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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통주사제 메사돈 중독 파동

1960년대 중반, 농어촌과 산간 벽지 등에서 갑자기 마약 중독자가 급증했다. 정부가 조사에 나섰으나 진통 주사제가 범람하는 것 말고는 딱히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주사제를 수차례 검사했지만 그때마다 알 수 없는 제3의 물질 만 검출됐다. 보건 당국이 갈피를 못잡는 동안 중독자는 계속 늘어갔다. 배·머리가 아플 때, 나무하러 가거나 바다에 들어갈 때 한 대씩 맞은 진통제로 사람들의 몸은 서서히 망가지고 있었다. 정부는 1965년 3월 현재 중독자가 1만 5000명에서 2만...

은행강도 연인 보니와 클라이드 사살

1934년 5월 23일, 포드자동차를 타고 미국 루이지애나주 깁스랜드 부근 고속도로를 질주하던 한쌍의 남녀가 잠복해 있는 경찰들이 무차별로 쏜 87발의 기총소사 세례를 받고 현장에서 즉사했다. 남자는 벌집이 된 차 운전석에서 한 손에 총을 든 채, 여자는 무릎에 기관총을 얹혀놓고 양 무릎 사이에 머리를 수그린 채 죽어있었다. 두 사람은 미주리주, 오클라호마주, 텍사스주에서 1년 9개월간 주유소, 시골은행, 간이식당 등을 휘저으며 12명을 살해하고 강도행각을 벌여온 은행강도...

한반도의 통일 문제를 다룬 제네바 회담 개막

참가국은 모두 19개국… 유엔군 측 15개국, 공산 측 3개국 1953년 체결된 6·25 휴전협정은 군사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정이었을 뿐 전쟁의 원인이 된 통일 문제 등의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다. 이 문제를 매듭짓기 위해 휴전협정에 명시한 조문이 제4조 60항이다.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보장하기 위해 휴전협정이 효력을 발생한 후 3개월 내에 고위 정치회담을 소집하고 한반도로부터 외국군 철수와 한국 문제의 평화적 해결 등의 문제를 협의할 것을...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 사망

“당연히 위고지!” 영국에 셰익스피어, 독일에 괴테, 러시아에 톨스토이가 있다면 프랑스의 문호는 누구냐는 질문에 앙드레 지드가 가리킨 그 빅토르 위고가 1885년 5월 22일 세상을 떠났다. “나는 가난한 사람들의 영구차에 실려 무덤으로 가기를 원한다”는 그의 유언에 따라 볼품없는 수레에 실려 영웅들이 묻힌다는 팡테옹에 묻혔다. 그의 마지막 길을 보기위해 200만 명이 운집했다. 위고는 위대한 작가이면서 열렬한 공화파 정치가였고 사형 폐지를 주장한 인도주의자였다....

청국-미국, 조선 빠진 채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조미(朝美)수호통상조약’은 19세기 말 숨가쁘게 전개되던 동아시아 국제 외교의 산물이었다. 미국에 조선의 개항은 대(對) 아시아 무역팽창정책을 펼치고 러시아의 남진을 저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었다. 강제개항을 시도했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하자 포함외교(砲艦外交)를 포기하고 청의 중재를 통한 개항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청의 이홍장 역시 러시아의 남침과 일본의 대한침략을 저지하기 위해 조선에 미국 세력을 끌어들일 필요가 있었다. 대한(對韓) 종주권 유지를 위해서였다....

프랑스 파리코뮌 ‘피의 일주일’ 시작

나폴레옹 3세를 포로로 잡아 사실상 승리를 확정한 프로이센군은 1870년 9월 중순부터 파리 공략에 나섰다. 4개월을 버텼으나 더 이상 저항할 수 없었던 프랑스는 1871년 1월 28일 항복을 선언했다. 프로이센군이 개선문으로 당당히 입성할 때 파리 시민들은 집집마다 검은 깃발을 걸거나 밤이 되도 등불을 켜지 않는 방법으로 무언의 저항을 계속했다. 프랑스군은 무장해제당하고 정부는 비스마르크의 뜻대로 재조직됐다. 2월 8일 실시된 국민의회 선거에서는 보수파인 왕당파가 공화파에...

사도세자. 뒤주에서 8일간 몸부림치다 사망

조선조 19대 임금 숙종은 나인 출신의 희빈 장씨로부터 균을, 무수리 출신의 숙빈 최씨로부터 금을 얻었다. 숙종 사후 균은 경종이 됐고 금은 영조가 됐다. 그러나 세자 균이 경종으로 즉위하기 전부터 병약한 탓에 조정은 경종과 영조의 즉위를 둘러싸고 당파간의 죽기살기식 암투로 살벌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소론은 경종을, 노론은 영조를 지지했다. 경종 즉위 후 승자가 된 소론은 ‘신임사화’ 등을 일으켜 수십·수백의 노론을 처형하거나 유배시켰다. 경종이 재위 5년 만에 병사하자...

서울대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

1964년 5월 20일 오후1시, 2000여 명의 서울대생과 1000여 명의 시민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동숭동 문리대 교정에서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이 열렸다. ‘민족적 민주주의’는 인도네시아 수카르노 대통령이 제창한 ‘교도(敎導) 민주주의’를 모방해 이론화한 5·16혁명 세력의 정치 철학이었다. ‘교도 민주주의’는 국민들의 지적수준이 낮은 후진국에는 서구 의회민주주의가 적합치 않기 때문에 인도네시아에서도 지도자들이 민주주의를 교도해나가야 한다는 다분히 권위주의적이고...

찰스 린드버그, 세계최초로 대서양 무착륙 단독비행에 성공

1927년 5월 20일 오전 7시52분, 25살의 우편물 조종사 찰스 린드버그가 뉴욕 롱아일랜드의 루스벨트 비행장을 힘차게 날아올랐다. 목적지는 유럽의 파리였다. 논스톱으로 가야했다. 8년 전 뉴욕의 한 호텔 경영자가 뉴욕∼파리 간을 논스톱으로 비행하는 사람에게 2만 5000달러의 상금을 주겠다고 발표한 것이 그를 여기까지 오게 했다. 사실 대서양 논스톱 비행은 1919년 6월에 아일랜드의 울콕과 브라운이 이미 성공한 바 있어 새삼스러운 게 아니었다. 그러나 이들의 항로가...

혁신계 신문 ‘민족일보’ 강제 폐간

1961년 5월 19일, 4·19 혁명 후 혁신세력의 급속한 성장에 맞춰 평화통일론과 남북협상론을 기치로 내걸었던 혁신계 신문 ‘민족일보’가 지령 92호를 끝으로 폐간됐다. 발행인 조용수는 하루전 구속됐다. 조용수는 6·25 때 일본으로 건너가 4·19가 일어나던 그 해 6월에 귀국한 재일 거류민단의 간부 출신이었다. 그는 4·19 후 한국정치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혁신정당인 사회대중당 후보로 7·29 총선에 뛰어들었으나 고배를 마시고 1961년 2월 13일 민족일보를...

진통주사제 메사돈 중독 파동

1960년대 중반, 농어촌과 산간 벽지 등에서 갑자기 마약 중독자가 급증했다. 정부가 조사에 나섰으나 진통 주사제가 범람하는 것 말고는 딱히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주사제를 수차례 검사했지만 그때마다 알 수 없는 제3의 물질 만 검출됐다. 보건 당국이 갈피를 못잡는 동안 중독자는 계속 늘어갔다. 배·머리가 아플 때, 나무하러 가거나 바다에 들어갈 때 한 대씩 맞은 진통제로 사람들의 몸은 서서히 망가지고 있었다. 정부는 1965년 3월 현재 중독자가 1만 5000명에서 2만...

은행강도 연인 보니와 클라이드 사살

1934년 5월 23일, 포드자동차를 타고 미국 루이지애나주 깁스랜드 부근 고속도로를 질주하던 한쌍의 남녀가 잠복해 있는 경찰들이 무차별로 쏜 87발의 기총소사 세례를 받고 현장에서 즉사했다. 남자는 벌집이 된 차 운전석에서 한 손에 총을 든 채, 여자는 무릎에 기관총을 얹혀놓고 양 무릎 사이에 머리를 수그린 채 죽어있었다. 두 사람은 미주리주, 오클라호마주, 텍사스주에서 1년 9개월간 주유소, 시골은행, 간이식당 등을 휘저으며 12명을 살해하고 강도행각을 벌여온 은행강도...

한반도의 통일 문제를 다룬 제네바 회담 개막

참가국은 모두 19개국… 유엔군 측 15개국, 공산 측 3개국 1953년 체결된 6·25 휴전협정은 군사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정이었을 뿐 전쟁의 원인이 된 통일 문제 등의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다. 이 문제를 매듭짓기 위해 휴전협정에 명시한 조문이 제4조 60항이다.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보장하기 위해 휴전협정이 효력을 발생한 후 3개월 내에 고위 정치회담을 소집하고 한반도로부터 외국군 철수와 한국 문제의 평화적 해결 등의 문제를 협의할 것을...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 사망

“당연히 위고지!” 영국에 셰익스피어, 독일에 괴테, 러시아에 톨스토이가 있다면 프랑스의 문호는 누구냐는 질문에 앙드레 지드가 가리킨 그 빅토르 위고가 1885년 5월 22일 세상을 떠났다. “나는 가난한 사람들의 영구차에 실려 무덤으로 가기를 원한다”는 그의 유언에 따라 볼품없는 수레에 실려 영웅들이 묻힌다는 팡테옹에 묻혔다. 그의 마지막 길을 보기위해 200만 명이 운집했다. 위고는 위대한 작가이면서 열렬한 공화파 정치가였고 사형 폐지를 주장한 인도주의자였다....

청국-미국, 조선 빠진 채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조미(朝美)수호통상조약’은 19세기 말 숨가쁘게 전개되던 동아시아 국제 외교의 산물이었다. 미국에 조선의 개항은 대(對) 아시아 무역팽창정책을 펼치고 러시아의 남진을 저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었다. 강제개항을 시도했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하자 포함외교(砲艦外交)를 포기하고 청의 중재를 통한 개항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청의 이홍장 역시 러시아의 남침과 일본의 대한침략을 저지하기 위해 조선에 미국 세력을 끌어들일 필요가 있었다. 대한(對韓) 종주권 유지를 위해서였다....

프랑스 파리코뮌 ‘피의 일주일’ 시작

나폴레옹 3세를 포로로 잡아 사실상 승리를 확정한 프로이센군은 1870년 9월 중순부터 파리 공략에 나섰다. 4개월을 버텼으나 더 이상 저항할 수 없었던 프랑스는 1871년 1월 28일 항복을 선언했다. 프로이센군이 개선문으로 당당히 입성할 때 파리 시민들은 집집마다 검은 깃발을 걸거나 밤이 되도 등불을 켜지 않는 방법으로 무언의 저항을 계속했다. 프랑스군은 무장해제당하고 정부는 비스마르크의 뜻대로 재조직됐다. 2월 8일 실시된 국민의회 선거에서는 보수파인 왕당파가 공화파에...

사도세자. 뒤주에서 8일간 몸부림치다 사망

조선조 19대 임금 숙종은 나인 출신의 희빈 장씨로부터 균을, 무수리 출신의 숙빈 최씨로부터 금을 얻었다. 숙종 사후 균은 경종이 됐고 금은 영조가 됐다. 그러나 세자 균이 경종으로 즉위하기 전부터 병약한 탓에 조정은 경종과 영조의 즉위를 둘러싸고 당파간의 죽기살기식 암투로 살벌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소론은 경종을, 노론은 영조를 지지했다. 경종 즉위 후 승자가 된 소론은 ‘신임사화’ 등을 일으켜 수십·수백의 노론을 처형하거나 유배시켰다. 경종이 재위 5년 만에 병사하자...

서울대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

1964년 5월 20일 오후1시, 2000여 명의 서울대생과 1000여 명의 시민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동숭동 문리대 교정에서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이 열렸다. ‘민족적 민주주의’는 인도네시아 수카르노 대통령이 제창한 ‘교도(敎導) 민주주의’를 모방해 이론화한 5·16혁명 세력의 정치 철학이었다. ‘교도 민주주의’는 국민들의 지적수준이 낮은 후진국에는 서구 의회민주주의가 적합치 않기 때문에 인도네시아에서도 지도자들이 민주주의를 교도해나가야 한다는 다분히 권위주의적이고...

찰스 린드버그, 세계최초로 대서양 무착륙 단독비행에 성공

1927년 5월 20일 오전 7시52분, 25살의 우편물 조종사 찰스 린드버그가 뉴욕 롱아일랜드의 루스벨트 비행장을 힘차게 날아올랐다. 목적지는 유럽의 파리였다. 논스톱으로 가야했다. 8년 전 뉴욕의 한 호텔 경영자가 뉴욕∼파리 간을 논스톱으로 비행하는 사람에게 2만 5000달러의 상금을 주겠다고 발표한 것이 그를 여기까지 오게 했다. 사실 대서양 논스톱 비행은 1919년 6월에 아일랜드의 울콕과 브라운이 이미 성공한 바 있어 새삼스러운 게 아니었다. 그러나 이들의 항로가...

혁신계 신문 ‘민족일보’ 강제 폐간

1961년 5월 19일, 4·19 혁명 후 혁신세력의 급속한 성장에 맞춰 평화통일론과 남북협상론을 기치로 내걸었던 혁신계 신문 ‘민족일보’가 지령 92호를 끝으로 폐간됐다. 발행인 조용수는 하루전 구속됐다. 조용수는 6·25 때 일본으로 건너가 4·19가 일어나던 그 해 6월에 귀국한 재일 거류민단의 간부 출신이었다. 그는 4·19 후 한국정치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혁신정당인 사회대중당 후보로 7·29 총선에 뛰어들었으나 고배를 마시고 1961년 2월 13일 민족일보를...

진통주사제 메사돈 중독 파동

1960년대 중반, 농어촌과 산간 벽지 등에서 갑자기 마약 중독자가 급증했다. 정부가 조사에 나섰으나 진통 주사제가 범람하는 것 말고는 딱히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주사제를 수차례 검사했지만 그때마다 알 수 없는 제3의 물질 만 검출됐다. 보건 당국이 갈피를 못잡는 동안 중독자는 계속 늘어갔다. 배·머리가 아플 때, 나무하러 가거나 바다에 들어갈 때 한 대씩 맞은 진통제로 사람들의 몸은 서서히 망가지고 있었다. 정부는 1965년 3월 현재 중독자가 1만 5000명에서 2만...

은행강도 연인 보니와 클라이드 사살

1934년 5월 23일, 포드자동차를 타고 미국 루이지애나주 깁스랜드 부근 고속도로를 질주하던 한쌍의 남녀가 잠복해 있는 경찰들이 무차별로 쏜 87발의 기총소사 세례를 받고 현장에서 즉사했다. 남자는 벌집이 된 차 운전석에서 한 손에 총을 든 채, 여자는 무릎에 기관총을 얹혀놓고 양 무릎 사이에 머리를 수그린 채 죽어있었다. 두 사람은 미주리주, 오클라호마주, 텍사스주에서 1년 9개월간 주유소, 시골은행, 간이식당 등을 휘저으며 12명을 살해하고 강도행각을 벌여온 은행강도...

한반도의 통일 문제를 다룬 제네바 회담 개막

참가국은 모두 19개국… 유엔군 측 15개국, 공산 측 3개국 1953년 체결된 6·25 휴전협정은 군사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정이었을 뿐 전쟁의 원인이 된 통일 문제 등의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다. 이 문제를 매듭짓기 위해 휴전협정에 명시한 조문이 제4조 60항이다.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보장하기 위해 휴전협정이 효력을 발생한 후 3개월 내에 고위 정치회담을 소집하고 한반도로부터 외국군 철수와 한국 문제의 평화적 해결 등의 문제를 협의할 것을...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 사망

“당연히 위고지!” 영국에 셰익스피어, 독일에 괴테, 러시아에 톨스토이가 있다면 프랑스의 문호는 누구냐는 질문에 앙드레 지드가 가리킨 그 빅토르 위고가 1885년 5월 22일 세상을 떠났다. “나는 가난한 사람들의 영구차에 실려 무덤으로 가기를 원한다”는 그의 유언에 따라 볼품없는 수레에 실려 영웅들이 묻힌다는 팡테옹에 묻혔다. 그의 마지막 길을 보기위해 200만 명이 운집했다. 위고는 위대한 작가이면서 열렬한 공화파 정치가였고 사형 폐지를 주장한 인도주의자였다....

청국-미국, 조선 빠진 채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조미(朝美)수호통상조약’은 19세기 말 숨가쁘게 전개되던 동아시아 국제 외교의 산물이었다. 미국에 조선의 개항은 대(對) 아시아 무역팽창정책을 펼치고 러시아의 남진을 저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었다. 강제개항을 시도했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하자 포함외교(砲艦外交)를 포기하고 청의 중재를 통한 개항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청의 이홍장 역시 러시아의 남침과 일본의 대한침략을 저지하기 위해 조선에 미국 세력을 끌어들일 필요가 있었다. 대한(對韓) 종주권 유지를 위해서였다....

프랑스 파리코뮌 ‘피의 일주일’ 시작

나폴레옹 3세를 포로로 잡아 사실상 승리를 확정한 프로이센군은 1870년 9월 중순부터 파리 공략에 나섰다. 4개월을 버텼으나 더 이상 저항할 수 없었던 프랑스는 1871년 1월 28일 항복을 선언했다. 프로이센군이 개선문으로 당당히 입성할 때 파리 시민들은 집집마다 검은 깃발을 걸거나 밤이 되도 등불을 켜지 않는 방법으로 무언의 저항을 계속했다. 프랑스군은 무장해제당하고 정부는 비스마르크의 뜻대로 재조직됐다. 2월 8일 실시된 국민의회 선거에서는 보수파인 왕당파가 공화파에...

사도세자. 뒤주에서 8일간 몸부림치다 사망

조선조 19대 임금 숙종은 나인 출신의 희빈 장씨로부터 균을, 무수리 출신의 숙빈 최씨로부터 금을 얻었다. 숙종 사후 균은 경종이 됐고 금은 영조가 됐다. 그러나 세자 균이 경종으로 즉위하기 전부터 병약한 탓에 조정은 경종과 영조의 즉위를 둘러싸고 당파간의 죽기살기식 암투로 살벌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소론은 경종을, 노론은 영조를 지지했다. 경종 즉위 후 승자가 된 소론은 ‘신임사화’ 등을 일으켜 수십·수백의 노론을 처형하거나 유배시켰다. 경종이 재위 5년 만에 병사하자...

서울대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

1964년 5월 20일 오후1시, 2000여 명의 서울대생과 1000여 명의 시민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동숭동 문리대 교정에서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이 열렸다. ‘민족적 민주주의’는 인도네시아 수카르노 대통령이 제창한 ‘교도(敎導) 민주주의’를 모방해 이론화한 5·16혁명 세력의 정치 철학이었다. ‘교도 민주주의’는 국민들의 지적수준이 낮은 후진국에는 서구 의회민주주의가 적합치 않기 때문에 인도네시아에서도 지도자들이 민주주의를 교도해나가야 한다는 다분히 권위주의적이고...

찰스 린드버그, 세계최초로 대서양 무착륙 단독비행에 성공

1927년 5월 20일 오전 7시52분, 25살의 우편물 조종사 찰스 린드버그가 뉴욕 롱아일랜드의 루스벨트 비행장을 힘차게 날아올랐다. 목적지는 유럽의 파리였다. 논스톱으로 가야했다. 8년 전 뉴욕의 한 호텔 경영자가 뉴욕∼파리 간을 논스톱으로 비행하는 사람에게 2만 5000달러의 상금을 주겠다고 발표한 것이 그를 여기까지 오게 했다. 사실 대서양 논스톱 비행은 1919년 6월에 아일랜드의 울콕과 브라운이 이미 성공한 바 있어 새삼스러운 게 아니었다. 그러나 이들의 항로가...

혁신계 신문 ‘민족일보’ 강제 폐간

1961년 5월 19일, 4·19 혁명 후 혁신세력의 급속한 성장에 맞춰 평화통일론과 남북협상론을 기치로 내걸었던 혁신계 신문 ‘민족일보’가 지령 92호를 끝으로 폐간됐다. 발행인 조용수는 하루전 구속됐다. 조용수는 6·25 때 일본으로 건너가 4·19가 일어나던 그 해 6월에 귀국한 재일 거류민단의 간부 출신이었다. 그는 4·19 후 한국정치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혁신정당인 사회대중당 후보로 7·29 총선에 뛰어들었으나 고배를 마시고 1961년 2월 13일 민족일보를...

진통주사제 메사돈 중독 파동

1960년대 중반, 농어촌과 산간 벽지 등에서 갑자기 마약 중독자가 급증했다. 정부가 조사에 나섰으나 진통 주사제가 범람하는 것 말고는 딱히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주사제를 수차례 검사했지만 그때마다 알 수 없는 제3의 물질 만 검출됐다. 보건 당국이 갈피를 못잡는 동안 중독자는 계속 늘어갔다. 배·머리가 아플 때, 나무하러 가거나 바다에 들어갈 때 한 대씩 맞은 진통제로 사람들의 몸은 서서히 망가지고 있었다. 정부는 1965년 3월 현재 중독자가 1만 5000명에서 2만...

은행강도 연인 보니와 클라이드 사살

1934년 5월 23일, 포드자동차를 타고 미국 루이지애나주 깁스랜드 부근 고속도로를 질주하던 한쌍의 남녀가 잠복해 있는 경찰들이 무차별로 쏜 87발의 기총소사 세례를 받고 현장에서 즉사했다. 남자는 벌집이 된 차 운전석에서 한 손에 총을 든 채, 여자는 무릎에 기관총을 얹혀놓고 양 무릎 사이에 머리를 수그린 채 죽어있었다. 두 사람은 미주리주, 오클라호마주, 텍사스주에서 1년 9개월간 주유소, 시골은행, 간이식당 등을 휘저으며 12명을 살해하고 강도행각을 벌여온 은행강도...

한반도의 통일 문제를 다룬 제네바 회담 개막

참가국은 모두 19개국… 유엔군 측 15개국, 공산 측 3개국 1953년 체결된 6·25 휴전협정은 군사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정이었을 뿐 전쟁의 원인이 된 통일 문제 등의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다. 이 문제를 매듭짓기 위해 휴전협정에 명시한 조문이 제4조 60항이다.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보장하기 위해 휴전협정이 효력을 발생한 후 3개월 내에 고위 정치회담을 소집하고 한반도로부터 외국군 철수와 한국 문제의 평화적 해결 등의 문제를 협의할 것을...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 사망

“당연히 위고지!” 영국에 셰익스피어, 독일에 괴테, 러시아에 톨스토이가 있다면 프랑스의 문호는 누구냐는 질문에 앙드레 지드가 가리킨 그 빅토르 위고가 1885년 5월 22일 세상을 떠났다. “나는 가난한 사람들의 영구차에 실려 무덤으로 가기를 원한다”는 그의 유언에 따라 볼품없는 수레에 실려 영웅들이 묻힌다는 팡테옹에 묻혔다. 그의 마지막 길을 보기위해 200만 명이 운집했다. 위고는 위대한 작가이면서 열렬한 공화파 정치가였고 사형 폐지를 주장한 인도주의자였다....

청국-미국, 조선 빠진 채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조미(朝美)수호통상조약’은 19세기 말 숨가쁘게 전개되던 동아시아 국제 외교의 산물이었다. 미국에 조선의 개항은 대(對) 아시아 무역팽창정책을 펼치고 러시아의 남진을 저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었다. 강제개항을 시도했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하자 포함외교(砲艦外交)를 포기하고 청의 중재를 통한 개항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청의 이홍장 역시 러시아의 남침과 일본의 대한침략을 저지하기 위해 조선에 미국 세력을 끌어들일 필요가 있었다. 대한(對韓) 종주권 유지를 위해서였다....

프랑스 파리코뮌 ‘피의 일주일’ 시작

나폴레옹 3세를 포로로 잡아 사실상 승리를 확정한 프로이센군은 1870년 9월 중순부터 파리 공략에 나섰다. 4개월을 버텼으나 더 이상 저항할 수 없었던 프랑스는 1871년 1월 28일 항복을 선언했다. 프로이센군이 개선문으로 당당히 입성할 때 파리 시민들은 집집마다 검은 깃발을 걸거나 밤이 되도 등불을 켜지 않는 방법으로 무언의 저항을 계속했다. 프랑스군은 무장해제당하고 정부는 비스마르크의 뜻대로 재조직됐다. 2월 8일 실시된 국민의회 선거에서는 보수파인 왕당파가 공화파에...

사도세자. 뒤주에서 8일간 몸부림치다 사망

조선조 19대 임금 숙종은 나인 출신의 희빈 장씨로부터 균을, 무수리 출신의 숙빈 최씨로부터 금을 얻었다. 숙종 사후 균은 경종이 됐고 금은 영조가 됐다. 그러나 세자 균이 경종으로 즉위하기 전부터 병약한 탓에 조정은 경종과 영조의 즉위를 둘러싸고 당파간의 죽기살기식 암투로 살벌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소론은 경종을, 노론은 영조를 지지했다. 경종 즉위 후 승자가 된 소론은 ‘신임사화’ 등을 일으켜 수십·수백의 노론을 처형하거나 유배시켰다. 경종이 재위 5년 만에 병사하자...

서울대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

1964년 5월 20일 오후1시, 2000여 명의 서울대생과 1000여 명의 시민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동숭동 문리대 교정에서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이 열렸다. ‘민족적 민주주의’는 인도네시아 수카르노 대통령이 제창한 ‘교도(敎導) 민주주의’를 모방해 이론화한 5·16혁명 세력의 정치 철학이었다. ‘교도 민주주의’는 국민들의 지적수준이 낮은 후진국에는 서구 의회민주주의가 적합치 않기 때문에 인도네시아에서도 지도자들이 민주주의를 교도해나가야 한다는 다분히 권위주의적이고...

찰스 린드버그, 세계최초로 대서양 무착륙 단독비행에 성공

1927년 5월 20일 오전 7시52분, 25살의 우편물 조종사 찰스 린드버그가 뉴욕 롱아일랜드의 루스벨트 비행장을 힘차게 날아올랐다. 목적지는 유럽의 파리였다. 논스톱으로 가야했다. 8년 전 뉴욕의 한 호텔 경영자가 뉴욕∼파리 간을 논스톱으로 비행하는 사람에게 2만 5000달러의 상금을 주겠다고 발표한 것이 그를 여기까지 오게 했다. 사실 대서양 논스톱 비행은 1919년 6월에 아일랜드의 울콕과 브라운이 이미 성공한 바 있어 새삼스러운 게 아니었다. 그러나 이들의 항로가...

혁신계 신문 ‘민족일보’ 강제 폐간

1961년 5월 19일, 4·19 혁명 후 혁신세력의 급속한 성장에 맞춰 평화통일론과 남북협상론을 기치로 내걸었던 혁신계 신문 ‘민족일보’가 지령 92호를 끝으로 폐간됐다. 발행인 조용수는 하루전 구속됐다. 조용수는 6·25 때 일본으로 건너가 4·19가 일어나던 그 해 6월에 귀국한 재일 거류민단의 간부 출신이었다. 그는 4·19 후 한국정치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혁신정당인 사회대중당 후보로 7·29 총선에 뛰어들었으나 고배를 마시고 1961년 2월 13일 민족일보를...

진통주사제 메사돈 중독 파동

1960년대 중반, 농어촌과 산간 벽지 등에서 갑자기 마약 중독자가 급증했다. 정부가 조사에 나섰으나 진통 주사제가 범람하는 것 말고는 딱히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주사제를 수차례 검사했지만 그때마다 알 수 없는 제3의 물질 만 검출됐다. 보건 당국이 갈피를 못잡는 동안 중독자는 계속 늘어갔다. 배·머리가 아플 때, 나무하러 가거나 바다에 들어갈 때 한 대씩 맞은 진통제로 사람들의 몸은 서서히 망가지고 있었다. 정부는 1965년 3월 현재 중독자가 1만 5000명에서 2만...

은행강도 연인 보니와 클라이드 사살

1934년 5월 23일, 포드자동차를 타고 미국 루이지애나주 깁스랜드 부근 고속도로를 질주하던 한쌍의 남녀가 잠복해 있는 경찰들이 무차별로 쏜 87발의 기총소사 세례를 받고 현장에서 즉사했다. 남자는 벌집이 된 차 운전석에서 한 손에 총을 든 채, 여자는 무릎에 기관총을 얹혀놓고 양 무릎 사이에 머리를 수그린 채 죽어있었다. 두 사람은 미주리주, 오클라호마주, 텍사스주에서 1년 9개월간 주유소, 시골은행, 간이식당 등을 휘저으며 12명을 살해하고 강도행각을 벌여온 은행강도...

한반도의 통일 문제를 다룬 제네바 회담 개막

참가국은 모두 19개국… 유엔군 측 15개국, 공산 측 3개국 1953년 체결된 6·25 휴전협정은 군사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정이었을 뿐 전쟁의 원인이 된 통일 문제 등의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다. 이 문제를 매듭짓기 위해 휴전협정에 명시한 조문이 제4조 60항이다.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보장하기 위해 휴전협정이 효력을 발생한 후 3개월 내에 고위 정치회담을 소집하고 한반도로부터 외국군 철수와 한국 문제의 평화적 해결 등의 문제를 협의할 것을...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 사망

“당연히 위고지!” 영국에 셰익스피어, 독일에 괴테, 러시아에 톨스토이가 있다면 프랑스의 문호는 누구냐는 질문에 앙드레 지드가 가리킨 그 빅토르 위고가 1885년 5월 22일 세상을 떠났다. “나는 가난한 사람들의 영구차에 실려 무덤으로 가기를 원한다”는 그의 유언에 따라 볼품없는 수레에 실려 영웅들이 묻힌다는 팡테옹에 묻혔다. 그의 마지막 길을 보기위해 200만 명이 운집했다. 위고는 위대한 작가이면서 열렬한 공화파 정치가였고 사형 폐지를 주장한 인도주의자였다....

청국-미국, 조선 빠진 채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조미(朝美)수호통상조약’은 19세기 말 숨가쁘게 전개되던 동아시아 국제 외교의 산물이었다. 미국에 조선의 개항은 대(對) 아시아 무역팽창정책을 펼치고 러시아의 남진을 저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었다. 강제개항을 시도했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하자 포함외교(砲艦外交)를 포기하고 청의 중재를 통한 개항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청의 이홍장 역시 러시아의 남침과 일본의 대한침략을 저지하기 위해 조선에 미국 세력을 끌어들일 필요가 있었다. 대한(對韓) 종주권 유지를 위해서였다....

프랑스 파리코뮌 ‘피의 일주일’ 시작

나폴레옹 3세를 포로로 잡아 사실상 승리를 확정한 프로이센군은 1870년 9월 중순부터 파리 공략에 나섰다. 4개월을 버텼으나 더 이상 저항할 수 없었던 프랑스는 1871년 1월 28일 항복을 선언했다. 프로이센군이 개선문으로 당당히 입성할 때 파리 시민들은 집집마다 검은 깃발을 걸거나 밤이 되도 등불을 켜지 않는 방법으로 무언의 저항을 계속했다. 프랑스군은 무장해제당하고 정부는 비스마르크의 뜻대로 재조직됐다. 2월 8일 실시된 국민의회 선거에서는 보수파인 왕당파가 공화파에...

사도세자. 뒤주에서 8일간 몸부림치다 사망

조선조 19대 임금 숙종은 나인 출신의 희빈 장씨로부터 균을, 무수리 출신의 숙빈 최씨로부터 금을 얻었다. 숙종 사후 균은 경종이 됐고 금은 영조가 됐다. 그러나 세자 균이 경종으로 즉위하기 전부터 병약한 탓에 조정은 경종과 영조의 즉위를 둘러싸고 당파간의 죽기살기식 암투로 살벌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소론은 경종을, 노론은 영조를 지지했다. 경종 즉위 후 승자가 된 소론은 ‘신임사화’ 등을 일으켜 수십·수백의 노론을 처형하거나 유배시켰다. 경종이 재위 5년 만에 병사하자...

서울대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

1964년 5월 20일 오후1시, 2000여 명의 서울대생과 1000여 명의 시민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동숭동 문리대 교정에서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이 열렸다. ‘민족적 민주주의’는 인도네시아 수카르노 대통령이 제창한 ‘교도(敎導) 민주주의’를 모방해 이론화한 5·16혁명 세력의 정치 철학이었다. ‘교도 민주주의’는 국민들의 지적수준이 낮은 후진국에는 서구 의회민주주의가 적합치 않기 때문에 인도네시아에서도 지도자들이 민주주의를 교도해나가야 한다는 다분히 권위주의적이고...

찰스 린드버그, 세계최초로 대서양 무착륙 단독비행에 성공

1927년 5월 20일 오전 7시52분, 25살의 우편물 조종사 찰스 린드버그가 뉴욕 롱아일랜드의 루스벨트 비행장을 힘차게 날아올랐다. 목적지는 유럽의 파리였다. 논스톱으로 가야했다. 8년 전 뉴욕의 한 호텔 경영자가 뉴욕∼파리 간을 논스톱으로 비행하는 사람에게 2만 5000달러의 상금을 주겠다고 발표한 것이 그를 여기까지 오게 했다. 사실 대서양 논스톱 비행은 1919년 6월에 아일랜드의 울콕과 브라운이 이미 성공한 바 있어 새삼스러운 게 아니었다. 그러나 이들의 항로가...

혁신계 신문 ‘민족일보’ 강제 폐간

1961년 5월 19일, 4·19 혁명 후 혁신세력의 급속한 성장에 맞춰 평화통일론과 남북협상론을 기치로 내걸었던 혁신계 신문 ‘민족일보’가 지령 92호를 끝으로 폐간됐다. 발행인 조용수는 하루전 구속됐다. 조용수는 6·25 때 일본으로 건너가 4·19가 일어나던 그 해 6월에 귀국한 재일 거류민단의 간부 출신이었다. 그는 4·19 후 한국정치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혁신정당인 사회대중당 후보로 7·29 총선에 뛰어들었으나 고배를 마시고 1961년 2월 13일 민족일보를...

진통주사제 메사돈 중독 파동

1960년대 중반, 농어촌과 산간 벽지 등에서 갑자기 마약 중독자가 급증했다. 정부가 조사에 나섰으나 진통 주사제가 범람하는 것 말고는 딱히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주사제를 수차례 검사했지만 그때마다 알 수 없는 제3의 물질 만 검출됐다. 보건 당국이 갈피를 못잡는 동안 중독자는 계속 늘어갔다. 배·머리가 아플 때, 나무하러 가거나 바다에 들어갈 때 한 대씩 맞은 진통제로 사람들의 몸은 서서히 망가지고 있었다. 정부는 1965년 3월 현재 중독자가 1만 5000명에서 2만...

은행강도 연인 보니와 클라이드 사살

1934년 5월 23일, 포드자동차를 타고 미국 루이지애나주 깁스랜드 부근 고속도로를 질주하던 한쌍의 남녀가 잠복해 있는 경찰들이 무차별로 쏜 87발의 기총소사 세례를 받고 현장에서 즉사했다. 남자는 벌집이 된 차 운전석에서 한 손에 총을 든 채, 여자는 무릎에 기관총을 얹혀놓고 양 무릎 사이에 머리를 수그린 채 죽어있었다. 두 사람은 미주리주, 오클라호마주, 텍사스주에서 1년 9개월간 주유소, 시골은행, 간이식당 등을 휘저으며 12명을 살해하고 강도행각을 벌여온 은행강도...

한반도의 통일 문제를 다룬 제네바 회담 개막

참가국은 모두 19개국… 유엔군 측 15개국, 공산 측 3개국 1953년 체결된 6·25 휴전협정은 군사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정이었을 뿐 전쟁의 원인이 된 통일 문제 등의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다. 이 문제를 매듭짓기 위해 휴전협정에 명시한 조문이 제4조 60항이다.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보장하기 위해 휴전협정이 효력을 발생한 후 3개월 내에 고위 정치회담을 소집하고 한반도로부터 외국군 철수와 한국 문제의 평화적 해결 등의 문제를 협의할 것을...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 사망

“당연히 위고지!” 영국에 셰익스피어, 독일에 괴테, 러시아에 톨스토이가 있다면 프랑스의 문호는 누구냐는 질문에 앙드레 지드가 가리킨 그 빅토르 위고가 1885년 5월 22일 세상을 떠났다. “나는 가난한 사람들의 영구차에 실려 무덤으로 가기를 원한다”는 그의 유언에 따라 볼품없는 수레에 실려 영웅들이 묻힌다는 팡테옹에 묻혔다. 그의 마지막 길을 보기위해 200만 명이 운집했다. 위고는 위대한 작가이면서 열렬한 공화파 정치가였고 사형 폐지를 주장한 인도주의자였다....

청국-미국, 조선 빠진 채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조미(朝美)수호통상조약’은 19세기 말 숨가쁘게 전개되던 동아시아 국제 외교의 산물이었다. 미국에 조선의 개항은 대(對) 아시아 무역팽창정책을 펼치고 러시아의 남진을 저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었다. 강제개항을 시도했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하자 포함외교(砲艦外交)를 포기하고 청의 중재를 통한 개항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청의 이홍장 역시 러시아의 남침과 일본의 대한침략을 저지하기 위해 조선에 미국 세력을 끌어들일 필요가 있었다. 대한(對韓) 종주권 유지를 위해서였다....

프랑스 파리코뮌 ‘피의 일주일’ 시작

나폴레옹 3세를 포로로 잡아 사실상 승리를 확정한 프로이센군은 1870년 9월 중순부터 파리 공략에 나섰다. 4개월을 버텼으나 더 이상 저항할 수 없었던 프랑스는 1871년 1월 28일 항복을 선언했다. 프로이센군이 개선문으로 당당히 입성할 때 파리 시민들은 집집마다 검은 깃발을 걸거나 밤이 되도 등불을 켜지 않는 방법으로 무언의 저항을 계속했다. 프랑스군은 무장해제당하고 정부는 비스마르크의 뜻대로 재조직됐다. 2월 8일 실시된 국민의회 선거에서는 보수파인 왕당파가 공화파에...

사도세자. 뒤주에서 8일간 몸부림치다 사망

조선조 19대 임금 숙종은 나인 출신의 희빈 장씨로부터 균을, 무수리 출신의 숙빈 최씨로부터 금을 얻었다. 숙종 사후 균은 경종이 됐고 금은 영조가 됐다. 그러나 세자 균이 경종으로 즉위하기 전부터 병약한 탓에 조정은 경종과 영조의 즉위를 둘러싸고 당파간의 죽기살기식 암투로 살벌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소론은 경종을, 노론은 영조를 지지했다. 경종 즉위 후 승자가 된 소론은 ‘신임사화’ 등을 일으켜 수십·수백의 노론을 처형하거나 유배시켰다. 경종이 재위 5년 만에 병사하자...

서울대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

1964년 5월 20일 오후1시, 2000여 명의 서울대생과 1000여 명의 시민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동숭동 문리대 교정에서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이 열렸다. ‘민족적 민주주의’는 인도네시아 수카르노 대통령이 제창한 ‘교도(敎導) 민주주의’를 모방해 이론화한 5·16혁명 세력의 정치 철학이었다. ‘교도 민주주의’는 국민들의 지적수준이 낮은 후진국에는 서구 의회민주주의가 적합치 않기 때문에 인도네시아에서도 지도자들이 민주주의를 교도해나가야 한다는 다분히 권위주의적이고...

찰스 린드버그, 세계최초로 대서양 무착륙 단독비행에 성공

1927년 5월 20일 오전 7시52분, 25살의 우편물 조종사 찰스 린드버그가 뉴욕 롱아일랜드의 루스벨트 비행장을 힘차게 날아올랐다. 목적지는 유럽의 파리였다. 논스톱으로 가야했다. 8년 전 뉴욕의 한 호텔 경영자가 뉴욕∼파리 간을 논스톱으로 비행하는 사람에게 2만 5000달러의 상금을 주겠다고 발표한 것이 그를 여기까지 오게 했다. 사실 대서양 논스톱 비행은 1919년 6월에 아일랜드의 울콕과 브라운이 이미 성공한 바 있어 새삼스러운 게 아니었다. 그러나 이들의 항로가...

혁신계 신문 ‘민족일보’ 강제 폐간

1961년 5월 19일, 4·19 혁명 후 혁신세력의 급속한 성장에 맞춰 평화통일론과 남북협상론을 기치로 내걸었던 혁신계 신문 ‘민족일보’가 지령 92호를 끝으로 폐간됐다. 발행인 조용수는 하루전 구속됐다. 조용수는 6·25 때 일본으로 건너가 4·19가 일어나던 그 해 6월에 귀국한 재일 거류민단의 간부 출신이었다. 그는 4·19 후 한국정치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혁신정당인 사회대중당 후보로 7·29 총선에 뛰어들었으나 고배를 마시고 1961년 2월 13일 민족일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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