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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창 의사 의거… 히로히토 천황 향해 폭탄 던졌으나 실패

“인생의 목적이 쾌락이라면 31년 동안 대강 맛보았습니다. 영원한 쾌락을 위해 독립운동에 투신하겠습니다.” 1931년 1월, 상하이 임시정부를 찾아간 이봉창 의사가 김구 선생에게 자신의 결연한 의지를 이렇게 밝혔다. 일본에서 6년 간 생활한 적이 있는 이 의사는 1년 전 도쿄에 있을 때 천황이 지나간다고 길위에 엎드리면서 “폭탄이 있었으면…” 하고 아쉬워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임시정부도 천황 제거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던 터라 이 의사의 주장이 설득력있게 들렸다....

이탈리아의 ‘위대한 여행가’ 마르코 폴로 사망

1324년 1월 8일, ‘위대한 여행가’ 마르코 폴로가 중세 유럽인들에게 꿈과 용기를 심어주고는 고향 베네치아에서 70세로 숨졌다. 임종을 지킨 한 신부는 “이제는 하느님께 거짓 이야기를 그만두게 해달라고 기도하라”며 마르코 폴로의 경이로운 체험을 끝까지 믿으려 하지 않았다. 별명이 ‘떠벌이’였을 만큼 당시 사람들은 폴로의 동방세계 모험을 한낱 허풍으로만 받아들였다. 폴로가 아버지를 따라 미지의 땅 동방세계로 떠난 것은 17살 때이던 1271년이었다. 3년 간의 고생 끝에...

美 텍사스 스핀들톱에서 로터리 굴착법으로 대량 석유 시추에 성공

美 텍사스 스핀들톱에서 로터리 굴착법으로 대량 석유 시추에 성공

↑ 텍사스 스핀들톱에서 처음 대량 석유 시추에 성공하는 모습(1901.1.10)   석유의 상업적 이용 가능성이 처음 확인된 곳은 1859년 8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소도시 타이터스빌이다. 1851년 이곳 노천에서 처음 석유가 발견되자 뉴욕의 법률가 조지 비셀이 주변 땅을 매입해 은행가인 제임스 타운센드와 함께 코네티컷 석유회사를 세웠다. 그러나 그 정도의 분량으로는 채산성을 맞출 수 없었다. 결국 지하의 석유를 지상으로 퍼올려야 했는데 설사 퍼올리더라도 당시는...

이승만 대통령 ‘대마도는 우리 땅’ 전격 선언

1949년 1월 7일, 이승만 대통령이 내외신 기자들과의 회견을 통해 “대마도는 우리 땅”이라고 전격 선언했다. 패전으로 구 소련에 북방 도서 4도를 빼앗겨 의기소침해 있는 일본인들에겐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다. 이 대통령은 “배상요구는 어느 시기까지로 한정할 것인가”라는 한 기자의 질문에 답하던 중 느닷없이 이같이 폭탄선언을 했다. 이 대통령은 “대마도는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에 조공을 바쳐온 속지나 마찬가지였는데 350년 전 임진왜란을 일으킨 일본이 대마도를 무력강점한 뒤부터...

[제주 오름 가봐수까 ③] 용눈이오름은 제주 오름의 원형에 가장 가깝고 오름의 맛을 제대로 느끼는 곳

[제주 오름 가봐수까 ③] 용눈이오름은 제주 오름의 원형에 가장 가깝고 오름의 맛을 제대로 느끼는 곳

↑ 용눈이오름 능선에서 내려다본 세 분화구   ☞ 내맘대로 평점(★ 5개 기준). 등산 요소 ★★ 관광 요소 ★★★★   by 김지지   제주 오름의 원형에 가장 가까운 곳 제주 토박이에게 “제주 오름 중 한 곳만 추천해 달라”고 물었을 때 십중팔구 다랑쉬오름을 추천한다고 ②편에서 소개한 바 있다. 그러면 오름의 원형에 가장 가깝고 오름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내 기준으로 말하면 그곳은 구좌읍 종달리의 용눈이오름이다. 제주...

정부, 두발·교복 자율화 발표

그 시절, 등교길의 남학교 교문 앞을 지키고 선 교사들 손에는 의례히 바리캉(이발기계)과 회초리가 쥐어져 있었다. 학생의 머리가 조금이라도 길다 싶으면 어김없이 학생을 불러 바리캉으로 머리위에 고속도로를 냈다. 교복에 이름표가 붙어있지 않은 학생, 교복의 호크를 잠그지 않은 학생, 전날 하교길에 가방 속에 넣어두었던 교모를 미처 쓰지 않고 등교하던 학생들도 교사의 호통과 얼차례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도 1982년 1월 2일 정부의 두발․교복 자율화 발표와...

한·일 수교… 한·일기본조약과 협정비준서 교환

1965년 12월 18일 오전 10시36분, 이동원 외무장관과 시나 에쓰사부로 일본 외무장관이 서울의 중앙청에서 한·일기본조약과 협정비준서를 교환함으로써 한·일 간의 국교정상화를 위한 험난했던 여정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14년 간의 흥정은 단 10분만에 끝이 났고, 참석자 얼굴에는 착잡함이 배어있었다. 양국이 테이블에 마주한 것은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0월이었다. 예상대로 순탄치 않았다. 양국의 시각차가 너무 컸고, 구보다 망언, 휴전, 4·19혁명 등이 이어지면서...

모스크바 삼상회의 결과 발표

미국·영국·소련의 외무장관이 1945년 12월 16일부터 모스크바에 모여 전후처리 문제를 매듭지은 ‘모스크바 삼상(三相)회의’ 결과가 12월 27일 AP통신을 타고 국내에 전해지면서 겉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가 몰아쳤다. “조선에 임시로 민주주의 정부를 세우고, 이를위해 미소공동위원회를 설치하며 최고 5년 기한으로 미·영·소·중 4개국 신탁통치를 실시한다”는 발표를, 국민들이 새로운 굴레를 씌우려는 열강의 음모로 생각한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김구와 임시정부계열이 먼저 강한...

美 노예제 공식 폐지… 미국의 수정헌법 제13조 의회 통과

노예제가 영국(1833년)과 프랑스(1848년)에 이어 미국에서도 사라졌다. 노예제 폐지를 담은 미국의 수정헌법 제13조가 1865년 12월 18일 의회를 통과함으로써 인류는 진보의 발걸음을 한 번더 내디뎠다. 수정헌법 13조는 말한다. ‘노예제는 합중국 및 합중국의 관할에 속하는 어떤 지역에서도 금지된다. 정당한 재판에 의한 유죄판결을 받은 범죄의 처벌로서가 아닌 강제노역의 경우도 동일하다.’ 13조는 1619년 아프리카인들이 네덜란드 배에 실려 영국의 식민지였던 버지니아에...

윤봉길 의사 순국

1932년 12월 19일 아침 7시27분, 일본 이시카와현 가나자와형무소. 2명의 일본군이 10m 거리에서 목표물을 향해 조준사격자세를 취하고, 이어진 요란한 총소리와 함께 사형수의 고개가 떨구어졌다. 검안의가 절명을 확인한 시간은 13분 뒤인 7시40분. 스물다섯의 청년 윤봉길은, 장제스 중국 총통의 말마따나 “중국군 100만 대군도 못한 일”을 감히 해내고 이렇게 숨져갔다. 분이 안풀렸는지 일제는 시신을 인근 쓰레기 하치장에 암매장했다. 8개월 전인 4월29일 일본군은...

이봉창 의사 의거… 히로히토 천황 향해 폭탄 던졌으나 실패

“인생의 목적이 쾌락이라면 31년 동안 대강 맛보았습니다. 영원한 쾌락을 위해 독립운동에 투신하겠습니다.” 1931년 1월, 상하이 임시정부를 찾아간 이봉창 의사가 김구 선생에게 자신의 결연한 의지를 이렇게 밝혔다. 일본에서 6년 간 생활한 적이 있는 이 의사는 1년 전 도쿄에 있을 때 천황이 지나간다고 길위에 엎드리면서 “폭탄이 있었으면…” 하고 아쉬워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임시정부도 천황 제거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던 터라 이 의사의 주장이 설득력있게 들렸다....

이탈리아의 ‘위대한 여행가’ 마르코 폴로 사망

1324년 1월 8일, ‘위대한 여행가’ 마르코 폴로가 중세 유럽인들에게 꿈과 용기를 심어주고는 고향 베네치아에서 70세로 숨졌다. 임종을 지킨 한 신부는 “이제는 하느님께 거짓 이야기를 그만두게 해달라고 기도하라”며 마르코 폴로의 경이로운 체험을 끝까지 믿으려 하지 않았다. 별명이 ‘떠벌이’였을 만큼 당시 사람들은 폴로의 동방세계 모험을 한낱 허풍으로만 받아들였다. 폴로가 아버지를 따라 미지의 땅 동방세계로 떠난 것은 17살 때이던 1271년이었다. 3년 간의 고생 끝에...

美 텍사스 스핀들톱에서 로터리 굴착법으로 대량 석유 시추에 성공

美 텍사스 스핀들톱에서 로터리 굴착법으로 대량 석유 시추에 성공

↑ 텍사스 스핀들톱에서 처음 대량 석유 시추에 성공하는 모습(1901.1.10)   석유의 상업적 이용 가능성이 처음 확인된 곳은 1859년 8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소도시 타이터스빌이다. 1851년 이곳 노천에서 처음 석유가 발견되자 뉴욕의 법률가 조지 비셀이 주변 땅을 매입해 은행가인 제임스 타운센드와 함께 코네티컷 석유회사를 세웠다. 그러나 그 정도의 분량으로는 채산성을 맞출 수 없었다. 결국 지하의 석유를 지상으로 퍼올려야 했는데 설사 퍼올리더라도 당시는...

이승만 대통령 ‘대마도는 우리 땅’ 전격 선언

1949년 1월 7일, 이승만 대통령이 내외신 기자들과의 회견을 통해 “대마도는 우리 땅”이라고 전격 선언했다. 패전으로 구 소련에 북방 도서 4도를 빼앗겨 의기소침해 있는 일본인들에겐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다. 이 대통령은 “배상요구는 어느 시기까지로 한정할 것인가”라는 한 기자의 질문에 답하던 중 느닷없이 이같이 폭탄선언을 했다. 이 대통령은 “대마도는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에 조공을 바쳐온 속지나 마찬가지였는데 350년 전 임진왜란을 일으킨 일본이 대마도를 무력강점한 뒤부터...

[제주 오름 가봐수까 ③] 용눈이오름은 제주 오름의 원형에 가장 가깝고 오름의 맛을 제대로 느끼는 곳

[제주 오름 가봐수까 ③] 용눈이오름은 제주 오름의 원형에 가장 가깝고 오름의 맛을 제대로 느끼는 곳

↑ 용눈이오름 능선에서 내려다본 세 분화구   ☞ 내맘대로 평점(★ 5개 기준). 등산 요소 ★★ 관광 요소 ★★★★   by 김지지   제주 오름의 원형에 가장 가까운 곳 제주 토박이에게 “제주 오름 중 한 곳만 추천해 달라”고 물었을 때 십중팔구 다랑쉬오름을 추천한다고 ②편에서 소개한 바 있다. 그러면 오름의 원형에 가장 가깝고 오름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내 기준으로 말하면 그곳은 구좌읍 종달리의 용눈이오름이다. 제주...

정부, 두발·교복 자율화 발표

그 시절, 등교길의 남학교 교문 앞을 지키고 선 교사들 손에는 의례히 바리캉(이발기계)과 회초리가 쥐어져 있었다. 학생의 머리가 조금이라도 길다 싶으면 어김없이 학생을 불러 바리캉으로 머리위에 고속도로를 냈다. 교복에 이름표가 붙어있지 않은 학생, 교복의 호크를 잠그지 않은 학생, 전날 하교길에 가방 속에 넣어두었던 교모를 미처 쓰지 않고 등교하던 학생들도 교사의 호통과 얼차례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도 1982년 1월 2일 정부의 두발․교복 자율화 발표와...

한·일 수교… 한·일기본조약과 협정비준서 교환

1965년 12월 18일 오전 10시36분, 이동원 외무장관과 시나 에쓰사부로 일본 외무장관이 서울의 중앙청에서 한·일기본조약과 협정비준서를 교환함으로써 한·일 간의 국교정상화를 위한 험난했던 여정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14년 간의 흥정은 단 10분만에 끝이 났고, 참석자 얼굴에는 착잡함이 배어있었다. 양국이 테이블에 마주한 것은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0월이었다. 예상대로 순탄치 않았다. 양국의 시각차가 너무 컸고, 구보다 망언, 휴전, 4·19혁명 등이 이어지면서...

모스크바 삼상회의 결과 발표

미국·영국·소련의 외무장관이 1945년 12월 16일부터 모스크바에 모여 전후처리 문제를 매듭지은 ‘모스크바 삼상(三相)회의’ 결과가 12월 27일 AP통신을 타고 국내에 전해지면서 겉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가 몰아쳤다. “조선에 임시로 민주주의 정부를 세우고, 이를위해 미소공동위원회를 설치하며 최고 5년 기한으로 미·영·소·중 4개국 신탁통치를 실시한다”는 발표를, 국민들이 새로운 굴레를 씌우려는 열강의 음모로 생각한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김구와 임시정부계열이 먼저 강한...

美 노예제 공식 폐지… 미국의 수정헌법 제13조 의회 통과

노예제가 영국(1833년)과 프랑스(1848년)에 이어 미국에서도 사라졌다. 노예제 폐지를 담은 미국의 수정헌법 제13조가 1865년 12월 18일 의회를 통과함으로써 인류는 진보의 발걸음을 한 번더 내디뎠다. 수정헌법 13조는 말한다. ‘노예제는 합중국 및 합중국의 관할에 속하는 어떤 지역에서도 금지된다. 정당한 재판에 의한 유죄판결을 받은 범죄의 처벌로서가 아닌 강제노역의 경우도 동일하다.’ 13조는 1619년 아프리카인들이 네덜란드 배에 실려 영국의 식민지였던 버지니아에...

윤봉길 의사 순국

1932년 12월 19일 아침 7시27분, 일본 이시카와현 가나자와형무소. 2명의 일본군이 10m 거리에서 목표물을 향해 조준사격자세를 취하고, 이어진 요란한 총소리와 함께 사형수의 고개가 떨구어졌다. 검안의가 절명을 확인한 시간은 13분 뒤인 7시40분. 스물다섯의 청년 윤봉길은, 장제스 중국 총통의 말마따나 “중국군 100만 대군도 못한 일”을 감히 해내고 이렇게 숨져갔다. 분이 안풀렸는지 일제는 시신을 인근 쓰레기 하치장에 암매장했다. 8개월 전인 4월29일 일본군은...

이봉창 의사 의거… 히로히토 천황 향해 폭탄 던졌으나 실패

“인생의 목적이 쾌락이라면 31년 동안 대강 맛보았습니다. 영원한 쾌락을 위해 독립운동에 투신하겠습니다.” 1931년 1월, 상하이 임시정부를 찾아간 이봉창 의사가 김구 선생에게 자신의 결연한 의지를 이렇게 밝혔다. 일본에서 6년 간 생활한 적이 있는 이 의사는 1년 전 도쿄에 있을 때 천황이 지나간다고 길위에 엎드리면서 “폭탄이 있었으면…” 하고 아쉬워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임시정부도 천황 제거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던 터라 이 의사의 주장이 설득력있게 들렸다....

이탈리아의 ‘위대한 여행가’ 마르코 폴로 사망

1324년 1월 8일, ‘위대한 여행가’ 마르코 폴로가 중세 유럽인들에게 꿈과 용기를 심어주고는 고향 베네치아에서 70세로 숨졌다. 임종을 지킨 한 신부는 “이제는 하느님께 거짓 이야기를 그만두게 해달라고 기도하라”며 마르코 폴로의 경이로운 체험을 끝까지 믿으려 하지 않았다. 별명이 ‘떠벌이’였을 만큼 당시 사람들은 폴로의 동방세계 모험을 한낱 허풍으로만 받아들였다. 폴로가 아버지를 따라 미지의 땅 동방세계로 떠난 것은 17살 때이던 1271년이었다. 3년 간의 고생 끝에...

美 텍사스 스핀들톱에서 로터리 굴착법으로 대량 석유 시추에 성공

美 텍사스 스핀들톱에서 로터리 굴착법으로 대량 석유 시추에 성공

↑ 텍사스 스핀들톱에서 처음 대량 석유 시추에 성공하는 모습(1901.1.10)   석유의 상업적 이용 가능성이 처음 확인된 곳은 1859년 8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소도시 타이터스빌이다. 1851년 이곳 노천에서 처음 석유가 발견되자 뉴욕의 법률가 조지 비셀이 주변 땅을 매입해 은행가인 제임스 타운센드와 함께 코네티컷 석유회사를 세웠다. 그러나 그 정도의 분량으로는 채산성을 맞출 수 없었다. 결국 지하의 석유를 지상으로 퍼올려야 했는데 설사 퍼올리더라도 당시는...

이승만 대통령 ‘대마도는 우리 땅’ 전격 선언

1949년 1월 7일, 이승만 대통령이 내외신 기자들과의 회견을 통해 “대마도는 우리 땅”이라고 전격 선언했다. 패전으로 구 소련에 북방 도서 4도를 빼앗겨 의기소침해 있는 일본인들에겐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다. 이 대통령은 “배상요구는 어느 시기까지로 한정할 것인가”라는 한 기자의 질문에 답하던 중 느닷없이 이같이 폭탄선언을 했다. 이 대통령은 “대마도는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에 조공을 바쳐온 속지나 마찬가지였는데 350년 전 임진왜란을 일으킨 일본이 대마도를 무력강점한 뒤부터...

[제주 오름 가봐수까 ③] 용눈이오름은 제주 오름의 원형에 가장 가깝고 오름의 맛을 제대로 느끼는 곳

[제주 오름 가봐수까 ③] 용눈이오름은 제주 오름의 원형에 가장 가깝고 오름의 맛을 제대로 느끼는 곳

↑ 용눈이오름 능선에서 내려다본 세 분화구   ☞ 내맘대로 평점(★ 5개 기준). 등산 요소 ★★ 관광 요소 ★★★★   by 김지지   제주 오름의 원형에 가장 가까운 곳 제주 토박이에게 “제주 오름 중 한 곳만 추천해 달라”고 물었을 때 십중팔구 다랑쉬오름을 추천한다고 ②편에서 소개한 바 있다. 그러면 오름의 원형에 가장 가깝고 오름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내 기준으로 말하면 그곳은 구좌읍 종달리의 용눈이오름이다. 제주...

정부, 두발·교복 자율화 발표

그 시절, 등교길의 남학교 교문 앞을 지키고 선 교사들 손에는 의례히 바리캉(이발기계)과 회초리가 쥐어져 있었다. 학생의 머리가 조금이라도 길다 싶으면 어김없이 학생을 불러 바리캉으로 머리위에 고속도로를 냈다. 교복에 이름표가 붙어있지 않은 학생, 교복의 호크를 잠그지 않은 학생, 전날 하교길에 가방 속에 넣어두었던 교모를 미처 쓰지 않고 등교하던 학생들도 교사의 호통과 얼차례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도 1982년 1월 2일 정부의 두발․교복 자율화 발표와...

한·일 수교… 한·일기본조약과 협정비준서 교환

1965년 12월 18일 오전 10시36분, 이동원 외무장관과 시나 에쓰사부로 일본 외무장관이 서울의 중앙청에서 한·일기본조약과 협정비준서를 교환함으로써 한·일 간의 국교정상화를 위한 험난했던 여정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14년 간의 흥정은 단 10분만에 끝이 났고, 참석자 얼굴에는 착잡함이 배어있었다. 양국이 테이블에 마주한 것은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0월이었다. 예상대로 순탄치 않았다. 양국의 시각차가 너무 컸고, 구보다 망언, 휴전, 4·19혁명 등이 이어지면서...

모스크바 삼상회의 결과 발표

미국·영국·소련의 외무장관이 1945년 12월 16일부터 모스크바에 모여 전후처리 문제를 매듭지은 ‘모스크바 삼상(三相)회의’ 결과가 12월 27일 AP통신을 타고 국내에 전해지면서 겉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가 몰아쳤다. “조선에 임시로 민주주의 정부를 세우고, 이를위해 미소공동위원회를 설치하며 최고 5년 기한으로 미·영·소·중 4개국 신탁통치를 실시한다”는 발표를, 국민들이 새로운 굴레를 씌우려는 열강의 음모로 생각한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김구와 임시정부계열이 먼저 강한...

美 노예제 공식 폐지… 미국의 수정헌법 제13조 의회 통과

노예제가 영국(1833년)과 프랑스(1848년)에 이어 미국에서도 사라졌다. 노예제 폐지를 담은 미국의 수정헌법 제13조가 1865년 12월 18일 의회를 통과함으로써 인류는 진보의 발걸음을 한 번더 내디뎠다. 수정헌법 13조는 말한다. ‘노예제는 합중국 및 합중국의 관할에 속하는 어떤 지역에서도 금지된다. 정당한 재판에 의한 유죄판결을 받은 범죄의 처벌로서가 아닌 강제노역의 경우도 동일하다.’ 13조는 1619년 아프리카인들이 네덜란드 배에 실려 영국의 식민지였던 버지니아에...

윤봉길 의사 순국

1932년 12월 19일 아침 7시27분, 일본 이시카와현 가나자와형무소. 2명의 일본군이 10m 거리에서 목표물을 향해 조준사격자세를 취하고, 이어진 요란한 총소리와 함께 사형수의 고개가 떨구어졌다. 검안의가 절명을 확인한 시간은 13분 뒤인 7시40분. 스물다섯의 청년 윤봉길은, 장제스 중국 총통의 말마따나 “중국군 100만 대군도 못한 일”을 감히 해내고 이렇게 숨져갔다. 분이 안풀렸는지 일제는 시신을 인근 쓰레기 하치장에 암매장했다. 8개월 전인 4월29일 일본군은...

이봉창 의사 의거… 히로히토 천황 향해 폭탄 던졌으나 실패

“인생의 목적이 쾌락이라면 31년 동안 대강 맛보았습니다. 영원한 쾌락을 위해 독립운동에 투신하겠습니다.” 1931년 1월, 상하이 임시정부를 찾아간 이봉창 의사가 김구 선생에게 자신의 결연한 의지를 이렇게 밝혔다. 일본에서 6년 간 생활한 적이 있는 이 의사는 1년 전 도쿄에 있을 때 천황이 지나간다고 길위에 엎드리면서 “폭탄이 있었으면…” 하고 아쉬워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임시정부도 천황 제거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던 터라 이 의사의 주장이 설득력있게 들렸다....

이탈리아의 ‘위대한 여행가’ 마르코 폴로 사망

1324년 1월 8일, ‘위대한 여행가’ 마르코 폴로가 중세 유럽인들에게 꿈과 용기를 심어주고는 고향 베네치아에서 70세로 숨졌다. 임종을 지킨 한 신부는 “이제는 하느님께 거짓 이야기를 그만두게 해달라고 기도하라”며 마르코 폴로의 경이로운 체험을 끝까지 믿으려 하지 않았다. 별명이 ‘떠벌이’였을 만큼 당시 사람들은 폴로의 동방세계 모험을 한낱 허풍으로만 받아들였다. 폴로가 아버지를 따라 미지의 땅 동방세계로 떠난 것은 17살 때이던 1271년이었다. 3년 간의 고생 끝에...

美 텍사스 스핀들톱에서 로터리 굴착법으로 대량 석유 시추에 성공

美 텍사스 스핀들톱에서 로터리 굴착법으로 대량 석유 시추에 성공

↑ 텍사스 스핀들톱에서 처음 대량 석유 시추에 성공하는 모습(1901.1.10)   석유의 상업적 이용 가능성이 처음 확인된 곳은 1859년 8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소도시 타이터스빌이다. 1851년 이곳 노천에서 처음 석유가 발견되자 뉴욕의 법률가 조지 비셀이 주변 땅을 매입해 은행가인 제임스 타운센드와 함께 코네티컷 석유회사를 세웠다. 그러나 그 정도의 분량으로는 채산성을 맞출 수 없었다. 결국 지하의 석유를 지상으로 퍼올려야 했는데 설사 퍼올리더라도 당시는...

이승만 대통령 ‘대마도는 우리 땅’ 전격 선언

1949년 1월 7일, 이승만 대통령이 내외신 기자들과의 회견을 통해 “대마도는 우리 땅”이라고 전격 선언했다. 패전으로 구 소련에 북방 도서 4도를 빼앗겨 의기소침해 있는 일본인들에겐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다. 이 대통령은 “배상요구는 어느 시기까지로 한정할 것인가”라는 한 기자의 질문에 답하던 중 느닷없이 이같이 폭탄선언을 했다. 이 대통령은 “대마도는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에 조공을 바쳐온 속지나 마찬가지였는데 350년 전 임진왜란을 일으킨 일본이 대마도를 무력강점한 뒤부터...

[제주 오름 가봐수까 ③] 용눈이오름은 제주 오름의 원형에 가장 가깝고 오름의 맛을 제대로 느끼는 곳

[제주 오름 가봐수까 ③] 용눈이오름은 제주 오름의 원형에 가장 가깝고 오름의 맛을 제대로 느끼는 곳

↑ 용눈이오름 능선에서 내려다본 세 분화구   ☞ 내맘대로 평점(★ 5개 기준). 등산 요소 ★★ 관광 요소 ★★★★   by 김지지   제주 오름의 원형에 가장 가까운 곳 제주 토박이에게 “제주 오름 중 한 곳만 추천해 달라”고 물었을 때 십중팔구 다랑쉬오름을 추천한다고 ②편에서 소개한 바 있다. 그러면 오름의 원형에 가장 가깝고 오름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내 기준으로 말하면 그곳은 구좌읍 종달리의 용눈이오름이다. 제주...

정부, 두발·교복 자율화 발표

그 시절, 등교길의 남학교 교문 앞을 지키고 선 교사들 손에는 의례히 바리캉(이발기계)과 회초리가 쥐어져 있었다. 학생의 머리가 조금이라도 길다 싶으면 어김없이 학생을 불러 바리캉으로 머리위에 고속도로를 냈다. 교복에 이름표가 붙어있지 않은 학생, 교복의 호크를 잠그지 않은 학생, 전날 하교길에 가방 속에 넣어두었던 교모를 미처 쓰지 않고 등교하던 학생들도 교사의 호통과 얼차례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도 1982년 1월 2일 정부의 두발․교복 자율화 발표와...

한·일 수교… 한·일기본조약과 협정비준서 교환

1965년 12월 18일 오전 10시36분, 이동원 외무장관과 시나 에쓰사부로 일본 외무장관이 서울의 중앙청에서 한·일기본조약과 협정비준서를 교환함으로써 한·일 간의 국교정상화를 위한 험난했던 여정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14년 간의 흥정은 단 10분만에 끝이 났고, 참석자 얼굴에는 착잡함이 배어있었다. 양국이 테이블에 마주한 것은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0월이었다. 예상대로 순탄치 않았다. 양국의 시각차가 너무 컸고, 구보다 망언, 휴전, 4·19혁명 등이 이어지면서...

모스크바 삼상회의 결과 발표

미국·영국·소련의 외무장관이 1945년 12월 16일부터 모스크바에 모여 전후처리 문제를 매듭지은 ‘모스크바 삼상(三相)회의’ 결과가 12월 27일 AP통신을 타고 국내에 전해지면서 겉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가 몰아쳤다. “조선에 임시로 민주주의 정부를 세우고, 이를위해 미소공동위원회를 설치하며 최고 5년 기한으로 미·영·소·중 4개국 신탁통치를 실시한다”는 발표를, 국민들이 새로운 굴레를 씌우려는 열강의 음모로 생각한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김구와 임시정부계열이 먼저 강한...

美 노예제 공식 폐지… 미국의 수정헌법 제13조 의회 통과

노예제가 영국(1833년)과 프랑스(1848년)에 이어 미국에서도 사라졌다. 노예제 폐지를 담은 미국의 수정헌법 제13조가 1865년 12월 18일 의회를 통과함으로써 인류는 진보의 발걸음을 한 번더 내디뎠다. 수정헌법 13조는 말한다. ‘노예제는 합중국 및 합중국의 관할에 속하는 어떤 지역에서도 금지된다. 정당한 재판에 의한 유죄판결을 받은 범죄의 처벌로서가 아닌 강제노역의 경우도 동일하다.’ 13조는 1619년 아프리카인들이 네덜란드 배에 실려 영국의 식민지였던 버지니아에...

윤봉길 의사 순국

1932년 12월 19일 아침 7시27분, 일본 이시카와현 가나자와형무소. 2명의 일본군이 10m 거리에서 목표물을 향해 조준사격자세를 취하고, 이어진 요란한 총소리와 함께 사형수의 고개가 떨구어졌다. 검안의가 절명을 확인한 시간은 13분 뒤인 7시40분. 스물다섯의 청년 윤봉길은, 장제스 중국 총통의 말마따나 “중국군 100만 대군도 못한 일”을 감히 해내고 이렇게 숨져갔다. 분이 안풀렸는지 일제는 시신을 인근 쓰레기 하치장에 암매장했다. 8개월 전인 4월29일 일본군은...

이봉창 의사 의거… 히로히토 천황 향해 폭탄 던졌으나 실패

“인생의 목적이 쾌락이라면 31년 동안 대강 맛보았습니다. 영원한 쾌락을 위해 독립운동에 투신하겠습니다.” 1931년 1월, 상하이 임시정부를 찾아간 이봉창 의사가 김구 선생에게 자신의 결연한 의지를 이렇게 밝혔다. 일본에서 6년 간 생활한 적이 있는 이 의사는 1년 전 도쿄에 있을 때 천황이 지나간다고 길위에 엎드리면서 “폭탄이 있었으면…” 하고 아쉬워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임시정부도 천황 제거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던 터라 이 의사의 주장이 설득력있게 들렸다....

이탈리아의 ‘위대한 여행가’ 마르코 폴로 사망

1324년 1월 8일, ‘위대한 여행가’ 마르코 폴로가 중세 유럽인들에게 꿈과 용기를 심어주고는 고향 베네치아에서 70세로 숨졌다. 임종을 지킨 한 신부는 “이제는 하느님께 거짓 이야기를 그만두게 해달라고 기도하라”며 마르코 폴로의 경이로운 체험을 끝까지 믿으려 하지 않았다. 별명이 ‘떠벌이’였을 만큼 당시 사람들은 폴로의 동방세계 모험을 한낱 허풍으로만 받아들였다. 폴로가 아버지를 따라 미지의 땅 동방세계로 떠난 것은 17살 때이던 1271년이었다. 3년 간의 고생 끝에...

美 텍사스 스핀들톱에서 로터리 굴착법으로 대량 석유 시추에 성공

美 텍사스 스핀들톱에서 로터리 굴착법으로 대량 석유 시추에 성공

↑ 텍사스 스핀들톱에서 처음 대량 석유 시추에 성공하는 모습(1901.1.10)   석유의 상업적 이용 가능성이 처음 확인된 곳은 1859년 8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소도시 타이터스빌이다. 1851년 이곳 노천에서 처음 석유가 발견되자 뉴욕의 법률가 조지 비셀이 주변 땅을 매입해 은행가인 제임스 타운센드와 함께 코네티컷 석유회사를 세웠다. 그러나 그 정도의 분량으로는 채산성을 맞출 수 없었다. 결국 지하의 석유를 지상으로 퍼올려야 했는데 설사 퍼올리더라도 당시는...

이승만 대통령 ‘대마도는 우리 땅’ 전격 선언

1949년 1월 7일, 이승만 대통령이 내외신 기자들과의 회견을 통해 “대마도는 우리 땅”이라고 전격 선언했다. 패전으로 구 소련에 북방 도서 4도를 빼앗겨 의기소침해 있는 일본인들에겐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다. 이 대통령은 “배상요구는 어느 시기까지로 한정할 것인가”라는 한 기자의 질문에 답하던 중 느닷없이 이같이 폭탄선언을 했다. 이 대통령은 “대마도는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에 조공을 바쳐온 속지나 마찬가지였는데 350년 전 임진왜란을 일으킨 일본이 대마도를 무력강점한 뒤부터...

[제주 오름 가봐수까 ③] 용눈이오름은 제주 오름의 원형에 가장 가깝고 오름의 맛을 제대로 느끼는 곳

[제주 오름 가봐수까 ③] 용눈이오름은 제주 오름의 원형에 가장 가깝고 오름의 맛을 제대로 느끼는 곳

↑ 용눈이오름 능선에서 내려다본 세 분화구   ☞ 내맘대로 평점(★ 5개 기준). 등산 요소 ★★ 관광 요소 ★★★★   by 김지지   제주 오름의 원형에 가장 가까운 곳 제주 토박이에게 “제주 오름 중 한 곳만 추천해 달라”고 물었을 때 십중팔구 다랑쉬오름을 추천한다고 ②편에서 소개한 바 있다. 그러면 오름의 원형에 가장 가깝고 오름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내 기준으로 말하면 그곳은 구좌읍 종달리의 용눈이오름이다. 제주...

정부, 두발·교복 자율화 발표

그 시절, 등교길의 남학교 교문 앞을 지키고 선 교사들 손에는 의례히 바리캉(이발기계)과 회초리가 쥐어져 있었다. 학생의 머리가 조금이라도 길다 싶으면 어김없이 학생을 불러 바리캉으로 머리위에 고속도로를 냈다. 교복에 이름표가 붙어있지 않은 학생, 교복의 호크를 잠그지 않은 학생, 전날 하교길에 가방 속에 넣어두었던 교모를 미처 쓰지 않고 등교하던 학생들도 교사의 호통과 얼차례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도 1982년 1월 2일 정부의 두발․교복 자율화 발표와...

한·일 수교… 한·일기본조약과 협정비준서 교환

1965년 12월 18일 오전 10시36분, 이동원 외무장관과 시나 에쓰사부로 일본 외무장관이 서울의 중앙청에서 한·일기본조약과 협정비준서를 교환함으로써 한·일 간의 국교정상화를 위한 험난했던 여정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14년 간의 흥정은 단 10분만에 끝이 났고, 참석자 얼굴에는 착잡함이 배어있었다. 양국이 테이블에 마주한 것은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0월이었다. 예상대로 순탄치 않았다. 양국의 시각차가 너무 컸고, 구보다 망언, 휴전, 4·19혁명 등이 이어지면서...

모스크바 삼상회의 결과 발표

미국·영국·소련의 외무장관이 1945년 12월 16일부터 모스크바에 모여 전후처리 문제를 매듭지은 ‘모스크바 삼상(三相)회의’ 결과가 12월 27일 AP통신을 타고 국내에 전해지면서 겉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가 몰아쳤다. “조선에 임시로 민주주의 정부를 세우고, 이를위해 미소공동위원회를 설치하며 최고 5년 기한으로 미·영·소·중 4개국 신탁통치를 실시한다”는 발표를, 국민들이 새로운 굴레를 씌우려는 열강의 음모로 생각한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김구와 임시정부계열이 먼저 강한...

美 노예제 공식 폐지… 미국의 수정헌법 제13조 의회 통과

노예제가 영국(1833년)과 프랑스(1848년)에 이어 미국에서도 사라졌다. 노예제 폐지를 담은 미국의 수정헌법 제13조가 1865년 12월 18일 의회를 통과함으로써 인류는 진보의 발걸음을 한 번더 내디뎠다. 수정헌법 13조는 말한다. ‘노예제는 합중국 및 합중국의 관할에 속하는 어떤 지역에서도 금지된다. 정당한 재판에 의한 유죄판결을 받은 범죄의 처벌로서가 아닌 강제노역의 경우도 동일하다.’ 13조는 1619년 아프리카인들이 네덜란드 배에 실려 영국의 식민지였던 버지니아에...

윤봉길 의사 순국

1932년 12월 19일 아침 7시27분, 일본 이시카와현 가나자와형무소. 2명의 일본군이 10m 거리에서 목표물을 향해 조준사격자세를 취하고, 이어진 요란한 총소리와 함께 사형수의 고개가 떨구어졌다. 검안의가 절명을 확인한 시간은 13분 뒤인 7시40분. 스물다섯의 청년 윤봉길은, 장제스 중국 총통의 말마따나 “중국군 100만 대군도 못한 일”을 감히 해내고 이렇게 숨져갔다. 분이 안풀렸는지 일제는 시신을 인근 쓰레기 하치장에 암매장했다. 8개월 전인 4월29일 일본군은...

이봉창 의사 의거… 히로히토 천황 향해 폭탄 던졌으나 실패

“인생의 목적이 쾌락이라면 31년 동안 대강 맛보았습니다. 영원한 쾌락을 위해 독립운동에 투신하겠습니다.” 1931년 1월, 상하이 임시정부를 찾아간 이봉창 의사가 김구 선생에게 자신의 결연한 의지를 이렇게 밝혔다. 일본에서 6년 간 생활한 적이 있는 이 의사는 1년 전 도쿄에 있을 때 천황이 지나간다고 길위에 엎드리면서 “폭탄이 있었으면…” 하고 아쉬워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임시정부도 천황 제거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던 터라 이 의사의 주장이 설득력있게 들렸다....

이탈리아의 ‘위대한 여행가’ 마르코 폴로 사망

1324년 1월 8일, ‘위대한 여행가’ 마르코 폴로가 중세 유럽인들에게 꿈과 용기를 심어주고는 고향 베네치아에서 70세로 숨졌다. 임종을 지킨 한 신부는 “이제는 하느님께 거짓 이야기를 그만두게 해달라고 기도하라”며 마르코 폴로의 경이로운 체험을 끝까지 믿으려 하지 않았다. 별명이 ‘떠벌이’였을 만큼 당시 사람들은 폴로의 동방세계 모험을 한낱 허풍으로만 받아들였다. 폴로가 아버지를 따라 미지의 땅 동방세계로 떠난 것은 17살 때이던 1271년이었다. 3년 간의 고생 끝에...

美 텍사스 스핀들톱에서 로터리 굴착법으로 대량 석유 시추에 성공

美 텍사스 스핀들톱에서 로터리 굴착법으로 대량 석유 시추에 성공

↑ 텍사스 스핀들톱에서 처음 대량 석유 시추에 성공하는 모습(1901.1.10)   석유의 상업적 이용 가능성이 처음 확인된 곳은 1859년 8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소도시 타이터스빌이다. 1851년 이곳 노천에서 처음 석유가 발견되자 뉴욕의 법률가 조지 비셀이 주변 땅을 매입해 은행가인 제임스 타운센드와 함께 코네티컷 석유회사를 세웠다. 그러나 그 정도의 분량으로는 채산성을 맞출 수 없었다. 결국 지하의 석유를 지상으로 퍼올려야 했는데 설사 퍼올리더라도 당시는...

이승만 대통령 ‘대마도는 우리 땅’ 전격 선언

1949년 1월 7일, 이승만 대통령이 내외신 기자들과의 회견을 통해 “대마도는 우리 땅”이라고 전격 선언했다. 패전으로 구 소련에 북방 도서 4도를 빼앗겨 의기소침해 있는 일본인들에겐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다. 이 대통령은 “배상요구는 어느 시기까지로 한정할 것인가”라는 한 기자의 질문에 답하던 중 느닷없이 이같이 폭탄선언을 했다. 이 대통령은 “대마도는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에 조공을 바쳐온 속지나 마찬가지였는데 350년 전 임진왜란을 일으킨 일본이 대마도를 무력강점한 뒤부터...

[제주 오름 가봐수까 ③] 용눈이오름은 제주 오름의 원형에 가장 가깝고 오름의 맛을 제대로 느끼는 곳

[제주 오름 가봐수까 ③] 용눈이오름은 제주 오름의 원형에 가장 가깝고 오름의 맛을 제대로 느끼는 곳

↑ 용눈이오름 능선에서 내려다본 세 분화구   ☞ 내맘대로 평점(★ 5개 기준). 등산 요소 ★★ 관광 요소 ★★★★   by 김지지   제주 오름의 원형에 가장 가까운 곳 제주 토박이에게 “제주 오름 중 한 곳만 추천해 달라”고 물었을 때 십중팔구 다랑쉬오름을 추천한다고 ②편에서 소개한 바 있다. 그러면 오름의 원형에 가장 가깝고 오름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내 기준으로 말하면 그곳은 구좌읍 종달리의 용눈이오름이다. 제주...

정부, 두발·교복 자율화 발표

그 시절, 등교길의 남학교 교문 앞을 지키고 선 교사들 손에는 의례히 바리캉(이발기계)과 회초리가 쥐어져 있었다. 학생의 머리가 조금이라도 길다 싶으면 어김없이 학생을 불러 바리캉으로 머리위에 고속도로를 냈다. 교복에 이름표가 붙어있지 않은 학생, 교복의 호크를 잠그지 않은 학생, 전날 하교길에 가방 속에 넣어두었던 교모를 미처 쓰지 않고 등교하던 학생들도 교사의 호통과 얼차례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도 1982년 1월 2일 정부의 두발․교복 자율화 발표와...

한·일 수교… 한·일기본조약과 협정비준서 교환

1965년 12월 18일 오전 10시36분, 이동원 외무장관과 시나 에쓰사부로 일본 외무장관이 서울의 중앙청에서 한·일기본조약과 협정비준서를 교환함으로써 한·일 간의 국교정상화를 위한 험난했던 여정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14년 간의 흥정은 단 10분만에 끝이 났고, 참석자 얼굴에는 착잡함이 배어있었다. 양국이 테이블에 마주한 것은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0월이었다. 예상대로 순탄치 않았다. 양국의 시각차가 너무 컸고, 구보다 망언, 휴전, 4·19혁명 등이 이어지면서...

모스크바 삼상회의 결과 발표

미국·영국·소련의 외무장관이 1945년 12월 16일부터 모스크바에 모여 전후처리 문제를 매듭지은 ‘모스크바 삼상(三相)회의’ 결과가 12월 27일 AP통신을 타고 국내에 전해지면서 겉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가 몰아쳤다. “조선에 임시로 민주주의 정부를 세우고, 이를위해 미소공동위원회를 설치하며 최고 5년 기한으로 미·영·소·중 4개국 신탁통치를 실시한다”는 발표를, 국민들이 새로운 굴레를 씌우려는 열강의 음모로 생각한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김구와 임시정부계열이 먼저 강한...

美 노예제 공식 폐지… 미국의 수정헌법 제13조 의회 통과

노예제가 영국(1833년)과 프랑스(1848년)에 이어 미국에서도 사라졌다. 노예제 폐지를 담은 미국의 수정헌법 제13조가 1865년 12월 18일 의회를 통과함으로써 인류는 진보의 발걸음을 한 번더 내디뎠다. 수정헌법 13조는 말한다. ‘노예제는 합중국 및 합중국의 관할에 속하는 어떤 지역에서도 금지된다. 정당한 재판에 의한 유죄판결을 받은 범죄의 처벌로서가 아닌 강제노역의 경우도 동일하다.’ 13조는 1619년 아프리카인들이 네덜란드 배에 실려 영국의 식민지였던 버지니아에...

윤봉길 의사 순국

1932년 12월 19일 아침 7시27분, 일본 이시카와현 가나자와형무소. 2명의 일본군이 10m 거리에서 목표물을 향해 조준사격자세를 취하고, 이어진 요란한 총소리와 함께 사형수의 고개가 떨구어졌다. 검안의가 절명을 확인한 시간은 13분 뒤인 7시40분. 스물다섯의 청년 윤봉길은, 장제스 중국 총통의 말마따나 “중국군 100만 대군도 못한 일”을 감히 해내고 이렇게 숨져갔다. 분이 안풀렸는지 일제는 시신을 인근 쓰레기 하치장에 암매장했다. 8개월 전인 4월29일 일본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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