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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간첩 김수임 사형 선고

6·25가 발발하자 한 사형수가 예정보다 앞당겨 총살형에 처해졌다. 간첩 이적행위로 사형 선고를 받은 김수임이었다. 이화여전 9년 후배 전숙희에 따르면 “사랑밖에 몰랐던, 그리고 너무 순진했던” 김수임은 경기도 개성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11살에 팔려가다시피 민며느리로 갔다가 4년 만에 야반도주해 미국인 선교사의 도움으로 이화여전 영문과를 졸업한 당시로서는 보기드문 재원이었다. 탁월한 영어 실력으로 세브란스 병원의 미국인 통역으로 취직한 김수임은 어느날 한 파티장에서...

미-아르헨티나 간 ‘포클랜드 전쟁’ 개전

1982년 초 아르헨티나 경제는 위기상황이었다. 3월의 인플레는 46%를 기록했고 실질소득은 1970년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1916년부터 1976년까지 60년 동안 대통령이 22번이나 바뀌고 1976년부터는 아예 쿠데타 세력들이 돌아가며 대통령직을 맡았던 군부 독재의 폐해가 마침내 드러난 것이다. 길거리는 연일 반정부 시위로 시끄러웠다. 1981년 12월 군 참모총장에서 대통령에 취임한 레오폴도 갈티에리는 국민들의 불만을 밖으로 돌리기 위해 포클랜드 전쟁을 결정했다....

美 국기 처음 제정

1777년 6월 14일, 미국이 독립 1년 만에 국기를 처음 제정했다. 13개주 대표가 모인 대륙회의에서였다. ‘붉은 색과 흰 색으로 된 13개의 줄무늬와 청색 바탕의 13개 별’이 국기 제정의 첫 원칙이었다. 그러나 별의 배치를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아 국기마다 별의 위치가 달랐다. 요즘처럼 별을 엇갈리게 배열한 것도 있었고, 둥글게 배열한 것도 있었다. 성조기(星條旗·Stars and Stripes)를 처음 도안한 사람은 벳시 로스라는 여인과 독립선언서에 서명했던 프랜시스...

미국 ‘미란다 원칙’ 고지 의무화 판결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으며….” 1966년 6월 13일, 이른바 ‘미란다 원칙’ 고지를 의무화하도록 한 판결이 미 법정에서 처음 내려졌다. 미 연방 대법원이 경찰로부터 묵비권과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권리를 사전에 듣지 못한 피의자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미란다는 1963년 3월,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시의 한 극장 앞에서 10대 소녀를 납치·강간한 혐의로 재판에 회부된 23세의 멕시코계 청년 어네스토 미란다의 이름이다. 때문에 이 사건은 미국인들에게 ‘미란다...

‘스윙의 황제’ 베니 굿맨 사망

“스윙은 분석을 용납하지 않는다.” 정의(定義)를 거부하는 이 간단한 설명으로 베니 굿맨은 왜 자신이 ‘스윙의 황제’로 불리는지를 명쾌하게 일깨워주었다. 황제는 군림할 뿐 설명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뜻일까. 1909년 시카고의 가난한 러시아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굿맨은 어려서부터 흑인 클럽을 기웃거리며 재즈와 블루스를 듣고 자랐다. 독학으로 닦은 클라리넷 연주는 젊어서 이미 대가의 경지를 넘보고 있었다. 저속한 가락의 음악에서부터 모차르트의 천상의 소리까지 자유자재로...

수양대군, 단종 폐위하고 세조에 즉위

단종(1441.7~1457.10)은 태어난 지 하루 만에 어머니(세자빈 권씨=현덕왕후)가 산후병으로 숨지고, 11살이던 1452년 5월 왕위에 올라서도 삼촌에게 3년 만에 죽임을 당하는 등 조선 역사상 가장 불행한 임금으로 꼽힌다. 단종은 임금이 되기 전까지는 할아버지 세종의 총애를 받으며 7세 때 왕세손, 9세 때 왕세자로 책봉되어 나름대로 순탄한 길을 걸었다. 하지만 할아버지 세종이 1450년 죽고 아버지 문종마저 즉위 2년 2개월 만인 1452년 5월에 죽어 어린 나이에...

한국은행 창립

1950년 6월 12일, 한국은행이 창립됐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 설립된 첫 중앙은행이었다. 1909년에 설립된 구 한국은행과 1911년에 이를 개편해 설립된 조선은행이 중앙은행 구실을 해왔지만 둘 다 일제가 설립한 은행이었다. 조선은행은 한국은행 설립 하루 전에 청산됐다. 한국은행은 창립되자 마자 수난의 길을 걸었다. 기존의 조선은행권 화폐를 대체할 새 한국은행권 화폐를 발행도 하기 전, 창립 13일 만에 6·25가 터졌기 때문이다. 보유하고 있던 지금은(地金銀)...

美 영화배우 존 웨인 사망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그를 가리켜 “미국 바로 그 자체”라고 했다. 미국인들은 그를 “사나이 중의 사나이” “진정한 영웅”으로 칭송한다. 1928년 존 포드 감독의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하면서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는 1930년 영화 ‘빅 트레일’에서 첫 주연을 맡았으나 무명기의 연장일 뿐이었다. 이후 10여 년간 8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으나 영화가 B급이어서 배우도 B급 대접을 받았다. 존 포드 감독과의 운명적인 만남은 1939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빛을 발한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美 대통령으로는 사상 처음 내한

4·19 의거 후 2개월 만에 100만의 인파가 다시 서울거리를 가득 메웠다. 얼굴에는 분노 대신 반가움이, 두 손에는 돌멩이 대신 국기가 잡혀있는 것이 그때와 다른 점이었다. 1960년 6월 19일, 드와이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다.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1882년 한미수호통상조약 이후 78년 만의 첫 방문이었고, 아이젠하워로서는 두 번째였다. “당선되면 한국을 방문, 한국전쟁을 종식시키겠다”고 한 선거공약을 지키기 위해 1952년 12월 당선자 자격으로...

이승만 대통령 반공포로 석방

1951년 7월 시작된 휴전협상의 최대 걸림돌은 포로송환문제였다. 유엔군 측의 자유송환론과 공산군 측의 강제송환론이 팽팽히 맞섰기 때문이다. 1953년 6월 8일, 유엔군·공산군 양측의 포로송환문제가 2년만에 타결됐다. 조속한 종전을 원했던 유엔군 측이 공산군 측의 제안을 상당부분 수용한 것이 돌파구를 마련했다. 휴전이 성립된 뒤 2개월 안으로 송환을 희망하는 포로들을 맞바꾸는 한편 송환을 거부하는 포로들은 체코·폴란드·인도 등 5개국으로 구성된 ‘중립국송환위원회’가 4개월...

여간첩 김수임 사형 선고

6·25가 발발하자 한 사형수가 예정보다 앞당겨 총살형에 처해졌다. 간첩 이적행위로 사형 선고를 받은 김수임이었다. 이화여전 9년 후배 전숙희에 따르면 “사랑밖에 몰랐던, 그리고 너무 순진했던” 김수임은 경기도 개성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11살에 팔려가다시피 민며느리로 갔다가 4년 만에 야반도주해 미국인 선교사의 도움으로 이화여전 영문과를 졸업한 당시로서는 보기드문 재원이었다. 탁월한 영어 실력으로 세브란스 병원의 미국인 통역으로 취직한 김수임은 어느날 한 파티장에서...

미-아르헨티나 간 ‘포클랜드 전쟁’ 개전

1982년 초 아르헨티나 경제는 위기상황이었다. 3월의 인플레는 46%를 기록했고 실질소득은 1970년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1916년부터 1976년까지 60년 동안 대통령이 22번이나 바뀌고 1976년부터는 아예 쿠데타 세력들이 돌아가며 대통령직을 맡았던 군부 독재의 폐해가 마침내 드러난 것이다. 길거리는 연일 반정부 시위로 시끄러웠다. 1981년 12월 군 참모총장에서 대통령에 취임한 레오폴도 갈티에리는 국민들의 불만을 밖으로 돌리기 위해 포클랜드 전쟁을 결정했다....

美 국기 처음 제정

1777년 6월 14일, 미국이 독립 1년 만에 국기를 처음 제정했다. 13개주 대표가 모인 대륙회의에서였다. ‘붉은 색과 흰 색으로 된 13개의 줄무늬와 청색 바탕의 13개 별’이 국기 제정의 첫 원칙이었다. 그러나 별의 배치를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아 국기마다 별의 위치가 달랐다. 요즘처럼 별을 엇갈리게 배열한 것도 있었고, 둥글게 배열한 것도 있었다. 성조기(星條旗·Stars and Stripes)를 처음 도안한 사람은 벳시 로스라는 여인과 독립선언서에 서명했던 프랜시스...

미국 ‘미란다 원칙’ 고지 의무화 판결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으며….” 1966년 6월 13일, 이른바 ‘미란다 원칙’ 고지를 의무화하도록 한 판결이 미 법정에서 처음 내려졌다. 미 연방 대법원이 경찰로부터 묵비권과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권리를 사전에 듣지 못한 피의자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미란다는 1963년 3월,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시의 한 극장 앞에서 10대 소녀를 납치·강간한 혐의로 재판에 회부된 23세의 멕시코계 청년 어네스토 미란다의 이름이다. 때문에 이 사건은 미국인들에게 ‘미란다...

‘스윙의 황제’ 베니 굿맨 사망

“스윙은 분석을 용납하지 않는다.” 정의(定義)를 거부하는 이 간단한 설명으로 베니 굿맨은 왜 자신이 ‘스윙의 황제’로 불리는지를 명쾌하게 일깨워주었다. 황제는 군림할 뿐 설명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뜻일까. 1909년 시카고의 가난한 러시아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굿맨은 어려서부터 흑인 클럽을 기웃거리며 재즈와 블루스를 듣고 자랐다. 독학으로 닦은 클라리넷 연주는 젊어서 이미 대가의 경지를 넘보고 있었다. 저속한 가락의 음악에서부터 모차르트의 천상의 소리까지 자유자재로...

수양대군, 단종 폐위하고 세조에 즉위

단종(1441.7~1457.10)은 태어난 지 하루 만에 어머니(세자빈 권씨=현덕왕후)가 산후병으로 숨지고, 11살이던 1452년 5월 왕위에 올라서도 삼촌에게 3년 만에 죽임을 당하는 등 조선 역사상 가장 불행한 임금으로 꼽힌다. 단종은 임금이 되기 전까지는 할아버지 세종의 총애를 받으며 7세 때 왕세손, 9세 때 왕세자로 책봉되어 나름대로 순탄한 길을 걸었다. 하지만 할아버지 세종이 1450년 죽고 아버지 문종마저 즉위 2년 2개월 만인 1452년 5월에 죽어 어린 나이에...

한국은행 창립

1950년 6월 12일, 한국은행이 창립됐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 설립된 첫 중앙은행이었다. 1909년에 설립된 구 한국은행과 1911년에 이를 개편해 설립된 조선은행이 중앙은행 구실을 해왔지만 둘 다 일제가 설립한 은행이었다. 조선은행은 한국은행 설립 하루 전에 청산됐다. 한국은행은 창립되자 마자 수난의 길을 걸었다. 기존의 조선은행권 화폐를 대체할 새 한국은행권 화폐를 발행도 하기 전, 창립 13일 만에 6·25가 터졌기 때문이다. 보유하고 있던 지금은(地金銀)...

美 영화배우 존 웨인 사망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그를 가리켜 “미국 바로 그 자체”라고 했다. 미국인들은 그를 “사나이 중의 사나이” “진정한 영웅”으로 칭송한다. 1928년 존 포드 감독의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하면서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는 1930년 영화 ‘빅 트레일’에서 첫 주연을 맡았으나 무명기의 연장일 뿐이었다. 이후 10여 년간 8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으나 영화가 B급이어서 배우도 B급 대접을 받았다. 존 포드 감독과의 운명적인 만남은 1939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빛을 발한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美 대통령으로는 사상 처음 내한

4·19 의거 후 2개월 만에 100만의 인파가 다시 서울거리를 가득 메웠다. 얼굴에는 분노 대신 반가움이, 두 손에는 돌멩이 대신 국기가 잡혀있는 것이 그때와 다른 점이었다. 1960년 6월 19일, 드와이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다.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1882년 한미수호통상조약 이후 78년 만의 첫 방문이었고, 아이젠하워로서는 두 번째였다. “당선되면 한국을 방문, 한국전쟁을 종식시키겠다”고 한 선거공약을 지키기 위해 1952년 12월 당선자 자격으로...

이승만 대통령 반공포로 석방

1951년 7월 시작된 휴전협상의 최대 걸림돌은 포로송환문제였다. 유엔군 측의 자유송환론과 공산군 측의 강제송환론이 팽팽히 맞섰기 때문이다. 1953년 6월 8일, 유엔군·공산군 양측의 포로송환문제가 2년만에 타결됐다. 조속한 종전을 원했던 유엔군 측이 공산군 측의 제안을 상당부분 수용한 것이 돌파구를 마련했다. 휴전이 성립된 뒤 2개월 안으로 송환을 희망하는 포로들을 맞바꾸는 한편 송환을 거부하는 포로들은 체코·폴란드·인도 등 5개국으로 구성된 ‘중립국송환위원회’가 4개월...

여간첩 김수임 사형 선고

6·25가 발발하자 한 사형수가 예정보다 앞당겨 총살형에 처해졌다. 간첩 이적행위로 사형 선고를 받은 김수임이었다. 이화여전 9년 후배 전숙희에 따르면 “사랑밖에 몰랐던, 그리고 너무 순진했던” 김수임은 경기도 개성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11살에 팔려가다시피 민며느리로 갔다가 4년 만에 야반도주해 미국인 선교사의 도움으로 이화여전 영문과를 졸업한 당시로서는 보기드문 재원이었다. 탁월한 영어 실력으로 세브란스 병원의 미국인 통역으로 취직한 김수임은 어느날 한 파티장에서...

미-아르헨티나 간 ‘포클랜드 전쟁’ 개전

1982년 초 아르헨티나 경제는 위기상황이었다. 3월의 인플레는 46%를 기록했고 실질소득은 1970년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1916년부터 1976년까지 60년 동안 대통령이 22번이나 바뀌고 1976년부터는 아예 쿠데타 세력들이 돌아가며 대통령직을 맡았던 군부 독재의 폐해가 마침내 드러난 것이다. 길거리는 연일 반정부 시위로 시끄러웠다. 1981년 12월 군 참모총장에서 대통령에 취임한 레오폴도 갈티에리는 국민들의 불만을 밖으로 돌리기 위해 포클랜드 전쟁을 결정했다....

美 국기 처음 제정

1777년 6월 14일, 미국이 독립 1년 만에 국기를 처음 제정했다. 13개주 대표가 모인 대륙회의에서였다. ‘붉은 색과 흰 색으로 된 13개의 줄무늬와 청색 바탕의 13개 별’이 국기 제정의 첫 원칙이었다. 그러나 별의 배치를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아 국기마다 별의 위치가 달랐다. 요즘처럼 별을 엇갈리게 배열한 것도 있었고, 둥글게 배열한 것도 있었다. 성조기(星條旗·Stars and Stripes)를 처음 도안한 사람은 벳시 로스라는 여인과 독립선언서에 서명했던 프랜시스...

미국 ‘미란다 원칙’ 고지 의무화 판결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으며….” 1966년 6월 13일, 이른바 ‘미란다 원칙’ 고지를 의무화하도록 한 판결이 미 법정에서 처음 내려졌다. 미 연방 대법원이 경찰로부터 묵비권과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권리를 사전에 듣지 못한 피의자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미란다는 1963년 3월,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시의 한 극장 앞에서 10대 소녀를 납치·강간한 혐의로 재판에 회부된 23세의 멕시코계 청년 어네스토 미란다의 이름이다. 때문에 이 사건은 미국인들에게 ‘미란다...

‘스윙의 황제’ 베니 굿맨 사망

“스윙은 분석을 용납하지 않는다.” 정의(定義)를 거부하는 이 간단한 설명으로 베니 굿맨은 왜 자신이 ‘스윙의 황제’로 불리는지를 명쾌하게 일깨워주었다. 황제는 군림할 뿐 설명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뜻일까. 1909년 시카고의 가난한 러시아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굿맨은 어려서부터 흑인 클럽을 기웃거리며 재즈와 블루스를 듣고 자랐다. 독학으로 닦은 클라리넷 연주는 젊어서 이미 대가의 경지를 넘보고 있었다. 저속한 가락의 음악에서부터 모차르트의 천상의 소리까지 자유자재로...

수양대군, 단종 폐위하고 세조에 즉위

단종(1441.7~1457.10)은 태어난 지 하루 만에 어머니(세자빈 권씨=현덕왕후)가 산후병으로 숨지고, 11살이던 1452년 5월 왕위에 올라서도 삼촌에게 3년 만에 죽임을 당하는 등 조선 역사상 가장 불행한 임금으로 꼽힌다. 단종은 임금이 되기 전까지는 할아버지 세종의 총애를 받으며 7세 때 왕세손, 9세 때 왕세자로 책봉되어 나름대로 순탄한 길을 걸었다. 하지만 할아버지 세종이 1450년 죽고 아버지 문종마저 즉위 2년 2개월 만인 1452년 5월에 죽어 어린 나이에...

한국은행 창립

1950년 6월 12일, 한국은행이 창립됐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 설립된 첫 중앙은행이었다. 1909년에 설립된 구 한국은행과 1911년에 이를 개편해 설립된 조선은행이 중앙은행 구실을 해왔지만 둘 다 일제가 설립한 은행이었다. 조선은행은 한국은행 설립 하루 전에 청산됐다. 한국은행은 창립되자 마자 수난의 길을 걸었다. 기존의 조선은행권 화폐를 대체할 새 한국은행권 화폐를 발행도 하기 전, 창립 13일 만에 6·25가 터졌기 때문이다. 보유하고 있던 지금은(地金銀)...

美 영화배우 존 웨인 사망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그를 가리켜 “미국 바로 그 자체”라고 했다. 미국인들은 그를 “사나이 중의 사나이” “진정한 영웅”으로 칭송한다. 1928년 존 포드 감독의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하면서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는 1930년 영화 ‘빅 트레일’에서 첫 주연을 맡았으나 무명기의 연장일 뿐이었다. 이후 10여 년간 8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으나 영화가 B급이어서 배우도 B급 대접을 받았다. 존 포드 감독과의 운명적인 만남은 1939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빛을 발한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美 대통령으로는 사상 처음 내한

4·19 의거 후 2개월 만에 100만의 인파가 다시 서울거리를 가득 메웠다. 얼굴에는 분노 대신 반가움이, 두 손에는 돌멩이 대신 국기가 잡혀있는 것이 그때와 다른 점이었다. 1960년 6월 19일, 드와이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다.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1882년 한미수호통상조약 이후 78년 만의 첫 방문이었고, 아이젠하워로서는 두 번째였다. “당선되면 한국을 방문, 한국전쟁을 종식시키겠다”고 한 선거공약을 지키기 위해 1952년 12월 당선자 자격으로...

이승만 대통령 반공포로 석방

1951년 7월 시작된 휴전협상의 최대 걸림돌은 포로송환문제였다. 유엔군 측의 자유송환론과 공산군 측의 강제송환론이 팽팽히 맞섰기 때문이다. 1953년 6월 8일, 유엔군·공산군 양측의 포로송환문제가 2년만에 타결됐다. 조속한 종전을 원했던 유엔군 측이 공산군 측의 제안을 상당부분 수용한 것이 돌파구를 마련했다. 휴전이 성립된 뒤 2개월 안으로 송환을 희망하는 포로들을 맞바꾸는 한편 송환을 거부하는 포로들은 체코·폴란드·인도 등 5개국으로 구성된 ‘중립국송환위원회’가 4개월...

여간첩 김수임 사형 선고

6·25가 발발하자 한 사형수가 예정보다 앞당겨 총살형에 처해졌다. 간첩 이적행위로 사형 선고를 받은 김수임이었다. 이화여전 9년 후배 전숙희에 따르면 “사랑밖에 몰랐던, 그리고 너무 순진했던” 김수임은 경기도 개성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11살에 팔려가다시피 민며느리로 갔다가 4년 만에 야반도주해 미국인 선교사의 도움으로 이화여전 영문과를 졸업한 당시로서는 보기드문 재원이었다. 탁월한 영어 실력으로 세브란스 병원의 미국인 통역으로 취직한 김수임은 어느날 한 파티장에서...

미-아르헨티나 간 ‘포클랜드 전쟁’ 개전

1982년 초 아르헨티나 경제는 위기상황이었다. 3월의 인플레는 46%를 기록했고 실질소득은 1970년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1916년부터 1976년까지 60년 동안 대통령이 22번이나 바뀌고 1976년부터는 아예 쿠데타 세력들이 돌아가며 대통령직을 맡았던 군부 독재의 폐해가 마침내 드러난 것이다. 길거리는 연일 반정부 시위로 시끄러웠다. 1981년 12월 군 참모총장에서 대통령에 취임한 레오폴도 갈티에리는 국민들의 불만을 밖으로 돌리기 위해 포클랜드 전쟁을 결정했다....

美 국기 처음 제정

1777년 6월 14일, 미국이 독립 1년 만에 국기를 처음 제정했다. 13개주 대표가 모인 대륙회의에서였다. ‘붉은 색과 흰 색으로 된 13개의 줄무늬와 청색 바탕의 13개 별’이 국기 제정의 첫 원칙이었다. 그러나 별의 배치를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아 국기마다 별의 위치가 달랐다. 요즘처럼 별을 엇갈리게 배열한 것도 있었고, 둥글게 배열한 것도 있었다. 성조기(星條旗·Stars and Stripes)를 처음 도안한 사람은 벳시 로스라는 여인과 독립선언서에 서명했던 프랜시스...

미국 ‘미란다 원칙’ 고지 의무화 판결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으며….” 1966년 6월 13일, 이른바 ‘미란다 원칙’ 고지를 의무화하도록 한 판결이 미 법정에서 처음 내려졌다. 미 연방 대법원이 경찰로부터 묵비권과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권리를 사전에 듣지 못한 피의자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미란다는 1963년 3월,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시의 한 극장 앞에서 10대 소녀를 납치·강간한 혐의로 재판에 회부된 23세의 멕시코계 청년 어네스토 미란다의 이름이다. 때문에 이 사건은 미국인들에게 ‘미란다...

‘스윙의 황제’ 베니 굿맨 사망

“스윙은 분석을 용납하지 않는다.” 정의(定義)를 거부하는 이 간단한 설명으로 베니 굿맨은 왜 자신이 ‘스윙의 황제’로 불리는지를 명쾌하게 일깨워주었다. 황제는 군림할 뿐 설명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뜻일까. 1909년 시카고의 가난한 러시아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굿맨은 어려서부터 흑인 클럽을 기웃거리며 재즈와 블루스를 듣고 자랐다. 독학으로 닦은 클라리넷 연주는 젊어서 이미 대가의 경지를 넘보고 있었다. 저속한 가락의 음악에서부터 모차르트의 천상의 소리까지 자유자재로...

수양대군, 단종 폐위하고 세조에 즉위

단종(1441.7~1457.10)은 태어난 지 하루 만에 어머니(세자빈 권씨=현덕왕후)가 산후병으로 숨지고, 11살이던 1452년 5월 왕위에 올라서도 삼촌에게 3년 만에 죽임을 당하는 등 조선 역사상 가장 불행한 임금으로 꼽힌다. 단종은 임금이 되기 전까지는 할아버지 세종의 총애를 받으며 7세 때 왕세손, 9세 때 왕세자로 책봉되어 나름대로 순탄한 길을 걸었다. 하지만 할아버지 세종이 1450년 죽고 아버지 문종마저 즉위 2년 2개월 만인 1452년 5월에 죽어 어린 나이에...

한국은행 창립

1950년 6월 12일, 한국은행이 창립됐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 설립된 첫 중앙은행이었다. 1909년에 설립된 구 한국은행과 1911년에 이를 개편해 설립된 조선은행이 중앙은행 구실을 해왔지만 둘 다 일제가 설립한 은행이었다. 조선은행은 한국은행 설립 하루 전에 청산됐다. 한국은행은 창립되자 마자 수난의 길을 걸었다. 기존의 조선은행권 화폐를 대체할 새 한국은행권 화폐를 발행도 하기 전, 창립 13일 만에 6·25가 터졌기 때문이다. 보유하고 있던 지금은(地金銀)...

美 영화배우 존 웨인 사망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그를 가리켜 “미국 바로 그 자체”라고 했다. 미국인들은 그를 “사나이 중의 사나이” “진정한 영웅”으로 칭송한다. 1928년 존 포드 감독의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하면서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는 1930년 영화 ‘빅 트레일’에서 첫 주연을 맡았으나 무명기의 연장일 뿐이었다. 이후 10여 년간 8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으나 영화가 B급이어서 배우도 B급 대접을 받았다. 존 포드 감독과의 운명적인 만남은 1939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빛을 발한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美 대통령으로는 사상 처음 내한

4·19 의거 후 2개월 만에 100만의 인파가 다시 서울거리를 가득 메웠다. 얼굴에는 분노 대신 반가움이, 두 손에는 돌멩이 대신 국기가 잡혀있는 것이 그때와 다른 점이었다. 1960년 6월 19일, 드와이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다.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1882년 한미수호통상조약 이후 78년 만의 첫 방문이었고, 아이젠하워로서는 두 번째였다. “당선되면 한국을 방문, 한국전쟁을 종식시키겠다”고 한 선거공약을 지키기 위해 1952년 12월 당선자 자격으로...

이승만 대통령 반공포로 석방

1951년 7월 시작된 휴전협상의 최대 걸림돌은 포로송환문제였다. 유엔군 측의 자유송환론과 공산군 측의 강제송환론이 팽팽히 맞섰기 때문이다. 1953년 6월 8일, 유엔군·공산군 양측의 포로송환문제가 2년만에 타결됐다. 조속한 종전을 원했던 유엔군 측이 공산군 측의 제안을 상당부분 수용한 것이 돌파구를 마련했다. 휴전이 성립된 뒤 2개월 안으로 송환을 희망하는 포로들을 맞바꾸는 한편 송환을 거부하는 포로들은 체코·폴란드·인도 등 5개국으로 구성된 ‘중립국송환위원회’가 4개월...

여간첩 김수임 사형 선고

6·25가 발발하자 한 사형수가 예정보다 앞당겨 총살형에 처해졌다. 간첩 이적행위로 사형 선고를 받은 김수임이었다. 이화여전 9년 후배 전숙희에 따르면 “사랑밖에 몰랐던, 그리고 너무 순진했던” 김수임은 경기도 개성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11살에 팔려가다시피 민며느리로 갔다가 4년 만에 야반도주해 미국인 선교사의 도움으로 이화여전 영문과를 졸업한 당시로서는 보기드문 재원이었다. 탁월한 영어 실력으로 세브란스 병원의 미국인 통역으로 취직한 김수임은 어느날 한 파티장에서...

미-아르헨티나 간 ‘포클랜드 전쟁’ 개전

1982년 초 아르헨티나 경제는 위기상황이었다. 3월의 인플레는 46%를 기록했고 실질소득은 1970년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1916년부터 1976년까지 60년 동안 대통령이 22번이나 바뀌고 1976년부터는 아예 쿠데타 세력들이 돌아가며 대통령직을 맡았던 군부 독재의 폐해가 마침내 드러난 것이다. 길거리는 연일 반정부 시위로 시끄러웠다. 1981년 12월 군 참모총장에서 대통령에 취임한 레오폴도 갈티에리는 국민들의 불만을 밖으로 돌리기 위해 포클랜드 전쟁을 결정했다....

美 국기 처음 제정

1777년 6월 14일, 미국이 독립 1년 만에 국기를 처음 제정했다. 13개주 대표가 모인 대륙회의에서였다. ‘붉은 색과 흰 색으로 된 13개의 줄무늬와 청색 바탕의 13개 별’이 국기 제정의 첫 원칙이었다. 그러나 별의 배치를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아 국기마다 별의 위치가 달랐다. 요즘처럼 별을 엇갈리게 배열한 것도 있었고, 둥글게 배열한 것도 있었다. 성조기(星條旗·Stars and Stripes)를 처음 도안한 사람은 벳시 로스라는 여인과 독립선언서에 서명했던 프랜시스...

미국 ‘미란다 원칙’ 고지 의무화 판결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으며….” 1966년 6월 13일, 이른바 ‘미란다 원칙’ 고지를 의무화하도록 한 판결이 미 법정에서 처음 내려졌다. 미 연방 대법원이 경찰로부터 묵비권과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권리를 사전에 듣지 못한 피의자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미란다는 1963년 3월,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시의 한 극장 앞에서 10대 소녀를 납치·강간한 혐의로 재판에 회부된 23세의 멕시코계 청년 어네스토 미란다의 이름이다. 때문에 이 사건은 미국인들에게 ‘미란다...

‘스윙의 황제’ 베니 굿맨 사망

“스윙은 분석을 용납하지 않는다.” 정의(定義)를 거부하는 이 간단한 설명으로 베니 굿맨은 왜 자신이 ‘스윙의 황제’로 불리는지를 명쾌하게 일깨워주었다. 황제는 군림할 뿐 설명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뜻일까. 1909년 시카고의 가난한 러시아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굿맨은 어려서부터 흑인 클럽을 기웃거리며 재즈와 블루스를 듣고 자랐다. 독학으로 닦은 클라리넷 연주는 젊어서 이미 대가의 경지를 넘보고 있었다. 저속한 가락의 음악에서부터 모차르트의 천상의 소리까지 자유자재로...

수양대군, 단종 폐위하고 세조에 즉위

단종(1441.7~1457.10)은 태어난 지 하루 만에 어머니(세자빈 권씨=현덕왕후)가 산후병으로 숨지고, 11살이던 1452년 5월 왕위에 올라서도 삼촌에게 3년 만에 죽임을 당하는 등 조선 역사상 가장 불행한 임금으로 꼽힌다. 단종은 임금이 되기 전까지는 할아버지 세종의 총애를 받으며 7세 때 왕세손, 9세 때 왕세자로 책봉되어 나름대로 순탄한 길을 걸었다. 하지만 할아버지 세종이 1450년 죽고 아버지 문종마저 즉위 2년 2개월 만인 1452년 5월에 죽어 어린 나이에...

한국은행 창립

1950년 6월 12일, 한국은행이 창립됐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 설립된 첫 중앙은행이었다. 1909년에 설립된 구 한국은행과 1911년에 이를 개편해 설립된 조선은행이 중앙은행 구실을 해왔지만 둘 다 일제가 설립한 은행이었다. 조선은행은 한국은행 설립 하루 전에 청산됐다. 한국은행은 창립되자 마자 수난의 길을 걸었다. 기존의 조선은행권 화폐를 대체할 새 한국은행권 화폐를 발행도 하기 전, 창립 13일 만에 6·25가 터졌기 때문이다. 보유하고 있던 지금은(地金銀)...

美 영화배우 존 웨인 사망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그를 가리켜 “미국 바로 그 자체”라고 했다. 미국인들은 그를 “사나이 중의 사나이” “진정한 영웅”으로 칭송한다. 1928년 존 포드 감독의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하면서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는 1930년 영화 ‘빅 트레일’에서 첫 주연을 맡았으나 무명기의 연장일 뿐이었다. 이후 10여 년간 8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으나 영화가 B급이어서 배우도 B급 대접을 받았다. 존 포드 감독과의 운명적인 만남은 1939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빛을 발한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美 대통령으로는 사상 처음 내한

4·19 의거 후 2개월 만에 100만의 인파가 다시 서울거리를 가득 메웠다. 얼굴에는 분노 대신 반가움이, 두 손에는 돌멩이 대신 국기가 잡혀있는 것이 그때와 다른 점이었다. 1960년 6월 19일, 드와이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다.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1882년 한미수호통상조약 이후 78년 만의 첫 방문이었고, 아이젠하워로서는 두 번째였다. “당선되면 한국을 방문, 한국전쟁을 종식시키겠다”고 한 선거공약을 지키기 위해 1952년 12월 당선자 자격으로...

이승만 대통령 반공포로 석방

1951년 7월 시작된 휴전협상의 최대 걸림돌은 포로송환문제였다. 유엔군 측의 자유송환론과 공산군 측의 강제송환론이 팽팽히 맞섰기 때문이다. 1953년 6월 8일, 유엔군·공산군 양측의 포로송환문제가 2년만에 타결됐다. 조속한 종전을 원했던 유엔군 측이 공산군 측의 제안을 상당부분 수용한 것이 돌파구를 마련했다. 휴전이 성립된 뒤 2개월 안으로 송환을 희망하는 포로들을 맞바꾸는 한편 송환을 거부하는 포로들은 체코·폴란드·인도 등 5개국으로 구성된 ‘중립국송환위원회’가 4개월...

여간첩 김수임 사형 선고

6·25가 발발하자 한 사형수가 예정보다 앞당겨 총살형에 처해졌다. 간첩 이적행위로 사형 선고를 받은 김수임이었다. 이화여전 9년 후배 전숙희에 따르면 “사랑밖에 몰랐던, 그리고 너무 순진했던” 김수임은 경기도 개성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11살에 팔려가다시피 민며느리로 갔다가 4년 만에 야반도주해 미국인 선교사의 도움으로 이화여전 영문과를 졸업한 당시로서는 보기드문 재원이었다. 탁월한 영어 실력으로 세브란스 병원의 미국인 통역으로 취직한 김수임은 어느날 한 파티장에서...

미-아르헨티나 간 ‘포클랜드 전쟁’ 개전

1982년 초 아르헨티나 경제는 위기상황이었다. 3월의 인플레는 46%를 기록했고 실질소득은 1970년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1916년부터 1976년까지 60년 동안 대통령이 22번이나 바뀌고 1976년부터는 아예 쿠데타 세력들이 돌아가며 대통령직을 맡았던 군부 독재의 폐해가 마침내 드러난 것이다. 길거리는 연일 반정부 시위로 시끄러웠다. 1981년 12월 군 참모총장에서 대통령에 취임한 레오폴도 갈티에리는 국민들의 불만을 밖으로 돌리기 위해 포클랜드 전쟁을 결정했다....

美 국기 처음 제정

1777년 6월 14일, 미국이 독립 1년 만에 국기를 처음 제정했다. 13개주 대표가 모인 대륙회의에서였다. ‘붉은 색과 흰 색으로 된 13개의 줄무늬와 청색 바탕의 13개 별’이 국기 제정의 첫 원칙이었다. 그러나 별의 배치를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아 국기마다 별의 위치가 달랐다. 요즘처럼 별을 엇갈리게 배열한 것도 있었고, 둥글게 배열한 것도 있었다. 성조기(星條旗·Stars and Stripes)를 처음 도안한 사람은 벳시 로스라는 여인과 독립선언서에 서명했던 프랜시스...

미국 ‘미란다 원칙’ 고지 의무화 판결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으며….” 1966년 6월 13일, 이른바 ‘미란다 원칙’ 고지를 의무화하도록 한 판결이 미 법정에서 처음 내려졌다. 미 연방 대법원이 경찰로부터 묵비권과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권리를 사전에 듣지 못한 피의자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미란다는 1963년 3월,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시의 한 극장 앞에서 10대 소녀를 납치·강간한 혐의로 재판에 회부된 23세의 멕시코계 청년 어네스토 미란다의 이름이다. 때문에 이 사건은 미국인들에게 ‘미란다...

‘스윙의 황제’ 베니 굿맨 사망

“스윙은 분석을 용납하지 않는다.” 정의(定義)를 거부하는 이 간단한 설명으로 베니 굿맨은 왜 자신이 ‘스윙의 황제’로 불리는지를 명쾌하게 일깨워주었다. 황제는 군림할 뿐 설명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뜻일까. 1909년 시카고의 가난한 러시아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굿맨은 어려서부터 흑인 클럽을 기웃거리며 재즈와 블루스를 듣고 자랐다. 독학으로 닦은 클라리넷 연주는 젊어서 이미 대가의 경지를 넘보고 있었다. 저속한 가락의 음악에서부터 모차르트의 천상의 소리까지 자유자재로...

수양대군, 단종 폐위하고 세조에 즉위

단종(1441.7~1457.10)은 태어난 지 하루 만에 어머니(세자빈 권씨=현덕왕후)가 산후병으로 숨지고, 11살이던 1452년 5월 왕위에 올라서도 삼촌에게 3년 만에 죽임을 당하는 등 조선 역사상 가장 불행한 임금으로 꼽힌다. 단종은 임금이 되기 전까지는 할아버지 세종의 총애를 받으며 7세 때 왕세손, 9세 때 왕세자로 책봉되어 나름대로 순탄한 길을 걸었다. 하지만 할아버지 세종이 1450년 죽고 아버지 문종마저 즉위 2년 2개월 만인 1452년 5월에 죽어 어린 나이에...

한국은행 창립

1950년 6월 12일, 한국은행이 창립됐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 설립된 첫 중앙은행이었다. 1909년에 설립된 구 한국은행과 1911년에 이를 개편해 설립된 조선은행이 중앙은행 구실을 해왔지만 둘 다 일제가 설립한 은행이었다. 조선은행은 한국은행 설립 하루 전에 청산됐다. 한국은행은 창립되자 마자 수난의 길을 걸었다. 기존의 조선은행권 화폐를 대체할 새 한국은행권 화폐를 발행도 하기 전, 창립 13일 만에 6·25가 터졌기 때문이다. 보유하고 있던 지금은(地金銀)...

美 영화배우 존 웨인 사망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그를 가리켜 “미국 바로 그 자체”라고 했다. 미국인들은 그를 “사나이 중의 사나이” “진정한 영웅”으로 칭송한다. 1928년 존 포드 감독의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하면서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는 1930년 영화 ‘빅 트레일’에서 첫 주연을 맡았으나 무명기의 연장일 뿐이었다. 이후 10여 년간 8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으나 영화가 B급이어서 배우도 B급 대접을 받았다. 존 포드 감독과의 운명적인 만남은 1939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빛을 발한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美 대통령으로는 사상 처음 내한

4·19 의거 후 2개월 만에 100만의 인파가 다시 서울거리를 가득 메웠다. 얼굴에는 분노 대신 반가움이, 두 손에는 돌멩이 대신 국기가 잡혀있는 것이 그때와 다른 점이었다. 1960년 6월 19일, 드와이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다.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1882년 한미수호통상조약 이후 78년 만의 첫 방문이었고, 아이젠하워로서는 두 번째였다. “당선되면 한국을 방문, 한국전쟁을 종식시키겠다”고 한 선거공약을 지키기 위해 1952년 12월 당선자 자격으로...

이승만 대통령 반공포로 석방

1951년 7월 시작된 휴전협상의 최대 걸림돌은 포로송환문제였다. 유엔군 측의 자유송환론과 공산군 측의 강제송환론이 팽팽히 맞섰기 때문이다. 1953년 6월 8일, 유엔군·공산군 양측의 포로송환문제가 2년만에 타결됐다. 조속한 종전을 원했던 유엔군 측이 공산군 측의 제안을 상당부분 수용한 것이 돌파구를 마련했다. 휴전이 성립된 뒤 2개월 안으로 송환을 희망하는 포로들을 맞바꾸는 한편 송환을 거부하는 포로들은 체코·폴란드·인도 등 5개국으로 구성된 ‘중립국송환위원회’가 4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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