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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취임… 미국 역사상 초유의 4선 기록
1933년 3월 4일, 제32대 미국 대통령 취임식이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열렸다. 이 날의 주인공은 4개월 전 현직 대통령 후버와 맞서 선거인수 472명대 59명이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승리한 프랭클린 루스벨트였다. 대공황 타개책으로 공화당의 후버가 자유방임을 내세운 반면 루스벨트는 국가의 적극 개입을 주장, 국민들을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국민들이 그에게서 본 것은 희망이었다. 루스벨트는 취임식 광장을 가득메운 10만의 군중 앞에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
제1회 아시안게임, 인도 뉴델리에서 개막
1951년 3월4일, 제1회 아시아경기대회가 인도 뉴델리에서 개막됐다. 대회에는 아시아경기연맹(AFG) 가입국 중 일본·태국·인도·필리핀·버마·이란·인도네시아·싱가포르·실론(스리랑카)·아프가니스탄·네팔 등 11개국이 참가했다. 한국은 6·25전쟁으로 참가하지 못했고, 파키스탄은 개최지가 인도로 결정된 것에 반발하며 참가하지 않았다. 600여 명의 각국 선수들이 육상·수영·축구·사이클·농구·역도 등 6개 종목에 참가해 11일까지 8일간 열전을 벌인 결과 일본이 금메달 24개로...
찰드 린드버그 아들 유괴사건
찰스 린드버그는 1927년 5월 뉴욕~파리간 세계최초로 대서양 무착륙 단독비행에 성공함으로써 일약 영웅으로 떠오른 시대의 총아였다. 2년 뒤 백만장자의 딸과 결혼하고 아들까지 얻어 남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러나 1932년 3월 1일 밤, 20개월 된 아들이 뉴저지주의 자택에서 사라지면서 그의 인생은 풍파를 맞았다. 5만 달러를 요구하는 협박편지와 부서진 사다리만 발견되었을 뿐 딱히 단서가 될 만한 것은 없었다. 경찰은 ‘anything’을 ‘anyding’으로, ‘good’을...
해방공간에서 좌·우익의 삼일절 충돌
1947년의 3·1절은 1년 전 발생한 전평 총파업(9월)과 대구폭동(10월) 등으로 진작부터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다. 미 군정은 통행금지 시간을 1시간 앞당기고, 문교부는 전국학생총연합(학련)에게 기념식 참석 금지령을 내려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반목과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던 1947년 3월 1일의 새 날이 밝았다. 우익은 서울운동장에서 ‘기미독립선언기념 전국대회’를 가졌고, 좌익은 남산공원에서 ‘3·1기념 시민대회’를 열었다. 두 세력이 마주친 것은 오후 3시 40분 쯤...
조선·일본, 강화도조약 체결
‘운요호(雲揚號) 사건’을 계기로 조선과 일본 대표가 마주앉았다. 신헌과 윤자승, 구로다 기요타카(黑田淸隆)와 이노우에 가로우(井上馨)가 양국의 협상 파트너였다. 구로다는 미국의 그랜트 대통령을 접견한 바 있는, 나름대로 국제적 안목을 지닌 육군 중장이었고, 이노우에는 영국 유학을 마친 국제파였다. 따라서 국제 경험을 쌓고 강온과 문무를 적절히 배합한 일본 대표와 여전히 중화사상에 젖어 중국을 하늘로 여기고 있는 조선 대표의 협상 수준이 같을 리 없었다. 일본은 이미 구미...
최초 영세자 이승훈 순교
1801년 2월 26일, 이승훈·정약종 등 초창기 천주교 지도자 6명이 신유박해(辛酉迫害)로 서소문 밖 네거리(지금의 서소문공원)에서 참수됐다. 청나라에서 한국인 최초로 영세(1784년)를 받고, 국내에서도 최초의 천주교회를 설립(1785년)한 이승훈은 태어난 곳도 반석골(지금의 중구 중림동)이었고 세례명도 반석(베드로)이었다. 탄압이 거세질 때마다 잠시 배교(背敎)로 위험을 피해갔지만 결국 그에게 주어진 운명은 한국 천주교의 반석이 되는 것이었다. 아들 신규와 손자 재의가...
북한 이웅평 대위, 미그19기 몰고 귀순
1983년 2월 25일 오전 10시58분. 예고없는 대공 경보사이렌이 분주했던 금요일의 오전을 뒤흔들었다. 북한의 이웅평 대위가 미그 19기를 몰고 사선을 넘어 남쪽으로 귀순한 것이다. 평남 개천비행장을 이륙(10:30)한 그는 곧 편대에서 이탈(10:32)한 뒤 북한 레이다망을 피하기 위해 고도 50~100m를 유지하면서 시속 920㎞의 속력으로 남하해 10시 45분경 황해도 해주 인근 상공에서 휴전선을 넘었다. 우리 공군기는 이 대위가 날개를 흔들며 귀순 의사를 밝히자...
태평양전쟁에 참전한 일본 패잔병, 30년 만에 필리핀 정글에서 발견
“명령이 없으면 산에서 내려갈 수 없다.” 29년 4개월을 산속에서 보낸 사람의 첫 마디는 이랬다. 1974년 2월 20일, 그를 찾아나선 스즈키라는 일본인 청년과 필리핀 루방섬에서 조우했을 때 오노다 히로(小野田寬郞) 전 일본 소위가 했던 말이다. 태평양전쟁 발발 후 오노다가 조국을 떠나 멀리 루방섬에 배치된 것은 일본의 패색이 짙던 1944년 9월이었다. 미군의 진격에 대비해 전략 정보를 수집하는 게 그에게 주어진 임무였다. “전멸하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로 투항하지...
동일방직 똥물 사건
1970년대. 누구랄 것도 없이 못먹고 못살던 시대였지만 다행히 경제는 성장에 성장을 거듭했다. 주된 공로가 국가지도자의 리더십에 있든, 기업가의 기업가정신이나 탐욕에 있든, 노동자의 희생에 있든 분명한 것은 국가가 한걸음 한걸음 가난에서 벗어나고 있고, 노동자의 눈물과 피와 땀이 그 시대 고도성장의 밑바탕이 됐다는 사실이다. 특히 섬유와 전자산업에 투입된 어린 여공들의 희생이야말로 ‘한강의 기적’을 있게 한 원천이었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혹사당했으나 당시는 어디를 간들...
[제주 오름 가봐수까 ④] 거문오름은 제주 오름 중 유일하게 등재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주변 만장굴 등 6개 동굴은 거문오름과 한 몸
↑ 거문오름 전경 (출처 제주관광정보센터) ☞ 내맘대로 평점(★ 5개 기준). 등산 요소 ★★★★(3개 코스 중 3시간 반 코스 경우), 관광 요소 ★★★★★ by 김지지 ■거문오름 ▲생성 과정 제주에는 거문오름이 3개다. 이중 일반에 널리 알려진 것은 조천읍 선흘리의 거문오름이다. 숲이 깊고 어두컴컴하다고 해서 거문오름이다. 많은 탐방객들이 이곳을 찾는데 이유는 제주 오름 중 유일하게 유네스코 지정 세계자연유산이기...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취임… 미국 역사상 초유의 4선 기록
1933년 3월 4일, 제32대 미국 대통령 취임식이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열렸다. 이 날의 주인공은 4개월 전 현직 대통령 후버와 맞서 선거인수 472명대 59명이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승리한 프랭클린 루스벨트였다. 대공황 타개책으로 공화당의 후버가 자유방임을 내세운 반면 루스벨트는 국가의 적극 개입을 주장, 국민들을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국민들이 그에게서 본 것은 희망이었다. 루스벨트는 취임식 광장을 가득메운 10만의 군중 앞에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
제1회 아시안게임, 인도 뉴델리에서 개막
1951년 3월4일, 제1회 아시아경기대회가 인도 뉴델리에서 개막됐다. 대회에는 아시아경기연맹(AFG) 가입국 중 일본·태국·인도·필리핀·버마·이란·인도네시아·싱가포르·실론(스리랑카)·아프가니스탄·네팔 등 11개국이 참가했다. 한국은 6·25전쟁으로 참가하지 못했고, 파키스탄은 개최지가 인도로 결정된 것에 반발하며 참가하지 않았다. 600여 명의 각국 선수들이 육상·수영·축구·사이클·농구·역도 등 6개 종목에 참가해 11일까지 8일간 열전을 벌인 결과 일본이 금메달 24개로...
찰드 린드버그 아들 유괴사건
찰스 린드버그는 1927년 5월 뉴욕~파리간 세계최초로 대서양 무착륙 단독비행에 성공함으로써 일약 영웅으로 떠오른 시대의 총아였다. 2년 뒤 백만장자의 딸과 결혼하고 아들까지 얻어 남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러나 1932년 3월 1일 밤, 20개월 된 아들이 뉴저지주의 자택에서 사라지면서 그의 인생은 풍파를 맞았다. 5만 달러를 요구하는 협박편지와 부서진 사다리만 발견되었을 뿐 딱히 단서가 될 만한 것은 없었다. 경찰은 ‘anything’을 ‘anyding’으로, ‘good’을...
해방공간에서 좌·우익의 삼일절 충돌
1947년의 3·1절은 1년 전 발생한 전평 총파업(9월)과 대구폭동(10월) 등으로 진작부터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다. 미 군정은 통행금지 시간을 1시간 앞당기고, 문교부는 전국학생총연합(학련)에게 기념식 참석 금지령을 내려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반목과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던 1947년 3월 1일의 새 날이 밝았다. 우익은 서울운동장에서 ‘기미독립선언기념 전국대회’를 가졌고, 좌익은 남산공원에서 ‘3·1기념 시민대회’를 열었다. 두 세력이 마주친 것은 오후 3시 40분 쯤...
조선·일본, 강화도조약 체결
‘운요호(雲揚號) 사건’을 계기로 조선과 일본 대표가 마주앉았다. 신헌과 윤자승, 구로다 기요타카(黑田淸隆)와 이노우에 가로우(井上馨)가 양국의 협상 파트너였다. 구로다는 미국의 그랜트 대통령을 접견한 바 있는, 나름대로 국제적 안목을 지닌 육군 중장이었고, 이노우에는 영국 유학을 마친 국제파였다. 따라서 국제 경험을 쌓고 강온과 문무를 적절히 배합한 일본 대표와 여전히 중화사상에 젖어 중국을 하늘로 여기고 있는 조선 대표의 협상 수준이 같을 리 없었다. 일본은 이미 구미...
최초 영세자 이승훈 순교
1801년 2월 26일, 이승훈·정약종 등 초창기 천주교 지도자 6명이 신유박해(辛酉迫害)로 서소문 밖 네거리(지금의 서소문공원)에서 참수됐다. 청나라에서 한국인 최초로 영세(1784년)를 받고, 국내에서도 최초의 천주교회를 설립(1785년)한 이승훈은 태어난 곳도 반석골(지금의 중구 중림동)이었고 세례명도 반석(베드로)이었다. 탄압이 거세질 때마다 잠시 배교(背敎)로 위험을 피해갔지만 결국 그에게 주어진 운명은 한국 천주교의 반석이 되는 것이었다. 아들 신규와 손자 재의가...
북한 이웅평 대위, 미그19기 몰고 귀순
1983년 2월 25일 오전 10시58분. 예고없는 대공 경보사이렌이 분주했던 금요일의 오전을 뒤흔들었다. 북한의 이웅평 대위가 미그 19기를 몰고 사선을 넘어 남쪽으로 귀순한 것이다. 평남 개천비행장을 이륙(10:30)한 그는 곧 편대에서 이탈(10:32)한 뒤 북한 레이다망을 피하기 위해 고도 50~100m를 유지하면서 시속 920㎞의 속력으로 남하해 10시 45분경 황해도 해주 인근 상공에서 휴전선을 넘었다. 우리 공군기는 이 대위가 날개를 흔들며 귀순 의사를 밝히자...
태평양전쟁에 참전한 일본 패잔병, 30년 만에 필리핀 정글에서 발견
“명령이 없으면 산에서 내려갈 수 없다.” 29년 4개월을 산속에서 보낸 사람의 첫 마디는 이랬다. 1974년 2월 20일, 그를 찾아나선 스즈키라는 일본인 청년과 필리핀 루방섬에서 조우했을 때 오노다 히로(小野田寬郞) 전 일본 소위가 했던 말이다. 태평양전쟁 발발 후 오노다가 조국을 떠나 멀리 루방섬에 배치된 것은 일본의 패색이 짙던 1944년 9월이었다. 미군의 진격에 대비해 전략 정보를 수집하는 게 그에게 주어진 임무였다. “전멸하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로 투항하지...
동일방직 똥물 사건
1970년대. 누구랄 것도 없이 못먹고 못살던 시대였지만 다행히 경제는 성장에 성장을 거듭했다. 주된 공로가 국가지도자의 리더십에 있든, 기업가의 기업가정신이나 탐욕에 있든, 노동자의 희생에 있든 분명한 것은 국가가 한걸음 한걸음 가난에서 벗어나고 있고, 노동자의 눈물과 피와 땀이 그 시대 고도성장의 밑바탕이 됐다는 사실이다. 특히 섬유와 전자산업에 투입된 어린 여공들의 희생이야말로 ‘한강의 기적’을 있게 한 원천이었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혹사당했으나 당시는 어디를 간들...
[제주 오름 가봐수까 ④] 거문오름은 제주 오름 중 유일하게 등재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주변 만장굴 등 6개 동굴은 거문오름과 한 몸
↑ 거문오름 전경 (출처 제주관광정보센터) ☞ 내맘대로 평점(★ 5개 기준). 등산 요소 ★★★★(3개 코스 중 3시간 반 코스 경우), 관광 요소 ★★★★★ by 김지지 ■거문오름 ▲생성 과정 제주에는 거문오름이 3개다. 이중 일반에 널리 알려진 것은 조천읍 선흘리의 거문오름이다. 숲이 깊고 어두컴컴하다고 해서 거문오름이다. 많은 탐방객들이 이곳을 찾는데 이유는 제주 오름 중 유일하게 유네스코 지정 세계자연유산이기...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취임… 미국 역사상 초유의 4선 기록
1933년 3월 4일, 제32대 미국 대통령 취임식이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열렸다. 이 날의 주인공은 4개월 전 현직 대통령 후버와 맞서 선거인수 472명대 59명이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승리한 프랭클린 루스벨트였다. 대공황 타개책으로 공화당의 후버가 자유방임을 내세운 반면 루스벨트는 국가의 적극 개입을 주장, 국민들을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국민들이 그에게서 본 것은 희망이었다. 루스벨트는 취임식 광장을 가득메운 10만의 군중 앞에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
제1회 아시안게임, 인도 뉴델리에서 개막
1951년 3월4일, 제1회 아시아경기대회가 인도 뉴델리에서 개막됐다. 대회에는 아시아경기연맹(AFG) 가입국 중 일본·태국·인도·필리핀·버마·이란·인도네시아·싱가포르·실론(스리랑카)·아프가니스탄·네팔 등 11개국이 참가했다. 한국은 6·25전쟁으로 참가하지 못했고, 파키스탄은 개최지가 인도로 결정된 것에 반발하며 참가하지 않았다. 600여 명의 각국 선수들이 육상·수영·축구·사이클·농구·역도 등 6개 종목에 참가해 11일까지 8일간 열전을 벌인 결과 일본이 금메달 24개로...
찰드 린드버그 아들 유괴사건
찰스 린드버그는 1927년 5월 뉴욕~파리간 세계최초로 대서양 무착륙 단독비행에 성공함으로써 일약 영웅으로 떠오른 시대의 총아였다. 2년 뒤 백만장자의 딸과 결혼하고 아들까지 얻어 남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러나 1932년 3월 1일 밤, 20개월 된 아들이 뉴저지주의 자택에서 사라지면서 그의 인생은 풍파를 맞았다. 5만 달러를 요구하는 협박편지와 부서진 사다리만 발견되었을 뿐 딱히 단서가 될 만한 것은 없었다. 경찰은 ‘anything’을 ‘anyding’으로, ‘good’을...
해방공간에서 좌·우익의 삼일절 충돌
1947년의 3·1절은 1년 전 발생한 전평 총파업(9월)과 대구폭동(10월) 등으로 진작부터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다. 미 군정은 통행금지 시간을 1시간 앞당기고, 문교부는 전국학생총연합(학련)에게 기념식 참석 금지령을 내려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반목과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던 1947년 3월 1일의 새 날이 밝았다. 우익은 서울운동장에서 ‘기미독립선언기념 전국대회’를 가졌고, 좌익은 남산공원에서 ‘3·1기념 시민대회’를 열었다. 두 세력이 마주친 것은 오후 3시 40분 쯤...
조선·일본, 강화도조약 체결
‘운요호(雲揚號) 사건’을 계기로 조선과 일본 대표가 마주앉았다. 신헌과 윤자승, 구로다 기요타카(黑田淸隆)와 이노우에 가로우(井上馨)가 양국의 협상 파트너였다. 구로다는 미국의 그랜트 대통령을 접견한 바 있는, 나름대로 국제적 안목을 지닌 육군 중장이었고, 이노우에는 영국 유학을 마친 국제파였다. 따라서 국제 경험을 쌓고 강온과 문무를 적절히 배합한 일본 대표와 여전히 중화사상에 젖어 중국을 하늘로 여기고 있는 조선 대표의 협상 수준이 같을 리 없었다. 일본은 이미 구미...
최초 영세자 이승훈 순교
1801년 2월 26일, 이승훈·정약종 등 초창기 천주교 지도자 6명이 신유박해(辛酉迫害)로 서소문 밖 네거리(지금의 서소문공원)에서 참수됐다. 청나라에서 한국인 최초로 영세(1784년)를 받고, 국내에서도 최초의 천주교회를 설립(1785년)한 이승훈은 태어난 곳도 반석골(지금의 중구 중림동)이었고 세례명도 반석(베드로)이었다. 탄압이 거세질 때마다 잠시 배교(背敎)로 위험을 피해갔지만 결국 그에게 주어진 운명은 한국 천주교의 반석이 되는 것이었다. 아들 신규와 손자 재의가...
북한 이웅평 대위, 미그19기 몰고 귀순
1983년 2월 25일 오전 10시58분. 예고없는 대공 경보사이렌이 분주했던 금요일의 오전을 뒤흔들었다. 북한의 이웅평 대위가 미그 19기를 몰고 사선을 넘어 남쪽으로 귀순한 것이다. 평남 개천비행장을 이륙(10:30)한 그는 곧 편대에서 이탈(10:32)한 뒤 북한 레이다망을 피하기 위해 고도 50~100m를 유지하면서 시속 920㎞의 속력으로 남하해 10시 45분경 황해도 해주 인근 상공에서 휴전선을 넘었다. 우리 공군기는 이 대위가 날개를 흔들며 귀순 의사를 밝히자...
태평양전쟁에 참전한 일본 패잔병, 30년 만에 필리핀 정글에서 발견
“명령이 없으면 산에서 내려갈 수 없다.” 29년 4개월을 산속에서 보낸 사람의 첫 마디는 이랬다. 1974년 2월 20일, 그를 찾아나선 스즈키라는 일본인 청년과 필리핀 루방섬에서 조우했을 때 오노다 히로(小野田寬郞) 전 일본 소위가 했던 말이다. 태평양전쟁 발발 후 오노다가 조국을 떠나 멀리 루방섬에 배치된 것은 일본의 패색이 짙던 1944년 9월이었다. 미군의 진격에 대비해 전략 정보를 수집하는 게 그에게 주어진 임무였다. “전멸하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로 투항하지...
동일방직 똥물 사건
1970년대. 누구랄 것도 없이 못먹고 못살던 시대였지만 다행히 경제는 성장에 성장을 거듭했다. 주된 공로가 국가지도자의 리더십에 있든, 기업가의 기업가정신이나 탐욕에 있든, 노동자의 희생에 있든 분명한 것은 국가가 한걸음 한걸음 가난에서 벗어나고 있고, 노동자의 눈물과 피와 땀이 그 시대 고도성장의 밑바탕이 됐다는 사실이다. 특히 섬유와 전자산업에 투입된 어린 여공들의 희생이야말로 ‘한강의 기적’을 있게 한 원천이었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혹사당했으나 당시는 어디를 간들...
[제주 오름 가봐수까 ④] 거문오름은 제주 오름 중 유일하게 등재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주변 만장굴 등 6개 동굴은 거문오름과 한 몸
↑ 거문오름 전경 (출처 제주관광정보센터) ☞ 내맘대로 평점(★ 5개 기준). 등산 요소 ★★★★(3개 코스 중 3시간 반 코스 경우), 관광 요소 ★★★★★ by 김지지 ■거문오름 ▲생성 과정 제주에는 거문오름이 3개다. 이중 일반에 널리 알려진 것은 조천읍 선흘리의 거문오름이다. 숲이 깊고 어두컴컴하다고 해서 거문오름이다. 많은 탐방객들이 이곳을 찾는데 이유는 제주 오름 중 유일하게 유네스코 지정 세계자연유산이기...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취임… 미국 역사상 초유의 4선 기록
1933년 3월 4일, 제32대 미국 대통령 취임식이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열렸다. 이 날의 주인공은 4개월 전 현직 대통령 후버와 맞서 선거인수 472명대 59명이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승리한 프랭클린 루스벨트였다. 대공황 타개책으로 공화당의 후버가 자유방임을 내세운 반면 루스벨트는 국가의 적극 개입을 주장, 국민들을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국민들이 그에게서 본 것은 희망이었다. 루스벨트는 취임식 광장을 가득메운 10만의 군중 앞에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
제1회 아시안게임, 인도 뉴델리에서 개막
1951년 3월4일, 제1회 아시아경기대회가 인도 뉴델리에서 개막됐다. 대회에는 아시아경기연맹(AFG) 가입국 중 일본·태국·인도·필리핀·버마·이란·인도네시아·싱가포르·실론(스리랑카)·아프가니스탄·네팔 등 11개국이 참가했다. 한국은 6·25전쟁으로 참가하지 못했고, 파키스탄은 개최지가 인도로 결정된 것에 반발하며 참가하지 않았다. 600여 명의 각국 선수들이 육상·수영·축구·사이클·농구·역도 등 6개 종목에 참가해 11일까지 8일간 열전을 벌인 결과 일본이 금메달 24개로...
찰드 린드버그 아들 유괴사건
찰스 린드버그는 1927년 5월 뉴욕~파리간 세계최초로 대서양 무착륙 단독비행에 성공함으로써 일약 영웅으로 떠오른 시대의 총아였다. 2년 뒤 백만장자의 딸과 결혼하고 아들까지 얻어 남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러나 1932년 3월 1일 밤, 20개월 된 아들이 뉴저지주의 자택에서 사라지면서 그의 인생은 풍파를 맞았다. 5만 달러를 요구하는 협박편지와 부서진 사다리만 발견되었을 뿐 딱히 단서가 될 만한 것은 없었다. 경찰은 ‘anything’을 ‘anyding’으로, ‘good’을...
해방공간에서 좌·우익의 삼일절 충돌
1947년의 3·1절은 1년 전 발생한 전평 총파업(9월)과 대구폭동(10월) 등으로 진작부터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다. 미 군정은 통행금지 시간을 1시간 앞당기고, 문교부는 전국학생총연합(학련)에게 기념식 참석 금지령을 내려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반목과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던 1947년 3월 1일의 새 날이 밝았다. 우익은 서울운동장에서 ‘기미독립선언기념 전국대회’를 가졌고, 좌익은 남산공원에서 ‘3·1기념 시민대회’를 열었다. 두 세력이 마주친 것은 오후 3시 40분 쯤...
조선·일본, 강화도조약 체결
‘운요호(雲揚號) 사건’을 계기로 조선과 일본 대표가 마주앉았다. 신헌과 윤자승, 구로다 기요타카(黑田淸隆)와 이노우에 가로우(井上馨)가 양국의 협상 파트너였다. 구로다는 미국의 그랜트 대통령을 접견한 바 있는, 나름대로 국제적 안목을 지닌 육군 중장이었고, 이노우에는 영국 유학을 마친 국제파였다. 따라서 국제 경험을 쌓고 강온과 문무를 적절히 배합한 일본 대표와 여전히 중화사상에 젖어 중국을 하늘로 여기고 있는 조선 대표의 협상 수준이 같을 리 없었다. 일본은 이미 구미...
최초 영세자 이승훈 순교
1801년 2월 26일, 이승훈·정약종 등 초창기 천주교 지도자 6명이 신유박해(辛酉迫害)로 서소문 밖 네거리(지금의 서소문공원)에서 참수됐다. 청나라에서 한국인 최초로 영세(1784년)를 받고, 국내에서도 최초의 천주교회를 설립(1785년)한 이승훈은 태어난 곳도 반석골(지금의 중구 중림동)이었고 세례명도 반석(베드로)이었다. 탄압이 거세질 때마다 잠시 배교(背敎)로 위험을 피해갔지만 결국 그에게 주어진 운명은 한국 천주교의 반석이 되는 것이었다. 아들 신규와 손자 재의가...
북한 이웅평 대위, 미그19기 몰고 귀순
1983년 2월 25일 오전 10시58분. 예고없는 대공 경보사이렌이 분주했던 금요일의 오전을 뒤흔들었다. 북한의 이웅평 대위가 미그 19기를 몰고 사선을 넘어 남쪽으로 귀순한 것이다. 평남 개천비행장을 이륙(10:30)한 그는 곧 편대에서 이탈(10:32)한 뒤 북한 레이다망을 피하기 위해 고도 50~100m를 유지하면서 시속 920㎞의 속력으로 남하해 10시 45분경 황해도 해주 인근 상공에서 휴전선을 넘었다. 우리 공군기는 이 대위가 날개를 흔들며 귀순 의사를 밝히자...
태평양전쟁에 참전한 일본 패잔병, 30년 만에 필리핀 정글에서 발견
“명령이 없으면 산에서 내려갈 수 없다.” 29년 4개월을 산속에서 보낸 사람의 첫 마디는 이랬다. 1974년 2월 20일, 그를 찾아나선 스즈키라는 일본인 청년과 필리핀 루방섬에서 조우했을 때 오노다 히로(小野田寬郞) 전 일본 소위가 했던 말이다. 태평양전쟁 발발 후 오노다가 조국을 떠나 멀리 루방섬에 배치된 것은 일본의 패색이 짙던 1944년 9월이었다. 미군의 진격에 대비해 전략 정보를 수집하는 게 그에게 주어진 임무였다. “전멸하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로 투항하지...
동일방직 똥물 사건
1970년대. 누구랄 것도 없이 못먹고 못살던 시대였지만 다행히 경제는 성장에 성장을 거듭했다. 주된 공로가 국가지도자의 리더십에 있든, 기업가의 기업가정신이나 탐욕에 있든, 노동자의 희생에 있든 분명한 것은 국가가 한걸음 한걸음 가난에서 벗어나고 있고, 노동자의 눈물과 피와 땀이 그 시대 고도성장의 밑바탕이 됐다는 사실이다. 특히 섬유와 전자산업에 투입된 어린 여공들의 희생이야말로 ‘한강의 기적’을 있게 한 원천이었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혹사당했으나 당시는 어디를 간들...
[제주 오름 가봐수까 ④] 거문오름은 제주 오름 중 유일하게 등재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주변 만장굴 등 6개 동굴은 거문오름과 한 몸
↑ 거문오름 전경 (출처 제주관광정보센터) ☞ 내맘대로 평점(★ 5개 기준). 등산 요소 ★★★★(3개 코스 중 3시간 반 코스 경우), 관광 요소 ★★★★★ by 김지지 ■거문오름 ▲생성 과정 제주에는 거문오름이 3개다. 이중 일반에 널리 알려진 것은 조천읍 선흘리의 거문오름이다. 숲이 깊고 어두컴컴하다고 해서 거문오름이다. 많은 탐방객들이 이곳을 찾는데 이유는 제주 오름 중 유일하게 유네스코 지정 세계자연유산이기...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취임… 미국 역사상 초유의 4선 기록
1933년 3월 4일, 제32대 미국 대통령 취임식이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열렸다. 이 날의 주인공은 4개월 전 현직 대통령 후버와 맞서 선거인수 472명대 59명이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승리한 프랭클린 루스벨트였다. 대공황 타개책으로 공화당의 후버가 자유방임을 내세운 반면 루스벨트는 국가의 적극 개입을 주장, 국민들을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국민들이 그에게서 본 것은 희망이었다. 루스벨트는 취임식 광장을 가득메운 10만의 군중 앞에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
제1회 아시안게임, 인도 뉴델리에서 개막
1951년 3월4일, 제1회 아시아경기대회가 인도 뉴델리에서 개막됐다. 대회에는 아시아경기연맹(AFG) 가입국 중 일본·태국·인도·필리핀·버마·이란·인도네시아·싱가포르·실론(스리랑카)·아프가니스탄·네팔 등 11개국이 참가했다. 한국은 6·25전쟁으로 참가하지 못했고, 파키스탄은 개최지가 인도로 결정된 것에 반발하며 참가하지 않았다. 600여 명의 각국 선수들이 육상·수영·축구·사이클·농구·역도 등 6개 종목에 참가해 11일까지 8일간 열전을 벌인 결과 일본이 금메달 24개로...
찰드 린드버그 아들 유괴사건
찰스 린드버그는 1927년 5월 뉴욕~파리간 세계최초로 대서양 무착륙 단독비행에 성공함으로써 일약 영웅으로 떠오른 시대의 총아였다. 2년 뒤 백만장자의 딸과 결혼하고 아들까지 얻어 남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러나 1932년 3월 1일 밤, 20개월 된 아들이 뉴저지주의 자택에서 사라지면서 그의 인생은 풍파를 맞았다. 5만 달러를 요구하는 협박편지와 부서진 사다리만 발견되었을 뿐 딱히 단서가 될 만한 것은 없었다. 경찰은 ‘anything’을 ‘anyding’으로, ‘good’을...
해방공간에서 좌·우익의 삼일절 충돌
1947년의 3·1절은 1년 전 발생한 전평 총파업(9월)과 대구폭동(10월) 등으로 진작부터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다. 미 군정은 통행금지 시간을 1시간 앞당기고, 문교부는 전국학생총연합(학련)에게 기념식 참석 금지령을 내려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반목과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던 1947년 3월 1일의 새 날이 밝았다. 우익은 서울운동장에서 ‘기미독립선언기념 전국대회’를 가졌고, 좌익은 남산공원에서 ‘3·1기념 시민대회’를 열었다. 두 세력이 마주친 것은 오후 3시 40분 쯤...
조선·일본, 강화도조약 체결
‘운요호(雲揚號) 사건’을 계기로 조선과 일본 대표가 마주앉았다. 신헌과 윤자승, 구로다 기요타카(黑田淸隆)와 이노우에 가로우(井上馨)가 양국의 협상 파트너였다. 구로다는 미국의 그랜트 대통령을 접견한 바 있는, 나름대로 국제적 안목을 지닌 육군 중장이었고, 이노우에는 영국 유학을 마친 국제파였다. 따라서 국제 경험을 쌓고 강온과 문무를 적절히 배합한 일본 대표와 여전히 중화사상에 젖어 중국을 하늘로 여기고 있는 조선 대표의 협상 수준이 같을 리 없었다. 일본은 이미 구미...
최초 영세자 이승훈 순교
1801년 2월 26일, 이승훈·정약종 등 초창기 천주교 지도자 6명이 신유박해(辛酉迫害)로 서소문 밖 네거리(지금의 서소문공원)에서 참수됐다. 청나라에서 한국인 최초로 영세(1784년)를 받고, 국내에서도 최초의 천주교회를 설립(1785년)한 이승훈은 태어난 곳도 반석골(지금의 중구 중림동)이었고 세례명도 반석(베드로)이었다. 탄압이 거세질 때마다 잠시 배교(背敎)로 위험을 피해갔지만 결국 그에게 주어진 운명은 한국 천주교의 반석이 되는 것이었다. 아들 신규와 손자 재의가...
북한 이웅평 대위, 미그19기 몰고 귀순
1983년 2월 25일 오전 10시58분. 예고없는 대공 경보사이렌이 분주했던 금요일의 오전을 뒤흔들었다. 북한의 이웅평 대위가 미그 19기를 몰고 사선을 넘어 남쪽으로 귀순한 것이다. 평남 개천비행장을 이륙(10:30)한 그는 곧 편대에서 이탈(10:32)한 뒤 북한 레이다망을 피하기 위해 고도 50~100m를 유지하면서 시속 920㎞의 속력으로 남하해 10시 45분경 황해도 해주 인근 상공에서 휴전선을 넘었다. 우리 공군기는 이 대위가 날개를 흔들며 귀순 의사를 밝히자...
태평양전쟁에 참전한 일본 패잔병, 30년 만에 필리핀 정글에서 발견
“명령이 없으면 산에서 내려갈 수 없다.” 29년 4개월을 산속에서 보낸 사람의 첫 마디는 이랬다. 1974년 2월 20일, 그를 찾아나선 스즈키라는 일본인 청년과 필리핀 루방섬에서 조우했을 때 오노다 히로(小野田寬郞) 전 일본 소위가 했던 말이다. 태평양전쟁 발발 후 오노다가 조국을 떠나 멀리 루방섬에 배치된 것은 일본의 패색이 짙던 1944년 9월이었다. 미군의 진격에 대비해 전략 정보를 수집하는 게 그에게 주어진 임무였다. “전멸하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로 투항하지...
동일방직 똥물 사건
1970년대. 누구랄 것도 없이 못먹고 못살던 시대였지만 다행히 경제는 성장에 성장을 거듭했다. 주된 공로가 국가지도자의 리더십에 있든, 기업가의 기업가정신이나 탐욕에 있든, 노동자의 희생에 있든 분명한 것은 국가가 한걸음 한걸음 가난에서 벗어나고 있고, 노동자의 눈물과 피와 땀이 그 시대 고도성장의 밑바탕이 됐다는 사실이다. 특히 섬유와 전자산업에 투입된 어린 여공들의 희생이야말로 ‘한강의 기적’을 있게 한 원천이었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혹사당했으나 당시는 어디를 간들...
[제주 오름 가봐수까 ④] 거문오름은 제주 오름 중 유일하게 등재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주변 만장굴 등 6개 동굴은 거문오름과 한 몸
↑ 거문오름 전경 (출처 제주관광정보센터) ☞ 내맘대로 평점(★ 5개 기준). 등산 요소 ★★★★(3개 코스 중 3시간 반 코스 경우), 관광 요소 ★★★★★ by 김지지 ■거문오름 ▲생성 과정 제주에는 거문오름이 3개다. 이중 일반에 널리 알려진 것은 조천읍 선흘리의 거문오름이다. 숲이 깊고 어두컴컴하다고 해서 거문오름이다. 많은 탐방객들이 이곳을 찾는데 이유는 제주 오름 중 유일하게 유네스코 지정 세계자연유산이기...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취임… 미국 역사상 초유의 4선 기록
1933년 3월 4일, 제32대 미국 대통령 취임식이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열렸다. 이 날의 주인공은 4개월 전 현직 대통령 후버와 맞서 선거인수 472명대 59명이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승리한 프랭클린 루스벨트였다. 대공황 타개책으로 공화당의 후버가 자유방임을 내세운 반면 루스벨트는 국가의 적극 개입을 주장, 국민들을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국민들이 그에게서 본 것은 희망이었다. 루스벨트는 취임식 광장을 가득메운 10만의 군중 앞에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
제1회 아시안게임, 인도 뉴델리에서 개막
1951년 3월4일, 제1회 아시아경기대회가 인도 뉴델리에서 개막됐다. 대회에는 아시아경기연맹(AFG) 가입국 중 일본·태국·인도·필리핀·버마·이란·인도네시아·싱가포르·실론(스리랑카)·아프가니스탄·네팔 등 11개국이 참가했다. 한국은 6·25전쟁으로 참가하지 못했고, 파키스탄은 개최지가 인도로 결정된 것에 반발하며 참가하지 않았다. 600여 명의 각국 선수들이 육상·수영·축구·사이클·농구·역도 등 6개 종목에 참가해 11일까지 8일간 열전을 벌인 결과 일본이 금메달 24개로...
찰드 린드버그 아들 유괴사건
찰스 린드버그는 1927년 5월 뉴욕~파리간 세계최초로 대서양 무착륙 단독비행에 성공함으로써 일약 영웅으로 떠오른 시대의 총아였다. 2년 뒤 백만장자의 딸과 결혼하고 아들까지 얻어 남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러나 1932년 3월 1일 밤, 20개월 된 아들이 뉴저지주의 자택에서 사라지면서 그의 인생은 풍파를 맞았다. 5만 달러를 요구하는 협박편지와 부서진 사다리만 발견되었을 뿐 딱히 단서가 될 만한 것은 없었다. 경찰은 ‘anything’을 ‘anyding’으로, ‘good’을...
해방공간에서 좌·우익의 삼일절 충돌
1947년의 3·1절은 1년 전 발생한 전평 총파업(9월)과 대구폭동(10월) 등으로 진작부터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다. 미 군정은 통행금지 시간을 1시간 앞당기고, 문교부는 전국학생총연합(학련)에게 기념식 참석 금지령을 내려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반목과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던 1947년 3월 1일의 새 날이 밝았다. 우익은 서울운동장에서 ‘기미독립선언기념 전국대회’를 가졌고, 좌익은 남산공원에서 ‘3·1기념 시민대회’를 열었다. 두 세력이 마주친 것은 오후 3시 40분 쯤...
조선·일본, 강화도조약 체결
‘운요호(雲揚號) 사건’을 계기로 조선과 일본 대표가 마주앉았다. 신헌과 윤자승, 구로다 기요타카(黑田淸隆)와 이노우에 가로우(井上馨)가 양국의 협상 파트너였다. 구로다는 미국의 그랜트 대통령을 접견한 바 있는, 나름대로 국제적 안목을 지닌 육군 중장이었고, 이노우에는 영국 유학을 마친 국제파였다. 따라서 국제 경험을 쌓고 강온과 문무를 적절히 배합한 일본 대표와 여전히 중화사상에 젖어 중국을 하늘로 여기고 있는 조선 대표의 협상 수준이 같을 리 없었다. 일본은 이미 구미...
최초 영세자 이승훈 순교
1801년 2월 26일, 이승훈·정약종 등 초창기 천주교 지도자 6명이 신유박해(辛酉迫害)로 서소문 밖 네거리(지금의 서소문공원)에서 참수됐다. 청나라에서 한국인 최초로 영세(1784년)를 받고, 국내에서도 최초의 천주교회를 설립(1785년)한 이승훈은 태어난 곳도 반석골(지금의 중구 중림동)이었고 세례명도 반석(베드로)이었다. 탄압이 거세질 때마다 잠시 배교(背敎)로 위험을 피해갔지만 결국 그에게 주어진 운명은 한국 천주교의 반석이 되는 것이었다. 아들 신규와 손자 재의가...
북한 이웅평 대위, 미그19기 몰고 귀순
1983년 2월 25일 오전 10시58분. 예고없는 대공 경보사이렌이 분주했던 금요일의 오전을 뒤흔들었다. 북한의 이웅평 대위가 미그 19기를 몰고 사선을 넘어 남쪽으로 귀순한 것이다. 평남 개천비행장을 이륙(10:30)한 그는 곧 편대에서 이탈(10:32)한 뒤 북한 레이다망을 피하기 위해 고도 50~100m를 유지하면서 시속 920㎞의 속력으로 남하해 10시 45분경 황해도 해주 인근 상공에서 휴전선을 넘었다. 우리 공군기는 이 대위가 날개를 흔들며 귀순 의사를 밝히자...
태평양전쟁에 참전한 일본 패잔병, 30년 만에 필리핀 정글에서 발견
“명령이 없으면 산에서 내려갈 수 없다.” 29년 4개월을 산속에서 보낸 사람의 첫 마디는 이랬다. 1974년 2월 20일, 그를 찾아나선 스즈키라는 일본인 청년과 필리핀 루방섬에서 조우했을 때 오노다 히로(小野田寬郞) 전 일본 소위가 했던 말이다. 태평양전쟁 발발 후 오노다가 조국을 떠나 멀리 루방섬에 배치된 것은 일본의 패색이 짙던 1944년 9월이었다. 미군의 진격에 대비해 전략 정보를 수집하는 게 그에게 주어진 임무였다. “전멸하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로 투항하지...
동일방직 똥물 사건
1970년대. 누구랄 것도 없이 못먹고 못살던 시대였지만 다행히 경제는 성장에 성장을 거듭했다. 주된 공로가 국가지도자의 리더십에 있든, 기업가의 기업가정신이나 탐욕에 있든, 노동자의 희생에 있든 분명한 것은 국가가 한걸음 한걸음 가난에서 벗어나고 있고, 노동자의 눈물과 피와 땀이 그 시대 고도성장의 밑바탕이 됐다는 사실이다. 특히 섬유와 전자산업에 투입된 어린 여공들의 희생이야말로 ‘한강의 기적’을 있게 한 원천이었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혹사당했으나 당시는 어디를 간들...
[제주 오름 가봐수까 ④] 거문오름은 제주 오름 중 유일하게 등재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주변 만장굴 등 6개 동굴은 거문오름과 한 몸
↑ 거문오름 전경 (출처 제주관광정보센터) ☞ 내맘대로 평점(★ 5개 기준). 등산 요소 ★★★★(3개 코스 중 3시간 반 코스 경우), 관광 요소 ★★★★★ by 김지지 ■거문오름 ▲생성 과정 제주에는 거문오름이 3개다. 이중 일반에 널리 알려진 것은 조천읍 선흘리의 거문오름이다. 숲이 깊고 어두컴컴하다고 해서 거문오름이다. 많은 탐방객들이 이곳을 찾는데 이유는 제주 오름 중 유일하게 유네스코 지정 세계자연유산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