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The Blog Module
The blog modules makes it easy to create a blog post feed in two different layouts.
아르헨티나 에바 페론 사망
1952년 7월 26일, 에바 페론이 죽었다. 사생아로 태어나 밑바닥을 전전한 끝에 27세라는 세계 최연소 나이로 영부인 자리에까지 올랐던 드라마같은 33년의 삶이었다. 1년 전 암선고를 받아 이미 예견된 죽음이었지만 에바 지지자들은 깊은 슬픔에 잠겼다. 조문 행렬은 3㎞나 늘어서고 국장(國葬)으로 치러진 장례는 전례없는 대규모였다. 유랑극단의 3류배우, 나이트클럽의 무명 댄서였던 에바의 인생이 전환점을 맞은 것은 24살이나 나이차가 나는 육군 대령 후안 페론을 만나면서였다....
이승만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취임
1948년 7월 20일, 제헌국회에서 간선으로 치러진 초대 대통령선거에서 이승만이 196명의 재석의원 중 180표를 얻어 대한민국 최초의 대통령에 당선됐다. 김구가 13표, 안재홍이 2표, 무효가 1표였다. 이승만의 당선은 누구나 예견했던 결과였기 때문에 각 정파의 관심은 부통령과 국무총리에 쏠렸다. 부통령은 선출직이었고 국무총리는 임명직이었다. 한민당에서는 부통령 이시영, 총리 김성수를 밀었고 독촉계에서는 부통령 이시영, 총리 신익희를 생각했다.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인류 최초의 체외수정아(시험관 아기) 탄생
1978년 7월 25일, 영국 올드햄 병원에서 2.6㎏의 건강한 여아(女兒)가 태어나자 영국의 데일리 메일지(紙)와 이브닝 뉴스지가 1면에 각각 “IT’S A GIRL(그것은 여자다)” “슈퍼 베이비”라는 제목을 대문짝만하게 달아 이 사실을 크게 보도했다. 언론이 이처럼 요란을 떤 것은 신의 고유영역으로 여겨온 ‘인간 탄생’의 비밀 일부를 인간이 훔쳐봤기 때문이다. 인류 최초의 체외수정아(시험관 아기)가 탄생한 것이다. 아이의 이름은 루이스 브라운. 1년 전,...
해방공간에서 좌우합작위원회 첫 회담
1946년 5월 미소공동위가 결렬되면서 남한 내 정치 세력들은 둘로 갈렸다. 이승만을 중심으로 한 남한 단독정부수립론(단정론)과 김규식․여운형을 중심으로 한 중도파의 좌우합작운동이 그것이었다. 좌우합작운동은 5월에 좌우합작위원회를 구성하면서 세를 확대했고, 단정론은 1946년 6월 3일 이승만의 ‘정읍 발언’을 시발로 이리․서울․개성에서 연속적으로 제기됐다. 이미 북한의 소비에트화가 상당히 진전된 상태에서 미소공동위나 좌우합작위에 남한의 운명을 맡길 수 없다는 것이 이승만...
日 ‘다이쇼 문단의 귀재’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35세로 자살
1927년 7월 24일, 다이쇼(大正) 문단의 귀재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가 다량의 수면제를 먹고 35세로 자살했다. 유서에서 밝힌 ‘장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 만이 알려졌을 뿐 정확한 자살 동기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청년과 지식인들은 쇼와(昭和) 시대의 위기와 불안을 반영한 죽음으로 받아들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용의 해, 용의 달, 용의 날에 태어났다 해서 ‘류노스케(龍之介)’로 이름 지어진 그는 생후 8개월 쯤 어머니가 미쳐버려 외삼촌 집에 양자로 입적됐다....
프랑스 비시정부 수반 앙리 필립 페탱 옥중 사망
프랑스 현대사에서 영욕의 교차가 가장 뚜렷한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앙리 필립 페탱이다. 그는 군인으로는 영웅이었으나 정치가로는 반역자였다. 1차대전 4년 간을 거치면서 대령에서 원수로 승승장구할 만큼 페탱은 뛰어난 군인이었다. 그에게는 늘 ‘베르덩 전투의 영웅’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녔다. 병사들에게도 페탱의 인기는 언제나 최고였다. 그가 지휘하면 죽을 확률이 적다는 이유에서였지만 성품도 온화했다. 국민적 영웅이 어느날 갑자기 반역자의 나락으로 떨어진 것은 히틀러가 1940년...
신파극 ‘홍도야 우지 마라’ 초연
가난했던 시절, 오빠의 학비를 벌기 위해 기생이 될 수밖에 없었던 홍도가 대학생인 오빠 친구와 결혼하지만 시댁 식구의 박해로 쫓겨났다가 결국 살인미수까지 저지른다는 이야기. 여성 수난극의 전형이자 ‘한국형 ’최루(催淚)극의 원조’로 불리는 신파극 ‘홍도야 우지 마라’가 처음 무대에 올려진 것은 1936년 7월 23일이다. 동양극장이 첫 무대였고, 무대에 올린 것은 이 극장의 전속극단 청춘좌였다. ‘홍도야…’는 연출을 맡은 박진이 극작가 임선규가 처음...
나석주 의사, 동척에 폭탄 투척 후 자결
당시의 나석주는 그야말로 홍길동 같은 존재 나석주(1890~1926)가 중국발 여객선을 타고 인천항에 내린 것은 1926년 12월 26일이었다. 실로 5년 만에 조국 땅을 밟은 그의 입국증에는 중국 산동성 출신의 35세 중국인 마중덕으로 기재되어 있었다. 나석주라는 이름이 수년 전부터 일경의 체포 대상 리스트에 올라있기 때문에 중국인으로 위장한 것이다. 황해도 재령에서 태어난 나석주가 일찌감치 민족의식에 눈을 뜬 것은 김구가 황해도 안악에 설립한 양산학교에 다니면서였다....
‘희대의 호색한’ 박인수 1심에서 무죄
박인수 진술에 의하면 자신의 약혼녀가 다른 남자와 결혼한 것이 문제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충격으로 인한 군기문란과 근무지 무단이탈이 문제가 돼 1954년 4월 불명예 제대한 뒤부터 여성편력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대학 재학 중 6·25 발발로 군에 입대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해군 대위로 재직시 해군장교구락부, 국일관, 낙원장 등 고급 댄스홀을 드나들며 익혔던 사교춤은 제대 후 카사노바의 길로 들어서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훤칠한 키, 떡벌어진...
美 은행강도 존 딜린저 사살
보니와 클라이드가 좀도둑 수준이었다면 존 딜린저는 전문 은행강도였다. 그는 11번의 은행강도와 2번의 탈옥으로 미 전역에 이름을 떨친 신화적인 갱스터였다. 경력에 처음 별이 붙은 것은 그의 나이 21세 때였다. 식품점을 털다 체포된 강도미수치곤 과한 형량을 받았다. 그러나 1924년부터 1933년까지 인디애나 주립교도소에서 지낸 10년은 그에게는 전문강도들로부터 고급기술을 습득할 수 있었던 배움의 기간이었다. 1933년 5월 가석방된 딜린저는 공모자 4명과 함께 4개월간...
아르헨티나 에바 페론 사망
1952년 7월 26일, 에바 페론이 죽었다. 사생아로 태어나 밑바닥을 전전한 끝에 27세라는 세계 최연소 나이로 영부인 자리에까지 올랐던 드라마같은 33년의 삶이었다. 1년 전 암선고를 받아 이미 예견된 죽음이었지만 에바 지지자들은 깊은 슬픔에 잠겼다. 조문 행렬은 3㎞나 늘어서고 국장(國葬)으로 치러진 장례는 전례없는 대규모였다. 유랑극단의 3류배우, 나이트클럽의 무명 댄서였던 에바의 인생이 전환점을 맞은 것은 24살이나 나이차가 나는 육군 대령 후안 페론을 만나면서였다....
이승만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취임
1948년 7월 20일, 제헌국회에서 간선으로 치러진 초대 대통령선거에서 이승만이 196명의 재석의원 중 180표를 얻어 대한민국 최초의 대통령에 당선됐다. 김구가 13표, 안재홍이 2표, 무효가 1표였다. 이승만의 당선은 누구나 예견했던 결과였기 때문에 각 정파의 관심은 부통령과 국무총리에 쏠렸다. 부통령은 선출직이었고 국무총리는 임명직이었다. 한민당에서는 부통령 이시영, 총리 김성수를 밀었고 독촉계에서는 부통령 이시영, 총리 신익희를 생각했다.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인류 최초의 체외수정아(시험관 아기) 탄생
1978년 7월 25일, 영국 올드햄 병원에서 2.6㎏의 건강한 여아(女兒)가 태어나자 영국의 데일리 메일지(紙)와 이브닝 뉴스지가 1면에 각각 “IT’S A GIRL(그것은 여자다)” “슈퍼 베이비”라는 제목을 대문짝만하게 달아 이 사실을 크게 보도했다. 언론이 이처럼 요란을 떤 것은 신의 고유영역으로 여겨온 ‘인간 탄생’의 비밀 일부를 인간이 훔쳐봤기 때문이다. 인류 최초의 체외수정아(시험관 아기)가 탄생한 것이다. 아이의 이름은 루이스 브라운. 1년 전,...
해방공간에서 좌우합작위원회 첫 회담
1946년 5월 미소공동위가 결렬되면서 남한 내 정치 세력들은 둘로 갈렸다. 이승만을 중심으로 한 남한 단독정부수립론(단정론)과 김규식․여운형을 중심으로 한 중도파의 좌우합작운동이 그것이었다. 좌우합작운동은 5월에 좌우합작위원회를 구성하면서 세를 확대했고, 단정론은 1946년 6월 3일 이승만의 ‘정읍 발언’을 시발로 이리․서울․개성에서 연속적으로 제기됐다. 이미 북한의 소비에트화가 상당히 진전된 상태에서 미소공동위나 좌우합작위에 남한의 운명을 맡길 수 없다는 것이 이승만...
日 ‘다이쇼 문단의 귀재’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35세로 자살
1927년 7월 24일, 다이쇼(大正) 문단의 귀재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가 다량의 수면제를 먹고 35세로 자살했다. 유서에서 밝힌 ‘장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 만이 알려졌을 뿐 정확한 자살 동기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청년과 지식인들은 쇼와(昭和) 시대의 위기와 불안을 반영한 죽음으로 받아들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용의 해, 용의 달, 용의 날에 태어났다 해서 ‘류노스케(龍之介)’로 이름 지어진 그는 생후 8개월 쯤 어머니가 미쳐버려 외삼촌 집에 양자로 입적됐다....
프랑스 비시정부 수반 앙리 필립 페탱 옥중 사망
프랑스 현대사에서 영욕의 교차가 가장 뚜렷한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앙리 필립 페탱이다. 그는 군인으로는 영웅이었으나 정치가로는 반역자였다. 1차대전 4년 간을 거치면서 대령에서 원수로 승승장구할 만큼 페탱은 뛰어난 군인이었다. 그에게는 늘 ‘베르덩 전투의 영웅’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녔다. 병사들에게도 페탱의 인기는 언제나 최고였다. 그가 지휘하면 죽을 확률이 적다는 이유에서였지만 성품도 온화했다. 국민적 영웅이 어느날 갑자기 반역자의 나락으로 떨어진 것은 히틀러가 1940년...
신파극 ‘홍도야 우지 마라’ 초연
가난했던 시절, 오빠의 학비를 벌기 위해 기생이 될 수밖에 없었던 홍도가 대학생인 오빠 친구와 결혼하지만 시댁 식구의 박해로 쫓겨났다가 결국 살인미수까지 저지른다는 이야기. 여성 수난극의 전형이자 ‘한국형 ’최루(催淚)극의 원조’로 불리는 신파극 ‘홍도야 우지 마라’가 처음 무대에 올려진 것은 1936년 7월 23일이다. 동양극장이 첫 무대였고, 무대에 올린 것은 이 극장의 전속극단 청춘좌였다. ‘홍도야…’는 연출을 맡은 박진이 극작가 임선규가 처음...
나석주 의사, 동척에 폭탄 투척 후 자결
당시의 나석주는 그야말로 홍길동 같은 존재 나석주(1890~1926)가 중국발 여객선을 타고 인천항에 내린 것은 1926년 12월 26일이었다. 실로 5년 만에 조국 땅을 밟은 그의 입국증에는 중국 산동성 출신의 35세 중국인 마중덕으로 기재되어 있었다. 나석주라는 이름이 수년 전부터 일경의 체포 대상 리스트에 올라있기 때문에 중국인으로 위장한 것이다. 황해도 재령에서 태어난 나석주가 일찌감치 민족의식에 눈을 뜬 것은 김구가 황해도 안악에 설립한 양산학교에 다니면서였다....
‘희대의 호색한’ 박인수 1심에서 무죄
박인수 진술에 의하면 자신의 약혼녀가 다른 남자와 결혼한 것이 문제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충격으로 인한 군기문란과 근무지 무단이탈이 문제가 돼 1954년 4월 불명예 제대한 뒤부터 여성편력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대학 재학 중 6·25 발발로 군에 입대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해군 대위로 재직시 해군장교구락부, 국일관, 낙원장 등 고급 댄스홀을 드나들며 익혔던 사교춤은 제대 후 카사노바의 길로 들어서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훤칠한 키, 떡벌어진...
美 은행강도 존 딜린저 사살
보니와 클라이드가 좀도둑 수준이었다면 존 딜린저는 전문 은행강도였다. 그는 11번의 은행강도와 2번의 탈옥으로 미 전역에 이름을 떨친 신화적인 갱스터였다. 경력에 처음 별이 붙은 것은 그의 나이 21세 때였다. 식품점을 털다 체포된 강도미수치곤 과한 형량을 받았다. 그러나 1924년부터 1933년까지 인디애나 주립교도소에서 지낸 10년은 그에게는 전문강도들로부터 고급기술을 습득할 수 있었던 배움의 기간이었다. 1933년 5월 가석방된 딜린저는 공모자 4명과 함께 4개월간...
아르헨티나 에바 페론 사망
1952년 7월 26일, 에바 페론이 죽었다. 사생아로 태어나 밑바닥을 전전한 끝에 27세라는 세계 최연소 나이로 영부인 자리에까지 올랐던 드라마같은 33년의 삶이었다. 1년 전 암선고를 받아 이미 예견된 죽음이었지만 에바 지지자들은 깊은 슬픔에 잠겼다. 조문 행렬은 3㎞나 늘어서고 국장(國葬)으로 치러진 장례는 전례없는 대규모였다. 유랑극단의 3류배우, 나이트클럽의 무명 댄서였던 에바의 인생이 전환점을 맞은 것은 24살이나 나이차가 나는 육군 대령 후안 페론을 만나면서였다....
이승만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취임
1948년 7월 20일, 제헌국회에서 간선으로 치러진 초대 대통령선거에서 이승만이 196명의 재석의원 중 180표를 얻어 대한민국 최초의 대통령에 당선됐다. 김구가 13표, 안재홍이 2표, 무효가 1표였다. 이승만의 당선은 누구나 예견했던 결과였기 때문에 각 정파의 관심은 부통령과 국무총리에 쏠렸다. 부통령은 선출직이었고 국무총리는 임명직이었다. 한민당에서는 부통령 이시영, 총리 김성수를 밀었고 독촉계에서는 부통령 이시영, 총리 신익희를 생각했다.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인류 최초의 체외수정아(시험관 아기) 탄생
1978년 7월 25일, 영국 올드햄 병원에서 2.6㎏의 건강한 여아(女兒)가 태어나자 영국의 데일리 메일지(紙)와 이브닝 뉴스지가 1면에 각각 “IT’S A GIRL(그것은 여자다)” “슈퍼 베이비”라는 제목을 대문짝만하게 달아 이 사실을 크게 보도했다. 언론이 이처럼 요란을 떤 것은 신의 고유영역으로 여겨온 ‘인간 탄생’의 비밀 일부를 인간이 훔쳐봤기 때문이다. 인류 최초의 체외수정아(시험관 아기)가 탄생한 것이다. 아이의 이름은 루이스 브라운. 1년 전,...
해방공간에서 좌우합작위원회 첫 회담
1946년 5월 미소공동위가 결렬되면서 남한 내 정치 세력들은 둘로 갈렸다. 이승만을 중심으로 한 남한 단독정부수립론(단정론)과 김규식․여운형을 중심으로 한 중도파의 좌우합작운동이 그것이었다. 좌우합작운동은 5월에 좌우합작위원회를 구성하면서 세를 확대했고, 단정론은 1946년 6월 3일 이승만의 ‘정읍 발언’을 시발로 이리․서울․개성에서 연속적으로 제기됐다. 이미 북한의 소비에트화가 상당히 진전된 상태에서 미소공동위나 좌우합작위에 남한의 운명을 맡길 수 없다는 것이 이승만...
日 ‘다이쇼 문단의 귀재’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35세로 자살
1927년 7월 24일, 다이쇼(大正) 문단의 귀재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가 다량의 수면제를 먹고 35세로 자살했다. 유서에서 밝힌 ‘장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 만이 알려졌을 뿐 정확한 자살 동기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청년과 지식인들은 쇼와(昭和) 시대의 위기와 불안을 반영한 죽음으로 받아들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용의 해, 용의 달, 용의 날에 태어났다 해서 ‘류노스케(龍之介)’로 이름 지어진 그는 생후 8개월 쯤 어머니가 미쳐버려 외삼촌 집에 양자로 입적됐다....
프랑스 비시정부 수반 앙리 필립 페탱 옥중 사망
프랑스 현대사에서 영욕의 교차가 가장 뚜렷한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앙리 필립 페탱이다. 그는 군인으로는 영웅이었으나 정치가로는 반역자였다. 1차대전 4년 간을 거치면서 대령에서 원수로 승승장구할 만큼 페탱은 뛰어난 군인이었다. 그에게는 늘 ‘베르덩 전투의 영웅’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녔다. 병사들에게도 페탱의 인기는 언제나 최고였다. 그가 지휘하면 죽을 확률이 적다는 이유에서였지만 성품도 온화했다. 국민적 영웅이 어느날 갑자기 반역자의 나락으로 떨어진 것은 히틀러가 1940년...
신파극 ‘홍도야 우지 마라’ 초연
가난했던 시절, 오빠의 학비를 벌기 위해 기생이 될 수밖에 없었던 홍도가 대학생인 오빠 친구와 결혼하지만 시댁 식구의 박해로 쫓겨났다가 결국 살인미수까지 저지른다는 이야기. 여성 수난극의 전형이자 ‘한국형 ’최루(催淚)극의 원조’로 불리는 신파극 ‘홍도야 우지 마라’가 처음 무대에 올려진 것은 1936년 7월 23일이다. 동양극장이 첫 무대였고, 무대에 올린 것은 이 극장의 전속극단 청춘좌였다. ‘홍도야…’는 연출을 맡은 박진이 극작가 임선규가 처음...
나석주 의사, 동척에 폭탄 투척 후 자결
당시의 나석주는 그야말로 홍길동 같은 존재 나석주(1890~1926)가 중국발 여객선을 타고 인천항에 내린 것은 1926년 12월 26일이었다. 실로 5년 만에 조국 땅을 밟은 그의 입국증에는 중국 산동성 출신의 35세 중국인 마중덕으로 기재되어 있었다. 나석주라는 이름이 수년 전부터 일경의 체포 대상 리스트에 올라있기 때문에 중국인으로 위장한 것이다. 황해도 재령에서 태어난 나석주가 일찌감치 민족의식에 눈을 뜬 것은 김구가 황해도 안악에 설립한 양산학교에 다니면서였다....
‘희대의 호색한’ 박인수 1심에서 무죄
박인수 진술에 의하면 자신의 약혼녀가 다른 남자와 결혼한 것이 문제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충격으로 인한 군기문란과 근무지 무단이탈이 문제가 돼 1954년 4월 불명예 제대한 뒤부터 여성편력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대학 재학 중 6·25 발발로 군에 입대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해군 대위로 재직시 해군장교구락부, 국일관, 낙원장 등 고급 댄스홀을 드나들며 익혔던 사교춤은 제대 후 카사노바의 길로 들어서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훤칠한 키, 떡벌어진...
美 은행강도 존 딜린저 사살
보니와 클라이드가 좀도둑 수준이었다면 존 딜린저는 전문 은행강도였다. 그는 11번의 은행강도와 2번의 탈옥으로 미 전역에 이름을 떨친 신화적인 갱스터였다. 경력에 처음 별이 붙은 것은 그의 나이 21세 때였다. 식품점을 털다 체포된 강도미수치곤 과한 형량을 받았다. 그러나 1924년부터 1933년까지 인디애나 주립교도소에서 지낸 10년은 그에게는 전문강도들로부터 고급기술을 습득할 수 있었던 배움의 기간이었다. 1933년 5월 가석방된 딜린저는 공모자 4명과 함께 4개월간...
아르헨티나 에바 페론 사망
1952년 7월 26일, 에바 페론이 죽었다. 사생아로 태어나 밑바닥을 전전한 끝에 27세라는 세계 최연소 나이로 영부인 자리에까지 올랐던 드라마같은 33년의 삶이었다. 1년 전 암선고를 받아 이미 예견된 죽음이었지만 에바 지지자들은 깊은 슬픔에 잠겼다. 조문 행렬은 3㎞나 늘어서고 국장(國葬)으로 치러진 장례는 전례없는 대규모였다. 유랑극단의 3류배우, 나이트클럽의 무명 댄서였던 에바의 인생이 전환점을 맞은 것은 24살이나 나이차가 나는 육군 대령 후안 페론을 만나면서였다....
이승만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취임
1948년 7월 20일, 제헌국회에서 간선으로 치러진 초대 대통령선거에서 이승만이 196명의 재석의원 중 180표를 얻어 대한민국 최초의 대통령에 당선됐다. 김구가 13표, 안재홍이 2표, 무효가 1표였다. 이승만의 당선은 누구나 예견했던 결과였기 때문에 각 정파의 관심은 부통령과 국무총리에 쏠렸다. 부통령은 선출직이었고 국무총리는 임명직이었다. 한민당에서는 부통령 이시영, 총리 김성수를 밀었고 독촉계에서는 부통령 이시영, 총리 신익희를 생각했다.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인류 최초의 체외수정아(시험관 아기) 탄생
1978년 7월 25일, 영국 올드햄 병원에서 2.6㎏의 건강한 여아(女兒)가 태어나자 영국의 데일리 메일지(紙)와 이브닝 뉴스지가 1면에 각각 “IT’S A GIRL(그것은 여자다)” “슈퍼 베이비”라는 제목을 대문짝만하게 달아 이 사실을 크게 보도했다. 언론이 이처럼 요란을 떤 것은 신의 고유영역으로 여겨온 ‘인간 탄생’의 비밀 일부를 인간이 훔쳐봤기 때문이다. 인류 최초의 체외수정아(시험관 아기)가 탄생한 것이다. 아이의 이름은 루이스 브라운. 1년 전,...
해방공간에서 좌우합작위원회 첫 회담
1946년 5월 미소공동위가 결렬되면서 남한 내 정치 세력들은 둘로 갈렸다. 이승만을 중심으로 한 남한 단독정부수립론(단정론)과 김규식․여운형을 중심으로 한 중도파의 좌우합작운동이 그것이었다. 좌우합작운동은 5월에 좌우합작위원회를 구성하면서 세를 확대했고, 단정론은 1946년 6월 3일 이승만의 ‘정읍 발언’을 시발로 이리․서울․개성에서 연속적으로 제기됐다. 이미 북한의 소비에트화가 상당히 진전된 상태에서 미소공동위나 좌우합작위에 남한의 운명을 맡길 수 없다는 것이 이승만...
日 ‘다이쇼 문단의 귀재’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35세로 자살
1927년 7월 24일, 다이쇼(大正) 문단의 귀재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가 다량의 수면제를 먹고 35세로 자살했다. 유서에서 밝힌 ‘장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 만이 알려졌을 뿐 정확한 자살 동기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청년과 지식인들은 쇼와(昭和) 시대의 위기와 불안을 반영한 죽음으로 받아들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용의 해, 용의 달, 용의 날에 태어났다 해서 ‘류노스케(龍之介)’로 이름 지어진 그는 생후 8개월 쯤 어머니가 미쳐버려 외삼촌 집에 양자로 입적됐다....
프랑스 비시정부 수반 앙리 필립 페탱 옥중 사망
프랑스 현대사에서 영욕의 교차가 가장 뚜렷한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앙리 필립 페탱이다. 그는 군인으로는 영웅이었으나 정치가로는 반역자였다. 1차대전 4년 간을 거치면서 대령에서 원수로 승승장구할 만큼 페탱은 뛰어난 군인이었다. 그에게는 늘 ‘베르덩 전투의 영웅’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녔다. 병사들에게도 페탱의 인기는 언제나 최고였다. 그가 지휘하면 죽을 확률이 적다는 이유에서였지만 성품도 온화했다. 국민적 영웅이 어느날 갑자기 반역자의 나락으로 떨어진 것은 히틀러가 1940년...
신파극 ‘홍도야 우지 마라’ 초연
가난했던 시절, 오빠의 학비를 벌기 위해 기생이 될 수밖에 없었던 홍도가 대학생인 오빠 친구와 결혼하지만 시댁 식구의 박해로 쫓겨났다가 결국 살인미수까지 저지른다는 이야기. 여성 수난극의 전형이자 ‘한국형 ’최루(催淚)극의 원조’로 불리는 신파극 ‘홍도야 우지 마라’가 처음 무대에 올려진 것은 1936년 7월 23일이다. 동양극장이 첫 무대였고, 무대에 올린 것은 이 극장의 전속극단 청춘좌였다. ‘홍도야…’는 연출을 맡은 박진이 극작가 임선규가 처음...
나석주 의사, 동척에 폭탄 투척 후 자결
당시의 나석주는 그야말로 홍길동 같은 존재 나석주(1890~1926)가 중국발 여객선을 타고 인천항에 내린 것은 1926년 12월 26일이었다. 실로 5년 만에 조국 땅을 밟은 그의 입국증에는 중국 산동성 출신의 35세 중국인 마중덕으로 기재되어 있었다. 나석주라는 이름이 수년 전부터 일경의 체포 대상 리스트에 올라있기 때문에 중국인으로 위장한 것이다. 황해도 재령에서 태어난 나석주가 일찌감치 민족의식에 눈을 뜬 것은 김구가 황해도 안악에 설립한 양산학교에 다니면서였다....
‘희대의 호색한’ 박인수 1심에서 무죄
박인수 진술에 의하면 자신의 약혼녀가 다른 남자와 결혼한 것이 문제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충격으로 인한 군기문란과 근무지 무단이탈이 문제가 돼 1954년 4월 불명예 제대한 뒤부터 여성편력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대학 재학 중 6·25 발발로 군에 입대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해군 대위로 재직시 해군장교구락부, 국일관, 낙원장 등 고급 댄스홀을 드나들며 익혔던 사교춤은 제대 후 카사노바의 길로 들어서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훤칠한 키, 떡벌어진...
美 은행강도 존 딜린저 사살
보니와 클라이드가 좀도둑 수준이었다면 존 딜린저는 전문 은행강도였다. 그는 11번의 은행강도와 2번의 탈옥으로 미 전역에 이름을 떨친 신화적인 갱스터였다. 경력에 처음 별이 붙은 것은 그의 나이 21세 때였다. 식품점을 털다 체포된 강도미수치곤 과한 형량을 받았다. 그러나 1924년부터 1933년까지 인디애나 주립교도소에서 지낸 10년은 그에게는 전문강도들로부터 고급기술을 습득할 수 있었던 배움의 기간이었다. 1933년 5월 가석방된 딜린저는 공모자 4명과 함께 4개월간...
아르헨티나 에바 페론 사망
1952년 7월 26일, 에바 페론이 죽었다. 사생아로 태어나 밑바닥을 전전한 끝에 27세라는 세계 최연소 나이로 영부인 자리에까지 올랐던 드라마같은 33년의 삶이었다. 1년 전 암선고를 받아 이미 예견된 죽음이었지만 에바 지지자들은 깊은 슬픔에 잠겼다. 조문 행렬은 3㎞나 늘어서고 국장(國葬)으로 치러진 장례는 전례없는 대규모였다. 유랑극단의 3류배우, 나이트클럽의 무명 댄서였던 에바의 인생이 전환점을 맞은 것은 24살이나 나이차가 나는 육군 대령 후안 페론을 만나면서였다....
이승만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취임
1948년 7월 20일, 제헌국회에서 간선으로 치러진 초대 대통령선거에서 이승만이 196명의 재석의원 중 180표를 얻어 대한민국 최초의 대통령에 당선됐다. 김구가 13표, 안재홍이 2표, 무효가 1표였다. 이승만의 당선은 누구나 예견했던 결과였기 때문에 각 정파의 관심은 부통령과 국무총리에 쏠렸다. 부통령은 선출직이었고 국무총리는 임명직이었다. 한민당에서는 부통령 이시영, 총리 김성수를 밀었고 독촉계에서는 부통령 이시영, 총리 신익희를 생각했다.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인류 최초의 체외수정아(시험관 아기) 탄생
1978년 7월 25일, 영국 올드햄 병원에서 2.6㎏의 건강한 여아(女兒)가 태어나자 영국의 데일리 메일지(紙)와 이브닝 뉴스지가 1면에 각각 “IT’S A GIRL(그것은 여자다)” “슈퍼 베이비”라는 제목을 대문짝만하게 달아 이 사실을 크게 보도했다. 언론이 이처럼 요란을 떤 것은 신의 고유영역으로 여겨온 ‘인간 탄생’의 비밀 일부를 인간이 훔쳐봤기 때문이다. 인류 최초의 체외수정아(시험관 아기)가 탄생한 것이다. 아이의 이름은 루이스 브라운. 1년 전,...
해방공간에서 좌우합작위원회 첫 회담
1946년 5월 미소공동위가 결렬되면서 남한 내 정치 세력들은 둘로 갈렸다. 이승만을 중심으로 한 남한 단독정부수립론(단정론)과 김규식․여운형을 중심으로 한 중도파의 좌우합작운동이 그것이었다. 좌우합작운동은 5월에 좌우합작위원회를 구성하면서 세를 확대했고, 단정론은 1946년 6월 3일 이승만의 ‘정읍 발언’을 시발로 이리․서울․개성에서 연속적으로 제기됐다. 이미 북한의 소비에트화가 상당히 진전된 상태에서 미소공동위나 좌우합작위에 남한의 운명을 맡길 수 없다는 것이 이승만...
日 ‘다이쇼 문단의 귀재’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35세로 자살
1927년 7월 24일, 다이쇼(大正) 문단의 귀재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가 다량의 수면제를 먹고 35세로 자살했다. 유서에서 밝힌 ‘장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 만이 알려졌을 뿐 정확한 자살 동기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청년과 지식인들은 쇼와(昭和) 시대의 위기와 불안을 반영한 죽음으로 받아들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용의 해, 용의 달, 용의 날에 태어났다 해서 ‘류노스케(龍之介)’로 이름 지어진 그는 생후 8개월 쯤 어머니가 미쳐버려 외삼촌 집에 양자로 입적됐다....
프랑스 비시정부 수반 앙리 필립 페탱 옥중 사망
프랑스 현대사에서 영욕의 교차가 가장 뚜렷한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앙리 필립 페탱이다. 그는 군인으로는 영웅이었으나 정치가로는 반역자였다. 1차대전 4년 간을 거치면서 대령에서 원수로 승승장구할 만큼 페탱은 뛰어난 군인이었다. 그에게는 늘 ‘베르덩 전투의 영웅’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녔다. 병사들에게도 페탱의 인기는 언제나 최고였다. 그가 지휘하면 죽을 확률이 적다는 이유에서였지만 성품도 온화했다. 국민적 영웅이 어느날 갑자기 반역자의 나락으로 떨어진 것은 히틀러가 1940년...
신파극 ‘홍도야 우지 마라’ 초연
가난했던 시절, 오빠의 학비를 벌기 위해 기생이 될 수밖에 없었던 홍도가 대학생인 오빠 친구와 결혼하지만 시댁 식구의 박해로 쫓겨났다가 결국 살인미수까지 저지른다는 이야기. 여성 수난극의 전형이자 ‘한국형 ’최루(催淚)극의 원조’로 불리는 신파극 ‘홍도야 우지 마라’가 처음 무대에 올려진 것은 1936년 7월 23일이다. 동양극장이 첫 무대였고, 무대에 올린 것은 이 극장의 전속극단 청춘좌였다. ‘홍도야…’는 연출을 맡은 박진이 극작가 임선규가 처음...
나석주 의사, 동척에 폭탄 투척 후 자결
당시의 나석주는 그야말로 홍길동 같은 존재 나석주(1890~1926)가 중국발 여객선을 타고 인천항에 내린 것은 1926년 12월 26일이었다. 실로 5년 만에 조국 땅을 밟은 그의 입국증에는 중국 산동성 출신의 35세 중국인 마중덕으로 기재되어 있었다. 나석주라는 이름이 수년 전부터 일경의 체포 대상 리스트에 올라있기 때문에 중국인으로 위장한 것이다. 황해도 재령에서 태어난 나석주가 일찌감치 민족의식에 눈을 뜬 것은 김구가 황해도 안악에 설립한 양산학교에 다니면서였다....
‘희대의 호색한’ 박인수 1심에서 무죄
박인수 진술에 의하면 자신의 약혼녀가 다른 남자와 결혼한 것이 문제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충격으로 인한 군기문란과 근무지 무단이탈이 문제가 돼 1954년 4월 불명예 제대한 뒤부터 여성편력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대학 재학 중 6·25 발발로 군에 입대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해군 대위로 재직시 해군장교구락부, 국일관, 낙원장 등 고급 댄스홀을 드나들며 익혔던 사교춤은 제대 후 카사노바의 길로 들어서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훤칠한 키, 떡벌어진...
美 은행강도 존 딜린저 사살
보니와 클라이드가 좀도둑 수준이었다면 존 딜린저는 전문 은행강도였다. 그는 11번의 은행강도와 2번의 탈옥으로 미 전역에 이름을 떨친 신화적인 갱스터였다. 경력에 처음 별이 붙은 것은 그의 나이 21세 때였다. 식품점을 털다 체포된 강도미수치곤 과한 형량을 받았다. 그러나 1924년부터 1933년까지 인디애나 주립교도소에서 지낸 10년은 그에게는 전문강도들로부터 고급기술을 습득할 수 있었던 배움의 기간이었다. 1933년 5월 가석방된 딜린저는 공모자 4명과 함께 4개월간...
아르헨티나 에바 페론 사망
1952년 7월 26일, 에바 페론이 죽었다. 사생아로 태어나 밑바닥을 전전한 끝에 27세라는 세계 최연소 나이로 영부인 자리에까지 올랐던 드라마같은 33년의 삶이었다. 1년 전 암선고를 받아 이미 예견된 죽음이었지만 에바 지지자들은 깊은 슬픔에 잠겼다. 조문 행렬은 3㎞나 늘어서고 국장(國葬)으로 치러진 장례는 전례없는 대규모였다. 유랑극단의 3류배우, 나이트클럽의 무명 댄서였던 에바의 인생이 전환점을 맞은 것은 24살이나 나이차가 나는 육군 대령 후안 페론을 만나면서였다....
이승만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취임
1948년 7월 20일, 제헌국회에서 간선으로 치러진 초대 대통령선거에서 이승만이 196명의 재석의원 중 180표를 얻어 대한민국 최초의 대통령에 당선됐다. 김구가 13표, 안재홍이 2표, 무효가 1표였다. 이승만의 당선은 누구나 예견했던 결과였기 때문에 각 정파의 관심은 부통령과 국무총리에 쏠렸다. 부통령은 선출직이었고 국무총리는 임명직이었다. 한민당에서는 부통령 이시영, 총리 김성수를 밀었고 독촉계에서는 부통령 이시영, 총리 신익희를 생각했다.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인류 최초의 체외수정아(시험관 아기) 탄생
1978년 7월 25일, 영국 올드햄 병원에서 2.6㎏의 건강한 여아(女兒)가 태어나자 영국의 데일리 메일지(紙)와 이브닝 뉴스지가 1면에 각각 “IT’S A GIRL(그것은 여자다)” “슈퍼 베이비”라는 제목을 대문짝만하게 달아 이 사실을 크게 보도했다. 언론이 이처럼 요란을 떤 것은 신의 고유영역으로 여겨온 ‘인간 탄생’의 비밀 일부를 인간이 훔쳐봤기 때문이다. 인류 최초의 체외수정아(시험관 아기)가 탄생한 것이다. 아이의 이름은 루이스 브라운. 1년 전,...
해방공간에서 좌우합작위원회 첫 회담
1946년 5월 미소공동위가 결렬되면서 남한 내 정치 세력들은 둘로 갈렸다. 이승만을 중심으로 한 남한 단독정부수립론(단정론)과 김규식․여운형을 중심으로 한 중도파의 좌우합작운동이 그것이었다. 좌우합작운동은 5월에 좌우합작위원회를 구성하면서 세를 확대했고, 단정론은 1946년 6월 3일 이승만의 ‘정읍 발언’을 시발로 이리․서울․개성에서 연속적으로 제기됐다. 이미 북한의 소비에트화가 상당히 진전된 상태에서 미소공동위나 좌우합작위에 남한의 운명을 맡길 수 없다는 것이 이승만...
日 ‘다이쇼 문단의 귀재’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35세로 자살
1927년 7월 24일, 다이쇼(大正) 문단의 귀재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가 다량의 수면제를 먹고 35세로 자살했다. 유서에서 밝힌 ‘장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 만이 알려졌을 뿐 정확한 자살 동기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청년과 지식인들은 쇼와(昭和) 시대의 위기와 불안을 반영한 죽음으로 받아들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용의 해, 용의 달, 용의 날에 태어났다 해서 ‘류노스케(龍之介)’로 이름 지어진 그는 생후 8개월 쯤 어머니가 미쳐버려 외삼촌 집에 양자로 입적됐다....
프랑스 비시정부 수반 앙리 필립 페탱 옥중 사망
프랑스 현대사에서 영욕의 교차가 가장 뚜렷한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앙리 필립 페탱이다. 그는 군인으로는 영웅이었으나 정치가로는 반역자였다. 1차대전 4년 간을 거치면서 대령에서 원수로 승승장구할 만큼 페탱은 뛰어난 군인이었다. 그에게는 늘 ‘베르덩 전투의 영웅’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녔다. 병사들에게도 페탱의 인기는 언제나 최고였다. 그가 지휘하면 죽을 확률이 적다는 이유에서였지만 성품도 온화했다. 국민적 영웅이 어느날 갑자기 반역자의 나락으로 떨어진 것은 히틀러가 1940년...
신파극 ‘홍도야 우지 마라’ 초연
가난했던 시절, 오빠의 학비를 벌기 위해 기생이 될 수밖에 없었던 홍도가 대학생인 오빠 친구와 결혼하지만 시댁 식구의 박해로 쫓겨났다가 결국 살인미수까지 저지른다는 이야기. 여성 수난극의 전형이자 ‘한국형 ’최루(催淚)극의 원조’로 불리는 신파극 ‘홍도야 우지 마라’가 처음 무대에 올려진 것은 1936년 7월 23일이다. 동양극장이 첫 무대였고, 무대에 올린 것은 이 극장의 전속극단 청춘좌였다. ‘홍도야…’는 연출을 맡은 박진이 극작가 임선규가 처음...
나석주 의사, 동척에 폭탄 투척 후 자결
당시의 나석주는 그야말로 홍길동 같은 존재 나석주(1890~1926)가 중국발 여객선을 타고 인천항에 내린 것은 1926년 12월 26일이었다. 실로 5년 만에 조국 땅을 밟은 그의 입국증에는 중국 산동성 출신의 35세 중국인 마중덕으로 기재되어 있었다. 나석주라는 이름이 수년 전부터 일경의 체포 대상 리스트에 올라있기 때문에 중국인으로 위장한 것이다. 황해도 재령에서 태어난 나석주가 일찌감치 민족의식에 눈을 뜬 것은 김구가 황해도 안악에 설립한 양산학교에 다니면서였다....
‘희대의 호색한’ 박인수 1심에서 무죄
박인수 진술에 의하면 자신의 약혼녀가 다른 남자와 결혼한 것이 문제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충격으로 인한 군기문란과 근무지 무단이탈이 문제가 돼 1954년 4월 불명예 제대한 뒤부터 여성편력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대학 재학 중 6·25 발발로 군에 입대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해군 대위로 재직시 해군장교구락부, 국일관, 낙원장 등 고급 댄스홀을 드나들며 익혔던 사교춤은 제대 후 카사노바의 길로 들어서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훤칠한 키, 떡벌어진...
美 은행강도 존 딜린저 사살
보니와 클라이드가 좀도둑 수준이었다면 존 딜린저는 전문 은행강도였다. 그는 11번의 은행강도와 2번의 탈옥으로 미 전역에 이름을 떨친 신화적인 갱스터였다. 경력에 처음 별이 붙은 것은 그의 나이 21세 때였다. 식품점을 털다 체포된 강도미수치곤 과한 형량을 받았다. 그러나 1924년부터 1933년까지 인디애나 주립교도소에서 지낸 10년은 그에게는 전문강도들로부터 고급기술을 습득할 수 있었던 배움의 기간이었다. 1933년 5월 가석방된 딜린저는 공모자 4명과 함께 4개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