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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쌀값 폭등으로 전국서 폭동

1918년, 일본의 쌀값이 폭등하기 시작한다. 전년도의 큰 흉작으로 쌀값이 꿈틀거리자 지주들이 쌀 방출을 꺼리고 상인들이 쌀을 매점한 게 원인이었다. 1년 전 일어난 러시아혁명을 저지하기 위해 일본이 군대를 시베리아에 파병한다는 소문까지 가세하면서 쌀값은 천정부지로 뛰어올랐다. 오사카 쌀 시세로 1되에 15엔이던 연초의 쌀값은 8월 1일 36엔10전, 5일 40엔50전, 9월에는 50엔으로 뛰어올랐다. 쌀값 등귀가 일으킨 연쇄반응으로 다른 생활필수품 가격까지 급등하자 주부들이...

조선일보·동아일보 강제폐간

1940년 1월 15일, 총독부 경무국장이 조선일보 방응모 사장과 동아일보 백관수 사장을 불러 일본의 기원절(건국기념일)인 2월 11일을 기해 스스로 폐간하고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와 통합하라고 종용했다. 그러나 두 사장은 “폐간은 중역회의에서 결정할 문제”라며 일축했다. 이후 양사는 계속 신문을 발행하기는 했지만 이미 총독부 방침은 폐간으로 기울어 있었다. 시기만이 문제였다. 두 신문이 공동보조를 취하며 말을 듣지 않자 총독부는 용지통제권을 발동해 신문용지 배급량을 줄이고...

성남시 광주대단지 사건

1968년 5월, 난립한 무허가 판자촌을 철거하고 그 철거민들은 경기도 광주군 일대로 이주시켜 20만 명 이상의 단일 생활권을 만든다는 서울시의 발표가 있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도시 ‘성남시’를 탄생시킨 광주대단지 조성사업이었다. 발표에 따라 1971년까지 2만2000가구 16만 여명의 철거민들이 광주대단지로 이주했으나 생활 여건도 마련하지 않은 채 서울시가 이주부터 시켜 주거환경이 말이 아니었다. 때문에 분양권을 되팔아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는 철거민들이 속출했다....

손기정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

1936년 8월 9일, 베를린 하늘에 일장기가 올라가고 기미가요가 울려퍼질 때 시상대 위에 선 24세의 조선청년 손기정은 물끄러미 땅만 내려다보았다. 훗날 그가 말했듯 “우승선수 나라의 국기가 올라가지 않고 국가가 연주되지 않는 것을 알았다면 결코 나서지 않았을” 그 올림픽에서 우승했다는 자괴감 탓이었을까. 손기정은 월계수관 속에 눈을 감추고 가슴에 달린 일장기는 월계수로 가렸다. 손기정은 금메달리스트들이 사인하는 방명록에도 한글로 ‘손긔정’이라고 뚜렷이 적어 일본인 ‘기테이...

영화 천재 나운규 사망

1937년 8월 9일 새벽1시25분, 춘사 나운규가 짧은 생을 마감하고 전설 속으로 사라졌다. 일생이 영화였고 영화가 일생이었던 35년이었다. 17세에 고향을 떠나 중국 간도와 시베리아 일원을 떠돌던 나운규가 서울에 정착한 것은 그의 나이 18세 때인 1920년 봄이었다. 그러나 북간도에서 광복군 일을 도왔던 것이 뒤늦게 밝혀져 1년6개월의 형을 선고받고 청진·함흥 형무소에서 복역했다. 출소 후 나운규의 삶은 모두 영화에 바쳐졌다. 1924년 영화 ‘해(海)의 비곡(悲曲)’에...

세계적인 무용가 최승희 북한에서 사망

최승희의 생몰이 정확히 알려진 것은 2003년 초 북한 TV가 애국열사릉에 있는 그의 묘비를 보도하면서였다. 묘비에는 ‘1911년 11월24일 생, 1969년 8월8일 서거’로 씌어있다. 최승희를 무용으로 이끈 것은 1926년 15세에 처음 접한 일본 근대무용의 선구자 이시이 바쿠의 서울공연이었다. 이시이를 따라 도일, 문하생으로 3년간 무용을 배우고 돌아온 최승희는 1929년 서울 남산 중턱에 ‘무용예술연구소’를 열고 이듬해에는 제1회 신작발표회를 경성공회당에서 가져 한국...

우리나라 최초 여류 비행사 박경원 추락사

우리나라 최초 여류 비행사 박경원 추락사

↑ 박경원의 추락사를 보도한 조선일보 지면(1933년 8월 9일자)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 비행사 박경원은 17세 때 일본으로 건너가 요코하마 기예여학교를 졸업하고 귀국, 2년간 간호사로 일했으나 그녀의 마음은 늘 하늘에 있었다. 결국 1924년 9월 다치카와 항공학교에 입학해 11시간동안 단독비행을 할 정도로 우수한 기량을 보였다. 이런 박경원의 이름이 일본 신문에 기사화된 것은 1927년 1월, 3등 조종사 시험에 합격하면서였다. 이 시험에서 ‘아폴로...

美 KKK단 제1회 전국대회

흰 가운과 뾰족한 두건, 가슴에는 ‘불타는 십자가’ 모양의 심벌 부착. 1860년대부터 100여 년간 미국의 흑인들을 공포에 떨게 한 KKK단의 모습이다. KKK단은 ‘Ku Klux Klan’의 줄임말로 ‘원(circle)’을 뜻하는 그리스어 ‘kyklos’와 ‘씨족’ ‘당파’를 뜻하는 영어 ‘clan’을 운에 맞춘 ‘klan’의 합성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시작은 남북전쟁이 끝난 1866년 남부연합 참전용사들이 테네시주에서 조직한 친목단체였지만 지향점은 백인 지배의...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 사망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인 코리아… 나의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소서.” 실의에 빠져있는 한국인을 위해 기꺼이 ‘동방의 등불’(1929년 4월)이라는 시 한 편을 써주었던 ‘인도의 시성(詩聖)’ 라빈드라나드 타고르가 1941년 8월 7일 향년 80세로 고향 캘커타(현재 명칭 콜카타)에서 숨을 거뒀다. 타고르는 그의 조국 인도처럼 식민 치하에서 신음하는 한국인이 안타까웠는지 ‘동방의 등불’ 이전에도 최남선의 요청으로 3·1운동 실패에 좌절해 있는...

카프 시인 임화, 북에서 총살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임화의 삶은 한편의 비극적 드라마다. 식민지 시절에는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의 일원이자 서기장으로 박해받는 민중을 노래하다가 카프가 해산(1935년)된 뒤에는 친일의 길을 걷고, 광복 후에는 조선문학가동맹 결성을 주도하며 박헌영과 남로당을 칭송하는데 열을 올렸다. 그의 시집 ‘찬가’가 미 군정 하에서 유일하게 판매금지될 정도로 문학전사로서의 활동도 두드러졌다. 박헌영을 따라 월북(1947년 11월)한 후부터는 모스크바 유학을 꿈꾸며 스탈린을...

일본 쌀값 폭등으로 전국서 폭동

1918년, 일본의 쌀값이 폭등하기 시작한다. 전년도의 큰 흉작으로 쌀값이 꿈틀거리자 지주들이 쌀 방출을 꺼리고 상인들이 쌀을 매점한 게 원인이었다. 1년 전 일어난 러시아혁명을 저지하기 위해 일본이 군대를 시베리아에 파병한다는 소문까지 가세하면서 쌀값은 천정부지로 뛰어올랐다. 오사카 쌀 시세로 1되에 15엔이던 연초의 쌀값은 8월 1일 36엔10전, 5일 40엔50전, 9월에는 50엔으로 뛰어올랐다. 쌀값 등귀가 일으킨 연쇄반응으로 다른 생활필수품 가격까지 급등하자 주부들이...

조선일보·동아일보 강제폐간

1940년 1월 15일, 총독부 경무국장이 조선일보 방응모 사장과 동아일보 백관수 사장을 불러 일본의 기원절(건국기념일)인 2월 11일을 기해 스스로 폐간하고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와 통합하라고 종용했다. 그러나 두 사장은 “폐간은 중역회의에서 결정할 문제”라며 일축했다. 이후 양사는 계속 신문을 발행하기는 했지만 이미 총독부 방침은 폐간으로 기울어 있었다. 시기만이 문제였다. 두 신문이 공동보조를 취하며 말을 듣지 않자 총독부는 용지통제권을 발동해 신문용지 배급량을 줄이고...

성남시 광주대단지 사건

1968년 5월, 난립한 무허가 판자촌을 철거하고 그 철거민들은 경기도 광주군 일대로 이주시켜 20만 명 이상의 단일 생활권을 만든다는 서울시의 발표가 있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도시 ‘성남시’를 탄생시킨 광주대단지 조성사업이었다. 발표에 따라 1971년까지 2만2000가구 16만 여명의 철거민들이 광주대단지로 이주했으나 생활 여건도 마련하지 않은 채 서울시가 이주부터 시켜 주거환경이 말이 아니었다. 때문에 분양권을 되팔아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는 철거민들이 속출했다....

손기정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

1936년 8월 9일, 베를린 하늘에 일장기가 올라가고 기미가요가 울려퍼질 때 시상대 위에 선 24세의 조선청년 손기정은 물끄러미 땅만 내려다보았다. 훗날 그가 말했듯 “우승선수 나라의 국기가 올라가지 않고 국가가 연주되지 않는 것을 알았다면 결코 나서지 않았을” 그 올림픽에서 우승했다는 자괴감 탓이었을까. 손기정은 월계수관 속에 눈을 감추고 가슴에 달린 일장기는 월계수로 가렸다. 손기정은 금메달리스트들이 사인하는 방명록에도 한글로 ‘손긔정’이라고 뚜렷이 적어 일본인 ‘기테이...

영화 천재 나운규 사망

1937년 8월 9일 새벽1시25분, 춘사 나운규가 짧은 생을 마감하고 전설 속으로 사라졌다. 일생이 영화였고 영화가 일생이었던 35년이었다. 17세에 고향을 떠나 중국 간도와 시베리아 일원을 떠돌던 나운규가 서울에 정착한 것은 그의 나이 18세 때인 1920년 봄이었다. 그러나 북간도에서 광복군 일을 도왔던 것이 뒤늦게 밝혀져 1년6개월의 형을 선고받고 청진·함흥 형무소에서 복역했다. 출소 후 나운규의 삶은 모두 영화에 바쳐졌다. 1924년 영화 ‘해(海)의 비곡(悲曲)’에...

세계적인 무용가 최승희 북한에서 사망

최승희의 생몰이 정확히 알려진 것은 2003년 초 북한 TV가 애국열사릉에 있는 그의 묘비를 보도하면서였다. 묘비에는 ‘1911년 11월24일 생, 1969년 8월8일 서거’로 씌어있다. 최승희를 무용으로 이끈 것은 1926년 15세에 처음 접한 일본 근대무용의 선구자 이시이 바쿠의 서울공연이었다. 이시이를 따라 도일, 문하생으로 3년간 무용을 배우고 돌아온 최승희는 1929년 서울 남산 중턱에 ‘무용예술연구소’를 열고 이듬해에는 제1회 신작발표회를 경성공회당에서 가져 한국...

우리나라 최초 여류 비행사 박경원 추락사

우리나라 최초 여류 비행사 박경원 추락사

↑ 박경원의 추락사를 보도한 조선일보 지면(1933년 8월 9일자)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 비행사 박경원은 17세 때 일본으로 건너가 요코하마 기예여학교를 졸업하고 귀국, 2년간 간호사로 일했으나 그녀의 마음은 늘 하늘에 있었다. 결국 1924년 9월 다치카와 항공학교에 입학해 11시간동안 단독비행을 할 정도로 우수한 기량을 보였다. 이런 박경원의 이름이 일본 신문에 기사화된 것은 1927년 1월, 3등 조종사 시험에 합격하면서였다. 이 시험에서 ‘아폴로...

美 KKK단 제1회 전국대회

흰 가운과 뾰족한 두건, 가슴에는 ‘불타는 십자가’ 모양의 심벌 부착. 1860년대부터 100여 년간 미국의 흑인들을 공포에 떨게 한 KKK단의 모습이다. KKK단은 ‘Ku Klux Klan’의 줄임말로 ‘원(circle)’을 뜻하는 그리스어 ‘kyklos’와 ‘씨족’ ‘당파’를 뜻하는 영어 ‘clan’을 운에 맞춘 ‘klan’의 합성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시작은 남북전쟁이 끝난 1866년 남부연합 참전용사들이 테네시주에서 조직한 친목단체였지만 지향점은 백인 지배의...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 사망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인 코리아… 나의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소서.” 실의에 빠져있는 한국인을 위해 기꺼이 ‘동방의 등불’(1929년 4월)이라는 시 한 편을 써주었던 ‘인도의 시성(詩聖)’ 라빈드라나드 타고르가 1941년 8월 7일 향년 80세로 고향 캘커타(현재 명칭 콜카타)에서 숨을 거뒀다. 타고르는 그의 조국 인도처럼 식민 치하에서 신음하는 한국인이 안타까웠는지 ‘동방의 등불’ 이전에도 최남선의 요청으로 3·1운동 실패에 좌절해 있는...

카프 시인 임화, 북에서 총살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임화의 삶은 한편의 비극적 드라마다. 식민지 시절에는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의 일원이자 서기장으로 박해받는 민중을 노래하다가 카프가 해산(1935년)된 뒤에는 친일의 길을 걷고, 광복 후에는 조선문학가동맹 결성을 주도하며 박헌영과 남로당을 칭송하는데 열을 올렸다. 그의 시집 ‘찬가’가 미 군정 하에서 유일하게 판매금지될 정도로 문학전사로서의 활동도 두드러졌다. 박헌영을 따라 월북(1947년 11월)한 후부터는 모스크바 유학을 꿈꾸며 스탈린을...

일본 쌀값 폭등으로 전국서 폭동

1918년, 일본의 쌀값이 폭등하기 시작한다. 전년도의 큰 흉작으로 쌀값이 꿈틀거리자 지주들이 쌀 방출을 꺼리고 상인들이 쌀을 매점한 게 원인이었다. 1년 전 일어난 러시아혁명을 저지하기 위해 일본이 군대를 시베리아에 파병한다는 소문까지 가세하면서 쌀값은 천정부지로 뛰어올랐다. 오사카 쌀 시세로 1되에 15엔이던 연초의 쌀값은 8월 1일 36엔10전, 5일 40엔50전, 9월에는 50엔으로 뛰어올랐다. 쌀값 등귀가 일으킨 연쇄반응으로 다른 생활필수품 가격까지 급등하자 주부들이...

조선일보·동아일보 강제폐간

1940년 1월 15일, 총독부 경무국장이 조선일보 방응모 사장과 동아일보 백관수 사장을 불러 일본의 기원절(건국기념일)인 2월 11일을 기해 스스로 폐간하고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와 통합하라고 종용했다. 그러나 두 사장은 “폐간은 중역회의에서 결정할 문제”라며 일축했다. 이후 양사는 계속 신문을 발행하기는 했지만 이미 총독부 방침은 폐간으로 기울어 있었다. 시기만이 문제였다. 두 신문이 공동보조를 취하며 말을 듣지 않자 총독부는 용지통제권을 발동해 신문용지 배급량을 줄이고...

성남시 광주대단지 사건

1968년 5월, 난립한 무허가 판자촌을 철거하고 그 철거민들은 경기도 광주군 일대로 이주시켜 20만 명 이상의 단일 생활권을 만든다는 서울시의 발표가 있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도시 ‘성남시’를 탄생시킨 광주대단지 조성사업이었다. 발표에 따라 1971년까지 2만2000가구 16만 여명의 철거민들이 광주대단지로 이주했으나 생활 여건도 마련하지 않은 채 서울시가 이주부터 시켜 주거환경이 말이 아니었다. 때문에 분양권을 되팔아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는 철거민들이 속출했다....

손기정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

1936년 8월 9일, 베를린 하늘에 일장기가 올라가고 기미가요가 울려퍼질 때 시상대 위에 선 24세의 조선청년 손기정은 물끄러미 땅만 내려다보았다. 훗날 그가 말했듯 “우승선수 나라의 국기가 올라가지 않고 국가가 연주되지 않는 것을 알았다면 결코 나서지 않았을” 그 올림픽에서 우승했다는 자괴감 탓이었을까. 손기정은 월계수관 속에 눈을 감추고 가슴에 달린 일장기는 월계수로 가렸다. 손기정은 금메달리스트들이 사인하는 방명록에도 한글로 ‘손긔정’이라고 뚜렷이 적어 일본인 ‘기테이...

영화 천재 나운규 사망

1937년 8월 9일 새벽1시25분, 춘사 나운규가 짧은 생을 마감하고 전설 속으로 사라졌다. 일생이 영화였고 영화가 일생이었던 35년이었다. 17세에 고향을 떠나 중국 간도와 시베리아 일원을 떠돌던 나운규가 서울에 정착한 것은 그의 나이 18세 때인 1920년 봄이었다. 그러나 북간도에서 광복군 일을 도왔던 것이 뒤늦게 밝혀져 1년6개월의 형을 선고받고 청진·함흥 형무소에서 복역했다. 출소 후 나운규의 삶은 모두 영화에 바쳐졌다. 1924년 영화 ‘해(海)의 비곡(悲曲)’에...

세계적인 무용가 최승희 북한에서 사망

최승희의 생몰이 정확히 알려진 것은 2003년 초 북한 TV가 애국열사릉에 있는 그의 묘비를 보도하면서였다. 묘비에는 ‘1911년 11월24일 생, 1969년 8월8일 서거’로 씌어있다. 최승희를 무용으로 이끈 것은 1926년 15세에 처음 접한 일본 근대무용의 선구자 이시이 바쿠의 서울공연이었다. 이시이를 따라 도일, 문하생으로 3년간 무용을 배우고 돌아온 최승희는 1929년 서울 남산 중턱에 ‘무용예술연구소’를 열고 이듬해에는 제1회 신작발표회를 경성공회당에서 가져 한국...

우리나라 최초 여류 비행사 박경원 추락사

우리나라 최초 여류 비행사 박경원 추락사

↑ 박경원의 추락사를 보도한 조선일보 지면(1933년 8월 9일자)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 비행사 박경원은 17세 때 일본으로 건너가 요코하마 기예여학교를 졸업하고 귀국, 2년간 간호사로 일했으나 그녀의 마음은 늘 하늘에 있었다. 결국 1924년 9월 다치카와 항공학교에 입학해 11시간동안 단독비행을 할 정도로 우수한 기량을 보였다. 이런 박경원의 이름이 일본 신문에 기사화된 것은 1927년 1월, 3등 조종사 시험에 합격하면서였다. 이 시험에서 ‘아폴로...

美 KKK단 제1회 전국대회

흰 가운과 뾰족한 두건, 가슴에는 ‘불타는 십자가’ 모양의 심벌 부착. 1860년대부터 100여 년간 미국의 흑인들을 공포에 떨게 한 KKK단의 모습이다. KKK단은 ‘Ku Klux Klan’의 줄임말로 ‘원(circle)’을 뜻하는 그리스어 ‘kyklos’와 ‘씨족’ ‘당파’를 뜻하는 영어 ‘clan’을 운에 맞춘 ‘klan’의 합성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시작은 남북전쟁이 끝난 1866년 남부연합 참전용사들이 테네시주에서 조직한 친목단체였지만 지향점은 백인 지배의...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 사망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인 코리아… 나의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소서.” 실의에 빠져있는 한국인을 위해 기꺼이 ‘동방의 등불’(1929년 4월)이라는 시 한 편을 써주었던 ‘인도의 시성(詩聖)’ 라빈드라나드 타고르가 1941년 8월 7일 향년 80세로 고향 캘커타(현재 명칭 콜카타)에서 숨을 거뒀다. 타고르는 그의 조국 인도처럼 식민 치하에서 신음하는 한국인이 안타까웠는지 ‘동방의 등불’ 이전에도 최남선의 요청으로 3·1운동 실패에 좌절해 있는...

카프 시인 임화, 북에서 총살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임화의 삶은 한편의 비극적 드라마다. 식민지 시절에는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의 일원이자 서기장으로 박해받는 민중을 노래하다가 카프가 해산(1935년)된 뒤에는 친일의 길을 걷고, 광복 후에는 조선문학가동맹 결성을 주도하며 박헌영과 남로당을 칭송하는데 열을 올렸다. 그의 시집 ‘찬가’가 미 군정 하에서 유일하게 판매금지될 정도로 문학전사로서의 활동도 두드러졌다. 박헌영을 따라 월북(1947년 11월)한 후부터는 모스크바 유학을 꿈꾸며 스탈린을...

일본 쌀값 폭등으로 전국서 폭동

1918년, 일본의 쌀값이 폭등하기 시작한다. 전년도의 큰 흉작으로 쌀값이 꿈틀거리자 지주들이 쌀 방출을 꺼리고 상인들이 쌀을 매점한 게 원인이었다. 1년 전 일어난 러시아혁명을 저지하기 위해 일본이 군대를 시베리아에 파병한다는 소문까지 가세하면서 쌀값은 천정부지로 뛰어올랐다. 오사카 쌀 시세로 1되에 15엔이던 연초의 쌀값은 8월 1일 36엔10전, 5일 40엔50전, 9월에는 50엔으로 뛰어올랐다. 쌀값 등귀가 일으킨 연쇄반응으로 다른 생활필수품 가격까지 급등하자 주부들이...

조선일보·동아일보 강제폐간

1940년 1월 15일, 총독부 경무국장이 조선일보 방응모 사장과 동아일보 백관수 사장을 불러 일본의 기원절(건국기념일)인 2월 11일을 기해 스스로 폐간하고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와 통합하라고 종용했다. 그러나 두 사장은 “폐간은 중역회의에서 결정할 문제”라며 일축했다. 이후 양사는 계속 신문을 발행하기는 했지만 이미 총독부 방침은 폐간으로 기울어 있었다. 시기만이 문제였다. 두 신문이 공동보조를 취하며 말을 듣지 않자 총독부는 용지통제권을 발동해 신문용지 배급량을 줄이고...

성남시 광주대단지 사건

1968년 5월, 난립한 무허가 판자촌을 철거하고 그 철거민들은 경기도 광주군 일대로 이주시켜 20만 명 이상의 단일 생활권을 만든다는 서울시의 발표가 있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도시 ‘성남시’를 탄생시킨 광주대단지 조성사업이었다. 발표에 따라 1971년까지 2만2000가구 16만 여명의 철거민들이 광주대단지로 이주했으나 생활 여건도 마련하지 않은 채 서울시가 이주부터 시켜 주거환경이 말이 아니었다. 때문에 분양권을 되팔아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는 철거민들이 속출했다....

손기정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

1936년 8월 9일, 베를린 하늘에 일장기가 올라가고 기미가요가 울려퍼질 때 시상대 위에 선 24세의 조선청년 손기정은 물끄러미 땅만 내려다보았다. 훗날 그가 말했듯 “우승선수 나라의 국기가 올라가지 않고 국가가 연주되지 않는 것을 알았다면 결코 나서지 않았을” 그 올림픽에서 우승했다는 자괴감 탓이었을까. 손기정은 월계수관 속에 눈을 감추고 가슴에 달린 일장기는 월계수로 가렸다. 손기정은 금메달리스트들이 사인하는 방명록에도 한글로 ‘손긔정’이라고 뚜렷이 적어 일본인 ‘기테이...

영화 천재 나운규 사망

1937년 8월 9일 새벽1시25분, 춘사 나운규가 짧은 생을 마감하고 전설 속으로 사라졌다. 일생이 영화였고 영화가 일생이었던 35년이었다. 17세에 고향을 떠나 중국 간도와 시베리아 일원을 떠돌던 나운규가 서울에 정착한 것은 그의 나이 18세 때인 1920년 봄이었다. 그러나 북간도에서 광복군 일을 도왔던 것이 뒤늦게 밝혀져 1년6개월의 형을 선고받고 청진·함흥 형무소에서 복역했다. 출소 후 나운규의 삶은 모두 영화에 바쳐졌다. 1924년 영화 ‘해(海)의 비곡(悲曲)’에...

세계적인 무용가 최승희 북한에서 사망

최승희의 생몰이 정확히 알려진 것은 2003년 초 북한 TV가 애국열사릉에 있는 그의 묘비를 보도하면서였다. 묘비에는 ‘1911년 11월24일 생, 1969년 8월8일 서거’로 씌어있다. 최승희를 무용으로 이끈 것은 1926년 15세에 처음 접한 일본 근대무용의 선구자 이시이 바쿠의 서울공연이었다. 이시이를 따라 도일, 문하생으로 3년간 무용을 배우고 돌아온 최승희는 1929년 서울 남산 중턱에 ‘무용예술연구소’를 열고 이듬해에는 제1회 신작발표회를 경성공회당에서 가져 한국...

우리나라 최초 여류 비행사 박경원 추락사

우리나라 최초 여류 비행사 박경원 추락사

↑ 박경원의 추락사를 보도한 조선일보 지면(1933년 8월 9일자)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 비행사 박경원은 17세 때 일본으로 건너가 요코하마 기예여학교를 졸업하고 귀국, 2년간 간호사로 일했으나 그녀의 마음은 늘 하늘에 있었다. 결국 1924년 9월 다치카와 항공학교에 입학해 11시간동안 단독비행을 할 정도로 우수한 기량을 보였다. 이런 박경원의 이름이 일본 신문에 기사화된 것은 1927년 1월, 3등 조종사 시험에 합격하면서였다. 이 시험에서 ‘아폴로...

美 KKK단 제1회 전국대회

흰 가운과 뾰족한 두건, 가슴에는 ‘불타는 십자가’ 모양의 심벌 부착. 1860년대부터 100여 년간 미국의 흑인들을 공포에 떨게 한 KKK단의 모습이다. KKK단은 ‘Ku Klux Klan’의 줄임말로 ‘원(circle)’을 뜻하는 그리스어 ‘kyklos’와 ‘씨족’ ‘당파’를 뜻하는 영어 ‘clan’을 운에 맞춘 ‘klan’의 합성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시작은 남북전쟁이 끝난 1866년 남부연합 참전용사들이 테네시주에서 조직한 친목단체였지만 지향점은 백인 지배의...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 사망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인 코리아… 나의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소서.” 실의에 빠져있는 한국인을 위해 기꺼이 ‘동방의 등불’(1929년 4월)이라는 시 한 편을 써주었던 ‘인도의 시성(詩聖)’ 라빈드라나드 타고르가 1941년 8월 7일 향년 80세로 고향 캘커타(현재 명칭 콜카타)에서 숨을 거뒀다. 타고르는 그의 조국 인도처럼 식민 치하에서 신음하는 한국인이 안타까웠는지 ‘동방의 등불’ 이전에도 최남선의 요청으로 3·1운동 실패에 좌절해 있는...

카프 시인 임화, 북에서 총살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임화의 삶은 한편의 비극적 드라마다. 식민지 시절에는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의 일원이자 서기장으로 박해받는 민중을 노래하다가 카프가 해산(1935년)된 뒤에는 친일의 길을 걷고, 광복 후에는 조선문학가동맹 결성을 주도하며 박헌영과 남로당을 칭송하는데 열을 올렸다. 그의 시집 ‘찬가’가 미 군정 하에서 유일하게 판매금지될 정도로 문학전사로서의 활동도 두드러졌다. 박헌영을 따라 월북(1947년 11월)한 후부터는 모스크바 유학을 꿈꾸며 스탈린을...

일본 쌀값 폭등으로 전국서 폭동

1918년, 일본의 쌀값이 폭등하기 시작한다. 전년도의 큰 흉작으로 쌀값이 꿈틀거리자 지주들이 쌀 방출을 꺼리고 상인들이 쌀을 매점한 게 원인이었다. 1년 전 일어난 러시아혁명을 저지하기 위해 일본이 군대를 시베리아에 파병한다는 소문까지 가세하면서 쌀값은 천정부지로 뛰어올랐다. 오사카 쌀 시세로 1되에 15엔이던 연초의 쌀값은 8월 1일 36엔10전, 5일 40엔50전, 9월에는 50엔으로 뛰어올랐다. 쌀값 등귀가 일으킨 연쇄반응으로 다른 생활필수품 가격까지 급등하자 주부들이...

조선일보·동아일보 강제폐간

1940년 1월 15일, 총독부 경무국장이 조선일보 방응모 사장과 동아일보 백관수 사장을 불러 일본의 기원절(건국기념일)인 2월 11일을 기해 스스로 폐간하고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와 통합하라고 종용했다. 그러나 두 사장은 “폐간은 중역회의에서 결정할 문제”라며 일축했다. 이후 양사는 계속 신문을 발행하기는 했지만 이미 총독부 방침은 폐간으로 기울어 있었다. 시기만이 문제였다. 두 신문이 공동보조를 취하며 말을 듣지 않자 총독부는 용지통제권을 발동해 신문용지 배급량을 줄이고...

성남시 광주대단지 사건

1968년 5월, 난립한 무허가 판자촌을 철거하고 그 철거민들은 경기도 광주군 일대로 이주시켜 20만 명 이상의 단일 생활권을 만든다는 서울시의 발표가 있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도시 ‘성남시’를 탄생시킨 광주대단지 조성사업이었다. 발표에 따라 1971년까지 2만2000가구 16만 여명의 철거민들이 광주대단지로 이주했으나 생활 여건도 마련하지 않은 채 서울시가 이주부터 시켜 주거환경이 말이 아니었다. 때문에 분양권을 되팔아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는 철거민들이 속출했다....

손기정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

1936년 8월 9일, 베를린 하늘에 일장기가 올라가고 기미가요가 울려퍼질 때 시상대 위에 선 24세의 조선청년 손기정은 물끄러미 땅만 내려다보았다. 훗날 그가 말했듯 “우승선수 나라의 국기가 올라가지 않고 국가가 연주되지 않는 것을 알았다면 결코 나서지 않았을” 그 올림픽에서 우승했다는 자괴감 탓이었을까. 손기정은 월계수관 속에 눈을 감추고 가슴에 달린 일장기는 월계수로 가렸다. 손기정은 금메달리스트들이 사인하는 방명록에도 한글로 ‘손긔정’이라고 뚜렷이 적어 일본인 ‘기테이...

영화 천재 나운규 사망

1937년 8월 9일 새벽1시25분, 춘사 나운규가 짧은 생을 마감하고 전설 속으로 사라졌다. 일생이 영화였고 영화가 일생이었던 35년이었다. 17세에 고향을 떠나 중국 간도와 시베리아 일원을 떠돌던 나운규가 서울에 정착한 것은 그의 나이 18세 때인 1920년 봄이었다. 그러나 북간도에서 광복군 일을 도왔던 것이 뒤늦게 밝혀져 1년6개월의 형을 선고받고 청진·함흥 형무소에서 복역했다. 출소 후 나운규의 삶은 모두 영화에 바쳐졌다. 1924년 영화 ‘해(海)의 비곡(悲曲)’에...

세계적인 무용가 최승희 북한에서 사망

최승희의 생몰이 정확히 알려진 것은 2003년 초 북한 TV가 애국열사릉에 있는 그의 묘비를 보도하면서였다. 묘비에는 ‘1911년 11월24일 생, 1969년 8월8일 서거’로 씌어있다. 최승희를 무용으로 이끈 것은 1926년 15세에 처음 접한 일본 근대무용의 선구자 이시이 바쿠의 서울공연이었다. 이시이를 따라 도일, 문하생으로 3년간 무용을 배우고 돌아온 최승희는 1929년 서울 남산 중턱에 ‘무용예술연구소’를 열고 이듬해에는 제1회 신작발표회를 경성공회당에서 가져 한국...

우리나라 최초 여류 비행사 박경원 추락사

우리나라 최초 여류 비행사 박경원 추락사

↑ 박경원의 추락사를 보도한 조선일보 지면(1933년 8월 9일자)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 비행사 박경원은 17세 때 일본으로 건너가 요코하마 기예여학교를 졸업하고 귀국, 2년간 간호사로 일했으나 그녀의 마음은 늘 하늘에 있었다. 결국 1924년 9월 다치카와 항공학교에 입학해 11시간동안 단독비행을 할 정도로 우수한 기량을 보였다. 이런 박경원의 이름이 일본 신문에 기사화된 것은 1927년 1월, 3등 조종사 시험에 합격하면서였다. 이 시험에서 ‘아폴로...

美 KKK단 제1회 전국대회

흰 가운과 뾰족한 두건, 가슴에는 ‘불타는 십자가’ 모양의 심벌 부착. 1860년대부터 100여 년간 미국의 흑인들을 공포에 떨게 한 KKK단의 모습이다. KKK단은 ‘Ku Klux Klan’의 줄임말로 ‘원(circle)’을 뜻하는 그리스어 ‘kyklos’와 ‘씨족’ ‘당파’를 뜻하는 영어 ‘clan’을 운에 맞춘 ‘klan’의 합성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시작은 남북전쟁이 끝난 1866년 남부연합 참전용사들이 테네시주에서 조직한 친목단체였지만 지향점은 백인 지배의...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 사망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인 코리아… 나의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소서.” 실의에 빠져있는 한국인을 위해 기꺼이 ‘동방의 등불’(1929년 4월)이라는 시 한 편을 써주었던 ‘인도의 시성(詩聖)’ 라빈드라나드 타고르가 1941년 8월 7일 향년 80세로 고향 캘커타(현재 명칭 콜카타)에서 숨을 거뒀다. 타고르는 그의 조국 인도처럼 식민 치하에서 신음하는 한국인이 안타까웠는지 ‘동방의 등불’ 이전에도 최남선의 요청으로 3·1운동 실패에 좌절해 있는...

카프 시인 임화, 북에서 총살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임화의 삶은 한편의 비극적 드라마다. 식민지 시절에는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의 일원이자 서기장으로 박해받는 민중을 노래하다가 카프가 해산(1935년)된 뒤에는 친일의 길을 걷고, 광복 후에는 조선문학가동맹 결성을 주도하며 박헌영과 남로당을 칭송하는데 열을 올렸다. 그의 시집 ‘찬가’가 미 군정 하에서 유일하게 판매금지될 정도로 문학전사로서의 활동도 두드러졌다. 박헌영을 따라 월북(1947년 11월)한 후부터는 모스크바 유학을 꿈꾸며 스탈린을...

일본 쌀값 폭등으로 전국서 폭동

1918년, 일본의 쌀값이 폭등하기 시작한다. 전년도의 큰 흉작으로 쌀값이 꿈틀거리자 지주들이 쌀 방출을 꺼리고 상인들이 쌀을 매점한 게 원인이었다. 1년 전 일어난 러시아혁명을 저지하기 위해 일본이 군대를 시베리아에 파병한다는 소문까지 가세하면서 쌀값은 천정부지로 뛰어올랐다. 오사카 쌀 시세로 1되에 15엔이던 연초의 쌀값은 8월 1일 36엔10전, 5일 40엔50전, 9월에는 50엔으로 뛰어올랐다. 쌀값 등귀가 일으킨 연쇄반응으로 다른 생활필수품 가격까지 급등하자 주부들이...

조선일보·동아일보 강제폐간

1940년 1월 15일, 총독부 경무국장이 조선일보 방응모 사장과 동아일보 백관수 사장을 불러 일본의 기원절(건국기념일)인 2월 11일을 기해 스스로 폐간하고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와 통합하라고 종용했다. 그러나 두 사장은 “폐간은 중역회의에서 결정할 문제”라며 일축했다. 이후 양사는 계속 신문을 발행하기는 했지만 이미 총독부 방침은 폐간으로 기울어 있었다. 시기만이 문제였다. 두 신문이 공동보조를 취하며 말을 듣지 않자 총독부는 용지통제권을 발동해 신문용지 배급량을 줄이고...

성남시 광주대단지 사건

1968년 5월, 난립한 무허가 판자촌을 철거하고 그 철거민들은 경기도 광주군 일대로 이주시켜 20만 명 이상의 단일 생활권을 만든다는 서울시의 발표가 있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도시 ‘성남시’를 탄생시킨 광주대단지 조성사업이었다. 발표에 따라 1971년까지 2만2000가구 16만 여명의 철거민들이 광주대단지로 이주했으나 생활 여건도 마련하지 않은 채 서울시가 이주부터 시켜 주거환경이 말이 아니었다. 때문에 분양권을 되팔아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는 철거민들이 속출했다....

손기정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

1936년 8월 9일, 베를린 하늘에 일장기가 올라가고 기미가요가 울려퍼질 때 시상대 위에 선 24세의 조선청년 손기정은 물끄러미 땅만 내려다보았다. 훗날 그가 말했듯 “우승선수 나라의 국기가 올라가지 않고 국가가 연주되지 않는 것을 알았다면 결코 나서지 않았을” 그 올림픽에서 우승했다는 자괴감 탓이었을까. 손기정은 월계수관 속에 눈을 감추고 가슴에 달린 일장기는 월계수로 가렸다. 손기정은 금메달리스트들이 사인하는 방명록에도 한글로 ‘손긔정’이라고 뚜렷이 적어 일본인 ‘기테이...

영화 천재 나운규 사망

1937년 8월 9일 새벽1시25분, 춘사 나운규가 짧은 생을 마감하고 전설 속으로 사라졌다. 일생이 영화였고 영화가 일생이었던 35년이었다. 17세에 고향을 떠나 중국 간도와 시베리아 일원을 떠돌던 나운규가 서울에 정착한 것은 그의 나이 18세 때인 1920년 봄이었다. 그러나 북간도에서 광복군 일을 도왔던 것이 뒤늦게 밝혀져 1년6개월의 형을 선고받고 청진·함흥 형무소에서 복역했다. 출소 후 나운규의 삶은 모두 영화에 바쳐졌다. 1924년 영화 ‘해(海)의 비곡(悲曲)’에...

세계적인 무용가 최승희 북한에서 사망

최승희의 생몰이 정확히 알려진 것은 2003년 초 북한 TV가 애국열사릉에 있는 그의 묘비를 보도하면서였다. 묘비에는 ‘1911년 11월24일 생, 1969년 8월8일 서거’로 씌어있다. 최승희를 무용으로 이끈 것은 1926년 15세에 처음 접한 일본 근대무용의 선구자 이시이 바쿠의 서울공연이었다. 이시이를 따라 도일, 문하생으로 3년간 무용을 배우고 돌아온 최승희는 1929년 서울 남산 중턱에 ‘무용예술연구소’를 열고 이듬해에는 제1회 신작발표회를 경성공회당에서 가져 한국...

우리나라 최초 여류 비행사 박경원 추락사

우리나라 최초 여류 비행사 박경원 추락사

↑ 박경원의 추락사를 보도한 조선일보 지면(1933년 8월 9일자)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 비행사 박경원은 17세 때 일본으로 건너가 요코하마 기예여학교를 졸업하고 귀국, 2년간 간호사로 일했으나 그녀의 마음은 늘 하늘에 있었다. 결국 1924년 9월 다치카와 항공학교에 입학해 11시간동안 단독비행을 할 정도로 우수한 기량을 보였다. 이런 박경원의 이름이 일본 신문에 기사화된 것은 1927년 1월, 3등 조종사 시험에 합격하면서였다. 이 시험에서 ‘아폴로...

美 KKK단 제1회 전국대회

흰 가운과 뾰족한 두건, 가슴에는 ‘불타는 십자가’ 모양의 심벌 부착. 1860년대부터 100여 년간 미국의 흑인들을 공포에 떨게 한 KKK단의 모습이다. KKK단은 ‘Ku Klux Klan’의 줄임말로 ‘원(circle)’을 뜻하는 그리스어 ‘kyklos’와 ‘씨족’ ‘당파’를 뜻하는 영어 ‘clan’을 운에 맞춘 ‘klan’의 합성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시작은 남북전쟁이 끝난 1866년 남부연합 참전용사들이 테네시주에서 조직한 친목단체였지만 지향점은 백인 지배의...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 사망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인 코리아… 나의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소서.” 실의에 빠져있는 한국인을 위해 기꺼이 ‘동방의 등불’(1929년 4월)이라는 시 한 편을 써주었던 ‘인도의 시성(詩聖)’ 라빈드라나드 타고르가 1941년 8월 7일 향년 80세로 고향 캘커타(현재 명칭 콜카타)에서 숨을 거뒀다. 타고르는 그의 조국 인도처럼 식민 치하에서 신음하는 한국인이 안타까웠는지 ‘동방의 등불’ 이전에도 최남선의 요청으로 3·1운동 실패에 좌절해 있는...

카프 시인 임화, 북에서 총살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임화의 삶은 한편의 비극적 드라마다. 식민지 시절에는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의 일원이자 서기장으로 박해받는 민중을 노래하다가 카프가 해산(1935년)된 뒤에는 친일의 길을 걷고, 광복 후에는 조선문학가동맹 결성을 주도하며 박헌영과 남로당을 칭송하는데 열을 올렸다. 그의 시집 ‘찬가’가 미 군정 하에서 유일하게 판매금지될 정도로 문학전사로서의 활동도 두드러졌다. 박헌영을 따라 월북(1947년 11월)한 후부터는 모스크바 유학을 꿈꾸며 스탈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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