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The Blog Module
The blog modules makes it easy to create a blog post feed in two different layouts.
‘샹송의 여왕’ 에디트 피아프 사망
병원으로 가는 도중 길가에서 태어난 것 부터가 굴곡진 삶의 시작이었다. 3류 가수였던 어머니는 그를 낳은지 두달만에 사라졌고 무능했던 곡예사 아버지는 그를 외할머니에게 맡기고 어디론가 떠나버렸다. 세 살때 걸린 각막염으로 몇 년 동안은 앞이 보이지도 않았고, 10대 때 낳은 딸은 두 살에 죽었다. 도대체 끝을 알 수 없는 불행과 절망의 연속이었다. 술주정뱅이 외할머니와 매음굴을 운영하는 친할머니 집을 전전하며 노래 몇 곡에 사람들이 던져주는 동전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던...
카톨릭,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회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가톨릭을 가장 크게 변화시켰다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중심에는 교황 요한 23세가 있었다.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추지 못하면 가톨릭의 미래가 결코 밝지 않다는 게 평소 교황이 품어온 생각이었다. 1958년, 77세의 노쇠한 나이로 ‘신의 대리인’이 된 요한 23세는 곧 가톨릭 최고회의 ‘공의회(公議會)’를 소집했다. 변화는 곧 교회의 신성한 전통을 위협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측근들의 만류가 있었지만 교황은 마치 ‘변화’와 ‘쇄신’이 그에게 주어진 소명인 양...
非백인 최초 올림픽 ‘도쿄올림픽’ 개막
1896년 첫 대회 이래 올림픽은 백인들의 독무대였다. 그들은 유색인 국가에서 올림픽이 치러지는 것을 한 번도 허락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유색인 국가에 올림픽을 치를 기회가 한번 주어졌으나 그 국가가 중일전쟁으로 개최를 반납하는 바람에 무산된 적이 있다. 결과적으로는 2차대전 발발로 그 올림픽(1940년)은 치러지지 않았다. 그 유색인 국가에 기회가 다시 찾아온 것은 1964년이었다. 10월 10일, 제18회 올림픽이 도쿄에서 개막되어 94개국 7500여 명의 선수가 15일...
중국 신해혁명 발발
20세기 들어 청조의 몰락은 거역할 수 없는 대세였다. 그저 연명할 따름이었다. 1911년 10월 10일, 양쯔강 중류지역에 위치한 우창(武昌)에서 혁명파 군인들이 무장봉기를 일으켰다. ‘신해혁명’의 불길이 솟아오른 것이다. 이튿날 혁명군이 우창·한커우(漢口)·한양(漢陽)의 우한(武漢) 3진까지 장악, 혁명의 봉화를 지피자 중국 전역은 혁명의 소용돌이로 빠져들었다. 청조는 1개월 만에 12개 성이 혁명 진영에 가담하자 베이징 군벌 위안스카이(원세개)를 총리로 임명, 진압에...
신금단 부녀 14년만에 도쿄에서 눈물의 상봉
“아버지…” “금단아…” 1964년 10월 9일 오후 4시55분. 남북으로 헤어져 살았던 신금단 부녀가 도쿄의 하늘 아래서 만나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 신문주가 1950년 12월에 함남 이원에서 단신으로 월남하고 14년 만이었다. 아버지가 없는 동안 금단은 세계적인 육상선수로 성장했다. 부녀를 연결해 준 것도 육상대회였다. 1년 전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제1회 가네포(신생국 경기대회)에서 금단이 육상 400m와 800m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워 그의 얼굴이 언론에 알려진...
‘영원한 혁명 전사’ 체 게바라 볼리비아에서 게릴라전 펼치다가 피살
체 게바라에게 쿠바 혁명 후 6년 간은 짧지만 행복했던 시기였다. 그러나 그는 미련없이 쿠바의 2인자 자리를 떨쳐버리고 혁명 전사의 길로 다시 뛰어들었다. 10개월 간 아프리카 콩고를 혁명무대로 삼았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현지의 혁명연합 조직이 와해된 것이 주된 이유였지만 한 전문가의 지적처럼 “혁명이 그를 필요로 하기보다 그가 혁명을 필요로 한 것”이 실패의 원인이었다. 1966년 10월에는 남미의 볼리비아를 찾았다. 미국의 힘을 분산시키기 위해 제2·제3의 베트남전쟁을...
제1회 경·평(京·平) 축구전 개막
조선일보는 1929년 들어 특히 스포츠 사업에 전력을 다했다. 침체하고 있는 민족 정신을 스포츠로 되살려보자는 취지였다. 전(全)조선여자배구대회, 전조선여자농구대회, 전조선씨름대회 등이 그 해에 처음 열린 대회들이다. 그 중 경성과 평양 간에 벌어진 ‘경·평(京·平) 축구대항전’은 단연 백미였다. 1929년 10월 8일, 제1회 대회 첫 경기가 7000여 명의 관중이 운집한 가운데 경성 휘문고보 운동장에 열렸다. 첫날은 1대1 무승부였으나 9일·10일 경기에서 평양팀의...
美 시카고 대화재
1833년 겨우 150명에 불과했던 인구가 1870년 무렵에는 30만 명으로 급증할 만큼 시카고는 빠른 성장세를 보였다. 그러던 어느날 40년 동안 일궈온 모든 것들을 하루아침에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린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1871년 10월 8일 일요일 저녁 9시 발생한 불이 다음날 10시 30분까지 계속되면서 도시를 삼켜버린 것이다. 그것은 화재가 아니라 재앙이었고 저주였다. 10㎞에 달하는 시가지 전역이 잿더미로 변했다. 8만 여채의 건물이 불에 타고 10만 여명의...
강원도 홍천 공작산 종주… 9시간이나 걸린 힘든 산행인데도 기꺼이 참아준 아내에게 말했다. “고맙고 미안하오!”
↑ 공작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풍경 by 김지지 공작새 한 마리가 날개 벌려 비상하는 모습 같다고 해서 공작산 이름 유래 공작산(887m)은 강원도 홍천에 있는 100대 명산 중 하나다. 인근의 다른 고산들을 제치고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유서도 깊다. 뻗어내린 능선이 공작새 한 마리가 날개를 벌려 비상하는 모습같다고 해서 공작(孔雀)이란 이름이 붙었다. 산행은 크게 정상 중심의 동쪽 코스와 약수봉과 수타사 방면의 서쪽 코스로...
중국 홍위병들의 집단적 광기는 중국 전역을 광란으로 몰고간 전주곡… 중국 사회 집단 최면상태로 빠져들고 속절없이 무너져내려
↑ 홍위병들이 씌운 얼간이 모자를 뒤집어쓰고 모욕을 당하고 있는 관료들 by 김지지 1966년 8월의 군중대회는 중국 전역을 휩쓸고 갈 광기의 신호탄 1966년 8월 18일 아침, 인민복 차림에 붉은 완장을 찬 늙은 영웅 모택동(1893~1976)이 천안문 누각 위로 올라가는 순간, 천안문광장을 가득 메운 100만 명의 젊은이가 모택동 찬양가 ‘동방홍(東方紅)’을 큰 소리로 부르며 열광했다. 중국 전역을 휩쓸고 갈 광기의 함성이자 신호탄이었다. 그날...
‘샹송의 여왕’ 에디트 피아프 사망
병원으로 가는 도중 길가에서 태어난 것 부터가 굴곡진 삶의 시작이었다. 3류 가수였던 어머니는 그를 낳은지 두달만에 사라졌고 무능했던 곡예사 아버지는 그를 외할머니에게 맡기고 어디론가 떠나버렸다. 세 살때 걸린 각막염으로 몇 년 동안은 앞이 보이지도 않았고, 10대 때 낳은 딸은 두 살에 죽었다. 도대체 끝을 알 수 없는 불행과 절망의 연속이었다. 술주정뱅이 외할머니와 매음굴을 운영하는 친할머니 집을 전전하며 노래 몇 곡에 사람들이 던져주는 동전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던...
카톨릭,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회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가톨릭을 가장 크게 변화시켰다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중심에는 교황 요한 23세가 있었다.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추지 못하면 가톨릭의 미래가 결코 밝지 않다는 게 평소 교황이 품어온 생각이었다. 1958년, 77세의 노쇠한 나이로 ‘신의 대리인’이 된 요한 23세는 곧 가톨릭 최고회의 ‘공의회(公議會)’를 소집했다. 변화는 곧 교회의 신성한 전통을 위협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측근들의 만류가 있었지만 교황은 마치 ‘변화’와 ‘쇄신’이 그에게 주어진 소명인 양...
非백인 최초 올림픽 ‘도쿄올림픽’ 개막
1896년 첫 대회 이래 올림픽은 백인들의 독무대였다. 그들은 유색인 국가에서 올림픽이 치러지는 것을 한 번도 허락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유색인 국가에 올림픽을 치를 기회가 한번 주어졌으나 그 국가가 중일전쟁으로 개최를 반납하는 바람에 무산된 적이 있다. 결과적으로는 2차대전 발발로 그 올림픽(1940년)은 치러지지 않았다. 그 유색인 국가에 기회가 다시 찾아온 것은 1964년이었다. 10월 10일, 제18회 올림픽이 도쿄에서 개막되어 94개국 7500여 명의 선수가 15일...
중국 신해혁명 발발
20세기 들어 청조의 몰락은 거역할 수 없는 대세였다. 그저 연명할 따름이었다. 1911년 10월 10일, 양쯔강 중류지역에 위치한 우창(武昌)에서 혁명파 군인들이 무장봉기를 일으켰다. ‘신해혁명’의 불길이 솟아오른 것이다. 이튿날 혁명군이 우창·한커우(漢口)·한양(漢陽)의 우한(武漢) 3진까지 장악, 혁명의 봉화를 지피자 중국 전역은 혁명의 소용돌이로 빠져들었다. 청조는 1개월 만에 12개 성이 혁명 진영에 가담하자 베이징 군벌 위안스카이(원세개)를 총리로 임명, 진압에...
신금단 부녀 14년만에 도쿄에서 눈물의 상봉
“아버지…” “금단아…” 1964년 10월 9일 오후 4시55분. 남북으로 헤어져 살았던 신금단 부녀가 도쿄의 하늘 아래서 만나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 신문주가 1950년 12월에 함남 이원에서 단신으로 월남하고 14년 만이었다. 아버지가 없는 동안 금단은 세계적인 육상선수로 성장했다. 부녀를 연결해 준 것도 육상대회였다. 1년 전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제1회 가네포(신생국 경기대회)에서 금단이 육상 400m와 800m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워 그의 얼굴이 언론에 알려진...
‘영원한 혁명 전사’ 체 게바라 볼리비아에서 게릴라전 펼치다가 피살
체 게바라에게 쿠바 혁명 후 6년 간은 짧지만 행복했던 시기였다. 그러나 그는 미련없이 쿠바의 2인자 자리를 떨쳐버리고 혁명 전사의 길로 다시 뛰어들었다. 10개월 간 아프리카 콩고를 혁명무대로 삼았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현지의 혁명연합 조직이 와해된 것이 주된 이유였지만 한 전문가의 지적처럼 “혁명이 그를 필요로 하기보다 그가 혁명을 필요로 한 것”이 실패의 원인이었다. 1966년 10월에는 남미의 볼리비아를 찾았다. 미국의 힘을 분산시키기 위해 제2·제3의 베트남전쟁을...
제1회 경·평(京·平) 축구전 개막
조선일보는 1929년 들어 특히 스포츠 사업에 전력을 다했다. 침체하고 있는 민족 정신을 스포츠로 되살려보자는 취지였다. 전(全)조선여자배구대회, 전조선여자농구대회, 전조선씨름대회 등이 그 해에 처음 열린 대회들이다. 그 중 경성과 평양 간에 벌어진 ‘경·평(京·平) 축구대항전’은 단연 백미였다. 1929년 10월 8일, 제1회 대회 첫 경기가 7000여 명의 관중이 운집한 가운데 경성 휘문고보 운동장에 열렸다. 첫날은 1대1 무승부였으나 9일·10일 경기에서 평양팀의...
美 시카고 대화재
1833년 겨우 150명에 불과했던 인구가 1870년 무렵에는 30만 명으로 급증할 만큼 시카고는 빠른 성장세를 보였다. 그러던 어느날 40년 동안 일궈온 모든 것들을 하루아침에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린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1871년 10월 8일 일요일 저녁 9시 발생한 불이 다음날 10시 30분까지 계속되면서 도시를 삼켜버린 것이다. 그것은 화재가 아니라 재앙이었고 저주였다. 10㎞에 달하는 시가지 전역이 잿더미로 변했다. 8만 여채의 건물이 불에 타고 10만 여명의...
강원도 홍천 공작산 종주… 9시간이나 걸린 힘든 산행인데도 기꺼이 참아준 아내에게 말했다. “고맙고 미안하오!”
↑ 공작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풍경 by 김지지 공작새 한 마리가 날개 벌려 비상하는 모습 같다고 해서 공작산 이름 유래 공작산(887m)은 강원도 홍천에 있는 100대 명산 중 하나다. 인근의 다른 고산들을 제치고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유서도 깊다. 뻗어내린 능선이 공작새 한 마리가 날개를 벌려 비상하는 모습같다고 해서 공작(孔雀)이란 이름이 붙었다. 산행은 크게 정상 중심의 동쪽 코스와 약수봉과 수타사 방면의 서쪽 코스로...
중국 홍위병들의 집단적 광기는 중국 전역을 광란으로 몰고간 전주곡… 중국 사회 집단 최면상태로 빠져들고 속절없이 무너져내려
↑ 홍위병들이 씌운 얼간이 모자를 뒤집어쓰고 모욕을 당하고 있는 관료들 by 김지지 1966년 8월의 군중대회는 중국 전역을 휩쓸고 갈 광기의 신호탄 1966년 8월 18일 아침, 인민복 차림에 붉은 완장을 찬 늙은 영웅 모택동(1893~1976)이 천안문 누각 위로 올라가는 순간, 천안문광장을 가득 메운 100만 명의 젊은이가 모택동 찬양가 ‘동방홍(東方紅)’을 큰 소리로 부르며 열광했다. 중국 전역을 휩쓸고 갈 광기의 함성이자 신호탄이었다. 그날...
‘샹송의 여왕’ 에디트 피아프 사망
병원으로 가는 도중 길가에서 태어난 것 부터가 굴곡진 삶의 시작이었다. 3류 가수였던 어머니는 그를 낳은지 두달만에 사라졌고 무능했던 곡예사 아버지는 그를 외할머니에게 맡기고 어디론가 떠나버렸다. 세 살때 걸린 각막염으로 몇 년 동안은 앞이 보이지도 않았고, 10대 때 낳은 딸은 두 살에 죽었다. 도대체 끝을 알 수 없는 불행과 절망의 연속이었다. 술주정뱅이 외할머니와 매음굴을 운영하는 친할머니 집을 전전하며 노래 몇 곡에 사람들이 던져주는 동전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던...
카톨릭,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회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가톨릭을 가장 크게 변화시켰다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중심에는 교황 요한 23세가 있었다.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추지 못하면 가톨릭의 미래가 결코 밝지 않다는 게 평소 교황이 품어온 생각이었다. 1958년, 77세의 노쇠한 나이로 ‘신의 대리인’이 된 요한 23세는 곧 가톨릭 최고회의 ‘공의회(公議會)’를 소집했다. 변화는 곧 교회의 신성한 전통을 위협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측근들의 만류가 있었지만 교황은 마치 ‘변화’와 ‘쇄신’이 그에게 주어진 소명인 양...
非백인 최초 올림픽 ‘도쿄올림픽’ 개막
1896년 첫 대회 이래 올림픽은 백인들의 독무대였다. 그들은 유색인 국가에서 올림픽이 치러지는 것을 한 번도 허락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유색인 국가에 올림픽을 치를 기회가 한번 주어졌으나 그 국가가 중일전쟁으로 개최를 반납하는 바람에 무산된 적이 있다. 결과적으로는 2차대전 발발로 그 올림픽(1940년)은 치러지지 않았다. 그 유색인 국가에 기회가 다시 찾아온 것은 1964년이었다. 10월 10일, 제18회 올림픽이 도쿄에서 개막되어 94개국 7500여 명의 선수가 15일...
중국 신해혁명 발발
20세기 들어 청조의 몰락은 거역할 수 없는 대세였다. 그저 연명할 따름이었다. 1911년 10월 10일, 양쯔강 중류지역에 위치한 우창(武昌)에서 혁명파 군인들이 무장봉기를 일으켰다. ‘신해혁명’의 불길이 솟아오른 것이다. 이튿날 혁명군이 우창·한커우(漢口)·한양(漢陽)의 우한(武漢) 3진까지 장악, 혁명의 봉화를 지피자 중국 전역은 혁명의 소용돌이로 빠져들었다. 청조는 1개월 만에 12개 성이 혁명 진영에 가담하자 베이징 군벌 위안스카이(원세개)를 총리로 임명, 진압에...
신금단 부녀 14년만에 도쿄에서 눈물의 상봉
“아버지…” “금단아…” 1964년 10월 9일 오후 4시55분. 남북으로 헤어져 살았던 신금단 부녀가 도쿄의 하늘 아래서 만나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 신문주가 1950년 12월에 함남 이원에서 단신으로 월남하고 14년 만이었다. 아버지가 없는 동안 금단은 세계적인 육상선수로 성장했다. 부녀를 연결해 준 것도 육상대회였다. 1년 전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제1회 가네포(신생국 경기대회)에서 금단이 육상 400m와 800m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워 그의 얼굴이 언론에 알려진...
‘영원한 혁명 전사’ 체 게바라 볼리비아에서 게릴라전 펼치다가 피살
체 게바라에게 쿠바 혁명 후 6년 간은 짧지만 행복했던 시기였다. 그러나 그는 미련없이 쿠바의 2인자 자리를 떨쳐버리고 혁명 전사의 길로 다시 뛰어들었다. 10개월 간 아프리카 콩고를 혁명무대로 삼았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현지의 혁명연합 조직이 와해된 것이 주된 이유였지만 한 전문가의 지적처럼 “혁명이 그를 필요로 하기보다 그가 혁명을 필요로 한 것”이 실패의 원인이었다. 1966년 10월에는 남미의 볼리비아를 찾았다. 미국의 힘을 분산시키기 위해 제2·제3의 베트남전쟁을...
제1회 경·평(京·平) 축구전 개막
조선일보는 1929년 들어 특히 스포츠 사업에 전력을 다했다. 침체하고 있는 민족 정신을 스포츠로 되살려보자는 취지였다. 전(全)조선여자배구대회, 전조선여자농구대회, 전조선씨름대회 등이 그 해에 처음 열린 대회들이다. 그 중 경성과 평양 간에 벌어진 ‘경·평(京·平) 축구대항전’은 단연 백미였다. 1929년 10월 8일, 제1회 대회 첫 경기가 7000여 명의 관중이 운집한 가운데 경성 휘문고보 운동장에 열렸다. 첫날은 1대1 무승부였으나 9일·10일 경기에서 평양팀의...
美 시카고 대화재
1833년 겨우 150명에 불과했던 인구가 1870년 무렵에는 30만 명으로 급증할 만큼 시카고는 빠른 성장세를 보였다. 그러던 어느날 40년 동안 일궈온 모든 것들을 하루아침에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린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1871년 10월 8일 일요일 저녁 9시 발생한 불이 다음날 10시 30분까지 계속되면서 도시를 삼켜버린 것이다. 그것은 화재가 아니라 재앙이었고 저주였다. 10㎞에 달하는 시가지 전역이 잿더미로 변했다. 8만 여채의 건물이 불에 타고 10만 여명의...
강원도 홍천 공작산 종주… 9시간이나 걸린 힘든 산행인데도 기꺼이 참아준 아내에게 말했다. “고맙고 미안하오!”
↑ 공작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풍경 by 김지지 공작새 한 마리가 날개 벌려 비상하는 모습 같다고 해서 공작산 이름 유래 공작산(887m)은 강원도 홍천에 있는 100대 명산 중 하나다. 인근의 다른 고산들을 제치고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유서도 깊다. 뻗어내린 능선이 공작새 한 마리가 날개를 벌려 비상하는 모습같다고 해서 공작(孔雀)이란 이름이 붙었다. 산행은 크게 정상 중심의 동쪽 코스와 약수봉과 수타사 방면의 서쪽 코스로...
중국 홍위병들의 집단적 광기는 중국 전역을 광란으로 몰고간 전주곡… 중국 사회 집단 최면상태로 빠져들고 속절없이 무너져내려
↑ 홍위병들이 씌운 얼간이 모자를 뒤집어쓰고 모욕을 당하고 있는 관료들 by 김지지 1966년 8월의 군중대회는 중국 전역을 휩쓸고 갈 광기의 신호탄 1966년 8월 18일 아침, 인민복 차림에 붉은 완장을 찬 늙은 영웅 모택동(1893~1976)이 천안문 누각 위로 올라가는 순간, 천안문광장을 가득 메운 100만 명의 젊은이가 모택동 찬양가 ‘동방홍(東方紅)’을 큰 소리로 부르며 열광했다. 중국 전역을 휩쓸고 갈 광기의 함성이자 신호탄이었다. 그날...
‘샹송의 여왕’ 에디트 피아프 사망
병원으로 가는 도중 길가에서 태어난 것 부터가 굴곡진 삶의 시작이었다. 3류 가수였던 어머니는 그를 낳은지 두달만에 사라졌고 무능했던 곡예사 아버지는 그를 외할머니에게 맡기고 어디론가 떠나버렸다. 세 살때 걸린 각막염으로 몇 년 동안은 앞이 보이지도 않았고, 10대 때 낳은 딸은 두 살에 죽었다. 도대체 끝을 알 수 없는 불행과 절망의 연속이었다. 술주정뱅이 외할머니와 매음굴을 운영하는 친할머니 집을 전전하며 노래 몇 곡에 사람들이 던져주는 동전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던...
카톨릭,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회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가톨릭을 가장 크게 변화시켰다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중심에는 교황 요한 23세가 있었다.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추지 못하면 가톨릭의 미래가 결코 밝지 않다는 게 평소 교황이 품어온 생각이었다. 1958년, 77세의 노쇠한 나이로 ‘신의 대리인’이 된 요한 23세는 곧 가톨릭 최고회의 ‘공의회(公議會)’를 소집했다. 변화는 곧 교회의 신성한 전통을 위협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측근들의 만류가 있었지만 교황은 마치 ‘변화’와 ‘쇄신’이 그에게 주어진 소명인 양...
非백인 최초 올림픽 ‘도쿄올림픽’ 개막
1896년 첫 대회 이래 올림픽은 백인들의 독무대였다. 그들은 유색인 국가에서 올림픽이 치러지는 것을 한 번도 허락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유색인 국가에 올림픽을 치를 기회가 한번 주어졌으나 그 국가가 중일전쟁으로 개최를 반납하는 바람에 무산된 적이 있다. 결과적으로는 2차대전 발발로 그 올림픽(1940년)은 치러지지 않았다. 그 유색인 국가에 기회가 다시 찾아온 것은 1964년이었다. 10월 10일, 제18회 올림픽이 도쿄에서 개막되어 94개국 7500여 명의 선수가 15일...
중국 신해혁명 발발
20세기 들어 청조의 몰락은 거역할 수 없는 대세였다. 그저 연명할 따름이었다. 1911년 10월 10일, 양쯔강 중류지역에 위치한 우창(武昌)에서 혁명파 군인들이 무장봉기를 일으켰다. ‘신해혁명’의 불길이 솟아오른 것이다. 이튿날 혁명군이 우창·한커우(漢口)·한양(漢陽)의 우한(武漢) 3진까지 장악, 혁명의 봉화를 지피자 중국 전역은 혁명의 소용돌이로 빠져들었다. 청조는 1개월 만에 12개 성이 혁명 진영에 가담하자 베이징 군벌 위안스카이(원세개)를 총리로 임명, 진압에...
신금단 부녀 14년만에 도쿄에서 눈물의 상봉
“아버지…” “금단아…” 1964년 10월 9일 오후 4시55분. 남북으로 헤어져 살았던 신금단 부녀가 도쿄의 하늘 아래서 만나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 신문주가 1950년 12월에 함남 이원에서 단신으로 월남하고 14년 만이었다. 아버지가 없는 동안 금단은 세계적인 육상선수로 성장했다. 부녀를 연결해 준 것도 육상대회였다. 1년 전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제1회 가네포(신생국 경기대회)에서 금단이 육상 400m와 800m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워 그의 얼굴이 언론에 알려진...
‘영원한 혁명 전사’ 체 게바라 볼리비아에서 게릴라전 펼치다가 피살
체 게바라에게 쿠바 혁명 후 6년 간은 짧지만 행복했던 시기였다. 그러나 그는 미련없이 쿠바의 2인자 자리를 떨쳐버리고 혁명 전사의 길로 다시 뛰어들었다. 10개월 간 아프리카 콩고를 혁명무대로 삼았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현지의 혁명연합 조직이 와해된 것이 주된 이유였지만 한 전문가의 지적처럼 “혁명이 그를 필요로 하기보다 그가 혁명을 필요로 한 것”이 실패의 원인이었다. 1966년 10월에는 남미의 볼리비아를 찾았다. 미국의 힘을 분산시키기 위해 제2·제3의 베트남전쟁을...
제1회 경·평(京·平) 축구전 개막
조선일보는 1929년 들어 특히 스포츠 사업에 전력을 다했다. 침체하고 있는 민족 정신을 스포츠로 되살려보자는 취지였다. 전(全)조선여자배구대회, 전조선여자농구대회, 전조선씨름대회 등이 그 해에 처음 열린 대회들이다. 그 중 경성과 평양 간에 벌어진 ‘경·평(京·平) 축구대항전’은 단연 백미였다. 1929년 10월 8일, 제1회 대회 첫 경기가 7000여 명의 관중이 운집한 가운데 경성 휘문고보 운동장에 열렸다. 첫날은 1대1 무승부였으나 9일·10일 경기에서 평양팀의...
美 시카고 대화재
1833년 겨우 150명에 불과했던 인구가 1870년 무렵에는 30만 명으로 급증할 만큼 시카고는 빠른 성장세를 보였다. 그러던 어느날 40년 동안 일궈온 모든 것들을 하루아침에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린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1871년 10월 8일 일요일 저녁 9시 발생한 불이 다음날 10시 30분까지 계속되면서 도시를 삼켜버린 것이다. 그것은 화재가 아니라 재앙이었고 저주였다. 10㎞에 달하는 시가지 전역이 잿더미로 변했다. 8만 여채의 건물이 불에 타고 10만 여명의...
강원도 홍천 공작산 종주… 9시간이나 걸린 힘든 산행인데도 기꺼이 참아준 아내에게 말했다. “고맙고 미안하오!”
↑ 공작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풍경 by 김지지 공작새 한 마리가 날개 벌려 비상하는 모습 같다고 해서 공작산 이름 유래 공작산(887m)은 강원도 홍천에 있는 100대 명산 중 하나다. 인근의 다른 고산들을 제치고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유서도 깊다. 뻗어내린 능선이 공작새 한 마리가 날개를 벌려 비상하는 모습같다고 해서 공작(孔雀)이란 이름이 붙었다. 산행은 크게 정상 중심의 동쪽 코스와 약수봉과 수타사 방면의 서쪽 코스로...
중국 홍위병들의 집단적 광기는 중국 전역을 광란으로 몰고간 전주곡… 중국 사회 집단 최면상태로 빠져들고 속절없이 무너져내려
↑ 홍위병들이 씌운 얼간이 모자를 뒤집어쓰고 모욕을 당하고 있는 관료들 by 김지지 1966년 8월의 군중대회는 중국 전역을 휩쓸고 갈 광기의 신호탄 1966년 8월 18일 아침, 인민복 차림에 붉은 완장을 찬 늙은 영웅 모택동(1893~1976)이 천안문 누각 위로 올라가는 순간, 천안문광장을 가득 메운 100만 명의 젊은이가 모택동 찬양가 ‘동방홍(東方紅)’을 큰 소리로 부르며 열광했다. 중국 전역을 휩쓸고 갈 광기의 함성이자 신호탄이었다. 그날...
‘샹송의 여왕’ 에디트 피아프 사망
병원으로 가는 도중 길가에서 태어난 것 부터가 굴곡진 삶의 시작이었다. 3류 가수였던 어머니는 그를 낳은지 두달만에 사라졌고 무능했던 곡예사 아버지는 그를 외할머니에게 맡기고 어디론가 떠나버렸다. 세 살때 걸린 각막염으로 몇 년 동안은 앞이 보이지도 않았고, 10대 때 낳은 딸은 두 살에 죽었다. 도대체 끝을 알 수 없는 불행과 절망의 연속이었다. 술주정뱅이 외할머니와 매음굴을 운영하는 친할머니 집을 전전하며 노래 몇 곡에 사람들이 던져주는 동전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던...
카톨릭,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회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가톨릭을 가장 크게 변화시켰다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중심에는 교황 요한 23세가 있었다.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추지 못하면 가톨릭의 미래가 결코 밝지 않다는 게 평소 교황이 품어온 생각이었다. 1958년, 77세의 노쇠한 나이로 ‘신의 대리인’이 된 요한 23세는 곧 가톨릭 최고회의 ‘공의회(公議會)’를 소집했다. 변화는 곧 교회의 신성한 전통을 위협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측근들의 만류가 있었지만 교황은 마치 ‘변화’와 ‘쇄신’이 그에게 주어진 소명인 양...
非백인 최초 올림픽 ‘도쿄올림픽’ 개막
1896년 첫 대회 이래 올림픽은 백인들의 독무대였다. 그들은 유색인 국가에서 올림픽이 치러지는 것을 한 번도 허락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유색인 국가에 올림픽을 치를 기회가 한번 주어졌으나 그 국가가 중일전쟁으로 개최를 반납하는 바람에 무산된 적이 있다. 결과적으로는 2차대전 발발로 그 올림픽(1940년)은 치러지지 않았다. 그 유색인 국가에 기회가 다시 찾아온 것은 1964년이었다. 10월 10일, 제18회 올림픽이 도쿄에서 개막되어 94개국 7500여 명의 선수가 15일...
중국 신해혁명 발발
20세기 들어 청조의 몰락은 거역할 수 없는 대세였다. 그저 연명할 따름이었다. 1911년 10월 10일, 양쯔강 중류지역에 위치한 우창(武昌)에서 혁명파 군인들이 무장봉기를 일으켰다. ‘신해혁명’의 불길이 솟아오른 것이다. 이튿날 혁명군이 우창·한커우(漢口)·한양(漢陽)의 우한(武漢) 3진까지 장악, 혁명의 봉화를 지피자 중국 전역은 혁명의 소용돌이로 빠져들었다. 청조는 1개월 만에 12개 성이 혁명 진영에 가담하자 베이징 군벌 위안스카이(원세개)를 총리로 임명, 진압에...
신금단 부녀 14년만에 도쿄에서 눈물의 상봉
“아버지…” “금단아…” 1964년 10월 9일 오후 4시55분. 남북으로 헤어져 살았던 신금단 부녀가 도쿄의 하늘 아래서 만나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 신문주가 1950년 12월에 함남 이원에서 단신으로 월남하고 14년 만이었다. 아버지가 없는 동안 금단은 세계적인 육상선수로 성장했다. 부녀를 연결해 준 것도 육상대회였다. 1년 전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제1회 가네포(신생국 경기대회)에서 금단이 육상 400m와 800m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워 그의 얼굴이 언론에 알려진...
‘영원한 혁명 전사’ 체 게바라 볼리비아에서 게릴라전 펼치다가 피살
체 게바라에게 쿠바 혁명 후 6년 간은 짧지만 행복했던 시기였다. 그러나 그는 미련없이 쿠바의 2인자 자리를 떨쳐버리고 혁명 전사의 길로 다시 뛰어들었다. 10개월 간 아프리카 콩고를 혁명무대로 삼았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현지의 혁명연합 조직이 와해된 것이 주된 이유였지만 한 전문가의 지적처럼 “혁명이 그를 필요로 하기보다 그가 혁명을 필요로 한 것”이 실패의 원인이었다. 1966년 10월에는 남미의 볼리비아를 찾았다. 미국의 힘을 분산시키기 위해 제2·제3의 베트남전쟁을...
제1회 경·평(京·平) 축구전 개막
조선일보는 1929년 들어 특히 스포츠 사업에 전력을 다했다. 침체하고 있는 민족 정신을 스포츠로 되살려보자는 취지였다. 전(全)조선여자배구대회, 전조선여자농구대회, 전조선씨름대회 등이 그 해에 처음 열린 대회들이다. 그 중 경성과 평양 간에 벌어진 ‘경·평(京·平) 축구대항전’은 단연 백미였다. 1929년 10월 8일, 제1회 대회 첫 경기가 7000여 명의 관중이 운집한 가운데 경성 휘문고보 운동장에 열렸다. 첫날은 1대1 무승부였으나 9일·10일 경기에서 평양팀의...
美 시카고 대화재
1833년 겨우 150명에 불과했던 인구가 1870년 무렵에는 30만 명으로 급증할 만큼 시카고는 빠른 성장세를 보였다. 그러던 어느날 40년 동안 일궈온 모든 것들을 하루아침에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린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1871년 10월 8일 일요일 저녁 9시 발생한 불이 다음날 10시 30분까지 계속되면서 도시를 삼켜버린 것이다. 그것은 화재가 아니라 재앙이었고 저주였다. 10㎞에 달하는 시가지 전역이 잿더미로 변했다. 8만 여채의 건물이 불에 타고 10만 여명의...
강원도 홍천 공작산 종주… 9시간이나 걸린 힘든 산행인데도 기꺼이 참아준 아내에게 말했다. “고맙고 미안하오!”
↑ 공작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풍경 by 김지지 공작새 한 마리가 날개 벌려 비상하는 모습 같다고 해서 공작산 이름 유래 공작산(887m)은 강원도 홍천에 있는 100대 명산 중 하나다. 인근의 다른 고산들을 제치고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유서도 깊다. 뻗어내린 능선이 공작새 한 마리가 날개를 벌려 비상하는 모습같다고 해서 공작(孔雀)이란 이름이 붙었다. 산행은 크게 정상 중심의 동쪽 코스와 약수봉과 수타사 방면의 서쪽 코스로...
중국 홍위병들의 집단적 광기는 중국 전역을 광란으로 몰고간 전주곡… 중국 사회 집단 최면상태로 빠져들고 속절없이 무너져내려
↑ 홍위병들이 씌운 얼간이 모자를 뒤집어쓰고 모욕을 당하고 있는 관료들 by 김지지 1966년 8월의 군중대회는 중국 전역을 휩쓸고 갈 광기의 신호탄 1966년 8월 18일 아침, 인민복 차림에 붉은 완장을 찬 늙은 영웅 모택동(1893~1976)이 천안문 누각 위로 올라가는 순간, 천안문광장을 가득 메운 100만 명의 젊은이가 모택동 찬양가 ‘동방홍(東方紅)’을 큰 소리로 부르며 열광했다. 중국 전역을 휩쓸고 갈 광기의 함성이자 신호탄이었다. 그날...
‘샹송의 여왕’ 에디트 피아프 사망
병원으로 가는 도중 길가에서 태어난 것 부터가 굴곡진 삶의 시작이었다. 3류 가수였던 어머니는 그를 낳은지 두달만에 사라졌고 무능했던 곡예사 아버지는 그를 외할머니에게 맡기고 어디론가 떠나버렸다. 세 살때 걸린 각막염으로 몇 년 동안은 앞이 보이지도 않았고, 10대 때 낳은 딸은 두 살에 죽었다. 도대체 끝을 알 수 없는 불행과 절망의 연속이었다. 술주정뱅이 외할머니와 매음굴을 운영하는 친할머니 집을 전전하며 노래 몇 곡에 사람들이 던져주는 동전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던...
카톨릭,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회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가톨릭을 가장 크게 변화시켰다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중심에는 교황 요한 23세가 있었다.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추지 못하면 가톨릭의 미래가 결코 밝지 않다는 게 평소 교황이 품어온 생각이었다. 1958년, 77세의 노쇠한 나이로 ‘신의 대리인’이 된 요한 23세는 곧 가톨릭 최고회의 ‘공의회(公議會)’를 소집했다. 변화는 곧 교회의 신성한 전통을 위협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측근들의 만류가 있었지만 교황은 마치 ‘변화’와 ‘쇄신’이 그에게 주어진 소명인 양...
非백인 최초 올림픽 ‘도쿄올림픽’ 개막
1896년 첫 대회 이래 올림픽은 백인들의 독무대였다. 그들은 유색인 국가에서 올림픽이 치러지는 것을 한 번도 허락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유색인 국가에 올림픽을 치를 기회가 한번 주어졌으나 그 국가가 중일전쟁으로 개최를 반납하는 바람에 무산된 적이 있다. 결과적으로는 2차대전 발발로 그 올림픽(1940년)은 치러지지 않았다. 그 유색인 국가에 기회가 다시 찾아온 것은 1964년이었다. 10월 10일, 제18회 올림픽이 도쿄에서 개막되어 94개국 7500여 명의 선수가 15일...
중국 신해혁명 발발
20세기 들어 청조의 몰락은 거역할 수 없는 대세였다. 그저 연명할 따름이었다. 1911년 10월 10일, 양쯔강 중류지역에 위치한 우창(武昌)에서 혁명파 군인들이 무장봉기를 일으켰다. ‘신해혁명’의 불길이 솟아오른 것이다. 이튿날 혁명군이 우창·한커우(漢口)·한양(漢陽)의 우한(武漢) 3진까지 장악, 혁명의 봉화를 지피자 중국 전역은 혁명의 소용돌이로 빠져들었다. 청조는 1개월 만에 12개 성이 혁명 진영에 가담하자 베이징 군벌 위안스카이(원세개)를 총리로 임명, 진압에...
신금단 부녀 14년만에 도쿄에서 눈물의 상봉
“아버지…” “금단아…” 1964년 10월 9일 오후 4시55분. 남북으로 헤어져 살았던 신금단 부녀가 도쿄의 하늘 아래서 만나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 신문주가 1950년 12월에 함남 이원에서 단신으로 월남하고 14년 만이었다. 아버지가 없는 동안 금단은 세계적인 육상선수로 성장했다. 부녀를 연결해 준 것도 육상대회였다. 1년 전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제1회 가네포(신생국 경기대회)에서 금단이 육상 400m와 800m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워 그의 얼굴이 언론에 알려진...
‘영원한 혁명 전사’ 체 게바라 볼리비아에서 게릴라전 펼치다가 피살
체 게바라에게 쿠바 혁명 후 6년 간은 짧지만 행복했던 시기였다. 그러나 그는 미련없이 쿠바의 2인자 자리를 떨쳐버리고 혁명 전사의 길로 다시 뛰어들었다. 10개월 간 아프리카 콩고를 혁명무대로 삼았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현지의 혁명연합 조직이 와해된 것이 주된 이유였지만 한 전문가의 지적처럼 “혁명이 그를 필요로 하기보다 그가 혁명을 필요로 한 것”이 실패의 원인이었다. 1966년 10월에는 남미의 볼리비아를 찾았다. 미국의 힘을 분산시키기 위해 제2·제3의 베트남전쟁을...
제1회 경·평(京·平) 축구전 개막
조선일보는 1929년 들어 특히 스포츠 사업에 전력을 다했다. 침체하고 있는 민족 정신을 스포츠로 되살려보자는 취지였다. 전(全)조선여자배구대회, 전조선여자농구대회, 전조선씨름대회 등이 그 해에 처음 열린 대회들이다. 그 중 경성과 평양 간에 벌어진 ‘경·평(京·平) 축구대항전’은 단연 백미였다. 1929년 10월 8일, 제1회 대회 첫 경기가 7000여 명의 관중이 운집한 가운데 경성 휘문고보 운동장에 열렸다. 첫날은 1대1 무승부였으나 9일·10일 경기에서 평양팀의...
美 시카고 대화재
1833년 겨우 150명에 불과했던 인구가 1870년 무렵에는 30만 명으로 급증할 만큼 시카고는 빠른 성장세를 보였다. 그러던 어느날 40년 동안 일궈온 모든 것들을 하루아침에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린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1871년 10월 8일 일요일 저녁 9시 발생한 불이 다음날 10시 30분까지 계속되면서 도시를 삼켜버린 것이다. 그것은 화재가 아니라 재앙이었고 저주였다. 10㎞에 달하는 시가지 전역이 잿더미로 변했다. 8만 여채의 건물이 불에 타고 10만 여명의...
강원도 홍천 공작산 종주… 9시간이나 걸린 힘든 산행인데도 기꺼이 참아준 아내에게 말했다. “고맙고 미안하오!”
↑ 공작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풍경 by 김지지 공작새 한 마리가 날개 벌려 비상하는 모습 같다고 해서 공작산 이름 유래 공작산(887m)은 강원도 홍천에 있는 100대 명산 중 하나다. 인근의 다른 고산들을 제치고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유서도 깊다. 뻗어내린 능선이 공작새 한 마리가 날개를 벌려 비상하는 모습같다고 해서 공작(孔雀)이란 이름이 붙었다. 산행은 크게 정상 중심의 동쪽 코스와 약수봉과 수타사 방면의 서쪽 코스로...
중국 홍위병들의 집단적 광기는 중국 전역을 광란으로 몰고간 전주곡… 중국 사회 집단 최면상태로 빠져들고 속절없이 무너져내려
↑ 홍위병들이 씌운 얼간이 모자를 뒤집어쓰고 모욕을 당하고 있는 관료들 by 김지지 1966년 8월의 군중대회는 중국 전역을 휩쓸고 갈 광기의 신호탄 1966년 8월 18일 아침, 인민복 차림에 붉은 완장을 찬 늙은 영웅 모택동(1893~1976)이 천안문 누각 위로 올라가는 순간, 천안문광장을 가득 메운 100만 명의 젊은이가 모택동 찬양가 ‘동방홍(東方紅)’을 큰 소리로 부르며 열광했다. 중국 전역을 휩쓸고 갈 광기의 함성이자 신호탄이었다. 그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