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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개헌안 국회 통과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간접선거로는 재선될 가망성이 없다고 판단한 이승만 대통령이 직선제를 골자로 한 개헌안을 제출했다. 그러나 이듬해인 1952년 1월, 이승만의 개헌안이 압도적인 표차로 부결되고 이승만과 대립하고 있던 국회가 1952년 4월 내각제를 골자로 한 개헌안을 별도로 제출했다. 그러자 이승만의 집요한 방해공작이 시작됐다. 이른바 ‘부산 정치파동’의 시작이었다. 국회 내 교섭단체 ‘신라회’가 혼란한 틈을 타 제3의 개헌안을 제출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수영복 대회에 비키니 수영복 처음 등장
태평양 마셜제도에 속한 산호초 비키니(Bikini)가 세계의 주목을 끌기 시작한 것은 1946년 7월 1일, 미국이 이곳에 기자단을 불러놓고 공개 핵실험을 하고부터였다. 그날 일본 나가사키에 떨어진 폭탄과 같은 급의 원자폭탄이 미국의 전략폭격기 B29에서 투하되는 순간 아름답던 비키니 바다는 순식간에 불바다가 됐다. 표적용으로 모아놓은 항공모함 ‘사라토가’와 일본과 독일의 군함 75척 가운데 17척이 침몰되거나 대파됐다. 나머지 배도 온전한 것이 거의 없었다. 나흘 뒤인 7월...
포항종합제철 준공
1973년 6월 9일 이른 아침부터 박태준 사장과 직원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고로(용광로) 아래 출선구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전날 태양열로 채화한 원화(元火)로 박 사장이 점화로에 불을 지핀지 21시간이 지난 이날 오전 7시반, 이윽고 출선구가 열리면서 밝은 오렌지색 섬광이 몇미터 쯤 치솟는가 싶더니 용암처럼 시뻘건 쇳물이 힘차게 흘러나왔다. 마침내 우리 손으로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일관(一貫)제철소 고로에서 쇳물이 생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1970년 4월...
이스라엘 특공대원 엔테베 기습작전 성공
1976년 7월 3일 오후, 이스라엘 특공대원 100여 명을 태운 허큘리스 C-130H 수송기 4대가 펜텀 제트기의 호위를 받으며 이스라엘을 출발했다. 목적지는 3840㎞나 떨어진 아프리카 우간다의 엔테베 공항이었다. 엔테베 공항에는 승객·승무원 268명을 태우고 이스라엘 텔아비브 공항을 출발해 프랑스 파리로 향하던 에어 프랑스기가 6월 27일 그리스 아테네에서 팔레스타인 게릴라들에 의해 납치돼 강제 착륙해 있었다. 납치범들은 이스라엘을 비롯, 서독·프랑스·케냐에 수감되어...
중국 길림성 만보산에서 한·중 농민 충돌
1931년 7월 2일 오전8시 쯤, 중국 길림성 장춘 교외에 위치한 만보산(萬寶山)에서 조선인 농민 200여 명과 중국인 농민 500여 명이 충돌했다. 일제의 토지조사사업으로 인해 소작농으로 전락한 조선인 농민들이 만주로 이주해 농사를 짓던 중 만보산 근처의 미개간지를 중국 정부로부터 차지(借地)한 일본인에게서 10년 기한으로 다시 불하받아 관개용 수로공사를 하고 있는 것을 중국인 농민들이 막은 것이 발단이었다. 수로공사로 인해 땅이 갈라지고 수해까지 예상한 중국인 농민들이...
여류비행사 아멜리아 에어하트 남태평양 비행 중 실종
1937년 당시, 대서양·태평양 항로가 개설될 정도로 항공술이 발달했지만 적도 주변을 따라 도는 긴 항로로 지구를 일주한 사람은 그때까지 아무도 없었다. 39세의 미국 여성 아멜리아 에어하트가 이 모험에 도전장을 냈다. 에어하트는 1932년 5월 여성 최초로 대서양 무착륙 횡단비행에 성공하고, 미 대륙(로스엔젤레스∼뉴욕)과 태평양(하와이∼캘리포니아) 상공을 단독 논스톱으로 비행한 경력을 갖고 있던 베테랑 여성 조종사였다. 그는 결혼해서도 남편의 성을 따르지 않았던 당대 최고의...
6·25 개전 후 첫 美 지상군 부산 도착
북한의 남침이 미국에 알려져 대책 마련을 위한 첫 국가안보회의가 열린 것은 1950년 6월 25일 오후7시45분(미 워싱턴 시각) 쯤이었다. 안보회의의 주된 관심사는 소련이 전면적인 공격에 앞서 전초전을 일으킨 것인지를 파악하는 일이었다. 전초전이 아니라는 사실이 확인되자 미국은 한국전 개입을 결정했다. 그러면서도 트루먼 대통령은 소련과의 전면전으로 비화하지 않도록 주의를 환기시켰다. 참전을 결정한 미국은 도쿄에 주둔하고 있는 미 극동사령관 맥아더를 전황파악차 한국으로...
美 남북전쟁의 게티즈버그 전투에서 남군 대패
남군 총사령관 로버트 리 장군은 1861년부터 계속된 남북전쟁에서 불패를 자랑했지만 언제나 조급하고 불안했다. 인구와 경제력 모두 북군에 뒤져 시간이 지날수록 남군이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863년 6월 3일, 리 장군은 남북전쟁에 종지부를 찍을 결정적 전기를 마련하기 위해 버지니아주를 출발, 북군의 근거지인 펜실베이니아주의 주도인 해리스버그를 향해 북상했다. 승리를 못한다 해도 최소한 북군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들이고, 북군이 다시...
미 벨연구소, 트랜지스터 실체 첫 공개
1948년 6월 30일, 20세기 기술혁명의 단초이자 20세기 최고 발명품 가운데 하나로 일컬어지는 ‘트랜지스터’가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윌리엄 쇼클리, 존 바딘, 월터 브래튼 3명의 연구원이 6개월 전인 1947년 12월 16일 개발을 끝내고 12월 23일 연구소 내 간부들에게 발명을 시연한 상태였지만 특허 획득을 위해 함구해오던 미국 뉴저지주 벨연구소가 이날 그 실체를 처음 공개한 것이다. 그날 세 연구원은 새로운 장치를 선보였다. 게르마늄과 배터리, 삼각형...
남북 노동당, ‘조선노동당’으로 개명
김일성이 아무리 소련의 비호를 받고 입북했어도 국내 토착공산주의자들은 바지저고리가 아니었다. 더구나 새파란 젊은이가 세력을 확대하고 새로운 지도부 구성을 주장하는 등 분란을 일으키자 참다못한 박헌영 등이 “서울에 엄연히 당중앙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분파 행동”이라며 제동을 걸었다. 때문에 1945년 10월 5일부터 평양에서 ‘서북 5도 당책임자 및 열성자 대회’를 위한 예비회의를 열어 공산당 분국 설치를 논의했지만, 결론은커녕 대립만 심화됐다. 결국 분국 창설은 10월 8일...
발췌개헌안 국회 통과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간접선거로는 재선될 가망성이 없다고 판단한 이승만 대통령이 직선제를 골자로 한 개헌안을 제출했다. 그러나 이듬해인 1952년 1월, 이승만의 개헌안이 압도적인 표차로 부결되고 이승만과 대립하고 있던 국회가 1952년 4월 내각제를 골자로 한 개헌안을 별도로 제출했다. 그러자 이승만의 집요한 방해공작이 시작됐다. 이른바 ‘부산 정치파동’의 시작이었다. 국회 내 교섭단체 ‘신라회’가 혼란한 틈을 타 제3의 개헌안을 제출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수영복 대회에 비키니 수영복 처음 등장
태평양 마셜제도에 속한 산호초 비키니(Bikini)가 세계의 주목을 끌기 시작한 것은 1946년 7월 1일, 미국이 이곳에 기자단을 불러놓고 공개 핵실험을 하고부터였다. 그날 일본 나가사키에 떨어진 폭탄과 같은 급의 원자폭탄이 미국의 전략폭격기 B29에서 투하되는 순간 아름답던 비키니 바다는 순식간에 불바다가 됐다. 표적용으로 모아놓은 항공모함 ‘사라토가’와 일본과 독일의 군함 75척 가운데 17척이 침몰되거나 대파됐다. 나머지 배도 온전한 것이 거의 없었다. 나흘 뒤인 7월...
포항종합제철 준공
1973년 6월 9일 이른 아침부터 박태준 사장과 직원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고로(용광로) 아래 출선구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전날 태양열로 채화한 원화(元火)로 박 사장이 점화로에 불을 지핀지 21시간이 지난 이날 오전 7시반, 이윽고 출선구가 열리면서 밝은 오렌지색 섬광이 몇미터 쯤 치솟는가 싶더니 용암처럼 시뻘건 쇳물이 힘차게 흘러나왔다. 마침내 우리 손으로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일관(一貫)제철소 고로에서 쇳물이 생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1970년 4월...
이스라엘 특공대원 엔테베 기습작전 성공
1976년 7월 3일 오후, 이스라엘 특공대원 100여 명을 태운 허큘리스 C-130H 수송기 4대가 펜텀 제트기의 호위를 받으며 이스라엘을 출발했다. 목적지는 3840㎞나 떨어진 아프리카 우간다의 엔테베 공항이었다. 엔테베 공항에는 승객·승무원 268명을 태우고 이스라엘 텔아비브 공항을 출발해 프랑스 파리로 향하던 에어 프랑스기가 6월 27일 그리스 아테네에서 팔레스타인 게릴라들에 의해 납치돼 강제 착륙해 있었다. 납치범들은 이스라엘을 비롯, 서독·프랑스·케냐에 수감되어...
중국 길림성 만보산에서 한·중 농민 충돌
1931년 7월 2일 오전8시 쯤, 중국 길림성 장춘 교외에 위치한 만보산(萬寶山)에서 조선인 농민 200여 명과 중국인 농민 500여 명이 충돌했다. 일제의 토지조사사업으로 인해 소작농으로 전락한 조선인 농민들이 만주로 이주해 농사를 짓던 중 만보산 근처의 미개간지를 중국 정부로부터 차지(借地)한 일본인에게서 10년 기한으로 다시 불하받아 관개용 수로공사를 하고 있는 것을 중국인 농민들이 막은 것이 발단이었다. 수로공사로 인해 땅이 갈라지고 수해까지 예상한 중국인 농민들이...
여류비행사 아멜리아 에어하트 남태평양 비행 중 실종
1937년 당시, 대서양·태평양 항로가 개설될 정도로 항공술이 발달했지만 적도 주변을 따라 도는 긴 항로로 지구를 일주한 사람은 그때까지 아무도 없었다. 39세의 미국 여성 아멜리아 에어하트가 이 모험에 도전장을 냈다. 에어하트는 1932년 5월 여성 최초로 대서양 무착륙 횡단비행에 성공하고, 미 대륙(로스엔젤레스∼뉴욕)과 태평양(하와이∼캘리포니아) 상공을 단독 논스톱으로 비행한 경력을 갖고 있던 베테랑 여성 조종사였다. 그는 결혼해서도 남편의 성을 따르지 않았던 당대 최고의...
6·25 개전 후 첫 美 지상군 부산 도착
북한의 남침이 미국에 알려져 대책 마련을 위한 첫 국가안보회의가 열린 것은 1950년 6월 25일 오후7시45분(미 워싱턴 시각) 쯤이었다. 안보회의의 주된 관심사는 소련이 전면적인 공격에 앞서 전초전을 일으킨 것인지를 파악하는 일이었다. 전초전이 아니라는 사실이 확인되자 미국은 한국전 개입을 결정했다. 그러면서도 트루먼 대통령은 소련과의 전면전으로 비화하지 않도록 주의를 환기시켰다. 참전을 결정한 미국은 도쿄에 주둔하고 있는 미 극동사령관 맥아더를 전황파악차 한국으로...
美 남북전쟁의 게티즈버그 전투에서 남군 대패
남군 총사령관 로버트 리 장군은 1861년부터 계속된 남북전쟁에서 불패를 자랑했지만 언제나 조급하고 불안했다. 인구와 경제력 모두 북군에 뒤져 시간이 지날수록 남군이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863년 6월 3일, 리 장군은 남북전쟁에 종지부를 찍을 결정적 전기를 마련하기 위해 버지니아주를 출발, 북군의 근거지인 펜실베이니아주의 주도인 해리스버그를 향해 북상했다. 승리를 못한다 해도 최소한 북군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들이고, 북군이 다시...
미 벨연구소, 트랜지스터 실체 첫 공개
1948년 6월 30일, 20세기 기술혁명의 단초이자 20세기 최고 발명품 가운데 하나로 일컬어지는 ‘트랜지스터’가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윌리엄 쇼클리, 존 바딘, 월터 브래튼 3명의 연구원이 6개월 전인 1947년 12월 16일 개발을 끝내고 12월 23일 연구소 내 간부들에게 발명을 시연한 상태였지만 특허 획득을 위해 함구해오던 미국 뉴저지주 벨연구소가 이날 그 실체를 처음 공개한 것이다. 그날 세 연구원은 새로운 장치를 선보였다. 게르마늄과 배터리, 삼각형...
남북 노동당, ‘조선노동당’으로 개명
김일성이 아무리 소련의 비호를 받고 입북했어도 국내 토착공산주의자들은 바지저고리가 아니었다. 더구나 새파란 젊은이가 세력을 확대하고 새로운 지도부 구성을 주장하는 등 분란을 일으키자 참다못한 박헌영 등이 “서울에 엄연히 당중앙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분파 행동”이라며 제동을 걸었다. 때문에 1945년 10월 5일부터 평양에서 ‘서북 5도 당책임자 및 열성자 대회’를 위한 예비회의를 열어 공산당 분국 설치를 논의했지만, 결론은커녕 대립만 심화됐다. 결국 분국 창설은 10월 8일...
발췌개헌안 국회 통과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간접선거로는 재선될 가망성이 없다고 판단한 이승만 대통령이 직선제를 골자로 한 개헌안을 제출했다. 그러나 이듬해인 1952년 1월, 이승만의 개헌안이 압도적인 표차로 부결되고 이승만과 대립하고 있던 국회가 1952년 4월 내각제를 골자로 한 개헌안을 별도로 제출했다. 그러자 이승만의 집요한 방해공작이 시작됐다. 이른바 ‘부산 정치파동’의 시작이었다. 국회 내 교섭단체 ‘신라회’가 혼란한 틈을 타 제3의 개헌안을 제출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수영복 대회에 비키니 수영복 처음 등장
태평양 마셜제도에 속한 산호초 비키니(Bikini)가 세계의 주목을 끌기 시작한 것은 1946년 7월 1일, 미국이 이곳에 기자단을 불러놓고 공개 핵실험을 하고부터였다. 그날 일본 나가사키에 떨어진 폭탄과 같은 급의 원자폭탄이 미국의 전략폭격기 B29에서 투하되는 순간 아름답던 비키니 바다는 순식간에 불바다가 됐다. 표적용으로 모아놓은 항공모함 ‘사라토가’와 일본과 독일의 군함 75척 가운데 17척이 침몰되거나 대파됐다. 나머지 배도 온전한 것이 거의 없었다. 나흘 뒤인 7월...
포항종합제철 준공
1973년 6월 9일 이른 아침부터 박태준 사장과 직원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고로(용광로) 아래 출선구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전날 태양열로 채화한 원화(元火)로 박 사장이 점화로에 불을 지핀지 21시간이 지난 이날 오전 7시반, 이윽고 출선구가 열리면서 밝은 오렌지색 섬광이 몇미터 쯤 치솟는가 싶더니 용암처럼 시뻘건 쇳물이 힘차게 흘러나왔다. 마침내 우리 손으로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일관(一貫)제철소 고로에서 쇳물이 생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1970년 4월...
이스라엘 특공대원 엔테베 기습작전 성공
1976년 7월 3일 오후, 이스라엘 특공대원 100여 명을 태운 허큘리스 C-130H 수송기 4대가 펜텀 제트기의 호위를 받으며 이스라엘을 출발했다. 목적지는 3840㎞나 떨어진 아프리카 우간다의 엔테베 공항이었다. 엔테베 공항에는 승객·승무원 268명을 태우고 이스라엘 텔아비브 공항을 출발해 프랑스 파리로 향하던 에어 프랑스기가 6월 27일 그리스 아테네에서 팔레스타인 게릴라들에 의해 납치돼 강제 착륙해 있었다. 납치범들은 이스라엘을 비롯, 서독·프랑스·케냐에 수감되어...
중국 길림성 만보산에서 한·중 농민 충돌
1931년 7월 2일 오전8시 쯤, 중국 길림성 장춘 교외에 위치한 만보산(萬寶山)에서 조선인 농민 200여 명과 중국인 농민 500여 명이 충돌했다. 일제의 토지조사사업으로 인해 소작농으로 전락한 조선인 농민들이 만주로 이주해 농사를 짓던 중 만보산 근처의 미개간지를 중국 정부로부터 차지(借地)한 일본인에게서 10년 기한으로 다시 불하받아 관개용 수로공사를 하고 있는 것을 중국인 농민들이 막은 것이 발단이었다. 수로공사로 인해 땅이 갈라지고 수해까지 예상한 중국인 농민들이...
여류비행사 아멜리아 에어하트 남태평양 비행 중 실종
1937년 당시, 대서양·태평양 항로가 개설될 정도로 항공술이 발달했지만 적도 주변을 따라 도는 긴 항로로 지구를 일주한 사람은 그때까지 아무도 없었다. 39세의 미국 여성 아멜리아 에어하트가 이 모험에 도전장을 냈다. 에어하트는 1932년 5월 여성 최초로 대서양 무착륙 횡단비행에 성공하고, 미 대륙(로스엔젤레스∼뉴욕)과 태평양(하와이∼캘리포니아) 상공을 단독 논스톱으로 비행한 경력을 갖고 있던 베테랑 여성 조종사였다. 그는 결혼해서도 남편의 성을 따르지 않았던 당대 최고의...
6·25 개전 후 첫 美 지상군 부산 도착
북한의 남침이 미국에 알려져 대책 마련을 위한 첫 국가안보회의가 열린 것은 1950년 6월 25일 오후7시45분(미 워싱턴 시각) 쯤이었다. 안보회의의 주된 관심사는 소련이 전면적인 공격에 앞서 전초전을 일으킨 것인지를 파악하는 일이었다. 전초전이 아니라는 사실이 확인되자 미국은 한국전 개입을 결정했다. 그러면서도 트루먼 대통령은 소련과의 전면전으로 비화하지 않도록 주의를 환기시켰다. 참전을 결정한 미국은 도쿄에 주둔하고 있는 미 극동사령관 맥아더를 전황파악차 한국으로...
美 남북전쟁의 게티즈버그 전투에서 남군 대패
남군 총사령관 로버트 리 장군은 1861년부터 계속된 남북전쟁에서 불패를 자랑했지만 언제나 조급하고 불안했다. 인구와 경제력 모두 북군에 뒤져 시간이 지날수록 남군이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863년 6월 3일, 리 장군은 남북전쟁에 종지부를 찍을 결정적 전기를 마련하기 위해 버지니아주를 출발, 북군의 근거지인 펜실베이니아주의 주도인 해리스버그를 향해 북상했다. 승리를 못한다 해도 최소한 북군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들이고, 북군이 다시...
미 벨연구소, 트랜지스터 실체 첫 공개
1948년 6월 30일, 20세기 기술혁명의 단초이자 20세기 최고 발명품 가운데 하나로 일컬어지는 ‘트랜지스터’가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윌리엄 쇼클리, 존 바딘, 월터 브래튼 3명의 연구원이 6개월 전인 1947년 12월 16일 개발을 끝내고 12월 23일 연구소 내 간부들에게 발명을 시연한 상태였지만 특허 획득을 위해 함구해오던 미국 뉴저지주 벨연구소가 이날 그 실체를 처음 공개한 것이다. 그날 세 연구원은 새로운 장치를 선보였다. 게르마늄과 배터리, 삼각형...
남북 노동당, ‘조선노동당’으로 개명
김일성이 아무리 소련의 비호를 받고 입북했어도 국내 토착공산주의자들은 바지저고리가 아니었다. 더구나 새파란 젊은이가 세력을 확대하고 새로운 지도부 구성을 주장하는 등 분란을 일으키자 참다못한 박헌영 등이 “서울에 엄연히 당중앙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분파 행동”이라며 제동을 걸었다. 때문에 1945년 10월 5일부터 평양에서 ‘서북 5도 당책임자 및 열성자 대회’를 위한 예비회의를 열어 공산당 분국 설치를 논의했지만, 결론은커녕 대립만 심화됐다. 결국 분국 창설은 10월 8일...
발췌개헌안 국회 통과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간접선거로는 재선될 가망성이 없다고 판단한 이승만 대통령이 직선제를 골자로 한 개헌안을 제출했다. 그러나 이듬해인 1952년 1월, 이승만의 개헌안이 압도적인 표차로 부결되고 이승만과 대립하고 있던 국회가 1952년 4월 내각제를 골자로 한 개헌안을 별도로 제출했다. 그러자 이승만의 집요한 방해공작이 시작됐다. 이른바 ‘부산 정치파동’의 시작이었다. 국회 내 교섭단체 ‘신라회’가 혼란한 틈을 타 제3의 개헌안을 제출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수영복 대회에 비키니 수영복 처음 등장
태평양 마셜제도에 속한 산호초 비키니(Bikini)가 세계의 주목을 끌기 시작한 것은 1946년 7월 1일, 미국이 이곳에 기자단을 불러놓고 공개 핵실험을 하고부터였다. 그날 일본 나가사키에 떨어진 폭탄과 같은 급의 원자폭탄이 미국의 전략폭격기 B29에서 투하되는 순간 아름답던 비키니 바다는 순식간에 불바다가 됐다. 표적용으로 모아놓은 항공모함 ‘사라토가’와 일본과 독일의 군함 75척 가운데 17척이 침몰되거나 대파됐다. 나머지 배도 온전한 것이 거의 없었다. 나흘 뒤인 7월...
포항종합제철 준공
1973년 6월 9일 이른 아침부터 박태준 사장과 직원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고로(용광로) 아래 출선구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전날 태양열로 채화한 원화(元火)로 박 사장이 점화로에 불을 지핀지 21시간이 지난 이날 오전 7시반, 이윽고 출선구가 열리면서 밝은 오렌지색 섬광이 몇미터 쯤 치솟는가 싶더니 용암처럼 시뻘건 쇳물이 힘차게 흘러나왔다. 마침내 우리 손으로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일관(一貫)제철소 고로에서 쇳물이 생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1970년 4월...
이스라엘 특공대원 엔테베 기습작전 성공
1976년 7월 3일 오후, 이스라엘 특공대원 100여 명을 태운 허큘리스 C-130H 수송기 4대가 펜텀 제트기의 호위를 받으며 이스라엘을 출발했다. 목적지는 3840㎞나 떨어진 아프리카 우간다의 엔테베 공항이었다. 엔테베 공항에는 승객·승무원 268명을 태우고 이스라엘 텔아비브 공항을 출발해 프랑스 파리로 향하던 에어 프랑스기가 6월 27일 그리스 아테네에서 팔레스타인 게릴라들에 의해 납치돼 강제 착륙해 있었다. 납치범들은 이스라엘을 비롯, 서독·프랑스·케냐에 수감되어...
중국 길림성 만보산에서 한·중 농민 충돌
1931년 7월 2일 오전8시 쯤, 중국 길림성 장춘 교외에 위치한 만보산(萬寶山)에서 조선인 농민 200여 명과 중국인 농민 500여 명이 충돌했다. 일제의 토지조사사업으로 인해 소작농으로 전락한 조선인 농민들이 만주로 이주해 농사를 짓던 중 만보산 근처의 미개간지를 중국 정부로부터 차지(借地)한 일본인에게서 10년 기한으로 다시 불하받아 관개용 수로공사를 하고 있는 것을 중국인 농민들이 막은 것이 발단이었다. 수로공사로 인해 땅이 갈라지고 수해까지 예상한 중국인 농민들이...
여류비행사 아멜리아 에어하트 남태평양 비행 중 실종
1937년 당시, 대서양·태평양 항로가 개설될 정도로 항공술이 발달했지만 적도 주변을 따라 도는 긴 항로로 지구를 일주한 사람은 그때까지 아무도 없었다. 39세의 미국 여성 아멜리아 에어하트가 이 모험에 도전장을 냈다. 에어하트는 1932년 5월 여성 최초로 대서양 무착륙 횡단비행에 성공하고, 미 대륙(로스엔젤레스∼뉴욕)과 태평양(하와이∼캘리포니아) 상공을 단독 논스톱으로 비행한 경력을 갖고 있던 베테랑 여성 조종사였다. 그는 결혼해서도 남편의 성을 따르지 않았던 당대 최고의...
6·25 개전 후 첫 美 지상군 부산 도착
북한의 남침이 미국에 알려져 대책 마련을 위한 첫 국가안보회의가 열린 것은 1950년 6월 25일 오후7시45분(미 워싱턴 시각) 쯤이었다. 안보회의의 주된 관심사는 소련이 전면적인 공격에 앞서 전초전을 일으킨 것인지를 파악하는 일이었다. 전초전이 아니라는 사실이 확인되자 미국은 한국전 개입을 결정했다. 그러면서도 트루먼 대통령은 소련과의 전면전으로 비화하지 않도록 주의를 환기시켰다. 참전을 결정한 미국은 도쿄에 주둔하고 있는 미 극동사령관 맥아더를 전황파악차 한국으로...
美 남북전쟁의 게티즈버그 전투에서 남군 대패
남군 총사령관 로버트 리 장군은 1861년부터 계속된 남북전쟁에서 불패를 자랑했지만 언제나 조급하고 불안했다. 인구와 경제력 모두 북군에 뒤져 시간이 지날수록 남군이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863년 6월 3일, 리 장군은 남북전쟁에 종지부를 찍을 결정적 전기를 마련하기 위해 버지니아주를 출발, 북군의 근거지인 펜실베이니아주의 주도인 해리스버그를 향해 북상했다. 승리를 못한다 해도 최소한 북군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들이고, 북군이 다시...
미 벨연구소, 트랜지스터 실체 첫 공개
1948년 6월 30일, 20세기 기술혁명의 단초이자 20세기 최고 발명품 가운데 하나로 일컬어지는 ‘트랜지스터’가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윌리엄 쇼클리, 존 바딘, 월터 브래튼 3명의 연구원이 6개월 전인 1947년 12월 16일 개발을 끝내고 12월 23일 연구소 내 간부들에게 발명을 시연한 상태였지만 특허 획득을 위해 함구해오던 미국 뉴저지주 벨연구소가 이날 그 실체를 처음 공개한 것이다. 그날 세 연구원은 새로운 장치를 선보였다. 게르마늄과 배터리, 삼각형...
남북 노동당, ‘조선노동당’으로 개명
김일성이 아무리 소련의 비호를 받고 입북했어도 국내 토착공산주의자들은 바지저고리가 아니었다. 더구나 새파란 젊은이가 세력을 확대하고 새로운 지도부 구성을 주장하는 등 분란을 일으키자 참다못한 박헌영 등이 “서울에 엄연히 당중앙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분파 행동”이라며 제동을 걸었다. 때문에 1945년 10월 5일부터 평양에서 ‘서북 5도 당책임자 및 열성자 대회’를 위한 예비회의를 열어 공산당 분국 설치를 논의했지만, 결론은커녕 대립만 심화됐다. 결국 분국 창설은 10월 8일...
발췌개헌안 국회 통과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간접선거로는 재선될 가망성이 없다고 판단한 이승만 대통령이 직선제를 골자로 한 개헌안을 제출했다. 그러나 이듬해인 1952년 1월, 이승만의 개헌안이 압도적인 표차로 부결되고 이승만과 대립하고 있던 국회가 1952년 4월 내각제를 골자로 한 개헌안을 별도로 제출했다. 그러자 이승만의 집요한 방해공작이 시작됐다. 이른바 ‘부산 정치파동’의 시작이었다. 국회 내 교섭단체 ‘신라회’가 혼란한 틈을 타 제3의 개헌안을 제출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수영복 대회에 비키니 수영복 처음 등장
태평양 마셜제도에 속한 산호초 비키니(Bikini)가 세계의 주목을 끌기 시작한 것은 1946년 7월 1일, 미국이 이곳에 기자단을 불러놓고 공개 핵실험을 하고부터였다. 그날 일본 나가사키에 떨어진 폭탄과 같은 급의 원자폭탄이 미국의 전략폭격기 B29에서 투하되는 순간 아름답던 비키니 바다는 순식간에 불바다가 됐다. 표적용으로 모아놓은 항공모함 ‘사라토가’와 일본과 독일의 군함 75척 가운데 17척이 침몰되거나 대파됐다. 나머지 배도 온전한 것이 거의 없었다. 나흘 뒤인 7월...
포항종합제철 준공
1973년 6월 9일 이른 아침부터 박태준 사장과 직원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고로(용광로) 아래 출선구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전날 태양열로 채화한 원화(元火)로 박 사장이 점화로에 불을 지핀지 21시간이 지난 이날 오전 7시반, 이윽고 출선구가 열리면서 밝은 오렌지색 섬광이 몇미터 쯤 치솟는가 싶더니 용암처럼 시뻘건 쇳물이 힘차게 흘러나왔다. 마침내 우리 손으로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일관(一貫)제철소 고로에서 쇳물이 생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1970년 4월...
이스라엘 특공대원 엔테베 기습작전 성공
1976년 7월 3일 오후, 이스라엘 특공대원 100여 명을 태운 허큘리스 C-130H 수송기 4대가 펜텀 제트기의 호위를 받으며 이스라엘을 출발했다. 목적지는 3840㎞나 떨어진 아프리카 우간다의 엔테베 공항이었다. 엔테베 공항에는 승객·승무원 268명을 태우고 이스라엘 텔아비브 공항을 출발해 프랑스 파리로 향하던 에어 프랑스기가 6월 27일 그리스 아테네에서 팔레스타인 게릴라들에 의해 납치돼 강제 착륙해 있었다. 납치범들은 이스라엘을 비롯, 서독·프랑스·케냐에 수감되어...
중국 길림성 만보산에서 한·중 농민 충돌
1931년 7월 2일 오전8시 쯤, 중국 길림성 장춘 교외에 위치한 만보산(萬寶山)에서 조선인 농민 200여 명과 중국인 농민 500여 명이 충돌했다. 일제의 토지조사사업으로 인해 소작농으로 전락한 조선인 농민들이 만주로 이주해 농사를 짓던 중 만보산 근처의 미개간지를 중국 정부로부터 차지(借地)한 일본인에게서 10년 기한으로 다시 불하받아 관개용 수로공사를 하고 있는 것을 중국인 농민들이 막은 것이 발단이었다. 수로공사로 인해 땅이 갈라지고 수해까지 예상한 중국인 농민들이...
여류비행사 아멜리아 에어하트 남태평양 비행 중 실종
1937년 당시, 대서양·태평양 항로가 개설될 정도로 항공술이 발달했지만 적도 주변을 따라 도는 긴 항로로 지구를 일주한 사람은 그때까지 아무도 없었다. 39세의 미국 여성 아멜리아 에어하트가 이 모험에 도전장을 냈다. 에어하트는 1932년 5월 여성 최초로 대서양 무착륙 횡단비행에 성공하고, 미 대륙(로스엔젤레스∼뉴욕)과 태평양(하와이∼캘리포니아) 상공을 단독 논스톱으로 비행한 경력을 갖고 있던 베테랑 여성 조종사였다. 그는 결혼해서도 남편의 성을 따르지 않았던 당대 최고의...
6·25 개전 후 첫 美 지상군 부산 도착
북한의 남침이 미국에 알려져 대책 마련을 위한 첫 국가안보회의가 열린 것은 1950년 6월 25일 오후7시45분(미 워싱턴 시각) 쯤이었다. 안보회의의 주된 관심사는 소련이 전면적인 공격에 앞서 전초전을 일으킨 것인지를 파악하는 일이었다. 전초전이 아니라는 사실이 확인되자 미국은 한국전 개입을 결정했다. 그러면서도 트루먼 대통령은 소련과의 전면전으로 비화하지 않도록 주의를 환기시켰다. 참전을 결정한 미국은 도쿄에 주둔하고 있는 미 극동사령관 맥아더를 전황파악차 한국으로...
美 남북전쟁의 게티즈버그 전투에서 남군 대패
남군 총사령관 로버트 리 장군은 1861년부터 계속된 남북전쟁에서 불패를 자랑했지만 언제나 조급하고 불안했다. 인구와 경제력 모두 북군에 뒤져 시간이 지날수록 남군이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863년 6월 3일, 리 장군은 남북전쟁에 종지부를 찍을 결정적 전기를 마련하기 위해 버지니아주를 출발, 북군의 근거지인 펜실베이니아주의 주도인 해리스버그를 향해 북상했다. 승리를 못한다 해도 최소한 북군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들이고, 북군이 다시...
미 벨연구소, 트랜지스터 실체 첫 공개
1948년 6월 30일, 20세기 기술혁명의 단초이자 20세기 최고 발명품 가운데 하나로 일컬어지는 ‘트랜지스터’가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윌리엄 쇼클리, 존 바딘, 월터 브래튼 3명의 연구원이 6개월 전인 1947년 12월 16일 개발을 끝내고 12월 23일 연구소 내 간부들에게 발명을 시연한 상태였지만 특허 획득을 위해 함구해오던 미국 뉴저지주 벨연구소가 이날 그 실체를 처음 공개한 것이다. 그날 세 연구원은 새로운 장치를 선보였다. 게르마늄과 배터리, 삼각형...
남북 노동당, ‘조선노동당’으로 개명
김일성이 아무리 소련의 비호를 받고 입북했어도 국내 토착공산주의자들은 바지저고리가 아니었다. 더구나 새파란 젊은이가 세력을 확대하고 새로운 지도부 구성을 주장하는 등 분란을 일으키자 참다못한 박헌영 등이 “서울에 엄연히 당중앙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분파 행동”이라며 제동을 걸었다. 때문에 1945년 10월 5일부터 평양에서 ‘서북 5도 당책임자 및 열성자 대회’를 위한 예비회의를 열어 공산당 분국 설치를 논의했지만, 결론은커녕 대립만 심화됐다. 결국 분국 창설은 10월 8일...
발췌개헌안 국회 통과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간접선거로는 재선될 가망성이 없다고 판단한 이승만 대통령이 직선제를 골자로 한 개헌안을 제출했다. 그러나 이듬해인 1952년 1월, 이승만의 개헌안이 압도적인 표차로 부결되고 이승만과 대립하고 있던 국회가 1952년 4월 내각제를 골자로 한 개헌안을 별도로 제출했다. 그러자 이승만의 집요한 방해공작이 시작됐다. 이른바 ‘부산 정치파동’의 시작이었다. 국회 내 교섭단체 ‘신라회’가 혼란한 틈을 타 제3의 개헌안을 제출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수영복 대회에 비키니 수영복 처음 등장
태평양 마셜제도에 속한 산호초 비키니(Bikini)가 세계의 주목을 끌기 시작한 것은 1946년 7월 1일, 미국이 이곳에 기자단을 불러놓고 공개 핵실험을 하고부터였다. 그날 일본 나가사키에 떨어진 폭탄과 같은 급의 원자폭탄이 미국의 전략폭격기 B29에서 투하되는 순간 아름답던 비키니 바다는 순식간에 불바다가 됐다. 표적용으로 모아놓은 항공모함 ‘사라토가’와 일본과 독일의 군함 75척 가운데 17척이 침몰되거나 대파됐다. 나머지 배도 온전한 것이 거의 없었다. 나흘 뒤인 7월...
포항종합제철 준공
1973년 6월 9일 이른 아침부터 박태준 사장과 직원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고로(용광로) 아래 출선구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전날 태양열로 채화한 원화(元火)로 박 사장이 점화로에 불을 지핀지 21시간이 지난 이날 오전 7시반, 이윽고 출선구가 열리면서 밝은 오렌지색 섬광이 몇미터 쯤 치솟는가 싶더니 용암처럼 시뻘건 쇳물이 힘차게 흘러나왔다. 마침내 우리 손으로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일관(一貫)제철소 고로에서 쇳물이 생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1970년 4월...
이스라엘 특공대원 엔테베 기습작전 성공
1976년 7월 3일 오후, 이스라엘 특공대원 100여 명을 태운 허큘리스 C-130H 수송기 4대가 펜텀 제트기의 호위를 받으며 이스라엘을 출발했다. 목적지는 3840㎞나 떨어진 아프리카 우간다의 엔테베 공항이었다. 엔테베 공항에는 승객·승무원 268명을 태우고 이스라엘 텔아비브 공항을 출발해 프랑스 파리로 향하던 에어 프랑스기가 6월 27일 그리스 아테네에서 팔레스타인 게릴라들에 의해 납치돼 강제 착륙해 있었다. 납치범들은 이스라엘을 비롯, 서독·프랑스·케냐에 수감되어...
중국 길림성 만보산에서 한·중 농민 충돌
1931년 7월 2일 오전8시 쯤, 중국 길림성 장춘 교외에 위치한 만보산(萬寶山)에서 조선인 농민 200여 명과 중국인 농민 500여 명이 충돌했다. 일제의 토지조사사업으로 인해 소작농으로 전락한 조선인 농민들이 만주로 이주해 농사를 짓던 중 만보산 근처의 미개간지를 중국 정부로부터 차지(借地)한 일본인에게서 10년 기한으로 다시 불하받아 관개용 수로공사를 하고 있는 것을 중국인 농민들이 막은 것이 발단이었다. 수로공사로 인해 땅이 갈라지고 수해까지 예상한 중국인 농민들이...
여류비행사 아멜리아 에어하트 남태평양 비행 중 실종
1937년 당시, 대서양·태평양 항로가 개설될 정도로 항공술이 발달했지만 적도 주변을 따라 도는 긴 항로로 지구를 일주한 사람은 그때까지 아무도 없었다. 39세의 미국 여성 아멜리아 에어하트가 이 모험에 도전장을 냈다. 에어하트는 1932년 5월 여성 최초로 대서양 무착륙 횡단비행에 성공하고, 미 대륙(로스엔젤레스∼뉴욕)과 태평양(하와이∼캘리포니아) 상공을 단독 논스톱으로 비행한 경력을 갖고 있던 베테랑 여성 조종사였다. 그는 결혼해서도 남편의 성을 따르지 않았던 당대 최고의...
6·25 개전 후 첫 美 지상군 부산 도착
북한의 남침이 미국에 알려져 대책 마련을 위한 첫 국가안보회의가 열린 것은 1950년 6월 25일 오후7시45분(미 워싱턴 시각) 쯤이었다. 안보회의의 주된 관심사는 소련이 전면적인 공격에 앞서 전초전을 일으킨 것인지를 파악하는 일이었다. 전초전이 아니라는 사실이 확인되자 미국은 한국전 개입을 결정했다. 그러면서도 트루먼 대통령은 소련과의 전면전으로 비화하지 않도록 주의를 환기시켰다. 참전을 결정한 미국은 도쿄에 주둔하고 있는 미 극동사령관 맥아더를 전황파악차 한국으로...
美 남북전쟁의 게티즈버그 전투에서 남군 대패
남군 총사령관 로버트 리 장군은 1861년부터 계속된 남북전쟁에서 불패를 자랑했지만 언제나 조급하고 불안했다. 인구와 경제력 모두 북군에 뒤져 시간이 지날수록 남군이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863년 6월 3일, 리 장군은 남북전쟁에 종지부를 찍을 결정적 전기를 마련하기 위해 버지니아주를 출발, 북군의 근거지인 펜실베이니아주의 주도인 해리스버그를 향해 북상했다. 승리를 못한다 해도 최소한 북군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들이고, 북군이 다시...
미 벨연구소, 트랜지스터 실체 첫 공개
1948년 6월 30일, 20세기 기술혁명의 단초이자 20세기 최고 발명품 가운데 하나로 일컬어지는 ‘트랜지스터’가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윌리엄 쇼클리, 존 바딘, 월터 브래튼 3명의 연구원이 6개월 전인 1947년 12월 16일 개발을 끝내고 12월 23일 연구소 내 간부들에게 발명을 시연한 상태였지만 특허 획득을 위해 함구해오던 미국 뉴저지주 벨연구소가 이날 그 실체를 처음 공개한 것이다. 그날 세 연구원은 새로운 장치를 선보였다. 게르마늄과 배터리, 삼각형...
남북 노동당, ‘조선노동당’으로 개명
김일성이 아무리 소련의 비호를 받고 입북했어도 국내 토착공산주의자들은 바지저고리가 아니었다. 더구나 새파란 젊은이가 세력을 확대하고 새로운 지도부 구성을 주장하는 등 분란을 일으키자 참다못한 박헌영 등이 “서울에 엄연히 당중앙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분파 행동”이라며 제동을 걸었다. 때문에 1945년 10월 5일부터 평양에서 ‘서북 5도 당책임자 및 열성자 대회’를 위한 예비회의를 열어 공산당 분국 설치를 논의했지만, 결론은커녕 대립만 심화됐다. 결국 분국 창설은 10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