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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중국(청) ‘간도협약’ 체결
간도(間島)는 ‘조선과 청나라 사이에 놓인 섬과 같은 땅’이라는 데서 유래한다. 백두산과 쑹화강(松花江)을 경계로 서간도와 동간도로 나뉘며, 우리가 간도라고 할 때는 두만강 북부의 만주 땅인 동간도(북간도)를 의미한다. 고조선·고구려·발해 때까지 우리의 영토였다가 고려 이후 오랫동안 미개척 상태로 남아 있던 간도가 우리의 관심권 안으로 들어온 것은 1712년 청의 강희제가 조·청(朝·淸)간 경계를 분명히 할 것을 제의하면서였다. 이때 세워진 것이 ‘백두산 정계비’다. 이후...
북한 허담의 서울 비밀방문과 장세동의 방북
1985년 9월 4일, 허담 북한 노동당 중앙위 비서가 비밀리에 서울을 방문했다. 1972년 이후 13년 만의 남북간 비밀회동이었다. 회담은 박철언 당시 안기부장 특보가 그해 5월부터 북한의 한시해 노동당 부부장과 판문점에서 3번의 비밀회담을 가진 끝에 어렵게 성사되었다. 허담은 이튿날 경기도 시흥에 있는 최원석 동아그룹 회장 별장에서 전두환 대통령과 밀담을 나눴다. 이 자리에는 우리 쪽에서 장세동 안기부장과 박철언, 북한쪽에서는 한시해가 배석했다. 청와대 별장 ‘영춘재’라고...
제2차대전 발발
히틀러가 군비 확장에 힘을 쏟고 있을 때 영국과 프랑스는 내심 불안했지만 애써 외면했다. 오스트리아를 합병(1938년 3월)할 때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체코의 일부 지역을 점령(1938년 9월)할 때는 전쟁 회피를 위해 오히려 거들기까지 했다. 히틀러는 외교적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1939년 봄부터 여름까지 슬로바키아·리투아니아·라트비아 등과 불가침조약을 체결하고 루마니아·헝가리·불가리아·유고 등과는 친선서약을 맺어 혹시모를 배후의 위험에 대비했다. 무엇보다 소련과...
박열 열사, 애인 가네코와 함께 일본에서 구속
무정부주의를 통해 항일운동을 벌였던 박열 열사가 일본인 애인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와 함께 구속된 것은 1923년 9월 3일이었다. 히로히토 일본 왕세자 결혼식 때 천황 부자를 폭살하려 했다는 것이 혐의였지만, 조작설도 끊이질 않았다. 박열은 자신이 결성한 비밀결사 조직 ‘불령사(不逞社)’의 한 회원에게 폭탄을 의뢰한 것이 발각되어 가네코와 함께 재판에 회부되었으나 전혀 주눅들지 않고 당당한 모습으로 재판에 임했다. 그는 “한복 착용을 허락하고, 조선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일본, 태평양전쟁 항복문서에 서명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의 패색이 짙어지자 연합국이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는 포츠담선언을 발표한다. 일본은 이를 묵살하고 소련에 ‘조건부 항복’ 중재를 요청했다. 소련이 시간만 보내며 분명한 의지를 밝히지 않는 가운데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곧 소련마저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자 천황궁에서 열린 어전회의는 ‘천황제 존속’을 조건으로 항복을 결정하고 이를 연합국에 알렸다. 연합국이 조건을 인정하지 않자 결국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따라야 했다. 일부 장교단이...
[연인과 부부 ③-1] 일제 하에서 공산 혁명을 꿈 꾼 세 남자·세 여자의 사랑과 이별, 투쟁과 고난 이야기 : 박헌영·김단야·임원근·허정숙·주세죽·고명자를 중심으로 / 6-①
↑ 위에서 오른쪽으로 박헌영 김단야 임원근, 아래에서 오른쪽으로 허정숙 주세죽 고명자 ☞ [연인과 부부] 시리즈 전체가 궁금하다면 클릭!! by 김지지 ■1920년대 초반, 상해로 모여든 식민지 조선의 젊은이들 ▲들어가며 1919년 4월 중국 상해에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그로부터 수년 사이 자의든 타의든 조국을 떠난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이 속속 상해로 몰려들었다. 당시 상해는 신사상과 신문화의 별천지였다. 동양이면서 서양이었고...
KAL 007기 사할린 상공에서 격추
“KAL기는 조종사 과실로 항로를 이탈해 소련 영공을 침범함으로써 원인을 제공했고, 소련 전투기는 확인절차를 소홀히 한 채 성급히 격추했다.” KAL기 사고 후 10년이 지난 1993년 6월 14일,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사고원인을 이렇게 결론지었지만 사실을 확인해줄 사자들은 말이 없다. 미국 뉴욕을 떠나 앵커리지를 경유한 KAL 007편 보잉 747 점보여객기가 캄차카 반도 상공에서 소련 방공 레이다망에 잡힌 것은 1983년 9월 1일 새벽 0시15분(이하...
강우규 의사, 日 사이토 총독에게 폭탄 투척
1919년 9월 2일 오후5시쯤. 신임 총독으로 부임한 사이토 마코토가 남대문역(현 서울역)에 내려 마차로 갈아타는 순간, 갑자기 요란한 폭발음이 들렸다. 군중 속에서 날아온 폭탄 1개가 마차 주변에서 폭발한 것이다. 사이토는 화를 면했지만 주위에 있던 일본인 37명이 중경상을 입었고, 이 가운데 일본 경찰과 일본인 기자 2명은 이때 상처로 목숨을 잃었다. 사건직후 경찰들이 남대문역을 에워싸고 범인 색출에 나섰지만 범인은 이미 유유히 사라지고 없었다. 범인이 설마 환갑이 지난...
관동대지진 일본 강타… 조선인 대거 학살당해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58분44초. 그때까지 일본인이 경험하지 못했던 대재앙이 일본 간토(關東)지방을 강타했다. 매그니튜드 7.9의 관동대지진이었다. 9만9300명이 사망하고, 4만3500명이 행방불명됐으며, 가옥은 25만 채가 파괴되고 44만7100채가 불에 탔다. 인구밀집지역인 도쿄가 특히 피해가 심해 10만7500여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고 도쿄의 4분의3이 잿더미가 됐다. 방송과 신문마저 중단되자 근거없는 소문들이 사실인양 떠돌아다녔고 사람들은 그 소문에...
일제하 ‘봉선화’ 작곡가 홍난파 사망
‘한국최초의 작곡가’ ‘한국최초의 바이올리니스트’…. 난파 홍영후에게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유난히 많이 붙는다. 홍난파는 천상 음악인이었지만 한때는 문필가의 길을 걸었을 만큼 문재도 뛰어났다. 음악과 문학을 아우른 우리나라 최초의 음악잡지 ‘음악계’를 창간한 것도 홍난파였다. 그가 음악에만 전념하게 된 것은 “개천지 통만고(開天地 通萬古)에서 두가지 예술로 대성한 천재가 누구냐?”는 변영로의 충고가 있은 뒤였다. 어려서부터 음악에 재능을 보였던 홍난파는 전문음악기관인...
일본-중국(청) ‘간도협약’ 체결
간도(間島)는 ‘조선과 청나라 사이에 놓인 섬과 같은 땅’이라는 데서 유래한다. 백두산과 쑹화강(松花江)을 경계로 서간도와 동간도로 나뉘며, 우리가 간도라고 할 때는 두만강 북부의 만주 땅인 동간도(북간도)를 의미한다. 고조선·고구려·발해 때까지 우리의 영토였다가 고려 이후 오랫동안 미개척 상태로 남아 있던 간도가 우리의 관심권 안으로 들어온 것은 1712년 청의 강희제가 조·청(朝·淸)간 경계를 분명히 할 것을 제의하면서였다. 이때 세워진 것이 ‘백두산 정계비’다. 이후...
북한 허담의 서울 비밀방문과 장세동의 방북
1985년 9월 4일, 허담 북한 노동당 중앙위 비서가 비밀리에 서울을 방문했다. 1972년 이후 13년 만의 남북간 비밀회동이었다. 회담은 박철언 당시 안기부장 특보가 그해 5월부터 북한의 한시해 노동당 부부장과 판문점에서 3번의 비밀회담을 가진 끝에 어렵게 성사되었다. 허담은 이튿날 경기도 시흥에 있는 최원석 동아그룹 회장 별장에서 전두환 대통령과 밀담을 나눴다. 이 자리에는 우리 쪽에서 장세동 안기부장과 박철언, 북한쪽에서는 한시해가 배석했다. 청와대 별장 ‘영춘재’라고...
제2차대전 발발
히틀러가 군비 확장에 힘을 쏟고 있을 때 영국과 프랑스는 내심 불안했지만 애써 외면했다. 오스트리아를 합병(1938년 3월)할 때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체코의 일부 지역을 점령(1938년 9월)할 때는 전쟁 회피를 위해 오히려 거들기까지 했다. 히틀러는 외교적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1939년 봄부터 여름까지 슬로바키아·리투아니아·라트비아 등과 불가침조약을 체결하고 루마니아·헝가리·불가리아·유고 등과는 친선서약을 맺어 혹시모를 배후의 위험에 대비했다. 무엇보다 소련과...
박열 열사, 애인 가네코와 함께 일본에서 구속
무정부주의를 통해 항일운동을 벌였던 박열 열사가 일본인 애인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와 함께 구속된 것은 1923년 9월 3일이었다. 히로히토 일본 왕세자 결혼식 때 천황 부자를 폭살하려 했다는 것이 혐의였지만, 조작설도 끊이질 않았다. 박열은 자신이 결성한 비밀결사 조직 ‘불령사(不逞社)’의 한 회원에게 폭탄을 의뢰한 것이 발각되어 가네코와 함께 재판에 회부되었으나 전혀 주눅들지 않고 당당한 모습으로 재판에 임했다. 그는 “한복 착용을 허락하고, 조선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일본, 태평양전쟁 항복문서에 서명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의 패색이 짙어지자 연합국이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는 포츠담선언을 발표한다. 일본은 이를 묵살하고 소련에 ‘조건부 항복’ 중재를 요청했다. 소련이 시간만 보내며 분명한 의지를 밝히지 않는 가운데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곧 소련마저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자 천황궁에서 열린 어전회의는 ‘천황제 존속’을 조건으로 항복을 결정하고 이를 연합국에 알렸다. 연합국이 조건을 인정하지 않자 결국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따라야 했다. 일부 장교단이...
[연인과 부부 ③-1] 일제 하에서 공산 혁명을 꿈 꾼 세 남자·세 여자의 사랑과 이별, 투쟁과 고난 이야기 : 박헌영·김단야·임원근·허정숙·주세죽·고명자를 중심으로 / 6-①
↑ 위에서 오른쪽으로 박헌영 김단야 임원근, 아래에서 오른쪽으로 허정숙 주세죽 고명자 ☞ [연인과 부부] 시리즈 전체가 궁금하다면 클릭!! by 김지지 ■1920년대 초반, 상해로 모여든 식민지 조선의 젊은이들 ▲들어가며 1919년 4월 중국 상해에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그로부터 수년 사이 자의든 타의든 조국을 떠난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이 속속 상해로 몰려들었다. 당시 상해는 신사상과 신문화의 별천지였다. 동양이면서 서양이었고...
KAL 007기 사할린 상공에서 격추
“KAL기는 조종사 과실로 항로를 이탈해 소련 영공을 침범함으로써 원인을 제공했고, 소련 전투기는 확인절차를 소홀히 한 채 성급히 격추했다.” KAL기 사고 후 10년이 지난 1993년 6월 14일,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사고원인을 이렇게 결론지었지만 사실을 확인해줄 사자들은 말이 없다. 미국 뉴욕을 떠나 앵커리지를 경유한 KAL 007편 보잉 747 점보여객기가 캄차카 반도 상공에서 소련 방공 레이다망에 잡힌 것은 1983년 9월 1일 새벽 0시15분(이하...
강우규 의사, 日 사이토 총독에게 폭탄 투척
1919년 9월 2일 오후5시쯤. 신임 총독으로 부임한 사이토 마코토가 남대문역(현 서울역)에 내려 마차로 갈아타는 순간, 갑자기 요란한 폭발음이 들렸다. 군중 속에서 날아온 폭탄 1개가 마차 주변에서 폭발한 것이다. 사이토는 화를 면했지만 주위에 있던 일본인 37명이 중경상을 입었고, 이 가운데 일본 경찰과 일본인 기자 2명은 이때 상처로 목숨을 잃었다. 사건직후 경찰들이 남대문역을 에워싸고 범인 색출에 나섰지만 범인은 이미 유유히 사라지고 없었다. 범인이 설마 환갑이 지난...
관동대지진 일본 강타… 조선인 대거 학살당해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58분44초. 그때까지 일본인이 경험하지 못했던 대재앙이 일본 간토(關東)지방을 강타했다. 매그니튜드 7.9의 관동대지진이었다. 9만9300명이 사망하고, 4만3500명이 행방불명됐으며, 가옥은 25만 채가 파괴되고 44만7100채가 불에 탔다. 인구밀집지역인 도쿄가 특히 피해가 심해 10만7500여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고 도쿄의 4분의3이 잿더미가 됐다. 방송과 신문마저 중단되자 근거없는 소문들이 사실인양 떠돌아다녔고 사람들은 그 소문에...
일제하 ‘봉선화’ 작곡가 홍난파 사망
‘한국최초의 작곡가’ ‘한국최초의 바이올리니스트’…. 난파 홍영후에게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유난히 많이 붙는다. 홍난파는 천상 음악인이었지만 한때는 문필가의 길을 걸었을 만큼 문재도 뛰어났다. 음악과 문학을 아우른 우리나라 최초의 음악잡지 ‘음악계’를 창간한 것도 홍난파였다. 그가 음악에만 전념하게 된 것은 “개천지 통만고(開天地 通萬古)에서 두가지 예술로 대성한 천재가 누구냐?”는 변영로의 충고가 있은 뒤였다. 어려서부터 음악에 재능을 보였던 홍난파는 전문음악기관인...
일본-중국(청) ‘간도협약’ 체결
간도(間島)는 ‘조선과 청나라 사이에 놓인 섬과 같은 땅’이라는 데서 유래한다. 백두산과 쑹화강(松花江)을 경계로 서간도와 동간도로 나뉘며, 우리가 간도라고 할 때는 두만강 북부의 만주 땅인 동간도(북간도)를 의미한다. 고조선·고구려·발해 때까지 우리의 영토였다가 고려 이후 오랫동안 미개척 상태로 남아 있던 간도가 우리의 관심권 안으로 들어온 것은 1712년 청의 강희제가 조·청(朝·淸)간 경계를 분명히 할 것을 제의하면서였다. 이때 세워진 것이 ‘백두산 정계비’다. 이후...
북한 허담의 서울 비밀방문과 장세동의 방북
1985년 9월 4일, 허담 북한 노동당 중앙위 비서가 비밀리에 서울을 방문했다. 1972년 이후 13년 만의 남북간 비밀회동이었다. 회담은 박철언 당시 안기부장 특보가 그해 5월부터 북한의 한시해 노동당 부부장과 판문점에서 3번의 비밀회담을 가진 끝에 어렵게 성사되었다. 허담은 이튿날 경기도 시흥에 있는 최원석 동아그룹 회장 별장에서 전두환 대통령과 밀담을 나눴다. 이 자리에는 우리 쪽에서 장세동 안기부장과 박철언, 북한쪽에서는 한시해가 배석했다. 청와대 별장 ‘영춘재’라고...
제2차대전 발발
히틀러가 군비 확장에 힘을 쏟고 있을 때 영국과 프랑스는 내심 불안했지만 애써 외면했다. 오스트리아를 합병(1938년 3월)할 때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체코의 일부 지역을 점령(1938년 9월)할 때는 전쟁 회피를 위해 오히려 거들기까지 했다. 히틀러는 외교적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1939년 봄부터 여름까지 슬로바키아·리투아니아·라트비아 등과 불가침조약을 체결하고 루마니아·헝가리·불가리아·유고 등과는 친선서약을 맺어 혹시모를 배후의 위험에 대비했다. 무엇보다 소련과...
박열 열사, 애인 가네코와 함께 일본에서 구속
무정부주의를 통해 항일운동을 벌였던 박열 열사가 일본인 애인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와 함께 구속된 것은 1923년 9월 3일이었다. 히로히토 일본 왕세자 결혼식 때 천황 부자를 폭살하려 했다는 것이 혐의였지만, 조작설도 끊이질 않았다. 박열은 자신이 결성한 비밀결사 조직 ‘불령사(不逞社)’의 한 회원에게 폭탄을 의뢰한 것이 발각되어 가네코와 함께 재판에 회부되었으나 전혀 주눅들지 않고 당당한 모습으로 재판에 임했다. 그는 “한복 착용을 허락하고, 조선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일본, 태평양전쟁 항복문서에 서명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의 패색이 짙어지자 연합국이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는 포츠담선언을 발표한다. 일본은 이를 묵살하고 소련에 ‘조건부 항복’ 중재를 요청했다. 소련이 시간만 보내며 분명한 의지를 밝히지 않는 가운데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곧 소련마저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자 천황궁에서 열린 어전회의는 ‘천황제 존속’을 조건으로 항복을 결정하고 이를 연합국에 알렸다. 연합국이 조건을 인정하지 않자 결국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따라야 했다. 일부 장교단이...
[연인과 부부 ③-1] 일제 하에서 공산 혁명을 꿈 꾼 세 남자·세 여자의 사랑과 이별, 투쟁과 고난 이야기 : 박헌영·김단야·임원근·허정숙·주세죽·고명자를 중심으로 / 6-①
↑ 위에서 오른쪽으로 박헌영 김단야 임원근, 아래에서 오른쪽으로 허정숙 주세죽 고명자 ☞ [연인과 부부] 시리즈 전체가 궁금하다면 클릭!! by 김지지 ■1920년대 초반, 상해로 모여든 식민지 조선의 젊은이들 ▲들어가며 1919년 4월 중국 상해에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그로부터 수년 사이 자의든 타의든 조국을 떠난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이 속속 상해로 몰려들었다. 당시 상해는 신사상과 신문화의 별천지였다. 동양이면서 서양이었고...
KAL 007기 사할린 상공에서 격추
“KAL기는 조종사 과실로 항로를 이탈해 소련 영공을 침범함으로써 원인을 제공했고, 소련 전투기는 확인절차를 소홀히 한 채 성급히 격추했다.” KAL기 사고 후 10년이 지난 1993년 6월 14일,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사고원인을 이렇게 결론지었지만 사실을 확인해줄 사자들은 말이 없다. 미국 뉴욕을 떠나 앵커리지를 경유한 KAL 007편 보잉 747 점보여객기가 캄차카 반도 상공에서 소련 방공 레이다망에 잡힌 것은 1983년 9월 1일 새벽 0시15분(이하...
강우규 의사, 日 사이토 총독에게 폭탄 투척
1919년 9월 2일 오후5시쯤. 신임 총독으로 부임한 사이토 마코토가 남대문역(현 서울역)에 내려 마차로 갈아타는 순간, 갑자기 요란한 폭발음이 들렸다. 군중 속에서 날아온 폭탄 1개가 마차 주변에서 폭발한 것이다. 사이토는 화를 면했지만 주위에 있던 일본인 37명이 중경상을 입었고, 이 가운데 일본 경찰과 일본인 기자 2명은 이때 상처로 목숨을 잃었다. 사건직후 경찰들이 남대문역을 에워싸고 범인 색출에 나섰지만 범인은 이미 유유히 사라지고 없었다. 범인이 설마 환갑이 지난...
관동대지진 일본 강타… 조선인 대거 학살당해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58분44초. 그때까지 일본인이 경험하지 못했던 대재앙이 일본 간토(關東)지방을 강타했다. 매그니튜드 7.9의 관동대지진이었다. 9만9300명이 사망하고, 4만3500명이 행방불명됐으며, 가옥은 25만 채가 파괴되고 44만7100채가 불에 탔다. 인구밀집지역인 도쿄가 특히 피해가 심해 10만7500여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고 도쿄의 4분의3이 잿더미가 됐다. 방송과 신문마저 중단되자 근거없는 소문들이 사실인양 떠돌아다녔고 사람들은 그 소문에...
일제하 ‘봉선화’ 작곡가 홍난파 사망
‘한국최초의 작곡가’ ‘한국최초의 바이올리니스트’…. 난파 홍영후에게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유난히 많이 붙는다. 홍난파는 천상 음악인이었지만 한때는 문필가의 길을 걸었을 만큼 문재도 뛰어났다. 음악과 문학을 아우른 우리나라 최초의 음악잡지 ‘음악계’를 창간한 것도 홍난파였다. 그가 음악에만 전념하게 된 것은 “개천지 통만고(開天地 通萬古)에서 두가지 예술로 대성한 천재가 누구냐?”는 변영로의 충고가 있은 뒤였다. 어려서부터 음악에 재능을 보였던 홍난파는 전문음악기관인...
일본-중국(청) ‘간도협약’ 체결
간도(間島)는 ‘조선과 청나라 사이에 놓인 섬과 같은 땅’이라는 데서 유래한다. 백두산과 쑹화강(松花江)을 경계로 서간도와 동간도로 나뉘며, 우리가 간도라고 할 때는 두만강 북부의 만주 땅인 동간도(북간도)를 의미한다. 고조선·고구려·발해 때까지 우리의 영토였다가 고려 이후 오랫동안 미개척 상태로 남아 있던 간도가 우리의 관심권 안으로 들어온 것은 1712년 청의 강희제가 조·청(朝·淸)간 경계를 분명히 할 것을 제의하면서였다. 이때 세워진 것이 ‘백두산 정계비’다. 이후...
북한 허담의 서울 비밀방문과 장세동의 방북
1985년 9월 4일, 허담 북한 노동당 중앙위 비서가 비밀리에 서울을 방문했다. 1972년 이후 13년 만의 남북간 비밀회동이었다. 회담은 박철언 당시 안기부장 특보가 그해 5월부터 북한의 한시해 노동당 부부장과 판문점에서 3번의 비밀회담을 가진 끝에 어렵게 성사되었다. 허담은 이튿날 경기도 시흥에 있는 최원석 동아그룹 회장 별장에서 전두환 대통령과 밀담을 나눴다. 이 자리에는 우리 쪽에서 장세동 안기부장과 박철언, 북한쪽에서는 한시해가 배석했다. 청와대 별장 ‘영춘재’라고...
제2차대전 발발
히틀러가 군비 확장에 힘을 쏟고 있을 때 영국과 프랑스는 내심 불안했지만 애써 외면했다. 오스트리아를 합병(1938년 3월)할 때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체코의 일부 지역을 점령(1938년 9월)할 때는 전쟁 회피를 위해 오히려 거들기까지 했다. 히틀러는 외교적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1939년 봄부터 여름까지 슬로바키아·리투아니아·라트비아 등과 불가침조약을 체결하고 루마니아·헝가리·불가리아·유고 등과는 친선서약을 맺어 혹시모를 배후의 위험에 대비했다. 무엇보다 소련과...
박열 열사, 애인 가네코와 함께 일본에서 구속
무정부주의를 통해 항일운동을 벌였던 박열 열사가 일본인 애인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와 함께 구속된 것은 1923년 9월 3일이었다. 히로히토 일본 왕세자 결혼식 때 천황 부자를 폭살하려 했다는 것이 혐의였지만, 조작설도 끊이질 않았다. 박열은 자신이 결성한 비밀결사 조직 ‘불령사(不逞社)’의 한 회원에게 폭탄을 의뢰한 것이 발각되어 가네코와 함께 재판에 회부되었으나 전혀 주눅들지 않고 당당한 모습으로 재판에 임했다. 그는 “한복 착용을 허락하고, 조선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일본, 태평양전쟁 항복문서에 서명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의 패색이 짙어지자 연합국이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는 포츠담선언을 발표한다. 일본은 이를 묵살하고 소련에 ‘조건부 항복’ 중재를 요청했다. 소련이 시간만 보내며 분명한 의지를 밝히지 않는 가운데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곧 소련마저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자 천황궁에서 열린 어전회의는 ‘천황제 존속’을 조건으로 항복을 결정하고 이를 연합국에 알렸다. 연합국이 조건을 인정하지 않자 결국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따라야 했다. 일부 장교단이...
[연인과 부부 ③-1] 일제 하에서 공산 혁명을 꿈 꾼 세 남자·세 여자의 사랑과 이별, 투쟁과 고난 이야기 : 박헌영·김단야·임원근·허정숙·주세죽·고명자를 중심으로 / 6-①
↑ 위에서 오른쪽으로 박헌영 김단야 임원근, 아래에서 오른쪽으로 허정숙 주세죽 고명자 ☞ [연인과 부부] 시리즈 전체가 궁금하다면 클릭!! by 김지지 ■1920년대 초반, 상해로 모여든 식민지 조선의 젊은이들 ▲들어가며 1919년 4월 중국 상해에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그로부터 수년 사이 자의든 타의든 조국을 떠난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이 속속 상해로 몰려들었다. 당시 상해는 신사상과 신문화의 별천지였다. 동양이면서 서양이었고...
KAL 007기 사할린 상공에서 격추
“KAL기는 조종사 과실로 항로를 이탈해 소련 영공을 침범함으로써 원인을 제공했고, 소련 전투기는 확인절차를 소홀히 한 채 성급히 격추했다.” KAL기 사고 후 10년이 지난 1993년 6월 14일,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사고원인을 이렇게 결론지었지만 사실을 확인해줄 사자들은 말이 없다. 미국 뉴욕을 떠나 앵커리지를 경유한 KAL 007편 보잉 747 점보여객기가 캄차카 반도 상공에서 소련 방공 레이다망에 잡힌 것은 1983년 9월 1일 새벽 0시15분(이하...
강우규 의사, 日 사이토 총독에게 폭탄 투척
1919년 9월 2일 오후5시쯤. 신임 총독으로 부임한 사이토 마코토가 남대문역(현 서울역)에 내려 마차로 갈아타는 순간, 갑자기 요란한 폭발음이 들렸다. 군중 속에서 날아온 폭탄 1개가 마차 주변에서 폭발한 것이다. 사이토는 화를 면했지만 주위에 있던 일본인 37명이 중경상을 입었고, 이 가운데 일본 경찰과 일본인 기자 2명은 이때 상처로 목숨을 잃었다. 사건직후 경찰들이 남대문역을 에워싸고 범인 색출에 나섰지만 범인은 이미 유유히 사라지고 없었다. 범인이 설마 환갑이 지난...
관동대지진 일본 강타… 조선인 대거 학살당해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58분44초. 그때까지 일본인이 경험하지 못했던 대재앙이 일본 간토(關東)지방을 강타했다. 매그니튜드 7.9의 관동대지진이었다. 9만9300명이 사망하고, 4만3500명이 행방불명됐으며, 가옥은 25만 채가 파괴되고 44만7100채가 불에 탔다. 인구밀집지역인 도쿄가 특히 피해가 심해 10만7500여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고 도쿄의 4분의3이 잿더미가 됐다. 방송과 신문마저 중단되자 근거없는 소문들이 사실인양 떠돌아다녔고 사람들은 그 소문에...
일제하 ‘봉선화’ 작곡가 홍난파 사망
‘한국최초의 작곡가’ ‘한국최초의 바이올리니스트’…. 난파 홍영후에게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유난히 많이 붙는다. 홍난파는 천상 음악인이었지만 한때는 문필가의 길을 걸었을 만큼 문재도 뛰어났다. 음악과 문학을 아우른 우리나라 최초의 음악잡지 ‘음악계’를 창간한 것도 홍난파였다. 그가 음악에만 전념하게 된 것은 “개천지 통만고(開天地 通萬古)에서 두가지 예술로 대성한 천재가 누구냐?”는 변영로의 충고가 있은 뒤였다. 어려서부터 음악에 재능을 보였던 홍난파는 전문음악기관인...
일본-중국(청) ‘간도협약’ 체결
간도(間島)는 ‘조선과 청나라 사이에 놓인 섬과 같은 땅’이라는 데서 유래한다. 백두산과 쑹화강(松花江)을 경계로 서간도와 동간도로 나뉘며, 우리가 간도라고 할 때는 두만강 북부의 만주 땅인 동간도(북간도)를 의미한다. 고조선·고구려·발해 때까지 우리의 영토였다가 고려 이후 오랫동안 미개척 상태로 남아 있던 간도가 우리의 관심권 안으로 들어온 것은 1712년 청의 강희제가 조·청(朝·淸)간 경계를 분명히 할 것을 제의하면서였다. 이때 세워진 것이 ‘백두산 정계비’다. 이후...
북한 허담의 서울 비밀방문과 장세동의 방북
1985년 9월 4일, 허담 북한 노동당 중앙위 비서가 비밀리에 서울을 방문했다. 1972년 이후 13년 만의 남북간 비밀회동이었다. 회담은 박철언 당시 안기부장 특보가 그해 5월부터 북한의 한시해 노동당 부부장과 판문점에서 3번의 비밀회담을 가진 끝에 어렵게 성사되었다. 허담은 이튿날 경기도 시흥에 있는 최원석 동아그룹 회장 별장에서 전두환 대통령과 밀담을 나눴다. 이 자리에는 우리 쪽에서 장세동 안기부장과 박철언, 북한쪽에서는 한시해가 배석했다. 청와대 별장 ‘영춘재’라고...
제2차대전 발발
히틀러가 군비 확장에 힘을 쏟고 있을 때 영국과 프랑스는 내심 불안했지만 애써 외면했다. 오스트리아를 합병(1938년 3월)할 때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체코의 일부 지역을 점령(1938년 9월)할 때는 전쟁 회피를 위해 오히려 거들기까지 했다. 히틀러는 외교적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1939년 봄부터 여름까지 슬로바키아·리투아니아·라트비아 등과 불가침조약을 체결하고 루마니아·헝가리·불가리아·유고 등과는 친선서약을 맺어 혹시모를 배후의 위험에 대비했다. 무엇보다 소련과...
박열 열사, 애인 가네코와 함께 일본에서 구속
무정부주의를 통해 항일운동을 벌였던 박열 열사가 일본인 애인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와 함께 구속된 것은 1923년 9월 3일이었다. 히로히토 일본 왕세자 결혼식 때 천황 부자를 폭살하려 했다는 것이 혐의였지만, 조작설도 끊이질 않았다. 박열은 자신이 결성한 비밀결사 조직 ‘불령사(不逞社)’의 한 회원에게 폭탄을 의뢰한 것이 발각되어 가네코와 함께 재판에 회부되었으나 전혀 주눅들지 않고 당당한 모습으로 재판에 임했다. 그는 “한복 착용을 허락하고, 조선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일본, 태평양전쟁 항복문서에 서명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의 패색이 짙어지자 연합국이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는 포츠담선언을 발표한다. 일본은 이를 묵살하고 소련에 ‘조건부 항복’ 중재를 요청했다. 소련이 시간만 보내며 분명한 의지를 밝히지 않는 가운데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곧 소련마저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자 천황궁에서 열린 어전회의는 ‘천황제 존속’을 조건으로 항복을 결정하고 이를 연합국에 알렸다. 연합국이 조건을 인정하지 않자 결국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따라야 했다. 일부 장교단이...
[연인과 부부 ③-1] 일제 하에서 공산 혁명을 꿈 꾼 세 남자·세 여자의 사랑과 이별, 투쟁과 고난 이야기 : 박헌영·김단야·임원근·허정숙·주세죽·고명자를 중심으로 / 6-①
↑ 위에서 오른쪽으로 박헌영 김단야 임원근, 아래에서 오른쪽으로 허정숙 주세죽 고명자 ☞ [연인과 부부] 시리즈 전체가 궁금하다면 클릭!! by 김지지 ■1920년대 초반, 상해로 모여든 식민지 조선의 젊은이들 ▲들어가며 1919년 4월 중국 상해에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그로부터 수년 사이 자의든 타의든 조국을 떠난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이 속속 상해로 몰려들었다. 당시 상해는 신사상과 신문화의 별천지였다. 동양이면서 서양이었고...
KAL 007기 사할린 상공에서 격추
“KAL기는 조종사 과실로 항로를 이탈해 소련 영공을 침범함으로써 원인을 제공했고, 소련 전투기는 확인절차를 소홀히 한 채 성급히 격추했다.” KAL기 사고 후 10년이 지난 1993년 6월 14일,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사고원인을 이렇게 결론지었지만 사실을 확인해줄 사자들은 말이 없다. 미국 뉴욕을 떠나 앵커리지를 경유한 KAL 007편 보잉 747 점보여객기가 캄차카 반도 상공에서 소련 방공 레이다망에 잡힌 것은 1983년 9월 1일 새벽 0시15분(이하...
강우규 의사, 日 사이토 총독에게 폭탄 투척
1919년 9월 2일 오후5시쯤. 신임 총독으로 부임한 사이토 마코토가 남대문역(현 서울역)에 내려 마차로 갈아타는 순간, 갑자기 요란한 폭발음이 들렸다. 군중 속에서 날아온 폭탄 1개가 마차 주변에서 폭발한 것이다. 사이토는 화를 면했지만 주위에 있던 일본인 37명이 중경상을 입었고, 이 가운데 일본 경찰과 일본인 기자 2명은 이때 상처로 목숨을 잃었다. 사건직후 경찰들이 남대문역을 에워싸고 범인 색출에 나섰지만 범인은 이미 유유히 사라지고 없었다. 범인이 설마 환갑이 지난...
관동대지진 일본 강타… 조선인 대거 학살당해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58분44초. 그때까지 일본인이 경험하지 못했던 대재앙이 일본 간토(關東)지방을 강타했다. 매그니튜드 7.9의 관동대지진이었다. 9만9300명이 사망하고, 4만3500명이 행방불명됐으며, 가옥은 25만 채가 파괴되고 44만7100채가 불에 탔다. 인구밀집지역인 도쿄가 특히 피해가 심해 10만7500여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고 도쿄의 4분의3이 잿더미가 됐다. 방송과 신문마저 중단되자 근거없는 소문들이 사실인양 떠돌아다녔고 사람들은 그 소문에...
일제하 ‘봉선화’ 작곡가 홍난파 사망
‘한국최초의 작곡가’ ‘한국최초의 바이올리니스트’…. 난파 홍영후에게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유난히 많이 붙는다. 홍난파는 천상 음악인이었지만 한때는 문필가의 길을 걸었을 만큼 문재도 뛰어났다. 음악과 문학을 아우른 우리나라 최초의 음악잡지 ‘음악계’를 창간한 것도 홍난파였다. 그가 음악에만 전념하게 된 것은 “개천지 통만고(開天地 通萬古)에서 두가지 예술로 대성한 천재가 누구냐?”는 변영로의 충고가 있은 뒤였다. 어려서부터 음악에 재능을 보였던 홍난파는 전문음악기관인...
일본-중국(청) ‘간도협약’ 체결
간도(間島)는 ‘조선과 청나라 사이에 놓인 섬과 같은 땅’이라는 데서 유래한다. 백두산과 쑹화강(松花江)을 경계로 서간도와 동간도로 나뉘며, 우리가 간도라고 할 때는 두만강 북부의 만주 땅인 동간도(북간도)를 의미한다. 고조선·고구려·발해 때까지 우리의 영토였다가 고려 이후 오랫동안 미개척 상태로 남아 있던 간도가 우리의 관심권 안으로 들어온 것은 1712년 청의 강희제가 조·청(朝·淸)간 경계를 분명히 할 것을 제의하면서였다. 이때 세워진 것이 ‘백두산 정계비’다. 이후...
북한 허담의 서울 비밀방문과 장세동의 방북
1985년 9월 4일, 허담 북한 노동당 중앙위 비서가 비밀리에 서울을 방문했다. 1972년 이후 13년 만의 남북간 비밀회동이었다. 회담은 박철언 당시 안기부장 특보가 그해 5월부터 북한의 한시해 노동당 부부장과 판문점에서 3번의 비밀회담을 가진 끝에 어렵게 성사되었다. 허담은 이튿날 경기도 시흥에 있는 최원석 동아그룹 회장 별장에서 전두환 대통령과 밀담을 나눴다. 이 자리에는 우리 쪽에서 장세동 안기부장과 박철언, 북한쪽에서는 한시해가 배석했다. 청와대 별장 ‘영춘재’라고...
제2차대전 발발
히틀러가 군비 확장에 힘을 쏟고 있을 때 영국과 프랑스는 내심 불안했지만 애써 외면했다. 오스트리아를 합병(1938년 3월)할 때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체코의 일부 지역을 점령(1938년 9월)할 때는 전쟁 회피를 위해 오히려 거들기까지 했다. 히틀러는 외교적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1939년 봄부터 여름까지 슬로바키아·리투아니아·라트비아 등과 불가침조약을 체결하고 루마니아·헝가리·불가리아·유고 등과는 친선서약을 맺어 혹시모를 배후의 위험에 대비했다. 무엇보다 소련과...
박열 열사, 애인 가네코와 함께 일본에서 구속
무정부주의를 통해 항일운동을 벌였던 박열 열사가 일본인 애인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와 함께 구속된 것은 1923년 9월 3일이었다. 히로히토 일본 왕세자 결혼식 때 천황 부자를 폭살하려 했다는 것이 혐의였지만, 조작설도 끊이질 않았다. 박열은 자신이 결성한 비밀결사 조직 ‘불령사(不逞社)’의 한 회원에게 폭탄을 의뢰한 것이 발각되어 가네코와 함께 재판에 회부되었으나 전혀 주눅들지 않고 당당한 모습으로 재판에 임했다. 그는 “한복 착용을 허락하고, 조선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일본, 태평양전쟁 항복문서에 서명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의 패색이 짙어지자 연합국이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는 포츠담선언을 발표한다. 일본은 이를 묵살하고 소련에 ‘조건부 항복’ 중재를 요청했다. 소련이 시간만 보내며 분명한 의지를 밝히지 않는 가운데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곧 소련마저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자 천황궁에서 열린 어전회의는 ‘천황제 존속’을 조건으로 항복을 결정하고 이를 연합국에 알렸다. 연합국이 조건을 인정하지 않자 결국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따라야 했다. 일부 장교단이...
[연인과 부부 ③-1] 일제 하에서 공산 혁명을 꿈 꾼 세 남자·세 여자의 사랑과 이별, 투쟁과 고난 이야기 : 박헌영·김단야·임원근·허정숙·주세죽·고명자를 중심으로 / 6-①
↑ 위에서 오른쪽으로 박헌영 김단야 임원근, 아래에서 오른쪽으로 허정숙 주세죽 고명자 ☞ [연인과 부부] 시리즈 전체가 궁금하다면 클릭!! by 김지지 ■1920년대 초반, 상해로 모여든 식민지 조선의 젊은이들 ▲들어가며 1919년 4월 중국 상해에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그로부터 수년 사이 자의든 타의든 조국을 떠난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이 속속 상해로 몰려들었다. 당시 상해는 신사상과 신문화의 별천지였다. 동양이면서 서양이었고...
KAL 007기 사할린 상공에서 격추
“KAL기는 조종사 과실로 항로를 이탈해 소련 영공을 침범함으로써 원인을 제공했고, 소련 전투기는 확인절차를 소홀히 한 채 성급히 격추했다.” KAL기 사고 후 10년이 지난 1993년 6월 14일,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사고원인을 이렇게 결론지었지만 사실을 확인해줄 사자들은 말이 없다. 미국 뉴욕을 떠나 앵커리지를 경유한 KAL 007편 보잉 747 점보여객기가 캄차카 반도 상공에서 소련 방공 레이다망에 잡힌 것은 1983년 9월 1일 새벽 0시15분(이하...
강우규 의사, 日 사이토 총독에게 폭탄 투척
1919년 9월 2일 오후5시쯤. 신임 총독으로 부임한 사이토 마코토가 남대문역(현 서울역)에 내려 마차로 갈아타는 순간, 갑자기 요란한 폭발음이 들렸다. 군중 속에서 날아온 폭탄 1개가 마차 주변에서 폭발한 것이다. 사이토는 화를 면했지만 주위에 있던 일본인 37명이 중경상을 입었고, 이 가운데 일본 경찰과 일본인 기자 2명은 이때 상처로 목숨을 잃었다. 사건직후 경찰들이 남대문역을 에워싸고 범인 색출에 나섰지만 범인은 이미 유유히 사라지고 없었다. 범인이 설마 환갑이 지난...
관동대지진 일본 강타… 조선인 대거 학살당해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58분44초. 그때까지 일본인이 경험하지 못했던 대재앙이 일본 간토(關東)지방을 강타했다. 매그니튜드 7.9의 관동대지진이었다. 9만9300명이 사망하고, 4만3500명이 행방불명됐으며, 가옥은 25만 채가 파괴되고 44만7100채가 불에 탔다. 인구밀집지역인 도쿄가 특히 피해가 심해 10만7500여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고 도쿄의 4분의3이 잿더미가 됐다. 방송과 신문마저 중단되자 근거없는 소문들이 사실인양 떠돌아다녔고 사람들은 그 소문에...
일제하 ‘봉선화’ 작곡가 홍난파 사망
‘한국최초의 작곡가’ ‘한국최초의 바이올리니스트’…. 난파 홍영후에게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유난히 많이 붙는다. 홍난파는 천상 음악인이었지만 한때는 문필가의 길을 걸었을 만큼 문재도 뛰어났다. 음악과 문학을 아우른 우리나라 최초의 음악잡지 ‘음악계’를 창간한 것도 홍난파였다. 그가 음악에만 전념하게 된 것은 “개천지 통만고(開天地 通萬古)에서 두가지 예술로 대성한 천재가 누구냐?”는 변영로의 충고가 있은 뒤였다. 어려서부터 음악에 재능을 보였던 홍난파는 전문음악기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