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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시위대 바스티유 감옥 함락

1789년 프랑스. 수년 전부터 몰아닥친 지독한 흉작으로 크고 작은 폭동이 빈발하고 있을 때, 성직자·귀족·평민 세 신분층으로 구성된 3부회가 175년 만에 소집(5월 5일)되고, 평민과 자유주의 귀족들이 단결을 약속한 ‘테니스 코트 서약’(6월 20일)이 이뤄지면서 프랑스 전역에는 혁명의 기운이 감돌았다. 이런 와중에 3부회 최고 책임자가 파면됐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파리 시민들은 자위를 위해 성문을 굳게 닫고 가로에 바리케이드를 치며 경계에 들어갔다. 7월 14일에는 분노한...

중국 여성혁명가 추근(秋瑾) 처형

어려서부터 중국 여성을 옥죈 전족을 부정하고 남여차별을 인정하기 싫어했던 추진(秋瑾)의 눈 앞에 펼쳐진 1900년의 의화단 사건은 실로 충격이었다. 청조를 짓밟은 열강들에는 충격과 굴욕감을 느꼈고, 침략에는 무력하면서도 민중에게는 고압적인 청조에는 분노가 솟았다. 어느덧 27세, 결혼도 했고 1남1녀의 어머니였지만 선진문명에 목말라한 추진은 1904년 가족만 남겨둔 채 홀로 일본으로 떠났다. 사격연습도 하고 폭탄제조법도 익히며 혁명을 준비하던 중, 쑨원(孫文)이 일본에서...

뉴욕 타임스, 고더드의 로켓 이론 비판했던 49년 전 사설을 정정

뉴욕 타임스, 고더드의 로켓 이론 비판했던 49년 전 사설을 정정

↑ 1969년 7월 17일자 뉴욕 타임스에 실린 ‘A Correction’이라는 제목의 정정기사   훗날 ‘로켓의 아버지’로 불린 로버트 고더드가 1919년 ‘극단고도에 도달하는 기술’이란 제목의 논문을 통해 ‘엔진의 추진력을 충분히 높여준다면 로켓이 달까지 갈 수 있다’고 주장했을 때 뉴욕 타임스의 반응은 냉소 그 자체였다. 1920년 1월 13일자 사설에서 “고등학생 수준 이하의 지식으로 논문을 썼다”며 “공기가 없는 곳에선 추진을 할 수 없어 로켓의 우주비행은...

고종 강제 퇴위

어차피 예정된 일이었지만 1개월 전 실패로 돌아간 헤이그밀사 사건으로 그 시기가 앞당겨졌다. 일제의 강압으로 고종이 황제 자리에서 물러난 것이다. 헤이그밀사 사건 후 이토 히로부미는 고종을 알현한 자리에서 “차라리 당당하게 선전포고를 하라”며 압박했고, 이완용을 불러서는 “황제의 결단을 얻어내라”고 다그쳤다. 이완용은 1907년 7월 6일 어전회의를 열어 황제 스스로 퇴위를 결정하라고 요구했다. 송병준은 “이번 일은 폐하에게 책임이 있으니 도쿄에 가서 사죄를 하든지 대한문...

‘스웨덴판 쉰들러’ 라울 발렌베리의 비극적 죽음

‘스웨덴판 쉰들러’ 라울 발렌베리의 비극적 죽음

라울 발렌베리 이야기는 감동적이나 비극적이다. 그는 오늘날 스웨덴 전체 상장기업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최대기업 발렌베리 가문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공부하고 6개국 언어에 능통한 전도유망한 청년이었다. 그러나 사업차 방문한 헝가리에서 유대인의 공포를 목격하면서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헝가리 거주 유대인의 운명은 1944년 3월 독일군이 헝가리에 진주하면서 비극으로 내몰렸다. 수개월 동안 25만 명의 유대인이 아우슈비츠 가스실에서 죽어가자 미 정부는 중립국 스웨덴에 헝가리...

히틀러 암살하기로 한 ‘발퀴레 작전’ 미수

1944년 6월이 되면서 암살 음모자들의 움직임이 더욱 빨라졌다. 비밀경찰의 손길이 뻗치고 있었고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전황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마침 음모에 가담했던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이 히틀러에게 접근할 기회가 주어지는 독일 예비군사령관의 참모장에 임명되었다. 이는 히틀러 암살이 그의 어깨에 달려있음을 의미했다. 1944년 7월 20일 슈타우펜베르크는 지금의 폴란드 라슈텐부르크 야전사령부에 있는 히틀러로부터 호출 명령을 받았다. 슈타우펜베르크는...

앙드레 말로, 국제의용군 편대장으로 스페인 내전에 참전

작가 앙드레 말로의 삶은 20세기를 관통하는 한 편의 대하 드라마다. 매 순간을 변신과 파격으로 살았고 무모하리만큼 죽음에 초연했다. 젊은 시절(1923년), 순전히 돈을 벌 목적으로 캄보디아 앙코르의 한 사원에서 몰래 조각을 훔쳐 밀반출하려다 적발돼 수개월을 감옥에서 보내고, 1925년 베트남에서 ‘인도차이나’라는 신문을 발간해 제국주의자들을 비난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다. 식민정부의 방해공작으로 신문사 문을 닫은 뒤 한동안 중국에서 살았던 기간까지 포함한 약력을 그는...

14세 日 소년 만지로, 표류 중 미국 포경선에 구조돼… ‘일본의 로빈슨 크루소’

1841년 1월, 5명의 어부를 태운 어선이 시코쿠 앞바다에서 거친 풍랑에 휩싸여 표류하고 있었다. 배에 탄 14세 소년 만지로(萬次郞)도 탈진 상태였다. 거친 파도와 싸우던 일행은 표류 9일만에 일본으로부터 760㎞나 떨어진 태평양의 무인섬 조도(鳥島)에 가까스로 도착했다. 절해고도의 무인도에서 143일 동안 겨우 목숨을 부지하며 구조를 기다리던 7월 21일, 일본 근해에까지 고래잡이를 나온 미국 포경선 ‘존 하우랜드호’에 의해 가까스로 구조됐다. 당시 일본은 외국 선박은...

日 ‘제로 전투기’ 해군 전투기로 채택

‘제로 전투기’는 일본이 태양처럼 떠오르고 다시 그 태양이 가미카제와 더불어 태평양 바닷 속으로 곤두박질칠 때까지 일본과 명운을 함께 했던 일본의 대표적인 함상(艦上) 전투기였다. 일본 해군은 1921년 ‘0식 전함’, 1935년 ‘96식 함상전투기(A5M)’를 개발하며 구미 각국의 군사기술을 쫓았으나 격차가 좁혀지지 않고 중·일전쟁까지 발발하자 신개념의 전투기를 구상했다. 이때 개발돼 일본 해군에 날개를 달아준 전투기가 일명 ‘제로 전투기’라 불린 ‘A6M2’ 전투기다....

미 상선 제너럴 셔먼호 사건

프랑스 신부 9명과 수 천명의 가톨릭 신자를 죽음으로 몰고간 병인박해(1866년) 후 프랑스 함대가 보복할지 모른다는 소문으로 조정에는 긴장감이 돌았고 민심 역시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이때 정체불명의 이양선 한 척이 대동강 어귀에 나타났다. 중국 톈진을 출발한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였다. 무역선이라지만 대포가 2문이나 장착되고 선원도 24명이나 되는 중무장한 80t급의 증기선이었다. 접근불가를 거듭 경고했지만 셔먼호는 막무가내로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에까지 다다랐다....

파리 시위대 바스티유 감옥 함락

1789년 프랑스. 수년 전부터 몰아닥친 지독한 흉작으로 크고 작은 폭동이 빈발하고 있을 때, 성직자·귀족·평민 세 신분층으로 구성된 3부회가 175년 만에 소집(5월 5일)되고, 평민과 자유주의 귀족들이 단결을 약속한 ‘테니스 코트 서약’(6월 20일)이 이뤄지면서 프랑스 전역에는 혁명의 기운이 감돌았다. 이런 와중에 3부회 최고 책임자가 파면됐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파리 시민들은 자위를 위해 성문을 굳게 닫고 가로에 바리케이드를 치며 경계에 들어갔다. 7월 14일에는 분노한...

중국 여성혁명가 추근(秋瑾) 처형

어려서부터 중국 여성을 옥죈 전족을 부정하고 남여차별을 인정하기 싫어했던 추진(秋瑾)의 눈 앞에 펼쳐진 1900년의 의화단 사건은 실로 충격이었다. 청조를 짓밟은 열강들에는 충격과 굴욕감을 느꼈고, 침략에는 무력하면서도 민중에게는 고압적인 청조에는 분노가 솟았다. 어느덧 27세, 결혼도 했고 1남1녀의 어머니였지만 선진문명에 목말라한 추진은 1904년 가족만 남겨둔 채 홀로 일본으로 떠났다. 사격연습도 하고 폭탄제조법도 익히며 혁명을 준비하던 중, 쑨원(孫文)이 일본에서...

뉴욕 타임스, 고더드의 로켓 이론 비판했던 49년 전 사설을 정정

뉴욕 타임스, 고더드의 로켓 이론 비판했던 49년 전 사설을 정정

↑ 1969년 7월 17일자 뉴욕 타임스에 실린 ‘A Correction’이라는 제목의 정정기사   훗날 ‘로켓의 아버지’로 불린 로버트 고더드가 1919년 ‘극단고도에 도달하는 기술’이란 제목의 논문을 통해 ‘엔진의 추진력을 충분히 높여준다면 로켓이 달까지 갈 수 있다’고 주장했을 때 뉴욕 타임스의 반응은 냉소 그 자체였다. 1920년 1월 13일자 사설에서 “고등학생 수준 이하의 지식으로 논문을 썼다”며 “공기가 없는 곳에선 추진을 할 수 없어 로켓의 우주비행은...

고종 강제 퇴위

어차피 예정된 일이었지만 1개월 전 실패로 돌아간 헤이그밀사 사건으로 그 시기가 앞당겨졌다. 일제의 강압으로 고종이 황제 자리에서 물러난 것이다. 헤이그밀사 사건 후 이토 히로부미는 고종을 알현한 자리에서 “차라리 당당하게 선전포고를 하라”며 압박했고, 이완용을 불러서는 “황제의 결단을 얻어내라”고 다그쳤다. 이완용은 1907년 7월 6일 어전회의를 열어 황제 스스로 퇴위를 결정하라고 요구했다. 송병준은 “이번 일은 폐하에게 책임이 있으니 도쿄에 가서 사죄를 하든지 대한문...

‘스웨덴판 쉰들러’ 라울 발렌베리의 비극적 죽음

‘스웨덴판 쉰들러’ 라울 발렌베리의 비극적 죽음

라울 발렌베리 이야기는 감동적이나 비극적이다. 그는 오늘날 스웨덴 전체 상장기업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최대기업 발렌베리 가문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공부하고 6개국 언어에 능통한 전도유망한 청년이었다. 그러나 사업차 방문한 헝가리에서 유대인의 공포를 목격하면서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헝가리 거주 유대인의 운명은 1944년 3월 독일군이 헝가리에 진주하면서 비극으로 내몰렸다. 수개월 동안 25만 명의 유대인이 아우슈비츠 가스실에서 죽어가자 미 정부는 중립국 스웨덴에 헝가리...

히틀러 암살하기로 한 ‘발퀴레 작전’ 미수

1944년 6월이 되면서 암살 음모자들의 움직임이 더욱 빨라졌다. 비밀경찰의 손길이 뻗치고 있었고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전황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마침 음모에 가담했던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이 히틀러에게 접근할 기회가 주어지는 독일 예비군사령관의 참모장에 임명되었다. 이는 히틀러 암살이 그의 어깨에 달려있음을 의미했다. 1944년 7월 20일 슈타우펜베르크는 지금의 폴란드 라슈텐부르크 야전사령부에 있는 히틀러로부터 호출 명령을 받았다. 슈타우펜베르크는...

앙드레 말로, 국제의용군 편대장으로 스페인 내전에 참전

작가 앙드레 말로의 삶은 20세기를 관통하는 한 편의 대하 드라마다. 매 순간을 변신과 파격으로 살았고 무모하리만큼 죽음에 초연했다. 젊은 시절(1923년), 순전히 돈을 벌 목적으로 캄보디아 앙코르의 한 사원에서 몰래 조각을 훔쳐 밀반출하려다 적발돼 수개월을 감옥에서 보내고, 1925년 베트남에서 ‘인도차이나’라는 신문을 발간해 제국주의자들을 비난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다. 식민정부의 방해공작으로 신문사 문을 닫은 뒤 한동안 중국에서 살았던 기간까지 포함한 약력을 그는...

14세 日 소년 만지로, 표류 중 미국 포경선에 구조돼… ‘일본의 로빈슨 크루소’

1841년 1월, 5명의 어부를 태운 어선이 시코쿠 앞바다에서 거친 풍랑에 휩싸여 표류하고 있었다. 배에 탄 14세 소년 만지로(萬次郞)도 탈진 상태였다. 거친 파도와 싸우던 일행은 표류 9일만에 일본으로부터 760㎞나 떨어진 태평양의 무인섬 조도(鳥島)에 가까스로 도착했다. 절해고도의 무인도에서 143일 동안 겨우 목숨을 부지하며 구조를 기다리던 7월 21일, 일본 근해에까지 고래잡이를 나온 미국 포경선 ‘존 하우랜드호’에 의해 가까스로 구조됐다. 당시 일본은 외국 선박은...

日 ‘제로 전투기’ 해군 전투기로 채택

‘제로 전투기’는 일본이 태양처럼 떠오르고 다시 그 태양이 가미카제와 더불어 태평양 바닷 속으로 곤두박질칠 때까지 일본과 명운을 함께 했던 일본의 대표적인 함상(艦上) 전투기였다. 일본 해군은 1921년 ‘0식 전함’, 1935년 ‘96식 함상전투기(A5M)’를 개발하며 구미 각국의 군사기술을 쫓았으나 격차가 좁혀지지 않고 중·일전쟁까지 발발하자 신개념의 전투기를 구상했다. 이때 개발돼 일본 해군에 날개를 달아준 전투기가 일명 ‘제로 전투기’라 불린 ‘A6M2’ 전투기다....

미 상선 제너럴 셔먼호 사건

프랑스 신부 9명과 수 천명의 가톨릭 신자를 죽음으로 몰고간 병인박해(1866년) 후 프랑스 함대가 보복할지 모른다는 소문으로 조정에는 긴장감이 돌았고 민심 역시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이때 정체불명의 이양선 한 척이 대동강 어귀에 나타났다. 중국 톈진을 출발한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였다. 무역선이라지만 대포가 2문이나 장착되고 선원도 24명이나 되는 중무장한 80t급의 증기선이었다. 접근불가를 거듭 경고했지만 셔먼호는 막무가내로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에까지 다다랐다....

파리 시위대 바스티유 감옥 함락

1789년 프랑스. 수년 전부터 몰아닥친 지독한 흉작으로 크고 작은 폭동이 빈발하고 있을 때, 성직자·귀족·평민 세 신분층으로 구성된 3부회가 175년 만에 소집(5월 5일)되고, 평민과 자유주의 귀족들이 단결을 약속한 ‘테니스 코트 서약’(6월 20일)이 이뤄지면서 프랑스 전역에는 혁명의 기운이 감돌았다. 이런 와중에 3부회 최고 책임자가 파면됐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파리 시민들은 자위를 위해 성문을 굳게 닫고 가로에 바리케이드를 치며 경계에 들어갔다. 7월 14일에는 분노한...

중국 여성혁명가 추근(秋瑾) 처형

어려서부터 중국 여성을 옥죈 전족을 부정하고 남여차별을 인정하기 싫어했던 추진(秋瑾)의 눈 앞에 펼쳐진 1900년의 의화단 사건은 실로 충격이었다. 청조를 짓밟은 열강들에는 충격과 굴욕감을 느꼈고, 침략에는 무력하면서도 민중에게는 고압적인 청조에는 분노가 솟았다. 어느덧 27세, 결혼도 했고 1남1녀의 어머니였지만 선진문명에 목말라한 추진은 1904년 가족만 남겨둔 채 홀로 일본으로 떠났다. 사격연습도 하고 폭탄제조법도 익히며 혁명을 준비하던 중, 쑨원(孫文)이 일본에서...

뉴욕 타임스, 고더드의 로켓 이론 비판했던 49년 전 사설을 정정

뉴욕 타임스, 고더드의 로켓 이론 비판했던 49년 전 사설을 정정

↑ 1969년 7월 17일자 뉴욕 타임스에 실린 ‘A Correction’이라는 제목의 정정기사   훗날 ‘로켓의 아버지’로 불린 로버트 고더드가 1919년 ‘극단고도에 도달하는 기술’이란 제목의 논문을 통해 ‘엔진의 추진력을 충분히 높여준다면 로켓이 달까지 갈 수 있다’고 주장했을 때 뉴욕 타임스의 반응은 냉소 그 자체였다. 1920년 1월 13일자 사설에서 “고등학생 수준 이하의 지식으로 논문을 썼다”며 “공기가 없는 곳에선 추진을 할 수 없어 로켓의 우주비행은...

고종 강제 퇴위

어차피 예정된 일이었지만 1개월 전 실패로 돌아간 헤이그밀사 사건으로 그 시기가 앞당겨졌다. 일제의 강압으로 고종이 황제 자리에서 물러난 것이다. 헤이그밀사 사건 후 이토 히로부미는 고종을 알현한 자리에서 “차라리 당당하게 선전포고를 하라”며 압박했고, 이완용을 불러서는 “황제의 결단을 얻어내라”고 다그쳤다. 이완용은 1907년 7월 6일 어전회의를 열어 황제 스스로 퇴위를 결정하라고 요구했다. 송병준은 “이번 일은 폐하에게 책임이 있으니 도쿄에 가서 사죄를 하든지 대한문...

‘스웨덴판 쉰들러’ 라울 발렌베리의 비극적 죽음

‘스웨덴판 쉰들러’ 라울 발렌베리의 비극적 죽음

라울 발렌베리 이야기는 감동적이나 비극적이다. 그는 오늘날 스웨덴 전체 상장기업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최대기업 발렌베리 가문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공부하고 6개국 언어에 능통한 전도유망한 청년이었다. 그러나 사업차 방문한 헝가리에서 유대인의 공포를 목격하면서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헝가리 거주 유대인의 운명은 1944년 3월 독일군이 헝가리에 진주하면서 비극으로 내몰렸다. 수개월 동안 25만 명의 유대인이 아우슈비츠 가스실에서 죽어가자 미 정부는 중립국 스웨덴에 헝가리...

히틀러 암살하기로 한 ‘발퀴레 작전’ 미수

1944년 6월이 되면서 암살 음모자들의 움직임이 더욱 빨라졌다. 비밀경찰의 손길이 뻗치고 있었고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전황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마침 음모에 가담했던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이 히틀러에게 접근할 기회가 주어지는 독일 예비군사령관의 참모장에 임명되었다. 이는 히틀러 암살이 그의 어깨에 달려있음을 의미했다. 1944년 7월 20일 슈타우펜베르크는 지금의 폴란드 라슈텐부르크 야전사령부에 있는 히틀러로부터 호출 명령을 받았다. 슈타우펜베르크는...

앙드레 말로, 국제의용군 편대장으로 스페인 내전에 참전

작가 앙드레 말로의 삶은 20세기를 관통하는 한 편의 대하 드라마다. 매 순간을 변신과 파격으로 살았고 무모하리만큼 죽음에 초연했다. 젊은 시절(1923년), 순전히 돈을 벌 목적으로 캄보디아 앙코르의 한 사원에서 몰래 조각을 훔쳐 밀반출하려다 적발돼 수개월을 감옥에서 보내고, 1925년 베트남에서 ‘인도차이나’라는 신문을 발간해 제국주의자들을 비난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다. 식민정부의 방해공작으로 신문사 문을 닫은 뒤 한동안 중국에서 살았던 기간까지 포함한 약력을 그는...

14세 日 소년 만지로, 표류 중 미국 포경선에 구조돼… ‘일본의 로빈슨 크루소’

1841년 1월, 5명의 어부를 태운 어선이 시코쿠 앞바다에서 거친 풍랑에 휩싸여 표류하고 있었다. 배에 탄 14세 소년 만지로(萬次郞)도 탈진 상태였다. 거친 파도와 싸우던 일행은 표류 9일만에 일본으로부터 760㎞나 떨어진 태평양의 무인섬 조도(鳥島)에 가까스로 도착했다. 절해고도의 무인도에서 143일 동안 겨우 목숨을 부지하며 구조를 기다리던 7월 21일, 일본 근해에까지 고래잡이를 나온 미국 포경선 ‘존 하우랜드호’에 의해 가까스로 구조됐다. 당시 일본은 외국 선박은...

日 ‘제로 전투기’ 해군 전투기로 채택

‘제로 전투기’는 일본이 태양처럼 떠오르고 다시 그 태양이 가미카제와 더불어 태평양 바닷 속으로 곤두박질칠 때까지 일본과 명운을 함께 했던 일본의 대표적인 함상(艦上) 전투기였다. 일본 해군은 1921년 ‘0식 전함’, 1935년 ‘96식 함상전투기(A5M)’를 개발하며 구미 각국의 군사기술을 쫓았으나 격차가 좁혀지지 않고 중·일전쟁까지 발발하자 신개념의 전투기를 구상했다. 이때 개발돼 일본 해군에 날개를 달아준 전투기가 일명 ‘제로 전투기’라 불린 ‘A6M2’ 전투기다....

미 상선 제너럴 셔먼호 사건

프랑스 신부 9명과 수 천명의 가톨릭 신자를 죽음으로 몰고간 병인박해(1866년) 후 프랑스 함대가 보복할지 모른다는 소문으로 조정에는 긴장감이 돌았고 민심 역시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이때 정체불명의 이양선 한 척이 대동강 어귀에 나타났다. 중국 톈진을 출발한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였다. 무역선이라지만 대포가 2문이나 장착되고 선원도 24명이나 되는 중무장한 80t급의 증기선이었다. 접근불가를 거듭 경고했지만 셔먼호는 막무가내로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에까지 다다랐다....

파리 시위대 바스티유 감옥 함락

1789년 프랑스. 수년 전부터 몰아닥친 지독한 흉작으로 크고 작은 폭동이 빈발하고 있을 때, 성직자·귀족·평민 세 신분층으로 구성된 3부회가 175년 만에 소집(5월 5일)되고, 평민과 자유주의 귀족들이 단결을 약속한 ‘테니스 코트 서약’(6월 20일)이 이뤄지면서 프랑스 전역에는 혁명의 기운이 감돌았다. 이런 와중에 3부회 최고 책임자가 파면됐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파리 시민들은 자위를 위해 성문을 굳게 닫고 가로에 바리케이드를 치며 경계에 들어갔다. 7월 14일에는 분노한...

중국 여성혁명가 추근(秋瑾) 처형

어려서부터 중국 여성을 옥죈 전족을 부정하고 남여차별을 인정하기 싫어했던 추진(秋瑾)의 눈 앞에 펼쳐진 1900년의 의화단 사건은 실로 충격이었다. 청조를 짓밟은 열강들에는 충격과 굴욕감을 느꼈고, 침략에는 무력하면서도 민중에게는 고압적인 청조에는 분노가 솟았다. 어느덧 27세, 결혼도 했고 1남1녀의 어머니였지만 선진문명에 목말라한 추진은 1904년 가족만 남겨둔 채 홀로 일본으로 떠났다. 사격연습도 하고 폭탄제조법도 익히며 혁명을 준비하던 중, 쑨원(孫文)이 일본에서...

뉴욕 타임스, 고더드의 로켓 이론 비판했던 49년 전 사설을 정정

뉴욕 타임스, 고더드의 로켓 이론 비판했던 49년 전 사설을 정정

↑ 1969년 7월 17일자 뉴욕 타임스에 실린 ‘A Correction’이라는 제목의 정정기사   훗날 ‘로켓의 아버지’로 불린 로버트 고더드가 1919년 ‘극단고도에 도달하는 기술’이란 제목의 논문을 통해 ‘엔진의 추진력을 충분히 높여준다면 로켓이 달까지 갈 수 있다’고 주장했을 때 뉴욕 타임스의 반응은 냉소 그 자체였다. 1920년 1월 13일자 사설에서 “고등학생 수준 이하의 지식으로 논문을 썼다”며 “공기가 없는 곳에선 추진을 할 수 없어 로켓의 우주비행은...

고종 강제 퇴위

어차피 예정된 일이었지만 1개월 전 실패로 돌아간 헤이그밀사 사건으로 그 시기가 앞당겨졌다. 일제의 강압으로 고종이 황제 자리에서 물러난 것이다. 헤이그밀사 사건 후 이토 히로부미는 고종을 알현한 자리에서 “차라리 당당하게 선전포고를 하라”며 압박했고, 이완용을 불러서는 “황제의 결단을 얻어내라”고 다그쳤다. 이완용은 1907년 7월 6일 어전회의를 열어 황제 스스로 퇴위를 결정하라고 요구했다. 송병준은 “이번 일은 폐하에게 책임이 있으니 도쿄에 가서 사죄를 하든지 대한문...

‘스웨덴판 쉰들러’ 라울 발렌베리의 비극적 죽음

‘스웨덴판 쉰들러’ 라울 발렌베리의 비극적 죽음

라울 발렌베리 이야기는 감동적이나 비극적이다. 그는 오늘날 스웨덴 전체 상장기업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최대기업 발렌베리 가문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공부하고 6개국 언어에 능통한 전도유망한 청년이었다. 그러나 사업차 방문한 헝가리에서 유대인의 공포를 목격하면서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헝가리 거주 유대인의 운명은 1944년 3월 독일군이 헝가리에 진주하면서 비극으로 내몰렸다. 수개월 동안 25만 명의 유대인이 아우슈비츠 가스실에서 죽어가자 미 정부는 중립국 스웨덴에 헝가리...

히틀러 암살하기로 한 ‘발퀴레 작전’ 미수

1944년 6월이 되면서 암살 음모자들의 움직임이 더욱 빨라졌다. 비밀경찰의 손길이 뻗치고 있었고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전황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마침 음모에 가담했던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이 히틀러에게 접근할 기회가 주어지는 독일 예비군사령관의 참모장에 임명되었다. 이는 히틀러 암살이 그의 어깨에 달려있음을 의미했다. 1944년 7월 20일 슈타우펜베르크는 지금의 폴란드 라슈텐부르크 야전사령부에 있는 히틀러로부터 호출 명령을 받았다. 슈타우펜베르크는...

앙드레 말로, 국제의용군 편대장으로 스페인 내전에 참전

작가 앙드레 말로의 삶은 20세기를 관통하는 한 편의 대하 드라마다. 매 순간을 변신과 파격으로 살았고 무모하리만큼 죽음에 초연했다. 젊은 시절(1923년), 순전히 돈을 벌 목적으로 캄보디아 앙코르의 한 사원에서 몰래 조각을 훔쳐 밀반출하려다 적발돼 수개월을 감옥에서 보내고, 1925년 베트남에서 ‘인도차이나’라는 신문을 발간해 제국주의자들을 비난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다. 식민정부의 방해공작으로 신문사 문을 닫은 뒤 한동안 중국에서 살았던 기간까지 포함한 약력을 그는...

14세 日 소년 만지로, 표류 중 미국 포경선에 구조돼… ‘일본의 로빈슨 크루소’

1841년 1월, 5명의 어부를 태운 어선이 시코쿠 앞바다에서 거친 풍랑에 휩싸여 표류하고 있었다. 배에 탄 14세 소년 만지로(萬次郞)도 탈진 상태였다. 거친 파도와 싸우던 일행은 표류 9일만에 일본으로부터 760㎞나 떨어진 태평양의 무인섬 조도(鳥島)에 가까스로 도착했다. 절해고도의 무인도에서 143일 동안 겨우 목숨을 부지하며 구조를 기다리던 7월 21일, 일본 근해에까지 고래잡이를 나온 미국 포경선 ‘존 하우랜드호’에 의해 가까스로 구조됐다. 당시 일본은 외국 선박은...

日 ‘제로 전투기’ 해군 전투기로 채택

‘제로 전투기’는 일본이 태양처럼 떠오르고 다시 그 태양이 가미카제와 더불어 태평양 바닷 속으로 곤두박질칠 때까지 일본과 명운을 함께 했던 일본의 대표적인 함상(艦上) 전투기였다. 일본 해군은 1921년 ‘0식 전함’, 1935년 ‘96식 함상전투기(A5M)’를 개발하며 구미 각국의 군사기술을 쫓았으나 격차가 좁혀지지 않고 중·일전쟁까지 발발하자 신개념의 전투기를 구상했다. 이때 개발돼 일본 해군에 날개를 달아준 전투기가 일명 ‘제로 전투기’라 불린 ‘A6M2’ 전투기다....

미 상선 제너럴 셔먼호 사건

프랑스 신부 9명과 수 천명의 가톨릭 신자를 죽음으로 몰고간 병인박해(1866년) 후 프랑스 함대가 보복할지 모른다는 소문으로 조정에는 긴장감이 돌았고 민심 역시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이때 정체불명의 이양선 한 척이 대동강 어귀에 나타났다. 중국 톈진을 출발한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였다. 무역선이라지만 대포가 2문이나 장착되고 선원도 24명이나 되는 중무장한 80t급의 증기선이었다. 접근불가를 거듭 경고했지만 셔먼호는 막무가내로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에까지 다다랐다....

파리 시위대 바스티유 감옥 함락

1789년 프랑스. 수년 전부터 몰아닥친 지독한 흉작으로 크고 작은 폭동이 빈발하고 있을 때, 성직자·귀족·평민 세 신분층으로 구성된 3부회가 175년 만에 소집(5월 5일)되고, 평민과 자유주의 귀족들이 단결을 약속한 ‘테니스 코트 서약’(6월 20일)이 이뤄지면서 프랑스 전역에는 혁명의 기운이 감돌았다. 이런 와중에 3부회 최고 책임자가 파면됐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파리 시민들은 자위를 위해 성문을 굳게 닫고 가로에 바리케이드를 치며 경계에 들어갔다. 7월 14일에는 분노한...

중국 여성혁명가 추근(秋瑾) 처형

어려서부터 중국 여성을 옥죈 전족을 부정하고 남여차별을 인정하기 싫어했던 추진(秋瑾)의 눈 앞에 펼쳐진 1900년의 의화단 사건은 실로 충격이었다. 청조를 짓밟은 열강들에는 충격과 굴욕감을 느꼈고, 침략에는 무력하면서도 민중에게는 고압적인 청조에는 분노가 솟았다. 어느덧 27세, 결혼도 했고 1남1녀의 어머니였지만 선진문명에 목말라한 추진은 1904년 가족만 남겨둔 채 홀로 일본으로 떠났다. 사격연습도 하고 폭탄제조법도 익히며 혁명을 준비하던 중, 쑨원(孫文)이 일본에서...

뉴욕 타임스, 고더드의 로켓 이론 비판했던 49년 전 사설을 정정

뉴욕 타임스, 고더드의 로켓 이론 비판했던 49년 전 사설을 정정

↑ 1969년 7월 17일자 뉴욕 타임스에 실린 ‘A Correction’이라는 제목의 정정기사   훗날 ‘로켓의 아버지’로 불린 로버트 고더드가 1919년 ‘극단고도에 도달하는 기술’이란 제목의 논문을 통해 ‘엔진의 추진력을 충분히 높여준다면 로켓이 달까지 갈 수 있다’고 주장했을 때 뉴욕 타임스의 반응은 냉소 그 자체였다. 1920년 1월 13일자 사설에서 “고등학생 수준 이하의 지식으로 논문을 썼다”며 “공기가 없는 곳에선 추진을 할 수 없어 로켓의 우주비행은...

고종 강제 퇴위

어차피 예정된 일이었지만 1개월 전 실패로 돌아간 헤이그밀사 사건으로 그 시기가 앞당겨졌다. 일제의 강압으로 고종이 황제 자리에서 물러난 것이다. 헤이그밀사 사건 후 이토 히로부미는 고종을 알현한 자리에서 “차라리 당당하게 선전포고를 하라”며 압박했고, 이완용을 불러서는 “황제의 결단을 얻어내라”고 다그쳤다. 이완용은 1907년 7월 6일 어전회의를 열어 황제 스스로 퇴위를 결정하라고 요구했다. 송병준은 “이번 일은 폐하에게 책임이 있으니 도쿄에 가서 사죄를 하든지 대한문...

‘스웨덴판 쉰들러’ 라울 발렌베리의 비극적 죽음

‘스웨덴판 쉰들러’ 라울 발렌베리의 비극적 죽음

라울 발렌베리 이야기는 감동적이나 비극적이다. 그는 오늘날 스웨덴 전체 상장기업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최대기업 발렌베리 가문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공부하고 6개국 언어에 능통한 전도유망한 청년이었다. 그러나 사업차 방문한 헝가리에서 유대인의 공포를 목격하면서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헝가리 거주 유대인의 운명은 1944년 3월 독일군이 헝가리에 진주하면서 비극으로 내몰렸다. 수개월 동안 25만 명의 유대인이 아우슈비츠 가스실에서 죽어가자 미 정부는 중립국 스웨덴에 헝가리...

히틀러 암살하기로 한 ‘발퀴레 작전’ 미수

1944년 6월이 되면서 암살 음모자들의 움직임이 더욱 빨라졌다. 비밀경찰의 손길이 뻗치고 있었고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전황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마침 음모에 가담했던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이 히틀러에게 접근할 기회가 주어지는 독일 예비군사령관의 참모장에 임명되었다. 이는 히틀러 암살이 그의 어깨에 달려있음을 의미했다. 1944년 7월 20일 슈타우펜베르크는 지금의 폴란드 라슈텐부르크 야전사령부에 있는 히틀러로부터 호출 명령을 받았다. 슈타우펜베르크는...

앙드레 말로, 국제의용군 편대장으로 스페인 내전에 참전

작가 앙드레 말로의 삶은 20세기를 관통하는 한 편의 대하 드라마다. 매 순간을 변신과 파격으로 살았고 무모하리만큼 죽음에 초연했다. 젊은 시절(1923년), 순전히 돈을 벌 목적으로 캄보디아 앙코르의 한 사원에서 몰래 조각을 훔쳐 밀반출하려다 적발돼 수개월을 감옥에서 보내고, 1925년 베트남에서 ‘인도차이나’라는 신문을 발간해 제국주의자들을 비난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다. 식민정부의 방해공작으로 신문사 문을 닫은 뒤 한동안 중국에서 살았던 기간까지 포함한 약력을 그는...

14세 日 소년 만지로, 표류 중 미국 포경선에 구조돼… ‘일본의 로빈슨 크루소’

1841년 1월, 5명의 어부를 태운 어선이 시코쿠 앞바다에서 거친 풍랑에 휩싸여 표류하고 있었다. 배에 탄 14세 소년 만지로(萬次郞)도 탈진 상태였다. 거친 파도와 싸우던 일행은 표류 9일만에 일본으로부터 760㎞나 떨어진 태평양의 무인섬 조도(鳥島)에 가까스로 도착했다. 절해고도의 무인도에서 143일 동안 겨우 목숨을 부지하며 구조를 기다리던 7월 21일, 일본 근해에까지 고래잡이를 나온 미국 포경선 ‘존 하우랜드호’에 의해 가까스로 구조됐다. 당시 일본은 외국 선박은...

日 ‘제로 전투기’ 해군 전투기로 채택

‘제로 전투기’는 일본이 태양처럼 떠오르고 다시 그 태양이 가미카제와 더불어 태평양 바닷 속으로 곤두박질칠 때까지 일본과 명운을 함께 했던 일본의 대표적인 함상(艦上) 전투기였다. 일본 해군은 1921년 ‘0식 전함’, 1935년 ‘96식 함상전투기(A5M)’를 개발하며 구미 각국의 군사기술을 쫓았으나 격차가 좁혀지지 않고 중·일전쟁까지 발발하자 신개념의 전투기를 구상했다. 이때 개발돼 일본 해군에 날개를 달아준 전투기가 일명 ‘제로 전투기’라 불린 ‘A6M2’ 전투기다....

미 상선 제너럴 셔먼호 사건

프랑스 신부 9명과 수 천명의 가톨릭 신자를 죽음으로 몰고간 병인박해(1866년) 후 프랑스 함대가 보복할지 모른다는 소문으로 조정에는 긴장감이 돌았고 민심 역시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이때 정체불명의 이양선 한 척이 대동강 어귀에 나타났다. 중국 톈진을 출발한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였다. 무역선이라지만 대포가 2문이나 장착되고 선원도 24명이나 되는 중무장한 80t급의 증기선이었다. 접근불가를 거듭 경고했지만 셔먼호는 막무가내로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에까지 다다랐다....

파리 시위대 바스티유 감옥 함락

1789년 프랑스. 수년 전부터 몰아닥친 지독한 흉작으로 크고 작은 폭동이 빈발하고 있을 때, 성직자·귀족·평민 세 신분층으로 구성된 3부회가 175년 만에 소집(5월 5일)되고, 평민과 자유주의 귀족들이 단결을 약속한 ‘테니스 코트 서약’(6월 20일)이 이뤄지면서 프랑스 전역에는 혁명의 기운이 감돌았다. 이런 와중에 3부회 최고 책임자가 파면됐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파리 시민들은 자위를 위해 성문을 굳게 닫고 가로에 바리케이드를 치며 경계에 들어갔다. 7월 14일에는 분노한...

중국 여성혁명가 추근(秋瑾) 처형

어려서부터 중국 여성을 옥죈 전족을 부정하고 남여차별을 인정하기 싫어했던 추진(秋瑾)의 눈 앞에 펼쳐진 1900년의 의화단 사건은 실로 충격이었다. 청조를 짓밟은 열강들에는 충격과 굴욕감을 느꼈고, 침략에는 무력하면서도 민중에게는 고압적인 청조에는 분노가 솟았다. 어느덧 27세, 결혼도 했고 1남1녀의 어머니였지만 선진문명에 목말라한 추진은 1904년 가족만 남겨둔 채 홀로 일본으로 떠났다. 사격연습도 하고 폭탄제조법도 익히며 혁명을 준비하던 중, 쑨원(孫文)이 일본에서...

뉴욕 타임스, 고더드의 로켓 이론 비판했던 49년 전 사설을 정정

뉴욕 타임스, 고더드의 로켓 이론 비판했던 49년 전 사설을 정정

↑ 1969년 7월 17일자 뉴욕 타임스에 실린 ‘A Correction’이라는 제목의 정정기사   훗날 ‘로켓의 아버지’로 불린 로버트 고더드가 1919년 ‘극단고도에 도달하는 기술’이란 제목의 논문을 통해 ‘엔진의 추진력을 충분히 높여준다면 로켓이 달까지 갈 수 있다’고 주장했을 때 뉴욕 타임스의 반응은 냉소 그 자체였다. 1920년 1월 13일자 사설에서 “고등학생 수준 이하의 지식으로 논문을 썼다”며 “공기가 없는 곳에선 추진을 할 수 없어 로켓의 우주비행은...

고종 강제 퇴위

어차피 예정된 일이었지만 1개월 전 실패로 돌아간 헤이그밀사 사건으로 그 시기가 앞당겨졌다. 일제의 강압으로 고종이 황제 자리에서 물러난 것이다. 헤이그밀사 사건 후 이토 히로부미는 고종을 알현한 자리에서 “차라리 당당하게 선전포고를 하라”며 압박했고, 이완용을 불러서는 “황제의 결단을 얻어내라”고 다그쳤다. 이완용은 1907년 7월 6일 어전회의를 열어 황제 스스로 퇴위를 결정하라고 요구했다. 송병준은 “이번 일은 폐하에게 책임이 있으니 도쿄에 가서 사죄를 하든지 대한문...

‘스웨덴판 쉰들러’ 라울 발렌베리의 비극적 죽음

‘스웨덴판 쉰들러’ 라울 발렌베리의 비극적 죽음

라울 발렌베리 이야기는 감동적이나 비극적이다. 그는 오늘날 스웨덴 전체 상장기업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최대기업 발렌베리 가문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공부하고 6개국 언어에 능통한 전도유망한 청년이었다. 그러나 사업차 방문한 헝가리에서 유대인의 공포를 목격하면서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헝가리 거주 유대인의 운명은 1944년 3월 독일군이 헝가리에 진주하면서 비극으로 내몰렸다. 수개월 동안 25만 명의 유대인이 아우슈비츠 가스실에서 죽어가자 미 정부는 중립국 스웨덴에 헝가리...

히틀러 암살하기로 한 ‘발퀴레 작전’ 미수

1944년 6월이 되면서 암살 음모자들의 움직임이 더욱 빨라졌다. 비밀경찰의 손길이 뻗치고 있었고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전황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마침 음모에 가담했던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이 히틀러에게 접근할 기회가 주어지는 독일 예비군사령관의 참모장에 임명되었다. 이는 히틀러 암살이 그의 어깨에 달려있음을 의미했다. 1944년 7월 20일 슈타우펜베르크는 지금의 폴란드 라슈텐부르크 야전사령부에 있는 히틀러로부터 호출 명령을 받았다. 슈타우펜베르크는...

앙드레 말로, 국제의용군 편대장으로 스페인 내전에 참전

작가 앙드레 말로의 삶은 20세기를 관통하는 한 편의 대하 드라마다. 매 순간을 변신과 파격으로 살았고 무모하리만큼 죽음에 초연했다. 젊은 시절(1923년), 순전히 돈을 벌 목적으로 캄보디아 앙코르의 한 사원에서 몰래 조각을 훔쳐 밀반출하려다 적발돼 수개월을 감옥에서 보내고, 1925년 베트남에서 ‘인도차이나’라는 신문을 발간해 제국주의자들을 비난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다. 식민정부의 방해공작으로 신문사 문을 닫은 뒤 한동안 중국에서 살았던 기간까지 포함한 약력을 그는...

14세 日 소년 만지로, 표류 중 미국 포경선에 구조돼… ‘일본의 로빈슨 크루소’

1841년 1월, 5명의 어부를 태운 어선이 시코쿠 앞바다에서 거친 풍랑에 휩싸여 표류하고 있었다. 배에 탄 14세 소년 만지로(萬次郞)도 탈진 상태였다. 거친 파도와 싸우던 일행은 표류 9일만에 일본으로부터 760㎞나 떨어진 태평양의 무인섬 조도(鳥島)에 가까스로 도착했다. 절해고도의 무인도에서 143일 동안 겨우 목숨을 부지하며 구조를 기다리던 7월 21일, 일본 근해에까지 고래잡이를 나온 미국 포경선 ‘존 하우랜드호’에 의해 가까스로 구조됐다. 당시 일본은 외국 선박은...

日 ‘제로 전투기’ 해군 전투기로 채택

‘제로 전투기’는 일본이 태양처럼 떠오르고 다시 그 태양이 가미카제와 더불어 태평양 바닷 속으로 곤두박질칠 때까지 일본과 명운을 함께 했던 일본의 대표적인 함상(艦上) 전투기였다. 일본 해군은 1921년 ‘0식 전함’, 1935년 ‘96식 함상전투기(A5M)’를 개발하며 구미 각국의 군사기술을 쫓았으나 격차가 좁혀지지 않고 중·일전쟁까지 발발하자 신개념의 전투기를 구상했다. 이때 개발돼 일본 해군에 날개를 달아준 전투기가 일명 ‘제로 전투기’라 불린 ‘A6M2’ 전투기다....

미 상선 제너럴 셔먼호 사건

프랑스 신부 9명과 수 천명의 가톨릭 신자를 죽음으로 몰고간 병인박해(1866년) 후 프랑스 함대가 보복할지 모른다는 소문으로 조정에는 긴장감이 돌았고 민심 역시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이때 정체불명의 이양선 한 척이 대동강 어귀에 나타났다. 중국 톈진을 출발한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였다. 무역선이라지만 대포가 2문이나 장착되고 선원도 24명이나 되는 중무장한 80t급의 증기선이었다. 접근불가를 거듭 경고했지만 셔먼호는 막무가내로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에까지 다다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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