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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인의 일본 산책] 16세기 일본에 입국한 聖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의 기념비가 시모노세키(下關)에 있어 놀라움과 반가움 교차
↑시모노세키에 있는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기념비 by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아시아 선교의 아버지’ 시모노세키의 가라토(唐戶) 정류장에 내리면 붉은 벽돌의 서양식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1906년에 지어진 구 영국 영사관 건물이다. 국가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옛 모습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거기에서 육교를 건너면 가라토 시장으로 이어지는 해변이 나온다. 아침 이른 시각인데도 가라토 시장으로 가는 사람들이...
<韓日 청구권 협정> 빛과 그림자 ② 대법원의 ‘사법 자제 원칙’ 외면과 정부의 방관이 日 경제보복 빌미 줘
↑ 대법원 대법정 (출처 대법원) <한일 청구권 협정> 빛과 그림자 ① ☞ 클릭 by 金知知 ■한일 청구권 협정에 대한 국내의 상반된 평가 한일 청구권 협정 결과에 대한 평가는 협정 체결 당시부터 엇갈렸다. “박정희 정권이 경제개발 논리에 치우쳐 식민지 지배에 대해 일본으로부터 어떤 사죄와 배상도 받지 못한 채 졸속적이고 굴욕적으로 협정을 서둘렀다” “청구권이 정치적으로 타결되는 바람에 개인 청구권에 대한 권리 구제가 미흡했다”는 등의...
‘서대문형무소 1호 순국 사형수’는 애국지사 허위(許蔿)… 이낙연 국무총리 키르기스스탄에서 유족 만나 경의 표해
↑ 허위 선생의 초상(왼쪽)과 흉상 by 金知知 키르기스스탄을 공식방문 중인 이낙연 국무총리가 7월 18일 ‘서대문형무소 1호 사형수’였던 애국지사 허위(許蔿) 선생의 후손들을 만났다. 허위 선생은 1908년 의병투쟁으로 일제에 의해 사형을 당한 독립운동의 선구자다. 정부는 허위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2년 독립 유공 최고훈장인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고, 서울시는 1966년 선생이 진격한 길을 따라 청량리에서 동대문까지 3.3㎞ 구간을 왕산로로...
美·日의 가쓰라·태프트 밀약
청(淸)의 황준헌 참사관이 쓴 ‘조선책략’은 ‘미국과 연대(연미·聯美)’할 필요성을 고종에게 제안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에 대한 고종의 기대는 1882년 조선이 서구 열강과 맺은 첫 조약 ‘조·미 수호통상조약’ 체결로 구체화됐다. 일본의 야욕이 점차 노골화되자 미국을 향한 고종의 해바라기는 부쩍 심해졌다. 1905년 9월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 대통령의 딸 앨리스가 약혼자와 함께 해군대장을 대동하고 조선을 방문하자 민영환·이준·이상재 등이 앨리스를 몰래 만나 조선이 처한...
415명 판사 가운데 153명이 사표 제출한 사법부 파동
1971년 7월 28일, 사법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했다. 서울형사지법 판사 37명이 무더기로 사표를 낸 것이다. 서울지검이 이날 0시40분쯤 서울형사지법 이범렬 부장판사와 최공웅 판사, 이남영 서기 등 3명에게 뇌물수수혐의를 적용, 구속영장을 신청한 것이 발단이었다. 국가보안법 사건을 심리하는 두 판사가 제주도 출장 시 사건담당 변호사로부터 일체의 비용을 제공받았다는 것이 검찰 측 주장이지만 시국사건에 무죄판결을 잇따라 내린 이범렬 판사를 겨냥한 꼬투리 잡기라는 사실을 알...
대한민국, 첫 하계올림픽 출전
↑ 런던 올림픽 개막식 주경기장으로 입장하는 한국 선수단. 손기정이 기수를 맡았다. 1948년 7월 29일, 59개국 선수 4000여 명이 참가한 제14회 런던올림픽이 개막됐다. 2차대전으로 두 차례나 대회가 무산되고 12년 만에 치러진 올림픽이었다. 한국을 비롯, 15개 신생국이 처음 참가한 것과 달리 전범국 일본·독일·이탈리아는 초청받지 못했다. 한국은 광복 후 처음 출전한 하계올림픽에 축구·복싱·역도 등 7개 종목 50명의 선수와 17명의 임원을 출전시켰다....
‘공포정치의 화신’ 로베스피에르 단두대에서 처형
프랑스 전역에 공포정치가 몰아치고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프랑스혁명이 발발(1789년)하고 루이16세가 처형(1793년)된 뒤였다. 권력을 장악한 자코뱅당의 산악파(과격파)가 혁명재판소를 설치하고 무소불위 권한을 부여한 공안·보안위원회를 구성한 것이 시작이었다. 공포정치로 30만∼80만 명이 체포되었고 이 가운데 4만∼5만 명이 처형되었다. 공포정치의 주역은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1758~1794)였다. 그는 프랑스 북부 아라스의 부르주아 집안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6살 때...
6·25 정전협정 조인
1953년 7월 27일 오전10시, 한국전쟁에 마침표가 찍혔다. 765차례의 회담 끝에 마침내 정전협정이 체결된 것이다. 난항을 보이던 정전 협상에 돌파구가 마련된 것은 스탈린 사후(1953년 3월) 공산 측이 부상병 포로를 우선교환하자는 데 합의했기 때문이다. 아이젠하워 대통령도 “정전협정 후라도 한국을 계속 방위하겠다”고 이승만 대통령을 안심시키며 협상을 촉구했다. 하지만 4월 12일 이 대통령이 ‘휴전반대 단독북진’을 주장하면서 협상에 차질이 빚어졌다. 6월 8일 미국과...
일본의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 록히드 사건으로 구속
↑ 다나카 가쿠에이 ‘록히드 사건’은 1976년 2월 4일 미 상원 다국적기업소위원회(일명 처치위원회)에서 “미국의 록히드사가 자사 비행기를 판매하기 위해 일본의 정부고관에 거액의 뇌물을 주었다”는 사실이 폭로되면서 불거졌다. 사건이 알려지자 일본 열도는 발칵 뒤집혔다. 여론은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들끓었고 국회는 청문회를 열어 관련자들을 소환했다. 검찰도 수사에 착수, 관련 기업인들을 구속하며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 총리를 압박했다. 미키 총리까지 나서...
나세르, 수에즈운하 국유화 선언
1956년 7월 26일 밤, 중동 지역을 20세기 후반 세계질서의 주요변수로 떠오르게 한 폭탄선언이 발표되었다. 이집트 대통령 가말 압델 나세르의 ‘수에즈운하 국유화’ 선언이었다. 나세르는 이날 10만 명의 군중이 운집한 혁명 4주년 기념연설에서 “수에즈 운하는 이집트의 희생으로 구축된 것임에도 이제까지 외국의 부당한 지배로 착취를 받아왔다.… 운하를 국유화하면 그 수입으로 애스완댐을 건설할 수 있다”며 수에즈운하 국유화를 선언했다. 나세르가 사실상 프랑스·영국이 소유해오고,...
[장상인의 일본 산책] 16세기 일본에 입국한 聖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의 기념비가 시모노세키(下關)에 있어 놀라움과 반가움 교차
↑시모노세키에 있는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기념비 by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아시아 선교의 아버지’ 시모노세키의 가라토(唐戶) 정류장에 내리면 붉은 벽돌의 서양식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1906년에 지어진 구 영국 영사관 건물이다. 국가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옛 모습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거기에서 육교를 건너면 가라토 시장으로 이어지는 해변이 나온다. 아침 이른 시각인데도 가라토 시장으로 가는 사람들이...
<韓日 청구권 협정> 빛과 그림자 ② 대법원의 ‘사법 자제 원칙’ 외면과 정부의 방관이 日 경제보복 빌미 줘
↑ 대법원 대법정 (출처 대법원) <한일 청구권 협정> 빛과 그림자 ① ☞ 클릭 by 金知知 ■한일 청구권 협정에 대한 국내의 상반된 평가 한일 청구권 협정 결과에 대한 평가는 협정 체결 당시부터 엇갈렸다. “박정희 정권이 경제개발 논리에 치우쳐 식민지 지배에 대해 일본으로부터 어떤 사죄와 배상도 받지 못한 채 졸속적이고 굴욕적으로 협정을 서둘렀다” “청구권이 정치적으로 타결되는 바람에 개인 청구권에 대한 권리 구제가 미흡했다”는 등의...
‘서대문형무소 1호 순국 사형수’는 애국지사 허위(許蔿)… 이낙연 국무총리 키르기스스탄에서 유족 만나 경의 표해
↑ 허위 선생의 초상(왼쪽)과 흉상 by 金知知 키르기스스탄을 공식방문 중인 이낙연 국무총리가 7월 18일 ‘서대문형무소 1호 사형수’였던 애국지사 허위(許蔿) 선생의 후손들을 만났다. 허위 선생은 1908년 의병투쟁으로 일제에 의해 사형을 당한 독립운동의 선구자다. 정부는 허위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2년 독립 유공 최고훈장인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고, 서울시는 1966년 선생이 진격한 길을 따라 청량리에서 동대문까지 3.3㎞ 구간을 왕산로로...
美·日의 가쓰라·태프트 밀약
청(淸)의 황준헌 참사관이 쓴 ‘조선책략’은 ‘미국과 연대(연미·聯美)’할 필요성을 고종에게 제안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에 대한 고종의 기대는 1882년 조선이 서구 열강과 맺은 첫 조약 ‘조·미 수호통상조약’ 체결로 구체화됐다. 일본의 야욕이 점차 노골화되자 미국을 향한 고종의 해바라기는 부쩍 심해졌다. 1905년 9월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 대통령의 딸 앨리스가 약혼자와 함께 해군대장을 대동하고 조선을 방문하자 민영환·이준·이상재 등이 앨리스를 몰래 만나 조선이 처한...
415명 판사 가운데 153명이 사표 제출한 사법부 파동
1971년 7월 28일, 사법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했다. 서울형사지법 판사 37명이 무더기로 사표를 낸 것이다. 서울지검이 이날 0시40분쯤 서울형사지법 이범렬 부장판사와 최공웅 판사, 이남영 서기 등 3명에게 뇌물수수혐의를 적용, 구속영장을 신청한 것이 발단이었다. 국가보안법 사건을 심리하는 두 판사가 제주도 출장 시 사건담당 변호사로부터 일체의 비용을 제공받았다는 것이 검찰 측 주장이지만 시국사건에 무죄판결을 잇따라 내린 이범렬 판사를 겨냥한 꼬투리 잡기라는 사실을 알...
대한민국, 첫 하계올림픽 출전
↑ 런던 올림픽 개막식 주경기장으로 입장하는 한국 선수단. 손기정이 기수를 맡았다. 1948년 7월 29일, 59개국 선수 4000여 명이 참가한 제14회 런던올림픽이 개막됐다. 2차대전으로 두 차례나 대회가 무산되고 12년 만에 치러진 올림픽이었다. 한국을 비롯, 15개 신생국이 처음 참가한 것과 달리 전범국 일본·독일·이탈리아는 초청받지 못했다. 한국은 광복 후 처음 출전한 하계올림픽에 축구·복싱·역도 등 7개 종목 50명의 선수와 17명의 임원을 출전시켰다....
‘공포정치의 화신’ 로베스피에르 단두대에서 처형
프랑스 전역에 공포정치가 몰아치고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프랑스혁명이 발발(1789년)하고 루이16세가 처형(1793년)된 뒤였다. 권력을 장악한 자코뱅당의 산악파(과격파)가 혁명재판소를 설치하고 무소불위 권한을 부여한 공안·보안위원회를 구성한 것이 시작이었다. 공포정치로 30만∼80만 명이 체포되었고 이 가운데 4만∼5만 명이 처형되었다. 공포정치의 주역은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1758~1794)였다. 그는 프랑스 북부 아라스의 부르주아 집안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6살 때...
6·25 정전협정 조인
1953년 7월 27일 오전10시, 한국전쟁에 마침표가 찍혔다. 765차례의 회담 끝에 마침내 정전협정이 체결된 것이다. 난항을 보이던 정전 협상에 돌파구가 마련된 것은 스탈린 사후(1953년 3월) 공산 측이 부상병 포로를 우선교환하자는 데 합의했기 때문이다. 아이젠하워 대통령도 “정전협정 후라도 한국을 계속 방위하겠다”고 이승만 대통령을 안심시키며 협상을 촉구했다. 하지만 4월 12일 이 대통령이 ‘휴전반대 단독북진’을 주장하면서 협상에 차질이 빚어졌다. 6월 8일 미국과...
일본의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 록히드 사건으로 구속
↑ 다나카 가쿠에이 ‘록히드 사건’은 1976년 2월 4일 미 상원 다국적기업소위원회(일명 처치위원회)에서 “미국의 록히드사가 자사 비행기를 판매하기 위해 일본의 정부고관에 거액의 뇌물을 주었다”는 사실이 폭로되면서 불거졌다. 사건이 알려지자 일본 열도는 발칵 뒤집혔다. 여론은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들끓었고 국회는 청문회를 열어 관련자들을 소환했다. 검찰도 수사에 착수, 관련 기업인들을 구속하며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 총리를 압박했다. 미키 총리까지 나서...
나세르, 수에즈운하 국유화 선언
1956년 7월 26일 밤, 중동 지역을 20세기 후반 세계질서의 주요변수로 떠오르게 한 폭탄선언이 발표되었다. 이집트 대통령 가말 압델 나세르의 ‘수에즈운하 국유화’ 선언이었다. 나세르는 이날 10만 명의 군중이 운집한 혁명 4주년 기념연설에서 “수에즈 운하는 이집트의 희생으로 구축된 것임에도 이제까지 외국의 부당한 지배로 착취를 받아왔다.… 운하를 국유화하면 그 수입으로 애스완댐을 건설할 수 있다”며 수에즈운하 국유화를 선언했다. 나세르가 사실상 프랑스·영국이 소유해오고,...
[장상인의 일본 산책] 16세기 일본에 입국한 聖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의 기념비가 시모노세키(下關)에 있어 놀라움과 반가움 교차
↑시모노세키에 있는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기념비 by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아시아 선교의 아버지’ 시모노세키의 가라토(唐戶) 정류장에 내리면 붉은 벽돌의 서양식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1906년에 지어진 구 영국 영사관 건물이다. 국가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옛 모습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거기에서 육교를 건너면 가라토 시장으로 이어지는 해변이 나온다. 아침 이른 시각인데도 가라토 시장으로 가는 사람들이...
<韓日 청구권 협정> 빛과 그림자 ② 대법원의 ‘사법 자제 원칙’ 외면과 정부의 방관이 日 경제보복 빌미 줘
↑ 대법원 대법정 (출처 대법원) <한일 청구권 협정> 빛과 그림자 ① ☞ 클릭 by 金知知 ■한일 청구권 협정에 대한 국내의 상반된 평가 한일 청구권 협정 결과에 대한 평가는 협정 체결 당시부터 엇갈렸다. “박정희 정권이 경제개발 논리에 치우쳐 식민지 지배에 대해 일본으로부터 어떤 사죄와 배상도 받지 못한 채 졸속적이고 굴욕적으로 협정을 서둘렀다” “청구권이 정치적으로 타결되는 바람에 개인 청구권에 대한 권리 구제가 미흡했다”는 등의...
‘서대문형무소 1호 순국 사형수’는 애국지사 허위(許蔿)… 이낙연 국무총리 키르기스스탄에서 유족 만나 경의 표해
↑ 허위 선생의 초상(왼쪽)과 흉상 by 金知知 키르기스스탄을 공식방문 중인 이낙연 국무총리가 7월 18일 ‘서대문형무소 1호 사형수’였던 애국지사 허위(許蔿) 선생의 후손들을 만났다. 허위 선생은 1908년 의병투쟁으로 일제에 의해 사형을 당한 독립운동의 선구자다. 정부는 허위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2년 독립 유공 최고훈장인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고, 서울시는 1966년 선생이 진격한 길을 따라 청량리에서 동대문까지 3.3㎞ 구간을 왕산로로...
美·日의 가쓰라·태프트 밀약
청(淸)의 황준헌 참사관이 쓴 ‘조선책략’은 ‘미국과 연대(연미·聯美)’할 필요성을 고종에게 제안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에 대한 고종의 기대는 1882년 조선이 서구 열강과 맺은 첫 조약 ‘조·미 수호통상조약’ 체결로 구체화됐다. 일본의 야욕이 점차 노골화되자 미국을 향한 고종의 해바라기는 부쩍 심해졌다. 1905년 9월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 대통령의 딸 앨리스가 약혼자와 함께 해군대장을 대동하고 조선을 방문하자 민영환·이준·이상재 등이 앨리스를 몰래 만나 조선이 처한...
415명 판사 가운데 153명이 사표 제출한 사법부 파동
1971년 7월 28일, 사법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했다. 서울형사지법 판사 37명이 무더기로 사표를 낸 것이다. 서울지검이 이날 0시40분쯤 서울형사지법 이범렬 부장판사와 최공웅 판사, 이남영 서기 등 3명에게 뇌물수수혐의를 적용, 구속영장을 신청한 것이 발단이었다. 국가보안법 사건을 심리하는 두 판사가 제주도 출장 시 사건담당 변호사로부터 일체의 비용을 제공받았다는 것이 검찰 측 주장이지만 시국사건에 무죄판결을 잇따라 내린 이범렬 판사를 겨냥한 꼬투리 잡기라는 사실을 알...
대한민국, 첫 하계올림픽 출전
↑ 런던 올림픽 개막식 주경기장으로 입장하는 한국 선수단. 손기정이 기수를 맡았다. 1948년 7월 29일, 59개국 선수 4000여 명이 참가한 제14회 런던올림픽이 개막됐다. 2차대전으로 두 차례나 대회가 무산되고 12년 만에 치러진 올림픽이었다. 한국을 비롯, 15개 신생국이 처음 참가한 것과 달리 전범국 일본·독일·이탈리아는 초청받지 못했다. 한국은 광복 후 처음 출전한 하계올림픽에 축구·복싱·역도 등 7개 종목 50명의 선수와 17명의 임원을 출전시켰다....
‘공포정치의 화신’ 로베스피에르 단두대에서 처형
프랑스 전역에 공포정치가 몰아치고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프랑스혁명이 발발(1789년)하고 루이16세가 처형(1793년)된 뒤였다. 권력을 장악한 자코뱅당의 산악파(과격파)가 혁명재판소를 설치하고 무소불위 권한을 부여한 공안·보안위원회를 구성한 것이 시작이었다. 공포정치로 30만∼80만 명이 체포되었고 이 가운데 4만∼5만 명이 처형되었다. 공포정치의 주역은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1758~1794)였다. 그는 프랑스 북부 아라스의 부르주아 집안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6살 때...
6·25 정전협정 조인
1953년 7월 27일 오전10시, 한국전쟁에 마침표가 찍혔다. 765차례의 회담 끝에 마침내 정전협정이 체결된 것이다. 난항을 보이던 정전 협상에 돌파구가 마련된 것은 스탈린 사후(1953년 3월) 공산 측이 부상병 포로를 우선교환하자는 데 합의했기 때문이다. 아이젠하워 대통령도 “정전협정 후라도 한국을 계속 방위하겠다”고 이승만 대통령을 안심시키며 협상을 촉구했다. 하지만 4월 12일 이 대통령이 ‘휴전반대 단독북진’을 주장하면서 협상에 차질이 빚어졌다. 6월 8일 미국과...
일본의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 록히드 사건으로 구속
↑ 다나카 가쿠에이 ‘록히드 사건’은 1976년 2월 4일 미 상원 다국적기업소위원회(일명 처치위원회)에서 “미국의 록히드사가 자사 비행기를 판매하기 위해 일본의 정부고관에 거액의 뇌물을 주었다”는 사실이 폭로되면서 불거졌다. 사건이 알려지자 일본 열도는 발칵 뒤집혔다. 여론은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들끓었고 국회는 청문회를 열어 관련자들을 소환했다. 검찰도 수사에 착수, 관련 기업인들을 구속하며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 총리를 압박했다. 미키 총리까지 나서...
나세르, 수에즈운하 국유화 선언
1956년 7월 26일 밤, 중동 지역을 20세기 후반 세계질서의 주요변수로 떠오르게 한 폭탄선언이 발표되었다. 이집트 대통령 가말 압델 나세르의 ‘수에즈운하 국유화’ 선언이었다. 나세르는 이날 10만 명의 군중이 운집한 혁명 4주년 기념연설에서 “수에즈 운하는 이집트의 희생으로 구축된 것임에도 이제까지 외국의 부당한 지배로 착취를 받아왔다.… 운하를 국유화하면 그 수입으로 애스완댐을 건설할 수 있다”며 수에즈운하 국유화를 선언했다. 나세르가 사실상 프랑스·영국이 소유해오고,...
[장상인의 일본 산책] 16세기 일본에 입국한 聖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의 기념비가 시모노세키(下關)에 있어 놀라움과 반가움 교차
↑시모노세키에 있는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기념비 by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아시아 선교의 아버지’ 시모노세키의 가라토(唐戶) 정류장에 내리면 붉은 벽돌의 서양식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1906년에 지어진 구 영국 영사관 건물이다. 국가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옛 모습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거기에서 육교를 건너면 가라토 시장으로 이어지는 해변이 나온다. 아침 이른 시각인데도 가라토 시장으로 가는 사람들이...
<韓日 청구권 협정> 빛과 그림자 ② 대법원의 ‘사법 자제 원칙’ 외면과 정부의 방관이 日 경제보복 빌미 줘
↑ 대법원 대법정 (출처 대법원) <한일 청구권 협정> 빛과 그림자 ① ☞ 클릭 by 金知知 ■한일 청구권 협정에 대한 국내의 상반된 평가 한일 청구권 협정 결과에 대한 평가는 협정 체결 당시부터 엇갈렸다. “박정희 정권이 경제개발 논리에 치우쳐 식민지 지배에 대해 일본으로부터 어떤 사죄와 배상도 받지 못한 채 졸속적이고 굴욕적으로 협정을 서둘렀다” “청구권이 정치적으로 타결되는 바람에 개인 청구권에 대한 권리 구제가 미흡했다”는 등의...
‘서대문형무소 1호 순국 사형수’는 애국지사 허위(許蔿)… 이낙연 국무총리 키르기스스탄에서 유족 만나 경의 표해
↑ 허위 선생의 초상(왼쪽)과 흉상 by 金知知 키르기스스탄을 공식방문 중인 이낙연 국무총리가 7월 18일 ‘서대문형무소 1호 사형수’였던 애국지사 허위(許蔿) 선생의 후손들을 만났다. 허위 선생은 1908년 의병투쟁으로 일제에 의해 사형을 당한 독립운동의 선구자다. 정부는 허위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2년 독립 유공 최고훈장인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고, 서울시는 1966년 선생이 진격한 길을 따라 청량리에서 동대문까지 3.3㎞ 구간을 왕산로로...
美·日의 가쓰라·태프트 밀약
청(淸)의 황준헌 참사관이 쓴 ‘조선책략’은 ‘미국과 연대(연미·聯美)’할 필요성을 고종에게 제안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에 대한 고종의 기대는 1882년 조선이 서구 열강과 맺은 첫 조약 ‘조·미 수호통상조약’ 체결로 구체화됐다. 일본의 야욕이 점차 노골화되자 미국을 향한 고종의 해바라기는 부쩍 심해졌다. 1905년 9월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 대통령의 딸 앨리스가 약혼자와 함께 해군대장을 대동하고 조선을 방문하자 민영환·이준·이상재 등이 앨리스를 몰래 만나 조선이 처한...
415명 판사 가운데 153명이 사표 제출한 사법부 파동
1971년 7월 28일, 사법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했다. 서울형사지법 판사 37명이 무더기로 사표를 낸 것이다. 서울지검이 이날 0시40분쯤 서울형사지법 이범렬 부장판사와 최공웅 판사, 이남영 서기 등 3명에게 뇌물수수혐의를 적용, 구속영장을 신청한 것이 발단이었다. 국가보안법 사건을 심리하는 두 판사가 제주도 출장 시 사건담당 변호사로부터 일체의 비용을 제공받았다는 것이 검찰 측 주장이지만 시국사건에 무죄판결을 잇따라 내린 이범렬 판사를 겨냥한 꼬투리 잡기라는 사실을 알...
대한민국, 첫 하계올림픽 출전
↑ 런던 올림픽 개막식 주경기장으로 입장하는 한국 선수단. 손기정이 기수를 맡았다. 1948년 7월 29일, 59개국 선수 4000여 명이 참가한 제14회 런던올림픽이 개막됐다. 2차대전으로 두 차례나 대회가 무산되고 12년 만에 치러진 올림픽이었다. 한국을 비롯, 15개 신생국이 처음 참가한 것과 달리 전범국 일본·독일·이탈리아는 초청받지 못했다. 한국은 광복 후 처음 출전한 하계올림픽에 축구·복싱·역도 등 7개 종목 50명의 선수와 17명의 임원을 출전시켰다....
‘공포정치의 화신’ 로베스피에르 단두대에서 처형
프랑스 전역에 공포정치가 몰아치고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프랑스혁명이 발발(1789년)하고 루이16세가 처형(1793년)된 뒤였다. 권력을 장악한 자코뱅당의 산악파(과격파)가 혁명재판소를 설치하고 무소불위 권한을 부여한 공안·보안위원회를 구성한 것이 시작이었다. 공포정치로 30만∼80만 명이 체포되었고 이 가운데 4만∼5만 명이 처형되었다. 공포정치의 주역은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1758~1794)였다. 그는 프랑스 북부 아라스의 부르주아 집안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6살 때...
6·25 정전협정 조인
1953년 7월 27일 오전10시, 한국전쟁에 마침표가 찍혔다. 765차례의 회담 끝에 마침내 정전협정이 체결된 것이다. 난항을 보이던 정전 협상에 돌파구가 마련된 것은 스탈린 사후(1953년 3월) 공산 측이 부상병 포로를 우선교환하자는 데 합의했기 때문이다. 아이젠하워 대통령도 “정전협정 후라도 한국을 계속 방위하겠다”고 이승만 대통령을 안심시키며 협상을 촉구했다. 하지만 4월 12일 이 대통령이 ‘휴전반대 단독북진’을 주장하면서 협상에 차질이 빚어졌다. 6월 8일 미국과...
일본의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 록히드 사건으로 구속
↑ 다나카 가쿠에이 ‘록히드 사건’은 1976년 2월 4일 미 상원 다국적기업소위원회(일명 처치위원회)에서 “미국의 록히드사가 자사 비행기를 판매하기 위해 일본의 정부고관에 거액의 뇌물을 주었다”는 사실이 폭로되면서 불거졌다. 사건이 알려지자 일본 열도는 발칵 뒤집혔다. 여론은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들끓었고 국회는 청문회를 열어 관련자들을 소환했다. 검찰도 수사에 착수, 관련 기업인들을 구속하며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 총리를 압박했다. 미키 총리까지 나서...
나세르, 수에즈운하 국유화 선언
1956년 7월 26일 밤, 중동 지역을 20세기 후반 세계질서의 주요변수로 떠오르게 한 폭탄선언이 발표되었다. 이집트 대통령 가말 압델 나세르의 ‘수에즈운하 국유화’ 선언이었다. 나세르는 이날 10만 명의 군중이 운집한 혁명 4주년 기념연설에서 “수에즈 운하는 이집트의 희생으로 구축된 것임에도 이제까지 외국의 부당한 지배로 착취를 받아왔다.… 운하를 국유화하면 그 수입으로 애스완댐을 건설할 수 있다”며 수에즈운하 국유화를 선언했다. 나세르가 사실상 프랑스·영국이 소유해오고,...
[장상인의 일본 산책] 16세기 일본에 입국한 聖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의 기념비가 시모노세키(下關)에 있어 놀라움과 반가움 교차
↑시모노세키에 있는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기념비 by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아시아 선교의 아버지’ 시모노세키의 가라토(唐戶) 정류장에 내리면 붉은 벽돌의 서양식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1906년에 지어진 구 영국 영사관 건물이다. 국가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옛 모습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거기에서 육교를 건너면 가라토 시장으로 이어지는 해변이 나온다. 아침 이른 시각인데도 가라토 시장으로 가는 사람들이...
<韓日 청구권 협정> 빛과 그림자 ② 대법원의 ‘사법 자제 원칙’ 외면과 정부의 방관이 日 경제보복 빌미 줘
↑ 대법원 대법정 (출처 대법원) <한일 청구권 협정> 빛과 그림자 ① ☞ 클릭 by 金知知 ■한일 청구권 협정에 대한 국내의 상반된 평가 한일 청구권 협정 결과에 대한 평가는 협정 체결 당시부터 엇갈렸다. “박정희 정권이 경제개발 논리에 치우쳐 식민지 지배에 대해 일본으로부터 어떤 사죄와 배상도 받지 못한 채 졸속적이고 굴욕적으로 협정을 서둘렀다” “청구권이 정치적으로 타결되는 바람에 개인 청구권에 대한 권리 구제가 미흡했다”는 등의...
‘서대문형무소 1호 순국 사형수’는 애국지사 허위(許蔿)… 이낙연 국무총리 키르기스스탄에서 유족 만나 경의 표해
↑ 허위 선생의 초상(왼쪽)과 흉상 by 金知知 키르기스스탄을 공식방문 중인 이낙연 국무총리가 7월 18일 ‘서대문형무소 1호 사형수’였던 애국지사 허위(許蔿) 선생의 후손들을 만났다. 허위 선생은 1908년 의병투쟁으로 일제에 의해 사형을 당한 독립운동의 선구자다. 정부는 허위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2년 독립 유공 최고훈장인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고, 서울시는 1966년 선생이 진격한 길을 따라 청량리에서 동대문까지 3.3㎞ 구간을 왕산로로...
美·日의 가쓰라·태프트 밀약
청(淸)의 황준헌 참사관이 쓴 ‘조선책략’은 ‘미국과 연대(연미·聯美)’할 필요성을 고종에게 제안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에 대한 고종의 기대는 1882년 조선이 서구 열강과 맺은 첫 조약 ‘조·미 수호통상조약’ 체결로 구체화됐다. 일본의 야욕이 점차 노골화되자 미국을 향한 고종의 해바라기는 부쩍 심해졌다. 1905년 9월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 대통령의 딸 앨리스가 약혼자와 함께 해군대장을 대동하고 조선을 방문하자 민영환·이준·이상재 등이 앨리스를 몰래 만나 조선이 처한...
415명 판사 가운데 153명이 사표 제출한 사법부 파동
1971년 7월 28일, 사법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했다. 서울형사지법 판사 37명이 무더기로 사표를 낸 것이다. 서울지검이 이날 0시40분쯤 서울형사지법 이범렬 부장판사와 최공웅 판사, 이남영 서기 등 3명에게 뇌물수수혐의를 적용, 구속영장을 신청한 것이 발단이었다. 국가보안법 사건을 심리하는 두 판사가 제주도 출장 시 사건담당 변호사로부터 일체의 비용을 제공받았다는 것이 검찰 측 주장이지만 시국사건에 무죄판결을 잇따라 내린 이범렬 판사를 겨냥한 꼬투리 잡기라는 사실을 알...
대한민국, 첫 하계올림픽 출전
↑ 런던 올림픽 개막식 주경기장으로 입장하는 한국 선수단. 손기정이 기수를 맡았다. 1948년 7월 29일, 59개국 선수 4000여 명이 참가한 제14회 런던올림픽이 개막됐다. 2차대전으로 두 차례나 대회가 무산되고 12년 만에 치러진 올림픽이었다. 한국을 비롯, 15개 신생국이 처음 참가한 것과 달리 전범국 일본·독일·이탈리아는 초청받지 못했다. 한국은 광복 후 처음 출전한 하계올림픽에 축구·복싱·역도 등 7개 종목 50명의 선수와 17명의 임원을 출전시켰다....
‘공포정치의 화신’ 로베스피에르 단두대에서 처형
프랑스 전역에 공포정치가 몰아치고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프랑스혁명이 발발(1789년)하고 루이16세가 처형(1793년)된 뒤였다. 권력을 장악한 자코뱅당의 산악파(과격파)가 혁명재판소를 설치하고 무소불위 권한을 부여한 공안·보안위원회를 구성한 것이 시작이었다. 공포정치로 30만∼80만 명이 체포되었고 이 가운데 4만∼5만 명이 처형되었다. 공포정치의 주역은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1758~1794)였다. 그는 프랑스 북부 아라스의 부르주아 집안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6살 때...
6·25 정전협정 조인
1953년 7월 27일 오전10시, 한국전쟁에 마침표가 찍혔다. 765차례의 회담 끝에 마침내 정전협정이 체결된 것이다. 난항을 보이던 정전 협상에 돌파구가 마련된 것은 스탈린 사후(1953년 3월) 공산 측이 부상병 포로를 우선교환하자는 데 합의했기 때문이다. 아이젠하워 대통령도 “정전협정 후라도 한국을 계속 방위하겠다”고 이승만 대통령을 안심시키며 협상을 촉구했다. 하지만 4월 12일 이 대통령이 ‘휴전반대 단독북진’을 주장하면서 협상에 차질이 빚어졌다. 6월 8일 미국과...
일본의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 록히드 사건으로 구속
↑ 다나카 가쿠에이 ‘록히드 사건’은 1976년 2월 4일 미 상원 다국적기업소위원회(일명 처치위원회)에서 “미국의 록히드사가 자사 비행기를 판매하기 위해 일본의 정부고관에 거액의 뇌물을 주었다”는 사실이 폭로되면서 불거졌다. 사건이 알려지자 일본 열도는 발칵 뒤집혔다. 여론은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들끓었고 국회는 청문회를 열어 관련자들을 소환했다. 검찰도 수사에 착수, 관련 기업인들을 구속하며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 총리를 압박했다. 미키 총리까지 나서...
나세르, 수에즈운하 국유화 선언
1956년 7월 26일 밤, 중동 지역을 20세기 후반 세계질서의 주요변수로 떠오르게 한 폭탄선언이 발표되었다. 이집트 대통령 가말 압델 나세르의 ‘수에즈운하 국유화’ 선언이었다. 나세르는 이날 10만 명의 군중이 운집한 혁명 4주년 기념연설에서 “수에즈 운하는 이집트의 희생으로 구축된 것임에도 이제까지 외국의 부당한 지배로 착취를 받아왔다.… 운하를 국유화하면 그 수입으로 애스완댐을 건설할 수 있다”며 수에즈운하 국유화를 선언했다. 나세르가 사실상 프랑스·영국이 소유해오고,...
[장상인의 일본 산책] 16세기 일본에 입국한 聖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의 기념비가 시모노세키(下關)에 있어 놀라움과 반가움 교차
↑시모노세키에 있는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기념비 by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아시아 선교의 아버지’ 시모노세키의 가라토(唐戶) 정류장에 내리면 붉은 벽돌의 서양식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1906년에 지어진 구 영국 영사관 건물이다. 국가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옛 모습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거기에서 육교를 건너면 가라토 시장으로 이어지는 해변이 나온다. 아침 이른 시각인데도 가라토 시장으로 가는 사람들이...
<韓日 청구권 협정> 빛과 그림자 ② 대법원의 ‘사법 자제 원칙’ 외면과 정부의 방관이 日 경제보복 빌미 줘
↑ 대법원 대법정 (출처 대법원) <한일 청구권 협정> 빛과 그림자 ① ☞ 클릭 by 金知知 ■한일 청구권 협정에 대한 국내의 상반된 평가 한일 청구권 협정 결과에 대한 평가는 협정 체결 당시부터 엇갈렸다. “박정희 정권이 경제개발 논리에 치우쳐 식민지 지배에 대해 일본으로부터 어떤 사죄와 배상도 받지 못한 채 졸속적이고 굴욕적으로 협정을 서둘렀다” “청구권이 정치적으로 타결되는 바람에 개인 청구권에 대한 권리 구제가 미흡했다”는 등의...
‘서대문형무소 1호 순국 사형수’는 애국지사 허위(許蔿)… 이낙연 국무총리 키르기스스탄에서 유족 만나 경의 표해
↑ 허위 선생의 초상(왼쪽)과 흉상 by 金知知 키르기스스탄을 공식방문 중인 이낙연 국무총리가 7월 18일 ‘서대문형무소 1호 사형수’였던 애국지사 허위(許蔿) 선생의 후손들을 만났다. 허위 선생은 1908년 의병투쟁으로 일제에 의해 사형을 당한 독립운동의 선구자다. 정부는 허위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2년 독립 유공 최고훈장인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고, 서울시는 1966년 선생이 진격한 길을 따라 청량리에서 동대문까지 3.3㎞ 구간을 왕산로로...
美·日의 가쓰라·태프트 밀약
청(淸)의 황준헌 참사관이 쓴 ‘조선책략’은 ‘미국과 연대(연미·聯美)’할 필요성을 고종에게 제안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에 대한 고종의 기대는 1882년 조선이 서구 열강과 맺은 첫 조약 ‘조·미 수호통상조약’ 체결로 구체화됐다. 일본의 야욕이 점차 노골화되자 미국을 향한 고종의 해바라기는 부쩍 심해졌다. 1905년 9월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 대통령의 딸 앨리스가 약혼자와 함께 해군대장을 대동하고 조선을 방문하자 민영환·이준·이상재 등이 앨리스를 몰래 만나 조선이 처한...
415명 판사 가운데 153명이 사표 제출한 사법부 파동
1971년 7월 28일, 사법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했다. 서울형사지법 판사 37명이 무더기로 사표를 낸 것이다. 서울지검이 이날 0시40분쯤 서울형사지법 이범렬 부장판사와 최공웅 판사, 이남영 서기 등 3명에게 뇌물수수혐의를 적용, 구속영장을 신청한 것이 발단이었다. 국가보안법 사건을 심리하는 두 판사가 제주도 출장 시 사건담당 변호사로부터 일체의 비용을 제공받았다는 것이 검찰 측 주장이지만 시국사건에 무죄판결을 잇따라 내린 이범렬 판사를 겨냥한 꼬투리 잡기라는 사실을 알...
대한민국, 첫 하계올림픽 출전
↑ 런던 올림픽 개막식 주경기장으로 입장하는 한국 선수단. 손기정이 기수를 맡았다. 1948년 7월 29일, 59개국 선수 4000여 명이 참가한 제14회 런던올림픽이 개막됐다. 2차대전으로 두 차례나 대회가 무산되고 12년 만에 치러진 올림픽이었다. 한국을 비롯, 15개 신생국이 처음 참가한 것과 달리 전범국 일본·독일·이탈리아는 초청받지 못했다. 한국은 광복 후 처음 출전한 하계올림픽에 축구·복싱·역도 등 7개 종목 50명의 선수와 17명의 임원을 출전시켰다....
‘공포정치의 화신’ 로베스피에르 단두대에서 처형
프랑스 전역에 공포정치가 몰아치고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프랑스혁명이 발발(1789년)하고 루이16세가 처형(1793년)된 뒤였다. 권력을 장악한 자코뱅당의 산악파(과격파)가 혁명재판소를 설치하고 무소불위 권한을 부여한 공안·보안위원회를 구성한 것이 시작이었다. 공포정치로 30만∼80만 명이 체포되었고 이 가운데 4만∼5만 명이 처형되었다. 공포정치의 주역은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1758~1794)였다. 그는 프랑스 북부 아라스의 부르주아 집안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6살 때...
6·25 정전협정 조인
1953년 7월 27일 오전10시, 한국전쟁에 마침표가 찍혔다. 765차례의 회담 끝에 마침내 정전협정이 체결된 것이다. 난항을 보이던 정전 협상에 돌파구가 마련된 것은 스탈린 사후(1953년 3월) 공산 측이 부상병 포로를 우선교환하자는 데 합의했기 때문이다. 아이젠하워 대통령도 “정전협정 후라도 한국을 계속 방위하겠다”고 이승만 대통령을 안심시키며 협상을 촉구했다. 하지만 4월 12일 이 대통령이 ‘휴전반대 단독북진’을 주장하면서 협상에 차질이 빚어졌다. 6월 8일 미국과...
일본의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 록히드 사건으로 구속
↑ 다나카 가쿠에이 ‘록히드 사건’은 1976년 2월 4일 미 상원 다국적기업소위원회(일명 처치위원회)에서 “미국의 록히드사가 자사 비행기를 판매하기 위해 일본의 정부고관에 거액의 뇌물을 주었다”는 사실이 폭로되면서 불거졌다. 사건이 알려지자 일본 열도는 발칵 뒤집혔다. 여론은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들끓었고 국회는 청문회를 열어 관련자들을 소환했다. 검찰도 수사에 착수, 관련 기업인들을 구속하며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 총리를 압박했다. 미키 총리까지 나서...
나세르, 수에즈운하 국유화 선언
1956년 7월 26일 밤, 중동 지역을 20세기 후반 세계질서의 주요변수로 떠오르게 한 폭탄선언이 발표되었다. 이집트 대통령 가말 압델 나세르의 ‘수에즈운하 국유화’ 선언이었다. 나세르는 이날 10만 명의 군중이 운집한 혁명 4주년 기념연설에서 “수에즈 운하는 이집트의 희생으로 구축된 것임에도 이제까지 외국의 부당한 지배로 착취를 받아왔다.… 운하를 국유화하면 그 수입으로 애스완댐을 건설할 수 있다”며 수에즈운하 국유화를 선언했다. 나세르가 사실상 프랑스·영국이 소유해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