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The Blog Module
The blog modules makes it easy to create a blog post feed in two different layouts.
美 영화배우 록 허드슨 AIDS로 사망
1985년 10월 2일, 미국의 영화배우 록 허드슨이 AIDS로 숨을 거뒀다. AIDS로 인한 첫 헐리우드 스타의 죽음에 미 영화계는 물론 레이건 대통령까지 나서 애도를 표했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몸에 드러난 반점을 공개해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준 그의 용기에 대한 경의의 표시이기도 했다. 그의 사후에 미 의회가 AIDS 연구를 위한 긴급지출을 가결할 정도로 그의 죽음이 사회에 미친 파장은 컸다. 188㎝의 훤칠한 키에 수려한 외모까지 갖춘 그는 1950∼60년대의...
한·미 상호방위조약 조인
6·25 휴전협상이 막바지로 치닫자 이승만 대통령의 고민도 한층 깊어졌다. 휴전회담을 깨고 북진통일을 고수할 것인지, 아니면 가급적 전쟁을 빨리 끝내고 싶어하는 미국으로부터 휴전반대를 무기로 분명한 안보공약을 얻어낼 것인지…. 단독으로 북진할 수 없다는 사실은 누구보다도 이승만이 잘 알고 있었다. 결국 안전보장이 현실적인 대안이었다. 미국도 안보공약의 필요성은 진작부터 느끼고 있었지만 자칫하면 전쟁 위험이 상존하는 이 지역에 발이 묶일 것을 경계했다. 미국 손에는 이승만을...
10월 대구 폭동 시작
1946년 9월의 대구는 고질적인 식량난과 미군정에 대한 불만, 거기에 콜레라까지 만연하면서 민심이 흉흉했다. 여기에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의 ‘9월 총파업’ 결정은 건초더미에 불을 붙힌 격이 됐다. 1946년 10월 1일, 대구시청은 아침부터 몰려든 1000여 명의 부녀자들로 북적거렸다. “시청에 가면 쌀을 준다”는 유언비어를 믿고 온 사람들이었다. 오후들어 불어난 시민·학생들은 어느덧 7000여 명을 헤아렸다. 거리를 가득 메운 군중이 밤 10시 통근시간이 지났는데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70주년… 군사력은 장개석의 국민당에 절대적 열세였으나 국민당이 부패하고 대중의 민심을 얻은 게 모택동의 결정적 승인(勝因)이었다
↑ 1949년 10월 1일 모택동이 북경의 천안문 성루 누상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선포하고 있다. by 金知知 중국이 건국 70주년 기념일인 10월 1일 역대 최대 규모의 열병식을 진행한다. 건국절 열병식엔 군인 1만5000여명과 전투기 160대, 최신 무기 580개가 등장하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직접 사열한다. 70년 전 어떤 과정을 거쳐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는지 당시 상황을 살펴본다. 일본의 항복 후, 무주공산의 동북 3성을...
[연인과 부부 ③-4] 일제 하에서 공산 혁명을 꿈 꾼 세 남자·세 여자의 사랑과 이별과 배신, 투쟁과 고난 이야기 : 박헌영·김단야·임원근·허정숙·주세죽·고명자를 중심으로 / 6-④
↑ 1938년 10월 10일 무한의 한구에서 가진 조선의용대 발대식 모습. 중국 본토에서 창건된 최초의 독립군 부대다. 의용대 깃발 바로 뒤 가운데 인물이 김원봉이다. ☞ [연인과 부부] 시리즈 전체가 궁금하다면 클릭!! by 김지지 ■조선의용대, 민족주의 세력과 공산주의 세력으로 분화 ▲허정숙과 최창익, 중국 남경에서 결혼 허정숙과 최창익은 서울에서부터 사실상 부부나 다름없었지만 1936년 중국 남경에 도착한 후 결혼식을...
영화배우 제임스 딘, 도로를 과속 질주하다 사망
첫 영화 ‘에덴의 동쪽’(1955)으로 화려하게 꽃을 피웠으나 1년도 채 피지 못하고 갑작스레 팬들의 곁을 떠나야 했던 제임스 딘. 1955년 9월 30일, 그가 죽었다. 애차(愛車) 포르셰 스파이더 550를 몰고 캘리포니아 교외 도로를 과속으로 질주하다 사고를 당한 것이다. 24년의 짧은 삶이었다. 평소 연기를 천직으로 알고 스피드를 즐겨왔던 그였기에 3번째 영화 ‘자이언트’ 촬영을 모두 끝내고 자동차 핸들을 잡은 상태에서 맞은 죽음은 어쩌면 현실과 화합하지 못했던 그의...
제24회 서울올림픽 유치
“쎄울 코리아!” 1981년 9월 30일 사마란치 IOC 위원장의 목소리가 독일 바덴바덴의 IOC 총회장에 울려퍼졌다. 서울이 52표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27표를 얻은 일본의 나고야를 물리치고 제24회 올림픽 개최지로 결정된 순간, 유치단은 만세를 불렀고 세계인들은 이 극적인 반전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로써 한국은 개발도상국가로서 최초의 올림픽 개최국이 됐고 아시아에서는 2번째, 세계에서는 16번째 올림픽 개최국의 영예를 안았다. 1979년 9월 결정했다가 박정희...
박정희 정부, 김지하의 담시 ‘오적’ 게재한 ‘사상계’ 폐간
1950∼1960년대 한국 지성의 산실이었던 월간지 ‘사상계’는 장준하가 광복군 시절 등사판 잡지 ‘제단’을 만든 경험을 살려 1953년 4월 문교부 산하 국민사상연구원의 기관지 ‘사상’을 인수해 이름을 ‘사상계’로 바꾸면서 세상에 태어났다. ‘사상계’는 자유와 민권을 기치로 내세웠다. 정치 탄압을 받을수록 더욱 성장하는 저력을 보였다. 1958년 함석헌의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글이 필화사건으로 비화되었을 때는 독자들의 성원으로 발행부수가 5만 부를 넘어서기도 했다....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 6·25 때 인민군의 총에 사망
전남 여수에 위치한 한센병 환자수용소 ‘애양원’에서 헌신적인 구호사업과 전도활동을 펼치던 손양원 목사에게 첫 시련이 닥친 것은 1940년 9월이었다.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감옥에 끌려간 것이다. 3년의 형기를 마쳤음에도 일제는 “덴코(轉向)하라”며 위협했고, 손 목사는 “신코(信仰)가 중요하다”며 협박을 거부했다. 결국 광복이 되어서야 풀려났으나 기쁨도 잠시뿐 곧 극심한 좌우대립이 그의 아들들에게까지 손길을 뻗쳤다. 1948년 10월 여순반란사건으로 두 아들이 목사 아들이라는...
장면 부통령 저격 사건
1956년 9월 28일. 서울 시공관에서 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오후 2시38분쯤, 민주당 소속 장면 부통령이 연설을 마치고 단상에서 내려오던 중 갑자기 요란한 총소리가 장내에 울려퍼졌다. 민주당원을 자칭하는 김상붕이 장면을 향해 쏜 총소리였다. 왼손에 총탄을 맞은 장면은 피를 흘리면서도 다시 단상으로 올라가 “나는 무사하다”며 주위사람들을 안심시켰다. 장내는 만세와 박수로 뒤범벅이었다. 김상붕은 몇 걸음도 달아나지 못하고 민주당원들에 붙잡혀 곧 대회장으로 찾아온...
美 영화배우 록 허드슨 AIDS로 사망
1985년 10월 2일, 미국의 영화배우 록 허드슨이 AIDS로 숨을 거뒀다. AIDS로 인한 첫 헐리우드 스타의 죽음에 미 영화계는 물론 레이건 대통령까지 나서 애도를 표했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몸에 드러난 반점을 공개해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준 그의 용기에 대한 경의의 표시이기도 했다. 그의 사후에 미 의회가 AIDS 연구를 위한 긴급지출을 가결할 정도로 그의 죽음이 사회에 미친 파장은 컸다. 188㎝의 훤칠한 키에 수려한 외모까지 갖춘 그는 1950∼60년대의...
한·미 상호방위조약 조인
6·25 휴전협상이 막바지로 치닫자 이승만 대통령의 고민도 한층 깊어졌다. 휴전회담을 깨고 북진통일을 고수할 것인지, 아니면 가급적 전쟁을 빨리 끝내고 싶어하는 미국으로부터 휴전반대를 무기로 분명한 안보공약을 얻어낼 것인지…. 단독으로 북진할 수 없다는 사실은 누구보다도 이승만이 잘 알고 있었다. 결국 안전보장이 현실적인 대안이었다. 미국도 안보공약의 필요성은 진작부터 느끼고 있었지만 자칫하면 전쟁 위험이 상존하는 이 지역에 발이 묶일 것을 경계했다. 미국 손에는 이승만을...
10월 대구 폭동 시작
1946년 9월의 대구는 고질적인 식량난과 미군정에 대한 불만, 거기에 콜레라까지 만연하면서 민심이 흉흉했다. 여기에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의 ‘9월 총파업’ 결정은 건초더미에 불을 붙힌 격이 됐다. 1946년 10월 1일, 대구시청은 아침부터 몰려든 1000여 명의 부녀자들로 북적거렸다. “시청에 가면 쌀을 준다”는 유언비어를 믿고 온 사람들이었다. 오후들어 불어난 시민·학생들은 어느덧 7000여 명을 헤아렸다. 거리를 가득 메운 군중이 밤 10시 통근시간이 지났는데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70주년… 군사력은 장개석의 국민당에 절대적 열세였으나 국민당이 부패하고 대중의 민심을 얻은 게 모택동의 결정적 승인(勝因)이었다
↑ 1949년 10월 1일 모택동이 북경의 천안문 성루 누상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선포하고 있다. by 金知知 중국이 건국 70주년 기념일인 10월 1일 역대 최대 규모의 열병식을 진행한다. 건국절 열병식엔 군인 1만5000여명과 전투기 160대, 최신 무기 580개가 등장하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직접 사열한다. 70년 전 어떤 과정을 거쳐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는지 당시 상황을 살펴본다. 일본의 항복 후, 무주공산의 동북 3성을...
[연인과 부부 ③-4] 일제 하에서 공산 혁명을 꿈 꾼 세 남자·세 여자의 사랑과 이별과 배신, 투쟁과 고난 이야기 : 박헌영·김단야·임원근·허정숙·주세죽·고명자를 중심으로 / 6-④
↑ 1938년 10월 10일 무한의 한구에서 가진 조선의용대 발대식 모습. 중국 본토에서 창건된 최초의 독립군 부대다. 의용대 깃발 바로 뒤 가운데 인물이 김원봉이다. ☞ [연인과 부부] 시리즈 전체가 궁금하다면 클릭!! by 김지지 ■조선의용대, 민족주의 세력과 공산주의 세력으로 분화 ▲허정숙과 최창익, 중국 남경에서 결혼 허정숙과 최창익은 서울에서부터 사실상 부부나 다름없었지만 1936년 중국 남경에 도착한 후 결혼식을...
영화배우 제임스 딘, 도로를 과속 질주하다 사망
첫 영화 ‘에덴의 동쪽’(1955)으로 화려하게 꽃을 피웠으나 1년도 채 피지 못하고 갑작스레 팬들의 곁을 떠나야 했던 제임스 딘. 1955년 9월 30일, 그가 죽었다. 애차(愛車) 포르셰 스파이더 550를 몰고 캘리포니아 교외 도로를 과속으로 질주하다 사고를 당한 것이다. 24년의 짧은 삶이었다. 평소 연기를 천직으로 알고 스피드를 즐겨왔던 그였기에 3번째 영화 ‘자이언트’ 촬영을 모두 끝내고 자동차 핸들을 잡은 상태에서 맞은 죽음은 어쩌면 현실과 화합하지 못했던 그의...
제24회 서울올림픽 유치
“쎄울 코리아!” 1981년 9월 30일 사마란치 IOC 위원장의 목소리가 독일 바덴바덴의 IOC 총회장에 울려퍼졌다. 서울이 52표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27표를 얻은 일본의 나고야를 물리치고 제24회 올림픽 개최지로 결정된 순간, 유치단은 만세를 불렀고 세계인들은 이 극적인 반전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로써 한국은 개발도상국가로서 최초의 올림픽 개최국이 됐고 아시아에서는 2번째, 세계에서는 16번째 올림픽 개최국의 영예를 안았다. 1979년 9월 결정했다가 박정희...
박정희 정부, 김지하의 담시 ‘오적’ 게재한 ‘사상계’ 폐간
1950∼1960년대 한국 지성의 산실이었던 월간지 ‘사상계’는 장준하가 광복군 시절 등사판 잡지 ‘제단’을 만든 경험을 살려 1953년 4월 문교부 산하 국민사상연구원의 기관지 ‘사상’을 인수해 이름을 ‘사상계’로 바꾸면서 세상에 태어났다. ‘사상계’는 자유와 민권을 기치로 내세웠다. 정치 탄압을 받을수록 더욱 성장하는 저력을 보였다. 1958년 함석헌의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글이 필화사건으로 비화되었을 때는 독자들의 성원으로 발행부수가 5만 부를 넘어서기도 했다....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 6·25 때 인민군의 총에 사망
전남 여수에 위치한 한센병 환자수용소 ‘애양원’에서 헌신적인 구호사업과 전도활동을 펼치던 손양원 목사에게 첫 시련이 닥친 것은 1940년 9월이었다.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감옥에 끌려간 것이다. 3년의 형기를 마쳤음에도 일제는 “덴코(轉向)하라”며 위협했고, 손 목사는 “신코(信仰)가 중요하다”며 협박을 거부했다. 결국 광복이 되어서야 풀려났으나 기쁨도 잠시뿐 곧 극심한 좌우대립이 그의 아들들에게까지 손길을 뻗쳤다. 1948년 10월 여순반란사건으로 두 아들이 목사 아들이라는...
장면 부통령 저격 사건
1956년 9월 28일. 서울 시공관에서 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오후 2시38분쯤, 민주당 소속 장면 부통령이 연설을 마치고 단상에서 내려오던 중 갑자기 요란한 총소리가 장내에 울려퍼졌다. 민주당원을 자칭하는 김상붕이 장면을 향해 쏜 총소리였다. 왼손에 총탄을 맞은 장면은 피를 흘리면서도 다시 단상으로 올라가 “나는 무사하다”며 주위사람들을 안심시켰다. 장내는 만세와 박수로 뒤범벅이었다. 김상붕은 몇 걸음도 달아나지 못하고 민주당원들에 붙잡혀 곧 대회장으로 찾아온...
美 영화배우 록 허드슨 AIDS로 사망
1985년 10월 2일, 미국의 영화배우 록 허드슨이 AIDS로 숨을 거뒀다. AIDS로 인한 첫 헐리우드 스타의 죽음에 미 영화계는 물론 레이건 대통령까지 나서 애도를 표했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몸에 드러난 반점을 공개해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준 그의 용기에 대한 경의의 표시이기도 했다. 그의 사후에 미 의회가 AIDS 연구를 위한 긴급지출을 가결할 정도로 그의 죽음이 사회에 미친 파장은 컸다. 188㎝의 훤칠한 키에 수려한 외모까지 갖춘 그는 1950∼60년대의...
한·미 상호방위조약 조인
6·25 휴전협상이 막바지로 치닫자 이승만 대통령의 고민도 한층 깊어졌다. 휴전회담을 깨고 북진통일을 고수할 것인지, 아니면 가급적 전쟁을 빨리 끝내고 싶어하는 미국으로부터 휴전반대를 무기로 분명한 안보공약을 얻어낼 것인지…. 단독으로 북진할 수 없다는 사실은 누구보다도 이승만이 잘 알고 있었다. 결국 안전보장이 현실적인 대안이었다. 미국도 안보공약의 필요성은 진작부터 느끼고 있었지만 자칫하면 전쟁 위험이 상존하는 이 지역에 발이 묶일 것을 경계했다. 미국 손에는 이승만을...
10월 대구 폭동 시작
1946년 9월의 대구는 고질적인 식량난과 미군정에 대한 불만, 거기에 콜레라까지 만연하면서 민심이 흉흉했다. 여기에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의 ‘9월 총파업’ 결정은 건초더미에 불을 붙힌 격이 됐다. 1946년 10월 1일, 대구시청은 아침부터 몰려든 1000여 명의 부녀자들로 북적거렸다. “시청에 가면 쌀을 준다”는 유언비어를 믿고 온 사람들이었다. 오후들어 불어난 시민·학생들은 어느덧 7000여 명을 헤아렸다. 거리를 가득 메운 군중이 밤 10시 통근시간이 지났는데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70주년… 군사력은 장개석의 국민당에 절대적 열세였으나 국민당이 부패하고 대중의 민심을 얻은 게 모택동의 결정적 승인(勝因)이었다
↑ 1949년 10월 1일 모택동이 북경의 천안문 성루 누상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선포하고 있다. by 金知知 중국이 건국 70주년 기념일인 10월 1일 역대 최대 규모의 열병식을 진행한다. 건국절 열병식엔 군인 1만5000여명과 전투기 160대, 최신 무기 580개가 등장하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직접 사열한다. 70년 전 어떤 과정을 거쳐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는지 당시 상황을 살펴본다. 일본의 항복 후, 무주공산의 동북 3성을...
[연인과 부부 ③-4] 일제 하에서 공산 혁명을 꿈 꾼 세 남자·세 여자의 사랑과 이별과 배신, 투쟁과 고난 이야기 : 박헌영·김단야·임원근·허정숙·주세죽·고명자를 중심으로 / 6-④
↑ 1938년 10월 10일 무한의 한구에서 가진 조선의용대 발대식 모습. 중국 본토에서 창건된 최초의 독립군 부대다. 의용대 깃발 바로 뒤 가운데 인물이 김원봉이다. ☞ [연인과 부부] 시리즈 전체가 궁금하다면 클릭!! by 김지지 ■조선의용대, 민족주의 세력과 공산주의 세력으로 분화 ▲허정숙과 최창익, 중국 남경에서 결혼 허정숙과 최창익은 서울에서부터 사실상 부부나 다름없었지만 1936년 중국 남경에 도착한 후 결혼식을...
영화배우 제임스 딘, 도로를 과속 질주하다 사망
첫 영화 ‘에덴의 동쪽’(1955)으로 화려하게 꽃을 피웠으나 1년도 채 피지 못하고 갑작스레 팬들의 곁을 떠나야 했던 제임스 딘. 1955년 9월 30일, 그가 죽었다. 애차(愛車) 포르셰 스파이더 550를 몰고 캘리포니아 교외 도로를 과속으로 질주하다 사고를 당한 것이다. 24년의 짧은 삶이었다. 평소 연기를 천직으로 알고 스피드를 즐겨왔던 그였기에 3번째 영화 ‘자이언트’ 촬영을 모두 끝내고 자동차 핸들을 잡은 상태에서 맞은 죽음은 어쩌면 현실과 화합하지 못했던 그의...
제24회 서울올림픽 유치
“쎄울 코리아!” 1981년 9월 30일 사마란치 IOC 위원장의 목소리가 독일 바덴바덴의 IOC 총회장에 울려퍼졌다. 서울이 52표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27표를 얻은 일본의 나고야를 물리치고 제24회 올림픽 개최지로 결정된 순간, 유치단은 만세를 불렀고 세계인들은 이 극적인 반전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로써 한국은 개발도상국가로서 최초의 올림픽 개최국이 됐고 아시아에서는 2번째, 세계에서는 16번째 올림픽 개최국의 영예를 안았다. 1979년 9월 결정했다가 박정희...
박정희 정부, 김지하의 담시 ‘오적’ 게재한 ‘사상계’ 폐간
1950∼1960년대 한국 지성의 산실이었던 월간지 ‘사상계’는 장준하가 광복군 시절 등사판 잡지 ‘제단’을 만든 경험을 살려 1953년 4월 문교부 산하 국민사상연구원의 기관지 ‘사상’을 인수해 이름을 ‘사상계’로 바꾸면서 세상에 태어났다. ‘사상계’는 자유와 민권을 기치로 내세웠다. 정치 탄압을 받을수록 더욱 성장하는 저력을 보였다. 1958년 함석헌의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글이 필화사건으로 비화되었을 때는 독자들의 성원으로 발행부수가 5만 부를 넘어서기도 했다....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 6·25 때 인민군의 총에 사망
전남 여수에 위치한 한센병 환자수용소 ‘애양원’에서 헌신적인 구호사업과 전도활동을 펼치던 손양원 목사에게 첫 시련이 닥친 것은 1940년 9월이었다.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감옥에 끌려간 것이다. 3년의 형기를 마쳤음에도 일제는 “덴코(轉向)하라”며 위협했고, 손 목사는 “신코(信仰)가 중요하다”며 협박을 거부했다. 결국 광복이 되어서야 풀려났으나 기쁨도 잠시뿐 곧 극심한 좌우대립이 그의 아들들에게까지 손길을 뻗쳤다. 1948년 10월 여순반란사건으로 두 아들이 목사 아들이라는...
장면 부통령 저격 사건
1956년 9월 28일. 서울 시공관에서 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오후 2시38분쯤, 민주당 소속 장면 부통령이 연설을 마치고 단상에서 내려오던 중 갑자기 요란한 총소리가 장내에 울려퍼졌다. 민주당원을 자칭하는 김상붕이 장면을 향해 쏜 총소리였다. 왼손에 총탄을 맞은 장면은 피를 흘리면서도 다시 단상으로 올라가 “나는 무사하다”며 주위사람들을 안심시켰다. 장내는 만세와 박수로 뒤범벅이었다. 김상붕은 몇 걸음도 달아나지 못하고 민주당원들에 붙잡혀 곧 대회장으로 찾아온...
美 영화배우 록 허드슨 AIDS로 사망
1985년 10월 2일, 미국의 영화배우 록 허드슨이 AIDS로 숨을 거뒀다. AIDS로 인한 첫 헐리우드 스타의 죽음에 미 영화계는 물론 레이건 대통령까지 나서 애도를 표했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몸에 드러난 반점을 공개해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준 그의 용기에 대한 경의의 표시이기도 했다. 그의 사후에 미 의회가 AIDS 연구를 위한 긴급지출을 가결할 정도로 그의 죽음이 사회에 미친 파장은 컸다. 188㎝의 훤칠한 키에 수려한 외모까지 갖춘 그는 1950∼60년대의...
한·미 상호방위조약 조인
6·25 휴전협상이 막바지로 치닫자 이승만 대통령의 고민도 한층 깊어졌다. 휴전회담을 깨고 북진통일을 고수할 것인지, 아니면 가급적 전쟁을 빨리 끝내고 싶어하는 미국으로부터 휴전반대를 무기로 분명한 안보공약을 얻어낼 것인지…. 단독으로 북진할 수 없다는 사실은 누구보다도 이승만이 잘 알고 있었다. 결국 안전보장이 현실적인 대안이었다. 미국도 안보공약의 필요성은 진작부터 느끼고 있었지만 자칫하면 전쟁 위험이 상존하는 이 지역에 발이 묶일 것을 경계했다. 미국 손에는 이승만을...
10월 대구 폭동 시작
1946년 9월의 대구는 고질적인 식량난과 미군정에 대한 불만, 거기에 콜레라까지 만연하면서 민심이 흉흉했다. 여기에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의 ‘9월 총파업’ 결정은 건초더미에 불을 붙힌 격이 됐다. 1946년 10월 1일, 대구시청은 아침부터 몰려든 1000여 명의 부녀자들로 북적거렸다. “시청에 가면 쌀을 준다”는 유언비어를 믿고 온 사람들이었다. 오후들어 불어난 시민·학생들은 어느덧 7000여 명을 헤아렸다. 거리를 가득 메운 군중이 밤 10시 통근시간이 지났는데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70주년… 군사력은 장개석의 국민당에 절대적 열세였으나 국민당이 부패하고 대중의 민심을 얻은 게 모택동의 결정적 승인(勝因)이었다
↑ 1949년 10월 1일 모택동이 북경의 천안문 성루 누상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선포하고 있다. by 金知知 중국이 건국 70주년 기념일인 10월 1일 역대 최대 규모의 열병식을 진행한다. 건국절 열병식엔 군인 1만5000여명과 전투기 160대, 최신 무기 580개가 등장하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직접 사열한다. 70년 전 어떤 과정을 거쳐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는지 당시 상황을 살펴본다. 일본의 항복 후, 무주공산의 동북 3성을...
[연인과 부부 ③-4] 일제 하에서 공산 혁명을 꿈 꾼 세 남자·세 여자의 사랑과 이별과 배신, 투쟁과 고난 이야기 : 박헌영·김단야·임원근·허정숙·주세죽·고명자를 중심으로 / 6-④
↑ 1938년 10월 10일 무한의 한구에서 가진 조선의용대 발대식 모습. 중국 본토에서 창건된 최초의 독립군 부대다. 의용대 깃발 바로 뒤 가운데 인물이 김원봉이다. ☞ [연인과 부부] 시리즈 전체가 궁금하다면 클릭!! by 김지지 ■조선의용대, 민족주의 세력과 공산주의 세력으로 분화 ▲허정숙과 최창익, 중국 남경에서 결혼 허정숙과 최창익은 서울에서부터 사실상 부부나 다름없었지만 1936년 중국 남경에 도착한 후 결혼식을...
영화배우 제임스 딘, 도로를 과속 질주하다 사망
첫 영화 ‘에덴의 동쪽’(1955)으로 화려하게 꽃을 피웠으나 1년도 채 피지 못하고 갑작스레 팬들의 곁을 떠나야 했던 제임스 딘. 1955년 9월 30일, 그가 죽었다. 애차(愛車) 포르셰 스파이더 550를 몰고 캘리포니아 교외 도로를 과속으로 질주하다 사고를 당한 것이다. 24년의 짧은 삶이었다. 평소 연기를 천직으로 알고 스피드를 즐겨왔던 그였기에 3번째 영화 ‘자이언트’ 촬영을 모두 끝내고 자동차 핸들을 잡은 상태에서 맞은 죽음은 어쩌면 현실과 화합하지 못했던 그의...
제24회 서울올림픽 유치
“쎄울 코리아!” 1981년 9월 30일 사마란치 IOC 위원장의 목소리가 독일 바덴바덴의 IOC 총회장에 울려퍼졌다. 서울이 52표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27표를 얻은 일본의 나고야를 물리치고 제24회 올림픽 개최지로 결정된 순간, 유치단은 만세를 불렀고 세계인들은 이 극적인 반전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로써 한국은 개발도상국가로서 최초의 올림픽 개최국이 됐고 아시아에서는 2번째, 세계에서는 16번째 올림픽 개최국의 영예를 안았다. 1979년 9월 결정했다가 박정희...
박정희 정부, 김지하의 담시 ‘오적’ 게재한 ‘사상계’ 폐간
1950∼1960년대 한국 지성의 산실이었던 월간지 ‘사상계’는 장준하가 광복군 시절 등사판 잡지 ‘제단’을 만든 경험을 살려 1953년 4월 문교부 산하 국민사상연구원의 기관지 ‘사상’을 인수해 이름을 ‘사상계’로 바꾸면서 세상에 태어났다. ‘사상계’는 자유와 민권을 기치로 내세웠다. 정치 탄압을 받을수록 더욱 성장하는 저력을 보였다. 1958년 함석헌의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글이 필화사건으로 비화되었을 때는 독자들의 성원으로 발행부수가 5만 부를 넘어서기도 했다....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 6·25 때 인민군의 총에 사망
전남 여수에 위치한 한센병 환자수용소 ‘애양원’에서 헌신적인 구호사업과 전도활동을 펼치던 손양원 목사에게 첫 시련이 닥친 것은 1940년 9월이었다.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감옥에 끌려간 것이다. 3년의 형기를 마쳤음에도 일제는 “덴코(轉向)하라”며 위협했고, 손 목사는 “신코(信仰)가 중요하다”며 협박을 거부했다. 결국 광복이 되어서야 풀려났으나 기쁨도 잠시뿐 곧 극심한 좌우대립이 그의 아들들에게까지 손길을 뻗쳤다. 1948년 10월 여순반란사건으로 두 아들이 목사 아들이라는...
장면 부통령 저격 사건
1956년 9월 28일. 서울 시공관에서 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오후 2시38분쯤, 민주당 소속 장면 부통령이 연설을 마치고 단상에서 내려오던 중 갑자기 요란한 총소리가 장내에 울려퍼졌다. 민주당원을 자칭하는 김상붕이 장면을 향해 쏜 총소리였다. 왼손에 총탄을 맞은 장면은 피를 흘리면서도 다시 단상으로 올라가 “나는 무사하다”며 주위사람들을 안심시켰다. 장내는 만세와 박수로 뒤범벅이었다. 김상붕은 몇 걸음도 달아나지 못하고 민주당원들에 붙잡혀 곧 대회장으로 찾아온...
美 영화배우 록 허드슨 AIDS로 사망
1985년 10월 2일, 미국의 영화배우 록 허드슨이 AIDS로 숨을 거뒀다. AIDS로 인한 첫 헐리우드 스타의 죽음에 미 영화계는 물론 레이건 대통령까지 나서 애도를 표했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몸에 드러난 반점을 공개해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준 그의 용기에 대한 경의의 표시이기도 했다. 그의 사후에 미 의회가 AIDS 연구를 위한 긴급지출을 가결할 정도로 그의 죽음이 사회에 미친 파장은 컸다. 188㎝의 훤칠한 키에 수려한 외모까지 갖춘 그는 1950∼60년대의...
한·미 상호방위조약 조인
6·25 휴전협상이 막바지로 치닫자 이승만 대통령의 고민도 한층 깊어졌다. 휴전회담을 깨고 북진통일을 고수할 것인지, 아니면 가급적 전쟁을 빨리 끝내고 싶어하는 미국으로부터 휴전반대를 무기로 분명한 안보공약을 얻어낼 것인지…. 단독으로 북진할 수 없다는 사실은 누구보다도 이승만이 잘 알고 있었다. 결국 안전보장이 현실적인 대안이었다. 미국도 안보공약의 필요성은 진작부터 느끼고 있었지만 자칫하면 전쟁 위험이 상존하는 이 지역에 발이 묶일 것을 경계했다. 미국 손에는 이승만을...
10월 대구 폭동 시작
1946년 9월의 대구는 고질적인 식량난과 미군정에 대한 불만, 거기에 콜레라까지 만연하면서 민심이 흉흉했다. 여기에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의 ‘9월 총파업’ 결정은 건초더미에 불을 붙힌 격이 됐다. 1946년 10월 1일, 대구시청은 아침부터 몰려든 1000여 명의 부녀자들로 북적거렸다. “시청에 가면 쌀을 준다”는 유언비어를 믿고 온 사람들이었다. 오후들어 불어난 시민·학생들은 어느덧 7000여 명을 헤아렸다. 거리를 가득 메운 군중이 밤 10시 통근시간이 지났는데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70주년… 군사력은 장개석의 국민당에 절대적 열세였으나 국민당이 부패하고 대중의 민심을 얻은 게 모택동의 결정적 승인(勝因)이었다
↑ 1949년 10월 1일 모택동이 북경의 천안문 성루 누상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선포하고 있다. by 金知知 중국이 건국 70주년 기념일인 10월 1일 역대 최대 규모의 열병식을 진행한다. 건국절 열병식엔 군인 1만5000여명과 전투기 160대, 최신 무기 580개가 등장하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직접 사열한다. 70년 전 어떤 과정을 거쳐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는지 당시 상황을 살펴본다. 일본의 항복 후, 무주공산의 동북 3성을...
[연인과 부부 ③-4] 일제 하에서 공산 혁명을 꿈 꾼 세 남자·세 여자의 사랑과 이별과 배신, 투쟁과 고난 이야기 : 박헌영·김단야·임원근·허정숙·주세죽·고명자를 중심으로 / 6-④
↑ 1938년 10월 10일 무한의 한구에서 가진 조선의용대 발대식 모습. 중국 본토에서 창건된 최초의 독립군 부대다. 의용대 깃발 바로 뒤 가운데 인물이 김원봉이다. ☞ [연인과 부부] 시리즈 전체가 궁금하다면 클릭!! by 김지지 ■조선의용대, 민족주의 세력과 공산주의 세력으로 분화 ▲허정숙과 최창익, 중국 남경에서 결혼 허정숙과 최창익은 서울에서부터 사실상 부부나 다름없었지만 1936년 중국 남경에 도착한 후 결혼식을...
영화배우 제임스 딘, 도로를 과속 질주하다 사망
첫 영화 ‘에덴의 동쪽’(1955)으로 화려하게 꽃을 피웠으나 1년도 채 피지 못하고 갑작스레 팬들의 곁을 떠나야 했던 제임스 딘. 1955년 9월 30일, 그가 죽었다. 애차(愛車) 포르셰 스파이더 550를 몰고 캘리포니아 교외 도로를 과속으로 질주하다 사고를 당한 것이다. 24년의 짧은 삶이었다. 평소 연기를 천직으로 알고 스피드를 즐겨왔던 그였기에 3번째 영화 ‘자이언트’ 촬영을 모두 끝내고 자동차 핸들을 잡은 상태에서 맞은 죽음은 어쩌면 현실과 화합하지 못했던 그의...
제24회 서울올림픽 유치
“쎄울 코리아!” 1981년 9월 30일 사마란치 IOC 위원장의 목소리가 독일 바덴바덴의 IOC 총회장에 울려퍼졌다. 서울이 52표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27표를 얻은 일본의 나고야를 물리치고 제24회 올림픽 개최지로 결정된 순간, 유치단은 만세를 불렀고 세계인들은 이 극적인 반전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로써 한국은 개발도상국가로서 최초의 올림픽 개최국이 됐고 아시아에서는 2번째, 세계에서는 16번째 올림픽 개최국의 영예를 안았다. 1979년 9월 결정했다가 박정희...
박정희 정부, 김지하의 담시 ‘오적’ 게재한 ‘사상계’ 폐간
1950∼1960년대 한국 지성의 산실이었던 월간지 ‘사상계’는 장준하가 광복군 시절 등사판 잡지 ‘제단’을 만든 경험을 살려 1953년 4월 문교부 산하 국민사상연구원의 기관지 ‘사상’을 인수해 이름을 ‘사상계’로 바꾸면서 세상에 태어났다. ‘사상계’는 자유와 민권을 기치로 내세웠다. 정치 탄압을 받을수록 더욱 성장하는 저력을 보였다. 1958년 함석헌의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글이 필화사건으로 비화되었을 때는 독자들의 성원으로 발행부수가 5만 부를 넘어서기도 했다....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 6·25 때 인민군의 총에 사망
전남 여수에 위치한 한센병 환자수용소 ‘애양원’에서 헌신적인 구호사업과 전도활동을 펼치던 손양원 목사에게 첫 시련이 닥친 것은 1940년 9월이었다.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감옥에 끌려간 것이다. 3년의 형기를 마쳤음에도 일제는 “덴코(轉向)하라”며 위협했고, 손 목사는 “신코(信仰)가 중요하다”며 협박을 거부했다. 결국 광복이 되어서야 풀려났으나 기쁨도 잠시뿐 곧 극심한 좌우대립이 그의 아들들에게까지 손길을 뻗쳤다. 1948년 10월 여순반란사건으로 두 아들이 목사 아들이라는...
장면 부통령 저격 사건
1956년 9월 28일. 서울 시공관에서 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오후 2시38분쯤, 민주당 소속 장면 부통령이 연설을 마치고 단상에서 내려오던 중 갑자기 요란한 총소리가 장내에 울려퍼졌다. 민주당원을 자칭하는 김상붕이 장면을 향해 쏜 총소리였다. 왼손에 총탄을 맞은 장면은 피를 흘리면서도 다시 단상으로 올라가 “나는 무사하다”며 주위사람들을 안심시켰다. 장내는 만세와 박수로 뒤범벅이었다. 김상붕은 몇 걸음도 달아나지 못하고 민주당원들에 붙잡혀 곧 대회장으로 찾아온...
美 영화배우 록 허드슨 AIDS로 사망
1985년 10월 2일, 미국의 영화배우 록 허드슨이 AIDS로 숨을 거뒀다. AIDS로 인한 첫 헐리우드 스타의 죽음에 미 영화계는 물론 레이건 대통령까지 나서 애도를 표했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몸에 드러난 반점을 공개해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준 그의 용기에 대한 경의의 표시이기도 했다. 그의 사후에 미 의회가 AIDS 연구를 위한 긴급지출을 가결할 정도로 그의 죽음이 사회에 미친 파장은 컸다. 188㎝의 훤칠한 키에 수려한 외모까지 갖춘 그는 1950∼60년대의...
한·미 상호방위조약 조인
6·25 휴전협상이 막바지로 치닫자 이승만 대통령의 고민도 한층 깊어졌다. 휴전회담을 깨고 북진통일을 고수할 것인지, 아니면 가급적 전쟁을 빨리 끝내고 싶어하는 미국으로부터 휴전반대를 무기로 분명한 안보공약을 얻어낼 것인지…. 단독으로 북진할 수 없다는 사실은 누구보다도 이승만이 잘 알고 있었다. 결국 안전보장이 현실적인 대안이었다. 미국도 안보공약의 필요성은 진작부터 느끼고 있었지만 자칫하면 전쟁 위험이 상존하는 이 지역에 발이 묶일 것을 경계했다. 미국 손에는 이승만을...
10월 대구 폭동 시작
1946년 9월의 대구는 고질적인 식량난과 미군정에 대한 불만, 거기에 콜레라까지 만연하면서 민심이 흉흉했다. 여기에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의 ‘9월 총파업’ 결정은 건초더미에 불을 붙힌 격이 됐다. 1946년 10월 1일, 대구시청은 아침부터 몰려든 1000여 명의 부녀자들로 북적거렸다. “시청에 가면 쌀을 준다”는 유언비어를 믿고 온 사람들이었다. 오후들어 불어난 시민·학생들은 어느덧 7000여 명을 헤아렸다. 거리를 가득 메운 군중이 밤 10시 통근시간이 지났는데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70주년… 군사력은 장개석의 국민당에 절대적 열세였으나 국민당이 부패하고 대중의 민심을 얻은 게 모택동의 결정적 승인(勝因)이었다
↑ 1949년 10월 1일 모택동이 북경의 천안문 성루 누상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선포하고 있다. by 金知知 중국이 건국 70주년 기념일인 10월 1일 역대 최대 규모의 열병식을 진행한다. 건국절 열병식엔 군인 1만5000여명과 전투기 160대, 최신 무기 580개가 등장하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직접 사열한다. 70년 전 어떤 과정을 거쳐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는지 당시 상황을 살펴본다. 일본의 항복 후, 무주공산의 동북 3성을...
[연인과 부부 ③-4] 일제 하에서 공산 혁명을 꿈 꾼 세 남자·세 여자의 사랑과 이별과 배신, 투쟁과 고난 이야기 : 박헌영·김단야·임원근·허정숙·주세죽·고명자를 중심으로 / 6-④
↑ 1938년 10월 10일 무한의 한구에서 가진 조선의용대 발대식 모습. 중국 본토에서 창건된 최초의 독립군 부대다. 의용대 깃발 바로 뒤 가운데 인물이 김원봉이다. ☞ [연인과 부부] 시리즈 전체가 궁금하다면 클릭!! by 김지지 ■조선의용대, 민족주의 세력과 공산주의 세력으로 분화 ▲허정숙과 최창익, 중국 남경에서 결혼 허정숙과 최창익은 서울에서부터 사실상 부부나 다름없었지만 1936년 중국 남경에 도착한 후 결혼식을...
영화배우 제임스 딘, 도로를 과속 질주하다 사망
첫 영화 ‘에덴의 동쪽’(1955)으로 화려하게 꽃을 피웠으나 1년도 채 피지 못하고 갑작스레 팬들의 곁을 떠나야 했던 제임스 딘. 1955년 9월 30일, 그가 죽었다. 애차(愛車) 포르셰 스파이더 550를 몰고 캘리포니아 교외 도로를 과속으로 질주하다 사고를 당한 것이다. 24년의 짧은 삶이었다. 평소 연기를 천직으로 알고 스피드를 즐겨왔던 그였기에 3번째 영화 ‘자이언트’ 촬영을 모두 끝내고 자동차 핸들을 잡은 상태에서 맞은 죽음은 어쩌면 현실과 화합하지 못했던 그의...
제24회 서울올림픽 유치
“쎄울 코리아!” 1981년 9월 30일 사마란치 IOC 위원장의 목소리가 독일 바덴바덴의 IOC 총회장에 울려퍼졌다. 서울이 52표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27표를 얻은 일본의 나고야를 물리치고 제24회 올림픽 개최지로 결정된 순간, 유치단은 만세를 불렀고 세계인들은 이 극적인 반전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로써 한국은 개발도상국가로서 최초의 올림픽 개최국이 됐고 아시아에서는 2번째, 세계에서는 16번째 올림픽 개최국의 영예를 안았다. 1979년 9월 결정했다가 박정희...
박정희 정부, 김지하의 담시 ‘오적’ 게재한 ‘사상계’ 폐간
1950∼1960년대 한국 지성의 산실이었던 월간지 ‘사상계’는 장준하가 광복군 시절 등사판 잡지 ‘제단’을 만든 경험을 살려 1953년 4월 문교부 산하 국민사상연구원의 기관지 ‘사상’을 인수해 이름을 ‘사상계’로 바꾸면서 세상에 태어났다. ‘사상계’는 자유와 민권을 기치로 내세웠다. 정치 탄압을 받을수록 더욱 성장하는 저력을 보였다. 1958년 함석헌의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글이 필화사건으로 비화되었을 때는 독자들의 성원으로 발행부수가 5만 부를 넘어서기도 했다....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 6·25 때 인민군의 총에 사망
전남 여수에 위치한 한센병 환자수용소 ‘애양원’에서 헌신적인 구호사업과 전도활동을 펼치던 손양원 목사에게 첫 시련이 닥친 것은 1940년 9월이었다.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감옥에 끌려간 것이다. 3년의 형기를 마쳤음에도 일제는 “덴코(轉向)하라”며 위협했고, 손 목사는 “신코(信仰)가 중요하다”며 협박을 거부했다. 결국 광복이 되어서야 풀려났으나 기쁨도 잠시뿐 곧 극심한 좌우대립이 그의 아들들에게까지 손길을 뻗쳤다. 1948년 10월 여순반란사건으로 두 아들이 목사 아들이라는...
장면 부통령 저격 사건
1956년 9월 28일. 서울 시공관에서 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오후 2시38분쯤, 민주당 소속 장면 부통령이 연설을 마치고 단상에서 내려오던 중 갑자기 요란한 총소리가 장내에 울려퍼졌다. 민주당원을 자칭하는 김상붕이 장면을 향해 쏜 총소리였다. 왼손에 총탄을 맞은 장면은 피를 흘리면서도 다시 단상으로 올라가 “나는 무사하다”며 주위사람들을 안심시켰다. 장내는 만세와 박수로 뒤범벅이었다. 김상붕은 몇 걸음도 달아나지 못하고 민주당원들에 붙잡혀 곧 대회장으로 찾아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