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 마리아, 5월부터 10월까지 매월 13일 같은 장소에서 목동들에게 3가지 계시
1917년 5월 13일, 포르투갈 리스본 북부의 구릉지대 파티마 들판에서 양을 돌보던 루치아(10세), 프란치스코(9세), 히야친타(7세) 등 세 어린 목동이 환한 빛에 휩싸여 그들 앞에 나타난 성모 마리아로부터 ‘하늘의 메시지’를 들었다. 성모 마리아가 그해 10월까지 매월 13일 같은 장소에 나타나 6번이나 목동들에게 3가지 계시를 했다는 이른바 ‘파티마의 예언’의 시작이었다.
그로부터 2년 뒤 두 목동은 폐렴에 걸려 세상을 떠났고 루치아만 살아남아 수녀원으로 들어갔다. 계시 가운데 두 가지는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세상에 알려졌다. 하나는 22년 후 발발한 제2차 세계대전으로 해석된 지옥의 모습이었고, 다른 하나는 신의 존재를 부인하는 러시아 공산주의의 성쇠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세 번째만은 비밀에 부쳐져 공개되지 않았다.
1944년 루치아 수녀는 어린 시절 그가 보았던 환상을 기록해 교황청에 건넸으나 역대 교황과 소수 성직자의 함구로, “계시가 인류의 종말을 예고한 엄청난 비밀을 안고 있다”는 억측만 난무할 뿐 실상이 알려지지 않았다. 루치아의 증언은 문서로 정리되어 1957년 교황청에 보관되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1981년 5월 13일 오후 5시경,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무개차를 타고 성 베드로 광장에 운집한 2만여 신도를 접견하러 가던 중 인근에서 날아든 총탄을 맞고 현장에 쓰러졌다. 교황은 복부에 총상을 입었으나 다행히 총알이 교황의 심장을 1㎜ 차로 치명적 부위는 비껴간 덕에 6시간의 수술을 받고 목숨을 건졌다.
경찰은 현장에서 범인으로 체포된 터키 청년 메메트 알리 아그자의 배후를 추궁했으나 범인은 끝까지 단독범행을 주장하다가 그해 7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1년이 지난 1982년 10월 말, 아그자가 “소련 KGB의 지시가 있었고 불가리아 정보기관이 개입했으며 터키 우익단체도 가담했다”고 새로운 사실을 진술하면서 수사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당시 폴란드에서 타오르고 있던 자유노조 ‘연대’ 운동을 억누르기 위해 소련이 폴란드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교황을 암살하려 했다는 것이 아그자의 주장이었다. 미·소 대립이 첨예하던 때 발생한 교황의 암살사건은 곧 ‘악의 제국’ 소련이 꾸민 국제 테러사건으로 확대되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탈리아 경찰은 아그자가 공범으로 지목한 3명의 불가리아인을 추적했으나 2명은 이미 귀국하고 없어 1명만 체포했다. 불가리아 정부는 “미 CIA의 자작극”이라며 개입 사실을 강력히 부인했다. 그러나 이탈리아 경찰이 직접 불가리아로 날아가 귀국한 2명을 심문하는 등 2년여를 수사한 끝에 터키인 3명과 불가리아인 3명을 기소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내가 살아난 것은 파티마 예언 덕”
사건이 일어나고 4년 만인 1985년 5월, 2명의 불가리아인 등 4명이 궐석 상태에서 진행된 재판은 예상대로 아그자의 증언에 의존했다. 그러나 재판 도중 아그자가 “나는 환생한 예수”라며 횡설수설하고 “암살 지령은 불가리아 소피아의 소련 대사관에서 떨어졌고 소련 대사관은 300만 마르크를 지불했다”는 등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을 펼쳐 결국 재판은 1986년 3월 증거 불충분으로 아그자를 제외한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아그자 등을 ‘소련의 앞잡이’로 몰아간 검찰이 한 점의 증거도 보여주지 못한 채 이해할 수 없는 한 편의 코미디로 막을 내린 것이다. 아그자는 2000년 6월 사면되어 터키로 강제송환되었다.
교황의 암살 기도가 있고 다시 19년의 세월이 흐른 2000년 5월 13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오래 전 죽은 두 목동의 시복식을 위해 파티마를 찾았다. 60만 신도가 참석한 옥외 특별미사가 끝나갈 무렵 교황청 국무장관이 80년 이상 침묵해온 세 번째 계시를 공개했다. 그는 “교황의 지시에 따라 발표한다”며 “마지막 환상은 순교자들의 시신 사이로 십자가를 향해 걷다가 총탄에 쓰러지는 흰 옷차림의 사제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19년 전 발생한 교황 암살사건이 세 번째 계시라는 것이다.
갑작스런 공개를 두고 “새 세기와 새 천년을 맞으면서 회개와 반성을 촉구한 파티마 예언을 다시 한번 되새기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무성한 가운데 교황은 2005년 초 발간한 회고록에서 “내가 살아난 것은 1917년에 발현하신 성모 마리아의 파티마 예언 덕”이라고 밝혔다. 루치아 수녀는 교황이 선종(2005년 4월 2일)하기 2개월 전인 2005년 2월 14일, 97세로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