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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원자력위원회 설치 결정

1946년 1월 24일, 런던에서 열린 제1차 유엔총회에서 ‘원자력위원회(UNAEC)’ 설치가 결정됐다. 6월24일 뉴욕에서 첫 회의가 열렸으나 ‘국제원자력개발기관(IADA)’으로 명칭만 바뀌었을 뿐 소련이 원자력 관리에 대한 미국의 제안을 거부하는 바람에 아무런 결론도 맺지 못하고 폐회돼 순탄치 않은 앞날을 예고했다. 미국의 안(案)은 “세계각국이 원자력을 무기로 사용하지 않는다면 미국은 보유하고 있는 원자폭탄을 파기할 용의가 있고, 이를 담보하기 위해 원자력개발에 관한...

벨기에 물리학자 오귀스트 피카르, 세계에서 가장 깊은 챌린저 해연 도달

하늘과 바다 양쪽에서 가장 높은 곳과 가장 깊은 곳을 최초로 정복한 사람은 벨기에 물리학자 오귀스트 피카르다. 그는 기구로 성층권까지 올라가고 그가 만든 잠수정으로 아들을 가장 깊은 바다에 잠수시켜 우주와 심해 탐험에 신기원을 열었다. 1931년 5월 27일 기구를 타고 인류 최초로 1만5781m 상공 성층권에까지 올라간 피카르는 기구에서 힌트를 얻어 곧 심해 잠수정을 준비했다. 바닷 속으로 내려갈 때는 밸러스트(추)를 싣고, 올라올 때는 버리면 된다는 원리였다. 공기보다...

조선의 대표적 화폐 ‘상평통보’ 처음 주조

200여 년 동안 조선의 대표적인 화폐로 통용되던 ‘상평통보(常平通寶)’가 1678년(숙종4년) 1월 23일 처음 주조됐다. 점점 많은 수의 농민들이 상업에 종사하고 이 때문에 줄어든 세금을 상인들로부터 거둬들일 새로운 수단이 필요하던 때였다. 화폐 가치는 1문(文)이 2돈 5푼이고, 100문이 1냥(兩), 10냥이 1관(貫)이었다. 엽전으로 불리는 상평통보의 유통으로 화폐제도가 정착되고 상업경제도 근대적인 면모를 갖춰갔지만 유통비용이 많이 드는 게 문제였다. 몇 백 개의...

‘소련 수소폭탄의 아버지’ 안드레이 사하로프 유배

수소폭탄을 만들어 ‘소련 수폭의 아버지’로 불리던 안드레이 사하로프의 젊은 날은 탄탄대로였다. 1947년 26세로 박사학위를 받고 이듬해에는 수소폭탄의 이론적 가능성을 검토하는 특별그룹의 일원으로 뽑혀 과학적 능력을 인정받은 사하로프는 1953년 수소폭탄 실험을 성공시키면서 인생의 절정기를 맞았다. 32세로 소련 과학아카데미 최연소 정회원에 선출됐고, 레닌훈장과 노동자영웅훈장 등을 받았다. 이렇듯 출세가도를 달리던 그의 인생이 가시밭길로 들어선 것은 1957년, 핵무기의...

북한 무장공비 31명 서울 침입… 1·21사태

1968년 1월 21일(일요일) 밤 9시30분쯤, 군사분계선을 넘어 산악길을 타고들어온 북한 무장공비 31명이 북한산에서 내려와 세검정 일반도로로 들어섰다. 청와대를 습격해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하라는 명령을 받고 남하한 북한 124군 소속 특수부대원이었다. 무장공비들은 자하문 고개를 넘어 경복고 후문 뒷담을 끼고 청와대를 향해 걸었다. 이틀 전 이들과 조우했던 나무꾼의 신고로 비상경계에 돌입한 군경이 이들을 발견하고 정체를 물었으나 공비들은 “방첩대로 훈련을 마치고 돌아가는...

블라디미르 레닌 사망

1924년 1월 21일, 인류최초로 공산주의 국가를 실현시킨 블라디미르 레닌이 모스크바 근교 고리키 별장에서 4번째 발작을 일으키며 54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뇌졸중으로 발표됐지만 역사가 늘 그렇듯 죽음을 둘러싸고 설들이 무성했다. 스탈린의 지시로 독약이 장기간 소량씩 투약됐다는 독살설의 진원지는 트로츠키였다. 최근에는 망명 때 걸린 매독에 의한 정신착란설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소문이 무엇이든 죽기 전 레닌의 몸은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었다. 극도로 긴장해야 하는...

존 F. 케네디 미 대통령 취임

“조국이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묻지말고, 내가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물으십시오” 1961년 1월 20일, 제35대 미국 대통령 존 F.케네디가 취임연설을 통해 자유를 수호하겠다는 결연한 의지와 함께 국민들에게 새로운 가치관과 비전을 제시했다. 국민시인 프로스트도 취임식에서 자작시를 낭송하며 신정부 출범을 축하해주었다. 풀어야 할 난제들이 많이 쌓여있었지만, 미국인들에게 이 날은 희망의 날이었다. 2개월 반 전, 43세 케네디와 47세 닉슨의 대결이 박빙의...

도쿄대 야스다 강당 공방전 종료

도쿄대 야스다 강당 공방전 종료

↑ 도쿄대 야스다 강당 공방전 모습   1960년의 ‘안보투쟁’ 패배 후 일본 학생운동은 분열을 거듭하며 침체에 빠졌다. 그러나 1968년 도쿄대와 니혼대에서 일련의 학내문제가 불거지면서 학생운동은 침체에서 벗어날 계기를 맞았다. 당파를 초월한 ‘전공투(全共鬪・전학공투회의)’에 일반 학생들까지 가세하면서 학생운동은 아연 활기를 띠었다. 그들이 친 바리케이드는 국가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해방구였고 기성사회와 선을 그은 단절의 벽이었다. 1968년 한 해 동안 전공투를...

해군 ‘56함’, 북한의 함포 사격에 격침… 해군 승무원 39명 전사

1967년 1월 19일 이른 새벽, 우리 어선 60∼70척이 명태잡이를 위해 동해안 최북단의 대진·거진·속초항 등을 출항했다. 오후 1시50분쯤, 명태 떼가 휴전선을 넘어 북상하자 어민들도 명태를 쫓아갔다. 어민들의 어로 활동을 보호하던 우리 해군 당포함(PCE 56함)이 “북상을 중지하라”며 방송했지만 명태 떼를 발견한 어민들의 귀에는 경고방송이 들리지 않았다. 56함이 할 수 없이 어선의 북상을 저지하기 위해 어선을 따라 북상하던 오후 2시30분쯤, 북한 해안지역...

이승만 대통령 ‘평화선’ 선포

이승만 대통령 ‘평화선’ 선포

↑ 관보(1952.1.18)에 고시된 ‘인접해양에 대한 주권에 관한 대통령선언’과 지도(오른쪽)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1월 18일, 해안에서 60마일 이내의 자연자원·수산물 등에 대해 우리의 주권을 분명히 한 ‘대한민국 인접해양에 대한 대통령의 주권선언’이 국무원 공고 제14호로 선포됐다. 공산 세력의 연안 침투를 방지하고 세계 각국의 전관수역(專管水域)이 확대되는 추세에 대응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다분히 일본을 겨냥한...

유엔 원자력위원회 설치 결정

1946년 1월 24일, 런던에서 열린 제1차 유엔총회에서 ‘원자력위원회(UNAEC)’ 설치가 결정됐다. 6월24일 뉴욕에서 첫 회의가 열렸으나 ‘국제원자력개발기관(IADA)’으로 명칭만 바뀌었을 뿐 소련이 원자력 관리에 대한 미국의 제안을 거부하는 바람에 아무런 결론도 맺지 못하고 폐회돼 순탄치 않은 앞날을 예고했다. 미국의 안(案)은 “세계각국이 원자력을 무기로 사용하지 않는다면 미국은 보유하고 있는 원자폭탄을 파기할 용의가 있고, 이를 담보하기 위해 원자력개발에 관한...

벨기에 물리학자 오귀스트 피카르, 세계에서 가장 깊은 챌린저 해연 도달

하늘과 바다 양쪽에서 가장 높은 곳과 가장 깊은 곳을 최초로 정복한 사람은 벨기에 물리학자 오귀스트 피카르다. 그는 기구로 성층권까지 올라가고 그가 만든 잠수정으로 아들을 가장 깊은 바다에 잠수시켜 우주와 심해 탐험에 신기원을 열었다. 1931년 5월 27일 기구를 타고 인류 최초로 1만5781m 상공 성층권에까지 올라간 피카르는 기구에서 힌트를 얻어 곧 심해 잠수정을 준비했다. 바닷 속으로 내려갈 때는 밸러스트(추)를 싣고, 올라올 때는 버리면 된다는 원리였다. 공기보다...

조선의 대표적 화폐 ‘상평통보’ 처음 주조

200여 년 동안 조선의 대표적인 화폐로 통용되던 ‘상평통보(常平通寶)’가 1678년(숙종4년) 1월 23일 처음 주조됐다. 점점 많은 수의 농민들이 상업에 종사하고 이 때문에 줄어든 세금을 상인들로부터 거둬들일 새로운 수단이 필요하던 때였다. 화폐 가치는 1문(文)이 2돈 5푼이고, 100문이 1냥(兩), 10냥이 1관(貫)이었다. 엽전으로 불리는 상평통보의 유통으로 화폐제도가 정착되고 상업경제도 근대적인 면모를 갖춰갔지만 유통비용이 많이 드는 게 문제였다. 몇 백 개의...

‘소련 수소폭탄의 아버지’ 안드레이 사하로프 유배

수소폭탄을 만들어 ‘소련 수폭의 아버지’로 불리던 안드레이 사하로프의 젊은 날은 탄탄대로였다. 1947년 26세로 박사학위를 받고 이듬해에는 수소폭탄의 이론적 가능성을 검토하는 특별그룹의 일원으로 뽑혀 과학적 능력을 인정받은 사하로프는 1953년 수소폭탄 실험을 성공시키면서 인생의 절정기를 맞았다. 32세로 소련 과학아카데미 최연소 정회원에 선출됐고, 레닌훈장과 노동자영웅훈장 등을 받았다. 이렇듯 출세가도를 달리던 그의 인생이 가시밭길로 들어선 것은 1957년, 핵무기의...

북한 무장공비 31명 서울 침입… 1·21사태

1968년 1월 21일(일요일) 밤 9시30분쯤, 군사분계선을 넘어 산악길을 타고들어온 북한 무장공비 31명이 북한산에서 내려와 세검정 일반도로로 들어섰다. 청와대를 습격해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하라는 명령을 받고 남하한 북한 124군 소속 특수부대원이었다. 무장공비들은 자하문 고개를 넘어 경복고 후문 뒷담을 끼고 청와대를 향해 걸었다. 이틀 전 이들과 조우했던 나무꾼의 신고로 비상경계에 돌입한 군경이 이들을 발견하고 정체를 물었으나 공비들은 “방첩대로 훈련을 마치고 돌아가는...

블라디미르 레닌 사망

1924년 1월 21일, 인류최초로 공산주의 국가를 실현시킨 블라디미르 레닌이 모스크바 근교 고리키 별장에서 4번째 발작을 일으키며 54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뇌졸중으로 발표됐지만 역사가 늘 그렇듯 죽음을 둘러싸고 설들이 무성했다. 스탈린의 지시로 독약이 장기간 소량씩 투약됐다는 독살설의 진원지는 트로츠키였다. 최근에는 망명 때 걸린 매독에 의한 정신착란설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소문이 무엇이든 죽기 전 레닌의 몸은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었다. 극도로 긴장해야 하는...

존 F. 케네디 미 대통령 취임

“조국이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묻지말고, 내가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물으십시오” 1961년 1월 20일, 제35대 미국 대통령 존 F.케네디가 취임연설을 통해 자유를 수호하겠다는 결연한 의지와 함께 국민들에게 새로운 가치관과 비전을 제시했다. 국민시인 프로스트도 취임식에서 자작시를 낭송하며 신정부 출범을 축하해주었다. 풀어야 할 난제들이 많이 쌓여있었지만, 미국인들에게 이 날은 희망의 날이었다. 2개월 반 전, 43세 케네디와 47세 닉슨의 대결이 박빙의...

도쿄대 야스다 강당 공방전 종료

도쿄대 야스다 강당 공방전 종료

↑ 도쿄대 야스다 강당 공방전 모습   1960년의 ‘안보투쟁’ 패배 후 일본 학생운동은 분열을 거듭하며 침체에 빠졌다. 그러나 1968년 도쿄대와 니혼대에서 일련의 학내문제가 불거지면서 학생운동은 침체에서 벗어날 계기를 맞았다. 당파를 초월한 ‘전공투(全共鬪・전학공투회의)’에 일반 학생들까지 가세하면서 학생운동은 아연 활기를 띠었다. 그들이 친 바리케이드는 국가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해방구였고 기성사회와 선을 그은 단절의 벽이었다. 1968년 한 해 동안 전공투를...

해군 ‘56함’, 북한의 함포 사격에 격침… 해군 승무원 39명 전사

1967년 1월 19일 이른 새벽, 우리 어선 60∼70척이 명태잡이를 위해 동해안 최북단의 대진·거진·속초항 등을 출항했다. 오후 1시50분쯤, 명태 떼가 휴전선을 넘어 북상하자 어민들도 명태를 쫓아갔다. 어민들의 어로 활동을 보호하던 우리 해군 당포함(PCE 56함)이 “북상을 중지하라”며 방송했지만 명태 떼를 발견한 어민들의 귀에는 경고방송이 들리지 않았다. 56함이 할 수 없이 어선의 북상을 저지하기 위해 어선을 따라 북상하던 오후 2시30분쯤, 북한 해안지역...

이승만 대통령 ‘평화선’ 선포

이승만 대통령 ‘평화선’ 선포

↑ 관보(1952.1.18)에 고시된 ‘인접해양에 대한 주권에 관한 대통령선언’과 지도(오른쪽)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1월 18일, 해안에서 60마일 이내의 자연자원·수산물 등에 대해 우리의 주권을 분명히 한 ‘대한민국 인접해양에 대한 대통령의 주권선언’이 국무원 공고 제14호로 선포됐다. 공산 세력의 연안 침투를 방지하고 세계 각국의 전관수역(專管水域)이 확대되는 추세에 대응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다분히 일본을 겨냥한...

유엔 원자력위원회 설치 결정

1946년 1월 24일, 런던에서 열린 제1차 유엔총회에서 ‘원자력위원회(UNAEC)’ 설치가 결정됐다. 6월24일 뉴욕에서 첫 회의가 열렸으나 ‘국제원자력개발기관(IADA)’으로 명칭만 바뀌었을 뿐 소련이 원자력 관리에 대한 미국의 제안을 거부하는 바람에 아무런 결론도 맺지 못하고 폐회돼 순탄치 않은 앞날을 예고했다. 미국의 안(案)은 “세계각국이 원자력을 무기로 사용하지 않는다면 미국은 보유하고 있는 원자폭탄을 파기할 용의가 있고, 이를 담보하기 위해 원자력개발에 관한...

벨기에 물리학자 오귀스트 피카르, 세계에서 가장 깊은 챌린저 해연 도달

하늘과 바다 양쪽에서 가장 높은 곳과 가장 깊은 곳을 최초로 정복한 사람은 벨기에 물리학자 오귀스트 피카르다. 그는 기구로 성층권까지 올라가고 그가 만든 잠수정으로 아들을 가장 깊은 바다에 잠수시켜 우주와 심해 탐험에 신기원을 열었다. 1931년 5월 27일 기구를 타고 인류 최초로 1만5781m 상공 성층권에까지 올라간 피카르는 기구에서 힌트를 얻어 곧 심해 잠수정을 준비했다. 바닷 속으로 내려갈 때는 밸러스트(추)를 싣고, 올라올 때는 버리면 된다는 원리였다. 공기보다...

조선의 대표적 화폐 ‘상평통보’ 처음 주조

200여 년 동안 조선의 대표적인 화폐로 통용되던 ‘상평통보(常平通寶)’가 1678년(숙종4년) 1월 23일 처음 주조됐다. 점점 많은 수의 농민들이 상업에 종사하고 이 때문에 줄어든 세금을 상인들로부터 거둬들일 새로운 수단이 필요하던 때였다. 화폐 가치는 1문(文)이 2돈 5푼이고, 100문이 1냥(兩), 10냥이 1관(貫)이었다. 엽전으로 불리는 상평통보의 유통으로 화폐제도가 정착되고 상업경제도 근대적인 면모를 갖춰갔지만 유통비용이 많이 드는 게 문제였다. 몇 백 개의...

‘소련 수소폭탄의 아버지’ 안드레이 사하로프 유배

수소폭탄을 만들어 ‘소련 수폭의 아버지’로 불리던 안드레이 사하로프의 젊은 날은 탄탄대로였다. 1947년 26세로 박사학위를 받고 이듬해에는 수소폭탄의 이론적 가능성을 검토하는 특별그룹의 일원으로 뽑혀 과학적 능력을 인정받은 사하로프는 1953년 수소폭탄 실험을 성공시키면서 인생의 절정기를 맞았다. 32세로 소련 과학아카데미 최연소 정회원에 선출됐고, 레닌훈장과 노동자영웅훈장 등을 받았다. 이렇듯 출세가도를 달리던 그의 인생이 가시밭길로 들어선 것은 1957년, 핵무기의...

북한 무장공비 31명 서울 침입… 1·21사태

1968년 1월 21일(일요일) 밤 9시30분쯤, 군사분계선을 넘어 산악길을 타고들어온 북한 무장공비 31명이 북한산에서 내려와 세검정 일반도로로 들어섰다. 청와대를 습격해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하라는 명령을 받고 남하한 북한 124군 소속 특수부대원이었다. 무장공비들은 자하문 고개를 넘어 경복고 후문 뒷담을 끼고 청와대를 향해 걸었다. 이틀 전 이들과 조우했던 나무꾼의 신고로 비상경계에 돌입한 군경이 이들을 발견하고 정체를 물었으나 공비들은 “방첩대로 훈련을 마치고 돌아가는...

블라디미르 레닌 사망

1924년 1월 21일, 인류최초로 공산주의 국가를 실현시킨 블라디미르 레닌이 모스크바 근교 고리키 별장에서 4번째 발작을 일으키며 54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뇌졸중으로 발표됐지만 역사가 늘 그렇듯 죽음을 둘러싸고 설들이 무성했다. 스탈린의 지시로 독약이 장기간 소량씩 투약됐다는 독살설의 진원지는 트로츠키였다. 최근에는 망명 때 걸린 매독에 의한 정신착란설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소문이 무엇이든 죽기 전 레닌의 몸은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었다. 극도로 긴장해야 하는...

존 F. 케네디 미 대통령 취임

“조국이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묻지말고, 내가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물으십시오” 1961년 1월 20일, 제35대 미국 대통령 존 F.케네디가 취임연설을 통해 자유를 수호하겠다는 결연한 의지와 함께 국민들에게 새로운 가치관과 비전을 제시했다. 국민시인 프로스트도 취임식에서 자작시를 낭송하며 신정부 출범을 축하해주었다. 풀어야 할 난제들이 많이 쌓여있었지만, 미국인들에게 이 날은 희망의 날이었다. 2개월 반 전, 43세 케네디와 47세 닉슨의 대결이 박빙의...

도쿄대 야스다 강당 공방전 종료

도쿄대 야스다 강당 공방전 종료

↑ 도쿄대 야스다 강당 공방전 모습   1960년의 ‘안보투쟁’ 패배 후 일본 학생운동은 분열을 거듭하며 침체에 빠졌다. 그러나 1968년 도쿄대와 니혼대에서 일련의 학내문제가 불거지면서 학생운동은 침체에서 벗어날 계기를 맞았다. 당파를 초월한 ‘전공투(全共鬪・전학공투회의)’에 일반 학생들까지 가세하면서 학생운동은 아연 활기를 띠었다. 그들이 친 바리케이드는 국가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해방구였고 기성사회와 선을 그은 단절의 벽이었다. 1968년 한 해 동안 전공투를...

해군 ‘56함’, 북한의 함포 사격에 격침… 해군 승무원 39명 전사

1967년 1월 19일 이른 새벽, 우리 어선 60∼70척이 명태잡이를 위해 동해안 최북단의 대진·거진·속초항 등을 출항했다. 오후 1시50분쯤, 명태 떼가 휴전선을 넘어 북상하자 어민들도 명태를 쫓아갔다. 어민들의 어로 활동을 보호하던 우리 해군 당포함(PCE 56함)이 “북상을 중지하라”며 방송했지만 명태 떼를 발견한 어민들의 귀에는 경고방송이 들리지 않았다. 56함이 할 수 없이 어선의 북상을 저지하기 위해 어선을 따라 북상하던 오후 2시30분쯤, 북한 해안지역...

이승만 대통령 ‘평화선’ 선포

이승만 대통령 ‘평화선’ 선포

↑ 관보(1952.1.18)에 고시된 ‘인접해양에 대한 주권에 관한 대통령선언’과 지도(오른쪽)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1월 18일, 해안에서 60마일 이내의 자연자원·수산물 등에 대해 우리의 주권을 분명히 한 ‘대한민국 인접해양에 대한 대통령의 주권선언’이 국무원 공고 제14호로 선포됐다. 공산 세력의 연안 침투를 방지하고 세계 각국의 전관수역(專管水域)이 확대되는 추세에 대응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다분히 일본을 겨냥한...

유엔 원자력위원회 설치 결정

1946년 1월 24일, 런던에서 열린 제1차 유엔총회에서 ‘원자력위원회(UNAEC)’ 설치가 결정됐다. 6월24일 뉴욕에서 첫 회의가 열렸으나 ‘국제원자력개발기관(IADA)’으로 명칭만 바뀌었을 뿐 소련이 원자력 관리에 대한 미국의 제안을 거부하는 바람에 아무런 결론도 맺지 못하고 폐회돼 순탄치 않은 앞날을 예고했다. 미국의 안(案)은 “세계각국이 원자력을 무기로 사용하지 않는다면 미국은 보유하고 있는 원자폭탄을 파기할 용의가 있고, 이를 담보하기 위해 원자력개발에 관한...

벨기에 물리학자 오귀스트 피카르, 세계에서 가장 깊은 챌린저 해연 도달

하늘과 바다 양쪽에서 가장 높은 곳과 가장 깊은 곳을 최초로 정복한 사람은 벨기에 물리학자 오귀스트 피카르다. 그는 기구로 성층권까지 올라가고 그가 만든 잠수정으로 아들을 가장 깊은 바다에 잠수시켜 우주와 심해 탐험에 신기원을 열었다. 1931년 5월 27일 기구를 타고 인류 최초로 1만5781m 상공 성층권에까지 올라간 피카르는 기구에서 힌트를 얻어 곧 심해 잠수정을 준비했다. 바닷 속으로 내려갈 때는 밸러스트(추)를 싣고, 올라올 때는 버리면 된다는 원리였다. 공기보다...

조선의 대표적 화폐 ‘상평통보’ 처음 주조

200여 년 동안 조선의 대표적인 화폐로 통용되던 ‘상평통보(常平通寶)’가 1678년(숙종4년) 1월 23일 처음 주조됐다. 점점 많은 수의 농민들이 상업에 종사하고 이 때문에 줄어든 세금을 상인들로부터 거둬들일 새로운 수단이 필요하던 때였다. 화폐 가치는 1문(文)이 2돈 5푼이고, 100문이 1냥(兩), 10냥이 1관(貫)이었다. 엽전으로 불리는 상평통보의 유통으로 화폐제도가 정착되고 상업경제도 근대적인 면모를 갖춰갔지만 유통비용이 많이 드는 게 문제였다. 몇 백 개의...

‘소련 수소폭탄의 아버지’ 안드레이 사하로프 유배

수소폭탄을 만들어 ‘소련 수폭의 아버지’로 불리던 안드레이 사하로프의 젊은 날은 탄탄대로였다. 1947년 26세로 박사학위를 받고 이듬해에는 수소폭탄의 이론적 가능성을 검토하는 특별그룹의 일원으로 뽑혀 과학적 능력을 인정받은 사하로프는 1953년 수소폭탄 실험을 성공시키면서 인생의 절정기를 맞았다. 32세로 소련 과학아카데미 최연소 정회원에 선출됐고, 레닌훈장과 노동자영웅훈장 등을 받았다. 이렇듯 출세가도를 달리던 그의 인생이 가시밭길로 들어선 것은 1957년, 핵무기의...

북한 무장공비 31명 서울 침입… 1·21사태

1968년 1월 21일(일요일) 밤 9시30분쯤, 군사분계선을 넘어 산악길을 타고들어온 북한 무장공비 31명이 북한산에서 내려와 세검정 일반도로로 들어섰다. 청와대를 습격해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하라는 명령을 받고 남하한 북한 124군 소속 특수부대원이었다. 무장공비들은 자하문 고개를 넘어 경복고 후문 뒷담을 끼고 청와대를 향해 걸었다. 이틀 전 이들과 조우했던 나무꾼의 신고로 비상경계에 돌입한 군경이 이들을 발견하고 정체를 물었으나 공비들은 “방첩대로 훈련을 마치고 돌아가는...

블라디미르 레닌 사망

1924년 1월 21일, 인류최초로 공산주의 국가를 실현시킨 블라디미르 레닌이 모스크바 근교 고리키 별장에서 4번째 발작을 일으키며 54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뇌졸중으로 발표됐지만 역사가 늘 그렇듯 죽음을 둘러싸고 설들이 무성했다. 스탈린의 지시로 독약이 장기간 소량씩 투약됐다는 독살설의 진원지는 트로츠키였다. 최근에는 망명 때 걸린 매독에 의한 정신착란설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소문이 무엇이든 죽기 전 레닌의 몸은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었다. 극도로 긴장해야 하는...

존 F. 케네디 미 대통령 취임

“조국이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묻지말고, 내가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물으십시오” 1961년 1월 20일, 제35대 미국 대통령 존 F.케네디가 취임연설을 통해 자유를 수호하겠다는 결연한 의지와 함께 국민들에게 새로운 가치관과 비전을 제시했다. 국민시인 프로스트도 취임식에서 자작시를 낭송하며 신정부 출범을 축하해주었다. 풀어야 할 난제들이 많이 쌓여있었지만, 미국인들에게 이 날은 희망의 날이었다. 2개월 반 전, 43세 케네디와 47세 닉슨의 대결이 박빙의...

도쿄대 야스다 강당 공방전 종료

도쿄대 야스다 강당 공방전 종료

↑ 도쿄대 야스다 강당 공방전 모습   1960년의 ‘안보투쟁’ 패배 후 일본 학생운동은 분열을 거듭하며 침체에 빠졌다. 그러나 1968년 도쿄대와 니혼대에서 일련의 학내문제가 불거지면서 학생운동은 침체에서 벗어날 계기를 맞았다. 당파를 초월한 ‘전공투(全共鬪・전학공투회의)’에 일반 학생들까지 가세하면서 학생운동은 아연 활기를 띠었다. 그들이 친 바리케이드는 국가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해방구였고 기성사회와 선을 그은 단절의 벽이었다. 1968년 한 해 동안 전공투를...

해군 ‘56함’, 북한의 함포 사격에 격침… 해군 승무원 39명 전사

1967년 1월 19일 이른 새벽, 우리 어선 60∼70척이 명태잡이를 위해 동해안 최북단의 대진·거진·속초항 등을 출항했다. 오후 1시50분쯤, 명태 떼가 휴전선을 넘어 북상하자 어민들도 명태를 쫓아갔다. 어민들의 어로 활동을 보호하던 우리 해군 당포함(PCE 56함)이 “북상을 중지하라”며 방송했지만 명태 떼를 발견한 어민들의 귀에는 경고방송이 들리지 않았다. 56함이 할 수 없이 어선의 북상을 저지하기 위해 어선을 따라 북상하던 오후 2시30분쯤, 북한 해안지역...

이승만 대통령 ‘평화선’ 선포

이승만 대통령 ‘평화선’ 선포

↑ 관보(1952.1.18)에 고시된 ‘인접해양에 대한 주권에 관한 대통령선언’과 지도(오른쪽)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1월 18일, 해안에서 60마일 이내의 자연자원·수산물 등에 대해 우리의 주권을 분명히 한 ‘대한민국 인접해양에 대한 대통령의 주권선언’이 국무원 공고 제14호로 선포됐다. 공산 세력의 연안 침투를 방지하고 세계 각국의 전관수역(專管水域)이 확대되는 추세에 대응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다분히 일본을 겨냥한...

유엔 원자력위원회 설치 결정

1946년 1월 24일, 런던에서 열린 제1차 유엔총회에서 ‘원자력위원회(UNAEC)’ 설치가 결정됐다. 6월24일 뉴욕에서 첫 회의가 열렸으나 ‘국제원자력개발기관(IADA)’으로 명칭만 바뀌었을 뿐 소련이 원자력 관리에 대한 미국의 제안을 거부하는 바람에 아무런 결론도 맺지 못하고 폐회돼 순탄치 않은 앞날을 예고했다. 미국의 안(案)은 “세계각국이 원자력을 무기로 사용하지 않는다면 미국은 보유하고 있는 원자폭탄을 파기할 용의가 있고, 이를 담보하기 위해 원자력개발에 관한...

벨기에 물리학자 오귀스트 피카르, 세계에서 가장 깊은 챌린저 해연 도달

하늘과 바다 양쪽에서 가장 높은 곳과 가장 깊은 곳을 최초로 정복한 사람은 벨기에 물리학자 오귀스트 피카르다. 그는 기구로 성층권까지 올라가고 그가 만든 잠수정으로 아들을 가장 깊은 바다에 잠수시켜 우주와 심해 탐험에 신기원을 열었다. 1931년 5월 27일 기구를 타고 인류 최초로 1만5781m 상공 성층권에까지 올라간 피카르는 기구에서 힌트를 얻어 곧 심해 잠수정을 준비했다. 바닷 속으로 내려갈 때는 밸러스트(추)를 싣고, 올라올 때는 버리면 된다는 원리였다. 공기보다...

조선의 대표적 화폐 ‘상평통보’ 처음 주조

200여 년 동안 조선의 대표적인 화폐로 통용되던 ‘상평통보(常平通寶)’가 1678년(숙종4년) 1월 23일 처음 주조됐다. 점점 많은 수의 농민들이 상업에 종사하고 이 때문에 줄어든 세금을 상인들로부터 거둬들일 새로운 수단이 필요하던 때였다. 화폐 가치는 1문(文)이 2돈 5푼이고, 100문이 1냥(兩), 10냥이 1관(貫)이었다. 엽전으로 불리는 상평통보의 유통으로 화폐제도가 정착되고 상업경제도 근대적인 면모를 갖춰갔지만 유통비용이 많이 드는 게 문제였다. 몇 백 개의...

‘소련 수소폭탄의 아버지’ 안드레이 사하로프 유배

수소폭탄을 만들어 ‘소련 수폭의 아버지’로 불리던 안드레이 사하로프의 젊은 날은 탄탄대로였다. 1947년 26세로 박사학위를 받고 이듬해에는 수소폭탄의 이론적 가능성을 검토하는 특별그룹의 일원으로 뽑혀 과학적 능력을 인정받은 사하로프는 1953년 수소폭탄 실험을 성공시키면서 인생의 절정기를 맞았다. 32세로 소련 과학아카데미 최연소 정회원에 선출됐고, 레닌훈장과 노동자영웅훈장 등을 받았다. 이렇듯 출세가도를 달리던 그의 인생이 가시밭길로 들어선 것은 1957년, 핵무기의...

북한 무장공비 31명 서울 침입… 1·21사태

1968년 1월 21일(일요일) 밤 9시30분쯤, 군사분계선을 넘어 산악길을 타고들어온 북한 무장공비 31명이 북한산에서 내려와 세검정 일반도로로 들어섰다. 청와대를 습격해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하라는 명령을 받고 남하한 북한 124군 소속 특수부대원이었다. 무장공비들은 자하문 고개를 넘어 경복고 후문 뒷담을 끼고 청와대를 향해 걸었다. 이틀 전 이들과 조우했던 나무꾼의 신고로 비상경계에 돌입한 군경이 이들을 발견하고 정체를 물었으나 공비들은 “방첩대로 훈련을 마치고 돌아가는...

블라디미르 레닌 사망

1924년 1월 21일, 인류최초로 공산주의 국가를 실현시킨 블라디미르 레닌이 모스크바 근교 고리키 별장에서 4번째 발작을 일으키며 54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뇌졸중으로 발표됐지만 역사가 늘 그렇듯 죽음을 둘러싸고 설들이 무성했다. 스탈린의 지시로 독약이 장기간 소량씩 투약됐다는 독살설의 진원지는 트로츠키였다. 최근에는 망명 때 걸린 매독에 의한 정신착란설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소문이 무엇이든 죽기 전 레닌의 몸은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었다. 극도로 긴장해야 하는...

존 F. 케네디 미 대통령 취임

“조국이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묻지말고, 내가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물으십시오” 1961년 1월 20일, 제35대 미국 대통령 존 F.케네디가 취임연설을 통해 자유를 수호하겠다는 결연한 의지와 함께 국민들에게 새로운 가치관과 비전을 제시했다. 국민시인 프로스트도 취임식에서 자작시를 낭송하며 신정부 출범을 축하해주었다. 풀어야 할 난제들이 많이 쌓여있었지만, 미국인들에게 이 날은 희망의 날이었다. 2개월 반 전, 43세 케네디와 47세 닉슨의 대결이 박빙의...

도쿄대 야스다 강당 공방전 종료

도쿄대 야스다 강당 공방전 종료

↑ 도쿄대 야스다 강당 공방전 모습   1960년의 ‘안보투쟁’ 패배 후 일본 학생운동은 분열을 거듭하며 침체에 빠졌다. 그러나 1968년 도쿄대와 니혼대에서 일련의 학내문제가 불거지면서 학생운동은 침체에서 벗어날 계기를 맞았다. 당파를 초월한 ‘전공투(全共鬪・전학공투회의)’에 일반 학생들까지 가세하면서 학생운동은 아연 활기를 띠었다. 그들이 친 바리케이드는 국가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해방구였고 기성사회와 선을 그은 단절의 벽이었다. 1968년 한 해 동안 전공투를...

해군 ‘56함’, 북한의 함포 사격에 격침… 해군 승무원 39명 전사

1967년 1월 19일 이른 새벽, 우리 어선 60∼70척이 명태잡이를 위해 동해안 최북단의 대진·거진·속초항 등을 출항했다. 오후 1시50분쯤, 명태 떼가 휴전선을 넘어 북상하자 어민들도 명태를 쫓아갔다. 어민들의 어로 활동을 보호하던 우리 해군 당포함(PCE 56함)이 “북상을 중지하라”며 방송했지만 명태 떼를 발견한 어민들의 귀에는 경고방송이 들리지 않았다. 56함이 할 수 없이 어선의 북상을 저지하기 위해 어선을 따라 북상하던 오후 2시30분쯤, 북한 해안지역...

이승만 대통령 ‘평화선’ 선포

이승만 대통령 ‘평화선’ 선포

↑ 관보(1952.1.18)에 고시된 ‘인접해양에 대한 주권에 관한 대통령선언’과 지도(오른쪽)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1월 18일, 해안에서 60마일 이내의 자연자원·수산물 등에 대해 우리의 주권을 분명히 한 ‘대한민국 인접해양에 대한 대통령의 주권선언’이 국무원 공고 제14호로 선포됐다. 공산 세력의 연안 침투를 방지하고 세계 각국의 전관수역(專管水域)이 확대되는 추세에 대응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다분히 일본을 겨냥한...

유엔 원자력위원회 설치 결정

1946년 1월 24일, 런던에서 열린 제1차 유엔총회에서 ‘원자력위원회(UNAEC)’ 설치가 결정됐다. 6월24일 뉴욕에서 첫 회의가 열렸으나 ‘국제원자력개발기관(IADA)’으로 명칭만 바뀌었을 뿐 소련이 원자력 관리에 대한 미국의 제안을 거부하는 바람에 아무런 결론도 맺지 못하고 폐회돼 순탄치 않은 앞날을 예고했다. 미국의 안(案)은 “세계각국이 원자력을 무기로 사용하지 않는다면 미국은 보유하고 있는 원자폭탄을 파기할 용의가 있고, 이를 담보하기 위해 원자력개발에 관한...

벨기에 물리학자 오귀스트 피카르, 세계에서 가장 깊은 챌린저 해연 도달

하늘과 바다 양쪽에서 가장 높은 곳과 가장 깊은 곳을 최초로 정복한 사람은 벨기에 물리학자 오귀스트 피카르다. 그는 기구로 성층권까지 올라가고 그가 만든 잠수정으로 아들을 가장 깊은 바다에 잠수시켜 우주와 심해 탐험에 신기원을 열었다. 1931년 5월 27일 기구를 타고 인류 최초로 1만5781m 상공 성층권에까지 올라간 피카르는 기구에서 힌트를 얻어 곧 심해 잠수정을 준비했다. 바닷 속으로 내려갈 때는 밸러스트(추)를 싣고, 올라올 때는 버리면 된다는 원리였다. 공기보다...

조선의 대표적 화폐 ‘상평통보’ 처음 주조

200여 년 동안 조선의 대표적인 화폐로 통용되던 ‘상평통보(常平通寶)’가 1678년(숙종4년) 1월 23일 처음 주조됐다. 점점 많은 수의 농민들이 상업에 종사하고 이 때문에 줄어든 세금을 상인들로부터 거둬들일 새로운 수단이 필요하던 때였다. 화폐 가치는 1문(文)이 2돈 5푼이고, 100문이 1냥(兩), 10냥이 1관(貫)이었다. 엽전으로 불리는 상평통보의 유통으로 화폐제도가 정착되고 상업경제도 근대적인 면모를 갖춰갔지만 유통비용이 많이 드는 게 문제였다. 몇 백 개의...

‘소련 수소폭탄의 아버지’ 안드레이 사하로프 유배

수소폭탄을 만들어 ‘소련 수폭의 아버지’로 불리던 안드레이 사하로프의 젊은 날은 탄탄대로였다. 1947년 26세로 박사학위를 받고 이듬해에는 수소폭탄의 이론적 가능성을 검토하는 특별그룹의 일원으로 뽑혀 과학적 능력을 인정받은 사하로프는 1953년 수소폭탄 실험을 성공시키면서 인생의 절정기를 맞았다. 32세로 소련 과학아카데미 최연소 정회원에 선출됐고, 레닌훈장과 노동자영웅훈장 등을 받았다. 이렇듯 출세가도를 달리던 그의 인생이 가시밭길로 들어선 것은 1957년, 핵무기의...

북한 무장공비 31명 서울 침입… 1·21사태

1968년 1월 21일(일요일) 밤 9시30분쯤, 군사분계선을 넘어 산악길을 타고들어온 북한 무장공비 31명이 북한산에서 내려와 세검정 일반도로로 들어섰다. 청와대를 습격해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하라는 명령을 받고 남하한 북한 124군 소속 특수부대원이었다. 무장공비들은 자하문 고개를 넘어 경복고 후문 뒷담을 끼고 청와대를 향해 걸었다. 이틀 전 이들과 조우했던 나무꾼의 신고로 비상경계에 돌입한 군경이 이들을 발견하고 정체를 물었으나 공비들은 “방첩대로 훈련을 마치고 돌아가는...

블라디미르 레닌 사망

1924년 1월 21일, 인류최초로 공산주의 국가를 실현시킨 블라디미르 레닌이 모스크바 근교 고리키 별장에서 4번째 발작을 일으키며 54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뇌졸중으로 발표됐지만 역사가 늘 그렇듯 죽음을 둘러싸고 설들이 무성했다. 스탈린의 지시로 독약이 장기간 소량씩 투약됐다는 독살설의 진원지는 트로츠키였다. 최근에는 망명 때 걸린 매독에 의한 정신착란설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소문이 무엇이든 죽기 전 레닌의 몸은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었다. 극도로 긴장해야 하는...

존 F. 케네디 미 대통령 취임

“조국이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묻지말고, 내가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물으십시오” 1961년 1월 20일, 제35대 미국 대통령 존 F.케네디가 취임연설을 통해 자유를 수호하겠다는 결연한 의지와 함께 국민들에게 새로운 가치관과 비전을 제시했다. 국민시인 프로스트도 취임식에서 자작시를 낭송하며 신정부 출범을 축하해주었다. 풀어야 할 난제들이 많이 쌓여있었지만, 미국인들에게 이 날은 희망의 날이었다. 2개월 반 전, 43세 케네디와 47세 닉슨의 대결이 박빙의...

도쿄대 야스다 강당 공방전 종료

도쿄대 야스다 강당 공방전 종료

↑ 도쿄대 야스다 강당 공방전 모습   1960년의 ‘안보투쟁’ 패배 후 일본 학생운동은 분열을 거듭하며 침체에 빠졌다. 그러나 1968년 도쿄대와 니혼대에서 일련의 학내문제가 불거지면서 학생운동은 침체에서 벗어날 계기를 맞았다. 당파를 초월한 ‘전공투(全共鬪・전학공투회의)’에 일반 학생들까지 가세하면서 학생운동은 아연 활기를 띠었다. 그들이 친 바리케이드는 국가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해방구였고 기성사회와 선을 그은 단절의 벽이었다. 1968년 한 해 동안 전공투를...

해군 ‘56함’, 북한의 함포 사격에 격침… 해군 승무원 39명 전사

1967년 1월 19일 이른 새벽, 우리 어선 60∼70척이 명태잡이를 위해 동해안 최북단의 대진·거진·속초항 등을 출항했다. 오후 1시50분쯤, 명태 떼가 휴전선을 넘어 북상하자 어민들도 명태를 쫓아갔다. 어민들의 어로 활동을 보호하던 우리 해군 당포함(PCE 56함)이 “북상을 중지하라”며 방송했지만 명태 떼를 발견한 어민들의 귀에는 경고방송이 들리지 않았다. 56함이 할 수 없이 어선의 북상을 저지하기 위해 어선을 따라 북상하던 오후 2시30분쯤, 북한 해안지역...

이승만 대통령 ‘평화선’ 선포

이승만 대통령 ‘평화선’ 선포

↑ 관보(1952.1.18)에 고시된 ‘인접해양에 대한 주권에 관한 대통령선언’과 지도(오른쪽)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1월 18일, 해안에서 60마일 이내의 자연자원·수산물 등에 대해 우리의 주권을 분명히 한 ‘대한민국 인접해양에 대한 대통령의 주권선언’이 국무원 공고 제14호로 선포됐다. 공산 세력의 연안 침투를 방지하고 세계 각국의 전관수역(專管水域)이 확대되는 추세에 대응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다분히 일본을 겨냥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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