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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수립
해방 후 북한은 김일성이 사실상의 모든 권력을 장악해 놓고도 통일정부 수립이란 명분을 내세워 공식적으로는 정부 수립을 차일피일 미뤄왔다. 1948년 8월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김일성은 비로소 정부 수립을 위한 수순을 밟았다. 첫 작업은 1948년 8월 25일 치러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였다. 우리의 총선과 다른 점은 후보자를 선택하는 방식이 아니라 미리 정해진 후보자에 대해 찬반을 표시하는 형식이었다. 공개투표인 흑백함 선거였던 탓에 유권자 452만 명 중...
日 패전 후 美 제24군단 인천 도착
2차대전도 사실상 막을 내린 1945년 8월 11일. 오키나와 주둔 미 제24군단 사령관 존 하지에게 미국 태평양사령부에서 한 통의 전문이 날아들었다. “한반도 38선 이남을 접수하라”는 전문이었다. 이미 소련이 일본에 선전포고(8월 8일)하고 한반도를 향해 속전속결로 진군하던 긴박한 상황에서 한반도로부터 1600여㎞나 떨어진 오키나와 주둔 24군단에 이 임무가 떨어진 것은 단지 다른 부대에 비해 한반도와 가장 가깝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는 과달카날 전투와 오키나와 전투를...
독일, 영국 향해 ‘V2’ 로켓 첫 발사
1944년 6월 12일부터 고성능의 폭탄이 무차별로 런던 상공을 헤집고 다녀도 영국군은 속수무책이었다. 도무지 발사지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곧 독일어 ‘보복(vergeltung)’의 이니셜에서 이름을 딴 ‘V1’ 로켓인 것으로 밝혀졌다. 다행히 발사 추정지를 알아내 맹폭을 가하고 레이다와 방어장치 개선으로 요격율이 높아지면서 영국군은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인명피해가 크게 난 뒤였다. 8600여 발 가운데 런던과 주변에 떨어진 2400발의 V1으로...
연합국, 2차대전 패전국 일본과 대일평화조약 조인
2차대전이 끝났어도 중국이 공산화되고 한국에서 전쟁이 발발하는 등 동아시아 정세는 격변하고 있었다. 미국은 점령지 일본을 반공 거점으로 삼아 소련·중국에 대항할 반공벨트 구축에 나섰고,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일본을 하루속히 전범국의 족쇄에서 풀어주어야했다. 경제 재건이 절실했던 일본 역시 강화(講和·조약을 맺어 평화로운 상태로 되돌아 가는 것)가 필요했다. 이같은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물린 덕에 1951년 9월 8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오페라하우스에서 대일평화조약이...
제1회 미스아메리카 선발대회 개최
세계 3대 미인대회는 ‘미스 유니버스’(1921년), ‘미스 월드’(1951년), ‘미스 인터내셔널’(1960년)이다. 그중 ‘미스 유니버스’는 미인대회의 원조격으로 숱한 화제를 뿌리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21년 9월 7일 미 뉴저지주 애틀랜틱 시티에서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조그만 이벤트가 열렸다. 8명의 여성들이 해변가에서 ‘수영복 미인대회’를 연 것이다. 한 지방 신문사 간부가 노동절 연휴를 맞아 관광객을 끌어들일 목적으로 고안해낸 행사였다. 대회였던 만큼 순위를...
야쿠자 두목 살해한 권희로, 31년 8개월만에 일본 감옥에서 석방
1968년 2월 20일 일본 시즈오카현 시미즈시의 밍크스 나이트클럽에서 한 야쿠자 두목이 권희로(김희로)에게 돈을 갚으라는 협박과 함께 “조센징, 더러운 돼지새끼”라며 욕설을 퍼부었다. 분노한 권희로는 엽총으로 야쿠자 두목과 부하를 사살하고는 현장에서 45㎞ 떨어진 온천여관으로 달아나 여관주인과 13명의 투숙객을 인질로 잡아 장장 88시간 동안 인질극을 벌였다. 이 모습이 TV와 신문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되어 재일교포 차별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르긴 했지만 일본인에게 권희로는...
비운의 화가 이중섭 사망
이중섭의 삶은 6·25를 전후해 둘로 나뉜다.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유복하게 성장했던 젊은 시절과 월남 이후 겪어야 했던 일련의 비극적인 삶이다. 때문에 그가 ‘비운의 화가’로 불린 것은 6·25부터 40세 나이로 요절할 때까지의 6년 동안이다.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각광받던 이중섭이 고국으로 돌아온 것은 1943년이었다. 2년 뒤 이중섭을 쫓아온 야마모토 마사코와 결혼하고 함남 원산에 둥지를 틀었다. 짧았지만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그러나 분단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영국 청교도 태운 ‘메이플라워호’ 신대륙 향해 영국 출발
1534년 영국 왕 헨리 8세가 왕비 캐서린과의 이혼 문제를 계기로 소위 ‘수장령’이라는 것을 발표해 로마 교황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스스로 만든 ‘국교회’의 수장이 되면서 ‘청교도’와의 갈등이 증폭되었다. 1603년 재위에 오른 제임스 왕이 왕권신수설을 내세워 국교를 강제로 믿게 하자 청교도의 급진파 분리주의자들은 종교적 박해를 피해 1609년 네덜란드의 라이덴으로 피신했다. 10여 년을 살았으나 살림살이가 여전히 어렵고 자신들의 정체성도 잃을 것을 우려한 이들은 신대륙행을...
‘검은 9월단’ 뮌헨올림픽 이스라엘 선수촌 난입
1972년 9월 5일 새벽. ‘검은 9월단’을 자칭하는 8명의 아랍 무장 게릴라들이 뮌헨올림픽 이스라엘 선수촌에 난입, 코치 2명을 사살하고 선수 9명을 인질로 삼았다. 화해와 축제의 장이어야 할 올림픽이 졸지에 공포의 무대로 돌변한 것이다. 이스라엘에 붙잡혀있는 200여 명의 동료들을 석방하라는 게 이들의 요구였다. ‘검은 9월’은 아랍 게릴라들이 요르단 정부군의 토벌 작전으로 큰 타격을 받은 1971년 9월을 의미하며, ‘검은 9월단’은 같은 해 11월 요르단의 탈 총리를...
일본·소련의 포츠머스 조약 체결과 日 히비야 폭동
1904년 2월 8일 일본이 중국 뤄순항의 러시아함대를 선제공격하면서 시작된 러일전쟁은 이듬해 1월 일본이 난공불락의 뤄순요새를 함락하고 그해 5월 러시아의 발트함대마저 대한해협에서 격파하면서 사실상 내리막길을 걸었다. 일본의 러·일전쟁 승리는 전 세계에 충격이었다. 서양이 동양에 패배한 것은 징기스칸의 유럽 침공 이후 처음이었다. 그러나 전쟁이 막바지에 다다르면서 일본은 더이상 전쟁을 치를 수 없었다. 전사자·병사자가 8만 여명인데다 부상자·발병자도 38만 여명을 헤아렸기...
북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수립
해방 후 북한은 김일성이 사실상의 모든 권력을 장악해 놓고도 통일정부 수립이란 명분을 내세워 공식적으로는 정부 수립을 차일피일 미뤄왔다. 1948년 8월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김일성은 비로소 정부 수립을 위한 수순을 밟았다. 첫 작업은 1948년 8월 25일 치러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였다. 우리의 총선과 다른 점은 후보자를 선택하는 방식이 아니라 미리 정해진 후보자에 대해 찬반을 표시하는 형식이었다. 공개투표인 흑백함 선거였던 탓에 유권자 452만 명 중...
日 패전 후 美 제24군단 인천 도착
2차대전도 사실상 막을 내린 1945년 8월 11일. 오키나와 주둔 미 제24군단 사령관 존 하지에게 미국 태평양사령부에서 한 통의 전문이 날아들었다. “한반도 38선 이남을 접수하라”는 전문이었다. 이미 소련이 일본에 선전포고(8월 8일)하고 한반도를 향해 속전속결로 진군하던 긴박한 상황에서 한반도로부터 1600여㎞나 떨어진 오키나와 주둔 24군단에 이 임무가 떨어진 것은 단지 다른 부대에 비해 한반도와 가장 가깝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는 과달카날 전투와 오키나와 전투를...
독일, 영국 향해 ‘V2’ 로켓 첫 발사
1944년 6월 12일부터 고성능의 폭탄이 무차별로 런던 상공을 헤집고 다녀도 영국군은 속수무책이었다. 도무지 발사지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곧 독일어 ‘보복(vergeltung)’의 이니셜에서 이름을 딴 ‘V1’ 로켓인 것으로 밝혀졌다. 다행히 발사 추정지를 알아내 맹폭을 가하고 레이다와 방어장치 개선으로 요격율이 높아지면서 영국군은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인명피해가 크게 난 뒤였다. 8600여 발 가운데 런던과 주변에 떨어진 2400발의 V1으로...
연합국, 2차대전 패전국 일본과 대일평화조약 조인
2차대전이 끝났어도 중국이 공산화되고 한국에서 전쟁이 발발하는 등 동아시아 정세는 격변하고 있었다. 미국은 점령지 일본을 반공 거점으로 삼아 소련·중국에 대항할 반공벨트 구축에 나섰고,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일본을 하루속히 전범국의 족쇄에서 풀어주어야했다. 경제 재건이 절실했던 일본 역시 강화(講和·조약을 맺어 평화로운 상태로 되돌아 가는 것)가 필요했다. 이같은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물린 덕에 1951년 9월 8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오페라하우스에서 대일평화조약이...
제1회 미스아메리카 선발대회 개최
세계 3대 미인대회는 ‘미스 유니버스’(1921년), ‘미스 월드’(1951년), ‘미스 인터내셔널’(1960년)이다. 그중 ‘미스 유니버스’는 미인대회의 원조격으로 숱한 화제를 뿌리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21년 9월 7일 미 뉴저지주 애틀랜틱 시티에서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조그만 이벤트가 열렸다. 8명의 여성들이 해변가에서 ‘수영복 미인대회’를 연 것이다. 한 지방 신문사 간부가 노동절 연휴를 맞아 관광객을 끌어들일 목적으로 고안해낸 행사였다. 대회였던 만큼 순위를...
야쿠자 두목 살해한 권희로, 31년 8개월만에 일본 감옥에서 석방
1968년 2월 20일 일본 시즈오카현 시미즈시의 밍크스 나이트클럽에서 한 야쿠자 두목이 권희로(김희로)에게 돈을 갚으라는 협박과 함께 “조센징, 더러운 돼지새끼”라며 욕설을 퍼부었다. 분노한 권희로는 엽총으로 야쿠자 두목과 부하를 사살하고는 현장에서 45㎞ 떨어진 온천여관으로 달아나 여관주인과 13명의 투숙객을 인질로 잡아 장장 88시간 동안 인질극을 벌였다. 이 모습이 TV와 신문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되어 재일교포 차별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르긴 했지만 일본인에게 권희로는...
비운의 화가 이중섭 사망
이중섭의 삶은 6·25를 전후해 둘로 나뉜다.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유복하게 성장했던 젊은 시절과 월남 이후 겪어야 했던 일련의 비극적인 삶이다. 때문에 그가 ‘비운의 화가’로 불린 것은 6·25부터 40세 나이로 요절할 때까지의 6년 동안이다.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각광받던 이중섭이 고국으로 돌아온 것은 1943년이었다. 2년 뒤 이중섭을 쫓아온 야마모토 마사코와 결혼하고 함남 원산에 둥지를 틀었다. 짧았지만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그러나 분단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영국 청교도 태운 ‘메이플라워호’ 신대륙 향해 영국 출발
1534년 영국 왕 헨리 8세가 왕비 캐서린과의 이혼 문제를 계기로 소위 ‘수장령’이라는 것을 발표해 로마 교황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스스로 만든 ‘국교회’의 수장이 되면서 ‘청교도’와의 갈등이 증폭되었다. 1603년 재위에 오른 제임스 왕이 왕권신수설을 내세워 국교를 강제로 믿게 하자 청교도의 급진파 분리주의자들은 종교적 박해를 피해 1609년 네덜란드의 라이덴으로 피신했다. 10여 년을 살았으나 살림살이가 여전히 어렵고 자신들의 정체성도 잃을 것을 우려한 이들은 신대륙행을...
‘검은 9월단’ 뮌헨올림픽 이스라엘 선수촌 난입
1972년 9월 5일 새벽. ‘검은 9월단’을 자칭하는 8명의 아랍 무장 게릴라들이 뮌헨올림픽 이스라엘 선수촌에 난입, 코치 2명을 사살하고 선수 9명을 인질로 삼았다. 화해와 축제의 장이어야 할 올림픽이 졸지에 공포의 무대로 돌변한 것이다. 이스라엘에 붙잡혀있는 200여 명의 동료들을 석방하라는 게 이들의 요구였다. ‘검은 9월’은 아랍 게릴라들이 요르단 정부군의 토벌 작전으로 큰 타격을 받은 1971년 9월을 의미하며, ‘검은 9월단’은 같은 해 11월 요르단의 탈 총리를...
일본·소련의 포츠머스 조약 체결과 日 히비야 폭동
1904년 2월 8일 일본이 중국 뤄순항의 러시아함대를 선제공격하면서 시작된 러일전쟁은 이듬해 1월 일본이 난공불락의 뤄순요새를 함락하고 그해 5월 러시아의 발트함대마저 대한해협에서 격파하면서 사실상 내리막길을 걸었다. 일본의 러·일전쟁 승리는 전 세계에 충격이었다. 서양이 동양에 패배한 것은 징기스칸의 유럽 침공 이후 처음이었다. 그러나 전쟁이 막바지에 다다르면서 일본은 더이상 전쟁을 치를 수 없었다. 전사자·병사자가 8만 여명인데다 부상자·발병자도 38만 여명을 헤아렸기...
북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수립
해방 후 북한은 김일성이 사실상의 모든 권력을 장악해 놓고도 통일정부 수립이란 명분을 내세워 공식적으로는 정부 수립을 차일피일 미뤄왔다. 1948년 8월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김일성은 비로소 정부 수립을 위한 수순을 밟았다. 첫 작업은 1948년 8월 25일 치러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였다. 우리의 총선과 다른 점은 후보자를 선택하는 방식이 아니라 미리 정해진 후보자에 대해 찬반을 표시하는 형식이었다. 공개투표인 흑백함 선거였던 탓에 유권자 452만 명 중...
日 패전 후 美 제24군단 인천 도착
2차대전도 사실상 막을 내린 1945년 8월 11일. 오키나와 주둔 미 제24군단 사령관 존 하지에게 미국 태평양사령부에서 한 통의 전문이 날아들었다. “한반도 38선 이남을 접수하라”는 전문이었다. 이미 소련이 일본에 선전포고(8월 8일)하고 한반도를 향해 속전속결로 진군하던 긴박한 상황에서 한반도로부터 1600여㎞나 떨어진 오키나와 주둔 24군단에 이 임무가 떨어진 것은 단지 다른 부대에 비해 한반도와 가장 가깝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는 과달카날 전투와 오키나와 전투를...
독일, 영국 향해 ‘V2’ 로켓 첫 발사
1944년 6월 12일부터 고성능의 폭탄이 무차별로 런던 상공을 헤집고 다녀도 영국군은 속수무책이었다. 도무지 발사지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곧 독일어 ‘보복(vergeltung)’의 이니셜에서 이름을 딴 ‘V1’ 로켓인 것으로 밝혀졌다. 다행히 발사 추정지를 알아내 맹폭을 가하고 레이다와 방어장치 개선으로 요격율이 높아지면서 영국군은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인명피해가 크게 난 뒤였다. 8600여 발 가운데 런던과 주변에 떨어진 2400발의 V1으로...
연합국, 2차대전 패전국 일본과 대일평화조약 조인
2차대전이 끝났어도 중국이 공산화되고 한국에서 전쟁이 발발하는 등 동아시아 정세는 격변하고 있었다. 미국은 점령지 일본을 반공 거점으로 삼아 소련·중국에 대항할 반공벨트 구축에 나섰고,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일본을 하루속히 전범국의 족쇄에서 풀어주어야했다. 경제 재건이 절실했던 일본 역시 강화(講和·조약을 맺어 평화로운 상태로 되돌아 가는 것)가 필요했다. 이같은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물린 덕에 1951년 9월 8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오페라하우스에서 대일평화조약이...
제1회 미스아메리카 선발대회 개최
세계 3대 미인대회는 ‘미스 유니버스’(1921년), ‘미스 월드’(1951년), ‘미스 인터내셔널’(1960년)이다. 그중 ‘미스 유니버스’는 미인대회의 원조격으로 숱한 화제를 뿌리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21년 9월 7일 미 뉴저지주 애틀랜틱 시티에서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조그만 이벤트가 열렸다. 8명의 여성들이 해변가에서 ‘수영복 미인대회’를 연 것이다. 한 지방 신문사 간부가 노동절 연휴를 맞아 관광객을 끌어들일 목적으로 고안해낸 행사였다. 대회였던 만큼 순위를...
야쿠자 두목 살해한 권희로, 31년 8개월만에 일본 감옥에서 석방
1968년 2월 20일 일본 시즈오카현 시미즈시의 밍크스 나이트클럽에서 한 야쿠자 두목이 권희로(김희로)에게 돈을 갚으라는 협박과 함께 “조센징, 더러운 돼지새끼”라며 욕설을 퍼부었다. 분노한 권희로는 엽총으로 야쿠자 두목과 부하를 사살하고는 현장에서 45㎞ 떨어진 온천여관으로 달아나 여관주인과 13명의 투숙객을 인질로 잡아 장장 88시간 동안 인질극을 벌였다. 이 모습이 TV와 신문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되어 재일교포 차별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르긴 했지만 일본인에게 권희로는...
비운의 화가 이중섭 사망
이중섭의 삶은 6·25를 전후해 둘로 나뉜다.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유복하게 성장했던 젊은 시절과 월남 이후 겪어야 했던 일련의 비극적인 삶이다. 때문에 그가 ‘비운의 화가’로 불린 것은 6·25부터 40세 나이로 요절할 때까지의 6년 동안이다.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각광받던 이중섭이 고국으로 돌아온 것은 1943년이었다. 2년 뒤 이중섭을 쫓아온 야마모토 마사코와 결혼하고 함남 원산에 둥지를 틀었다. 짧았지만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그러나 분단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영국 청교도 태운 ‘메이플라워호’ 신대륙 향해 영국 출발
1534년 영국 왕 헨리 8세가 왕비 캐서린과의 이혼 문제를 계기로 소위 ‘수장령’이라는 것을 발표해 로마 교황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스스로 만든 ‘국교회’의 수장이 되면서 ‘청교도’와의 갈등이 증폭되었다. 1603년 재위에 오른 제임스 왕이 왕권신수설을 내세워 국교를 강제로 믿게 하자 청교도의 급진파 분리주의자들은 종교적 박해를 피해 1609년 네덜란드의 라이덴으로 피신했다. 10여 년을 살았으나 살림살이가 여전히 어렵고 자신들의 정체성도 잃을 것을 우려한 이들은 신대륙행을...
‘검은 9월단’ 뮌헨올림픽 이스라엘 선수촌 난입
1972년 9월 5일 새벽. ‘검은 9월단’을 자칭하는 8명의 아랍 무장 게릴라들이 뮌헨올림픽 이스라엘 선수촌에 난입, 코치 2명을 사살하고 선수 9명을 인질로 삼았다. 화해와 축제의 장이어야 할 올림픽이 졸지에 공포의 무대로 돌변한 것이다. 이스라엘에 붙잡혀있는 200여 명의 동료들을 석방하라는 게 이들의 요구였다. ‘검은 9월’은 아랍 게릴라들이 요르단 정부군의 토벌 작전으로 큰 타격을 받은 1971년 9월을 의미하며, ‘검은 9월단’은 같은 해 11월 요르단의 탈 총리를...
일본·소련의 포츠머스 조약 체결과 日 히비야 폭동
1904년 2월 8일 일본이 중국 뤄순항의 러시아함대를 선제공격하면서 시작된 러일전쟁은 이듬해 1월 일본이 난공불락의 뤄순요새를 함락하고 그해 5월 러시아의 발트함대마저 대한해협에서 격파하면서 사실상 내리막길을 걸었다. 일본의 러·일전쟁 승리는 전 세계에 충격이었다. 서양이 동양에 패배한 것은 징기스칸의 유럽 침공 이후 처음이었다. 그러나 전쟁이 막바지에 다다르면서 일본은 더이상 전쟁을 치를 수 없었다. 전사자·병사자가 8만 여명인데다 부상자·발병자도 38만 여명을 헤아렸기...
북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수립
해방 후 북한은 김일성이 사실상의 모든 권력을 장악해 놓고도 통일정부 수립이란 명분을 내세워 공식적으로는 정부 수립을 차일피일 미뤄왔다. 1948년 8월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김일성은 비로소 정부 수립을 위한 수순을 밟았다. 첫 작업은 1948년 8월 25일 치러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였다. 우리의 총선과 다른 점은 후보자를 선택하는 방식이 아니라 미리 정해진 후보자에 대해 찬반을 표시하는 형식이었다. 공개투표인 흑백함 선거였던 탓에 유권자 452만 명 중...
日 패전 후 美 제24군단 인천 도착
2차대전도 사실상 막을 내린 1945년 8월 11일. 오키나와 주둔 미 제24군단 사령관 존 하지에게 미국 태평양사령부에서 한 통의 전문이 날아들었다. “한반도 38선 이남을 접수하라”는 전문이었다. 이미 소련이 일본에 선전포고(8월 8일)하고 한반도를 향해 속전속결로 진군하던 긴박한 상황에서 한반도로부터 1600여㎞나 떨어진 오키나와 주둔 24군단에 이 임무가 떨어진 것은 단지 다른 부대에 비해 한반도와 가장 가깝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는 과달카날 전투와 오키나와 전투를...
독일, 영국 향해 ‘V2’ 로켓 첫 발사
1944년 6월 12일부터 고성능의 폭탄이 무차별로 런던 상공을 헤집고 다녀도 영국군은 속수무책이었다. 도무지 발사지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곧 독일어 ‘보복(vergeltung)’의 이니셜에서 이름을 딴 ‘V1’ 로켓인 것으로 밝혀졌다. 다행히 발사 추정지를 알아내 맹폭을 가하고 레이다와 방어장치 개선으로 요격율이 높아지면서 영국군은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인명피해가 크게 난 뒤였다. 8600여 발 가운데 런던과 주변에 떨어진 2400발의 V1으로...
연합국, 2차대전 패전국 일본과 대일평화조약 조인
2차대전이 끝났어도 중국이 공산화되고 한국에서 전쟁이 발발하는 등 동아시아 정세는 격변하고 있었다. 미국은 점령지 일본을 반공 거점으로 삼아 소련·중국에 대항할 반공벨트 구축에 나섰고,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일본을 하루속히 전범국의 족쇄에서 풀어주어야했다. 경제 재건이 절실했던 일본 역시 강화(講和·조약을 맺어 평화로운 상태로 되돌아 가는 것)가 필요했다. 이같은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물린 덕에 1951년 9월 8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오페라하우스에서 대일평화조약이...
제1회 미스아메리카 선발대회 개최
세계 3대 미인대회는 ‘미스 유니버스’(1921년), ‘미스 월드’(1951년), ‘미스 인터내셔널’(1960년)이다. 그중 ‘미스 유니버스’는 미인대회의 원조격으로 숱한 화제를 뿌리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21년 9월 7일 미 뉴저지주 애틀랜틱 시티에서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조그만 이벤트가 열렸다. 8명의 여성들이 해변가에서 ‘수영복 미인대회’를 연 것이다. 한 지방 신문사 간부가 노동절 연휴를 맞아 관광객을 끌어들일 목적으로 고안해낸 행사였다. 대회였던 만큼 순위를...
야쿠자 두목 살해한 권희로, 31년 8개월만에 일본 감옥에서 석방
1968년 2월 20일 일본 시즈오카현 시미즈시의 밍크스 나이트클럽에서 한 야쿠자 두목이 권희로(김희로)에게 돈을 갚으라는 협박과 함께 “조센징, 더러운 돼지새끼”라며 욕설을 퍼부었다. 분노한 권희로는 엽총으로 야쿠자 두목과 부하를 사살하고는 현장에서 45㎞ 떨어진 온천여관으로 달아나 여관주인과 13명의 투숙객을 인질로 잡아 장장 88시간 동안 인질극을 벌였다. 이 모습이 TV와 신문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되어 재일교포 차별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르긴 했지만 일본인에게 권희로는...
비운의 화가 이중섭 사망
이중섭의 삶은 6·25를 전후해 둘로 나뉜다.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유복하게 성장했던 젊은 시절과 월남 이후 겪어야 했던 일련의 비극적인 삶이다. 때문에 그가 ‘비운의 화가’로 불린 것은 6·25부터 40세 나이로 요절할 때까지의 6년 동안이다.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각광받던 이중섭이 고국으로 돌아온 것은 1943년이었다. 2년 뒤 이중섭을 쫓아온 야마모토 마사코와 결혼하고 함남 원산에 둥지를 틀었다. 짧았지만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그러나 분단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영국 청교도 태운 ‘메이플라워호’ 신대륙 향해 영국 출발
1534년 영국 왕 헨리 8세가 왕비 캐서린과의 이혼 문제를 계기로 소위 ‘수장령’이라는 것을 발표해 로마 교황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스스로 만든 ‘국교회’의 수장이 되면서 ‘청교도’와의 갈등이 증폭되었다. 1603년 재위에 오른 제임스 왕이 왕권신수설을 내세워 국교를 강제로 믿게 하자 청교도의 급진파 분리주의자들은 종교적 박해를 피해 1609년 네덜란드의 라이덴으로 피신했다. 10여 년을 살았으나 살림살이가 여전히 어렵고 자신들의 정체성도 잃을 것을 우려한 이들은 신대륙행을...
‘검은 9월단’ 뮌헨올림픽 이스라엘 선수촌 난입
1972년 9월 5일 새벽. ‘검은 9월단’을 자칭하는 8명의 아랍 무장 게릴라들이 뮌헨올림픽 이스라엘 선수촌에 난입, 코치 2명을 사살하고 선수 9명을 인질로 삼았다. 화해와 축제의 장이어야 할 올림픽이 졸지에 공포의 무대로 돌변한 것이다. 이스라엘에 붙잡혀있는 200여 명의 동료들을 석방하라는 게 이들의 요구였다. ‘검은 9월’은 아랍 게릴라들이 요르단 정부군의 토벌 작전으로 큰 타격을 받은 1971년 9월을 의미하며, ‘검은 9월단’은 같은 해 11월 요르단의 탈 총리를...
일본·소련의 포츠머스 조약 체결과 日 히비야 폭동
1904년 2월 8일 일본이 중국 뤄순항의 러시아함대를 선제공격하면서 시작된 러일전쟁은 이듬해 1월 일본이 난공불락의 뤄순요새를 함락하고 그해 5월 러시아의 발트함대마저 대한해협에서 격파하면서 사실상 내리막길을 걸었다. 일본의 러·일전쟁 승리는 전 세계에 충격이었다. 서양이 동양에 패배한 것은 징기스칸의 유럽 침공 이후 처음이었다. 그러나 전쟁이 막바지에 다다르면서 일본은 더이상 전쟁을 치를 수 없었다. 전사자·병사자가 8만 여명인데다 부상자·발병자도 38만 여명을 헤아렸기...
북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수립
해방 후 북한은 김일성이 사실상의 모든 권력을 장악해 놓고도 통일정부 수립이란 명분을 내세워 공식적으로는 정부 수립을 차일피일 미뤄왔다. 1948년 8월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김일성은 비로소 정부 수립을 위한 수순을 밟았다. 첫 작업은 1948년 8월 25일 치러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였다. 우리의 총선과 다른 점은 후보자를 선택하는 방식이 아니라 미리 정해진 후보자에 대해 찬반을 표시하는 형식이었다. 공개투표인 흑백함 선거였던 탓에 유권자 452만 명 중...
日 패전 후 美 제24군단 인천 도착
2차대전도 사실상 막을 내린 1945년 8월 11일. 오키나와 주둔 미 제24군단 사령관 존 하지에게 미국 태평양사령부에서 한 통의 전문이 날아들었다. “한반도 38선 이남을 접수하라”는 전문이었다. 이미 소련이 일본에 선전포고(8월 8일)하고 한반도를 향해 속전속결로 진군하던 긴박한 상황에서 한반도로부터 1600여㎞나 떨어진 오키나와 주둔 24군단에 이 임무가 떨어진 것은 단지 다른 부대에 비해 한반도와 가장 가깝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는 과달카날 전투와 오키나와 전투를...
독일, 영국 향해 ‘V2’ 로켓 첫 발사
1944년 6월 12일부터 고성능의 폭탄이 무차별로 런던 상공을 헤집고 다녀도 영국군은 속수무책이었다. 도무지 발사지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곧 독일어 ‘보복(vergeltung)’의 이니셜에서 이름을 딴 ‘V1’ 로켓인 것으로 밝혀졌다. 다행히 발사 추정지를 알아내 맹폭을 가하고 레이다와 방어장치 개선으로 요격율이 높아지면서 영국군은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인명피해가 크게 난 뒤였다. 8600여 발 가운데 런던과 주변에 떨어진 2400발의 V1으로...
연합국, 2차대전 패전국 일본과 대일평화조약 조인
2차대전이 끝났어도 중국이 공산화되고 한국에서 전쟁이 발발하는 등 동아시아 정세는 격변하고 있었다. 미국은 점령지 일본을 반공 거점으로 삼아 소련·중국에 대항할 반공벨트 구축에 나섰고,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일본을 하루속히 전범국의 족쇄에서 풀어주어야했다. 경제 재건이 절실했던 일본 역시 강화(講和·조약을 맺어 평화로운 상태로 되돌아 가는 것)가 필요했다. 이같은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물린 덕에 1951년 9월 8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오페라하우스에서 대일평화조약이...
제1회 미스아메리카 선발대회 개최
세계 3대 미인대회는 ‘미스 유니버스’(1921년), ‘미스 월드’(1951년), ‘미스 인터내셔널’(1960년)이다. 그중 ‘미스 유니버스’는 미인대회의 원조격으로 숱한 화제를 뿌리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21년 9월 7일 미 뉴저지주 애틀랜틱 시티에서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조그만 이벤트가 열렸다. 8명의 여성들이 해변가에서 ‘수영복 미인대회’를 연 것이다. 한 지방 신문사 간부가 노동절 연휴를 맞아 관광객을 끌어들일 목적으로 고안해낸 행사였다. 대회였던 만큼 순위를...
야쿠자 두목 살해한 권희로, 31년 8개월만에 일본 감옥에서 석방
1968년 2월 20일 일본 시즈오카현 시미즈시의 밍크스 나이트클럽에서 한 야쿠자 두목이 권희로(김희로)에게 돈을 갚으라는 협박과 함께 “조센징, 더러운 돼지새끼”라며 욕설을 퍼부었다. 분노한 권희로는 엽총으로 야쿠자 두목과 부하를 사살하고는 현장에서 45㎞ 떨어진 온천여관으로 달아나 여관주인과 13명의 투숙객을 인질로 잡아 장장 88시간 동안 인질극을 벌였다. 이 모습이 TV와 신문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되어 재일교포 차별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르긴 했지만 일본인에게 권희로는...
비운의 화가 이중섭 사망
이중섭의 삶은 6·25를 전후해 둘로 나뉜다.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유복하게 성장했던 젊은 시절과 월남 이후 겪어야 했던 일련의 비극적인 삶이다. 때문에 그가 ‘비운의 화가’로 불린 것은 6·25부터 40세 나이로 요절할 때까지의 6년 동안이다.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각광받던 이중섭이 고국으로 돌아온 것은 1943년이었다. 2년 뒤 이중섭을 쫓아온 야마모토 마사코와 결혼하고 함남 원산에 둥지를 틀었다. 짧았지만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그러나 분단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영국 청교도 태운 ‘메이플라워호’ 신대륙 향해 영국 출발
1534년 영국 왕 헨리 8세가 왕비 캐서린과의 이혼 문제를 계기로 소위 ‘수장령’이라는 것을 발표해 로마 교황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스스로 만든 ‘국교회’의 수장이 되면서 ‘청교도’와의 갈등이 증폭되었다. 1603년 재위에 오른 제임스 왕이 왕권신수설을 내세워 국교를 강제로 믿게 하자 청교도의 급진파 분리주의자들은 종교적 박해를 피해 1609년 네덜란드의 라이덴으로 피신했다. 10여 년을 살았으나 살림살이가 여전히 어렵고 자신들의 정체성도 잃을 것을 우려한 이들은 신대륙행을...
‘검은 9월단’ 뮌헨올림픽 이스라엘 선수촌 난입
1972년 9월 5일 새벽. ‘검은 9월단’을 자칭하는 8명의 아랍 무장 게릴라들이 뮌헨올림픽 이스라엘 선수촌에 난입, 코치 2명을 사살하고 선수 9명을 인질로 삼았다. 화해와 축제의 장이어야 할 올림픽이 졸지에 공포의 무대로 돌변한 것이다. 이스라엘에 붙잡혀있는 200여 명의 동료들을 석방하라는 게 이들의 요구였다. ‘검은 9월’은 아랍 게릴라들이 요르단 정부군의 토벌 작전으로 큰 타격을 받은 1971년 9월을 의미하며, ‘검은 9월단’은 같은 해 11월 요르단의 탈 총리를...
일본·소련의 포츠머스 조약 체결과 日 히비야 폭동
1904년 2월 8일 일본이 중국 뤄순항의 러시아함대를 선제공격하면서 시작된 러일전쟁은 이듬해 1월 일본이 난공불락의 뤄순요새를 함락하고 그해 5월 러시아의 발트함대마저 대한해협에서 격파하면서 사실상 내리막길을 걸었다. 일본의 러·일전쟁 승리는 전 세계에 충격이었다. 서양이 동양에 패배한 것은 징기스칸의 유럽 침공 이후 처음이었다. 그러나 전쟁이 막바지에 다다르면서 일본은 더이상 전쟁을 치를 수 없었다. 전사자·병사자가 8만 여명인데다 부상자·발병자도 38만 여명을 헤아렸기...
북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수립
해방 후 북한은 김일성이 사실상의 모든 권력을 장악해 놓고도 통일정부 수립이란 명분을 내세워 공식적으로는 정부 수립을 차일피일 미뤄왔다. 1948년 8월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김일성은 비로소 정부 수립을 위한 수순을 밟았다. 첫 작업은 1948년 8월 25일 치러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였다. 우리의 총선과 다른 점은 후보자를 선택하는 방식이 아니라 미리 정해진 후보자에 대해 찬반을 표시하는 형식이었다. 공개투표인 흑백함 선거였던 탓에 유권자 452만 명 중...
日 패전 후 美 제24군단 인천 도착
2차대전도 사실상 막을 내린 1945년 8월 11일. 오키나와 주둔 미 제24군단 사령관 존 하지에게 미국 태평양사령부에서 한 통의 전문이 날아들었다. “한반도 38선 이남을 접수하라”는 전문이었다. 이미 소련이 일본에 선전포고(8월 8일)하고 한반도를 향해 속전속결로 진군하던 긴박한 상황에서 한반도로부터 1600여㎞나 떨어진 오키나와 주둔 24군단에 이 임무가 떨어진 것은 단지 다른 부대에 비해 한반도와 가장 가깝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는 과달카날 전투와 오키나와 전투를...
독일, 영국 향해 ‘V2’ 로켓 첫 발사
1944년 6월 12일부터 고성능의 폭탄이 무차별로 런던 상공을 헤집고 다녀도 영국군은 속수무책이었다. 도무지 발사지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곧 독일어 ‘보복(vergeltung)’의 이니셜에서 이름을 딴 ‘V1’ 로켓인 것으로 밝혀졌다. 다행히 발사 추정지를 알아내 맹폭을 가하고 레이다와 방어장치 개선으로 요격율이 높아지면서 영국군은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인명피해가 크게 난 뒤였다. 8600여 발 가운데 런던과 주변에 떨어진 2400발의 V1으로...
연합국, 2차대전 패전국 일본과 대일평화조약 조인
2차대전이 끝났어도 중국이 공산화되고 한국에서 전쟁이 발발하는 등 동아시아 정세는 격변하고 있었다. 미국은 점령지 일본을 반공 거점으로 삼아 소련·중국에 대항할 반공벨트 구축에 나섰고,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일본을 하루속히 전범국의 족쇄에서 풀어주어야했다. 경제 재건이 절실했던 일본 역시 강화(講和·조약을 맺어 평화로운 상태로 되돌아 가는 것)가 필요했다. 이같은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물린 덕에 1951년 9월 8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오페라하우스에서 대일평화조약이...
제1회 미스아메리카 선발대회 개최
세계 3대 미인대회는 ‘미스 유니버스’(1921년), ‘미스 월드’(1951년), ‘미스 인터내셔널’(1960년)이다. 그중 ‘미스 유니버스’는 미인대회의 원조격으로 숱한 화제를 뿌리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21년 9월 7일 미 뉴저지주 애틀랜틱 시티에서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조그만 이벤트가 열렸다. 8명의 여성들이 해변가에서 ‘수영복 미인대회’를 연 것이다. 한 지방 신문사 간부가 노동절 연휴를 맞아 관광객을 끌어들일 목적으로 고안해낸 행사였다. 대회였던 만큼 순위를...
야쿠자 두목 살해한 권희로, 31년 8개월만에 일본 감옥에서 석방
1968년 2월 20일 일본 시즈오카현 시미즈시의 밍크스 나이트클럽에서 한 야쿠자 두목이 권희로(김희로)에게 돈을 갚으라는 협박과 함께 “조센징, 더러운 돼지새끼”라며 욕설을 퍼부었다. 분노한 권희로는 엽총으로 야쿠자 두목과 부하를 사살하고는 현장에서 45㎞ 떨어진 온천여관으로 달아나 여관주인과 13명의 투숙객을 인질로 잡아 장장 88시간 동안 인질극을 벌였다. 이 모습이 TV와 신문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되어 재일교포 차별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르긴 했지만 일본인에게 권희로는...
비운의 화가 이중섭 사망
이중섭의 삶은 6·25를 전후해 둘로 나뉜다.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유복하게 성장했던 젊은 시절과 월남 이후 겪어야 했던 일련의 비극적인 삶이다. 때문에 그가 ‘비운의 화가’로 불린 것은 6·25부터 40세 나이로 요절할 때까지의 6년 동안이다.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각광받던 이중섭이 고국으로 돌아온 것은 1943년이었다. 2년 뒤 이중섭을 쫓아온 야마모토 마사코와 결혼하고 함남 원산에 둥지를 틀었다. 짧았지만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그러나 분단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영국 청교도 태운 ‘메이플라워호’ 신대륙 향해 영국 출발
1534년 영국 왕 헨리 8세가 왕비 캐서린과의 이혼 문제를 계기로 소위 ‘수장령’이라는 것을 발표해 로마 교황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스스로 만든 ‘국교회’의 수장이 되면서 ‘청교도’와의 갈등이 증폭되었다. 1603년 재위에 오른 제임스 왕이 왕권신수설을 내세워 국교를 강제로 믿게 하자 청교도의 급진파 분리주의자들은 종교적 박해를 피해 1609년 네덜란드의 라이덴으로 피신했다. 10여 년을 살았으나 살림살이가 여전히 어렵고 자신들의 정체성도 잃을 것을 우려한 이들은 신대륙행을...
‘검은 9월단’ 뮌헨올림픽 이스라엘 선수촌 난입
1972년 9월 5일 새벽. ‘검은 9월단’을 자칭하는 8명의 아랍 무장 게릴라들이 뮌헨올림픽 이스라엘 선수촌에 난입, 코치 2명을 사살하고 선수 9명을 인질로 삼았다. 화해와 축제의 장이어야 할 올림픽이 졸지에 공포의 무대로 돌변한 것이다. 이스라엘에 붙잡혀있는 200여 명의 동료들을 석방하라는 게 이들의 요구였다. ‘검은 9월’은 아랍 게릴라들이 요르단 정부군의 토벌 작전으로 큰 타격을 받은 1971년 9월을 의미하며, ‘검은 9월단’은 같은 해 11월 요르단의 탈 총리를...
일본·소련의 포츠머스 조약 체결과 日 히비야 폭동
1904년 2월 8일 일본이 중국 뤄순항의 러시아함대를 선제공격하면서 시작된 러일전쟁은 이듬해 1월 일본이 난공불락의 뤄순요새를 함락하고 그해 5월 러시아의 발트함대마저 대한해협에서 격파하면서 사실상 내리막길을 걸었다. 일본의 러·일전쟁 승리는 전 세계에 충격이었다. 서양이 동양에 패배한 것은 징기스칸의 유럽 침공 이후 처음이었다. 그러나 전쟁이 막바지에 다다르면서 일본은 더이상 전쟁을 치를 수 없었다. 전사자·병사자가 8만 여명인데다 부상자·발병자도 38만 여명을 헤아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