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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의 프랑스군과 유럽 연합군 간의 워털루 전투 개전

영국·프로이센·오스트리아·러시아의 유럽 연합군에 패해 엘바섬으로 유배됐던 나폴레옹이 1년만인 1815년 3월 엘바섬을 탈출하고 황제에 즉위하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연합군이 다시 힘을 결집했다. 연합군과 나폴레옹 간의 결전 장소는 벨기에 브뤼셀 남쪽 워털루였다. 영국을 주축으로 한 벨기에와 네덜란드 등 9만 5000여 명의 연합군은 영국의 웰링턴이 이끌었고 12만 명의 프로이센군은 블뤄허가 지휘했다. 이에 맞선 나폴레옹군도 12만 5000명에 달했다. 워털루에 집결하기 전...

제1회 세계여성대회 멕시코에서 개막

20세기는 여성해방운동의 세기였다. 여성참정권은 1920~1930년대를 거쳐 착실히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고 남성들과의 차별은 속도가 더디긴 했으나 차츰 좁혀들었다. 1960년대~1970년대에 미국을 중심으로 여성해방의 물결이 뜨겁게 달구어졌고 이를 계기로 각국의 여성이 한 자리에 모였다. 장(場)은 유엔이 1975년을 ‘세계여성의 해’로 지정하고, 1976년부터 1985년까지를 ‘여성을 위한 10년’으로 설정함으로써 마련해주었다. ‘평등․발전․평화’를 캐치프레이즈로...

남자 100m 달리기 ‘마의 10초벽’ 돌파

육상 100m 달리기에서 인간의 한계로 여겨 온 ‘마(魔)의 10초 벽’이 마침내 무너졌다. 전미 육상선수권대회가 열린 1968년 6월 20일이 세계 육상사를 다시 쓰게 한 날이다. 1912년 세계기록 공인이 시작되고 1960년 독일의 아민 해리가 처음으로 10초F를 끊은 이래 도저히 불가능할 것으로 여겨졌던 ‘마의 10초벽’이 같은 날 15분 사이에 그것도 한꺼번에 세 사람에 의해 무너진 것이다. 수동시계로 9초9였고, 준결승전 1·2조에 출전한 지미 하인즈, 로니 레이...

이종무 장군, 대마도 정벌

제주도 3분의 1 크기에 불과한 대마도는 본시 경상도 계림에 속해 있는 땅이었다. “내왕이 불편해 백성들이 들어가 살지 않았을 뿐”이라는 게 세종실록의 기록이다. 동국여지승람에도 “대마도는 원래 우리 계림에 속해 있었는데 언제 왜인들의 소굴이 되었는지 알 수 없다”고 쓰여있을 만큼 대마도는 우리 영토로 당연시여겼다. 대동여지도는 물론 조선 시대에 간행된 지도 대부분이 대마도를 우리 영토로 포함시키고 임진왜란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부하가 만든 팔도총도라는 지도까지 대마도를...

중국 의화단 사건 발발

제국주의 열강들이 앞다퉈 중국을 향해 탐욕의 발톱을 곧추 세우던 시기, 중국에서도 ‘의화단(義和團)’이라는 비밀결사 농민집단이 세력을 키우고 있었다. 부패한 청조, 열강의 침략, 청일전쟁 배상금 등이 불러온 민중의 고통은 의화단의 세력확대를 도와준 자양분이었고, “권법과 봉술을 익혀 주문 만 외우면 총탄도 피할 수 있다”는 믿음과 소문은 이들을 지탱해 준 힘이 됐다. 산둥성에서 처음 일어날 때 만해도 미미했던 세력이 1900년 5월 ‘부청멸양’(扶淸滅洋·청을 돕고 서양을...

대한민국 정부, 농지개혁법 공포

광복 후 농지개혁은 헌법 제86조에 명시됐을 만큼 대다수가 농민들로 구성된 당시 국민들의 절박한 요구였다. 더욱이 북한이 이미 1946년 3월에 토지개혁 법령을 공포, ‘무상몰수 무상분배’라는 급진적인 방식으로 토지개혁을 실시한 터라 남한에서도 농지개혁을 서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당초 ‘무상몰수 무상분배’안, ‘유상매수 무상분배’안, ‘유상매수 유상분배’안이 집중 논의됐으나 좌익세력의 약화와 농민운동의 분열·쇠퇴에 따라 ‘유상매수 유상분배’ 쪽으로 방향을 확정지었다....

김형욱 美 프레이저 청문회에서 박정희 대통령 맹공

김형욱 美 프레이저 청문회에서 박정희 대통령 맹공

  4년 전 소리소문없이 서울을 빠져나가 미국에 숨어살던 전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이 공개석상에 나타난 것은 1977년 6월 22일이었다. 미 하원 프레이저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선 것이다. 당시 한미관계는 박동선 사건 이른바 ‘코리아게이트 사건’으로 벼랑으로 내몰릴 때였다. 미 언론들은 “한국정부가 박동선을 내세워 1970년대에만 20명 이상의 미 의원들에게 50만~100만달러의 뇌물을 썼다”며 한국 정부를 ‘공작 덩어리’ ‘악의 소굴’로 매도하고 있었다. 1977년...

조 루이스, 세계헤비급 챔피언 획득

조 루이스, 세계헤비급 챔피언 획득

1937년 6월 22일, 20세기 복싱사를 화려하게 장식할 새로운 세계헤비급 챔피언이 탄생했다. ‘갈색 폭격기’ 조 루이스 배로였다. 승부는 예상대로 루이스의 8회 KO승으로 끝이 났으나 루이스는 기뻐하지 않았다. 그가 진정으로 눕히고 싶었던 선수는 그가 챔피언에 오르기 전 그에게 유일하게 1패를 안겨준 전 챔피언 맥스 슈멜링이었기 때문이다. 루이스는 1년 전 6월19일 뉴욕의 양키 스타디움에서 슈멜링에게 12회 KO패했었다. 연전연승을 달려온 루이스로서는 통한의 1패였다....

조선교육회 출범과 민립대학 설립운동

3·1운동 뒤 일제가 문화정치를 표방하자 민족 지도자들은 조선인의 실력양성을 위해 물산장려운동과 함께 민족교육을 위한 교육운동단체를 출범시켰다. 1920년 6월 23일 한규설, 이상재 등의 발기로 출범한 ‘조선교육회’가 그것이다. 조선교육회는 사회의 근본적 개조를 위해서는 인재양성이 근본 방책임을 표방하고 시대에 적응한 교육을 장려·진흥하고자 창립됐다. 학교 증설, 조선인 교육의 차별 폐지 등을 위해 활동하던 중 1922년 2월 조선교육령이 개정돼 대학설립의 길이 열리자...

소련, 베를린 봉쇄

1948년 6월 24일, 소련이 서독과 베를린을 잇는 육로를 봉쇄하는 바람에 미국·영국·프랑스가 공동 관리해온 서베를린이 자유세계로부터 고립됐다. 2차대전 후 독일은 미·영·불·소 4개국에 분할점령됐으나 소련 점령지역 내에 있는 베를린만은 공동관리 하에 있었다. 그러나 미·영·불 서방 3개국이 자신의 점령지역을 통합해 단일 경제공동체로 하고 베를린을 포함한 통합 전 지역에 새로운 통화인 마르크화(貨)를 유통시키려 하자 소련은 이를 동독 통화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해 ‘베를린...

나폴레옹의 프랑스군과 유럽 연합군 간의 워털루 전투 개전

영국·프로이센·오스트리아·러시아의 유럽 연합군에 패해 엘바섬으로 유배됐던 나폴레옹이 1년만인 1815년 3월 엘바섬을 탈출하고 황제에 즉위하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연합군이 다시 힘을 결집했다. 연합군과 나폴레옹 간의 결전 장소는 벨기에 브뤼셀 남쪽 워털루였다. 영국을 주축으로 한 벨기에와 네덜란드 등 9만 5000여 명의 연합군은 영국의 웰링턴이 이끌었고 12만 명의 프로이센군은 블뤄허가 지휘했다. 이에 맞선 나폴레옹군도 12만 5000명에 달했다. 워털루에 집결하기 전...

제1회 세계여성대회 멕시코에서 개막

20세기는 여성해방운동의 세기였다. 여성참정권은 1920~1930년대를 거쳐 착실히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고 남성들과의 차별은 속도가 더디긴 했으나 차츰 좁혀들었다. 1960년대~1970년대에 미국을 중심으로 여성해방의 물결이 뜨겁게 달구어졌고 이를 계기로 각국의 여성이 한 자리에 모였다. 장(場)은 유엔이 1975년을 ‘세계여성의 해’로 지정하고, 1976년부터 1985년까지를 ‘여성을 위한 10년’으로 설정함으로써 마련해주었다. ‘평등․발전․평화’를 캐치프레이즈로...

남자 100m 달리기 ‘마의 10초벽’ 돌파

육상 100m 달리기에서 인간의 한계로 여겨 온 ‘마(魔)의 10초 벽’이 마침내 무너졌다. 전미 육상선수권대회가 열린 1968년 6월 20일이 세계 육상사를 다시 쓰게 한 날이다. 1912년 세계기록 공인이 시작되고 1960년 독일의 아민 해리가 처음으로 10초F를 끊은 이래 도저히 불가능할 것으로 여겨졌던 ‘마의 10초벽’이 같은 날 15분 사이에 그것도 한꺼번에 세 사람에 의해 무너진 것이다. 수동시계로 9초9였고, 준결승전 1·2조에 출전한 지미 하인즈, 로니 레이...

이종무 장군, 대마도 정벌

제주도 3분의 1 크기에 불과한 대마도는 본시 경상도 계림에 속해 있는 땅이었다. “내왕이 불편해 백성들이 들어가 살지 않았을 뿐”이라는 게 세종실록의 기록이다. 동국여지승람에도 “대마도는 원래 우리 계림에 속해 있었는데 언제 왜인들의 소굴이 되었는지 알 수 없다”고 쓰여있을 만큼 대마도는 우리 영토로 당연시여겼다. 대동여지도는 물론 조선 시대에 간행된 지도 대부분이 대마도를 우리 영토로 포함시키고 임진왜란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부하가 만든 팔도총도라는 지도까지 대마도를...

중국 의화단 사건 발발

제국주의 열강들이 앞다퉈 중국을 향해 탐욕의 발톱을 곧추 세우던 시기, 중국에서도 ‘의화단(義和團)’이라는 비밀결사 농민집단이 세력을 키우고 있었다. 부패한 청조, 열강의 침략, 청일전쟁 배상금 등이 불러온 민중의 고통은 의화단의 세력확대를 도와준 자양분이었고, “권법과 봉술을 익혀 주문 만 외우면 총탄도 피할 수 있다”는 믿음과 소문은 이들을 지탱해 준 힘이 됐다. 산둥성에서 처음 일어날 때 만해도 미미했던 세력이 1900년 5월 ‘부청멸양’(扶淸滅洋·청을 돕고 서양을...

대한민국 정부, 농지개혁법 공포

광복 후 농지개혁은 헌법 제86조에 명시됐을 만큼 대다수가 농민들로 구성된 당시 국민들의 절박한 요구였다. 더욱이 북한이 이미 1946년 3월에 토지개혁 법령을 공포, ‘무상몰수 무상분배’라는 급진적인 방식으로 토지개혁을 실시한 터라 남한에서도 농지개혁을 서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당초 ‘무상몰수 무상분배’안, ‘유상매수 무상분배’안, ‘유상매수 유상분배’안이 집중 논의됐으나 좌익세력의 약화와 농민운동의 분열·쇠퇴에 따라 ‘유상매수 유상분배’ 쪽으로 방향을 확정지었다....

김형욱 美 프레이저 청문회에서 박정희 대통령 맹공

김형욱 美 프레이저 청문회에서 박정희 대통령 맹공

  4년 전 소리소문없이 서울을 빠져나가 미국에 숨어살던 전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이 공개석상에 나타난 것은 1977년 6월 22일이었다. 미 하원 프레이저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선 것이다. 당시 한미관계는 박동선 사건 이른바 ‘코리아게이트 사건’으로 벼랑으로 내몰릴 때였다. 미 언론들은 “한국정부가 박동선을 내세워 1970년대에만 20명 이상의 미 의원들에게 50만~100만달러의 뇌물을 썼다”며 한국 정부를 ‘공작 덩어리’ ‘악의 소굴’로 매도하고 있었다. 1977년...

조 루이스, 세계헤비급 챔피언 획득

조 루이스, 세계헤비급 챔피언 획득

1937년 6월 22일, 20세기 복싱사를 화려하게 장식할 새로운 세계헤비급 챔피언이 탄생했다. ‘갈색 폭격기’ 조 루이스 배로였다. 승부는 예상대로 루이스의 8회 KO승으로 끝이 났으나 루이스는 기뻐하지 않았다. 그가 진정으로 눕히고 싶었던 선수는 그가 챔피언에 오르기 전 그에게 유일하게 1패를 안겨준 전 챔피언 맥스 슈멜링이었기 때문이다. 루이스는 1년 전 6월19일 뉴욕의 양키 스타디움에서 슈멜링에게 12회 KO패했었다. 연전연승을 달려온 루이스로서는 통한의 1패였다....

조선교육회 출범과 민립대학 설립운동

3·1운동 뒤 일제가 문화정치를 표방하자 민족 지도자들은 조선인의 실력양성을 위해 물산장려운동과 함께 민족교육을 위한 교육운동단체를 출범시켰다. 1920년 6월 23일 한규설, 이상재 등의 발기로 출범한 ‘조선교육회’가 그것이다. 조선교육회는 사회의 근본적 개조를 위해서는 인재양성이 근본 방책임을 표방하고 시대에 적응한 교육을 장려·진흥하고자 창립됐다. 학교 증설, 조선인 교육의 차별 폐지 등을 위해 활동하던 중 1922년 2월 조선교육령이 개정돼 대학설립의 길이 열리자...

소련, 베를린 봉쇄

1948년 6월 24일, 소련이 서독과 베를린을 잇는 육로를 봉쇄하는 바람에 미국·영국·프랑스가 공동 관리해온 서베를린이 자유세계로부터 고립됐다. 2차대전 후 독일은 미·영·불·소 4개국에 분할점령됐으나 소련 점령지역 내에 있는 베를린만은 공동관리 하에 있었다. 그러나 미·영·불 서방 3개국이 자신의 점령지역을 통합해 단일 경제공동체로 하고 베를린을 포함한 통합 전 지역에 새로운 통화인 마르크화(貨)를 유통시키려 하자 소련은 이를 동독 통화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해 ‘베를린...

나폴레옹의 프랑스군과 유럽 연합군 간의 워털루 전투 개전

영국·프로이센·오스트리아·러시아의 유럽 연합군에 패해 엘바섬으로 유배됐던 나폴레옹이 1년만인 1815년 3월 엘바섬을 탈출하고 황제에 즉위하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연합군이 다시 힘을 결집했다. 연합군과 나폴레옹 간의 결전 장소는 벨기에 브뤼셀 남쪽 워털루였다. 영국을 주축으로 한 벨기에와 네덜란드 등 9만 5000여 명의 연합군은 영국의 웰링턴이 이끌었고 12만 명의 프로이센군은 블뤄허가 지휘했다. 이에 맞선 나폴레옹군도 12만 5000명에 달했다. 워털루에 집결하기 전...

제1회 세계여성대회 멕시코에서 개막

20세기는 여성해방운동의 세기였다. 여성참정권은 1920~1930년대를 거쳐 착실히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고 남성들과의 차별은 속도가 더디긴 했으나 차츰 좁혀들었다. 1960년대~1970년대에 미국을 중심으로 여성해방의 물결이 뜨겁게 달구어졌고 이를 계기로 각국의 여성이 한 자리에 모였다. 장(場)은 유엔이 1975년을 ‘세계여성의 해’로 지정하고, 1976년부터 1985년까지를 ‘여성을 위한 10년’으로 설정함으로써 마련해주었다. ‘평등․발전․평화’를 캐치프레이즈로...

남자 100m 달리기 ‘마의 10초벽’ 돌파

육상 100m 달리기에서 인간의 한계로 여겨 온 ‘마(魔)의 10초 벽’이 마침내 무너졌다. 전미 육상선수권대회가 열린 1968년 6월 20일이 세계 육상사를 다시 쓰게 한 날이다. 1912년 세계기록 공인이 시작되고 1960년 독일의 아민 해리가 처음으로 10초F를 끊은 이래 도저히 불가능할 것으로 여겨졌던 ‘마의 10초벽’이 같은 날 15분 사이에 그것도 한꺼번에 세 사람에 의해 무너진 것이다. 수동시계로 9초9였고, 준결승전 1·2조에 출전한 지미 하인즈, 로니 레이...

이종무 장군, 대마도 정벌

제주도 3분의 1 크기에 불과한 대마도는 본시 경상도 계림에 속해 있는 땅이었다. “내왕이 불편해 백성들이 들어가 살지 않았을 뿐”이라는 게 세종실록의 기록이다. 동국여지승람에도 “대마도는 원래 우리 계림에 속해 있었는데 언제 왜인들의 소굴이 되었는지 알 수 없다”고 쓰여있을 만큼 대마도는 우리 영토로 당연시여겼다. 대동여지도는 물론 조선 시대에 간행된 지도 대부분이 대마도를 우리 영토로 포함시키고 임진왜란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부하가 만든 팔도총도라는 지도까지 대마도를...

중국 의화단 사건 발발

제국주의 열강들이 앞다퉈 중국을 향해 탐욕의 발톱을 곧추 세우던 시기, 중국에서도 ‘의화단(義和團)’이라는 비밀결사 농민집단이 세력을 키우고 있었다. 부패한 청조, 열강의 침략, 청일전쟁 배상금 등이 불러온 민중의 고통은 의화단의 세력확대를 도와준 자양분이었고, “권법과 봉술을 익혀 주문 만 외우면 총탄도 피할 수 있다”는 믿음과 소문은 이들을 지탱해 준 힘이 됐다. 산둥성에서 처음 일어날 때 만해도 미미했던 세력이 1900년 5월 ‘부청멸양’(扶淸滅洋·청을 돕고 서양을...

대한민국 정부, 농지개혁법 공포

광복 후 농지개혁은 헌법 제86조에 명시됐을 만큼 대다수가 농민들로 구성된 당시 국민들의 절박한 요구였다. 더욱이 북한이 이미 1946년 3월에 토지개혁 법령을 공포, ‘무상몰수 무상분배’라는 급진적인 방식으로 토지개혁을 실시한 터라 남한에서도 농지개혁을 서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당초 ‘무상몰수 무상분배’안, ‘유상매수 무상분배’안, ‘유상매수 유상분배’안이 집중 논의됐으나 좌익세력의 약화와 농민운동의 분열·쇠퇴에 따라 ‘유상매수 유상분배’ 쪽으로 방향을 확정지었다....

김형욱 美 프레이저 청문회에서 박정희 대통령 맹공

김형욱 美 프레이저 청문회에서 박정희 대통령 맹공

  4년 전 소리소문없이 서울을 빠져나가 미국에 숨어살던 전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이 공개석상에 나타난 것은 1977년 6월 22일이었다. 미 하원 프레이저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선 것이다. 당시 한미관계는 박동선 사건 이른바 ‘코리아게이트 사건’으로 벼랑으로 내몰릴 때였다. 미 언론들은 “한국정부가 박동선을 내세워 1970년대에만 20명 이상의 미 의원들에게 50만~100만달러의 뇌물을 썼다”며 한국 정부를 ‘공작 덩어리’ ‘악의 소굴’로 매도하고 있었다. 1977년...

조 루이스, 세계헤비급 챔피언 획득

조 루이스, 세계헤비급 챔피언 획득

1937년 6월 22일, 20세기 복싱사를 화려하게 장식할 새로운 세계헤비급 챔피언이 탄생했다. ‘갈색 폭격기’ 조 루이스 배로였다. 승부는 예상대로 루이스의 8회 KO승으로 끝이 났으나 루이스는 기뻐하지 않았다. 그가 진정으로 눕히고 싶었던 선수는 그가 챔피언에 오르기 전 그에게 유일하게 1패를 안겨준 전 챔피언 맥스 슈멜링이었기 때문이다. 루이스는 1년 전 6월19일 뉴욕의 양키 스타디움에서 슈멜링에게 12회 KO패했었다. 연전연승을 달려온 루이스로서는 통한의 1패였다....

조선교육회 출범과 민립대학 설립운동

3·1운동 뒤 일제가 문화정치를 표방하자 민족 지도자들은 조선인의 실력양성을 위해 물산장려운동과 함께 민족교육을 위한 교육운동단체를 출범시켰다. 1920년 6월 23일 한규설, 이상재 등의 발기로 출범한 ‘조선교육회’가 그것이다. 조선교육회는 사회의 근본적 개조를 위해서는 인재양성이 근본 방책임을 표방하고 시대에 적응한 교육을 장려·진흥하고자 창립됐다. 학교 증설, 조선인 교육의 차별 폐지 등을 위해 활동하던 중 1922년 2월 조선교육령이 개정돼 대학설립의 길이 열리자...

소련, 베를린 봉쇄

1948년 6월 24일, 소련이 서독과 베를린을 잇는 육로를 봉쇄하는 바람에 미국·영국·프랑스가 공동 관리해온 서베를린이 자유세계로부터 고립됐다. 2차대전 후 독일은 미·영·불·소 4개국에 분할점령됐으나 소련 점령지역 내에 있는 베를린만은 공동관리 하에 있었다. 그러나 미·영·불 서방 3개국이 자신의 점령지역을 통합해 단일 경제공동체로 하고 베를린을 포함한 통합 전 지역에 새로운 통화인 마르크화(貨)를 유통시키려 하자 소련은 이를 동독 통화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해 ‘베를린...

나폴레옹의 프랑스군과 유럽 연합군 간의 워털루 전투 개전

영국·프로이센·오스트리아·러시아의 유럽 연합군에 패해 엘바섬으로 유배됐던 나폴레옹이 1년만인 1815년 3월 엘바섬을 탈출하고 황제에 즉위하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연합군이 다시 힘을 결집했다. 연합군과 나폴레옹 간의 결전 장소는 벨기에 브뤼셀 남쪽 워털루였다. 영국을 주축으로 한 벨기에와 네덜란드 등 9만 5000여 명의 연합군은 영국의 웰링턴이 이끌었고 12만 명의 프로이센군은 블뤄허가 지휘했다. 이에 맞선 나폴레옹군도 12만 5000명에 달했다. 워털루에 집결하기 전...

제1회 세계여성대회 멕시코에서 개막

20세기는 여성해방운동의 세기였다. 여성참정권은 1920~1930년대를 거쳐 착실히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고 남성들과의 차별은 속도가 더디긴 했으나 차츰 좁혀들었다. 1960년대~1970년대에 미국을 중심으로 여성해방의 물결이 뜨겁게 달구어졌고 이를 계기로 각국의 여성이 한 자리에 모였다. 장(場)은 유엔이 1975년을 ‘세계여성의 해’로 지정하고, 1976년부터 1985년까지를 ‘여성을 위한 10년’으로 설정함으로써 마련해주었다. ‘평등․발전․평화’를 캐치프레이즈로...

남자 100m 달리기 ‘마의 10초벽’ 돌파

육상 100m 달리기에서 인간의 한계로 여겨 온 ‘마(魔)의 10초 벽’이 마침내 무너졌다. 전미 육상선수권대회가 열린 1968년 6월 20일이 세계 육상사를 다시 쓰게 한 날이다. 1912년 세계기록 공인이 시작되고 1960년 독일의 아민 해리가 처음으로 10초F를 끊은 이래 도저히 불가능할 것으로 여겨졌던 ‘마의 10초벽’이 같은 날 15분 사이에 그것도 한꺼번에 세 사람에 의해 무너진 것이다. 수동시계로 9초9였고, 준결승전 1·2조에 출전한 지미 하인즈, 로니 레이...

이종무 장군, 대마도 정벌

제주도 3분의 1 크기에 불과한 대마도는 본시 경상도 계림에 속해 있는 땅이었다. “내왕이 불편해 백성들이 들어가 살지 않았을 뿐”이라는 게 세종실록의 기록이다. 동국여지승람에도 “대마도는 원래 우리 계림에 속해 있었는데 언제 왜인들의 소굴이 되었는지 알 수 없다”고 쓰여있을 만큼 대마도는 우리 영토로 당연시여겼다. 대동여지도는 물론 조선 시대에 간행된 지도 대부분이 대마도를 우리 영토로 포함시키고 임진왜란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부하가 만든 팔도총도라는 지도까지 대마도를...

중국 의화단 사건 발발

제국주의 열강들이 앞다퉈 중국을 향해 탐욕의 발톱을 곧추 세우던 시기, 중국에서도 ‘의화단(義和團)’이라는 비밀결사 농민집단이 세력을 키우고 있었다. 부패한 청조, 열강의 침략, 청일전쟁 배상금 등이 불러온 민중의 고통은 의화단의 세력확대를 도와준 자양분이었고, “권법과 봉술을 익혀 주문 만 외우면 총탄도 피할 수 있다”는 믿음과 소문은 이들을 지탱해 준 힘이 됐다. 산둥성에서 처음 일어날 때 만해도 미미했던 세력이 1900년 5월 ‘부청멸양’(扶淸滅洋·청을 돕고 서양을...

대한민국 정부, 농지개혁법 공포

광복 후 농지개혁은 헌법 제86조에 명시됐을 만큼 대다수가 농민들로 구성된 당시 국민들의 절박한 요구였다. 더욱이 북한이 이미 1946년 3월에 토지개혁 법령을 공포, ‘무상몰수 무상분배’라는 급진적인 방식으로 토지개혁을 실시한 터라 남한에서도 농지개혁을 서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당초 ‘무상몰수 무상분배’안, ‘유상매수 무상분배’안, ‘유상매수 유상분배’안이 집중 논의됐으나 좌익세력의 약화와 농민운동의 분열·쇠퇴에 따라 ‘유상매수 유상분배’ 쪽으로 방향을 확정지었다....

김형욱 美 프레이저 청문회에서 박정희 대통령 맹공

김형욱 美 프레이저 청문회에서 박정희 대통령 맹공

  4년 전 소리소문없이 서울을 빠져나가 미국에 숨어살던 전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이 공개석상에 나타난 것은 1977년 6월 22일이었다. 미 하원 프레이저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선 것이다. 당시 한미관계는 박동선 사건 이른바 ‘코리아게이트 사건’으로 벼랑으로 내몰릴 때였다. 미 언론들은 “한국정부가 박동선을 내세워 1970년대에만 20명 이상의 미 의원들에게 50만~100만달러의 뇌물을 썼다”며 한국 정부를 ‘공작 덩어리’ ‘악의 소굴’로 매도하고 있었다. 1977년...

조 루이스, 세계헤비급 챔피언 획득

조 루이스, 세계헤비급 챔피언 획득

1937년 6월 22일, 20세기 복싱사를 화려하게 장식할 새로운 세계헤비급 챔피언이 탄생했다. ‘갈색 폭격기’ 조 루이스 배로였다. 승부는 예상대로 루이스의 8회 KO승으로 끝이 났으나 루이스는 기뻐하지 않았다. 그가 진정으로 눕히고 싶었던 선수는 그가 챔피언에 오르기 전 그에게 유일하게 1패를 안겨준 전 챔피언 맥스 슈멜링이었기 때문이다. 루이스는 1년 전 6월19일 뉴욕의 양키 스타디움에서 슈멜링에게 12회 KO패했었다. 연전연승을 달려온 루이스로서는 통한의 1패였다....

조선교육회 출범과 민립대학 설립운동

3·1운동 뒤 일제가 문화정치를 표방하자 민족 지도자들은 조선인의 실력양성을 위해 물산장려운동과 함께 민족교육을 위한 교육운동단체를 출범시켰다. 1920년 6월 23일 한규설, 이상재 등의 발기로 출범한 ‘조선교육회’가 그것이다. 조선교육회는 사회의 근본적 개조를 위해서는 인재양성이 근본 방책임을 표방하고 시대에 적응한 교육을 장려·진흥하고자 창립됐다. 학교 증설, 조선인 교육의 차별 폐지 등을 위해 활동하던 중 1922년 2월 조선교육령이 개정돼 대학설립의 길이 열리자...

소련, 베를린 봉쇄

1948년 6월 24일, 소련이 서독과 베를린을 잇는 육로를 봉쇄하는 바람에 미국·영국·프랑스가 공동 관리해온 서베를린이 자유세계로부터 고립됐다. 2차대전 후 독일은 미·영·불·소 4개국에 분할점령됐으나 소련 점령지역 내에 있는 베를린만은 공동관리 하에 있었다. 그러나 미·영·불 서방 3개국이 자신의 점령지역을 통합해 단일 경제공동체로 하고 베를린을 포함한 통합 전 지역에 새로운 통화인 마르크화(貨)를 유통시키려 하자 소련은 이를 동독 통화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해 ‘베를린...

나폴레옹의 프랑스군과 유럽 연합군 간의 워털루 전투 개전

영국·프로이센·오스트리아·러시아의 유럽 연합군에 패해 엘바섬으로 유배됐던 나폴레옹이 1년만인 1815년 3월 엘바섬을 탈출하고 황제에 즉위하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연합군이 다시 힘을 결집했다. 연합군과 나폴레옹 간의 결전 장소는 벨기에 브뤼셀 남쪽 워털루였다. 영국을 주축으로 한 벨기에와 네덜란드 등 9만 5000여 명의 연합군은 영국의 웰링턴이 이끌었고 12만 명의 프로이센군은 블뤄허가 지휘했다. 이에 맞선 나폴레옹군도 12만 5000명에 달했다. 워털루에 집결하기 전...

제1회 세계여성대회 멕시코에서 개막

20세기는 여성해방운동의 세기였다. 여성참정권은 1920~1930년대를 거쳐 착실히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고 남성들과의 차별은 속도가 더디긴 했으나 차츰 좁혀들었다. 1960년대~1970년대에 미국을 중심으로 여성해방의 물결이 뜨겁게 달구어졌고 이를 계기로 각국의 여성이 한 자리에 모였다. 장(場)은 유엔이 1975년을 ‘세계여성의 해’로 지정하고, 1976년부터 1985년까지를 ‘여성을 위한 10년’으로 설정함으로써 마련해주었다. ‘평등․발전․평화’를 캐치프레이즈로...

남자 100m 달리기 ‘마의 10초벽’ 돌파

육상 100m 달리기에서 인간의 한계로 여겨 온 ‘마(魔)의 10초 벽’이 마침내 무너졌다. 전미 육상선수권대회가 열린 1968년 6월 20일이 세계 육상사를 다시 쓰게 한 날이다. 1912년 세계기록 공인이 시작되고 1960년 독일의 아민 해리가 처음으로 10초F를 끊은 이래 도저히 불가능할 것으로 여겨졌던 ‘마의 10초벽’이 같은 날 15분 사이에 그것도 한꺼번에 세 사람에 의해 무너진 것이다. 수동시계로 9초9였고, 준결승전 1·2조에 출전한 지미 하인즈, 로니 레이...

이종무 장군, 대마도 정벌

제주도 3분의 1 크기에 불과한 대마도는 본시 경상도 계림에 속해 있는 땅이었다. “내왕이 불편해 백성들이 들어가 살지 않았을 뿐”이라는 게 세종실록의 기록이다. 동국여지승람에도 “대마도는 원래 우리 계림에 속해 있었는데 언제 왜인들의 소굴이 되었는지 알 수 없다”고 쓰여있을 만큼 대마도는 우리 영토로 당연시여겼다. 대동여지도는 물론 조선 시대에 간행된 지도 대부분이 대마도를 우리 영토로 포함시키고 임진왜란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부하가 만든 팔도총도라는 지도까지 대마도를...

중국 의화단 사건 발발

제국주의 열강들이 앞다퉈 중국을 향해 탐욕의 발톱을 곧추 세우던 시기, 중국에서도 ‘의화단(義和團)’이라는 비밀결사 농민집단이 세력을 키우고 있었다. 부패한 청조, 열강의 침략, 청일전쟁 배상금 등이 불러온 민중의 고통은 의화단의 세력확대를 도와준 자양분이었고, “권법과 봉술을 익혀 주문 만 외우면 총탄도 피할 수 있다”는 믿음과 소문은 이들을 지탱해 준 힘이 됐다. 산둥성에서 처음 일어날 때 만해도 미미했던 세력이 1900년 5월 ‘부청멸양’(扶淸滅洋·청을 돕고 서양을...

대한민국 정부, 농지개혁법 공포

광복 후 농지개혁은 헌법 제86조에 명시됐을 만큼 대다수가 농민들로 구성된 당시 국민들의 절박한 요구였다. 더욱이 북한이 이미 1946년 3월에 토지개혁 법령을 공포, ‘무상몰수 무상분배’라는 급진적인 방식으로 토지개혁을 실시한 터라 남한에서도 농지개혁을 서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당초 ‘무상몰수 무상분배’안, ‘유상매수 무상분배’안, ‘유상매수 유상분배’안이 집중 논의됐으나 좌익세력의 약화와 농민운동의 분열·쇠퇴에 따라 ‘유상매수 유상분배’ 쪽으로 방향을 확정지었다....

김형욱 美 프레이저 청문회에서 박정희 대통령 맹공

김형욱 美 프레이저 청문회에서 박정희 대통령 맹공

  4년 전 소리소문없이 서울을 빠져나가 미국에 숨어살던 전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이 공개석상에 나타난 것은 1977년 6월 22일이었다. 미 하원 프레이저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선 것이다. 당시 한미관계는 박동선 사건 이른바 ‘코리아게이트 사건’으로 벼랑으로 내몰릴 때였다. 미 언론들은 “한국정부가 박동선을 내세워 1970년대에만 20명 이상의 미 의원들에게 50만~100만달러의 뇌물을 썼다”며 한국 정부를 ‘공작 덩어리’ ‘악의 소굴’로 매도하고 있었다. 1977년...

조 루이스, 세계헤비급 챔피언 획득

조 루이스, 세계헤비급 챔피언 획득

1937년 6월 22일, 20세기 복싱사를 화려하게 장식할 새로운 세계헤비급 챔피언이 탄생했다. ‘갈색 폭격기’ 조 루이스 배로였다. 승부는 예상대로 루이스의 8회 KO승으로 끝이 났으나 루이스는 기뻐하지 않았다. 그가 진정으로 눕히고 싶었던 선수는 그가 챔피언에 오르기 전 그에게 유일하게 1패를 안겨준 전 챔피언 맥스 슈멜링이었기 때문이다. 루이스는 1년 전 6월19일 뉴욕의 양키 스타디움에서 슈멜링에게 12회 KO패했었다. 연전연승을 달려온 루이스로서는 통한의 1패였다....

조선교육회 출범과 민립대학 설립운동

3·1운동 뒤 일제가 문화정치를 표방하자 민족 지도자들은 조선인의 실력양성을 위해 물산장려운동과 함께 민족교육을 위한 교육운동단체를 출범시켰다. 1920년 6월 23일 한규설, 이상재 등의 발기로 출범한 ‘조선교육회’가 그것이다. 조선교육회는 사회의 근본적 개조를 위해서는 인재양성이 근본 방책임을 표방하고 시대에 적응한 교육을 장려·진흥하고자 창립됐다. 학교 증설, 조선인 교육의 차별 폐지 등을 위해 활동하던 중 1922년 2월 조선교육령이 개정돼 대학설립의 길이 열리자...

소련, 베를린 봉쇄

1948년 6월 24일, 소련이 서독과 베를린을 잇는 육로를 봉쇄하는 바람에 미국·영국·프랑스가 공동 관리해온 서베를린이 자유세계로부터 고립됐다. 2차대전 후 독일은 미·영·불·소 4개국에 분할점령됐으나 소련 점령지역 내에 있는 베를린만은 공동관리 하에 있었다. 그러나 미·영·불 서방 3개국이 자신의 점령지역을 통합해 단일 경제공동체로 하고 베를린을 포함한 통합 전 지역에 새로운 통화인 마르크화(貨)를 유통시키려 하자 소련은 이를 동독 통화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해 ‘베를린...

나폴레옹의 프랑스군과 유럽 연합군 간의 워털루 전투 개전

영국·프로이센·오스트리아·러시아의 유럽 연합군에 패해 엘바섬으로 유배됐던 나폴레옹이 1년만인 1815년 3월 엘바섬을 탈출하고 황제에 즉위하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연합군이 다시 힘을 결집했다. 연합군과 나폴레옹 간의 결전 장소는 벨기에 브뤼셀 남쪽 워털루였다. 영국을 주축으로 한 벨기에와 네덜란드 등 9만 5000여 명의 연합군은 영국의 웰링턴이 이끌었고 12만 명의 프로이센군은 블뤄허가 지휘했다. 이에 맞선 나폴레옹군도 12만 5000명에 달했다. 워털루에 집결하기 전...

제1회 세계여성대회 멕시코에서 개막

20세기는 여성해방운동의 세기였다. 여성참정권은 1920~1930년대를 거쳐 착실히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고 남성들과의 차별은 속도가 더디긴 했으나 차츰 좁혀들었다. 1960년대~1970년대에 미국을 중심으로 여성해방의 물결이 뜨겁게 달구어졌고 이를 계기로 각국의 여성이 한 자리에 모였다. 장(場)은 유엔이 1975년을 ‘세계여성의 해’로 지정하고, 1976년부터 1985년까지를 ‘여성을 위한 10년’으로 설정함으로써 마련해주었다. ‘평등․발전․평화’를 캐치프레이즈로...

남자 100m 달리기 ‘마의 10초벽’ 돌파

육상 100m 달리기에서 인간의 한계로 여겨 온 ‘마(魔)의 10초 벽’이 마침내 무너졌다. 전미 육상선수권대회가 열린 1968년 6월 20일이 세계 육상사를 다시 쓰게 한 날이다. 1912년 세계기록 공인이 시작되고 1960년 독일의 아민 해리가 처음으로 10초F를 끊은 이래 도저히 불가능할 것으로 여겨졌던 ‘마의 10초벽’이 같은 날 15분 사이에 그것도 한꺼번에 세 사람에 의해 무너진 것이다. 수동시계로 9초9였고, 준결승전 1·2조에 출전한 지미 하인즈, 로니 레이...

이종무 장군, 대마도 정벌

제주도 3분의 1 크기에 불과한 대마도는 본시 경상도 계림에 속해 있는 땅이었다. “내왕이 불편해 백성들이 들어가 살지 않았을 뿐”이라는 게 세종실록의 기록이다. 동국여지승람에도 “대마도는 원래 우리 계림에 속해 있었는데 언제 왜인들의 소굴이 되었는지 알 수 없다”고 쓰여있을 만큼 대마도는 우리 영토로 당연시여겼다. 대동여지도는 물론 조선 시대에 간행된 지도 대부분이 대마도를 우리 영토로 포함시키고 임진왜란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부하가 만든 팔도총도라는 지도까지 대마도를...

중국 의화단 사건 발발

제국주의 열강들이 앞다퉈 중국을 향해 탐욕의 발톱을 곧추 세우던 시기, 중국에서도 ‘의화단(義和團)’이라는 비밀결사 농민집단이 세력을 키우고 있었다. 부패한 청조, 열강의 침략, 청일전쟁 배상금 등이 불러온 민중의 고통은 의화단의 세력확대를 도와준 자양분이었고, “권법과 봉술을 익혀 주문 만 외우면 총탄도 피할 수 있다”는 믿음과 소문은 이들을 지탱해 준 힘이 됐다. 산둥성에서 처음 일어날 때 만해도 미미했던 세력이 1900년 5월 ‘부청멸양’(扶淸滅洋·청을 돕고 서양을...

대한민국 정부, 농지개혁법 공포

광복 후 농지개혁은 헌법 제86조에 명시됐을 만큼 대다수가 농민들로 구성된 당시 국민들의 절박한 요구였다. 더욱이 북한이 이미 1946년 3월에 토지개혁 법령을 공포, ‘무상몰수 무상분배’라는 급진적인 방식으로 토지개혁을 실시한 터라 남한에서도 농지개혁을 서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당초 ‘무상몰수 무상분배’안, ‘유상매수 무상분배’안, ‘유상매수 유상분배’안이 집중 논의됐으나 좌익세력의 약화와 농민운동의 분열·쇠퇴에 따라 ‘유상매수 유상분배’ 쪽으로 방향을 확정지었다....

김형욱 美 프레이저 청문회에서 박정희 대통령 맹공

김형욱 美 프레이저 청문회에서 박정희 대통령 맹공

  4년 전 소리소문없이 서울을 빠져나가 미국에 숨어살던 전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이 공개석상에 나타난 것은 1977년 6월 22일이었다. 미 하원 프레이저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선 것이다. 당시 한미관계는 박동선 사건 이른바 ‘코리아게이트 사건’으로 벼랑으로 내몰릴 때였다. 미 언론들은 “한국정부가 박동선을 내세워 1970년대에만 20명 이상의 미 의원들에게 50만~100만달러의 뇌물을 썼다”며 한국 정부를 ‘공작 덩어리’ ‘악의 소굴’로 매도하고 있었다. 1977년...

조 루이스, 세계헤비급 챔피언 획득

조 루이스, 세계헤비급 챔피언 획득

1937년 6월 22일, 20세기 복싱사를 화려하게 장식할 새로운 세계헤비급 챔피언이 탄생했다. ‘갈색 폭격기’ 조 루이스 배로였다. 승부는 예상대로 루이스의 8회 KO승으로 끝이 났으나 루이스는 기뻐하지 않았다. 그가 진정으로 눕히고 싶었던 선수는 그가 챔피언에 오르기 전 그에게 유일하게 1패를 안겨준 전 챔피언 맥스 슈멜링이었기 때문이다. 루이스는 1년 전 6월19일 뉴욕의 양키 스타디움에서 슈멜링에게 12회 KO패했었다. 연전연승을 달려온 루이스로서는 통한의 1패였다....

조선교육회 출범과 민립대학 설립운동

3·1운동 뒤 일제가 문화정치를 표방하자 민족 지도자들은 조선인의 실력양성을 위해 물산장려운동과 함께 민족교육을 위한 교육운동단체를 출범시켰다. 1920년 6월 23일 한규설, 이상재 등의 발기로 출범한 ‘조선교육회’가 그것이다. 조선교육회는 사회의 근본적 개조를 위해서는 인재양성이 근본 방책임을 표방하고 시대에 적응한 교육을 장려·진흥하고자 창립됐다. 학교 증설, 조선인 교육의 차별 폐지 등을 위해 활동하던 중 1922년 2월 조선교육령이 개정돼 대학설립의 길이 열리자...

소련, 베를린 봉쇄

1948년 6월 24일, 소련이 서독과 베를린을 잇는 육로를 봉쇄하는 바람에 미국·영국·프랑스가 공동 관리해온 서베를린이 자유세계로부터 고립됐다. 2차대전 후 독일은 미·영·불·소 4개국에 분할점령됐으나 소련 점령지역 내에 있는 베를린만은 공동관리 하에 있었다. 그러나 미·영·불 서방 3개국이 자신의 점령지역을 통합해 단일 경제공동체로 하고 베를린을 포함한 통합 전 지역에 새로운 통화인 마르크화(貨)를 유통시키려 하자 소련은 이를 동독 통화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해 ‘베를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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