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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 영화 ‘의리적 구토’ 단성사에서 상영

연쇄극(連鎖劇)은 무대에서 표현하기 어려운 야외신이나 특수 장면을 미리 필름에 담아두었다가 무대 사이사이에 보여주는, 이를테면 무대극과 영화를 합친 것이다. 1919년 10월 27일, 첫 연쇄극 영화이자 한국 최초의 영화 ‘의리적 구토(義理的 仇討)’가 서울 단성사에서 처음 상영됐다. 100% 필름영화가 아닌 탓에 1923년에 상영된 최초의 극영화 ‘월하의 맹서(月下의 盟誓)’를 우리 영화의 출발점으로 삼는 영화전문가도 있지만 아직까지 공식적인 ‘영화의 날’은 1962년부터...

박정희 정부 ‘10월 유신’ 헌법안 공고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 대통령이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오후 7시를 기해 국회해산 및 정당·정치활동을 금지하며 정지된 헌법의 기능을 비상국무회의에 넘기는 특별선언을 발표했다. 1년 전 1971년 12월 6일 박 대통령이 돌연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고, 이후 ‘풍년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비밀리에 추진해온 ‘10월 유신’이 마침내 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대학에는 휴교령이 내려지고 언론·출판·방송에는 사전검열의 메스가 가해졌다. 그리고 10월 27일 정부가...

박정희 대통령 서거

1979년 10월 26일 저녁 7시40분쯤, 갑자기 2발의 총성이 청와대 인근 중앙정보부 궁정동 안가의 적막을 뒤흔들었다. 1961년 5·16쿠데타로부터 만 18년 5개월 10일 동안 이어져온 박정희 대통령의 절대권력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였다. 사건의 발단은 8일 전 비상계엄 선포로까지 발전한 부마사태의 대응 방식을 둘러싼 권력 내부의 갈등에서 비롯됐다. 박 대통령이 상대적으로 온건한 대응을 주장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의견보다 강경 대응을 고집한 차지철 경호실장의 입장을...

안중근 의사, 이토 히로부미 저격

1909년 10월 26일 오전9시. 이토 히로부미 초대 조선통감을 태운 열차가 만주 하얼빈역에 도착했다. 이토가 열차에서 내려 각국 영사와 일일이 악수를 나누고 곧 일본인 환영 인파 쪽으로 다가간 순간, 갑자기 총탄이 날아들었다. 팽창하는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안중근 의사의 엄중한 경고였다. 3발을 맞아 고꾸라진 이토는 범인이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바보같은 놈”이라며 중얼거리다 의식을 잃고 30분 뒤 죽음을 맞았다. 3명의 수행원들도 중경상을 입었다. 거사 후 안...

세계 전쟁사에 유례가 없는 日 가미카제 첫 등장

1944년 10월 20일, 미군이 필리핀 중부 군사요충지 레이테 섬을 향해 총공세를 취함으로써 7일간의 레이테만(灣) 전투가 시작됐다. 전투는 미군 상륙과 함께 레이테만의 하늘과 바다에서 치열하게 전개돼 섬 주변은 불바다가 됐다. 미군은 이 전투 승리로 태평양전쟁의 전세를 일거에 뒤집을 수 있었다. 미군이 상륙한 20일 새벽1시. 오니시 제1항공함대 사령관이 필리핀 클라크 기지에서 참모들과의 밤샘 작전 끝에 세계 전쟁사에 유례가 없는 ‘가미카제(神風) 특공대’ 편성을...

중국의 유엔 가입과 자유중국의 유엔 축출

1971년은 ‘죽의 장막’ 중국이 본격적으로 세계 무대에 모습을 드러낸 첫 해였다. 대표권 분쟁을 둘러싼 대만과의 외교 경쟁에서 우위에 서는 일이 첫 관문이었다. 미국은 여전히 대만을 지지했지만, 한편으로는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과의 관계 개선도 타진하고 있었다. 4월에는 탁구 선수단을 중국에 보내 이른바 ‘핑퐁외교’의 물꼬를 텄고, 6월에는 닉슨 미 대통령이 대(對) 중국 금수조치를 해제해 화해 제스처를 내비쳤다. 이 와중에 6월 11일, 리비아 대통령 카다피가...

안동 기행 (下) : 임청각, 법흥사지 칠층전탑, 하회마을, 부용대, 옥연정사, 겸암정사, 만송정, 지산고택, 소수서원

안동 기행 (下) : 임청각, 법흥사지 칠층전탑, 하회마을, 부용대, 옥연정사, 겸암정사, 만송정, 지산고택, 소수서원

↑  부용대에서 바라본 하회마을   by 김정일 前 금융인·뭐라도학교 교장, 現 소나무 농사꾼   안동 기행(상)  ☞ 클릭   임청각은 만주 독립운동의 토대를 만든 석주 이상룡 선생의 본가 원이엄마길을 잠깐 걷는 중에 주변 안내 팻말에서 한 지명이 눈에 들어왔다. ‘임청각 2㎞’. 내가 임청각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첫 번째 광복절 경축사에서 언급하고서였다. 문 대통령은 “경북 안동에 임청각이라는 유서 깊은 집이 있다....

[연인과 부부 ④]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영화배우 윤정희의 운명적 만남과 결혼, 그리고 소박한 삶

[연인과 부부 ④]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영화배우 윤정희의 운명적 만남과 결혼, 그리고 소박한 삶

↑ 젊은 시절의 백건우와 윤정희   ☞ 자세한 내용을 보시려면 클릭!!   백건우, 세계적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의 후원 덕에 미국에 자리잡아 백건우(1946~ ) 부모는 음악을 좋아했다. 그가 서울에서 태어날 때 아버지는 음악에 조예가 깊은 영어교사였고 어머니는 피아노를 연주하는 유치원 교사였다. 백건우는 8살 때 음악적 재주를 인정받고, 10살 때인 1956년 경남콩쿠르에서 1등을 차지해 그해 서울에서 독주회를 펼쳤다. 12살 때는 국립교향악단과...

‘첼로의 신동’에서 ‘거장 지휘자’의 길을 걷는 장한나

‘첼로의 신동’에서 ‘거장 지휘자’의 길을 걷는 장한나

↑ 장한나 (출처 트론헤임 심포니 오케스트라 홈페이지)   ☞ 전문(全文)은 이곳으로 옮겼습니다. 클릭!   1994년 열두 살에 로스트로포비치 첼로 콩쿠르에서 우승, 신동(神童)으로 이름 날렸던 장한나(1982~ )가 자신의 악단을 이끌고 서울에 왔다. 지휘자로선 처음이다. 2007년부터 지휘 겸업에 나서서 불과 10년 만에 노르웨이 명문 트론헤임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 겸 예술감독이 된 그가 첫 내한인 트론헤임과 함께 2019년 11월 13일부터...

美 주가 대폭락 시작… 전 서계 대공황의 신호탄

1920년대 미국의 번영은 눈부셨다. 10년 동안 공업생산은 90%나 상승했고 자동차는 5명당 1명꼴로 홍수를 이뤘다. 돈을 쫓는 사람들로 증권시장도 전례 없는 대호황이었다. 1929년 현재 증권구좌는 155만 개에 달했고 이 가운데 60만 개는 신용거래로 대박을 꿈꿨다. 방미 중이던 처칠 영국 재무장관이 월가에서 신용거래로 한몫 잡았다고 친구들에게 자랑했던 것도 이 무렵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느끼지 못했을 뿐 성장은 이미 1929년 6월에 멈춰있었다. 불길한 전조였다....

한국 최초 영화 ‘의리적 구토’ 단성사에서 상영

연쇄극(連鎖劇)은 무대에서 표현하기 어려운 야외신이나 특수 장면을 미리 필름에 담아두었다가 무대 사이사이에 보여주는, 이를테면 무대극과 영화를 합친 것이다. 1919년 10월 27일, 첫 연쇄극 영화이자 한국 최초의 영화 ‘의리적 구토(義理的 仇討)’가 서울 단성사에서 처음 상영됐다. 100% 필름영화가 아닌 탓에 1923년에 상영된 최초의 극영화 ‘월하의 맹서(月下의 盟誓)’를 우리 영화의 출발점으로 삼는 영화전문가도 있지만 아직까지 공식적인 ‘영화의 날’은 1962년부터...

박정희 정부 ‘10월 유신’ 헌법안 공고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 대통령이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오후 7시를 기해 국회해산 및 정당·정치활동을 금지하며 정지된 헌법의 기능을 비상국무회의에 넘기는 특별선언을 발표했다. 1년 전 1971년 12월 6일 박 대통령이 돌연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고, 이후 ‘풍년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비밀리에 추진해온 ‘10월 유신’이 마침내 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대학에는 휴교령이 내려지고 언론·출판·방송에는 사전검열의 메스가 가해졌다. 그리고 10월 27일 정부가...

박정희 대통령 서거

1979년 10월 26일 저녁 7시40분쯤, 갑자기 2발의 총성이 청와대 인근 중앙정보부 궁정동 안가의 적막을 뒤흔들었다. 1961년 5·16쿠데타로부터 만 18년 5개월 10일 동안 이어져온 박정희 대통령의 절대권력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였다. 사건의 발단은 8일 전 비상계엄 선포로까지 발전한 부마사태의 대응 방식을 둘러싼 권력 내부의 갈등에서 비롯됐다. 박 대통령이 상대적으로 온건한 대응을 주장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의견보다 강경 대응을 고집한 차지철 경호실장의 입장을...

안중근 의사, 이토 히로부미 저격

1909년 10월 26일 오전9시. 이토 히로부미 초대 조선통감을 태운 열차가 만주 하얼빈역에 도착했다. 이토가 열차에서 내려 각국 영사와 일일이 악수를 나누고 곧 일본인 환영 인파 쪽으로 다가간 순간, 갑자기 총탄이 날아들었다. 팽창하는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안중근 의사의 엄중한 경고였다. 3발을 맞아 고꾸라진 이토는 범인이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바보같은 놈”이라며 중얼거리다 의식을 잃고 30분 뒤 죽음을 맞았다. 3명의 수행원들도 중경상을 입었다. 거사 후 안...

세계 전쟁사에 유례가 없는 日 가미카제 첫 등장

1944년 10월 20일, 미군이 필리핀 중부 군사요충지 레이테 섬을 향해 총공세를 취함으로써 7일간의 레이테만(灣) 전투가 시작됐다. 전투는 미군 상륙과 함께 레이테만의 하늘과 바다에서 치열하게 전개돼 섬 주변은 불바다가 됐다. 미군은 이 전투 승리로 태평양전쟁의 전세를 일거에 뒤집을 수 있었다. 미군이 상륙한 20일 새벽1시. 오니시 제1항공함대 사령관이 필리핀 클라크 기지에서 참모들과의 밤샘 작전 끝에 세계 전쟁사에 유례가 없는 ‘가미카제(神風) 특공대’ 편성을...

중국의 유엔 가입과 자유중국의 유엔 축출

1971년은 ‘죽의 장막’ 중국이 본격적으로 세계 무대에 모습을 드러낸 첫 해였다. 대표권 분쟁을 둘러싼 대만과의 외교 경쟁에서 우위에 서는 일이 첫 관문이었다. 미국은 여전히 대만을 지지했지만, 한편으로는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과의 관계 개선도 타진하고 있었다. 4월에는 탁구 선수단을 중국에 보내 이른바 ‘핑퐁외교’의 물꼬를 텄고, 6월에는 닉슨 미 대통령이 대(對) 중국 금수조치를 해제해 화해 제스처를 내비쳤다. 이 와중에 6월 11일, 리비아 대통령 카다피가...

안동 기행 (下) : 임청각, 법흥사지 칠층전탑, 하회마을, 부용대, 옥연정사, 겸암정사, 만송정, 지산고택, 소수서원

안동 기행 (下) : 임청각, 법흥사지 칠층전탑, 하회마을, 부용대, 옥연정사, 겸암정사, 만송정, 지산고택, 소수서원

↑  부용대에서 바라본 하회마을   by 김정일 前 금융인·뭐라도학교 교장, 現 소나무 농사꾼   안동 기행(상)  ☞ 클릭   임청각은 만주 독립운동의 토대를 만든 석주 이상룡 선생의 본가 원이엄마길을 잠깐 걷는 중에 주변 안내 팻말에서 한 지명이 눈에 들어왔다. ‘임청각 2㎞’. 내가 임청각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첫 번째 광복절 경축사에서 언급하고서였다. 문 대통령은 “경북 안동에 임청각이라는 유서 깊은 집이 있다....

[연인과 부부 ④]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영화배우 윤정희의 운명적 만남과 결혼, 그리고 소박한 삶

[연인과 부부 ④]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영화배우 윤정희의 운명적 만남과 결혼, 그리고 소박한 삶

↑ 젊은 시절의 백건우와 윤정희   ☞ 자세한 내용을 보시려면 클릭!!   백건우, 세계적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의 후원 덕에 미국에 자리잡아 백건우(1946~ ) 부모는 음악을 좋아했다. 그가 서울에서 태어날 때 아버지는 음악에 조예가 깊은 영어교사였고 어머니는 피아노를 연주하는 유치원 교사였다. 백건우는 8살 때 음악적 재주를 인정받고, 10살 때인 1956년 경남콩쿠르에서 1등을 차지해 그해 서울에서 독주회를 펼쳤다. 12살 때는 국립교향악단과...

‘첼로의 신동’에서 ‘거장 지휘자’의 길을 걷는 장한나

‘첼로의 신동’에서 ‘거장 지휘자’의 길을 걷는 장한나

↑ 장한나 (출처 트론헤임 심포니 오케스트라 홈페이지)   ☞ 전문(全文)은 이곳으로 옮겼습니다. 클릭!   1994년 열두 살에 로스트로포비치 첼로 콩쿠르에서 우승, 신동(神童)으로 이름 날렸던 장한나(1982~ )가 자신의 악단을 이끌고 서울에 왔다. 지휘자로선 처음이다. 2007년부터 지휘 겸업에 나서서 불과 10년 만에 노르웨이 명문 트론헤임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 겸 예술감독이 된 그가 첫 내한인 트론헤임과 함께 2019년 11월 13일부터...

美 주가 대폭락 시작… 전 서계 대공황의 신호탄

1920년대 미국의 번영은 눈부셨다. 10년 동안 공업생산은 90%나 상승했고 자동차는 5명당 1명꼴로 홍수를 이뤘다. 돈을 쫓는 사람들로 증권시장도 전례 없는 대호황이었다. 1929년 현재 증권구좌는 155만 개에 달했고 이 가운데 60만 개는 신용거래로 대박을 꿈꿨다. 방미 중이던 처칠 영국 재무장관이 월가에서 신용거래로 한몫 잡았다고 친구들에게 자랑했던 것도 이 무렵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느끼지 못했을 뿐 성장은 이미 1929년 6월에 멈춰있었다. 불길한 전조였다....

한국 최초 영화 ‘의리적 구토’ 단성사에서 상영

연쇄극(連鎖劇)은 무대에서 표현하기 어려운 야외신이나 특수 장면을 미리 필름에 담아두었다가 무대 사이사이에 보여주는, 이를테면 무대극과 영화를 합친 것이다. 1919년 10월 27일, 첫 연쇄극 영화이자 한국 최초의 영화 ‘의리적 구토(義理的 仇討)’가 서울 단성사에서 처음 상영됐다. 100% 필름영화가 아닌 탓에 1923년에 상영된 최초의 극영화 ‘월하의 맹서(月下의 盟誓)’를 우리 영화의 출발점으로 삼는 영화전문가도 있지만 아직까지 공식적인 ‘영화의 날’은 1962년부터...

박정희 정부 ‘10월 유신’ 헌법안 공고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 대통령이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오후 7시를 기해 국회해산 및 정당·정치활동을 금지하며 정지된 헌법의 기능을 비상국무회의에 넘기는 특별선언을 발표했다. 1년 전 1971년 12월 6일 박 대통령이 돌연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고, 이후 ‘풍년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비밀리에 추진해온 ‘10월 유신’이 마침내 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대학에는 휴교령이 내려지고 언론·출판·방송에는 사전검열의 메스가 가해졌다. 그리고 10월 27일 정부가...

박정희 대통령 서거

1979년 10월 26일 저녁 7시40분쯤, 갑자기 2발의 총성이 청와대 인근 중앙정보부 궁정동 안가의 적막을 뒤흔들었다. 1961년 5·16쿠데타로부터 만 18년 5개월 10일 동안 이어져온 박정희 대통령의 절대권력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였다. 사건의 발단은 8일 전 비상계엄 선포로까지 발전한 부마사태의 대응 방식을 둘러싼 권력 내부의 갈등에서 비롯됐다. 박 대통령이 상대적으로 온건한 대응을 주장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의견보다 강경 대응을 고집한 차지철 경호실장의 입장을...

안중근 의사, 이토 히로부미 저격

1909년 10월 26일 오전9시. 이토 히로부미 초대 조선통감을 태운 열차가 만주 하얼빈역에 도착했다. 이토가 열차에서 내려 각국 영사와 일일이 악수를 나누고 곧 일본인 환영 인파 쪽으로 다가간 순간, 갑자기 총탄이 날아들었다. 팽창하는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안중근 의사의 엄중한 경고였다. 3발을 맞아 고꾸라진 이토는 범인이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바보같은 놈”이라며 중얼거리다 의식을 잃고 30분 뒤 죽음을 맞았다. 3명의 수행원들도 중경상을 입었다. 거사 후 안...

세계 전쟁사에 유례가 없는 日 가미카제 첫 등장

1944년 10월 20일, 미군이 필리핀 중부 군사요충지 레이테 섬을 향해 총공세를 취함으로써 7일간의 레이테만(灣) 전투가 시작됐다. 전투는 미군 상륙과 함께 레이테만의 하늘과 바다에서 치열하게 전개돼 섬 주변은 불바다가 됐다. 미군은 이 전투 승리로 태평양전쟁의 전세를 일거에 뒤집을 수 있었다. 미군이 상륙한 20일 새벽1시. 오니시 제1항공함대 사령관이 필리핀 클라크 기지에서 참모들과의 밤샘 작전 끝에 세계 전쟁사에 유례가 없는 ‘가미카제(神風) 특공대’ 편성을...

중국의 유엔 가입과 자유중국의 유엔 축출

1971년은 ‘죽의 장막’ 중국이 본격적으로 세계 무대에 모습을 드러낸 첫 해였다. 대표권 분쟁을 둘러싼 대만과의 외교 경쟁에서 우위에 서는 일이 첫 관문이었다. 미국은 여전히 대만을 지지했지만, 한편으로는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과의 관계 개선도 타진하고 있었다. 4월에는 탁구 선수단을 중국에 보내 이른바 ‘핑퐁외교’의 물꼬를 텄고, 6월에는 닉슨 미 대통령이 대(對) 중국 금수조치를 해제해 화해 제스처를 내비쳤다. 이 와중에 6월 11일, 리비아 대통령 카다피가...

안동 기행 (下) : 임청각, 법흥사지 칠층전탑, 하회마을, 부용대, 옥연정사, 겸암정사, 만송정, 지산고택, 소수서원

안동 기행 (下) : 임청각, 법흥사지 칠층전탑, 하회마을, 부용대, 옥연정사, 겸암정사, 만송정, 지산고택, 소수서원

↑  부용대에서 바라본 하회마을   by 김정일 前 금융인·뭐라도학교 교장, 現 소나무 농사꾼   안동 기행(상)  ☞ 클릭   임청각은 만주 독립운동의 토대를 만든 석주 이상룡 선생의 본가 원이엄마길을 잠깐 걷는 중에 주변 안내 팻말에서 한 지명이 눈에 들어왔다. ‘임청각 2㎞’. 내가 임청각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첫 번째 광복절 경축사에서 언급하고서였다. 문 대통령은 “경북 안동에 임청각이라는 유서 깊은 집이 있다....

[연인과 부부 ④]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영화배우 윤정희의 운명적 만남과 결혼, 그리고 소박한 삶

[연인과 부부 ④]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영화배우 윤정희의 운명적 만남과 결혼, 그리고 소박한 삶

↑ 젊은 시절의 백건우와 윤정희   ☞ 자세한 내용을 보시려면 클릭!!   백건우, 세계적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의 후원 덕에 미국에 자리잡아 백건우(1946~ ) 부모는 음악을 좋아했다. 그가 서울에서 태어날 때 아버지는 음악에 조예가 깊은 영어교사였고 어머니는 피아노를 연주하는 유치원 교사였다. 백건우는 8살 때 음악적 재주를 인정받고, 10살 때인 1956년 경남콩쿠르에서 1등을 차지해 그해 서울에서 독주회를 펼쳤다. 12살 때는 국립교향악단과...

‘첼로의 신동’에서 ‘거장 지휘자’의 길을 걷는 장한나

‘첼로의 신동’에서 ‘거장 지휘자’의 길을 걷는 장한나

↑ 장한나 (출처 트론헤임 심포니 오케스트라 홈페이지)   ☞ 전문(全文)은 이곳으로 옮겼습니다. 클릭!   1994년 열두 살에 로스트로포비치 첼로 콩쿠르에서 우승, 신동(神童)으로 이름 날렸던 장한나(1982~ )가 자신의 악단을 이끌고 서울에 왔다. 지휘자로선 처음이다. 2007년부터 지휘 겸업에 나서서 불과 10년 만에 노르웨이 명문 트론헤임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 겸 예술감독이 된 그가 첫 내한인 트론헤임과 함께 2019년 11월 13일부터...

美 주가 대폭락 시작… 전 서계 대공황의 신호탄

1920년대 미국의 번영은 눈부셨다. 10년 동안 공업생산은 90%나 상승했고 자동차는 5명당 1명꼴로 홍수를 이뤘다. 돈을 쫓는 사람들로 증권시장도 전례 없는 대호황이었다. 1929년 현재 증권구좌는 155만 개에 달했고 이 가운데 60만 개는 신용거래로 대박을 꿈꿨다. 방미 중이던 처칠 영국 재무장관이 월가에서 신용거래로 한몫 잡았다고 친구들에게 자랑했던 것도 이 무렵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느끼지 못했을 뿐 성장은 이미 1929년 6월에 멈춰있었다. 불길한 전조였다....

한국 최초 영화 ‘의리적 구토’ 단성사에서 상영

연쇄극(連鎖劇)은 무대에서 표현하기 어려운 야외신이나 특수 장면을 미리 필름에 담아두었다가 무대 사이사이에 보여주는, 이를테면 무대극과 영화를 합친 것이다. 1919년 10월 27일, 첫 연쇄극 영화이자 한국 최초의 영화 ‘의리적 구토(義理的 仇討)’가 서울 단성사에서 처음 상영됐다. 100% 필름영화가 아닌 탓에 1923년에 상영된 최초의 극영화 ‘월하의 맹서(月下의 盟誓)’를 우리 영화의 출발점으로 삼는 영화전문가도 있지만 아직까지 공식적인 ‘영화의 날’은 1962년부터...

박정희 정부 ‘10월 유신’ 헌법안 공고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 대통령이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오후 7시를 기해 국회해산 및 정당·정치활동을 금지하며 정지된 헌법의 기능을 비상국무회의에 넘기는 특별선언을 발표했다. 1년 전 1971년 12월 6일 박 대통령이 돌연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고, 이후 ‘풍년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비밀리에 추진해온 ‘10월 유신’이 마침내 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대학에는 휴교령이 내려지고 언론·출판·방송에는 사전검열의 메스가 가해졌다. 그리고 10월 27일 정부가...

박정희 대통령 서거

1979년 10월 26일 저녁 7시40분쯤, 갑자기 2발의 총성이 청와대 인근 중앙정보부 궁정동 안가의 적막을 뒤흔들었다. 1961년 5·16쿠데타로부터 만 18년 5개월 10일 동안 이어져온 박정희 대통령의 절대권력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였다. 사건의 발단은 8일 전 비상계엄 선포로까지 발전한 부마사태의 대응 방식을 둘러싼 권력 내부의 갈등에서 비롯됐다. 박 대통령이 상대적으로 온건한 대응을 주장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의견보다 강경 대응을 고집한 차지철 경호실장의 입장을...

안중근 의사, 이토 히로부미 저격

1909년 10월 26일 오전9시. 이토 히로부미 초대 조선통감을 태운 열차가 만주 하얼빈역에 도착했다. 이토가 열차에서 내려 각국 영사와 일일이 악수를 나누고 곧 일본인 환영 인파 쪽으로 다가간 순간, 갑자기 총탄이 날아들었다. 팽창하는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안중근 의사의 엄중한 경고였다. 3발을 맞아 고꾸라진 이토는 범인이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바보같은 놈”이라며 중얼거리다 의식을 잃고 30분 뒤 죽음을 맞았다. 3명의 수행원들도 중경상을 입었다. 거사 후 안...

세계 전쟁사에 유례가 없는 日 가미카제 첫 등장

1944년 10월 20일, 미군이 필리핀 중부 군사요충지 레이테 섬을 향해 총공세를 취함으로써 7일간의 레이테만(灣) 전투가 시작됐다. 전투는 미군 상륙과 함께 레이테만의 하늘과 바다에서 치열하게 전개돼 섬 주변은 불바다가 됐다. 미군은 이 전투 승리로 태평양전쟁의 전세를 일거에 뒤집을 수 있었다. 미군이 상륙한 20일 새벽1시. 오니시 제1항공함대 사령관이 필리핀 클라크 기지에서 참모들과의 밤샘 작전 끝에 세계 전쟁사에 유례가 없는 ‘가미카제(神風) 특공대’ 편성을...

중국의 유엔 가입과 자유중국의 유엔 축출

1971년은 ‘죽의 장막’ 중국이 본격적으로 세계 무대에 모습을 드러낸 첫 해였다. 대표권 분쟁을 둘러싼 대만과의 외교 경쟁에서 우위에 서는 일이 첫 관문이었다. 미국은 여전히 대만을 지지했지만, 한편으로는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과의 관계 개선도 타진하고 있었다. 4월에는 탁구 선수단을 중국에 보내 이른바 ‘핑퐁외교’의 물꼬를 텄고, 6월에는 닉슨 미 대통령이 대(對) 중국 금수조치를 해제해 화해 제스처를 내비쳤다. 이 와중에 6월 11일, 리비아 대통령 카다피가...

안동 기행 (下) : 임청각, 법흥사지 칠층전탑, 하회마을, 부용대, 옥연정사, 겸암정사, 만송정, 지산고택, 소수서원

안동 기행 (下) : 임청각, 법흥사지 칠층전탑, 하회마을, 부용대, 옥연정사, 겸암정사, 만송정, 지산고택, 소수서원

↑  부용대에서 바라본 하회마을   by 김정일 前 금융인·뭐라도학교 교장, 現 소나무 농사꾼   안동 기행(상)  ☞ 클릭   임청각은 만주 독립운동의 토대를 만든 석주 이상룡 선생의 본가 원이엄마길을 잠깐 걷는 중에 주변 안내 팻말에서 한 지명이 눈에 들어왔다. ‘임청각 2㎞’. 내가 임청각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첫 번째 광복절 경축사에서 언급하고서였다. 문 대통령은 “경북 안동에 임청각이라는 유서 깊은 집이 있다....

[연인과 부부 ④]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영화배우 윤정희의 운명적 만남과 결혼, 그리고 소박한 삶

[연인과 부부 ④]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영화배우 윤정희의 운명적 만남과 결혼, 그리고 소박한 삶

↑ 젊은 시절의 백건우와 윤정희   ☞ 자세한 내용을 보시려면 클릭!!   백건우, 세계적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의 후원 덕에 미국에 자리잡아 백건우(1946~ ) 부모는 음악을 좋아했다. 그가 서울에서 태어날 때 아버지는 음악에 조예가 깊은 영어교사였고 어머니는 피아노를 연주하는 유치원 교사였다. 백건우는 8살 때 음악적 재주를 인정받고, 10살 때인 1956년 경남콩쿠르에서 1등을 차지해 그해 서울에서 독주회를 펼쳤다. 12살 때는 국립교향악단과...

‘첼로의 신동’에서 ‘거장 지휘자’의 길을 걷는 장한나

‘첼로의 신동’에서 ‘거장 지휘자’의 길을 걷는 장한나

↑ 장한나 (출처 트론헤임 심포니 오케스트라 홈페이지)   ☞ 전문(全文)은 이곳으로 옮겼습니다. 클릭!   1994년 열두 살에 로스트로포비치 첼로 콩쿠르에서 우승, 신동(神童)으로 이름 날렸던 장한나(1982~ )가 자신의 악단을 이끌고 서울에 왔다. 지휘자로선 처음이다. 2007년부터 지휘 겸업에 나서서 불과 10년 만에 노르웨이 명문 트론헤임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 겸 예술감독이 된 그가 첫 내한인 트론헤임과 함께 2019년 11월 13일부터...

美 주가 대폭락 시작… 전 서계 대공황의 신호탄

1920년대 미국의 번영은 눈부셨다. 10년 동안 공업생산은 90%나 상승했고 자동차는 5명당 1명꼴로 홍수를 이뤘다. 돈을 쫓는 사람들로 증권시장도 전례 없는 대호황이었다. 1929년 현재 증권구좌는 155만 개에 달했고 이 가운데 60만 개는 신용거래로 대박을 꿈꿨다. 방미 중이던 처칠 영국 재무장관이 월가에서 신용거래로 한몫 잡았다고 친구들에게 자랑했던 것도 이 무렵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느끼지 못했을 뿐 성장은 이미 1929년 6월에 멈춰있었다. 불길한 전조였다....

한국 최초 영화 ‘의리적 구토’ 단성사에서 상영

연쇄극(連鎖劇)은 무대에서 표현하기 어려운 야외신이나 특수 장면을 미리 필름에 담아두었다가 무대 사이사이에 보여주는, 이를테면 무대극과 영화를 합친 것이다. 1919년 10월 27일, 첫 연쇄극 영화이자 한국 최초의 영화 ‘의리적 구토(義理的 仇討)’가 서울 단성사에서 처음 상영됐다. 100% 필름영화가 아닌 탓에 1923년에 상영된 최초의 극영화 ‘월하의 맹서(月下의 盟誓)’를 우리 영화의 출발점으로 삼는 영화전문가도 있지만 아직까지 공식적인 ‘영화의 날’은 1962년부터...

박정희 정부 ‘10월 유신’ 헌법안 공고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 대통령이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오후 7시를 기해 국회해산 및 정당·정치활동을 금지하며 정지된 헌법의 기능을 비상국무회의에 넘기는 특별선언을 발표했다. 1년 전 1971년 12월 6일 박 대통령이 돌연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고, 이후 ‘풍년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비밀리에 추진해온 ‘10월 유신’이 마침내 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대학에는 휴교령이 내려지고 언론·출판·방송에는 사전검열의 메스가 가해졌다. 그리고 10월 27일 정부가...

박정희 대통령 서거

1979년 10월 26일 저녁 7시40분쯤, 갑자기 2발의 총성이 청와대 인근 중앙정보부 궁정동 안가의 적막을 뒤흔들었다. 1961년 5·16쿠데타로부터 만 18년 5개월 10일 동안 이어져온 박정희 대통령의 절대권력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였다. 사건의 발단은 8일 전 비상계엄 선포로까지 발전한 부마사태의 대응 방식을 둘러싼 권력 내부의 갈등에서 비롯됐다. 박 대통령이 상대적으로 온건한 대응을 주장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의견보다 강경 대응을 고집한 차지철 경호실장의 입장을...

안중근 의사, 이토 히로부미 저격

1909년 10월 26일 오전9시. 이토 히로부미 초대 조선통감을 태운 열차가 만주 하얼빈역에 도착했다. 이토가 열차에서 내려 각국 영사와 일일이 악수를 나누고 곧 일본인 환영 인파 쪽으로 다가간 순간, 갑자기 총탄이 날아들었다. 팽창하는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안중근 의사의 엄중한 경고였다. 3발을 맞아 고꾸라진 이토는 범인이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바보같은 놈”이라며 중얼거리다 의식을 잃고 30분 뒤 죽음을 맞았다. 3명의 수행원들도 중경상을 입었다. 거사 후 안...

세계 전쟁사에 유례가 없는 日 가미카제 첫 등장

1944년 10월 20일, 미군이 필리핀 중부 군사요충지 레이테 섬을 향해 총공세를 취함으로써 7일간의 레이테만(灣) 전투가 시작됐다. 전투는 미군 상륙과 함께 레이테만의 하늘과 바다에서 치열하게 전개돼 섬 주변은 불바다가 됐다. 미군은 이 전투 승리로 태평양전쟁의 전세를 일거에 뒤집을 수 있었다. 미군이 상륙한 20일 새벽1시. 오니시 제1항공함대 사령관이 필리핀 클라크 기지에서 참모들과의 밤샘 작전 끝에 세계 전쟁사에 유례가 없는 ‘가미카제(神風) 특공대’ 편성을...

중국의 유엔 가입과 자유중국의 유엔 축출

1971년은 ‘죽의 장막’ 중국이 본격적으로 세계 무대에 모습을 드러낸 첫 해였다. 대표권 분쟁을 둘러싼 대만과의 외교 경쟁에서 우위에 서는 일이 첫 관문이었다. 미국은 여전히 대만을 지지했지만, 한편으로는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과의 관계 개선도 타진하고 있었다. 4월에는 탁구 선수단을 중국에 보내 이른바 ‘핑퐁외교’의 물꼬를 텄고, 6월에는 닉슨 미 대통령이 대(對) 중국 금수조치를 해제해 화해 제스처를 내비쳤다. 이 와중에 6월 11일, 리비아 대통령 카다피가...

안동 기행 (下) : 임청각, 법흥사지 칠층전탑, 하회마을, 부용대, 옥연정사, 겸암정사, 만송정, 지산고택, 소수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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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용대에서 바라본 하회마을   by 김정일 前 금융인·뭐라도학교 교장, 現 소나무 농사꾼   안동 기행(상)  ☞ 클릭   임청각은 만주 독립운동의 토대를 만든 석주 이상룡 선생의 본가 원이엄마길을 잠깐 걷는 중에 주변 안내 팻말에서 한 지명이 눈에 들어왔다. ‘임청각 2㎞’. 내가 임청각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첫 번째 광복절 경축사에서 언급하고서였다. 문 대통령은 “경북 안동에 임청각이라는 유서 깊은 집이 있다....

[연인과 부부 ④]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영화배우 윤정희의 운명적 만남과 결혼, 그리고 소박한 삶

[연인과 부부 ④]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영화배우 윤정희의 운명적 만남과 결혼, 그리고 소박한 삶

↑ 젊은 시절의 백건우와 윤정희   ☞ 자세한 내용을 보시려면 클릭!!   백건우, 세계적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의 후원 덕에 미국에 자리잡아 백건우(1946~ ) 부모는 음악을 좋아했다. 그가 서울에서 태어날 때 아버지는 음악에 조예가 깊은 영어교사였고 어머니는 피아노를 연주하는 유치원 교사였다. 백건우는 8살 때 음악적 재주를 인정받고, 10살 때인 1956년 경남콩쿠르에서 1등을 차지해 그해 서울에서 독주회를 펼쳤다. 12살 때는 국립교향악단과...

‘첼로의 신동’에서 ‘거장 지휘자’의 길을 걷는 장한나

‘첼로의 신동’에서 ‘거장 지휘자’의 길을 걷는 장한나

↑ 장한나 (출처 트론헤임 심포니 오케스트라 홈페이지)   ☞ 전문(全文)은 이곳으로 옮겼습니다. 클릭!   1994년 열두 살에 로스트로포비치 첼로 콩쿠르에서 우승, 신동(神童)으로 이름 날렸던 장한나(1982~ )가 자신의 악단을 이끌고 서울에 왔다. 지휘자로선 처음이다. 2007년부터 지휘 겸업에 나서서 불과 10년 만에 노르웨이 명문 트론헤임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 겸 예술감독이 된 그가 첫 내한인 트론헤임과 함께 2019년 11월 13일부터...

美 주가 대폭락 시작… 전 서계 대공황의 신호탄

1920년대 미국의 번영은 눈부셨다. 10년 동안 공업생산은 90%나 상승했고 자동차는 5명당 1명꼴로 홍수를 이뤘다. 돈을 쫓는 사람들로 증권시장도 전례 없는 대호황이었다. 1929년 현재 증권구좌는 155만 개에 달했고 이 가운데 60만 개는 신용거래로 대박을 꿈꿨다. 방미 중이던 처칠 영국 재무장관이 월가에서 신용거래로 한몫 잡았다고 친구들에게 자랑했던 것도 이 무렵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느끼지 못했을 뿐 성장은 이미 1929년 6월에 멈춰있었다. 불길한 전조였다....

한국 최초 영화 ‘의리적 구토’ 단성사에서 상영

연쇄극(連鎖劇)은 무대에서 표현하기 어려운 야외신이나 특수 장면을 미리 필름에 담아두었다가 무대 사이사이에 보여주는, 이를테면 무대극과 영화를 합친 것이다. 1919년 10월 27일, 첫 연쇄극 영화이자 한국 최초의 영화 ‘의리적 구토(義理的 仇討)’가 서울 단성사에서 처음 상영됐다. 100% 필름영화가 아닌 탓에 1923년에 상영된 최초의 극영화 ‘월하의 맹서(月下의 盟誓)’를 우리 영화의 출발점으로 삼는 영화전문가도 있지만 아직까지 공식적인 ‘영화의 날’은 1962년부터...

박정희 정부 ‘10월 유신’ 헌법안 공고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 대통령이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오후 7시를 기해 국회해산 및 정당·정치활동을 금지하며 정지된 헌법의 기능을 비상국무회의에 넘기는 특별선언을 발표했다. 1년 전 1971년 12월 6일 박 대통령이 돌연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고, 이후 ‘풍년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비밀리에 추진해온 ‘10월 유신’이 마침내 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대학에는 휴교령이 내려지고 언론·출판·방송에는 사전검열의 메스가 가해졌다. 그리고 10월 27일 정부가...

박정희 대통령 서거

1979년 10월 26일 저녁 7시40분쯤, 갑자기 2발의 총성이 청와대 인근 중앙정보부 궁정동 안가의 적막을 뒤흔들었다. 1961년 5·16쿠데타로부터 만 18년 5개월 10일 동안 이어져온 박정희 대통령의 절대권력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였다. 사건의 발단은 8일 전 비상계엄 선포로까지 발전한 부마사태의 대응 방식을 둘러싼 권력 내부의 갈등에서 비롯됐다. 박 대통령이 상대적으로 온건한 대응을 주장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의견보다 강경 대응을 고집한 차지철 경호실장의 입장을...

안중근 의사, 이토 히로부미 저격

1909년 10월 26일 오전9시. 이토 히로부미 초대 조선통감을 태운 열차가 만주 하얼빈역에 도착했다. 이토가 열차에서 내려 각국 영사와 일일이 악수를 나누고 곧 일본인 환영 인파 쪽으로 다가간 순간, 갑자기 총탄이 날아들었다. 팽창하는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안중근 의사의 엄중한 경고였다. 3발을 맞아 고꾸라진 이토는 범인이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바보같은 놈”이라며 중얼거리다 의식을 잃고 30분 뒤 죽음을 맞았다. 3명의 수행원들도 중경상을 입었다. 거사 후 안...

세계 전쟁사에 유례가 없는 日 가미카제 첫 등장

1944년 10월 20일, 미군이 필리핀 중부 군사요충지 레이테 섬을 향해 총공세를 취함으로써 7일간의 레이테만(灣) 전투가 시작됐다. 전투는 미군 상륙과 함께 레이테만의 하늘과 바다에서 치열하게 전개돼 섬 주변은 불바다가 됐다. 미군은 이 전투 승리로 태평양전쟁의 전세를 일거에 뒤집을 수 있었다. 미군이 상륙한 20일 새벽1시. 오니시 제1항공함대 사령관이 필리핀 클라크 기지에서 참모들과의 밤샘 작전 끝에 세계 전쟁사에 유례가 없는 ‘가미카제(神風) 특공대’ 편성을...

중국의 유엔 가입과 자유중국의 유엔 축출

1971년은 ‘죽의 장막’ 중국이 본격적으로 세계 무대에 모습을 드러낸 첫 해였다. 대표권 분쟁을 둘러싼 대만과의 외교 경쟁에서 우위에 서는 일이 첫 관문이었다. 미국은 여전히 대만을 지지했지만, 한편으로는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과의 관계 개선도 타진하고 있었다. 4월에는 탁구 선수단을 중국에 보내 이른바 ‘핑퐁외교’의 물꼬를 텄고, 6월에는 닉슨 미 대통령이 대(對) 중국 금수조치를 해제해 화해 제스처를 내비쳤다. 이 와중에 6월 11일, 리비아 대통령 카다피가...

안동 기행 (下) : 임청각, 법흥사지 칠층전탑, 하회마을, 부용대, 옥연정사, 겸암정사, 만송정, 지산고택, 소수서원

안동 기행 (下) : 임청각, 법흥사지 칠층전탑, 하회마을, 부용대, 옥연정사, 겸암정사, 만송정, 지산고택, 소수서원

↑  부용대에서 바라본 하회마을   by 김정일 前 금융인·뭐라도학교 교장, 現 소나무 농사꾼   안동 기행(상)  ☞ 클릭   임청각은 만주 독립운동의 토대를 만든 석주 이상룡 선생의 본가 원이엄마길을 잠깐 걷는 중에 주변 안내 팻말에서 한 지명이 눈에 들어왔다. ‘임청각 2㎞’. 내가 임청각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첫 번째 광복절 경축사에서 언급하고서였다. 문 대통령은 “경북 안동에 임청각이라는 유서 깊은 집이 있다....

[연인과 부부 ④]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영화배우 윤정희의 운명적 만남과 결혼, 그리고 소박한 삶

[연인과 부부 ④]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영화배우 윤정희의 운명적 만남과 결혼, 그리고 소박한 삶

↑ 젊은 시절의 백건우와 윤정희   ☞ 자세한 내용을 보시려면 클릭!!   백건우, 세계적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의 후원 덕에 미국에 자리잡아 백건우(1946~ ) 부모는 음악을 좋아했다. 그가 서울에서 태어날 때 아버지는 음악에 조예가 깊은 영어교사였고 어머니는 피아노를 연주하는 유치원 교사였다. 백건우는 8살 때 음악적 재주를 인정받고, 10살 때인 1956년 경남콩쿠르에서 1등을 차지해 그해 서울에서 독주회를 펼쳤다. 12살 때는 국립교향악단과...

‘첼로의 신동’에서 ‘거장 지휘자’의 길을 걷는 장한나

‘첼로의 신동’에서 ‘거장 지휘자’의 길을 걷는 장한나

↑ 장한나 (출처 트론헤임 심포니 오케스트라 홈페이지)   ☞ 전문(全文)은 이곳으로 옮겼습니다. 클릭!   1994년 열두 살에 로스트로포비치 첼로 콩쿠르에서 우승, 신동(神童)으로 이름 날렸던 장한나(1982~ )가 자신의 악단을 이끌고 서울에 왔다. 지휘자로선 처음이다. 2007년부터 지휘 겸업에 나서서 불과 10년 만에 노르웨이 명문 트론헤임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 겸 예술감독이 된 그가 첫 내한인 트론헤임과 함께 2019년 11월 13일부터...

美 주가 대폭락 시작… 전 서계 대공황의 신호탄

1920년대 미국의 번영은 눈부셨다. 10년 동안 공업생산은 90%나 상승했고 자동차는 5명당 1명꼴로 홍수를 이뤘다. 돈을 쫓는 사람들로 증권시장도 전례 없는 대호황이었다. 1929년 현재 증권구좌는 155만 개에 달했고 이 가운데 60만 개는 신용거래로 대박을 꿈꿨다. 방미 중이던 처칠 영국 재무장관이 월가에서 신용거래로 한몫 잡았다고 친구들에게 자랑했던 것도 이 무렵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느끼지 못했을 뿐 성장은 이미 1929년 6월에 멈춰있었다. 불길한 전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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