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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68혁명의 도화선 ‘6월 2일 사건’

1967년 서독. 젊은이들의 베트남전 반대 시위가 갈수록 격화되고 있었다. 특히 ‘최전방 도시’ 베를린은 다른 도시에 비해 그 정도가 심했다. 1967년 6월, 팔레비 이란 국왕이 서베를린을 국빈 방문하자 학생들은 반민주적인 독재자 팔레비의 방문을 허용하려하지 않았다. 6월 2일 팔레비 부부가 오페라 ‘마적’을 감상하기 위해 도이치 오페라하우스를 찾았을 때 학생들은 극장 밖에서 반대 시위를 벌였다. 도로는 수천명의 학생들로 뒤덮였고 저지선은 이미 뚫려 있었다. 저녁 8시가...

영국 정부, 인도·파키스탄 분리 독립안 발표

1947년 6월 3일, 영국의 루이스 마운트배튼 인도 총독이 1857년 세포이항쟁 이후 90년간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를 힌두교 지역과 무슬림 지역으로 나눠 각각 제헌의회를 세운다는 독립안(案)을 발표했다. 분리안은 두 종교 세력을 대표하는 국민회의파와 무슬림연맹에 의해 각각 승인됐다. 2차대전을 전후로 힌두교의 국민회의파를 중심으로 순조롭게 진행되던 독립 일정에 차질이 생긴 것은 모하메드 알리 지나가 이끄는 무슬림연맹이 분리를 요구하면서였다. 지나는 당초에는 힌두·회교도의...

국내 인터넷 시작

1990년 6월 1일, 언론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국의 미래를 크게 바꾸어놓을 작은 이벤트가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있었다. KAIST의 전길남 교수가 ‘썬스팍1’이라는 워크스테이션급의 컴퓨터를 켜자 곧이어 국내 하나망(HANANET)과 미국 하와이 대학 간에 설치된 56Kbps 인터넷 전용선을 따라 이메일과 데이터 파일이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의 인터넷이 국제 사회에 출생신고를 하는 순간이었다. 다만 국내 인터넷의 효시는 1982년 7월 서울대 전자계산학과와...

김지하 詩 ‘오적’ 파문

박정희 대통령의 장기집권 시도로 정치·사회적인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던 1970년, 잡지 ‘사상계’ 5월호에 세상을 들끓게 한 시(時) 한 편이 발표됐다. “서울이라 장안 한 복판에 다섯 도둑이 모여 살았겄다./(중략) 예가 바로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이라 이름하는/ 간뗑이 부어 남산 만하고 목질기가 동탁 배꼽같은 천하흉포 오적의 소굴이렸다.” 김지하의 담시(譚詩) 오적(五賊)이었다. 아이디어를 처음 제공한 사람은 사상계 편집위원 김승균이었다. 그는...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맹인 사회사업가 헬렌 켈러 사망

1904년 6월 28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의 래드클리프대 졸업식에 참석한 사람들의 표정이 예년과 사뭇 달랐다. 생후 19개월 만에 뇌척수막염을 앓아,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면서 이 학교를 졸업하는 헬렌 켈러 때문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은 또 다른 곳에 모아졌다. 헬렌을 세상 속으로 이끌어내고 50여 년간 2인3각으로 헬렌의 눈과 귀가 되어준 가정교사 애니 설리번이었다. 애니가 헬렌의 가정교사가 된 것은 헬렌의 나이 7세 때였다. 애니는 20세에 불과한 어린...

영화 는 태평양전쟁의 향배를 한순간에 바꾼 ‘미드웨이 전투’를 다룬 영화… 일본으로서는 16세기 말 이순신 장군에게 당한 패배 이후 최초로 대패

영화 <미드웨이>는 태평양전쟁의 향배를 한순간에 바꾼 ‘미드웨이 전투’를 다룬 영화… 일본으로서는 16세기 말 이순신 장군에게 당한 패배 이후 최초로 대패

↑ 영화 <미드웨이> 한 장면   by 김지지   미드웨이 해전은 태평양전쟁 초기인 1942년 6월 5일부터 3일 동안 하와이 북서쪽 미드웨이 앞바다에서 있었던 미·일 양군 사이의 해전이다. 이 전쟁을 다룬 영화 ‘미드웨이’가 지난 12월 31일 국내에서 개봉되었다.   日, 미드웨이 해전을 태평양 전체 싸움의 승부처로 간주 일본은 1941년 12월 진주만 공습에 성공하고 이후 5개월 만에 괌, 홍콩, 필리핀, 말레이시아, 수마트라,...

[지리산 국립공원]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를 2박 3일 지리산 종주기… “그날 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내였다”

[지리산 국립공원]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를 2박 3일 지리산 종주기… “그날 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내였다”

↑ 지리산 천왕봉에서 바라본 일출 장면.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단다.   by 김지지   ■희용의 꼬드김 대학친구 이희용이 꼬드겼다. 2박 3일간 지리산 종주를 해보자고. 꼬드김은 나에게 결단을 요구했고 결과적으로 더없는 행복을 내게 선물했다. 지리산 종주는 나에게 언감생심이었다. 지리산 천왕봉이야 30대까지 몇 번을 올라가긴 했으나 종주는 정말이지 먼나라 얘기였다. 이런 나에게 희용이가 연초에 제안했을 때 걱정은 되었지만 일단 OK로 화답했다. 지금...

[장상인의 일본 산책] 일본의 역사 요동치게 한 교토 ‘혼노지의 변(本能寺の変 )’ 현장에서 말(言)이 주는 상처를 떠올리다

[장상인의 일본 산책] 일본의 역사 요동치게 한 교토 ‘혼노지의 변(本能寺の変 )’ 현장에서 말(言)이 주는 상처를 떠올리다

↑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가 부하 장수 아키치 미쓰히데의 습격을 받는 그림 (출처 위키피디아)   by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교토(京都) 시청사 건너편에 ‘데라마치(寺町)’라는 거리가 있다. 사찰과 상점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이곳은 헤이안(平安, 794~1185) 시대부터 번창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었으나 계속되는 전란으로 쇠락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1590년 시작된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 1537~1598)의 교토 대개조에 의해서...

“만지면 만질수록 그 증세가 덧나는 상처와도 같은 존재”라는 춘원 李光洙에 대하여

“만지면 만질수록 그 증세가 덧나는 상처와도 같은 존재”라는 춘원 李光洙에 대하여

↑ 이광수와 허영숙. 아이는 첫아들 봉근이다. 1928년 모습   ☞ 전문(全文)은 이곳으로 옮겼습니다. 클릭!!   낙인처럼 따라다니는 비난의 키워드는 ‘민족 반역자’요 ‘친일파’ 이광수(1892~1950)에게 낙인처럼 따라다니는 비난의 키워드는 ‘민족 반역자’요 ‘친일파’다. 하지만 문학계 일부에서는 이광수의 친일 활동은 인정하면서도 “다면성을 외면하고 친일파라는 족쇄만 채운다면 우리 문학사에 남겨진 이광수의 족적이 형해조차 없어진다”며 안타까워하는...

43년 만에 가진 고교 1학년 사은회·반창회에서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미루지 말고 당장 인생을 즐겨라” “아내를 섬겨라”

43년 만에 가진 고교 1학년 사은회·반창회에서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미루지 말고 당장 인생을 즐겨라” “아내를 섬겨라”

↑ 다들 올들어 가장 행복해하는 표정이다.   by 김지지   그해 3월 초에 국가적으로 특별한 일이 없었으니 1976년 3월 2일이었을 게다. 그날은 전국 공통의 고교 1학년 입학일이었다. 중학교라는 좁은 울타리에서 벗어나 더 넓게 펼쳐질 고등학교 입학식이었으니 필시 신입생들의 얼굴은 긴장감으로 굳어있었을 것이다.   우리도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서울 신설동 소재 대광고 1학년 7반 교실에 모였지만 내 기억 속에 그날의 풍경은 없다. 다만 오전...

독일 68혁명의 도화선 ‘6월 2일 사건’

1967년 서독. 젊은이들의 베트남전 반대 시위가 갈수록 격화되고 있었다. 특히 ‘최전방 도시’ 베를린은 다른 도시에 비해 그 정도가 심했다. 1967년 6월, 팔레비 이란 국왕이 서베를린을 국빈 방문하자 학생들은 반민주적인 독재자 팔레비의 방문을 허용하려하지 않았다. 6월 2일 팔레비 부부가 오페라 ‘마적’을 감상하기 위해 도이치 오페라하우스를 찾았을 때 학생들은 극장 밖에서 반대 시위를 벌였다. 도로는 수천명의 학생들로 뒤덮였고 저지선은 이미 뚫려 있었다. 저녁 8시가...

영국 정부, 인도·파키스탄 분리 독립안 발표

1947년 6월 3일, 영국의 루이스 마운트배튼 인도 총독이 1857년 세포이항쟁 이후 90년간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를 힌두교 지역과 무슬림 지역으로 나눠 각각 제헌의회를 세운다는 독립안(案)을 발표했다. 분리안은 두 종교 세력을 대표하는 국민회의파와 무슬림연맹에 의해 각각 승인됐다. 2차대전을 전후로 힌두교의 국민회의파를 중심으로 순조롭게 진행되던 독립 일정에 차질이 생긴 것은 모하메드 알리 지나가 이끄는 무슬림연맹이 분리를 요구하면서였다. 지나는 당초에는 힌두·회교도의...

국내 인터넷 시작

1990년 6월 1일, 언론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국의 미래를 크게 바꾸어놓을 작은 이벤트가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있었다. KAIST의 전길남 교수가 ‘썬스팍1’이라는 워크스테이션급의 컴퓨터를 켜자 곧이어 국내 하나망(HANANET)과 미국 하와이 대학 간에 설치된 56Kbps 인터넷 전용선을 따라 이메일과 데이터 파일이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의 인터넷이 국제 사회에 출생신고를 하는 순간이었다. 다만 국내 인터넷의 효시는 1982년 7월 서울대 전자계산학과와...

김지하 詩 ‘오적’ 파문

박정희 대통령의 장기집권 시도로 정치·사회적인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던 1970년, 잡지 ‘사상계’ 5월호에 세상을 들끓게 한 시(時) 한 편이 발표됐다. “서울이라 장안 한 복판에 다섯 도둑이 모여 살았겄다./(중략) 예가 바로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이라 이름하는/ 간뗑이 부어 남산 만하고 목질기가 동탁 배꼽같은 천하흉포 오적의 소굴이렸다.” 김지하의 담시(譚詩) 오적(五賊)이었다. 아이디어를 처음 제공한 사람은 사상계 편집위원 김승균이었다. 그는...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맹인 사회사업가 헬렌 켈러 사망

1904년 6월 28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의 래드클리프대 졸업식에 참석한 사람들의 표정이 예년과 사뭇 달랐다. 생후 19개월 만에 뇌척수막염을 앓아,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면서 이 학교를 졸업하는 헬렌 켈러 때문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은 또 다른 곳에 모아졌다. 헬렌을 세상 속으로 이끌어내고 50여 년간 2인3각으로 헬렌의 눈과 귀가 되어준 가정교사 애니 설리번이었다. 애니가 헬렌의 가정교사가 된 것은 헬렌의 나이 7세 때였다. 애니는 20세에 불과한 어린...

영화 는 태평양전쟁의 향배를 한순간에 바꾼 ‘미드웨이 전투’를 다룬 영화… 일본으로서는 16세기 말 이순신 장군에게 당한 패배 이후 최초로 대패

영화 <미드웨이>는 태평양전쟁의 향배를 한순간에 바꾼 ‘미드웨이 전투’를 다룬 영화… 일본으로서는 16세기 말 이순신 장군에게 당한 패배 이후 최초로 대패

↑ 영화 <미드웨이> 한 장면   by 김지지   미드웨이 해전은 태평양전쟁 초기인 1942년 6월 5일부터 3일 동안 하와이 북서쪽 미드웨이 앞바다에서 있었던 미·일 양군 사이의 해전이다. 이 전쟁을 다룬 영화 ‘미드웨이’가 지난 12월 31일 국내에서 개봉되었다.   日, 미드웨이 해전을 태평양 전체 싸움의 승부처로 간주 일본은 1941년 12월 진주만 공습에 성공하고 이후 5개월 만에 괌, 홍콩, 필리핀, 말레이시아, 수마트라,...

[지리산 국립공원]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를 2박 3일 지리산 종주기… “그날 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내였다”

[지리산 국립공원]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를 2박 3일 지리산 종주기… “그날 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내였다”

↑ 지리산 천왕봉에서 바라본 일출 장면.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단다.   by 김지지   ■희용의 꼬드김 대학친구 이희용이 꼬드겼다. 2박 3일간 지리산 종주를 해보자고. 꼬드김은 나에게 결단을 요구했고 결과적으로 더없는 행복을 내게 선물했다. 지리산 종주는 나에게 언감생심이었다. 지리산 천왕봉이야 30대까지 몇 번을 올라가긴 했으나 종주는 정말이지 먼나라 얘기였다. 이런 나에게 희용이가 연초에 제안했을 때 걱정은 되었지만 일단 OK로 화답했다. 지금...

[장상인의 일본 산책] 일본의 역사 요동치게 한 교토 ‘혼노지의 변(本能寺の変 )’ 현장에서 말(言)이 주는 상처를 떠올리다

[장상인의 일본 산책] 일본의 역사 요동치게 한 교토 ‘혼노지의 변(本能寺の変 )’ 현장에서 말(言)이 주는 상처를 떠올리다

↑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가 부하 장수 아키치 미쓰히데의 습격을 받는 그림 (출처 위키피디아)   by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교토(京都) 시청사 건너편에 ‘데라마치(寺町)’라는 거리가 있다. 사찰과 상점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이곳은 헤이안(平安, 794~1185) 시대부터 번창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었으나 계속되는 전란으로 쇠락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1590년 시작된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 1537~1598)의 교토 대개조에 의해서...

“만지면 만질수록 그 증세가 덧나는 상처와도 같은 존재”라는 춘원 李光洙에 대하여

“만지면 만질수록 그 증세가 덧나는 상처와도 같은 존재”라는 춘원 李光洙에 대하여

↑ 이광수와 허영숙. 아이는 첫아들 봉근이다. 1928년 모습   ☞ 전문(全文)은 이곳으로 옮겼습니다. 클릭!!   낙인처럼 따라다니는 비난의 키워드는 ‘민족 반역자’요 ‘친일파’ 이광수(1892~1950)에게 낙인처럼 따라다니는 비난의 키워드는 ‘민족 반역자’요 ‘친일파’다. 하지만 문학계 일부에서는 이광수의 친일 활동은 인정하면서도 “다면성을 외면하고 친일파라는 족쇄만 채운다면 우리 문학사에 남겨진 이광수의 족적이 형해조차 없어진다”며 안타까워하는...

43년 만에 가진 고교 1학년 사은회·반창회에서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미루지 말고 당장 인생을 즐겨라” “아내를 섬겨라”

43년 만에 가진 고교 1학년 사은회·반창회에서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미루지 말고 당장 인생을 즐겨라” “아내를 섬겨라”

↑ 다들 올들어 가장 행복해하는 표정이다.   by 김지지   그해 3월 초에 국가적으로 특별한 일이 없었으니 1976년 3월 2일이었을 게다. 그날은 전국 공통의 고교 1학년 입학일이었다. 중학교라는 좁은 울타리에서 벗어나 더 넓게 펼쳐질 고등학교 입학식이었으니 필시 신입생들의 얼굴은 긴장감으로 굳어있었을 것이다.   우리도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서울 신설동 소재 대광고 1학년 7반 교실에 모였지만 내 기억 속에 그날의 풍경은 없다. 다만 오전...

독일 68혁명의 도화선 ‘6월 2일 사건’

1967년 서독. 젊은이들의 베트남전 반대 시위가 갈수록 격화되고 있었다. 특히 ‘최전방 도시’ 베를린은 다른 도시에 비해 그 정도가 심했다. 1967년 6월, 팔레비 이란 국왕이 서베를린을 국빈 방문하자 학생들은 반민주적인 독재자 팔레비의 방문을 허용하려하지 않았다. 6월 2일 팔레비 부부가 오페라 ‘마적’을 감상하기 위해 도이치 오페라하우스를 찾았을 때 학생들은 극장 밖에서 반대 시위를 벌였다. 도로는 수천명의 학생들로 뒤덮였고 저지선은 이미 뚫려 있었다. 저녁 8시가...

영국 정부, 인도·파키스탄 분리 독립안 발표

1947년 6월 3일, 영국의 루이스 마운트배튼 인도 총독이 1857년 세포이항쟁 이후 90년간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를 힌두교 지역과 무슬림 지역으로 나눠 각각 제헌의회를 세운다는 독립안(案)을 발표했다. 분리안은 두 종교 세력을 대표하는 국민회의파와 무슬림연맹에 의해 각각 승인됐다. 2차대전을 전후로 힌두교의 국민회의파를 중심으로 순조롭게 진행되던 독립 일정에 차질이 생긴 것은 모하메드 알리 지나가 이끄는 무슬림연맹이 분리를 요구하면서였다. 지나는 당초에는 힌두·회교도의...

국내 인터넷 시작

1990년 6월 1일, 언론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국의 미래를 크게 바꾸어놓을 작은 이벤트가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있었다. KAIST의 전길남 교수가 ‘썬스팍1’이라는 워크스테이션급의 컴퓨터를 켜자 곧이어 국내 하나망(HANANET)과 미국 하와이 대학 간에 설치된 56Kbps 인터넷 전용선을 따라 이메일과 데이터 파일이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의 인터넷이 국제 사회에 출생신고를 하는 순간이었다. 다만 국내 인터넷의 효시는 1982년 7월 서울대 전자계산학과와...

김지하 詩 ‘오적’ 파문

박정희 대통령의 장기집권 시도로 정치·사회적인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던 1970년, 잡지 ‘사상계’ 5월호에 세상을 들끓게 한 시(時) 한 편이 발표됐다. “서울이라 장안 한 복판에 다섯 도둑이 모여 살았겄다./(중략) 예가 바로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이라 이름하는/ 간뗑이 부어 남산 만하고 목질기가 동탁 배꼽같은 천하흉포 오적의 소굴이렸다.” 김지하의 담시(譚詩) 오적(五賊)이었다. 아이디어를 처음 제공한 사람은 사상계 편집위원 김승균이었다. 그는...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맹인 사회사업가 헬렌 켈러 사망

1904년 6월 28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의 래드클리프대 졸업식에 참석한 사람들의 표정이 예년과 사뭇 달랐다. 생후 19개월 만에 뇌척수막염을 앓아,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면서 이 학교를 졸업하는 헬렌 켈러 때문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은 또 다른 곳에 모아졌다. 헬렌을 세상 속으로 이끌어내고 50여 년간 2인3각으로 헬렌의 눈과 귀가 되어준 가정교사 애니 설리번이었다. 애니가 헬렌의 가정교사가 된 것은 헬렌의 나이 7세 때였다. 애니는 20세에 불과한 어린...

영화 는 태평양전쟁의 향배를 한순간에 바꾼 ‘미드웨이 전투’를 다룬 영화… 일본으로서는 16세기 말 이순신 장군에게 당한 패배 이후 최초로 대패

영화 <미드웨이>는 태평양전쟁의 향배를 한순간에 바꾼 ‘미드웨이 전투’를 다룬 영화… 일본으로서는 16세기 말 이순신 장군에게 당한 패배 이후 최초로 대패

↑ 영화 <미드웨이> 한 장면   by 김지지   미드웨이 해전은 태평양전쟁 초기인 1942년 6월 5일부터 3일 동안 하와이 북서쪽 미드웨이 앞바다에서 있었던 미·일 양군 사이의 해전이다. 이 전쟁을 다룬 영화 ‘미드웨이’가 지난 12월 31일 국내에서 개봉되었다.   日, 미드웨이 해전을 태평양 전체 싸움의 승부처로 간주 일본은 1941년 12월 진주만 공습에 성공하고 이후 5개월 만에 괌, 홍콩, 필리핀, 말레이시아, 수마트라,...

[지리산 국립공원]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를 2박 3일 지리산 종주기… “그날 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내였다”

[지리산 국립공원]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를 2박 3일 지리산 종주기… “그날 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내였다”

↑ 지리산 천왕봉에서 바라본 일출 장면.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단다.   by 김지지   ■희용의 꼬드김 대학친구 이희용이 꼬드겼다. 2박 3일간 지리산 종주를 해보자고. 꼬드김은 나에게 결단을 요구했고 결과적으로 더없는 행복을 내게 선물했다. 지리산 종주는 나에게 언감생심이었다. 지리산 천왕봉이야 30대까지 몇 번을 올라가긴 했으나 종주는 정말이지 먼나라 얘기였다. 이런 나에게 희용이가 연초에 제안했을 때 걱정은 되었지만 일단 OK로 화답했다. 지금...

[장상인의 일본 산책] 일본의 역사 요동치게 한 교토 ‘혼노지의 변(本能寺の変 )’ 현장에서 말(言)이 주는 상처를 떠올리다

[장상인의 일본 산책] 일본의 역사 요동치게 한 교토 ‘혼노지의 변(本能寺の変 )’ 현장에서 말(言)이 주는 상처를 떠올리다

↑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가 부하 장수 아키치 미쓰히데의 습격을 받는 그림 (출처 위키피디아)   by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교토(京都) 시청사 건너편에 ‘데라마치(寺町)’라는 거리가 있다. 사찰과 상점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이곳은 헤이안(平安, 794~1185) 시대부터 번창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었으나 계속되는 전란으로 쇠락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1590년 시작된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 1537~1598)의 교토 대개조에 의해서...

“만지면 만질수록 그 증세가 덧나는 상처와도 같은 존재”라는 춘원 李光洙에 대하여

“만지면 만질수록 그 증세가 덧나는 상처와도 같은 존재”라는 춘원 李光洙에 대하여

↑ 이광수와 허영숙. 아이는 첫아들 봉근이다. 1928년 모습   ☞ 전문(全文)은 이곳으로 옮겼습니다. 클릭!!   낙인처럼 따라다니는 비난의 키워드는 ‘민족 반역자’요 ‘친일파’ 이광수(1892~1950)에게 낙인처럼 따라다니는 비난의 키워드는 ‘민족 반역자’요 ‘친일파’다. 하지만 문학계 일부에서는 이광수의 친일 활동은 인정하면서도 “다면성을 외면하고 친일파라는 족쇄만 채운다면 우리 문학사에 남겨진 이광수의 족적이 형해조차 없어진다”며 안타까워하는...

43년 만에 가진 고교 1학년 사은회·반창회에서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미루지 말고 당장 인생을 즐겨라” “아내를 섬겨라”

43년 만에 가진 고교 1학년 사은회·반창회에서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미루지 말고 당장 인생을 즐겨라” “아내를 섬겨라”

↑ 다들 올들어 가장 행복해하는 표정이다.   by 김지지   그해 3월 초에 국가적으로 특별한 일이 없었으니 1976년 3월 2일이었을 게다. 그날은 전국 공통의 고교 1학년 입학일이었다. 중학교라는 좁은 울타리에서 벗어나 더 넓게 펼쳐질 고등학교 입학식이었으니 필시 신입생들의 얼굴은 긴장감으로 굳어있었을 것이다.   우리도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서울 신설동 소재 대광고 1학년 7반 교실에 모였지만 내 기억 속에 그날의 풍경은 없다. 다만 오전...

독일 68혁명의 도화선 ‘6월 2일 사건’

1967년 서독. 젊은이들의 베트남전 반대 시위가 갈수록 격화되고 있었다. 특히 ‘최전방 도시’ 베를린은 다른 도시에 비해 그 정도가 심했다. 1967년 6월, 팔레비 이란 국왕이 서베를린을 국빈 방문하자 학생들은 반민주적인 독재자 팔레비의 방문을 허용하려하지 않았다. 6월 2일 팔레비 부부가 오페라 ‘마적’을 감상하기 위해 도이치 오페라하우스를 찾았을 때 학생들은 극장 밖에서 반대 시위를 벌였다. 도로는 수천명의 학생들로 뒤덮였고 저지선은 이미 뚫려 있었다. 저녁 8시가...

영국 정부, 인도·파키스탄 분리 독립안 발표

1947년 6월 3일, 영국의 루이스 마운트배튼 인도 총독이 1857년 세포이항쟁 이후 90년간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를 힌두교 지역과 무슬림 지역으로 나눠 각각 제헌의회를 세운다는 독립안(案)을 발표했다. 분리안은 두 종교 세력을 대표하는 국민회의파와 무슬림연맹에 의해 각각 승인됐다. 2차대전을 전후로 힌두교의 국민회의파를 중심으로 순조롭게 진행되던 독립 일정에 차질이 생긴 것은 모하메드 알리 지나가 이끄는 무슬림연맹이 분리를 요구하면서였다. 지나는 당초에는 힌두·회교도의...

국내 인터넷 시작

1990년 6월 1일, 언론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국의 미래를 크게 바꾸어놓을 작은 이벤트가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있었다. KAIST의 전길남 교수가 ‘썬스팍1’이라는 워크스테이션급의 컴퓨터를 켜자 곧이어 국내 하나망(HANANET)과 미국 하와이 대학 간에 설치된 56Kbps 인터넷 전용선을 따라 이메일과 데이터 파일이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의 인터넷이 국제 사회에 출생신고를 하는 순간이었다. 다만 국내 인터넷의 효시는 1982년 7월 서울대 전자계산학과와...

김지하 詩 ‘오적’ 파문

박정희 대통령의 장기집권 시도로 정치·사회적인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던 1970년, 잡지 ‘사상계’ 5월호에 세상을 들끓게 한 시(時) 한 편이 발표됐다. “서울이라 장안 한 복판에 다섯 도둑이 모여 살았겄다./(중략) 예가 바로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이라 이름하는/ 간뗑이 부어 남산 만하고 목질기가 동탁 배꼽같은 천하흉포 오적의 소굴이렸다.” 김지하의 담시(譚詩) 오적(五賊)이었다. 아이디어를 처음 제공한 사람은 사상계 편집위원 김승균이었다. 그는...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맹인 사회사업가 헬렌 켈러 사망

1904년 6월 28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의 래드클리프대 졸업식에 참석한 사람들의 표정이 예년과 사뭇 달랐다. 생후 19개월 만에 뇌척수막염을 앓아,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면서 이 학교를 졸업하는 헬렌 켈러 때문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은 또 다른 곳에 모아졌다. 헬렌을 세상 속으로 이끌어내고 50여 년간 2인3각으로 헬렌의 눈과 귀가 되어준 가정교사 애니 설리번이었다. 애니가 헬렌의 가정교사가 된 것은 헬렌의 나이 7세 때였다. 애니는 20세에 불과한 어린...

영화 는 태평양전쟁의 향배를 한순간에 바꾼 ‘미드웨이 전투’를 다룬 영화… 일본으로서는 16세기 말 이순신 장군에게 당한 패배 이후 최초로 대패

영화 <미드웨이>는 태평양전쟁의 향배를 한순간에 바꾼 ‘미드웨이 전투’를 다룬 영화… 일본으로서는 16세기 말 이순신 장군에게 당한 패배 이후 최초로 대패

↑ 영화 <미드웨이> 한 장면   by 김지지   미드웨이 해전은 태평양전쟁 초기인 1942년 6월 5일부터 3일 동안 하와이 북서쪽 미드웨이 앞바다에서 있었던 미·일 양군 사이의 해전이다. 이 전쟁을 다룬 영화 ‘미드웨이’가 지난 12월 31일 국내에서 개봉되었다.   日, 미드웨이 해전을 태평양 전체 싸움의 승부처로 간주 일본은 1941년 12월 진주만 공습에 성공하고 이후 5개월 만에 괌, 홍콩, 필리핀, 말레이시아, 수마트라,...

[지리산 국립공원]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를 2박 3일 지리산 종주기… “그날 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내였다”

[지리산 국립공원]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를 2박 3일 지리산 종주기… “그날 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내였다”

↑ 지리산 천왕봉에서 바라본 일출 장면.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단다.   by 김지지   ■희용의 꼬드김 대학친구 이희용이 꼬드겼다. 2박 3일간 지리산 종주를 해보자고. 꼬드김은 나에게 결단을 요구했고 결과적으로 더없는 행복을 내게 선물했다. 지리산 종주는 나에게 언감생심이었다. 지리산 천왕봉이야 30대까지 몇 번을 올라가긴 했으나 종주는 정말이지 먼나라 얘기였다. 이런 나에게 희용이가 연초에 제안했을 때 걱정은 되었지만 일단 OK로 화답했다. 지금...

[장상인의 일본 산책] 일본의 역사 요동치게 한 교토 ‘혼노지의 변(本能寺の変 )’ 현장에서 말(言)이 주는 상처를 떠올리다

[장상인의 일본 산책] 일본의 역사 요동치게 한 교토 ‘혼노지의 변(本能寺の変 )’ 현장에서 말(言)이 주는 상처를 떠올리다

↑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가 부하 장수 아키치 미쓰히데의 습격을 받는 그림 (출처 위키피디아)   by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교토(京都) 시청사 건너편에 ‘데라마치(寺町)’라는 거리가 있다. 사찰과 상점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이곳은 헤이안(平安, 794~1185) 시대부터 번창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었으나 계속되는 전란으로 쇠락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1590년 시작된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 1537~1598)의 교토 대개조에 의해서...

“만지면 만질수록 그 증세가 덧나는 상처와도 같은 존재”라는 춘원 李光洙에 대하여

“만지면 만질수록 그 증세가 덧나는 상처와도 같은 존재”라는 춘원 李光洙에 대하여

↑ 이광수와 허영숙. 아이는 첫아들 봉근이다. 1928년 모습   ☞ 전문(全文)은 이곳으로 옮겼습니다. 클릭!!   낙인처럼 따라다니는 비난의 키워드는 ‘민족 반역자’요 ‘친일파’ 이광수(1892~1950)에게 낙인처럼 따라다니는 비난의 키워드는 ‘민족 반역자’요 ‘친일파’다. 하지만 문학계 일부에서는 이광수의 친일 활동은 인정하면서도 “다면성을 외면하고 친일파라는 족쇄만 채운다면 우리 문학사에 남겨진 이광수의 족적이 형해조차 없어진다”며 안타까워하는...

43년 만에 가진 고교 1학년 사은회·반창회에서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미루지 말고 당장 인생을 즐겨라” “아내를 섬겨라”

43년 만에 가진 고교 1학년 사은회·반창회에서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미루지 말고 당장 인생을 즐겨라” “아내를 섬겨라”

↑ 다들 올들어 가장 행복해하는 표정이다.   by 김지지   그해 3월 초에 국가적으로 특별한 일이 없었으니 1976년 3월 2일이었을 게다. 그날은 전국 공통의 고교 1학년 입학일이었다. 중학교라는 좁은 울타리에서 벗어나 더 넓게 펼쳐질 고등학교 입학식이었으니 필시 신입생들의 얼굴은 긴장감으로 굳어있었을 것이다.   우리도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서울 신설동 소재 대광고 1학년 7반 교실에 모였지만 내 기억 속에 그날의 풍경은 없다. 다만 오전...

독일 68혁명의 도화선 ‘6월 2일 사건’

1967년 서독. 젊은이들의 베트남전 반대 시위가 갈수록 격화되고 있었다. 특히 ‘최전방 도시’ 베를린은 다른 도시에 비해 그 정도가 심했다. 1967년 6월, 팔레비 이란 국왕이 서베를린을 국빈 방문하자 학생들은 반민주적인 독재자 팔레비의 방문을 허용하려하지 않았다. 6월 2일 팔레비 부부가 오페라 ‘마적’을 감상하기 위해 도이치 오페라하우스를 찾았을 때 학생들은 극장 밖에서 반대 시위를 벌였다. 도로는 수천명의 학생들로 뒤덮였고 저지선은 이미 뚫려 있었다. 저녁 8시가...

영국 정부, 인도·파키스탄 분리 독립안 발표

1947년 6월 3일, 영국의 루이스 마운트배튼 인도 총독이 1857년 세포이항쟁 이후 90년간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를 힌두교 지역과 무슬림 지역으로 나눠 각각 제헌의회를 세운다는 독립안(案)을 발표했다. 분리안은 두 종교 세력을 대표하는 국민회의파와 무슬림연맹에 의해 각각 승인됐다. 2차대전을 전후로 힌두교의 국민회의파를 중심으로 순조롭게 진행되던 독립 일정에 차질이 생긴 것은 모하메드 알리 지나가 이끄는 무슬림연맹이 분리를 요구하면서였다. 지나는 당초에는 힌두·회교도의...

국내 인터넷 시작

1990년 6월 1일, 언론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국의 미래를 크게 바꾸어놓을 작은 이벤트가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있었다. KAIST의 전길남 교수가 ‘썬스팍1’이라는 워크스테이션급의 컴퓨터를 켜자 곧이어 국내 하나망(HANANET)과 미국 하와이 대학 간에 설치된 56Kbps 인터넷 전용선을 따라 이메일과 데이터 파일이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의 인터넷이 국제 사회에 출생신고를 하는 순간이었다. 다만 국내 인터넷의 효시는 1982년 7월 서울대 전자계산학과와...

김지하 詩 ‘오적’ 파문

박정희 대통령의 장기집권 시도로 정치·사회적인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던 1970년, 잡지 ‘사상계’ 5월호에 세상을 들끓게 한 시(時) 한 편이 발표됐다. “서울이라 장안 한 복판에 다섯 도둑이 모여 살았겄다./(중략) 예가 바로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이라 이름하는/ 간뗑이 부어 남산 만하고 목질기가 동탁 배꼽같은 천하흉포 오적의 소굴이렸다.” 김지하의 담시(譚詩) 오적(五賊)이었다. 아이디어를 처음 제공한 사람은 사상계 편집위원 김승균이었다. 그는...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맹인 사회사업가 헬렌 켈러 사망

1904년 6월 28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의 래드클리프대 졸업식에 참석한 사람들의 표정이 예년과 사뭇 달랐다. 생후 19개월 만에 뇌척수막염을 앓아,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면서 이 학교를 졸업하는 헬렌 켈러 때문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은 또 다른 곳에 모아졌다. 헬렌을 세상 속으로 이끌어내고 50여 년간 2인3각으로 헬렌의 눈과 귀가 되어준 가정교사 애니 설리번이었다. 애니가 헬렌의 가정교사가 된 것은 헬렌의 나이 7세 때였다. 애니는 20세에 불과한 어린...

영화 는 태평양전쟁의 향배를 한순간에 바꾼 ‘미드웨이 전투’를 다룬 영화… 일본으로서는 16세기 말 이순신 장군에게 당한 패배 이후 최초로 대패

영화 <미드웨이>는 태평양전쟁의 향배를 한순간에 바꾼 ‘미드웨이 전투’를 다룬 영화… 일본으로서는 16세기 말 이순신 장군에게 당한 패배 이후 최초로 대패

↑ 영화 <미드웨이> 한 장면   by 김지지   미드웨이 해전은 태평양전쟁 초기인 1942년 6월 5일부터 3일 동안 하와이 북서쪽 미드웨이 앞바다에서 있었던 미·일 양군 사이의 해전이다. 이 전쟁을 다룬 영화 ‘미드웨이’가 지난 12월 31일 국내에서 개봉되었다.   日, 미드웨이 해전을 태평양 전체 싸움의 승부처로 간주 일본은 1941년 12월 진주만 공습에 성공하고 이후 5개월 만에 괌, 홍콩, 필리핀, 말레이시아, 수마트라,...

[지리산 국립공원]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를 2박 3일 지리산 종주기… “그날 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내였다”

[지리산 국립공원]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를 2박 3일 지리산 종주기… “그날 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내였다”

↑ 지리산 천왕봉에서 바라본 일출 장면.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단다.   by 김지지   ■희용의 꼬드김 대학친구 이희용이 꼬드겼다. 2박 3일간 지리산 종주를 해보자고. 꼬드김은 나에게 결단을 요구했고 결과적으로 더없는 행복을 내게 선물했다. 지리산 종주는 나에게 언감생심이었다. 지리산 천왕봉이야 30대까지 몇 번을 올라가긴 했으나 종주는 정말이지 먼나라 얘기였다. 이런 나에게 희용이가 연초에 제안했을 때 걱정은 되었지만 일단 OK로 화답했다. 지금...

[장상인의 일본 산책] 일본의 역사 요동치게 한 교토 ‘혼노지의 변(本能寺の変 )’ 현장에서 말(言)이 주는 상처를 떠올리다

[장상인의 일본 산책] 일본의 역사 요동치게 한 교토 ‘혼노지의 변(本能寺の変 )’ 현장에서 말(言)이 주는 상처를 떠올리다

↑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가 부하 장수 아키치 미쓰히데의 습격을 받는 그림 (출처 위키피디아)   by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교토(京都) 시청사 건너편에 ‘데라마치(寺町)’라는 거리가 있다. 사찰과 상점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이곳은 헤이안(平安, 794~1185) 시대부터 번창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었으나 계속되는 전란으로 쇠락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1590년 시작된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 1537~1598)의 교토 대개조에 의해서...

“만지면 만질수록 그 증세가 덧나는 상처와도 같은 존재”라는 춘원 李光洙에 대하여

“만지면 만질수록 그 증세가 덧나는 상처와도 같은 존재”라는 춘원 李光洙에 대하여

↑ 이광수와 허영숙. 아이는 첫아들 봉근이다. 1928년 모습   ☞ 전문(全文)은 이곳으로 옮겼습니다. 클릭!!   낙인처럼 따라다니는 비난의 키워드는 ‘민족 반역자’요 ‘친일파’ 이광수(1892~1950)에게 낙인처럼 따라다니는 비난의 키워드는 ‘민족 반역자’요 ‘친일파’다. 하지만 문학계 일부에서는 이광수의 친일 활동은 인정하면서도 “다면성을 외면하고 친일파라는 족쇄만 채운다면 우리 문학사에 남겨진 이광수의 족적이 형해조차 없어진다”며 안타까워하는...

43년 만에 가진 고교 1학년 사은회·반창회에서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미루지 말고 당장 인생을 즐겨라” “아내를 섬겨라”

43년 만에 가진 고교 1학년 사은회·반창회에서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미루지 말고 당장 인생을 즐겨라” “아내를 섬겨라”

↑ 다들 올들어 가장 행복해하는 표정이다.   by 김지지   그해 3월 초에 국가적으로 특별한 일이 없었으니 1976년 3월 2일이었을 게다. 그날은 전국 공통의 고교 1학년 입학일이었다. 중학교라는 좁은 울타리에서 벗어나 더 넓게 펼쳐질 고등학교 입학식이었으니 필시 신입생들의 얼굴은 긴장감으로 굳어있었을 것이다.   우리도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서울 신설동 소재 대광고 1학년 7반 교실에 모였지만 내 기억 속에 그날의 풍경은 없다. 다만 오전...

독일 68혁명의 도화선 ‘6월 2일 사건’

1967년 서독. 젊은이들의 베트남전 반대 시위가 갈수록 격화되고 있었다. 특히 ‘최전방 도시’ 베를린은 다른 도시에 비해 그 정도가 심했다. 1967년 6월, 팔레비 이란 국왕이 서베를린을 국빈 방문하자 학생들은 반민주적인 독재자 팔레비의 방문을 허용하려하지 않았다. 6월 2일 팔레비 부부가 오페라 ‘마적’을 감상하기 위해 도이치 오페라하우스를 찾았을 때 학생들은 극장 밖에서 반대 시위를 벌였다. 도로는 수천명의 학생들로 뒤덮였고 저지선은 이미 뚫려 있었다. 저녁 8시가...

영국 정부, 인도·파키스탄 분리 독립안 발표

1947년 6월 3일, 영국의 루이스 마운트배튼 인도 총독이 1857년 세포이항쟁 이후 90년간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를 힌두교 지역과 무슬림 지역으로 나눠 각각 제헌의회를 세운다는 독립안(案)을 발표했다. 분리안은 두 종교 세력을 대표하는 국민회의파와 무슬림연맹에 의해 각각 승인됐다. 2차대전을 전후로 힌두교의 국민회의파를 중심으로 순조롭게 진행되던 독립 일정에 차질이 생긴 것은 모하메드 알리 지나가 이끄는 무슬림연맹이 분리를 요구하면서였다. 지나는 당초에는 힌두·회교도의...

국내 인터넷 시작

1990년 6월 1일, 언론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국의 미래를 크게 바꾸어놓을 작은 이벤트가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있었다. KAIST의 전길남 교수가 ‘썬스팍1’이라는 워크스테이션급의 컴퓨터를 켜자 곧이어 국내 하나망(HANANET)과 미국 하와이 대학 간에 설치된 56Kbps 인터넷 전용선을 따라 이메일과 데이터 파일이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의 인터넷이 국제 사회에 출생신고를 하는 순간이었다. 다만 국내 인터넷의 효시는 1982년 7월 서울대 전자계산학과와...

김지하 詩 ‘오적’ 파문

박정희 대통령의 장기집권 시도로 정치·사회적인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던 1970년, 잡지 ‘사상계’ 5월호에 세상을 들끓게 한 시(時) 한 편이 발표됐다. “서울이라 장안 한 복판에 다섯 도둑이 모여 살았겄다./(중략) 예가 바로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이라 이름하는/ 간뗑이 부어 남산 만하고 목질기가 동탁 배꼽같은 천하흉포 오적의 소굴이렸다.” 김지하의 담시(譚詩) 오적(五賊)이었다. 아이디어를 처음 제공한 사람은 사상계 편집위원 김승균이었다. 그는...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맹인 사회사업가 헬렌 켈러 사망

1904년 6월 28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의 래드클리프대 졸업식에 참석한 사람들의 표정이 예년과 사뭇 달랐다. 생후 19개월 만에 뇌척수막염을 앓아,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면서 이 학교를 졸업하는 헬렌 켈러 때문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은 또 다른 곳에 모아졌다. 헬렌을 세상 속으로 이끌어내고 50여 년간 2인3각으로 헬렌의 눈과 귀가 되어준 가정교사 애니 설리번이었다. 애니가 헬렌의 가정교사가 된 것은 헬렌의 나이 7세 때였다. 애니는 20세에 불과한 어린...

영화 는 태평양전쟁의 향배를 한순간에 바꾼 ‘미드웨이 전투’를 다룬 영화… 일본으로서는 16세기 말 이순신 장군에게 당한 패배 이후 최초로 대패

영화 <미드웨이>는 태평양전쟁의 향배를 한순간에 바꾼 ‘미드웨이 전투’를 다룬 영화… 일본으로서는 16세기 말 이순신 장군에게 당한 패배 이후 최초로 대패

↑ 영화 <미드웨이> 한 장면   by 김지지   미드웨이 해전은 태평양전쟁 초기인 1942년 6월 5일부터 3일 동안 하와이 북서쪽 미드웨이 앞바다에서 있었던 미·일 양군 사이의 해전이다. 이 전쟁을 다룬 영화 ‘미드웨이’가 지난 12월 31일 국내에서 개봉되었다.   日, 미드웨이 해전을 태평양 전체 싸움의 승부처로 간주 일본은 1941년 12월 진주만 공습에 성공하고 이후 5개월 만에 괌, 홍콩, 필리핀, 말레이시아, 수마트라,...

[지리산 국립공원]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를 2박 3일 지리산 종주기… “그날 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내였다”

[지리산 국립공원]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를 2박 3일 지리산 종주기… “그날 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내였다”

↑ 지리산 천왕봉에서 바라본 일출 장면.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단다.   by 김지지   ■희용의 꼬드김 대학친구 이희용이 꼬드겼다. 2박 3일간 지리산 종주를 해보자고. 꼬드김은 나에게 결단을 요구했고 결과적으로 더없는 행복을 내게 선물했다. 지리산 종주는 나에게 언감생심이었다. 지리산 천왕봉이야 30대까지 몇 번을 올라가긴 했으나 종주는 정말이지 먼나라 얘기였다. 이런 나에게 희용이가 연초에 제안했을 때 걱정은 되었지만 일단 OK로 화답했다. 지금...

[장상인의 일본 산책] 일본의 역사 요동치게 한 교토 ‘혼노지의 변(本能寺の変 )’ 현장에서 말(言)이 주는 상처를 떠올리다

[장상인의 일본 산책] 일본의 역사 요동치게 한 교토 ‘혼노지의 변(本能寺の変 )’ 현장에서 말(言)이 주는 상처를 떠올리다

↑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가 부하 장수 아키치 미쓰히데의 습격을 받는 그림 (출처 위키피디아)   by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교토(京都) 시청사 건너편에 ‘데라마치(寺町)’라는 거리가 있다. 사찰과 상점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이곳은 헤이안(平安, 794~1185) 시대부터 번창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었으나 계속되는 전란으로 쇠락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1590년 시작된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 1537~1598)의 교토 대개조에 의해서...

“만지면 만질수록 그 증세가 덧나는 상처와도 같은 존재”라는 춘원 李光洙에 대하여

“만지면 만질수록 그 증세가 덧나는 상처와도 같은 존재”라는 춘원 李光洙에 대하여

↑ 이광수와 허영숙. 아이는 첫아들 봉근이다. 1928년 모습   ☞ 전문(全文)은 이곳으로 옮겼습니다. 클릭!!   낙인처럼 따라다니는 비난의 키워드는 ‘민족 반역자’요 ‘친일파’ 이광수(1892~1950)에게 낙인처럼 따라다니는 비난의 키워드는 ‘민족 반역자’요 ‘친일파’다. 하지만 문학계 일부에서는 이광수의 친일 활동은 인정하면서도 “다면성을 외면하고 친일파라는 족쇄만 채운다면 우리 문학사에 남겨진 이광수의 족적이 형해조차 없어진다”며 안타까워하는...

43년 만에 가진 고교 1학년 사은회·반창회에서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미루지 말고 당장 인생을 즐겨라” “아내를 섬겨라”

43년 만에 가진 고교 1학년 사은회·반창회에서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미루지 말고 당장 인생을 즐겨라” “아내를 섬겨라”

↑ 다들 올들어 가장 행복해하는 표정이다.   by 김지지   그해 3월 초에 국가적으로 특별한 일이 없었으니 1976년 3월 2일이었을 게다. 그날은 전국 공통의 고교 1학년 입학일이었다. 중학교라는 좁은 울타리에서 벗어나 더 넓게 펼쳐질 고등학교 입학식이었으니 필시 신입생들의 얼굴은 긴장감으로 굳어있었을 것이다.   우리도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서울 신설동 소재 대광고 1학년 7반 교실에 모였지만 내 기억 속에 그날의 풍경은 없다. 다만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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