짝 열어젖히자 지지자들 사이에 환호가 터졌다. 5.6%의 득표율로 27명의 연방의원을 탄생시킨 그날은 환경보호를 기치로 내건 무정부주의자, 동물애호가, 동성연애자들이 세계 최초로 정치무대에 첫발을 내디딘 날이었다. 비록 지역구에서는 한 명도 당선되지 못하고 모두 정당별 지지에 기반한 의석이었지만 수십년간 3개 정당에 의해서만 움직여 오던 기성 정치계에 파란과 소란을 일으켰다.

등원 첫날부터 청바지, 티셔츠 차림에 농구화를 신어 이후 전개될 간단치 않은 의정활동을 예고했다. 4년간의 임기를 당원끼리 임의로 2년씩 돌아가며 의원직을 수행한 것도 전에 볼 수 없었던 파격이었다. 무엇보다 페트라 켈리와 요시카 피셔라는 젊고 열정적인 두 30대가 있어 활력이 넘쳤다. 켈리가 녹색당 깃발을 들고 창당과 의회 진출을 진두지휘했다면 피셔는 한때 녹색당을 제3정당으로 부상시키고 제대로 착근(着根)시킨 일등공신이었다.

켈리는 독일에서 태어나 1960년대 흑인민권운동, 베트남 반전운동 등 정치적 격변기를 미국에서 겪었다. 대학졸업 후에는 브뤼셀의 유럽공동체에서 근무하며 반핵평화운동에 발을 담갔다. 1980년 1월 녹색당이 창당됐을 때 “황량한 정치판에 나타난 예쁜 화동”이라는 놀림이 있었지만 켈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핵무기를 반대하고 동독의 민주화를 요구해 ‘원자력 시대의 잔 다르크’라는 찬사를 받았다. 편지 겉봉에 ‘페트라 켈리, 서독’이라고만 적어도 편지가 전달될 만큼 그는 최고의 화제인물이었다.

정규교육을 받고 순탄한 삶을 살아 온 켈리와 달리 고교를 중퇴하고 노동자, 좌파혁명가, 택시기사 등을 거쳐 연방의원이 된 피셔는 헤센주 환경장관을 두 차례 역임하고 1998년부터 7년 동안 독일 외무장관으로 활동했던 입지전적 인물이다. 소모적인 당내 논쟁에 침몰하고 있던 녹색당을 늪에서 끌어올려 현실 정당으로 탈바꿈시킨 것도 피셔의 리더십이었다. 그는 평화주의와 환경보호를 모토로 한 녹색당의 스타 정치인이었지만 원칙에 구애받지 않는 현실정치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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