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The Blog Module
The blog modules makes it easy to create a blog post feed in two different layouts.
로버트 피어리 인류최초로 북극 탐험 성공
↑ 로버트 피어리 1909년 4월 6일, 지구에서 제일 북쪽 끝 얼음 위에 한 사내가 서있었다. 20세기 탐험사에 첫 페이지를 장식한 용감한 사내의 이름은 로버트 피어리(1856~1920)였다. 피어리와 생사고락을 함께한 흑인대원 매슈 헨슨과 에스키모인 4명 역시 그 순간을 감격스러워했다. 피어리는 성조기를 꺼내 기념사진을 찍고 성조기의 가장자리를 찢어 ‘1909년 4월 6일 북위 90도에 닿았다. 피어리’라고 쓴 종이와 함께 얼음 속에 묻었다. 그동안 피어리는...
중국의 제1차 천안문 사건… 광장 곳곳에 선혈 낭자
1976년 4월 4일, 중국 베이징의 하늘은 잔뜩 흐리고 쌀쌀했다. 그러나 천안문 광장만은 이른 아침부터 뜨거운 열기에 휩싸여 있었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20만 명 군중들이 3개월 전인 1월 8일에 죽은 전 국무원 총리 저우언라이를 애도하고 그 정적 ‘4인방’을 규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우언라이를 주자파(走資派·자본주의의 길을 걷는 자)로 몰아 격하하려는 극좌파에 대한 대중의 자발적이고도 거센 반발이었다. 꽃들로 파묻힌 인민영웅기념비에는 저우언라이의 거대한 초상화가...
미국 흑인 민권운동의 상징 마틴 루터 킹 목사 피살
미국 흑인 민권운동의 상징 마틴 루터 킹 목사가 1968년 4월 4일 저녁,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시 로레인모텔 306호 발코니에서 모텔 밖의 군중들과 얘기를 나누던 중 갑자기 “탕!”하는 소리와 함께 쓰러졌다. 어디에선가 날아든 한발의 총탄이 그의 목을 관통한 것이다. 킹이 이곳을 찾은 것은 청소원들의 파업을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범인으로 체포된 제임스 얼 레이는 당초 자백을 번복하며 자신은 단지 ‘거대한 음모’의 한 부분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FBI와 군부 배후설 등 온갖...
미 연방대법원, 핵기밀 소련에 넘겼다는 혐의로 로젠버그 부부에게 사형 선고
1949년 8월에 성공한 소련의 원자폭탄 실험은 미국을 당혹감에 빠뜨렸다. 당분간 원폭을 독점하려 했던 계획에 차질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미국의 원폭개발계획에 관계했던 영국의 핵물리학자 클라우스 훅스가 8년 동안 소련에 원폭기밀을 제공했다는 혐의로 1950년 2월 영국 정보기관에 체포되었다. 미국도 공범자 색출에 나서 첩보요원 해리 골드와 미국 로스알라모스 연구소에서 일하는 그린글래스를 용의자로 체포했다. 그린글래스가 자신의 매형인 줄리어스 로젠버그에게 핵기밀을...
일제가 제정·공포한 ‘신문지법’ 45년 만에 폐지
1952년 4월 4일, 일제 강점기부터 한국 언론의 목을 조여온 ‘광무신문지법(光武新聞紙法)’이 시행 45년 만에 폐지됐다. 신문지법은 1907년 7월 24일에 이완용 내각이 법률 제1호로 제정·공포한 한국 최초의 언론관계법이다. 일제는 이 법을 근거로 신문 발행허가에서 처벌에 이르기까지 각종 언론통제를 자행해왔다. 같은 날 ‘정미7조약’으로 불리는 ‘한·일신협약’을 체결하고, 3일 후에 또 다른 악법인 보안법을 공포함으로써 일제는 한국인의...
박정희 대통령 긴급조치 4호 발표… 실체없는 ‘민청학련’ 내세워 학생운동권 검거 시작
긴급조치 1호 발동으로 학생들은 더욱 비밀스럽고 조직적으로 활동하며 전국적으로 대학간 연대를 꾀했으나 정보당국은 이들의 동향을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 학생들이 속속 검거되는 가운데 1974년 4월 3일 학생들은 예정대로 대학별 집회를 가졌다. 참여는 저조했다. 서울 문리대에서는 겨우 70~80명 정도가 데모에 참가하고 다른 대학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유신철폐!” 등의 구호를 외치던 학생들은 전원 연행됐다. 하지만 사건은 이것으로 끝난 게 아니었다. 그날 밤 10시를 기해...
스탈린 러시아공산당 서기장 취임
1922년 4월 3일, 스탈린이 러시아공산당 초대 서기장에 취임했다. 스탈린에게는 권력장악을 위한 교두보였지만, 서기장이란 직책이 전날 열린 공산당대회에서 막 신설된 직책이다보니 스탈린의 앞날을 예측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원래 정치국에 배속돼 있다가 업무가 많아지면서 독립한 서기국의 장은 이 때만 해도 여러 직책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다. 그러나 서기장에 오른 스탈린은 레닌의 병이 악화된 틈을 타 서기장의 위상을 높이며 권력기반을 급속히 강화해 나갔다. 스탈린은 러시아혁명...
안창남, 우리 땅 하늘에서 한국인 최초 비행에 성공
우리나라에 비행기가 등장한 건 서울 용산의 조선군 연병장에서 일본인 군인이 공개비행 행사를 펼친 1913년이다. 1917년에는 미국의 민간 비행사 아트 스미스가 수만 인파가 보는 앞에서 멋진 곡예비행을 펼쳤다. 당시 스미스의 곡예비행을 구경하던 사람 중엔 휘문고등보통학교(휘문의숙) 학생이던 열일곱 소년 안창남(1900~1930)도 있었다. 안창남은 비행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1919년 일본으로 건너가 자동차 운전 기술을 익히고 도쿄 비행기제작소와 오쿠리 비행학교에 들어가...
미 의회, 1차대전 참전 결정
1차대전이 발발했을 때 미국은 순수한 무역거래라는 명목 하에 연합국 측에 막대한 양의 전쟁물자를 공급하며 실리를 챙기면서도 참전은 거부한 채 중립을 지켰다. 연합국은 좀처럼 참전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윌슨을 향해 “친독파”라는 비난까지 퍼부으며 참전을 재촉했으나 미국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때 미국의 참전을 불가피하게 만든 결정적인 두 사건이 일어났다. 독일의 ‘무제한 잠수함 작전’과 ‘짐머만 전문 사건’이었다. 분노한 윌슨이 1917년 4월 2일 의회에 나가 참전 승인을...
[장상인의 일본 산책] 임진왜란 때 고니시가 전남 순천에 세운 왜성(順天倭城)에서 아픈 역사를 반추하다
↑ 순천왜성(順天倭城) by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고니시 유키나가 부대 100여 척의 배에 나눠 타고 쓰시마를 출발하면서 임진왜란 시작돼 “16세기 후반 오랜 세월의 전란을 제패하고 일본 천하를 자신의 손에 넣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1537~1598)는 조선과 중국을 지배하려는 망상에 빠지게 된다.… 1590년에는 ‘명나라를 정벌하려고 하니 길을 내라’ 즉 향도정명(嚮導征明)을 내세운다. 동아시아의 정세를 잘못 판단한 히데요시는...
로버트 피어리 인류최초로 북극 탐험 성공
↑ 로버트 피어리 1909년 4월 6일, 지구에서 제일 북쪽 끝 얼음 위에 한 사내가 서있었다. 20세기 탐험사에 첫 페이지를 장식한 용감한 사내의 이름은 로버트 피어리(1856~1920)였다. 피어리와 생사고락을 함께한 흑인대원 매슈 헨슨과 에스키모인 4명 역시 그 순간을 감격스러워했다. 피어리는 성조기를 꺼내 기념사진을 찍고 성조기의 가장자리를 찢어 ‘1909년 4월 6일 북위 90도에 닿았다. 피어리’라고 쓴 종이와 함께 얼음 속에 묻었다. 그동안 피어리는...
중국의 제1차 천안문 사건… 광장 곳곳에 선혈 낭자
1976년 4월 4일, 중국 베이징의 하늘은 잔뜩 흐리고 쌀쌀했다. 그러나 천안문 광장만은 이른 아침부터 뜨거운 열기에 휩싸여 있었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20만 명 군중들이 3개월 전인 1월 8일에 죽은 전 국무원 총리 저우언라이를 애도하고 그 정적 ‘4인방’을 규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우언라이를 주자파(走資派·자본주의의 길을 걷는 자)로 몰아 격하하려는 극좌파에 대한 대중의 자발적이고도 거센 반발이었다. 꽃들로 파묻힌 인민영웅기념비에는 저우언라이의 거대한 초상화가...
미국 흑인 민권운동의 상징 마틴 루터 킹 목사 피살
미국 흑인 민권운동의 상징 마틴 루터 킹 목사가 1968년 4월 4일 저녁,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시 로레인모텔 306호 발코니에서 모텔 밖의 군중들과 얘기를 나누던 중 갑자기 “탕!”하는 소리와 함께 쓰러졌다. 어디에선가 날아든 한발의 총탄이 그의 목을 관통한 것이다. 킹이 이곳을 찾은 것은 청소원들의 파업을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범인으로 체포된 제임스 얼 레이는 당초 자백을 번복하며 자신은 단지 ‘거대한 음모’의 한 부분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FBI와 군부 배후설 등 온갖...
미 연방대법원, 핵기밀 소련에 넘겼다는 혐의로 로젠버그 부부에게 사형 선고
1949년 8월에 성공한 소련의 원자폭탄 실험은 미국을 당혹감에 빠뜨렸다. 당분간 원폭을 독점하려 했던 계획에 차질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미국의 원폭개발계획에 관계했던 영국의 핵물리학자 클라우스 훅스가 8년 동안 소련에 원폭기밀을 제공했다는 혐의로 1950년 2월 영국 정보기관에 체포되었다. 미국도 공범자 색출에 나서 첩보요원 해리 골드와 미국 로스알라모스 연구소에서 일하는 그린글래스를 용의자로 체포했다. 그린글래스가 자신의 매형인 줄리어스 로젠버그에게 핵기밀을...
일제가 제정·공포한 ‘신문지법’ 45년 만에 폐지
1952년 4월 4일, 일제 강점기부터 한국 언론의 목을 조여온 ‘광무신문지법(光武新聞紙法)’이 시행 45년 만에 폐지됐다. 신문지법은 1907년 7월 24일에 이완용 내각이 법률 제1호로 제정·공포한 한국 최초의 언론관계법이다. 일제는 이 법을 근거로 신문 발행허가에서 처벌에 이르기까지 각종 언론통제를 자행해왔다. 같은 날 ‘정미7조약’으로 불리는 ‘한·일신협약’을 체결하고, 3일 후에 또 다른 악법인 보안법을 공포함으로써 일제는 한국인의...
박정희 대통령 긴급조치 4호 발표… 실체없는 ‘민청학련’ 내세워 학생운동권 검거 시작
긴급조치 1호 발동으로 학생들은 더욱 비밀스럽고 조직적으로 활동하며 전국적으로 대학간 연대를 꾀했으나 정보당국은 이들의 동향을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 학생들이 속속 검거되는 가운데 1974년 4월 3일 학생들은 예정대로 대학별 집회를 가졌다. 참여는 저조했다. 서울 문리대에서는 겨우 70~80명 정도가 데모에 참가하고 다른 대학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유신철폐!” 등의 구호를 외치던 학생들은 전원 연행됐다. 하지만 사건은 이것으로 끝난 게 아니었다. 그날 밤 10시를 기해...
스탈린 러시아공산당 서기장 취임
1922년 4월 3일, 스탈린이 러시아공산당 초대 서기장에 취임했다. 스탈린에게는 권력장악을 위한 교두보였지만, 서기장이란 직책이 전날 열린 공산당대회에서 막 신설된 직책이다보니 스탈린의 앞날을 예측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원래 정치국에 배속돼 있다가 업무가 많아지면서 독립한 서기국의 장은 이 때만 해도 여러 직책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다. 그러나 서기장에 오른 스탈린은 레닌의 병이 악화된 틈을 타 서기장의 위상을 높이며 권력기반을 급속히 강화해 나갔다. 스탈린은 러시아혁명...
안창남, 우리 땅 하늘에서 한국인 최초 비행에 성공
우리나라에 비행기가 등장한 건 서울 용산의 조선군 연병장에서 일본인 군인이 공개비행 행사를 펼친 1913년이다. 1917년에는 미국의 민간 비행사 아트 스미스가 수만 인파가 보는 앞에서 멋진 곡예비행을 펼쳤다. 당시 스미스의 곡예비행을 구경하던 사람 중엔 휘문고등보통학교(휘문의숙) 학생이던 열일곱 소년 안창남(1900~1930)도 있었다. 안창남은 비행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1919년 일본으로 건너가 자동차 운전 기술을 익히고 도쿄 비행기제작소와 오쿠리 비행학교에 들어가...
미 의회, 1차대전 참전 결정
1차대전이 발발했을 때 미국은 순수한 무역거래라는 명목 하에 연합국 측에 막대한 양의 전쟁물자를 공급하며 실리를 챙기면서도 참전은 거부한 채 중립을 지켰다. 연합국은 좀처럼 참전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윌슨을 향해 “친독파”라는 비난까지 퍼부으며 참전을 재촉했으나 미국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때 미국의 참전을 불가피하게 만든 결정적인 두 사건이 일어났다. 독일의 ‘무제한 잠수함 작전’과 ‘짐머만 전문 사건’이었다. 분노한 윌슨이 1917년 4월 2일 의회에 나가 참전 승인을...
[장상인의 일본 산책] 임진왜란 때 고니시가 전남 순천에 세운 왜성(順天倭城)에서 아픈 역사를 반추하다
↑ 순천왜성(順天倭城) by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고니시 유키나가 부대 100여 척의 배에 나눠 타고 쓰시마를 출발하면서 임진왜란 시작돼 “16세기 후반 오랜 세월의 전란을 제패하고 일본 천하를 자신의 손에 넣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1537~1598)는 조선과 중국을 지배하려는 망상에 빠지게 된다.… 1590년에는 ‘명나라를 정벌하려고 하니 길을 내라’ 즉 향도정명(嚮導征明)을 내세운다. 동아시아의 정세를 잘못 판단한 히데요시는...
로버트 피어리 인류최초로 북극 탐험 성공
↑ 로버트 피어리 1909년 4월 6일, 지구에서 제일 북쪽 끝 얼음 위에 한 사내가 서있었다. 20세기 탐험사에 첫 페이지를 장식한 용감한 사내의 이름은 로버트 피어리(1856~1920)였다. 피어리와 생사고락을 함께한 흑인대원 매슈 헨슨과 에스키모인 4명 역시 그 순간을 감격스러워했다. 피어리는 성조기를 꺼내 기념사진을 찍고 성조기의 가장자리를 찢어 ‘1909년 4월 6일 북위 90도에 닿았다. 피어리’라고 쓴 종이와 함께 얼음 속에 묻었다. 그동안 피어리는...
중국의 제1차 천안문 사건… 광장 곳곳에 선혈 낭자
1976년 4월 4일, 중국 베이징의 하늘은 잔뜩 흐리고 쌀쌀했다. 그러나 천안문 광장만은 이른 아침부터 뜨거운 열기에 휩싸여 있었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20만 명 군중들이 3개월 전인 1월 8일에 죽은 전 국무원 총리 저우언라이를 애도하고 그 정적 ‘4인방’을 규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우언라이를 주자파(走資派·자본주의의 길을 걷는 자)로 몰아 격하하려는 극좌파에 대한 대중의 자발적이고도 거센 반발이었다. 꽃들로 파묻힌 인민영웅기념비에는 저우언라이의 거대한 초상화가...
미국 흑인 민권운동의 상징 마틴 루터 킹 목사 피살
미국 흑인 민권운동의 상징 마틴 루터 킹 목사가 1968년 4월 4일 저녁,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시 로레인모텔 306호 발코니에서 모텔 밖의 군중들과 얘기를 나누던 중 갑자기 “탕!”하는 소리와 함께 쓰러졌다. 어디에선가 날아든 한발의 총탄이 그의 목을 관통한 것이다. 킹이 이곳을 찾은 것은 청소원들의 파업을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범인으로 체포된 제임스 얼 레이는 당초 자백을 번복하며 자신은 단지 ‘거대한 음모’의 한 부분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FBI와 군부 배후설 등 온갖...
미 연방대법원, 핵기밀 소련에 넘겼다는 혐의로 로젠버그 부부에게 사형 선고
1949년 8월에 성공한 소련의 원자폭탄 실험은 미국을 당혹감에 빠뜨렸다. 당분간 원폭을 독점하려 했던 계획에 차질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미국의 원폭개발계획에 관계했던 영국의 핵물리학자 클라우스 훅스가 8년 동안 소련에 원폭기밀을 제공했다는 혐의로 1950년 2월 영국 정보기관에 체포되었다. 미국도 공범자 색출에 나서 첩보요원 해리 골드와 미국 로스알라모스 연구소에서 일하는 그린글래스를 용의자로 체포했다. 그린글래스가 자신의 매형인 줄리어스 로젠버그에게 핵기밀을...
일제가 제정·공포한 ‘신문지법’ 45년 만에 폐지
1952년 4월 4일, 일제 강점기부터 한국 언론의 목을 조여온 ‘광무신문지법(光武新聞紙法)’이 시행 45년 만에 폐지됐다. 신문지법은 1907년 7월 24일에 이완용 내각이 법률 제1호로 제정·공포한 한국 최초의 언론관계법이다. 일제는 이 법을 근거로 신문 발행허가에서 처벌에 이르기까지 각종 언론통제를 자행해왔다. 같은 날 ‘정미7조약’으로 불리는 ‘한·일신협약’을 체결하고, 3일 후에 또 다른 악법인 보안법을 공포함으로써 일제는 한국인의...
박정희 대통령 긴급조치 4호 발표… 실체없는 ‘민청학련’ 내세워 학생운동권 검거 시작
긴급조치 1호 발동으로 학생들은 더욱 비밀스럽고 조직적으로 활동하며 전국적으로 대학간 연대를 꾀했으나 정보당국은 이들의 동향을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 학생들이 속속 검거되는 가운데 1974년 4월 3일 학생들은 예정대로 대학별 집회를 가졌다. 참여는 저조했다. 서울 문리대에서는 겨우 70~80명 정도가 데모에 참가하고 다른 대학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유신철폐!” 등의 구호를 외치던 학생들은 전원 연행됐다. 하지만 사건은 이것으로 끝난 게 아니었다. 그날 밤 10시를 기해...
스탈린 러시아공산당 서기장 취임
1922년 4월 3일, 스탈린이 러시아공산당 초대 서기장에 취임했다. 스탈린에게는 권력장악을 위한 교두보였지만, 서기장이란 직책이 전날 열린 공산당대회에서 막 신설된 직책이다보니 스탈린의 앞날을 예측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원래 정치국에 배속돼 있다가 업무가 많아지면서 독립한 서기국의 장은 이 때만 해도 여러 직책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다. 그러나 서기장에 오른 스탈린은 레닌의 병이 악화된 틈을 타 서기장의 위상을 높이며 권력기반을 급속히 강화해 나갔다. 스탈린은 러시아혁명...
안창남, 우리 땅 하늘에서 한국인 최초 비행에 성공
우리나라에 비행기가 등장한 건 서울 용산의 조선군 연병장에서 일본인 군인이 공개비행 행사를 펼친 1913년이다. 1917년에는 미국의 민간 비행사 아트 스미스가 수만 인파가 보는 앞에서 멋진 곡예비행을 펼쳤다. 당시 스미스의 곡예비행을 구경하던 사람 중엔 휘문고등보통학교(휘문의숙) 학생이던 열일곱 소년 안창남(1900~1930)도 있었다. 안창남은 비행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1919년 일본으로 건너가 자동차 운전 기술을 익히고 도쿄 비행기제작소와 오쿠리 비행학교에 들어가...
미 의회, 1차대전 참전 결정
1차대전이 발발했을 때 미국은 순수한 무역거래라는 명목 하에 연합국 측에 막대한 양의 전쟁물자를 공급하며 실리를 챙기면서도 참전은 거부한 채 중립을 지켰다. 연합국은 좀처럼 참전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윌슨을 향해 “친독파”라는 비난까지 퍼부으며 참전을 재촉했으나 미국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때 미국의 참전을 불가피하게 만든 결정적인 두 사건이 일어났다. 독일의 ‘무제한 잠수함 작전’과 ‘짐머만 전문 사건’이었다. 분노한 윌슨이 1917년 4월 2일 의회에 나가 참전 승인을...
[장상인의 일본 산책] 임진왜란 때 고니시가 전남 순천에 세운 왜성(順天倭城)에서 아픈 역사를 반추하다
↑ 순천왜성(順天倭城) by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고니시 유키나가 부대 100여 척의 배에 나눠 타고 쓰시마를 출발하면서 임진왜란 시작돼 “16세기 후반 오랜 세월의 전란을 제패하고 일본 천하를 자신의 손에 넣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1537~1598)는 조선과 중국을 지배하려는 망상에 빠지게 된다.… 1590년에는 ‘명나라를 정벌하려고 하니 길을 내라’ 즉 향도정명(嚮導征明)을 내세운다. 동아시아의 정세를 잘못 판단한 히데요시는...
로버트 피어리 인류최초로 북극 탐험 성공
↑ 로버트 피어리 1909년 4월 6일, 지구에서 제일 북쪽 끝 얼음 위에 한 사내가 서있었다. 20세기 탐험사에 첫 페이지를 장식한 용감한 사내의 이름은 로버트 피어리(1856~1920)였다. 피어리와 생사고락을 함께한 흑인대원 매슈 헨슨과 에스키모인 4명 역시 그 순간을 감격스러워했다. 피어리는 성조기를 꺼내 기념사진을 찍고 성조기의 가장자리를 찢어 ‘1909년 4월 6일 북위 90도에 닿았다. 피어리’라고 쓴 종이와 함께 얼음 속에 묻었다. 그동안 피어리는...
중국의 제1차 천안문 사건… 광장 곳곳에 선혈 낭자
1976년 4월 4일, 중국 베이징의 하늘은 잔뜩 흐리고 쌀쌀했다. 그러나 천안문 광장만은 이른 아침부터 뜨거운 열기에 휩싸여 있었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20만 명 군중들이 3개월 전인 1월 8일에 죽은 전 국무원 총리 저우언라이를 애도하고 그 정적 ‘4인방’을 규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우언라이를 주자파(走資派·자본주의의 길을 걷는 자)로 몰아 격하하려는 극좌파에 대한 대중의 자발적이고도 거센 반발이었다. 꽃들로 파묻힌 인민영웅기념비에는 저우언라이의 거대한 초상화가...
미국 흑인 민권운동의 상징 마틴 루터 킹 목사 피살
미국 흑인 민권운동의 상징 마틴 루터 킹 목사가 1968년 4월 4일 저녁,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시 로레인모텔 306호 발코니에서 모텔 밖의 군중들과 얘기를 나누던 중 갑자기 “탕!”하는 소리와 함께 쓰러졌다. 어디에선가 날아든 한발의 총탄이 그의 목을 관통한 것이다. 킹이 이곳을 찾은 것은 청소원들의 파업을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범인으로 체포된 제임스 얼 레이는 당초 자백을 번복하며 자신은 단지 ‘거대한 음모’의 한 부분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FBI와 군부 배후설 등 온갖...
미 연방대법원, 핵기밀 소련에 넘겼다는 혐의로 로젠버그 부부에게 사형 선고
1949년 8월에 성공한 소련의 원자폭탄 실험은 미국을 당혹감에 빠뜨렸다. 당분간 원폭을 독점하려 했던 계획에 차질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미국의 원폭개발계획에 관계했던 영국의 핵물리학자 클라우스 훅스가 8년 동안 소련에 원폭기밀을 제공했다는 혐의로 1950년 2월 영국 정보기관에 체포되었다. 미국도 공범자 색출에 나서 첩보요원 해리 골드와 미국 로스알라모스 연구소에서 일하는 그린글래스를 용의자로 체포했다. 그린글래스가 자신의 매형인 줄리어스 로젠버그에게 핵기밀을...
일제가 제정·공포한 ‘신문지법’ 45년 만에 폐지
1952년 4월 4일, 일제 강점기부터 한국 언론의 목을 조여온 ‘광무신문지법(光武新聞紙法)’이 시행 45년 만에 폐지됐다. 신문지법은 1907년 7월 24일에 이완용 내각이 법률 제1호로 제정·공포한 한국 최초의 언론관계법이다. 일제는 이 법을 근거로 신문 발행허가에서 처벌에 이르기까지 각종 언론통제를 자행해왔다. 같은 날 ‘정미7조약’으로 불리는 ‘한·일신협약’을 체결하고, 3일 후에 또 다른 악법인 보안법을 공포함으로써 일제는 한국인의...
박정희 대통령 긴급조치 4호 발표… 실체없는 ‘민청학련’ 내세워 학생운동권 검거 시작
긴급조치 1호 발동으로 학생들은 더욱 비밀스럽고 조직적으로 활동하며 전국적으로 대학간 연대를 꾀했으나 정보당국은 이들의 동향을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 학생들이 속속 검거되는 가운데 1974년 4월 3일 학생들은 예정대로 대학별 집회를 가졌다. 참여는 저조했다. 서울 문리대에서는 겨우 70~80명 정도가 데모에 참가하고 다른 대학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유신철폐!” 등의 구호를 외치던 학생들은 전원 연행됐다. 하지만 사건은 이것으로 끝난 게 아니었다. 그날 밤 10시를 기해...
스탈린 러시아공산당 서기장 취임
1922년 4월 3일, 스탈린이 러시아공산당 초대 서기장에 취임했다. 스탈린에게는 권력장악을 위한 교두보였지만, 서기장이란 직책이 전날 열린 공산당대회에서 막 신설된 직책이다보니 스탈린의 앞날을 예측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원래 정치국에 배속돼 있다가 업무가 많아지면서 독립한 서기국의 장은 이 때만 해도 여러 직책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다. 그러나 서기장에 오른 스탈린은 레닌의 병이 악화된 틈을 타 서기장의 위상을 높이며 권력기반을 급속히 강화해 나갔다. 스탈린은 러시아혁명...
안창남, 우리 땅 하늘에서 한국인 최초 비행에 성공
우리나라에 비행기가 등장한 건 서울 용산의 조선군 연병장에서 일본인 군인이 공개비행 행사를 펼친 1913년이다. 1917년에는 미국의 민간 비행사 아트 스미스가 수만 인파가 보는 앞에서 멋진 곡예비행을 펼쳤다. 당시 스미스의 곡예비행을 구경하던 사람 중엔 휘문고등보통학교(휘문의숙) 학생이던 열일곱 소년 안창남(1900~1930)도 있었다. 안창남은 비행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1919년 일본으로 건너가 자동차 운전 기술을 익히고 도쿄 비행기제작소와 오쿠리 비행학교에 들어가...
미 의회, 1차대전 참전 결정
1차대전이 발발했을 때 미국은 순수한 무역거래라는 명목 하에 연합국 측에 막대한 양의 전쟁물자를 공급하며 실리를 챙기면서도 참전은 거부한 채 중립을 지켰다. 연합국은 좀처럼 참전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윌슨을 향해 “친독파”라는 비난까지 퍼부으며 참전을 재촉했으나 미국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때 미국의 참전을 불가피하게 만든 결정적인 두 사건이 일어났다. 독일의 ‘무제한 잠수함 작전’과 ‘짐머만 전문 사건’이었다. 분노한 윌슨이 1917년 4월 2일 의회에 나가 참전 승인을...
[장상인의 일본 산책] 임진왜란 때 고니시가 전남 순천에 세운 왜성(順天倭城)에서 아픈 역사를 반추하다
↑ 순천왜성(順天倭城) by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고니시 유키나가 부대 100여 척의 배에 나눠 타고 쓰시마를 출발하면서 임진왜란 시작돼 “16세기 후반 오랜 세월의 전란을 제패하고 일본 천하를 자신의 손에 넣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1537~1598)는 조선과 중국을 지배하려는 망상에 빠지게 된다.… 1590년에는 ‘명나라를 정벌하려고 하니 길을 내라’ 즉 향도정명(嚮導征明)을 내세운다. 동아시아의 정세를 잘못 판단한 히데요시는...
로버트 피어리 인류최초로 북극 탐험 성공
↑ 로버트 피어리 1909년 4월 6일, 지구에서 제일 북쪽 끝 얼음 위에 한 사내가 서있었다. 20세기 탐험사에 첫 페이지를 장식한 용감한 사내의 이름은 로버트 피어리(1856~1920)였다. 피어리와 생사고락을 함께한 흑인대원 매슈 헨슨과 에스키모인 4명 역시 그 순간을 감격스러워했다. 피어리는 성조기를 꺼내 기념사진을 찍고 성조기의 가장자리를 찢어 ‘1909년 4월 6일 북위 90도에 닿았다. 피어리’라고 쓴 종이와 함께 얼음 속에 묻었다. 그동안 피어리는...
중국의 제1차 천안문 사건… 광장 곳곳에 선혈 낭자
1976년 4월 4일, 중국 베이징의 하늘은 잔뜩 흐리고 쌀쌀했다. 그러나 천안문 광장만은 이른 아침부터 뜨거운 열기에 휩싸여 있었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20만 명 군중들이 3개월 전인 1월 8일에 죽은 전 국무원 총리 저우언라이를 애도하고 그 정적 ‘4인방’을 규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우언라이를 주자파(走資派·자본주의의 길을 걷는 자)로 몰아 격하하려는 극좌파에 대한 대중의 자발적이고도 거센 반발이었다. 꽃들로 파묻힌 인민영웅기념비에는 저우언라이의 거대한 초상화가...
미국 흑인 민권운동의 상징 마틴 루터 킹 목사 피살
미국 흑인 민권운동의 상징 마틴 루터 킹 목사가 1968년 4월 4일 저녁,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시 로레인모텔 306호 발코니에서 모텔 밖의 군중들과 얘기를 나누던 중 갑자기 “탕!”하는 소리와 함께 쓰러졌다. 어디에선가 날아든 한발의 총탄이 그의 목을 관통한 것이다. 킹이 이곳을 찾은 것은 청소원들의 파업을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범인으로 체포된 제임스 얼 레이는 당초 자백을 번복하며 자신은 단지 ‘거대한 음모’의 한 부분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FBI와 군부 배후설 등 온갖...
미 연방대법원, 핵기밀 소련에 넘겼다는 혐의로 로젠버그 부부에게 사형 선고
1949년 8월에 성공한 소련의 원자폭탄 실험은 미국을 당혹감에 빠뜨렸다. 당분간 원폭을 독점하려 했던 계획에 차질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미국의 원폭개발계획에 관계했던 영국의 핵물리학자 클라우스 훅스가 8년 동안 소련에 원폭기밀을 제공했다는 혐의로 1950년 2월 영국 정보기관에 체포되었다. 미국도 공범자 색출에 나서 첩보요원 해리 골드와 미국 로스알라모스 연구소에서 일하는 그린글래스를 용의자로 체포했다. 그린글래스가 자신의 매형인 줄리어스 로젠버그에게 핵기밀을...
일제가 제정·공포한 ‘신문지법’ 45년 만에 폐지
1952년 4월 4일, 일제 강점기부터 한국 언론의 목을 조여온 ‘광무신문지법(光武新聞紙法)’이 시행 45년 만에 폐지됐다. 신문지법은 1907년 7월 24일에 이완용 내각이 법률 제1호로 제정·공포한 한국 최초의 언론관계법이다. 일제는 이 법을 근거로 신문 발행허가에서 처벌에 이르기까지 각종 언론통제를 자행해왔다. 같은 날 ‘정미7조약’으로 불리는 ‘한·일신협약’을 체결하고, 3일 후에 또 다른 악법인 보안법을 공포함으로써 일제는 한국인의...
박정희 대통령 긴급조치 4호 발표… 실체없는 ‘민청학련’ 내세워 학생운동권 검거 시작
긴급조치 1호 발동으로 학생들은 더욱 비밀스럽고 조직적으로 활동하며 전국적으로 대학간 연대를 꾀했으나 정보당국은 이들의 동향을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 학생들이 속속 검거되는 가운데 1974년 4월 3일 학생들은 예정대로 대학별 집회를 가졌다. 참여는 저조했다. 서울 문리대에서는 겨우 70~80명 정도가 데모에 참가하고 다른 대학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유신철폐!” 등의 구호를 외치던 학생들은 전원 연행됐다. 하지만 사건은 이것으로 끝난 게 아니었다. 그날 밤 10시를 기해...
스탈린 러시아공산당 서기장 취임
1922년 4월 3일, 스탈린이 러시아공산당 초대 서기장에 취임했다. 스탈린에게는 권력장악을 위한 교두보였지만, 서기장이란 직책이 전날 열린 공산당대회에서 막 신설된 직책이다보니 스탈린의 앞날을 예측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원래 정치국에 배속돼 있다가 업무가 많아지면서 독립한 서기국의 장은 이 때만 해도 여러 직책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다. 그러나 서기장에 오른 스탈린은 레닌의 병이 악화된 틈을 타 서기장의 위상을 높이며 권력기반을 급속히 강화해 나갔다. 스탈린은 러시아혁명...
안창남, 우리 땅 하늘에서 한국인 최초 비행에 성공
우리나라에 비행기가 등장한 건 서울 용산의 조선군 연병장에서 일본인 군인이 공개비행 행사를 펼친 1913년이다. 1917년에는 미국의 민간 비행사 아트 스미스가 수만 인파가 보는 앞에서 멋진 곡예비행을 펼쳤다. 당시 스미스의 곡예비행을 구경하던 사람 중엔 휘문고등보통학교(휘문의숙) 학생이던 열일곱 소년 안창남(1900~1930)도 있었다. 안창남은 비행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1919년 일본으로 건너가 자동차 운전 기술을 익히고 도쿄 비행기제작소와 오쿠리 비행학교에 들어가...
미 의회, 1차대전 참전 결정
1차대전이 발발했을 때 미국은 순수한 무역거래라는 명목 하에 연합국 측에 막대한 양의 전쟁물자를 공급하며 실리를 챙기면서도 참전은 거부한 채 중립을 지켰다. 연합국은 좀처럼 참전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윌슨을 향해 “친독파”라는 비난까지 퍼부으며 참전을 재촉했으나 미국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때 미국의 참전을 불가피하게 만든 결정적인 두 사건이 일어났다. 독일의 ‘무제한 잠수함 작전’과 ‘짐머만 전문 사건’이었다. 분노한 윌슨이 1917년 4월 2일 의회에 나가 참전 승인을...
[장상인의 일본 산책] 임진왜란 때 고니시가 전남 순천에 세운 왜성(順天倭城)에서 아픈 역사를 반추하다
↑ 순천왜성(順天倭城) by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고니시 유키나가 부대 100여 척의 배에 나눠 타고 쓰시마를 출발하면서 임진왜란 시작돼 “16세기 후반 오랜 세월의 전란을 제패하고 일본 천하를 자신의 손에 넣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1537~1598)는 조선과 중국을 지배하려는 망상에 빠지게 된다.… 1590년에는 ‘명나라를 정벌하려고 하니 길을 내라’ 즉 향도정명(嚮導征明)을 내세운다. 동아시아의 정세를 잘못 판단한 히데요시는...
로버트 피어리 인류최초로 북극 탐험 성공
↑ 로버트 피어리 1909년 4월 6일, 지구에서 제일 북쪽 끝 얼음 위에 한 사내가 서있었다. 20세기 탐험사에 첫 페이지를 장식한 용감한 사내의 이름은 로버트 피어리(1856~1920)였다. 피어리와 생사고락을 함께한 흑인대원 매슈 헨슨과 에스키모인 4명 역시 그 순간을 감격스러워했다. 피어리는 성조기를 꺼내 기념사진을 찍고 성조기의 가장자리를 찢어 ‘1909년 4월 6일 북위 90도에 닿았다. 피어리’라고 쓴 종이와 함께 얼음 속에 묻었다. 그동안 피어리는...
중국의 제1차 천안문 사건… 광장 곳곳에 선혈 낭자
1976년 4월 4일, 중국 베이징의 하늘은 잔뜩 흐리고 쌀쌀했다. 그러나 천안문 광장만은 이른 아침부터 뜨거운 열기에 휩싸여 있었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20만 명 군중들이 3개월 전인 1월 8일에 죽은 전 국무원 총리 저우언라이를 애도하고 그 정적 ‘4인방’을 규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우언라이를 주자파(走資派·자본주의의 길을 걷는 자)로 몰아 격하하려는 극좌파에 대한 대중의 자발적이고도 거센 반발이었다. 꽃들로 파묻힌 인민영웅기념비에는 저우언라이의 거대한 초상화가...
미국 흑인 민권운동의 상징 마틴 루터 킹 목사 피살
미국 흑인 민권운동의 상징 마틴 루터 킹 목사가 1968년 4월 4일 저녁,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시 로레인모텔 306호 발코니에서 모텔 밖의 군중들과 얘기를 나누던 중 갑자기 “탕!”하는 소리와 함께 쓰러졌다. 어디에선가 날아든 한발의 총탄이 그의 목을 관통한 것이다. 킹이 이곳을 찾은 것은 청소원들의 파업을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범인으로 체포된 제임스 얼 레이는 당초 자백을 번복하며 자신은 단지 ‘거대한 음모’의 한 부분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FBI와 군부 배후설 등 온갖...
미 연방대법원, 핵기밀 소련에 넘겼다는 혐의로 로젠버그 부부에게 사형 선고
1949년 8월에 성공한 소련의 원자폭탄 실험은 미국을 당혹감에 빠뜨렸다. 당분간 원폭을 독점하려 했던 계획에 차질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미국의 원폭개발계획에 관계했던 영국의 핵물리학자 클라우스 훅스가 8년 동안 소련에 원폭기밀을 제공했다는 혐의로 1950년 2월 영국 정보기관에 체포되었다. 미국도 공범자 색출에 나서 첩보요원 해리 골드와 미국 로스알라모스 연구소에서 일하는 그린글래스를 용의자로 체포했다. 그린글래스가 자신의 매형인 줄리어스 로젠버그에게 핵기밀을...
일제가 제정·공포한 ‘신문지법’ 45년 만에 폐지
1952년 4월 4일, 일제 강점기부터 한국 언론의 목을 조여온 ‘광무신문지법(光武新聞紙法)’이 시행 45년 만에 폐지됐다. 신문지법은 1907년 7월 24일에 이완용 내각이 법률 제1호로 제정·공포한 한국 최초의 언론관계법이다. 일제는 이 법을 근거로 신문 발행허가에서 처벌에 이르기까지 각종 언론통제를 자행해왔다. 같은 날 ‘정미7조약’으로 불리는 ‘한·일신협약’을 체결하고, 3일 후에 또 다른 악법인 보안법을 공포함으로써 일제는 한국인의...
박정희 대통령 긴급조치 4호 발표… 실체없는 ‘민청학련’ 내세워 학생운동권 검거 시작
긴급조치 1호 발동으로 학생들은 더욱 비밀스럽고 조직적으로 활동하며 전국적으로 대학간 연대를 꾀했으나 정보당국은 이들의 동향을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 학생들이 속속 검거되는 가운데 1974년 4월 3일 학생들은 예정대로 대학별 집회를 가졌다. 참여는 저조했다. 서울 문리대에서는 겨우 70~80명 정도가 데모에 참가하고 다른 대학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유신철폐!” 등의 구호를 외치던 학생들은 전원 연행됐다. 하지만 사건은 이것으로 끝난 게 아니었다. 그날 밤 10시를 기해...
스탈린 러시아공산당 서기장 취임
1922년 4월 3일, 스탈린이 러시아공산당 초대 서기장에 취임했다. 스탈린에게는 권력장악을 위한 교두보였지만, 서기장이란 직책이 전날 열린 공산당대회에서 막 신설된 직책이다보니 스탈린의 앞날을 예측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원래 정치국에 배속돼 있다가 업무가 많아지면서 독립한 서기국의 장은 이 때만 해도 여러 직책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다. 그러나 서기장에 오른 스탈린은 레닌의 병이 악화된 틈을 타 서기장의 위상을 높이며 권력기반을 급속히 강화해 나갔다. 스탈린은 러시아혁명...
안창남, 우리 땅 하늘에서 한국인 최초 비행에 성공
우리나라에 비행기가 등장한 건 서울 용산의 조선군 연병장에서 일본인 군인이 공개비행 행사를 펼친 1913년이다. 1917년에는 미국의 민간 비행사 아트 스미스가 수만 인파가 보는 앞에서 멋진 곡예비행을 펼쳤다. 당시 스미스의 곡예비행을 구경하던 사람 중엔 휘문고등보통학교(휘문의숙) 학생이던 열일곱 소년 안창남(1900~1930)도 있었다. 안창남은 비행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1919년 일본으로 건너가 자동차 운전 기술을 익히고 도쿄 비행기제작소와 오쿠리 비행학교에 들어가...
미 의회, 1차대전 참전 결정
1차대전이 발발했을 때 미국은 순수한 무역거래라는 명목 하에 연합국 측에 막대한 양의 전쟁물자를 공급하며 실리를 챙기면서도 참전은 거부한 채 중립을 지켰다. 연합국은 좀처럼 참전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윌슨을 향해 “친독파”라는 비난까지 퍼부으며 참전을 재촉했으나 미국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때 미국의 참전을 불가피하게 만든 결정적인 두 사건이 일어났다. 독일의 ‘무제한 잠수함 작전’과 ‘짐머만 전문 사건’이었다. 분노한 윌슨이 1917년 4월 2일 의회에 나가 참전 승인을...
[장상인의 일본 산책] 임진왜란 때 고니시가 전남 순천에 세운 왜성(順天倭城)에서 아픈 역사를 반추하다
↑ 순천왜성(順天倭城) by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고니시 유키나가 부대 100여 척의 배에 나눠 타고 쓰시마를 출발하면서 임진왜란 시작돼 “16세기 후반 오랜 세월의 전란을 제패하고 일본 천하를 자신의 손에 넣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1537~1598)는 조선과 중국을 지배하려는 망상에 빠지게 된다.… 1590년에는 ‘명나라를 정벌하려고 하니 길을 내라’ 즉 향도정명(嚮導征明)을 내세운다. 동아시아의 정세를 잘못 판단한 히데요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