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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청양의 칠갑산… 등산로는 뒷산의 산책길 처럼 유순하고 벚꽃 피는 봄이면 환상적인 분위기 연출하는 곳

↑ 천장호 출렁다리

 

by 김지지

 

■50일 사이 두 번이나 찾아간 이유는

칠갑산(561m)은 충남 청양군의 대표 산이다. 서울에서 멀다고는 할 수 없지만 막상 가려면 승용차로 2시간 이상 걸린다. 게다가 풍광이 아주 빼어나다고도 할 수 없다. 그런데도 지난 2월과 3월, 초록의 계절이 아닌데도 두 번이나 찾아갔다. 왜 그랬을까. 고교 동기들과 칠갑산을 찾아간 것은 2월 8일. 칠갑산은 처음이었다. 만족 반 아쉬움 반이었다. 천장호 출렁다리를 건너 칠갑상 정상에 오른 것은 만족이고, 천장로로 올라갔다가 같은 코스로 내려온 것은 아쉬움이다.

칠갑상 정상에서 바라본 산장로 방향

 

칠갑산 등산로는 보통은 2~3개 정도인 다른 산들과 달리 고만고만한 코스가 8개나 된다. 따라서 코스 한곳만 올라서는 칠갑산을 다녀왔다고 할 수 없다. 그런데도 2월 8일 코스 한 곳만 경험한 것은 고교 동기 10여 명이 함께 떠난 단체등산이었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하산 후 충남 서산에 있는 고교 친구 집을 방문해야하므로 시간이 부족하다며 서두른 탓에 다른 코스를 접할 기회가 없었다.

그후 다른 코스가 계속 궁금하던 차에 3월 말쯤 서울에서 벚꽃의 꽃망울이 터지는 것을 보고 칠갑산을 다시 떠올렸다. 벚꽃길로 유명한 청양이 서울보다 남쪽이므로 서울보다는 벚꽃이 더 많이 피었을 것이고 나무들마다 연초록의 새순이 고개를 내밀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이 칠갑산 행을 다시 부채질한 것이다.

사실 청양의 벚꽃길은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포함될 정도로 아름다운 길이다. 길에는 벚나무 가지가 터널을 이루고 있어 벚꽃 피는 봄이면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장곡사 삼거리에서 36번 국도와 만나는 주정교 삼거리까지 5.7㎞의 구간이 드라이브 코스로 유명한 벚꽃길이다.

칠갑산 주변의 벚꽃길 (출처 청양군청)

 

그러나 3월 25일 아내와 함께 칠갑산에 찾아갔을 때 청양의 벚꽃은 꽃봉오리들이 고개도 내밀지 않고 있었다. 그냥 앙상한 겨울의 나목 상태 그대로였다. 나중 알고보니 청양은 다른 지역보다 기온이 낮아서 3~4주 정도 늦게 꽃이 핀다고 한다. 벚꽃과는 인연이 없어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2개 코스를 더 경험하고 나니 칠갑산 전반을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

 

■칠갑산이 알고 싶소

칠갑산(561m)은 전국 100대 명산 답게 1973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산세는 크지 않아도 백제의 옛 도읍지인 공주의 서쪽과 부여의 북쪽과 맞닿아 있어 역사가 깊은 산이다. 백제는 칠갑산을 사비성 정북방의 진산(鎭山)으로 여겨 이곳에서 제천의식을 행했다. 서북방의 요새 역할을 하며 나·당연합군과 36일간 전투를 벌이기도 했다.

칠갑산은 각각의 계절마다 나름의 풍광을 자아내지만 특히 인기있는 계절은 봄이다. 봄이면 산을 중심으로 한 바퀴 휘도는 자동차도로가 모두 벚꽃터널 길로 변하고 산자락은 온통 진달래를 피워 낸다. 등산로는 산책길을 연상케 할 만큼 순하고 정비가 잘되어 있어 가족·연인 단위로 산행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칠갑산이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콩밭매는 아낙네야 / 베적삼이 흠뻑 젖는다…’로 시작하는 ‘칠갑산’ 노래를 1989년 주병선이 노래한 후였다. 그래서 칠갑산 하면 사람들은 먼저 노래를 떠올린다. 노래의 유명세는 칠갑산 자락 어딜 가나 만나게 되는, 호미 들고 머리에 수건 두른 ‘콩밭 매는 아낙네’ 상에서 실감할 수 있다. 천문대 쪽 등산로 들머리, 천장호 출렁다리 앞, 칠갑산 옛 국도변, 장곡사 들머리 등에서 이 아낙네를 만날 수 있다.

콩밭 매는 아낙네 동상. 왼쪽은 천장호 입구에 있고 오른쪽은 칠갑광장에서 천문대로 가는 길에 있다.

 

다만 칠갑산을 두 차례 다녀온 내 느낌으로는 산세 자체는 아주 매력적이지는 않다. 보통은 기암기석, 고목이나 거목, 시원하게 흐르는 계곡이 어우러져야 명산으로 분류하는데 칠갑산은 그런 기준과는 다소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자연미 부족을 메꾼 것이 인공미다. 천장호 구름다리가 대표적인 인공미다. 결국 성형미인이라는 얘기인데 사실 칠갑산 말고도 요즘 전국의 유명 산이 인공 시설물을 설치한 덕분에 많은 등산객을 끌어들이고 있으니 여성의 성형수술이 대세이듯 인공미 역시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칠갑산의 또 다른 매력은 편안한 능선길과 울창한 숲이다. 내가 칠갑산을 찾아간 두 번 모두 나무들은 발가벗은 나목 상태였으나 그런데도 여름철이면 숲이 무성하리라 상상하도록 나무들의 가지가 많았다. 실제로 여름철 사진을 보면 그렇게 무성할 수 없다. 육산(肉山)이라 암릉미는 떨어지지만 어머니 품처럼 넉넉하고 포근하다는 것도 칠갑산의 자랑 중 하나다.

칠갑산 정상에서 보이는 산그리메 (출처 청양군청)

 

■주요 등산로는 5곳, 부속 등산로는 3곳

칠갑산의 주요 산줄기는 다섯 갈래다. 이 산줄기 능선을 이용하는 등산로는 8곳이다. 예전 청양지역 산악인들은 칠갑산 등산로가 정상을 중심으로 마치 자전거 바퀴살처럼 방사상으로 7개 코스가 전개되어 있다 해서 ‘칠갑칠로(七甲七路)’라 했다는데 칠갑산 도립공원이 소개하는 등산로는 8곳이고 내가 보아도 8곳이 맞다. 등산로 8곳 중 5곳은 주요 등산로이고 3곳은 이 등산로에 딸려 있는 부속 등산로다. 5곳은 천장로, 산장로, 장곡로, 사찰로, 도림로이고 3곳은 휴양로(중간에 사찰로와 합류), 지천로(장곡로와 합류), 칠갑로(산장로 합류)다.

출발지에서 정상까지의 거리는 2.5㎞(도림로)~6.5㎞(휴양로) 정도이고 산행 시간은 1시간10분에서 3시간30분 정도로 다양하다. 다만 봄에는 산불예방을 위한 입산통제 구간이 있어 사전에 칠갑산도립공원사무소(041-635-7693)에 문의하는 것이 좋다. 삼형제봉-칠갑산 정상 코스가 대표적인 입산통제 구간이다.

코스를 간단히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코스1(천장로) : 천장호→정상(3.7㎞, 1시간 30분)

▲코스2(산장로) : 칠갑산주차장→칠갑광장→자비정→정상(3㎞, 1시간 20분)

▲코스3(장곡로) : 칠갑산장승공원→삼형제봉→정상(4.8㎞, 3시간 20분)

▲코스4(사찰로) : 장곡사→정상(2.9㎞, 1시간 30분)

▲코스5(도림로) : 도림계곡 사방댐→정상(2.5㎞, 1시간 10분)

▲코스6(휴양로) : 칠갑산자연휴양림→장곡사→정상(6.5㎞, 3시간 10분)

▲코스7(지천로) : 까치네유원지→삼형제봉→정상(3.9㎞, 2시간 20분)

▲코스8(칠갑로) : 구기자타운→정상(5.1㎞, 3시간30분)

칠갑산 등산로

 

8곳 코스 중 등산객들이 즐겨 이용하는 코스는 서너 곳이다. 첫째는 칠갑산의 명물인 천장호 출렁다리를 지나는 천장로의 원점회귀 코스다. 둘째는 칠갑산장승공원에서 장곡로로 올라가 사찰로의 장곡사로 내려오는 코스다. 장곡사에서 장승공원까지가 1.3㎞의 평지길이어서 사실상 원점회귀 코스나 다름 없다. 셋째는 칠갑광장에서 산장로를 타고 정상을 거쳐 사찰로를 통해 장곡사로 내려가는 길이다. 다만 이 길은 들머리와 날머리가 다르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사실 나는 들머리와 날머리가 다른 곳을 선호하는 편이다. 택시를 일부러 불러 날머리에서 들머리로 이동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산의 다양한 얼굴을 접하고 산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방식을 좋아한다. 3월 칠갑산도 올라갈 때는 장곡사의 사찰로를, 내려올 때는 칠갑광장의 산장로로 내려와 택시를 불러 날머리인 칠갑광장에서 들머리인 장곡사로 이동했다.

 

■천장로 : 관광(천장호 출렁다리)과 등산 겸하는 코스

천장로는 관광과 등산을 겸하는 코스다. 관광이라 함은 천장호 출렁다리가 이곳에 있어서다. 천장호는 칠갑산 아래에 있는 대형 인공저수지이고 출렁다리는 천장호를 건너는 길이 207m, 폭 1.5m, 높이 24m의 다리로 2009년 개통했다. 국내 최장을 자랑하지만 다리가 호수 바로 위를 지나 일반적인 출렁다리가 주는 아찔함과는 거리가 멀다. 출렁다리에는 구기자와 고추를 형상화 한 거대한 탑이 세워져 있다. .

주차장에서 등산로 입구까지 0.77㎞ 거리에서는 ‘콩밭 매는 아낙네’ 동상과 청양의 또 다른 상징물 ‘청양고추’ 상이 등산객을 맞는다. 칠갑산은 가로등 장식도 고추, 다리 장식도 고추, 칠갑산 산길 안내 표지판도 고추 모양이다. 사실 매운 고추의 대명사인 청양고추는 그 이름의 유래가 경북 ‘청송’과 ‘영양’에서 한 글자씩 따왔다는 게 정설이지만, 청양에선 청양산 고추 종자에서 비롯했다고 주장하고 일반인들도 그렇게 생각한다.

출렁다리를 건너면 왼쪽이 등산로이고 오른쪽이 천장호를 끼고 도는 둘레길이다. 등산 시작 전이든 후이든 둘레길을 다녀오는 것도 좋겠다. 1㎞가 채 안되는 짧은 길이지만 호변길이어서 호젓하고 운치가 있다.

천장호 둘레길

 

3.7㎞의 등산로는 시작부터 가파르다. 급경사 계단을 오르면 천장호와 출렁다리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다. 사람들이 천장호 출렁다리를 내려다보면서 감탄사를 연발하고 출렁다리 사진을 찍느라 분주하다. 전망대 위로 다시 급경사 계단이 이어지고 계단이 끝나면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는 2.4㎞의 능선길이다. 그 사이 천장호 출렁다리가 보였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그래서 천장로는 올라가는 길보다는 내려가는 길로 많이 이용된다. 하산하면서 천장호에 드리운 출렁다리를 내려다보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천장호 출렁다리가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에서 친구들이 폼을 잡고 있다.

 

천장호 전망대 위 데크 길에 진달래가 막 피기 시작했다.

 

정상(561m)은 사방이 활짝 열린 산꼭대기 100여 평의 평평한 터에 만들어진 헬기장이다. 북한산 사모바위 옆 헬기장과 흡사하다. 정자와 넓은 공터도 있어 쉬어가기 좋다. 그리 높지 않은데도 주변에 이보다 높은 봉우리가 없어 막힘이 없고 모든 산줄기를 내려다보고 있다. 칠갑산이 왜 자전거 바큇살이나 우산의 부챗살 모양이라고 하는지 한 눈에 알 수 있다.

아득하지만 맑은 날이면 동쪽의 계룡산(845m), 북서쪽의 오서산(791m), 남서쪽의 성주산(677m) 등 충남의 내로라하는 산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동쪽에서 백마강이 반짝거리며 흐른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내가 정상에 오른 시기는 조망이 그리 좋지 않은 2월과 3월이다.

칠갑산 정상

 

■장곡로 : 삼형제봉 지나는 코스

장곡로(4.8㎞)와 사찰로(2.9㎞)는 출발 지점이 같은 길에 있다. 사찰로는 장곡사에서 출발하고 장곡로는 장곡사에서 1.3㎞ 정도 아래 지점에서 출발할 뿐 들머리는 같은 길에 있다. 두 코스가 자리잡은 마을은 청양군 대치면 장곡리다. 마을 안쪽에 주차장과 식당가와 상가시설이 있고 숙박시설도 마련되어 있다. 주차장은 제1주차장, 제2주차장, 제3주차장으로 나뉘어 있다.

장곡로의 들머리는 제3주차장 부근이다. 출발부터 급경사 데크의 연속이다. 200m를 가는데 고도가 100m나 높아진다. 능선을 지나면 출발지에서 2.8㎞ 지점에 지천로와 합류하는 안부가 나오고 그곳에서 0.5㎞를 오르면 삼형제봉(544m)이다. 삼형제봉은 칠갑산 다섯 줄기 중 최고봉인데다 칠갑산의 주봉과는 높이가 15m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아 ‘작은 칠갑산’으로 불리기도 한다.

삼형제봉 정상에도 헬기장이 설치되어 있다. 전망이 없지는 않으나 주변 숲이 가려서 칠갑산 정상의 호방한 풍광은 기대하기 힘들다. 다행인 것은 칠갑산 정상이 나뭇가지 사이로 온전히 눈에 들어온다는 점이다. 삼형제봉에서 정상까지 이어지는 1.3㎞ 능선길은 숲길이고 정상을 0.24㎞ 앞둔 삼거리에서 장곡사 출발 사찰로와 만난다. 그곳에서 정상까지 역시 급경사이지만 큰 무리는 없다.

칠갑산 정상에서 바라본 삼형제봉

 

▲장승공원

장곡로든 사찰로든 이곳을 지나는 등산객이 놓쳐서는 안되는 볼거리가 있다. 1999년 조성된 칠갑산장승공원이다. 전국 최대(10m) 높이의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을 비롯 300여 기의 장승이 저마다 개성있는 표정을 짓고 있다. 때론 우스꽝스럽고 때론 귀엽고 때론 험상궂다. 전국 각 지역의 장승은 물론 미국, 캐나다, 멕시코 등 외국의 장승도 세워져 있다.

청양은 수백년 전부터 장승제를 지내오고 있어 다른 지역보다 장승이 많다. 더욱이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1970년대 미신타파한다며 전국의 장승을 없앴으나 다행히 청양은 오지여서 장승이 살아남았다. 장승무덤도 눈길을 끈다. 장승은 나무로 만들어 5년쯤 지나면 썩어 문드러져 제 신통력을 마감한다. 그런 장승을 장승무덤에 쌓아두는 것이다.

장승공원.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 모습

 

■사찰로 : 가장 인기 있는 코스

사찰로(2.9㎞)는 장곡로가 시작되는 제3주차장에서 1㎞ 남짓 위쪽에 있는 장곡사가 들머리다. 칠갑산 등산로 중 가장 인기 있는 코스다. 앞서 장곡로에서 소개한 장승공원은 물론 천년고찰 장곡사와 아름다운 숲길이 이 코스에 있기 때문이다.

장곡리에서 장곡사로 올라가는 길 (출처 청양군청)

 

사찰로의 들머리는 두 곳이다. 한 곳은 장곡사 바로 앞 주차장이고 다른 한 곳은 장승공원 부근 제2주차장이다. 장곡사 바로 앞 주차장에서 출발하면 2.9㎞이고 제2주차장에서 출발하면 1.4㎞ 정도를 더한다. 제2주차장을 빠져나오면 바로 장곡사 일주문이 나온다. 일주문 도로는 아스팔트 길이지만 은행나무 가로수가 그늘을 드리우는 아름다운 길이다. 일주문에서 10분이면 승용차 20~30대를 수용할 수 있는 장곡사 주차장이다. 그곳에서 장곡사 경내를 스치고 지나가는 오른쪽 언덕이 등산로다.

데크 계단 길을 통과해 15분 거리인 거북바위를 지나 다시 8~9분 오르면 휴양로(자연휴양림 방면 길)와 만나는 안부 삼거리가 나온다. 그곳에 ‘휴양림 3.8㎞, 장곡사 0.5㎞, 칠갑산 정상 2.4㎞’ 푯말이 있다. 삼거리를 지나면 구불구불 리듬감 있는 0.72㎞ 길이의 멋진 소나무 숲길이 기다린다.

사찰로 일부 (출처 청양군청)

 

‘칠갑산 정상 0.9㎞’ 푯말을 보고 20분 정도 오르면 아흔아홉골(아니골) 전망데크가 나타난다. 그곳에서 저 멀리 바라보면 시원하게 펼쳐진 계곡을 사이에 두고 왼쪽이 장곡로 능선이고 오른쪽이 사찰로 능선이다. 전망데크를 뒤로하고 4~5분이면 장곡로와 만나는 갈림길이고 이어 10분이면 칠갑산 정상이다.

 

▲장곡사

장곡사는 850년 보조국사가 창건한 사찰로, 지금은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다. 칠갑산 남쪽 기슭 비탈진 좁은 땅에 자리를 잡아 절집이 아기자기하게 붙어 있고 규모도 아담한 편이다. 장곡사 앞자락으로 흘러내리는 계곡은 아흔아홉 굽이를 휘휘 돌아내린다 해서 ‘아흔아홉계곡’이라 불린다. 깊은 골짜기를 뜻하는 장곡사(長谷寺)와 장곡리(長谷里)는 여기에서 연유한다. 아흔아홉골의 이 지역 말이 아니골이어서 장곡리 제3주차장에 있는 다리 이름이 아니골 다리다.

천년고찰답게 2개의 국보, 4개의 보물을 간직하고 있다. 청양을 통틀어 국보 2점, 보물 7점이 있는데, 이 중 보물 3점 빼고는 모두 장곡사 것이다. 장곡사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대웅전이 2개인 것으로 유명하다. 2개의 대웅전이 동남향과 서남향으로 좌향만을 달리한 채 비탈길 위아래에 자리잡고 있다. 과거 고승들의 수행처로 쓰인 상대웅전(보물 제162호)과, 강학당 역할을 한 하대웅전(보물 제181호)이다. 절마다 한두 개쯤은 솟아 있는 탑이 전혀 없다는 것도 특징이다.

장곡사

 

■산장로 : 가장 쉬운 코스

산장로(3㎞)는 칠갑산 등산로 중 누구나 부담 없이 오를 수 있는 가장 쉬운 코스다. 거리로 따지면 도림로보다는 조금 길지만 길이 워낙 유순해 뒷산을 산보하는 식이다. 길이 정겹고 푸근하다. 평소 명산의 들머리와 날머리가 다른 것을 선호해서 이번에도 사찰로의 장곡사를 출발해 산장로를 타고 칠갑광장으로 내려왔다. 그후 들머리(출발지)인 장곡사로 이동하기 위해 택시를 불렀더니 3만원(공원관리사무소 추천), 2만원(네이버 사이트 참조)이라고 각기 다르게 부른다. 당연히 2만원 택시를 불렀지만 택시를 부를 때는 이처럼 확인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나는 사찰로로 올라가 산장로로 내려왔지만 이 글의 독자 편의를 위해 산장로 아래에서 정상으로 올라가는 순서로 소개한다.

산장로 역시 출발 주차장이 두 곳이다. 아래쪽 칠갑산 도립공원 주차장과 위쪽 칠갑광장 주차장이다. 칠갑산 도립공원 주차장에서 칠갑광장 주차장까지는 0.8㎞여서 20분 정도면 닿는다. 칠갑광장 해발이 310m이고 정상이 561m이므로 표고차가 250m에 불과하다. 따라서 오르막이 완만해 산행거리 3.1㎞가 거의 평지 길이다. 칠갑광장에 칠갑산도립공원관리사무소가 있으니 이곳이 칠갑산 행정의 중심인 셈이다.

칠갑광장

 

올곧은 조선 선비의 대명사, 항일 의병투쟁의 선봉장인 최익현의 동상이 자리하고 있는 곳도 칠갑광장이다. 광장에서 조금만 걸어올라가면 호미 들고 머리에 수건 두른 ‘콩밭 매는 아낙네’ 상이 있다. 무표정으로 앉아 있다. 그런데 그동안 많은 동상을 봤지만 이렇게 미인인 동상은 처음이다. 비록 얼굴은 그늘져 있지만 아낙네가 미인이라는 것은 집사람도 동감한다.

 

자비정에서 정상까지 1㎞ 능선길은 걷기 좋고 정겨운 오솔길

칠갑광장에서 7~8분이면 칠갑산천문대 스타파크가 나온다. 이곳은 연구목적보다 일반인이 천체 관측을 즐길 수 있는 테마파크다. KBS TV 프로그램 ‘1박2일’에 소개되었다고 입구에서부터 크게 자랑하고 있다. 요즘은 어딜가나 ‘1박2일’에 등장한 것을 적극 홍보하는데 그것을 볼 때마다 해당 관청의 사고가 참 가벼워 보인다.

천문대에서 30~40분 정도 걸어올라가면 자비정이다. 차가 2대는 오갈 수 있는 임도여서 등산 코스라기보다는 산책로에 가깝다. 봄에는 벚꽃과 진달래가 만개해 산책 코스로 인기가 좋다고 한다. 길 주변으로 가로등이 설치되어 있어 야간산행도 할 수 있다. 워낙에 평탄하고 넓어 뒷산에 오르듯이 가벼운 복장으로 삼삼오오 올라가는 일행이 많이 눈에 띈다. 대개 정자는 6각정 혹은 8각정이지만 자비정은 칠갑산 이름의 첫 자인 칠(七)을 상징하는 뜻에서 건물 기둥이 일곱 개다. 2층으로 올라가도 주변에 잡목이 많아서 조망이 좋지는 않다. 그래도 인적없는 그곳에서 점심을 해결하니 고마울 뿐이다.

자비정에서 정상까지 1㎞ 능선길도 걷기 좋고 정겨운 오솔길이다. 그러나 정상 전 막바지 구간은 거의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급경사 데크계단이다. 마지막 100m 거리를 좁히는데 해발고도를 60m나 높여야하는 급경사다. 계단은 250여개나 된다. 중간에서 두 어 번 숨을 고르고 8~9분 직등하면 정상이다. 급경사 계단길이 싫다면 바로 옆에 우회하는 흙길이 있다.

산장로 일부. 자비정에서 정상 가는 오솔길(왼쪽)과 정상 바로 전 급경사 데크 계단

 

▲최익현 동상

최익현(1833~1906)의 고향은 경기도 포천인데 왜 청양에 최익현의 동상이 있는 것일까. 더구나 청양에는 목면 송암리에 최익현을 배향하는 모덕사 사당도 있다. 최익현은 23살에 과거에 급제한 뒤 평생에 걸쳐 부정부패·친일파 척결 등을 요구하는 격렬한 상소와 사직, 체포, 유배, 복직, 사직을 되풀이했다. 그러다가 67살이던 1900년 청양 송암리 장구마을로 이주해 또다시 항일의병활동을 준비했다. 그러던 중 고종이 내려 보낸 밀지를 받았다. 내용 중 ‘모경숙덕(慕卿宿德)’ 즉 ‘그대의 큰 덕을 사모한다’는 구절이 있다.

최익현이 1906년 11월 끌려간 대마도에서 순국하자 청양군내 유림들이 그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공덕사(恭德祠)라는 사당을 건립했다가 해방 후 고종의 밀지에 있는 ‘모경숙덕(慕卿宿德)’에서 ‘모(慕)’와 ‘덕(德)’을 취해 모덕사로 개칭했다. 사당에는 최익현의 초상도 있다. 고종의 어진을 그렸던 궁중화가 채용신이 그린 진영을 서울대 이종상 화백이 모사해 1989년 이곳에 봉안했다. 동상은 2013년 제작한 것이다.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기개가 살아있는 듯 하다.

최익현 동상

    

■도림로 : 등산객 발길이 뜸한 코스

도림로(2.5㎞)는 도림계곡의 사방댐에서 출발해 도림사지를 지나는 구간이다. 오르막을 따라 오르다 보면 숲이 걷히면서 석축이 나타난다. 그 가장자리에 있는 돌계단으로 오르면 시골 초등학교 운동장만한 도림사지가 거짓말처럼 나타난다.

도림사지 (출처 문화재청)

 

절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은 사지에 남아 있는 석탑 주변에서 ‘도림사(道林寺)’라는 글이 새겨진 기와조각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석탑은 또한 고려시대 탑임이 확인되어 도림사의 건립 시기를 뒷받침하고 있다. 고려시대 이전에 창건되어 조선 중기까지 계속되었던 사찰로 추측되고 있다. 화재로 모두 불에 타고 현재는 터만 남아있다. 석탑 앞을 지나 길을 잡으면 이정표가 안내한다. 도림사지에서 정상까지 1.4㎞인데 그 사이 고도는 150m 정도만 높아진다. 초기에 해발고도를 높인 후터는 비교적 여유 있는 산행이다.

도림로는 등산 거리로나 난이도로 보나 많은 사람들이 찾을 것 같지만 등산객의 발길이 다른 등산로에 비해 비교적 뜸한 편이다. 등산로 초입의 도림리가 칠갑산 자락의 마을 중 외진 곳이어서 교통이 불편하고 관광객 편의시설이나 상가가 조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등산로 안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