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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 소설 ‘1984년’ 출판

흔히 영국 소설가 조지 오웰을 좌파 사회주의자, 반(反)공산주의자, 아나키스트의 세 얼굴을 가진 인물로 묘사한다. 젊어서 사회주의자를 자처했던 그가 점차 권력 자체를 철저히 부정하는 자유인으로 변모하면서 좌우 양 진영으로부터 배척받았기 때문이다. 죽기 전 오웰은 채플린과 역사학자 E.H.카 등 공산주의자로 의심되는 위험 인물 38명의 명단을 영국 정보부에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오웰은 1903년 인도 벵갈에서 태어났다. 1917년부터 4년 간은 이튼스쿨에서 헉슬리로부터...

독립군의 봉오동 전투 개전

1920년 6월 4일, 홍범도와 최진동의 연합 독립군부대인 대한군북로독군부 30여 명이 두만강을 건너 함북 종성군에 주둔하고 있는 일본군 국경초소를 급습했다. 국내 진공(進攻)이 가능한지 여부를 알아보기 위한 탐색전이었다. 일본군 남양수비대 1개 중대가 국경을 건너 독립군의 뒤를 쫓았으나 독립군은 이미 근거지인 북간도 화룡현 삼둔자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접근해오는 일본군에 사격을 가해 60여 명을 숨지게 했다. 6월 6일 오전 10시 무렵이었다. 독립군의 세(勢)를 확인한...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 자살

2차대전이 발발하자 영국 정부는 독일이 자랑하는 암호작성기 ‘에니그마(ENIGMA)’의 암호체계를 풀기 위해 과학자들을 런던 근교 블레츨리 파크에 불러 모았다.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막 수학박사 학위를 받고 돌아온 27세의 앨런 튜링도 소집 대상이었는데 그 역시 조국의 부름에 흔쾌히 응했다. 튜링은 1936년에 ‘계산 가능한 수에 관하여’라는 논문을 쓰고 1937년에 이 논문을 근거로 현대 컴퓨터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튜링 기계’를 수학적으로 고안해낸 ‘천재 수학자’였다....

연합국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일찌감치 해안 사수를 명령하고 전 해안의 요새화를 준비해 온 히틀러에게 “1944년 봄부터 영국 남부 해안에 수십만명의 연합군이 몰려들고 다량의 무기와 탄약, 보급품 등이 쌓이고 있다”는 정보가 전달되었다. 히틀러는 상륙 지점을 예측하는 데 골몰했다. 연합군의 역(逆)정보로 목표가 노르웨이인지 덴마크인지 프랑스인지 헷갈리던 차에 연합군이 이따금씩 프랑스 칼레 지방에 출동하는 제스처를 취하자 히틀러는 칼레를 상륙 예상지로 꼽았다. 상륙 일자도 오리무중이었다. 상륙 저지 역할을...

중국 위안스카이(원세개) 사망

중국 위안스카이(원세개) 사망

위안스카이(袁世凱)의 정치적 출발점은 조선이다. 시골 향시에 두 번이나 떨어지고 건달들과 어울려다니며 망나니 노릇을 하던 그가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조선이 자리잡고 있었다. 조선과의 첫 만남은 1882년 임오군란에서 시작됐다. 하급관료에 불과했으나 갑신정변 때 출병한 이홍장(李鴻章)과 조선 땅에서 인연을 맺으면서 앞길에 서광이 비췄다. 청의 군대를 끌여들여 동학농민혁명을 제압한 그는, 1894년 청일전쟁이 일어나기 1주일 전 귀국하면서 12년 동안 맺어온 조선과의...

美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에 승리

1942년 6월, 4척의 항공모함과 300척의 군함, 1000여 기의 항공기가 동원된 일본군의 총공세가 시작됐다. 일본 본토에 대한 공격을 저지하고 전쟁을 조기에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목표는 하와이 북서쪽 1600㎞ 지점에 위치한 미드웨이섬이었다. 일본군 연합함대 총사령관은 야마모토 이소로쿠(山本五十六)가 맡았다. 6월 5일 이른 아침, 항공모함에서 발진한 일본 전투기가 미군 비행장을 폭격했다. 그러나 비행장은 비어있었다. 이미 일본군의 암호망이 뚫렸기 때문이다. 전투기들이...

美 ‘마샬 플랜 발표

냉전의 시발점이 된 ‘트루먼 독트린’이 발표되고 3개월도 채 안된 1947년 6월 5일, 조지 마샬 미 국무장관이 하버드대 졸업식에서 유럽부흥계획(ERP) 이른바 ‘마샬 플랜’을 발표했다. 2차대전으로 잿더미가 된 유럽 경제를 재건해 자본주의 국가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안정된 환경을 이루자는 것이 취지였지만 바탕에는 미국의 과잉자본을 해소하고 상품시장의 배출구를 마련할 목적도 깔려있었다. 당시 유럽의 경제 사정은 한 언론사의 표현대로 ‘콘스탄티노플 함락 이후 최대의 비극’이라...

김일성도 참전한 보천보 전투

북한에서 ‘보천보 전투’는 김일성의 무장항일 투쟁사 가운데 가장 상징적인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따라서 ‘보천보(普天堡)’라는 이름이 붙여지면 그만큼 중요성을 인정받는 뜻이 된다. ‘휘파람’이라는 히트곡과 전혜영이라는 대중스타를 배출한 악단도 보천보전자악단이고, 북한에서 가장 큰 기념탑도 높이 49m, 길이 60m의 보천보전투기념탑이다. 전투는 1937년 6월 4일 시작됐다. 보천보는 백두산맥 남서쪽 끝자락에 위치한 곳으로 해방 이전에는 함남 갑산군에 속했다가 지금은...

박정희 정부 6·3계엄령 선포

2년7개월간의 군정기간을 보내고 1963년 12월에 비로소 대통령에 취임한 박정희 대통령이 첫 대규모 난관에 봉착했다. 이승만 정권 때 시도했으나 구보타 망언으로 중단됐던 한·일간 국교수립을 서두른 것이 화근이었다. 구악(舊惡) 일소를 내세우면서 신악(新惡)을 양산한 것도 반발을 부채질했다. 야당을 중심으로 ‘대일 저자세외교반대 범국민투쟁위원회’가 결성되고 전국의 대학생들이 매국적인 한·일회담 반대를 외치면서 정국은 혼미 속으로 빠져들었다. 타의였지만 5·16후 자취를 감췄던...

‘호색한의 대명사’ 카사노바 사망

“나는 여자들을 미치도록 사랑했다. 그러나 자유를 더 사랑했다.”던 베니스 출신의 카사노바가 1798년 6월 4일, 체코 프라하의 둑스성(城)에서 73세로 숨졌다. 죽기 전 둑스성에서 13년 간을 사서로 지내며 자신의 인생을 파노라마처럼 펼친 자서전 ‘내 인생의 이야기’를 탈고, 자신의 존재를 후세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알렸다. 노골적인 사랑 묘사로 그의 생존시에는 출간되지 못했지만 18세기 유럽의 사회·풍속을 이해하는데 더없이 귀중한 사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책이다....

조지 오웰, 소설 ‘1984년’ 출판

흔히 영국 소설가 조지 오웰을 좌파 사회주의자, 반(反)공산주의자, 아나키스트의 세 얼굴을 가진 인물로 묘사한다. 젊어서 사회주의자를 자처했던 그가 점차 권력 자체를 철저히 부정하는 자유인으로 변모하면서 좌우 양 진영으로부터 배척받았기 때문이다. 죽기 전 오웰은 채플린과 역사학자 E.H.카 등 공산주의자로 의심되는 위험 인물 38명의 명단을 영국 정보부에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오웰은 1903년 인도 벵갈에서 태어났다. 1917년부터 4년 간은 이튼스쿨에서 헉슬리로부터...

독립군의 봉오동 전투 개전

1920년 6월 4일, 홍범도와 최진동의 연합 독립군부대인 대한군북로독군부 30여 명이 두만강을 건너 함북 종성군에 주둔하고 있는 일본군 국경초소를 급습했다. 국내 진공(進攻)이 가능한지 여부를 알아보기 위한 탐색전이었다. 일본군 남양수비대 1개 중대가 국경을 건너 독립군의 뒤를 쫓았으나 독립군은 이미 근거지인 북간도 화룡현 삼둔자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접근해오는 일본군에 사격을 가해 60여 명을 숨지게 했다. 6월 6일 오전 10시 무렵이었다. 독립군의 세(勢)를 확인한...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 자살

2차대전이 발발하자 영국 정부는 독일이 자랑하는 암호작성기 ‘에니그마(ENIGMA)’의 암호체계를 풀기 위해 과학자들을 런던 근교 블레츨리 파크에 불러 모았다.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막 수학박사 학위를 받고 돌아온 27세의 앨런 튜링도 소집 대상이었는데 그 역시 조국의 부름에 흔쾌히 응했다. 튜링은 1936년에 ‘계산 가능한 수에 관하여’라는 논문을 쓰고 1937년에 이 논문을 근거로 현대 컴퓨터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튜링 기계’를 수학적으로 고안해낸 ‘천재 수학자’였다....

연합국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일찌감치 해안 사수를 명령하고 전 해안의 요새화를 준비해 온 히틀러에게 “1944년 봄부터 영국 남부 해안에 수십만명의 연합군이 몰려들고 다량의 무기와 탄약, 보급품 등이 쌓이고 있다”는 정보가 전달되었다. 히틀러는 상륙 지점을 예측하는 데 골몰했다. 연합군의 역(逆)정보로 목표가 노르웨이인지 덴마크인지 프랑스인지 헷갈리던 차에 연합군이 이따금씩 프랑스 칼레 지방에 출동하는 제스처를 취하자 히틀러는 칼레를 상륙 예상지로 꼽았다. 상륙 일자도 오리무중이었다. 상륙 저지 역할을...

중국 위안스카이(원세개) 사망

중국 위안스카이(원세개) 사망

위안스카이(袁世凱)의 정치적 출발점은 조선이다. 시골 향시에 두 번이나 떨어지고 건달들과 어울려다니며 망나니 노릇을 하던 그가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조선이 자리잡고 있었다. 조선과의 첫 만남은 1882년 임오군란에서 시작됐다. 하급관료에 불과했으나 갑신정변 때 출병한 이홍장(李鴻章)과 조선 땅에서 인연을 맺으면서 앞길에 서광이 비췄다. 청의 군대를 끌여들여 동학농민혁명을 제압한 그는, 1894년 청일전쟁이 일어나기 1주일 전 귀국하면서 12년 동안 맺어온 조선과의...

美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에 승리

1942년 6월, 4척의 항공모함과 300척의 군함, 1000여 기의 항공기가 동원된 일본군의 총공세가 시작됐다. 일본 본토에 대한 공격을 저지하고 전쟁을 조기에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목표는 하와이 북서쪽 1600㎞ 지점에 위치한 미드웨이섬이었다. 일본군 연합함대 총사령관은 야마모토 이소로쿠(山本五十六)가 맡았다. 6월 5일 이른 아침, 항공모함에서 발진한 일본 전투기가 미군 비행장을 폭격했다. 그러나 비행장은 비어있었다. 이미 일본군의 암호망이 뚫렸기 때문이다. 전투기들이...

美 ‘마샬 플랜 발표

냉전의 시발점이 된 ‘트루먼 독트린’이 발표되고 3개월도 채 안된 1947년 6월 5일, 조지 마샬 미 국무장관이 하버드대 졸업식에서 유럽부흥계획(ERP) 이른바 ‘마샬 플랜’을 발표했다. 2차대전으로 잿더미가 된 유럽 경제를 재건해 자본주의 국가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안정된 환경을 이루자는 것이 취지였지만 바탕에는 미국의 과잉자본을 해소하고 상품시장의 배출구를 마련할 목적도 깔려있었다. 당시 유럽의 경제 사정은 한 언론사의 표현대로 ‘콘스탄티노플 함락 이후 최대의 비극’이라...

김일성도 참전한 보천보 전투

북한에서 ‘보천보 전투’는 김일성의 무장항일 투쟁사 가운데 가장 상징적인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따라서 ‘보천보(普天堡)’라는 이름이 붙여지면 그만큼 중요성을 인정받는 뜻이 된다. ‘휘파람’이라는 히트곡과 전혜영이라는 대중스타를 배출한 악단도 보천보전자악단이고, 북한에서 가장 큰 기념탑도 높이 49m, 길이 60m의 보천보전투기념탑이다. 전투는 1937년 6월 4일 시작됐다. 보천보는 백두산맥 남서쪽 끝자락에 위치한 곳으로 해방 이전에는 함남 갑산군에 속했다가 지금은...

박정희 정부 6·3계엄령 선포

2년7개월간의 군정기간을 보내고 1963년 12월에 비로소 대통령에 취임한 박정희 대통령이 첫 대규모 난관에 봉착했다. 이승만 정권 때 시도했으나 구보타 망언으로 중단됐던 한·일간 국교수립을 서두른 것이 화근이었다. 구악(舊惡) 일소를 내세우면서 신악(新惡)을 양산한 것도 반발을 부채질했다. 야당을 중심으로 ‘대일 저자세외교반대 범국민투쟁위원회’가 결성되고 전국의 대학생들이 매국적인 한·일회담 반대를 외치면서 정국은 혼미 속으로 빠져들었다. 타의였지만 5·16후 자취를 감췄던...

‘호색한의 대명사’ 카사노바 사망

“나는 여자들을 미치도록 사랑했다. 그러나 자유를 더 사랑했다.”던 베니스 출신의 카사노바가 1798년 6월 4일, 체코 프라하의 둑스성(城)에서 73세로 숨졌다. 죽기 전 둑스성에서 13년 간을 사서로 지내며 자신의 인생을 파노라마처럼 펼친 자서전 ‘내 인생의 이야기’를 탈고, 자신의 존재를 후세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알렸다. 노골적인 사랑 묘사로 그의 생존시에는 출간되지 못했지만 18세기 유럽의 사회·풍속을 이해하는데 더없이 귀중한 사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책이다....

조지 오웰, 소설 ‘1984년’ 출판

흔히 영국 소설가 조지 오웰을 좌파 사회주의자, 반(反)공산주의자, 아나키스트의 세 얼굴을 가진 인물로 묘사한다. 젊어서 사회주의자를 자처했던 그가 점차 권력 자체를 철저히 부정하는 자유인으로 변모하면서 좌우 양 진영으로부터 배척받았기 때문이다. 죽기 전 오웰은 채플린과 역사학자 E.H.카 등 공산주의자로 의심되는 위험 인물 38명의 명단을 영국 정보부에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오웰은 1903년 인도 벵갈에서 태어났다. 1917년부터 4년 간은 이튼스쿨에서 헉슬리로부터...

독립군의 봉오동 전투 개전

1920년 6월 4일, 홍범도와 최진동의 연합 독립군부대인 대한군북로독군부 30여 명이 두만강을 건너 함북 종성군에 주둔하고 있는 일본군 국경초소를 급습했다. 국내 진공(進攻)이 가능한지 여부를 알아보기 위한 탐색전이었다. 일본군 남양수비대 1개 중대가 국경을 건너 독립군의 뒤를 쫓았으나 독립군은 이미 근거지인 북간도 화룡현 삼둔자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접근해오는 일본군에 사격을 가해 60여 명을 숨지게 했다. 6월 6일 오전 10시 무렵이었다. 독립군의 세(勢)를 확인한...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 자살

2차대전이 발발하자 영국 정부는 독일이 자랑하는 암호작성기 ‘에니그마(ENIGMA)’의 암호체계를 풀기 위해 과학자들을 런던 근교 블레츨리 파크에 불러 모았다.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막 수학박사 학위를 받고 돌아온 27세의 앨런 튜링도 소집 대상이었는데 그 역시 조국의 부름에 흔쾌히 응했다. 튜링은 1936년에 ‘계산 가능한 수에 관하여’라는 논문을 쓰고 1937년에 이 논문을 근거로 현대 컴퓨터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튜링 기계’를 수학적으로 고안해낸 ‘천재 수학자’였다....

연합국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일찌감치 해안 사수를 명령하고 전 해안의 요새화를 준비해 온 히틀러에게 “1944년 봄부터 영국 남부 해안에 수십만명의 연합군이 몰려들고 다량의 무기와 탄약, 보급품 등이 쌓이고 있다”는 정보가 전달되었다. 히틀러는 상륙 지점을 예측하는 데 골몰했다. 연합군의 역(逆)정보로 목표가 노르웨이인지 덴마크인지 프랑스인지 헷갈리던 차에 연합군이 이따금씩 프랑스 칼레 지방에 출동하는 제스처를 취하자 히틀러는 칼레를 상륙 예상지로 꼽았다. 상륙 일자도 오리무중이었다. 상륙 저지 역할을...

중국 위안스카이(원세개) 사망

중국 위안스카이(원세개) 사망

위안스카이(袁世凱)의 정치적 출발점은 조선이다. 시골 향시에 두 번이나 떨어지고 건달들과 어울려다니며 망나니 노릇을 하던 그가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조선이 자리잡고 있었다. 조선과의 첫 만남은 1882년 임오군란에서 시작됐다. 하급관료에 불과했으나 갑신정변 때 출병한 이홍장(李鴻章)과 조선 땅에서 인연을 맺으면서 앞길에 서광이 비췄다. 청의 군대를 끌여들여 동학농민혁명을 제압한 그는, 1894년 청일전쟁이 일어나기 1주일 전 귀국하면서 12년 동안 맺어온 조선과의...

美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에 승리

1942년 6월, 4척의 항공모함과 300척의 군함, 1000여 기의 항공기가 동원된 일본군의 총공세가 시작됐다. 일본 본토에 대한 공격을 저지하고 전쟁을 조기에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목표는 하와이 북서쪽 1600㎞ 지점에 위치한 미드웨이섬이었다. 일본군 연합함대 총사령관은 야마모토 이소로쿠(山本五十六)가 맡았다. 6월 5일 이른 아침, 항공모함에서 발진한 일본 전투기가 미군 비행장을 폭격했다. 그러나 비행장은 비어있었다. 이미 일본군의 암호망이 뚫렸기 때문이다. 전투기들이...

美 ‘마샬 플랜 발표

냉전의 시발점이 된 ‘트루먼 독트린’이 발표되고 3개월도 채 안된 1947년 6월 5일, 조지 마샬 미 국무장관이 하버드대 졸업식에서 유럽부흥계획(ERP) 이른바 ‘마샬 플랜’을 발표했다. 2차대전으로 잿더미가 된 유럽 경제를 재건해 자본주의 국가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안정된 환경을 이루자는 것이 취지였지만 바탕에는 미국의 과잉자본을 해소하고 상품시장의 배출구를 마련할 목적도 깔려있었다. 당시 유럽의 경제 사정은 한 언론사의 표현대로 ‘콘스탄티노플 함락 이후 최대의 비극’이라...

김일성도 참전한 보천보 전투

북한에서 ‘보천보 전투’는 김일성의 무장항일 투쟁사 가운데 가장 상징적인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따라서 ‘보천보(普天堡)’라는 이름이 붙여지면 그만큼 중요성을 인정받는 뜻이 된다. ‘휘파람’이라는 히트곡과 전혜영이라는 대중스타를 배출한 악단도 보천보전자악단이고, 북한에서 가장 큰 기념탑도 높이 49m, 길이 60m의 보천보전투기념탑이다. 전투는 1937년 6월 4일 시작됐다. 보천보는 백두산맥 남서쪽 끝자락에 위치한 곳으로 해방 이전에는 함남 갑산군에 속했다가 지금은...

박정희 정부 6·3계엄령 선포

2년7개월간의 군정기간을 보내고 1963년 12월에 비로소 대통령에 취임한 박정희 대통령이 첫 대규모 난관에 봉착했다. 이승만 정권 때 시도했으나 구보타 망언으로 중단됐던 한·일간 국교수립을 서두른 것이 화근이었다. 구악(舊惡) 일소를 내세우면서 신악(新惡)을 양산한 것도 반발을 부채질했다. 야당을 중심으로 ‘대일 저자세외교반대 범국민투쟁위원회’가 결성되고 전국의 대학생들이 매국적인 한·일회담 반대를 외치면서 정국은 혼미 속으로 빠져들었다. 타의였지만 5·16후 자취를 감췄던...

‘호색한의 대명사’ 카사노바 사망

“나는 여자들을 미치도록 사랑했다. 그러나 자유를 더 사랑했다.”던 베니스 출신의 카사노바가 1798년 6월 4일, 체코 프라하의 둑스성(城)에서 73세로 숨졌다. 죽기 전 둑스성에서 13년 간을 사서로 지내며 자신의 인생을 파노라마처럼 펼친 자서전 ‘내 인생의 이야기’를 탈고, 자신의 존재를 후세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알렸다. 노골적인 사랑 묘사로 그의 생존시에는 출간되지 못했지만 18세기 유럽의 사회·풍속을 이해하는데 더없이 귀중한 사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책이다....

조지 오웰, 소설 ‘1984년’ 출판

흔히 영국 소설가 조지 오웰을 좌파 사회주의자, 반(反)공산주의자, 아나키스트의 세 얼굴을 가진 인물로 묘사한다. 젊어서 사회주의자를 자처했던 그가 점차 권력 자체를 철저히 부정하는 자유인으로 변모하면서 좌우 양 진영으로부터 배척받았기 때문이다. 죽기 전 오웰은 채플린과 역사학자 E.H.카 등 공산주의자로 의심되는 위험 인물 38명의 명단을 영국 정보부에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오웰은 1903년 인도 벵갈에서 태어났다. 1917년부터 4년 간은 이튼스쿨에서 헉슬리로부터...

독립군의 봉오동 전투 개전

1920년 6월 4일, 홍범도와 최진동의 연합 독립군부대인 대한군북로독군부 30여 명이 두만강을 건너 함북 종성군에 주둔하고 있는 일본군 국경초소를 급습했다. 국내 진공(進攻)이 가능한지 여부를 알아보기 위한 탐색전이었다. 일본군 남양수비대 1개 중대가 국경을 건너 독립군의 뒤를 쫓았으나 독립군은 이미 근거지인 북간도 화룡현 삼둔자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접근해오는 일본군에 사격을 가해 60여 명을 숨지게 했다. 6월 6일 오전 10시 무렵이었다. 독립군의 세(勢)를 확인한...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 자살

2차대전이 발발하자 영국 정부는 독일이 자랑하는 암호작성기 ‘에니그마(ENIGMA)’의 암호체계를 풀기 위해 과학자들을 런던 근교 블레츨리 파크에 불러 모았다.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막 수학박사 학위를 받고 돌아온 27세의 앨런 튜링도 소집 대상이었는데 그 역시 조국의 부름에 흔쾌히 응했다. 튜링은 1936년에 ‘계산 가능한 수에 관하여’라는 논문을 쓰고 1937년에 이 논문을 근거로 현대 컴퓨터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튜링 기계’를 수학적으로 고안해낸 ‘천재 수학자’였다....

연합국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일찌감치 해안 사수를 명령하고 전 해안의 요새화를 준비해 온 히틀러에게 “1944년 봄부터 영국 남부 해안에 수십만명의 연합군이 몰려들고 다량의 무기와 탄약, 보급품 등이 쌓이고 있다”는 정보가 전달되었다. 히틀러는 상륙 지점을 예측하는 데 골몰했다. 연합군의 역(逆)정보로 목표가 노르웨이인지 덴마크인지 프랑스인지 헷갈리던 차에 연합군이 이따금씩 프랑스 칼레 지방에 출동하는 제스처를 취하자 히틀러는 칼레를 상륙 예상지로 꼽았다. 상륙 일자도 오리무중이었다. 상륙 저지 역할을...

중국 위안스카이(원세개) 사망

중국 위안스카이(원세개) 사망

위안스카이(袁世凱)의 정치적 출발점은 조선이다. 시골 향시에 두 번이나 떨어지고 건달들과 어울려다니며 망나니 노릇을 하던 그가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조선이 자리잡고 있었다. 조선과의 첫 만남은 1882년 임오군란에서 시작됐다. 하급관료에 불과했으나 갑신정변 때 출병한 이홍장(李鴻章)과 조선 땅에서 인연을 맺으면서 앞길에 서광이 비췄다. 청의 군대를 끌여들여 동학농민혁명을 제압한 그는, 1894년 청일전쟁이 일어나기 1주일 전 귀국하면서 12년 동안 맺어온 조선과의...

美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에 승리

1942년 6월, 4척의 항공모함과 300척의 군함, 1000여 기의 항공기가 동원된 일본군의 총공세가 시작됐다. 일본 본토에 대한 공격을 저지하고 전쟁을 조기에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목표는 하와이 북서쪽 1600㎞ 지점에 위치한 미드웨이섬이었다. 일본군 연합함대 총사령관은 야마모토 이소로쿠(山本五十六)가 맡았다. 6월 5일 이른 아침, 항공모함에서 발진한 일본 전투기가 미군 비행장을 폭격했다. 그러나 비행장은 비어있었다. 이미 일본군의 암호망이 뚫렸기 때문이다. 전투기들이...

美 ‘마샬 플랜 발표

냉전의 시발점이 된 ‘트루먼 독트린’이 발표되고 3개월도 채 안된 1947년 6월 5일, 조지 마샬 미 국무장관이 하버드대 졸업식에서 유럽부흥계획(ERP) 이른바 ‘마샬 플랜’을 발표했다. 2차대전으로 잿더미가 된 유럽 경제를 재건해 자본주의 국가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안정된 환경을 이루자는 것이 취지였지만 바탕에는 미국의 과잉자본을 해소하고 상품시장의 배출구를 마련할 목적도 깔려있었다. 당시 유럽의 경제 사정은 한 언론사의 표현대로 ‘콘스탄티노플 함락 이후 최대의 비극’이라...

김일성도 참전한 보천보 전투

북한에서 ‘보천보 전투’는 김일성의 무장항일 투쟁사 가운데 가장 상징적인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따라서 ‘보천보(普天堡)’라는 이름이 붙여지면 그만큼 중요성을 인정받는 뜻이 된다. ‘휘파람’이라는 히트곡과 전혜영이라는 대중스타를 배출한 악단도 보천보전자악단이고, 북한에서 가장 큰 기념탑도 높이 49m, 길이 60m의 보천보전투기념탑이다. 전투는 1937년 6월 4일 시작됐다. 보천보는 백두산맥 남서쪽 끝자락에 위치한 곳으로 해방 이전에는 함남 갑산군에 속했다가 지금은...

박정희 정부 6·3계엄령 선포

2년7개월간의 군정기간을 보내고 1963년 12월에 비로소 대통령에 취임한 박정희 대통령이 첫 대규모 난관에 봉착했다. 이승만 정권 때 시도했으나 구보타 망언으로 중단됐던 한·일간 국교수립을 서두른 것이 화근이었다. 구악(舊惡) 일소를 내세우면서 신악(新惡)을 양산한 것도 반발을 부채질했다. 야당을 중심으로 ‘대일 저자세외교반대 범국민투쟁위원회’가 결성되고 전국의 대학생들이 매국적인 한·일회담 반대를 외치면서 정국은 혼미 속으로 빠져들었다. 타의였지만 5·16후 자취를 감췄던...

‘호색한의 대명사’ 카사노바 사망

“나는 여자들을 미치도록 사랑했다. 그러나 자유를 더 사랑했다.”던 베니스 출신의 카사노바가 1798년 6월 4일, 체코 프라하의 둑스성(城)에서 73세로 숨졌다. 죽기 전 둑스성에서 13년 간을 사서로 지내며 자신의 인생을 파노라마처럼 펼친 자서전 ‘내 인생의 이야기’를 탈고, 자신의 존재를 후세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알렸다. 노골적인 사랑 묘사로 그의 생존시에는 출간되지 못했지만 18세기 유럽의 사회·풍속을 이해하는데 더없이 귀중한 사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책이다....

조지 오웰, 소설 ‘1984년’ 출판

흔히 영국 소설가 조지 오웰을 좌파 사회주의자, 반(反)공산주의자, 아나키스트의 세 얼굴을 가진 인물로 묘사한다. 젊어서 사회주의자를 자처했던 그가 점차 권력 자체를 철저히 부정하는 자유인으로 변모하면서 좌우 양 진영으로부터 배척받았기 때문이다. 죽기 전 오웰은 채플린과 역사학자 E.H.카 등 공산주의자로 의심되는 위험 인물 38명의 명단을 영국 정보부에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오웰은 1903년 인도 벵갈에서 태어났다. 1917년부터 4년 간은 이튼스쿨에서 헉슬리로부터...

독립군의 봉오동 전투 개전

1920년 6월 4일, 홍범도와 최진동의 연합 독립군부대인 대한군북로독군부 30여 명이 두만강을 건너 함북 종성군에 주둔하고 있는 일본군 국경초소를 급습했다. 국내 진공(進攻)이 가능한지 여부를 알아보기 위한 탐색전이었다. 일본군 남양수비대 1개 중대가 국경을 건너 독립군의 뒤를 쫓았으나 독립군은 이미 근거지인 북간도 화룡현 삼둔자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접근해오는 일본군에 사격을 가해 60여 명을 숨지게 했다. 6월 6일 오전 10시 무렵이었다. 독립군의 세(勢)를 확인한...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 자살

2차대전이 발발하자 영국 정부는 독일이 자랑하는 암호작성기 ‘에니그마(ENIGMA)’의 암호체계를 풀기 위해 과학자들을 런던 근교 블레츨리 파크에 불러 모았다.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막 수학박사 학위를 받고 돌아온 27세의 앨런 튜링도 소집 대상이었는데 그 역시 조국의 부름에 흔쾌히 응했다. 튜링은 1936년에 ‘계산 가능한 수에 관하여’라는 논문을 쓰고 1937년에 이 논문을 근거로 현대 컴퓨터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튜링 기계’를 수학적으로 고안해낸 ‘천재 수학자’였다....

연합국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일찌감치 해안 사수를 명령하고 전 해안의 요새화를 준비해 온 히틀러에게 “1944년 봄부터 영국 남부 해안에 수십만명의 연합군이 몰려들고 다량의 무기와 탄약, 보급품 등이 쌓이고 있다”는 정보가 전달되었다. 히틀러는 상륙 지점을 예측하는 데 골몰했다. 연합군의 역(逆)정보로 목표가 노르웨이인지 덴마크인지 프랑스인지 헷갈리던 차에 연합군이 이따금씩 프랑스 칼레 지방에 출동하는 제스처를 취하자 히틀러는 칼레를 상륙 예상지로 꼽았다. 상륙 일자도 오리무중이었다. 상륙 저지 역할을...

중국 위안스카이(원세개) 사망

중국 위안스카이(원세개) 사망

위안스카이(袁世凱)의 정치적 출발점은 조선이다. 시골 향시에 두 번이나 떨어지고 건달들과 어울려다니며 망나니 노릇을 하던 그가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조선이 자리잡고 있었다. 조선과의 첫 만남은 1882년 임오군란에서 시작됐다. 하급관료에 불과했으나 갑신정변 때 출병한 이홍장(李鴻章)과 조선 땅에서 인연을 맺으면서 앞길에 서광이 비췄다. 청의 군대를 끌여들여 동학농민혁명을 제압한 그는, 1894년 청일전쟁이 일어나기 1주일 전 귀국하면서 12년 동안 맺어온 조선과의...

美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에 승리

1942년 6월, 4척의 항공모함과 300척의 군함, 1000여 기의 항공기가 동원된 일본군의 총공세가 시작됐다. 일본 본토에 대한 공격을 저지하고 전쟁을 조기에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목표는 하와이 북서쪽 1600㎞ 지점에 위치한 미드웨이섬이었다. 일본군 연합함대 총사령관은 야마모토 이소로쿠(山本五十六)가 맡았다. 6월 5일 이른 아침, 항공모함에서 발진한 일본 전투기가 미군 비행장을 폭격했다. 그러나 비행장은 비어있었다. 이미 일본군의 암호망이 뚫렸기 때문이다. 전투기들이...

美 ‘마샬 플랜 발표

냉전의 시발점이 된 ‘트루먼 독트린’이 발표되고 3개월도 채 안된 1947년 6월 5일, 조지 마샬 미 국무장관이 하버드대 졸업식에서 유럽부흥계획(ERP) 이른바 ‘마샬 플랜’을 발표했다. 2차대전으로 잿더미가 된 유럽 경제를 재건해 자본주의 국가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안정된 환경을 이루자는 것이 취지였지만 바탕에는 미국의 과잉자본을 해소하고 상품시장의 배출구를 마련할 목적도 깔려있었다. 당시 유럽의 경제 사정은 한 언론사의 표현대로 ‘콘스탄티노플 함락 이후 최대의 비극’이라...

김일성도 참전한 보천보 전투

북한에서 ‘보천보 전투’는 김일성의 무장항일 투쟁사 가운데 가장 상징적인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따라서 ‘보천보(普天堡)’라는 이름이 붙여지면 그만큼 중요성을 인정받는 뜻이 된다. ‘휘파람’이라는 히트곡과 전혜영이라는 대중스타를 배출한 악단도 보천보전자악단이고, 북한에서 가장 큰 기념탑도 높이 49m, 길이 60m의 보천보전투기념탑이다. 전투는 1937년 6월 4일 시작됐다. 보천보는 백두산맥 남서쪽 끝자락에 위치한 곳으로 해방 이전에는 함남 갑산군에 속했다가 지금은...

박정희 정부 6·3계엄령 선포

2년7개월간의 군정기간을 보내고 1963년 12월에 비로소 대통령에 취임한 박정희 대통령이 첫 대규모 난관에 봉착했다. 이승만 정권 때 시도했으나 구보타 망언으로 중단됐던 한·일간 국교수립을 서두른 것이 화근이었다. 구악(舊惡) 일소를 내세우면서 신악(新惡)을 양산한 것도 반발을 부채질했다. 야당을 중심으로 ‘대일 저자세외교반대 범국민투쟁위원회’가 결성되고 전국의 대학생들이 매국적인 한·일회담 반대를 외치면서 정국은 혼미 속으로 빠져들었다. 타의였지만 5·16후 자취를 감췄던...

‘호색한의 대명사’ 카사노바 사망

“나는 여자들을 미치도록 사랑했다. 그러나 자유를 더 사랑했다.”던 베니스 출신의 카사노바가 1798년 6월 4일, 체코 프라하의 둑스성(城)에서 73세로 숨졌다. 죽기 전 둑스성에서 13년 간을 사서로 지내며 자신의 인생을 파노라마처럼 펼친 자서전 ‘내 인생의 이야기’를 탈고, 자신의 존재를 후세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알렸다. 노골적인 사랑 묘사로 그의 생존시에는 출간되지 못했지만 18세기 유럽의 사회·풍속을 이해하는데 더없이 귀중한 사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책이다....

조지 오웰, 소설 ‘1984년’ 출판

흔히 영국 소설가 조지 오웰을 좌파 사회주의자, 반(反)공산주의자, 아나키스트의 세 얼굴을 가진 인물로 묘사한다. 젊어서 사회주의자를 자처했던 그가 점차 권력 자체를 철저히 부정하는 자유인으로 변모하면서 좌우 양 진영으로부터 배척받았기 때문이다. 죽기 전 오웰은 채플린과 역사학자 E.H.카 등 공산주의자로 의심되는 위험 인물 38명의 명단을 영국 정보부에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오웰은 1903년 인도 벵갈에서 태어났다. 1917년부터 4년 간은 이튼스쿨에서 헉슬리로부터...

독립군의 봉오동 전투 개전

1920년 6월 4일, 홍범도와 최진동의 연합 독립군부대인 대한군북로독군부 30여 명이 두만강을 건너 함북 종성군에 주둔하고 있는 일본군 국경초소를 급습했다. 국내 진공(進攻)이 가능한지 여부를 알아보기 위한 탐색전이었다. 일본군 남양수비대 1개 중대가 국경을 건너 독립군의 뒤를 쫓았으나 독립군은 이미 근거지인 북간도 화룡현 삼둔자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접근해오는 일본군에 사격을 가해 60여 명을 숨지게 했다. 6월 6일 오전 10시 무렵이었다. 독립군의 세(勢)를 확인한...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 자살

2차대전이 발발하자 영국 정부는 독일이 자랑하는 암호작성기 ‘에니그마(ENIGMA)’의 암호체계를 풀기 위해 과학자들을 런던 근교 블레츨리 파크에 불러 모았다.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막 수학박사 학위를 받고 돌아온 27세의 앨런 튜링도 소집 대상이었는데 그 역시 조국의 부름에 흔쾌히 응했다. 튜링은 1936년에 ‘계산 가능한 수에 관하여’라는 논문을 쓰고 1937년에 이 논문을 근거로 현대 컴퓨터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튜링 기계’를 수학적으로 고안해낸 ‘천재 수학자’였다....

연합국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일찌감치 해안 사수를 명령하고 전 해안의 요새화를 준비해 온 히틀러에게 “1944년 봄부터 영국 남부 해안에 수십만명의 연합군이 몰려들고 다량의 무기와 탄약, 보급품 등이 쌓이고 있다”는 정보가 전달되었다. 히틀러는 상륙 지점을 예측하는 데 골몰했다. 연합군의 역(逆)정보로 목표가 노르웨이인지 덴마크인지 프랑스인지 헷갈리던 차에 연합군이 이따금씩 프랑스 칼레 지방에 출동하는 제스처를 취하자 히틀러는 칼레를 상륙 예상지로 꼽았다. 상륙 일자도 오리무중이었다. 상륙 저지 역할을...

중국 위안스카이(원세개) 사망

중국 위안스카이(원세개) 사망

위안스카이(袁世凱)의 정치적 출발점은 조선이다. 시골 향시에 두 번이나 떨어지고 건달들과 어울려다니며 망나니 노릇을 하던 그가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조선이 자리잡고 있었다. 조선과의 첫 만남은 1882년 임오군란에서 시작됐다. 하급관료에 불과했으나 갑신정변 때 출병한 이홍장(李鴻章)과 조선 땅에서 인연을 맺으면서 앞길에 서광이 비췄다. 청의 군대를 끌여들여 동학농민혁명을 제압한 그는, 1894년 청일전쟁이 일어나기 1주일 전 귀국하면서 12년 동안 맺어온 조선과의...

美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에 승리

1942년 6월, 4척의 항공모함과 300척의 군함, 1000여 기의 항공기가 동원된 일본군의 총공세가 시작됐다. 일본 본토에 대한 공격을 저지하고 전쟁을 조기에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목표는 하와이 북서쪽 1600㎞ 지점에 위치한 미드웨이섬이었다. 일본군 연합함대 총사령관은 야마모토 이소로쿠(山本五十六)가 맡았다. 6월 5일 이른 아침, 항공모함에서 발진한 일본 전투기가 미군 비행장을 폭격했다. 그러나 비행장은 비어있었다. 이미 일본군의 암호망이 뚫렸기 때문이다. 전투기들이...

美 ‘마샬 플랜 발표

냉전의 시발점이 된 ‘트루먼 독트린’이 발표되고 3개월도 채 안된 1947년 6월 5일, 조지 마샬 미 국무장관이 하버드대 졸업식에서 유럽부흥계획(ERP) 이른바 ‘마샬 플랜’을 발표했다. 2차대전으로 잿더미가 된 유럽 경제를 재건해 자본주의 국가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안정된 환경을 이루자는 것이 취지였지만 바탕에는 미국의 과잉자본을 해소하고 상품시장의 배출구를 마련할 목적도 깔려있었다. 당시 유럽의 경제 사정은 한 언론사의 표현대로 ‘콘스탄티노플 함락 이후 최대의 비극’이라...

김일성도 참전한 보천보 전투

북한에서 ‘보천보 전투’는 김일성의 무장항일 투쟁사 가운데 가장 상징적인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따라서 ‘보천보(普天堡)’라는 이름이 붙여지면 그만큼 중요성을 인정받는 뜻이 된다. ‘휘파람’이라는 히트곡과 전혜영이라는 대중스타를 배출한 악단도 보천보전자악단이고, 북한에서 가장 큰 기념탑도 높이 49m, 길이 60m의 보천보전투기념탑이다. 전투는 1937년 6월 4일 시작됐다. 보천보는 백두산맥 남서쪽 끝자락에 위치한 곳으로 해방 이전에는 함남 갑산군에 속했다가 지금은...

박정희 정부 6·3계엄령 선포

2년7개월간의 군정기간을 보내고 1963년 12월에 비로소 대통령에 취임한 박정희 대통령이 첫 대규모 난관에 봉착했다. 이승만 정권 때 시도했으나 구보타 망언으로 중단됐던 한·일간 국교수립을 서두른 것이 화근이었다. 구악(舊惡) 일소를 내세우면서 신악(新惡)을 양산한 것도 반발을 부채질했다. 야당을 중심으로 ‘대일 저자세외교반대 범국민투쟁위원회’가 결성되고 전국의 대학생들이 매국적인 한·일회담 반대를 외치면서 정국은 혼미 속으로 빠져들었다. 타의였지만 5·16후 자취를 감췄던...

‘호색한의 대명사’ 카사노바 사망

“나는 여자들을 미치도록 사랑했다. 그러나 자유를 더 사랑했다.”던 베니스 출신의 카사노바가 1798년 6월 4일, 체코 프라하의 둑스성(城)에서 73세로 숨졌다. 죽기 전 둑스성에서 13년 간을 사서로 지내며 자신의 인생을 파노라마처럼 펼친 자서전 ‘내 인생의 이야기’를 탈고, 자신의 존재를 후세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알렸다. 노골적인 사랑 묘사로 그의 생존시에는 출간되지 못했지만 18세기 유럽의 사회·풍속을 이해하는데 더없이 귀중한 사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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