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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 ‘긴 칼의 밤’으로 에른스트 룀 제거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 있을 수 없다”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은 있을 수 없다. 그것은 나치의 독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돌프 히틀러(1889~1945)와 에른스트 룀(1887~1934)은 초기 나치당의 두 주역이었다. 두 사람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등 비슷한 점도 많았지만 출신 등에서는 달랐다. 히틀러는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나 힘들게 성장한 반면 룀은 뮌헨의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부유하게 성장했다. 룀은 1906년 19살의 나이로 독일군에 입대하고 1차대전 때는...

이애리수 ‘황성의 적’ 음반 발매

‘황성 옛터’ 한 곡으로 일약 스타 가수 돼 1927년 여름, 작곡가 전수린이 경기도 개성으로 떠나는 순회공연단을 따라나섰다. 전수린은 훗날 ‘알뜰한 당신’, ‘나는 열일곱 살이에요’ 등의 히트곡을 비롯한 1,000여 곡을 작곡해 인기 작곡가로 부상하지만 당시만 해도 아직 20살에 불과한 미완의 작곡가였다. 전수린이 고려의 옛 도읍지인 송도의 만월대를 둘러보는데 잡초가 무성하고 폐허가 된 궁궐의 잔해가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망국의 비애와 떠돌이 악극단원으로서의 서글픔이...

한글맞춤법 통일안 발표

표준어 원칙의 기본 뼈대는 중류사회에서 쓰는 서울말 주시경이 작고(1914)한 뒤에도 주시경의 후학들은 ‘조선언문회’를 중심으로 한글 연구와 보급을 계속했다. 주시경이 살아 있을 때만큼 활발하지는 않았으나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각자의 역할에 충실했다. 국내에서는 1921년 12월 ‘조선어연구회’를 발족시켜 한글날인 ‘가갸날’을 제정(1926.11)하고 동인지 형식의 ‘한글'(1927.2)을 발행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해외에서는 김두봉이 1919년 망명한 상해에서...

2019년은 김동인 순수 문예지 ‘창조’ 창간 100주년

2019년은 김동인 순수 문예지 ‘창조’ 창간 100주년

by 김지지   김동인 덕분에 한국 문학이 한 단계 발전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 김동인(1900~1951)이 스스로 밝힌 바에 따르면 그가 한국 문학사에 끼친 공로는 ▲‘더라’, ‘이라’ 등 구투(舊套)의 탈피 ▲현재법 서사체에서 과거체 서사체로의 변혁 ▲‘he’, ‘she’에 해당하는 3인칭 대명사 ‘그’의 사용 ▲사투리의 사용 등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사투리의 사용’을 제외한 세 가지는 이광수가 먼저 시작한 것이다. 그렇더라도 문장의 시간 관념을 또렷이...

[설악산 국립공원] 꼬박 20시간 걸린 설악산 공룡능선 첫 등정… 무릎은 힘들다는데 눈과 마음은 행복하다 하네

[설악산 국립공원] 꼬박 20시간 걸린 설악산 공룡능선 첫 등정… 무릎은 힘들다는데 눈과 마음은 행복하다 하네

↑ 공룡능선에서 바라본 봉우리들. 멀리 보이는 봉우리가 대청-중청이다.   ☞ 설악산 코스 전체가 궁금하면 클릭!!   by 김정일 아뿔싸! 초반부터 길을 잘못들어 금강암으로 올라가다니 경기도 수지 동천역에서 50대 중반의 여동생을 만나 둘이서 설악산을 향해 출발한 것은 2018년 10월 7일 밤 12시였다. 그런데 설악산이 이렇게 가까운 줄 몰랐다. 과거 젊은 시절에는 서울에서 설악산 설악동으로 가려면 강릉, 양양, 속초 시내를 거쳐 자가용으로 최소...

3․1운동 발발

1919년 3월 1일 오후2시, 파고다공원으로 수천명의 학생․시민들이 모여들었다. 민족대표 33인이 이곳에서 독립선언식을 거행한다기에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 시각 민족대표들은 인근의 태화관에 있었다. 전날밤, 폭동의 우려가 있다며 장소를 파고다공원에서 태화관으로 급히 변경했기 때문이다. 민족대표들은 한용운의 인사가 끝나자 함께 만세삼창을 외치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그리고 곧 일경에 체포되었다. 독립선언서에는 손병희를 포함한 천도교계 16명, 이승훈을 포함한...

북한 천리마운동 본격 시작

1958년 3월 3일부터 4일 간 열린 북한 제1차 노동당 대표자회의는 ‘반(反)종파사건’을 마무리하고 제1차 인민경제5개년계획(1957∼1961)을 중간 점검하는 자리였다. 천리마운동 의 본격적인 시작도 이때 결정되었다. ‘반종파사건’이란 1953년∼1955년까지 중공업 우선투자 노선을 둘러싸고 불거졌던 당내 갈등이 1956년 8월에 폭발한 북한 내 권력싸움이다. 연안파․소련파 등 반대파들은 이때 반당 종파분자로 몰려 대부분 숙청당했다. 비판세력을 일소하고 김일성 중심의...

콩코드기 첫 시험비행 성공

1969년 3월 2일, 영국과 프랑스가 공동개발한 콩코드기가 시험비행에 성공함으로써 세계 민간 항공사에 새로운 기념비가 세워졌다. 이날 콩코드기는 프랑스 툴루즈에서 이륙한 뒤 29분 간 프랑스 상공을 날다 안착함으로써 민간 여객기의 초음속 비행시대를 열었다. 시험비행 7개월만인 10월 1일 여객기로는 세계최초로 음속비행에 성공하고, 1970년 11월 4일에는 마하 2를 넘어서는 시속 2155km의 광속으로 53분간 순항하는 기록을 세웠다. 프랑스어로 ‘화합’을 뜻하는...

일본의 괴뢰국가 만주국 건국

1932년 3월 1일, 건국이념을 ‘오족협화’, ‘왕도낙토’ 등의 미사여구로 포장한 국가 아닌 국가가 중국 동북 지방에 출현했다. 1931년 9월 만주사변을 일으켜 만주를 점령한 일본이 청조의 마지막 황제 부의를 국가원수격인 집정으로 내세워 수립한 만주국이었다. 오전 9시, “죽음에 직면해 있는 만․몽(滿․蒙) 3000만 명의 민중이 일본군의 힘을 빌어 장학량 등을 구축하자“는 건국선언이 봉천(지금의 심양)에서 발표되었고, 3월 9일에는 부의가 참석한 집정 취임식이 수도인...

이토 히로부미, 초대 조선통감 부임

을사조약에 명시된 대로 공사관이 폐지되고 통감부가 설치된 것은 1906년 2월 1일이다. 임부는 합병을 순조롭게 진행시키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었다. 임시 통감 하세가와 요시미치에 이어 3월 2일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초대 통감으로 부임함으로써 일제의 ‘통감(統監)정치’가 본격 가동되었다. 이토는 ‘고문(顧問)정치’와 ‘차관(次官)정치’라는 이름으로 외교에서부터 내정의 사소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사사건건 간섭하며 합병 수순을 차근차근 밟아나갔다. 1907년 7월 19일에는...

히틀러, ‘긴 칼의 밤’으로 에른스트 룀 제거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 있을 수 없다”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은 있을 수 없다. 그것은 나치의 독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돌프 히틀러(1889~1945)와 에른스트 룀(1887~1934)은 초기 나치당의 두 주역이었다. 두 사람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등 비슷한 점도 많았지만 출신 등에서는 달랐다. 히틀러는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나 힘들게 성장한 반면 룀은 뮌헨의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부유하게 성장했다. 룀은 1906년 19살의 나이로 독일군에 입대하고 1차대전 때는...

이애리수 ‘황성의 적’ 음반 발매

‘황성 옛터’ 한 곡으로 일약 스타 가수 돼 1927년 여름, 작곡가 전수린이 경기도 개성으로 떠나는 순회공연단을 따라나섰다. 전수린은 훗날 ‘알뜰한 당신’, ‘나는 열일곱 살이에요’ 등의 히트곡을 비롯한 1,000여 곡을 작곡해 인기 작곡가로 부상하지만 당시만 해도 아직 20살에 불과한 미완의 작곡가였다. 전수린이 고려의 옛 도읍지인 송도의 만월대를 둘러보는데 잡초가 무성하고 폐허가 된 궁궐의 잔해가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망국의 비애와 떠돌이 악극단원으로서의 서글픔이...

한글맞춤법 통일안 발표

표준어 원칙의 기본 뼈대는 중류사회에서 쓰는 서울말 주시경이 작고(1914)한 뒤에도 주시경의 후학들은 ‘조선언문회’를 중심으로 한글 연구와 보급을 계속했다. 주시경이 살아 있을 때만큼 활발하지는 않았으나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각자의 역할에 충실했다. 국내에서는 1921년 12월 ‘조선어연구회’를 발족시켜 한글날인 ‘가갸날’을 제정(1926.11)하고 동인지 형식의 ‘한글'(1927.2)을 발행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해외에서는 김두봉이 1919년 망명한 상해에서...

2019년은 김동인 순수 문예지 ‘창조’ 창간 100주년

2019년은 김동인 순수 문예지 ‘창조’ 창간 100주년

by 김지지   김동인 덕분에 한국 문학이 한 단계 발전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 김동인(1900~1951)이 스스로 밝힌 바에 따르면 그가 한국 문학사에 끼친 공로는 ▲‘더라’, ‘이라’ 등 구투(舊套)의 탈피 ▲현재법 서사체에서 과거체 서사체로의 변혁 ▲‘he’, ‘she’에 해당하는 3인칭 대명사 ‘그’의 사용 ▲사투리의 사용 등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사투리의 사용’을 제외한 세 가지는 이광수가 먼저 시작한 것이다. 그렇더라도 문장의 시간 관념을 또렷이...

[설악산 국립공원] 꼬박 20시간 걸린 설악산 공룡능선 첫 등정… 무릎은 힘들다는데 눈과 마음은 행복하다 하네

[설악산 국립공원] 꼬박 20시간 걸린 설악산 공룡능선 첫 등정… 무릎은 힘들다는데 눈과 마음은 행복하다 하네

↑ 공룡능선에서 바라본 봉우리들. 멀리 보이는 봉우리가 대청-중청이다.   ☞ 설악산 코스 전체가 궁금하면 클릭!!   by 김정일 아뿔싸! 초반부터 길을 잘못들어 금강암으로 올라가다니 경기도 수지 동천역에서 50대 중반의 여동생을 만나 둘이서 설악산을 향해 출발한 것은 2018년 10월 7일 밤 12시였다. 그런데 설악산이 이렇게 가까운 줄 몰랐다. 과거 젊은 시절에는 서울에서 설악산 설악동으로 가려면 강릉, 양양, 속초 시내를 거쳐 자가용으로 최소...

3․1운동 발발

1919년 3월 1일 오후2시, 파고다공원으로 수천명의 학생․시민들이 모여들었다. 민족대표 33인이 이곳에서 독립선언식을 거행한다기에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 시각 민족대표들은 인근의 태화관에 있었다. 전날밤, 폭동의 우려가 있다며 장소를 파고다공원에서 태화관으로 급히 변경했기 때문이다. 민족대표들은 한용운의 인사가 끝나자 함께 만세삼창을 외치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그리고 곧 일경에 체포되었다. 독립선언서에는 손병희를 포함한 천도교계 16명, 이승훈을 포함한...

북한 천리마운동 본격 시작

1958년 3월 3일부터 4일 간 열린 북한 제1차 노동당 대표자회의는 ‘반(反)종파사건’을 마무리하고 제1차 인민경제5개년계획(1957∼1961)을 중간 점검하는 자리였다. 천리마운동 의 본격적인 시작도 이때 결정되었다. ‘반종파사건’이란 1953년∼1955년까지 중공업 우선투자 노선을 둘러싸고 불거졌던 당내 갈등이 1956년 8월에 폭발한 북한 내 권력싸움이다. 연안파․소련파 등 반대파들은 이때 반당 종파분자로 몰려 대부분 숙청당했다. 비판세력을 일소하고 김일성 중심의...

콩코드기 첫 시험비행 성공

1969년 3월 2일, 영국과 프랑스가 공동개발한 콩코드기가 시험비행에 성공함으로써 세계 민간 항공사에 새로운 기념비가 세워졌다. 이날 콩코드기는 프랑스 툴루즈에서 이륙한 뒤 29분 간 프랑스 상공을 날다 안착함으로써 민간 여객기의 초음속 비행시대를 열었다. 시험비행 7개월만인 10월 1일 여객기로는 세계최초로 음속비행에 성공하고, 1970년 11월 4일에는 마하 2를 넘어서는 시속 2155km의 광속으로 53분간 순항하는 기록을 세웠다. 프랑스어로 ‘화합’을 뜻하는...

일본의 괴뢰국가 만주국 건국

1932년 3월 1일, 건국이념을 ‘오족협화’, ‘왕도낙토’ 등의 미사여구로 포장한 국가 아닌 국가가 중국 동북 지방에 출현했다. 1931년 9월 만주사변을 일으켜 만주를 점령한 일본이 청조의 마지막 황제 부의를 국가원수격인 집정으로 내세워 수립한 만주국이었다. 오전 9시, “죽음에 직면해 있는 만․몽(滿․蒙) 3000만 명의 민중이 일본군의 힘을 빌어 장학량 등을 구축하자“는 건국선언이 봉천(지금의 심양)에서 발표되었고, 3월 9일에는 부의가 참석한 집정 취임식이 수도인...

이토 히로부미, 초대 조선통감 부임

을사조약에 명시된 대로 공사관이 폐지되고 통감부가 설치된 것은 1906년 2월 1일이다. 임부는 합병을 순조롭게 진행시키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었다. 임시 통감 하세가와 요시미치에 이어 3월 2일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초대 통감으로 부임함으로써 일제의 ‘통감(統監)정치’가 본격 가동되었다. 이토는 ‘고문(顧問)정치’와 ‘차관(次官)정치’라는 이름으로 외교에서부터 내정의 사소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사사건건 간섭하며 합병 수순을 차근차근 밟아나갔다. 1907년 7월 19일에는...

히틀러, ‘긴 칼의 밤’으로 에른스트 룀 제거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 있을 수 없다”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은 있을 수 없다. 그것은 나치의 독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돌프 히틀러(1889~1945)와 에른스트 룀(1887~1934)은 초기 나치당의 두 주역이었다. 두 사람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등 비슷한 점도 많았지만 출신 등에서는 달랐다. 히틀러는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나 힘들게 성장한 반면 룀은 뮌헨의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부유하게 성장했다. 룀은 1906년 19살의 나이로 독일군에 입대하고 1차대전 때는...

이애리수 ‘황성의 적’ 음반 발매

‘황성 옛터’ 한 곡으로 일약 스타 가수 돼 1927년 여름, 작곡가 전수린이 경기도 개성으로 떠나는 순회공연단을 따라나섰다. 전수린은 훗날 ‘알뜰한 당신’, ‘나는 열일곱 살이에요’ 등의 히트곡을 비롯한 1,000여 곡을 작곡해 인기 작곡가로 부상하지만 당시만 해도 아직 20살에 불과한 미완의 작곡가였다. 전수린이 고려의 옛 도읍지인 송도의 만월대를 둘러보는데 잡초가 무성하고 폐허가 된 궁궐의 잔해가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망국의 비애와 떠돌이 악극단원으로서의 서글픔이...

한글맞춤법 통일안 발표

표준어 원칙의 기본 뼈대는 중류사회에서 쓰는 서울말 주시경이 작고(1914)한 뒤에도 주시경의 후학들은 ‘조선언문회’를 중심으로 한글 연구와 보급을 계속했다. 주시경이 살아 있을 때만큼 활발하지는 않았으나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각자의 역할에 충실했다. 국내에서는 1921년 12월 ‘조선어연구회’를 발족시켜 한글날인 ‘가갸날’을 제정(1926.11)하고 동인지 형식의 ‘한글'(1927.2)을 발행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해외에서는 김두봉이 1919년 망명한 상해에서...

2019년은 김동인 순수 문예지 ‘창조’ 창간 100주년

2019년은 김동인 순수 문예지 ‘창조’ 창간 100주년

by 김지지   김동인 덕분에 한국 문학이 한 단계 발전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 김동인(1900~1951)이 스스로 밝힌 바에 따르면 그가 한국 문학사에 끼친 공로는 ▲‘더라’, ‘이라’ 등 구투(舊套)의 탈피 ▲현재법 서사체에서 과거체 서사체로의 변혁 ▲‘he’, ‘she’에 해당하는 3인칭 대명사 ‘그’의 사용 ▲사투리의 사용 등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사투리의 사용’을 제외한 세 가지는 이광수가 먼저 시작한 것이다. 그렇더라도 문장의 시간 관념을 또렷이...

[설악산 국립공원] 꼬박 20시간 걸린 설악산 공룡능선 첫 등정… 무릎은 힘들다는데 눈과 마음은 행복하다 하네

[설악산 국립공원] 꼬박 20시간 걸린 설악산 공룡능선 첫 등정… 무릎은 힘들다는데 눈과 마음은 행복하다 하네

↑ 공룡능선에서 바라본 봉우리들. 멀리 보이는 봉우리가 대청-중청이다.   ☞ 설악산 코스 전체가 궁금하면 클릭!!   by 김정일 아뿔싸! 초반부터 길을 잘못들어 금강암으로 올라가다니 경기도 수지 동천역에서 50대 중반의 여동생을 만나 둘이서 설악산을 향해 출발한 것은 2018년 10월 7일 밤 12시였다. 그런데 설악산이 이렇게 가까운 줄 몰랐다. 과거 젊은 시절에는 서울에서 설악산 설악동으로 가려면 강릉, 양양, 속초 시내를 거쳐 자가용으로 최소...

3․1운동 발발

1919년 3월 1일 오후2시, 파고다공원으로 수천명의 학생․시민들이 모여들었다. 민족대표 33인이 이곳에서 독립선언식을 거행한다기에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 시각 민족대표들은 인근의 태화관에 있었다. 전날밤, 폭동의 우려가 있다며 장소를 파고다공원에서 태화관으로 급히 변경했기 때문이다. 민족대표들은 한용운의 인사가 끝나자 함께 만세삼창을 외치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그리고 곧 일경에 체포되었다. 독립선언서에는 손병희를 포함한 천도교계 16명, 이승훈을 포함한...

북한 천리마운동 본격 시작

1958년 3월 3일부터 4일 간 열린 북한 제1차 노동당 대표자회의는 ‘반(反)종파사건’을 마무리하고 제1차 인민경제5개년계획(1957∼1961)을 중간 점검하는 자리였다. 천리마운동 의 본격적인 시작도 이때 결정되었다. ‘반종파사건’이란 1953년∼1955년까지 중공업 우선투자 노선을 둘러싸고 불거졌던 당내 갈등이 1956년 8월에 폭발한 북한 내 권력싸움이다. 연안파․소련파 등 반대파들은 이때 반당 종파분자로 몰려 대부분 숙청당했다. 비판세력을 일소하고 김일성 중심의...

콩코드기 첫 시험비행 성공

1969년 3월 2일, 영국과 프랑스가 공동개발한 콩코드기가 시험비행에 성공함으로써 세계 민간 항공사에 새로운 기념비가 세워졌다. 이날 콩코드기는 프랑스 툴루즈에서 이륙한 뒤 29분 간 프랑스 상공을 날다 안착함으로써 민간 여객기의 초음속 비행시대를 열었다. 시험비행 7개월만인 10월 1일 여객기로는 세계최초로 음속비행에 성공하고, 1970년 11월 4일에는 마하 2를 넘어서는 시속 2155km의 광속으로 53분간 순항하는 기록을 세웠다. 프랑스어로 ‘화합’을 뜻하는...

일본의 괴뢰국가 만주국 건국

1932년 3월 1일, 건국이념을 ‘오족협화’, ‘왕도낙토’ 등의 미사여구로 포장한 국가 아닌 국가가 중국 동북 지방에 출현했다. 1931년 9월 만주사변을 일으켜 만주를 점령한 일본이 청조의 마지막 황제 부의를 국가원수격인 집정으로 내세워 수립한 만주국이었다. 오전 9시, “죽음에 직면해 있는 만․몽(滿․蒙) 3000만 명의 민중이 일본군의 힘을 빌어 장학량 등을 구축하자“는 건국선언이 봉천(지금의 심양)에서 발표되었고, 3월 9일에는 부의가 참석한 집정 취임식이 수도인...

이토 히로부미, 초대 조선통감 부임

을사조약에 명시된 대로 공사관이 폐지되고 통감부가 설치된 것은 1906년 2월 1일이다. 임부는 합병을 순조롭게 진행시키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었다. 임시 통감 하세가와 요시미치에 이어 3월 2일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초대 통감으로 부임함으로써 일제의 ‘통감(統監)정치’가 본격 가동되었다. 이토는 ‘고문(顧問)정치’와 ‘차관(次官)정치’라는 이름으로 외교에서부터 내정의 사소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사사건건 간섭하며 합병 수순을 차근차근 밟아나갔다. 1907년 7월 19일에는...

히틀러, ‘긴 칼의 밤’으로 에른스트 룀 제거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 있을 수 없다”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은 있을 수 없다. 그것은 나치의 독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돌프 히틀러(1889~1945)와 에른스트 룀(1887~1934)은 초기 나치당의 두 주역이었다. 두 사람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등 비슷한 점도 많았지만 출신 등에서는 달랐다. 히틀러는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나 힘들게 성장한 반면 룀은 뮌헨의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부유하게 성장했다. 룀은 1906년 19살의 나이로 독일군에 입대하고 1차대전 때는...

이애리수 ‘황성의 적’ 음반 발매

‘황성 옛터’ 한 곡으로 일약 스타 가수 돼 1927년 여름, 작곡가 전수린이 경기도 개성으로 떠나는 순회공연단을 따라나섰다. 전수린은 훗날 ‘알뜰한 당신’, ‘나는 열일곱 살이에요’ 등의 히트곡을 비롯한 1,000여 곡을 작곡해 인기 작곡가로 부상하지만 당시만 해도 아직 20살에 불과한 미완의 작곡가였다. 전수린이 고려의 옛 도읍지인 송도의 만월대를 둘러보는데 잡초가 무성하고 폐허가 된 궁궐의 잔해가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망국의 비애와 떠돌이 악극단원으로서의 서글픔이...

한글맞춤법 통일안 발표

표준어 원칙의 기본 뼈대는 중류사회에서 쓰는 서울말 주시경이 작고(1914)한 뒤에도 주시경의 후학들은 ‘조선언문회’를 중심으로 한글 연구와 보급을 계속했다. 주시경이 살아 있을 때만큼 활발하지는 않았으나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각자의 역할에 충실했다. 국내에서는 1921년 12월 ‘조선어연구회’를 발족시켜 한글날인 ‘가갸날’을 제정(1926.11)하고 동인지 형식의 ‘한글'(1927.2)을 발행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해외에서는 김두봉이 1919년 망명한 상해에서...

2019년은 김동인 순수 문예지 ‘창조’ 창간 100주년

2019년은 김동인 순수 문예지 ‘창조’ 창간 100주년

by 김지지   김동인 덕분에 한국 문학이 한 단계 발전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 김동인(1900~1951)이 스스로 밝힌 바에 따르면 그가 한국 문학사에 끼친 공로는 ▲‘더라’, ‘이라’ 등 구투(舊套)의 탈피 ▲현재법 서사체에서 과거체 서사체로의 변혁 ▲‘he’, ‘she’에 해당하는 3인칭 대명사 ‘그’의 사용 ▲사투리의 사용 등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사투리의 사용’을 제외한 세 가지는 이광수가 먼저 시작한 것이다. 그렇더라도 문장의 시간 관념을 또렷이...

[설악산 국립공원] 꼬박 20시간 걸린 설악산 공룡능선 첫 등정… 무릎은 힘들다는데 눈과 마음은 행복하다 하네

[설악산 국립공원] 꼬박 20시간 걸린 설악산 공룡능선 첫 등정… 무릎은 힘들다는데 눈과 마음은 행복하다 하네

↑ 공룡능선에서 바라본 봉우리들. 멀리 보이는 봉우리가 대청-중청이다.   ☞ 설악산 코스 전체가 궁금하면 클릭!!   by 김정일 아뿔싸! 초반부터 길을 잘못들어 금강암으로 올라가다니 경기도 수지 동천역에서 50대 중반의 여동생을 만나 둘이서 설악산을 향해 출발한 것은 2018년 10월 7일 밤 12시였다. 그런데 설악산이 이렇게 가까운 줄 몰랐다. 과거 젊은 시절에는 서울에서 설악산 설악동으로 가려면 강릉, 양양, 속초 시내를 거쳐 자가용으로 최소...

3․1운동 발발

1919년 3월 1일 오후2시, 파고다공원으로 수천명의 학생․시민들이 모여들었다. 민족대표 33인이 이곳에서 독립선언식을 거행한다기에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 시각 민족대표들은 인근의 태화관에 있었다. 전날밤, 폭동의 우려가 있다며 장소를 파고다공원에서 태화관으로 급히 변경했기 때문이다. 민족대표들은 한용운의 인사가 끝나자 함께 만세삼창을 외치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그리고 곧 일경에 체포되었다. 독립선언서에는 손병희를 포함한 천도교계 16명, 이승훈을 포함한...

북한 천리마운동 본격 시작

1958년 3월 3일부터 4일 간 열린 북한 제1차 노동당 대표자회의는 ‘반(反)종파사건’을 마무리하고 제1차 인민경제5개년계획(1957∼1961)을 중간 점검하는 자리였다. 천리마운동 의 본격적인 시작도 이때 결정되었다. ‘반종파사건’이란 1953년∼1955년까지 중공업 우선투자 노선을 둘러싸고 불거졌던 당내 갈등이 1956년 8월에 폭발한 북한 내 권력싸움이다. 연안파․소련파 등 반대파들은 이때 반당 종파분자로 몰려 대부분 숙청당했다. 비판세력을 일소하고 김일성 중심의...

콩코드기 첫 시험비행 성공

1969년 3월 2일, 영국과 프랑스가 공동개발한 콩코드기가 시험비행에 성공함으로써 세계 민간 항공사에 새로운 기념비가 세워졌다. 이날 콩코드기는 프랑스 툴루즈에서 이륙한 뒤 29분 간 프랑스 상공을 날다 안착함으로써 민간 여객기의 초음속 비행시대를 열었다. 시험비행 7개월만인 10월 1일 여객기로는 세계최초로 음속비행에 성공하고, 1970년 11월 4일에는 마하 2를 넘어서는 시속 2155km의 광속으로 53분간 순항하는 기록을 세웠다. 프랑스어로 ‘화합’을 뜻하는...

일본의 괴뢰국가 만주국 건국

1932년 3월 1일, 건국이념을 ‘오족협화’, ‘왕도낙토’ 등의 미사여구로 포장한 국가 아닌 국가가 중국 동북 지방에 출현했다. 1931년 9월 만주사변을 일으켜 만주를 점령한 일본이 청조의 마지막 황제 부의를 국가원수격인 집정으로 내세워 수립한 만주국이었다. 오전 9시, “죽음에 직면해 있는 만․몽(滿․蒙) 3000만 명의 민중이 일본군의 힘을 빌어 장학량 등을 구축하자“는 건국선언이 봉천(지금의 심양)에서 발표되었고, 3월 9일에는 부의가 참석한 집정 취임식이 수도인...

이토 히로부미, 초대 조선통감 부임

을사조약에 명시된 대로 공사관이 폐지되고 통감부가 설치된 것은 1906년 2월 1일이다. 임부는 합병을 순조롭게 진행시키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었다. 임시 통감 하세가와 요시미치에 이어 3월 2일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초대 통감으로 부임함으로써 일제의 ‘통감(統監)정치’가 본격 가동되었다. 이토는 ‘고문(顧問)정치’와 ‘차관(次官)정치’라는 이름으로 외교에서부터 내정의 사소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사사건건 간섭하며 합병 수순을 차근차근 밟아나갔다. 1907년 7월 19일에는...

히틀러, ‘긴 칼의 밤’으로 에른스트 룀 제거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 있을 수 없다”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은 있을 수 없다. 그것은 나치의 독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돌프 히틀러(1889~1945)와 에른스트 룀(1887~1934)은 초기 나치당의 두 주역이었다. 두 사람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등 비슷한 점도 많았지만 출신 등에서는 달랐다. 히틀러는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나 힘들게 성장한 반면 룀은 뮌헨의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부유하게 성장했다. 룀은 1906년 19살의 나이로 독일군에 입대하고 1차대전 때는...

이애리수 ‘황성의 적’ 음반 발매

‘황성 옛터’ 한 곡으로 일약 스타 가수 돼 1927년 여름, 작곡가 전수린이 경기도 개성으로 떠나는 순회공연단을 따라나섰다. 전수린은 훗날 ‘알뜰한 당신’, ‘나는 열일곱 살이에요’ 등의 히트곡을 비롯한 1,000여 곡을 작곡해 인기 작곡가로 부상하지만 당시만 해도 아직 20살에 불과한 미완의 작곡가였다. 전수린이 고려의 옛 도읍지인 송도의 만월대를 둘러보는데 잡초가 무성하고 폐허가 된 궁궐의 잔해가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망국의 비애와 떠돌이 악극단원으로서의 서글픔이...

한글맞춤법 통일안 발표

표준어 원칙의 기본 뼈대는 중류사회에서 쓰는 서울말 주시경이 작고(1914)한 뒤에도 주시경의 후학들은 ‘조선언문회’를 중심으로 한글 연구와 보급을 계속했다. 주시경이 살아 있을 때만큼 활발하지는 않았으나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각자의 역할에 충실했다. 국내에서는 1921년 12월 ‘조선어연구회’를 발족시켜 한글날인 ‘가갸날’을 제정(1926.11)하고 동인지 형식의 ‘한글'(1927.2)을 발행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해외에서는 김두봉이 1919년 망명한 상해에서...

2019년은 김동인 순수 문예지 ‘창조’ 창간 100주년

2019년은 김동인 순수 문예지 ‘창조’ 창간 100주년

by 김지지   김동인 덕분에 한국 문학이 한 단계 발전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 김동인(1900~1951)이 스스로 밝힌 바에 따르면 그가 한국 문학사에 끼친 공로는 ▲‘더라’, ‘이라’ 등 구투(舊套)의 탈피 ▲현재법 서사체에서 과거체 서사체로의 변혁 ▲‘he’, ‘she’에 해당하는 3인칭 대명사 ‘그’의 사용 ▲사투리의 사용 등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사투리의 사용’을 제외한 세 가지는 이광수가 먼저 시작한 것이다. 그렇더라도 문장의 시간 관념을 또렷이...

[설악산 국립공원] 꼬박 20시간 걸린 설악산 공룡능선 첫 등정… 무릎은 힘들다는데 눈과 마음은 행복하다 하네

[설악산 국립공원] 꼬박 20시간 걸린 설악산 공룡능선 첫 등정… 무릎은 힘들다는데 눈과 마음은 행복하다 하네

↑ 공룡능선에서 바라본 봉우리들. 멀리 보이는 봉우리가 대청-중청이다.   ☞ 설악산 코스 전체가 궁금하면 클릭!!   by 김정일 아뿔싸! 초반부터 길을 잘못들어 금강암으로 올라가다니 경기도 수지 동천역에서 50대 중반의 여동생을 만나 둘이서 설악산을 향해 출발한 것은 2018년 10월 7일 밤 12시였다. 그런데 설악산이 이렇게 가까운 줄 몰랐다. 과거 젊은 시절에는 서울에서 설악산 설악동으로 가려면 강릉, 양양, 속초 시내를 거쳐 자가용으로 최소...

3․1운동 발발

1919년 3월 1일 오후2시, 파고다공원으로 수천명의 학생․시민들이 모여들었다. 민족대표 33인이 이곳에서 독립선언식을 거행한다기에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 시각 민족대표들은 인근의 태화관에 있었다. 전날밤, 폭동의 우려가 있다며 장소를 파고다공원에서 태화관으로 급히 변경했기 때문이다. 민족대표들은 한용운의 인사가 끝나자 함께 만세삼창을 외치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그리고 곧 일경에 체포되었다. 독립선언서에는 손병희를 포함한 천도교계 16명, 이승훈을 포함한...

북한 천리마운동 본격 시작

1958년 3월 3일부터 4일 간 열린 북한 제1차 노동당 대표자회의는 ‘반(反)종파사건’을 마무리하고 제1차 인민경제5개년계획(1957∼1961)을 중간 점검하는 자리였다. 천리마운동 의 본격적인 시작도 이때 결정되었다. ‘반종파사건’이란 1953년∼1955년까지 중공업 우선투자 노선을 둘러싸고 불거졌던 당내 갈등이 1956년 8월에 폭발한 북한 내 권력싸움이다. 연안파․소련파 등 반대파들은 이때 반당 종파분자로 몰려 대부분 숙청당했다. 비판세력을 일소하고 김일성 중심의...

콩코드기 첫 시험비행 성공

1969년 3월 2일, 영국과 프랑스가 공동개발한 콩코드기가 시험비행에 성공함으로써 세계 민간 항공사에 새로운 기념비가 세워졌다. 이날 콩코드기는 프랑스 툴루즈에서 이륙한 뒤 29분 간 프랑스 상공을 날다 안착함으로써 민간 여객기의 초음속 비행시대를 열었다. 시험비행 7개월만인 10월 1일 여객기로는 세계최초로 음속비행에 성공하고, 1970년 11월 4일에는 마하 2를 넘어서는 시속 2155km의 광속으로 53분간 순항하는 기록을 세웠다. 프랑스어로 ‘화합’을 뜻하는...

일본의 괴뢰국가 만주국 건국

1932년 3월 1일, 건국이념을 ‘오족협화’, ‘왕도낙토’ 등의 미사여구로 포장한 국가 아닌 국가가 중국 동북 지방에 출현했다. 1931년 9월 만주사변을 일으켜 만주를 점령한 일본이 청조의 마지막 황제 부의를 국가원수격인 집정으로 내세워 수립한 만주국이었다. 오전 9시, “죽음에 직면해 있는 만․몽(滿․蒙) 3000만 명의 민중이 일본군의 힘을 빌어 장학량 등을 구축하자“는 건국선언이 봉천(지금의 심양)에서 발표되었고, 3월 9일에는 부의가 참석한 집정 취임식이 수도인...

이토 히로부미, 초대 조선통감 부임

을사조약에 명시된 대로 공사관이 폐지되고 통감부가 설치된 것은 1906년 2월 1일이다. 임부는 합병을 순조롭게 진행시키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었다. 임시 통감 하세가와 요시미치에 이어 3월 2일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초대 통감으로 부임함으로써 일제의 ‘통감(統監)정치’가 본격 가동되었다. 이토는 ‘고문(顧問)정치’와 ‘차관(次官)정치’라는 이름으로 외교에서부터 내정의 사소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사사건건 간섭하며 합병 수순을 차근차근 밟아나갔다. 1907년 7월 19일에는...

히틀러, ‘긴 칼의 밤’으로 에른스트 룀 제거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 있을 수 없다”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은 있을 수 없다. 그것은 나치의 독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돌프 히틀러(1889~1945)와 에른스트 룀(1887~1934)은 초기 나치당의 두 주역이었다. 두 사람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등 비슷한 점도 많았지만 출신 등에서는 달랐다. 히틀러는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나 힘들게 성장한 반면 룀은 뮌헨의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부유하게 성장했다. 룀은 1906년 19살의 나이로 독일군에 입대하고 1차대전 때는...

이애리수 ‘황성의 적’ 음반 발매

‘황성 옛터’ 한 곡으로 일약 스타 가수 돼 1927년 여름, 작곡가 전수린이 경기도 개성으로 떠나는 순회공연단을 따라나섰다. 전수린은 훗날 ‘알뜰한 당신’, ‘나는 열일곱 살이에요’ 등의 히트곡을 비롯한 1,000여 곡을 작곡해 인기 작곡가로 부상하지만 당시만 해도 아직 20살에 불과한 미완의 작곡가였다. 전수린이 고려의 옛 도읍지인 송도의 만월대를 둘러보는데 잡초가 무성하고 폐허가 된 궁궐의 잔해가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망국의 비애와 떠돌이 악극단원으로서의 서글픔이...

한글맞춤법 통일안 발표

표준어 원칙의 기본 뼈대는 중류사회에서 쓰는 서울말 주시경이 작고(1914)한 뒤에도 주시경의 후학들은 ‘조선언문회’를 중심으로 한글 연구와 보급을 계속했다. 주시경이 살아 있을 때만큼 활발하지는 않았으나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각자의 역할에 충실했다. 국내에서는 1921년 12월 ‘조선어연구회’를 발족시켜 한글날인 ‘가갸날’을 제정(1926.11)하고 동인지 형식의 ‘한글'(1927.2)을 발행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해외에서는 김두봉이 1919년 망명한 상해에서...

2019년은 김동인 순수 문예지 ‘창조’ 창간 100주년

2019년은 김동인 순수 문예지 ‘창조’ 창간 100주년

by 김지지   김동인 덕분에 한국 문학이 한 단계 발전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 김동인(1900~1951)이 스스로 밝힌 바에 따르면 그가 한국 문학사에 끼친 공로는 ▲‘더라’, ‘이라’ 등 구투(舊套)의 탈피 ▲현재법 서사체에서 과거체 서사체로의 변혁 ▲‘he’, ‘she’에 해당하는 3인칭 대명사 ‘그’의 사용 ▲사투리의 사용 등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사투리의 사용’을 제외한 세 가지는 이광수가 먼저 시작한 것이다. 그렇더라도 문장의 시간 관념을 또렷이...

[설악산 국립공원] 꼬박 20시간 걸린 설악산 공룡능선 첫 등정… 무릎은 힘들다는데 눈과 마음은 행복하다 하네

[설악산 국립공원] 꼬박 20시간 걸린 설악산 공룡능선 첫 등정… 무릎은 힘들다는데 눈과 마음은 행복하다 하네

↑ 공룡능선에서 바라본 봉우리들. 멀리 보이는 봉우리가 대청-중청이다.   ☞ 설악산 코스 전체가 궁금하면 클릭!!   by 김정일 아뿔싸! 초반부터 길을 잘못들어 금강암으로 올라가다니 경기도 수지 동천역에서 50대 중반의 여동생을 만나 둘이서 설악산을 향해 출발한 것은 2018년 10월 7일 밤 12시였다. 그런데 설악산이 이렇게 가까운 줄 몰랐다. 과거 젊은 시절에는 서울에서 설악산 설악동으로 가려면 강릉, 양양, 속초 시내를 거쳐 자가용으로 최소...

3․1운동 발발

1919년 3월 1일 오후2시, 파고다공원으로 수천명의 학생․시민들이 모여들었다. 민족대표 33인이 이곳에서 독립선언식을 거행한다기에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 시각 민족대표들은 인근의 태화관에 있었다. 전날밤, 폭동의 우려가 있다며 장소를 파고다공원에서 태화관으로 급히 변경했기 때문이다. 민족대표들은 한용운의 인사가 끝나자 함께 만세삼창을 외치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그리고 곧 일경에 체포되었다. 독립선언서에는 손병희를 포함한 천도교계 16명, 이승훈을 포함한...

북한 천리마운동 본격 시작

1958년 3월 3일부터 4일 간 열린 북한 제1차 노동당 대표자회의는 ‘반(反)종파사건’을 마무리하고 제1차 인민경제5개년계획(1957∼1961)을 중간 점검하는 자리였다. 천리마운동 의 본격적인 시작도 이때 결정되었다. ‘반종파사건’이란 1953년∼1955년까지 중공업 우선투자 노선을 둘러싸고 불거졌던 당내 갈등이 1956년 8월에 폭발한 북한 내 권력싸움이다. 연안파․소련파 등 반대파들은 이때 반당 종파분자로 몰려 대부분 숙청당했다. 비판세력을 일소하고 김일성 중심의...

콩코드기 첫 시험비행 성공

1969년 3월 2일, 영국과 프랑스가 공동개발한 콩코드기가 시험비행에 성공함으로써 세계 민간 항공사에 새로운 기념비가 세워졌다. 이날 콩코드기는 프랑스 툴루즈에서 이륙한 뒤 29분 간 프랑스 상공을 날다 안착함으로써 민간 여객기의 초음속 비행시대를 열었다. 시험비행 7개월만인 10월 1일 여객기로는 세계최초로 음속비행에 성공하고, 1970년 11월 4일에는 마하 2를 넘어서는 시속 2155km의 광속으로 53분간 순항하는 기록을 세웠다. 프랑스어로 ‘화합’을 뜻하는...

일본의 괴뢰국가 만주국 건국

1932년 3월 1일, 건국이념을 ‘오족협화’, ‘왕도낙토’ 등의 미사여구로 포장한 국가 아닌 국가가 중국 동북 지방에 출현했다. 1931년 9월 만주사변을 일으켜 만주를 점령한 일본이 청조의 마지막 황제 부의를 국가원수격인 집정으로 내세워 수립한 만주국이었다. 오전 9시, “죽음에 직면해 있는 만․몽(滿․蒙) 3000만 명의 민중이 일본군의 힘을 빌어 장학량 등을 구축하자“는 건국선언이 봉천(지금의 심양)에서 발표되었고, 3월 9일에는 부의가 참석한 집정 취임식이 수도인...

이토 히로부미, 초대 조선통감 부임

을사조약에 명시된 대로 공사관이 폐지되고 통감부가 설치된 것은 1906년 2월 1일이다. 임부는 합병을 순조롭게 진행시키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었다. 임시 통감 하세가와 요시미치에 이어 3월 2일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초대 통감으로 부임함으로써 일제의 ‘통감(統監)정치’가 본격 가동되었다. 이토는 ‘고문(顧問)정치’와 ‘차관(次官)정치’라는 이름으로 외교에서부터 내정의 사소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사사건건 간섭하며 합병 수순을 차근차근 밟아나갔다. 1907년 7월 19일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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