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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기자들 언론탄압에 항거하는 ‘자유언론실천선언’ 발표
1974년 들어 언론통제는 극에 달했다. 기관원들은 편집국에 상주했고 기사에는 간섭이 가해졌으며 기자들은 걸핏하면 남산 중앙정보부로 끌려갔다. 언론인이라면 누구나 자괴감을 느끼던 그 시기, 동아일보 기자들이 언론자유 수호를 위한 저항의 첫 봉화를 지폈다. 1974년 10월 24일 오전9시15분. 동아일보 기자 180명이 상기된 표정으로 3층 편집국에 모여 있었다. 전날 송건호 편집국장을 비롯 간부사원 3명이 서울농대생들의 유신반대시위를 보도했다는 이유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헝가리에서 대규모 반소(反蘇) 봉기 점화
1953년 스탈린 사후, 독재체제로부터 집단지도체제로 이행한 소련이 일시적이나마 동구권에 대해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하면서 헝가리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그해 7월, 철권통치를 행사해온 라코시가 당 총서기로 물러나고 개혁주의자 너지 임레가 총리에 올랐다. 너지가 자유화정책을 펼치며 국민의 지지를 모으자 라코시는 2년도 안돼 너지를 우익편향이라는 이유로 해임하고 공산당으로부터도 추방해 시계추를 과거로 되돌렸다. 1956년 2월, 흐루쇼프의 스탈린 비판으로 동구권에 또 한 번...
한강 인도교의 첫 번째 도교식(개통식)
한강 인도교(한강대교)는 개통 후 지금까지 3번의 도교식(渡橋式), 즉 개통식을 가졌다. 첫 도교식은 다리가 처음 놓인 1917년 10월 7일에 있었다. 개통과 함께 장안의 명물로 자리잡았으나 투신자살하는 사람이 많아 골칫거리였다. 파출소를 설치하고 난간에 ‘잠깐만 참으세요’라는 뜻의 ‘일촌대기(一寸待機)’라는 팻말을 붙이면서까지 자살방지에 부심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그해 조선총독부 통계에 따르면 한강교를 이용하는 자동차는 하루 평균 2327대, 자전거 2935대, 우마차...
체스터 칼슨, 세계최초로 건식 복사기 발명
체스터 칼슨은 미국 벨연구소에서 근무하다 불황으로 해고된 후 뉴욕의 맬로리사(社) 특허부에서 근무하는데 특허 도안과 설명서의 사본(寫本)을 얻는데 늘 골머리를 앓았다. 그래서 시작한 게 복사기 개발이었다. 칼슨은 그 무렵 대부분의 사람들이 화학적인 방법으로 복사 방법을 시도하는 것과 달리 정전기를 이용한 복사 방법에 매달렸다. 그리고 4년 후인 1938년 10월 22일, 뉴욕 퀸스거리 아스토리아에서 마침내 세계최초의 건식 복사기 실험에 성공했다. 처음 복사된 내용은...
독립운동 사상 최대 승전으로 기록된 ‘청산리 대첩’ 시작
만주·간도 지방에서 독립군의 활동이 활발해지고 봉오동 전투에서까지 패하자 일제는 함경도 나남에 주둔하고 있는 일본군 제19사단과 시베리아에 참전했던 1개 사단을 동원, 대대적인 독립군 토벌에 나섰다. 일본군이 출병한다는 정보를 전해들은 김좌진의 북로군정서군은 9월 17일 근거지를 빠져나와 백두산 방면으로 이동했다. 삼도구 청산리에 도착했으나 이미 19사단이 두만강을 넘고 시베리아 사단이 남하하며 포위망을 좁혀오자 김좌진은 이동을 포기하고 백두산 동북쪽 60여㎞ 지점에 있는...
미국, 쿠바 해상봉쇄… ‘쿠바 미사일 위기’ 고조
1962년 10월 22일, 존 F. 케네디 미 대통령이 TV와 라디오를 통해 “소련이 쿠바에 중거리 미사일 기지를 건설 중”이라며 “미국과 서방세계의 안전을 위해 쿠바에 무기를 운반하는 선박에 대해 해상봉쇄를 단행한다”고 발표했다. 내연하던 ‘쿠바 미사일 위기’가 마침내 밖으로 드러난 것이다. 미국은 이미 14일에 U2 정찰기를 이용, 쿠바 서쪽 4곳에 소련의 미사일 기지가 건설 중이고 일류신28 폭격기도 조립 중에 있음을...
영국 함대,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프랑스·스페인 연합함대 격파
1805년 10월 21일 스페인 남서쪽 끝 트라팔가르 곶 앞바다. 27척의 영국 함대와 33척의 프랑스·스페인 연합함대가 서로 평행을 이루며 일직선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연합함대는 나폴레옹의 명을 받아 스페인의 카디스를 떠나 이탈리아 나폴리로 이동 중이었고 영국함대는 연합함대를 쫓는 중이었다. 연합함대와 영국함대는 각각 피에르 샤를 빌뇌브와 호레이쇼 넬슨이 지휘했다. 넬슨은 7년 전 나일강 해전에서도 빌뇌브와 격돌, 프랑스의 대형 함선 11척과 프리깃함 2척을 침몰시켜 지중해...
황태성(박정희 형의 친구), 북에서 남하해 박정희 만나려다 검거
황태성 황태성(1906~1963)은 박정희의 셋째형 박상희와 절친한 친구이자 공산운동을 같이한 동지였다. 박상희는 1946년 대구폭동 때 주도적인 역할을 하다가 1946년 10월 5일 진압 경찰관들이 쏜 총탄을 맞고 세상을 떠났다. 황태성은 남로당 경북도당의 조직부장으로 역시 대구폭동을 주도하다가 폭동 실패 후 월북, 고향에서 그의 종적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북에서 차관급인 무역부부상으로 지내던 황태성이 서부전선 비무장지대를 넘어 남한으로 잠입한 것은 1961년...
중국 공산당 대장정 끝나
장제스가 2년 간에 걸친 4차례의 포위섬멸작전으로 1931년 마오쩌둥이 장시성(江西省) 루이진(瑞金)에 세운 소비에트공화국 임시정부를 뿌리뽑으려 했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1933년 10월, 장제스는 70만 명의 대군을 동원해 철조망과 시멘트로 물샐틈없는 포위망을 펼치며 5번째 공격에 나섰다. 홍군은 전통적인 유격전을 버리고 정규전으로 승부했으나 수적으로 월등한 장제스군에 대패하고 거의 궤멸직전에 이르렀다. 포위망은 점점 좁혀오고 생필품과 의약품까지 동나자 공산당 지도부는...
중국 공산당, 김산 처형 결정
김산(본명 장지락)은 혁명가였고 시인이었으며 사상가였고 무정부주의자였다. 1905년 평양 근교 용천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더 많은 지식을 획득하기 위해 일본으로 갔으나 그들의 만행을 확인하고는 1921년 중국으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그는 상하이 임시정부 주변에서 활동하던 수많은 젊은 항일 급진주의자와 접촉하면서 지하 혁명운동에 가담했다. 특히 금강산 승려 출신 김충창의 지도로 무정부주의자에서 마르크스주의자가 된 그는 1925년 중국 혁명에 본격 뛰어들었다....
동아일보 기자들 언론탄압에 항거하는 ‘자유언론실천선언’ 발표
1974년 들어 언론통제는 극에 달했다. 기관원들은 편집국에 상주했고 기사에는 간섭이 가해졌으며 기자들은 걸핏하면 남산 중앙정보부로 끌려갔다. 언론인이라면 누구나 자괴감을 느끼던 그 시기, 동아일보 기자들이 언론자유 수호를 위한 저항의 첫 봉화를 지폈다. 1974년 10월 24일 오전9시15분. 동아일보 기자 180명이 상기된 표정으로 3층 편집국에 모여 있었다. 전날 송건호 편집국장을 비롯 간부사원 3명이 서울농대생들의 유신반대시위를 보도했다는 이유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헝가리에서 대규모 반소(反蘇) 봉기 점화
1953년 스탈린 사후, 독재체제로부터 집단지도체제로 이행한 소련이 일시적이나마 동구권에 대해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하면서 헝가리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그해 7월, 철권통치를 행사해온 라코시가 당 총서기로 물러나고 개혁주의자 너지 임레가 총리에 올랐다. 너지가 자유화정책을 펼치며 국민의 지지를 모으자 라코시는 2년도 안돼 너지를 우익편향이라는 이유로 해임하고 공산당으로부터도 추방해 시계추를 과거로 되돌렸다. 1956년 2월, 흐루쇼프의 스탈린 비판으로 동구권에 또 한 번...
한강 인도교의 첫 번째 도교식(개통식)
한강 인도교(한강대교)는 개통 후 지금까지 3번의 도교식(渡橋式), 즉 개통식을 가졌다. 첫 도교식은 다리가 처음 놓인 1917년 10월 7일에 있었다. 개통과 함께 장안의 명물로 자리잡았으나 투신자살하는 사람이 많아 골칫거리였다. 파출소를 설치하고 난간에 ‘잠깐만 참으세요’라는 뜻의 ‘일촌대기(一寸待機)’라는 팻말을 붙이면서까지 자살방지에 부심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그해 조선총독부 통계에 따르면 한강교를 이용하는 자동차는 하루 평균 2327대, 자전거 2935대, 우마차...
체스터 칼슨, 세계최초로 건식 복사기 발명
체스터 칼슨은 미국 벨연구소에서 근무하다 불황으로 해고된 후 뉴욕의 맬로리사(社) 특허부에서 근무하는데 특허 도안과 설명서의 사본(寫本)을 얻는데 늘 골머리를 앓았다. 그래서 시작한 게 복사기 개발이었다. 칼슨은 그 무렵 대부분의 사람들이 화학적인 방법으로 복사 방법을 시도하는 것과 달리 정전기를 이용한 복사 방법에 매달렸다. 그리고 4년 후인 1938년 10월 22일, 뉴욕 퀸스거리 아스토리아에서 마침내 세계최초의 건식 복사기 실험에 성공했다. 처음 복사된 내용은...
독립운동 사상 최대 승전으로 기록된 ‘청산리 대첩’ 시작
만주·간도 지방에서 독립군의 활동이 활발해지고 봉오동 전투에서까지 패하자 일제는 함경도 나남에 주둔하고 있는 일본군 제19사단과 시베리아에 참전했던 1개 사단을 동원, 대대적인 독립군 토벌에 나섰다. 일본군이 출병한다는 정보를 전해들은 김좌진의 북로군정서군은 9월 17일 근거지를 빠져나와 백두산 방면으로 이동했다. 삼도구 청산리에 도착했으나 이미 19사단이 두만강을 넘고 시베리아 사단이 남하하며 포위망을 좁혀오자 김좌진은 이동을 포기하고 백두산 동북쪽 60여㎞ 지점에 있는...
미국, 쿠바 해상봉쇄… ‘쿠바 미사일 위기’ 고조
1962년 10월 22일, 존 F. 케네디 미 대통령이 TV와 라디오를 통해 “소련이 쿠바에 중거리 미사일 기지를 건설 중”이라며 “미국과 서방세계의 안전을 위해 쿠바에 무기를 운반하는 선박에 대해 해상봉쇄를 단행한다”고 발표했다. 내연하던 ‘쿠바 미사일 위기’가 마침내 밖으로 드러난 것이다. 미국은 이미 14일에 U2 정찰기를 이용, 쿠바 서쪽 4곳에 소련의 미사일 기지가 건설 중이고 일류신28 폭격기도 조립 중에 있음을...
영국 함대,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프랑스·스페인 연합함대 격파
1805년 10월 21일 스페인 남서쪽 끝 트라팔가르 곶 앞바다. 27척의 영국 함대와 33척의 프랑스·스페인 연합함대가 서로 평행을 이루며 일직선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연합함대는 나폴레옹의 명을 받아 스페인의 카디스를 떠나 이탈리아 나폴리로 이동 중이었고 영국함대는 연합함대를 쫓는 중이었다. 연합함대와 영국함대는 각각 피에르 샤를 빌뇌브와 호레이쇼 넬슨이 지휘했다. 넬슨은 7년 전 나일강 해전에서도 빌뇌브와 격돌, 프랑스의 대형 함선 11척과 프리깃함 2척을 침몰시켜 지중해...
황태성(박정희 형의 친구), 북에서 남하해 박정희 만나려다 검거
황태성 황태성(1906~1963)은 박정희의 셋째형 박상희와 절친한 친구이자 공산운동을 같이한 동지였다. 박상희는 1946년 대구폭동 때 주도적인 역할을 하다가 1946년 10월 5일 진압 경찰관들이 쏜 총탄을 맞고 세상을 떠났다. 황태성은 남로당 경북도당의 조직부장으로 역시 대구폭동을 주도하다가 폭동 실패 후 월북, 고향에서 그의 종적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북에서 차관급인 무역부부상으로 지내던 황태성이 서부전선 비무장지대를 넘어 남한으로 잠입한 것은 1961년...
중국 공산당 대장정 끝나
장제스가 2년 간에 걸친 4차례의 포위섬멸작전으로 1931년 마오쩌둥이 장시성(江西省) 루이진(瑞金)에 세운 소비에트공화국 임시정부를 뿌리뽑으려 했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1933년 10월, 장제스는 70만 명의 대군을 동원해 철조망과 시멘트로 물샐틈없는 포위망을 펼치며 5번째 공격에 나섰다. 홍군은 전통적인 유격전을 버리고 정규전으로 승부했으나 수적으로 월등한 장제스군에 대패하고 거의 궤멸직전에 이르렀다. 포위망은 점점 좁혀오고 생필품과 의약품까지 동나자 공산당 지도부는...
중국 공산당, 김산 처형 결정
김산(본명 장지락)은 혁명가였고 시인이었으며 사상가였고 무정부주의자였다. 1905년 평양 근교 용천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더 많은 지식을 획득하기 위해 일본으로 갔으나 그들의 만행을 확인하고는 1921년 중국으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그는 상하이 임시정부 주변에서 활동하던 수많은 젊은 항일 급진주의자와 접촉하면서 지하 혁명운동에 가담했다. 특히 금강산 승려 출신 김충창의 지도로 무정부주의자에서 마르크스주의자가 된 그는 1925년 중국 혁명에 본격 뛰어들었다....
동아일보 기자들 언론탄압에 항거하는 ‘자유언론실천선언’ 발표
1974년 들어 언론통제는 극에 달했다. 기관원들은 편집국에 상주했고 기사에는 간섭이 가해졌으며 기자들은 걸핏하면 남산 중앙정보부로 끌려갔다. 언론인이라면 누구나 자괴감을 느끼던 그 시기, 동아일보 기자들이 언론자유 수호를 위한 저항의 첫 봉화를 지폈다. 1974년 10월 24일 오전9시15분. 동아일보 기자 180명이 상기된 표정으로 3층 편집국에 모여 있었다. 전날 송건호 편집국장을 비롯 간부사원 3명이 서울농대생들의 유신반대시위를 보도했다는 이유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헝가리에서 대규모 반소(反蘇) 봉기 점화
1953년 스탈린 사후, 독재체제로부터 집단지도체제로 이행한 소련이 일시적이나마 동구권에 대해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하면서 헝가리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그해 7월, 철권통치를 행사해온 라코시가 당 총서기로 물러나고 개혁주의자 너지 임레가 총리에 올랐다. 너지가 자유화정책을 펼치며 국민의 지지를 모으자 라코시는 2년도 안돼 너지를 우익편향이라는 이유로 해임하고 공산당으로부터도 추방해 시계추를 과거로 되돌렸다. 1956년 2월, 흐루쇼프의 스탈린 비판으로 동구권에 또 한 번...
한강 인도교의 첫 번째 도교식(개통식)
한강 인도교(한강대교)는 개통 후 지금까지 3번의 도교식(渡橋式), 즉 개통식을 가졌다. 첫 도교식은 다리가 처음 놓인 1917년 10월 7일에 있었다. 개통과 함께 장안의 명물로 자리잡았으나 투신자살하는 사람이 많아 골칫거리였다. 파출소를 설치하고 난간에 ‘잠깐만 참으세요’라는 뜻의 ‘일촌대기(一寸待機)’라는 팻말을 붙이면서까지 자살방지에 부심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그해 조선총독부 통계에 따르면 한강교를 이용하는 자동차는 하루 평균 2327대, 자전거 2935대, 우마차...
체스터 칼슨, 세계최초로 건식 복사기 발명
체스터 칼슨은 미국 벨연구소에서 근무하다 불황으로 해고된 후 뉴욕의 맬로리사(社) 특허부에서 근무하는데 특허 도안과 설명서의 사본(寫本)을 얻는데 늘 골머리를 앓았다. 그래서 시작한 게 복사기 개발이었다. 칼슨은 그 무렵 대부분의 사람들이 화학적인 방법으로 복사 방법을 시도하는 것과 달리 정전기를 이용한 복사 방법에 매달렸다. 그리고 4년 후인 1938년 10월 22일, 뉴욕 퀸스거리 아스토리아에서 마침내 세계최초의 건식 복사기 실험에 성공했다. 처음 복사된 내용은...
독립운동 사상 최대 승전으로 기록된 ‘청산리 대첩’ 시작
만주·간도 지방에서 독립군의 활동이 활발해지고 봉오동 전투에서까지 패하자 일제는 함경도 나남에 주둔하고 있는 일본군 제19사단과 시베리아에 참전했던 1개 사단을 동원, 대대적인 독립군 토벌에 나섰다. 일본군이 출병한다는 정보를 전해들은 김좌진의 북로군정서군은 9월 17일 근거지를 빠져나와 백두산 방면으로 이동했다. 삼도구 청산리에 도착했으나 이미 19사단이 두만강을 넘고 시베리아 사단이 남하하며 포위망을 좁혀오자 김좌진은 이동을 포기하고 백두산 동북쪽 60여㎞ 지점에 있는...
미국, 쿠바 해상봉쇄… ‘쿠바 미사일 위기’ 고조
1962년 10월 22일, 존 F. 케네디 미 대통령이 TV와 라디오를 통해 “소련이 쿠바에 중거리 미사일 기지를 건설 중”이라며 “미국과 서방세계의 안전을 위해 쿠바에 무기를 운반하는 선박에 대해 해상봉쇄를 단행한다”고 발표했다. 내연하던 ‘쿠바 미사일 위기’가 마침내 밖으로 드러난 것이다. 미국은 이미 14일에 U2 정찰기를 이용, 쿠바 서쪽 4곳에 소련의 미사일 기지가 건설 중이고 일류신28 폭격기도 조립 중에 있음을...
영국 함대,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프랑스·스페인 연합함대 격파
1805년 10월 21일 스페인 남서쪽 끝 트라팔가르 곶 앞바다. 27척의 영국 함대와 33척의 프랑스·스페인 연합함대가 서로 평행을 이루며 일직선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연합함대는 나폴레옹의 명을 받아 스페인의 카디스를 떠나 이탈리아 나폴리로 이동 중이었고 영국함대는 연합함대를 쫓는 중이었다. 연합함대와 영국함대는 각각 피에르 샤를 빌뇌브와 호레이쇼 넬슨이 지휘했다. 넬슨은 7년 전 나일강 해전에서도 빌뇌브와 격돌, 프랑스의 대형 함선 11척과 프리깃함 2척을 침몰시켜 지중해...
황태성(박정희 형의 친구), 북에서 남하해 박정희 만나려다 검거
황태성 황태성(1906~1963)은 박정희의 셋째형 박상희와 절친한 친구이자 공산운동을 같이한 동지였다. 박상희는 1946년 대구폭동 때 주도적인 역할을 하다가 1946년 10월 5일 진압 경찰관들이 쏜 총탄을 맞고 세상을 떠났다. 황태성은 남로당 경북도당의 조직부장으로 역시 대구폭동을 주도하다가 폭동 실패 후 월북, 고향에서 그의 종적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북에서 차관급인 무역부부상으로 지내던 황태성이 서부전선 비무장지대를 넘어 남한으로 잠입한 것은 1961년...
중국 공산당 대장정 끝나
장제스가 2년 간에 걸친 4차례의 포위섬멸작전으로 1931년 마오쩌둥이 장시성(江西省) 루이진(瑞金)에 세운 소비에트공화국 임시정부를 뿌리뽑으려 했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1933년 10월, 장제스는 70만 명의 대군을 동원해 철조망과 시멘트로 물샐틈없는 포위망을 펼치며 5번째 공격에 나섰다. 홍군은 전통적인 유격전을 버리고 정규전으로 승부했으나 수적으로 월등한 장제스군에 대패하고 거의 궤멸직전에 이르렀다. 포위망은 점점 좁혀오고 생필품과 의약품까지 동나자 공산당 지도부는...
중국 공산당, 김산 처형 결정
김산(본명 장지락)은 혁명가였고 시인이었으며 사상가였고 무정부주의자였다. 1905년 평양 근교 용천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더 많은 지식을 획득하기 위해 일본으로 갔으나 그들의 만행을 확인하고는 1921년 중국으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그는 상하이 임시정부 주변에서 활동하던 수많은 젊은 항일 급진주의자와 접촉하면서 지하 혁명운동에 가담했다. 특히 금강산 승려 출신 김충창의 지도로 무정부주의자에서 마르크스주의자가 된 그는 1925년 중국 혁명에 본격 뛰어들었다....
동아일보 기자들 언론탄압에 항거하는 ‘자유언론실천선언’ 발표
1974년 들어 언론통제는 극에 달했다. 기관원들은 편집국에 상주했고 기사에는 간섭이 가해졌으며 기자들은 걸핏하면 남산 중앙정보부로 끌려갔다. 언론인이라면 누구나 자괴감을 느끼던 그 시기, 동아일보 기자들이 언론자유 수호를 위한 저항의 첫 봉화를 지폈다. 1974년 10월 24일 오전9시15분. 동아일보 기자 180명이 상기된 표정으로 3층 편집국에 모여 있었다. 전날 송건호 편집국장을 비롯 간부사원 3명이 서울농대생들의 유신반대시위를 보도했다는 이유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헝가리에서 대규모 반소(反蘇) 봉기 점화
1953년 스탈린 사후, 독재체제로부터 집단지도체제로 이행한 소련이 일시적이나마 동구권에 대해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하면서 헝가리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그해 7월, 철권통치를 행사해온 라코시가 당 총서기로 물러나고 개혁주의자 너지 임레가 총리에 올랐다. 너지가 자유화정책을 펼치며 국민의 지지를 모으자 라코시는 2년도 안돼 너지를 우익편향이라는 이유로 해임하고 공산당으로부터도 추방해 시계추를 과거로 되돌렸다. 1956년 2월, 흐루쇼프의 스탈린 비판으로 동구권에 또 한 번...
한강 인도교의 첫 번째 도교식(개통식)
한강 인도교(한강대교)는 개통 후 지금까지 3번의 도교식(渡橋式), 즉 개통식을 가졌다. 첫 도교식은 다리가 처음 놓인 1917년 10월 7일에 있었다. 개통과 함께 장안의 명물로 자리잡았으나 투신자살하는 사람이 많아 골칫거리였다. 파출소를 설치하고 난간에 ‘잠깐만 참으세요’라는 뜻의 ‘일촌대기(一寸待機)’라는 팻말을 붙이면서까지 자살방지에 부심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그해 조선총독부 통계에 따르면 한강교를 이용하는 자동차는 하루 평균 2327대, 자전거 2935대, 우마차...
체스터 칼슨, 세계최초로 건식 복사기 발명
체스터 칼슨은 미국 벨연구소에서 근무하다 불황으로 해고된 후 뉴욕의 맬로리사(社) 특허부에서 근무하는데 특허 도안과 설명서의 사본(寫本)을 얻는데 늘 골머리를 앓았다. 그래서 시작한 게 복사기 개발이었다. 칼슨은 그 무렵 대부분의 사람들이 화학적인 방법으로 복사 방법을 시도하는 것과 달리 정전기를 이용한 복사 방법에 매달렸다. 그리고 4년 후인 1938년 10월 22일, 뉴욕 퀸스거리 아스토리아에서 마침내 세계최초의 건식 복사기 실험에 성공했다. 처음 복사된 내용은...
독립운동 사상 최대 승전으로 기록된 ‘청산리 대첩’ 시작
만주·간도 지방에서 독립군의 활동이 활발해지고 봉오동 전투에서까지 패하자 일제는 함경도 나남에 주둔하고 있는 일본군 제19사단과 시베리아에 참전했던 1개 사단을 동원, 대대적인 독립군 토벌에 나섰다. 일본군이 출병한다는 정보를 전해들은 김좌진의 북로군정서군은 9월 17일 근거지를 빠져나와 백두산 방면으로 이동했다. 삼도구 청산리에 도착했으나 이미 19사단이 두만강을 넘고 시베리아 사단이 남하하며 포위망을 좁혀오자 김좌진은 이동을 포기하고 백두산 동북쪽 60여㎞ 지점에 있는...
미국, 쿠바 해상봉쇄… ‘쿠바 미사일 위기’ 고조
1962년 10월 22일, 존 F. 케네디 미 대통령이 TV와 라디오를 통해 “소련이 쿠바에 중거리 미사일 기지를 건설 중”이라며 “미국과 서방세계의 안전을 위해 쿠바에 무기를 운반하는 선박에 대해 해상봉쇄를 단행한다”고 발표했다. 내연하던 ‘쿠바 미사일 위기’가 마침내 밖으로 드러난 것이다. 미국은 이미 14일에 U2 정찰기를 이용, 쿠바 서쪽 4곳에 소련의 미사일 기지가 건설 중이고 일류신28 폭격기도 조립 중에 있음을...
영국 함대,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프랑스·스페인 연합함대 격파
1805년 10월 21일 스페인 남서쪽 끝 트라팔가르 곶 앞바다. 27척의 영국 함대와 33척의 프랑스·스페인 연합함대가 서로 평행을 이루며 일직선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연합함대는 나폴레옹의 명을 받아 스페인의 카디스를 떠나 이탈리아 나폴리로 이동 중이었고 영국함대는 연합함대를 쫓는 중이었다. 연합함대와 영국함대는 각각 피에르 샤를 빌뇌브와 호레이쇼 넬슨이 지휘했다. 넬슨은 7년 전 나일강 해전에서도 빌뇌브와 격돌, 프랑스의 대형 함선 11척과 프리깃함 2척을 침몰시켜 지중해...
황태성(박정희 형의 친구), 북에서 남하해 박정희 만나려다 검거
황태성 황태성(1906~1963)은 박정희의 셋째형 박상희와 절친한 친구이자 공산운동을 같이한 동지였다. 박상희는 1946년 대구폭동 때 주도적인 역할을 하다가 1946년 10월 5일 진압 경찰관들이 쏜 총탄을 맞고 세상을 떠났다. 황태성은 남로당 경북도당의 조직부장으로 역시 대구폭동을 주도하다가 폭동 실패 후 월북, 고향에서 그의 종적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북에서 차관급인 무역부부상으로 지내던 황태성이 서부전선 비무장지대를 넘어 남한으로 잠입한 것은 1961년...
중국 공산당 대장정 끝나
장제스가 2년 간에 걸친 4차례의 포위섬멸작전으로 1931년 마오쩌둥이 장시성(江西省) 루이진(瑞金)에 세운 소비에트공화국 임시정부를 뿌리뽑으려 했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1933년 10월, 장제스는 70만 명의 대군을 동원해 철조망과 시멘트로 물샐틈없는 포위망을 펼치며 5번째 공격에 나섰다. 홍군은 전통적인 유격전을 버리고 정규전으로 승부했으나 수적으로 월등한 장제스군에 대패하고 거의 궤멸직전에 이르렀다. 포위망은 점점 좁혀오고 생필품과 의약품까지 동나자 공산당 지도부는...
중국 공산당, 김산 처형 결정
김산(본명 장지락)은 혁명가였고 시인이었으며 사상가였고 무정부주의자였다. 1905년 평양 근교 용천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더 많은 지식을 획득하기 위해 일본으로 갔으나 그들의 만행을 확인하고는 1921년 중국으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그는 상하이 임시정부 주변에서 활동하던 수많은 젊은 항일 급진주의자와 접촉하면서 지하 혁명운동에 가담했다. 특히 금강산 승려 출신 김충창의 지도로 무정부주의자에서 마르크스주의자가 된 그는 1925년 중국 혁명에 본격 뛰어들었다....
동아일보 기자들 언론탄압에 항거하는 ‘자유언론실천선언’ 발표
1974년 들어 언론통제는 극에 달했다. 기관원들은 편집국에 상주했고 기사에는 간섭이 가해졌으며 기자들은 걸핏하면 남산 중앙정보부로 끌려갔다. 언론인이라면 누구나 자괴감을 느끼던 그 시기, 동아일보 기자들이 언론자유 수호를 위한 저항의 첫 봉화를 지폈다. 1974년 10월 24일 오전9시15분. 동아일보 기자 180명이 상기된 표정으로 3층 편집국에 모여 있었다. 전날 송건호 편집국장을 비롯 간부사원 3명이 서울농대생들의 유신반대시위를 보도했다는 이유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헝가리에서 대규모 반소(反蘇) 봉기 점화
1953년 스탈린 사후, 독재체제로부터 집단지도체제로 이행한 소련이 일시적이나마 동구권에 대해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하면서 헝가리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그해 7월, 철권통치를 행사해온 라코시가 당 총서기로 물러나고 개혁주의자 너지 임레가 총리에 올랐다. 너지가 자유화정책을 펼치며 국민의 지지를 모으자 라코시는 2년도 안돼 너지를 우익편향이라는 이유로 해임하고 공산당으로부터도 추방해 시계추를 과거로 되돌렸다. 1956년 2월, 흐루쇼프의 스탈린 비판으로 동구권에 또 한 번...
한강 인도교의 첫 번째 도교식(개통식)
한강 인도교(한강대교)는 개통 후 지금까지 3번의 도교식(渡橋式), 즉 개통식을 가졌다. 첫 도교식은 다리가 처음 놓인 1917년 10월 7일에 있었다. 개통과 함께 장안의 명물로 자리잡았으나 투신자살하는 사람이 많아 골칫거리였다. 파출소를 설치하고 난간에 ‘잠깐만 참으세요’라는 뜻의 ‘일촌대기(一寸待機)’라는 팻말을 붙이면서까지 자살방지에 부심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그해 조선총독부 통계에 따르면 한강교를 이용하는 자동차는 하루 평균 2327대, 자전거 2935대, 우마차...
체스터 칼슨, 세계최초로 건식 복사기 발명
체스터 칼슨은 미국 벨연구소에서 근무하다 불황으로 해고된 후 뉴욕의 맬로리사(社) 특허부에서 근무하는데 특허 도안과 설명서의 사본(寫本)을 얻는데 늘 골머리를 앓았다. 그래서 시작한 게 복사기 개발이었다. 칼슨은 그 무렵 대부분의 사람들이 화학적인 방법으로 복사 방법을 시도하는 것과 달리 정전기를 이용한 복사 방법에 매달렸다. 그리고 4년 후인 1938년 10월 22일, 뉴욕 퀸스거리 아스토리아에서 마침내 세계최초의 건식 복사기 실험에 성공했다. 처음 복사된 내용은...
독립운동 사상 최대 승전으로 기록된 ‘청산리 대첩’ 시작
만주·간도 지방에서 독립군의 활동이 활발해지고 봉오동 전투에서까지 패하자 일제는 함경도 나남에 주둔하고 있는 일본군 제19사단과 시베리아에 참전했던 1개 사단을 동원, 대대적인 독립군 토벌에 나섰다. 일본군이 출병한다는 정보를 전해들은 김좌진의 북로군정서군은 9월 17일 근거지를 빠져나와 백두산 방면으로 이동했다. 삼도구 청산리에 도착했으나 이미 19사단이 두만강을 넘고 시베리아 사단이 남하하며 포위망을 좁혀오자 김좌진은 이동을 포기하고 백두산 동북쪽 60여㎞ 지점에 있는...
미국, 쿠바 해상봉쇄… ‘쿠바 미사일 위기’ 고조
1962년 10월 22일, 존 F. 케네디 미 대통령이 TV와 라디오를 통해 “소련이 쿠바에 중거리 미사일 기지를 건설 중”이라며 “미국과 서방세계의 안전을 위해 쿠바에 무기를 운반하는 선박에 대해 해상봉쇄를 단행한다”고 발표했다. 내연하던 ‘쿠바 미사일 위기’가 마침내 밖으로 드러난 것이다. 미국은 이미 14일에 U2 정찰기를 이용, 쿠바 서쪽 4곳에 소련의 미사일 기지가 건설 중이고 일류신28 폭격기도 조립 중에 있음을...
영국 함대,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프랑스·스페인 연합함대 격파
1805년 10월 21일 스페인 남서쪽 끝 트라팔가르 곶 앞바다. 27척의 영국 함대와 33척의 프랑스·스페인 연합함대가 서로 평행을 이루며 일직선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연합함대는 나폴레옹의 명을 받아 스페인의 카디스를 떠나 이탈리아 나폴리로 이동 중이었고 영국함대는 연합함대를 쫓는 중이었다. 연합함대와 영국함대는 각각 피에르 샤를 빌뇌브와 호레이쇼 넬슨이 지휘했다. 넬슨은 7년 전 나일강 해전에서도 빌뇌브와 격돌, 프랑스의 대형 함선 11척과 프리깃함 2척을 침몰시켜 지중해...
황태성(박정희 형의 친구), 북에서 남하해 박정희 만나려다 검거
황태성 황태성(1906~1963)은 박정희의 셋째형 박상희와 절친한 친구이자 공산운동을 같이한 동지였다. 박상희는 1946년 대구폭동 때 주도적인 역할을 하다가 1946년 10월 5일 진압 경찰관들이 쏜 총탄을 맞고 세상을 떠났다. 황태성은 남로당 경북도당의 조직부장으로 역시 대구폭동을 주도하다가 폭동 실패 후 월북, 고향에서 그의 종적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북에서 차관급인 무역부부상으로 지내던 황태성이 서부전선 비무장지대를 넘어 남한으로 잠입한 것은 1961년...
중국 공산당 대장정 끝나
장제스가 2년 간에 걸친 4차례의 포위섬멸작전으로 1931년 마오쩌둥이 장시성(江西省) 루이진(瑞金)에 세운 소비에트공화국 임시정부를 뿌리뽑으려 했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1933년 10월, 장제스는 70만 명의 대군을 동원해 철조망과 시멘트로 물샐틈없는 포위망을 펼치며 5번째 공격에 나섰다. 홍군은 전통적인 유격전을 버리고 정규전으로 승부했으나 수적으로 월등한 장제스군에 대패하고 거의 궤멸직전에 이르렀다. 포위망은 점점 좁혀오고 생필품과 의약품까지 동나자 공산당 지도부는...
중국 공산당, 김산 처형 결정
김산(본명 장지락)은 혁명가였고 시인이었으며 사상가였고 무정부주의자였다. 1905년 평양 근교 용천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더 많은 지식을 획득하기 위해 일본으로 갔으나 그들의 만행을 확인하고는 1921년 중국으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그는 상하이 임시정부 주변에서 활동하던 수많은 젊은 항일 급진주의자와 접촉하면서 지하 혁명운동에 가담했다. 특히 금강산 승려 출신 김충창의 지도로 무정부주의자에서 마르크스주의자가 된 그는 1925년 중국 혁명에 본격 뛰어들었다....
동아일보 기자들 언론탄압에 항거하는 ‘자유언론실천선언’ 발표
1974년 들어 언론통제는 극에 달했다. 기관원들은 편집국에 상주했고 기사에는 간섭이 가해졌으며 기자들은 걸핏하면 남산 중앙정보부로 끌려갔다. 언론인이라면 누구나 자괴감을 느끼던 그 시기, 동아일보 기자들이 언론자유 수호를 위한 저항의 첫 봉화를 지폈다. 1974년 10월 24일 오전9시15분. 동아일보 기자 180명이 상기된 표정으로 3층 편집국에 모여 있었다. 전날 송건호 편집국장을 비롯 간부사원 3명이 서울농대생들의 유신반대시위를 보도했다는 이유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헝가리에서 대규모 반소(反蘇) 봉기 점화
1953년 스탈린 사후, 독재체제로부터 집단지도체제로 이행한 소련이 일시적이나마 동구권에 대해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하면서 헝가리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그해 7월, 철권통치를 행사해온 라코시가 당 총서기로 물러나고 개혁주의자 너지 임레가 총리에 올랐다. 너지가 자유화정책을 펼치며 국민의 지지를 모으자 라코시는 2년도 안돼 너지를 우익편향이라는 이유로 해임하고 공산당으로부터도 추방해 시계추를 과거로 되돌렸다. 1956년 2월, 흐루쇼프의 스탈린 비판으로 동구권에 또 한 번...
한강 인도교의 첫 번째 도교식(개통식)
한강 인도교(한강대교)는 개통 후 지금까지 3번의 도교식(渡橋式), 즉 개통식을 가졌다. 첫 도교식은 다리가 처음 놓인 1917년 10월 7일에 있었다. 개통과 함께 장안의 명물로 자리잡았으나 투신자살하는 사람이 많아 골칫거리였다. 파출소를 설치하고 난간에 ‘잠깐만 참으세요’라는 뜻의 ‘일촌대기(一寸待機)’라는 팻말을 붙이면서까지 자살방지에 부심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그해 조선총독부 통계에 따르면 한강교를 이용하는 자동차는 하루 평균 2327대, 자전거 2935대, 우마차...
체스터 칼슨, 세계최초로 건식 복사기 발명
체스터 칼슨은 미국 벨연구소에서 근무하다 불황으로 해고된 후 뉴욕의 맬로리사(社) 특허부에서 근무하는데 특허 도안과 설명서의 사본(寫本)을 얻는데 늘 골머리를 앓았다. 그래서 시작한 게 복사기 개발이었다. 칼슨은 그 무렵 대부분의 사람들이 화학적인 방법으로 복사 방법을 시도하는 것과 달리 정전기를 이용한 복사 방법에 매달렸다. 그리고 4년 후인 1938년 10월 22일, 뉴욕 퀸스거리 아스토리아에서 마침내 세계최초의 건식 복사기 실험에 성공했다. 처음 복사된 내용은...
독립운동 사상 최대 승전으로 기록된 ‘청산리 대첩’ 시작
만주·간도 지방에서 독립군의 활동이 활발해지고 봉오동 전투에서까지 패하자 일제는 함경도 나남에 주둔하고 있는 일본군 제19사단과 시베리아에 참전했던 1개 사단을 동원, 대대적인 독립군 토벌에 나섰다. 일본군이 출병한다는 정보를 전해들은 김좌진의 북로군정서군은 9월 17일 근거지를 빠져나와 백두산 방면으로 이동했다. 삼도구 청산리에 도착했으나 이미 19사단이 두만강을 넘고 시베리아 사단이 남하하며 포위망을 좁혀오자 김좌진은 이동을 포기하고 백두산 동북쪽 60여㎞ 지점에 있는...
미국, 쿠바 해상봉쇄… ‘쿠바 미사일 위기’ 고조
1962년 10월 22일, 존 F. 케네디 미 대통령이 TV와 라디오를 통해 “소련이 쿠바에 중거리 미사일 기지를 건설 중”이라며 “미국과 서방세계의 안전을 위해 쿠바에 무기를 운반하는 선박에 대해 해상봉쇄를 단행한다”고 발표했다. 내연하던 ‘쿠바 미사일 위기’가 마침내 밖으로 드러난 것이다. 미국은 이미 14일에 U2 정찰기를 이용, 쿠바 서쪽 4곳에 소련의 미사일 기지가 건설 중이고 일류신28 폭격기도 조립 중에 있음을...
영국 함대,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프랑스·스페인 연합함대 격파
1805년 10월 21일 스페인 남서쪽 끝 트라팔가르 곶 앞바다. 27척의 영국 함대와 33척의 프랑스·스페인 연합함대가 서로 평행을 이루며 일직선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연합함대는 나폴레옹의 명을 받아 스페인의 카디스를 떠나 이탈리아 나폴리로 이동 중이었고 영국함대는 연합함대를 쫓는 중이었다. 연합함대와 영국함대는 각각 피에르 샤를 빌뇌브와 호레이쇼 넬슨이 지휘했다. 넬슨은 7년 전 나일강 해전에서도 빌뇌브와 격돌, 프랑스의 대형 함선 11척과 프리깃함 2척을 침몰시켜 지중해...
황태성(박정희 형의 친구), 북에서 남하해 박정희 만나려다 검거
황태성 황태성(1906~1963)은 박정희의 셋째형 박상희와 절친한 친구이자 공산운동을 같이한 동지였다. 박상희는 1946년 대구폭동 때 주도적인 역할을 하다가 1946년 10월 5일 진압 경찰관들이 쏜 총탄을 맞고 세상을 떠났다. 황태성은 남로당 경북도당의 조직부장으로 역시 대구폭동을 주도하다가 폭동 실패 후 월북, 고향에서 그의 종적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북에서 차관급인 무역부부상으로 지내던 황태성이 서부전선 비무장지대를 넘어 남한으로 잠입한 것은 1961년...
중국 공산당 대장정 끝나
장제스가 2년 간에 걸친 4차례의 포위섬멸작전으로 1931년 마오쩌둥이 장시성(江西省) 루이진(瑞金)에 세운 소비에트공화국 임시정부를 뿌리뽑으려 했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1933년 10월, 장제스는 70만 명의 대군을 동원해 철조망과 시멘트로 물샐틈없는 포위망을 펼치며 5번째 공격에 나섰다. 홍군은 전통적인 유격전을 버리고 정규전으로 승부했으나 수적으로 월등한 장제스군에 대패하고 거의 궤멸직전에 이르렀다. 포위망은 점점 좁혀오고 생필품과 의약품까지 동나자 공산당 지도부는...
중국 공산당, 김산 처형 결정
김산(본명 장지락)은 혁명가였고 시인이었으며 사상가였고 무정부주의자였다. 1905년 평양 근교 용천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더 많은 지식을 획득하기 위해 일본으로 갔으나 그들의 만행을 확인하고는 1921년 중국으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그는 상하이 임시정부 주변에서 활동하던 수많은 젊은 항일 급진주의자와 접촉하면서 지하 혁명운동에 가담했다. 특히 금강산 승려 출신 김충창의 지도로 무정부주의자에서 마르크스주의자가 된 그는 1925년 중국 혁명에 본격 뛰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