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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딜런,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서 공연… ‘포크 록’의 탄생
‘노래하는 시인’ 밥 딜런은 스무 살 되던 1961년에 기타 하나만을 들고 무작정 뉴욕으로 가 클럽에서 노래를 불렀다. 어려서부터 시를 써온 그의 노랫말은 그 자체가 시였고, 그는 시를 노래한 최초의 가수였다. 헐렁한 가죽 모자를 눌러쓴 채 하모니카를 연주하며 부르는 그의 비음 섞인 노래는 ‘이야기조의 블루스’라는 평판을 들었고, 그 해 뉴욕타임스로부터 ‘포크 음악계의 유망주’라는 격찬을 받았다. 그가 활동하던 1960년대의 미국은 저항과 반전운동이라는 역사상 가장 뜨거운...
에밀 자토펙 헬싱키올림픽 장거리 육상 3관왕… 올림픽 역사상 최초
에밀 자토펙의 달리기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이 연출된 것은 1952년의 헬싱키 올림픽 때였다. 자토펙은 주종목인 1만m와 5000m에서 이미 2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으나 내친김에 7월 27일의 마라톤에까지 도전했다. 마라톤은 처음이었으나 마라톤에서조차 1위에 골인함으로써 자토펙은 장거리 경기에서 3개의 금메달을 따낸 올림픽 역사상 최초의 선수가 됐다. 이 기록은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는 난공불락의 대기록으로 남아있다. 5000m에서 우승한 날, 생년월일이 같은 그의 아내도...
종교개혁가 얀 후스 화형… 불붙은 장작더미 위에서 찬송 부르며 죽어
마틴 루터가 독일 비텐베르크 교회 정문에 ‘면죄부에 관한 95개조 논제’를 붙이기 102년 전, 체코 보헤미아 땅에서 종교개혁의 불을 지피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어간 이가 있었다. 루터가 자신을 “그의 후예”라고 칭했던 얀 후스(Jan Hus)였다. 후스는 교황의 세속적인 통치를 반대해온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 존 위클리프의 영향을 받아 종교개혁의 길로 뛰어들었다. 위클리프는 교황의 무오류를 지적하고 성직자의 축재를 비판하는 글을 써 종교개혁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필리핀, 425년간에 걸친 스페인·미국의 식민지 지배 벗어나 독립
필리핀이 425년간에 걸친 스페인·미국의 식민지 지배를 벗어나 1946년에 비로소 독립했다. 새로운 헌법이 발표되고 마누엘 록사스를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한 뒤 수십년간 자신들을 지배해 온 미국의 독립기념일과 같은 날인 7월 4일, 독립기념식을 거행했다. 비가 오는 가운데 진행된 독립기념식에서 록사스 대통령이 수십만 군중을 향해 ‘필리핀공화국 독립’을 선언함과 동시에 식장에 게양된 성조기가 내려지고 그 자리에 필리핀공화국기인 ‘태양과 별의 기’가 국가가 연주되는 가운데...
라벤트리 베리야 체포…흐루시초프 시대 개막
1953년 3월 5일, ‘공포정치의 화신’인 스탈린이 한 마디 유언도 없이 세상을 떠났다. 뒤를 이을 후보군으로 몇몇이 거론됐으나 말렌코프가 가장 유력해 보였다. 스탈린이 죽기 직전까지 2~3년 동안 당과 국가의 공식적인 제2인자였던 데다 국가보안부(KGB의 전신)의 책임자로 공포정치를 집행했던 라벤트리 베리야와도 밀접한 관계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스탈린 사후 소연방 각료회의 의장 겸 수상으로 선출돼 누구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철의 장막’ 밖에서의 예측과 달리...
계엄사령부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발표
1980년 7월 4일 국군 계엄사령부가 김대중씨를 포함 37명을 내란음모·국가보안법·반공법·외환관리법·계엄포고령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 송치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계엄사는 “김대중과 추종분자들이 소위 국민연합을 전위세력으로 하여 복학생을 행동대원으로 포섭, 학원 소요사태를 폭력화하고 민중봉기를 꾀함으로써 유혈 혁명사태를 유발, 현정부를 타도한 후 김대중을 수반으로 하는 과도정권을 수립하려고 했다”고 말하면서 그 증거로 “전남대 복학생 정동년에게 500만 원을 주어 계엄해제와...
중국 당 정치국 확대회의 ‘여산(廬山)회의’ 개막… 국방부장 팽덕회 실각
1956년 2월 흐루시초프가 스탈린을 격하하는 발언을 하자 모택동은 중국 공산당과 모택동 자신의 신뢰성이 뿌리채 뒤흔들 것을 우려했다. 모택동은 흐루시초프에 심한 분노를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급변하는 시대 상황을 마냥 거부할 수도 없었다. 1956년 4월 일어난 예술과 지식발전을 위한 일종의 개방운동인 백가제방(百花齊放), 백가쟁명(百家爭鳴)도 그 연장선에 있었다. 9월의 제8차 중국 공산당 전당대회는 당규약에 명시된 ‘모택동 사상을 당의 최고 방침으로 한다’ ‘모택동 사상을...
페르디난트 폰 제펠린 제작 ‘경식 비행선’ 첫 비행
1900년 7월 2일 저녁 8시경, “로스!(Let’s go)”라는 명령과 함께 128m 크기의 거대 비행선 한 대가 서서히 하늘로 솟아올랐다. 독일의 페르디난트 폰 제펠린 백작이 제작해 처음 하늘에 띠운 ‘LZ1호’라는 경식(硬式) 비행선이었다. 기구의 몸통 전체를 구조물로 지지하는 경식 비행선은 아무런 구조물 없이 기체의 압력으로만 동체의 형태를 유지하는 연식보다는 더 발전된 형태의 비행선이다. 비행은 30m 지점까지 솟구쳤다가 20분 만에 끝이 났으나 경식 비행선의...
일본 자위대 발족
2차대전 패배로 무장을 해제당한 일본이 재무장을 하게된 계기는 공교롭게도 6·25전쟁이었다. 일본에 주둔 중이던 미 7개 사단 8만 병력 대부분이 6·25전쟁에 긴급 투입돼 일본 전역이 치안공백과 안보 무방비 상태에 놓이게 되자 1950년 7월 8일 맥아더가 일본 총리 요시다 시게루에게 ‘일본 경찰력 증강에 관한 서한’을 보낸 것이 시작이었다. 7만5000명의 경찰예비대를 신설하고 8000명의 해상보안청 요원을 증강하라는 내용이었다. 이를 근거로 일본은 8월 10일...
콩고 독립 선포와 내전
2차 대전 후 아시아를 진원지로 한 식민지 해방의 바람이 아프리카 북부를 거쳐 사하라 사막 남쪽으로 불었다. 한 해 동안 무려 17개국이나 독립해 ‘아프리카의 해’라고 불렸던 1960년은 그 절정이었다. 벨기에의 식민지였던 콩고(콩고민주공화국)에도 독립의 바람이 불었다. 그러나 질서 있게 독립을 이룬 다른 아프리카 국가와 달리 폭동, 유혈, 내란 등으로 얼룩져 통일된 독립국가를 이루기까지 5년여의 시간이 걸렸다. 독립을 전후로, 콩고에서는 강력한 중앙정부를 지향하는 민족주의자...
밥 딜런,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서 공연… ‘포크 록’의 탄생
‘노래하는 시인’ 밥 딜런은 스무 살 되던 1961년에 기타 하나만을 들고 무작정 뉴욕으로 가 클럽에서 노래를 불렀다. 어려서부터 시를 써온 그의 노랫말은 그 자체가 시였고, 그는 시를 노래한 최초의 가수였다. 헐렁한 가죽 모자를 눌러쓴 채 하모니카를 연주하며 부르는 그의 비음 섞인 노래는 ‘이야기조의 블루스’라는 평판을 들었고, 그 해 뉴욕타임스로부터 ‘포크 음악계의 유망주’라는 격찬을 받았다. 그가 활동하던 1960년대의 미국은 저항과 반전운동이라는 역사상 가장 뜨거운...
에밀 자토펙 헬싱키올림픽 장거리 육상 3관왕… 올림픽 역사상 최초
에밀 자토펙의 달리기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이 연출된 것은 1952년의 헬싱키 올림픽 때였다. 자토펙은 주종목인 1만m와 5000m에서 이미 2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으나 내친김에 7월 27일의 마라톤에까지 도전했다. 마라톤은 처음이었으나 마라톤에서조차 1위에 골인함으로써 자토펙은 장거리 경기에서 3개의 금메달을 따낸 올림픽 역사상 최초의 선수가 됐다. 이 기록은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는 난공불락의 대기록으로 남아있다. 5000m에서 우승한 날, 생년월일이 같은 그의 아내도...
종교개혁가 얀 후스 화형… 불붙은 장작더미 위에서 찬송 부르며 죽어
마틴 루터가 독일 비텐베르크 교회 정문에 ‘면죄부에 관한 95개조 논제’를 붙이기 102년 전, 체코 보헤미아 땅에서 종교개혁의 불을 지피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어간 이가 있었다. 루터가 자신을 “그의 후예”라고 칭했던 얀 후스(Jan Hus)였다. 후스는 교황의 세속적인 통치를 반대해온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 존 위클리프의 영향을 받아 종교개혁의 길로 뛰어들었다. 위클리프는 교황의 무오류를 지적하고 성직자의 축재를 비판하는 글을 써 종교개혁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필리핀, 425년간에 걸친 스페인·미국의 식민지 지배 벗어나 독립
필리핀이 425년간에 걸친 스페인·미국의 식민지 지배를 벗어나 1946년에 비로소 독립했다. 새로운 헌법이 발표되고 마누엘 록사스를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한 뒤 수십년간 자신들을 지배해 온 미국의 독립기념일과 같은 날인 7월 4일, 독립기념식을 거행했다. 비가 오는 가운데 진행된 독립기념식에서 록사스 대통령이 수십만 군중을 향해 ‘필리핀공화국 독립’을 선언함과 동시에 식장에 게양된 성조기가 내려지고 그 자리에 필리핀공화국기인 ‘태양과 별의 기’가 국가가 연주되는 가운데...
라벤트리 베리야 체포…흐루시초프 시대 개막
1953년 3월 5일, ‘공포정치의 화신’인 스탈린이 한 마디 유언도 없이 세상을 떠났다. 뒤를 이을 후보군으로 몇몇이 거론됐으나 말렌코프가 가장 유력해 보였다. 스탈린이 죽기 직전까지 2~3년 동안 당과 국가의 공식적인 제2인자였던 데다 국가보안부(KGB의 전신)의 책임자로 공포정치를 집행했던 라벤트리 베리야와도 밀접한 관계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스탈린 사후 소연방 각료회의 의장 겸 수상으로 선출돼 누구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철의 장막’ 밖에서의 예측과 달리...
계엄사령부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발표
1980년 7월 4일 국군 계엄사령부가 김대중씨를 포함 37명을 내란음모·국가보안법·반공법·외환관리법·계엄포고령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 송치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계엄사는 “김대중과 추종분자들이 소위 국민연합을 전위세력으로 하여 복학생을 행동대원으로 포섭, 학원 소요사태를 폭력화하고 민중봉기를 꾀함으로써 유혈 혁명사태를 유발, 현정부를 타도한 후 김대중을 수반으로 하는 과도정권을 수립하려고 했다”고 말하면서 그 증거로 “전남대 복학생 정동년에게 500만 원을 주어 계엄해제와...
중국 당 정치국 확대회의 ‘여산(廬山)회의’ 개막… 국방부장 팽덕회 실각
1956년 2월 흐루시초프가 스탈린을 격하하는 발언을 하자 모택동은 중국 공산당과 모택동 자신의 신뢰성이 뿌리채 뒤흔들 것을 우려했다. 모택동은 흐루시초프에 심한 분노를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급변하는 시대 상황을 마냥 거부할 수도 없었다. 1956년 4월 일어난 예술과 지식발전을 위한 일종의 개방운동인 백가제방(百花齊放), 백가쟁명(百家爭鳴)도 그 연장선에 있었다. 9월의 제8차 중국 공산당 전당대회는 당규약에 명시된 ‘모택동 사상을 당의 최고 방침으로 한다’ ‘모택동 사상을...
페르디난트 폰 제펠린 제작 ‘경식 비행선’ 첫 비행
1900년 7월 2일 저녁 8시경, “로스!(Let’s go)”라는 명령과 함께 128m 크기의 거대 비행선 한 대가 서서히 하늘로 솟아올랐다. 독일의 페르디난트 폰 제펠린 백작이 제작해 처음 하늘에 띠운 ‘LZ1호’라는 경식(硬式) 비행선이었다. 기구의 몸통 전체를 구조물로 지지하는 경식 비행선은 아무런 구조물 없이 기체의 압력으로만 동체의 형태를 유지하는 연식보다는 더 발전된 형태의 비행선이다. 비행은 30m 지점까지 솟구쳤다가 20분 만에 끝이 났으나 경식 비행선의...
일본 자위대 발족
2차대전 패배로 무장을 해제당한 일본이 재무장을 하게된 계기는 공교롭게도 6·25전쟁이었다. 일본에 주둔 중이던 미 7개 사단 8만 병력 대부분이 6·25전쟁에 긴급 투입돼 일본 전역이 치안공백과 안보 무방비 상태에 놓이게 되자 1950년 7월 8일 맥아더가 일본 총리 요시다 시게루에게 ‘일본 경찰력 증강에 관한 서한’을 보낸 것이 시작이었다. 7만5000명의 경찰예비대를 신설하고 8000명의 해상보안청 요원을 증강하라는 내용이었다. 이를 근거로 일본은 8월 10일...
콩고 독립 선포와 내전
2차 대전 후 아시아를 진원지로 한 식민지 해방의 바람이 아프리카 북부를 거쳐 사하라 사막 남쪽으로 불었다. 한 해 동안 무려 17개국이나 독립해 ‘아프리카의 해’라고 불렸던 1960년은 그 절정이었다. 벨기에의 식민지였던 콩고(콩고민주공화국)에도 독립의 바람이 불었다. 그러나 질서 있게 독립을 이룬 다른 아프리카 국가와 달리 폭동, 유혈, 내란 등으로 얼룩져 통일된 독립국가를 이루기까지 5년여의 시간이 걸렸다. 독립을 전후로, 콩고에서는 강력한 중앙정부를 지향하는 민족주의자...
밥 딜런,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서 공연… ‘포크 록’의 탄생
‘노래하는 시인’ 밥 딜런은 스무 살 되던 1961년에 기타 하나만을 들고 무작정 뉴욕으로 가 클럽에서 노래를 불렀다. 어려서부터 시를 써온 그의 노랫말은 그 자체가 시였고, 그는 시를 노래한 최초의 가수였다. 헐렁한 가죽 모자를 눌러쓴 채 하모니카를 연주하며 부르는 그의 비음 섞인 노래는 ‘이야기조의 블루스’라는 평판을 들었고, 그 해 뉴욕타임스로부터 ‘포크 음악계의 유망주’라는 격찬을 받았다. 그가 활동하던 1960년대의 미국은 저항과 반전운동이라는 역사상 가장 뜨거운...
에밀 자토펙 헬싱키올림픽 장거리 육상 3관왕… 올림픽 역사상 최초
에밀 자토펙의 달리기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이 연출된 것은 1952년의 헬싱키 올림픽 때였다. 자토펙은 주종목인 1만m와 5000m에서 이미 2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으나 내친김에 7월 27일의 마라톤에까지 도전했다. 마라톤은 처음이었으나 마라톤에서조차 1위에 골인함으로써 자토펙은 장거리 경기에서 3개의 금메달을 따낸 올림픽 역사상 최초의 선수가 됐다. 이 기록은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는 난공불락의 대기록으로 남아있다. 5000m에서 우승한 날, 생년월일이 같은 그의 아내도...
종교개혁가 얀 후스 화형… 불붙은 장작더미 위에서 찬송 부르며 죽어
마틴 루터가 독일 비텐베르크 교회 정문에 ‘면죄부에 관한 95개조 논제’를 붙이기 102년 전, 체코 보헤미아 땅에서 종교개혁의 불을 지피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어간 이가 있었다. 루터가 자신을 “그의 후예”라고 칭했던 얀 후스(Jan Hus)였다. 후스는 교황의 세속적인 통치를 반대해온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 존 위클리프의 영향을 받아 종교개혁의 길로 뛰어들었다. 위클리프는 교황의 무오류를 지적하고 성직자의 축재를 비판하는 글을 써 종교개혁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필리핀, 425년간에 걸친 스페인·미국의 식민지 지배 벗어나 독립
필리핀이 425년간에 걸친 스페인·미국의 식민지 지배를 벗어나 1946년에 비로소 독립했다. 새로운 헌법이 발표되고 마누엘 록사스를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한 뒤 수십년간 자신들을 지배해 온 미국의 독립기념일과 같은 날인 7월 4일, 독립기념식을 거행했다. 비가 오는 가운데 진행된 독립기념식에서 록사스 대통령이 수십만 군중을 향해 ‘필리핀공화국 독립’을 선언함과 동시에 식장에 게양된 성조기가 내려지고 그 자리에 필리핀공화국기인 ‘태양과 별의 기’가 국가가 연주되는 가운데...
라벤트리 베리야 체포…흐루시초프 시대 개막
1953년 3월 5일, ‘공포정치의 화신’인 스탈린이 한 마디 유언도 없이 세상을 떠났다. 뒤를 이을 후보군으로 몇몇이 거론됐으나 말렌코프가 가장 유력해 보였다. 스탈린이 죽기 직전까지 2~3년 동안 당과 국가의 공식적인 제2인자였던 데다 국가보안부(KGB의 전신)의 책임자로 공포정치를 집행했던 라벤트리 베리야와도 밀접한 관계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스탈린 사후 소연방 각료회의 의장 겸 수상으로 선출돼 누구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철의 장막’ 밖에서의 예측과 달리...
계엄사령부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발표
1980년 7월 4일 국군 계엄사령부가 김대중씨를 포함 37명을 내란음모·국가보안법·반공법·외환관리법·계엄포고령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 송치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계엄사는 “김대중과 추종분자들이 소위 국민연합을 전위세력으로 하여 복학생을 행동대원으로 포섭, 학원 소요사태를 폭력화하고 민중봉기를 꾀함으로써 유혈 혁명사태를 유발, 현정부를 타도한 후 김대중을 수반으로 하는 과도정권을 수립하려고 했다”고 말하면서 그 증거로 “전남대 복학생 정동년에게 500만 원을 주어 계엄해제와...
중국 당 정치국 확대회의 ‘여산(廬山)회의’ 개막… 국방부장 팽덕회 실각
1956년 2월 흐루시초프가 스탈린을 격하하는 발언을 하자 모택동은 중국 공산당과 모택동 자신의 신뢰성이 뿌리채 뒤흔들 것을 우려했다. 모택동은 흐루시초프에 심한 분노를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급변하는 시대 상황을 마냥 거부할 수도 없었다. 1956년 4월 일어난 예술과 지식발전을 위한 일종의 개방운동인 백가제방(百花齊放), 백가쟁명(百家爭鳴)도 그 연장선에 있었다. 9월의 제8차 중국 공산당 전당대회는 당규약에 명시된 ‘모택동 사상을 당의 최고 방침으로 한다’ ‘모택동 사상을...
페르디난트 폰 제펠린 제작 ‘경식 비행선’ 첫 비행
1900년 7월 2일 저녁 8시경, “로스!(Let’s go)”라는 명령과 함께 128m 크기의 거대 비행선 한 대가 서서히 하늘로 솟아올랐다. 독일의 페르디난트 폰 제펠린 백작이 제작해 처음 하늘에 띠운 ‘LZ1호’라는 경식(硬式) 비행선이었다. 기구의 몸통 전체를 구조물로 지지하는 경식 비행선은 아무런 구조물 없이 기체의 압력으로만 동체의 형태를 유지하는 연식보다는 더 발전된 형태의 비행선이다. 비행은 30m 지점까지 솟구쳤다가 20분 만에 끝이 났으나 경식 비행선의...
일본 자위대 발족
2차대전 패배로 무장을 해제당한 일본이 재무장을 하게된 계기는 공교롭게도 6·25전쟁이었다. 일본에 주둔 중이던 미 7개 사단 8만 병력 대부분이 6·25전쟁에 긴급 투입돼 일본 전역이 치안공백과 안보 무방비 상태에 놓이게 되자 1950년 7월 8일 맥아더가 일본 총리 요시다 시게루에게 ‘일본 경찰력 증강에 관한 서한’을 보낸 것이 시작이었다. 7만5000명의 경찰예비대를 신설하고 8000명의 해상보안청 요원을 증강하라는 내용이었다. 이를 근거로 일본은 8월 10일...
콩고 독립 선포와 내전
2차 대전 후 아시아를 진원지로 한 식민지 해방의 바람이 아프리카 북부를 거쳐 사하라 사막 남쪽으로 불었다. 한 해 동안 무려 17개국이나 독립해 ‘아프리카의 해’라고 불렸던 1960년은 그 절정이었다. 벨기에의 식민지였던 콩고(콩고민주공화국)에도 독립의 바람이 불었다. 그러나 질서 있게 독립을 이룬 다른 아프리카 국가와 달리 폭동, 유혈, 내란 등으로 얼룩져 통일된 독립국가를 이루기까지 5년여의 시간이 걸렸다. 독립을 전후로, 콩고에서는 강력한 중앙정부를 지향하는 민족주의자...
밥 딜런,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서 공연… ‘포크 록’의 탄생
‘노래하는 시인’ 밥 딜런은 스무 살 되던 1961년에 기타 하나만을 들고 무작정 뉴욕으로 가 클럽에서 노래를 불렀다. 어려서부터 시를 써온 그의 노랫말은 그 자체가 시였고, 그는 시를 노래한 최초의 가수였다. 헐렁한 가죽 모자를 눌러쓴 채 하모니카를 연주하며 부르는 그의 비음 섞인 노래는 ‘이야기조의 블루스’라는 평판을 들었고, 그 해 뉴욕타임스로부터 ‘포크 음악계의 유망주’라는 격찬을 받았다. 그가 활동하던 1960년대의 미국은 저항과 반전운동이라는 역사상 가장 뜨거운...
에밀 자토펙 헬싱키올림픽 장거리 육상 3관왕… 올림픽 역사상 최초
에밀 자토펙의 달리기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이 연출된 것은 1952년의 헬싱키 올림픽 때였다. 자토펙은 주종목인 1만m와 5000m에서 이미 2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으나 내친김에 7월 27일의 마라톤에까지 도전했다. 마라톤은 처음이었으나 마라톤에서조차 1위에 골인함으로써 자토펙은 장거리 경기에서 3개의 금메달을 따낸 올림픽 역사상 최초의 선수가 됐다. 이 기록은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는 난공불락의 대기록으로 남아있다. 5000m에서 우승한 날, 생년월일이 같은 그의 아내도...
종교개혁가 얀 후스 화형… 불붙은 장작더미 위에서 찬송 부르며 죽어
마틴 루터가 독일 비텐베르크 교회 정문에 ‘면죄부에 관한 95개조 논제’를 붙이기 102년 전, 체코 보헤미아 땅에서 종교개혁의 불을 지피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어간 이가 있었다. 루터가 자신을 “그의 후예”라고 칭했던 얀 후스(Jan Hus)였다. 후스는 교황의 세속적인 통치를 반대해온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 존 위클리프의 영향을 받아 종교개혁의 길로 뛰어들었다. 위클리프는 교황의 무오류를 지적하고 성직자의 축재를 비판하는 글을 써 종교개혁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필리핀, 425년간에 걸친 스페인·미국의 식민지 지배 벗어나 독립
필리핀이 425년간에 걸친 스페인·미국의 식민지 지배를 벗어나 1946년에 비로소 독립했다. 새로운 헌법이 발표되고 마누엘 록사스를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한 뒤 수십년간 자신들을 지배해 온 미국의 독립기념일과 같은 날인 7월 4일, 독립기념식을 거행했다. 비가 오는 가운데 진행된 독립기념식에서 록사스 대통령이 수십만 군중을 향해 ‘필리핀공화국 독립’을 선언함과 동시에 식장에 게양된 성조기가 내려지고 그 자리에 필리핀공화국기인 ‘태양과 별의 기’가 국가가 연주되는 가운데...
라벤트리 베리야 체포…흐루시초프 시대 개막
1953년 3월 5일, ‘공포정치의 화신’인 스탈린이 한 마디 유언도 없이 세상을 떠났다. 뒤를 이을 후보군으로 몇몇이 거론됐으나 말렌코프가 가장 유력해 보였다. 스탈린이 죽기 직전까지 2~3년 동안 당과 국가의 공식적인 제2인자였던 데다 국가보안부(KGB의 전신)의 책임자로 공포정치를 집행했던 라벤트리 베리야와도 밀접한 관계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스탈린 사후 소연방 각료회의 의장 겸 수상으로 선출돼 누구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철의 장막’ 밖에서의 예측과 달리...
계엄사령부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발표
1980년 7월 4일 국군 계엄사령부가 김대중씨를 포함 37명을 내란음모·국가보안법·반공법·외환관리법·계엄포고령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 송치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계엄사는 “김대중과 추종분자들이 소위 국민연합을 전위세력으로 하여 복학생을 행동대원으로 포섭, 학원 소요사태를 폭력화하고 민중봉기를 꾀함으로써 유혈 혁명사태를 유발, 현정부를 타도한 후 김대중을 수반으로 하는 과도정권을 수립하려고 했다”고 말하면서 그 증거로 “전남대 복학생 정동년에게 500만 원을 주어 계엄해제와...
중국 당 정치국 확대회의 ‘여산(廬山)회의’ 개막… 국방부장 팽덕회 실각
1956년 2월 흐루시초프가 스탈린을 격하하는 발언을 하자 모택동은 중국 공산당과 모택동 자신의 신뢰성이 뿌리채 뒤흔들 것을 우려했다. 모택동은 흐루시초프에 심한 분노를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급변하는 시대 상황을 마냥 거부할 수도 없었다. 1956년 4월 일어난 예술과 지식발전을 위한 일종의 개방운동인 백가제방(百花齊放), 백가쟁명(百家爭鳴)도 그 연장선에 있었다. 9월의 제8차 중국 공산당 전당대회는 당규약에 명시된 ‘모택동 사상을 당의 최고 방침으로 한다’ ‘모택동 사상을...
페르디난트 폰 제펠린 제작 ‘경식 비행선’ 첫 비행
1900년 7월 2일 저녁 8시경, “로스!(Let’s go)”라는 명령과 함께 128m 크기의 거대 비행선 한 대가 서서히 하늘로 솟아올랐다. 독일의 페르디난트 폰 제펠린 백작이 제작해 처음 하늘에 띠운 ‘LZ1호’라는 경식(硬式) 비행선이었다. 기구의 몸통 전체를 구조물로 지지하는 경식 비행선은 아무런 구조물 없이 기체의 압력으로만 동체의 형태를 유지하는 연식보다는 더 발전된 형태의 비행선이다. 비행은 30m 지점까지 솟구쳤다가 20분 만에 끝이 났으나 경식 비행선의...
일본 자위대 발족
2차대전 패배로 무장을 해제당한 일본이 재무장을 하게된 계기는 공교롭게도 6·25전쟁이었다. 일본에 주둔 중이던 미 7개 사단 8만 병력 대부분이 6·25전쟁에 긴급 투입돼 일본 전역이 치안공백과 안보 무방비 상태에 놓이게 되자 1950년 7월 8일 맥아더가 일본 총리 요시다 시게루에게 ‘일본 경찰력 증강에 관한 서한’을 보낸 것이 시작이었다. 7만5000명의 경찰예비대를 신설하고 8000명의 해상보안청 요원을 증강하라는 내용이었다. 이를 근거로 일본은 8월 10일...
콩고 독립 선포와 내전
2차 대전 후 아시아를 진원지로 한 식민지 해방의 바람이 아프리카 북부를 거쳐 사하라 사막 남쪽으로 불었다. 한 해 동안 무려 17개국이나 독립해 ‘아프리카의 해’라고 불렸던 1960년은 그 절정이었다. 벨기에의 식민지였던 콩고(콩고민주공화국)에도 독립의 바람이 불었다. 그러나 질서 있게 독립을 이룬 다른 아프리카 국가와 달리 폭동, 유혈, 내란 등으로 얼룩져 통일된 독립국가를 이루기까지 5년여의 시간이 걸렸다. 독립을 전후로, 콩고에서는 강력한 중앙정부를 지향하는 민족주의자...
밥 딜런,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서 공연… ‘포크 록’의 탄생
‘노래하는 시인’ 밥 딜런은 스무 살 되던 1961년에 기타 하나만을 들고 무작정 뉴욕으로 가 클럽에서 노래를 불렀다. 어려서부터 시를 써온 그의 노랫말은 그 자체가 시였고, 그는 시를 노래한 최초의 가수였다. 헐렁한 가죽 모자를 눌러쓴 채 하모니카를 연주하며 부르는 그의 비음 섞인 노래는 ‘이야기조의 블루스’라는 평판을 들었고, 그 해 뉴욕타임스로부터 ‘포크 음악계의 유망주’라는 격찬을 받았다. 그가 활동하던 1960년대의 미국은 저항과 반전운동이라는 역사상 가장 뜨거운...
에밀 자토펙 헬싱키올림픽 장거리 육상 3관왕… 올림픽 역사상 최초
에밀 자토펙의 달리기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이 연출된 것은 1952년의 헬싱키 올림픽 때였다. 자토펙은 주종목인 1만m와 5000m에서 이미 2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으나 내친김에 7월 27일의 마라톤에까지 도전했다. 마라톤은 처음이었으나 마라톤에서조차 1위에 골인함으로써 자토펙은 장거리 경기에서 3개의 금메달을 따낸 올림픽 역사상 최초의 선수가 됐다. 이 기록은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는 난공불락의 대기록으로 남아있다. 5000m에서 우승한 날, 생년월일이 같은 그의 아내도...
종교개혁가 얀 후스 화형… 불붙은 장작더미 위에서 찬송 부르며 죽어
마틴 루터가 독일 비텐베르크 교회 정문에 ‘면죄부에 관한 95개조 논제’를 붙이기 102년 전, 체코 보헤미아 땅에서 종교개혁의 불을 지피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어간 이가 있었다. 루터가 자신을 “그의 후예”라고 칭했던 얀 후스(Jan Hus)였다. 후스는 교황의 세속적인 통치를 반대해온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 존 위클리프의 영향을 받아 종교개혁의 길로 뛰어들었다. 위클리프는 교황의 무오류를 지적하고 성직자의 축재를 비판하는 글을 써 종교개혁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필리핀, 425년간에 걸친 스페인·미국의 식민지 지배 벗어나 독립
필리핀이 425년간에 걸친 스페인·미국의 식민지 지배를 벗어나 1946년에 비로소 독립했다. 새로운 헌법이 발표되고 마누엘 록사스를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한 뒤 수십년간 자신들을 지배해 온 미국의 독립기념일과 같은 날인 7월 4일, 독립기념식을 거행했다. 비가 오는 가운데 진행된 독립기념식에서 록사스 대통령이 수십만 군중을 향해 ‘필리핀공화국 독립’을 선언함과 동시에 식장에 게양된 성조기가 내려지고 그 자리에 필리핀공화국기인 ‘태양과 별의 기’가 국가가 연주되는 가운데...
라벤트리 베리야 체포…흐루시초프 시대 개막
1953년 3월 5일, ‘공포정치의 화신’인 스탈린이 한 마디 유언도 없이 세상을 떠났다. 뒤를 이을 후보군으로 몇몇이 거론됐으나 말렌코프가 가장 유력해 보였다. 스탈린이 죽기 직전까지 2~3년 동안 당과 국가의 공식적인 제2인자였던 데다 국가보안부(KGB의 전신)의 책임자로 공포정치를 집행했던 라벤트리 베리야와도 밀접한 관계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스탈린 사후 소연방 각료회의 의장 겸 수상으로 선출돼 누구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철의 장막’ 밖에서의 예측과 달리...
계엄사령부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발표
1980년 7월 4일 국군 계엄사령부가 김대중씨를 포함 37명을 내란음모·국가보안법·반공법·외환관리법·계엄포고령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 송치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계엄사는 “김대중과 추종분자들이 소위 국민연합을 전위세력으로 하여 복학생을 행동대원으로 포섭, 학원 소요사태를 폭력화하고 민중봉기를 꾀함으로써 유혈 혁명사태를 유발, 현정부를 타도한 후 김대중을 수반으로 하는 과도정권을 수립하려고 했다”고 말하면서 그 증거로 “전남대 복학생 정동년에게 500만 원을 주어 계엄해제와...
중국 당 정치국 확대회의 ‘여산(廬山)회의’ 개막… 국방부장 팽덕회 실각
1956년 2월 흐루시초프가 스탈린을 격하하는 발언을 하자 모택동은 중국 공산당과 모택동 자신의 신뢰성이 뿌리채 뒤흔들 것을 우려했다. 모택동은 흐루시초프에 심한 분노를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급변하는 시대 상황을 마냥 거부할 수도 없었다. 1956년 4월 일어난 예술과 지식발전을 위한 일종의 개방운동인 백가제방(百花齊放), 백가쟁명(百家爭鳴)도 그 연장선에 있었다. 9월의 제8차 중국 공산당 전당대회는 당규약에 명시된 ‘모택동 사상을 당의 최고 방침으로 한다’ ‘모택동 사상을...
페르디난트 폰 제펠린 제작 ‘경식 비행선’ 첫 비행
1900년 7월 2일 저녁 8시경, “로스!(Let’s go)”라는 명령과 함께 128m 크기의 거대 비행선 한 대가 서서히 하늘로 솟아올랐다. 독일의 페르디난트 폰 제펠린 백작이 제작해 처음 하늘에 띠운 ‘LZ1호’라는 경식(硬式) 비행선이었다. 기구의 몸통 전체를 구조물로 지지하는 경식 비행선은 아무런 구조물 없이 기체의 압력으로만 동체의 형태를 유지하는 연식보다는 더 발전된 형태의 비행선이다. 비행은 30m 지점까지 솟구쳤다가 20분 만에 끝이 났으나 경식 비행선의...
일본 자위대 발족
2차대전 패배로 무장을 해제당한 일본이 재무장을 하게된 계기는 공교롭게도 6·25전쟁이었다. 일본에 주둔 중이던 미 7개 사단 8만 병력 대부분이 6·25전쟁에 긴급 투입돼 일본 전역이 치안공백과 안보 무방비 상태에 놓이게 되자 1950년 7월 8일 맥아더가 일본 총리 요시다 시게루에게 ‘일본 경찰력 증강에 관한 서한’을 보낸 것이 시작이었다. 7만5000명의 경찰예비대를 신설하고 8000명의 해상보안청 요원을 증강하라는 내용이었다. 이를 근거로 일본은 8월 10일...
콩고 독립 선포와 내전
2차 대전 후 아시아를 진원지로 한 식민지 해방의 바람이 아프리카 북부를 거쳐 사하라 사막 남쪽으로 불었다. 한 해 동안 무려 17개국이나 독립해 ‘아프리카의 해’라고 불렸던 1960년은 그 절정이었다. 벨기에의 식민지였던 콩고(콩고민주공화국)에도 독립의 바람이 불었다. 그러나 질서 있게 독립을 이룬 다른 아프리카 국가와 달리 폭동, 유혈, 내란 등으로 얼룩져 통일된 독립국가를 이루기까지 5년여의 시간이 걸렸다. 독립을 전후로, 콩고에서는 강력한 중앙정부를 지향하는 민족주의자...
밥 딜런,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서 공연… ‘포크 록’의 탄생
‘노래하는 시인’ 밥 딜런은 스무 살 되던 1961년에 기타 하나만을 들고 무작정 뉴욕으로 가 클럽에서 노래를 불렀다. 어려서부터 시를 써온 그의 노랫말은 그 자체가 시였고, 그는 시를 노래한 최초의 가수였다. 헐렁한 가죽 모자를 눌러쓴 채 하모니카를 연주하며 부르는 그의 비음 섞인 노래는 ‘이야기조의 블루스’라는 평판을 들었고, 그 해 뉴욕타임스로부터 ‘포크 음악계의 유망주’라는 격찬을 받았다. 그가 활동하던 1960년대의 미국은 저항과 반전운동이라는 역사상 가장 뜨거운...
에밀 자토펙 헬싱키올림픽 장거리 육상 3관왕… 올림픽 역사상 최초
에밀 자토펙의 달리기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이 연출된 것은 1952년의 헬싱키 올림픽 때였다. 자토펙은 주종목인 1만m와 5000m에서 이미 2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으나 내친김에 7월 27일의 마라톤에까지 도전했다. 마라톤은 처음이었으나 마라톤에서조차 1위에 골인함으로써 자토펙은 장거리 경기에서 3개의 금메달을 따낸 올림픽 역사상 최초의 선수가 됐다. 이 기록은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는 난공불락의 대기록으로 남아있다. 5000m에서 우승한 날, 생년월일이 같은 그의 아내도...
종교개혁가 얀 후스 화형… 불붙은 장작더미 위에서 찬송 부르며 죽어
마틴 루터가 독일 비텐베르크 교회 정문에 ‘면죄부에 관한 95개조 논제’를 붙이기 102년 전, 체코 보헤미아 땅에서 종교개혁의 불을 지피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어간 이가 있었다. 루터가 자신을 “그의 후예”라고 칭했던 얀 후스(Jan Hus)였다. 후스는 교황의 세속적인 통치를 반대해온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 존 위클리프의 영향을 받아 종교개혁의 길로 뛰어들었다. 위클리프는 교황의 무오류를 지적하고 성직자의 축재를 비판하는 글을 써 종교개혁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필리핀, 425년간에 걸친 스페인·미국의 식민지 지배 벗어나 독립
필리핀이 425년간에 걸친 스페인·미국의 식민지 지배를 벗어나 1946년에 비로소 독립했다. 새로운 헌법이 발표되고 마누엘 록사스를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한 뒤 수십년간 자신들을 지배해 온 미국의 독립기념일과 같은 날인 7월 4일, 독립기념식을 거행했다. 비가 오는 가운데 진행된 독립기념식에서 록사스 대통령이 수십만 군중을 향해 ‘필리핀공화국 독립’을 선언함과 동시에 식장에 게양된 성조기가 내려지고 그 자리에 필리핀공화국기인 ‘태양과 별의 기’가 국가가 연주되는 가운데...
라벤트리 베리야 체포…흐루시초프 시대 개막
1953년 3월 5일, ‘공포정치의 화신’인 스탈린이 한 마디 유언도 없이 세상을 떠났다. 뒤를 이을 후보군으로 몇몇이 거론됐으나 말렌코프가 가장 유력해 보였다. 스탈린이 죽기 직전까지 2~3년 동안 당과 국가의 공식적인 제2인자였던 데다 국가보안부(KGB의 전신)의 책임자로 공포정치를 집행했던 라벤트리 베리야와도 밀접한 관계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스탈린 사후 소연방 각료회의 의장 겸 수상으로 선출돼 누구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철의 장막’ 밖에서의 예측과 달리...
계엄사령부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발표
1980년 7월 4일 국군 계엄사령부가 김대중씨를 포함 37명을 내란음모·국가보안법·반공법·외환관리법·계엄포고령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 송치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계엄사는 “김대중과 추종분자들이 소위 국민연합을 전위세력으로 하여 복학생을 행동대원으로 포섭, 학원 소요사태를 폭력화하고 민중봉기를 꾀함으로써 유혈 혁명사태를 유발, 현정부를 타도한 후 김대중을 수반으로 하는 과도정권을 수립하려고 했다”고 말하면서 그 증거로 “전남대 복학생 정동년에게 500만 원을 주어 계엄해제와...
중국 당 정치국 확대회의 ‘여산(廬山)회의’ 개막… 국방부장 팽덕회 실각
1956년 2월 흐루시초프가 스탈린을 격하하는 발언을 하자 모택동은 중국 공산당과 모택동 자신의 신뢰성이 뿌리채 뒤흔들 것을 우려했다. 모택동은 흐루시초프에 심한 분노를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급변하는 시대 상황을 마냥 거부할 수도 없었다. 1956년 4월 일어난 예술과 지식발전을 위한 일종의 개방운동인 백가제방(百花齊放), 백가쟁명(百家爭鳴)도 그 연장선에 있었다. 9월의 제8차 중국 공산당 전당대회는 당규약에 명시된 ‘모택동 사상을 당의 최고 방침으로 한다’ ‘모택동 사상을...
페르디난트 폰 제펠린 제작 ‘경식 비행선’ 첫 비행
1900년 7월 2일 저녁 8시경, “로스!(Let’s go)”라는 명령과 함께 128m 크기의 거대 비행선 한 대가 서서히 하늘로 솟아올랐다. 독일의 페르디난트 폰 제펠린 백작이 제작해 처음 하늘에 띠운 ‘LZ1호’라는 경식(硬式) 비행선이었다. 기구의 몸통 전체를 구조물로 지지하는 경식 비행선은 아무런 구조물 없이 기체의 압력으로만 동체의 형태를 유지하는 연식보다는 더 발전된 형태의 비행선이다. 비행은 30m 지점까지 솟구쳤다가 20분 만에 끝이 났으나 경식 비행선의...
일본 자위대 발족
2차대전 패배로 무장을 해제당한 일본이 재무장을 하게된 계기는 공교롭게도 6·25전쟁이었다. 일본에 주둔 중이던 미 7개 사단 8만 병력 대부분이 6·25전쟁에 긴급 투입돼 일본 전역이 치안공백과 안보 무방비 상태에 놓이게 되자 1950년 7월 8일 맥아더가 일본 총리 요시다 시게루에게 ‘일본 경찰력 증강에 관한 서한’을 보낸 것이 시작이었다. 7만5000명의 경찰예비대를 신설하고 8000명의 해상보안청 요원을 증강하라는 내용이었다. 이를 근거로 일본은 8월 10일...
콩고 독립 선포와 내전
2차 대전 후 아시아를 진원지로 한 식민지 해방의 바람이 아프리카 북부를 거쳐 사하라 사막 남쪽으로 불었다. 한 해 동안 무려 17개국이나 독립해 ‘아프리카의 해’라고 불렸던 1960년은 그 절정이었다. 벨기에의 식민지였던 콩고(콩고민주공화국)에도 독립의 바람이 불었다. 그러나 질서 있게 독립을 이룬 다른 아프리카 국가와 달리 폭동, 유혈, 내란 등으로 얼룩져 통일된 독립국가를 이루기까지 5년여의 시간이 걸렸다. 독립을 전후로, 콩고에서는 강력한 중앙정부를 지향하는 민족주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