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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북동부의 뉴잉글랜드 6개주를 가다②] 뉴욕은 뉴잉글랜드로 가려면 어차피 거쳐 가는 도시여서 무작정 상경식으로 돌아다녀
↑ 로우어 맨해튼에서 남쪽으로 바라본 미드타운 맨해튼 (출처 위키피디아) by 김정일 前 금융인·뭐라도학교 교장, 現 소나무 농사꾼 ■뉴욕 뉴욕 뉴욕 ▲뉴욕 입성 드디어 장장 15시간의 비행 끝에 뉴욕 라과디아 공항에 발을 디뎠다. 이제부터 나는 부시맨이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이 낯설고 모르는 것 투성이므로 부시맨처럼 맨땅에 헤딩하며 스스로 하나하나 깨달아가며 지식을 축적하고 생존해야 한다. 공항 통관을 마치니 밤10시가 되었다. 먼저 내가 오늘밤...
이란 팔레비 쿠데타
1908년 이란에서 석유가 발견된 이래, 원유의 생산·정제·판매를 독점한 것은 영국 자본인 ‘앵글로·이라니안 석유회사(AIOC)’였다. 2차대전 후 제3세계에서 민족주의가 고양되는 가운데 이란에서도 석유산업을 되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런 국민적인 감정을 타고 석유산업을 국유화하는데 앞장선 이가 무사데크다. 그는 영국은 물론 소련과도 일정한 거리를 둔 리버럴한 성향의 노(老) 정치가였다. 1951년 3월, 석유산업 국유화 법안이 상·하 양원에서 만장일치로 가결되자...
육군사관학교 창설부터 현재까지의 빛과 그림자
↑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이 행진하는 모습 (출처 육군사관학교 홈페이지) by 김지지 국군 창설 후 첫 장교 배출한 곳은 군사영어학교 대한민국 국군은 1945년 11월 13일 미 군정이 공포한 군정법령 제28호에 따라 미 군정청 내에 설치된 ‘국방사령부’에 뿌리를 두고 있다. 국방사령부는 군 조직을 통괄하는 군사국과 경찰 조직을 관할하는 경무국을 두 축으로 삼아 해방공간의 무질서를 바로잡았다. 미 군정은 국방사령부 설치 후 바로 군대를 창설하려 했으나...
삼별초, 대몽항전 위해 전라도 진도 도착
고려 고종 18년(1231년), 몽고가 고려에 침입했다. 최우의 무신정권은 몽고가 수전(水戰)에 약한 점을 염두에 두고 수도를 강화도로 옮겨 항전 의지를 불태웠다. 이후 몽고가 개경 환도를 요구하며 침략과 철수를 반복하던 중 최씨 무인 정권이 무너졌다. 고려 고종은 1259년 개경 환도를 약속하고 태자 전을 원나라에 입조케 함으로써 고려와 원나라의 무력 충돌도 29년만에 막을 내렸다. 태자가 고려를 떠난 2개월 뒤 고종이 갑자기 죽어 태자가 원종으로 즉위했으나 실권은 여전히...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1976년 8월 18일 오전 10시45분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유엔군측 제3초소 앞에서 한국인 노무자 5명이 미루나무 가지를 치고 있었다. 현장에는 미군 장교 2명과 사병 4명, 한국군 장교 1명과 사병 4명 등 모두 11명의 유엔군 장병들이 이들을 호위하고 있었다. 이때 2명의 북한군 장교와 10여 명의 북한군이 다가와 “나뭇가지를 치지말라”며 생트집을 잡았지만 여름만 되면 무성한 잎이 관측소 시야를 가로막아온 터라 미군 장교는 이를 무시하고 작업을 강행했다. 그러자 곧...
중국 천안문광장서 홍위병 100만 명 집회
1966년 8월 18일, ‘무산계급 문화대혁명 경축 군중대회’가 열리고 있는 중국 베이징 천안문광장. 인민복 차림에 붉은 완장을 한 100만 명 학생들의 함성이 광장을 뒤흔들었다. 단상에는 마오쩌둥이 자리하고 학생들의 표정에는 흥분으로 가득했다. 소조(小組)로만 활동해 오던 홍위병들의 첫 대규모 세 과시였고 중국 전역을 광란과 파국으로 몰고간 문화대혁명의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3개월 전 칭화대 부속중에서 발원한 홍위병은 이후 중국 현대사를 파괴한 상징어였고 구타와 살인을...
장준하 의문의 실족사
장준하의 57년 삶은 한국 현대사의 격랑 속에서도 불의와 정면으로 맞서 싸운 참지식인의 전범이었다. 일본 유학시절이던 1944년 학도병으로 징집돼 관동군에 배속됐으나 그해 7월 김준엽 등과 함께 부대를 탈출, 7개월 동안 장장6000리(2400㎞)나 되는 중국 대륙을 횡단하며 중칭(重慶)의 광복군 부대에 합류하는 초인적인 모습을 보였고, 중국에서는 미 전략첩보부대(OSS)의 특수훈련을 받으며 국내잠입을 기다리다 일본의 패망으로 소망을 접어야 하는 안타까운 순간을 맞기도 했다....
히틀러의 최측근 루돌프 헤스 옥중 자살
루돌프 헤스는 1923년 11월의 맥주홀 폭동사건으로 수감돼 그곳에서 히틀러의 ‘나의 투쟁’을 받아적으며 히틀러의 최측근이 된다. 헤스는 히틀러를 구원의 신으로 믿고 열렬히 따랐다. 그는 검소하고 조용한 사람이었다. 1933년 부총통으로 임명돼 서열 2위로 부상했으나 히틀러가 1930년대 말부터 외교와 군사문제에 몰두하고 경쟁자들이 그를 견제하면서 점차 영향력이 약화되었다. 그 즈음인 1941년 5월 10일 밤10시, 헤스가 낙하산을 타고 스코틀랜드 상공에서 단신으로...
최규하 대통령, 대통령직 사임 발표
1980년 4월 14일 오후5시, “공석 중인 중앙정보부장에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서리로 임명됐다”는 뉴스특보가 흘러나왔다. 5개월 전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장 자격으로 한 차례 얼굴을 내비친 적이 있긴 하지만 여전히 전두환은 낯선 인물이었다. 그러나 보안사령관의 중정 부장 겸직이 신군부 정권 장악의 분명한 신호탄이라는 것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공개적인 그의 등장은 1980년대 한국 정치의 행로를 결정지은 중대 사건이었다. 전두환을 정점으로 한 신군부 5인방이 정권...
‘록 음악의 전설’ 엘비스 프레슬리 사망
갓 21세가 된 엘비스 프레슬리에게 1956년은 최고의 해였다. 2년 전 데뷔해 미국 대중음악계에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킨 엘비스는 1956년 1월 앨범 ‘하트브레이크 호텔’을 발매하면서 독주 채비를 갖춰갔다. “록의 역사를 시작했다”는 찬사를 받았던 이 곡은 4월부터 8주 연속 인기차트 1위에 올라 ‘하운드 독’ ‘러브 미 텐더’의 인기까지 견인하며 1956년을 명실상부한 ‘엘비스의 해’로 만들었다. 빙 크로스비나 프랭크 시내트라 등의 감미로운 음악이 오랫동안 지배하던...
[美 북동부의 뉴잉글랜드 6개주를 가다②] 뉴욕은 뉴잉글랜드로 가려면 어차피 거쳐 가는 도시여서 무작정 상경식으로 돌아다녀
↑ 로우어 맨해튼에서 남쪽으로 바라본 미드타운 맨해튼 (출처 위키피디아) by 김정일 前 금융인·뭐라도학교 교장, 現 소나무 농사꾼 ■뉴욕 뉴욕 뉴욕 ▲뉴욕 입성 드디어 장장 15시간의 비행 끝에 뉴욕 라과디아 공항에 발을 디뎠다. 이제부터 나는 부시맨이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이 낯설고 모르는 것 투성이므로 부시맨처럼 맨땅에 헤딩하며 스스로 하나하나 깨달아가며 지식을 축적하고 생존해야 한다. 공항 통관을 마치니 밤10시가 되었다. 먼저 내가 오늘밤...
이란 팔레비 쿠데타
1908년 이란에서 석유가 발견된 이래, 원유의 생산·정제·판매를 독점한 것은 영국 자본인 ‘앵글로·이라니안 석유회사(AIOC)’였다. 2차대전 후 제3세계에서 민족주의가 고양되는 가운데 이란에서도 석유산업을 되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런 국민적인 감정을 타고 석유산업을 국유화하는데 앞장선 이가 무사데크다. 그는 영국은 물론 소련과도 일정한 거리를 둔 리버럴한 성향의 노(老) 정치가였다. 1951년 3월, 석유산업 국유화 법안이 상·하 양원에서 만장일치로 가결되자...
육군사관학교 창설부터 현재까지의 빛과 그림자
↑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이 행진하는 모습 (출처 육군사관학교 홈페이지) by 김지지 국군 창설 후 첫 장교 배출한 곳은 군사영어학교 대한민국 국군은 1945년 11월 13일 미 군정이 공포한 군정법령 제28호에 따라 미 군정청 내에 설치된 ‘국방사령부’에 뿌리를 두고 있다. 국방사령부는 군 조직을 통괄하는 군사국과 경찰 조직을 관할하는 경무국을 두 축으로 삼아 해방공간의 무질서를 바로잡았다. 미 군정은 국방사령부 설치 후 바로 군대를 창설하려 했으나...
삼별초, 대몽항전 위해 전라도 진도 도착
고려 고종 18년(1231년), 몽고가 고려에 침입했다. 최우의 무신정권은 몽고가 수전(水戰)에 약한 점을 염두에 두고 수도를 강화도로 옮겨 항전 의지를 불태웠다. 이후 몽고가 개경 환도를 요구하며 침략과 철수를 반복하던 중 최씨 무인 정권이 무너졌다. 고려 고종은 1259년 개경 환도를 약속하고 태자 전을 원나라에 입조케 함으로써 고려와 원나라의 무력 충돌도 29년만에 막을 내렸다. 태자가 고려를 떠난 2개월 뒤 고종이 갑자기 죽어 태자가 원종으로 즉위했으나 실권은 여전히...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1976년 8월 18일 오전 10시45분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유엔군측 제3초소 앞에서 한국인 노무자 5명이 미루나무 가지를 치고 있었다. 현장에는 미군 장교 2명과 사병 4명, 한국군 장교 1명과 사병 4명 등 모두 11명의 유엔군 장병들이 이들을 호위하고 있었다. 이때 2명의 북한군 장교와 10여 명의 북한군이 다가와 “나뭇가지를 치지말라”며 생트집을 잡았지만 여름만 되면 무성한 잎이 관측소 시야를 가로막아온 터라 미군 장교는 이를 무시하고 작업을 강행했다. 그러자 곧...
중국 천안문광장서 홍위병 100만 명 집회
1966년 8월 18일, ‘무산계급 문화대혁명 경축 군중대회’가 열리고 있는 중국 베이징 천안문광장. 인민복 차림에 붉은 완장을 한 100만 명 학생들의 함성이 광장을 뒤흔들었다. 단상에는 마오쩌둥이 자리하고 학생들의 표정에는 흥분으로 가득했다. 소조(小組)로만 활동해 오던 홍위병들의 첫 대규모 세 과시였고 중국 전역을 광란과 파국으로 몰고간 문화대혁명의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3개월 전 칭화대 부속중에서 발원한 홍위병은 이후 중국 현대사를 파괴한 상징어였고 구타와 살인을...
장준하 의문의 실족사
장준하의 57년 삶은 한국 현대사의 격랑 속에서도 불의와 정면으로 맞서 싸운 참지식인의 전범이었다. 일본 유학시절이던 1944년 학도병으로 징집돼 관동군에 배속됐으나 그해 7월 김준엽 등과 함께 부대를 탈출, 7개월 동안 장장6000리(2400㎞)나 되는 중국 대륙을 횡단하며 중칭(重慶)의 광복군 부대에 합류하는 초인적인 모습을 보였고, 중국에서는 미 전략첩보부대(OSS)의 특수훈련을 받으며 국내잠입을 기다리다 일본의 패망으로 소망을 접어야 하는 안타까운 순간을 맞기도 했다....
히틀러의 최측근 루돌프 헤스 옥중 자살
루돌프 헤스는 1923년 11월의 맥주홀 폭동사건으로 수감돼 그곳에서 히틀러의 ‘나의 투쟁’을 받아적으며 히틀러의 최측근이 된다. 헤스는 히틀러를 구원의 신으로 믿고 열렬히 따랐다. 그는 검소하고 조용한 사람이었다. 1933년 부총통으로 임명돼 서열 2위로 부상했으나 히틀러가 1930년대 말부터 외교와 군사문제에 몰두하고 경쟁자들이 그를 견제하면서 점차 영향력이 약화되었다. 그 즈음인 1941년 5월 10일 밤10시, 헤스가 낙하산을 타고 스코틀랜드 상공에서 단신으로...
최규하 대통령, 대통령직 사임 발표
1980년 4월 14일 오후5시, “공석 중인 중앙정보부장에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서리로 임명됐다”는 뉴스특보가 흘러나왔다. 5개월 전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장 자격으로 한 차례 얼굴을 내비친 적이 있긴 하지만 여전히 전두환은 낯선 인물이었다. 그러나 보안사령관의 중정 부장 겸직이 신군부 정권 장악의 분명한 신호탄이라는 것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공개적인 그의 등장은 1980년대 한국 정치의 행로를 결정지은 중대 사건이었다. 전두환을 정점으로 한 신군부 5인방이 정권...
‘록 음악의 전설’ 엘비스 프레슬리 사망
갓 21세가 된 엘비스 프레슬리에게 1956년은 최고의 해였다. 2년 전 데뷔해 미국 대중음악계에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킨 엘비스는 1956년 1월 앨범 ‘하트브레이크 호텔’을 발매하면서 독주 채비를 갖춰갔다. “록의 역사를 시작했다”는 찬사를 받았던 이 곡은 4월부터 8주 연속 인기차트 1위에 올라 ‘하운드 독’ ‘러브 미 텐더’의 인기까지 견인하며 1956년을 명실상부한 ‘엘비스의 해’로 만들었다. 빙 크로스비나 프랭크 시내트라 등의 감미로운 음악이 오랫동안 지배하던...
[美 북동부의 뉴잉글랜드 6개주를 가다②] 뉴욕은 뉴잉글랜드로 가려면 어차피 거쳐 가는 도시여서 무작정 상경식으로 돌아다녀
↑ 로우어 맨해튼에서 남쪽으로 바라본 미드타운 맨해튼 (출처 위키피디아) by 김정일 前 금융인·뭐라도학교 교장, 現 소나무 농사꾼 ■뉴욕 뉴욕 뉴욕 ▲뉴욕 입성 드디어 장장 15시간의 비행 끝에 뉴욕 라과디아 공항에 발을 디뎠다. 이제부터 나는 부시맨이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이 낯설고 모르는 것 투성이므로 부시맨처럼 맨땅에 헤딩하며 스스로 하나하나 깨달아가며 지식을 축적하고 생존해야 한다. 공항 통관을 마치니 밤10시가 되었다. 먼저 내가 오늘밤...
이란 팔레비 쿠데타
1908년 이란에서 석유가 발견된 이래, 원유의 생산·정제·판매를 독점한 것은 영국 자본인 ‘앵글로·이라니안 석유회사(AIOC)’였다. 2차대전 후 제3세계에서 민족주의가 고양되는 가운데 이란에서도 석유산업을 되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런 국민적인 감정을 타고 석유산업을 국유화하는데 앞장선 이가 무사데크다. 그는 영국은 물론 소련과도 일정한 거리를 둔 리버럴한 성향의 노(老) 정치가였다. 1951년 3월, 석유산업 국유화 법안이 상·하 양원에서 만장일치로 가결되자...
육군사관학교 창설부터 현재까지의 빛과 그림자
↑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이 행진하는 모습 (출처 육군사관학교 홈페이지) by 김지지 국군 창설 후 첫 장교 배출한 곳은 군사영어학교 대한민국 국군은 1945년 11월 13일 미 군정이 공포한 군정법령 제28호에 따라 미 군정청 내에 설치된 ‘국방사령부’에 뿌리를 두고 있다. 국방사령부는 군 조직을 통괄하는 군사국과 경찰 조직을 관할하는 경무국을 두 축으로 삼아 해방공간의 무질서를 바로잡았다. 미 군정은 국방사령부 설치 후 바로 군대를 창설하려 했으나...
삼별초, 대몽항전 위해 전라도 진도 도착
고려 고종 18년(1231년), 몽고가 고려에 침입했다. 최우의 무신정권은 몽고가 수전(水戰)에 약한 점을 염두에 두고 수도를 강화도로 옮겨 항전 의지를 불태웠다. 이후 몽고가 개경 환도를 요구하며 침략과 철수를 반복하던 중 최씨 무인 정권이 무너졌다. 고려 고종은 1259년 개경 환도를 약속하고 태자 전을 원나라에 입조케 함으로써 고려와 원나라의 무력 충돌도 29년만에 막을 내렸다. 태자가 고려를 떠난 2개월 뒤 고종이 갑자기 죽어 태자가 원종으로 즉위했으나 실권은 여전히...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1976년 8월 18일 오전 10시45분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유엔군측 제3초소 앞에서 한국인 노무자 5명이 미루나무 가지를 치고 있었다. 현장에는 미군 장교 2명과 사병 4명, 한국군 장교 1명과 사병 4명 등 모두 11명의 유엔군 장병들이 이들을 호위하고 있었다. 이때 2명의 북한군 장교와 10여 명의 북한군이 다가와 “나뭇가지를 치지말라”며 생트집을 잡았지만 여름만 되면 무성한 잎이 관측소 시야를 가로막아온 터라 미군 장교는 이를 무시하고 작업을 강행했다. 그러자 곧...
중국 천안문광장서 홍위병 100만 명 집회
1966년 8월 18일, ‘무산계급 문화대혁명 경축 군중대회’가 열리고 있는 중국 베이징 천안문광장. 인민복 차림에 붉은 완장을 한 100만 명 학생들의 함성이 광장을 뒤흔들었다. 단상에는 마오쩌둥이 자리하고 학생들의 표정에는 흥분으로 가득했다. 소조(小組)로만 활동해 오던 홍위병들의 첫 대규모 세 과시였고 중국 전역을 광란과 파국으로 몰고간 문화대혁명의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3개월 전 칭화대 부속중에서 발원한 홍위병은 이후 중국 현대사를 파괴한 상징어였고 구타와 살인을...
장준하 의문의 실족사
장준하의 57년 삶은 한국 현대사의 격랑 속에서도 불의와 정면으로 맞서 싸운 참지식인의 전범이었다. 일본 유학시절이던 1944년 학도병으로 징집돼 관동군에 배속됐으나 그해 7월 김준엽 등과 함께 부대를 탈출, 7개월 동안 장장6000리(2400㎞)나 되는 중국 대륙을 횡단하며 중칭(重慶)의 광복군 부대에 합류하는 초인적인 모습을 보였고, 중국에서는 미 전략첩보부대(OSS)의 특수훈련을 받으며 국내잠입을 기다리다 일본의 패망으로 소망을 접어야 하는 안타까운 순간을 맞기도 했다....
히틀러의 최측근 루돌프 헤스 옥중 자살
루돌프 헤스는 1923년 11월의 맥주홀 폭동사건으로 수감돼 그곳에서 히틀러의 ‘나의 투쟁’을 받아적으며 히틀러의 최측근이 된다. 헤스는 히틀러를 구원의 신으로 믿고 열렬히 따랐다. 그는 검소하고 조용한 사람이었다. 1933년 부총통으로 임명돼 서열 2위로 부상했으나 히틀러가 1930년대 말부터 외교와 군사문제에 몰두하고 경쟁자들이 그를 견제하면서 점차 영향력이 약화되었다. 그 즈음인 1941년 5월 10일 밤10시, 헤스가 낙하산을 타고 스코틀랜드 상공에서 단신으로...
최규하 대통령, 대통령직 사임 발표
1980년 4월 14일 오후5시, “공석 중인 중앙정보부장에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서리로 임명됐다”는 뉴스특보가 흘러나왔다. 5개월 전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장 자격으로 한 차례 얼굴을 내비친 적이 있긴 하지만 여전히 전두환은 낯선 인물이었다. 그러나 보안사령관의 중정 부장 겸직이 신군부 정권 장악의 분명한 신호탄이라는 것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공개적인 그의 등장은 1980년대 한국 정치의 행로를 결정지은 중대 사건이었다. 전두환을 정점으로 한 신군부 5인방이 정권...
‘록 음악의 전설’ 엘비스 프레슬리 사망
갓 21세가 된 엘비스 프레슬리에게 1956년은 최고의 해였다. 2년 전 데뷔해 미국 대중음악계에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킨 엘비스는 1956년 1월 앨범 ‘하트브레이크 호텔’을 발매하면서 독주 채비를 갖춰갔다. “록의 역사를 시작했다”는 찬사를 받았던 이 곡은 4월부터 8주 연속 인기차트 1위에 올라 ‘하운드 독’ ‘러브 미 텐더’의 인기까지 견인하며 1956년을 명실상부한 ‘엘비스의 해’로 만들었다. 빙 크로스비나 프랭크 시내트라 등의 감미로운 음악이 오랫동안 지배하던...
[美 북동부의 뉴잉글랜드 6개주를 가다②] 뉴욕은 뉴잉글랜드로 가려면 어차피 거쳐 가는 도시여서 무작정 상경식으로 돌아다녀
↑ 로우어 맨해튼에서 남쪽으로 바라본 미드타운 맨해튼 (출처 위키피디아) by 김정일 前 금융인·뭐라도학교 교장, 現 소나무 농사꾼 ■뉴욕 뉴욕 뉴욕 ▲뉴욕 입성 드디어 장장 15시간의 비행 끝에 뉴욕 라과디아 공항에 발을 디뎠다. 이제부터 나는 부시맨이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이 낯설고 모르는 것 투성이므로 부시맨처럼 맨땅에 헤딩하며 스스로 하나하나 깨달아가며 지식을 축적하고 생존해야 한다. 공항 통관을 마치니 밤10시가 되었다. 먼저 내가 오늘밤...
이란 팔레비 쿠데타
1908년 이란에서 석유가 발견된 이래, 원유의 생산·정제·판매를 독점한 것은 영국 자본인 ‘앵글로·이라니안 석유회사(AIOC)’였다. 2차대전 후 제3세계에서 민족주의가 고양되는 가운데 이란에서도 석유산업을 되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런 국민적인 감정을 타고 석유산업을 국유화하는데 앞장선 이가 무사데크다. 그는 영국은 물론 소련과도 일정한 거리를 둔 리버럴한 성향의 노(老) 정치가였다. 1951년 3월, 석유산업 국유화 법안이 상·하 양원에서 만장일치로 가결되자...
육군사관학교 창설부터 현재까지의 빛과 그림자
↑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이 행진하는 모습 (출처 육군사관학교 홈페이지) by 김지지 국군 창설 후 첫 장교 배출한 곳은 군사영어학교 대한민국 국군은 1945년 11월 13일 미 군정이 공포한 군정법령 제28호에 따라 미 군정청 내에 설치된 ‘국방사령부’에 뿌리를 두고 있다. 국방사령부는 군 조직을 통괄하는 군사국과 경찰 조직을 관할하는 경무국을 두 축으로 삼아 해방공간의 무질서를 바로잡았다. 미 군정은 국방사령부 설치 후 바로 군대를 창설하려 했으나...
삼별초, 대몽항전 위해 전라도 진도 도착
고려 고종 18년(1231년), 몽고가 고려에 침입했다. 최우의 무신정권은 몽고가 수전(水戰)에 약한 점을 염두에 두고 수도를 강화도로 옮겨 항전 의지를 불태웠다. 이후 몽고가 개경 환도를 요구하며 침략과 철수를 반복하던 중 최씨 무인 정권이 무너졌다. 고려 고종은 1259년 개경 환도를 약속하고 태자 전을 원나라에 입조케 함으로써 고려와 원나라의 무력 충돌도 29년만에 막을 내렸다. 태자가 고려를 떠난 2개월 뒤 고종이 갑자기 죽어 태자가 원종으로 즉위했으나 실권은 여전히...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1976년 8월 18일 오전 10시45분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유엔군측 제3초소 앞에서 한국인 노무자 5명이 미루나무 가지를 치고 있었다. 현장에는 미군 장교 2명과 사병 4명, 한국군 장교 1명과 사병 4명 등 모두 11명의 유엔군 장병들이 이들을 호위하고 있었다. 이때 2명의 북한군 장교와 10여 명의 북한군이 다가와 “나뭇가지를 치지말라”며 생트집을 잡았지만 여름만 되면 무성한 잎이 관측소 시야를 가로막아온 터라 미군 장교는 이를 무시하고 작업을 강행했다. 그러자 곧...
중국 천안문광장서 홍위병 100만 명 집회
1966년 8월 18일, ‘무산계급 문화대혁명 경축 군중대회’가 열리고 있는 중국 베이징 천안문광장. 인민복 차림에 붉은 완장을 한 100만 명 학생들의 함성이 광장을 뒤흔들었다. 단상에는 마오쩌둥이 자리하고 학생들의 표정에는 흥분으로 가득했다. 소조(小組)로만 활동해 오던 홍위병들의 첫 대규모 세 과시였고 중국 전역을 광란과 파국으로 몰고간 문화대혁명의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3개월 전 칭화대 부속중에서 발원한 홍위병은 이후 중국 현대사를 파괴한 상징어였고 구타와 살인을...
장준하 의문의 실족사
장준하의 57년 삶은 한국 현대사의 격랑 속에서도 불의와 정면으로 맞서 싸운 참지식인의 전범이었다. 일본 유학시절이던 1944년 학도병으로 징집돼 관동군에 배속됐으나 그해 7월 김준엽 등과 함께 부대를 탈출, 7개월 동안 장장6000리(2400㎞)나 되는 중국 대륙을 횡단하며 중칭(重慶)의 광복군 부대에 합류하는 초인적인 모습을 보였고, 중국에서는 미 전략첩보부대(OSS)의 특수훈련을 받으며 국내잠입을 기다리다 일본의 패망으로 소망을 접어야 하는 안타까운 순간을 맞기도 했다....
히틀러의 최측근 루돌프 헤스 옥중 자살
루돌프 헤스는 1923년 11월의 맥주홀 폭동사건으로 수감돼 그곳에서 히틀러의 ‘나의 투쟁’을 받아적으며 히틀러의 최측근이 된다. 헤스는 히틀러를 구원의 신으로 믿고 열렬히 따랐다. 그는 검소하고 조용한 사람이었다. 1933년 부총통으로 임명돼 서열 2위로 부상했으나 히틀러가 1930년대 말부터 외교와 군사문제에 몰두하고 경쟁자들이 그를 견제하면서 점차 영향력이 약화되었다. 그 즈음인 1941년 5월 10일 밤10시, 헤스가 낙하산을 타고 스코틀랜드 상공에서 단신으로...
최규하 대통령, 대통령직 사임 발표
1980년 4월 14일 오후5시, “공석 중인 중앙정보부장에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서리로 임명됐다”는 뉴스특보가 흘러나왔다. 5개월 전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장 자격으로 한 차례 얼굴을 내비친 적이 있긴 하지만 여전히 전두환은 낯선 인물이었다. 그러나 보안사령관의 중정 부장 겸직이 신군부 정권 장악의 분명한 신호탄이라는 것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공개적인 그의 등장은 1980년대 한국 정치의 행로를 결정지은 중대 사건이었다. 전두환을 정점으로 한 신군부 5인방이 정권...
‘록 음악의 전설’ 엘비스 프레슬리 사망
갓 21세가 된 엘비스 프레슬리에게 1956년은 최고의 해였다. 2년 전 데뷔해 미국 대중음악계에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킨 엘비스는 1956년 1월 앨범 ‘하트브레이크 호텔’을 발매하면서 독주 채비를 갖춰갔다. “록의 역사를 시작했다”는 찬사를 받았던 이 곡은 4월부터 8주 연속 인기차트 1위에 올라 ‘하운드 독’ ‘러브 미 텐더’의 인기까지 견인하며 1956년을 명실상부한 ‘엘비스의 해’로 만들었다. 빙 크로스비나 프랭크 시내트라 등의 감미로운 음악이 오랫동안 지배하던...
[美 북동부의 뉴잉글랜드 6개주를 가다②] 뉴욕은 뉴잉글랜드로 가려면 어차피 거쳐 가는 도시여서 무작정 상경식으로 돌아다녀
↑ 로우어 맨해튼에서 남쪽으로 바라본 미드타운 맨해튼 (출처 위키피디아) by 김정일 前 금융인·뭐라도학교 교장, 現 소나무 농사꾼 ■뉴욕 뉴욕 뉴욕 ▲뉴욕 입성 드디어 장장 15시간의 비행 끝에 뉴욕 라과디아 공항에 발을 디뎠다. 이제부터 나는 부시맨이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이 낯설고 모르는 것 투성이므로 부시맨처럼 맨땅에 헤딩하며 스스로 하나하나 깨달아가며 지식을 축적하고 생존해야 한다. 공항 통관을 마치니 밤10시가 되었다. 먼저 내가 오늘밤...
이란 팔레비 쿠데타
1908년 이란에서 석유가 발견된 이래, 원유의 생산·정제·판매를 독점한 것은 영국 자본인 ‘앵글로·이라니안 석유회사(AIOC)’였다. 2차대전 후 제3세계에서 민족주의가 고양되는 가운데 이란에서도 석유산업을 되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런 국민적인 감정을 타고 석유산업을 국유화하는데 앞장선 이가 무사데크다. 그는 영국은 물론 소련과도 일정한 거리를 둔 리버럴한 성향의 노(老) 정치가였다. 1951년 3월, 석유산업 국유화 법안이 상·하 양원에서 만장일치로 가결되자...
육군사관학교 창설부터 현재까지의 빛과 그림자
↑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이 행진하는 모습 (출처 육군사관학교 홈페이지) by 김지지 국군 창설 후 첫 장교 배출한 곳은 군사영어학교 대한민국 국군은 1945년 11월 13일 미 군정이 공포한 군정법령 제28호에 따라 미 군정청 내에 설치된 ‘국방사령부’에 뿌리를 두고 있다. 국방사령부는 군 조직을 통괄하는 군사국과 경찰 조직을 관할하는 경무국을 두 축으로 삼아 해방공간의 무질서를 바로잡았다. 미 군정은 국방사령부 설치 후 바로 군대를 창설하려 했으나...
삼별초, 대몽항전 위해 전라도 진도 도착
고려 고종 18년(1231년), 몽고가 고려에 침입했다. 최우의 무신정권은 몽고가 수전(水戰)에 약한 점을 염두에 두고 수도를 강화도로 옮겨 항전 의지를 불태웠다. 이후 몽고가 개경 환도를 요구하며 침략과 철수를 반복하던 중 최씨 무인 정권이 무너졌다. 고려 고종은 1259년 개경 환도를 약속하고 태자 전을 원나라에 입조케 함으로써 고려와 원나라의 무력 충돌도 29년만에 막을 내렸다. 태자가 고려를 떠난 2개월 뒤 고종이 갑자기 죽어 태자가 원종으로 즉위했으나 실권은 여전히...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1976년 8월 18일 오전 10시45분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유엔군측 제3초소 앞에서 한국인 노무자 5명이 미루나무 가지를 치고 있었다. 현장에는 미군 장교 2명과 사병 4명, 한국군 장교 1명과 사병 4명 등 모두 11명의 유엔군 장병들이 이들을 호위하고 있었다. 이때 2명의 북한군 장교와 10여 명의 북한군이 다가와 “나뭇가지를 치지말라”며 생트집을 잡았지만 여름만 되면 무성한 잎이 관측소 시야를 가로막아온 터라 미군 장교는 이를 무시하고 작업을 강행했다. 그러자 곧...
중국 천안문광장서 홍위병 100만 명 집회
1966년 8월 18일, ‘무산계급 문화대혁명 경축 군중대회’가 열리고 있는 중국 베이징 천안문광장. 인민복 차림에 붉은 완장을 한 100만 명 학생들의 함성이 광장을 뒤흔들었다. 단상에는 마오쩌둥이 자리하고 학생들의 표정에는 흥분으로 가득했다. 소조(小組)로만 활동해 오던 홍위병들의 첫 대규모 세 과시였고 중국 전역을 광란과 파국으로 몰고간 문화대혁명의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3개월 전 칭화대 부속중에서 발원한 홍위병은 이후 중국 현대사를 파괴한 상징어였고 구타와 살인을...
장준하 의문의 실족사
장준하의 57년 삶은 한국 현대사의 격랑 속에서도 불의와 정면으로 맞서 싸운 참지식인의 전범이었다. 일본 유학시절이던 1944년 학도병으로 징집돼 관동군에 배속됐으나 그해 7월 김준엽 등과 함께 부대를 탈출, 7개월 동안 장장6000리(2400㎞)나 되는 중국 대륙을 횡단하며 중칭(重慶)의 광복군 부대에 합류하는 초인적인 모습을 보였고, 중국에서는 미 전략첩보부대(OSS)의 특수훈련을 받으며 국내잠입을 기다리다 일본의 패망으로 소망을 접어야 하는 안타까운 순간을 맞기도 했다....
히틀러의 최측근 루돌프 헤스 옥중 자살
루돌프 헤스는 1923년 11월의 맥주홀 폭동사건으로 수감돼 그곳에서 히틀러의 ‘나의 투쟁’을 받아적으며 히틀러의 최측근이 된다. 헤스는 히틀러를 구원의 신으로 믿고 열렬히 따랐다. 그는 검소하고 조용한 사람이었다. 1933년 부총통으로 임명돼 서열 2위로 부상했으나 히틀러가 1930년대 말부터 외교와 군사문제에 몰두하고 경쟁자들이 그를 견제하면서 점차 영향력이 약화되었다. 그 즈음인 1941년 5월 10일 밤10시, 헤스가 낙하산을 타고 스코틀랜드 상공에서 단신으로...
최규하 대통령, 대통령직 사임 발표
1980년 4월 14일 오후5시, “공석 중인 중앙정보부장에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서리로 임명됐다”는 뉴스특보가 흘러나왔다. 5개월 전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장 자격으로 한 차례 얼굴을 내비친 적이 있긴 하지만 여전히 전두환은 낯선 인물이었다. 그러나 보안사령관의 중정 부장 겸직이 신군부 정권 장악의 분명한 신호탄이라는 것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공개적인 그의 등장은 1980년대 한국 정치의 행로를 결정지은 중대 사건이었다. 전두환을 정점으로 한 신군부 5인방이 정권...
‘록 음악의 전설’ 엘비스 프레슬리 사망
갓 21세가 된 엘비스 프레슬리에게 1956년은 최고의 해였다. 2년 전 데뷔해 미국 대중음악계에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킨 엘비스는 1956년 1월 앨범 ‘하트브레이크 호텔’을 발매하면서 독주 채비를 갖춰갔다. “록의 역사를 시작했다”는 찬사를 받았던 이 곡은 4월부터 8주 연속 인기차트 1위에 올라 ‘하운드 독’ ‘러브 미 텐더’의 인기까지 견인하며 1956년을 명실상부한 ‘엘비스의 해’로 만들었다. 빙 크로스비나 프랭크 시내트라 등의 감미로운 음악이 오랫동안 지배하던...
[美 북동부의 뉴잉글랜드 6개주를 가다②] 뉴욕은 뉴잉글랜드로 가려면 어차피 거쳐 가는 도시여서 무작정 상경식으로 돌아다녀
↑ 로우어 맨해튼에서 남쪽으로 바라본 미드타운 맨해튼 (출처 위키피디아) by 김정일 前 금융인·뭐라도학교 교장, 現 소나무 농사꾼 ■뉴욕 뉴욕 뉴욕 ▲뉴욕 입성 드디어 장장 15시간의 비행 끝에 뉴욕 라과디아 공항에 발을 디뎠다. 이제부터 나는 부시맨이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이 낯설고 모르는 것 투성이므로 부시맨처럼 맨땅에 헤딩하며 스스로 하나하나 깨달아가며 지식을 축적하고 생존해야 한다. 공항 통관을 마치니 밤10시가 되었다. 먼저 내가 오늘밤...
이란 팔레비 쿠데타
1908년 이란에서 석유가 발견된 이래, 원유의 생산·정제·판매를 독점한 것은 영국 자본인 ‘앵글로·이라니안 석유회사(AIOC)’였다. 2차대전 후 제3세계에서 민족주의가 고양되는 가운데 이란에서도 석유산업을 되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런 국민적인 감정을 타고 석유산업을 국유화하는데 앞장선 이가 무사데크다. 그는 영국은 물론 소련과도 일정한 거리를 둔 리버럴한 성향의 노(老) 정치가였다. 1951년 3월, 석유산업 국유화 법안이 상·하 양원에서 만장일치로 가결되자...
육군사관학교 창설부터 현재까지의 빛과 그림자
↑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이 행진하는 모습 (출처 육군사관학교 홈페이지) by 김지지 국군 창설 후 첫 장교 배출한 곳은 군사영어학교 대한민국 국군은 1945년 11월 13일 미 군정이 공포한 군정법령 제28호에 따라 미 군정청 내에 설치된 ‘국방사령부’에 뿌리를 두고 있다. 국방사령부는 군 조직을 통괄하는 군사국과 경찰 조직을 관할하는 경무국을 두 축으로 삼아 해방공간의 무질서를 바로잡았다. 미 군정은 국방사령부 설치 후 바로 군대를 창설하려 했으나...
삼별초, 대몽항전 위해 전라도 진도 도착
고려 고종 18년(1231년), 몽고가 고려에 침입했다. 최우의 무신정권은 몽고가 수전(水戰)에 약한 점을 염두에 두고 수도를 강화도로 옮겨 항전 의지를 불태웠다. 이후 몽고가 개경 환도를 요구하며 침략과 철수를 반복하던 중 최씨 무인 정권이 무너졌다. 고려 고종은 1259년 개경 환도를 약속하고 태자 전을 원나라에 입조케 함으로써 고려와 원나라의 무력 충돌도 29년만에 막을 내렸다. 태자가 고려를 떠난 2개월 뒤 고종이 갑자기 죽어 태자가 원종으로 즉위했으나 실권은 여전히...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1976년 8월 18일 오전 10시45분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유엔군측 제3초소 앞에서 한국인 노무자 5명이 미루나무 가지를 치고 있었다. 현장에는 미군 장교 2명과 사병 4명, 한국군 장교 1명과 사병 4명 등 모두 11명의 유엔군 장병들이 이들을 호위하고 있었다. 이때 2명의 북한군 장교와 10여 명의 북한군이 다가와 “나뭇가지를 치지말라”며 생트집을 잡았지만 여름만 되면 무성한 잎이 관측소 시야를 가로막아온 터라 미군 장교는 이를 무시하고 작업을 강행했다. 그러자 곧...
중국 천안문광장서 홍위병 100만 명 집회
1966년 8월 18일, ‘무산계급 문화대혁명 경축 군중대회’가 열리고 있는 중국 베이징 천안문광장. 인민복 차림에 붉은 완장을 한 100만 명 학생들의 함성이 광장을 뒤흔들었다. 단상에는 마오쩌둥이 자리하고 학생들의 표정에는 흥분으로 가득했다. 소조(小組)로만 활동해 오던 홍위병들의 첫 대규모 세 과시였고 중국 전역을 광란과 파국으로 몰고간 문화대혁명의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3개월 전 칭화대 부속중에서 발원한 홍위병은 이후 중국 현대사를 파괴한 상징어였고 구타와 살인을...
장준하 의문의 실족사
장준하의 57년 삶은 한국 현대사의 격랑 속에서도 불의와 정면으로 맞서 싸운 참지식인의 전범이었다. 일본 유학시절이던 1944년 학도병으로 징집돼 관동군에 배속됐으나 그해 7월 김준엽 등과 함께 부대를 탈출, 7개월 동안 장장6000리(2400㎞)나 되는 중국 대륙을 횡단하며 중칭(重慶)의 광복군 부대에 합류하는 초인적인 모습을 보였고, 중국에서는 미 전략첩보부대(OSS)의 특수훈련을 받으며 국내잠입을 기다리다 일본의 패망으로 소망을 접어야 하는 안타까운 순간을 맞기도 했다....
히틀러의 최측근 루돌프 헤스 옥중 자살
루돌프 헤스는 1923년 11월의 맥주홀 폭동사건으로 수감돼 그곳에서 히틀러의 ‘나의 투쟁’을 받아적으며 히틀러의 최측근이 된다. 헤스는 히틀러를 구원의 신으로 믿고 열렬히 따랐다. 그는 검소하고 조용한 사람이었다. 1933년 부총통으로 임명돼 서열 2위로 부상했으나 히틀러가 1930년대 말부터 외교와 군사문제에 몰두하고 경쟁자들이 그를 견제하면서 점차 영향력이 약화되었다. 그 즈음인 1941년 5월 10일 밤10시, 헤스가 낙하산을 타고 스코틀랜드 상공에서 단신으로...
최규하 대통령, 대통령직 사임 발표
1980년 4월 14일 오후5시, “공석 중인 중앙정보부장에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서리로 임명됐다”는 뉴스특보가 흘러나왔다. 5개월 전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장 자격으로 한 차례 얼굴을 내비친 적이 있긴 하지만 여전히 전두환은 낯선 인물이었다. 그러나 보안사령관의 중정 부장 겸직이 신군부 정권 장악의 분명한 신호탄이라는 것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공개적인 그의 등장은 1980년대 한국 정치의 행로를 결정지은 중대 사건이었다. 전두환을 정점으로 한 신군부 5인방이 정권...
‘록 음악의 전설’ 엘비스 프레슬리 사망
갓 21세가 된 엘비스 프레슬리에게 1956년은 최고의 해였다. 2년 전 데뷔해 미국 대중음악계에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킨 엘비스는 1956년 1월 앨범 ‘하트브레이크 호텔’을 발매하면서 독주 채비를 갖춰갔다. “록의 역사를 시작했다”는 찬사를 받았던 이 곡은 4월부터 8주 연속 인기차트 1위에 올라 ‘하운드 독’ ‘러브 미 텐더’의 인기까지 견인하며 1956년을 명실상부한 ‘엘비스의 해’로 만들었다. 빙 크로스비나 프랭크 시내트라 등의 감미로운 음악이 오랫동안 지배하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