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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 최후의 전사 제로니모 숨져

1909년 2월 17일, ‘인디언 최후의 전사(戰士)’ 제로니모가 포로로 구금되어 있던 미국 오클라호마주의 포트실 요새에서 80세로 눈을 감았다. 이로써 미국의 서부개척 시대도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제로니모의 원래 이름은 ‘하품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고야틀라이’였다. 그러나 멕시코 군인들이 기독교 성자 세인트 제롬을 닮았다며 ‘제로니모’로 불러 이름이 바뀌었다. 제로니모가 전사의 길을...

푸치니 오페라 ‘나비 부인’ 초연

지아코모 푸치니(1858~1924)는 성공을 확신한 듯 가족을 동반하고 극장에 들어섰다. 극장 안은 ‘마농 레스코’ ‘라 보엠’ ‘토스카’ 등을 잇따라 성공시켜 이미 오페라계 최고의 명성을 떨치고 있던 그의 신작을 감상하려고 몰려든 사람들로 만원이었다. 입장권에는 프리미엄이 붙고, 입장료 수입은 이 극장에서 초연된 작품 가운데 사상 최고를 기록해 극장 측을 즐겁게 해주었다. 작곡가 푸치니에게도 2만리라의 선금이...

국내 첫 라디오 방송 개국

“여기는 경성방송국입니다. JODK”. 1927년 2월 16일 오후 1시, 한국 방송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할 우리나라 최초의 라디오 방송이 첫 전파를 발사했다. 서울 중구 정동에 있는 현재의 덕수초등학교 자리가 첫 발신지였다. 호출부호는 JODK였고, 주파수는 690㎑였으며 방송기기는 영국 마르코니사 제품이었다. 정규방송이 시작되기 3개월 반 전인 1926년 11월 30일 개국한 경성방송국에는 일본인 직원 틈에 3명의 한국인도 끼어 있었다. 전설적 무용가...

대한민국 제1차 통화개혁

6․25전쟁이 막바지에 다다른 1953년, 전쟁으로 인한 천문학적인 화폐발행으로 인플레가 날이 갈수록 가중되자 정부가 통화개혁에 발벗고 나섰다. 인플레로 경기가 침체되는 것도 문제였지만 “인플레를 막아야 원조하겠다”는 미국의 압력도 무시할 수 없었다. 통화개혁은 1953년 2월 15일, 임시수도 부산에서 대통령령 제13호 긴급조치령으로 발표되었다. 골자는 2월 17일부터 ‘원’ 표시 통화의 유통을 금지하고 ‘환’ 표시 통화를 유통시키되 교환비율은...

세계최초 컴퓨터 ‘에니악’ 탄생

세계최초 컴퓨터 ‘에니악’ 탄생

↑ 에니악   1946년 2월 15일,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의 한 실험실에 모인 200여 명의 사람들이 숨을 죽인 채 30t이나 되는 거대한 기계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이윽고 전원스위치의 파워에 불이 켜지자 130㎞나 되는 전선줄로 연결된 부속품들이 깜빡거리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 순간 실험실 밖의 가로등이 희미해졌다. 기계의 전력소모가 컸기 때문이다. 세계최초의 컴퓨터 ‘에니악(ENIAC)’은 이렇게 탄생했다. 2차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미 국방부는...

김승옥 소설 ‘무진기행’ 발표

“감수성의 혁명”이라는 격찬과 함께 “문학사의 한 장을 열었다”는 호평 들어 김승옥(1941~ )에 대한 문단의 평은 실로 현란하다. “한국 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소설가”라는 수식어는 차라리 진부할 정도다. “독일 문학사를 ‘괴테 이전’과 ‘괴테 이후’로 나누는 시각이 허용된다면 한국 문학은 감히 ‘김승옥 이전’과 ‘김승옥...

박정희 제5대 대통령 당선

박정희 선거 전, “민정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발표해 기성 정치인들의 마음을 들뜨게 해 1963년 1월 1일을 기해 5․16 후 모든 정당·사회단체의 정치활동을 금했던 ‘군사혁명위 포고령 제4호’가 폐기됨으로써 동면에 들어갔던 정치가 1년 7개월 만에 기지개를 폈다. 기성 정치인들은 곧 군정이 끝나고 민정이 시작될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었으나 사실상 그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박정희 의장은 여전히 복심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1963년...

함석헌 ‘뜻으로 본 한국 역사’ 출간

우리 근현대사를 관통한 시대의 목격자요 증인 1901년 평북 용천에서 태어나 일제 식민지와 해방공간 그리고 자유당 정권과 유신체제를 거쳐 1988년의 서울올림픽 평화대회 위원장까지 맡고 눈을 감았으니 함석헌(1901~1989)이야말로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관통한 시대의 목격자요 증인이었다. 그는 격동의 20세기 내내 진리와 정의를 위해 몸을 던진 구도자였고, 전통과 교리의 속박을 깨뜨린 자유인이었다. 1919년 평양고보 시절 일어난 3․1 운동은 함석의의 삶을 획기적으로...

최인훈 소설 ‘광장’ 발표

 “한국문학 사상 최초로 분단의 문제를 이데올로기적 갈등의 문제로 다룬 기념비적인 작품” 최인훈(1936~2018 )의 소설 ‘광장’은 국내 문인이나 평론가들이 늘 첫손가락으로 꼽는 전후 최고의 소설이다. ‘광장’ 이후 최인훈에게 ‘전후 최고의 작가’라는 찬사가 쏟아질 만큼 ‘광장’이 우리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광장’이 원고지 600장 분량의 중편소설로 발표된 것은 ‘새벽’지 1960년 10월호에서였다. 6․25 전쟁 후 반공소설류가...

민족일보 폐간과 조용수 사장 사형

창간호부터 과감한 논조와 신선한 편집으로 폭발적 인기 끌어  4․19 혁명 후 언론의 자유가 만개했다. 누구든 신문을 만들 수 있었고 새롭게 선보인 신문만 380여 종이 되었다. 1961년 2월 13일에 창간된 민족일보도 그런 분위기 속에서 탄생했다. 그러나 민족일보는 4개월도 안 되어 간판을 내려야 하는 비운의 신문이 되었고, 발행인 겸 사장 조용수(1930~1961)는 31세의 젊은 나이에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연희전문을 다니던 조용수가 일본으로 건너간 것은 6․25...

인디언 최후의 전사 제로니모 숨져

1909년 2월 17일, ‘인디언 최후의 전사(戰士)’ 제로니모가 포로로 구금되어 있던 미국 오클라호마주의 포트실 요새에서 80세로 눈을 감았다. 이로써 미국의 서부개척 시대도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제로니모의 원래 이름은 ‘하품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고야틀라이’였다. 그러나 멕시코 군인들이 기독교 성자 세인트 제롬을 닮았다며 ‘제로니모’로 불러 이름이 바뀌었다. 제로니모가 전사의 길을...

푸치니 오페라 ‘나비 부인’ 초연

지아코모 푸치니(1858~1924)는 성공을 확신한 듯 가족을 동반하고 극장에 들어섰다. 극장 안은 ‘마농 레스코’ ‘라 보엠’ ‘토스카’ 등을 잇따라 성공시켜 이미 오페라계 최고의 명성을 떨치고 있던 그의 신작을 감상하려고 몰려든 사람들로 만원이었다. 입장권에는 프리미엄이 붙고, 입장료 수입은 이 극장에서 초연된 작품 가운데 사상 최고를 기록해 극장 측을 즐겁게 해주었다. 작곡가 푸치니에게도 2만리라의 선금이...

국내 첫 라디오 방송 개국

“여기는 경성방송국입니다. JODK”. 1927년 2월 16일 오후 1시, 한국 방송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할 우리나라 최초의 라디오 방송이 첫 전파를 발사했다. 서울 중구 정동에 있는 현재의 덕수초등학교 자리가 첫 발신지였다. 호출부호는 JODK였고, 주파수는 690㎑였으며 방송기기는 영국 마르코니사 제품이었다. 정규방송이 시작되기 3개월 반 전인 1926년 11월 30일 개국한 경성방송국에는 일본인 직원 틈에 3명의 한국인도 끼어 있었다. 전설적 무용가...

대한민국 제1차 통화개혁

6․25전쟁이 막바지에 다다른 1953년, 전쟁으로 인한 천문학적인 화폐발행으로 인플레가 날이 갈수록 가중되자 정부가 통화개혁에 발벗고 나섰다. 인플레로 경기가 침체되는 것도 문제였지만 “인플레를 막아야 원조하겠다”는 미국의 압력도 무시할 수 없었다. 통화개혁은 1953년 2월 15일, 임시수도 부산에서 대통령령 제13호 긴급조치령으로 발표되었다. 골자는 2월 17일부터 ‘원’ 표시 통화의 유통을 금지하고 ‘환’ 표시 통화를 유통시키되 교환비율은...

세계최초 컴퓨터 ‘에니악’ 탄생

세계최초 컴퓨터 ‘에니악’ 탄생

↑ 에니악   1946년 2월 15일,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의 한 실험실에 모인 200여 명의 사람들이 숨을 죽인 채 30t이나 되는 거대한 기계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이윽고 전원스위치의 파워에 불이 켜지자 130㎞나 되는 전선줄로 연결된 부속품들이 깜빡거리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 순간 실험실 밖의 가로등이 희미해졌다. 기계의 전력소모가 컸기 때문이다. 세계최초의 컴퓨터 ‘에니악(ENIAC)’은 이렇게 탄생했다. 2차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미 국방부는...

김승옥 소설 ‘무진기행’ 발표

“감수성의 혁명”이라는 격찬과 함께 “문학사의 한 장을 열었다”는 호평 들어 김승옥(1941~ )에 대한 문단의 평은 실로 현란하다. “한국 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소설가”라는 수식어는 차라리 진부할 정도다. “독일 문학사를 ‘괴테 이전’과 ‘괴테 이후’로 나누는 시각이 허용된다면 한국 문학은 감히 ‘김승옥 이전’과 ‘김승옥...

박정희 제5대 대통령 당선

박정희 선거 전, “민정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발표해 기성 정치인들의 마음을 들뜨게 해 1963년 1월 1일을 기해 5․16 후 모든 정당·사회단체의 정치활동을 금했던 ‘군사혁명위 포고령 제4호’가 폐기됨으로써 동면에 들어갔던 정치가 1년 7개월 만에 기지개를 폈다. 기성 정치인들은 곧 군정이 끝나고 민정이 시작될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었으나 사실상 그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박정희 의장은 여전히 복심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1963년...

함석헌 ‘뜻으로 본 한국 역사’ 출간

우리 근현대사를 관통한 시대의 목격자요 증인 1901년 평북 용천에서 태어나 일제 식민지와 해방공간 그리고 자유당 정권과 유신체제를 거쳐 1988년의 서울올림픽 평화대회 위원장까지 맡고 눈을 감았으니 함석헌(1901~1989)이야말로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관통한 시대의 목격자요 증인이었다. 그는 격동의 20세기 내내 진리와 정의를 위해 몸을 던진 구도자였고, 전통과 교리의 속박을 깨뜨린 자유인이었다. 1919년 평양고보 시절 일어난 3․1 운동은 함석의의 삶을 획기적으로...

최인훈 소설 ‘광장’ 발표

 “한국문학 사상 최초로 분단의 문제를 이데올로기적 갈등의 문제로 다룬 기념비적인 작품” 최인훈(1936~2018 )의 소설 ‘광장’은 국내 문인이나 평론가들이 늘 첫손가락으로 꼽는 전후 최고의 소설이다. ‘광장’ 이후 최인훈에게 ‘전후 최고의 작가’라는 찬사가 쏟아질 만큼 ‘광장’이 우리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광장’이 원고지 600장 분량의 중편소설로 발표된 것은 ‘새벽’지 1960년 10월호에서였다. 6․25 전쟁 후 반공소설류가...

민족일보 폐간과 조용수 사장 사형

창간호부터 과감한 논조와 신선한 편집으로 폭발적 인기 끌어  4․19 혁명 후 언론의 자유가 만개했다. 누구든 신문을 만들 수 있었고 새롭게 선보인 신문만 380여 종이 되었다. 1961년 2월 13일에 창간된 민족일보도 그런 분위기 속에서 탄생했다. 그러나 민족일보는 4개월도 안 되어 간판을 내려야 하는 비운의 신문이 되었고, 발행인 겸 사장 조용수(1930~1961)는 31세의 젊은 나이에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연희전문을 다니던 조용수가 일본으로 건너간 것은 6․25...

인디언 최후의 전사 제로니모 숨져

1909년 2월 17일, ‘인디언 최후의 전사(戰士)’ 제로니모가 포로로 구금되어 있던 미국 오클라호마주의 포트실 요새에서 80세로 눈을 감았다. 이로써 미국의 서부개척 시대도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제로니모의 원래 이름은 ‘하품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고야틀라이’였다. 그러나 멕시코 군인들이 기독교 성자 세인트 제롬을 닮았다며 ‘제로니모’로 불러 이름이 바뀌었다. 제로니모가 전사의 길을...

푸치니 오페라 ‘나비 부인’ 초연

지아코모 푸치니(1858~1924)는 성공을 확신한 듯 가족을 동반하고 극장에 들어섰다. 극장 안은 ‘마농 레스코’ ‘라 보엠’ ‘토스카’ 등을 잇따라 성공시켜 이미 오페라계 최고의 명성을 떨치고 있던 그의 신작을 감상하려고 몰려든 사람들로 만원이었다. 입장권에는 프리미엄이 붙고, 입장료 수입은 이 극장에서 초연된 작품 가운데 사상 최고를 기록해 극장 측을 즐겁게 해주었다. 작곡가 푸치니에게도 2만리라의 선금이...

국내 첫 라디오 방송 개국

“여기는 경성방송국입니다. JODK”. 1927년 2월 16일 오후 1시, 한국 방송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할 우리나라 최초의 라디오 방송이 첫 전파를 발사했다. 서울 중구 정동에 있는 현재의 덕수초등학교 자리가 첫 발신지였다. 호출부호는 JODK였고, 주파수는 690㎑였으며 방송기기는 영국 마르코니사 제품이었다. 정규방송이 시작되기 3개월 반 전인 1926년 11월 30일 개국한 경성방송국에는 일본인 직원 틈에 3명의 한국인도 끼어 있었다. 전설적 무용가...

대한민국 제1차 통화개혁

6․25전쟁이 막바지에 다다른 1953년, 전쟁으로 인한 천문학적인 화폐발행으로 인플레가 날이 갈수록 가중되자 정부가 통화개혁에 발벗고 나섰다. 인플레로 경기가 침체되는 것도 문제였지만 “인플레를 막아야 원조하겠다”는 미국의 압력도 무시할 수 없었다. 통화개혁은 1953년 2월 15일, 임시수도 부산에서 대통령령 제13호 긴급조치령으로 발표되었다. 골자는 2월 17일부터 ‘원’ 표시 통화의 유통을 금지하고 ‘환’ 표시 통화를 유통시키되 교환비율은...

세계최초 컴퓨터 ‘에니악’ 탄생

세계최초 컴퓨터 ‘에니악’ 탄생

↑ 에니악   1946년 2월 15일,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의 한 실험실에 모인 200여 명의 사람들이 숨을 죽인 채 30t이나 되는 거대한 기계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이윽고 전원스위치의 파워에 불이 켜지자 130㎞나 되는 전선줄로 연결된 부속품들이 깜빡거리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 순간 실험실 밖의 가로등이 희미해졌다. 기계의 전력소모가 컸기 때문이다. 세계최초의 컴퓨터 ‘에니악(ENIAC)’은 이렇게 탄생했다. 2차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미 국방부는...

김승옥 소설 ‘무진기행’ 발표

“감수성의 혁명”이라는 격찬과 함께 “문학사의 한 장을 열었다”는 호평 들어 김승옥(1941~ )에 대한 문단의 평은 실로 현란하다. “한국 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소설가”라는 수식어는 차라리 진부할 정도다. “독일 문학사를 ‘괴테 이전’과 ‘괴테 이후’로 나누는 시각이 허용된다면 한국 문학은 감히 ‘김승옥 이전’과 ‘김승옥...

박정희 제5대 대통령 당선

박정희 선거 전, “민정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발표해 기성 정치인들의 마음을 들뜨게 해 1963년 1월 1일을 기해 5․16 후 모든 정당·사회단체의 정치활동을 금했던 ‘군사혁명위 포고령 제4호’가 폐기됨으로써 동면에 들어갔던 정치가 1년 7개월 만에 기지개를 폈다. 기성 정치인들은 곧 군정이 끝나고 민정이 시작될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었으나 사실상 그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박정희 의장은 여전히 복심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1963년...

함석헌 ‘뜻으로 본 한국 역사’ 출간

우리 근현대사를 관통한 시대의 목격자요 증인 1901년 평북 용천에서 태어나 일제 식민지와 해방공간 그리고 자유당 정권과 유신체제를 거쳐 1988년의 서울올림픽 평화대회 위원장까지 맡고 눈을 감았으니 함석헌(1901~1989)이야말로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관통한 시대의 목격자요 증인이었다. 그는 격동의 20세기 내내 진리와 정의를 위해 몸을 던진 구도자였고, 전통과 교리의 속박을 깨뜨린 자유인이었다. 1919년 평양고보 시절 일어난 3․1 운동은 함석의의 삶을 획기적으로...

최인훈 소설 ‘광장’ 발표

 “한국문학 사상 최초로 분단의 문제를 이데올로기적 갈등의 문제로 다룬 기념비적인 작품” 최인훈(1936~2018 )의 소설 ‘광장’은 국내 문인이나 평론가들이 늘 첫손가락으로 꼽는 전후 최고의 소설이다. ‘광장’ 이후 최인훈에게 ‘전후 최고의 작가’라는 찬사가 쏟아질 만큼 ‘광장’이 우리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광장’이 원고지 600장 분량의 중편소설로 발표된 것은 ‘새벽’지 1960년 10월호에서였다. 6․25 전쟁 후 반공소설류가...

민족일보 폐간과 조용수 사장 사형

창간호부터 과감한 논조와 신선한 편집으로 폭발적 인기 끌어  4․19 혁명 후 언론의 자유가 만개했다. 누구든 신문을 만들 수 있었고 새롭게 선보인 신문만 380여 종이 되었다. 1961년 2월 13일에 창간된 민족일보도 그런 분위기 속에서 탄생했다. 그러나 민족일보는 4개월도 안 되어 간판을 내려야 하는 비운의 신문이 되었고, 발행인 겸 사장 조용수(1930~1961)는 31세의 젊은 나이에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연희전문을 다니던 조용수가 일본으로 건너간 것은 6․25...

인디언 최후의 전사 제로니모 숨져

1909년 2월 17일, ‘인디언 최후의 전사(戰士)’ 제로니모가 포로로 구금되어 있던 미국 오클라호마주의 포트실 요새에서 80세로 눈을 감았다. 이로써 미국의 서부개척 시대도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제로니모의 원래 이름은 ‘하품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고야틀라이’였다. 그러나 멕시코 군인들이 기독교 성자 세인트 제롬을 닮았다며 ‘제로니모’로 불러 이름이 바뀌었다. 제로니모가 전사의 길을...

푸치니 오페라 ‘나비 부인’ 초연

지아코모 푸치니(1858~1924)는 성공을 확신한 듯 가족을 동반하고 극장에 들어섰다. 극장 안은 ‘마농 레스코’ ‘라 보엠’ ‘토스카’ 등을 잇따라 성공시켜 이미 오페라계 최고의 명성을 떨치고 있던 그의 신작을 감상하려고 몰려든 사람들로 만원이었다. 입장권에는 프리미엄이 붙고, 입장료 수입은 이 극장에서 초연된 작품 가운데 사상 최고를 기록해 극장 측을 즐겁게 해주었다. 작곡가 푸치니에게도 2만리라의 선금이...

국내 첫 라디오 방송 개국

“여기는 경성방송국입니다. JODK”. 1927년 2월 16일 오후 1시, 한국 방송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할 우리나라 최초의 라디오 방송이 첫 전파를 발사했다. 서울 중구 정동에 있는 현재의 덕수초등학교 자리가 첫 발신지였다. 호출부호는 JODK였고, 주파수는 690㎑였으며 방송기기는 영국 마르코니사 제품이었다. 정규방송이 시작되기 3개월 반 전인 1926년 11월 30일 개국한 경성방송국에는 일본인 직원 틈에 3명의 한국인도 끼어 있었다. 전설적 무용가...

대한민국 제1차 통화개혁

6․25전쟁이 막바지에 다다른 1953년, 전쟁으로 인한 천문학적인 화폐발행으로 인플레가 날이 갈수록 가중되자 정부가 통화개혁에 발벗고 나섰다. 인플레로 경기가 침체되는 것도 문제였지만 “인플레를 막아야 원조하겠다”는 미국의 압력도 무시할 수 없었다. 통화개혁은 1953년 2월 15일, 임시수도 부산에서 대통령령 제13호 긴급조치령으로 발표되었다. 골자는 2월 17일부터 ‘원’ 표시 통화의 유통을 금지하고 ‘환’ 표시 통화를 유통시키되 교환비율은...

세계최초 컴퓨터 ‘에니악’ 탄생

세계최초 컴퓨터 ‘에니악’ 탄생

↑ 에니악   1946년 2월 15일,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의 한 실험실에 모인 200여 명의 사람들이 숨을 죽인 채 30t이나 되는 거대한 기계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이윽고 전원스위치의 파워에 불이 켜지자 130㎞나 되는 전선줄로 연결된 부속품들이 깜빡거리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 순간 실험실 밖의 가로등이 희미해졌다. 기계의 전력소모가 컸기 때문이다. 세계최초의 컴퓨터 ‘에니악(ENIAC)’은 이렇게 탄생했다. 2차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미 국방부는...

김승옥 소설 ‘무진기행’ 발표

“감수성의 혁명”이라는 격찬과 함께 “문학사의 한 장을 열었다”는 호평 들어 김승옥(1941~ )에 대한 문단의 평은 실로 현란하다. “한국 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소설가”라는 수식어는 차라리 진부할 정도다. “독일 문학사를 ‘괴테 이전’과 ‘괴테 이후’로 나누는 시각이 허용된다면 한국 문학은 감히 ‘김승옥 이전’과 ‘김승옥...

박정희 제5대 대통령 당선

박정희 선거 전, “민정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발표해 기성 정치인들의 마음을 들뜨게 해 1963년 1월 1일을 기해 5․16 후 모든 정당·사회단체의 정치활동을 금했던 ‘군사혁명위 포고령 제4호’가 폐기됨으로써 동면에 들어갔던 정치가 1년 7개월 만에 기지개를 폈다. 기성 정치인들은 곧 군정이 끝나고 민정이 시작될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었으나 사실상 그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박정희 의장은 여전히 복심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1963년...

함석헌 ‘뜻으로 본 한국 역사’ 출간

우리 근현대사를 관통한 시대의 목격자요 증인 1901년 평북 용천에서 태어나 일제 식민지와 해방공간 그리고 자유당 정권과 유신체제를 거쳐 1988년의 서울올림픽 평화대회 위원장까지 맡고 눈을 감았으니 함석헌(1901~1989)이야말로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관통한 시대의 목격자요 증인이었다. 그는 격동의 20세기 내내 진리와 정의를 위해 몸을 던진 구도자였고, 전통과 교리의 속박을 깨뜨린 자유인이었다. 1919년 평양고보 시절 일어난 3․1 운동은 함석의의 삶을 획기적으로...

최인훈 소설 ‘광장’ 발표

 “한국문학 사상 최초로 분단의 문제를 이데올로기적 갈등의 문제로 다룬 기념비적인 작품” 최인훈(1936~2018 )의 소설 ‘광장’은 국내 문인이나 평론가들이 늘 첫손가락으로 꼽는 전후 최고의 소설이다. ‘광장’ 이후 최인훈에게 ‘전후 최고의 작가’라는 찬사가 쏟아질 만큼 ‘광장’이 우리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광장’이 원고지 600장 분량의 중편소설로 발표된 것은 ‘새벽’지 1960년 10월호에서였다. 6․25 전쟁 후 반공소설류가...

민족일보 폐간과 조용수 사장 사형

창간호부터 과감한 논조와 신선한 편집으로 폭발적 인기 끌어  4․19 혁명 후 언론의 자유가 만개했다. 누구든 신문을 만들 수 있었고 새롭게 선보인 신문만 380여 종이 되었다. 1961년 2월 13일에 창간된 민족일보도 그런 분위기 속에서 탄생했다. 그러나 민족일보는 4개월도 안 되어 간판을 내려야 하는 비운의 신문이 되었고, 발행인 겸 사장 조용수(1930~1961)는 31세의 젊은 나이에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연희전문을 다니던 조용수가 일본으로 건너간 것은 6․25...

인디언 최후의 전사 제로니모 숨져

1909년 2월 17일, ‘인디언 최후의 전사(戰士)’ 제로니모가 포로로 구금되어 있던 미국 오클라호마주의 포트실 요새에서 80세로 눈을 감았다. 이로써 미국의 서부개척 시대도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제로니모의 원래 이름은 ‘하품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고야틀라이’였다. 그러나 멕시코 군인들이 기독교 성자 세인트 제롬을 닮았다며 ‘제로니모’로 불러 이름이 바뀌었다. 제로니모가 전사의 길을...

푸치니 오페라 ‘나비 부인’ 초연

지아코모 푸치니(1858~1924)는 성공을 확신한 듯 가족을 동반하고 극장에 들어섰다. 극장 안은 ‘마농 레스코’ ‘라 보엠’ ‘토스카’ 등을 잇따라 성공시켜 이미 오페라계 최고의 명성을 떨치고 있던 그의 신작을 감상하려고 몰려든 사람들로 만원이었다. 입장권에는 프리미엄이 붙고, 입장료 수입은 이 극장에서 초연된 작품 가운데 사상 최고를 기록해 극장 측을 즐겁게 해주었다. 작곡가 푸치니에게도 2만리라의 선금이...

국내 첫 라디오 방송 개국

“여기는 경성방송국입니다. JODK”. 1927년 2월 16일 오후 1시, 한국 방송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할 우리나라 최초의 라디오 방송이 첫 전파를 발사했다. 서울 중구 정동에 있는 현재의 덕수초등학교 자리가 첫 발신지였다. 호출부호는 JODK였고, 주파수는 690㎑였으며 방송기기는 영국 마르코니사 제품이었다. 정규방송이 시작되기 3개월 반 전인 1926년 11월 30일 개국한 경성방송국에는 일본인 직원 틈에 3명의 한국인도 끼어 있었다. 전설적 무용가...

대한민국 제1차 통화개혁

6․25전쟁이 막바지에 다다른 1953년, 전쟁으로 인한 천문학적인 화폐발행으로 인플레가 날이 갈수록 가중되자 정부가 통화개혁에 발벗고 나섰다. 인플레로 경기가 침체되는 것도 문제였지만 “인플레를 막아야 원조하겠다”는 미국의 압력도 무시할 수 없었다. 통화개혁은 1953년 2월 15일, 임시수도 부산에서 대통령령 제13호 긴급조치령으로 발표되었다. 골자는 2월 17일부터 ‘원’ 표시 통화의 유통을 금지하고 ‘환’ 표시 통화를 유통시키되 교환비율은...

세계최초 컴퓨터 ‘에니악’ 탄생

세계최초 컴퓨터 ‘에니악’ 탄생

↑ 에니악   1946년 2월 15일,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의 한 실험실에 모인 200여 명의 사람들이 숨을 죽인 채 30t이나 되는 거대한 기계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이윽고 전원스위치의 파워에 불이 켜지자 130㎞나 되는 전선줄로 연결된 부속품들이 깜빡거리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 순간 실험실 밖의 가로등이 희미해졌다. 기계의 전력소모가 컸기 때문이다. 세계최초의 컴퓨터 ‘에니악(ENIAC)’은 이렇게 탄생했다. 2차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미 국방부는...

김승옥 소설 ‘무진기행’ 발표

“감수성의 혁명”이라는 격찬과 함께 “문학사의 한 장을 열었다”는 호평 들어 김승옥(1941~ )에 대한 문단의 평은 실로 현란하다. “한국 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소설가”라는 수식어는 차라리 진부할 정도다. “독일 문학사를 ‘괴테 이전’과 ‘괴테 이후’로 나누는 시각이 허용된다면 한국 문학은 감히 ‘김승옥 이전’과 ‘김승옥...

박정희 제5대 대통령 당선

박정희 선거 전, “민정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발표해 기성 정치인들의 마음을 들뜨게 해 1963년 1월 1일을 기해 5․16 후 모든 정당·사회단체의 정치활동을 금했던 ‘군사혁명위 포고령 제4호’가 폐기됨으로써 동면에 들어갔던 정치가 1년 7개월 만에 기지개를 폈다. 기성 정치인들은 곧 군정이 끝나고 민정이 시작될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었으나 사실상 그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박정희 의장은 여전히 복심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1963년...

함석헌 ‘뜻으로 본 한국 역사’ 출간

우리 근현대사를 관통한 시대의 목격자요 증인 1901년 평북 용천에서 태어나 일제 식민지와 해방공간 그리고 자유당 정권과 유신체제를 거쳐 1988년의 서울올림픽 평화대회 위원장까지 맡고 눈을 감았으니 함석헌(1901~1989)이야말로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관통한 시대의 목격자요 증인이었다. 그는 격동의 20세기 내내 진리와 정의를 위해 몸을 던진 구도자였고, 전통과 교리의 속박을 깨뜨린 자유인이었다. 1919년 평양고보 시절 일어난 3․1 운동은 함석의의 삶을 획기적으로...

최인훈 소설 ‘광장’ 발표

 “한국문학 사상 최초로 분단의 문제를 이데올로기적 갈등의 문제로 다룬 기념비적인 작품” 최인훈(1936~2018 )의 소설 ‘광장’은 국내 문인이나 평론가들이 늘 첫손가락으로 꼽는 전후 최고의 소설이다. ‘광장’ 이후 최인훈에게 ‘전후 최고의 작가’라는 찬사가 쏟아질 만큼 ‘광장’이 우리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광장’이 원고지 600장 분량의 중편소설로 발표된 것은 ‘새벽’지 1960년 10월호에서였다. 6․25 전쟁 후 반공소설류가...

민족일보 폐간과 조용수 사장 사형

창간호부터 과감한 논조와 신선한 편집으로 폭발적 인기 끌어  4․19 혁명 후 언론의 자유가 만개했다. 누구든 신문을 만들 수 있었고 새롭게 선보인 신문만 380여 종이 되었다. 1961년 2월 13일에 창간된 민족일보도 그런 분위기 속에서 탄생했다. 그러나 민족일보는 4개월도 안 되어 간판을 내려야 하는 비운의 신문이 되었고, 발행인 겸 사장 조용수(1930~1961)는 31세의 젊은 나이에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연희전문을 다니던 조용수가 일본으로 건너간 것은 6․25...

인디언 최후의 전사 제로니모 숨져

1909년 2월 17일, ‘인디언 최후의 전사(戰士)’ 제로니모가 포로로 구금되어 있던 미국 오클라호마주의 포트실 요새에서 80세로 눈을 감았다. 이로써 미국의 서부개척 시대도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제로니모의 원래 이름은 ‘하품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고야틀라이’였다. 그러나 멕시코 군인들이 기독교 성자 세인트 제롬을 닮았다며 ‘제로니모’로 불러 이름이 바뀌었다. 제로니모가 전사의 길을...

푸치니 오페라 ‘나비 부인’ 초연

지아코모 푸치니(1858~1924)는 성공을 확신한 듯 가족을 동반하고 극장에 들어섰다. 극장 안은 ‘마농 레스코’ ‘라 보엠’ ‘토스카’ 등을 잇따라 성공시켜 이미 오페라계 최고의 명성을 떨치고 있던 그의 신작을 감상하려고 몰려든 사람들로 만원이었다. 입장권에는 프리미엄이 붙고, 입장료 수입은 이 극장에서 초연된 작품 가운데 사상 최고를 기록해 극장 측을 즐겁게 해주었다. 작곡가 푸치니에게도 2만리라의 선금이...

국내 첫 라디오 방송 개국

“여기는 경성방송국입니다. JODK”. 1927년 2월 16일 오후 1시, 한국 방송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할 우리나라 최초의 라디오 방송이 첫 전파를 발사했다. 서울 중구 정동에 있는 현재의 덕수초등학교 자리가 첫 발신지였다. 호출부호는 JODK였고, 주파수는 690㎑였으며 방송기기는 영국 마르코니사 제품이었다. 정규방송이 시작되기 3개월 반 전인 1926년 11월 30일 개국한 경성방송국에는 일본인 직원 틈에 3명의 한국인도 끼어 있었다. 전설적 무용가...

대한민국 제1차 통화개혁

6․25전쟁이 막바지에 다다른 1953년, 전쟁으로 인한 천문학적인 화폐발행으로 인플레가 날이 갈수록 가중되자 정부가 통화개혁에 발벗고 나섰다. 인플레로 경기가 침체되는 것도 문제였지만 “인플레를 막아야 원조하겠다”는 미국의 압력도 무시할 수 없었다. 통화개혁은 1953년 2월 15일, 임시수도 부산에서 대통령령 제13호 긴급조치령으로 발표되었다. 골자는 2월 17일부터 ‘원’ 표시 통화의 유통을 금지하고 ‘환’ 표시 통화를 유통시키되 교환비율은...

세계최초 컴퓨터 ‘에니악’ 탄생

세계최초 컴퓨터 ‘에니악’ 탄생

↑ 에니악   1946년 2월 15일,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의 한 실험실에 모인 200여 명의 사람들이 숨을 죽인 채 30t이나 되는 거대한 기계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이윽고 전원스위치의 파워에 불이 켜지자 130㎞나 되는 전선줄로 연결된 부속품들이 깜빡거리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 순간 실험실 밖의 가로등이 희미해졌다. 기계의 전력소모가 컸기 때문이다. 세계최초의 컴퓨터 ‘에니악(ENIAC)’은 이렇게 탄생했다. 2차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미 국방부는...

김승옥 소설 ‘무진기행’ 발표

“감수성의 혁명”이라는 격찬과 함께 “문학사의 한 장을 열었다”는 호평 들어 김승옥(1941~ )에 대한 문단의 평은 실로 현란하다. “한국 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소설가”라는 수식어는 차라리 진부할 정도다. “독일 문학사를 ‘괴테 이전’과 ‘괴테 이후’로 나누는 시각이 허용된다면 한국 문학은 감히 ‘김승옥 이전’과 ‘김승옥...

박정희 제5대 대통령 당선

박정희 선거 전, “민정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발표해 기성 정치인들의 마음을 들뜨게 해 1963년 1월 1일을 기해 5․16 후 모든 정당·사회단체의 정치활동을 금했던 ‘군사혁명위 포고령 제4호’가 폐기됨으로써 동면에 들어갔던 정치가 1년 7개월 만에 기지개를 폈다. 기성 정치인들은 곧 군정이 끝나고 민정이 시작될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었으나 사실상 그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박정희 의장은 여전히 복심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1963년...

함석헌 ‘뜻으로 본 한국 역사’ 출간

우리 근현대사를 관통한 시대의 목격자요 증인 1901년 평북 용천에서 태어나 일제 식민지와 해방공간 그리고 자유당 정권과 유신체제를 거쳐 1988년의 서울올림픽 평화대회 위원장까지 맡고 눈을 감았으니 함석헌(1901~1989)이야말로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관통한 시대의 목격자요 증인이었다. 그는 격동의 20세기 내내 진리와 정의를 위해 몸을 던진 구도자였고, 전통과 교리의 속박을 깨뜨린 자유인이었다. 1919년 평양고보 시절 일어난 3․1 운동은 함석의의 삶을 획기적으로...

최인훈 소설 ‘광장’ 발표

 “한국문학 사상 최초로 분단의 문제를 이데올로기적 갈등의 문제로 다룬 기념비적인 작품” 최인훈(1936~2018 )의 소설 ‘광장’은 국내 문인이나 평론가들이 늘 첫손가락으로 꼽는 전후 최고의 소설이다. ‘광장’ 이후 최인훈에게 ‘전후 최고의 작가’라는 찬사가 쏟아질 만큼 ‘광장’이 우리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광장’이 원고지 600장 분량의 중편소설로 발표된 것은 ‘새벽’지 1960년 10월호에서였다. 6․25 전쟁 후 반공소설류가...

민족일보 폐간과 조용수 사장 사형

창간호부터 과감한 논조와 신선한 편집으로 폭발적 인기 끌어  4․19 혁명 후 언론의 자유가 만개했다. 누구든 신문을 만들 수 있었고 새롭게 선보인 신문만 380여 종이 되었다. 1961년 2월 13일에 창간된 민족일보도 그런 분위기 속에서 탄생했다. 그러나 민족일보는 4개월도 안 되어 간판을 내려야 하는 비운의 신문이 되었고, 발행인 겸 사장 조용수(1930~1961)는 31세의 젊은 나이에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연희전문을 다니던 조용수가 일본으로 건너간 것은 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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