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The Blog Module

The blog modules makes it easy to create a blog post feed in two different layouts.

찰스 디킨스 단편소설 ‘크리스마스 캐럴’ 출간

산업혁명이 초래한 비참한 사회상을 고발하면서도 늘 따뜻한 시각을 유지했던 영국의 소설가 찰스 디킨스가 1843년 12월 19일 66페이지짜리 단편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을 출간했다. 크리스마스를 소재로 한 5편의 시리즈 중 첫 번째 작품이다. 빈곤과 고통 속에서도 크리스마스가 주는 평온함때문일까, 디킨스는 거의 해마다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수필, 단편소설을 발표했다. 심지어 새로운 문학장르까지 개척했다는 평을 들을 정도였다. 10월에 “가진자의 타락상과 가난한 사람들을 향해...

‘탁월한 개혁가’ ‘실패한 이상주의자’ 논란 분분한 조광조 사약받고 숨져

1519년 12월 20일, 조광조가 유배지에서 사약을 받고 숨졌다. 38세였고, 관직에 몸담은지 5년째였다. 반정(反正)으로 왕위에 오른 중종이 성리학의 토대 위에 유교적 이상사회를 건설하고자 했던 조광조를 중용한 것은 시대의 소명이었다. 전임 연산군의 악정을 개혁하고 파괴된 유교질서를 회복하는 것이 중종과 조광조의 공통된 목표였다. 사간원을 거쳐 사헌부의 대사헌에 오른 조광조는 국가의 기강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있었다. 먼저 착수한 것이 현량과 설치. 과거제의...

베트남 민족해방전선 결성

1960년 12월 20일, 베트남독립동맹회(월맹)와 함께 베트남을 패망시킨 두 주역 가운데 하나인 베트남 민족해방전선(NFL)이 ‘반(反)고 딘 디엠, 반미’를 기치로 내걸고 캄보디아 국경 부근 밀림지대에서 결성됐다. 각계 대표 60여 명이 참석한 회의장 안에는 창립총회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있었고, 노출을 꺼리는 비밀요원 20여 명이 커튼 뒤에 숨어 안건을 논의했다. 이틀 간의 논의 끝에 민족주의연합정부 수립, 토지개혁, 미국개입 배제, 남북통일 등 10개항의 강령이...

샤를르 드골, 프랑스 대통령에 선출

1950년대 프랑스는 군소정당이 난립하고 단명 내각이 부침하는 취약한 내각제 나라였다. 드골은 한탄했다. “프랑스에는 위기가 와야 한다. 그것말고는 265가지의 치즈맛을 자랑하는 이 나라를 단결시킬 도리가 없다.” 예측대로 프랑스에 위기가 찾아왔다. 알제리 사태였다. 67세 드골이 12년 만에 다시 권력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알제리 사태가 야기한 군부의 불만을 무마하고 분열된 나라를 추스려달라는 국민들의 공감대가 작용한 때문이었다. 1958년 6월 1일, 드골의 독재자...

100억 달러 수출 달성

빈약한 기술과 자원 밖에 없던 1960∼70년대. 수출은 운명이었고 당위였다. 그 시절, 저임금으로 물건을 만들어 내다파는 것 그 길 말고는 먹고 살 일이 없었다. 수출을 위한 전 과정은 마치 군사작전처럼 진행됐다. 총사령관 박정희 대통령은 대통령 직속으로 ‘수출진흥 확대회의’를 신설, 수출을 직접 챙기고 독려했다.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것은 1964년 11월 30일에 돌파한 1억달러 수출이었다. 정부는 이날을 ‘수출의 날’로 제정, 매년 이날을 기념하며 수출에...

광부 123명 서독에 첫 파견

1963년 12월 21일, 서독 루르탄광지대에서 일할 우리나라 광부 123명이 에어프랑스 전세기편으로 김포공항을 떠났다. 광부들 얼굴에는 낯선 땅에 대한 두려움과 설레임이 교차했지만, 남편을, 자식을, 아버지를 이국땅으로 보내야 하는 가족들은 눈물을 삼키며 웃는 낯으로 보내야했다. 약속한 월급은 162달러50센트(기본급)였다. 1인당 GNP가 87달러(1962년)에 불과하고 경제가 침체했던 당시로서는 적지않은 돈이었다. 실업율이 8.1%(63년)에 달하고, 200명 이상의...

이재명 의사, 이완용 암살 미수

망국 전, 안중근의 이토 저격이 의열투쟁의 정화였다면 이완용을 암살하려다 미수에 그친 이재명의 의거는 마지막 귀결이었다. 1904년 나이 18세 때 미국 하와이로 건너가 농부로 일하면서도 이재명의 마음은 언제나 침략 원흉들을 처단하는데 있었다. 1907년 10월 고국으로 돌아와 늘 기회를 엿보고 있던 이재명에게 기회가 찾아온 것은 1909년 1월이었다. 이토 히로부미가 순종 황제의 평안도 순시 때 동행한다는 것이었다. 그를 처단할 생각으로 평양역 부근에서 기다렸으나 자칫하면...

도조 히데키 등 A급 전범 사형집행

인류를 죽음으로 몰아간 일본의 A급 전범 7명이 1948년 12월 23일 도쿄 스가모구치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도조 히데키, 히로타 고키, 도히하라 겐지, 이타가키 세이시로, 기무라 헤이타로, 쓰이 이와네, 무토 아키라. 단죄된 7명의 이름들이다. 자살이 실패로 끝나 교수대에 오른 대표적인 전범 도조 히데키는 처형 직전까지도 참회하지 않고 “욕망의 이승을 오늘 하직하고 미타(彌陀) 곁으로 가는 기쁨이여”라는 유언시를 남겼다. “살아서 포로가 되어 욕을 당하지 말라”며...

두 개의 자유당 창당

제1공화국의 버팀목이었던 자유당이 1951년 12월23일 임시수도 부산에서 창당됐다. 하지만 각기 다른 장소에서 두 개의 자유당이 동시에 출범, 시작부터가 파행이었다. 공화민정회가 중심이 된 ‘원내(院內) 자유당’이 국회의사당에서, 이범석의 족청계를 중심으로 한 ‘원외(院外) 자유당’이 부산 동아극장에서 창당대회를 열어 이승만 대통령을 각각 의장과 당수로 내세우자,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이들의 분열은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심과 서로...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 감독한 영화 ‘전함 포템킨’ 개봉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 감독한 영화 ‘전함 포템킨’ 개봉

↑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유모차가 계단 아래로 굴러가는 ‘오데사 계단’ 장면   찰리 채플린이 “최고의 영화”라고 격찬했던 무성 영화 ‘전함 포템킨’이 모스크바 볼쇼이극장에서 개봉된 것은 러시아혁명 20주년 기념식이 열리고 있던 1925년 12월 24일이었다. 영화는 1905년 6월 27일 흑해 북쪽의 오데사항에서 실제로 일어난 포템킨 타브리체스키호 반란을 소재로 했다. 감독은 ‘전함 포템킨’이 개봉되기 8개월 전, 자신의 데뷔작 ‘파업’의 성공으로 일약 스타덤에...

찰스 디킨스 단편소설 ‘크리스마스 캐럴’ 출간

산업혁명이 초래한 비참한 사회상을 고발하면서도 늘 따뜻한 시각을 유지했던 영국의 소설가 찰스 디킨스가 1843년 12월 19일 66페이지짜리 단편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을 출간했다. 크리스마스를 소재로 한 5편의 시리즈 중 첫 번째 작품이다. 빈곤과 고통 속에서도 크리스마스가 주는 평온함때문일까, 디킨스는 거의 해마다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수필, 단편소설을 발표했다. 심지어 새로운 문학장르까지 개척했다는 평을 들을 정도였다. 10월에 “가진자의 타락상과 가난한 사람들을 향해...

‘탁월한 개혁가’ ‘실패한 이상주의자’ 논란 분분한 조광조 사약받고 숨져

1519년 12월 20일, 조광조가 유배지에서 사약을 받고 숨졌다. 38세였고, 관직에 몸담은지 5년째였다. 반정(反正)으로 왕위에 오른 중종이 성리학의 토대 위에 유교적 이상사회를 건설하고자 했던 조광조를 중용한 것은 시대의 소명이었다. 전임 연산군의 악정을 개혁하고 파괴된 유교질서를 회복하는 것이 중종과 조광조의 공통된 목표였다. 사간원을 거쳐 사헌부의 대사헌에 오른 조광조는 국가의 기강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있었다. 먼저 착수한 것이 현량과 설치. 과거제의...

베트남 민족해방전선 결성

1960년 12월 20일, 베트남독립동맹회(월맹)와 함께 베트남을 패망시킨 두 주역 가운데 하나인 베트남 민족해방전선(NFL)이 ‘반(反)고 딘 디엠, 반미’를 기치로 내걸고 캄보디아 국경 부근 밀림지대에서 결성됐다. 각계 대표 60여 명이 참석한 회의장 안에는 창립총회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있었고, 노출을 꺼리는 비밀요원 20여 명이 커튼 뒤에 숨어 안건을 논의했다. 이틀 간의 논의 끝에 민족주의연합정부 수립, 토지개혁, 미국개입 배제, 남북통일 등 10개항의 강령이...

샤를르 드골, 프랑스 대통령에 선출

1950년대 프랑스는 군소정당이 난립하고 단명 내각이 부침하는 취약한 내각제 나라였다. 드골은 한탄했다. “프랑스에는 위기가 와야 한다. 그것말고는 265가지의 치즈맛을 자랑하는 이 나라를 단결시킬 도리가 없다.” 예측대로 프랑스에 위기가 찾아왔다. 알제리 사태였다. 67세 드골이 12년 만에 다시 권력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알제리 사태가 야기한 군부의 불만을 무마하고 분열된 나라를 추스려달라는 국민들의 공감대가 작용한 때문이었다. 1958년 6월 1일, 드골의 독재자...

100억 달러 수출 달성

빈약한 기술과 자원 밖에 없던 1960∼70년대. 수출은 운명이었고 당위였다. 그 시절, 저임금으로 물건을 만들어 내다파는 것 그 길 말고는 먹고 살 일이 없었다. 수출을 위한 전 과정은 마치 군사작전처럼 진행됐다. 총사령관 박정희 대통령은 대통령 직속으로 ‘수출진흥 확대회의’를 신설, 수출을 직접 챙기고 독려했다.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것은 1964년 11월 30일에 돌파한 1억달러 수출이었다. 정부는 이날을 ‘수출의 날’로 제정, 매년 이날을 기념하며 수출에...

광부 123명 서독에 첫 파견

1963년 12월 21일, 서독 루르탄광지대에서 일할 우리나라 광부 123명이 에어프랑스 전세기편으로 김포공항을 떠났다. 광부들 얼굴에는 낯선 땅에 대한 두려움과 설레임이 교차했지만, 남편을, 자식을, 아버지를 이국땅으로 보내야 하는 가족들은 눈물을 삼키며 웃는 낯으로 보내야했다. 약속한 월급은 162달러50센트(기본급)였다. 1인당 GNP가 87달러(1962년)에 불과하고 경제가 침체했던 당시로서는 적지않은 돈이었다. 실업율이 8.1%(63년)에 달하고, 200명 이상의...

이재명 의사, 이완용 암살 미수

망국 전, 안중근의 이토 저격이 의열투쟁의 정화였다면 이완용을 암살하려다 미수에 그친 이재명의 의거는 마지막 귀결이었다. 1904년 나이 18세 때 미국 하와이로 건너가 농부로 일하면서도 이재명의 마음은 언제나 침략 원흉들을 처단하는데 있었다. 1907년 10월 고국으로 돌아와 늘 기회를 엿보고 있던 이재명에게 기회가 찾아온 것은 1909년 1월이었다. 이토 히로부미가 순종 황제의 평안도 순시 때 동행한다는 것이었다. 그를 처단할 생각으로 평양역 부근에서 기다렸으나 자칫하면...

도조 히데키 등 A급 전범 사형집행

인류를 죽음으로 몰아간 일본의 A급 전범 7명이 1948년 12월 23일 도쿄 스가모구치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도조 히데키, 히로타 고키, 도히하라 겐지, 이타가키 세이시로, 기무라 헤이타로, 쓰이 이와네, 무토 아키라. 단죄된 7명의 이름들이다. 자살이 실패로 끝나 교수대에 오른 대표적인 전범 도조 히데키는 처형 직전까지도 참회하지 않고 “욕망의 이승을 오늘 하직하고 미타(彌陀) 곁으로 가는 기쁨이여”라는 유언시를 남겼다. “살아서 포로가 되어 욕을 당하지 말라”며...

두 개의 자유당 창당

제1공화국의 버팀목이었던 자유당이 1951년 12월23일 임시수도 부산에서 창당됐다. 하지만 각기 다른 장소에서 두 개의 자유당이 동시에 출범, 시작부터가 파행이었다. 공화민정회가 중심이 된 ‘원내(院內) 자유당’이 국회의사당에서, 이범석의 족청계를 중심으로 한 ‘원외(院外) 자유당’이 부산 동아극장에서 창당대회를 열어 이승만 대통령을 각각 의장과 당수로 내세우자,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이들의 분열은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심과 서로...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 감독한 영화 ‘전함 포템킨’ 개봉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 감독한 영화 ‘전함 포템킨’ 개봉

↑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유모차가 계단 아래로 굴러가는 ‘오데사 계단’ 장면   찰리 채플린이 “최고의 영화”라고 격찬했던 무성 영화 ‘전함 포템킨’이 모스크바 볼쇼이극장에서 개봉된 것은 러시아혁명 20주년 기념식이 열리고 있던 1925년 12월 24일이었다. 영화는 1905년 6월 27일 흑해 북쪽의 오데사항에서 실제로 일어난 포템킨 타브리체스키호 반란을 소재로 했다. 감독은 ‘전함 포템킨’이 개봉되기 8개월 전, 자신의 데뷔작 ‘파업’의 성공으로 일약 스타덤에...

찰스 디킨스 단편소설 ‘크리스마스 캐럴’ 출간

산업혁명이 초래한 비참한 사회상을 고발하면서도 늘 따뜻한 시각을 유지했던 영국의 소설가 찰스 디킨스가 1843년 12월 19일 66페이지짜리 단편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을 출간했다. 크리스마스를 소재로 한 5편의 시리즈 중 첫 번째 작품이다. 빈곤과 고통 속에서도 크리스마스가 주는 평온함때문일까, 디킨스는 거의 해마다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수필, 단편소설을 발표했다. 심지어 새로운 문학장르까지 개척했다는 평을 들을 정도였다. 10월에 “가진자의 타락상과 가난한 사람들을 향해...

‘탁월한 개혁가’ ‘실패한 이상주의자’ 논란 분분한 조광조 사약받고 숨져

1519년 12월 20일, 조광조가 유배지에서 사약을 받고 숨졌다. 38세였고, 관직에 몸담은지 5년째였다. 반정(反正)으로 왕위에 오른 중종이 성리학의 토대 위에 유교적 이상사회를 건설하고자 했던 조광조를 중용한 것은 시대의 소명이었다. 전임 연산군의 악정을 개혁하고 파괴된 유교질서를 회복하는 것이 중종과 조광조의 공통된 목표였다. 사간원을 거쳐 사헌부의 대사헌에 오른 조광조는 국가의 기강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있었다. 먼저 착수한 것이 현량과 설치. 과거제의...

베트남 민족해방전선 결성

1960년 12월 20일, 베트남독립동맹회(월맹)와 함께 베트남을 패망시킨 두 주역 가운데 하나인 베트남 민족해방전선(NFL)이 ‘반(反)고 딘 디엠, 반미’를 기치로 내걸고 캄보디아 국경 부근 밀림지대에서 결성됐다. 각계 대표 60여 명이 참석한 회의장 안에는 창립총회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있었고, 노출을 꺼리는 비밀요원 20여 명이 커튼 뒤에 숨어 안건을 논의했다. 이틀 간의 논의 끝에 민족주의연합정부 수립, 토지개혁, 미국개입 배제, 남북통일 등 10개항의 강령이...

샤를르 드골, 프랑스 대통령에 선출

1950년대 프랑스는 군소정당이 난립하고 단명 내각이 부침하는 취약한 내각제 나라였다. 드골은 한탄했다. “프랑스에는 위기가 와야 한다. 그것말고는 265가지의 치즈맛을 자랑하는 이 나라를 단결시킬 도리가 없다.” 예측대로 프랑스에 위기가 찾아왔다. 알제리 사태였다. 67세 드골이 12년 만에 다시 권력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알제리 사태가 야기한 군부의 불만을 무마하고 분열된 나라를 추스려달라는 국민들의 공감대가 작용한 때문이었다. 1958년 6월 1일, 드골의 독재자...

100억 달러 수출 달성

빈약한 기술과 자원 밖에 없던 1960∼70년대. 수출은 운명이었고 당위였다. 그 시절, 저임금으로 물건을 만들어 내다파는 것 그 길 말고는 먹고 살 일이 없었다. 수출을 위한 전 과정은 마치 군사작전처럼 진행됐다. 총사령관 박정희 대통령은 대통령 직속으로 ‘수출진흥 확대회의’를 신설, 수출을 직접 챙기고 독려했다.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것은 1964년 11월 30일에 돌파한 1억달러 수출이었다. 정부는 이날을 ‘수출의 날’로 제정, 매년 이날을 기념하며 수출에...

광부 123명 서독에 첫 파견

1963년 12월 21일, 서독 루르탄광지대에서 일할 우리나라 광부 123명이 에어프랑스 전세기편으로 김포공항을 떠났다. 광부들 얼굴에는 낯선 땅에 대한 두려움과 설레임이 교차했지만, 남편을, 자식을, 아버지를 이국땅으로 보내야 하는 가족들은 눈물을 삼키며 웃는 낯으로 보내야했다. 약속한 월급은 162달러50센트(기본급)였다. 1인당 GNP가 87달러(1962년)에 불과하고 경제가 침체했던 당시로서는 적지않은 돈이었다. 실업율이 8.1%(63년)에 달하고, 200명 이상의...

이재명 의사, 이완용 암살 미수

망국 전, 안중근의 이토 저격이 의열투쟁의 정화였다면 이완용을 암살하려다 미수에 그친 이재명의 의거는 마지막 귀결이었다. 1904년 나이 18세 때 미국 하와이로 건너가 농부로 일하면서도 이재명의 마음은 언제나 침략 원흉들을 처단하는데 있었다. 1907년 10월 고국으로 돌아와 늘 기회를 엿보고 있던 이재명에게 기회가 찾아온 것은 1909년 1월이었다. 이토 히로부미가 순종 황제의 평안도 순시 때 동행한다는 것이었다. 그를 처단할 생각으로 평양역 부근에서 기다렸으나 자칫하면...

도조 히데키 등 A급 전범 사형집행

인류를 죽음으로 몰아간 일본의 A급 전범 7명이 1948년 12월 23일 도쿄 스가모구치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도조 히데키, 히로타 고키, 도히하라 겐지, 이타가키 세이시로, 기무라 헤이타로, 쓰이 이와네, 무토 아키라. 단죄된 7명의 이름들이다. 자살이 실패로 끝나 교수대에 오른 대표적인 전범 도조 히데키는 처형 직전까지도 참회하지 않고 “욕망의 이승을 오늘 하직하고 미타(彌陀) 곁으로 가는 기쁨이여”라는 유언시를 남겼다. “살아서 포로가 되어 욕을 당하지 말라”며...

두 개의 자유당 창당

제1공화국의 버팀목이었던 자유당이 1951년 12월23일 임시수도 부산에서 창당됐다. 하지만 각기 다른 장소에서 두 개의 자유당이 동시에 출범, 시작부터가 파행이었다. 공화민정회가 중심이 된 ‘원내(院內) 자유당’이 국회의사당에서, 이범석의 족청계를 중심으로 한 ‘원외(院外) 자유당’이 부산 동아극장에서 창당대회를 열어 이승만 대통령을 각각 의장과 당수로 내세우자,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이들의 분열은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심과 서로...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 감독한 영화 ‘전함 포템킨’ 개봉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 감독한 영화 ‘전함 포템킨’ 개봉

↑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유모차가 계단 아래로 굴러가는 ‘오데사 계단’ 장면   찰리 채플린이 “최고의 영화”라고 격찬했던 무성 영화 ‘전함 포템킨’이 모스크바 볼쇼이극장에서 개봉된 것은 러시아혁명 20주년 기념식이 열리고 있던 1925년 12월 24일이었다. 영화는 1905년 6월 27일 흑해 북쪽의 오데사항에서 실제로 일어난 포템킨 타브리체스키호 반란을 소재로 했다. 감독은 ‘전함 포템킨’이 개봉되기 8개월 전, 자신의 데뷔작 ‘파업’의 성공으로 일약 스타덤에...

찰스 디킨스 단편소설 ‘크리스마스 캐럴’ 출간

산업혁명이 초래한 비참한 사회상을 고발하면서도 늘 따뜻한 시각을 유지했던 영국의 소설가 찰스 디킨스가 1843년 12월 19일 66페이지짜리 단편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을 출간했다. 크리스마스를 소재로 한 5편의 시리즈 중 첫 번째 작품이다. 빈곤과 고통 속에서도 크리스마스가 주는 평온함때문일까, 디킨스는 거의 해마다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수필, 단편소설을 발표했다. 심지어 새로운 문학장르까지 개척했다는 평을 들을 정도였다. 10월에 “가진자의 타락상과 가난한 사람들을 향해...

‘탁월한 개혁가’ ‘실패한 이상주의자’ 논란 분분한 조광조 사약받고 숨져

1519년 12월 20일, 조광조가 유배지에서 사약을 받고 숨졌다. 38세였고, 관직에 몸담은지 5년째였다. 반정(反正)으로 왕위에 오른 중종이 성리학의 토대 위에 유교적 이상사회를 건설하고자 했던 조광조를 중용한 것은 시대의 소명이었다. 전임 연산군의 악정을 개혁하고 파괴된 유교질서를 회복하는 것이 중종과 조광조의 공통된 목표였다. 사간원을 거쳐 사헌부의 대사헌에 오른 조광조는 국가의 기강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있었다. 먼저 착수한 것이 현량과 설치. 과거제의...

베트남 민족해방전선 결성

1960년 12월 20일, 베트남독립동맹회(월맹)와 함께 베트남을 패망시킨 두 주역 가운데 하나인 베트남 민족해방전선(NFL)이 ‘반(反)고 딘 디엠, 반미’를 기치로 내걸고 캄보디아 국경 부근 밀림지대에서 결성됐다. 각계 대표 60여 명이 참석한 회의장 안에는 창립총회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있었고, 노출을 꺼리는 비밀요원 20여 명이 커튼 뒤에 숨어 안건을 논의했다. 이틀 간의 논의 끝에 민족주의연합정부 수립, 토지개혁, 미국개입 배제, 남북통일 등 10개항의 강령이...

샤를르 드골, 프랑스 대통령에 선출

1950년대 프랑스는 군소정당이 난립하고 단명 내각이 부침하는 취약한 내각제 나라였다. 드골은 한탄했다. “프랑스에는 위기가 와야 한다. 그것말고는 265가지의 치즈맛을 자랑하는 이 나라를 단결시킬 도리가 없다.” 예측대로 프랑스에 위기가 찾아왔다. 알제리 사태였다. 67세 드골이 12년 만에 다시 권력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알제리 사태가 야기한 군부의 불만을 무마하고 분열된 나라를 추스려달라는 국민들의 공감대가 작용한 때문이었다. 1958년 6월 1일, 드골의 독재자...

100억 달러 수출 달성

빈약한 기술과 자원 밖에 없던 1960∼70년대. 수출은 운명이었고 당위였다. 그 시절, 저임금으로 물건을 만들어 내다파는 것 그 길 말고는 먹고 살 일이 없었다. 수출을 위한 전 과정은 마치 군사작전처럼 진행됐다. 총사령관 박정희 대통령은 대통령 직속으로 ‘수출진흥 확대회의’를 신설, 수출을 직접 챙기고 독려했다.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것은 1964년 11월 30일에 돌파한 1억달러 수출이었다. 정부는 이날을 ‘수출의 날’로 제정, 매년 이날을 기념하며 수출에...

광부 123명 서독에 첫 파견

1963년 12월 21일, 서독 루르탄광지대에서 일할 우리나라 광부 123명이 에어프랑스 전세기편으로 김포공항을 떠났다. 광부들 얼굴에는 낯선 땅에 대한 두려움과 설레임이 교차했지만, 남편을, 자식을, 아버지를 이국땅으로 보내야 하는 가족들은 눈물을 삼키며 웃는 낯으로 보내야했다. 약속한 월급은 162달러50센트(기본급)였다. 1인당 GNP가 87달러(1962년)에 불과하고 경제가 침체했던 당시로서는 적지않은 돈이었다. 실업율이 8.1%(63년)에 달하고, 200명 이상의...

이재명 의사, 이완용 암살 미수

망국 전, 안중근의 이토 저격이 의열투쟁의 정화였다면 이완용을 암살하려다 미수에 그친 이재명의 의거는 마지막 귀결이었다. 1904년 나이 18세 때 미국 하와이로 건너가 농부로 일하면서도 이재명의 마음은 언제나 침략 원흉들을 처단하는데 있었다. 1907년 10월 고국으로 돌아와 늘 기회를 엿보고 있던 이재명에게 기회가 찾아온 것은 1909년 1월이었다. 이토 히로부미가 순종 황제의 평안도 순시 때 동행한다는 것이었다. 그를 처단할 생각으로 평양역 부근에서 기다렸으나 자칫하면...

도조 히데키 등 A급 전범 사형집행

인류를 죽음으로 몰아간 일본의 A급 전범 7명이 1948년 12월 23일 도쿄 스가모구치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도조 히데키, 히로타 고키, 도히하라 겐지, 이타가키 세이시로, 기무라 헤이타로, 쓰이 이와네, 무토 아키라. 단죄된 7명의 이름들이다. 자살이 실패로 끝나 교수대에 오른 대표적인 전범 도조 히데키는 처형 직전까지도 참회하지 않고 “욕망의 이승을 오늘 하직하고 미타(彌陀) 곁으로 가는 기쁨이여”라는 유언시를 남겼다. “살아서 포로가 되어 욕을 당하지 말라”며...

두 개의 자유당 창당

제1공화국의 버팀목이었던 자유당이 1951년 12월23일 임시수도 부산에서 창당됐다. 하지만 각기 다른 장소에서 두 개의 자유당이 동시에 출범, 시작부터가 파행이었다. 공화민정회가 중심이 된 ‘원내(院內) 자유당’이 국회의사당에서, 이범석의 족청계를 중심으로 한 ‘원외(院外) 자유당’이 부산 동아극장에서 창당대회를 열어 이승만 대통령을 각각 의장과 당수로 내세우자,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이들의 분열은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심과 서로...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 감독한 영화 ‘전함 포템킨’ 개봉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 감독한 영화 ‘전함 포템킨’ 개봉

↑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유모차가 계단 아래로 굴러가는 ‘오데사 계단’ 장면   찰리 채플린이 “최고의 영화”라고 격찬했던 무성 영화 ‘전함 포템킨’이 모스크바 볼쇼이극장에서 개봉된 것은 러시아혁명 20주년 기념식이 열리고 있던 1925년 12월 24일이었다. 영화는 1905년 6월 27일 흑해 북쪽의 오데사항에서 실제로 일어난 포템킨 타브리체스키호 반란을 소재로 했다. 감독은 ‘전함 포템킨’이 개봉되기 8개월 전, 자신의 데뷔작 ‘파업’의 성공으로 일약 스타덤에...

찰스 디킨스 단편소설 ‘크리스마스 캐럴’ 출간

산업혁명이 초래한 비참한 사회상을 고발하면서도 늘 따뜻한 시각을 유지했던 영국의 소설가 찰스 디킨스가 1843년 12월 19일 66페이지짜리 단편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을 출간했다. 크리스마스를 소재로 한 5편의 시리즈 중 첫 번째 작품이다. 빈곤과 고통 속에서도 크리스마스가 주는 평온함때문일까, 디킨스는 거의 해마다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수필, 단편소설을 발표했다. 심지어 새로운 문학장르까지 개척했다는 평을 들을 정도였다. 10월에 “가진자의 타락상과 가난한 사람들을 향해...

‘탁월한 개혁가’ ‘실패한 이상주의자’ 논란 분분한 조광조 사약받고 숨져

1519년 12월 20일, 조광조가 유배지에서 사약을 받고 숨졌다. 38세였고, 관직에 몸담은지 5년째였다. 반정(反正)으로 왕위에 오른 중종이 성리학의 토대 위에 유교적 이상사회를 건설하고자 했던 조광조를 중용한 것은 시대의 소명이었다. 전임 연산군의 악정을 개혁하고 파괴된 유교질서를 회복하는 것이 중종과 조광조의 공통된 목표였다. 사간원을 거쳐 사헌부의 대사헌에 오른 조광조는 국가의 기강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있었다. 먼저 착수한 것이 현량과 설치. 과거제의...

베트남 민족해방전선 결성

1960년 12월 20일, 베트남독립동맹회(월맹)와 함께 베트남을 패망시킨 두 주역 가운데 하나인 베트남 민족해방전선(NFL)이 ‘반(反)고 딘 디엠, 반미’를 기치로 내걸고 캄보디아 국경 부근 밀림지대에서 결성됐다. 각계 대표 60여 명이 참석한 회의장 안에는 창립총회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있었고, 노출을 꺼리는 비밀요원 20여 명이 커튼 뒤에 숨어 안건을 논의했다. 이틀 간의 논의 끝에 민족주의연합정부 수립, 토지개혁, 미국개입 배제, 남북통일 등 10개항의 강령이...

샤를르 드골, 프랑스 대통령에 선출

1950년대 프랑스는 군소정당이 난립하고 단명 내각이 부침하는 취약한 내각제 나라였다. 드골은 한탄했다. “프랑스에는 위기가 와야 한다. 그것말고는 265가지의 치즈맛을 자랑하는 이 나라를 단결시킬 도리가 없다.” 예측대로 프랑스에 위기가 찾아왔다. 알제리 사태였다. 67세 드골이 12년 만에 다시 권력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알제리 사태가 야기한 군부의 불만을 무마하고 분열된 나라를 추스려달라는 국민들의 공감대가 작용한 때문이었다. 1958년 6월 1일, 드골의 독재자...

100억 달러 수출 달성

빈약한 기술과 자원 밖에 없던 1960∼70년대. 수출은 운명이었고 당위였다. 그 시절, 저임금으로 물건을 만들어 내다파는 것 그 길 말고는 먹고 살 일이 없었다. 수출을 위한 전 과정은 마치 군사작전처럼 진행됐다. 총사령관 박정희 대통령은 대통령 직속으로 ‘수출진흥 확대회의’를 신설, 수출을 직접 챙기고 독려했다.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것은 1964년 11월 30일에 돌파한 1억달러 수출이었다. 정부는 이날을 ‘수출의 날’로 제정, 매년 이날을 기념하며 수출에...

광부 123명 서독에 첫 파견

1963년 12월 21일, 서독 루르탄광지대에서 일할 우리나라 광부 123명이 에어프랑스 전세기편으로 김포공항을 떠났다. 광부들 얼굴에는 낯선 땅에 대한 두려움과 설레임이 교차했지만, 남편을, 자식을, 아버지를 이국땅으로 보내야 하는 가족들은 눈물을 삼키며 웃는 낯으로 보내야했다. 약속한 월급은 162달러50센트(기본급)였다. 1인당 GNP가 87달러(1962년)에 불과하고 경제가 침체했던 당시로서는 적지않은 돈이었다. 실업율이 8.1%(63년)에 달하고, 200명 이상의...

이재명 의사, 이완용 암살 미수

망국 전, 안중근의 이토 저격이 의열투쟁의 정화였다면 이완용을 암살하려다 미수에 그친 이재명의 의거는 마지막 귀결이었다. 1904년 나이 18세 때 미국 하와이로 건너가 농부로 일하면서도 이재명의 마음은 언제나 침략 원흉들을 처단하는데 있었다. 1907년 10월 고국으로 돌아와 늘 기회를 엿보고 있던 이재명에게 기회가 찾아온 것은 1909년 1월이었다. 이토 히로부미가 순종 황제의 평안도 순시 때 동행한다는 것이었다. 그를 처단할 생각으로 평양역 부근에서 기다렸으나 자칫하면...

도조 히데키 등 A급 전범 사형집행

인류를 죽음으로 몰아간 일본의 A급 전범 7명이 1948년 12월 23일 도쿄 스가모구치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도조 히데키, 히로타 고키, 도히하라 겐지, 이타가키 세이시로, 기무라 헤이타로, 쓰이 이와네, 무토 아키라. 단죄된 7명의 이름들이다. 자살이 실패로 끝나 교수대에 오른 대표적인 전범 도조 히데키는 처형 직전까지도 참회하지 않고 “욕망의 이승을 오늘 하직하고 미타(彌陀) 곁으로 가는 기쁨이여”라는 유언시를 남겼다. “살아서 포로가 되어 욕을 당하지 말라”며...

두 개의 자유당 창당

제1공화국의 버팀목이었던 자유당이 1951년 12월23일 임시수도 부산에서 창당됐다. 하지만 각기 다른 장소에서 두 개의 자유당이 동시에 출범, 시작부터가 파행이었다. 공화민정회가 중심이 된 ‘원내(院內) 자유당’이 국회의사당에서, 이범석의 족청계를 중심으로 한 ‘원외(院外) 자유당’이 부산 동아극장에서 창당대회를 열어 이승만 대통령을 각각 의장과 당수로 내세우자,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이들의 분열은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심과 서로...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 감독한 영화 ‘전함 포템킨’ 개봉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 감독한 영화 ‘전함 포템킨’ 개봉

↑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유모차가 계단 아래로 굴러가는 ‘오데사 계단’ 장면   찰리 채플린이 “최고의 영화”라고 격찬했던 무성 영화 ‘전함 포템킨’이 모스크바 볼쇼이극장에서 개봉된 것은 러시아혁명 20주년 기념식이 열리고 있던 1925년 12월 24일이었다. 영화는 1905년 6월 27일 흑해 북쪽의 오데사항에서 실제로 일어난 포템킨 타브리체스키호 반란을 소재로 했다. 감독은 ‘전함 포템킨’이 개봉되기 8개월 전, 자신의 데뷔작 ‘파업’의 성공으로 일약 스타덤에...

찰스 디킨스 단편소설 ‘크리스마스 캐럴’ 출간

산업혁명이 초래한 비참한 사회상을 고발하면서도 늘 따뜻한 시각을 유지했던 영국의 소설가 찰스 디킨스가 1843년 12월 19일 66페이지짜리 단편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을 출간했다. 크리스마스를 소재로 한 5편의 시리즈 중 첫 번째 작품이다. 빈곤과 고통 속에서도 크리스마스가 주는 평온함때문일까, 디킨스는 거의 해마다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수필, 단편소설을 발표했다. 심지어 새로운 문학장르까지 개척했다는 평을 들을 정도였다. 10월에 “가진자의 타락상과 가난한 사람들을 향해...

‘탁월한 개혁가’ ‘실패한 이상주의자’ 논란 분분한 조광조 사약받고 숨져

1519년 12월 20일, 조광조가 유배지에서 사약을 받고 숨졌다. 38세였고, 관직에 몸담은지 5년째였다. 반정(反正)으로 왕위에 오른 중종이 성리학의 토대 위에 유교적 이상사회를 건설하고자 했던 조광조를 중용한 것은 시대의 소명이었다. 전임 연산군의 악정을 개혁하고 파괴된 유교질서를 회복하는 것이 중종과 조광조의 공통된 목표였다. 사간원을 거쳐 사헌부의 대사헌에 오른 조광조는 국가의 기강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있었다. 먼저 착수한 것이 현량과 설치. 과거제의...

베트남 민족해방전선 결성

1960년 12월 20일, 베트남독립동맹회(월맹)와 함께 베트남을 패망시킨 두 주역 가운데 하나인 베트남 민족해방전선(NFL)이 ‘반(反)고 딘 디엠, 반미’를 기치로 내걸고 캄보디아 국경 부근 밀림지대에서 결성됐다. 각계 대표 60여 명이 참석한 회의장 안에는 창립총회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있었고, 노출을 꺼리는 비밀요원 20여 명이 커튼 뒤에 숨어 안건을 논의했다. 이틀 간의 논의 끝에 민족주의연합정부 수립, 토지개혁, 미국개입 배제, 남북통일 등 10개항의 강령이...

샤를르 드골, 프랑스 대통령에 선출

1950년대 프랑스는 군소정당이 난립하고 단명 내각이 부침하는 취약한 내각제 나라였다. 드골은 한탄했다. “프랑스에는 위기가 와야 한다. 그것말고는 265가지의 치즈맛을 자랑하는 이 나라를 단결시킬 도리가 없다.” 예측대로 프랑스에 위기가 찾아왔다. 알제리 사태였다. 67세 드골이 12년 만에 다시 권력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알제리 사태가 야기한 군부의 불만을 무마하고 분열된 나라를 추스려달라는 국민들의 공감대가 작용한 때문이었다. 1958년 6월 1일, 드골의 독재자...

100억 달러 수출 달성

빈약한 기술과 자원 밖에 없던 1960∼70년대. 수출은 운명이었고 당위였다. 그 시절, 저임금으로 물건을 만들어 내다파는 것 그 길 말고는 먹고 살 일이 없었다. 수출을 위한 전 과정은 마치 군사작전처럼 진행됐다. 총사령관 박정희 대통령은 대통령 직속으로 ‘수출진흥 확대회의’를 신설, 수출을 직접 챙기고 독려했다.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것은 1964년 11월 30일에 돌파한 1억달러 수출이었다. 정부는 이날을 ‘수출의 날’로 제정, 매년 이날을 기념하며 수출에...

광부 123명 서독에 첫 파견

1963년 12월 21일, 서독 루르탄광지대에서 일할 우리나라 광부 123명이 에어프랑스 전세기편으로 김포공항을 떠났다. 광부들 얼굴에는 낯선 땅에 대한 두려움과 설레임이 교차했지만, 남편을, 자식을, 아버지를 이국땅으로 보내야 하는 가족들은 눈물을 삼키며 웃는 낯으로 보내야했다. 약속한 월급은 162달러50센트(기본급)였다. 1인당 GNP가 87달러(1962년)에 불과하고 경제가 침체했던 당시로서는 적지않은 돈이었다. 실업율이 8.1%(63년)에 달하고, 200명 이상의...

이재명 의사, 이완용 암살 미수

망국 전, 안중근의 이토 저격이 의열투쟁의 정화였다면 이완용을 암살하려다 미수에 그친 이재명의 의거는 마지막 귀결이었다. 1904년 나이 18세 때 미국 하와이로 건너가 농부로 일하면서도 이재명의 마음은 언제나 침략 원흉들을 처단하는데 있었다. 1907년 10월 고국으로 돌아와 늘 기회를 엿보고 있던 이재명에게 기회가 찾아온 것은 1909년 1월이었다. 이토 히로부미가 순종 황제의 평안도 순시 때 동행한다는 것이었다. 그를 처단할 생각으로 평양역 부근에서 기다렸으나 자칫하면...

도조 히데키 등 A급 전범 사형집행

인류를 죽음으로 몰아간 일본의 A급 전범 7명이 1948년 12월 23일 도쿄 스가모구치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도조 히데키, 히로타 고키, 도히하라 겐지, 이타가키 세이시로, 기무라 헤이타로, 쓰이 이와네, 무토 아키라. 단죄된 7명의 이름들이다. 자살이 실패로 끝나 교수대에 오른 대표적인 전범 도조 히데키는 처형 직전까지도 참회하지 않고 “욕망의 이승을 오늘 하직하고 미타(彌陀) 곁으로 가는 기쁨이여”라는 유언시를 남겼다. “살아서 포로가 되어 욕을 당하지 말라”며...

두 개의 자유당 창당

제1공화국의 버팀목이었던 자유당이 1951년 12월23일 임시수도 부산에서 창당됐다. 하지만 각기 다른 장소에서 두 개의 자유당이 동시에 출범, 시작부터가 파행이었다. 공화민정회가 중심이 된 ‘원내(院內) 자유당’이 국회의사당에서, 이범석의 족청계를 중심으로 한 ‘원외(院外) 자유당’이 부산 동아극장에서 창당대회를 열어 이승만 대통령을 각각 의장과 당수로 내세우자,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이들의 분열은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심과 서로...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 감독한 영화 ‘전함 포템킨’ 개봉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 감독한 영화 ‘전함 포템킨’ 개봉

↑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유모차가 계단 아래로 굴러가는 ‘오데사 계단’ 장면   찰리 채플린이 “최고의 영화”라고 격찬했던 무성 영화 ‘전함 포템킨’이 모스크바 볼쇼이극장에서 개봉된 것은 러시아혁명 20주년 기념식이 열리고 있던 1925년 12월 24일이었다. 영화는 1905년 6월 27일 흑해 북쪽의 오데사항에서 실제로 일어난 포템킨 타브리체스키호 반란을 소재로 했다. 감독은 ‘전함 포템킨’이 개봉되기 8개월 전, 자신의 데뷔작 ‘파업’의 성공으로 일약 스타덤에...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