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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달러 교환정지 선언한 ‘닉슨 쇼크’ 발표
↑ 리처드 닉슨 1971년 8월 15일, 닉슨 미 대통령이 “달러화 방위를 위해 달러화의 금태환(金兌換)을 90일간 잠정 중단한다”고 선언함으로써 세계가 겉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져들었다. 이른바 ‘닉슨 쇼크’였다. “달러를 더 이상 금으로 바꿔줄 수 없다”는 닉슨의 선언은 4반세기 동안 세계 경제를 지탱해온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를 의미했다. ‘브레튼우즈 체제’는 1944년 7월 미국 브레튼우즈에 모인 연합국 대표들이 ‘미국은 달러를 금으로 바꿔주고 다른...
美 우드스탁 축제
미국이 베트남 전쟁의 수렁 속으로 한창 빠져들고 있던 1969년 8월 15일, 사랑과 평화를 호소하는 젊은이들이 뉴욕 북서쪽의 작은 마을 베델의 한 농장에 몰려들었다. 훗날 ‘우드스탁 축제’로 불린 ‘평화와 음악의 사흘’이라는 록 축제가 15일부터 3일간 열리고 있는 곳이었다. 참가자는 당초 주최 측이 예상한 5만 명을 훨씬 뛰어넘어 40만 명을 헤아렸다. 대회장 주변 32㎞는 이들이 타고온 자동차·자전거 등으로 가득 메워졌다. 조운 바에즈, 재니스 조플린, 지미 헨드릭스 등...
레흐 바웬사, 폴란드의 레닌조선소 파업위원장에 선출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성경구절(욥기 8장7절)에 쓰여진 것처럼 발트해 연안 항구도시 그단스크의 레닌조선소 노동자들도 처음에는 힘이 미약했다. 재정파탄에 직면한 폴란드 정부가 1980년 7월 1일 고기값을 한꺼번에 30∼60%이나 올린 것이 불씨였다. 노동자들은 파업으로 항의했다. 바르샤바 자동차공장에서 처음 불을 지핀 파업이 곧 폴란드 전역으로 확산되긴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초반에 보였던 노도와도 같은 분위기가 점차 사그라들 조짐을 보였다....
중앙정보부, 인혁당 사건 발표
1964년 8월 14일,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인혁당 사건’의 전모를 발표했다. 요지는 “북한 노동당의 지령을 받아 조직된 인민혁명당이 국가변란을 기도했다”는 것이다. “57명 중 41명을 검거하고 나머지 16명은 수배중”이라는 발표도 이어졌다. ‘6·3계엄령’이 내려지고 40일이 지난 뒤였다. 그러나 발표 20일 뒤, 4명의 공안부 검사가 사건의 기소를 거부하고 이 가운데 3명이 사표를 제출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사건의 진실성에 의혹이 제기됐다. 검찰은 숙직 검사까지...
심훈의 ‘상록수’, 동아일보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
35년의 짧은 생(1901∼1936)이었지만 심훈은 흐트러짐이 없었고, 작품에는 늘 강한 민족의식이 배어있었다. 재능 가운데 먼저 빛을 발한 쪽은 영화였다. 영화 ‘장한몽’에 이수일 역으로 출연했고, 최초의 영화소설 ‘탈춤’(1926년)을 동아일보에 연재하기도 했다. 일본에서 정통으로 영화를 공부한 뒤에는 원작·각색·감독으로 영화 ‘먼동이 틀 때’를 제작해 큰 성공을 거뒀으나 ‘어둠에서 어둠으로’라는 영화의 원제(原題)가 물의를 빚자 영화계를 떠났다. 심훈의 타고난 운명은...
동독, 베를린 장벽 설치
1961년 8월 13일, 막 잠에서 깬 서베를린 시민들은 눈앞에 펼쳐진 낯선 광경에 경악을 금치못했다. 밤새 동·서 베를린을 잇는 13개 도로와 80개 통로에 철조망이 쳐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입구마다 탱크와 장갑차가 배치돼 통행을 가로막고 있었다. 전날 밤부터 이날 새벽까지 쳐진 철조망 길이는 45㎞. 곧 150㎞로 늘어난 철책에는 전류가 흐르고 콘크리트와 붉은 벽돌로 된 높이 2m·폭 2m의 장벽은 동족간의 이동을 금지시켰다. 지뢰가 부설됐고 무장군인과 군용견까지...
윤보선, 국회에서 4대 대통령으로 선출돼
1960년 4·19의거 후 정권을 맡을 정치세력으로는 민주당이 유일했다. 1960년 7월 29일 치러진 민·참의원 선거는 민주당이 국민들로부터 전폭적인 신뢰를 받고 있음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민의원 219개 선거구에서 무려 172석(78.5%)을 차지하며 기염을 토했지만 민주당 내 신·구파가 우열을 가리지 못할 만큼 팽팽한 의석 분포를 이룬게 문제였다. 갈등이 내연하는 가운데 신·구파 모두 내각책임제에서 국정을 실질적으로 책임지는 국무총리를 차지하기 위해 암중모색에 들어갔다....
전쟁 희생자 보호 위한 ‘제네바 협약’ 체결
1949년 8월 12일, 전쟁 희생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제네바 협약(Geneva Conventions)’이 체결됐다. 1년 전 8월 23일~30일에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국제적십자회의에서 제정된 협약안이 최종적으로 채택된 것이다. 국제적으로는 66개 국의 조인을 거쳐 1950년 10월 21일부터 발효됐고, 우리나라에서는 1966년에 조인·발효됐다. 제네바 협약 체결과정은 적십자 역사와도 관련이 깊다. 국제적십자를 창시한 앙리 뒤낭이 제안해 이뤄진 첫...
신민당사 농성여공 강제진압 당해
1979년 8월 11일 새벽2시, 1000여 명의 경찰이 신민당사 정문을 부수고 침입, 이틀째 철야농성중인 179명의 YH무역 여공들을 강제해산시켰다. 여공들이 “못간다. 죽어도 여기서 죽겠다”고 울부짖으며 반항하고 일부 여공들은 유리창과 사이다 병을 깨뜨려 “자살하겠다”며 창가로 달려갔으나 곤봉을 휘두르고 주먹과 발길질을 해대는 억센 경찰들 앞에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경찰이 여공들과 당직자들을 무차별로 구타하며 ‘닭장차’에 쑤셔넣는 과정에서 100여 명이 부상하고...
美 와츠 흑인폭동
인종차별을 금한 미 역사상 가장 획기적인 인권법안인 ‘신 공민법’(1964년 7월 2일)과 ‘흑인투표법’(1965년 8월 6일)이 공포됐지만 오랫동안 쌓여온 흑백 간의 갈등과 대립이 하루아침에 사라질리 없었다. 더구나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비폭력 투쟁이 수동적이고 비효과적이라고 생각한 흑인들 사이에서는 폭력에서 해결책을 찾으려는 분위기가 우세했다. 1965년 8월 11일, 캘리포니아 순찰대 소속 백인 경찰 2명이 로스엔젤레스 흑인거주지 와츠 부근에서 음주운전을 한 21세 흑인...
금·달러 교환정지 선언한 ‘닉슨 쇼크’ 발표
↑ 리처드 닉슨 1971년 8월 15일, 닉슨 미 대통령이 “달러화 방위를 위해 달러화의 금태환(金兌換)을 90일간 잠정 중단한다”고 선언함으로써 세계가 겉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져들었다. 이른바 ‘닉슨 쇼크’였다. “달러를 더 이상 금으로 바꿔줄 수 없다”는 닉슨의 선언은 4반세기 동안 세계 경제를 지탱해온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를 의미했다. ‘브레튼우즈 체제’는 1944년 7월 미국 브레튼우즈에 모인 연합국 대표들이 ‘미국은 달러를 금으로 바꿔주고 다른...
美 우드스탁 축제
미국이 베트남 전쟁의 수렁 속으로 한창 빠져들고 있던 1969년 8월 15일, 사랑과 평화를 호소하는 젊은이들이 뉴욕 북서쪽의 작은 마을 베델의 한 농장에 몰려들었다. 훗날 ‘우드스탁 축제’로 불린 ‘평화와 음악의 사흘’이라는 록 축제가 15일부터 3일간 열리고 있는 곳이었다. 참가자는 당초 주최 측이 예상한 5만 명을 훨씬 뛰어넘어 40만 명을 헤아렸다. 대회장 주변 32㎞는 이들이 타고온 자동차·자전거 등으로 가득 메워졌다. 조운 바에즈, 재니스 조플린, 지미 헨드릭스 등...
레흐 바웬사, 폴란드의 레닌조선소 파업위원장에 선출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성경구절(욥기 8장7절)에 쓰여진 것처럼 발트해 연안 항구도시 그단스크의 레닌조선소 노동자들도 처음에는 힘이 미약했다. 재정파탄에 직면한 폴란드 정부가 1980년 7월 1일 고기값을 한꺼번에 30∼60%이나 올린 것이 불씨였다. 노동자들은 파업으로 항의했다. 바르샤바 자동차공장에서 처음 불을 지핀 파업이 곧 폴란드 전역으로 확산되긴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초반에 보였던 노도와도 같은 분위기가 점차 사그라들 조짐을 보였다....
중앙정보부, 인혁당 사건 발표
1964년 8월 14일,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인혁당 사건’의 전모를 발표했다. 요지는 “북한 노동당의 지령을 받아 조직된 인민혁명당이 국가변란을 기도했다”는 것이다. “57명 중 41명을 검거하고 나머지 16명은 수배중”이라는 발표도 이어졌다. ‘6·3계엄령’이 내려지고 40일이 지난 뒤였다. 그러나 발표 20일 뒤, 4명의 공안부 검사가 사건의 기소를 거부하고 이 가운데 3명이 사표를 제출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사건의 진실성에 의혹이 제기됐다. 검찰은 숙직 검사까지...
심훈의 ‘상록수’, 동아일보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
35년의 짧은 생(1901∼1936)이었지만 심훈은 흐트러짐이 없었고, 작품에는 늘 강한 민족의식이 배어있었다. 재능 가운데 먼저 빛을 발한 쪽은 영화였다. 영화 ‘장한몽’에 이수일 역으로 출연했고, 최초의 영화소설 ‘탈춤’(1926년)을 동아일보에 연재하기도 했다. 일본에서 정통으로 영화를 공부한 뒤에는 원작·각색·감독으로 영화 ‘먼동이 틀 때’를 제작해 큰 성공을 거뒀으나 ‘어둠에서 어둠으로’라는 영화의 원제(原題)가 물의를 빚자 영화계를 떠났다. 심훈의 타고난 운명은...
동독, 베를린 장벽 설치
1961년 8월 13일, 막 잠에서 깬 서베를린 시민들은 눈앞에 펼쳐진 낯선 광경에 경악을 금치못했다. 밤새 동·서 베를린을 잇는 13개 도로와 80개 통로에 철조망이 쳐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입구마다 탱크와 장갑차가 배치돼 통행을 가로막고 있었다. 전날 밤부터 이날 새벽까지 쳐진 철조망 길이는 45㎞. 곧 150㎞로 늘어난 철책에는 전류가 흐르고 콘크리트와 붉은 벽돌로 된 높이 2m·폭 2m의 장벽은 동족간의 이동을 금지시켰다. 지뢰가 부설됐고 무장군인과 군용견까지...
윤보선, 국회에서 4대 대통령으로 선출돼
1960년 4·19의거 후 정권을 맡을 정치세력으로는 민주당이 유일했다. 1960년 7월 29일 치러진 민·참의원 선거는 민주당이 국민들로부터 전폭적인 신뢰를 받고 있음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민의원 219개 선거구에서 무려 172석(78.5%)을 차지하며 기염을 토했지만 민주당 내 신·구파가 우열을 가리지 못할 만큼 팽팽한 의석 분포를 이룬게 문제였다. 갈등이 내연하는 가운데 신·구파 모두 내각책임제에서 국정을 실질적으로 책임지는 국무총리를 차지하기 위해 암중모색에 들어갔다....
전쟁 희생자 보호 위한 ‘제네바 협약’ 체결
1949년 8월 12일, 전쟁 희생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제네바 협약(Geneva Conventions)’이 체결됐다. 1년 전 8월 23일~30일에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국제적십자회의에서 제정된 협약안이 최종적으로 채택된 것이다. 국제적으로는 66개 국의 조인을 거쳐 1950년 10월 21일부터 발효됐고, 우리나라에서는 1966년에 조인·발효됐다. 제네바 협약 체결과정은 적십자 역사와도 관련이 깊다. 국제적십자를 창시한 앙리 뒤낭이 제안해 이뤄진 첫...
신민당사 농성여공 강제진압 당해
1979년 8월 11일 새벽2시, 1000여 명의 경찰이 신민당사 정문을 부수고 침입, 이틀째 철야농성중인 179명의 YH무역 여공들을 강제해산시켰다. 여공들이 “못간다. 죽어도 여기서 죽겠다”고 울부짖으며 반항하고 일부 여공들은 유리창과 사이다 병을 깨뜨려 “자살하겠다”며 창가로 달려갔으나 곤봉을 휘두르고 주먹과 발길질을 해대는 억센 경찰들 앞에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경찰이 여공들과 당직자들을 무차별로 구타하며 ‘닭장차’에 쑤셔넣는 과정에서 100여 명이 부상하고...
美 와츠 흑인폭동
인종차별을 금한 미 역사상 가장 획기적인 인권법안인 ‘신 공민법’(1964년 7월 2일)과 ‘흑인투표법’(1965년 8월 6일)이 공포됐지만 오랫동안 쌓여온 흑백 간의 갈등과 대립이 하루아침에 사라질리 없었다. 더구나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비폭력 투쟁이 수동적이고 비효과적이라고 생각한 흑인들 사이에서는 폭력에서 해결책을 찾으려는 분위기가 우세했다. 1965년 8월 11일, 캘리포니아 순찰대 소속 백인 경찰 2명이 로스엔젤레스 흑인거주지 와츠 부근에서 음주운전을 한 21세 흑인...
금·달러 교환정지 선언한 ‘닉슨 쇼크’ 발표
↑ 리처드 닉슨 1971년 8월 15일, 닉슨 미 대통령이 “달러화 방위를 위해 달러화의 금태환(金兌換)을 90일간 잠정 중단한다”고 선언함으로써 세계가 겉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져들었다. 이른바 ‘닉슨 쇼크’였다. “달러를 더 이상 금으로 바꿔줄 수 없다”는 닉슨의 선언은 4반세기 동안 세계 경제를 지탱해온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를 의미했다. ‘브레튼우즈 체제’는 1944년 7월 미국 브레튼우즈에 모인 연합국 대표들이 ‘미국은 달러를 금으로 바꿔주고 다른...
美 우드스탁 축제
미국이 베트남 전쟁의 수렁 속으로 한창 빠져들고 있던 1969년 8월 15일, 사랑과 평화를 호소하는 젊은이들이 뉴욕 북서쪽의 작은 마을 베델의 한 농장에 몰려들었다. 훗날 ‘우드스탁 축제’로 불린 ‘평화와 음악의 사흘’이라는 록 축제가 15일부터 3일간 열리고 있는 곳이었다. 참가자는 당초 주최 측이 예상한 5만 명을 훨씬 뛰어넘어 40만 명을 헤아렸다. 대회장 주변 32㎞는 이들이 타고온 자동차·자전거 등으로 가득 메워졌다. 조운 바에즈, 재니스 조플린, 지미 헨드릭스 등...
레흐 바웬사, 폴란드의 레닌조선소 파업위원장에 선출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성경구절(욥기 8장7절)에 쓰여진 것처럼 발트해 연안 항구도시 그단스크의 레닌조선소 노동자들도 처음에는 힘이 미약했다. 재정파탄에 직면한 폴란드 정부가 1980년 7월 1일 고기값을 한꺼번에 30∼60%이나 올린 것이 불씨였다. 노동자들은 파업으로 항의했다. 바르샤바 자동차공장에서 처음 불을 지핀 파업이 곧 폴란드 전역으로 확산되긴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초반에 보였던 노도와도 같은 분위기가 점차 사그라들 조짐을 보였다....
중앙정보부, 인혁당 사건 발표
1964년 8월 14일,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인혁당 사건’의 전모를 발표했다. 요지는 “북한 노동당의 지령을 받아 조직된 인민혁명당이 국가변란을 기도했다”는 것이다. “57명 중 41명을 검거하고 나머지 16명은 수배중”이라는 발표도 이어졌다. ‘6·3계엄령’이 내려지고 40일이 지난 뒤였다. 그러나 발표 20일 뒤, 4명의 공안부 검사가 사건의 기소를 거부하고 이 가운데 3명이 사표를 제출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사건의 진실성에 의혹이 제기됐다. 검찰은 숙직 검사까지...
심훈의 ‘상록수’, 동아일보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
35년의 짧은 생(1901∼1936)이었지만 심훈은 흐트러짐이 없었고, 작품에는 늘 강한 민족의식이 배어있었다. 재능 가운데 먼저 빛을 발한 쪽은 영화였다. 영화 ‘장한몽’에 이수일 역으로 출연했고, 최초의 영화소설 ‘탈춤’(1926년)을 동아일보에 연재하기도 했다. 일본에서 정통으로 영화를 공부한 뒤에는 원작·각색·감독으로 영화 ‘먼동이 틀 때’를 제작해 큰 성공을 거뒀으나 ‘어둠에서 어둠으로’라는 영화의 원제(原題)가 물의를 빚자 영화계를 떠났다. 심훈의 타고난 운명은...
동독, 베를린 장벽 설치
1961년 8월 13일, 막 잠에서 깬 서베를린 시민들은 눈앞에 펼쳐진 낯선 광경에 경악을 금치못했다. 밤새 동·서 베를린을 잇는 13개 도로와 80개 통로에 철조망이 쳐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입구마다 탱크와 장갑차가 배치돼 통행을 가로막고 있었다. 전날 밤부터 이날 새벽까지 쳐진 철조망 길이는 45㎞. 곧 150㎞로 늘어난 철책에는 전류가 흐르고 콘크리트와 붉은 벽돌로 된 높이 2m·폭 2m의 장벽은 동족간의 이동을 금지시켰다. 지뢰가 부설됐고 무장군인과 군용견까지...
윤보선, 국회에서 4대 대통령으로 선출돼
1960년 4·19의거 후 정권을 맡을 정치세력으로는 민주당이 유일했다. 1960년 7월 29일 치러진 민·참의원 선거는 민주당이 국민들로부터 전폭적인 신뢰를 받고 있음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민의원 219개 선거구에서 무려 172석(78.5%)을 차지하며 기염을 토했지만 민주당 내 신·구파가 우열을 가리지 못할 만큼 팽팽한 의석 분포를 이룬게 문제였다. 갈등이 내연하는 가운데 신·구파 모두 내각책임제에서 국정을 실질적으로 책임지는 국무총리를 차지하기 위해 암중모색에 들어갔다....
전쟁 희생자 보호 위한 ‘제네바 협약’ 체결
1949년 8월 12일, 전쟁 희생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제네바 협약(Geneva Conventions)’이 체결됐다. 1년 전 8월 23일~30일에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국제적십자회의에서 제정된 협약안이 최종적으로 채택된 것이다. 국제적으로는 66개 국의 조인을 거쳐 1950년 10월 21일부터 발효됐고, 우리나라에서는 1966년에 조인·발효됐다. 제네바 협약 체결과정은 적십자 역사와도 관련이 깊다. 국제적십자를 창시한 앙리 뒤낭이 제안해 이뤄진 첫...
신민당사 농성여공 강제진압 당해
1979년 8월 11일 새벽2시, 1000여 명의 경찰이 신민당사 정문을 부수고 침입, 이틀째 철야농성중인 179명의 YH무역 여공들을 강제해산시켰다. 여공들이 “못간다. 죽어도 여기서 죽겠다”고 울부짖으며 반항하고 일부 여공들은 유리창과 사이다 병을 깨뜨려 “자살하겠다”며 창가로 달려갔으나 곤봉을 휘두르고 주먹과 발길질을 해대는 억센 경찰들 앞에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경찰이 여공들과 당직자들을 무차별로 구타하며 ‘닭장차’에 쑤셔넣는 과정에서 100여 명이 부상하고...
美 와츠 흑인폭동
인종차별을 금한 미 역사상 가장 획기적인 인권법안인 ‘신 공민법’(1964년 7월 2일)과 ‘흑인투표법’(1965년 8월 6일)이 공포됐지만 오랫동안 쌓여온 흑백 간의 갈등과 대립이 하루아침에 사라질리 없었다. 더구나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비폭력 투쟁이 수동적이고 비효과적이라고 생각한 흑인들 사이에서는 폭력에서 해결책을 찾으려는 분위기가 우세했다. 1965년 8월 11일, 캘리포니아 순찰대 소속 백인 경찰 2명이 로스엔젤레스 흑인거주지 와츠 부근에서 음주운전을 한 21세 흑인...
금·달러 교환정지 선언한 ‘닉슨 쇼크’ 발표
↑ 리처드 닉슨 1971년 8월 15일, 닉슨 미 대통령이 “달러화 방위를 위해 달러화의 금태환(金兌換)을 90일간 잠정 중단한다”고 선언함으로써 세계가 겉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져들었다. 이른바 ‘닉슨 쇼크’였다. “달러를 더 이상 금으로 바꿔줄 수 없다”는 닉슨의 선언은 4반세기 동안 세계 경제를 지탱해온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를 의미했다. ‘브레튼우즈 체제’는 1944년 7월 미국 브레튼우즈에 모인 연합국 대표들이 ‘미국은 달러를 금으로 바꿔주고 다른...
美 우드스탁 축제
미국이 베트남 전쟁의 수렁 속으로 한창 빠져들고 있던 1969년 8월 15일, 사랑과 평화를 호소하는 젊은이들이 뉴욕 북서쪽의 작은 마을 베델의 한 농장에 몰려들었다. 훗날 ‘우드스탁 축제’로 불린 ‘평화와 음악의 사흘’이라는 록 축제가 15일부터 3일간 열리고 있는 곳이었다. 참가자는 당초 주최 측이 예상한 5만 명을 훨씬 뛰어넘어 40만 명을 헤아렸다. 대회장 주변 32㎞는 이들이 타고온 자동차·자전거 등으로 가득 메워졌다. 조운 바에즈, 재니스 조플린, 지미 헨드릭스 등...
레흐 바웬사, 폴란드의 레닌조선소 파업위원장에 선출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성경구절(욥기 8장7절)에 쓰여진 것처럼 발트해 연안 항구도시 그단스크의 레닌조선소 노동자들도 처음에는 힘이 미약했다. 재정파탄에 직면한 폴란드 정부가 1980년 7월 1일 고기값을 한꺼번에 30∼60%이나 올린 것이 불씨였다. 노동자들은 파업으로 항의했다. 바르샤바 자동차공장에서 처음 불을 지핀 파업이 곧 폴란드 전역으로 확산되긴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초반에 보였던 노도와도 같은 분위기가 점차 사그라들 조짐을 보였다....
중앙정보부, 인혁당 사건 발표
1964년 8월 14일,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인혁당 사건’의 전모를 발표했다. 요지는 “북한 노동당의 지령을 받아 조직된 인민혁명당이 국가변란을 기도했다”는 것이다. “57명 중 41명을 검거하고 나머지 16명은 수배중”이라는 발표도 이어졌다. ‘6·3계엄령’이 내려지고 40일이 지난 뒤였다. 그러나 발표 20일 뒤, 4명의 공안부 검사가 사건의 기소를 거부하고 이 가운데 3명이 사표를 제출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사건의 진실성에 의혹이 제기됐다. 검찰은 숙직 검사까지...
심훈의 ‘상록수’, 동아일보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
35년의 짧은 생(1901∼1936)이었지만 심훈은 흐트러짐이 없었고, 작품에는 늘 강한 민족의식이 배어있었다. 재능 가운데 먼저 빛을 발한 쪽은 영화였다. 영화 ‘장한몽’에 이수일 역으로 출연했고, 최초의 영화소설 ‘탈춤’(1926년)을 동아일보에 연재하기도 했다. 일본에서 정통으로 영화를 공부한 뒤에는 원작·각색·감독으로 영화 ‘먼동이 틀 때’를 제작해 큰 성공을 거뒀으나 ‘어둠에서 어둠으로’라는 영화의 원제(原題)가 물의를 빚자 영화계를 떠났다. 심훈의 타고난 운명은...
동독, 베를린 장벽 설치
1961년 8월 13일, 막 잠에서 깬 서베를린 시민들은 눈앞에 펼쳐진 낯선 광경에 경악을 금치못했다. 밤새 동·서 베를린을 잇는 13개 도로와 80개 통로에 철조망이 쳐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입구마다 탱크와 장갑차가 배치돼 통행을 가로막고 있었다. 전날 밤부터 이날 새벽까지 쳐진 철조망 길이는 45㎞. 곧 150㎞로 늘어난 철책에는 전류가 흐르고 콘크리트와 붉은 벽돌로 된 높이 2m·폭 2m의 장벽은 동족간의 이동을 금지시켰다. 지뢰가 부설됐고 무장군인과 군용견까지...
윤보선, 국회에서 4대 대통령으로 선출돼
1960년 4·19의거 후 정권을 맡을 정치세력으로는 민주당이 유일했다. 1960년 7월 29일 치러진 민·참의원 선거는 민주당이 국민들로부터 전폭적인 신뢰를 받고 있음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민의원 219개 선거구에서 무려 172석(78.5%)을 차지하며 기염을 토했지만 민주당 내 신·구파가 우열을 가리지 못할 만큼 팽팽한 의석 분포를 이룬게 문제였다. 갈등이 내연하는 가운데 신·구파 모두 내각책임제에서 국정을 실질적으로 책임지는 국무총리를 차지하기 위해 암중모색에 들어갔다....
전쟁 희생자 보호 위한 ‘제네바 협약’ 체결
1949년 8월 12일, 전쟁 희생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제네바 협약(Geneva Conventions)’이 체결됐다. 1년 전 8월 23일~30일에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국제적십자회의에서 제정된 협약안이 최종적으로 채택된 것이다. 국제적으로는 66개 국의 조인을 거쳐 1950년 10월 21일부터 발효됐고, 우리나라에서는 1966년에 조인·발효됐다. 제네바 협약 체결과정은 적십자 역사와도 관련이 깊다. 국제적십자를 창시한 앙리 뒤낭이 제안해 이뤄진 첫...
신민당사 농성여공 강제진압 당해
1979년 8월 11일 새벽2시, 1000여 명의 경찰이 신민당사 정문을 부수고 침입, 이틀째 철야농성중인 179명의 YH무역 여공들을 강제해산시켰다. 여공들이 “못간다. 죽어도 여기서 죽겠다”고 울부짖으며 반항하고 일부 여공들은 유리창과 사이다 병을 깨뜨려 “자살하겠다”며 창가로 달려갔으나 곤봉을 휘두르고 주먹과 발길질을 해대는 억센 경찰들 앞에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경찰이 여공들과 당직자들을 무차별로 구타하며 ‘닭장차’에 쑤셔넣는 과정에서 100여 명이 부상하고...
美 와츠 흑인폭동
인종차별을 금한 미 역사상 가장 획기적인 인권법안인 ‘신 공민법’(1964년 7월 2일)과 ‘흑인투표법’(1965년 8월 6일)이 공포됐지만 오랫동안 쌓여온 흑백 간의 갈등과 대립이 하루아침에 사라질리 없었다. 더구나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비폭력 투쟁이 수동적이고 비효과적이라고 생각한 흑인들 사이에서는 폭력에서 해결책을 찾으려는 분위기가 우세했다. 1965년 8월 11일, 캘리포니아 순찰대 소속 백인 경찰 2명이 로스엔젤레스 흑인거주지 와츠 부근에서 음주운전을 한 21세 흑인...
금·달러 교환정지 선언한 ‘닉슨 쇼크’ 발표
↑ 리처드 닉슨 1971년 8월 15일, 닉슨 미 대통령이 “달러화 방위를 위해 달러화의 금태환(金兌換)을 90일간 잠정 중단한다”고 선언함으로써 세계가 겉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져들었다. 이른바 ‘닉슨 쇼크’였다. “달러를 더 이상 금으로 바꿔줄 수 없다”는 닉슨의 선언은 4반세기 동안 세계 경제를 지탱해온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를 의미했다. ‘브레튼우즈 체제’는 1944년 7월 미국 브레튼우즈에 모인 연합국 대표들이 ‘미국은 달러를 금으로 바꿔주고 다른...
美 우드스탁 축제
미국이 베트남 전쟁의 수렁 속으로 한창 빠져들고 있던 1969년 8월 15일, 사랑과 평화를 호소하는 젊은이들이 뉴욕 북서쪽의 작은 마을 베델의 한 농장에 몰려들었다. 훗날 ‘우드스탁 축제’로 불린 ‘평화와 음악의 사흘’이라는 록 축제가 15일부터 3일간 열리고 있는 곳이었다. 참가자는 당초 주최 측이 예상한 5만 명을 훨씬 뛰어넘어 40만 명을 헤아렸다. 대회장 주변 32㎞는 이들이 타고온 자동차·자전거 등으로 가득 메워졌다. 조운 바에즈, 재니스 조플린, 지미 헨드릭스 등...
레흐 바웬사, 폴란드의 레닌조선소 파업위원장에 선출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성경구절(욥기 8장7절)에 쓰여진 것처럼 발트해 연안 항구도시 그단스크의 레닌조선소 노동자들도 처음에는 힘이 미약했다. 재정파탄에 직면한 폴란드 정부가 1980년 7월 1일 고기값을 한꺼번에 30∼60%이나 올린 것이 불씨였다. 노동자들은 파업으로 항의했다. 바르샤바 자동차공장에서 처음 불을 지핀 파업이 곧 폴란드 전역으로 확산되긴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초반에 보였던 노도와도 같은 분위기가 점차 사그라들 조짐을 보였다....
중앙정보부, 인혁당 사건 발표
1964년 8월 14일,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인혁당 사건’의 전모를 발표했다. 요지는 “북한 노동당의 지령을 받아 조직된 인민혁명당이 국가변란을 기도했다”는 것이다. “57명 중 41명을 검거하고 나머지 16명은 수배중”이라는 발표도 이어졌다. ‘6·3계엄령’이 내려지고 40일이 지난 뒤였다. 그러나 발표 20일 뒤, 4명의 공안부 검사가 사건의 기소를 거부하고 이 가운데 3명이 사표를 제출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사건의 진실성에 의혹이 제기됐다. 검찰은 숙직 검사까지...
심훈의 ‘상록수’, 동아일보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
35년의 짧은 생(1901∼1936)이었지만 심훈은 흐트러짐이 없었고, 작품에는 늘 강한 민족의식이 배어있었다. 재능 가운데 먼저 빛을 발한 쪽은 영화였다. 영화 ‘장한몽’에 이수일 역으로 출연했고, 최초의 영화소설 ‘탈춤’(1926년)을 동아일보에 연재하기도 했다. 일본에서 정통으로 영화를 공부한 뒤에는 원작·각색·감독으로 영화 ‘먼동이 틀 때’를 제작해 큰 성공을 거뒀으나 ‘어둠에서 어둠으로’라는 영화의 원제(原題)가 물의를 빚자 영화계를 떠났다. 심훈의 타고난 운명은...
동독, 베를린 장벽 설치
1961년 8월 13일, 막 잠에서 깬 서베를린 시민들은 눈앞에 펼쳐진 낯선 광경에 경악을 금치못했다. 밤새 동·서 베를린을 잇는 13개 도로와 80개 통로에 철조망이 쳐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입구마다 탱크와 장갑차가 배치돼 통행을 가로막고 있었다. 전날 밤부터 이날 새벽까지 쳐진 철조망 길이는 45㎞. 곧 150㎞로 늘어난 철책에는 전류가 흐르고 콘크리트와 붉은 벽돌로 된 높이 2m·폭 2m의 장벽은 동족간의 이동을 금지시켰다. 지뢰가 부설됐고 무장군인과 군용견까지...
윤보선, 국회에서 4대 대통령으로 선출돼
1960년 4·19의거 후 정권을 맡을 정치세력으로는 민주당이 유일했다. 1960년 7월 29일 치러진 민·참의원 선거는 민주당이 국민들로부터 전폭적인 신뢰를 받고 있음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민의원 219개 선거구에서 무려 172석(78.5%)을 차지하며 기염을 토했지만 민주당 내 신·구파가 우열을 가리지 못할 만큼 팽팽한 의석 분포를 이룬게 문제였다. 갈등이 내연하는 가운데 신·구파 모두 내각책임제에서 국정을 실질적으로 책임지는 국무총리를 차지하기 위해 암중모색에 들어갔다....
전쟁 희생자 보호 위한 ‘제네바 협약’ 체결
1949년 8월 12일, 전쟁 희생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제네바 협약(Geneva Conventions)’이 체결됐다. 1년 전 8월 23일~30일에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국제적십자회의에서 제정된 협약안이 최종적으로 채택된 것이다. 국제적으로는 66개 국의 조인을 거쳐 1950년 10월 21일부터 발효됐고, 우리나라에서는 1966년에 조인·발효됐다. 제네바 협약 체결과정은 적십자 역사와도 관련이 깊다. 국제적십자를 창시한 앙리 뒤낭이 제안해 이뤄진 첫...
신민당사 농성여공 강제진압 당해
1979년 8월 11일 새벽2시, 1000여 명의 경찰이 신민당사 정문을 부수고 침입, 이틀째 철야농성중인 179명의 YH무역 여공들을 강제해산시켰다. 여공들이 “못간다. 죽어도 여기서 죽겠다”고 울부짖으며 반항하고 일부 여공들은 유리창과 사이다 병을 깨뜨려 “자살하겠다”며 창가로 달려갔으나 곤봉을 휘두르고 주먹과 발길질을 해대는 억센 경찰들 앞에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경찰이 여공들과 당직자들을 무차별로 구타하며 ‘닭장차’에 쑤셔넣는 과정에서 100여 명이 부상하고...
美 와츠 흑인폭동
인종차별을 금한 미 역사상 가장 획기적인 인권법안인 ‘신 공민법’(1964년 7월 2일)과 ‘흑인투표법’(1965년 8월 6일)이 공포됐지만 오랫동안 쌓여온 흑백 간의 갈등과 대립이 하루아침에 사라질리 없었다. 더구나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비폭력 투쟁이 수동적이고 비효과적이라고 생각한 흑인들 사이에서는 폭력에서 해결책을 찾으려는 분위기가 우세했다. 1965년 8월 11일, 캘리포니아 순찰대 소속 백인 경찰 2명이 로스엔젤레스 흑인거주지 와츠 부근에서 음주운전을 한 21세 흑인...
금·달러 교환정지 선언한 ‘닉슨 쇼크’ 발표
↑ 리처드 닉슨 1971년 8월 15일, 닉슨 미 대통령이 “달러화 방위를 위해 달러화의 금태환(金兌換)을 90일간 잠정 중단한다”고 선언함으로써 세계가 겉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져들었다. 이른바 ‘닉슨 쇼크’였다. “달러를 더 이상 금으로 바꿔줄 수 없다”는 닉슨의 선언은 4반세기 동안 세계 경제를 지탱해온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를 의미했다. ‘브레튼우즈 체제’는 1944년 7월 미국 브레튼우즈에 모인 연합국 대표들이 ‘미국은 달러를 금으로 바꿔주고 다른...
美 우드스탁 축제
미국이 베트남 전쟁의 수렁 속으로 한창 빠져들고 있던 1969년 8월 15일, 사랑과 평화를 호소하는 젊은이들이 뉴욕 북서쪽의 작은 마을 베델의 한 농장에 몰려들었다. 훗날 ‘우드스탁 축제’로 불린 ‘평화와 음악의 사흘’이라는 록 축제가 15일부터 3일간 열리고 있는 곳이었다. 참가자는 당초 주최 측이 예상한 5만 명을 훨씬 뛰어넘어 40만 명을 헤아렸다. 대회장 주변 32㎞는 이들이 타고온 자동차·자전거 등으로 가득 메워졌다. 조운 바에즈, 재니스 조플린, 지미 헨드릭스 등...
레흐 바웬사, 폴란드의 레닌조선소 파업위원장에 선출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성경구절(욥기 8장7절)에 쓰여진 것처럼 발트해 연안 항구도시 그단스크의 레닌조선소 노동자들도 처음에는 힘이 미약했다. 재정파탄에 직면한 폴란드 정부가 1980년 7월 1일 고기값을 한꺼번에 30∼60%이나 올린 것이 불씨였다. 노동자들은 파업으로 항의했다. 바르샤바 자동차공장에서 처음 불을 지핀 파업이 곧 폴란드 전역으로 확산되긴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초반에 보였던 노도와도 같은 분위기가 점차 사그라들 조짐을 보였다....
중앙정보부, 인혁당 사건 발표
1964년 8월 14일,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인혁당 사건’의 전모를 발표했다. 요지는 “북한 노동당의 지령을 받아 조직된 인민혁명당이 국가변란을 기도했다”는 것이다. “57명 중 41명을 검거하고 나머지 16명은 수배중”이라는 발표도 이어졌다. ‘6·3계엄령’이 내려지고 40일이 지난 뒤였다. 그러나 발표 20일 뒤, 4명의 공안부 검사가 사건의 기소를 거부하고 이 가운데 3명이 사표를 제출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사건의 진실성에 의혹이 제기됐다. 검찰은 숙직 검사까지...
심훈의 ‘상록수’, 동아일보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
35년의 짧은 생(1901∼1936)이었지만 심훈은 흐트러짐이 없었고, 작품에는 늘 강한 민족의식이 배어있었다. 재능 가운데 먼저 빛을 발한 쪽은 영화였다. 영화 ‘장한몽’에 이수일 역으로 출연했고, 최초의 영화소설 ‘탈춤’(1926년)을 동아일보에 연재하기도 했다. 일본에서 정통으로 영화를 공부한 뒤에는 원작·각색·감독으로 영화 ‘먼동이 틀 때’를 제작해 큰 성공을 거뒀으나 ‘어둠에서 어둠으로’라는 영화의 원제(原題)가 물의를 빚자 영화계를 떠났다. 심훈의 타고난 운명은...
동독, 베를린 장벽 설치
1961년 8월 13일, 막 잠에서 깬 서베를린 시민들은 눈앞에 펼쳐진 낯선 광경에 경악을 금치못했다. 밤새 동·서 베를린을 잇는 13개 도로와 80개 통로에 철조망이 쳐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입구마다 탱크와 장갑차가 배치돼 통행을 가로막고 있었다. 전날 밤부터 이날 새벽까지 쳐진 철조망 길이는 45㎞. 곧 150㎞로 늘어난 철책에는 전류가 흐르고 콘크리트와 붉은 벽돌로 된 높이 2m·폭 2m의 장벽은 동족간의 이동을 금지시켰다. 지뢰가 부설됐고 무장군인과 군용견까지...
윤보선, 국회에서 4대 대통령으로 선출돼
1960년 4·19의거 후 정권을 맡을 정치세력으로는 민주당이 유일했다. 1960년 7월 29일 치러진 민·참의원 선거는 민주당이 국민들로부터 전폭적인 신뢰를 받고 있음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민의원 219개 선거구에서 무려 172석(78.5%)을 차지하며 기염을 토했지만 민주당 내 신·구파가 우열을 가리지 못할 만큼 팽팽한 의석 분포를 이룬게 문제였다. 갈등이 내연하는 가운데 신·구파 모두 내각책임제에서 국정을 실질적으로 책임지는 국무총리를 차지하기 위해 암중모색에 들어갔다....
전쟁 희생자 보호 위한 ‘제네바 협약’ 체결
1949년 8월 12일, 전쟁 희생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제네바 협약(Geneva Conventions)’이 체결됐다. 1년 전 8월 23일~30일에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국제적십자회의에서 제정된 협약안이 최종적으로 채택된 것이다. 국제적으로는 66개 국의 조인을 거쳐 1950년 10월 21일부터 발효됐고, 우리나라에서는 1966년에 조인·발효됐다. 제네바 협약 체결과정은 적십자 역사와도 관련이 깊다. 국제적십자를 창시한 앙리 뒤낭이 제안해 이뤄진 첫...
신민당사 농성여공 강제진압 당해
1979년 8월 11일 새벽2시, 1000여 명의 경찰이 신민당사 정문을 부수고 침입, 이틀째 철야농성중인 179명의 YH무역 여공들을 강제해산시켰다. 여공들이 “못간다. 죽어도 여기서 죽겠다”고 울부짖으며 반항하고 일부 여공들은 유리창과 사이다 병을 깨뜨려 “자살하겠다”며 창가로 달려갔으나 곤봉을 휘두르고 주먹과 발길질을 해대는 억센 경찰들 앞에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경찰이 여공들과 당직자들을 무차별로 구타하며 ‘닭장차’에 쑤셔넣는 과정에서 100여 명이 부상하고...
美 와츠 흑인폭동
인종차별을 금한 미 역사상 가장 획기적인 인권법안인 ‘신 공민법’(1964년 7월 2일)과 ‘흑인투표법’(1965년 8월 6일)이 공포됐지만 오랫동안 쌓여온 흑백 간의 갈등과 대립이 하루아침에 사라질리 없었다. 더구나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비폭력 투쟁이 수동적이고 비효과적이라고 생각한 흑인들 사이에서는 폭력에서 해결책을 찾으려는 분위기가 우세했다. 1965년 8월 11일, 캘리포니아 순찰대 소속 백인 경찰 2명이 로스엔젤레스 흑인거주지 와츠 부근에서 음주운전을 한 21세 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