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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원정대, 파키스탄 북쪽 카라코람 산맥의 최고봉 ‘K2봉’ 세계최초 등정

‘K2봉’은 파키스탄 북쪽에 있는 카라코람 산맥의 최고봉이다. 높이(8,611m)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산(8,848m)에 못미치지만 정상에 오르는 데는 K2만큼 험하고 힘든 산이 없다. 세계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완등한 라인홀트 메스너가 “에베레스트는 K2 등반에 비하면 산책과 같다”고 평할 만큼 K2봉은 최고의 난코스를 자랑한다. ‘K2’라는 명칭은 1856년 영국의 인도측량장교 몽고메리가 카슈미르에서 바라본 카라코람의 고봉들을 순차적으로 K1,...

마리아 칼라스, 이탈리아 오페라 무대 데뷔

한 오페라 연출가는 “칼라스 이전(Before Callas)은 오페라 역사에서 기원전(BC)”이라고 했다. 그의 말을 기준하면 1947년은 BC와 그 이후를 구분하는 경계가 된다. 마리아 칼라스가 이탈리아 오페라 무대에 입성함으로써 무명의 설움을 떨쳐버린 것은 1947년이다. 대부호이자 매니저였던 남편 메네기니를 만난 것도 같은 해였다. 칼라스는 1923년 뉴욕에서 그리스 이민자의 딸로 태어났다. 노래에는 재능이 있었으나 지독한 근시에 뚱뚱하기까지 해 주목을 끌진 못했다....

6·25 전쟁 다부동 전투 막 올라… 개전 후 밀리기만 하던 전투 양상, 비로소 승전

6·25 발발과 함께 후퇴만을 거듭해온 국군과 미군이 낙동강 전선에 배수의 진을 친 것은 1950년 8월 초였다. 국군과 미군이 낙동강을 건넌 후 8월 3일 워커 미8군 사령관의 명령에 따라 경북 왜관의 낙동강 철교 등 모든 교량이 폭파되고 방어선이 쳐졌다. ‘워커 라인’으로 불린 동서 80㎞, 남북 160㎞의 방어선에는 왜관 북쪽을 기점으로 동해안의 영덕까지 국군 5개 사단이 포진했고, 낙동강 본류를 따라 진해만까지 이르는 남쪽 전선은 미군 3개 사단이 배치됐다. 워커는 이...

팀 버너스 리, ‘월드 와이드 웹(www)’ 첫 공개

‘월드 와이드 웹(www)’은 혁명이었다. 봉화는 영국의 팀 버너스 리(Tim Berners Lee)가 쏘아 올렸고, 혁명이 싹튼 곳은 그가 연구원으로 근무하던 스위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였다. 1989년 3월, 버너스 리는 한 프로젝트를 연구소에 제안한다. 연구원들 간의 정보를 체계적으로 공유하기 위한 방안이었다. 연구소 내 한 동료가 합류하면서 연구는 속도를 더했다. 1990년 10월부터 1개월 동안 NeXT 컴퓨터로 첫 웹 브라우저를 개발한 버너스 리는 프로그램을...

제시 오웬스 1936년 베를린올림픽 육상 4관왕에 올라

1935년 5월 25일, 제시 오웬스가 ‘빅 텐’(주요 10개 대학간 경기)에서 불과 45분만에 3개의 세계 신기록과 1개의 세계 타이기록을 세워 일약 미 육상계 최고의 유망주로 떠오른다. 이날 이후 오웬스는 ‘검은 탄환’으로 불리며 이듬해에 있을 베를린 올림픽 참가를 예약한다. 1936년의 베를린 올림픽은 히틀러가 아리안 민족의 우월성을 세계에 과시할 목적으로 치러졌다. 유대인을 경멸하고 흑인들을 조소한 이 베를린 올림픽에서 오웬스는 4개의 금메달을 땄다....

IBM 최초 PC 발표… 빌 게이츠 신화의 시작

빌 게이츠의 신화는 1975년 시작된다. 그해 막 스무살이 된 하버드대 2학년생 빌 게이츠는 한 잡지에서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 ‘알테어 8800’에 관한 기사를 보고 대형 컴퓨터의 시대가 저물고 개인용 컴퓨터 세계가 펼쳐지고 있음을 예감했다. 게이츠는 곧 알테어용 언어 프로그램 ‘베이직’을 8주만에 완성하고, 3월에는 단짝 폴 앨런과 마이크로소프트(MS)사를 설립, 신화창조에 박차를 가했다. ‘베이직’이 점차 업계표준으로 자리잡으면서 둘의 명성은 입에서 입으로 퍼져갔다....

일본군 러시아혁명 간섭 위해 시베리아 출병

1차대전이 한창일 때 일어난 러시아 10월혁명으로 연합국은 심각한 충격을 받았다. 독일과의 강화조약으로 러시아군이 전선에서 이탈하면 그들과 대치해온 독일군이 서부전선으로 대거 투입될 것이 뻔한데다 자칫 혁명의 불길이 자국에까지 미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결국 독일과 러시아 간의 브레스트 리토프스크조약(1918.3)으로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드러나자 영국과 프랑스는 소비에트 혁명정권에 대해 무력간섭에 나서는 한편 미국과 일본의 동참을 요청했다. 파병을 주저하는 미국과...

백제 무령왕릉 발굴

유물에도 팔자가 있다고 한다. 도굴되지 않은 처녀분인 채로 1400년 이상이나 제 모습을 지켜온 것을 보면 무령왕릉의 첫 팔자는 괜찮았는지 모른다. 충남 공주 송산리고분 5호분과 6호분은 도굴과 발굴 과정에서 천장이 훼손돼 비만 오면 물이 스며들었다. 공주박물관측은 여름 장마를 앞두고 배수로를 만들기 위해 1971년 6월 29일부터 뒤쪽 언덕을 파내려갔다. 7월 5일 한 인부의 삽이 땅속 벽돌 모서리에 부딪혔다. 1450년간 긴 잠에 빠져있던 백제 무령왕을 깨우는 소리였다....

아프리카 기아 난민 돕기 위한 ‘라이브 에이드(Live Aid)’ 콘서트, 영국·미국에서 동시에 열려

아프리카 기아 난민 돕기 위한 ‘라이브 에이드(Live Aid)’ 콘서트, 영국·미국에서 동시에 열려

↑ 1985년 7월 13일 영국 런던의 웸블리 스타디움 공연 장면   1984년 11월 어느날, TV를 보던 아일랜드 록 가수 보브 겔도프의 눈가에 물방울이 맺혔다. TV에서는 에티오피아 난민의 참담한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며칠 뒤 “자선음반을 내자”는 겔도프의 제안을 듣고 영국 최고의 팝스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보이 조지, 필 콜린스 등 36명의 스타들은 ‘밴드 에이드(Band Aid)’를 결성하고는 노래 ‘그들이 크리스마스를 알까요?’를 녹음했다. 영국 팬이...

이승만 대통령, 맥아더 유엔군사령관에게 ‘대전협정’ 전달

서울을 빼앗기고 임시정부가 있던 대전마저 위태롭던 1950년 7월 14일, 이승만 대통령이 손수 타자로 친 문서 하나를 맥아더 유엔군사령관에게 전달한다. ‘현재의 전쟁상태가 지속되는 동안 한국군에 대한 일체의 지휘권을 귀하에게 이양한다’는 이른바 ‘대전협정’이었다. 국가의 운명이 누란의 위기에 처하고, 파죽지세로 남하하는 북한군을 막아낼 무기도 군사도 없을 때, 우리 국군의 작전지휘권은 이렇게 유엔군에 넘어갔다. 김일성의 남침으로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았으나 7월 7일...

이탈리아 원정대, 파키스탄 북쪽 카라코람 산맥의 최고봉 ‘K2봉’ 세계최초 등정

‘K2봉’은 파키스탄 북쪽에 있는 카라코람 산맥의 최고봉이다. 높이(8,611m)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산(8,848m)에 못미치지만 정상에 오르는 데는 K2만큼 험하고 힘든 산이 없다. 세계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완등한 라인홀트 메스너가 “에베레스트는 K2 등반에 비하면 산책과 같다”고 평할 만큼 K2봉은 최고의 난코스를 자랑한다. ‘K2’라는 명칭은 1856년 영국의 인도측량장교 몽고메리가 카슈미르에서 바라본 카라코람의 고봉들을 순차적으로 K1,...

마리아 칼라스, 이탈리아 오페라 무대 데뷔

한 오페라 연출가는 “칼라스 이전(Before Callas)은 오페라 역사에서 기원전(BC)”이라고 했다. 그의 말을 기준하면 1947년은 BC와 그 이후를 구분하는 경계가 된다. 마리아 칼라스가 이탈리아 오페라 무대에 입성함으로써 무명의 설움을 떨쳐버린 것은 1947년이다. 대부호이자 매니저였던 남편 메네기니를 만난 것도 같은 해였다. 칼라스는 1923년 뉴욕에서 그리스 이민자의 딸로 태어났다. 노래에는 재능이 있었으나 지독한 근시에 뚱뚱하기까지 해 주목을 끌진 못했다....

6·25 전쟁 다부동 전투 막 올라… 개전 후 밀리기만 하던 전투 양상, 비로소 승전

6·25 발발과 함께 후퇴만을 거듭해온 국군과 미군이 낙동강 전선에 배수의 진을 친 것은 1950년 8월 초였다. 국군과 미군이 낙동강을 건넌 후 8월 3일 워커 미8군 사령관의 명령에 따라 경북 왜관의 낙동강 철교 등 모든 교량이 폭파되고 방어선이 쳐졌다. ‘워커 라인’으로 불린 동서 80㎞, 남북 160㎞의 방어선에는 왜관 북쪽을 기점으로 동해안의 영덕까지 국군 5개 사단이 포진했고, 낙동강 본류를 따라 진해만까지 이르는 남쪽 전선은 미군 3개 사단이 배치됐다. 워커는 이...

팀 버너스 리, ‘월드 와이드 웹(www)’ 첫 공개

‘월드 와이드 웹(www)’은 혁명이었다. 봉화는 영국의 팀 버너스 리(Tim Berners Lee)가 쏘아 올렸고, 혁명이 싹튼 곳은 그가 연구원으로 근무하던 스위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였다. 1989년 3월, 버너스 리는 한 프로젝트를 연구소에 제안한다. 연구원들 간의 정보를 체계적으로 공유하기 위한 방안이었다. 연구소 내 한 동료가 합류하면서 연구는 속도를 더했다. 1990년 10월부터 1개월 동안 NeXT 컴퓨터로 첫 웹 브라우저를 개발한 버너스 리는 프로그램을...

제시 오웬스 1936년 베를린올림픽 육상 4관왕에 올라

1935년 5월 25일, 제시 오웬스가 ‘빅 텐’(주요 10개 대학간 경기)에서 불과 45분만에 3개의 세계 신기록과 1개의 세계 타이기록을 세워 일약 미 육상계 최고의 유망주로 떠오른다. 이날 이후 오웬스는 ‘검은 탄환’으로 불리며 이듬해에 있을 베를린 올림픽 참가를 예약한다. 1936년의 베를린 올림픽은 히틀러가 아리안 민족의 우월성을 세계에 과시할 목적으로 치러졌다. 유대인을 경멸하고 흑인들을 조소한 이 베를린 올림픽에서 오웬스는 4개의 금메달을 땄다....

IBM 최초 PC 발표… 빌 게이츠 신화의 시작

빌 게이츠의 신화는 1975년 시작된다. 그해 막 스무살이 된 하버드대 2학년생 빌 게이츠는 한 잡지에서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 ‘알테어 8800’에 관한 기사를 보고 대형 컴퓨터의 시대가 저물고 개인용 컴퓨터 세계가 펼쳐지고 있음을 예감했다. 게이츠는 곧 알테어용 언어 프로그램 ‘베이직’을 8주만에 완성하고, 3월에는 단짝 폴 앨런과 마이크로소프트(MS)사를 설립, 신화창조에 박차를 가했다. ‘베이직’이 점차 업계표준으로 자리잡으면서 둘의 명성은 입에서 입으로 퍼져갔다....

일본군 러시아혁명 간섭 위해 시베리아 출병

1차대전이 한창일 때 일어난 러시아 10월혁명으로 연합국은 심각한 충격을 받았다. 독일과의 강화조약으로 러시아군이 전선에서 이탈하면 그들과 대치해온 독일군이 서부전선으로 대거 투입될 것이 뻔한데다 자칫 혁명의 불길이 자국에까지 미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결국 독일과 러시아 간의 브레스트 리토프스크조약(1918.3)으로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드러나자 영국과 프랑스는 소비에트 혁명정권에 대해 무력간섭에 나서는 한편 미국과 일본의 동참을 요청했다. 파병을 주저하는 미국과...

백제 무령왕릉 발굴

유물에도 팔자가 있다고 한다. 도굴되지 않은 처녀분인 채로 1400년 이상이나 제 모습을 지켜온 것을 보면 무령왕릉의 첫 팔자는 괜찮았는지 모른다. 충남 공주 송산리고분 5호분과 6호분은 도굴과 발굴 과정에서 천장이 훼손돼 비만 오면 물이 스며들었다. 공주박물관측은 여름 장마를 앞두고 배수로를 만들기 위해 1971년 6월 29일부터 뒤쪽 언덕을 파내려갔다. 7월 5일 한 인부의 삽이 땅속 벽돌 모서리에 부딪혔다. 1450년간 긴 잠에 빠져있던 백제 무령왕을 깨우는 소리였다....

아프리카 기아 난민 돕기 위한 ‘라이브 에이드(Live Aid)’ 콘서트, 영국·미국에서 동시에 열려

아프리카 기아 난민 돕기 위한 ‘라이브 에이드(Live Aid)’ 콘서트, 영국·미국에서 동시에 열려

↑ 1985년 7월 13일 영국 런던의 웸블리 스타디움 공연 장면   1984년 11월 어느날, TV를 보던 아일랜드 록 가수 보브 겔도프의 눈가에 물방울이 맺혔다. TV에서는 에티오피아 난민의 참담한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며칠 뒤 “자선음반을 내자”는 겔도프의 제안을 듣고 영국 최고의 팝스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보이 조지, 필 콜린스 등 36명의 스타들은 ‘밴드 에이드(Band Aid)’를 결성하고는 노래 ‘그들이 크리스마스를 알까요?’를 녹음했다. 영국 팬이...

이승만 대통령, 맥아더 유엔군사령관에게 ‘대전협정’ 전달

서울을 빼앗기고 임시정부가 있던 대전마저 위태롭던 1950년 7월 14일, 이승만 대통령이 손수 타자로 친 문서 하나를 맥아더 유엔군사령관에게 전달한다. ‘현재의 전쟁상태가 지속되는 동안 한국군에 대한 일체의 지휘권을 귀하에게 이양한다’는 이른바 ‘대전협정’이었다. 국가의 운명이 누란의 위기에 처하고, 파죽지세로 남하하는 북한군을 막아낼 무기도 군사도 없을 때, 우리 국군의 작전지휘권은 이렇게 유엔군에 넘어갔다. 김일성의 남침으로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았으나 7월 7일...

이탈리아 원정대, 파키스탄 북쪽 카라코람 산맥의 최고봉 ‘K2봉’ 세계최초 등정

‘K2봉’은 파키스탄 북쪽에 있는 카라코람 산맥의 최고봉이다. 높이(8,611m)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산(8,848m)에 못미치지만 정상에 오르는 데는 K2만큼 험하고 힘든 산이 없다. 세계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완등한 라인홀트 메스너가 “에베레스트는 K2 등반에 비하면 산책과 같다”고 평할 만큼 K2봉은 최고의 난코스를 자랑한다. ‘K2’라는 명칭은 1856년 영국의 인도측량장교 몽고메리가 카슈미르에서 바라본 카라코람의 고봉들을 순차적으로 K1,...

마리아 칼라스, 이탈리아 오페라 무대 데뷔

한 오페라 연출가는 “칼라스 이전(Before Callas)은 오페라 역사에서 기원전(BC)”이라고 했다. 그의 말을 기준하면 1947년은 BC와 그 이후를 구분하는 경계가 된다. 마리아 칼라스가 이탈리아 오페라 무대에 입성함으로써 무명의 설움을 떨쳐버린 것은 1947년이다. 대부호이자 매니저였던 남편 메네기니를 만난 것도 같은 해였다. 칼라스는 1923년 뉴욕에서 그리스 이민자의 딸로 태어났다. 노래에는 재능이 있었으나 지독한 근시에 뚱뚱하기까지 해 주목을 끌진 못했다....

6·25 전쟁 다부동 전투 막 올라… 개전 후 밀리기만 하던 전투 양상, 비로소 승전

6·25 발발과 함께 후퇴만을 거듭해온 국군과 미군이 낙동강 전선에 배수의 진을 친 것은 1950년 8월 초였다. 국군과 미군이 낙동강을 건넌 후 8월 3일 워커 미8군 사령관의 명령에 따라 경북 왜관의 낙동강 철교 등 모든 교량이 폭파되고 방어선이 쳐졌다. ‘워커 라인’으로 불린 동서 80㎞, 남북 160㎞의 방어선에는 왜관 북쪽을 기점으로 동해안의 영덕까지 국군 5개 사단이 포진했고, 낙동강 본류를 따라 진해만까지 이르는 남쪽 전선은 미군 3개 사단이 배치됐다. 워커는 이...

팀 버너스 리, ‘월드 와이드 웹(www)’ 첫 공개

‘월드 와이드 웹(www)’은 혁명이었다. 봉화는 영국의 팀 버너스 리(Tim Berners Lee)가 쏘아 올렸고, 혁명이 싹튼 곳은 그가 연구원으로 근무하던 스위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였다. 1989년 3월, 버너스 리는 한 프로젝트를 연구소에 제안한다. 연구원들 간의 정보를 체계적으로 공유하기 위한 방안이었다. 연구소 내 한 동료가 합류하면서 연구는 속도를 더했다. 1990년 10월부터 1개월 동안 NeXT 컴퓨터로 첫 웹 브라우저를 개발한 버너스 리는 프로그램을...

제시 오웬스 1936년 베를린올림픽 육상 4관왕에 올라

1935년 5월 25일, 제시 오웬스가 ‘빅 텐’(주요 10개 대학간 경기)에서 불과 45분만에 3개의 세계 신기록과 1개의 세계 타이기록을 세워 일약 미 육상계 최고의 유망주로 떠오른다. 이날 이후 오웬스는 ‘검은 탄환’으로 불리며 이듬해에 있을 베를린 올림픽 참가를 예약한다. 1936년의 베를린 올림픽은 히틀러가 아리안 민족의 우월성을 세계에 과시할 목적으로 치러졌다. 유대인을 경멸하고 흑인들을 조소한 이 베를린 올림픽에서 오웬스는 4개의 금메달을 땄다....

IBM 최초 PC 발표… 빌 게이츠 신화의 시작

빌 게이츠의 신화는 1975년 시작된다. 그해 막 스무살이 된 하버드대 2학년생 빌 게이츠는 한 잡지에서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 ‘알테어 8800’에 관한 기사를 보고 대형 컴퓨터의 시대가 저물고 개인용 컴퓨터 세계가 펼쳐지고 있음을 예감했다. 게이츠는 곧 알테어용 언어 프로그램 ‘베이직’을 8주만에 완성하고, 3월에는 단짝 폴 앨런과 마이크로소프트(MS)사를 설립, 신화창조에 박차를 가했다. ‘베이직’이 점차 업계표준으로 자리잡으면서 둘의 명성은 입에서 입으로 퍼져갔다....

일본군 러시아혁명 간섭 위해 시베리아 출병

1차대전이 한창일 때 일어난 러시아 10월혁명으로 연합국은 심각한 충격을 받았다. 독일과의 강화조약으로 러시아군이 전선에서 이탈하면 그들과 대치해온 독일군이 서부전선으로 대거 투입될 것이 뻔한데다 자칫 혁명의 불길이 자국에까지 미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결국 독일과 러시아 간의 브레스트 리토프스크조약(1918.3)으로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드러나자 영국과 프랑스는 소비에트 혁명정권에 대해 무력간섭에 나서는 한편 미국과 일본의 동참을 요청했다. 파병을 주저하는 미국과...

백제 무령왕릉 발굴

유물에도 팔자가 있다고 한다. 도굴되지 않은 처녀분인 채로 1400년 이상이나 제 모습을 지켜온 것을 보면 무령왕릉의 첫 팔자는 괜찮았는지 모른다. 충남 공주 송산리고분 5호분과 6호분은 도굴과 발굴 과정에서 천장이 훼손돼 비만 오면 물이 스며들었다. 공주박물관측은 여름 장마를 앞두고 배수로를 만들기 위해 1971년 6월 29일부터 뒤쪽 언덕을 파내려갔다. 7월 5일 한 인부의 삽이 땅속 벽돌 모서리에 부딪혔다. 1450년간 긴 잠에 빠져있던 백제 무령왕을 깨우는 소리였다....

아프리카 기아 난민 돕기 위한 ‘라이브 에이드(Live Aid)’ 콘서트, 영국·미국에서 동시에 열려

아프리카 기아 난민 돕기 위한 ‘라이브 에이드(Live Aid)’ 콘서트, 영국·미국에서 동시에 열려

↑ 1985년 7월 13일 영국 런던의 웸블리 스타디움 공연 장면   1984년 11월 어느날, TV를 보던 아일랜드 록 가수 보브 겔도프의 눈가에 물방울이 맺혔다. TV에서는 에티오피아 난민의 참담한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며칠 뒤 “자선음반을 내자”는 겔도프의 제안을 듣고 영국 최고의 팝스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보이 조지, 필 콜린스 등 36명의 스타들은 ‘밴드 에이드(Band Aid)’를 결성하고는 노래 ‘그들이 크리스마스를 알까요?’를 녹음했다. 영국 팬이...

이승만 대통령, 맥아더 유엔군사령관에게 ‘대전협정’ 전달

서울을 빼앗기고 임시정부가 있던 대전마저 위태롭던 1950년 7월 14일, 이승만 대통령이 손수 타자로 친 문서 하나를 맥아더 유엔군사령관에게 전달한다. ‘현재의 전쟁상태가 지속되는 동안 한국군에 대한 일체의 지휘권을 귀하에게 이양한다’는 이른바 ‘대전협정’이었다. 국가의 운명이 누란의 위기에 처하고, 파죽지세로 남하하는 북한군을 막아낼 무기도 군사도 없을 때, 우리 국군의 작전지휘권은 이렇게 유엔군에 넘어갔다. 김일성의 남침으로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았으나 7월 7일...

이탈리아 원정대, 파키스탄 북쪽 카라코람 산맥의 최고봉 ‘K2봉’ 세계최초 등정

‘K2봉’은 파키스탄 북쪽에 있는 카라코람 산맥의 최고봉이다. 높이(8,611m)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산(8,848m)에 못미치지만 정상에 오르는 데는 K2만큼 험하고 힘든 산이 없다. 세계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완등한 라인홀트 메스너가 “에베레스트는 K2 등반에 비하면 산책과 같다”고 평할 만큼 K2봉은 최고의 난코스를 자랑한다. ‘K2’라는 명칭은 1856년 영국의 인도측량장교 몽고메리가 카슈미르에서 바라본 카라코람의 고봉들을 순차적으로 K1,...

마리아 칼라스, 이탈리아 오페라 무대 데뷔

한 오페라 연출가는 “칼라스 이전(Before Callas)은 오페라 역사에서 기원전(BC)”이라고 했다. 그의 말을 기준하면 1947년은 BC와 그 이후를 구분하는 경계가 된다. 마리아 칼라스가 이탈리아 오페라 무대에 입성함으로써 무명의 설움을 떨쳐버린 것은 1947년이다. 대부호이자 매니저였던 남편 메네기니를 만난 것도 같은 해였다. 칼라스는 1923년 뉴욕에서 그리스 이민자의 딸로 태어났다. 노래에는 재능이 있었으나 지독한 근시에 뚱뚱하기까지 해 주목을 끌진 못했다....

6·25 전쟁 다부동 전투 막 올라… 개전 후 밀리기만 하던 전투 양상, 비로소 승전

6·25 발발과 함께 후퇴만을 거듭해온 국군과 미군이 낙동강 전선에 배수의 진을 친 것은 1950년 8월 초였다. 국군과 미군이 낙동강을 건넌 후 8월 3일 워커 미8군 사령관의 명령에 따라 경북 왜관의 낙동강 철교 등 모든 교량이 폭파되고 방어선이 쳐졌다. ‘워커 라인’으로 불린 동서 80㎞, 남북 160㎞의 방어선에는 왜관 북쪽을 기점으로 동해안의 영덕까지 국군 5개 사단이 포진했고, 낙동강 본류를 따라 진해만까지 이르는 남쪽 전선은 미군 3개 사단이 배치됐다. 워커는 이...

팀 버너스 리, ‘월드 와이드 웹(www)’ 첫 공개

‘월드 와이드 웹(www)’은 혁명이었다. 봉화는 영국의 팀 버너스 리(Tim Berners Lee)가 쏘아 올렸고, 혁명이 싹튼 곳은 그가 연구원으로 근무하던 스위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였다. 1989년 3월, 버너스 리는 한 프로젝트를 연구소에 제안한다. 연구원들 간의 정보를 체계적으로 공유하기 위한 방안이었다. 연구소 내 한 동료가 합류하면서 연구는 속도를 더했다. 1990년 10월부터 1개월 동안 NeXT 컴퓨터로 첫 웹 브라우저를 개발한 버너스 리는 프로그램을...

제시 오웬스 1936년 베를린올림픽 육상 4관왕에 올라

1935년 5월 25일, 제시 오웬스가 ‘빅 텐’(주요 10개 대학간 경기)에서 불과 45분만에 3개의 세계 신기록과 1개의 세계 타이기록을 세워 일약 미 육상계 최고의 유망주로 떠오른다. 이날 이후 오웬스는 ‘검은 탄환’으로 불리며 이듬해에 있을 베를린 올림픽 참가를 예약한다. 1936년의 베를린 올림픽은 히틀러가 아리안 민족의 우월성을 세계에 과시할 목적으로 치러졌다. 유대인을 경멸하고 흑인들을 조소한 이 베를린 올림픽에서 오웬스는 4개의 금메달을 땄다....

IBM 최초 PC 발표… 빌 게이츠 신화의 시작

빌 게이츠의 신화는 1975년 시작된다. 그해 막 스무살이 된 하버드대 2학년생 빌 게이츠는 한 잡지에서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 ‘알테어 8800’에 관한 기사를 보고 대형 컴퓨터의 시대가 저물고 개인용 컴퓨터 세계가 펼쳐지고 있음을 예감했다. 게이츠는 곧 알테어용 언어 프로그램 ‘베이직’을 8주만에 완성하고, 3월에는 단짝 폴 앨런과 마이크로소프트(MS)사를 설립, 신화창조에 박차를 가했다. ‘베이직’이 점차 업계표준으로 자리잡으면서 둘의 명성은 입에서 입으로 퍼져갔다....

일본군 러시아혁명 간섭 위해 시베리아 출병

1차대전이 한창일 때 일어난 러시아 10월혁명으로 연합국은 심각한 충격을 받았다. 독일과의 강화조약으로 러시아군이 전선에서 이탈하면 그들과 대치해온 독일군이 서부전선으로 대거 투입될 것이 뻔한데다 자칫 혁명의 불길이 자국에까지 미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결국 독일과 러시아 간의 브레스트 리토프스크조약(1918.3)으로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드러나자 영국과 프랑스는 소비에트 혁명정권에 대해 무력간섭에 나서는 한편 미국과 일본의 동참을 요청했다. 파병을 주저하는 미국과...

백제 무령왕릉 발굴

유물에도 팔자가 있다고 한다. 도굴되지 않은 처녀분인 채로 1400년 이상이나 제 모습을 지켜온 것을 보면 무령왕릉의 첫 팔자는 괜찮았는지 모른다. 충남 공주 송산리고분 5호분과 6호분은 도굴과 발굴 과정에서 천장이 훼손돼 비만 오면 물이 스며들었다. 공주박물관측은 여름 장마를 앞두고 배수로를 만들기 위해 1971년 6월 29일부터 뒤쪽 언덕을 파내려갔다. 7월 5일 한 인부의 삽이 땅속 벽돌 모서리에 부딪혔다. 1450년간 긴 잠에 빠져있던 백제 무령왕을 깨우는 소리였다....

아프리카 기아 난민 돕기 위한 ‘라이브 에이드(Live Aid)’ 콘서트, 영국·미국에서 동시에 열려

아프리카 기아 난민 돕기 위한 ‘라이브 에이드(Live Aid)’ 콘서트, 영국·미국에서 동시에 열려

↑ 1985년 7월 13일 영국 런던의 웸블리 스타디움 공연 장면   1984년 11월 어느날, TV를 보던 아일랜드 록 가수 보브 겔도프의 눈가에 물방울이 맺혔다. TV에서는 에티오피아 난민의 참담한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며칠 뒤 “자선음반을 내자”는 겔도프의 제안을 듣고 영국 최고의 팝스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보이 조지, 필 콜린스 등 36명의 스타들은 ‘밴드 에이드(Band Aid)’를 결성하고는 노래 ‘그들이 크리스마스를 알까요?’를 녹음했다. 영국 팬이...

이승만 대통령, 맥아더 유엔군사령관에게 ‘대전협정’ 전달

서울을 빼앗기고 임시정부가 있던 대전마저 위태롭던 1950년 7월 14일, 이승만 대통령이 손수 타자로 친 문서 하나를 맥아더 유엔군사령관에게 전달한다. ‘현재의 전쟁상태가 지속되는 동안 한국군에 대한 일체의 지휘권을 귀하에게 이양한다’는 이른바 ‘대전협정’이었다. 국가의 운명이 누란의 위기에 처하고, 파죽지세로 남하하는 북한군을 막아낼 무기도 군사도 없을 때, 우리 국군의 작전지휘권은 이렇게 유엔군에 넘어갔다. 김일성의 남침으로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았으나 7월 7일...

이탈리아 원정대, 파키스탄 북쪽 카라코람 산맥의 최고봉 ‘K2봉’ 세계최초 등정

‘K2봉’은 파키스탄 북쪽에 있는 카라코람 산맥의 최고봉이다. 높이(8,611m)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산(8,848m)에 못미치지만 정상에 오르는 데는 K2만큼 험하고 힘든 산이 없다. 세계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완등한 라인홀트 메스너가 “에베레스트는 K2 등반에 비하면 산책과 같다”고 평할 만큼 K2봉은 최고의 난코스를 자랑한다. ‘K2’라는 명칭은 1856년 영국의 인도측량장교 몽고메리가 카슈미르에서 바라본 카라코람의 고봉들을 순차적으로 K1,...

마리아 칼라스, 이탈리아 오페라 무대 데뷔

한 오페라 연출가는 “칼라스 이전(Before Callas)은 오페라 역사에서 기원전(BC)”이라고 했다. 그의 말을 기준하면 1947년은 BC와 그 이후를 구분하는 경계가 된다. 마리아 칼라스가 이탈리아 오페라 무대에 입성함으로써 무명의 설움을 떨쳐버린 것은 1947년이다. 대부호이자 매니저였던 남편 메네기니를 만난 것도 같은 해였다. 칼라스는 1923년 뉴욕에서 그리스 이민자의 딸로 태어났다. 노래에는 재능이 있었으나 지독한 근시에 뚱뚱하기까지 해 주목을 끌진 못했다....

6·25 전쟁 다부동 전투 막 올라… 개전 후 밀리기만 하던 전투 양상, 비로소 승전

6·25 발발과 함께 후퇴만을 거듭해온 국군과 미군이 낙동강 전선에 배수의 진을 친 것은 1950년 8월 초였다. 국군과 미군이 낙동강을 건넌 후 8월 3일 워커 미8군 사령관의 명령에 따라 경북 왜관의 낙동강 철교 등 모든 교량이 폭파되고 방어선이 쳐졌다. ‘워커 라인’으로 불린 동서 80㎞, 남북 160㎞의 방어선에는 왜관 북쪽을 기점으로 동해안의 영덕까지 국군 5개 사단이 포진했고, 낙동강 본류를 따라 진해만까지 이르는 남쪽 전선은 미군 3개 사단이 배치됐다. 워커는 이...

팀 버너스 리, ‘월드 와이드 웹(www)’ 첫 공개

‘월드 와이드 웹(www)’은 혁명이었다. 봉화는 영국의 팀 버너스 리(Tim Berners Lee)가 쏘아 올렸고, 혁명이 싹튼 곳은 그가 연구원으로 근무하던 스위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였다. 1989년 3월, 버너스 리는 한 프로젝트를 연구소에 제안한다. 연구원들 간의 정보를 체계적으로 공유하기 위한 방안이었다. 연구소 내 한 동료가 합류하면서 연구는 속도를 더했다. 1990년 10월부터 1개월 동안 NeXT 컴퓨터로 첫 웹 브라우저를 개발한 버너스 리는 프로그램을...

제시 오웬스 1936년 베를린올림픽 육상 4관왕에 올라

1935년 5월 25일, 제시 오웬스가 ‘빅 텐’(주요 10개 대학간 경기)에서 불과 45분만에 3개의 세계 신기록과 1개의 세계 타이기록을 세워 일약 미 육상계 최고의 유망주로 떠오른다. 이날 이후 오웬스는 ‘검은 탄환’으로 불리며 이듬해에 있을 베를린 올림픽 참가를 예약한다. 1936년의 베를린 올림픽은 히틀러가 아리안 민족의 우월성을 세계에 과시할 목적으로 치러졌다. 유대인을 경멸하고 흑인들을 조소한 이 베를린 올림픽에서 오웬스는 4개의 금메달을 땄다....

IBM 최초 PC 발표… 빌 게이츠 신화의 시작

빌 게이츠의 신화는 1975년 시작된다. 그해 막 스무살이 된 하버드대 2학년생 빌 게이츠는 한 잡지에서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 ‘알테어 8800’에 관한 기사를 보고 대형 컴퓨터의 시대가 저물고 개인용 컴퓨터 세계가 펼쳐지고 있음을 예감했다. 게이츠는 곧 알테어용 언어 프로그램 ‘베이직’을 8주만에 완성하고, 3월에는 단짝 폴 앨런과 마이크로소프트(MS)사를 설립, 신화창조에 박차를 가했다. ‘베이직’이 점차 업계표준으로 자리잡으면서 둘의 명성은 입에서 입으로 퍼져갔다....

일본군 러시아혁명 간섭 위해 시베리아 출병

1차대전이 한창일 때 일어난 러시아 10월혁명으로 연합국은 심각한 충격을 받았다. 독일과의 강화조약으로 러시아군이 전선에서 이탈하면 그들과 대치해온 독일군이 서부전선으로 대거 투입될 것이 뻔한데다 자칫 혁명의 불길이 자국에까지 미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결국 독일과 러시아 간의 브레스트 리토프스크조약(1918.3)으로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드러나자 영국과 프랑스는 소비에트 혁명정권에 대해 무력간섭에 나서는 한편 미국과 일본의 동참을 요청했다. 파병을 주저하는 미국과...

백제 무령왕릉 발굴

유물에도 팔자가 있다고 한다. 도굴되지 않은 처녀분인 채로 1400년 이상이나 제 모습을 지켜온 것을 보면 무령왕릉의 첫 팔자는 괜찮았는지 모른다. 충남 공주 송산리고분 5호분과 6호분은 도굴과 발굴 과정에서 천장이 훼손돼 비만 오면 물이 스며들었다. 공주박물관측은 여름 장마를 앞두고 배수로를 만들기 위해 1971년 6월 29일부터 뒤쪽 언덕을 파내려갔다. 7월 5일 한 인부의 삽이 땅속 벽돌 모서리에 부딪혔다. 1450년간 긴 잠에 빠져있던 백제 무령왕을 깨우는 소리였다....

아프리카 기아 난민 돕기 위한 ‘라이브 에이드(Live Aid)’ 콘서트, 영국·미국에서 동시에 열려

아프리카 기아 난민 돕기 위한 ‘라이브 에이드(Live Aid)’ 콘서트, 영국·미국에서 동시에 열려

↑ 1985년 7월 13일 영국 런던의 웸블리 스타디움 공연 장면   1984년 11월 어느날, TV를 보던 아일랜드 록 가수 보브 겔도프의 눈가에 물방울이 맺혔다. TV에서는 에티오피아 난민의 참담한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며칠 뒤 “자선음반을 내자”는 겔도프의 제안을 듣고 영국 최고의 팝스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보이 조지, 필 콜린스 등 36명의 스타들은 ‘밴드 에이드(Band Aid)’를 결성하고는 노래 ‘그들이 크리스마스를 알까요?’를 녹음했다. 영국 팬이...

이승만 대통령, 맥아더 유엔군사령관에게 ‘대전협정’ 전달

서울을 빼앗기고 임시정부가 있던 대전마저 위태롭던 1950년 7월 14일, 이승만 대통령이 손수 타자로 친 문서 하나를 맥아더 유엔군사령관에게 전달한다. ‘현재의 전쟁상태가 지속되는 동안 한국군에 대한 일체의 지휘권을 귀하에게 이양한다’는 이른바 ‘대전협정’이었다. 국가의 운명이 누란의 위기에 처하고, 파죽지세로 남하하는 북한군을 막아낼 무기도 군사도 없을 때, 우리 국군의 작전지휘권은 이렇게 유엔군에 넘어갔다. 김일성의 남침으로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았으나 7월 7일...

이탈리아 원정대, 파키스탄 북쪽 카라코람 산맥의 최고봉 ‘K2봉’ 세계최초 등정

‘K2봉’은 파키스탄 북쪽에 있는 카라코람 산맥의 최고봉이다. 높이(8,611m)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산(8,848m)에 못미치지만 정상에 오르는 데는 K2만큼 험하고 힘든 산이 없다. 세계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완등한 라인홀트 메스너가 “에베레스트는 K2 등반에 비하면 산책과 같다”고 평할 만큼 K2봉은 최고의 난코스를 자랑한다. ‘K2’라는 명칭은 1856년 영국의 인도측량장교 몽고메리가 카슈미르에서 바라본 카라코람의 고봉들을 순차적으로 K1,...

마리아 칼라스, 이탈리아 오페라 무대 데뷔

한 오페라 연출가는 “칼라스 이전(Before Callas)은 오페라 역사에서 기원전(BC)”이라고 했다. 그의 말을 기준하면 1947년은 BC와 그 이후를 구분하는 경계가 된다. 마리아 칼라스가 이탈리아 오페라 무대에 입성함으로써 무명의 설움을 떨쳐버린 것은 1947년이다. 대부호이자 매니저였던 남편 메네기니를 만난 것도 같은 해였다. 칼라스는 1923년 뉴욕에서 그리스 이민자의 딸로 태어났다. 노래에는 재능이 있었으나 지독한 근시에 뚱뚱하기까지 해 주목을 끌진 못했다....

6·25 전쟁 다부동 전투 막 올라… 개전 후 밀리기만 하던 전투 양상, 비로소 승전

6·25 발발과 함께 후퇴만을 거듭해온 국군과 미군이 낙동강 전선에 배수의 진을 친 것은 1950년 8월 초였다. 국군과 미군이 낙동강을 건넌 후 8월 3일 워커 미8군 사령관의 명령에 따라 경북 왜관의 낙동강 철교 등 모든 교량이 폭파되고 방어선이 쳐졌다. ‘워커 라인’으로 불린 동서 80㎞, 남북 160㎞의 방어선에는 왜관 북쪽을 기점으로 동해안의 영덕까지 국군 5개 사단이 포진했고, 낙동강 본류를 따라 진해만까지 이르는 남쪽 전선은 미군 3개 사단이 배치됐다. 워커는 이...

팀 버너스 리, ‘월드 와이드 웹(www)’ 첫 공개

‘월드 와이드 웹(www)’은 혁명이었다. 봉화는 영국의 팀 버너스 리(Tim Berners Lee)가 쏘아 올렸고, 혁명이 싹튼 곳은 그가 연구원으로 근무하던 스위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였다. 1989년 3월, 버너스 리는 한 프로젝트를 연구소에 제안한다. 연구원들 간의 정보를 체계적으로 공유하기 위한 방안이었다. 연구소 내 한 동료가 합류하면서 연구는 속도를 더했다. 1990년 10월부터 1개월 동안 NeXT 컴퓨터로 첫 웹 브라우저를 개발한 버너스 리는 프로그램을...

제시 오웬스 1936년 베를린올림픽 육상 4관왕에 올라

1935년 5월 25일, 제시 오웬스가 ‘빅 텐’(주요 10개 대학간 경기)에서 불과 45분만에 3개의 세계 신기록과 1개의 세계 타이기록을 세워 일약 미 육상계 최고의 유망주로 떠오른다. 이날 이후 오웬스는 ‘검은 탄환’으로 불리며 이듬해에 있을 베를린 올림픽 참가를 예약한다. 1936년의 베를린 올림픽은 히틀러가 아리안 민족의 우월성을 세계에 과시할 목적으로 치러졌다. 유대인을 경멸하고 흑인들을 조소한 이 베를린 올림픽에서 오웬스는 4개의 금메달을 땄다....

IBM 최초 PC 발표… 빌 게이츠 신화의 시작

빌 게이츠의 신화는 1975년 시작된다. 그해 막 스무살이 된 하버드대 2학년생 빌 게이츠는 한 잡지에서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 ‘알테어 8800’에 관한 기사를 보고 대형 컴퓨터의 시대가 저물고 개인용 컴퓨터 세계가 펼쳐지고 있음을 예감했다. 게이츠는 곧 알테어용 언어 프로그램 ‘베이직’을 8주만에 완성하고, 3월에는 단짝 폴 앨런과 마이크로소프트(MS)사를 설립, 신화창조에 박차를 가했다. ‘베이직’이 점차 업계표준으로 자리잡으면서 둘의 명성은 입에서 입으로 퍼져갔다....

일본군 러시아혁명 간섭 위해 시베리아 출병

1차대전이 한창일 때 일어난 러시아 10월혁명으로 연합국은 심각한 충격을 받았다. 독일과의 강화조약으로 러시아군이 전선에서 이탈하면 그들과 대치해온 독일군이 서부전선으로 대거 투입될 것이 뻔한데다 자칫 혁명의 불길이 자국에까지 미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결국 독일과 러시아 간의 브레스트 리토프스크조약(1918.3)으로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드러나자 영국과 프랑스는 소비에트 혁명정권에 대해 무력간섭에 나서는 한편 미국과 일본의 동참을 요청했다. 파병을 주저하는 미국과...

백제 무령왕릉 발굴

유물에도 팔자가 있다고 한다. 도굴되지 않은 처녀분인 채로 1400년 이상이나 제 모습을 지켜온 것을 보면 무령왕릉의 첫 팔자는 괜찮았는지 모른다. 충남 공주 송산리고분 5호분과 6호분은 도굴과 발굴 과정에서 천장이 훼손돼 비만 오면 물이 스며들었다. 공주박물관측은 여름 장마를 앞두고 배수로를 만들기 위해 1971년 6월 29일부터 뒤쪽 언덕을 파내려갔다. 7월 5일 한 인부의 삽이 땅속 벽돌 모서리에 부딪혔다. 1450년간 긴 잠에 빠져있던 백제 무령왕을 깨우는 소리였다....

아프리카 기아 난민 돕기 위한 ‘라이브 에이드(Live Aid)’ 콘서트, 영국·미국에서 동시에 열려

아프리카 기아 난민 돕기 위한 ‘라이브 에이드(Live Aid)’ 콘서트, 영국·미국에서 동시에 열려

↑ 1985년 7월 13일 영국 런던의 웸블리 스타디움 공연 장면   1984년 11월 어느날, TV를 보던 아일랜드 록 가수 보브 겔도프의 눈가에 물방울이 맺혔다. TV에서는 에티오피아 난민의 참담한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며칠 뒤 “자선음반을 내자”는 겔도프의 제안을 듣고 영국 최고의 팝스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보이 조지, 필 콜린스 등 36명의 스타들은 ‘밴드 에이드(Band Aid)’를 결성하고는 노래 ‘그들이 크리스마스를 알까요?’를 녹음했다. 영국 팬이...

이승만 대통령, 맥아더 유엔군사령관에게 ‘대전협정’ 전달

서울을 빼앗기고 임시정부가 있던 대전마저 위태롭던 1950년 7월 14일, 이승만 대통령이 손수 타자로 친 문서 하나를 맥아더 유엔군사령관에게 전달한다. ‘현재의 전쟁상태가 지속되는 동안 한국군에 대한 일체의 지휘권을 귀하에게 이양한다’는 이른바 ‘대전협정’이었다. 국가의 운명이 누란의 위기에 처하고, 파죽지세로 남하하는 북한군을 막아낼 무기도 군사도 없을 때, 우리 국군의 작전지휘권은 이렇게 유엔군에 넘어갔다. 김일성의 남침으로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았으나 7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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