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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와 아이들 1집 음반 ‘난 알아요’ 발표
↑ 서태지와 아이들 일약 신세대 문화의 아이콘으로 부상하고 대중문화의 상징으로 당대를 풍미해 반독재·민주화운동의 사회 분위기에 눌려 제대로 꽃을 피우지 못하고 있던 1980년대의 대중문화가 1990년대를 맞아 활짝 만개한 데는 서태지의 역할이 크다. 1992년 3월 23일 서태지와 아이들의 첫 음반 ‘난 알아요’가 발매되고 그 후 20일도 지나지 않아 한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난 알아요’가 방송 전파를 탄 것은 기존 대중가요의 근간을 흔들어 놓을 전주곡이었다. 이후 서태지는...
두산전자 낙동강 페놀 방류 사건
우리나라 환경운동 수준을 10년 앞당긴 사상 최대 환경사고 두산전자 구미공장에서 방류한 1.3t의 페놀 원액이 낙동강의 지천으로 흘러들어간 것은 1991년 3월 14일 저녁 10시쯤이었다. 이것이 대구시 식수의 70%를 공급하는 다사수원지로 유입되어 정수처리제인 염소와 결합, 클로로페놀로 변한 것은 3월 16일 오후 2시쯤이었다. 페놀은 인쇄회로기판(PCB)을 만드는 수지나 농약 제조의 원료로 사용하는 독성 물질로 2차대전 때는 나치가 유대인을 학살할 때 사용하기도 했다....
국내 인터넷 시대 개막과 전길남
국내 최초 인터넷 연결은 1990년 6월 1일 이뤄져 우리나라 인터넷 역사는 1982년 5월 15일 경북 구미의 한국전자기술연구소와 서울대 전자계산학과를 네트워크로 연결한 ‘SDN’ 전산망으로부터 시작된다. 서울대의 PDP11 중형컴퓨터와 전자기술연구소의 VAX 11/780 중형컴퓨터가 1200bps 속도의 전용회선으로 연결된 SDN이 등장하기 전, 은행 온라인망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 네트워크는 대형 메인컴퓨터와 더미 터미널(데이터 처리능력 없이 데이터 입출력 기능만...
[장상인의 일본 산책] 나가사키 데지마(出島) 이야기 : 같은 쇄국인데도 조선은 하멜을 묶어놓고 일본은 실리 취해
by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하멜의 발자취를 찾기 위해서 서귀포로 갔다. 눈보라를 뚫고서 어렵게 용머리 바위에 다다랐다. 용의 머리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이름에 걸맞게 성난 파도와 맞장 뜨면서 생성된 바위들의 상흔은 기암절벽으로 변신해 오히려 멋진 볼거리를 제공했다. 그 바위 옆에는 하멜 일행이 탔던 상선 ‘스페르베르(Sperwer)호’의 축소판이 서있고, 산방산의 거대한 바위 아래 작은 기념비 하나가 홀연히 서 있다. 다름 아닌 ‘하멜 기념비’다....
되돌아 본 유일한의 기업 이념… 일자리 만들고 정직하게 납세하고 남은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
↑ 유일한과 중국계 아내 호미리 by 김지지 문재인 대통령이 1월 21일 경기도 부천에 소재한 유한대의 졸업식에 참석했다. 유한대는 설립자 유일한 박사의 교육철학에 따라 1962년 발족한 유한학원이 1977년 설립한 전문대학이다. 유일한 박사의 삶을 조명한다. 기업의 사회 환원 실천한 기업인 유일한(1895~1971)의 생전 기업 이념은 이랬다. “정성껏 좋은 상품을 만들어 국가와 동포에 봉사하고, 정직·성실하고 양심적인 인재를...
일제 통감부 민적법 공포
조선의 호적제도는 1894년 갑오경장 때 신분제도가 철폐되고 1896년 갑오개혁 입법의 일환으로 호구조사규칙(9월 1일)과 호구조사세칙(9월 3일)이 공포되면서 비로소 근대적인 모습을 띠었다. 그러나 부역과 징세의 행정편의가 법의 주목적이었던 탓에 가족의 신분 변동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호(戶)를 구성하는 기준이 호주와 혈연관계에 있는 친족이 아니라 동거여부에 따라 결정되다보니 호주의 직계존속이나 직계비속이라도 동거하지 않으면 호적을 달리했다. 따라서...
대만 근대사에서 최대비극으로 기록된 ‘2·28사건’
2차대전이 끝나고 패전국 일본이 대만을 중국에 반환했지만, 국·공내전에 경황이 없던 장개석은 대만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천이를 대만성 행정장관으로 파견했으나 행정과 치안은 여전히 공백상태였고 대륙 출신에 대한 대만인들의 반감은 더욱 높아만 갔다. 쌀값이 폭등하고 공무원 사이에 부정부패가 만연했으며 거들먹거리는 외성인(내륙 출신) 군인의 횡포 등으로 대만사회는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폭탄으로 바뀌어갔다. 그러던 1947년 2월 28일, 흥분한 5000여 명의 군중이 대만...
고교 평준화 발표
1973년 2월 28일, 획기적인 고교입시제도 개선안이 발표되었다. 실업계와 2부(야간) 고교는 종전처럼 학교별로 선발하되 인문계 고교와 마찬가지로 연합고사로 시험을 치르고, 인문계 고교는 학군제를 채택해 연합고사를 실시한 뒤 추첨을 통해 학교를 배정한다는 발표였다. 실업계 고교가 전기이고 인문계 고교가 후기인 것도 생소했지만 무엇보다 인문계 고교를 평준화시켜 지나친 경쟁을 지양한다는 것이 가장 큰 변화였다. 입시교육으로 인한 중3병, 고교 간 교육격차 심화, 재수생의 누적과...
‘제3의 길’ 추구한 조봉암, 사형 선고 확정
1959년 2월 27일 ‘진보당사건’으로 구속된 조봉암에게 대법원이 간첩 및 국가보안법 위반죄를 적용, 사형을 선고했다. 진보당사건은 1956년 11월에 결성된 진보당이 북한의 간첩과 접선하고 북한의 통일방안을 주장했다며 1958년 1월에 당 간부 전원이 검거된 사건이다. 그러나 이것은 표면상의 이유일 뿐 이승만 대통령의 장기집권 계획에 방해가 되어 정치적으로 희생되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일제 때 공산주의자로 활동하다 해방 후 공산주의와 결별하고 중도통합노선을 선택한...
독일 베를린 국회의사당 방화사건
1932년 11월에 치러진 총선에서 기존 의석 230석이 196석으로 줄어드는 첫 후퇴를 경험하지만 나치당은 여전히 제1당이었고, 이를 발판으로 히틀러는 1933년 1월 30일 마침내 독일의 총리가 되었다. 힌덴부르크가 명목상 제1인자인 대통령이라고는 하나 그는 86세의 무력한 노인에 불과했다. 히틀러는 총리 취임 다음날, 다가오는 3월 5일에 총선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과반수 의석 확보를 목표로 국영 라디오는 하루종일 나치의 선전․선동으로 소란스러웠고, 길거리는 반대파를...
서태지와 아이들 1집 음반 ‘난 알아요’ 발표
↑ 서태지와 아이들 일약 신세대 문화의 아이콘으로 부상하고 대중문화의 상징으로 당대를 풍미해 반독재·민주화운동의 사회 분위기에 눌려 제대로 꽃을 피우지 못하고 있던 1980년대의 대중문화가 1990년대를 맞아 활짝 만개한 데는 서태지의 역할이 크다. 1992년 3월 23일 서태지와 아이들의 첫 음반 ‘난 알아요’가 발매되고 그 후 20일도 지나지 않아 한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난 알아요’가 방송 전파를 탄 것은 기존 대중가요의 근간을 흔들어 놓을 전주곡이었다. 이후 서태지는...
두산전자 낙동강 페놀 방류 사건
우리나라 환경운동 수준을 10년 앞당긴 사상 최대 환경사고 두산전자 구미공장에서 방류한 1.3t의 페놀 원액이 낙동강의 지천으로 흘러들어간 것은 1991년 3월 14일 저녁 10시쯤이었다. 이것이 대구시 식수의 70%를 공급하는 다사수원지로 유입되어 정수처리제인 염소와 결합, 클로로페놀로 변한 것은 3월 16일 오후 2시쯤이었다. 페놀은 인쇄회로기판(PCB)을 만드는 수지나 농약 제조의 원료로 사용하는 독성 물질로 2차대전 때는 나치가 유대인을 학살할 때 사용하기도 했다....
국내 인터넷 시대 개막과 전길남
국내 최초 인터넷 연결은 1990년 6월 1일 이뤄져 우리나라 인터넷 역사는 1982년 5월 15일 경북 구미의 한국전자기술연구소와 서울대 전자계산학과를 네트워크로 연결한 ‘SDN’ 전산망으로부터 시작된다. 서울대의 PDP11 중형컴퓨터와 전자기술연구소의 VAX 11/780 중형컴퓨터가 1200bps 속도의 전용회선으로 연결된 SDN이 등장하기 전, 은행 온라인망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 네트워크는 대형 메인컴퓨터와 더미 터미널(데이터 처리능력 없이 데이터 입출력 기능만...
[장상인의 일본 산책] 나가사키 데지마(出島) 이야기 : 같은 쇄국인데도 조선은 하멜을 묶어놓고 일본은 실리 취해
by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하멜의 발자취를 찾기 위해서 서귀포로 갔다. 눈보라를 뚫고서 어렵게 용머리 바위에 다다랐다. 용의 머리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이름에 걸맞게 성난 파도와 맞장 뜨면서 생성된 바위들의 상흔은 기암절벽으로 변신해 오히려 멋진 볼거리를 제공했다. 그 바위 옆에는 하멜 일행이 탔던 상선 ‘스페르베르(Sperwer)호’의 축소판이 서있고, 산방산의 거대한 바위 아래 작은 기념비 하나가 홀연히 서 있다. 다름 아닌 ‘하멜 기념비’다....
되돌아 본 유일한의 기업 이념… 일자리 만들고 정직하게 납세하고 남은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
↑ 유일한과 중국계 아내 호미리 by 김지지 문재인 대통령이 1월 21일 경기도 부천에 소재한 유한대의 졸업식에 참석했다. 유한대는 설립자 유일한 박사의 교육철학에 따라 1962년 발족한 유한학원이 1977년 설립한 전문대학이다. 유일한 박사의 삶을 조명한다. 기업의 사회 환원 실천한 기업인 유일한(1895~1971)의 생전 기업 이념은 이랬다. “정성껏 좋은 상품을 만들어 국가와 동포에 봉사하고, 정직·성실하고 양심적인 인재를...
일제 통감부 민적법 공포
조선의 호적제도는 1894년 갑오경장 때 신분제도가 철폐되고 1896년 갑오개혁 입법의 일환으로 호구조사규칙(9월 1일)과 호구조사세칙(9월 3일)이 공포되면서 비로소 근대적인 모습을 띠었다. 그러나 부역과 징세의 행정편의가 법의 주목적이었던 탓에 가족의 신분 변동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호(戶)를 구성하는 기준이 호주와 혈연관계에 있는 친족이 아니라 동거여부에 따라 결정되다보니 호주의 직계존속이나 직계비속이라도 동거하지 않으면 호적을 달리했다. 따라서...
대만 근대사에서 최대비극으로 기록된 ‘2·28사건’
2차대전이 끝나고 패전국 일본이 대만을 중국에 반환했지만, 국·공내전에 경황이 없던 장개석은 대만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천이를 대만성 행정장관으로 파견했으나 행정과 치안은 여전히 공백상태였고 대륙 출신에 대한 대만인들의 반감은 더욱 높아만 갔다. 쌀값이 폭등하고 공무원 사이에 부정부패가 만연했으며 거들먹거리는 외성인(내륙 출신) 군인의 횡포 등으로 대만사회는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폭탄으로 바뀌어갔다. 그러던 1947년 2월 28일, 흥분한 5000여 명의 군중이 대만...
고교 평준화 발표
1973년 2월 28일, 획기적인 고교입시제도 개선안이 발표되었다. 실업계와 2부(야간) 고교는 종전처럼 학교별로 선발하되 인문계 고교와 마찬가지로 연합고사로 시험을 치르고, 인문계 고교는 학군제를 채택해 연합고사를 실시한 뒤 추첨을 통해 학교를 배정한다는 발표였다. 실업계 고교가 전기이고 인문계 고교가 후기인 것도 생소했지만 무엇보다 인문계 고교를 평준화시켜 지나친 경쟁을 지양한다는 것이 가장 큰 변화였다. 입시교육으로 인한 중3병, 고교 간 교육격차 심화, 재수생의 누적과...
‘제3의 길’ 추구한 조봉암, 사형 선고 확정
1959년 2월 27일 ‘진보당사건’으로 구속된 조봉암에게 대법원이 간첩 및 국가보안법 위반죄를 적용, 사형을 선고했다. 진보당사건은 1956년 11월에 결성된 진보당이 북한의 간첩과 접선하고 북한의 통일방안을 주장했다며 1958년 1월에 당 간부 전원이 검거된 사건이다. 그러나 이것은 표면상의 이유일 뿐 이승만 대통령의 장기집권 계획에 방해가 되어 정치적으로 희생되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일제 때 공산주의자로 활동하다 해방 후 공산주의와 결별하고 중도통합노선을 선택한...
독일 베를린 국회의사당 방화사건
1932년 11월에 치러진 총선에서 기존 의석 230석이 196석으로 줄어드는 첫 후퇴를 경험하지만 나치당은 여전히 제1당이었고, 이를 발판으로 히틀러는 1933년 1월 30일 마침내 독일의 총리가 되었다. 힌덴부르크가 명목상 제1인자인 대통령이라고는 하나 그는 86세의 무력한 노인에 불과했다. 히틀러는 총리 취임 다음날, 다가오는 3월 5일에 총선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과반수 의석 확보를 목표로 국영 라디오는 하루종일 나치의 선전․선동으로 소란스러웠고, 길거리는 반대파를...
서태지와 아이들 1집 음반 ‘난 알아요’ 발표
↑ 서태지와 아이들 일약 신세대 문화의 아이콘으로 부상하고 대중문화의 상징으로 당대를 풍미해 반독재·민주화운동의 사회 분위기에 눌려 제대로 꽃을 피우지 못하고 있던 1980년대의 대중문화가 1990년대를 맞아 활짝 만개한 데는 서태지의 역할이 크다. 1992년 3월 23일 서태지와 아이들의 첫 음반 ‘난 알아요’가 발매되고 그 후 20일도 지나지 않아 한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난 알아요’가 방송 전파를 탄 것은 기존 대중가요의 근간을 흔들어 놓을 전주곡이었다. 이후 서태지는...
두산전자 낙동강 페놀 방류 사건
우리나라 환경운동 수준을 10년 앞당긴 사상 최대 환경사고 두산전자 구미공장에서 방류한 1.3t의 페놀 원액이 낙동강의 지천으로 흘러들어간 것은 1991년 3월 14일 저녁 10시쯤이었다. 이것이 대구시 식수의 70%를 공급하는 다사수원지로 유입되어 정수처리제인 염소와 결합, 클로로페놀로 변한 것은 3월 16일 오후 2시쯤이었다. 페놀은 인쇄회로기판(PCB)을 만드는 수지나 농약 제조의 원료로 사용하는 독성 물질로 2차대전 때는 나치가 유대인을 학살할 때 사용하기도 했다....
국내 인터넷 시대 개막과 전길남
국내 최초 인터넷 연결은 1990년 6월 1일 이뤄져 우리나라 인터넷 역사는 1982년 5월 15일 경북 구미의 한국전자기술연구소와 서울대 전자계산학과를 네트워크로 연결한 ‘SDN’ 전산망으로부터 시작된다. 서울대의 PDP11 중형컴퓨터와 전자기술연구소의 VAX 11/780 중형컴퓨터가 1200bps 속도의 전용회선으로 연결된 SDN이 등장하기 전, 은행 온라인망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 네트워크는 대형 메인컴퓨터와 더미 터미널(데이터 처리능력 없이 데이터 입출력 기능만...
[장상인의 일본 산책] 나가사키 데지마(出島) 이야기 : 같은 쇄국인데도 조선은 하멜을 묶어놓고 일본은 실리 취해
by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하멜의 발자취를 찾기 위해서 서귀포로 갔다. 눈보라를 뚫고서 어렵게 용머리 바위에 다다랐다. 용의 머리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이름에 걸맞게 성난 파도와 맞장 뜨면서 생성된 바위들의 상흔은 기암절벽으로 변신해 오히려 멋진 볼거리를 제공했다. 그 바위 옆에는 하멜 일행이 탔던 상선 ‘스페르베르(Sperwer)호’의 축소판이 서있고, 산방산의 거대한 바위 아래 작은 기념비 하나가 홀연히 서 있다. 다름 아닌 ‘하멜 기념비’다....
되돌아 본 유일한의 기업 이념… 일자리 만들고 정직하게 납세하고 남은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
↑ 유일한과 중국계 아내 호미리 by 김지지 문재인 대통령이 1월 21일 경기도 부천에 소재한 유한대의 졸업식에 참석했다. 유한대는 설립자 유일한 박사의 교육철학에 따라 1962년 발족한 유한학원이 1977년 설립한 전문대학이다. 유일한 박사의 삶을 조명한다. 기업의 사회 환원 실천한 기업인 유일한(1895~1971)의 생전 기업 이념은 이랬다. “정성껏 좋은 상품을 만들어 국가와 동포에 봉사하고, 정직·성실하고 양심적인 인재를...
일제 통감부 민적법 공포
조선의 호적제도는 1894년 갑오경장 때 신분제도가 철폐되고 1896년 갑오개혁 입법의 일환으로 호구조사규칙(9월 1일)과 호구조사세칙(9월 3일)이 공포되면서 비로소 근대적인 모습을 띠었다. 그러나 부역과 징세의 행정편의가 법의 주목적이었던 탓에 가족의 신분 변동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호(戶)를 구성하는 기준이 호주와 혈연관계에 있는 친족이 아니라 동거여부에 따라 결정되다보니 호주의 직계존속이나 직계비속이라도 동거하지 않으면 호적을 달리했다. 따라서...
대만 근대사에서 최대비극으로 기록된 ‘2·28사건’
2차대전이 끝나고 패전국 일본이 대만을 중국에 반환했지만, 국·공내전에 경황이 없던 장개석은 대만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천이를 대만성 행정장관으로 파견했으나 행정과 치안은 여전히 공백상태였고 대륙 출신에 대한 대만인들의 반감은 더욱 높아만 갔다. 쌀값이 폭등하고 공무원 사이에 부정부패가 만연했으며 거들먹거리는 외성인(내륙 출신) 군인의 횡포 등으로 대만사회는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폭탄으로 바뀌어갔다. 그러던 1947년 2월 28일, 흥분한 5000여 명의 군중이 대만...
고교 평준화 발표
1973년 2월 28일, 획기적인 고교입시제도 개선안이 발표되었다. 실업계와 2부(야간) 고교는 종전처럼 학교별로 선발하되 인문계 고교와 마찬가지로 연합고사로 시험을 치르고, 인문계 고교는 학군제를 채택해 연합고사를 실시한 뒤 추첨을 통해 학교를 배정한다는 발표였다. 실업계 고교가 전기이고 인문계 고교가 후기인 것도 생소했지만 무엇보다 인문계 고교를 평준화시켜 지나친 경쟁을 지양한다는 것이 가장 큰 변화였다. 입시교육으로 인한 중3병, 고교 간 교육격차 심화, 재수생의 누적과...
‘제3의 길’ 추구한 조봉암, 사형 선고 확정
1959년 2월 27일 ‘진보당사건’으로 구속된 조봉암에게 대법원이 간첩 및 국가보안법 위반죄를 적용, 사형을 선고했다. 진보당사건은 1956년 11월에 결성된 진보당이 북한의 간첩과 접선하고 북한의 통일방안을 주장했다며 1958년 1월에 당 간부 전원이 검거된 사건이다. 그러나 이것은 표면상의 이유일 뿐 이승만 대통령의 장기집권 계획에 방해가 되어 정치적으로 희생되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일제 때 공산주의자로 활동하다 해방 후 공산주의와 결별하고 중도통합노선을 선택한...
독일 베를린 국회의사당 방화사건
1932년 11월에 치러진 총선에서 기존 의석 230석이 196석으로 줄어드는 첫 후퇴를 경험하지만 나치당은 여전히 제1당이었고, 이를 발판으로 히틀러는 1933년 1월 30일 마침내 독일의 총리가 되었다. 힌덴부르크가 명목상 제1인자인 대통령이라고는 하나 그는 86세의 무력한 노인에 불과했다. 히틀러는 총리 취임 다음날, 다가오는 3월 5일에 총선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과반수 의석 확보를 목표로 국영 라디오는 하루종일 나치의 선전․선동으로 소란스러웠고, 길거리는 반대파를...
서태지와 아이들 1집 음반 ‘난 알아요’ 발표
↑ 서태지와 아이들 일약 신세대 문화의 아이콘으로 부상하고 대중문화의 상징으로 당대를 풍미해 반독재·민주화운동의 사회 분위기에 눌려 제대로 꽃을 피우지 못하고 있던 1980년대의 대중문화가 1990년대를 맞아 활짝 만개한 데는 서태지의 역할이 크다. 1992년 3월 23일 서태지와 아이들의 첫 음반 ‘난 알아요’가 발매되고 그 후 20일도 지나지 않아 한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난 알아요’가 방송 전파를 탄 것은 기존 대중가요의 근간을 흔들어 놓을 전주곡이었다. 이후 서태지는...
두산전자 낙동강 페놀 방류 사건
우리나라 환경운동 수준을 10년 앞당긴 사상 최대 환경사고 두산전자 구미공장에서 방류한 1.3t의 페놀 원액이 낙동강의 지천으로 흘러들어간 것은 1991년 3월 14일 저녁 10시쯤이었다. 이것이 대구시 식수의 70%를 공급하는 다사수원지로 유입되어 정수처리제인 염소와 결합, 클로로페놀로 변한 것은 3월 16일 오후 2시쯤이었다. 페놀은 인쇄회로기판(PCB)을 만드는 수지나 농약 제조의 원료로 사용하는 독성 물질로 2차대전 때는 나치가 유대인을 학살할 때 사용하기도 했다....
국내 인터넷 시대 개막과 전길남
국내 최초 인터넷 연결은 1990년 6월 1일 이뤄져 우리나라 인터넷 역사는 1982년 5월 15일 경북 구미의 한국전자기술연구소와 서울대 전자계산학과를 네트워크로 연결한 ‘SDN’ 전산망으로부터 시작된다. 서울대의 PDP11 중형컴퓨터와 전자기술연구소의 VAX 11/780 중형컴퓨터가 1200bps 속도의 전용회선으로 연결된 SDN이 등장하기 전, 은행 온라인망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 네트워크는 대형 메인컴퓨터와 더미 터미널(데이터 처리능력 없이 데이터 입출력 기능만...
[장상인의 일본 산책] 나가사키 데지마(出島) 이야기 : 같은 쇄국인데도 조선은 하멜을 묶어놓고 일본은 실리 취해
by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하멜의 발자취를 찾기 위해서 서귀포로 갔다. 눈보라를 뚫고서 어렵게 용머리 바위에 다다랐다. 용의 머리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이름에 걸맞게 성난 파도와 맞장 뜨면서 생성된 바위들의 상흔은 기암절벽으로 변신해 오히려 멋진 볼거리를 제공했다. 그 바위 옆에는 하멜 일행이 탔던 상선 ‘스페르베르(Sperwer)호’의 축소판이 서있고, 산방산의 거대한 바위 아래 작은 기념비 하나가 홀연히 서 있다. 다름 아닌 ‘하멜 기념비’다....
되돌아 본 유일한의 기업 이념… 일자리 만들고 정직하게 납세하고 남은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
↑ 유일한과 중국계 아내 호미리 by 김지지 문재인 대통령이 1월 21일 경기도 부천에 소재한 유한대의 졸업식에 참석했다. 유한대는 설립자 유일한 박사의 교육철학에 따라 1962년 발족한 유한학원이 1977년 설립한 전문대학이다. 유일한 박사의 삶을 조명한다. 기업의 사회 환원 실천한 기업인 유일한(1895~1971)의 생전 기업 이념은 이랬다. “정성껏 좋은 상품을 만들어 국가와 동포에 봉사하고, 정직·성실하고 양심적인 인재를...
일제 통감부 민적법 공포
조선의 호적제도는 1894년 갑오경장 때 신분제도가 철폐되고 1896년 갑오개혁 입법의 일환으로 호구조사규칙(9월 1일)과 호구조사세칙(9월 3일)이 공포되면서 비로소 근대적인 모습을 띠었다. 그러나 부역과 징세의 행정편의가 법의 주목적이었던 탓에 가족의 신분 변동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호(戶)를 구성하는 기준이 호주와 혈연관계에 있는 친족이 아니라 동거여부에 따라 결정되다보니 호주의 직계존속이나 직계비속이라도 동거하지 않으면 호적을 달리했다. 따라서...
대만 근대사에서 최대비극으로 기록된 ‘2·28사건’
2차대전이 끝나고 패전국 일본이 대만을 중국에 반환했지만, 국·공내전에 경황이 없던 장개석은 대만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천이를 대만성 행정장관으로 파견했으나 행정과 치안은 여전히 공백상태였고 대륙 출신에 대한 대만인들의 반감은 더욱 높아만 갔다. 쌀값이 폭등하고 공무원 사이에 부정부패가 만연했으며 거들먹거리는 외성인(내륙 출신) 군인의 횡포 등으로 대만사회는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폭탄으로 바뀌어갔다. 그러던 1947년 2월 28일, 흥분한 5000여 명의 군중이 대만...
고교 평준화 발표
1973년 2월 28일, 획기적인 고교입시제도 개선안이 발표되었다. 실업계와 2부(야간) 고교는 종전처럼 학교별로 선발하되 인문계 고교와 마찬가지로 연합고사로 시험을 치르고, 인문계 고교는 학군제를 채택해 연합고사를 실시한 뒤 추첨을 통해 학교를 배정한다는 발표였다. 실업계 고교가 전기이고 인문계 고교가 후기인 것도 생소했지만 무엇보다 인문계 고교를 평준화시켜 지나친 경쟁을 지양한다는 것이 가장 큰 변화였다. 입시교육으로 인한 중3병, 고교 간 교육격차 심화, 재수생의 누적과...
‘제3의 길’ 추구한 조봉암, 사형 선고 확정
1959년 2월 27일 ‘진보당사건’으로 구속된 조봉암에게 대법원이 간첩 및 국가보안법 위반죄를 적용, 사형을 선고했다. 진보당사건은 1956년 11월에 결성된 진보당이 북한의 간첩과 접선하고 북한의 통일방안을 주장했다며 1958년 1월에 당 간부 전원이 검거된 사건이다. 그러나 이것은 표면상의 이유일 뿐 이승만 대통령의 장기집권 계획에 방해가 되어 정치적으로 희생되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일제 때 공산주의자로 활동하다 해방 후 공산주의와 결별하고 중도통합노선을 선택한...
독일 베를린 국회의사당 방화사건
1932년 11월에 치러진 총선에서 기존 의석 230석이 196석으로 줄어드는 첫 후퇴를 경험하지만 나치당은 여전히 제1당이었고, 이를 발판으로 히틀러는 1933년 1월 30일 마침내 독일의 총리가 되었다. 힌덴부르크가 명목상 제1인자인 대통령이라고는 하나 그는 86세의 무력한 노인에 불과했다. 히틀러는 총리 취임 다음날, 다가오는 3월 5일에 총선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과반수 의석 확보를 목표로 국영 라디오는 하루종일 나치의 선전․선동으로 소란스러웠고, 길거리는 반대파를...
서태지와 아이들 1집 음반 ‘난 알아요’ 발표
↑ 서태지와 아이들 일약 신세대 문화의 아이콘으로 부상하고 대중문화의 상징으로 당대를 풍미해 반독재·민주화운동의 사회 분위기에 눌려 제대로 꽃을 피우지 못하고 있던 1980년대의 대중문화가 1990년대를 맞아 활짝 만개한 데는 서태지의 역할이 크다. 1992년 3월 23일 서태지와 아이들의 첫 음반 ‘난 알아요’가 발매되고 그 후 20일도 지나지 않아 한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난 알아요’가 방송 전파를 탄 것은 기존 대중가요의 근간을 흔들어 놓을 전주곡이었다. 이후 서태지는...
두산전자 낙동강 페놀 방류 사건
우리나라 환경운동 수준을 10년 앞당긴 사상 최대 환경사고 두산전자 구미공장에서 방류한 1.3t의 페놀 원액이 낙동강의 지천으로 흘러들어간 것은 1991년 3월 14일 저녁 10시쯤이었다. 이것이 대구시 식수의 70%를 공급하는 다사수원지로 유입되어 정수처리제인 염소와 결합, 클로로페놀로 변한 것은 3월 16일 오후 2시쯤이었다. 페놀은 인쇄회로기판(PCB)을 만드는 수지나 농약 제조의 원료로 사용하는 독성 물질로 2차대전 때는 나치가 유대인을 학살할 때 사용하기도 했다....
국내 인터넷 시대 개막과 전길남
국내 최초 인터넷 연결은 1990년 6월 1일 이뤄져 우리나라 인터넷 역사는 1982년 5월 15일 경북 구미의 한국전자기술연구소와 서울대 전자계산학과를 네트워크로 연결한 ‘SDN’ 전산망으로부터 시작된다. 서울대의 PDP11 중형컴퓨터와 전자기술연구소의 VAX 11/780 중형컴퓨터가 1200bps 속도의 전용회선으로 연결된 SDN이 등장하기 전, 은행 온라인망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 네트워크는 대형 메인컴퓨터와 더미 터미널(데이터 처리능력 없이 데이터 입출력 기능만...
[장상인의 일본 산책] 나가사키 데지마(出島) 이야기 : 같은 쇄국인데도 조선은 하멜을 묶어놓고 일본은 실리 취해
by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하멜의 발자취를 찾기 위해서 서귀포로 갔다. 눈보라를 뚫고서 어렵게 용머리 바위에 다다랐다. 용의 머리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이름에 걸맞게 성난 파도와 맞장 뜨면서 생성된 바위들의 상흔은 기암절벽으로 변신해 오히려 멋진 볼거리를 제공했다. 그 바위 옆에는 하멜 일행이 탔던 상선 ‘스페르베르(Sperwer)호’의 축소판이 서있고, 산방산의 거대한 바위 아래 작은 기념비 하나가 홀연히 서 있다. 다름 아닌 ‘하멜 기념비’다....
되돌아 본 유일한의 기업 이념… 일자리 만들고 정직하게 납세하고 남은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
↑ 유일한과 중국계 아내 호미리 by 김지지 문재인 대통령이 1월 21일 경기도 부천에 소재한 유한대의 졸업식에 참석했다. 유한대는 설립자 유일한 박사의 교육철학에 따라 1962년 발족한 유한학원이 1977년 설립한 전문대학이다. 유일한 박사의 삶을 조명한다. 기업의 사회 환원 실천한 기업인 유일한(1895~1971)의 생전 기업 이념은 이랬다. “정성껏 좋은 상품을 만들어 국가와 동포에 봉사하고, 정직·성실하고 양심적인 인재를...
일제 통감부 민적법 공포
조선의 호적제도는 1894년 갑오경장 때 신분제도가 철폐되고 1896년 갑오개혁 입법의 일환으로 호구조사규칙(9월 1일)과 호구조사세칙(9월 3일)이 공포되면서 비로소 근대적인 모습을 띠었다. 그러나 부역과 징세의 행정편의가 법의 주목적이었던 탓에 가족의 신분 변동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호(戶)를 구성하는 기준이 호주와 혈연관계에 있는 친족이 아니라 동거여부에 따라 결정되다보니 호주의 직계존속이나 직계비속이라도 동거하지 않으면 호적을 달리했다. 따라서...
대만 근대사에서 최대비극으로 기록된 ‘2·28사건’
2차대전이 끝나고 패전국 일본이 대만을 중국에 반환했지만, 국·공내전에 경황이 없던 장개석은 대만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천이를 대만성 행정장관으로 파견했으나 행정과 치안은 여전히 공백상태였고 대륙 출신에 대한 대만인들의 반감은 더욱 높아만 갔다. 쌀값이 폭등하고 공무원 사이에 부정부패가 만연했으며 거들먹거리는 외성인(내륙 출신) 군인의 횡포 등으로 대만사회는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폭탄으로 바뀌어갔다. 그러던 1947년 2월 28일, 흥분한 5000여 명의 군중이 대만...
고교 평준화 발표
1973년 2월 28일, 획기적인 고교입시제도 개선안이 발표되었다. 실업계와 2부(야간) 고교는 종전처럼 학교별로 선발하되 인문계 고교와 마찬가지로 연합고사로 시험을 치르고, 인문계 고교는 학군제를 채택해 연합고사를 실시한 뒤 추첨을 통해 학교를 배정한다는 발표였다. 실업계 고교가 전기이고 인문계 고교가 후기인 것도 생소했지만 무엇보다 인문계 고교를 평준화시켜 지나친 경쟁을 지양한다는 것이 가장 큰 변화였다. 입시교육으로 인한 중3병, 고교 간 교육격차 심화, 재수생의 누적과...
‘제3의 길’ 추구한 조봉암, 사형 선고 확정
1959년 2월 27일 ‘진보당사건’으로 구속된 조봉암에게 대법원이 간첩 및 국가보안법 위반죄를 적용, 사형을 선고했다. 진보당사건은 1956년 11월에 결성된 진보당이 북한의 간첩과 접선하고 북한의 통일방안을 주장했다며 1958년 1월에 당 간부 전원이 검거된 사건이다. 그러나 이것은 표면상의 이유일 뿐 이승만 대통령의 장기집권 계획에 방해가 되어 정치적으로 희생되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일제 때 공산주의자로 활동하다 해방 후 공산주의와 결별하고 중도통합노선을 선택한...
독일 베를린 국회의사당 방화사건
1932년 11월에 치러진 총선에서 기존 의석 230석이 196석으로 줄어드는 첫 후퇴를 경험하지만 나치당은 여전히 제1당이었고, 이를 발판으로 히틀러는 1933년 1월 30일 마침내 독일의 총리가 되었다. 힌덴부르크가 명목상 제1인자인 대통령이라고는 하나 그는 86세의 무력한 노인에 불과했다. 히틀러는 총리 취임 다음날, 다가오는 3월 5일에 총선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과반수 의석 확보를 목표로 국영 라디오는 하루종일 나치의 선전․선동으로 소란스러웠고, 길거리는 반대파를...
서태지와 아이들 1집 음반 ‘난 알아요’ 발표
↑ 서태지와 아이들 일약 신세대 문화의 아이콘으로 부상하고 대중문화의 상징으로 당대를 풍미해 반독재·민주화운동의 사회 분위기에 눌려 제대로 꽃을 피우지 못하고 있던 1980년대의 대중문화가 1990년대를 맞아 활짝 만개한 데는 서태지의 역할이 크다. 1992년 3월 23일 서태지와 아이들의 첫 음반 ‘난 알아요’가 발매되고 그 후 20일도 지나지 않아 한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난 알아요’가 방송 전파를 탄 것은 기존 대중가요의 근간을 흔들어 놓을 전주곡이었다. 이후 서태지는...
두산전자 낙동강 페놀 방류 사건
우리나라 환경운동 수준을 10년 앞당긴 사상 최대 환경사고 두산전자 구미공장에서 방류한 1.3t의 페놀 원액이 낙동강의 지천으로 흘러들어간 것은 1991년 3월 14일 저녁 10시쯤이었다. 이것이 대구시 식수의 70%를 공급하는 다사수원지로 유입되어 정수처리제인 염소와 결합, 클로로페놀로 변한 것은 3월 16일 오후 2시쯤이었다. 페놀은 인쇄회로기판(PCB)을 만드는 수지나 농약 제조의 원료로 사용하는 독성 물질로 2차대전 때는 나치가 유대인을 학살할 때 사용하기도 했다....
국내 인터넷 시대 개막과 전길남
국내 최초 인터넷 연결은 1990년 6월 1일 이뤄져 우리나라 인터넷 역사는 1982년 5월 15일 경북 구미의 한국전자기술연구소와 서울대 전자계산학과를 네트워크로 연결한 ‘SDN’ 전산망으로부터 시작된다. 서울대의 PDP11 중형컴퓨터와 전자기술연구소의 VAX 11/780 중형컴퓨터가 1200bps 속도의 전용회선으로 연결된 SDN이 등장하기 전, 은행 온라인망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 네트워크는 대형 메인컴퓨터와 더미 터미널(데이터 처리능력 없이 데이터 입출력 기능만...
[장상인의 일본 산책] 나가사키 데지마(出島) 이야기 : 같은 쇄국인데도 조선은 하멜을 묶어놓고 일본은 실리 취해
by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하멜의 발자취를 찾기 위해서 서귀포로 갔다. 눈보라를 뚫고서 어렵게 용머리 바위에 다다랐다. 용의 머리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이름에 걸맞게 성난 파도와 맞장 뜨면서 생성된 바위들의 상흔은 기암절벽으로 변신해 오히려 멋진 볼거리를 제공했다. 그 바위 옆에는 하멜 일행이 탔던 상선 ‘스페르베르(Sperwer)호’의 축소판이 서있고, 산방산의 거대한 바위 아래 작은 기념비 하나가 홀연히 서 있다. 다름 아닌 ‘하멜 기념비’다....
되돌아 본 유일한의 기업 이념… 일자리 만들고 정직하게 납세하고 남은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
↑ 유일한과 중국계 아내 호미리 by 김지지 문재인 대통령이 1월 21일 경기도 부천에 소재한 유한대의 졸업식에 참석했다. 유한대는 설립자 유일한 박사의 교육철학에 따라 1962년 발족한 유한학원이 1977년 설립한 전문대학이다. 유일한 박사의 삶을 조명한다. 기업의 사회 환원 실천한 기업인 유일한(1895~1971)의 생전 기업 이념은 이랬다. “정성껏 좋은 상품을 만들어 국가와 동포에 봉사하고, 정직·성실하고 양심적인 인재를...
일제 통감부 민적법 공포
조선의 호적제도는 1894년 갑오경장 때 신분제도가 철폐되고 1896년 갑오개혁 입법의 일환으로 호구조사규칙(9월 1일)과 호구조사세칙(9월 3일)이 공포되면서 비로소 근대적인 모습을 띠었다. 그러나 부역과 징세의 행정편의가 법의 주목적이었던 탓에 가족의 신분 변동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호(戶)를 구성하는 기준이 호주와 혈연관계에 있는 친족이 아니라 동거여부에 따라 결정되다보니 호주의 직계존속이나 직계비속이라도 동거하지 않으면 호적을 달리했다. 따라서...
대만 근대사에서 최대비극으로 기록된 ‘2·28사건’
2차대전이 끝나고 패전국 일본이 대만을 중국에 반환했지만, 국·공내전에 경황이 없던 장개석은 대만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천이를 대만성 행정장관으로 파견했으나 행정과 치안은 여전히 공백상태였고 대륙 출신에 대한 대만인들의 반감은 더욱 높아만 갔다. 쌀값이 폭등하고 공무원 사이에 부정부패가 만연했으며 거들먹거리는 외성인(내륙 출신) 군인의 횡포 등으로 대만사회는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폭탄으로 바뀌어갔다. 그러던 1947년 2월 28일, 흥분한 5000여 명의 군중이 대만...
고교 평준화 발표
1973년 2월 28일, 획기적인 고교입시제도 개선안이 발표되었다. 실업계와 2부(야간) 고교는 종전처럼 학교별로 선발하되 인문계 고교와 마찬가지로 연합고사로 시험을 치르고, 인문계 고교는 학군제를 채택해 연합고사를 실시한 뒤 추첨을 통해 학교를 배정한다는 발표였다. 실업계 고교가 전기이고 인문계 고교가 후기인 것도 생소했지만 무엇보다 인문계 고교를 평준화시켜 지나친 경쟁을 지양한다는 것이 가장 큰 변화였다. 입시교육으로 인한 중3병, 고교 간 교육격차 심화, 재수생의 누적과...
‘제3의 길’ 추구한 조봉암, 사형 선고 확정
1959년 2월 27일 ‘진보당사건’으로 구속된 조봉암에게 대법원이 간첩 및 국가보안법 위반죄를 적용, 사형을 선고했다. 진보당사건은 1956년 11월에 결성된 진보당이 북한의 간첩과 접선하고 북한의 통일방안을 주장했다며 1958년 1월에 당 간부 전원이 검거된 사건이다. 그러나 이것은 표면상의 이유일 뿐 이승만 대통령의 장기집권 계획에 방해가 되어 정치적으로 희생되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일제 때 공산주의자로 활동하다 해방 후 공산주의와 결별하고 중도통합노선을 선택한...
독일 베를린 국회의사당 방화사건
1932년 11월에 치러진 총선에서 기존 의석 230석이 196석으로 줄어드는 첫 후퇴를 경험하지만 나치당은 여전히 제1당이었고, 이를 발판으로 히틀러는 1933년 1월 30일 마침내 독일의 총리가 되었다. 힌덴부르크가 명목상 제1인자인 대통령이라고는 하나 그는 86세의 무력한 노인에 불과했다. 히틀러는 총리 취임 다음날, 다가오는 3월 5일에 총선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과반수 의석 확보를 목표로 국영 라디오는 하루종일 나치의 선전․선동으로 소란스러웠고, 길거리는 반대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