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매카시 선풍의 시작

↑ ‘매카시 선풍’의 시작을 알리는 매카시 상원의원의 공화당 여성당원 대회 연설 (1950년 12월 9일)

 

2차대전 후 냉전이 더욱 첨예화되고 중국마저 공산당 수중에 넘어가 적색공포가 절정에 달할 때였다. 1950년 2월9일,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에서 열린 공화당 여성당원 대회에 연사로 초청된 공화당의 조지프 매카시 상원의원이 서류뭉치를 꺼내보이며 말했다. “국무성의 공산주의자 205명의 명단이 여기에 기록돼 있다.” 훗날 ‘매카시즘’이라 불리게 된, 희유의 빨갱이 사냥 집단 히스테리가 미 전역에 몰아치도록 한 광기의 시작이었다. 아무런 증거도 없었지만 그의 연설은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매스컴의 집중보도로 여론의 동태가 심상치 않자 트루먼 대통령은 즉각 조사위원회를 소집했다. 3개월 후 ‘근거가 없는 것’으로 판명됐지만 적색 사냥 선풍은 이미 통제불능 상태에 빠져있었다. 정부는 물론 의회, 학계, 문화계, 노동계 심지어는 할리우드 배우들에 이르기까지 공산당 색출 소동이 시작돼 희생자가 속출했다. 매카시가 ‘빨간 색’이라고 지목한 사람은 그 순간 공산주의자가 됐다.

1952년 선거에서도 매카시는 상대 후보를 공산주의자라고 몰아세워 재선되는 정치적 이득을 보았다. 1953년부터 2년간은 조사위원회 위원장으로 청문회를 주도, 500여명의 증인을 불러내 협박과 으름장을 놓았다. 그야말로 매카시 세상이었다. 증인을 감옥에 보내겠다고 위협하고 아이젠하워 정부에까지 감시의 손길을 들이댔다. 도가 지나치기도 했지만 이미 사람들은 무책임하고 야만적인 매카시의 언동에 속았음을 깨닫고 있었다. 결국 상원이 1954년 12월 매카시에 대한 견책조치를 내리면서 마녀사냥 열기는 급속히 식었고 매카시도 몰락을 시작했다. 3년 뒤 매카시는 알코올 중독증과 우울증으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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