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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마지막 차르 니콜라이 2세 결혼… 왕조 몰락의 전주곡
러시아의 차르(황제) 체제가 몰락한 것은1917년의 ‘10월 혁명’이 결정적이었지만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고질적인 유전질환도 혁명을 앞당기는 데 일조했다. 빅토리아는 9남매를 낳았고 이들이 유럽의 주요 황실과 혼인관계를 맺으면서 인적으로도 ‘팍스 브리태니커’가 구현됐지만, 문제는 이들을 통해 혈우병이 유럽 황실로 퍼졌다는 데 있었다. 혈우병의 특징은, 여성은 병을 물려주는 매개자 역할을 할 뿐 직접적인 고통은 그 여성의 아들이 당한다는 점이다. 빅토리아도 아들 하나를...
엘리자베스1세,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英 여왕 즉위
↑ 엘리자베스 1세 20세기 마지막 해인 1999년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지난 1000년 간의 최고지도자’에 당당히 1위로 올랐던 엘리자베스가 영국 여왕으로 등극하기까지에는 그 시대 최고 인물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등장한다. 헨리8세(1491~1547). 멋지고 당당하나 호색한이고 다혈질인 영국 왕이다. 아라곤 출신의 캐서린(1485~1536). 오랜 분열에 종지부를 찍고 780여년 만에 스페인을 정치적·종교적으로 통일시킨 스페인의 이사벨1세와 페르난도의 딸이다....
일본 견외사절단(遣外使節團) 서양을 향해 출항
메이지 초기, 일본에서 가장 유행했던 4자성어는 ‘문명개화’였다. 계몽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의 ‘서양사정’(1867년)을 통해 문명개화가 널리 알려지면서 일본인들은 변화를 갈구했다. 문명개화는 서양을 모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통옷과 게타(나막신)를 벗는 대신 서양의 신사복과 가죽구두를 신었다. 쇠고기 소비량이 문명의 바로미터라는 말이 퍼지면서 쇠고기 먹기 운동도 펼쳐졌다. 두주불사의 후쿠자와가 쇠고기 국물을 안주삼아 연일 술을 마시자 도쿄 시내에는 샤부샤부...
멕시코의 34년 철권 통치자 디아스 쫓아낸 멕시코 혁명 발발
34년 철권 통치자 포르피리오 디아스가 멕시코를 근대적인 공업국가로 변모시킨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외국자본을 도입하고 농민의 희생을 발판으로 이룬 경제성장이다보니 하층민들의 삶은 늘 힘들고 고단했다. 개발독재에 대한 반발이 잇따랐고, 1910년의 대통령선거 때는 젊은 변호사 마데로가 디아스의 대항마로 등장한다. 디아스가 또다시 부정선거로 승리하자 프란시스코 마데로는 망명지 미국에서 반(反)디아스 운동을 펼쳤다. 1910년 11월 20일 오후6시, 멕시코인들의 총궐기를...
영친왕 이은, 56년만의 환국
일제 패망 전까지, 영친왕 이은(李垠)은 일본 천황가의 배려와 도움으로 일본에서도 최고의 지위를 유지하며 살았다. 감시 속에 있는 허울좋은 황족의 신분이긴 했지만 생활은 만족스러웠고 행동은 모범적이었다. 다만 좀처럼 본심을 드러내지 않았고 가급적이면 침묵했다. 종전후, 조선의 왕 자리가 당연한 자기 몫으로 생각한 그는 고국행을 원했다. 그러나 일본인 부인 이방자 여사는 귀국을 망설였고, 이복형 의친왕의 옹립을 둘러싼 음모와 알력도 그의 발목을 잡았다. 무엇보다 이은을 괴롭힌...
‘스페인 민주주의의 수호자’ 후안 카를로스1세 즉위
“내 시체를 넘고 가라.” 쿠데타 주동세력들에게 후안 카를로스1세가 일갈하면서 상황이 일변했다. 새벽1시, 군복차림으로 TV에 나타난 카를로스가 “폭력으로 민주과정을 방해하려는 자들의 행위를 용납할 수 없다.”며 단호한 입장을 취함으로써 기세등등하던 1981년의 쿠데타는 풍선처럼 터졌다. 쿠데타는 물거품이 되었고, 민주주의는 되살아났다. 프랑코가 죽고 이틀이 지난 1975년 11월 22일, 카를로스가 44년만에 스페인 국왕으로 즉위했으나 국민들의 얼굴에는 불안한 기색이...
성전환자, 미국에서 첫 ‘커밍아웃’
1952년 12월 1일자 뉴욕 데일리신문을 펼쳐든 독자들은 믿기지 않는 뉴스에 아연실색했다. ‘EX-GI BECOMES BLOND BEAUTY(전 미군 장병, 금발의 미인되다)’라는 굵은 글씨의 기사제목이 신문 첫 장을 장식했기 때문이다. 기사는 성전환 수술을 했다는 한 청년의 ‘커밍아웃’을 소개하고 있었다. 미국에서 처음 공표된 성전환 사실은 보수적인 1950년대 미국 사회에 충격을 던졌다. 당시 성적 관심은 터부시되었고 성은 숨겨야할 비밀스런 존재였다. 의학적으로 성전환...
엔리코 페르미, 핵 연쇄반응 성공
20세기를 맞아 세계 핵물리학계는 거침없는 행보를 보였지만 누구도 종착점을 알지 못했다. 이탈리아의 엔리코 페르미가 느린 중성자에 의해 일어나는 핵반응을 발견한 공로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아 기뻐하고 있을 무렵인 1938년 12월, 독일의 오토 한과 프리츠 슈트라스만이 우라늄의 원자핵 분열을 성공시켜 비로소 종착점이 보이는 듯했다. 페르미는 노벨상을 받고 현지에서 바로 미국으로 망명했다. 독일에서의 핵분열 성공 소식은 세계 물리학계를 놀라게 했고 페르미는 이 소식을 미국에서...
질레트 안전면도기 출시
1895년 어느날, 킹 캠프 질레트가 무디어진 면도날에 얼굴을 벤다. 그의 직업은 깔끔한 용모를 유지해야 하는 세일즈맨이었다. 칼날이 무디어지면 면도날만을 분리해 버리고 새로운 면도날를 사용할 수는 없을까. 19세기 남성을 상징해온 수염이 20세기의 남성에게서 사라지도록 한 안전면도기의 아이디어는 이렇게 시작됐다. 1901년 MIT공대 출신의 닉커슨과 함께 ‘질레트 안전면도기사(社)’를 설립한 질레트는 그해 12월 2일 첫 안전면도기를 세상에 내놓았다. 이듬해부터 대량생산에...
‘조선 최초의 근대인’ 윤치호 사망
그는 한말에서 식민지 시기까지 격동의 한복판을 살았던 조선 최초의 근대인이었다. 단발령이 공포되기 10년 전에 머리를 자르고 양복을 입었으며, 1894년에는 신식결혼과 국제결혼으로 시대를 앞서나갔다. 16세 때(1881년)에는 신사유람단을 따라 일본을 방문, 일찌감치 외국 문물을 접하고, 몇 년 뒤에는 갑신정변에 동조한 것이 문제가 돼 10여 년간 상하이와 미국을 떠돌았다. 망명생활은 그를 세계인으로 만들었다. 상하이에서는 조선인 최초로 남감리교 세례를 받았고 미국에서는...
러시아 마지막 차르 니콜라이 2세 결혼… 왕조 몰락의 전주곡
러시아의 차르(황제) 체제가 몰락한 것은1917년의 ‘10월 혁명’이 결정적이었지만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고질적인 유전질환도 혁명을 앞당기는 데 일조했다. 빅토리아는 9남매를 낳았고 이들이 유럽의 주요 황실과 혼인관계를 맺으면서 인적으로도 ‘팍스 브리태니커’가 구현됐지만, 문제는 이들을 통해 혈우병이 유럽 황실로 퍼졌다는 데 있었다. 혈우병의 특징은, 여성은 병을 물려주는 매개자 역할을 할 뿐 직접적인 고통은 그 여성의 아들이 당한다는 점이다. 빅토리아도 아들 하나를...
엘리자베스1세,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英 여왕 즉위
↑ 엘리자베스 1세 20세기 마지막 해인 1999년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지난 1000년 간의 최고지도자’에 당당히 1위로 올랐던 엘리자베스가 영국 여왕으로 등극하기까지에는 그 시대 최고 인물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등장한다. 헨리8세(1491~1547). 멋지고 당당하나 호색한이고 다혈질인 영국 왕이다. 아라곤 출신의 캐서린(1485~1536). 오랜 분열에 종지부를 찍고 780여년 만에 스페인을 정치적·종교적으로 통일시킨 스페인의 이사벨1세와 페르난도의 딸이다....
일본 견외사절단(遣外使節團) 서양을 향해 출항
메이지 초기, 일본에서 가장 유행했던 4자성어는 ‘문명개화’였다. 계몽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의 ‘서양사정’(1867년)을 통해 문명개화가 널리 알려지면서 일본인들은 변화를 갈구했다. 문명개화는 서양을 모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통옷과 게타(나막신)를 벗는 대신 서양의 신사복과 가죽구두를 신었다. 쇠고기 소비량이 문명의 바로미터라는 말이 퍼지면서 쇠고기 먹기 운동도 펼쳐졌다. 두주불사의 후쿠자와가 쇠고기 국물을 안주삼아 연일 술을 마시자 도쿄 시내에는 샤부샤부...
멕시코의 34년 철권 통치자 디아스 쫓아낸 멕시코 혁명 발발
34년 철권 통치자 포르피리오 디아스가 멕시코를 근대적인 공업국가로 변모시킨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외국자본을 도입하고 농민의 희생을 발판으로 이룬 경제성장이다보니 하층민들의 삶은 늘 힘들고 고단했다. 개발독재에 대한 반발이 잇따랐고, 1910년의 대통령선거 때는 젊은 변호사 마데로가 디아스의 대항마로 등장한다. 디아스가 또다시 부정선거로 승리하자 프란시스코 마데로는 망명지 미국에서 반(反)디아스 운동을 펼쳤다. 1910년 11월 20일 오후6시, 멕시코인들의 총궐기를...
영친왕 이은, 56년만의 환국
일제 패망 전까지, 영친왕 이은(李垠)은 일본 천황가의 배려와 도움으로 일본에서도 최고의 지위를 유지하며 살았다. 감시 속에 있는 허울좋은 황족의 신분이긴 했지만 생활은 만족스러웠고 행동은 모범적이었다. 다만 좀처럼 본심을 드러내지 않았고 가급적이면 침묵했다. 종전후, 조선의 왕 자리가 당연한 자기 몫으로 생각한 그는 고국행을 원했다. 그러나 일본인 부인 이방자 여사는 귀국을 망설였고, 이복형 의친왕의 옹립을 둘러싼 음모와 알력도 그의 발목을 잡았다. 무엇보다 이은을 괴롭힌...
‘스페인 민주주의의 수호자’ 후안 카를로스1세 즉위
“내 시체를 넘고 가라.” 쿠데타 주동세력들에게 후안 카를로스1세가 일갈하면서 상황이 일변했다. 새벽1시, 군복차림으로 TV에 나타난 카를로스가 “폭력으로 민주과정을 방해하려는 자들의 행위를 용납할 수 없다.”며 단호한 입장을 취함으로써 기세등등하던 1981년의 쿠데타는 풍선처럼 터졌다. 쿠데타는 물거품이 되었고, 민주주의는 되살아났다. 프랑코가 죽고 이틀이 지난 1975년 11월 22일, 카를로스가 44년만에 스페인 국왕으로 즉위했으나 국민들의 얼굴에는 불안한 기색이...
성전환자, 미국에서 첫 ‘커밍아웃’
1952년 12월 1일자 뉴욕 데일리신문을 펼쳐든 독자들은 믿기지 않는 뉴스에 아연실색했다. ‘EX-GI BECOMES BLOND BEAUTY(전 미군 장병, 금발의 미인되다)’라는 굵은 글씨의 기사제목이 신문 첫 장을 장식했기 때문이다. 기사는 성전환 수술을 했다는 한 청년의 ‘커밍아웃’을 소개하고 있었다. 미국에서 처음 공표된 성전환 사실은 보수적인 1950년대 미국 사회에 충격을 던졌다. 당시 성적 관심은 터부시되었고 성은 숨겨야할 비밀스런 존재였다. 의학적으로 성전환...
엔리코 페르미, 핵 연쇄반응 성공
20세기를 맞아 세계 핵물리학계는 거침없는 행보를 보였지만 누구도 종착점을 알지 못했다. 이탈리아의 엔리코 페르미가 느린 중성자에 의해 일어나는 핵반응을 발견한 공로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아 기뻐하고 있을 무렵인 1938년 12월, 독일의 오토 한과 프리츠 슈트라스만이 우라늄의 원자핵 분열을 성공시켜 비로소 종착점이 보이는 듯했다. 페르미는 노벨상을 받고 현지에서 바로 미국으로 망명했다. 독일에서의 핵분열 성공 소식은 세계 물리학계를 놀라게 했고 페르미는 이 소식을 미국에서...
질레트 안전면도기 출시
1895년 어느날, 킹 캠프 질레트가 무디어진 면도날에 얼굴을 벤다. 그의 직업은 깔끔한 용모를 유지해야 하는 세일즈맨이었다. 칼날이 무디어지면 면도날만을 분리해 버리고 새로운 면도날를 사용할 수는 없을까. 19세기 남성을 상징해온 수염이 20세기의 남성에게서 사라지도록 한 안전면도기의 아이디어는 이렇게 시작됐다. 1901년 MIT공대 출신의 닉커슨과 함께 ‘질레트 안전면도기사(社)’를 설립한 질레트는 그해 12월 2일 첫 안전면도기를 세상에 내놓았다. 이듬해부터 대량생산에...
‘조선 최초의 근대인’ 윤치호 사망
그는 한말에서 식민지 시기까지 격동의 한복판을 살았던 조선 최초의 근대인이었다. 단발령이 공포되기 10년 전에 머리를 자르고 양복을 입었으며, 1894년에는 신식결혼과 국제결혼으로 시대를 앞서나갔다. 16세 때(1881년)에는 신사유람단을 따라 일본을 방문, 일찌감치 외국 문물을 접하고, 몇 년 뒤에는 갑신정변에 동조한 것이 문제가 돼 10여 년간 상하이와 미국을 떠돌았다. 망명생활은 그를 세계인으로 만들었다. 상하이에서는 조선인 최초로 남감리교 세례를 받았고 미국에서는...
러시아 마지막 차르 니콜라이 2세 결혼… 왕조 몰락의 전주곡
러시아의 차르(황제) 체제가 몰락한 것은1917년의 ‘10월 혁명’이 결정적이었지만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고질적인 유전질환도 혁명을 앞당기는 데 일조했다. 빅토리아는 9남매를 낳았고 이들이 유럽의 주요 황실과 혼인관계를 맺으면서 인적으로도 ‘팍스 브리태니커’가 구현됐지만, 문제는 이들을 통해 혈우병이 유럽 황실로 퍼졌다는 데 있었다. 혈우병의 특징은, 여성은 병을 물려주는 매개자 역할을 할 뿐 직접적인 고통은 그 여성의 아들이 당한다는 점이다. 빅토리아도 아들 하나를...
엘리자베스1세,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英 여왕 즉위
↑ 엘리자베스 1세 20세기 마지막 해인 1999년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지난 1000년 간의 최고지도자’에 당당히 1위로 올랐던 엘리자베스가 영국 여왕으로 등극하기까지에는 그 시대 최고 인물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등장한다. 헨리8세(1491~1547). 멋지고 당당하나 호색한이고 다혈질인 영국 왕이다. 아라곤 출신의 캐서린(1485~1536). 오랜 분열에 종지부를 찍고 780여년 만에 스페인을 정치적·종교적으로 통일시킨 스페인의 이사벨1세와 페르난도의 딸이다....
일본 견외사절단(遣外使節團) 서양을 향해 출항
메이지 초기, 일본에서 가장 유행했던 4자성어는 ‘문명개화’였다. 계몽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의 ‘서양사정’(1867년)을 통해 문명개화가 널리 알려지면서 일본인들은 변화를 갈구했다. 문명개화는 서양을 모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통옷과 게타(나막신)를 벗는 대신 서양의 신사복과 가죽구두를 신었다. 쇠고기 소비량이 문명의 바로미터라는 말이 퍼지면서 쇠고기 먹기 운동도 펼쳐졌다. 두주불사의 후쿠자와가 쇠고기 국물을 안주삼아 연일 술을 마시자 도쿄 시내에는 샤부샤부...
멕시코의 34년 철권 통치자 디아스 쫓아낸 멕시코 혁명 발발
34년 철권 통치자 포르피리오 디아스가 멕시코를 근대적인 공업국가로 변모시킨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외국자본을 도입하고 농민의 희생을 발판으로 이룬 경제성장이다보니 하층민들의 삶은 늘 힘들고 고단했다. 개발독재에 대한 반발이 잇따랐고, 1910년의 대통령선거 때는 젊은 변호사 마데로가 디아스의 대항마로 등장한다. 디아스가 또다시 부정선거로 승리하자 프란시스코 마데로는 망명지 미국에서 반(反)디아스 운동을 펼쳤다. 1910년 11월 20일 오후6시, 멕시코인들의 총궐기를...
영친왕 이은, 56년만의 환국
일제 패망 전까지, 영친왕 이은(李垠)은 일본 천황가의 배려와 도움으로 일본에서도 최고의 지위를 유지하며 살았다. 감시 속에 있는 허울좋은 황족의 신분이긴 했지만 생활은 만족스러웠고 행동은 모범적이었다. 다만 좀처럼 본심을 드러내지 않았고 가급적이면 침묵했다. 종전후, 조선의 왕 자리가 당연한 자기 몫으로 생각한 그는 고국행을 원했다. 그러나 일본인 부인 이방자 여사는 귀국을 망설였고, 이복형 의친왕의 옹립을 둘러싼 음모와 알력도 그의 발목을 잡았다. 무엇보다 이은을 괴롭힌...
‘스페인 민주주의의 수호자’ 후안 카를로스1세 즉위
“내 시체를 넘고 가라.” 쿠데타 주동세력들에게 후안 카를로스1세가 일갈하면서 상황이 일변했다. 새벽1시, 군복차림으로 TV에 나타난 카를로스가 “폭력으로 민주과정을 방해하려는 자들의 행위를 용납할 수 없다.”며 단호한 입장을 취함으로써 기세등등하던 1981년의 쿠데타는 풍선처럼 터졌다. 쿠데타는 물거품이 되었고, 민주주의는 되살아났다. 프랑코가 죽고 이틀이 지난 1975년 11월 22일, 카를로스가 44년만에 스페인 국왕으로 즉위했으나 국민들의 얼굴에는 불안한 기색이...
성전환자, 미국에서 첫 ‘커밍아웃’
1952년 12월 1일자 뉴욕 데일리신문을 펼쳐든 독자들은 믿기지 않는 뉴스에 아연실색했다. ‘EX-GI BECOMES BLOND BEAUTY(전 미군 장병, 금발의 미인되다)’라는 굵은 글씨의 기사제목이 신문 첫 장을 장식했기 때문이다. 기사는 성전환 수술을 했다는 한 청년의 ‘커밍아웃’을 소개하고 있었다. 미국에서 처음 공표된 성전환 사실은 보수적인 1950년대 미국 사회에 충격을 던졌다. 당시 성적 관심은 터부시되었고 성은 숨겨야할 비밀스런 존재였다. 의학적으로 성전환...
엔리코 페르미, 핵 연쇄반응 성공
20세기를 맞아 세계 핵물리학계는 거침없는 행보를 보였지만 누구도 종착점을 알지 못했다. 이탈리아의 엔리코 페르미가 느린 중성자에 의해 일어나는 핵반응을 발견한 공로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아 기뻐하고 있을 무렵인 1938년 12월, 독일의 오토 한과 프리츠 슈트라스만이 우라늄의 원자핵 분열을 성공시켜 비로소 종착점이 보이는 듯했다. 페르미는 노벨상을 받고 현지에서 바로 미국으로 망명했다. 독일에서의 핵분열 성공 소식은 세계 물리학계를 놀라게 했고 페르미는 이 소식을 미국에서...
질레트 안전면도기 출시
1895년 어느날, 킹 캠프 질레트가 무디어진 면도날에 얼굴을 벤다. 그의 직업은 깔끔한 용모를 유지해야 하는 세일즈맨이었다. 칼날이 무디어지면 면도날만을 분리해 버리고 새로운 면도날를 사용할 수는 없을까. 19세기 남성을 상징해온 수염이 20세기의 남성에게서 사라지도록 한 안전면도기의 아이디어는 이렇게 시작됐다. 1901년 MIT공대 출신의 닉커슨과 함께 ‘질레트 안전면도기사(社)’를 설립한 질레트는 그해 12월 2일 첫 안전면도기를 세상에 내놓았다. 이듬해부터 대량생산에...
‘조선 최초의 근대인’ 윤치호 사망
그는 한말에서 식민지 시기까지 격동의 한복판을 살았던 조선 최초의 근대인이었다. 단발령이 공포되기 10년 전에 머리를 자르고 양복을 입었으며, 1894년에는 신식결혼과 국제결혼으로 시대를 앞서나갔다. 16세 때(1881년)에는 신사유람단을 따라 일본을 방문, 일찌감치 외국 문물을 접하고, 몇 년 뒤에는 갑신정변에 동조한 것이 문제가 돼 10여 년간 상하이와 미국을 떠돌았다. 망명생활은 그를 세계인으로 만들었다. 상하이에서는 조선인 최초로 남감리교 세례를 받았고 미국에서는...
러시아 마지막 차르 니콜라이 2세 결혼… 왕조 몰락의 전주곡
러시아의 차르(황제) 체제가 몰락한 것은1917년의 ‘10월 혁명’이 결정적이었지만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고질적인 유전질환도 혁명을 앞당기는 데 일조했다. 빅토리아는 9남매를 낳았고 이들이 유럽의 주요 황실과 혼인관계를 맺으면서 인적으로도 ‘팍스 브리태니커’가 구현됐지만, 문제는 이들을 통해 혈우병이 유럽 황실로 퍼졌다는 데 있었다. 혈우병의 특징은, 여성은 병을 물려주는 매개자 역할을 할 뿐 직접적인 고통은 그 여성의 아들이 당한다는 점이다. 빅토리아도 아들 하나를...
엘리자베스1세,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英 여왕 즉위
↑ 엘리자베스 1세 20세기 마지막 해인 1999년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지난 1000년 간의 최고지도자’에 당당히 1위로 올랐던 엘리자베스가 영국 여왕으로 등극하기까지에는 그 시대 최고 인물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등장한다. 헨리8세(1491~1547). 멋지고 당당하나 호색한이고 다혈질인 영국 왕이다. 아라곤 출신의 캐서린(1485~1536). 오랜 분열에 종지부를 찍고 780여년 만에 스페인을 정치적·종교적으로 통일시킨 스페인의 이사벨1세와 페르난도의 딸이다....
일본 견외사절단(遣外使節團) 서양을 향해 출항
메이지 초기, 일본에서 가장 유행했던 4자성어는 ‘문명개화’였다. 계몽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의 ‘서양사정’(1867년)을 통해 문명개화가 널리 알려지면서 일본인들은 변화를 갈구했다. 문명개화는 서양을 모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통옷과 게타(나막신)를 벗는 대신 서양의 신사복과 가죽구두를 신었다. 쇠고기 소비량이 문명의 바로미터라는 말이 퍼지면서 쇠고기 먹기 운동도 펼쳐졌다. 두주불사의 후쿠자와가 쇠고기 국물을 안주삼아 연일 술을 마시자 도쿄 시내에는 샤부샤부...
멕시코의 34년 철권 통치자 디아스 쫓아낸 멕시코 혁명 발발
34년 철권 통치자 포르피리오 디아스가 멕시코를 근대적인 공업국가로 변모시킨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외국자본을 도입하고 농민의 희생을 발판으로 이룬 경제성장이다보니 하층민들의 삶은 늘 힘들고 고단했다. 개발독재에 대한 반발이 잇따랐고, 1910년의 대통령선거 때는 젊은 변호사 마데로가 디아스의 대항마로 등장한다. 디아스가 또다시 부정선거로 승리하자 프란시스코 마데로는 망명지 미국에서 반(反)디아스 운동을 펼쳤다. 1910년 11월 20일 오후6시, 멕시코인들의 총궐기를...
영친왕 이은, 56년만의 환국
일제 패망 전까지, 영친왕 이은(李垠)은 일본 천황가의 배려와 도움으로 일본에서도 최고의 지위를 유지하며 살았다. 감시 속에 있는 허울좋은 황족의 신분이긴 했지만 생활은 만족스러웠고 행동은 모범적이었다. 다만 좀처럼 본심을 드러내지 않았고 가급적이면 침묵했다. 종전후, 조선의 왕 자리가 당연한 자기 몫으로 생각한 그는 고국행을 원했다. 그러나 일본인 부인 이방자 여사는 귀국을 망설였고, 이복형 의친왕의 옹립을 둘러싼 음모와 알력도 그의 발목을 잡았다. 무엇보다 이은을 괴롭힌...
‘스페인 민주주의의 수호자’ 후안 카를로스1세 즉위
“내 시체를 넘고 가라.” 쿠데타 주동세력들에게 후안 카를로스1세가 일갈하면서 상황이 일변했다. 새벽1시, 군복차림으로 TV에 나타난 카를로스가 “폭력으로 민주과정을 방해하려는 자들의 행위를 용납할 수 없다.”며 단호한 입장을 취함으로써 기세등등하던 1981년의 쿠데타는 풍선처럼 터졌다. 쿠데타는 물거품이 되었고, 민주주의는 되살아났다. 프랑코가 죽고 이틀이 지난 1975년 11월 22일, 카를로스가 44년만에 스페인 국왕으로 즉위했으나 국민들의 얼굴에는 불안한 기색이...
성전환자, 미국에서 첫 ‘커밍아웃’
1952년 12월 1일자 뉴욕 데일리신문을 펼쳐든 독자들은 믿기지 않는 뉴스에 아연실색했다. ‘EX-GI BECOMES BLOND BEAUTY(전 미군 장병, 금발의 미인되다)’라는 굵은 글씨의 기사제목이 신문 첫 장을 장식했기 때문이다. 기사는 성전환 수술을 했다는 한 청년의 ‘커밍아웃’을 소개하고 있었다. 미국에서 처음 공표된 성전환 사실은 보수적인 1950년대 미국 사회에 충격을 던졌다. 당시 성적 관심은 터부시되었고 성은 숨겨야할 비밀스런 존재였다. 의학적으로 성전환...
엔리코 페르미, 핵 연쇄반응 성공
20세기를 맞아 세계 핵물리학계는 거침없는 행보를 보였지만 누구도 종착점을 알지 못했다. 이탈리아의 엔리코 페르미가 느린 중성자에 의해 일어나는 핵반응을 발견한 공로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아 기뻐하고 있을 무렵인 1938년 12월, 독일의 오토 한과 프리츠 슈트라스만이 우라늄의 원자핵 분열을 성공시켜 비로소 종착점이 보이는 듯했다. 페르미는 노벨상을 받고 현지에서 바로 미국으로 망명했다. 독일에서의 핵분열 성공 소식은 세계 물리학계를 놀라게 했고 페르미는 이 소식을 미국에서...
질레트 안전면도기 출시
1895년 어느날, 킹 캠프 질레트가 무디어진 면도날에 얼굴을 벤다. 그의 직업은 깔끔한 용모를 유지해야 하는 세일즈맨이었다. 칼날이 무디어지면 면도날만을 분리해 버리고 새로운 면도날를 사용할 수는 없을까. 19세기 남성을 상징해온 수염이 20세기의 남성에게서 사라지도록 한 안전면도기의 아이디어는 이렇게 시작됐다. 1901년 MIT공대 출신의 닉커슨과 함께 ‘질레트 안전면도기사(社)’를 설립한 질레트는 그해 12월 2일 첫 안전면도기를 세상에 내놓았다. 이듬해부터 대량생산에...
‘조선 최초의 근대인’ 윤치호 사망
그는 한말에서 식민지 시기까지 격동의 한복판을 살았던 조선 최초의 근대인이었다. 단발령이 공포되기 10년 전에 머리를 자르고 양복을 입었으며, 1894년에는 신식결혼과 국제결혼으로 시대를 앞서나갔다. 16세 때(1881년)에는 신사유람단을 따라 일본을 방문, 일찌감치 외국 문물을 접하고, 몇 년 뒤에는 갑신정변에 동조한 것이 문제가 돼 10여 년간 상하이와 미국을 떠돌았다. 망명생활은 그를 세계인으로 만들었다. 상하이에서는 조선인 최초로 남감리교 세례를 받았고 미국에서는...
러시아 마지막 차르 니콜라이 2세 결혼… 왕조 몰락의 전주곡
러시아의 차르(황제) 체제가 몰락한 것은1917년의 ‘10월 혁명’이 결정적이었지만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고질적인 유전질환도 혁명을 앞당기는 데 일조했다. 빅토리아는 9남매를 낳았고 이들이 유럽의 주요 황실과 혼인관계를 맺으면서 인적으로도 ‘팍스 브리태니커’가 구현됐지만, 문제는 이들을 통해 혈우병이 유럽 황실로 퍼졌다는 데 있었다. 혈우병의 특징은, 여성은 병을 물려주는 매개자 역할을 할 뿐 직접적인 고통은 그 여성의 아들이 당한다는 점이다. 빅토리아도 아들 하나를...
엘리자베스1세,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英 여왕 즉위
↑ 엘리자베스 1세 20세기 마지막 해인 1999년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지난 1000년 간의 최고지도자’에 당당히 1위로 올랐던 엘리자베스가 영국 여왕으로 등극하기까지에는 그 시대 최고 인물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등장한다. 헨리8세(1491~1547). 멋지고 당당하나 호색한이고 다혈질인 영국 왕이다. 아라곤 출신의 캐서린(1485~1536). 오랜 분열에 종지부를 찍고 780여년 만에 스페인을 정치적·종교적으로 통일시킨 스페인의 이사벨1세와 페르난도의 딸이다....
일본 견외사절단(遣外使節團) 서양을 향해 출항
메이지 초기, 일본에서 가장 유행했던 4자성어는 ‘문명개화’였다. 계몽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의 ‘서양사정’(1867년)을 통해 문명개화가 널리 알려지면서 일본인들은 변화를 갈구했다. 문명개화는 서양을 모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통옷과 게타(나막신)를 벗는 대신 서양의 신사복과 가죽구두를 신었다. 쇠고기 소비량이 문명의 바로미터라는 말이 퍼지면서 쇠고기 먹기 운동도 펼쳐졌다. 두주불사의 후쿠자와가 쇠고기 국물을 안주삼아 연일 술을 마시자 도쿄 시내에는 샤부샤부...
멕시코의 34년 철권 통치자 디아스 쫓아낸 멕시코 혁명 발발
34년 철권 통치자 포르피리오 디아스가 멕시코를 근대적인 공업국가로 변모시킨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외국자본을 도입하고 농민의 희생을 발판으로 이룬 경제성장이다보니 하층민들의 삶은 늘 힘들고 고단했다. 개발독재에 대한 반발이 잇따랐고, 1910년의 대통령선거 때는 젊은 변호사 마데로가 디아스의 대항마로 등장한다. 디아스가 또다시 부정선거로 승리하자 프란시스코 마데로는 망명지 미국에서 반(反)디아스 운동을 펼쳤다. 1910년 11월 20일 오후6시, 멕시코인들의 총궐기를...
영친왕 이은, 56년만의 환국
일제 패망 전까지, 영친왕 이은(李垠)은 일본 천황가의 배려와 도움으로 일본에서도 최고의 지위를 유지하며 살았다. 감시 속에 있는 허울좋은 황족의 신분이긴 했지만 생활은 만족스러웠고 행동은 모범적이었다. 다만 좀처럼 본심을 드러내지 않았고 가급적이면 침묵했다. 종전후, 조선의 왕 자리가 당연한 자기 몫으로 생각한 그는 고국행을 원했다. 그러나 일본인 부인 이방자 여사는 귀국을 망설였고, 이복형 의친왕의 옹립을 둘러싼 음모와 알력도 그의 발목을 잡았다. 무엇보다 이은을 괴롭힌...
‘스페인 민주주의의 수호자’ 후안 카를로스1세 즉위
“내 시체를 넘고 가라.” 쿠데타 주동세력들에게 후안 카를로스1세가 일갈하면서 상황이 일변했다. 새벽1시, 군복차림으로 TV에 나타난 카를로스가 “폭력으로 민주과정을 방해하려는 자들의 행위를 용납할 수 없다.”며 단호한 입장을 취함으로써 기세등등하던 1981년의 쿠데타는 풍선처럼 터졌다. 쿠데타는 물거품이 되었고, 민주주의는 되살아났다. 프랑코가 죽고 이틀이 지난 1975년 11월 22일, 카를로스가 44년만에 스페인 국왕으로 즉위했으나 국민들의 얼굴에는 불안한 기색이...
성전환자, 미국에서 첫 ‘커밍아웃’
1952년 12월 1일자 뉴욕 데일리신문을 펼쳐든 독자들은 믿기지 않는 뉴스에 아연실색했다. ‘EX-GI BECOMES BLOND BEAUTY(전 미군 장병, 금발의 미인되다)’라는 굵은 글씨의 기사제목이 신문 첫 장을 장식했기 때문이다. 기사는 성전환 수술을 했다는 한 청년의 ‘커밍아웃’을 소개하고 있었다. 미국에서 처음 공표된 성전환 사실은 보수적인 1950년대 미국 사회에 충격을 던졌다. 당시 성적 관심은 터부시되었고 성은 숨겨야할 비밀스런 존재였다. 의학적으로 성전환...
엔리코 페르미, 핵 연쇄반응 성공
20세기를 맞아 세계 핵물리학계는 거침없는 행보를 보였지만 누구도 종착점을 알지 못했다. 이탈리아의 엔리코 페르미가 느린 중성자에 의해 일어나는 핵반응을 발견한 공로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아 기뻐하고 있을 무렵인 1938년 12월, 독일의 오토 한과 프리츠 슈트라스만이 우라늄의 원자핵 분열을 성공시켜 비로소 종착점이 보이는 듯했다. 페르미는 노벨상을 받고 현지에서 바로 미국으로 망명했다. 독일에서의 핵분열 성공 소식은 세계 물리학계를 놀라게 했고 페르미는 이 소식을 미국에서...
질레트 안전면도기 출시
1895년 어느날, 킹 캠프 질레트가 무디어진 면도날에 얼굴을 벤다. 그의 직업은 깔끔한 용모를 유지해야 하는 세일즈맨이었다. 칼날이 무디어지면 면도날만을 분리해 버리고 새로운 면도날를 사용할 수는 없을까. 19세기 남성을 상징해온 수염이 20세기의 남성에게서 사라지도록 한 안전면도기의 아이디어는 이렇게 시작됐다. 1901년 MIT공대 출신의 닉커슨과 함께 ‘질레트 안전면도기사(社)’를 설립한 질레트는 그해 12월 2일 첫 안전면도기를 세상에 내놓았다. 이듬해부터 대량생산에...
‘조선 최초의 근대인’ 윤치호 사망
그는 한말에서 식민지 시기까지 격동의 한복판을 살았던 조선 최초의 근대인이었다. 단발령이 공포되기 10년 전에 머리를 자르고 양복을 입었으며, 1894년에는 신식결혼과 국제결혼으로 시대를 앞서나갔다. 16세 때(1881년)에는 신사유람단을 따라 일본을 방문, 일찌감치 외국 문물을 접하고, 몇 년 뒤에는 갑신정변에 동조한 것이 문제가 돼 10여 년간 상하이와 미국을 떠돌았다. 망명생활은 그를 세계인으로 만들었다. 상하이에서는 조선인 최초로 남감리교 세례를 받았고 미국에서는...
러시아 마지막 차르 니콜라이 2세 결혼… 왕조 몰락의 전주곡
러시아의 차르(황제) 체제가 몰락한 것은1917년의 ‘10월 혁명’이 결정적이었지만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고질적인 유전질환도 혁명을 앞당기는 데 일조했다. 빅토리아는 9남매를 낳았고 이들이 유럽의 주요 황실과 혼인관계를 맺으면서 인적으로도 ‘팍스 브리태니커’가 구현됐지만, 문제는 이들을 통해 혈우병이 유럽 황실로 퍼졌다는 데 있었다. 혈우병의 특징은, 여성은 병을 물려주는 매개자 역할을 할 뿐 직접적인 고통은 그 여성의 아들이 당한다는 점이다. 빅토리아도 아들 하나를...
엘리자베스1세,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英 여왕 즉위
↑ 엘리자베스 1세 20세기 마지막 해인 1999년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지난 1000년 간의 최고지도자’에 당당히 1위로 올랐던 엘리자베스가 영국 여왕으로 등극하기까지에는 그 시대 최고 인물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등장한다. 헨리8세(1491~1547). 멋지고 당당하나 호색한이고 다혈질인 영국 왕이다. 아라곤 출신의 캐서린(1485~1536). 오랜 분열에 종지부를 찍고 780여년 만에 스페인을 정치적·종교적으로 통일시킨 스페인의 이사벨1세와 페르난도의 딸이다....
일본 견외사절단(遣外使節團) 서양을 향해 출항
메이지 초기, 일본에서 가장 유행했던 4자성어는 ‘문명개화’였다. 계몽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의 ‘서양사정’(1867년)을 통해 문명개화가 널리 알려지면서 일본인들은 변화를 갈구했다. 문명개화는 서양을 모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통옷과 게타(나막신)를 벗는 대신 서양의 신사복과 가죽구두를 신었다. 쇠고기 소비량이 문명의 바로미터라는 말이 퍼지면서 쇠고기 먹기 운동도 펼쳐졌다. 두주불사의 후쿠자와가 쇠고기 국물을 안주삼아 연일 술을 마시자 도쿄 시내에는 샤부샤부...
멕시코의 34년 철권 통치자 디아스 쫓아낸 멕시코 혁명 발발
34년 철권 통치자 포르피리오 디아스가 멕시코를 근대적인 공업국가로 변모시킨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외국자본을 도입하고 농민의 희생을 발판으로 이룬 경제성장이다보니 하층민들의 삶은 늘 힘들고 고단했다. 개발독재에 대한 반발이 잇따랐고, 1910년의 대통령선거 때는 젊은 변호사 마데로가 디아스의 대항마로 등장한다. 디아스가 또다시 부정선거로 승리하자 프란시스코 마데로는 망명지 미국에서 반(反)디아스 운동을 펼쳤다. 1910년 11월 20일 오후6시, 멕시코인들의 총궐기를...
영친왕 이은, 56년만의 환국
일제 패망 전까지, 영친왕 이은(李垠)은 일본 천황가의 배려와 도움으로 일본에서도 최고의 지위를 유지하며 살았다. 감시 속에 있는 허울좋은 황족의 신분이긴 했지만 생활은 만족스러웠고 행동은 모범적이었다. 다만 좀처럼 본심을 드러내지 않았고 가급적이면 침묵했다. 종전후, 조선의 왕 자리가 당연한 자기 몫으로 생각한 그는 고국행을 원했다. 그러나 일본인 부인 이방자 여사는 귀국을 망설였고, 이복형 의친왕의 옹립을 둘러싼 음모와 알력도 그의 발목을 잡았다. 무엇보다 이은을 괴롭힌...
‘스페인 민주주의의 수호자’ 후안 카를로스1세 즉위
“내 시체를 넘고 가라.” 쿠데타 주동세력들에게 후안 카를로스1세가 일갈하면서 상황이 일변했다. 새벽1시, 군복차림으로 TV에 나타난 카를로스가 “폭력으로 민주과정을 방해하려는 자들의 행위를 용납할 수 없다.”며 단호한 입장을 취함으로써 기세등등하던 1981년의 쿠데타는 풍선처럼 터졌다. 쿠데타는 물거품이 되었고, 민주주의는 되살아났다. 프랑코가 죽고 이틀이 지난 1975년 11월 22일, 카를로스가 44년만에 스페인 국왕으로 즉위했으나 국민들의 얼굴에는 불안한 기색이...
성전환자, 미국에서 첫 ‘커밍아웃’
1952년 12월 1일자 뉴욕 데일리신문을 펼쳐든 독자들은 믿기지 않는 뉴스에 아연실색했다. ‘EX-GI BECOMES BLOND BEAUTY(전 미군 장병, 금발의 미인되다)’라는 굵은 글씨의 기사제목이 신문 첫 장을 장식했기 때문이다. 기사는 성전환 수술을 했다는 한 청년의 ‘커밍아웃’을 소개하고 있었다. 미국에서 처음 공표된 성전환 사실은 보수적인 1950년대 미국 사회에 충격을 던졌다. 당시 성적 관심은 터부시되었고 성은 숨겨야할 비밀스런 존재였다. 의학적으로 성전환...
엔리코 페르미, 핵 연쇄반응 성공
20세기를 맞아 세계 핵물리학계는 거침없는 행보를 보였지만 누구도 종착점을 알지 못했다. 이탈리아의 엔리코 페르미가 느린 중성자에 의해 일어나는 핵반응을 발견한 공로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아 기뻐하고 있을 무렵인 1938년 12월, 독일의 오토 한과 프리츠 슈트라스만이 우라늄의 원자핵 분열을 성공시켜 비로소 종착점이 보이는 듯했다. 페르미는 노벨상을 받고 현지에서 바로 미국으로 망명했다. 독일에서의 핵분열 성공 소식은 세계 물리학계를 놀라게 했고 페르미는 이 소식을 미국에서...
질레트 안전면도기 출시
1895년 어느날, 킹 캠프 질레트가 무디어진 면도날에 얼굴을 벤다. 그의 직업은 깔끔한 용모를 유지해야 하는 세일즈맨이었다. 칼날이 무디어지면 면도날만을 분리해 버리고 새로운 면도날를 사용할 수는 없을까. 19세기 남성을 상징해온 수염이 20세기의 남성에게서 사라지도록 한 안전면도기의 아이디어는 이렇게 시작됐다. 1901년 MIT공대 출신의 닉커슨과 함께 ‘질레트 안전면도기사(社)’를 설립한 질레트는 그해 12월 2일 첫 안전면도기를 세상에 내놓았다. 이듬해부터 대량생산에...
‘조선 최초의 근대인’ 윤치호 사망
그는 한말에서 식민지 시기까지 격동의 한복판을 살았던 조선 최초의 근대인이었다. 단발령이 공포되기 10년 전에 머리를 자르고 양복을 입었으며, 1894년에는 신식결혼과 국제결혼으로 시대를 앞서나갔다. 16세 때(1881년)에는 신사유람단을 따라 일본을 방문, 일찌감치 외국 문물을 접하고, 몇 년 뒤에는 갑신정변에 동조한 것이 문제가 돼 10여 년간 상하이와 미국을 떠돌았다. 망명생활은 그를 세계인으로 만들었다. 상하이에서는 조선인 최초로 남감리교 세례를 받았고 미국에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