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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미도 특수부대원 난동
1968년 4월에 창설됐다고 해서 ‘684부대’로 불렸다. 작전명은 ‘오소리’였다. 그해 1월 북한 무장공비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려 했던 ‘1·21사태’가 창설의 계기였다. 분노한 박정희는 보복 조치로 특수부대 창설을 명령했고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명을 따랐다. 인원은 남파 무장공비와 똑같은 31명으로 구성했다. 훈련장소는 인천에서 20㎞ 떨어진 실미도였다. 훈련 목적은 북한 주석궁 침투였다. 독도법·산악훈련·폭파기술 등을 익혔고 체포되면 죽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한·일합병조약 조인
일제의 한국 병탄은 일련의 치밀한 과정을 거쳐 전개됐다. 1905년 가쓰라·테프트밀약(7월), 제2차 영·일동맹(8월), 러·일강화조약(9월)을 체결, 국제적으로 한국에서의 독점적 권리를 인정받은 일제는 한국과도 3차에 걸쳐 한·일협약을 강제로 체결해 재정·외교·내정권을 모두 빼앗는다. 음모는 일본에서도 진행됐다. 1909년 각의에서 한국병합이 결정되고 천황도 이를 재가하자 1910년부터는 야욕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6월에 새로운 통감으로 부임한 육군대신 데라우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걸작 ‘모나리자’ 도난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이 모나리자 도난 사실을 발표한 1911년 8월 22일은 모나리자에게는 오히려 제2의 생일이 됐다. 그때까지 모나리자는 다른 르네상스 걸작들에 비해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었다. 그런데 신문들이 루브르의 관리 소홀을 질타하고 한편으로는 연일 모나리자와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대한 기사를 쏟아내면서 관심이 모나리자에 집중됐기 때문이다. 프랑스인들은 프랑스가 그런 명작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됐고, 자신들이 ‘라 조콩드’라고 부르는 모나리자의 미소도...
필리핀 정치 지도자 베니그노 아키노 피살
1983년 8월 21일 오후1시, 4∼5발의 총성이 필리핀 마닐라공항에 울려퍼졌다. 중화항공 여객기가 막 착륙한 뒤였다. 잠시 후 한 여인이 “군인들이 니노이를 쏘았다”고 울부짖었다. 필리핀의 야당 지도자 베니그노 아키노가 피살된 것이다. 곧이어 항공기 정비사 모습을 하고 있는 20대 청년도 군인들이 쏜 수 발의 총탄을 맞고 현장에 쓰러졌다. 살려둬서는 안되겠다는 듯 청년의 몸에는 몇 차례 더 총격이 가해졌다. 필리핀 정부는 죽은 청년이 청부살인업자 출신의 범인이라고...
하와이 주(州) 승격과 ‘하와이 근성’ 시비
하와이가 백인 세계에 알려진 것은 1778년 제임스 쿡이 이 섬을 처음 발견해 자신을 후원한 영국 샌드위치 백작의 이름을 따 ‘샌드위치 제도’라고 명명하면서였다. 이후 8대에 걸친 카메하메하 왕조가 하와이를 지배했으나 1893년 군주제가 전복되고 ‘하와이공화국’이 수립되면서 하와이는 더 이상 원주민의 땅이 아니었다. 1898년 하와이공화국과 미국이 합병에 동의하고 1900년 미국의 영토로 편입됐으나 속령이었기 때문에 적자라기보다는 서자같은 존재였다. 하와이가 미국 성조기의...
추송웅, 연극 ‘빠알간 피이터의 고백’ 초연
1977년, 한국 신극 70년 만에 새로운 이정표가 세워지고 한국 연극사에 새로운 신화가 탄생했다. 신화의 주인공은 기획·제작·연출·장치·연기의 1인 5역을 해낸 연극배우 추송웅이었다. 1941년 경남 고성군에서 4남2녀의 막내로 태어난 그는 다른 형제들이 키도 크고 공부도 잘한 수재들인데 반해 키도 작고 사팔뜨기에 공부도 못하는 집안의 골치덩어리였다. 내성적인 성격에 신체적 콤플렉스를 원죄처럼 안고 살았던 그가 선택한 길은 연극이었다. 연극인 생활 15년째, 추송웅은 변변한...
레온 트로츠키 멕시코에서 피살
러시아혁명 후, 과실을 둘러싼 동갑내기 스탈린과 트로츠키의 암투와 음모가 극에 달했다. 1922년 레닌이 뇌졸중으로 쓰러지기 전까지는 레닌과 나란히 초상화가 걸릴 정도로 트로츠키가 절대적 우위였다. 그는 뛰어난 지성의 소유자였지만 오만했고, 자신보다 열등한 사람은 경멸하기까지 했다. 이에 비해 지적인 능력은 떨어졌지만 ‘강철 사나이’라는 이름이 말해주듯 스탈린은 강한 의지의 냉혈한이었다. 무엇보다 “회유와 공포가 사람을 끌어당기는 진정한 힘”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한 달 전 갔는데도 자꾸 어른거려 또 다시 찾아간 강원도 삼척·동해의 두타산(頭陀山)… ② 무릉계곡~관음암~신선봉~쌍폭·용추폭포~무릉계곡
↑ 쌍폭(왼쪽)과 용추폭 by 김지지 ☞ 두타산의 다른 코스(댓재~두타산~두타산성~무릉계곡)가 궁금하다면 클릭!! ☞ 두타산의 다른 코스(무릉계곡~베틀바위~두타산협곡 마천루~쌍폭·용추폭포~무릉계곡)가 궁금하다면 클릭!! 한 달 전 고교 친구들과 두타산 정상을 밟았는데도 두타산이 계속 어른거린다. 무엇보다 하산길 두타산성에서 바라본 무릉계곡 건너편의 관음암과 관음폭포가 궁금해서다. 이제나 저제나 기회를 엿보다가 추석 연휴 마지막날인...
내정된 주한 일본대사의 장인은 50년 전 할복한 극우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平岡公威)… 그는 과격한 천황주의자였다
↑ 1969년 5월 13일 일본 도쿄대 교양학부 대강당에서 전공투 학생들과 격론을 벌이고 있는 미시마 유키오 by 김지지 새로 부임하는 주한 일본대사의 장인이 태평양전쟁 패전 뒤 일본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활동하다가 1970년 할복 자살한 미시마 유키오(平岡公威)라고 한다. 미시마에 대해 알아본다. ‘천황 보호하는 방패 되겠다’며 사병대 결성 미시마 유키오(平岡公威, 1925~1970, 본명 히라오카 기미타카)는 도쿄에서 태어나...
[장상인의 일본 산책] 후쿠오카 이토시마 반도(糸島 半島)의 개야(芥屋)를 찾아가다… 그곳은 제국주의 시대 한·일간의 슬픈 역사를 안고 흐르는 현해탄(玄海灘)의 길목
↑ 바다로 돌출된 이토시마 반도(糸島 半島) 앞에 현해탄이 펼쳐있다. 반도 왼쪽 끝이 ‘개야 대문(芥屋大門)’이고 가운데 선착장이 개야어항이다. by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일본의 규슈(九州)에서 업무를 마치고 잠시 짬을 내어 깜짝 관광을 하기로 했다. 그렇다고 해서 백화점이나 지하상가를 헤매기에는 시간이 아까웠다. 바다로 가자는 의견이 대두되었다. 그러나, 일본 여행 중에, 그것도 밤 비행기로 돌아오는 날에 바다로 가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실미도 특수부대원 난동
1968년 4월에 창설됐다고 해서 ‘684부대’로 불렸다. 작전명은 ‘오소리’였다. 그해 1월 북한 무장공비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려 했던 ‘1·21사태’가 창설의 계기였다. 분노한 박정희는 보복 조치로 특수부대 창설을 명령했고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명을 따랐다. 인원은 남파 무장공비와 똑같은 31명으로 구성했다. 훈련장소는 인천에서 20㎞ 떨어진 실미도였다. 훈련 목적은 북한 주석궁 침투였다. 독도법·산악훈련·폭파기술 등을 익혔고 체포되면 죽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한·일합병조약 조인
일제의 한국 병탄은 일련의 치밀한 과정을 거쳐 전개됐다. 1905년 가쓰라·테프트밀약(7월), 제2차 영·일동맹(8월), 러·일강화조약(9월)을 체결, 국제적으로 한국에서의 독점적 권리를 인정받은 일제는 한국과도 3차에 걸쳐 한·일협약을 강제로 체결해 재정·외교·내정권을 모두 빼앗는다. 음모는 일본에서도 진행됐다. 1909년 각의에서 한국병합이 결정되고 천황도 이를 재가하자 1910년부터는 야욕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6월에 새로운 통감으로 부임한 육군대신 데라우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걸작 ‘모나리자’ 도난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이 모나리자 도난 사실을 발표한 1911년 8월 22일은 모나리자에게는 오히려 제2의 생일이 됐다. 그때까지 모나리자는 다른 르네상스 걸작들에 비해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었다. 그런데 신문들이 루브르의 관리 소홀을 질타하고 한편으로는 연일 모나리자와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대한 기사를 쏟아내면서 관심이 모나리자에 집중됐기 때문이다. 프랑스인들은 프랑스가 그런 명작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됐고, 자신들이 ‘라 조콩드’라고 부르는 모나리자의 미소도...
필리핀 정치 지도자 베니그노 아키노 피살
1983년 8월 21일 오후1시, 4∼5발의 총성이 필리핀 마닐라공항에 울려퍼졌다. 중화항공 여객기가 막 착륙한 뒤였다. 잠시 후 한 여인이 “군인들이 니노이를 쏘았다”고 울부짖었다. 필리핀의 야당 지도자 베니그노 아키노가 피살된 것이다. 곧이어 항공기 정비사 모습을 하고 있는 20대 청년도 군인들이 쏜 수 발의 총탄을 맞고 현장에 쓰러졌다. 살려둬서는 안되겠다는 듯 청년의 몸에는 몇 차례 더 총격이 가해졌다. 필리핀 정부는 죽은 청년이 청부살인업자 출신의 범인이라고...
하와이 주(州) 승격과 ‘하와이 근성’ 시비
하와이가 백인 세계에 알려진 것은 1778년 제임스 쿡이 이 섬을 처음 발견해 자신을 후원한 영국 샌드위치 백작의 이름을 따 ‘샌드위치 제도’라고 명명하면서였다. 이후 8대에 걸친 카메하메하 왕조가 하와이를 지배했으나 1893년 군주제가 전복되고 ‘하와이공화국’이 수립되면서 하와이는 더 이상 원주민의 땅이 아니었다. 1898년 하와이공화국과 미국이 합병에 동의하고 1900년 미국의 영토로 편입됐으나 속령이었기 때문에 적자라기보다는 서자같은 존재였다. 하와이가 미국 성조기의...
추송웅, 연극 ‘빠알간 피이터의 고백’ 초연
1977년, 한국 신극 70년 만에 새로운 이정표가 세워지고 한국 연극사에 새로운 신화가 탄생했다. 신화의 주인공은 기획·제작·연출·장치·연기의 1인 5역을 해낸 연극배우 추송웅이었다. 1941년 경남 고성군에서 4남2녀의 막내로 태어난 그는 다른 형제들이 키도 크고 공부도 잘한 수재들인데 반해 키도 작고 사팔뜨기에 공부도 못하는 집안의 골치덩어리였다. 내성적인 성격에 신체적 콤플렉스를 원죄처럼 안고 살았던 그가 선택한 길은 연극이었다. 연극인 생활 15년째, 추송웅은 변변한...
레온 트로츠키 멕시코에서 피살
러시아혁명 후, 과실을 둘러싼 동갑내기 스탈린과 트로츠키의 암투와 음모가 극에 달했다. 1922년 레닌이 뇌졸중으로 쓰러지기 전까지는 레닌과 나란히 초상화가 걸릴 정도로 트로츠키가 절대적 우위였다. 그는 뛰어난 지성의 소유자였지만 오만했고, 자신보다 열등한 사람은 경멸하기까지 했다. 이에 비해 지적인 능력은 떨어졌지만 ‘강철 사나이’라는 이름이 말해주듯 스탈린은 강한 의지의 냉혈한이었다. 무엇보다 “회유와 공포가 사람을 끌어당기는 진정한 힘”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한 달 전 갔는데도 자꾸 어른거려 또 다시 찾아간 강원도 삼척·동해의 두타산(頭陀山)… ② 무릉계곡~관음암~신선봉~쌍폭·용추폭포~무릉계곡
↑ 쌍폭(왼쪽)과 용추폭 by 김지지 ☞ 두타산의 다른 코스(댓재~두타산~두타산성~무릉계곡)가 궁금하다면 클릭!! ☞ 두타산의 다른 코스(무릉계곡~베틀바위~두타산협곡 마천루~쌍폭·용추폭포~무릉계곡)가 궁금하다면 클릭!! 한 달 전 고교 친구들과 두타산 정상을 밟았는데도 두타산이 계속 어른거린다. 무엇보다 하산길 두타산성에서 바라본 무릉계곡 건너편의 관음암과 관음폭포가 궁금해서다. 이제나 저제나 기회를 엿보다가 추석 연휴 마지막날인...
내정된 주한 일본대사의 장인은 50년 전 할복한 극우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平岡公威)… 그는 과격한 천황주의자였다
↑ 1969년 5월 13일 일본 도쿄대 교양학부 대강당에서 전공투 학생들과 격론을 벌이고 있는 미시마 유키오 by 김지지 새로 부임하는 주한 일본대사의 장인이 태평양전쟁 패전 뒤 일본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활동하다가 1970년 할복 자살한 미시마 유키오(平岡公威)라고 한다. 미시마에 대해 알아본다. ‘천황 보호하는 방패 되겠다’며 사병대 결성 미시마 유키오(平岡公威, 1925~1970, 본명 히라오카 기미타카)는 도쿄에서 태어나...
[장상인의 일본 산책] 후쿠오카 이토시마 반도(糸島 半島)의 개야(芥屋)를 찾아가다… 그곳은 제국주의 시대 한·일간의 슬픈 역사를 안고 흐르는 현해탄(玄海灘)의 길목
↑ 바다로 돌출된 이토시마 반도(糸島 半島) 앞에 현해탄이 펼쳐있다. 반도 왼쪽 끝이 ‘개야 대문(芥屋大門)’이고 가운데 선착장이 개야어항이다. by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일본의 규슈(九州)에서 업무를 마치고 잠시 짬을 내어 깜짝 관광을 하기로 했다. 그렇다고 해서 백화점이나 지하상가를 헤매기에는 시간이 아까웠다. 바다로 가자는 의견이 대두되었다. 그러나, 일본 여행 중에, 그것도 밤 비행기로 돌아오는 날에 바다로 가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실미도 특수부대원 난동
1968년 4월에 창설됐다고 해서 ‘684부대’로 불렸다. 작전명은 ‘오소리’였다. 그해 1월 북한 무장공비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려 했던 ‘1·21사태’가 창설의 계기였다. 분노한 박정희는 보복 조치로 특수부대 창설을 명령했고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명을 따랐다. 인원은 남파 무장공비와 똑같은 31명으로 구성했다. 훈련장소는 인천에서 20㎞ 떨어진 실미도였다. 훈련 목적은 북한 주석궁 침투였다. 독도법·산악훈련·폭파기술 등을 익혔고 체포되면 죽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한·일합병조약 조인
일제의 한국 병탄은 일련의 치밀한 과정을 거쳐 전개됐다. 1905년 가쓰라·테프트밀약(7월), 제2차 영·일동맹(8월), 러·일강화조약(9월)을 체결, 국제적으로 한국에서의 독점적 권리를 인정받은 일제는 한국과도 3차에 걸쳐 한·일협약을 강제로 체결해 재정·외교·내정권을 모두 빼앗는다. 음모는 일본에서도 진행됐다. 1909년 각의에서 한국병합이 결정되고 천황도 이를 재가하자 1910년부터는 야욕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6월에 새로운 통감으로 부임한 육군대신 데라우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걸작 ‘모나리자’ 도난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이 모나리자 도난 사실을 발표한 1911년 8월 22일은 모나리자에게는 오히려 제2의 생일이 됐다. 그때까지 모나리자는 다른 르네상스 걸작들에 비해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었다. 그런데 신문들이 루브르의 관리 소홀을 질타하고 한편으로는 연일 모나리자와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대한 기사를 쏟아내면서 관심이 모나리자에 집중됐기 때문이다. 프랑스인들은 프랑스가 그런 명작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됐고, 자신들이 ‘라 조콩드’라고 부르는 모나리자의 미소도...
필리핀 정치 지도자 베니그노 아키노 피살
1983년 8월 21일 오후1시, 4∼5발의 총성이 필리핀 마닐라공항에 울려퍼졌다. 중화항공 여객기가 막 착륙한 뒤였다. 잠시 후 한 여인이 “군인들이 니노이를 쏘았다”고 울부짖었다. 필리핀의 야당 지도자 베니그노 아키노가 피살된 것이다. 곧이어 항공기 정비사 모습을 하고 있는 20대 청년도 군인들이 쏜 수 발의 총탄을 맞고 현장에 쓰러졌다. 살려둬서는 안되겠다는 듯 청년의 몸에는 몇 차례 더 총격이 가해졌다. 필리핀 정부는 죽은 청년이 청부살인업자 출신의 범인이라고...
하와이 주(州) 승격과 ‘하와이 근성’ 시비
하와이가 백인 세계에 알려진 것은 1778년 제임스 쿡이 이 섬을 처음 발견해 자신을 후원한 영국 샌드위치 백작의 이름을 따 ‘샌드위치 제도’라고 명명하면서였다. 이후 8대에 걸친 카메하메하 왕조가 하와이를 지배했으나 1893년 군주제가 전복되고 ‘하와이공화국’이 수립되면서 하와이는 더 이상 원주민의 땅이 아니었다. 1898년 하와이공화국과 미국이 합병에 동의하고 1900년 미국의 영토로 편입됐으나 속령이었기 때문에 적자라기보다는 서자같은 존재였다. 하와이가 미국 성조기의...
추송웅, 연극 ‘빠알간 피이터의 고백’ 초연
1977년, 한국 신극 70년 만에 새로운 이정표가 세워지고 한국 연극사에 새로운 신화가 탄생했다. 신화의 주인공은 기획·제작·연출·장치·연기의 1인 5역을 해낸 연극배우 추송웅이었다. 1941년 경남 고성군에서 4남2녀의 막내로 태어난 그는 다른 형제들이 키도 크고 공부도 잘한 수재들인데 반해 키도 작고 사팔뜨기에 공부도 못하는 집안의 골치덩어리였다. 내성적인 성격에 신체적 콤플렉스를 원죄처럼 안고 살았던 그가 선택한 길은 연극이었다. 연극인 생활 15년째, 추송웅은 변변한...
레온 트로츠키 멕시코에서 피살
러시아혁명 후, 과실을 둘러싼 동갑내기 스탈린과 트로츠키의 암투와 음모가 극에 달했다. 1922년 레닌이 뇌졸중으로 쓰러지기 전까지는 레닌과 나란히 초상화가 걸릴 정도로 트로츠키가 절대적 우위였다. 그는 뛰어난 지성의 소유자였지만 오만했고, 자신보다 열등한 사람은 경멸하기까지 했다. 이에 비해 지적인 능력은 떨어졌지만 ‘강철 사나이’라는 이름이 말해주듯 스탈린은 강한 의지의 냉혈한이었다. 무엇보다 “회유와 공포가 사람을 끌어당기는 진정한 힘”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한 달 전 갔는데도 자꾸 어른거려 또 다시 찾아간 강원도 삼척·동해의 두타산(頭陀山)… ② 무릉계곡~관음암~신선봉~쌍폭·용추폭포~무릉계곡
↑ 쌍폭(왼쪽)과 용추폭 by 김지지 ☞ 두타산의 다른 코스(댓재~두타산~두타산성~무릉계곡)가 궁금하다면 클릭!! ☞ 두타산의 다른 코스(무릉계곡~베틀바위~두타산협곡 마천루~쌍폭·용추폭포~무릉계곡)가 궁금하다면 클릭!! 한 달 전 고교 친구들과 두타산 정상을 밟았는데도 두타산이 계속 어른거린다. 무엇보다 하산길 두타산성에서 바라본 무릉계곡 건너편의 관음암과 관음폭포가 궁금해서다. 이제나 저제나 기회를 엿보다가 추석 연휴 마지막날인...
내정된 주한 일본대사의 장인은 50년 전 할복한 극우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平岡公威)… 그는 과격한 천황주의자였다
↑ 1969년 5월 13일 일본 도쿄대 교양학부 대강당에서 전공투 학생들과 격론을 벌이고 있는 미시마 유키오 by 김지지 새로 부임하는 주한 일본대사의 장인이 태평양전쟁 패전 뒤 일본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활동하다가 1970년 할복 자살한 미시마 유키오(平岡公威)라고 한다. 미시마에 대해 알아본다. ‘천황 보호하는 방패 되겠다’며 사병대 결성 미시마 유키오(平岡公威, 1925~1970, 본명 히라오카 기미타카)는 도쿄에서 태어나...
[장상인의 일본 산책] 후쿠오카 이토시마 반도(糸島 半島)의 개야(芥屋)를 찾아가다… 그곳은 제국주의 시대 한·일간의 슬픈 역사를 안고 흐르는 현해탄(玄海灘)의 길목
↑ 바다로 돌출된 이토시마 반도(糸島 半島) 앞에 현해탄이 펼쳐있다. 반도 왼쪽 끝이 ‘개야 대문(芥屋大門)’이고 가운데 선착장이 개야어항이다. by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일본의 규슈(九州)에서 업무를 마치고 잠시 짬을 내어 깜짝 관광을 하기로 했다. 그렇다고 해서 백화점이나 지하상가를 헤매기에는 시간이 아까웠다. 바다로 가자는 의견이 대두되었다. 그러나, 일본 여행 중에, 그것도 밤 비행기로 돌아오는 날에 바다로 가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실미도 특수부대원 난동
1968년 4월에 창설됐다고 해서 ‘684부대’로 불렸다. 작전명은 ‘오소리’였다. 그해 1월 북한 무장공비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려 했던 ‘1·21사태’가 창설의 계기였다. 분노한 박정희는 보복 조치로 특수부대 창설을 명령했고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명을 따랐다. 인원은 남파 무장공비와 똑같은 31명으로 구성했다. 훈련장소는 인천에서 20㎞ 떨어진 실미도였다. 훈련 목적은 북한 주석궁 침투였다. 독도법·산악훈련·폭파기술 등을 익혔고 체포되면 죽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한·일합병조약 조인
일제의 한국 병탄은 일련의 치밀한 과정을 거쳐 전개됐다. 1905년 가쓰라·테프트밀약(7월), 제2차 영·일동맹(8월), 러·일강화조약(9월)을 체결, 국제적으로 한국에서의 독점적 권리를 인정받은 일제는 한국과도 3차에 걸쳐 한·일협약을 강제로 체결해 재정·외교·내정권을 모두 빼앗는다. 음모는 일본에서도 진행됐다. 1909년 각의에서 한국병합이 결정되고 천황도 이를 재가하자 1910년부터는 야욕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6월에 새로운 통감으로 부임한 육군대신 데라우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걸작 ‘모나리자’ 도난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이 모나리자 도난 사실을 발표한 1911년 8월 22일은 모나리자에게는 오히려 제2의 생일이 됐다. 그때까지 모나리자는 다른 르네상스 걸작들에 비해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었다. 그런데 신문들이 루브르의 관리 소홀을 질타하고 한편으로는 연일 모나리자와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대한 기사를 쏟아내면서 관심이 모나리자에 집중됐기 때문이다. 프랑스인들은 프랑스가 그런 명작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됐고, 자신들이 ‘라 조콩드’라고 부르는 모나리자의 미소도...
필리핀 정치 지도자 베니그노 아키노 피살
1983년 8월 21일 오후1시, 4∼5발의 총성이 필리핀 마닐라공항에 울려퍼졌다. 중화항공 여객기가 막 착륙한 뒤였다. 잠시 후 한 여인이 “군인들이 니노이를 쏘았다”고 울부짖었다. 필리핀의 야당 지도자 베니그노 아키노가 피살된 것이다. 곧이어 항공기 정비사 모습을 하고 있는 20대 청년도 군인들이 쏜 수 발의 총탄을 맞고 현장에 쓰러졌다. 살려둬서는 안되겠다는 듯 청년의 몸에는 몇 차례 더 총격이 가해졌다. 필리핀 정부는 죽은 청년이 청부살인업자 출신의 범인이라고...
하와이 주(州) 승격과 ‘하와이 근성’ 시비
하와이가 백인 세계에 알려진 것은 1778년 제임스 쿡이 이 섬을 처음 발견해 자신을 후원한 영국 샌드위치 백작의 이름을 따 ‘샌드위치 제도’라고 명명하면서였다. 이후 8대에 걸친 카메하메하 왕조가 하와이를 지배했으나 1893년 군주제가 전복되고 ‘하와이공화국’이 수립되면서 하와이는 더 이상 원주민의 땅이 아니었다. 1898년 하와이공화국과 미국이 합병에 동의하고 1900년 미국의 영토로 편입됐으나 속령이었기 때문에 적자라기보다는 서자같은 존재였다. 하와이가 미국 성조기의...
추송웅, 연극 ‘빠알간 피이터의 고백’ 초연
1977년, 한국 신극 70년 만에 새로운 이정표가 세워지고 한국 연극사에 새로운 신화가 탄생했다. 신화의 주인공은 기획·제작·연출·장치·연기의 1인 5역을 해낸 연극배우 추송웅이었다. 1941년 경남 고성군에서 4남2녀의 막내로 태어난 그는 다른 형제들이 키도 크고 공부도 잘한 수재들인데 반해 키도 작고 사팔뜨기에 공부도 못하는 집안의 골치덩어리였다. 내성적인 성격에 신체적 콤플렉스를 원죄처럼 안고 살았던 그가 선택한 길은 연극이었다. 연극인 생활 15년째, 추송웅은 변변한...
레온 트로츠키 멕시코에서 피살
러시아혁명 후, 과실을 둘러싼 동갑내기 스탈린과 트로츠키의 암투와 음모가 극에 달했다. 1922년 레닌이 뇌졸중으로 쓰러지기 전까지는 레닌과 나란히 초상화가 걸릴 정도로 트로츠키가 절대적 우위였다. 그는 뛰어난 지성의 소유자였지만 오만했고, 자신보다 열등한 사람은 경멸하기까지 했다. 이에 비해 지적인 능력은 떨어졌지만 ‘강철 사나이’라는 이름이 말해주듯 스탈린은 강한 의지의 냉혈한이었다. 무엇보다 “회유와 공포가 사람을 끌어당기는 진정한 힘”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한 달 전 갔는데도 자꾸 어른거려 또 다시 찾아간 강원도 삼척·동해의 두타산(頭陀山)… ② 무릉계곡~관음암~신선봉~쌍폭·용추폭포~무릉계곡
↑ 쌍폭(왼쪽)과 용추폭 by 김지지 ☞ 두타산의 다른 코스(댓재~두타산~두타산성~무릉계곡)가 궁금하다면 클릭!! ☞ 두타산의 다른 코스(무릉계곡~베틀바위~두타산협곡 마천루~쌍폭·용추폭포~무릉계곡)가 궁금하다면 클릭!! 한 달 전 고교 친구들과 두타산 정상을 밟았는데도 두타산이 계속 어른거린다. 무엇보다 하산길 두타산성에서 바라본 무릉계곡 건너편의 관음암과 관음폭포가 궁금해서다. 이제나 저제나 기회를 엿보다가 추석 연휴 마지막날인...
내정된 주한 일본대사의 장인은 50년 전 할복한 극우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平岡公威)… 그는 과격한 천황주의자였다
↑ 1969년 5월 13일 일본 도쿄대 교양학부 대강당에서 전공투 학생들과 격론을 벌이고 있는 미시마 유키오 by 김지지 새로 부임하는 주한 일본대사의 장인이 태평양전쟁 패전 뒤 일본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활동하다가 1970년 할복 자살한 미시마 유키오(平岡公威)라고 한다. 미시마에 대해 알아본다. ‘천황 보호하는 방패 되겠다’며 사병대 결성 미시마 유키오(平岡公威, 1925~1970, 본명 히라오카 기미타카)는 도쿄에서 태어나...
[장상인의 일본 산책] 후쿠오카 이토시마 반도(糸島 半島)의 개야(芥屋)를 찾아가다… 그곳은 제국주의 시대 한·일간의 슬픈 역사를 안고 흐르는 현해탄(玄海灘)의 길목
↑ 바다로 돌출된 이토시마 반도(糸島 半島) 앞에 현해탄이 펼쳐있다. 반도 왼쪽 끝이 ‘개야 대문(芥屋大門)’이고 가운데 선착장이 개야어항이다. by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일본의 규슈(九州)에서 업무를 마치고 잠시 짬을 내어 깜짝 관광을 하기로 했다. 그렇다고 해서 백화점이나 지하상가를 헤매기에는 시간이 아까웠다. 바다로 가자는 의견이 대두되었다. 그러나, 일본 여행 중에, 그것도 밤 비행기로 돌아오는 날에 바다로 가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실미도 특수부대원 난동
1968년 4월에 창설됐다고 해서 ‘684부대’로 불렸다. 작전명은 ‘오소리’였다. 그해 1월 북한 무장공비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려 했던 ‘1·21사태’가 창설의 계기였다. 분노한 박정희는 보복 조치로 특수부대 창설을 명령했고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명을 따랐다. 인원은 남파 무장공비와 똑같은 31명으로 구성했다. 훈련장소는 인천에서 20㎞ 떨어진 실미도였다. 훈련 목적은 북한 주석궁 침투였다. 독도법·산악훈련·폭파기술 등을 익혔고 체포되면 죽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한·일합병조약 조인
일제의 한국 병탄은 일련의 치밀한 과정을 거쳐 전개됐다. 1905년 가쓰라·테프트밀약(7월), 제2차 영·일동맹(8월), 러·일강화조약(9월)을 체결, 국제적으로 한국에서의 독점적 권리를 인정받은 일제는 한국과도 3차에 걸쳐 한·일협약을 강제로 체결해 재정·외교·내정권을 모두 빼앗는다. 음모는 일본에서도 진행됐다. 1909년 각의에서 한국병합이 결정되고 천황도 이를 재가하자 1910년부터는 야욕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6월에 새로운 통감으로 부임한 육군대신 데라우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걸작 ‘모나리자’ 도난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이 모나리자 도난 사실을 발표한 1911년 8월 22일은 모나리자에게는 오히려 제2의 생일이 됐다. 그때까지 모나리자는 다른 르네상스 걸작들에 비해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었다. 그런데 신문들이 루브르의 관리 소홀을 질타하고 한편으로는 연일 모나리자와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대한 기사를 쏟아내면서 관심이 모나리자에 집중됐기 때문이다. 프랑스인들은 프랑스가 그런 명작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됐고, 자신들이 ‘라 조콩드’라고 부르는 모나리자의 미소도...
필리핀 정치 지도자 베니그노 아키노 피살
1983년 8월 21일 오후1시, 4∼5발의 총성이 필리핀 마닐라공항에 울려퍼졌다. 중화항공 여객기가 막 착륙한 뒤였다. 잠시 후 한 여인이 “군인들이 니노이를 쏘았다”고 울부짖었다. 필리핀의 야당 지도자 베니그노 아키노가 피살된 것이다. 곧이어 항공기 정비사 모습을 하고 있는 20대 청년도 군인들이 쏜 수 발의 총탄을 맞고 현장에 쓰러졌다. 살려둬서는 안되겠다는 듯 청년의 몸에는 몇 차례 더 총격이 가해졌다. 필리핀 정부는 죽은 청년이 청부살인업자 출신의 범인이라고...
하와이 주(州) 승격과 ‘하와이 근성’ 시비
하와이가 백인 세계에 알려진 것은 1778년 제임스 쿡이 이 섬을 처음 발견해 자신을 후원한 영국 샌드위치 백작의 이름을 따 ‘샌드위치 제도’라고 명명하면서였다. 이후 8대에 걸친 카메하메하 왕조가 하와이를 지배했으나 1893년 군주제가 전복되고 ‘하와이공화국’이 수립되면서 하와이는 더 이상 원주민의 땅이 아니었다. 1898년 하와이공화국과 미국이 합병에 동의하고 1900년 미국의 영토로 편입됐으나 속령이었기 때문에 적자라기보다는 서자같은 존재였다. 하와이가 미국 성조기의...
추송웅, 연극 ‘빠알간 피이터의 고백’ 초연
1977년, 한국 신극 70년 만에 새로운 이정표가 세워지고 한국 연극사에 새로운 신화가 탄생했다. 신화의 주인공은 기획·제작·연출·장치·연기의 1인 5역을 해낸 연극배우 추송웅이었다. 1941년 경남 고성군에서 4남2녀의 막내로 태어난 그는 다른 형제들이 키도 크고 공부도 잘한 수재들인데 반해 키도 작고 사팔뜨기에 공부도 못하는 집안의 골치덩어리였다. 내성적인 성격에 신체적 콤플렉스를 원죄처럼 안고 살았던 그가 선택한 길은 연극이었다. 연극인 생활 15년째, 추송웅은 변변한...
레온 트로츠키 멕시코에서 피살
러시아혁명 후, 과실을 둘러싼 동갑내기 스탈린과 트로츠키의 암투와 음모가 극에 달했다. 1922년 레닌이 뇌졸중으로 쓰러지기 전까지는 레닌과 나란히 초상화가 걸릴 정도로 트로츠키가 절대적 우위였다. 그는 뛰어난 지성의 소유자였지만 오만했고, 자신보다 열등한 사람은 경멸하기까지 했다. 이에 비해 지적인 능력은 떨어졌지만 ‘강철 사나이’라는 이름이 말해주듯 스탈린은 강한 의지의 냉혈한이었다. 무엇보다 “회유와 공포가 사람을 끌어당기는 진정한 힘”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한 달 전 갔는데도 자꾸 어른거려 또 다시 찾아간 강원도 삼척·동해의 두타산(頭陀山)… ② 무릉계곡~관음암~신선봉~쌍폭·용추폭포~무릉계곡
↑ 쌍폭(왼쪽)과 용추폭 by 김지지 ☞ 두타산의 다른 코스(댓재~두타산~두타산성~무릉계곡)가 궁금하다면 클릭!! ☞ 두타산의 다른 코스(무릉계곡~베틀바위~두타산협곡 마천루~쌍폭·용추폭포~무릉계곡)가 궁금하다면 클릭!! 한 달 전 고교 친구들과 두타산 정상을 밟았는데도 두타산이 계속 어른거린다. 무엇보다 하산길 두타산성에서 바라본 무릉계곡 건너편의 관음암과 관음폭포가 궁금해서다. 이제나 저제나 기회를 엿보다가 추석 연휴 마지막날인...
내정된 주한 일본대사의 장인은 50년 전 할복한 극우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平岡公威)… 그는 과격한 천황주의자였다
↑ 1969년 5월 13일 일본 도쿄대 교양학부 대강당에서 전공투 학생들과 격론을 벌이고 있는 미시마 유키오 by 김지지 새로 부임하는 주한 일본대사의 장인이 태평양전쟁 패전 뒤 일본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활동하다가 1970년 할복 자살한 미시마 유키오(平岡公威)라고 한다. 미시마에 대해 알아본다. ‘천황 보호하는 방패 되겠다’며 사병대 결성 미시마 유키오(平岡公威, 1925~1970, 본명 히라오카 기미타카)는 도쿄에서 태어나...
[장상인의 일본 산책] 후쿠오카 이토시마 반도(糸島 半島)의 개야(芥屋)를 찾아가다… 그곳은 제국주의 시대 한·일간의 슬픈 역사를 안고 흐르는 현해탄(玄海灘)의 길목
↑ 바다로 돌출된 이토시마 반도(糸島 半島) 앞에 현해탄이 펼쳐있다. 반도 왼쪽 끝이 ‘개야 대문(芥屋大門)’이고 가운데 선착장이 개야어항이다. by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일본의 규슈(九州)에서 업무를 마치고 잠시 짬을 내어 깜짝 관광을 하기로 했다. 그렇다고 해서 백화점이나 지하상가를 헤매기에는 시간이 아까웠다. 바다로 가자는 의견이 대두되었다. 그러나, 일본 여행 중에, 그것도 밤 비행기로 돌아오는 날에 바다로 가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실미도 특수부대원 난동
1968년 4월에 창설됐다고 해서 ‘684부대’로 불렸다. 작전명은 ‘오소리’였다. 그해 1월 북한 무장공비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려 했던 ‘1·21사태’가 창설의 계기였다. 분노한 박정희는 보복 조치로 특수부대 창설을 명령했고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명을 따랐다. 인원은 남파 무장공비와 똑같은 31명으로 구성했다. 훈련장소는 인천에서 20㎞ 떨어진 실미도였다. 훈련 목적은 북한 주석궁 침투였다. 독도법·산악훈련·폭파기술 등을 익혔고 체포되면 죽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한·일합병조약 조인
일제의 한국 병탄은 일련의 치밀한 과정을 거쳐 전개됐다. 1905년 가쓰라·테프트밀약(7월), 제2차 영·일동맹(8월), 러·일강화조약(9월)을 체결, 국제적으로 한국에서의 독점적 권리를 인정받은 일제는 한국과도 3차에 걸쳐 한·일협약을 강제로 체결해 재정·외교·내정권을 모두 빼앗는다. 음모는 일본에서도 진행됐다. 1909년 각의에서 한국병합이 결정되고 천황도 이를 재가하자 1910년부터는 야욕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6월에 새로운 통감으로 부임한 육군대신 데라우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걸작 ‘모나리자’ 도난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이 모나리자 도난 사실을 발표한 1911년 8월 22일은 모나리자에게는 오히려 제2의 생일이 됐다. 그때까지 모나리자는 다른 르네상스 걸작들에 비해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었다. 그런데 신문들이 루브르의 관리 소홀을 질타하고 한편으로는 연일 모나리자와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대한 기사를 쏟아내면서 관심이 모나리자에 집중됐기 때문이다. 프랑스인들은 프랑스가 그런 명작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됐고, 자신들이 ‘라 조콩드’라고 부르는 모나리자의 미소도...
필리핀 정치 지도자 베니그노 아키노 피살
1983년 8월 21일 오후1시, 4∼5발의 총성이 필리핀 마닐라공항에 울려퍼졌다. 중화항공 여객기가 막 착륙한 뒤였다. 잠시 후 한 여인이 “군인들이 니노이를 쏘았다”고 울부짖었다. 필리핀의 야당 지도자 베니그노 아키노가 피살된 것이다. 곧이어 항공기 정비사 모습을 하고 있는 20대 청년도 군인들이 쏜 수 발의 총탄을 맞고 현장에 쓰러졌다. 살려둬서는 안되겠다는 듯 청년의 몸에는 몇 차례 더 총격이 가해졌다. 필리핀 정부는 죽은 청년이 청부살인업자 출신의 범인이라고...
하와이 주(州) 승격과 ‘하와이 근성’ 시비
하와이가 백인 세계에 알려진 것은 1778년 제임스 쿡이 이 섬을 처음 발견해 자신을 후원한 영국 샌드위치 백작의 이름을 따 ‘샌드위치 제도’라고 명명하면서였다. 이후 8대에 걸친 카메하메하 왕조가 하와이를 지배했으나 1893년 군주제가 전복되고 ‘하와이공화국’이 수립되면서 하와이는 더 이상 원주민의 땅이 아니었다. 1898년 하와이공화국과 미국이 합병에 동의하고 1900년 미국의 영토로 편입됐으나 속령이었기 때문에 적자라기보다는 서자같은 존재였다. 하와이가 미국 성조기의...
추송웅, 연극 ‘빠알간 피이터의 고백’ 초연
1977년, 한국 신극 70년 만에 새로운 이정표가 세워지고 한국 연극사에 새로운 신화가 탄생했다. 신화의 주인공은 기획·제작·연출·장치·연기의 1인 5역을 해낸 연극배우 추송웅이었다. 1941년 경남 고성군에서 4남2녀의 막내로 태어난 그는 다른 형제들이 키도 크고 공부도 잘한 수재들인데 반해 키도 작고 사팔뜨기에 공부도 못하는 집안의 골치덩어리였다. 내성적인 성격에 신체적 콤플렉스를 원죄처럼 안고 살았던 그가 선택한 길은 연극이었다. 연극인 생활 15년째, 추송웅은 변변한...
레온 트로츠키 멕시코에서 피살
러시아혁명 후, 과실을 둘러싼 동갑내기 스탈린과 트로츠키의 암투와 음모가 극에 달했다. 1922년 레닌이 뇌졸중으로 쓰러지기 전까지는 레닌과 나란히 초상화가 걸릴 정도로 트로츠키가 절대적 우위였다. 그는 뛰어난 지성의 소유자였지만 오만했고, 자신보다 열등한 사람은 경멸하기까지 했다. 이에 비해 지적인 능력은 떨어졌지만 ‘강철 사나이’라는 이름이 말해주듯 스탈린은 강한 의지의 냉혈한이었다. 무엇보다 “회유와 공포가 사람을 끌어당기는 진정한 힘”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한 달 전 갔는데도 자꾸 어른거려 또 다시 찾아간 강원도 삼척·동해의 두타산(頭陀山)… ② 무릉계곡~관음암~신선봉~쌍폭·용추폭포~무릉계곡
↑ 쌍폭(왼쪽)과 용추폭 by 김지지 ☞ 두타산의 다른 코스(댓재~두타산~두타산성~무릉계곡)가 궁금하다면 클릭!! ☞ 두타산의 다른 코스(무릉계곡~베틀바위~두타산협곡 마천루~쌍폭·용추폭포~무릉계곡)가 궁금하다면 클릭!! 한 달 전 고교 친구들과 두타산 정상을 밟았는데도 두타산이 계속 어른거린다. 무엇보다 하산길 두타산성에서 바라본 무릉계곡 건너편의 관음암과 관음폭포가 궁금해서다. 이제나 저제나 기회를 엿보다가 추석 연휴 마지막날인...
내정된 주한 일본대사의 장인은 50년 전 할복한 극우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平岡公威)… 그는 과격한 천황주의자였다
↑ 1969년 5월 13일 일본 도쿄대 교양학부 대강당에서 전공투 학생들과 격론을 벌이고 있는 미시마 유키오 by 김지지 새로 부임하는 주한 일본대사의 장인이 태평양전쟁 패전 뒤 일본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활동하다가 1970년 할복 자살한 미시마 유키오(平岡公威)라고 한다. 미시마에 대해 알아본다. ‘천황 보호하는 방패 되겠다’며 사병대 결성 미시마 유키오(平岡公威, 1925~1970, 본명 히라오카 기미타카)는 도쿄에서 태어나...
[장상인의 일본 산책] 후쿠오카 이토시마 반도(糸島 半島)의 개야(芥屋)를 찾아가다… 그곳은 제국주의 시대 한·일간의 슬픈 역사를 안고 흐르는 현해탄(玄海灘)의 길목
↑ 바다로 돌출된 이토시마 반도(糸島 半島) 앞에 현해탄이 펼쳐있다. 반도 왼쪽 끝이 ‘개야 대문(芥屋大門)’이고 가운데 선착장이 개야어항이다. by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일본의 규슈(九州)에서 업무를 마치고 잠시 짬을 내어 깜짝 관광을 하기로 했다. 그렇다고 해서 백화점이나 지하상가를 헤매기에는 시간이 아까웠다. 바다로 가자는 의견이 대두되었다. 그러나, 일본 여행 중에, 그것도 밤 비행기로 돌아오는 날에 바다로 가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