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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끝난지 65년 지났는데도 국군포로들이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이유
↑ 유엔군 포로들이 남측지역으로 송환되는 모습 by 김지지 6·25 정전 협정 직후인 1953년 8월 유엔군사령부는 북한군·중국군에 포로가 되거나 전투 도중 실종된 국군이 8만2318명이라고 발표했다. 1954년까지 진행된 포로 교환에서 한국에 돌아온 국군 포로는 8343명이었다. 북한은 “나머지는 모두 북에 전향했고, 따라서 국군 포로는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994년 조창호 소위가 탈북한 이후 총 80명의 국군 포로가 한국으로 탈출했다....
6·25전쟁 휴전협정 조인
휴전협정은 765차례의 산고 끝에 이뤄진 결실 6·25전쟁 휴전 논의는 중공군이 서울을 점령하고 한강을 건너 파죽지세로 수원까지 장악한 1951년 1월 영국, 캐나다, 인도 등이 ‘현위치 휴전안’을 유엔에 제출하면서 시작되었다. ‘현위치 휴전’이란 수원 이남까지 중공군과 북한군이 진출한 상태의 휴전이므로 이대로 휴전이 성사되면 서울이 공산군 수중에 넘어간다는 것을 의미했다. 미국은 ‘현위치 휴전안’을 못마땅하게 여겼으나 우방국인 영국이 휴전을 주도해 공개적으로는 반대하지...
공창(公娼) 폐지법 발효
1948년 2월 14일, 미군정 하에서 ‘공창(公娼) 폐지법’이 발효됨으로써 공식적으로는 합법적인 매매춘이 이 땅에서 사라졌다. 언론은 ‘여권(女權)수호의 서곡’ ‘추한 왜정 잔재 해소’라며 반겼지만 한편에서는 사창(私娼) 밀매음 성행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더구나 서울시에 공창으로 등록됐던 670여명의 창녀 가운데 60%가 보균자였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방역처리도 사회적 관심사였다. 우리나라에서 공창제가...
탐험가 제임스 쿡, 하와이에서 피살
1779년 2월 14일, ‘캡틴 쿡’으로 더 잘 알려진 영국의 위대한 탐험가 제임스 쿡이 그가 발견한 하와이에서 원주민과의 불화로 피살됐다. 이로써 8년 반에 걸친 대탐험도 먼 이국 땅에서 막을 내렸다. 3차에 걸친 대탐험 여정은 1768년 8월 26일, 그가 엔데버호를 이끌고 영국 폴리머스항을 출항하면서 시작됐다. 항해거리만 32만km. 달까지 갈수있는 먼 거리였다. 횡으로는 대서양 태평양 인도양을 넘나들었으며, 종으로는 남위 71도 10분부터 북위 80도 41분까지 그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추방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처녀작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가 문예지 ‘노비 미르’지 1962년 11월호에 실렸을 때 소련 사회는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큰 충격에 빠졌다. 스탈린 시대 강제수용소의 실태를 처음 소개한 작품 덕에 9만6000부가 발매된 ‘노비 미르’는 곧 매진되었고, 그후 두 차례에 걸쳐 인쇄된 85만부도 순식간에 동이 났다. 솔제니친의 한 친구는 “이 세계에는 3개의 핵폭탄이 있네. 하나는 케네디가, 하나는 흐루시초프가 갖고 있고 다른 하나는 자네가...
2차대전 연합군, 독일 드레스덴 융단폭격
2차대전이 막바지에 다다랐을 즈음, 독일군이 동부전선에서 소련군에 밀리며 패색이 짙어지자 독일인들이 고도(古都) 드레스덴으로 몰려들었다. 드레스덴처럼 유서깊은 도시는 연합군이 폭격을 안할지도 모른다는 한가닥 기대 때문이었다. 전쟁 전에 63만이었던 인구가 어느새 두 배로 늘어났다. 베를린 남쪽 엘베강가에 있는 드레스덴은 바로크 양식을 대표하는 츠빙거 궁전과 프라우엔 교회를 비롯, 역사가 오래되고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즐비해 ‘엘베강가의 피렌체’...
금성사 국내 첫 라디오 생산
“가전은 금성” 이미지 확실히 심어 LG전자의 전신 금성사의 초창기 발자취는 그대로 한국 가전산업의 역사다. 1959년의 라디오를 비롯해 1960년대에 제조된 금성사의 가전제품 대부분이 ‘국내 최초’였기 때문이다. 1958년 10월 1일의 금성사 창립은 이 모든 것의 출발점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구인회 LG그룹 창업자가 그전부터 설립․운영해온 ‘금성합성수지공업사’가 출발점이지만 LG전자는 회사명을 금성사로 개칭한...
‘조선말 큰사전’ 전 6권 완간
서울역 창고에서 ‘사전 원고’ 발견되어 사전 편찬 시동 걸어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1942년 10월부터 수감 중이던 이극로, 최현배, 이희승, 정인승이 해방과 함께 풀려나 조선어학회의 재건 문제를 논의했다. 무엇보다 당장 급한 일은 감옥에 있을 때 사라진 ‘사전 원고’의 행방을 찾는 일이었다. 사전 원고란 조선어연구회와 조선어사전편찬회가 우리말 사전을 펴내기 위해 1929년부터 작업해온 2만 6,500여 장 분량의 원고로, 사전 발간을 앞두고 터진 1942년 10월의 조선어학회...
샤를 드골과 프랑스 5공화국 출범
드골의 등장은 분열된 나라를 하나로 만들어 달라는 국민적 요구에서 시작 샤를 드골(1890~1970)에게 1940년은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그해를 기점으로 평범한 군 장교의 삶이 프랑스 현대사에 굵고 선명한 족적을 남긴 국가 지도자의 삶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드골은 프랑스 북부 릴의 외가에서 태어나 가톨릭의 완고한 왕권주의적 분위기에서 성장했다. 1912년 생시르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보병 부대에 배치되었을 때 그곳에는 필리프 페탱(1856~1951) 대령이 있었다....
[나는 백패커] 김포 승마산에서 하룻밤… ‘5분이면 정상’ 철석같이 믿고 올라갔다가 끝내 헉헉댄 산행
↑ 김포 승마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일출 by 돌고래 겨울은 백팩커의 계절이다. 추운데 무~슨! 아니다. 정답이다. 전국의 산과 바다에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봄, 여름, 가을 3계절에 비하면 겨울은 온전히 자연을 즐기려는 백패커의 계절이 맞다. 비록 추위에 손가락이 곱아서 감각이 없어지더라도, 차디찬 바람에 코끝이 얼얼해지더라도 침낭과 텐트에 의지해 하룻밤을 보내는 바로 이 맛에 백패커는 겨울을 최고로 친다. 며칠 전 지인들과 가까운 곳으로 퇴근박을...
전쟁 끝난지 65년 지났는데도 국군포로들이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이유
↑ 유엔군 포로들이 남측지역으로 송환되는 모습 by 김지지 6·25 정전 협정 직후인 1953년 8월 유엔군사령부는 북한군·중국군에 포로가 되거나 전투 도중 실종된 국군이 8만2318명이라고 발표했다. 1954년까지 진행된 포로 교환에서 한국에 돌아온 국군 포로는 8343명이었다. 북한은 “나머지는 모두 북에 전향했고, 따라서 국군 포로는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994년 조창호 소위가 탈북한 이후 총 80명의 국군 포로가 한국으로 탈출했다....
6·25전쟁 휴전협정 조인
휴전협정은 765차례의 산고 끝에 이뤄진 결실 6·25전쟁 휴전 논의는 중공군이 서울을 점령하고 한강을 건너 파죽지세로 수원까지 장악한 1951년 1월 영국, 캐나다, 인도 등이 ‘현위치 휴전안’을 유엔에 제출하면서 시작되었다. ‘현위치 휴전’이란 수원 이남까지 중공군과 북한군이 진출한 상태의 휴전이므로 이대로 휴전이 성사되면 서울이 공산군 수중에 넘어간다는 것을 의미했다. 미국은 ‘현위치 휴전안’을 못마땅하게 여겼으나 우방국인 영국이 휴전을 주도해 공개적으로는 반대하지...
공창(公娼) 폐지법 발효
1948년 2월 14일, 미군정 하에서 ‘공창(公娼) 폐지법’이 발효됨으로써 공식적으로는 합법적인 매매춘이 이 땅에서 사라졌다. 언론은 ‘여권(女權)수호의 서곡’ ‘추한 왜정 잔재 해소’라며 반겼지만 한편에서는 사창(私娼) 밀매음 성행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더구나 서울시에 공창으로 등록됐던 670여명의 창녀 가운데 60%가 보균자였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방역처리도 사회적 관심사였다. 우리나라에서 공창제가...
탐험가 제임스 쿡, 하와이에서 피살
1779년 2월 14일, ‘캡틴 쿡’으로 더 잘 알려진 영국의 위대한 탐험가 제임스 쿡이 그가 발견한 하와이에서 원주민과의 불화로 피살됐다. 이로써 8년 반에 걸친 대탐험도 먼 이국 땅에서 막을 내렸다. 3차에 걸친 대탐험 여정은 1768년 8월 26일, 그가 엔데버호를 이끌고 영국 폴리머스항을 출항하면서 시작됐다. 항해거리만 32만km. 달까지 갈수있는 먼 거리였다. 횡으로는 대서양 태평양 인도양을 넘나들었으며, 종으로는 남위 71도 10분부터 북위 80도 41분까지 그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추방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처녀작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가 문예지 ‘노비 미르’지 1962년 11월호에 실렸을 때 소련 사회는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큰 충격에 빠졌다. 스탈린 시대 강제수용소의 실태를 처음 소개한 작품 덕에 9만6000부가 발매된 ‘노비 미르’는 곧 매진되었고, 그후 두 차례에 걸쳐 인쇄된 85만부도 순식간에 동이 났다. 솔제니친의 한 친구는 “이 세계에는 3개의 핵폭탄이 있네. 하나는 케네디가, 하나는 흐루시초프가 갖고 있고 다른 하나는 자네가...
2차대전 연합군, 독일 드레스덴 융단폭격
2차대전이 막바지에 다다랐을 즈음, 독일군이 동부전선에서 소련군에 밀리며 패색이 짙어지자 독일인들이 고도(古都) 드레스덴으로 몰려들었다. 드레스덴처럼 유서깊은 도시는 연합군이 폭격을 안할지도 모른다는 한가닥 기대 때문이었다. 전쟁 전에 63만이었던 인구가 어느새 두 배로 늘어났다. 베를린 남쪽 엘베강가에 있는 드레스덴은 바로크 양식을 대표하는 츠빙거 궁전과 프라우엔 교회를 비롯, 역사가 오래되고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즐비해 ‘엘베강가의 피렌체’...
금성사 국내 첫 라디오 생산
“가전은 금성” 이미지 확실히 심어 LG전자의 전신 금성사의 초창기 발자취는 그대로 한국 가전산업의 역사다. 1959년의 라디오를 비롯해 1960년대에 제조된 금성사의 가전제품 대부분이 ‘국내 최초’였기 때문이다. 1958년 10월 1일의 금성사 창립은 이 모든 것의 출발점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구인회 LG그룹 창업자가 그전부터 설립․운영해온 ‘금성합성수지공업사’가 출발점이지만 LG전자는 회사명을 금성사로 개칭한...
‘조선말 큰사전’ 전 6권 완간
서울역 창고에서 ‘사전 원고’ 발견되어 사전 편찬 시동 걸어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1942년 10월부터 수감 중이던 이극로, 최현배, 이희승, 정인승이 해방과 함께 풀려나 조선어학회의 재건 문제를 논의했다. 무엇보다 당장 급한 일은 감옥에 있을 때 사라진 ‘사전 원고’의 행방을 찾는 일이었다. 사전 원고란 조선어연구회와 조선어사전편찬회가 우리말 사전을 펴내기 위해 1929년부터 작업해온 2만 6,500여 장 분량의 원고로, 사전 발간을 앞두고 터진 1942년 10월의 조선어학회...
샤를 드골과 프랑스 5공화국 출범
드골의 등장은 분열된 나라를 하나로 만들어 달라는 국민적 요구에서 시작 샤를 드골(1890~1970)에게 1940년은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그해를 기점으로 평범한 군 장교의 삶이 프랑스 현대사에 굵고 선명한 족적을 남긴 국가 지도자의 삶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드골은 프랑스 북부 릴의 외가에서 태어나 가톨릭의 완고한 왕권주의적 분위기에서 성장했다. 1912년 생시르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보병 부대에 배치되었을 때 그곳에는 필리프 페탱(1856~1951) 대령이 있었다....
[나는 백패커] 김포 승마산에서 하룻밤… ‘5분이면 정상’ 철석같이 믿고 올라갔다가 끝내 헉헉댄 산행
↑ 김포 승마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일출 by 돌고래 겨울은 백팩커의 계절이다. 추운데 무~슨! 아니다. 정답이다. 전국의 산과 바다에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봄, 여름, 가을 3계절에 비하면 겨울은 온전히 자연을 즐기려는 백패커의 계절이 맞다. 비록 추위에 손가락이 곱아서 감각이 없어지더라도, 차디찬 바람에 코끝이 얼얼해지더라도 침낭과 텐트에 의지해 하룻밤을 보내는 바로 이 맛에 백패커는 겨울을 최고로 친다. 며칠 전 지인들과 가까운 곳으로 퇴근박을...
전쟁 끝난지 65년 지났는데도 국군포로들이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이유
↑ 유엔군 포로들이 남측지역으로 송환되는 모습 by 김지지 6·25 정전 협정 직후인 1953년 8월 유엔군사령부는 북한군·중국군에 포로가 되거나 전투 도중 실종된 국군이 8만2318명이라고 발표했다. 1954년까지 진행된 포로 교환에서 한국에 돌아온 국군 포로는 8343명이었다. 북한은 “나머지는 모두 북에 전향했고, 따라서 국군 포로는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994년 조창호 소위가 탈북한 이후 총 80명의 국군 포로가 한국으로 탈출했다....
6·25전쟁 휴전협정 조인
휴전협정은 765차례의 산고 끝에 이뤄진 결실 6·25전쟁 휴전 논의는 중공군이 서울을 점령하고 한강을 건너 파죽지세로 수원까지 장악한 1951년 1월 영국, 캐나다, 인도 등이 ‘현위치 휴전안’을 유엔에 제출하면서 시작되었다. ‘현위치 휴전’이란 수원 이남까지 중공군과 북한군이 진출한 상태의 휴전이므로 이대로 휴전이 성사되면 서울이 공산군 수중에 넘어간다는 것을 의미했다. 미국은 ‘현위치 휴전안’을 못마땅하게 여겼으나 우방국인 영국이 휴전을 주도해 공개적으로는 반대하지...
공창(公娼) 폐지법 발효
1948년 2월 14일, 미군정 하에서 ‘공창(公娼) 폐지법’이 발효됨으로써 공식적으로는 합법적인 매매춘이 이 땅에서 사라졌다. 언론은 ‘여권(女權)수호의 서곡’ ‘추한 왜정 잔재 해소’라며 반겼지만 한편에서는 사창(私娼) 밀매음 성행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더구나 서울시에 공창으로 등록됐던 670여명의 창녀 가운데 60%가 보균자였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방역처리도 사회적 관심사였다. 우리나라에서 공창제가...
탐험가 제임스 쿡, 하와이에서 피살
1779년 2월 14일, ‘캡틴 쿡’으로 더 잘 알려진 영국의 위대한 탐험가 제임스 쿡이 그가 발견한 하와이에서 원주민과의 불화로 피살됐다. 이로써 8년 반에 걸친 대탐험도 먼 이국 땅에서 막을 내렸다. 3차에 걸친 대탐험 여정은 1768년 8월 26일, 그가 엔데버호를 이끌고 영국 폴리머스항을 출항하면서 시작됐다. 항해거리만 32만km. 달까지 갈수있는 먼 거리였다. 횡으로는 대서양 태평양 인도양을 넘나들었으며, 종으로는 남위 71도 10분부터 북위 80도 41분까지 그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추방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처녀작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가 문예지 ‘노비 미르’지 1962년 11월호에 실렸을 때 소련 사회는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큰 충격에 빠졌다. 스탈린 시대 강제수용소의 실태를 처음 소개한 작품 덕에 9만6000부가 발매된 ‘노비 미르’는 곧 매진되었고, 그후 두 차례에 걸쳐 인쇄된 85만부도 순식간에 동이 났다. 솔제니친의 한 친구는 “이 세계에는 3개의 핵폭탄이 있네. 하나는 케네디가, 하나는 흐루시초프가 갖고 있고 다른 하나는 자네가...
2차대전 연합군, 독일 드레스덴 융단폭격
2차대전이 막바지에 다다랐을 즈음, 독일군이 동부전선에서 소련군에 밀리며 패색이 짙어지자 독일인들이 고도(古都) 드레스덴으로 몰려들었다. 드레스덴처럼 유서깊은 도시는 연합군이 폭격을 안할지도 모른다는 한가닥 기대 때문이었다. 전쟁 전에 63만이었던 인구가 어느새 두 배로 늘어났다. 베를린 남쪽 엘베강가에 있는 드레스덴은 바로크 양식을 대표하는 츠빙거 궁전과 프라우엔 교회를 비롯, 역사가 오래되고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즐비해 ‘엘베강가의 피렌체’...
금성사 국내 첫 라디오 생산
“가전은 금성” 이미지 확실히 심어 LG전자의 전신 금성사의 초창기 발자취는 그대로 한국 가전산업의 역사다. 1959년의 라디오를 비롯해 1960년대에 제조된 금성사의 가전제품 대부분이 ‘국내 최초’였기 때문이다. 1958년 10월 1일의 금성사 창립은 이 모든 것의 출발점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구인회 LG그룹 창업자가 그전부터 설립․운영해온 ‘금성합성수지공업사’가 출발점이지만 LG전자는 회사명을 금성사로 개칭한...
‘조선말 큰사전’ 전 6권 완간
서울역 창고에서 ‘사전 원고’ 발견되어 사전 편찬 시동 걸어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1942년 10월부터 수감 중이던 이극로, 최현배, 이희승, 정인승이 해방과 함께 풀려나 조선어학회의 재건 문제를 논의했다. 무엇보다 당장 급한 일은 감옥에 있을 때 사라진 ‘사전 원고’의 행방을 찾는 일이었다. 사전 원고란 조선어연구회와 조선어사전편찬회가 우리말 사전을 펴내기 위해 1929년부터 작업해온 2만 6,500여 장 분량의 원고로, 사전 발간을 앞두고 터진 1942년 10월의 조선어학회...
샤를 드골과 프랑스 5공화국 출범
드골의 등장은 분열된 나라를 하나로 만들어 달라는 국민적 요구에서 시작 샤를 드골(1890~1970)에게 1940년은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그해를 기점으로 평범한 군 장교의 삶이 프랑스 현대사에 굵고 선명한 족적을 남긴 국가 지도자의 삶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드골은 프랑스 북부 릴의 외가에서 태어나 가톨릭의 완고한 왕권주의적 분위기에서 성장했다. 1912년 생시르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보병 부대에 배치되었을 때 그곳에는 필리프 페탱(1856~1951) 대령이 있었다....
[나는 백패커] 김포 승마산에서 하룻밤… ‘5분이면 정상’ 철석같이 믿고 올라갔다가 끝내 헉헉댄 산행
↑ 김포 승마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일출 by 돌고래 겨울은 백팩커의 계절이다. 추운데 무~슨! 아니다. 정답이다. 전국의 산과 바다에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봄, 여름, 가을 3계절에 비하면 겨울은 온전히 자연을 즐기려는 백패커의 계절이 맞다. 비록 추위에 손가락이 곱아서 감각이 없어지더라도, 차디찬 바람에 코끝이 얼얼해지더라도 침낭과 텐트에 의지해 하룻밤을 보내는 바로 이 맛에 백패커는 겨울을 최고로 친다. 며칠 전 지인들과 가까운 곳으로 퇴근박을...
전쟁 끝난지 65년 지났는데도 국군포로들이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이유
↑ 유엔군 포로들이 남측지역으로 송환되는 모습 by 김지지 6·25 정전 협정 직후인 1953년 8월 유엔군사령부는 북한군·중국군에 포로가 되거나 전투 도중 실종된 국군이 8만2318명이라고 발표했다. 1954년까지 진행된 포로 교환에서 한국에 돌아온 국군 포로는 8343명이었다. 북한은 “나머지는 모두 북에 전향했고, 따라서 국군 포로는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994년 조창호 소위가 탈북한 이후 총 80명의 국군 포로가 한국으로 탈출했다....
6·25전쟁 휴전협정 조인
휴전협정은 765차례의 산고 끝에 이뤄진 결실 6·25전쟁 휴전 논의는 중공군이 서울을 점령하고 한강을 건너 파죽지세로 수원까지 장악한 1951년 1월 영국, 캐나다, 인도 등이 ‘현위치 휴전안’을 유엔에 제출하면서 시작되었다. ‘현위치 휴전’이란 수원 이남까지 중공군과 북한군이 진출한 상태의 휴전이므로 이대로 휴전이 성사되면 서울이 공산군 수중에 넘어간다는 것을 의미했다. 미국은 ‘현위치 휴전안’을 못마땅하게 여겼으나 우방국인 영국이 휴전을 주도해 공개적으로는 반대하지...
공창(公娼) 폐지법 발효
1948년 2월 14일, 미군정 하에서 ‘공창(公娼) 폐지법’이 발효됨으로써 공식적으로는 합법적인 매매춘이 이 땅에서 사라졌다. 언론은 ‘여권(女權)수호의 서곡’ ‘추한 왜정 잔재 해소’라며 반겼지만 한편에서는 사창(私娼) 밀매음 성행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더구나 서울시에 공창으로 등록됐던 670여명의 창녀 가운데 60%가 보균자였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방역처리도 사회적 관심사였다. 우리나라에서 공창제가...
탐험가 제임스 쿡, 하와이에서 피살
1779년 2월 14일, ‘캡틴 쿡’으로 더 잘 알려진 영국의 위대한 탐험가 제임스 쿡이 그가 발견한 하와이에서 원주민과의 불화로 피살됐다. 이로써 8년 반에 걸친 대탐험도 먼 이국 땅에서 막을 내렸다. 3차에 걸친 대탐험 여정은 1768년 8월 26일, 그가 엔데버호를 이끌고 영국 폴리머스항을 출항하면서 시작됐다. 항해거리만 32만km. 달까지 갈수있는 먼 거리였다. 횡으로는 대서양 태평양 인도양을 넘나들었으며, 종으로는 남위 71도 10분부터 북위 80도 41분까지 그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추방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처녀작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가 문예지 ‘노비 미르’지 1962년 11월호에 실렸을 때 소련 사회는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큰 충격에 빠졌다. 스탈린 시대 강제수용소의 실태를 처음 소개한 작품 덕에 9만6000부가 발매된 ‘노비 미르’는 곧 매진되었고, 그후 두 차례에 걸쳐 인쇄된 85만부도 순식간에 동이 났다. 솔제니친의 한 친구는 “이 세계에는 3개의 핵폭탄이 있네. 하나는 케네디가, 하나는 흐루시초프가 갖고 있고 다른 하나는 자네가...
2차대전 연합군, 독일 드레스덴 융단폭격
2차대전이 막바지에 다다랐을 즈음, 독일군이 동부전선에서 소련군에 밀리며 패색이 짙어지자 독일인들이 고도(古都) 드레스덴으로 몰려들었다. 드레스덴처럼 유서깊은 도시는 연합군이 폭격을 안할지도 모른다는 한가닥 기대 때문이었다. 전쟁 전에 63만이었던 인구가 어느새 두 배로 늘어났다. 베를린 남쪽 엘베강가에 있는 드레스덴은 바로크 양식을 대표하는 츠빙거 궁전과 프라우엔 교회를 비롯, 역사가 오래되고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즐비해 ‘엘베강가의 피렌체’...
금성사 국내 첫 라디오 생산
“가전은 금성” 이미지 확실히 심어 LG전자의 전신 금성사의 초창기 발자취는 그대로 한국 가전산업의 역사다. 1959년의 라디오를 비롯해 1960년대에 제조된 금성사의 가전제품 대부분이 ‘국내 최초’였기 때문이다. 1958년 10월 1일의 금성사 창립은 이 모든 것의 출발점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구인회 LG그룹 창업자가 그전부터 설립․운영해온 ‘금성합성수지공업사’가 출발점이지만 LG전자는 회사명을 금성사로 개칭한...
‘조선말 큰사전’ 전 6권 완간
서울역 창고에서 ‘사전 원고’ 발견되어 사전 편찬 시동 걸어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1942년 10월부터 수감 중이던 이극로, 최현배, 이희승, 정인승이 해방과 함께 풀려나 조선어학회의 재건 문제를 논의했다. 무엇보다 당장 급한 일은 감옥에 있을 때 사라진 ‘사전 원고’의 행방을 찾는 일이었다. 사전 원고란 조선어연구회와 조선어사전편찬회가 우리말 사전을 펴내기 위해 1929년부터 작업해온 2만 6,500여 장 분량의 원고로, 사전 발간을 앞두고 터진 1942년 10월의 조선어학회...
샤를 드골과 프랑스 5공화국 출범
드골의 등장은 분열된 나라를 하나로 만들어 달라는 국민적 요구에서 시작 샤를 드골(1890~1970)에게 1940년은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그해를 기점으로 평범한 군 장교의 삶이 프랑스 현대사에 굵고 선명한 족적을 남긴 국가 지도자의 삶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드골은 프랑스 북부 릴의 외가에서 태어나 가톨릭의 완고한 왕권주의적 분위기에서 성장했다. 1912년 생시르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보병 부대에 배치되었을 때 그곳에는 필리프 페탱(1856~1951) 대령이 있었다....
[나는 백패커] 김포 승마산에서 하룻밤… ‘5분이면 정상’ 철석같이 믿고 올라갔다가 끝내 헉헉댄 산행
↑ 김포 승마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일출 by 돌고래 겨울은 백팩커의 계절이다. 추운데 무~슨! 아니다. 정답이다. 전국의 산과 바다에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봄, 여름, 가을 3계절에 비하면 겨울은 온전히 자연을 즐기려는 백패커의 계절이 맞다. 비록 추위에 손가락이 곱아서 감각이 없어지더라도, 차디찬 바람에 코끝이 얼얼해지더라도 침낭과 텐트에 의지해 하룻밤을 보내는 바로 이 맛에 백패커는 겨울을 최고로 친다. 며칠 전 지인들과 가까운 곳으로 퇴근박을...
전쟁 끝난지 65년 지났는데도 국군포로들이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이유
↑ 유엔군 포로들이 남측지역으로 송환되는 모습 by 김지지 6·25 정전 협정 직후인 1953년 8월 유엔군사령부는 북한군·중국군에 포로가 되거나 전투 도중 실종된 국군이 8만2318명이라고 발표했다. 1954년까지 진행된 포로 교환에서 한국에 돌아온 국군 포로는 8343명이었다. 북한은 “나머지는 모두 북에 전향했고, 따라서 국군 포로는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994년 조창호 소위가 탈북한 이후 총 80명의 국군 포로가 한국으로 탈출했다....
6·25전쟁 휴전협정 조인
휴전협정은 765차례의 산고 끝에 이뤄진 결실 6·25전쟁 휴전 논의는 중공군이 서울을 점령하고 한강을 건너 파죽지세로 수원까지 장악한 1951년 1월 영국, 캐나다, 인도 등이 ‘현위치 휴전안’을 유엔에 제출하면서 시작되었다. ‘현위치 휴전’이란 수원 이남까지 중공군과 북한군이 진출한 상태의 휴전이므로 이대로 휴전이 성사되면 서울이 공산군 수중에 넘어간다는 것을 의미했다. 미국은 ‘현위치 휴전안’을 못마땅하게 여겼으나 우방국인 영국이 휴전을 주도해 공개적으로는 반대하지...
공창(公娼) 폐지법 발효
1948년 2월 14일, 미군정 하에서 ‘공창(公娼) 폐지법’이 발효됨으로써 공식적으로는 합법적인 매매춘이 이 땅에서 사라졌다. 언론은 ‘여권(女權)수호의 서곡’ ‘추한 왜정 잔재 해소’라며 반겼지만 한편에서는 사창(私娼) 밀매음 성행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더구나 서울시에 공창으로 등록됐던 670여명의 창녀 가운데 60%가 보균자였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방역처리도 사회적 관심사였다. 우리나라에서 공창제가...
탐험가 제임스 쿡, 하와이에서 피살
1779년 2월 14일, ‘캡틴 쿡’으로 더 잘 알려진 영국의 위대한 탐험가 제임스 쿡이 그가 발견한 하와이에서 원주민과의 불화로 피살됐다. 이로써 8년 반에 걸친 대탐험도 먼 이국 땅에서 막을 내렸다. 3차에 걸친 대탐험 여정은 1768년 8월 26일, 그가 엔데버호를 이끌고 영국 폴리머스항을 출항하면서 시작됐다. 항해거리만 32만km. 달까지 갈수있는 먼 거리였다. 횡으로는 대서양 태평양 인도양을 넘나들었으며, 종으로는 남위 71도 10분부터 북위 80도 41분까지 그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추방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처녀작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가 문예지 ‘노비 미르’지 1962년 11월호에 실렸을 때 소련 사회는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큰 충격에 빠졌다. 스탈린 시대 강제수용소의 실태를 처음 소개한 작품 덕에 9만6000부가 발매된 ‘노비 미르’는 곧 매진되었고, 그후 두 차례에 걸쳐 인쇄된 85만부도 순식간에 동이 났다. 솔제니친의 한 친구는 “이 세계에는 3개의 핵폭탄이 있네. 하나는 케네디가, 하나는 흐루시초프가 갖고 있고 다른 하나는 자네가...
2차대전 연합군, 독일 드레스덴 융단폭격
2차대전이 막바지에 다다랐을 즈음, 독일군이 동부전선에서 소련군에 밀리며 패색이 짙어지자 독일인들이 고도(古都) 드레스덴으로 몰려들었다. 드레스덴처럼 유서깊은 도시는 연합군이 폭격을 안할지도 모른다는 한가닥 기대 때문이었다. 전쟁 전에 63만이었던 인구가 어느새 두 배로 늘어났다. 베를린 남쪽 엘베강가에 있는 드레스덴은 바로크 양식을 대표하는 츠빙거 궁전과 프라우엔 교회를 비롯, 역사가 오래되고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즐비해 ‘엘베강가의 피렌체’...
금성사 국내 첫 라디오 생산
“가전은 금성” 이미지 확실히 심어 LG전자의 전신 금성사의 초창기 발자취는 그대로 한국 가전산업의 역사다. 1959년의 라디오를 비롯해 1960년대에 제조된 금성사의 가전제품 대부분이 ‘국내 최초’였기 때문이다. 1958년 10월 1일의 금성사 창립은 이 모든 것의 출발점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구인회 LG그룹 창업자가 그전부터 설립․운영해온 ‘금성합성수지공업사’가 출발점이지만 LG전자는 회사명을 금성사로 개칭한...
‘조선말 큰사전’ 전 6권 완간
서울역 창고에서 ‘사전 원고’ 발견되어 사전 편찬 시동 걸어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1942년 10월부터 수감 중이던 이극로, 최현배, 이희승, 정인승이 해방과 함께 풀려나 조선어학회의 재건 문제를 논의했다. 무엇보다 당장 급한 일은 감옥에 있을 때 사라진 ‘사전 원고’의 행방을 찾는 일이었다. 사전 원고란 조선어연구회와 조선어사전편찬회가 우리말 사전을 펴내기 위해 1929년부터 작업해온 2만 6,500여 장 분량의 원고로, 사전 발간을 앞두고 터진 1942년 10월의 조선어학회...
샤를 드골과 프랑스 5공화국 출범
드골의 등장은 분열된 나라를 하나로 만들어 달라는 국민적 요구에서 시작 샤를 드골(1890~1970)에게 1940년은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그해를 기점으로 평범한 군 장교의 삶이 프랑스 현대사에 굵고 선명한 족적을 남긴 국가 지도자의 삶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드골은 프랑스 북부 릴의 외가에서 태어나 가톨릭의 완고한 왕권주의적 분위기에서 성장했다. 1912년 생시르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보병 부대에 배치되었을 때 그곳에는 필리프 페탱(1856~1951) 대령이 있었다....
[나는 백패커] 김포 승마산에서 하룻밤… ‘5분이면 정상’ 철석같이 믿고 올라갔다가 끝내 헉헉댄 산행
↑ 김포 승마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일출 by 돌고래 겨울은 백팩커의 계절이다. 추운데 무~슨! 아니다. 정답이다. 전국의 산과 바다에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봄, 여름, 가을 3계절에 비하면 겨울은 온전히 자연을 즐기려는 백패커의 계절이 맞다. 비록 추위에 손가락이 곱아서 감각이 없어지더라도, 차디찬 바람에 코끝이 얼얼해지더라도 침낭과 텐트에 의지해 하룻밤을 보내는 바로 이 맛에 백패커는 겨울을 최고로 친다. 며칠 전 지인들과 가까운 곳으로 퇴근박을...
전쟁 끝난지 65년 지났는데도 국군포로들이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이유
↑ 유엔군 포로들이 남측지역으로 송환되는 모습 by 김지지 6·25 정전 협정 직후인 1953년 8월 유엔군사령부는 북한군·중국군에 포로가 되거나 전투 도중 실종된 국군이 8만2318명이라고 발표했다. 1954년까지 진행된 포로 교환에서 한국에 돌아온 국군 포로는 8343명이었다. 북한은 “나머지는 모두 북에 전향했고, 따라서 국군 포로는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994년 조창호 소위가 탈북한 이후 총 80명의 국군 포로가 한국으로 탈출했다....
6·25전쟁 휴전협정 조인
휴전협정은 765차례의 산고 끝에 이뤄진 결실 6·25전쟁 휴전 논의는 중공군이 서울을 점령하고 한강을 건너 파죽지세로 수원까지 장악한 1951년 1월 영국, 캐나다, 인도 등이 ‘현위치 휴전안’을 유엔에 제출하면서 시작되었다. ‘현위치 휴전’이란 수원 이남까지 중공군과 북한군이 진출한 상태의 휴전이므로 이대로 휴전이 성사되면 서울이 공산군 수중에 넘어간다는 것을 의미했다. 미국은 ‘현위치 휴전안’을 못마땅하게 여겼으나 우방국인 영국이 휴전을 주도해 공개적으로는 반대하지...
공창(公娼) 폐지법 발효
1948년 2월 14일, 미군정 하에서 ‘공창(公娼) 폐지법’이 발효됨으로써 공식적으로는 합법적인 매매춘이 이 땅에서 사라졌다. 언론은 ‘여권(女權)수호의 서곡’ ‘추한 왜정 잔재 해소’라며 반겼지만 한편에서는 사창(私娼) 밀매음 성행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더구나 서울시에 공창으로 등록됐던 670여명의 창녀 가운데 60%가 보균자였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방역처리도 사회적 관심사였다. 우리나라에서 공창제가...
탐험가 제임스 쿡, 하와이에서 피살
1779년 2월 14일, ‘캡틴 쿡’으로 더 잘 알려진 영국의 위대한 탐험가 제임스 쿡이 그가 발견한 하와이에서 원주민과의 불화로 피살됐다. 이로써 8년 반에 걸친 대탐험도 먼 이국 땅에서 막을 내렸다. 3차에 걸친 대탐험 여정은 1768년 8월 26일, 그가 엔데버호를 이끌고 영국 폴리머스항을 출항하면서 시작됐다. 항해거리만 32만km. 달까지 갈수있는 먼 거리였다. 횡으로는 대서양 태평양 인도양을 넘나들었으며, 종으로는 남위 71도 10분부터 북위 80도 41분까지 그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추방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처녀작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가 문예지 ‘노비 미르’지 1962년 11월호에 실렸을 때 소련 사회는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큰 충격에 빠졌다. 스탈린 시대 강제수용소의 실태를 처음 소개한 작품 덕에 9만6000부가 발매된 ‘노비 미르’는 곧 매진되었고, 그후 두 차례에 걸쳐 인쇄된 85만부도 순식간에 동이 났다. 솔제니친의 한 친구는 “이 세계에는 3개의 핵폭탄이 있네. 하나는 케네디가, 하나는 흐루시초프가 갖고 있고 다른 하나는 자네가...
2차대전 연합군, 독일 드레스덴 융단폭격
2차대전이 막바지에 다다랐을 즈음, 독일군이 동부전선에서 소련군에 밀리며 패색이 짙어지자 독일인들이 고도(古都) 드레스덴으로 몰려들었다. 드레스덴처럼 유서깊은 도시는 연합군이 폭격을 안할지도 모른다는 한가닥 기대 때문이었다. 전쟁 전에 63만이었던 인구가 어느새 두 배로 늘어났다. 베를린 남쪽 엘베강가에 있는 드레스덴은 바로크 양식을 대표하는 츠빙거 궁전과 프라우엔 교회를 비롯, 역사가 오래되고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즐비해 ‘엘베강가의 피렌체’...
금성사 국내 첫 라디오 생산
“가전은 금성” 이미지 확실히 심어 LG전자의 전신 금성사의 초창기 발자취는 그대로 한국 가전산업의 역사다. 1959년의 라디오를 비롯해 1960년대에 제조된 금성사의 가전제품 대부분이 ‘국내 최초’였기 때문이다. 1958년 10월 1일의 금성사 창립은 이 모든 것의 출발점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구인회 LG그룹 창업자가 그전부터 설립․운영해온 ‘금성합성수지공업사’가 출발점이지만 LG전자는 회사명을 금성사로 개칭한...
‘조선말 큰사전’ 전 6권 완간
서울역 창고에서 ‘사전 원고’ 발견되어 사전 편찬 시동 걸어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1942년 10월부터 수감 중이던 이극로, 최현배, 이희승, 정인승이 해방과 함께 풀려나 조선어학회의 재건 문제를 논의했다. 무엇보다 당장 급한 일은 감옥에 있을 때 사라진 ‘사전 원고’의 행방을 찾는 일이었다. 사전 원고란 조선어연구회와 조선어사전편찬회가 우리말 사전을 펴내기 위해 1929년부터 작업해온 2만 6,500여 장 분량의 원고로, 사전 발간을 앞두고 터진 1942년 10월의 조선어학회...
샤를 드골과 프랑스 5공화국 출범
드골의 등장은 분열된 나라를 하나로 만들어 달라는 국민적 요구에서 시작 샤를 드골(1890~1970)에게 1940년은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그해를 기점으로 평범한 군 장교의 삶이 프랑스 현대사에 굵고 선명한 족적을 남긴 국가 지도자의 삶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드골은 프랑스 북부 릴의 외가에서 태어나 가톨릭의 완고한 왕권주의적 분위기에서 성장했다. 1912년 생시르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보병 부대에 배치되었을 때 그곳에는 필리프 페탱(1856~1951) 대령이 있었다....
[나는 백패커] 김포 승마산에서 하룻밤… ‘5분이면 정상’ 철석같이 믿고 올라갔다가 끝내 헉헉댄 산행
↑ 김포 승마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일출 by 돌고래 겨울은 백팩커의 계절이다. 추운데 무~슨! 아니다. 정답이다. 전국의 산과 바다에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봄, 여름, 가을 3계절에 비하면 겨울은 온전히 자연을 즐기려는 백패커의 계절이 맞다. 비록 추위에 손가락이 곱아서 감각이 없어지더라도, 차디찬 바람에 코끝이 얼얼해지더라도 침낭과 텐트에 의지해 하룻밤을 보내는 바로 이 맛에 백패커는 겨울을 최고로 친다. 며칠 전 지인들과 가까운 곳으로 퇴근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