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The Blog Module
The blog modules makes it easy to create a blog post feed in two different layouts.
유대인 학살을 히틀러 정권 차원에서 공식화한 ‘반제 회의’ 열려
↑ 친위대사령관 하인리히 힘러(왼쪽)와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독일 베를린 근교 반제가(街)의 한 저택(암그로센반제 56–58번지 별장)에 나치의 차관급 인사들이 모여든 것은 1942년 1월 20일 아침이었다. 훗날 ‘반제 회의’로 불린 조찬 회동의 주재자는 나치의 친위대 산하 제국보안국 국장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였다. 그의 직위는 아돌프 히틀러, 서열 2위의 헤르만 괴링, 그리고 자신의 직속상관인 친위대 사령관 하인리히 힘러의 지시만을 받는 요직이었다. 그가...
실미도 특수부대원 서울로 진입하던 중 버스 안에서 자폭
↑ 684부대 기간병과 훈련병 작전명 ‘오소리’를 수행할 부대의 정식 명칭은 공군 2325부대 소속 209파견대였다. 1968년 4월에 창설되었다고 해서 편의상 ‘684부대’로도 불렸다. 부대 창설은 1968년 1월 북한 무장공비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려다가 실패한 1·21사태가 발단이 되었다. 분노한 박정희 대통령이 북한 특수부대를 능가할 대북 응징보복팀의 창설을 결정하자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명을 따랐다. 훈련은 공군이 맡고, 훈련 장소는 인천에서 20㎞...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특수상대성이론 발표
↑ 아인슈타인 특수상대성이론, 아인슈타인을 일약 물리학계의 총아로 만들어줘 1905년은 과학계에서 ‘기적의 해’로 불린다. 26살에 불과한 무명의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1955)이 마치 신의 계시라도 받은 듯 불과 수개월 사이에 광양자 가설, 브라운운동 이론, 특수상대성이론 등 3편의 논문을 독일의 유명 학술지 ‘물리학 연보’에 잇따라 발표함으로써 과학계의 기존 인식을 뿌리째 흔들어놓은 해가 1905년이기 때문이다. 3편의 논문 중 빛의 에너지가...
[김상옥 열사 의거 100주년] ‘일제 경찰의 심장부’인 종로경찰서에 폭탄 던지고 총격전 벌이다 10여 발의 총탄 맞고 끝내 자결한 항일 투사
↑ 김상옥 열사 by 김지지 종로경찰서 폭탄 투척은 일제에 중대 사건 일제하 서울의 종로경찰서는 일제 경찰력의 심장부이자 조선인을 고문하고 탄압한 강압 통치의 상징이었다. 1920년대 종로경찰서는 현재 종로2가 서울YMCA 건물 바로 옆에 있던 서양식 2층 건물이었다. 미국인 콜브란의 한성전기회사가 1901년 준공한 사옥을 매입해 경찰서로 사용했는데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이 악명 높은 종로경찰서 서편 담벼락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폭발물이 터진...
이중섭 첫 개인전 서울 미도파화랑에서 열려… 전후의 궁핍한 시대인데도 대성황 이뤄
↑ 이중섭 타고난 개성과 뛰어난 조형감각을 지닌 멋쟁이 이중섭(1916~1956)은 ‘한국의 빈센트 반 고흐’라고 불릴 만큼 치열한 삶을 살았다. 40년의 짧은 생이었지만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국민화가로 인정받고 있다. 그가 남긴 작품은 약 320여점이다. 유화 60여점, 은지화 120점, 드로잉 150점, 엽서화 88점 등이다. 이중섭의 삶은 6·25를 전후해 둘로 나뉜다. 부농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유복하게 자란 젊은 시절과 1950년 12월 피란...
[연인과 부부 (22)] 김지미와 네 남자 이야기-후편… 홍성기(영화감독), 최무룡(영화배우), 나훈아(가수), 이종구(의사)와 살아보고 내린 결론은 “남자는 다 똑같이 어린애”
↑ 간통죄로 고소당해 교도소로 향하는 차 안에서 김지미와 최무룡이 웃고있다. ‘악마의 미소’라는 비판을 받았다. (1962년 10월 31일) ☞ 전문(全文)을 이 곳으로 옮겼습니다. 클릭!! ■두 번째 남자 : 영화배우 최무룡 김지미와 홍성기의 결혼생활이 유지되고 있던 1960년대 초반, 김지미가 영화에서 주로 상대한 남자는 자신보다 12살이 많은 최무룡이었다. 두 사람은 많은 작품에서 호흡을 맞추며 친해졌다. 촬영이 끝나면 다른 장소로 같이 이동해...
[연인과 부부 (22)] 김지미와 네 남자 이야기-전편… 홍성기(영화감독), 최무룡(영화배우), 나훈아(가수), 이종구(의사)와 살아보고 내린 결론은 “남자는 다 똑같이 어린애”
↑ 김지미의 젊은 시절 모습 ☞ 전문(全文)을 이곳으로 옮겼습니다. 클릭!! ■김지미 총평 20세기가 저물던 1999년 월간조선이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영화감독, 배우, 영화평론가, 제작자 등 101명에게 “20세기 최고 영화배우가 누구냐”고 물었다. 대답은 김지미(여자배우)와 김승호(남자배우) 2인이었다. 영화는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이, 영화감독은 임권택 감독이 최고로 뽑혔다. 20세기 최고 영화배우로 선정된 김지미(1940~ )를 설명하는 세...
세계 최초 유성영화 ‘재즈 싱어’ 개봉
↑ 알 존슨 “기다려! 기다려! 넌 아무것도 듣지 못했잖아! (Wait a minute! Wait a minute! You ain’t heard nothin’ yet!)”. 19세기 말 탄생 후 오랫동안 침묵하던 영화가 마침내 말문을 튼 것은 1927년 10월 6일이었다. 그날 영화 주인공 알 졸슨(1886~1950)의 목소리가 영화에서 흘러나오자 뉴욕 워너 브러더스 극장에서 영화를 보던 관객들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영화에서 배우 목소리가...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출간
↑ 조세희와 ‘난쏘공’ 초판본 1980년대 대학생들의 ‘의식화 교재’로 읽혀 흔히 ‘난쏘공’으로 불리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소설 속 주인공 김불이는 117㎝ 키에 몸무게가 32㎏에 불과한 난쟁이였다. 곧 철거될 서울특별시 낙원구 행복동에서 2남1녀의 아버지이자 남편으로 살았다. 그는 산업사회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날품팔이 노동자였고 성장의 과실과는 거리가 먼 도시 빈민이었다. 채권 매매, 칼 갈기, 고층건물 유리 닦기, 펌프...
축구계의 ‘검은 거미손’ 레프 야신 은퇴 경기
↑ 래프 야신 레프 야신(1929~1990)은 전 세계 축구 골키퍼들의 영원한 우상이다. 골키퍼로서는 완벽한 189㎝·82㎏의 체격에 동물적인 반사신경과 순발력까지 갖춰 도무지 틈을 주지 않았다. 유난히 팔과 손가락이 길고 검은색 유니폼을 자주 입어 ‘검은 거미손’으로 불렸다. 오늘날 뛰어난 골키퍼를 지칭하는 ‘거미손’, ‘문어발’, ‘신의 손’ 등의 별명도 모두 그에게서 비롯되었다. 야신은 소련 모스크바의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나 10대 초반부터 공장에서 일을...
유대인 학살을 히틀러 정권 차원에서 공식화한 ‘반제 회의’ 열려
↑ 친위대사령관 하인리히 힘러(왼쪽)와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독일 베를린 근교 반제가(街)의 한 저택(암그로센반제 56–58번지 별장)에 나치의 차관급 인사들이 모여든 것은 1942년 1월 20일 아침이었다. 훗날 ‘반제 회의’로 불린 조찬 회동의 주재자는 나치의 친위대 산하 제국보안국 국장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였다. 그의 직위는 아돌프 히틀러, 서열 2위의 헤르만 괴링, 그리고 자신의 직속상관인 친위대 사령관 하인리히 힘러의 지시만을 받는 요직이었다. 그가...
실미도 특수부대원 서울로 진입하던 중 버스 안에서 자폭
↑ 684부대 기간병과 훈련병 작전명 ‘오소리’를 수행할 부대의 정식 명칭은 공군 2325부대 소속 209파견대였다. 1968년 4월에 창설되었다고 해서 편의상 ‘684부대’로도 불렸다. 부대 창설은 1968년 1월 북한 무장공비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려다가 실패한 1·21사태가 발단이 되었다. 분노한 박정희 대통령이 북한 특수부대를 능가할 대북 응징보복팀의 창설을 결정하자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명을 따랐다. 훈련은 공군이 맡고, 훈련 장소는 인천에서 20㎞...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특수상대성이론 발표
↑ 아인슈타인 특수상대성이론, 아인슈타인을 일약 물리학계의 총아로 만들어줘 1905년은 과학계에서 ‘기적의 해’로 불린다. 26살에 불과한 무명의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1955)이 마치 신의 계시라도 받은 듯 불과 수개월 사이에 광양자 가설, 브라운운동 이론, 특수상대성이론 등 3편의 논문을 독일의 유명 학술지 ‘물리학 연보’에 잇따라 발표함으로써 과학계의 기존 인식을 뿌리째 흔들어놓은 해가 1905년이기 때문이다. 3편의 논문 중 빛의 에너지가...
[김상옥 열사 의거 100주년] ‘일제 경찰의 심장부’인 종로경찰서에 폭탄 던지고 총격전 벌이다 10여 발의 총탄 맞고 끝내 자결한 항일 투사
↑ 김상옥 열사 by 김지지 종로경찰서 폭탄 투척은 일제에 중대 사건 일제하 서울의 종로경찰서는 일제 경찰력의 심장부이자 조선인을 고문하고 탄압한 강압 통치의 상징이었다. 1920년대 종로경찰서는 현재 종로2가 서울YMCA 건물 바로 옆에 있던 서양식 2층 건물이었다. 미국인 콜브란의 한성전기회사가 1901년 준공한 사옥을 매입해 경찰서로 사용했는데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이 악명 높은 종로경찰서 서편 담벼락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폭발물이 터진...
이중섭 첫 개인전 서울 미도파화랑에서 열려… 전후의 궁핍한 시대인데도 대성황 이뤄
↑ 이중섭 타고난 개성과 뛰어난 조형감각을 지닌 멋쟁이 이중섭(1916~1956)은 ‘한국의 빈센트 반 고흐’라고 불릴 만큼 치열한 삶을 살았다. 40년의 짧은 생이었지만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국민화가로 인정받고 있다. 그가 남긴 작품은 약 320여점이다. 유화 60여점, 은지화 120점, 드로잉 150점, 엽서화 88점 등이다. 이중섭의 삶은 6·25를 전후해 둘로 나뉜다. 부농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유복하게 자란 젊은 시절과 1950년 12월 피란...
[연인과 부부 (22)] 김지미와 네 남자 이야기-후편… 홍성기(영화감독), 최무룡(영화배우), 나훈아(가수), 이종구(의사)와 살아보고 내린 결론은 “남자는 다 똑같이 어린애”
↑ 간통죄로 고소당해 교도소로 향하는 차 안에서 김지미와 최무룡이 웃고있다. ‘악마의 미소’라는 비판을 받았다. (1962년 10월 31일) ☞ 전문(全文)을 이 곳으로 옮겼습니다. 클릭!! ■두 번째 남자 : 영화배우 최무룡 김지미와 홍성기의 결혼생활이 유지되고 있던 1960년대 초반, 김지미가 영화에서 주로 상대한 남자는 자신보다 12살이 많은 최무룡이었다. 두 사람은 많은 작품에서 호흡을 맞추며 친해졌다. 촬영이 끝나면 다른 장소로 같이 이동해...
[연인과 부부 (22)] 김지미와 네 남자 이야기-전편… 홍성기(영화감독), 최무룡(영화배우), 나훈아(가수), 이종구(의사)와 살아보고 내린 결론은 “남자는 다 똑같이 어린애”
↑ 김지미의 젊은 시절 모습 ☞ 전문(全文)을 이곳으로 옮겼습니다. 클릭!! ■김지미 총평 20세기가 저물던 1999년 월간조선이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영화감독, 배우, 영화평론가, 제작자 등 101명에게 “20세기 최고 영화배우가 누구냐”고 물었다. 대답은 김지미(여자배우)와 김승호(남자배우) 2인이었다. 영화는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이, 영화감독은 임권택 감독이 최고로 뽑혔다. 20세기 최고 영화배우로 선정된 김지미(1940~ )를 설명하는 세...
세계 최초 유성영화 ‘재즈 싱어’ 개봉
↑ 알 존슨 “기다려! 기다려! 넌 아무것도 듣지 못했잖아! (Wait a minute! Wait a minute! You ain’t heard nothin’ yet!)”. 19세기 말 탄생 후 오랫동안 침묵하던 영화가 마침내 말문을 튼 것은 1927년 10월 6일이었다. 그날 영화 주인공 알 졸슨(1886~1950)의 목소리가 영화에서 흘러나오자 뉴욕 워너 브러더스 극장에서 영화를 보던 관객들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영화에서 배우 목소리가...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출간
↑ 조세희와 ‘난쏘공’ 초판본 1980년대 대학생들의 ‘의식화 교재’로 읽혀 흔히 ‘난쏘공’으로 불리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소설 속 주인공 김불이는 117㎝ 키에 몸무게가 32㎏에 불과한 난쟁이였다. 곧 철거될 서울특별시 낙원구 행복동에서 2남1녀의 아버지이자 남편으로 살았다. 그는 산업사회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날품팔이 노동자였고 성장의 과실과는 거리가 먼 도시 빈민이었다. 채권 매매, 칼 갈기, 고층건물 유리 닦기, 펌프...
축구계의 ‘검은 거미손’ 레프 야신 은퇴 경기
↑ 래프 야신 레프 야신(1929~1990)은 전 세계 축구 골키퍼들의 영원한 우상이다. 골키퍼로서는 완벽한 189㎝·82㎏의 체격에 동물적인 반사신경과 순발력까지 갖춰 도무지 틈을 주지 않았다. 유난히 팔과 손가락이 길고 검은색 유니폼을 자주 입어 ‘검은 거미손’으로 불렸다. 오늘날 뛰어난 골키퍼를 지칭하는 ‘거미손’, ‘문어발’, ‘신의 손’ 등의 별명도 모두 그에게서 비롯되었다. 야신은 소련 모스크바의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나 10대 초반부터 공장에서 일을...
유대인 학살을 히틀러 정권 차원에서 공식화한 ‘반제 회의’ 열려
↑ 친위대사령관 하인리히 힘러(왼쪽)와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독일 베를린 근교 반제가(街)의 한 저택(암그로센반제 56–58번지 별장)에 나치의 차관급 인사들이 모여든 것은 1942년 1월 20일 아침이었다. 훗날 ‘반제 회의’로 불린 조찬 회동의 주재자는 나치의 친위대 산하 제국보안국 국장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였다. 그의 직위는 아돌프 히틀러, 서열 2위의 헤르만 괴링, 그리고 자신의 직속상관인 친위대 사령관 하인리히 힘러의 지시만을 받는 요직이었다. 그가...
실미도 특수부대원 서울로 진입하던 중 버스 안에서 자폭
↑ 684부대 기간병과 훈련병 작전명 ‘오소리’를 수행할 부대의 정식 명칭은 공군 2325부대 소속 209파견대였다. 1968년 4월에 창설되었다고 해서 편의상 ‘684부대’로도 불렸다. 부대 창설은 1968년 1월 북한 무장공비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려다가 실패한 1·21사태가 발단이 되었다. 분노한 박정희 대통령이 북한 특수부대를 능가할 대북 응징보복팀의 창설을 결정하자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명을 따랐다. 훈련은 공군이 맡고, 훈련 장소는 인천에서 20㎞...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특수상대성이론 발표
↑ 아인슈타인 특수상대성이론, 아인슈타인을 일약 물리학계의 총아로 만들어줘 1905년은 과학계에서 ‘기적의 해’로 불린다. 26살에 불과한 무명의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1955)이 마치 신의 계시라도 받은 듯 불과 수개월 사이에 광양자 가설, 브라운운동 이론, 특수상대성이론 등 3편의 논문을 독일의 유명 학술지 ‘물리학 연보’에 잇따라 발표함으로써 과학계의 기존 인식을 뿌리째 흔들어놓은 해가 1905년이기 때문이다. 3편의 논문 중 빛의 에너지가...
[김상옥 열사 의거 100주년] ‘일제 경찰의 심장부’인 종로경찰서에 폭탄 던지고 총격전 벌이다 10여 발의 총탄 맞고 끝내 자결한 항일 투사
↑ 김상옥 열사 by 김지지 종로경찰서 폭탄 투척은 일제에 중대 사건 일제하 서울의 종로경찰서는 일제 경찰력의 심장부이자 조선인을 고문하고 탄압한 강압 통치의 상징이었다. 1920년대 종로경찰서는 현재 종로2가 서울YMCA 건물 바로 옆에 있던 서양식 2층 건물이었다. 미국인 콜브란의 한성전기회사가 1901년 준공한 사옥을 매입해 경찰서로 사용했는데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이 악명 높은 종로경찰서 서편 담벼락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폭발물이 터진...
이중섭 첫 개인전 서울 미도파화랑에서 열려… 전후의 궁핍한 시대인데도 대성황 이뤄
↑ 이중섭 타고난 개성과 뛰어난 조형감각을 지닌 멋쟁이 이중섭(1916~1956)은 ‘한국의 빈센트 반 고흐’라고 불릴 만큼 치열한 삶을 살았다. 40년의 짧은 생이었지만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국민화가로 인정받고 있다. 그가 남긴 작품은 약 320여점이다. 유화 60여점, 은지화 120점, 드로잉 150점, 엽서화 88점 등이다. 이중섭의 삶은 6·25를 전후해 둘로 나뉜다. 부농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유복하게 자란 젊은 시절과 1950년 12월 피란...
[연인과 부부 (22)] 김지미와 네 남자 이야기-후편… 홍성기(영화감독), 최무룡(영화배우), 나훈아(가수), 이종구(의사)와 살아보고 내린 결론은 “남자는 다 똑같이 어린애”
↑ 간통죄로 고소당해 교도소로 향하는 차 안에서 김지미와 최무룡이 웃고있다. ‘악마의 미소’라는 비판을 받았다. (1962년 10월 31일) ☞ 전문(全文)을 이 곳으로 옮겼습니다. 클릭!! ■두 번째 남자 : 영화배우 최무룡 김지미와 홍성기의 결혼생활이 유지되고 있던 1960년대 초반, 김지미가 영화에서 주로 상대한 남자는 자신보다 12살이 많은 최무룡이었다. 두 사람은 많은 작품에서 호흡을 맞추며 친해졌다. 촬영이 끝나면 다른 장소로 같이 이동해...
[연인과 부부 (22)] 김지미와 네 남자 이야기-전편… 홍성기(영화감독), 최무룡(영화배우), 나훈아(가수), 이종구(의사)와 살아보고 내린 결론은 “남자는 다 똑같이 어린애”
↑ 김지미의 젊은 시절 모습 ☞ 전문(全文)을 이곳으로 옮겼습니다. 클릭!! ■김지미 총평 20세기가 저물던 1999년 월간조선이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영화감독, 배우, 영화평론가, 제작자 등 101명에게 “20세기 최고 영화배우가 누구냐”고 물었다. 대답은 김지미(여자배우)와 김승호(남자배우) 2인이었다. 영화는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이, 영화감독은 임권택 감독이 최고로 뽑혔다. 20세기 최고 영화배우로 선정된 김지미(1940~ )를 설명하는 세...
세계 최초 유성영화 ‘재즈 싱어’ 개봉
↑ 알 존슨 “기다려! 기다려! 넌 아무것도 듣지 못했잖아! (Wait a minute! Wait a minute! You ain’t heard nothin’ yet!)”. 19세기 말 탄생 후 오랫동안 침묵하던 영화가 마침내 말문을 튼 것은 1927년 10월 6일이었다. 그날 영화 주인공 알 졸슨(1886~1950)의 목소리가 영화에서 흘러나오자 뉴욕 워너 브러더스 극장에서 영화를 보던 관객들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영화에서 배우 목소리가...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출간
↑ 조세희와 ‘난쏘공’ 초판본 1980년대 대학생들의 ‘의식화 교재’로 읽혀 흔히 ‘난쏘공’으로 불리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소설 속 주인공 김불이는 117㎝ 키에 몸무게가 32㎏에 불과한 난쟁이였다. 곧 철거될 서울특별시 낙원구 행복동에서 2남1녀의 아버지이자 남편으로 살았다. 그는 산업사회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날품팔이 노동자였고 성장의 과실과는 거리가 먼 도시 빈민이었다. 채권 매매, 칼 갈기, 고층건물 유리 닦기, 펌프...
축구계의 ‘검은 거미손’ 레프 야신 은퇴 경기
↑ 래프 야신 레프 야신(1929~1990)은 전 세계 축구 골키퍼들의 영원한 우상이다. 골키퍼로서는 완벽한 189㎝·82㎏의 체격에 동물적인 반사신경과 순발력까지 갖춰 도무지 틈을 주지 않았다. 유난히 팔과 손가락이 길고 검은색 유니폼을 자주 입어 ‘검은 거미손’으로 불렸다. 오늘날 뛰어난 골키퍼를 지칭하는 ‘거미손’, ‘문어발’, ‘신의 손’ 등의 별명도 모두 그에게서 비롯되었다. 야신은 소련 모스크바의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나 10대 초반부터 공장에서 일을...
유대인 학살을 히틀러 정권 차원에서 공식화한 ‘반제 회의’ 열려
↑ 친위대사령관 하인리히 힘러(왼쪽)와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독일 베를린 근교 반제가(街)의 한 저택(암그로센반제 56–58번지 별장)에 나치의 차관급 인사들이 모여든 것은 1942년 1월 20일 아침이었다. 훗날 ‘반제 회의’로 불린 조찬 회동의 주재자는 나치의 친위대 산하 제국보안국 국장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였다. 그의 직위는 아돌프 히틀러, 서열 2위의 헤르만 괴링, 그리고 자신의 직속상관인 친위대 사령관 하인리히 힘러의 지시만을 받는 요직이었다. 그가...
실미도 특수부대원 서울로 진입하던 중 버스 안에서 자폭
↑ 684부대 기간병과 훈련병 작전명 ‘오소리’를 수행할 부대의 정식 명칭은 공군 2325부대 소속 209파견대였다. 1968년 4월에 창설되었다고 해서 편의상 ‘684부대’로도 불렸다. 부대 창설은 1968년 1월 북한 무장공비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려다가 실패한 1·21사태가 발단이 되었다. 분노한 박정희 대통령이 북한 특수부대를 능가할 대북 응징보복팀의 창설을 결정하자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명을 따랐다. 훈련은 공군이 맡고, 훈련 장소는 인천에서 20㎞...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특수상대성이론 발표
↑ 아인슈타인 특수상대성이론, 아인슈타인을 일약 물리학계의 총아로 만들어줘 1905년은 과학계에서 ‘기적의 해’로 불린다. 26살에 불과한 무명의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1955)이 마치 신의 계시라도 받은 듯 불과 수개월 사이에 광양자 가설, 브라운운동 이론, 특수상대성이론 등 3편의 논문을 독일의 유명 학술지 ‘물리학 연보’에 잇따라 발표함으로써 과학계의 기존 인식을 뿌리째 흔들어놓은 해가 1905년이기 때문이다. 3편의 논문 중 빛의 에너지가...
[김상옥 열사 의거 100주년] ‘일제 경찰의 심장부’인 종로경찰서에 폭탄 던지고 총격전 벌이다 10여 발의 총탄 맞고 끝내 자결한 항일 투사
↑ 김상옥 열사 by 김지지 종로경찰서 폭탄 투척은 일제에 중대 사건 일제하 서울의 종로경찰서는 일제 경찰력의 심장부이자 조선인을 고문하고 탄압한 강압 통치의 상징이었다. 1920년대 종로경찰서는 현재 종로2가 서울YMCA 건물 바로 옆에 있던 서양식 2층 건물이었다. 미국인 콜브란의 한성전기회사가 1901년 준공한 사옥을 매입해 경찰서로 사용했는데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이 악명 높은 종로경찰서 서편 담벼락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폭발물이 터진...
이중섭 첫 개인전 서울 미도파화랑에서 열려… 전후의 궁핍한 시대인데도 대성황 이뤄
↑ 이중섭 타고난 개성과 뛰어난 조형감각을 지닌 멋쟁이 이중섭(1916~1956)은 ‘한국의 빈센트 반 고흐’라고 불릴 만큼 치열한 삶을 살았다. 40년의 짧은 생이었지만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국민화가로 인정받고 있다. 그가 남긴 작품은 약 320여점이다. 유화 60여점, 은지화 120점, 드로잉 150점, 엽서화 88점 등이다. 이중섭의 삶은 6·25를 전후해 둘로 나뉜다. 부농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유복하게 자란 젊은 시절과 1950년 12월 피란...
[연인과 부부 (22)] 김지미와 네 남자 이야기-후편… 홍성기(영화감독), 최무룡(영화배우), 나훈아(가수), 이종구(의사)와 살아보고 내린 결론은 “남자는 다 똑같이 어린애”
↑ 간통죄로 고소당해 교도소로 향하는 차 안에서 김지미와 최무룡이 웃고있다. ‘악마의 미소’라는 비판을 받았다. (1962년 10월 31일) ☞ 전문(全文)을 이 곳으로 옮겼습니다. 클릭!! ■두 번째 남자 : 영화배우 최무룡 김지미와 홍성기의 결혼생활이 유지되고 있던 1960년대 초반, 김지미가 영화에서 주로 상대한 남자는 자신보다 12살이 많은 최무룡이었다. 두 사람은 많은 작품에서 호흡을 맞추며 친해졌다. 촬영이 끝나면 다른 장소로 같이 이동해...
[연인과 부부 (22)] 김지미와 네 남자 이야기-전편… 홍성기(영화감독), 최무룡(영화배우), 나훈아(가수), 이종구(의사)와 살아보고 내린 결론은 “남자는 다 똑같이 어린애”
↑ 김지미의 젊은 시절 모습 ☞ 전문(全文)을 이곳으로 옮겼습니다. 클릭!! ■김지미 총평 20세기가 저물던 1999년 월간조선이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영화감독, 배우, 영화평론가, 제작자 등 101명에게 “20세기 최고 영화배우가 누구냐”고 물었다. 대답은 김지미(여자배우)와 김승호(남자배우) 2인이었다. 영화는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이, 영화감독은 임권택 감독이 최고로 뽑혔다. 20세기 최고 영화배우로 선정된 김지미(1940~ )를 설명하는 세...
세계 최초 유성영화 ‘재즈 싱어’ 개봉
↑ 알 존슨 “기다려! 기다려! 넌 아무것도 듣지 못했잖아! (Wait a minute! Wait a minute! You ain’t heard nothin’ yet!)”. 19세기 말 탄생 후 오랫동안 침묵하던 영화가 마침내 말문을 튼 것은 1927년 10월 6일이었다. 그날 영화 주인공 알 졸슨(1886~1950)의 목소리가 영화에서 흘러나오자 뉴욕 워너 브러더스 극장에서 영화를 보던 관객들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영화에서 배우 목소리가...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출간
↑ 조세희와 ‘난쏘공’ 초판본 1980년대 대학생들의 ‘의식화 교재’로 읽혀 흔히 ‘난쏘공’으로 불리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소설 속 주인공 김불이는 117㎝ 키에 몸무게가 32㎏에 불과한 난쟁이였다. 곧 철거될 서울특별시 낙원구 행복동에서 2남1녀의 아버지이자 남편으로 살았다. 그는 산업사회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날품팔이 노동자였고 성장의 과실과는 거리가 먼 도시 빈민이었다. 채권 매매, 칼 갈기, 고층건물 유리 닦기, 펌프...
축구계의 ‘검은 거미손’ 레프 야신 은퇴 경기
↑ 래프 야신 레프 야신(1929~1990)은 전 세계 축구 골키퍼들의 영원한 우상이다. 골키퍼로서는 완벽한 189㎝·82㎏의 체격에 동물적인 반사신경과 순발력까지 갖춰 도무지 틈을 주지 않았다. 유난히 팔과 손가락이 길고 검은색 유니폼을 자주 입어 ‘검은 거미손’으로 불렸다. 오늘날 뛰어난 골키퍼를 지칭하는 ‘거미손’, ‘문어발’, ‘신의 손’ 등의 별명도 모두 그에게서 비롯되었다. 야신은 소련 모스크바의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나 10대 초반부터 공장에서 일을...
유대인 학살을 히틀러 정권 차원에서 공식화한 ‘반제 회의’ 열려
↑ 친위대사령관 하인리히 힘러(왼쪽)와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독일 베를린 근교 반제가(街)의 한 저택(암그로센반제 56–58번지 별장)에 나치의 차관급 인사들이 모여든 것은 1942년 1월 20일 아침이었다. 훗날 ‘반제 회의’로 불린 조찬 회동의 주재자는 나치의 친위대 산하 제국보안국 국장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였다. 그의 직위는 아돌프 히틀러, 서열 2위의 헤르만 괴링, 그리고 자신의 직속상관인 친위대 사령관 하인리히 힘러의 지시만을 받는 요직이었다. 그가...
실미도 특수부대원 서울로 진입하던 중 버스 안에서 자폭
↑ 684부대 기간병과 훈련병 작전명 ‘오소리’를 수행할 부대의 정식 명칭은 공군 2325부대 소속 209파견대였다. 1968년 4월에 창설되었다고 해서 편의상 ‘684부대’로도 불렸다. 부대 창설은 1968년 1월 북한 무장공비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려다가 실패한 1·21사태가 발단이 되었다. 분노한 박정희 대통령이 북한 특수부대를 능가할 대북 응징보복팀의 창설을 결정하자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명을 따랐다. 훈련은 공군이 맡고, 훈련 장소는 인천에서 20㎞...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특수상대성이론 발표
↑ 아인슈타인 특수상대성이론, 아인슈타인을 일약 물리학계의 총아로 만들어줘 1905년은 과학계에서 ‘기적의 해’로 불린다. 26살에 불과한 무명의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1955)이 마치 신의 계시라도 받은 듯 불과 수개월 사이에 광양자 가설, 브라운운동 이론, 특수상대성이론 등 3편의 논문을 독일의 유명 학술지 ‘물리학 연보’에 잇따라 발표함으로써 과학계의 기존 인식을 뿌리째 흔들어놓은 해가 1905년이기 때문이다. 3편의 논문 중 빛의 에너지가...
[김상옥 열사 의거 100주년] ‘일제 경찰의 심장부’인 종로경찰서에 폭탄 던지고 총격전 벌이다 10여 발의 총탄 맞고 끝내 자결한 항일 투사
↑ 김상옥 열사 by 김지지 종로경찰서 폭탄 투척은 일제에 중대 사건 일제하 서울의 종로경찰서는 일제 경찰력의 심장부이자 조선인을 고문하고 탄압한 강압 통치의 상징이었다. 1920년대 종로경찰서는 현재 종로2가 서울YMCA 건물 바로 옆에 있던 서양식 2층 건물이었다. 미국인 콜브란의 한성전기회사가 1901년 준공한 사옥을 매입해 경찰서로 사용했는데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이 악명 높은 종로경찰서 서편 담벼락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폭발물이 터진...
이중섭 첫 개인전 서울 미도파화랑에서 열려… 전후의 궁핍한 시대인데도 대성황 이뤄
↑ 이중섭 타고난 개성과 뛰어난 조형감각을 지닌 멋쟁이 이중섭(1916~1956)은 ‘한국의 빈센트 반 고흐’라고 불릴 만큼 치열한 삶을 살았다. 40년의 짧은 생이었지만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국민화가로 인정받고 있다. 그가 남긴 작품은 약 320여점이다. 유화 60여점, 은지화 120점, 드로잉 150점, 엽서화 88점 등이다. 이중섭의 삶은 6·25를 전후해 둘로 나뉜다. 부농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유복하게 자란 젊은 시절과 1950년 12월 피란...
[연인과 부부 (22)] 김지미와 네 남자 이야기-후편… 홍성기(영화감독), 최무룡(영화배우), 나훈아(가수), 이종구(의사)와 살아보고 내린 결론은 “남자는 다 똑같이 어린애”
↑ 간통죄로 고소당해 교도소로 향하는 차 안에서 김지미와 최무룡이 웃고있다. ‘악마의 미소’라는 비판을 받았다. (1962년 10월 31일) ☞ 전문(全文)을 이 곳으로 옮겼습니다. 클릭!! ■두 번째 남자 : 영화배우 최무룡 김지미와 홍성기의 결혼생활이 유지되고 있던 1960년대 초반, 김지미가 영화에서 주로 상대한 남자는 자신보다 12살이 많은 최무룡이었다. 두 사람은 많은 작품에서 호흡을 맞추며 친해졌다. 촬영이 끝나면 다른 장소로 같이 이동해...
[연인과 부부 (22)] 김지미와 네 남자 이야기-전편… 홍성기(영화감독), 최무룡(영화배우), 나훈아(가수), 이종구(의사)와 살아보고 내린 결론은 “남자는 다 똑같이 어린애”
↑ 김지미의 젊은 시절 모습 ☞ 전문(全文)을 이곳으로 옮겼습니다. 클릭!! ■김지미 총평 20세기가 저물던 1999년 월간조선이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영화감독, 배우, 영화평론가, 제작자 등 101명에게 “20세기 최고 영화배우가 누구냐”고 물었다. 대답은 김지미(여자배우)와 김승호(남자배우) 2인이었다. 영화는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이, 영화감독은 임권택 감독이 최고로 뽑혔다. 20세기 최고 영화배우로 선정된 김지미(1940~ )를 설명하는 세...
세계 최초 유성영화 ‘재즈 싱어’ 개봉
↑ 알 존슨 “기다려! 기다려! 넌 아무것도 듣지 못했잖아! (Wait a minute! Wait a minute! You ain’t heard nothin’ yet!)”. 19세기 말 탄생 후 오랫동안 침묵하던 영화가 마침내 말문을 튼 것은 1927년 10월 6일이었다. 그날 영화 주인공 알 졸슨(1886~1950)의 목소리가 영화에서 흘러나오자 뉴욕 워너 브러더스 극장에서 영화를 보던 관객들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영화에서 배우 목소리가...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출간
↑ 조세희와 ‘난쏘공’ 초판본 1980년대 대학생들의 ‘의식화 교재’로 읽혀 흔히 ‘난쏘공’으로 불리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소설 속 주인공 김불이는 117㎝ 키에 몸무게가 32㎏에 불과한 난쟁이였다. 곧 철거될 서울특별시 낙원구 행복동에서 2남1녀의 아버지이자 남편으로 살았다. 그는 산업사회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날품팔이 노동자였고 성장의 과실과는 거리가 먼 도시 빈민이었다. 채권 매매, 칼 갈기, 고층건물 유리 닦기, 펌프...
축구계의 ‘검은 거미손’ 레프 야신 은퇴 경기
↑ 래프 야신 레프 야신(1929~1990)은 전 세계 축구 골키퍼들의 영원한 우상이다. 골키퍼로서는 완벽한 189㎝·82㎏의 체격에 동물적인 반사신경과 순발력까지 갖춰 도무지 틈을 주지 않았다. 유난히 팔과 손가락이 길고 검은색 유니폼을 자주 입어 ‘검은 거미손’으로 불렸다. 오늘날 뛰어난 골키퍼를 지칭하는 ‘거미손’, ‘문어발’, ‘신의 손’ 등의 별명도 모두 그에게서 비롯되었다. 야신은 소련 모스크바의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나 10대 초반부터 공장에서 일을...
유대인 학살을 히틀러 정권 차원에서 공식화한 ‘반제 회의’ 열려
↑ 친위대사령관 하인리히 힘러(왼쪽)와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독일 베를린 근교 반제가(街)의 한 저택(암그로센반제 56–58번지 별장)에 나치의 차관급 인사들이 모여든 것은 1942년 1월 20일 아침이었다. 훗날 ‘반제 회의’로 불린 조찬 회동의 주재자는 나치의 친위대 산하 제국보안국 국장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였다. 그의 직위는 아돌프 히틀러, 서열 2위의 헤르만 괴링, 그리고 자신의 직속상관인 친위대 사령관 하인리히 힘러의 지시만을 받는 요직이었다. 그가...
실미도 특수부대원 서울로 진입하던 중 버스 안에서 자폭
↑ 684부대 기간병과 훈련병 작전명 ‘오소리’를 수행할 부대의 정식 명칭은 공군 2325부대 소속 209파견대였다. 1968년 4월에 창설되었다고 해서 편의상 ‘684부대’로도 불렸다. 부대 창설은 1968년 1월 북한 무장공비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려다가 실패한 1·21사태가 발단이 되었다. 분노한 박정희 대통령이 북한 특수부대를 능가할 대북 응징보복팀의 창설을 결정하자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명을 따랐다. 훈련은 공군이 맡고, 훈련 장소는 인천에서 20㎞...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특수상대성이론 발표
↑ 아인슈타인 특수상대성이론, 아인슈타인을 일약 물리학계의 총아로 만들어줘 1905년은 과학계에서 ‘기적의 해’로 불린다. 26살에 불과한 무명의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1955)이 마치 신의 계시라도 받은 듯 불과 수개월 사이에 광양자 가설, 브라운운동 이론, 특수상대성이론 등 3편의 논문을 독일의 유명 학술지 ‘물리학 연보’에 잇따라 발표함으로써 과학계의 기존 인식을 뿌리째 흔들어놓은 해가 1905년이기 때문이다. 3편의 논문 중 빛의 에너지가...
[김상옥 열사 의거 100주년] ‘일제 경찰의 심장부’인 종로경찰서에 폭탄 던지고 총격전 벌이다 10여 발의 총탄 맞고 끝내 자결한 항일 투사
↑ 김상옥 열사 by 김지지 종로경찰서 폭탄 투척은 일제에 중대 사건 일제하 서울의 종로경찰서는 일제 경찰력의 심장부이자 조선인을 고문하고 탄압한 강압 통치의 상징이었다. 1920년대 종로경찰서는 현재 종로2가 서울YMCA 건물 바로 옆에 있던 서양식 2층 건물이었다. 미국인 콜브란의 한성전기회사가 1901년 준공한 사옥을 매입해 경찰서로 사용했는데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이 악명 높은 종로경찰서 서편 담벼락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폭발물이 터진...
이중섭 첫 개인전 서울 미도파화랑에서 열려… 전후의 궁핍한 시대인데도 대성황 이뤄
↑ 이중섭 타고난 개성과 뛰어난 조형감각을 지닌 멋쟁이 이중섭(1916~1956)은 ‘한국의 빈센트 반 고흐’라고 불릴 만큼 치열한 삶을 살았다. 40년의 짧은 생이었지만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국민화가로 인정받고 있다. 그가 남긴 작품은 약 320여점이다. 유화 60여점, 은지화 120점, 드로잉 150점, 엽서화 88점 등이다. 이중섭의 삶은 6·25를 전후해 둘로 나뉜다. 부농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유복하게 자란 젊은 시절과 1950년 12월 피란...
[연인과 부부 (22)] 김지미와 네 남자 이야기-후편… 홍성기(영화감독), 최무룡(영화배우), 나훈아(가수), 이종구(의사)와 살아보고 내린 결론은 “남자는 다 똑같이 어린애”
↑ 간통죄로 고소당해 교도소로 향하는 차 안에서 김지미와 최무룡이 웃고있다. ‘악마의 미소’라는 비판을 받았다. (1962년 10월 31일) ☞ 전문(全文)을 이 곳으로 옮겼습니다. 클릭!! ■두 번째 남자 : 영화배우 최무룡 김지미와 홍성기의 결혼생활이 유지되고 있던 1960년대 초반, 김지미가 영화에서 주로 상대한 남자는 자신보다 12살이 많은 최무룡이었다. 두 사람은 많은 작품에서 호흡을 맞추며 친해졌다. 촬영이 끝나면 다른 장소로 같이 이동해...
[연인과 부부 (22)] 김지미와 네 남자 이야기-전편… 홍성기(영화감독), 최무룡(영화배우), 나훈아(가수), 이종구(의사)와 살아보고 내린 결론은 “남자는 다 똑같이 어린애”
↑ 김지미의 젊은 시절 모습 ☞ 전문(全文)을 이곳으로 옮겼습니다. 클릭!! ■김지미 총평 20세기가 저물던 1999년 월간조선이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영화감독, 배우, 영화평론가, 제작자 등 101명에게 “20세기 최고 영화배우가 누구냐”고 물었다. 대답은 김지미(여자배우)와 김승호(남자배우) 2인이었다. 영화는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이, 영화감독은 임권택 감독이 최고로 뽑혔다. 20세기 최고 영화배우로 선정된 김지미(1940~ )를 설명하는 세...
세계 최초 유성영화 ‘재즈 싱어’ 개봉
↑ 알 존슨 “기다려! 기다려! 넌 아무것도 듣지 못했잖아! (Wait a minute! Wait a minute! You ain’t heard nothin’ yet!)”. 19세기 말 탄생 후 오랫동안 침묵하던 영화가 마침내 말문을 튼 것은 1927년 10월 6일이었다. 그날 영화 주인공 알 졸슨(1886~1950)의 목소리가 영화에서 흘러나오자 뉴욕 워너 브러더스 극장에서 영화를 보던 관객들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영화에서 배우 목소리가...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출간
↑ 조세희와 ‘난쏘공’ 초판본 1980년대 대학생들의 ‘의식화 교재’로 읽혀 흔히 ‘난쏘공’으로 불리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소설 속 주인공 김불이는 117㎝ 키에 몸무게가 32㎏에 불과한 난쟁이였다. 곧 철거될 서울특별시 낙원구 행복동에서 2남1녀의 아버지이자 남편으로 살았다. 그는 산업사회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날품팔이 노동자였고 성장의 과실과는 거리가 먼 도시 빈민이었다. 채권 매매, 칼 갈기, 고층건물 유리 닦기, 펌프...
축구계의 ‘검은 거미손’ 레프 야신 은퇴 경기
↑ 래프 야신 레프 야신(1929~1990)은 전 세계 축구 골키퍼들의 영원한 우상이다. 골키퍼로서는 완벽한 189㎝·82㎏의 체격에 동물적인 반사신경과 순발력까지 갖춰 도무지 틈을 주지 않았다. 유난히 팔과 손가락이 길고 검은색 유니폼을 자주 입어 ‘검은 거미손’으로 불렸다. 오늘날 뛰어난 골키퍼를 지칭하는 ‘거미손’, ‘문어발’, ‘신의 손’ 등의 별명도 모두 그에게서 비롯되었다. 야신은 소련 모스크바의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나 10대 초반부터 공장에서 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