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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신군부의 12·12 군사쿠데타

돌아올 수 없는 루비콘강 건너다 1979년 12월 12일 오후 6시 30분, 권력 찬탈을 위한 신군부의 움직임이 동시에 네 곳에서 진행되었다. 그 시각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강제 연행하기 위해 허삼수, 우경윤, 성환옥 3명의 대령과 7명의 보안사 수사관이 보안사 서빙고 분실에서 대기했다. 같은 시각 정승화 총장의 합법적인 연행을 뒷받침하기 위해 전두환 보안사령관 겸 계엄사 합수부장은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의 삼청동 총리공관으로 향하고 있었다. 노태우 9사단장, 유학성...

박현채 ‘민족경제론’ 출간

과도한 해외의존도를 극복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 박현채(1934~1995)는 서구 자본의 도움 없이 순수 민족자립 경제를 수립해야 한다고 주창한 진보좌파 경제학자다. 그의 경제학은 1970~1980년대에 외자에 의존한 수출 주도와 성장일변도의 개발독재를 비판하는 세력의 주요 이론으로 각광을 받았다. 박현채는 전남 화순의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다. 중학생이던 해방공간 때 마르크스 이론서를 탐독하고 6․25 발발 후인 1950년 10월 16살의 나이로 빨치산 활동에...

수출 100억 달러 돌파

노동자·농민의 피와 땀, 기업가·관료의 분발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 광복 직후인 1946년 당시 한국의 수출 대상국은 중국과 일본 단 두 나라였다. 연간 수출액은 350만 달러. 미국의 저명한 국제정치전문지 ‘포린어페어’지는 1960년 10월호에서 한국에 대해 “실업자는 노동인구의 25%, 1960년 1인당 국민총생산(GNP)은 100달러 이하, 수출은 2000만 달러, 수입은 2억 달러”라며 “한국의 경제 기적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이탈리아, 이 정도는 알고 떠나자④] 로마(1) : 포로 로마노, 캄피돌리오 광장, 콜로세움,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스페인 광장, 트레비 분수, 판테온 등

[이탈리아, 이 정도는 알고 떠나자④] 로마(1) : 포로 로마노, 캄피돌리오 광장, 콜로세움,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스페인 광장, 트레비 분수, 판테온 등

by 김지지   ☞ 전문(全文)을 다른 곳으로 옮겼습니다. 클릭!!   ■로마, 발길 닿는 곳마다 과거 역사 그대로 살아있어   이탈리아는 가는 곳마다 유적지이고 오늘의 유럽을 있게 한 뿌리이다. 그중 으뜸을 꼽으라면 당연히 발길 닿는 곳마다 과거의 역사가 그대로 살아있는 로마이다. 로마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유산 역사지구’다. 로마시는 단체 관광객이 투어를 하려면 로마인 안내인과 함께 다니는 것을 의무로 해 유적지 관리에 철저하다....

코리아 게이트와 박동선

엄청날 것 같던 박동선 사건, 싱겁게 끝나 해방 후부터 1960년대 후반까지 한미관계는 어느 정도 우여곡절과 갈등은 있었으나 기본적으로 협조와 우호의 관계였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 곳곳에서 파열음이 들리고 균열이 생겼다. 미국은 박정희 정권의 인권 탄압과 독재정치에 실망했고, 한국은 미국이 한국군 현대화를 지원하겠다던 약속을 지키지 않고 1969년의 닉슨독트린 후 오히려 지상군을 철수하기 시작한 것에 불만이 많았다. 박정희 정부는 이런 양국의 갈등이 미국의 대한...

이호왕 ‘유행성 출혈열’ 병원체 발견

갑자기 세포핵 주위의 무수한 황금빛 바이러스 무리가 눈에 들어와 1976년 4월 30일자 조선일보 사회면에 ‘유행성 출혈열 병원․면역체 규명’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크게 실렸다. 세계 예방의학계와 미생물학계가 반 세기 동안 매달렸으나 아무도 풀지 못한 괴질의 정체를 한국인 의학자가 마침내 밝혀냈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화제의 주인공은 이호왕(1928~ ) 박사였다. 그는 함경남도 신흥에서 태어나 함흥의과대학(5년제)에서 의학도의 길을 걷다가 1950년 6․25 전쟁 발발 후...

서울 성북구가 철거한 ‘인촌로’의 주인공 김성수에 대하여

서울 성북구가 철거한 ‘인촌로’의 주인공 김성수에 대하여

by 김지지   서울 성북구가 2월 27일 기존 ‘인촌로’ 도로명판을 철거하고 ‘고려대로’로 교체했다. 인촌로는 지하철 6호선 보문역부터 고대 앞 사거리까지 1.2㎞에 걸친 도로다. 지난 2010년 4월 명칭이 붙었다. 성북구가 인촌로를 없앤 이유는 2009년 대통령 직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일제강점기 친일반민족행위 관련자’ 704명 명단에 김성수를 포함했기 때문이다. 성북구는 인촌로 철거를 “생활 속 일제 잔재를 청산한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하지만...

황석영 첫 창작집 ‘객지’ 출간과 ‘장길산’ 한국일보 연재

늘 ‘경계’ 위를 걷고 걸핏하면 ‘이동’하는 유목의 삶 살아 황석영(1943~ )은 풍운아다. 그의 말대로 만주에서 ‘난민’으로 태어나 늘 ‘경계’ 위를 걷고 걸핏하면 ‘이동’하는 유목의 삶을 살았다. 수 년마다 큰 변화를 겪은 그의 이력을 알고 있는 한 지인이 “다큐멘터리로 만들면 동아시아 현대사가 되겠다”고 할 정도로 그의 삶은 변화무쌍했다. 황석영은 만주 장춘에서 태어났다. 해방 후...

통일벼 첫 전국 재배와 허문회

먹는 문제를 해결한 것은 단군 이래 처음 경험하는 역사적 사건 우리 민족에게 먹거리 부족은 피눈물이었다. 적어도 1960년대까지는 그랬다. 춘궁기인 보릿고개 때만 되면 많은 사람이 풀뿌리나 나무껍질로 연명해야 했고, 미국의 잉여식량 무상원조로 배고픔을 달래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식량 자급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경제성장도, 국가안보도 사상누각일 수밖에 없다는 게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인식이었다. 식량자급을 하려면 품종 개량이 급선무였으나 당시의 국내 농업기술로는 엄두가 나지...

중동 건설 붐… 삼환이 첫 물꼬 튼 후 국내 건설업체 속속 진출

삼환,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두각 나타내고 진가 발휘해 우리 건설업체가 처음 해외로 진출한 것은 전쟁이 한창이던 1960년대의 베트남과 동남아시아였다. 베트남전이 끝난 1970년대 초반에는 유가 급등 덕에 막대한 오일달러를 벌어들여 도로, 병원, 항만 등 인프라 공사를 쏟아내고 있는 중동 지역을 집중적으로 개척했다. 그러나 당시 중동 지역에는 우리 공관이 한 곳도 없어 건설업체 홀로 시장을 개척해야 했다. 그런 불리한 여건 하에서도 중동 땅에 먼저 깃발을 꽂은 건설업체가...

전두환 신군부의 12·12 군사쿠데타

돌아올 수 없는 루비콘강 건너다 1979년 12월 12일 오후 6시 30분, 권력 찬탈을 위한 신군부의 움직임이 동시에 네 곳에서 진행되었다. 그 시각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강제 연행하기 위해 허삼수, 우경윤, 성환옥 3명의 대령과 7명의 보안사 수사관이 보안사 서빙고 분실에서 대기했다. 같은 시각 정승화 총장의 합법적인 연행을 뒷받침하기 위해 전두환 보안사령관 겸 계엄사 합수부장은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의 삼청동 총리공관으로 향하고 있었다. 노태우 9사단장, 유학성...

박현채 ‘민족경제론’ 출간

과도한 해외의존도를 극복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 박현채(1934~1995)는 서구 자본의 도움 없이 순수 민족자립 경제를 수립해야 한다고 주창한 진보좌파 경제학자다. 그의 경제학은 1970~1980년대에 외자에 의존한 수출 주도와 성장일변도의 개발독재를 비판하는 세력의 주요 이론으로 각광을 받았다. 박현채는 전남 화순의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다. 중학생이던 해방공간 때 마르크스 이론서를 탐독하고 6․25 발발 후인 1950년 10월 16살의 나이로 빨치산 활동에...

수출 100억 달러 돌파

노동자·농민의 피와 땀, 기업가·관료의 분발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 광복 직후인 1946년 당시 한국의 수출 대상국은 중국과 일본 단 두 나라였다. 연간 수출액은 350만 달러. 미국의 저명한 국제정치전문지 ‘포린어페어’지는 1960년 10월호에서 한국에 대해 “실업자는 노동인구의 25%, 1960년 1인당 국민총생산(GNP)은 100달러 이하, 수출은 2000만 달러, 수입은 2억 달러”라며 “한국의 경제 기적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이탈리아, 이 정도는 알고 떠나자④] 로마(1) : 포로 로마노, 캄피돌리오 광장, 콜로세움,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스페인 광장, 트레비 분수, 판테온 등

[이탈리아, 이 정도는 알고 떠나자④] 로마(1) : 포로 로마노, 캄피돌리오 광장, 콜로세움,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스페인 광장, 트레비 분수, 판테온 등

by 김지지   ☞ 전문(全文)을 다른 곳으로 옮겼습니다. 클릭!!   ■로마, 발길 닿는 곳마다 과거 역사 그대로 살아있어   이탈리아는 가는 곳마다 유적지이고 오늘의 유럽을 있게 한 뿌리이다. 그중 으뜸을 꼽으라면 당연히 발길 닿는 곳마다 과거의 역사가 그대로 살아있는 로마이다. 로마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유산 역사지구’다. 로마시는 단체 관광객이 투어를 하려면 로마인 안내인과 함께 다니는 것을 의무로 해 유적지 관리에 철저하다....

코리아 게이트와 박동선

엄청날 것 같던 박동선 사건, 싱겁게 끝나 해방 후부터 1960년대 후반까지 한미관계는 어느 정도 우여곡절과 갈등은 있었으나 기본적으로 협조와 우호의 관계였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 곳곳에서 파열음이 들리고 균열이 생겼다. 미국은 박정희 정권의 인권 탄압과 독재정치에 실망했고, 한국은 미국이 한국군 현대화를 지원하겠다던 약속을 지키지 않고 1969년의 닉슨독트린 후 오히려 지상군을 철수하기 시작한 것에 불만이 많았다. 박정희 정부는 이런 양국의 갈등이 미국의 대한...

이호왕 ‘유행성 출혈열’ 병원체 발견

갑자기 세포핵 주위의 무수한 황금빛 바이러스 무리가 눈에 들어와 1976년 4월 30일자 조선일보 사회면에 ‘유행성 출혈열 병원․면역체 규명’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크게 실렸다. 세계 예방의학계와 미생물학계가 반 세기 동안 매달렸으나 아무도 풀지 못한 괴질의 정체를 한국인 의학자가 마침내 밝혀냈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화제의 주인공은 이호왕(1928~ ) 박사였다. 그는 함경남도 신흥에서 태어나 함흥의과대학(5년제)에서 의학도의 길을 걷다가 1950년 6․25 전쟁 발발 후...

서울 성북구가 철거한 ‘인촌로’의 주인공 김성수에 대하여

서울 성북구가 철거한 ‘인촌로’의 주인공 김성수에 대하여

by 김지지   서울 성북구가 2월 27일 기존 ‘인촌로’ 도로명판을 철거하고 ‘고려대로’로 교체했다. 인촌로는 지하철 6호선 보문역부터 고대 앞 사거리까지 1.2㎞에 걸친 도로다. 지난 2010년 4월 명칭이 붙었다. 성북구가 인촌로를 없앤 이유는 2009년 대통령 직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일제강점기 친일반민족행위 관련자’ 704명 명단에 김성수를 포함했기 때문이다. 성북구는 인촌로 철거를 “생활 속 일제 잔재를 청산한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하지만...

황석영 첫 창작집 ‘객지’ 출간과 ‘장길산’ 한국일보 연재

늘 ‘경계’ 위를 걷고 걸핏하면 ‘이동’하는 유목의 삶 살아 황석영(1943~ )은 풍운아다. 그의 말대로 만주에서 ‘난민’으로 태어나 늘 ‘경계’ 위를 걷고 걸핏하면 ‘이동’하는 유목의 삶을 살았다. 수 년마다 큰 변화를 겪은 그의 이력을 알고 있는 한 지인이 “다큐멘터리로 만들면 동아시아 현대사가 되겠다”고 할 정도로 그의 삶은 변화무쌍했다. 황석영은 만주 장춘에서 태어났다. 해방 후...

통일벼 첫 전국 재배와 허문회

먹는 문제를 해결한 것은 단군 이래 처음 경험하는 역사적 사건 우리 민족에게 먹거리 부족은 피눈물이었다. 적어도 1960년대까지는 그랬다. 춘궁기인 보릿고개 때만 되면 많은 사람이 풀뿌리나 나무껍질로 연명해야 했고, 미국의 잉여식량 무상원조로 배고픔을 달래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식량 자급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경제성장도, 국가안보도 사상누각일 수밖에 없다는 게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인식이었다. 식량자급을 하려면 품종 개량이 급선무였으나 당시의 국내 농업기술로는 엄두가 나지...

중동 건설 붐… 삼환이 첫 물꼬 튼 후 국내 건설업체 속속 진출

삼환,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두각 나타내고 진가 발휘해 우리 건설업체가 처음 해외로 진출한 것은 전쟁이 한창이던 1960년대의 베트남과 동남아시아였다. 베트남전이 끝난 1970년대 초반에는 유가 급등 덕에 막대한 오일달러를 벌어들여 도로, 병원, 항만 등 인프라 공사를 쏟아내고 있는 중동 지역을 집중적으로 개척했다. 그러나 당시 중동 지역에는 우리 공관이 한 곳도 없어 건설업체 홀로 시장을 개척해야 했다. 그런 불리한 여건 하에서도 중동 땅에 먼저 깃발을 꽂은 건설업체가...

전두환 신군부의 12·12 군사쿠데타

돌아올 수 없는 루비콘강 건너다 1979년 12월 12일 오후 6시 30분, 권력 찬탈을 위한 신군부의 움직임이 동시에 네 곳에서 진행되었다. 그 시각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강제 연행하기 위해 허삼수, 우경윤, 성환옥 3명의 대령과 7명의 보안사 수사관이 보안사 서빙고 분실에서 대기했다. 같은 시각 정승화 총장의 합법적인 연행을 뒷받침하기 위해 전두환 보안사령관 겸 계엄사 합수부장은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의 삼청동 총리공관으로 향하고 있었다. 노태우 9사단장, 유학성...

박현채 ‘민족경제론’ 출간

과도한 해외의존도를 극복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 박현채(1934~1995)는 서구 자본의 도움 없이 순수 민족자립 경제를 수립해야 한다고 주창한 진보좌파 경제학자다. 그의 경제학은 1970~1980년대에 외자에 의존한 수출 주도와 성장일변도의 개발독재를 비판하는 세력의 주요 이론으로 각광을 받았다. 박현채는 전남 화순의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다. 중학생이던 해방공간 때 마르크스 이론서를 탐독하고 6․25 발발 후인 1950년 10월 16살의 나이로 빨치산 활동에...

수출 100억 달러 돌파

노동자·농민의 피와 땀, 기업가·관료의 분발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 광복 직후인 1946년 당시 한국의 수출 대상국은 중국과 일본 단 두 나라였다. 연간 수출액은 350만 달러. 미국의 저명한 국제정치전문지 ‘포린어페어’지는 1960년 10월호에서 한국에 대해 “실업자는 노동인구의 25%, 1960년 1인당 국민총생산(GNP)은 100달러 이하, 수출은 2000만 달러, 수입은 2억 달러”라며 “한국의 경제 기적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이탈리아, 이 정도는 알고 떠나자④] 로마(1) : 포로 로마노, 캄피돌리오 광장, 콜로세움,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스페인 광장, 트레비 분수, 판테온 등

[이탈리아, 이 정도는 알고 떠나자④] 로마(1) : 포로 로마노, 캄피돌리오 광장, 콜로세움,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스페인 광장, 트레비 분수, 판테온 등

by 김지지   ☞ 전문(全文)을 다른 곳으로 옮겼습니다. 클릭!!   ■로마, 발길 닿는 곳마다 과거 역사 그대로 살아있어   이탈리아는 가는 곳마다 유적지이고 오늘의 유럽을 있게 한 뿌리이다. 그중 으뜸을 꼽으라면 당연히 발길 닿는 곳마다 과거의 역사가 그대로 살아있는 로마이다. 로마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유산 역사지구’다. 로마시는 단체 관광객이 투어를 하려면 로마인 안내인과 함께 다니는 것을 의무로 해 유적지 관리에 철저하다....

코리아 게이트와 박동선

엄청날 것 같던 박동선 사건, 싱겁게 끝나 해방 후부터 1960년대 후반까지 한미관계는 어느 정도 우여곡절과 갈등은 있었으나 기본적으로 협조와 우호의 관계였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 곳곳에서 파열음이 들리고 균열이 생겼다. 미국은 박정희 정권의 인권 탄압과 독재정치에 실망했고, 한국은 미국이 한국군 현대화를 지원하겠다던 약속을 지키지 않고 1969년의 닉슨독트린 후 오히려 지상군을 철수하기 시작한 것에 불만이 많았다. 박정희 정부는 이런 양국의 갈등이 미국의 대한...

이호왕 ‘유행성 출혈열’ 병원체 발견

갑자기 세포핵 주위의 무수한 황금빛 바이러스 무리가 눈에 들어와 1976년 4월 30일자 조선일보 사회면에 ‘유행성 출혈열 병원․면역체 규명’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크게 실렸다. 세계 예방의학계와 미생물학계가 반 세기 동안 매달렸으나 아무도 풀지 못한 괴질의 정체를 한국인 의학자가 마침내 밝혀냈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화제의 주인공은 이호왕(1928~ ) 박사였다. 그는 함경남도 신흥에서 태어나 함흥의과대학(5년제)에서 의학도의 길을 걷다가 1950년 6․25 전쟁 발발 후...

서울 성북구가 철거한 ‘인촌로’의 주인공 김성수에 대하여

서울 성북구가 철거한 ‘인촌로’의 주인공 김성수에 대하여

by 김지지   서울 성북구가 2월 27일 기존 ‘인촌로’ 도로명판을 철거하고 ‘고려대로’로 교체했다. 인촌로는 지하철 6호선 보문역부터 고대 앞 사거리까지 1.2㎞에 걸친 도로다. 지난 2010년 4월 명칭이 붙었다. 성북구가 인촌로를 없앤 이유는 2009년 대통령 직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일제강점기 친일반민족행위 관련자’ 704명 명단에 김성수를 포함했기 때문이다. 성북구는 인촌로 철거를 “생활 속 일제 잔재를 청산한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하지만...

황석영 첫 창작집 ‘객지’ 출간과 ‘장길산’ 한국일보 연재

늘 ‘경계’ 위를 걷고 걸핏하면 ‘이동’하는 유목의 삶 살아 황석영(1943~ )은 풍운아다. 그의 말대로 만주에서 ‘난민’으로 태어나 늘 ‘경계’ 위를 걷고 걸핏하면 ‘이동’하는 유목의 삶을 살았다. 수 년마다 큰 변화를 겪은 그의 이력을 알고 있는 한 지인이 “다큐멘터리로 만들면 동아시아 현대사가 되겠다”고 할 정도로 그의 삶은 변화무쌍했다. 황석영은 만주 장춘에서 태어났다. 해방 후...

통일벼 첫 전국 재배와 허문회

먹는 문제를 해결한 것은 단군 이래 처음 경험하는 역사적 사건 우리 민족에게 먹거리 부족은 피눈물이었다. 적어도 1960년대까지는 그랬다. 춘궁기인 보릿고개 때만 되면 많은 사람이 풀뿌리나 나무껍질로 연명해야 했고, 미국의 잉여식량 무상원조로 배고픔을 달래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식량 자급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경제성장도, 국가안보도 사상누각일 수밖에 없다는 게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인식이었다. 식량자급을 하려면 품종 개량이 급선무였으나 당시의 국내 농업기술로는 엄두가 나지...

중동 건설 붐… 삼환이 첫 물꼬 튼 후 국내 건설업체 속속 진출

삼환,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두각 나타내고 진가 발휘해 우리 건설업체가 처음 해외로 진출한 것은 전쟁이 한창이던 1960년대의 베트남과 동남아시아였다. 베트남전이 끝난 1970년대 초반에는 유가 급등 덕에 막대한 오일달러를 벌어들여 도로, 병원, 항만 등 인프라 공사를 쏟아내고 있는 중동 지역을 집중적으로 개척했다. 그러나 당시 중동 지역에는 우리 공관이 한 곳도 없어 건설업체 홀로 시장을 개척해야 했다. 그런 불리한 여건 하에서도 중동 땅에 먼저 깃발을 꽂은 건설업체가...

전두환 신군부의 12·12 군사쿠데타

돌아올 수 없는 루비콘강 건너다 1979년 12월 12일 오후 6시 30분, 권력 찬탈을 위한 신군부의 움직임이 동시에 네 곳에서 진행되었다. 그 시각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강제 연행하기 위해 허삼수, 우경윤, 성환옥 3명의 대령과 7명의 보안사 수사관이 보안사 서빙고 분실에서 대기했다. 같은 시각 정승화 총장의 합법적인 연행을 뒷받침하기 위해 전두환 보안사령관 겸 계엄사 합수부장은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의 삼청동 총리공관으로 향하고 있었다. 노태우 9사단장, 유학성...

박현채 ‘민족경제론’ 출간

과도한 해외의존도를 극복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 박현채(1934~1995)는 서구 자본의 도움 없이 순수 민족자립 경제를 수립해야 한다고 주창한 진보좌파 경제학자다. 그의 경제학은 1970~1980년대에 외자에 의존한 수출 주도와 성장일변도의 개발독재를 비판하는 세력의 주요 이론으로 각광을 받았다. 박현채는 전남 화순의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다. 중학생이던 해방공간 때 마르크스 이론서를 탐독하고 6․25 발발 후인 1950년 10월 16살의 나이로 빨치산 활동에...

수출 100억 달러 돌파

노동자·농민의 피와 땀, 기업가·관료의 분발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 광복 직후인 1946년 당시 한국의 수출 대상국은 중국과 일본 단 두 나라였다. 연간 수출액은 350만 달러. 미국의 저명한 국제정치전문지 ‘포린어페어’지는 1960년 10월호에서 한국에 대해 “실업자는 노동인구의 25%, 1960년 1인당 국민총생산(GNP)은 100달러 이하, 수출은 2000만 달러, 수입은 2억 달러”라며 “한국의 경제 기적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이탈리아, 이 정도는 알고 떠나자④] 로마(1) : 포로 로마노, 캄피돌리오 광장, 콜로세움,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스페인 광장, 트레비 분수, 판테온 등

[이탈리아, 이 정도는 알고 떠나자④] 로마(1) : 포로 로마노, 캄피돌리오 광장, 콜로세움,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스페인 광장, 트레비 분수, 판테온 등

by 김지지   ☞ 전문(全文)을 다른 곳으로 옮겼습니다. 클릭!!   ■로마, 발길 닿는 곳마다 과거 역사 그대로 살아있어   이탈리아는 가는 곳마다 유적지이고 오늘의 유럽을 있게 한 뿌리이다. 그중 으뜸을 꼽으라면 당연히 발길 닿는 곳마다 과거의 역사가 그대로 살아있는 로마이다. 로마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유산 역사지구’다. 로마시는 단체 관광객이 투어를 하려면 로마인 안내인과 함께 다니는 것을 의무로 해 유적지 관리에 철저하다....

코리아 게이트와 박동선

엄청날 것 같던 박동선 사건, 싱겁게 끝나 해방 후부터 1960년대 후반까지 한미관계는 어느 정도 우여곡절과 갈등은 있었으나 기본적으로 협조와 우호의 관계였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 곳곳에서 파열음이 들리고 균열이 생겼다. 미국은 박정희 정권의 인권 탄압과 독재정치에 실망했고, 한국은 미국이 한국군 현대화를 지원하겠다던 약속을 지키지 않고 1969년의 닉슨독트린 후 오히려 지상군을 철수하기 시작한 것에 불만이 많았다. 박정희 정부는 이런 양국의 갈등이 미국의 대한...

이호왕 ‘유행성 출혈열’ 병원체 발견

갑자기 세포핵 주위의 무수한 황금빛 바이러스 무리가 눈에 들어와 1976년 4월 30일자 조선일보 사회면에 ‘유행성 출혈열 병원․면역체 규명’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크게 실렸다. 세계 예방의학계와 미생물학계가 반 세기 동안 매달렸으나 아무도 풀지 못한 괴질의 정체를 한국인 의학자가 마침내 밝혀냈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화제의 주인공은 이호왕(1928~ ) 박사였다. 그는 함경남도 신흥에서 태어나 함흥의과대학(5년제)에서 의학도의 길을 걷다가 1950년 6․25 전쟁 발발 후...

서울 성북구가 철거한 ‘인촌로’의 주인공 김성수에 대하여

서울 성북구가 철거한 ‘인촌로’의 주인공 김성수에 대하여

by 김지지   서울 성북구가 2월 27일 기존 ‘인촌로’ 도로명판을 철거하고 ‘고려대로’로 교체했다. 인촌로는 지하철 6호선 보문역부터 고대 앞 사거리까지 1.2㎞에 걸친 도로다. 지난 2010년 4월 명칭이 붙었다. 성북구가 인촌로를 없앤 이유는 2009년 대통령 직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일제강점기 친일반민족행위 관련자’ 704명 명단에 김성수를 포함했기 때문이다. 성북구는 인촌로 철거를 “생활 속 일제 잔재를 청산한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하지만...

황석영 첫 창작집 ‘객지’ 출간과 ‘장길산’ 한국일보 연재

늘 ‘경계’ 위를 걷고 걸핏하면 ‘이동’하는 유목의 삶 살아 황석영(1943~ )은 풍운아다. 그의 말대로 만주에서 ‘난민’으로 태어나 늘 ‘경계’ 위를 걷고 걸핏하면 ‘이동’하는 유목의 삶을 살았다. 수 년마다 큰 변화를 겪은 그의 이력을 알고 있는 한 지인이 “다큐멘터리로 만들면 동아시아 현대사가 되겠다”고 할 정도로 그의 삶은 변화무쌍했다. 황석영은 만주 장춘에서 태어났다. 해방 후...

통일벼 첫 전국 재배와 허문회

먹는 문제를 해결한 것은 단군 이래 처음 경험하는 역사적 사건 우리 민족에게 먹거리 부족은 피눈물이었다. 적어도 1960년대까지는 그랬다. 춘궁기인 보릿고개 때만 되면 많은 사람이 풀뿌리나 나무껍질로 연명해야 했고, 미국의 잉여식량 무상원조로 배고픔을 달래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식량 자급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경제성장도, 국가안보도 사상누각일 수밖에 없다는 게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인식이었다. 식량자급을 하려면 품종 개량이 급선무였으나 당시의 국내 농업기술로는 엄두가 나지...

중동 건설 붐… 삼환이 첫 물꼬 튼 후 국내 건설업체 속속 진출

삼환,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두각 나타내고 진가 발휘해 우리 건설업체가 처음 해외로 진출한 것은 전쟁이 한창이던 1960년대의 베트남과 동남아시아였다. 베트남전이 끝난 1970년대 초반에는 유가 급등 덕에 막대한 오일달러를 벌어들여 도로, 병원, 항만 등 인프라 공사를 쏟아내고 있는 중동 지역을 집중적으로 개척했다. 그러나 당시 중동 지역에는 우리 공관이 한 곳도 없어 건설업체 홀로 시장을 개척해야 했다. 그런 불리한 여건 하에서도 중동 땅에 먼저 깃발을 꽂은 건설업체가...

전두환 신군부의 12·12 군사쿠데타

돌아올 수 없는 루비콘강 건너다 1979년 12월 12일 오후 6시 30분, 권력 찬탈을 위한 신군부의 움직임이 동시에 네 곳에서 진행되었다. 그 시각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강제 연행하기 위해 허삼수, 우경윤, 성환옥 3명의 대령과 7명의 보안사 수사관이 보안사 서빙고 분실에서 대기했다. 같은 시각 정승화 총장의 합법적인 연행을 뒷받침하기 위해 전두환 보안사령관 겸 계엄사 합수부장은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의 삼청동 총리공관으로 향하고 있었다. 노태우 9사단장, 유학성...

박현채 ‘민족경제론’ 출간

과도한 해외의존도를 극복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 박현채(1934~1995)는 서구 자본의 도움 없이 순수 민족자립 경제를 수립해야 한다고 주창한 진보좌파 경제학자다. 그의 경제학은 1970~1980년대에 외자에 의존한 수출 주도와 성장일변도의 개발독재를 비판하는 세력의 주요 이론으로 각광을 받았다. 박현채는 전남 화순의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다. 중학생이던 해방공간 때 마르크스 이론서를 탐독하고 6․25 발발 후인 1950년 10월 16살의 나이로 빨치산 활동에...

수출 100억 달러 돌파

노동자·농민의 피와 땀, 기업가·관료의 분발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 광복 직후인 1946년 당시 한국의 수출 대상국은 중국과 일본 단 두 나라였다. 연간 수출액은 350만 달러. 미국의 저명한 국제정치전문지 ‘포린어페어’지는 1960년 10월호에서 한국에 대해 “실업자는 노동인구의 25%, 1960년 1인당 국민총생산(GNP)은 100달러 이하, 수출은 2000만 달러, 수입은 2억 달러”라며 “한국의 경제 기적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이탈리아, 이 정도는 알고 떠나자④] 로마(1) : 포로 로마노, 캄피돌리오 광장, 콜로세움,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스페인 광장, 트레비 분수, 판테온 등

[이탈리아, 이 정도는 알고 떠나자④] 로마(1) : 포로 로마노, 캄피돌리오 광장, 콜로세움,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스페인 광장, 트레비 분수, 판테온 등

by 김지지   ☞ 전문(全文)을 다른 곳으로 옮겼습니다. 클릭!!   ■로마, 발길 닿는 곳마다 과거 역사 그대로 살아있어   이탈리아는 가는 곳마다 유적지이고 오늘의 유럽을 있게 한 뿌리이다. 그중 으뜸을 꼽으라면 당연히 발길 닿는 곳마다 과거의 역사가 그대로 살아있는 로마이다. 로마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유산 역사지구’다. 로마시는 단체 관광객이 투어를 하려면 로마인 안내인과 함께 다니는 것을 의무로 해 유적지 관리에 철저하다....

코리아 게이트와 박동선

엄청날 것 같던 박동선 사건, 싱겁게 끝나 해방 후부터 1960년대 후반까지 한미관계는 어느 정도 우여곡절과 갈등은 있었으나 기본적으로 협조와 우호의 관계였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 곳곳에서 파열음이 들리고 균열이 생겼다. 미국은 박정희 정권의 인권 탄압과 독재정치에 실망했고, 한국은 미국이 한국군 현대화를 지원하겠다던 약속을 지키지 않고 1969년의 닉슨독트린 후 오히려 지상군을 철수하기 시작한 것에 불만이 많았다. 박정희 정부는 이런 양국의 갈등이 미국의 대한...

이호왕 ‘유행성 출혈열’ 병원체 발견

갑자기 세포핵 주위의 무수한 황금빛 바이러스 무리가 눈에 들어와 1976년 4월 30일자 조선일보 사회면에 ‘유행성 출혈열 병원․면역체 규명’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크게 실렸다. 세계 예방의학계와 미생물학계가 반 세기 동안 매달렸으나 아무도 풀지 못한 괴질의 정체를 한국인 의학자가 마침내 밝혀냈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화제의 주인공은 이호왕(1928~ ) 박사였다. 그는 함경남도 신흥에서 태어나 함흥의과대학(5년제)에서 의학도의 길을 걷다가 1950년 6․25 전쟁 발발 후...

서울 성북구가 철거한 ‘인촌로’의 주인공 김성수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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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지   서울 성북구가 2월 27일 기존 ‘인촌로’ 도로명판을 철거하고 ‘고려대로’로 교체했다. 인촌로는 지하철 6호선 보문역부터 고대 앞 사거리까지 1.2㎞에 걸친 도로다. 지난 2010년 4월 명칭이 붙었다. 성북구가 인촌로를 없앤 이유는 2009년 대통령 직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일제강점기 친일반민족행위 관련자’ 704명 명단에 김성수를 포함했기 때문이다. 성북구는 인촌로 철거를 “생활 속 일제 잔재를 청산한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하지만...

황석영 첫 창작집 ‘객지’ 출간과 ‘장길산’ 한국일보 연재

늘 ‘경계’ 위를 걷고 걸핏하면 ‘이동’하는 유목의 삶 살아 황석영(1943~ )은 풍운아다. 그의 말대로 만주에서 ‘난민’으로 태어나 늘 ‘경계’ 위를 걷고 걸핏하면 ‘이동’하는 유목의 삶을 살았다. 수 년마다 큰 변화를 겪은 그의 이력을 알고 있는 한 지인이 “다큐멘터리로 만들면 동아시아 현대사가 되겠다”고 할 정도로 그의 삶은 변화무쌍했다. 황석영은 만주 장춘에서 태어났다. 해방 후...

통일벼 첫 전국 재배와 허문회

먹는 문제를 해결한 것은 단군 이래 처음 경험하는 역사적 사건 우리 민족에게 먹거리 부족은 피눈물이었다. 적어도 1960년대까지는 그랬다. 춘궁기인 보릿고개 때만 되면 많은 사람이 풀뿌리나 나무껍질로 연명해야 했고, 미국의 잉여식량 무상원조로 배고픔을 달래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식량 자급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경제성장도, 국가안보도 사상누각일 수밖에 없다는 게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인식이었다. 식량자급을 하려면 품종 개량이 급선무였으나 당시의 국내 농업기술로는 엄두가 나지...

중동 건설 붐… 삼환이 첫 물꼬 튼 후 국내 건설업체 속속 진출

삼환,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두각 나타내고 진가 발휘해 우리 건설업체가 처음 해외로 진출한 것은 전쟁이 한창이던 1960년대의 베트남과 동남아시아였다. 베트남전이 끝난 1970년대 초반에는 유가 급등 덕에 막대한 오일달러를 벌어들여 도로, 병원, 항만 등 인프라 공사를 쏟아내고 있는 중동 지역을 집중적으로 개척했다. 그러나 당시 중동 지역에는 우리 공관이 한 곳도 없어 건설업체 홀로 시장을 개척해야 했다. 그런 불리한 여건 하에서도 중동 땅에 먼저 깃발을 꽂은 건설업체가...

전두환 신군부의 12·12 군사쿠데타

돌아올 수 없는 루비콘강 건너다 1979년 12월 12일 오후 6시 30분, 권력 찬탈을 위한 신군부의 움직임이 동시에 네 곳에서 진행되었다. 그 시각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강제 연행하기 위해 허삼수, 우경윤, 성환옥 3명의 대령과 7명의 보안사 수사관이 보안사 서빙고 분실에서 대기했다. 같은 시각 정승화 총장의 합법적인 연행을 뒷받침하기 위해 전두환 보안사령관 겸 계엄사 합수부장은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의 삼청동 총리공관으로 향하고 있었다. 노태우 9사단장, 유학성...

박현채 ‘민족경제론’ 출간

과도한 해외의존도를 극복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 박현채(1934~1995)는 서구 자본의 도움 없이 순수 민족자립 경제를 수립해야 한다고 주창한 진보좌파 경제학자다. 그의 경제학은 1970~1980년대에 외자에 의존한 수출 주도와 성장일변도의 개발독재를 비판하는 세력의 주요 이론으로 각광을 받았다. 박현채는 전남 화순의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다. 중학생이던 해방공간 때 마르크스 이론서를 탐독하고 6․25 발발 후인 1950년 10월 16살의 나이로 빨치산 활동에...

수출 100억 달러 돌파

노동자·농민의 피와 땀, 기업가·관료의 분발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 광복 직후인 1946년 당시 한국의 수출 대상국은 중국과 일본 단 두 나라였다. 연간 수출액은 350만 달러. 미국의 저명한 국제정치전문지 ‘포린어페어’지는 1960년 10월호에서 한국에 대해 “실업자는 노동인구의 25%, 1960년 1인당 국민총생산(GNP)은 100달러 이하, 수출은 2000만 달러, 수입은 2억 달러”라며 “한국의 경제 기적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이탈리아, 이 정도는 알고 떠나자④] 로마(1) : 포로 로마노, 캄피돌리오 광장, 콜로세움,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스페인 광장, 트레비 분수, 판테온 등

[이탈리아, 이 정도는 알고 떠나자④] 로마(1) : 포로 로마노, 캄피돌리오 광장, 콜로세움,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스페인 광장, 트레비 분수, 판테온 등

by 김지지   ☞ 전문(全文)을 다른 곳으로 옮겼습니다. 클릭!!   ■로마, 발길 닿는 곳마다 과거 역사 그대로 살아있어   이탈리아는 가는 곳마다 유적지이고 오늘의 유럽을 있게 한 뿌리이다. 그중 으뜸을 꼽으라면 당연히 발길 닿는 곳마다 과거의 역사가 그대로 살아있는 로마이다. 로마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유산 역사지구’다. 로마시는 단체 관광객이 투어를 하려면 로마인 안내인과 함께 다니는 것을 의무로 해 유적지 관리에 철저하다....

코리아 게이트와 박동선

엄청날 것 같던 박동선 사건, 싱겁게 끝나 해방 후부터 1960년대 후반까지 한미관계는 어느 정도 우여곡절과 갈등은 있었으나 기본적으로 협조와 우호의 관계였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 곳곳에서 파열음이 들리고 균열이 생겼다. 미국은 박정희 정권의 인권 탄압과 독재정치에 실망했고, 한국은 미국이 한국군 현대화를 지원하겠다던 약속을 지키지 않고 1969년의 닉슨독트린 후 오히려 지상군을 철수하기 시작한 것에 불만이 많았다. 박정희 정부는 이런 양국의 갈등이 미국의 대한...

이호왕 ‘유행성 출혈열’ 병원체 발견

갑자기 세포핵 주위의 무수한 황금빛 바이러스 무리가 눈에 들어와 1976년 4월 30일자 조선일보 사회면에 ‘유행성 출혈열 병원․면역체 규명’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크게 실렸다. 세계 예방의학계와 미생물학계가 반 세기 동안 매달렸으나 아무도 풀지 못한 괴질의 정체를 한국인 의학자가 마침내 밝혀냈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화제의 주인공은 이호왕(1928~ ) 박사였다. 그는 함경남도 신흥에서 태어나 함흥의과대학(5년제)에서 의학도의 길을 걷다가 1950년 6․25 전쟁 발발 후...

서울 성북구가 철거한 ‘인촌로’의 주인공 김성수에 대하여

서울 성북구가 철거한 ‘인촌로’의 주인공 김성수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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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첫 창작집 ‘객지’ 출간과 ‘장길산’ 한국일보 연재

늘 ‘경계’ 위를 걷고 걸핏하면 ‘이동’하는 유목의 삶 살아 황석영(1943~ )은 풍운아다. 그의 말대로 만주에서 ‘난민’으로 태어나 늘 ‘경계’ 위를 걷고 걸핏하면 ‘이동’하는 유목의 삶을 살았다. 수 년마다 큰 변화를 겪은 그의 이력을 알고 있는 한 지인이 “다큐멘터리로 만들면 동아시아 현대사가 되겠다”고 할 정도로 그의 삶은 변화무쌍했다. 황석영은 만주 장춘에서 태어났다. 해방 후...

통일벼 첫 전국 재배와 허문회

먹는 문제를 해결한 것은 단군 이래 처음 경험하는 역사적 사건 우리 민족에게 먹거리 부족은 피눈물이었다. 적어도 1960년대까지는 그랬다. 춘궁기인 보릿고개 때만 되면 많은 사람이 풀뿌리나 나무껍질로 연명해야 했고, 미국의 잉여식량 무상원조로 배고픔을 달래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식량 자급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경제성장도, 국가안보도 사상누각일 수밖에 없다는 게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인식이었다. 식량자급을 하려면 품종 개량이 급선무였으나 당시의 국내 농업기술로는 엄두가 나지...

중동 건설 붐… 삼환이 첫 물꼬 튼 후 국내 건설업체 속속 진출

삼환,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두각 나타내고 진가 발휘해 우리 건설업체가 처음 해외로 진출한 것은 전쟁이 한창이던 1960년대의 베트남과 동남아시아였다. 베트남전이 끝난 1970년대 초반에는 유가 급등 덕에 막대한 오일달러를 벌어들여 도로, 병원, 항만 등 인프라 공사를 쏟아내고 있는 중동 지역을 집중적으로 개척했다. 그러나 당시 중동 지역에는 우리 공관이 한 곳도 없어 건설업체 홀로 시장을 개척해야 했다. 그런 불리한 여건 하에서도 중동 땅에 먼저 깃발을 꽂은 건설업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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