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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 창설

1940년 9월 17일 새벽 6시. 김구 주석을 비롯한 임시정부 간부들과 한·중(韓·中) 양측 인사 200여 명이 중국 충칭의 가릉신로 18번지에 있는 가릉빈관에 모여있었다. 식장 입구에 걸린 대형 태극기와 청천백일기가 손님들을 맞았다. 이윽고 김구 주석이 선언문을 읽어 내려가고 뒤이어 조직 구성이 발표됨으로써 이국땅이긴 하나 마침내 임시정부도 21년 만에 자체 무장 군대를 갖게 됐다. 광복군이 출범한 것이다. 1907년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되고 33년 만에 맞는 가슴벅찬...

니카라과 독재자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피살

1980년 9월 17일, 갑자기 나타난 무장괴한들이 파라과이 수도 아순시온의 시가지를 지나는 한 승용차에 바주카포와 기관총을 발사, 차에 타고 있던 소모사가(家)의 마지막 독재자 아나스타시오 소모사를 형체를 알아 볼 수 없는 처참한 죽음으로 내몰았다. 북한의 김일성 부자를 제외하고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던 니카라과의 장기독재 가문 소모사가(家)가 43년 만에 종말을 고한 것이다. 이로써 옛 영화를 꿈꿔온 소모사의 희망도, 무덤 속에서나마 독재의 대(代)를 이어주길 바랬던...

우리나라 최초 신부 김대건 순교

김대건은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동서양 문명 교류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그는 서양 학문을 배운 최초의 유학생이었고 서양말을 쓰고 말하는데 익숙했다. 중국어와 라틴어에 능숙했고 프랑스어도 자연스러웠으며 영어까지 구사했다. 1836년 12월 14살 김대건은 마카오에 있는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로 떠난다. 육로로 8개월 만에 도착한 그곳에서 천주교 신학과 서양철학을 배웠다. 그가 없는 1839년 조선에서는 3명의 프랑스 신부와 300여 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독일 뉘른베르크법 공포… ‘홀로코스트’의 서곡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대규모 나치당 대회가 열린 1935년 9월 15일, 나치당원들의 열렬한 호응 속에서 ‘홀로코스트(대학살)’의 서곡이 울려퍼졌다. 이른바 ‘뉘른베르크법’이라 불리는 ‘독일제국 시민법’과 ‘독일인의 혈통과 명예를 지키기 위한 법(순혈보호법)’이 제정·공포된 것이다. 이미 1933년에 ‘단종법(斷種法)’을 공포해 유대인 말살의 근거를 마련한 히틀러는 뉘른베르크법까지 제정함으로써 유대인을 사회에서 추방하고 급기야는 학살로까지 몰고 갈 수 있는 법적인 토대를...

‘오페라의 여왕’ 마리아 칼라스 사망

‘오페라의 여왕’ 마리아 칼라스 사망

‘오페라의 여왕’으로 군림하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마리아 칼라스. 그가 1977년 9월 16일 파리의 한 아파트에서 54세로 쓸쓸하게 숨졌다. 후두 부분에 생긴 피부근염이 원인이었음에도 사람들은 그리스 선박왕 오나시스를 먼저 떠올렸다. 오나시스가 9년 간에 걸친 칼라스와의 사랑을 접고 고 케네디 대통령의 미망인 재클린과 결혼(1968년)한 뒤로부터 칼라스의 목소리에 이상이 생기고, 한때는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며 증오했던 오나시스가 1975년에 막상 먼저 죽자 이때부터...

고상돈,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 등정

“여기는 정상, 더 오를 곳이 없다.” 1977년 9월 15일 낮 12시50분. 흥분과 감격에 찬 고상돈의 목소리가 무전기를 타고 본부 베이스캠프로 날아들었다. 하늘 아래 가장 높은 곳, 에베레스트가 15년만에 처음으로 한국인의 발걸음을 허용한 것이다. 산악인으로는 55번째, 국가로는 8번째 쾌거였다. 고상돈과 셰르파 펨바 노르부가 마지막 베이스캠프 C5(8500m)를 출발, 정상 공격에 나선 시각은 새벽 5시30분. 6일 전 박상렬 대원이 정상 공격을 시도했으나 악천후와...

아웅산 국립묘지는 전대미문의 ‘버마 아웅산 테러’ 사건이 벌어진 곳… 그 만행의 순간을 되짚어본다

아웅산 국립묘지는 전대미문의 ‘버마 아웅산 테러’ 사건이 벌어진 곳… 그 만행의 순간을 되짚어본다

↑ 폭발 수십초 전, 도열해 있던 수행원들이 자세를 바로잡고 있다. 앞열 오른쪽부터 서석준 부총리, 이범석 외무장관, 김동휘 상공, 서상철 동자, 이계철 대사, 함병춘 비서실장, 심상우 국회의원, 이기백 함참의장   by 김지지   미얀마를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9월 4일 양곤의 아웅산 국립묘지에 있는 ‘대한민국 순국사절 추모비’를 대한민국 대통령으로는 처음 방문해 참배했다. ‘대한민국 순국 사절비’는 1983년 북한의 폭탄 테러로 아웅산에서 순직한...

혁신주의자 시어도어 루스벨트 美 대통령 취임

남북전쟁 후 산업화가 본격 진행되면서 미국에는 새로운 기업이 넘쳐났고 기업가들은 이익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경쟁자를 물리치고 승리한 기업에는 독점의 문이 열렸고 기업가에는 부와 권력이 쥐어졌다. 바야흐로 경쟁의 시대였으며 동시에 독점의 시대였다. 록펠러의 독점기업들은 담합을 통해 멋대로 가격을 조작했고, 막강한 경제력으로 의회까지 매수해 입법 과정에도 영향력을 행사했다. 기업·정부의 유착관계는 윌리엄 매킨리가 이들의 도움으로 대통령에게 당선된 1900년에 절정을...

언론인 최석채 필화사건

임병직 주미 대사가 대구에 갔을 때, 아침밥도 못먹고 동원된 학생들이 뙤약볕에서 몇시간이고 기다렸다가 잠깐동안 수기를 흔들고 돌아온 것이 발단이었다. 당시에는 관행이었지만 대구매일 최석채 주필의 눈에는 묵과할 수 없는 권력의 횡포로 비쳤다. 1955년 9월 13일 최석채는 “학도를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는 사설로 권력을 질타했다. 교육당국은 꿀먹은 벙어리였으나 자유당 경북도당 검찰부장 홍영섭 등은 9월 14일 괴청년 40여 명을 이끌고 신문사에 난입, 인쇄시설을 부수고 발송...

유엔군 6·25 영천전투 승리

6·25 발발과 함께 후퇴를 거듭해온 유엔군과 국군이 낙동강전선에 배수의 진을 친 것은 8월 5일이었다. 물러설래야 물러설 수 없는 최후의 보루였다. 경상도 지역을 제외한 남한 전역을 장악한 북한군은 부산까지 점령할 태세로 8월 8일 총공세를 시작했다. 미군은 왜관∼창녕∼마산선을 막아섰고 한국군은 왜관∼낙정리(의성군)∼영덕선을 지켰다. 다부동과 포항에서의 치열한 전투에 이어 9월 4일 경북 영천에서 밀고 당기는 대혈전이 시작됐다. 영천은 대구·포항·경주·안동을 이어주는 교통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 창설

1940년 9월 17일 새벽 6시. 김구 주석을 비롯한 임시정부 간부들과 한·중(韓·中) 양측 인사 200여 명이 중국 충칭의 가릉신로 18번지에 있는 가릉빈관에 모여있었다. 식장 입구에 걸린 대형 태극기와 청천백일기가 손님들을 맞았다. 이윽고 김구 주석이 선언문을 읽어 내려가고 뒤이어 조직 구성이 발표됨으로써 이국땅이긴 하나 마침내 임시정부도 21년 만에 자체 무장 군대를 갖게 됐다. 광복군이 출범한 것이다. 1907년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되고 33년 만에 맞는 가슴벅찬...

니카라과 독재자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피살

1980년 9월 17일, 갑자기 나타난 무장괴한들이 파라과이 수도 아순시온의 시가지를 지나는 한 승용차에 바주카포와 기관총을 발사, 차에 타고 있던 소모사가(家)의 마지막 독재자 아나스타시오 소모사를 형체를 알아 볼 수 없는 처참한 죽음으로 내몰았다. 북한의 김일성 부자를 제외하고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던 니카라과의 장기독재 가문 소모사가(家)가 43년 만에 종말을 고한 것이다. 이로써 옛 영화를 꿈꿔온 소모사의 희망도, 무덤 속에서나마 독재의 대(代)를 이어주길 바랬던...

우리나라 최초 신부 김대건 순교

김대건은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동서양 문명 교류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그는 서양 학문을 배운 최초의 유학생이었고 서양말을 쓰고 말하는데 익숙했다. 중국어와 라틴어에 능숙했고 프랑스어도 자연스러웠으며 영어까지 구사했다. 1836년 12월 14살 김대건은 마카오에 있는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로 떠난다. 육로로 8개월 만에 도착한 그곳에서 천주교 신학과 서양철학을 배웠다. 그가 없는 1839년 조선에서는 3명의 프랑스 신부와 300여 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독일 뉘른베르크법 공포… ‘홀로코스트’의 서곡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대규모 나치당 대회가 열린 1935년 9월 15일, 나치당원들의 열렬한 호응 속에서 ‘홀로코스트(대학살)’의 서곡이 울려퍼졌다. 이른바 ‘뉘른베르크법’이라 불리는 ‘독일제국 시민법’과 ‘독일인의 혈통과 명예를 지키기 위한 법(순혈보호법)’이 제정·공포된 것이다. 이미 1933년에 ‘단종법(斷種法)’을 공포해 유대인 말살의 근거를 마련한 히틀러는 뉘른베르크법까지 제정함으로써 유대인을 사회에서 추방하고 급기야는 학살로까지 몰고 갈 수 있는 법적인 토대를...

‘오페라의 여왕’ 마리아 칼라스 사망

‘오페라의 여왕’ 마리아 칼라스 사망

‘오페라의 여왕’으로 군림하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마리아 칼라스. 그가 1977년 9월 16일 파리의 한 아파트에서 54세로 쓸쓸하게 숨졌다. 후두 부분에 생긴 피부근염이 원인이었음에도 사람들은 그리스 선박왕 오나시스를 먼저 떠올렸다. 오나시스가 9년 간에 걸친 칼라스와의 사랑을 접고 고 케네디 대통령의 미망인 재클린과 결혼(1968년)한 뒤로부터 칼라스의 목소리에 이상이 생기고, 한때는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며 증오했던 오나시스가 1975년에 막상 먼저 죽자 이때부터...

고상돈,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 등정

“여기는 정상, 더 오를 곳이 없다.” 1977년 9월 15일 낮 12시50분. 흥분과 감격에 찬 고상돈의 목소리가 무전기를 타고 본부 베이스캠프로 날아들었다. 하늘 아래 가장 높은 곳, 에베레스트가 15년만에 처음으로 한국인의 발걸음을 허용한 것이다. 산악인으로는 55번째, 국가로는 8번째 쾌거였다. 고상돈과 셰르파 펨바 노르부가 마지막 베이스캠프 C5(8500m)를 출발, 정상 공격에 나선 시각은 새벽 5시30분. 6일 전 박상렬 대원이 정상 공격을 시도했으나 악천후와...

아웅산 국립묘지는 전대미문의 ‘버마 아웅산 테러’ 사건이 벌어진 곳… 그 만행의 순간을 되짚어본다

아웅산 국립묘지는 전대미문의 ‘버마 아웅산 테러’ 사건이 벌어진 곳… 그 만행의 순간을 되짚어본다

↑ 폭발 수십초 전, 도열해 있던 수행원들이 자세를 바로잡고 있다. 앞열 오른쪽부터 서석준 부총리, 이범석 외무장관, 김동휘 상공, 서상철 동자, 이계철 대사, 함병춘 비서실장, 심상우 국회의원, 이기백 함참의장   by 김지지   미얀마를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9월 4일 양곤의 아웅산 국립묘지에 있는 ‘대한민국 순국사절 추모비’를 대한민국 대통령으로는 처음 방문해 참배했다. ‘대한민국 순국 사절비’는 1983년 북한의 폭탄 테러로 아웅산에서 순직한...

혁신주의자 시어도어 루스벨트 美 대통령 취임

남북전쟁 후 산업화가 본격 진행되면서 미국에는 새로운 기업이 넘쳐났고 기업가들은 이익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경쟁자를 물리치고 승리한 기업에는 독점의 문이 열렸고 기업가에는 부와 권력이 쥐어졌다. 바야흐로 경쟁의 시대였으며 동시에 독점의 시대였다. 록펠러의 독점기업들은 담합을 통해 멋대로 가격을 조작했고, 막강한 경제력으로 의회까지 매수해 입법 과정에도 영향력을 행사했다. 기업·정부의 유착관계는 윌리엄 매킨리가 이들의 도움으로 대통령에게 당선된 1900년에 절정을...

언론인 최석채 필화사건

임병직 주미 대사가 대구에 갔을 때, 아침밥도 못먹고 동원된 학생들이 뙤약볕에서 몇시간이고 기다렸다가 잠깐동안 수기를 흔들고 돌아온 것이 발단이었다. 당시에는 관행이었지만 대구매일 최석채 주필의 눈에는 묵과할 수 없는 권력의 횡포로 비쳤다. 1955년 9월 13일 최석채는 “학도를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는 사설로 권력을 질타했다. 교육당국은 꿀먹은 벙어리였으나 자유당 경북도당 검찰부장 홍영섭 등은 9월 14일 괴청년 40여 명을 이끌고 신문사에 난입, 인쇄시설을 부수고 발송...

유엔군 6·25 영천전투 승리

6·25 발발과 함께 후퇴를 거듭해온 유엔군과 국군이 낙동강전선에 배수의 진을 친 것은 8월 5일이었다. 물러설래야 물러설 수 없는 최후의 보루였다. 경상도 지역을 제외한 남한 전역을 장악한 북한군은 부산까지 점령할 태세로 8월 8일 총공세를 시작했다. 미군은 왜관∼창녕∼마산선을 막아섰고 한국군은 왜관∼낙정리(의성군)∼영덕선을 지켰다. 다부동과 포항에서의 치열한 전투에 이어 9월 4일 경북 영천에서 밀고 당기는 대혈전이 시작됐다. 영천은 대구·포항·경주·안동을 이어주는 교통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 창설

1940년 9월 17일 새벽 6시. 김구 주석을 비롯한 임시정부 간부들과 한·중(韓·中) 양측 인사 200여 명이 중국 충칭의 가릉신로 18번지에 있는 가릉빈관에 모여있었다. 식장 입구에 걸린 대형 태극기와 청천백일기가 손님들을 맞았다. 이윽고 김구 주석이 선언문을 읽어 내려가고 뒤이어 조직 구성이 발표됨으로써 이국땅이긴 하나 마침내 임시정부도 21년 만에 자체 무장 군대를 갖게 됐다. 광복군이 출범한 것이다. 1907년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되고 33년 만에 맞는 가슴벅찬...

니카라과 독재자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피살

1980년 9월 17일, 갑자기 나타난 무장괴한들이 파라과이 수도 아순시온의 시가지를 지나는 한 승용차에 바주카포와 기관총을 발사, 차에 타고 있던 소모사가(家)의 마지막 독재자 아나스타시오 소모사를 형체를 알아 볼 수 없는 처참한 죽음으로 내몰았다. 북한의 김일성 부자를 제외하고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던 니카라과의 장기독재 가문 소모사가(家)가 43년 만에 종말을 고한 것이다. 이로써 옛 영화를 꿈꿔온 소모사의 희망도, 무덤 속에서나마 독재의 대(代)를 이어주길 바랬던...

우리나라 최초 신부 김대건 순교

김대건은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동서양 문명 교류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그는 서양 학문을 배운 최초의 유학생이었고 서양말을 쓰고 말하는데 익숙했다. 중국어와 라틴어에 능숙했고 프랑스어도 자연스러웠으며 영어까지 구사했다. 1836년 12월 14살 김대건은 마카오에 있는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로 떠난다. 육로로 8개월 만에 도착한 그곳에서 천주교 신학과 서양철학을 배웠다. 그가 없는 1839년 조선에서는 3명의 프랑스 신부와 300여 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독일 뉘른베르크법 공포… ‘홀로코스트’의 서곡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대규모 나치당 대회가 열린 1935년 9월 15일, 나치당원들의 열렬한 호응 속에서 ‘홀로코스트(대학살)’의 서곡이 울려퍼졌다. 이른바 ‘뉘른베르크법’이라 불리는 ‘독일제국 시민법’과 ‘독일인의 혈통과 명예를 지키기 위한 법(순혈보호법)’이 제정·공포된 것이다. 이미 1933년에 ‘단종법(斷種法)’을 공포해 유대인 말살의 근거를 마련한 히틀러는 뉘른베르크법까지 제정함으로써 유대인을 사회에서 추방하고 급기야는 학살로까지 몰고 갈 수 있는 법적인 토대를...

‘오페라의 여왕’ 마리아 칼라스 사망

‘오페라의 여왕’ 마리아 칼라스 사망

‘오페라의 여왕’으로 군림하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마리아 칼라스. 그가 1977년 9월 16일 파리의 한 아파트에서 54세로 쓸쓸하게 숨졌다. 후두 부분에 생긴 피부근염이 원인이었음에도 사람들은 그리스 선박왕 오나시스를 먼저 떠올렸다. 오나시스가 9년 간에 걸친 칼라스와의 사랑을 접고 고 케네디 대통령의 미망인 재클린과 결혼(1968년)한 뒤로부터 칼라스의 목소리에 이상이 생기고, 한때는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며 증오했던 오나시스가 1975년에 막상 먼저 죽자 이때부터...

고상돈,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 등정

“여기는 정상, 더 오를 곳이 없다.” 1977년 9월 15일 낮 12시50분. 흥분과 감격에 찬 고상돈의 목소리가 무전기를 타고 본부 베이스캠프로 날아들었다. 하늘 아래 가장 높은 곳, 에베레스트가 15년만에 처음으로 한국인의 발걸음을 허용한 것이다. 산악인으로는 55번째, 국가로는 8번째 쾌거였다. 고상돈과 셰르파 펨바 노르부가 마지막 베이스캠프 C5(8500m)를 출발, 정상 공격에 나선 시각은 새벽 5시30분. 6일 전 박상렬 대원이 정상 공격을 시도했으나 악천후와...

아웅산 국립묘지는 전대미문의 ‘버마 아웅산 테러’ 사건이 벌어진 곳… 그 만행의 순간을 되짚어본다

아웅산 국립묘지는 전대미문의 ‘버마 아웅산 테러’ 사건이 벌어진 곳… 그 만행의 순간을 되짚어본다

↑ 폭발 수십초 전, 도열해 있던 수행원들이 자세를 바로잡고 있다. 앞열 오른쪽부터 서석준 부총리, 이범석 외무장관, 김동휘 상공, 서상철 동자, 이계철 대사, 함병춘 비서실장, 심상우 국회의원, 이기백 함참의장   by 김지지   미얀마를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9월 4일 양곤의 아웅산 국립묘지에 있는 ‘대한민국 순국사절 추모비’를 대한민국 대통령으로는 처음 방문해 참배했다. ‘대한민국 순국 사절비’는 1983년 북한의 폭탄 테러로 아웅산에서 순직한...

혁신주의자 시어도어 루스벨트 美 대통령 취임

남북전쟁 후 산업화가 본격 진행되면서 미국에는 새로운 기업이 넘쳐났고 기업가들은 이익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경쟁자를 물리치고 승리한 기업에는 독점의 문이 열렸고 기업가에는 부와 권력이 쥐어졌다. 바야흐로 경쟁의 시대였으며 동시에 독점의 시대였다. 록펠러의 독점기업들은 담합을 통해 멋대로 가격을 조작했고, 막강한 경제력으로 의회까지 매수해 입법 과정에도 영향력을 행사했다. 기업·정부의 유착관계는 윌리엄 매킨리가 이들의 도움으로 대통령에게 당선된 1900년에 절정을...

언론인 최석채 필화사건

임병직 주미 대사가 대구에 갔을 때, 아침밥도 못먹고 동원된 학생들이 뙤약볕에서 몇시간이고 기다렸다가 잠깐동안 수기를 흔들고 돌아온 것이 발단이었다. 당시에는 관행이었지만 대구매일 최석채 주필의 눈에는 묵과할 수 없는 권력의 횡포로 비쳤다. 1955년 9월 13일 최석채는 “학도를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는 사설로 권력을 질타했다. 교육당국은 꿀먹은 벙어리였으나 자유당 경북도당 검찰부장 홍영섭 등은 9월 14일 괴청년 40여 명을 이끌고 신문사에 난입, 인쇄시설을 부수고 발송...

유엔군 6·25 영천전투 승리

6·25 발발과 함께 후퇴를 거듭해온 유엔군과 국군이 낙동강전선에 배수의 진을 친 것은 8월 5일이었다. 물러설래야 물러설 수 없는 최후의 보루였다. 경상도 지역을 제외한 남한 전역을 장악한 북한군은 부산까지 점령할 태세로 8월 8일 총공세를 시작했다. 미군은 왜관∼창녕∼마산선을 막아섰고 한국군은 왜관∼낙정리(의성군)∼영덕선을 지켰다. 다부동과 포항에서의 치열한 전투에 이어 9월 4일 경북 영천에서 밀고 당기는 대혈전이 시작됐다. 영천은 대구·포항·경주·안동을 이어주는 교통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 창설

1940년 9월 17일 새벽 6시. 김구 주석을 비롯한 임시정부 간부들과 한·중(韓·中) 양측 인사 200여 명이 중국 충칭의 가릉신로 18번지에 있는 가릉빈관에 모여있었다. 식장 입구에 걸린 대형 태극기와 청천백일기가 손님들을 맞았다. 이윽고 김구 주석이 선언문을 읽어 내려가고 뒤이어 조직 구성이 발표됨으로써 이국땅이긴 하나 마침내 임시정부도 21년 만에 자체 무장 군대를 갖게 됐다. 광복군이 출범한 것이다. 1907년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되고 33년 만에 맞는 가슴벅찬...

니카라과 독재자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피살

1980년 9월 17일, 갑자기 나타난 무장괴한들이 파라과이 수도 아순시온의 시가지를 지나는 한 승용차에 바주카포와 기관총을 발사, 차에 타고 있던 소모사가(家)의 마지막 독재자 아나스타시오 소모사를 형체를 알아 볼 수 없는 처참한 죽음으로 내몰았다. 북한의 김일성 부자를 제외하고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던 니카라과의 장기독재 가문 소모사가(家)가 43년 만에 종말을 고한 것이다. 이로써 옛 영화를 꿈꿔온 소모사의 희망도, 무덤 속에서나마 독재의 대(代)를 이어주길 바랬던...

우리나라 최초 신부 김대건 순교

김대건은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동서양 문명 교류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그는 서양 학문을 배운 최초의 유학생이었고 서양말을 쓰고 말하는데 익숙했다. 중국어와 라틴어에 능숙했고 프랑스어도 자연스러웠으며 영어까지 구사했다. 1836년 12월 14살 김대건은 마카오에 있는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로 떠난다. 육로로 8개월 만에 도착한 그곳에서 천주교 신학과 서양철학을 배웠다. 그가 없는 1839년 조선에서는 3명의 프랑스 신부와 300여 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독일 뉘른베르크법 공포… ‘홀로코스트’의 서곡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대규모 나치당 대회가 열린 1935년 9월 15일, 나치당원들의 열렬한 호응 속에서 ‘홀로코스트(대학살)’의 서곡이 울려퍼졌다. 이른바 ‘뉘른베르크법’이라 불리는 ‘독일제국 시민법’과 ‘독일인의 혈통과 명예를 지키기 위한 법(순혈보호법)’이 제정·공포된 것이다. 이미 1933년에 ‘단종법(斷種法)’을 공포해 유대인 말살의 근거를 마련한 히틀러는 뉘른베르크법까지 제정함으로써 유대인을 사회에서 추방하고 급기야는 학살로까지 몰고 갈 수 있는 법적인 토대를...

‘오페라의 여왕’ 마리아 칼라스 사망

‘오페라의 여왕’ 마리아 칼라스 사망

‘오페라의 여왕’으로 군림하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마리아 칼라스. 그가 1977년 9월 16일 파리의 한 아파트에서 54세로 쓸쓸하게 숨졌다. 후두 부분에 생긴 피부근염이 원인이었음에도 사람들은 그리스 선박왕 오나시스를 먼저 떠올렸다. 오나시스가 9년 간에 걸친 칼라스와의 사랑을 접고 고 케네디 대통령의 미망인 재클린과 결혼(1968년)한 뒤로부터 칼라스의 목소리에 이상이 생기고, 한때는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며 증오했던 오나시스가 1975년에 막상 먼저 죽자 이때부터...

고상돈,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 등정

“여기는 정상, 더 오를 곳이 없다.” 1977년 9월 15일 낮 12시50분. 흥분과 감격에 찬 고상돈의 목소리가 무전기를 타고 본부 베이스캠프로 날아들었다. 하늘 아래 가장 높은 곳, 에베레스트가 15년만에 처음으로 한국인의 발걸음을 허용한 것이다. 산악인으로는 55번째, 국가로는 8번째 쾌거였다. 고상돈과 셰르파 펨바 노르부가 마지막 베이스캠프 C5(8500m)를 출발, 정상 공격에 나선 시각은 새벽 5시30분. 6일 전 박상렬 대원이 정상 공격을 시도했으나 악천후와...

아웅산 국립묘지는 전대미문의 ‘버마 아웅산 테러’ 사건이 벌어진 곳… 그 만행의 순간을 되짚어본다

아웅산 국립묘지는 전대미문의 ‘버마 아웅산 테러’ 사건이 벌어진 곳… 그 만행의 순간을 되짚어본다

↑ 폭발 수십초 전, 도열해 있던 수행원들이 자세를 바로잡고 있다. 앞열 오른쪽부터 서석준 부총리, 이범석 외무장관, 김동휘 상공, 서상철 동자, 이계철 대사, 함병춘 비서실장, 심상우 국회의원, 이기백 함참의장   by 김지지   미얀마를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9월 4일 양곤의 아웅산 국립묘지에 있는 ‘대한민국 순국사절 추모비’를 대한민국 대통령으로는 처음 방문해 참배했다. ‘대한민국 순국 사절비’는 1983년 북한의 폭탄 테러로 아웅산에서 순직한...

혁신주의자 시어도어 루스벨트 美 대통령 취임

남북전쟁 후 산업화가 본격 진행되면서 미국에는 새로운 기업이 넘쳐났고 기업가들은 이익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경쟁자를 물리치고 승리한 기업에는 독점의 문이 열렸고 기업가에는 부와 권력이 쥐어졌다. 바야흐로 경쟁의 시대였으며 동시에 독점의 시대였다. 록펠러의 독점기업들은 담합을 통해 멋대로 가격을 조작했고, 막강한 경제력으로 의회까지 매수해 입법 과정에도 영향력을 행사했다. 기업·정부의 유착관계는 윌리엄 매킨리가 이들의 도움으로 대통령에게 당선된 1900년에 절정을...

언론인 최석채 필화사건

임병직 주미 대사가 대구에 갔을 때, 아침밥도 못먹고 동원된 학생들이 뙤약볕에서 몇시간이고 기다렸다가 잠깐동안 수기를 흔들고 돌아온 것이 발단이었다. 당시에는 관행이었지만 대구매일 최석채 주필의 눈에는 묵과할 수 없는 권력의 횡포로 비쳤다. 1955년 9월 13일 최석채는 “학도를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는 사설로 권력을 질타했다. 교육당국은 꿀먹은 벙어리였으나 자유당 경북도당 검찰부장 홍영섭 등은 9월 14일 괴청년 40여 명을 이끌고 신문사에 난입, 인쇄시설을 부수고 발송...

유엔군 6·25 영천전투 승리

6·25 발발과 함께 후퇴를 거듭해온 유엔군과 국군이 낙동강전선에 배수의 진을 친 것은 8월 5일이었다. 물러설래야 물러설 수 없는 최후의 보루였다. 경상도 지역을 제외한 남한 전역을 장악한 북한군은 부산까지 점령할 태세로 8월 8일 총공세를 시작했다. 미군은 왜관∼창녕∼마산선을 막아섰고 한국군은 왜관∼낙정리(의성군)∼영덕선을 지켰다. 다부동과 포항에서의 치열한 전투에 이어 9월 4일 경북 영천에서 밀고 당기는 대혈전이 시작됐다. 영천은 대구·포항·경주·안동을 이어주는 교통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 창설

1940년 9월 17일 새벽 6시. 김구 주석을 비롯한 임시정부 간부들과 한·중(韓·中) 양측 인사 200여 명이 중국 충칭의 가릉신로 18번지에 있는 가릉빈관에 모여있었다. 식장 입구에 걸린 대형 태극기와 청천백일기가 손님들을 맞았다. 이윽고 김구 주석이 선언문을 읽어 내려가고 뒤이어 조직 구성이 발표됨으로써 이국땅이긴 하나 마침내 임시정부도 21년 만에 자체 무장 군대를 갖게 됐다. 광복군이 출범한 것이다. 1907년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되고 33년 만에 맞는 가슴벅찬...

니카라과 독재자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피살

1980년 9월 17일, 갑자기 나타난 무장괴한들이 파라과이 수도 아순시온의 시가지를 지나는 한 승용차에 바주카포와 기관총을 발사, 차에 타고 있던 소모사가(家)의 마지막 독재자 아나스타시오 소모사를 형체를 알아 볼 수 없는 처참한 죽음으로 내몰았다. 북한의 김일성 부자를 제외하고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던 니카라과의 장기독재 가문 소모사가(家)가 43년 만에 종말을 고한 것이다. 이로써 옛 영화를 꿈꿔온 소모사의 희망도, 무덤 속에서나마 독재의 대(代)를 이어주길 바랬던...

우리나라 최초 신부 김대건 순교

김대건은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동서양 문명 교류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그는 서양 학문을 배운 최초의 유학생이었고 서양말을 쓰고 말하는데 익숙했다. 중국어와 라틴어에 능숙했고 프랑스어도 자연스러웠으며 영어까지 구사했다. 1836년 12월 14살 김대건은 마카오에 있는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로 떠난다. 육로로 8개월 만에 도착한 그곳에서 천주교 신학과 서양철학을 배웠다. 그가 없는 1839년 조선에서는 3명의 프랑스 신부와 300여 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독일 뉘른베르크법 공포… ‘홀로코스트’의 서곡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대규모 나치당 대회가 열린 1935년 9월 15일, 나치당원들의 열렬한 호응 속에서 ‘홀로코스트(대학살)’의 서곡이 울려퍼졌다. 이른바 ‘뉘른베르크법’이라 불리는 ‘독일제국 시민법’과 ‘독일인의 혈통과 명예를 지키기 위한 법(순혈보호법)’이 제정·공포된 것이다. 이미 1933년에 ‘단종법(斷種法)’을 공포해 유대인 말살의 근거를 마련한 히틀러는 뉘른베르크법까지 제정함으로써 유대인을 사회에서 추방하고 급기야는 학살로까지 몰고 갈 수 있는 법적인 토대를...

‘오페라의 여왕’ 마리아 칼라스 사망

‘오페라의 여왕’ 마리아 칼라스 사망

‘오페라의 여왕’으로 군림하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마리아 칼라스. 그가 1977년 9월 16일 파리의 한 아파트에서 54세로 쓸쓸하게 숨졌다. 후두 부분에 생긴 피부근염이 원인이었음에도 사람들은 그리스 선박왕 오나시스를 먼저 떠올렸다. 오나시스가 9년 간에 걸친 칼라스와의 사랑을 접고 고 케네디 대통령의 미망인 재클린과 결혼(1968년)한 뒤로부터 칼라스의 목소리에 이상이 생기고, 한때는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며 증오했던 오나시스가 1975년에 막상 먼저 죽자 이때부터...

고상돈,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 등정

“여기는 정상, 더 오를 곳이 없다.” 1977년 9월 15일 낮 12시50분. 흥분과 감격에 찬 고상돈의 목소리가 무전기를 타고 본부 베이스캠프로 날아들었다. 하늘 아래 가장 높은 곳, 에베레스트가 15년만에 처음으로 한국인의 발걸음을 허용한 것이다. 산악인으로는 55번째, 국가로는 8번째 쾌거였다. 고상돈과 셰르파 펨바 노르부가 마지막 베이스캠프 C5(8500m)를 출발, 정상 공격에 나선 시각은 새벽 5시30분. 6일 전 박상렬 대원이 정상 공격을 시도했으나 악천후와...

아웅산 국립묘지는 전대미문의 ‘버마 아웅산 테러’ 사건이 벌어진 곳… 그 만행의 순간을 되짚어본다

아웅산 국립묘지는 전대미문의 ‘버마 아웅산 테러’ 사건이 벌어진 곳… 그 만행의 순간을 되짚어본다

↑ 폭발 수십초 전, 도열해 있던 수행원들이 자세를 바로잡고 있다. 앞열 오른쪽부터 서석준 부총리, 이범석 외무장관, 김동휘 상공, 서상철 동자, 이계철 대사, 함병춘 비서실장, 심상우 국회의원, 이기백 함참의장   by 김지지   미얀마를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9월 4일 양곤의 아웅산 국립묘지에 있는 ‘대한민국 순국사절 추모비’를 대한민국 대통령으로는 처음 방문해 참배했다. ‘대한민국 순국 사절비’는 1983년 북한의 폭탄 테러로 아웅산에서 순직한...

혁신주의자 시어도어 루스벨트 美 대통령 취임

남북전쟁 후 산업화가 본격 진행되면서 미국에는 새로운 기업이 넘쳐났고 기업가들은 이익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경쟁자를 물리치고 승리한 기업에는 독점의 문이 열렸고 기업가에는 부와 권력이 쥐어졌다. 바야흐로 경쟁의 시대였으며 동시에 독점의 시대였다. 록펠러의 독점기업들은 담합을 통해 멋대로 가격을 조작했고, 막강한 경제력으로 의회까지 매수해 입법 과정에도 영향력을 행사했다. 기업·정부의 유착관계는 윌리엄 매킨리가 이들의 도움으로 대통령에게 당선된 1900년에 절정을...

언론인 최석채 필화사건

임병직 주미 대사가 대구에 갔을 때, 아침밥도 못먹고 동원된 학생들이 뙤약볕에서 몇시간이고 기다렸다가 잠깐동안 수기를 흔들고 돌아온 것이 발단이었다. 당시에는 관행이었지만 대구매일 최석채 주필의 눈에는 묵과할 수 없는 권력의 횡포로 비쳤다. 1955년 9월 13일 최석채는 “학도를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는 사설로 권력을 질타했다. 교육당국은 꿀먹은 벙어리였으나 자유당 경북도당 검찰부장 홍영섭 등은 9월 14일 괴청년 40여 명을 이끌고 신문사에 난입, 인쇄시설을 부수고 발송...

유엔군 6·25 영천전투 승리

6·25 발발과 함께 후퇴를 거듭해온 유엔군과 국군이 낙동강전선에 배수의 진을 친 것은 8월 5일이었다. 물러설래야 물러설 수 없는 최후의 보루였다. 경상도 지역을 제외한 남한 전역을 장악한 북한군은 부산까지 점령할 태세로 8월 8일 총공세를 시작했다. 미군은 왜관∼창녕∼마산선을 막아섰고 한국군은 왜관∼낙정리(의성군)∼영덕선을 지켰다. 다부동과 포항에서의 치열한 전투에 이어 9월 4일 경북 영천에서 밀고 당기는 대혈전이 시작됐다. 영천은 대구·포항·경주·안동을 이어주는 교통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 창설

1940년 9월 17일 새벽 6시. 김구 주석을 비롯한 임시정부 간부들과 한·중(韓·中) 양측 인사 200여 명이 중국 충칭의 가릉신로 18번지에 있는 가릉빈관에 모여있었다. 식장 입구에 걸린 대형 태극기와 청천백일기가 손님들을 맞았다. 이윽고 김구 주석이 선언문을 읽어 내려가고 뒤이어 조직 구성이 발표됨으로써 이국땅이긴 하나 마침내 임시정부도 21년 만에 자체 무장 군대를 갖게 됐다. 광복군이 출범한 것이다. 1907년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되고 33년 만에 맞는 가슴벅찬...

니카라과 독재자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피살

1980년 9월 17일, 갑자기 나타난 무장괴한들이 파라과이 수도 아순시온의 시가지를 지나는 한 승용차에 바주카포와 기관총을 발사, 차에 타고 있던 소모사가(家)의 마지막 독재자 아나스타시오 소모사를 형체를 알아 볼 수 없는 처참한 죽음으로 내몰았다. 북한의 김일성 부자를 제외하고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던 니카라과의 장기독재 가문 소모사가(家)가 43년 만에 종말을 고한 것이다. 이로써 옛 영화를 꿈꿔온 소모사의 희망도, 무덤 속에서나마 독재의 대(代)를 이어주길 바랬던...

우리나라 최초 신부 김대건 순교

김대건은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동서양 문명 교류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그는 서양 학문을 배운 최초의 유학생이었고 서양말을 쓰고 말하는데 익숙했다. 중국어와 라틴어에 능숙했고 프랑스어도 자연스러웠으며 영어까지 구사했다. 1836년 12월 14살 김대건은 마카오에 있는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로 떠난다. 육로로 8개월 만에 도착한 그곳에서 천주교 신학과 서양철학을 배웠다. 그가 없는 1839년 조선에서는 3명의 프랑스 신부와 300여 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독일 뉘른베르크법 공포… ‘홀로코스트’의 서곡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대규모 나치당 대회가 열린 1935년 9월 15일, 나치당원들의 열렬한 호응 속에서 ‘홀로코스트(대학살)’의 서곡이 울려퍼졌다. 이른바 ‘뉘른베르크법’이라 불리는 ‘독일제국 시민법’과 ‘독일인의 혈통과 명예를 지키기 위한 법(순혈보호법)’이 제정·공포된 것이다. 이미 1933년에 ‘단종법(斷種法)’을 공포해 유대인 말살의 근거를 마련한 히틀러는 뉘른베르크법까지 제정함으로써 유대인을 사회에서 추방하고 급기야는 학살로까지 몰고 갈 수 있는 법적인 토대를...

‘오페라의 여왕’ 마리아 칼라스 사망

‘오페라의 여왕’ 마리아 칼라스 사망

‘오페라의 여왕’으로 군림하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마리아 칼라스. 그가 1977년 9월 16일 파리의 한 아파트에서 54세로 쓸쓸하게 숨졌다. 후두 부분에 생긴 피부근염이 원인이었음에도 사람들은 그리스 선박왕 오나시스를 먼저 떠올렸다. 오나시스가 9년 간에 걸친 칼라스와의 사랑을 접고 고 케네디 대통령의 미망인 재클린과 결혼(1968년)한 뒤로부터 칼라스의 목소리에 이상이 생기고, 한때는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며 증오했던 오나시스가 1975년에 막상 먼저 죽자 이때부터...

고상돈,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 등정

“여기는 정상, 더 오를 곳이 없다.” 1977년 9월 15일 낮 12시50분. 흥분과 감격에 찬 고상돈의 목소리가 무전기를 타고 본부 베이스캠프로 날아들었다. 하늘 아래 가장 높은 곳, 에베레스트가 15년만에 처음으로 한국인의 발걸음을 허용한 것이다. 산악인으로는 55번째, 국가로는 8번째 쾌거였다. 고상돈과 셰르파 펨바 노르부가 마지막 베이스캠프 C5(8500m)를 출발, 정상 공격에 나선 시각은 새벽 5시30분. 6일 전 박상렬 대원이 정상 공격을 시도했으나 악천후와...

아웅산 국립묘지는 전대미문의 ‘버마 아웅산 테러’ 사건이 벌어진 곳… 그 만행의 순간을 되짚어본다

아웅산 국립묘지는 전대미문의 ‘버마 아웅산 테러’ 사건이 벌어진 곳… 그 만행의 순간을 되짚어본다

↑ 폭발 수십초 전, 도열해 있던 수행원들이 자세를 바로잡고 있다. 앞열 오른쪽부터 서석준 부총리, 이범석 외무장관, 김동휘 상공, 서상철 동자, 이계철 대사, 함병춘 비서실장, 심상우 국회의원, 이기백 함참의장   by 김지지   미얀마를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9월 4일 양곤의 아웅산 국립묘지에 있는 ‘대한민국 순국사절 추모비’를 대한민국 대통령으로는 처음 방문해 참배했다. ‘대한민국 순국 사절비’는 1983년 북한의 폭탄 테러로 아웅산에서 순직한...

혁신주의자 시어도어 루스벨트 美 대통령 취임

남북전쟁 후 산업화가 본격 진행되면서 미국에는 새로운 기업이 넘쳐났고 기업가들은 이익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경쟁자를 물리치고 승리한 기업에는 독점의 문이 열렸고 기업가에는 부와 권력이 쥐어졌다. 바야흐로 경쟁의 시대였으며 동시에 독점의 시대였다. 록펠러의 독점기업들은 담합을 통해 멋대로 가격을 조작했고, 막강한 경제력으로 의회까지 매수해 입법 과정에도 영향력을 행사했다. 기업·정부의 유착관계는 윌리엄 매킨리가 이들의 도움으로 대통령에게 당선된 1900년에 절정을...

언론인 최석채 필화사건

임병직 주미 대사가 대구에 갔을 때, 아침밥도 못먹고 동원된 학생들이 뙤약볕에서 몇시간이고 기다렸다가 잠깐동안 수기를 흔들고 돌아온 것이 발단이었다. 당시에는 관행이었지만 대구매일 최석채 주필의 눈에는 묵과할 수 없는 권력의 횡포로 비쳤다. 1955년 9월 13일 최석채는 “학도를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는 사설로 권력을 질타했다. 교육당국은 꿀먹은 벙어리였으나 자유당 경북도당 검찰부장 홍영섭 등은 9월 14일 괴청년 40여 명을 이끌고 신문사에 난입, 인쇄시설을 부수고 발송...

유엔군 6·25 영천전투 승리

6·25 발발과 함께 후퇴를 거듭해온 유엔군과 국군이 낙동강전선에 배수의 진을 친 것은 8월 5일이었다. 물러설래야 물러설 수 없는 최후의 보루였다. 경상도 지역을 제외한 남한 전역을 장악한 북한군은 부산까지 점령할 태세로 8월 8일 총공세를 시작했다. 미군은 왜관∼창녕∼마산선을 막아섰고 한국군은 왜관∼낙정리(의성군)∼영덕선을 지켰다. 다부동과 포항에서의 치열한 전투에 이어 9월 4일 경북 영천에서 밀고 당기는 대혈전이 시작됐다. 영천은 대구·포항·경주·안동을 이어주는 교통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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