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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7년 : 아이작 뉴턴 ‘프린키피아’ 발간
‘과학의 시작’이면서 ‘근대성의 시작’ 인류는 유사 이래 물체의 존재와 운동에 일정한 법칙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따라서 우주는 신화와 미신의 대상이었다. 이 무질서와 혼돈의 안개를 걷어버리고 물체와 우주의 질서를 규명한 이가 아이작 뉴턴(1642~1727)이었다. 그는 영국에서 유복자로 태어나 어머니가 2년 후 재혼하는 바람에 할머니의 보살핌을 받으며 성장했다. 어린 시절 겪었던 모성 결핍은 그를 은둔으로 내몰았다. 뉴턴은 런던 케임브리지대를 졸업한 1665년...
1897년 : 에밀 뒤르켐 ‘자살론’ 출간
현대사회의 병리 진단한 고전사회학자 에밀 뒤르켐(1858~1917)은 자살, 분업, 종교, 도덕, 교육을 망라하는 방대한 저작을 통해 현대사회의 병리를 진단한 프랑스의 대표적인 고전사회학자다. 프랑스 로렌 지방 에피날의 유명한 유대계 랍비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1879년 파리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해 철학과 역사학을 전공하고 1882년부터 5년간 고교 철학교사로 근무하다 1887년 보르도대 강사를 거쳐 교수가 되었다. 1896년 보르도대가 ‘사회과학’이란 명칭의 강좌를 개설하자...
1864년 : 흥선대원군의 섭정… 쇄국과 수구로
쇄국정책 고수함으로써 내우외환의 위기 심화시켜 흥선대원군(1820~1898)은 긍정과 부정의 양면적 평가를 받고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부정적 이미지가 더 강한 편이다. 그토록 견고했던 외척 세력(안동 김씨)의 힘을 약화시키고 서원 철폐와 세제 개편으로 조선 사회를 쇄신한 개혁정치가의 이미지가 없진 않지만 시대적 흐름을 읽지 못해 개방을 거부하고 쇄국정책을 고집함으로써 조선의 근대화를 늦추고 조선을 망국의 길로 접어들게 한 수구적 이미지가 더 강하기 때문이다. 당시 조선이 당면한...
동양척식주식회사 설립
일제가 중점을 둔 것은 일본 농민의 조선 이주사업 일제는 1904년의 러일전쟁 승리 후 농업회사나 조합 등을 통해 조선의 농업경영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흉계를 꾸몄다. 일본인 지주와 회사는 1905년경부터 토지조사와 토지 매수를 시작해 각종 농장을 설립했다. 이런 추세는 일본의 국가자본이 동양척식주식회사(동척)를 설립한 후 더욱 활발했다. 동척은 일본의 영세 농민을 조선에 이주시킨 뒤 저리의 식산흥업 자금을 제공해 척식 사업을 한다는 명목을 내세웠다. ‘척식’의 사전적 의미가...
오타니 고즈이 중앙아시아 첫 탐험
옛 구법승들의 행적 밝히고 불교 문화재 파괴 현황 파악이 탐사 목적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타클라마칸 사막과 중앙아시아 티베트 지역을 탐험한 대표적인 인물을 꼽으라면 스웨덴의 스벤 헤딘, 영국의 마크 아우렐 스타인, 프랑스의 폴 펠리오, 독일의 폰 르코크, 러시아의 세르게이 올덴부르크 등을 들 수 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인 오타니 고즈이(1876~1948)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오타니는 일본 교토의 유명 불교 사찰인 니시혼간지(西本願寺)의 21대 문주의 아들로 태어나...
1864년 : 고종의 즉위와 44년의 치세
고종의 즉위는 정치적 타협의 산물 고종(1852~1919)은 조선조 역대 군주 가운데 영조(52년)에 이어 두 번째로 긴 44년의 격변기를 온몸으로 부딪히며 살았다. 고종이 1864년 1월(이하 양력) 12살의 어린 나이로 즉위할 무렵 조선조는 외척 세력이 전횡을 일삼는 세도정치 하에서 망국의 길을 치닫고 있었다. 고종의 즉위 역시 세도정치의 갈등과 대결 속에서 이뤄진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었다. 이 때문에 즉위 후 10년간은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의 섭정으로 정치적...
제주도 이재수의 난
선교사들이 사사건건 지방행정에 간섭 조선이 쇄국의 시대를 마감한 기점은 1876년 일본의 강압으로 체결된 ‘강화도 조약’이다. 이후 미국(1882)과 독일(1883)에 이어 프랑스와 ‘선교의 자유’ 조항이 포함된 조불수호통상조약(1886)을 체결함으로써 천주교 박해 시대도 사실상 종지부를 찍었다. 조불수호통상조약 덕분에 오랫동안 박해를 받아온 천주교회는 파격적으로 치외법권과 영사재판권을 보장받았다. 천주교인이라면 설사 조선인이라도 행위가 무엇이든 조선 정부의 통제를 받지...
한일합방조약 강제 조인
우리 민족이 36년간 겪어야 할 시련의 전주곡 조선을 병탄하려는 일제의 시나리오는 치밀하고도 주도면밀했다. 일제가 먼저 착수한 것은 대한제국 주변의 외교적 울타리를 모두 걷어내 조선을 국제 미아로 만드는 일이었다. 조선을 병탄할 때 혹시라도 있을 열강의 간섭을 차단하기 위한 사전 포석이었다. 이를 위해 일제는 1894년 청일전쟁을 일으켜 청국에 굴욕적인 패배를 안겨주고 1904년 러일전쟁을 도발해 러시아마저 무릎을 꿇게 했다. 미국과는 가쓰라·태프트 밀약(1905.7),...
조선총독부 설치와 역대 조선 총독
☞ 전문(全文)을 다른 곳으로 옮겼습니다. 클릭!! 조선인의 생사 여탈권 결정하는 무소불위의 권한 손에 쥐어 조선총독부 설치는 한일합방조약이 조인된 1910년 8월 29일, ‘조선총독부 설치에 관한 건’이 칙령 제319호로 공포되면서 구체화되었다. 칙령은 ‘조선에 조선총독부를 설치한다’, ‘조선총독부에 총독을 두고, 위임의 범위 내에서 육해군을 통솔하며, 일체의 정무를 통할한다’고 규정했으나 아직 준비가 덜 된 탓에 한동안 통감부와 그 소속 관서를 존속시키고...
일제의 토지조사사업 착수
각종 토지를 조선총독부 소유로 만드는 게 목적 일제가 본격적으로 토지조사사업에 착수한 것은 1910년 강제 합병 후였다. 명분은 공평한 지세 부담, 지적 확정과 소유권 보호, 토지 개량과 이용의 자유 보장, 생산력 증진 등이었다. 그렇지만 이것은 표면적인 이유였고 실질적인 목적은 조선의 식민지적 토지 소유관계를 공고히 함으로써 조선의 사회구조를 식민지형으로 개편하고 일본인의 토지 소유와 조선총독부의 지세 수입을 증대시키는 데 적합한 토지제도를 만드는 것이었다. 본격적인 시행에...
1687년 : 아이작 뉴턴 ‘프린키피아’ 발간
‘과학의 시작’이면서 ‘근대성의 시작’ 인류는 유사 이래 물체의 존재와 운동에 일정한 법칙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따라서 우주는 신화와 미신의 대상이었다. 이 무질서와 혼돈의 안개를 걷어버리고 물체와 우주의 질서를 규명한 이가 아이작 뉴턴(1642~1727)이었다. 그는 영국에서 유복자로 태어나 어머니가 2년 후 재혼하는 바람에 할머니의 보살핌을 받으며 성장했다. 어린 시절 겪었던 모성 결핍은 그를 은둔으로 내몰았다. 뉴턴은 런던 케임브리지대를 졸업한 1665년...
1897년 : 에밀 뒤르켐 ‘자살론’ 출간
현대사회의 병리 진단한 고전사회학자 에밀 뒤르켐(1858~1917)은 자살, 분업, 종교, 도덕, 교육을 망라하는 방대한 저작을 통해 현대사회의 병리를 진단한 프랑스의 대표적인 고전사회학자다. 프랑스 로렌 지방 에피날의 유명한 유대계 랍비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1879년 파리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해 철학과 역사학을 전공하고 1882년부터 5년간 고교 철학교사로 근무하다 1887년 보르도대 강사를 거쳐 교수가 되었다. 1896년 보르도대가 ‘사회과학’이란 명칭의 강좌를 개설하자...
1864년 : 흥선대원군의 섭정… 쇄국과 수구로
쇄국정책 고수함으로써 내우외환의 위기 심화시켜 흥선대원군(1820~1898)은 긍정과 부정의 양면적 평가를 받고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부정적 이미지가 더 강한 편이다. 그토록 견고했던 외척 세력(안동 김씨)의 힘을 약화시키고 서원 철폐와 세제 개편으로 조선 사회를 쇄신한 개혁정치가의 이미지가 없진 않지만 시대적 흐름을 읽지 못해 개방을 거부하고 쇄국정책을 고집함으로써 조선의 근대화를 늦추고 조선을 망국의 길로 접어들게 한 수구적 이미지가 더 강하기 때문이다. 당시 조선이 당면한...
동양척식주식회사 설립
일제가 중점을 둔 것은 일본 농민의 조선 이주사업 일제는 1904년의 러일전쟁 승리 후 농업회사나 조합 등을 통해 조선의 농업경영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흉계를 꾸몄다. 일본인 지주와 회사는 1905년경부터 토지조사와 토지 매수를 시작해 각종 농장을 설립했다. 이런 추세는 일본의 국가자본이 동양척식주식회사(동척)를 설립한 후 더욱 활발했다. 동척은 일본의 영세 농민을 조선에 이주시킨 뒤 저리의 식산흥업 자금을 제공해 척식 사업을 한다는 명목을 내세웠다. ‘척식’의 사전적 의미가...
오타니 고즈이 중앙아시아 첫 탐험
옛 구법승들의 행적 밝히고 불교 문화재 파괴 현황 파악이 탐사 목적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타클라마칸 사막과 중앙아시아 티베트 지역을 탐험한 대표적인 인물을 꼽으라면 스웨덴의 스벤 헤딘, 영국의 마크 아우렐 스타인, 프랑스의 폴 펠리오, 독일의 폰 르코크, 러시아의 세르게이 올덴부르크 등을 들 수 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인 오타니 고즈이(1876~1948)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오타니는 일본 교토의 유명 불교 사찰인 니시혼간지(西本願寺)의 21대 문주의 아들로 태어나...
1864년 : 고종의 즉위와 44년의 치세
고종의 즉위는 정치적 타협의 산물 고종(1852~1919)은 조선조 역대 군주 가운데 영조(52년)에 이어 두 번째로 긴 44년의 격변기를 온몸으로 부딪히며 살았다. 고종이 1864년 1월(이하 양력) 12살의 어린 나이로 즉위할 무렵 조선조는 외척 세력이 전횡을 일삼는 세도정치 하에서 망국의 길을 치닫고 있었다. 고종의 즉위 역시 세도정치의 갈등과 대결 속에서 이뤄진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었다. 이 때문에 즉위 후 10년간은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의 섭정으로 정치적...
제주도 이재수의 난
선교사들이 사사건건 지방행정에 간섭 조선이 쇄국의 시대를 마감한 기점은 1876년 일본의 강압으로 체결된 ‘강화도 조약’이다. 이후 미국(1882)과 독일(1883)에 이어 프랑스와 ‘선교의 자유’ 조항이 포함된 조불수호통상조약(1886)을 체결함으로써 천주교 박해 시대도 사실상 종지부를 찍었다. 조불수호통상조약 덕분에 오랫동안 박해를 받아온 천주교회는 파격적으로 치외법권과 영사재판권을 보장받았다. 천주교인이라면 설사 조선인이라도 행위가 무엇이든 조선 정부의 통제를 받지...
한일합방조약 강제 조인
우리 민족이 36년간 겪어야 할 시련의 전주곡 조선을 병탄하려는 일제의 시나리오는 치밀하고도 주도면밀했다. 일제가 먼저 착수한 것은 대한제국 주변의 외교적 울타리를 모두 걷어내 조선을 국제 미아로 만드는 일이었다. 조선을 병탄할 때 혹시라도 있을 열강의 간섭을 차단하기 위한 사전 포석이었다. 이를 위해 일제는 1894년 청일전쟁을 일으켜 청국에 굴욕적인 패배를 안겨주고 1904년 러일전쟁을 도발해 러시아마저 무릎을 꿇게 했다. 미국과는 가쓰라·태프트 밀약(1905.7),...
조선총독부 설치와 역대 조선 총독
☞ 전문(全文)을 다른 곳으로 옮겼습니다. 클릭!! 조선인의 생사 여탈권 결정하는 무소불위의 권한 손에 쥐어 조선총독부 설치는 한일합방조약이 조인된 1910년 8월 29일, ‘조선총독부 설치에 관한 건’이 칙령 제319호로 공포되면서 구체화되었다. 칙령은 ‘조선에 조선총독부를 설치한다’, ‘조선총독부에 총독을 두고, 위임의 범위 내에서 육해군을 통솔하며, 일체의 정무를 통할한다’고 규정했으나 아직 준비가 덜 된 탓에 한동안 통감부와 그 소속 관서를 존속시키고...
일제의 토지조사사업 착수
각종 토지를 조선총독부 소유로 만드는 게 목적 일제가 본격적으로 토지조사사업에 착수한 것은 1910년 강제 합병 후였다. 명분은 공평한 지세 부담, 지적 확정과 소유권 보호, 토지 개량과 이용의 자유 보장, 생산력 증진 등이었다. 그렇지만 이것은 표면적인 이유였고 실질적인 목적은 조선의 식민지적 토지 소유관계를 공고히 함으로써 조선의 사회구조를 식민지형으로 개편하고 일본인의 토지 소유와 조선총독부의 지세 수입을 증대시키는 데 적합한 토지제도를 만드는 것이었다. 본격적인 시행에...
1687년 : 아이작 뉴턴 ‘프린키피아’ 발간
‘과학의 시작’이면서 ‘근대성의 시작’ 인류는 유사 이래 물체의 존재와 운동에 일정한 법칙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따라서 우주는 신화와 미신의 대상이었다. 이 무질서와 혼돈의 안개를 걷어버리고 물체와 우주의 질서를 규명한 이가 아이작 뉴턴(1642~1727)이었다. 그는 영국에서 유복자로 태어나 어머니가 2년 후 재혼하는 바람에 할머니의 보살핌을 받으며 성장했다. 어린 시절 겪었던 모성 결핍은 그를 은둔으로 내몰았다. 뉴턴은 런던 케임브리지대를 졸업한 1665년...
1897년 : 에밀 뒤르켐 ‘자살론’ 출간
현대사회의 병리 진단한 고전사회학자 에밀 뒤르켐(1858~1917)은 자살, 분업, 종교, 도덕, 교육을 망라하는 방대한 저작을 통해 현대사회의 병리를 진단한 프랑스의 대표적인 고전사회학자다. 프랑스 로렌 지방 에피날의 유명한 유대계 랍비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1879년 파리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해 철학과 역사학을 전공하고 1882년부터 5년간 고교 철학교사로 근무하다 1887년 보르도대 강사를 거쳐 교수가 되었다. 1896년 보르도대가 ‘사회과학’이란 명칭의 강좌를 개설하자...
1864년 : 흥선대원군의 섭정… 쇄국과 수구로
쇄국정책 고수함으로써 내우외환의 위기 심화시켜 흥선대원군(1820~1898)은 긍정과 부정의 양면적 평가를 받고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부정적 이미지가 더 강한 편이다. 그토록 견고했던 외척 세력(안동 김씨)의 힘을 약화시키고 서원 철폐와 세제 개편으로 조선 사회를 쇄신한 개혁정치가의 이미지가 없진 않지만 시대적 흐름을 읽지 못해 개방을 거부하고 쇄국정책을 고집함으로써 조선의 근대화를 늦추고 조선을 망국의 길로 접어들게 한 수구적 이미지가 더 강하기 때문이다. 당시 조선이 당면한...
동양척식주식회사 설립
일제가 중점을 둔 것은 일본 농민의 조선 이주사업 일제는 1904년의 러일전쟁 승리 후 농업회사나 조합 등을 통해 조선의 농업경영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흉계를 꾸몄다. 일본인 지주와 회사는 1905년경부터 토지조사와 토지 매수를 시작해 각종 농장을 설립했다. 이런 추세는 일본의 국가자본이 동양척식주식회사(동척)를 설립한 후 더욱 활발했다. 동척은 일본의 영세 농민을 조선에 이주시킨 뒤 저리의 식산흥업 자금을 제공해 척식 사업을 한다는 명목을 내세웠다. ‘척식’의 사전적 의미가...
오타니 고즈이 중앙아시아 첫 탐험
옛 구법승들의 행적 밝히고 불교 문화재 파괴 현황 파악이 탐사 목적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타클라마칸 사막과 중앙아시아 티베트 지역을 탐험한 대표적인 인물을 꼽으라면 스웨덴의 스벤 헤딘, 영국의 마크 아우렐 스타인, 프랑스의 폴 펠리오, 독일의 폰 르코크, 러시아의 세르게이 올덴부르크 등을 들 수 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인 오타니 고즈이(1876~1948)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오타니는 일본 교토의 유명 불교 사찰인 니시혼간지(西本願寺)의 21대 문주의 아들로 태어나...
1864년 : 고종의 즉위와 44년의 치세
고종의 즉위는 정치적 타협의 산물 고종(1852~1919)은 조선조 역대 군주 가운데 영조(52년)에 이어 두 번째로 긴 44년의 격변기를 온몸으로 부딪히며 살았다. 고종이 1864년 1월(이하 양력) 12살의 어린 나이로 즉위할 무렵 조선조는 외척 세력이 전횡을 일삼는 세도정치 하에서 망국의 길을 치닫고 있었다. 고종의 즉위 역시 세도정치의 갈등과 대결 속에서 이뤄진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었다. 이 때문에 즉위 후 10년간은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의 섭정으로 정치적...
제주도 이재수의 난
선교사들이 사사건건 지방행정에 간섭 조선이 쇄국의 시대를 마감한 기점은 1876년 일본의 강압으로 체결된 ‘강화도 조약’이다. 이후 미국(1882)과 독일(1883)에 이어 프랑스와 ‘선교의 자유’ 조항이 포함된 조불수호통상조약(1886)을 체결함으로써 천주교 박해 시대도 사실상 종지부를 찍었다. 조불수호통상조약 덕분에 오랫동안 박해를 받아온 천주교회는 파격적으로 치외법권과 영사재판권을 보장받았다. 천주교인이라면 설사 조선인이라도 행위가 무엇이든 조선 정부의 통제를 받지...
한일합방조약 강제 조인
우리 민족이 36년간 겪어야 할 시련의 전주곡 조선을 병탄하려는 일제의 시나리오는 치밀하고도 주도면밀했다. 일제가 먼저 착수한 것은 대한제국 주변의 외교적 울타리를 모두 걷어내 조선을 국제 미아로 만드는 일이었다. 조선을 병탄할 때 혹시라도 있을 열강의 간섭을 차단하기 위한 사전 포석이었다. 이를 위해 일제는 1894년 청일전쟁을 일으켜 청국에 굴욕적인 패배를 안겨주고 1904년 러일전쟁을 도발해 러시아마저 무릎을 꿇게 했다. 미국과는 가쓰라·태프트 밀약(1905.7),...
조선총독부 설치와 역대 조선 총독
☞ 전문(全文)을 다른 곳으로 옮겼습니다. 클릭!! 조선인의 생사 여탈권 결정하는 무소불위의 권한 손에 쥐어 조선총독부 설치는 한일합방조약이 조인된 1910년 8월 29일, ‘조선총독부 설치에 관한 건’이 칙령 제319호로 공포되면서 구체화되었다. 칙령은 ‘조선에 조선총독부를 설치한다’, ‘조선총독부에 총독을 두고, 위임의 범위 내에서 육해군을 통솔하며, 일체의 정무를 통할한다’고 규정했으나 아직 준비가 덜 된 탓에 한동안 통감부와 그 소속 관서를 존속시키고...
일제의 토지조사사업 착수
각종 토지를 조선총독부 소유로 만드는 게 목적 일제가 본격적으로 토지조사사업에 착수한 것은 1910년 강제 합병 후였다. 명분은 공평한 지세 부담, 지적 확정과 소유권 보호, 토지 개량과 이용의 자유 보장, 생산력 증진 등이었다. 그렇지만 이것은 표면적인 이유였고 실질적인 목적은 조선의 식민지적 토지 소유관계를 공고히 함으로써 조선의 사회구조를 식민지형으로 개편하고 일본인의 토지 소유와 조선총독부의 지세 수입을 증대시키는 데 적합한 토지제도를 만드는 것이었다. 본격적인 시행에...
1687년 : 아이작 뉴턴 ‘프린키피아’ 발간
‘과학의 시작’이면서 ‘근대성의 시작’ 인류는 유사 이래 물체의 존재와 운동에 일정한 법칙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따라서 우주는 신화와 미신의 대상이었다. 이 무질서와 혼돈의 안개를 걷어버리고 물체와 우주의 질서를 규명한 이가 아이작 뉴턴(1642~1727)이었다. 그는 영국에서 유복자로 태어나 어머니가 2년 후 재혼하는 바람에 할머니의 보살핌을 받으며 성장했다. 어린 시절 겪었던 모성 결핍은 그를 은둔으로 내몰았다. 뉴턴은 런던 케임브리지대를 졸업한 1665년...
1897년 : 에밀 뒤르켐 ‘자살론’ 출간
현대사회의 병리 진단한 고전사회학자 에밀 뒤르켐(1858~1917)은 자살, 분업, 종교, 도덕, 교육을 망라하는 방대한 저작을 통해 현대사회의 병리를 진단한 프랑스의 대표적인 고전사회학자다. 프랑스 로렌 지방 에피날의 유명한 유대계 랍비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1879년 파리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해 철학과 역사학을 전공하고 1882년부터 5년간 고교 철학교사로 근무하다 1887년 보르도대 강사를 거쳐 교수가 되었다. 1896년 보르도대가 ‘사회과학’이란 명칭의 강좌를 개설하자...
1864년 : 흥선대원군의 섭정… 쇄국과 수구로
쇄국정책 고수함으로써 내우외환의 위기 심화시켜 흥선대원군(1820~1898)은 긍정과 부정의 양면적 평가를 받고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부정적 이미지가 더 강한 편이다. 그토록 견고했던 외척 세력(안동 김씨)의 힘을 약화시키고 서원 철폐와 세제 개편으로 조선 사회를 쇄신한 개혁정치가의 이미지가 없진 않지만 시대적 흐름을 읽지 못해 개방을 거부하고 쇄국정책을 고집함으로써 조선의 근대화를 늦추고 조선을 망국의 길로 접어들게 한 수구적 이미지가 더 강하기 때문이다. 당시 조선이 당면한...
동양척식주식회사 설립
일제가 중점을 둔 것은 일본 농민의 조선 이주사업 일제는 1904년의 러일전쟁 승리 후 농업회사나 조합 등을 통해 조선의 농업경영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흉계를 꾸몄다. 일본인 지주와 회사는 1905년경부터 토지조사와 토지 매수를 시작해 각종 농장을 설립했다. 이런 추세는 일본의 국가자본이 동양척식주식회사(동척)를 설립한 후 더욱 활발했다. 동척은 일본의 영세 농민을 조선에 이주시킨 뒤 저리의 식산흥업 자금을 제공해 척식 사업을 한다는 명목을 내세웠다. ‘척식’의 사전적 의미가...
오타니 고즈이 중앙아시아 첫 탐험
옛 구법승들의 행적 밝히고 불교 문화재 파괴 현황 파악이 탐사 목적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타클라마칸 사막과 중앙아시아 티베트 지역을 탐험한 대표적인 인물을 꼽으라면 스웨덴의 스벤 헤딘, 영국의 마크 아우렐 스타인, 프랑스의 폴 펠리오, 독일의 폰 르코크, 러시아의 세르게이 올덴부르크 등을 들 수 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인 오타니 고즈이(1876~1948)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오타니는 일본 교토의 유명 불교 사찰인 니시혼간지(西本願寺)의 21대 문주의 아들로 태어나...
1864년 : 고종의 즉위와 44년의 치세
고종의 즉위는 정치적 타협의 산물 고종(1852~1919)은 조선조 역대 군주 가운데 영조(52년)에 이어 두 번째로 긴 44년의 격변기를 온몸으로 부딪히며 살았다. 고종이 1864년 1월(이하 양력) 12살의 어린 나이로 즉위할 무렵 조선조는 외척 세력이 전횡을 일삼는 세도정치 하에서 망국의 길을 치닫고 있었다. 고종의 즉위 역시 세도정치의 갈등과 대결 속에서 이뤄진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었다. 이 때문에 즉위 후 10년간은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의 섭정으로 정치적...
제주도 이재수의 난
선교사들이 사사건건 지방행정에 간섭 조선이 쇄국의 시대를 마감한 기점은 1876년 일본의 강압으로 체결된 ‘강화도 조약’이다. 이후 미국(1882)과 독일(1883)에 이어 프랑스와 ‘선교의 자유’ 조항이 포함된 조불수호통상조약(1886)을 체결함으로써 천주교 박해 시대도 사실상 종지부를 찍었다. 조불수호통상조약 덕분에 오랫동안 박해를 받아온 천주교회는 파격적으로 치외법권과 영사재판권을 보장받았다. 천주교인이라면 설사 조선인이라도 행위가 무엇이든 조선 정부의 통제를 받지...
한일합방조약 강제 조인
우리 민족이 36년간 겪어야 할 시련의 전주곡 조선을 병탄하려는 일제의 시나리오는 치밀하고도 주도면밀했다. 일제가 먼저 착수한 것은 대한제국 주변의 외교적 울타리를 모두 걷어내 조선을 국제 미아로 만드는 일이었다. 조선을 병탄할 때 혹시라도 있을 열강의 간섭을 차단하기 위한 사전 포석이었다. 이를 위해 일제는 1894년 청일전쟁을 일으켜 청국에 굴욕적인 패배를 안겨주고 1904년 러일전쟁을 도발해 러시아마저 무릎을 꿇게 했다. 미국과는 가쓰라·태프트 밀약(1905.7),...
조선총독부 설치와 역대 조선 총독
☞ 전문(全文)을 다른 곳으로 옮겼습니다. 클릭!! 조선인의 생사 여탈권 결정하는 무소불위의 권한 손에 쥐어 조선총독부 설치는 한일합방조약이 조인된 1910년 8월 29일, ‘조선총독부 설치에 관한 건’이 칙령 제319호로 공포되면서 구체화되었다. 칙령은 ‘조선에 조선총독부를 설치한다’, ‘조선총독부에 총독을 두고, 위임의 범위 내에서 육해군을 통솔하며, 일체의 정무를 통할한다’고 규정했으나 아직 준비가 덜 된 탓에 한동안 통감부와 그 소속 관서를 존속시키고...
일제의 토지조사사업 착수
각종 토지를 조선총독부 소유로 만드는 게 목적 일제가 본격적으로 토지조사사업에 착수한 것은 1910년 강제 합병 후였다. 명분은 공평한 지세 부담, 지적 확정과 소유권 보호, 토지 개량과 이용의 자유 보장, 생산력 증진 등이었다. 그렇지만 이것은 표면적인 이유였고 실질적인 목적은 조선의 식민지적 토지 소유관계를 공고히 함으로써 조선의 사회구조를 식민지형으로 개편하고 일본인의 토지 소유와 조선총독부의 지세 수입을 증대시키는 데 적합한 토지제도를 만드는 것이었다. 본격적인 시행에...
1687년 : 아이작 뉴턴 ‘프린키피아’ 발간
‘과학의 시작’이면서 ‘근대성의 시작’ 인류는 유사 이래 물체의 존재와 운동에 일정한 법칙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따라서 우주는 신화와 미신의 대상이었다. 이 무질서와 혼돈의 안개를 걷어버리고 물체와 우주의 질서를 규명한 이가 아이작 뉴턴(1642~1727)이었다. 그는 영국에서 유복자로 태어나 어머니가 2년 후 재혼하는 바람에 할머니의 보살핌을 받으며 성장했다. 어린 시절 겪었던 모성 결핍은 그를 은둔으로 내몰았다. 뉴턴은 런던 케임브리지대를 졸업한 1665년...
1897년 : 에밀 뒤르켐 ‘자살론’ 출간
현대사회의 병리 진단한 고전사회학자 에밀 뒤르켐(1858~1917)은 자살, 분업, 종교, 도덕, 교육을 망라하는 방대한 저작을 통해 현대사회의 병리를 진단한 프랑스의 대표적인 고전사회학자다. 프랑스 로렌 지방 에피날의 유명한 유대계 랍비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1879년 파리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해 철학과 역사학을 전공하고 1882년부터 5년간 고교 철학교사로 근무하다 1887년 보르도대 강사를 거쳐 교수가 되었다. 1896년 보르도대가 ‘사회과학’이란 명칭의 강좌를 개설하자...
1864년 : 흥선대원군의 섭정… 쇄국과 수구로
쇄국정책 고수함으로써 내우외환의 위기 심화시켜 흥선대원군(1820~1898)은 긍정과 부정의 양면적 평가를 받고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부정적 이미지가 더 강한 편이다. 그토록 견고했던 외척 세력(안동 김씨)의 힘을 약화시키고 서원 철폐와 세제 개편으로 조선 사회를 쇄신한 개혁정치가의 이미지가 없진 않지만 시대적 흐름을 읽지 못해 개방을 거부하고 쇄국정책을 고집함으로써 조선의 근대화를 늦추고 조선을 망국의 길로 접어들게 한 수구적 이미지가 더 강하기 때문이다. 당시 조선이 당면한...
동양척식주식회사 설립
일제가 중점을 둔 것은 일본 농민의 조선 이주사업 일제는 1904년의 러일전쟁 승리 후 농업회사나 조합 등을 통해 조선의 농업경영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흉계를 꾸몄다. 일본인 지주와 회사는 1905년경부터 토지조사와 토지 매수를 시작해 각종 농장을 설립했다. 이런 추세는 일본의 국가자본이 동양척식주식회사(동척)를 설립한 후 더욱 활발했다. 동척은 일본의 영세 농민을 조선에 이주시킨 뒤 저리의 식산흥업 자금을 제공해 척식 사업을 한다는 명목을 내세웠다. ‘척식’의 사전적 의미가...
오타니 고즈이 중앙아시아 첫 탐험
옛 구법승들의 행적 밝히고 불교 문화재 파괴 현황 파악이 탐사 목적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타클라마칸 사막과 중앙아시아 티베트 지역을 탐험한 대표적인 인물을 꼽으라면 스웨덴의 스벤 헤딘, 영국의 마크 아우렐 스타인, 프랑스의 폴 펠리오, 독일의 폰 르코크, 러시아의 세르게이 올덴부르크 등을 들 수 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인 오타니 고즈이(1876~1948)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오타니는 일본 교토의 유명 불교 사찰인 니시혼간지(西本願寺)의 21대 문주의 아들로 태어나...
1864년 : 고종의 즉위와 44년의 치세
고종의 즉위는 정치적 타협의 산물 고종(1852~1919)은 조선조 역대 군주 가운데 영조(52년)에 이어 두 번째로 긴 44년의 격변기를 온몸으로 부딪히며 살았다. 고종이 1864년 1월(이하 양력) 12살의 어린 나이로 즉위할 무렵 조선조는 외척 세력이 전횡을 일삼는 세도정치 하에서 망국의 길을 치닫고 있었다. 고종의 즉위 역시 세도정치의 갈등과 대결 속에서 이뤄진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었다. 이 때문에 즉위 후 10년간은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의 섭정으로 정치적...
제주도 이재수의 난
선교사들이 사사건건 지방행정에 간섭 조선이 쇄국의 시대를 마감한 기점은 1876년 일본의 강압으로 체결된 ‘강화도 조약’이다. 이후 미국(1882)과 독일(1883)에 이어 프랑스와 ‘선교의 자유’ 조항이 포함된 조불수호통상조약(1886)을 체결함으로써 천주교 박해 시대도 사실상 종지부를 찍었다. 조불수호통상조약 덕분에 오랫동안 박해를 받아온 천주교회는 파격적으로 치외법권과 영사재판권을 보장받았다. 천주교인이라면 설사 조선인이라도 행위가 무엇이든 조선 정부의 통제를 받지...
한일합방조약 강제 조인
우리 민족이 36년간 겪어야 할 시련의 전주곡 조선을 병탄하려는 일제의 시나리오는 치밀하고도 주도면밀했다. 일제가 먼저 착수한 것은 대한제국 주변의 외교적 울타리를 모두 걷어내 조선을 국제 미아로 만드는 일이었다. 조선을 병탄할 때 혹시라도 있을 열강의 간섭을 차단하기 위한 사전 포석이었다. 이를 위해 일제는 1894년 청일전쟁을 일으켜 청국에 굴욕적인 패배를 안겨주고 1904년 러일전쟁을 도발해 러시아마저 무릎을 꿇게 했다. 미국과는 가쓰라·태프트 밀약(1905.7),...
조선총독부 설치와 역대 조선 총독
☞ 전문(全文)을 다른 곳으로 옮겼습니다. 클릭!! 조선인의 생사 여탈권 결정하는 무소불위의 권한 손에 쥐어 조선총독부 설치는 한일합방조약이 조인된 1910년 8월 29일, ‘조선총독부 설치에 관한 건’이 칙령 제319호로 공포되면서 구체화되었다. 칙령은 ‘조선에 조선총독부를 설치한다’, ‘조선총독부에 총독을 두고, 위임의 범위 내에서 육해군을 통솔하며, 일체의 정무를 통할한다’고 규정했으나 아직 준비가 덜 된 탓에 한동안 통감부와 그 소속 관서를 존속시키고...
일제의 토지조사사업 착수
각종 토지를 조선총독부 소유로 만드는 게 목적 일제가 본격적으로 토지조사사업에 착수한 것은 1910년 강제 합병 후였다. 명분은 공평한 지세 부담, 지적 확정과 소유권 보호, 토지 개량과 이용의 자유 보장, 생산력 증진 등이었다. 그렇지만 이것은 표면적인 이유였고 실질적인 목적은 조선의 식민지적 토지 소유관계를 공고히 함으로써 조선의 사회구조를 식민지형으로 개편하고 일본인의 토지 소유와 조선총독부의 지세 수입을 증대시키는 데 적합한 토지제도를 만드는 것이었다. 본격적인 시행에...
1687년 : 아이작 뉴턴 ‘프린키피아’ 발간
‘과학의 시작’이면서 ‘근대성의 시작’ 인류는 유사 이래 물체의 존재와 운동에 일정한 법칙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따라서 우주는 신화와 미신의 대상이었다. 이 무질서와 혼돈의 안개를 걷어버리고 물체와 우주의 질서를 규명한 이가 아이작 뉴턴(1642~1727)이었다. 그는 영국에서 유복자로 태어나 어머니가 2년 후 재혼하는 바람에 할머니의 보살핌을 받으며 성장했다. 어린 시절 겪었던 모성 결핍은 그를 은둔으로 내몰았다. 뉴턴은 런던 케임브리지대를 졸업한 1665년...
1897년 : 에밀 뒤르켐 ‘자살론’ 출간
현대사회의 병리 진단한 고전사회학자 에밀 뒤르켐(1858~1917)은 자살, 분업, 종교, 도덕, 교육을 망라하는 방대한 저작을 통해 현대사회의 병리를 진단한 프랑스의 대표적인 고전사회학자다. 프랑스 로렌 지방 에피날의 유명한 유대계 랍비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1879년 파리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해 철학과 역사학을 전공하고 1882년부터 5년간 고교 철학교사로 근무하다 1887년 보르도대 강사를 거쳐 교수가 되었다. 1896년 보르도대가 ‘사회과학’이란 명칭의 강좌를 개설하자...
1864년 : 흥선대원군의 섭정… 쇄국과 수구로
쇄국정책 고수함으로써 내우외환의 위기 심화시켜 흥선대원군(1820~1898)은 긍정과 부정의 양면적 평가를 받고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부정적 이미지가 더 강한 편이다. 그토록 견고했던 외척 세력(안동 김씨)의 힘을 약화시키고 서원 철폐와 세제 개편으로 조선 사회를 쇄신한 개혁정치가의 이미지가 없진 않지만 시대적 흐름을 읽지 못해 개방을 거부하고 쇄국정책을 고집함으로써 조선의 근대화를 늦추고 조선을 망국의 길로 접어들게 한 수구적 이미지가 더 강하기 때문이다. 당시 조선이 당면한...
동양척식주식회사 설립
일제가 중점을 둔 것은 일본 농민의 조선 이주사업 일제는 1904년의 러일전쟁 승리 후 농업회사나 조합 등을 통해 조선의 농업경영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흉계를 꾸몄다. 일본인 지주와 회사는 1905년경부터 토지조사와 토지 매수를 시작해 각종 농장을 설립했다. 이런 추세는 일본의 국가자본이 동양척식주식회사(동척)를 설립한 후 더욱 활발했다. 동척은 일본의 영세 농민을 조선에 이주시킨 뒤 저리의 식산흥업 자금을 제공해 척식 사업을 한다는 명목을 내세웠다. ‘척식’의 사전적 의미가...
오타니 고즈이 중앙아시아 첫 탐험
옛 구법승들의 행적 밝히고 불교 문화재 파괴 현황 파악이 탐사 목적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타클라마칸 사막과 중앙아시아 티베트 지역을 탐험한 대표적인 인물을 꼽으라면 스웨덴의 스벤 헤딘, 영국의 마크 아우렐 스타인, 프랑스의 폴 펠리오, 독일의 폰 르코크, 러시아의 세르게이 올덴부르크 등을 들 수 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인 오타니 고즈이(1876~1948)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오타니는 일본 교토의 유명 불교 사찰인 니시혼간지(西本願寺)의 21대 문주의 아들로 태어나...
1864년 : 고종의 즉위와 44년의 치세
고종의 즉위는 정치적 타협의 산물 고종(1852~1919)은 조선조 역대 군주 가운데 영조(52년)에 이어 두 번째로 긴 44년의 격변기를 온몸으로 부딪히며 살았다. 고종이 1864년 1월(이하 양력) 12살의 어린 나이로 즉위할 무렵 조선조는 외척 세력이 전횡을 일삼는 세도정치 하에서 망국의 길을 치닫고 있었다. 고종의 즉위 역시 세도정치의 갈등과 대결 속에서 이뤄진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었다. 이 때문에 즉위 후 10년간은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의 섭정으로 정치적...
제주도 이재수의 난
선교사들이 사사건건 지방행정에 간섭 조선이 쇄국의 시대를 마감한 기점은 1876년 일본의 강압으로 체결된 ‘강화도 조약’이다. 이후 미국(1882)과 독일(1883)에 이어 프랑스와 ‘선교의 자유’ 조항이 포함된 조불수호통상조약(1886)을 체결함으로써 천주교 박해 시대도 사실상 종지부를 찍었다. 조불수호통상조약 덕분에 오랫동안 박해를 받아온 천주교회는 파격적으로 치외법권과 영사재판권을 보장받았다. 천주교인이라면 설사 조선인이라도 행위가 무엇이든 조선 정부의 통제를 받지...
한일합방조약 강제 조인
우리 민족이 36년간 겪어야 할 시련의 전주곡 조선을 병탄하려는 일제의 시나리오는 치밀하고도 주도면밀했다. 일제가 먼저 착수한 것은 대한제국 주변의 외교적 울타리를 모두 걷어내 조선을 국제 미아로 만드는 일이었다. 조선을 병탄할 때 혹시라도 있을 열강의 간섭을 차단하기 위한 사전 포석이었다. 이를 위해 일제는 1894년 청일전쟁을 일으켜 청국에 굴욕적인 패배를 안겨주고 1904년 러일전쟁을 도발해 러시아마저 무릎을 꿇게 했다. 미국과는 가쓰라·태프트 밀약(1905.7),...
조선총독부 설치와 역대 조선 총독
☞ 전문(全文)을 다른 곳으로 옮겼습니다. 클릭!! 조선인의 생사 여탈권 결정하는 무소불위의 권한 손에 쥐어 조선총독부 설치는 한일합방조약이 조인된 1910년 8월 29일, ‘조선총독부 설치에 관한 건’이 칙령 제319호로 공포되면서 구체화되었다. 칙령은 ‘조선에 조선총독부를 설치한다’, ‘조선총독부에 총독을 두고, 위임의 범위 내에서 육해군을 통솔하며, 일체의 정무를 통할한다’고 규정했으나 아직 준비가 덜 된 탓에 한동안 통감부와 그 소속 관서를 존속시키고...
일제의 토지조사사업 착수
각종 토지를 조선총독부 소유로 만드는 게 목적 일제가 본격적으로 토지조사사업에 착수한 것은 1910년 강제 합병 후였다. 명분은 공평한 지세 부담, 지적 확정과 소유권 보호, 토지 개량과 이용의 자유 보장, 생산력 증진 등이었다. 그렇지만 이것은 표면적인 이유였고 실질적인 목적은 조선의 식민지적 토지 소유관계를 공고히 함으로써 조선의 사회구조를 식민지형으로 개편하고 일본인의 토지 소유와 조선총독부의 지세 수입을 증대시키는 데 적합한 토지제도를 만드는 것이었다. 본격적인 시행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