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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년 : 로베르트 코흐, 결핵균 병원체 발견

1882년 : 로베르트 코흐, 결핵균 병원체 발견

19세기 세균학의 토대를 닦은 ‘세균학의 개조’ 로베르트 코흐(1843~1910)는 프랑스의 미생물학자 루이 파스퇴르와 함께 19세기 세균학의 토대를 닦은 ‘세균학의 개조’다. 세균학은 17세기 후반 네덜란드의 안톤 판 레이우엔훅이 현미경으로 처음 미생물을 관찰한 이래 19세기 말 전성기를 맞았다. 탄저균(1876), 임질균(1879), 장티푸스균(1880), 나병균(1880), 결핵균(1882), 콜레라균(1883), 디프테리아균·파상풍균(1884), 페스트균(1894),...

1896년 : 두산그룹의 모체 ‘박승직 상점’ 개점

박승직이 광장시장을 이끈 공로는 한국 경영경제사에 길이 남을 일 박승직(1864~1950)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기업 중 가장 오래된 두산그룹을 창업하고 서울 종로와 청계천로 사이에 위치한 광장시장의 오늘을 있게 한 우리나라 시장경제의 개척자다. 그가 조선 8도 장터를 누비는 보부상으로 모은 돈을 종잣돈 삼아 종로 4가 배오개시장에 ‘박승직 상점’을 연 것은 32살 때인 1896년 8월 1일이었다. 당시 배오개시장은 조선시대 전통적 서민 시장으로, 동대문으로 들어오는 여러...

박용만의 국민군단 창설과 이승만과의 갈등

박용만, 군사력을 양성해 무력으로 독립 쟁취해야 한다고 주장 공식적으로 기록된 한인의 하와이 정착은 1903년 1월 13일 93명의 한국인 이민자가 하와이 호놀룰루에 도착하면서 시작된다. 한인 이민은 1905년 11월 을사조약이 체결될 때까지 계속되어 그 수가 6,700여 명에 달했다. 이들 이민 1세대는 사탕수수 재배나 관개 사업 등 힘든 일을 하면서도 지역별·종교별 친목단체를 만들어 풍전등화에 놓인 조국의 현실을 걱정했다. 여러 개로 난립하던 단체들은 1907년 9월...

손문 중화민국 임시대총통 취임

‘영원한 혁명가’이자 ‘실패한 혁명가’ 손문(1866~1925)은 평생을 봉기와 실패 그리고 망명으로 점철된 삶을 산 근현대 중국 최고의 풍운아다. 그러나 그가 주도한 봉기마다 모두 실패로 끝이 나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동지들이 처형되어 ‘영원한 혁명가’이면서 동시에 ‘실패한 혁명가’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그는 오늘날 ‘중국 혁명의 아버지’로 불리며 중국은 물론이고 대만에서도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중국공산당에서는 제1차 국공합작을 성립시킨 주인공으로, 대만의 국민당...

안창호 흥사단 설립

창립 취지는 “국민의 인격 혁명을 통해 세계 최고의 일등 국민이 되자” 안창호(1878~1938)는 잃어버린 국권을 회복해 자주독립국가를 세우는 일에 평생을 바친 민족지도자이자 독립운동가였다. 특히 각종 협회나 단체를 국내외에 다수 설립한 조직의 달인이었으며 연설의 귀재였다. 평남 강서군에서 태어나 한학을 공부하던 안창호가 안일한 삶을 반성하고 나라와 겨레를 위해 일생을 바치겠다고 결의한 것은 1894년 온 나라를 혼란에 빠뜨린 동학혁명과 청일전쟁을 겪고 나서였다. 안창호는...

안중근 의사, 이토 히로부미 처단

그 날의 총성은 이토를 향한 안중근의 엄중한 경고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 중국의 하얼빈역 하늘에 6발의 총성이 울려퍼졌다. 첫 3발은 일본 초대 내각총리와 초대 조선통감을 지낸 이토 히로부미의 가슴과 옆구리, 배에 명중했고 다른 3발은 이토를 수행하던 3명의 일본인을 쓰러뜨렸다. 이토는 30분 후 죽고 다른 3명은 중경상을 당했다. 그날의 총성은 이토를 향한 안중근(1879~1910)의 엄중한 경고였다. 안중근은 적의 심장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 뒤 러시아...

‘신흥강습소’, 중국 길림성에 설립… 군사교육 포함한 교육기관으로 출범했다가 ‘신흥무관학교’로 개명한 뒤부터는 독립군 양성 전문 교육기관으로 변신

‘신흥강습소’, 중국 길림성에 설립… 군사교육 포함한 교육기관으로 출범했다가 ‘신흥무관학교’로 개명한 뒤부터는 독립군 양성 전문 교육기관으로 변신

↑ 1947년 10월 19일 신흥무관학교 졸업생들이 신흥학우단의 복원 모임을 한 뒤 성재 이시영(앞줄 가운데 흰옷 입은 이)을 모시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출처 우당기념관)   근대 교육과 군사교육 실시하는 교육기관 신민회는 애국 계몽운동을 전개했던 비밀결사였다. 1907년 4월 창립되었다. 양기탁이 총감독, 이동녕이 총서기, 전덕기가 재무, 안창호가 집행을 맡았다. 국권 회복을 위한 실력 양성과 민족산업 진흥 그리고 계몽 강연을 펼쳤다. 그러나 일제의 조선...

최남선 ‘신문관’ 설립과 ‘소년’지 창간

근대 잡지를 펴낸 출판인이자 신문화의 선구자 최남선(1890~1957)은 다양한 근대 잡지를 펴내고 우리의 고전을 단행본으로 발간한 출판인이자 신문화의 선구자였다. 단군을 우리 역사에서 제외하려 한 일본의 관제 학자들에 맞서 싸운 사학자이자 논객이었다. 무엇보다 3·1독립선언문을 기초해 2년 8개월간 옥고를 치른 독립운동가였으나 일제 말기에 친일 활동을 벌여 그를 아끼고 사랑한 동료 지식인들을 안타깝게 했다. 최남선이 일찌감치 개화 문명을 접하고 문화 활동을 활발하게 펼칠 수...

헤이그 밀사 파견과 이준 열사 분사

고종, 헤이그 평화회의를 일본의 국권 침탈 공론화할 수 있는 기회로 생각 1905년 러일전쟁이 끝나고 을사조약 체결이 가시화하자 고종은 미국과 러시아를 향해 대한제국 문제에 개입해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미국은 일본과 가쓰라·태프트 밀약(1905.7)으로 조선을 일본에 넘겨주는 데 동의하고 러시아는 러일전쟁 패전 후 체결한 포츠머스 조약(1905.9)에서 한국에 대한 일본의 우월권을 승인하는 것으로 고종의 요청을 뿌리쳤다. 결국 을사조약은 1905년 11월 17일...

독일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 피살 100주년

독일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 피살 100주년

↑ 로자 룩셈부르크   by 김지지   “마르크스 이후 가장 뛰어난 두뇌”, “강철 같은 여성 혁명 투사”, “피에 굶주린 로자” 등등…. 로자 룩셈부르크(1871~1919)를 가리키는 수식어는 이렇듯 강렬하고 섬뜩하다. 로자는 제정 러시아의 폭정 아래서 신음하는 폴란드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가정은 부유했으나 어릴 적 앓은 골반관절염으로 다리를 절고 키가 작았다. 로자는 고교 졸업 후 폴란드사회당이 창당할 때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결국 경찰의 체포령을...

1882년 : 로베르트 코흐, 결핵균 병원체 발견

1882년 : 로베르트 코흐, 결핵균 병원체 발견

19세기 세균학의 토대를 닦은 ‘세균학의 개조’ 로베르트 코흐(1843~1910)는 프랑스의 미생물학자 루이 파스퇴르와 함께 19세기 세균학의 토대를 닦은 ‘세균학의 개조’다. 세균학은 17세기 후반 네덜란드의 안톤 판 레이우엔훅이 현미경으로 처음 미생물을 관찰한 이래 19세기 말 전성기를 맞았다. 탄저균(1876), 임질균(1879), 장티푸스균(1880), 나병균(1880), 결핵균(1882), 콜레라균(1883), 디프테리아균·파상풍균(1884), 페스트균(1894),...

1896년 : 두산그룹의 모체 ‘박승직 상점’ 개점

박승직이 광장시장을 이끈 공로는 한국 경영경제사에 길이 남을 일 박승직(1864~1950)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기업 중 가장 오래된 두산그룹을 창업하고 서울 종로와 청계천로 사이에 위치한 광장시장의 오늘을 있게 한 우리나라 시장경제의 개척자다. 그가 조선 8도 장터를 누비는 보부상으로 모은 돈을 종잣돈 삼아 종로 4가 배오개시장에 ‘박승직 상점’을 연 것은 32살 때인 1896년 8월 1일이었다. 당시 배오개시장은 조선시대 전통적 서민 시장으로, 동대문으로 들어오는 여러...

박용만의 국민군단 창설과 이승만과의 갈등

박용만, 군사력을 양성해 무력으로 독립 쟁취해야 한다고 주장 공식적으로 기록된 한인의 하와이 정착은 1903년 1월 13일 93명의 한국인 이민자가 하와이 호놀룰루에 도착하면서 시작된다. 한인 이민은 1905년 11월 을사조약이 체결될 때까지 계속되어 그 수가 6,700여 명에 달했다. 이들 이민 1세대는 사탕수수 재배나 관개 사업 등 힘든 일을 하면서도 지역별·종교별 친목단체를 만들어 풍전등화에 놓인 조국의 현실을 걱정했다. 여러 개로 난립하던 단체들은 1907년 9월...

손문 중화민국 임시대총통 취임

‘영원한 혁명가’이자 ‘실패한 혁명가’ 손문(1866~1925)은 평생을 봉기와 실패 그리고 망명으로 점철된 삶을 산 근현대 중국 최고의 풍운아다. 그러나 그가 주도한 봉기마다 모두 실패로 끝이 나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동지들이 처형되어 ‘영원한 혁명가’이면서 동시에 ‘실패한 혁명가’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그는 오늘날 ‘중국 혁명의 아버지’로 불리며 중국은 물론이고 대만에서도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중국공산당에서는 제1차 국공합작을 성립시킨 주인공으로, 대만의 국민당...

안창호 흥사단 설립

창립 취지는 “국민의 인격 혁명을 통해 세계 최고의 일등 국민이 되자” 안창호(1878~1938)는 잃어버린 국권을 회복해 자주독립국가를 세우는 일에 평생을 바친 민족지도자이자 독립운동가였다. 특히 각종 협회나 단체를 국내외에 다수 설립한 조직의 달인이었으며 연설의 귀재였다. 평남 강서군에서 태어나 한학을 공부하던 안창호가 안일한 삶을 반성하고 나라와 겨레를 위해 일생을 바치겠다고 결의한 것은 1894년 온 나라를 혼란에 빠뜨린 동학혁명과 청일전쟁을 겪고 나서였다. 안창호는...

안중근 의사, 이토 히로부미 처단

그 날의 총성은 이토를 향한 안중근의 엄중한 경고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 중국의 하얼빈역 하늘에 6발의 총성이 울려퍼졌다. 첫 3발은 일본 초대 내각총리와 초대 조선통감을 지낸 이토 히로부미의 가슴과 옆구리, 배에 명중했고 다른 3발은 이토를 수행하던 3명의 일본인을 쓰러뜨렸다. 이토는 30분 후 죽고 다른 3명은 중경상을 당했다. 그날의 총성은 이토를 향한 안중근(1879~1910)의 엄중한 경고였다. 안중근은 적의 심장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 뒤 러시아...

‘신흥강습소’, 중국 길림성에 설립… 군사교육 포함한 교육기관으로 출범했다가 ‘신흥무관학교’로 개명한 뒤부터는 독립군 양성 전문 교육기관으로 변신

‘신흥강습소’, 중국 길림성에 설립… 군사교육 포함한 교육기관으로 출범했다가 ‘신흥무관학교’로 개명한 뒤부터는 독립군 양성 전문 교육기관으로 변신

↑ 1947년 10월 19일 신흥무관학교 졸업생들이 신흥학우단의 복원 모임을 한 뒤 성재 이시영(앞줄 가운데 흰옷 입은 이)을 모시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출처 우당기념관)   근대 교육과 군사교육 실시하는 교육기관 신민회는 애국 계몽운동을 전개했던 비밀결사였다. 1907년 4월 창립되었다. 양기탁이 총감독, 이동녕이 총서기, 전덕기가 재무, 안창호가 집행을 맡았다. 국권 회복을 위한 실력 양성과 민족산업 진흥 그리고 계몽 강연을 펼쳤다. 그러나 일제의 조선...

최남선 ‘신문관’ 설립과 ‘소년’지 창간

근대 잡지를 펴낸 출판인이자 신문화의 선구자 최남선(1890~1957)은 다양한 근대 잡지를 펴내고 우리의 고전을 단행본으로 발간한 출판인이자 신문화의 선구자였다. 단군을 우리 역사에서 제외하려 한 일본의 관제 학자들에 맞서 싸운 사학자이자 논객이었다. 무엇보다 3·1독립선언문을 기초해 2년 8개월간 옥고를 치른 독립운동가였으나 일제 말기에 친일 활동을 벌여 그를 아끼고 사랑한 동료 지식인들을 안타깝게 했다. 최남선이 일찌감치 개화 문명을 접하고 문화 활동을 활발하게 펼칠 수...

헤이그 밀사 파견과 이준 열사 분사

고종, 헤이그 평화회의를 일본의 국권 침탈 공론화할 수 있는 기회로 생각 1905년 러일전쟁이 끝나고 을사조약 체결이 가시화하자 고종은 미국과 러시아를 향해 대한제국 문제에 개입해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미국은 일본과 가쓰라·태프트 밀약(1905.7)으로 조선을 일본에 넘겨주는 데 동의하고 러시아는 러일전쟁 패전 후 체결한 포츠머스 조약(1905.9)에서 한국에 대한 일본의 우월권을 승인하는 것으로 고종의 요청을 뿌리쳤다. 결국 을사조약은 1905년 11월 17일...

독일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 피살 100주년

독일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 피살 100주년

↑ 로자 룩셈부르크   by 김지지   “마르크스 이후 가장 뛰어난 두뇌”, “강철 같은 여성 혁명 투사”, “피에 굶주린 로자” 등등…. 로자 룩셈부르크(1871~1919)를 가리키는 수식어는 이렇듯 강렬하고 섬뜩하다. 로자는 제정 러시아의 폭정 아래서 신음하는 폴란드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가정은 부유했으나 어릴 적 앓은 골반관절염으로 다리를 절고 키가 작았다. 로자는 고교 졸업 후 폴란드사회당이 창당할 때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결국 경찰의 체포령을...

1882년 : 로베르트 코흐, 결핵균 병원체 발견

1882년 : 로베르트 코흐, 결핵균 병원체 발견

19세기 세균학의 토대를 닦은 ‘세균학의 개조’ 로베르트 코흐(1843~1910)는 프랑스의 미생물학자 루이 파스퇴르와 함께 19세기 세균학의 토대를 닦은 ‘세균학의 개조’다. 세균학은 17세기 후반 네덜란드의 안톤 판 레이우엔훅이 현미경으로 처음 미생물을 관찰한 이래 19세기 말 전성기를 맞았다. 탄저균(1876), 임질균(1879), 장티푸스균(1880), 나병균(1880), 결핵균(1882), 콜레라균(1883), 디프테리아균·파상풍균(1884), 페스트균(1894),...

1896년 : 두산그룹의 모체 ‘박승직 상점’ 개점

박승직이 광장시장을 이끈 공로는 한국 경영경제사에 길이 남을 일 박승직(1864~1950)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기업 중 가장 오래된 두산그룹을 창업하고 서울 종로와 청계천로 사이에 위치한 광장시장의 오늘을 있게 한 우리나라 시장경제의 개척자다. 그가 조선 8도 장터를 누비는 보부상으로 모은 돈을 종잣돈 삼아 종로 4가 배오개시장에 ‘박승직 상점’을 연 것은 32살 때인 1896년 8월 1일이었다. 당시 배오개시장은 조선시대 전통적 서민 시장으로, 동대문으로 들어오는 여러...

박용만의 국민군단 창설과 이승만과의 갈등

박용만, 군사력을 양성해 무력으로 독립 쟁취해야 한다고 주장 공식적으로 기록된 한인의 하와이 정착은 1903년 1월 13일 93명의 한국인 이민자가 하와이 호놀룰루에 도착하면서 시작된다. 한인 이민은 1905년 11월 을사조약이 체결될 때까지 계속되어 그 수가 6,700여 명에 달했다. 이들 이민 1세대는 사탕수수 재배나 관개 사업 등 힘든 일을 하면서도 지역별·종교별 친목단체를 만들어 풍전등화에 놓인 조국의 현실을 걱정했다. 여러 개로 난립하던 단체들은 1907년 9월...

손문 중화민국 임시대총통 취임

‘영원한 혁명가’이자 ‘실패한 혁명가’ 손문(1866~1925)은 평생을 봉기와 실패 그리고 망명으로 점철된 삶을 산 근현대 중국 최고의 풍운아다. 그러나 그가 주도한 봉기마다 모두 실패로 끝이 나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동지들이 처형되어 ‘영원한 혁명가’이면서 동시에 ‘실패한 혁명가’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그는 오늘날 ‘중국 혁명의 아버지’로 불리며 중국은 물론이고 대만에서도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중국공산당에서는 제1차 국공합작을 성립시킨 주인공으로, 대만의 국민당...

안창호 흥사단 설립

창립 취지는 “국민의 인격 혁명을 통해 세계 최고의 일등 국민이 되자” 안창호(1878~1938)는 잃어버린 국권을 회복해 자주독립국가를 세우는 일에 평생을 바친 민족지도자이자 독립운동가였다. 특히 각종 협회나 단체를 국내외에 다수 설립한 조직의 달인이었으며 연설의 귀재였다. 평남 강서군에서 태어나 한학을 공부하던 안창호가 안일한 삶을 반성하고 나라와 겨레를 위해 일생을 바치겠다고 결의한 것은 1894년 온 나라를 혼란에 빠뜨린 동학혁명과 청일전쟁을 겪고 나서였다. 안창호는...

안중근 의사, 이토 히로부미 처단

그 날의 총성은 이토를 향한 안중근의 엄중한 경고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 중국의 하얼빈역 하늘에 6발의 총성이 울려퍼졌다. 첫 3발은 일본 초대 내각총리와 초대 조선통감을 지낸 이토 히로부미의 가슴과 옆구리, 배에 명중했고 다른 3발은 이토를 수행하던 3명의 일본인을 쓰러뜨렸다. 이토는 30분 후 죽고 다른 3명은 중경상을 당했다. 그날의 총성은 이토를 향한 안중근(1879~1910)의 엄중한 경고였다. 안중근은 적의 심장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 뒤 러시아...

‘신흥강습소’, 중국 길림성에 설립… 군사교육 포함한 교육기관으로 출범했다가 ‘신흥무관학교’로 개명한 뒤부터는 독립군 양성 전문 교육기관으로 변신

‘신흥강습소’, 중국 길림성에 설립… 군사교육 포함한 교육기관으로 출범했다가 ‘신흥무관학교’로 개명한 뒤부터는 독립군 양성 전문 교육기관으로 변신

↑ 1947년 10월 19일 신흥무관학교 졸업생들이 신흥학우단의 복원 모임을 한 뒤 성재 이시영(앞줄 가운데 흰옷 입은 이)을 모시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출처 우당기념관)   근대 교육과 군사교육 실시하는 교육기관 신민회는 애국 계몽운동을 전개했던 비밀결사였다. 1907년 4월 창립되었다. 양기탁이 총감독, 이동녕이 총서기, 전덕기가 재무, 안창호가 집행을 맡았다. 국권 회복을 위한 실력 양성과 민족산업 진흥 그리고 계몽 강연을 펼쳤다. 그러나 일제의 조선...

최남선 ‘신문관’ 설립과 ‘소년’지 창간

근대 잡지를 펴낸 출판인이자 신문화의 선구자 최남선(1890~1957)은 다양한 근대 잡지를 펴내고 우리의 고전을 단행본으로 발간한 출판인이자 신문화의 선구자였다. 단군을 우리 역사에서 제외하려 한 일본의 관제 학자들에 맞서 싸운 사학자이자 논객이었다. 무엇보다 3·1독립선언문을 기초해 2년 8개월간 옥고를 치른 독립운동가였으나 일제 말기에 친일 활동을 벌여 그를 아끼고 사랑한 동료 지식인들을 안타깝게 했다. 최남선이 일찌감치 개화 문명을 접하고 문화 활동을 활발하게 펼칠 수...

헤이그 밀사 파견과 이준 열사 분사

고종, 헤이그 평화회의를 일본의 국권 침탈 공론화할 수 있는 기회로 생각 1905년 러일전쟁이 끝나고 을사조약 체결이 가시화하자 고종은 미국과 러시아를 향해 대한제국 문제에 개입해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미국은 일본과 가쓰라·태프트 밀약(1905.7)으로 조선을 일본에 넘겨주는 데 동의하고 러시아는 러일전쟁 패전 후 체결한 포츠머스 조약(1905.9)에서 한국에 대한 일본의 우월권을 승인하는 것으로 고종의 요청을 뿌리쳤다. 결국 을사조약은 1905년 11월 17일...

독일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 피살 100주년

독일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 피살 100주년

↑ 로자 룩셈부르크   by 김지지   “마르크스 이후 가장 뛰어난 두뇌”, “강철 같은 여성 혁명 투사”, “피에 굶주린 로자” 등등…. 로자 룩셈부르크(1871~1919)를 가리키는 수식어는 이렇듯 강렬하고 섬뜩하다. 로자는 제정 러시아의 폭정 아래서 신음하는 폴란드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가정은 부유했으나 어릴 적 앓은 골반관절염으로 다리를 절고 키가 작았다. 로자는 고교 졸업 후 폴란드사회당이 창당할 때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결국 경찰의 체포령을...

1882년 : 로베르트 코흐, 결핵균 병원체 발견

1882년 : 로베르트 코흐, 결핵균 병원체 발견

19세기 세균학의 토대를 닦은 ‘세균학의 개조’ 로베르트 코흐(1843~1910)는 프랑스의 미생물학자 루이 파스퇴르와 함께 19세기 세균학의 토대를 닦은 ‘세균학의 개조’다. 세균학은 17세기 후반 네덜란드의 안톤 판 레이우엔훅이 현미경으로 처음 미생물을 관찰한 이래 19세기 말 전성기를 맞았다. 탄저균(1876), 임질균(1879), 장티푸스균(1880), 나병균(1880), 결핵균(1882), 콜레라균(1883), 디프테리아균·파상풍균(1884), 페스트균(1894),...

1896년 : 두산그룹의 모체 ‘박승직 상점’ 개점

박승직이 광장시장을 이끈 공로는 한국 경영경제사에 길이 남을 일 박승직(1864~1950)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기업 중 가장 오래된 두산그룹을 창업하고 서울 종로와 청계천로 사이에 위치한 광장시장의 오늘을 있게 한 우리나라 시장경제의 개척자다. 그가 조선 8도 장터를 누비는 보부상으로 모은 돈을 종잣돈 삼아 종로 4가 배오개시장에 ‘박승직 상점’을 연 것은 32살 때인 1896년 8월 1일이었다. 당시 배오개시장은 조선시대 전통적 서민 시장으로, 동대문으로 들어오는 여러...

박용만의 국민군단 창설과 이승만과의 갈등

박용만, 군사력을 양성해 무력으로 독립 쟁취해야 한다고 주장 공식적으로 기록된 한인의 하와이 정착은 1903년 1월 13일 93명의 한국인 이민자가 하와이 호놀룰루에 도착하면서 시작된다. 한인 이민은 1905년 11월 을사조약이 체결될 때까지 계속되어 그 수가 6,700여 명에 달했다. 이들 이민 1세대는 사탕수수 재배나 관개 사업 등 힘든 일을 하면서도 지역별·종교별 친목단체를 만들어 풍전등화에 놓인 조국의 현실을 걱정했다. 여러 개로 난립하던 단체들은 1907년 9월...

손문 중화민국 임시대총통 취임

‘영원한 혁명가’이자 ‘실패한 혁명가’ 손문(1866~1925)은 평생을 봉기와 실패 그리고 망명으로 점철된 삶을 산 근현대 중국 최고의 풍운아다. 그러나 그가 주도한 봉기마다 모두 실패로 끝이 나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동지들이 처형되어 ‘영원한 혁명가’이면서 동시에 ‘실패한 혁명가’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그는 오늘날 ‘중국 혁명의 아버지’로 불리며 중국은 물론이고 대만에서도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중국공산당에서는 제1차 국공합작을 성립시킨 주인공으로, 대만의 국민당...

안창호 흥사단 설립

창립 취지는 “국민의 인격 혁명을 통해 세계 최고의 일등 국민이 되자” 안창호(1878~1938)는 잃어버린 국권을 회복해 자주독립국가를 세우는 일에 평생을 바친 민족지도자이자 독립운동가였다. 특히 각종 협회나 단체를 국내외에 다수 설립한 조직의 달인이었으며 연설의 귀재였다. 평남 강서군에서 태어나 한학을 공부하던 안창호가 안일한 삶을 반성하고 나라와 겨레를 위해 일생을 바치겠다고 결의한 것은 1894년 온 나라를 혼란에 빠뜨린 동학혁명과 청일전쟁을 겪고 나서였다. 안창호는...

안중근 의사, 이토 히로부미 처단

그 날의 총성은 이토를 향한 안중근의 엄중한 경고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 중국의 하얼빈역 하늘에 6발의 총성이 울려퍼졌다. 첫 3발은 일본 초대 내각총리와 초대 조선통감을 지낸 이토 히로부미의 가슴과 옆구리, 배에 명중했고 다른 3발은 이토를 수행하던 3명의 일본인을 쓰러뜨렸다. 이토는 30분 후 죽고 다른 3명은 중경상을 당했다. 그날의 총성은 이토를 향한 안중근(1879~1910)의 엄중한 경고였다. 안중근은 적의 심장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 뒤 러시아...

‘신흥강습소’, 중국 길림성에 설립… 군사교육 포함한 교육기관으로 출범했다가 ‘신흥무관학교’로 개명한 뒤부터는 독립군 양성 전문 교육기관으로 변신

‘신흥강습소’, 중국 길림성에 설립… 군사교육 포함한 교육기관으로 출범했다가 ‘신흥무관학교’로 개명한 뒤부터는 독립군 양성 전문 교육기관으로 변신

↑ 1947년 10월 19일 신흥무관학교 졸업생들이 신흥학우단의 복원 모임을 한 뒤 성재 이시영(앞줄 가운데 흰옷 입은 이)을 모시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출처 우당기념관)   근대 교육과 군사교육 실시하는 교육기관 신민회는 애국 계몽운동을 전개했던 비밀결사였다. 1907년 4월 창립되었다. 양기탁이 총감독, 이동녕이 총서기, 전덕기가 재무, 안창호가 집행을 맡았다. 국권 회복을 위한 실력 양성과 민족산업 진흥 그리고 계몽 강연을 펼쳤다. 그러나 일제의 조선...

최남선 ‘신문관’ 설립과 ‘소년’지 창간

근대 잡지를 펴낸 출판인이자 신문화의 선구자 최남선(1890~1957)은 다양한 근대 잡지를 펴내고 우리의 고전을 단행본으로 발간한 출판인이자 신문화의 선구자였다. 단군을 우리 역사에서 제외하려 한 일본의 관제 학자들에 맞서 싸운 사학자이자 논객이었다. 무엇보다 3·1독립선언문을 기초해 2년 8개월간 옥고를 치른 독립운동가였으나 일제 말기에 친일 활동을 벌여 그를 아끼고 사랑한 동료 지식인들을 안타깝게 했다. 최남선이 일찌감치 개화 문명을 접하고 문화 활동을 활발하게 펼칠 수...

헤이그 밀사 파견과 이준 열사 분사

고종, 헤이그 평화회의를 일본의 국권 침탈 공론화할 수 있는 기회로 생각 1905년 러일전쟁이 끝나고 을사조약 체결이 가시화하자 고종은 미국과 러시아를 향해 대한제국 문제에 개입해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미국은 일본과 가쓰라·태프트 밀약(1905.7)으로 조선을 일본에 넘겨주는 데 동의하고 러시아는 러일전쟁 패전 후 체결한 포츠머스 조약(1905.9)에서 한국에 대한 일본의 우월권을 승인하는 것으로 고종의 요청을 뿌리쳤다. 결국 을사조약은 1905년 11월 17일...

독일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 피살 100주년

독일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 피살 100주년

↑ 로자 룩셈부르크   by 김지지   “마르크스 이후 가장 뛰어난 두뇌”, “강철 같은 여성 혁명 투사”, “피에 굶주린 로자” 등등…. 로자 룩셈부르크(1871~1919)를 가리키는 수식어는 이렇듯 강렬하고 섬뜩하다. 로자는 제정 러시아의 폭정 아래서 신음하는 폴란드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가정은 부유했으나 어릴 적 앓은 골반관절염으로 다리를 절고 키가 작았다. 로자는 고교 졸업 후 폴란드사회당이 창당할 때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결국 경찰의 체포령을...

1882년 : 로베르트 코흐, 결핵균 병원체 발견

1882년 : 로베르트 코흐, 결핵균 병원체 발견

19세기 세균학의 토대를 닦은 ‘세균학의 개조’ 로베르트 코흐(1843~1910)는 프랑스의 미생물학자 루이 파스퇴르와 함께 19세기 세균학의 토대를 닦은 ‘세균학의 개조’다. 세균학은 17세기 후반 네덜란드의 안톤 판 레이우엔훅이 현미경으로 처음 미생물을 관찰한 이래 19세기 말 전성기를 맞았다. 탄저균(1876), 임질균(1879), 장티푸스균(1880), 나병균(1880), 결핵균(1882), 콜레라균(1883), 디프테리아균·파상풍균(1884), 페스트균(1894),...

1896년 : 두산그룹의 모체 ‘박승직 상점’ 개점

박승직이 광장시장을 이끈 공로는 한국 경영경제사에 길이 남을 일 박승직(1864~1950)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기업 중 가장 오래된 두산그룹을 창업하고 서울 종로와 청계천로 사이에 위치한 광장시장의 오늘을 있게 한 우리나라 시장경제의 개척자다. 그가 조선 8도 장터를 누비는 보부상으로 모은 돈을 종잣돈 삼아 종로 4가 배오개시장에 ‘박승직 상점’을 연 것은 32살 때인 1896년 8월 1일이었다. 당시 배오개시장은 조선시대 전통적 서민 시장으로, 동대문으로 들어오는 여러...

박용만의 국민군단 창설과 이승만과의 갈등

박용만, 군사력을 양성해 무력으로 독립 쟁취해야 한다고 주장 공식적으로 기록된 한인의 하와이 정착은 1903년 1월 13일 93명의 한국인 이민자가 하와이 호놀룰루에 도착하면서 시작된다. 한인 이민은 1905년 11월 을사조약이 체결될 때까지 계속되어 그 수가 6,700여 명에 달했다. 이들 이민 1세대는 사탕수수 재배나 관개 사업 등 힘든 일을 하면서도 지역별·종교별 친목단체를 만들어 풍전등화에 놓인 조국의 현실을 걱정했다. 여러 개로 난립하던 단체들은 1907년 9월...

손문 중화민국 임시대총통 취임

‘영원한 혁명가’이자 ‘실패한 혁명가’ 손문(1866~1925)은 평생을 봉기와 실패 그리고 망명으로 점철된 삶을 산 근현대 중국 최고의 풍운아다. 그러나 그가 주도한 봉기마다 모두 실패로 끝이 나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동지들이 처형되어 ‘영원한 혁명가’이면서 동시에 ‘실패한 혁명가’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그는 오늘날 ‘중국 혁명의 아버지’로 불리며 중국은 물론이고 대만에서도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중국공산당에서는 제1차 국공합작을 성립시킨 주인공으로, 대만의 국민당...

안창호 흥사단 설립

창립 취지는 “국민의 인격 혁명을 통해 세계 최고의 일등 국민이 되자” 안창호(1878~1938)는 잃어버린 국권을 회복해 자주독립국가를 세우는 일에 평생을 바친 민족지도자이자 독립운동가였다. 특히 각종 협회나 단체를 국내외에 다수 설립한 조직의 달인이었으며 연설의 귀재였다. 평남 강서군에서 태어나 한학을 공부하던 안창호가 안일한 삶을 반성하고 나라와 겨레를 위해 일생을 바치겠다고 결의한 것은 1894년 온 나라를 혼란에 빠뜨린 동학혁명과 청일전쟁을 겪고 나서였다. 안창호는...

안중근 의사, 이토 히로부미 처단

그 날의 총성은 이토를 향한 안중근의 엄중한 경고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 중국의 하얼빈역 하늘에 6발의 총성이 울려퍼졌다. 첫 3발은 일본 초대 내각총리와 초대 조선통감을 지낸 이토 히로부미의 가슴과 옆구리, 배에 명중했고 다른 3발은 이토를 수행하던 3명의 일본인을 쓰러뜨렸다. 이토는 30분 후 죽고 다른 3명은 중경상을 당했다. 그날의 총성은 이토를 향한 안중근(1879~1910)의 엄중한 경고였다. 안중근은 적의 심장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 뒤 러시아...

‘신흥강습소’, 중국 길림성에 설립… 군사교육 포함한 교육기관으로 출범했다가 ‘신흥무관학교’로 개명한 뒤부터는 독립군 양성 전문 교육기관으로 변신

‘신흥강습소’, 중국 길림성에 설립… 군사교육 포함한 교육기관으로 출범했다가 ‘신흥무관학교’로 개명한 뒤부터는 독립군 양성 전문 교육기관으로 변신

↑ 1947년 10월 19일 신흥무관학교 졸업생들이 신흥학우단의 복원 모임을 한 뒤 성재 이시영(앞줄 가운데 흰옷 입은 이)을 모시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출처 우당기념관)   근대 교육과 군사교육 실시하는 교육기관 신민회는 애국 계몽운동을 전개했던 비밀결사였다. 1907년 4월 창립되었다. 양기탁이 총감독, 이동녕이 총서기, 전덕기가 재무, 안창호가 집행을 맡았다. 국권 회복을 위한 실력 양성과 민족산업 진흥 그리고 계몽 강연을 펼쳤다. 그러나 일제의 조선...

최남선 ‘신문관’ 설립과 ‘소년’지 창간

근대 잡지를 펴낸 출판인이자 신문화의 선구자 최남선(1890~1957)은 다양한 근대 잡지를 펴내고 우리의 고전을 단행본으로 발간한 출판인이자 신문화의 선구자였다. 단군을 우리 역사에서 제외하려 한 일본의 관제 학자들에 맞서 싸운 사학자이자 논객이었다. 무엇보다 3·1독립선언문을 기초해 2년 8개월간 옥고를 치른 독립운동가였으나 일제 말기에 친일 활동을 벌여 그를 아끼고 사랑한 동료 지식인들을 안타깝게 했다. 최남선이 일찌감치 개화 문명을 접하고 문화 활동을 활발하게 펼칠 수...

헤이그 밀사 파견과 이준 열사 분사

고종, 헤이그 평화회의를 일본의 국권 침탈 공론화할 수 있는 기회로 생각 1905년 러일전쟁이 끝나고 을사조약 체결이 가시화하자 고종은 미국과 러시아를 향해 대한제국 문제에 개입해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미국은 일본과 가쓰라·태프트 밀약(1905.7)으로 조선을 일본에 넘겨주는 데 동의하고 러시아는 러일전쟁 패전 후 체결한 포츠머스 조약(1905.9)에서 한국에 대한 일본의 우월권을 승인하는 것으로 고종의 요청을 뿌리쳤다. 결국 을사조약은 1905년 11월 17일...

독일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 피살 100주년

독일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 피살 100주년

↑ 로자 룩셈부르크   by 김지지   “마르크스 이후 가장 뛰어난 두뇌”, “강철 같은 여성 혁명 투사”, “피에 굶주린 로자” 등등…. 로자 룩셈부르크(1871~1919)를 가리키는 수식어는 이렇듯 강렬하고 섬뜩하다. 로자는 제정 러시아의 폭정 아래서 신음하는 폴란드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가정은 부유했으나 어릴 적 앓은 골반관절염으로 다리를 절고 키가 작았다. 로자는 고교 졸업 후 폴란드사회당이 창당할 때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결국 경찰의 체포령을...

1882년 : 로베르트 코흐, 결핵균 병원체 발견

1882년 : 로베르트 코흐, 결핵균 병원체 발견

19세기 세균학의 토대를 닦은 ‘세균학의 개조’ 로베르트 코흐(1843~1910)는 프랑스의 미생물학자 루이 파스퇴르와 함께 19세기 세균학의 토대를 닦은 ‘세균학의 개조’다. 세균학은 17세기 후반 네덜란드의 안톤 판 레이우엔훅이 현미경으로 처음 미생물을 관찰한 이래 19세기 말 전성기를 맞았다. 탄저균(1876), 임질균(1879), 장티푸스균(1880), 나병균(1880), 결핵균(1882), 콜레라균(1883), 디프테리아균·파상풍균(1884), 페스트균(1894),...

1896년 : 두산그룹의 모체 ‘박승직 상점’ 개점

박승직이 광장시장을 이끈 공로는 한국 경영경제사에 길이 남을 일 박승직(1864~1950)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기업 중 가장 오래된 두산그룹을 창업하고 서울 종로와 청계천로 사이에 위치한 광장시장의 오늘을 있게 한 우리나라 시장경제의 개척자다. 그가 조선 8도 장터를 누비는 보부상으로 모은 돈을 종잣돈 삼아 종로 4가 배오개시장에 ‘박승직 상점’을 연 것은 32살 때인 1896년 8월 1일이었다. 당시 배오개시장은 조선시대 전통적 서민 시장으로, 동대문으로 들어오는 여러...

박용만의 국민군단 창설과 이승만과의 갈등

박용만, 군사력을 양성해 무력으로 독립 쟁취해야 한다고 주장 공식적으로 기록된 한인의 하와이 정착은 1903년 1월 13일 93명의 한국인 이민자가 하와이 호놀룰루에 도착하면서 시작된다. 한인 이민은 1905년 11월 을사조약이 체결될 때까지 계속되어 그 수가 6,700여 명에 달했다. 이들 이민 1세대는 사탕수수 재배나 관개 사업 등 힘든 일을 하면서도 지역별·종교별 친목단체를 만들어 풍전등화에 놓인 조국의 현실을 걱정했다. 여러 개로 난립하던 단체들은 1907년 9월...

손문 중화민국 임시대총통 취임

‘영원한 혁명가’이자 ‘실패한 혁명가’ 손문(1866~1925)은 평생을 봉기와 실패 그리고 망명으로 점철된 삶을 산 근현대 중국 최고의 풍운아다. 그러나 그가 주도한 봉기마다 모두 실패로 끝이 나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동지들이 처형되어 ‘영원한 혁명가’이면서 동시에 ‘실패한 혁명가’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그는 오늘날 ‘중국 혁명의 아버지’로 불리며 중국은 물론이고 대만에서도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중국공산당에서는 제1차 국공합작을 성립시킨 주인공으로, 대만의 국민당...

안창호 흥사단 설립

창립 취지는 “국민의 인격 혁명을 통해 세계 최고의 일등 국민이 되자” 안창호(1878~1938)는 잃어버린 국권을 회복해 자주독립국가를 세우는 일에 평생을 바친 민족지도자이자 독립운동가였다. 특히 각종 협회나 단체를 국내외에 다수 설립한 조직의 달인이었으며 연설의 귀재였다. 평남 강서군에서 태어나 한학을 공부하던 안창호가 안일한 삶을 반성하고 나라와 겨레를 위해 일생을 바치겠다고 결의한 것은 1894년 온 나라를 혼란에 빠뜨린 동학혁명과 청일전쟁을 겪고 나서였다. 안창호는...

안중근 의사, 이토 히로부미 처단

그 날의 총성은 이토를 향한 안중근의 엄중한 경고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 중국의 하얼빈역 하늘에 6발의 총성이 울려퍼졌다. 첫 3발은 일본 초대 내각총리와 초대 조선통감을 지낸 이토 히로부미의 가슴과 옆구리, 배에 명중했고 다른 3발은 이토를 수행하던 3명의 일본인을 쓰러뜨렸다. 이토는 30분 후 죽고 다른 3명은 중경상을 당했다. 그날의 총성은 이토를 향한 안중근(1879~1910)의 엄중한 경고였다. 안중근은 적의 심장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 뒤 러시아...

‘신흥강습소’, 중국 길림성에 설립… 군사교육 포함한 교육기관으로 출범했다가 ‘신흥무관학교’로 개명한 뒤부터는 독립군 양성 전문 교육기관으로 변신

‘신흥강습소’, 중국 길림성에 설립… 군사교육 포함한 교육기관으로 출범했다가 ‘신흥무관학교’로 개명한 뒤부터는 독립군 양성 전문 교육기관으로 변신

↑ 1947년 10월 19일 신흥무관학교 졸업생들이 신흥학우단의 복원 모임을 한 뒤 성재 이시영(앞줄 가운데 흰옷 입은 이)을 모시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출처 우당기념관)   근대 교육과 군사교육 실시하는 교육기관 신민회는 애국 계몽운동을 전개했던 비밀결사였다. 1907년 4월 창립되었다. 양기탁이 총감독, 이동녕이 총서기, 전덕기가 재무, 안창호가 집행을 맡았다. 국권 회복을 위한 실력 양성과 민족산업 진흥 그리고 계몽 강연을 펼쳤다. 그러나 일제의 조선...

최남선 ‘신문관’ 설립과 ‘소년’지 창간

근대 잡지를 펴낸 출판인이자 신문화의 선구자 최남선(1890~1957)은 다양한 근대 잡지를 펴내고 우리의 고전을 단행본으로 발간한 출판인이자 신문화의 선구자였다. 단군을 우리 역사에서 제외하려 한 일본의 관제 학자들에 맞서 싸운 사학자이자 논객이었다. 무엇보다 3·1독립선언문을 기초해 2년 8개월간 옥고를 치른 독립운동가였으나 일제 말기에 친일 활동을 벌여 그를 아끼고 사랑한 동료 지식인들을 안타깝게 했다. 최남선이 일찌감치 개화 문명을 접하고 문화 활동을 활발하게 펼칠 수...

헤이그 밀사 파견과 이준 열사 분사

고종, 헤이그 평화회의를 일본의 국권 침탈 공론화할 수 있는 기회로 생각 1905년 러일전쟁이 끝나고 을사조약 체결이 가시화하자 고종은 미국과 러시아를 향해 대한제국 문제에 개입해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미국은 일본과 가쓰라·태프트 밀약(1905.7)으로 조선을 일본에 넘겨주는 데 동의하고 러시아는 러일전쟁 패전 후 체결한 포츠머스 조약(1905.9)에서 한국에 대한 일본의 우월권을 승인하는 것으로 고종의 요청을 뿌리쳤다. 결국 을사조약은 1905년 11월 17일...

독일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 피살 100주년

독일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 피살 100주년

↑ 로자 룩셈부르크   by 김지지   “마르크스 이후 가장 뛰어난 두뇌”, “강철 같은 여성 혁명 투사”, “피에 굶주린 로자” 등등…. 로자 룩셈부르크(1871~1919)를 가리키는 수식어는 이렇듯 강렬하고 섬뜩하다. 로자는 제정 러시아의 폭정 아래서 신음하는 폴란드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가정은 부유했으나 어릴 적 앓은 골반관절염으로 다리를 절고 키가 작았다. 로자는 고교 졸업 후 폴란드사회당이 창당할 때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결국 경찰의 체포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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