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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아폴로와 소련의 소유즈 도킹 성공

1975년 7월 17일, 미국의 아폴로18호와 소련의 소유즈19호가 포르투갈에서 1150㎞ 떨어진 대서양 상공에서 도킹에 성공했다. 아폴로에는 토마스 스태포드 선장과 2명의 비행사가, 소유즈에는 알렉세이 레오노프 선장과 2명의 비행사가 타고 있었다. 도킹 전 아폴로보다 기동성이 떨어지고 덩치가 작은 소유즈는 대기 자세를 취했고, 아폴로는 도킹에 필요한 궤도와 속도를 취해 도킹을 성사시켰다. 도킹 3시간 후, 스태포드가 아폴로 해치를 열고 유영(游泳)하며 소유즈로 옮겨타자...

대한민국 헌법 공포

1948년은 ‘대한민국호(號)’를 진수시키기 위해 전 국민이 숨가쁘게 질주했던 한 해였다. 먼저 5월 10일 총선으로 198명의 제헌의원이 탄생하고, 5월31일 최고령자 이승만을 임시의장으로 한 역사적인 제헌의회가 개원됐다. 첫 본회의는 188표라는 압도적인 지지로 이승만을 정식 국회의장으로 선출했다. 이로써 3권분립의 한 축이 가까스로 자리를 잡았다. 이제 대한민국의 밑그림이 될 헌법을 제정할 차례였다. 누군들 경험이 있었을까, 당연히 시행착오가 따랐다. 6월1일 국회 내에...

美 맨해튼 프로젝트와 인류최초의 원자폭탄 실험

독일의 오토 한과 프리츠 슈트라스만이 베를린의 카이저빌헬름화학연구소에서 1938년 12월 22일에 우라늄의 원자핵 분열을 성공시켰다는 소식이 덴마크 물리학자 닐스 보어를 통해 미국에 망명 중인 엔리코 페르미와 레오 질라드에게 전달된 것은 1939년 초였다. 질라드가 아인슈타인을 설득해 핵분열이 군사목적에 이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알리도록 하고, 아인슈타인이 1939년 10월 루스벨트에게 편지를 쓰면서 미국의 원자력 연구도 비로소 본 궤도에 올랐다. 한동안...

美 프로야구 선수 조 디마지오 56경기 연속안타

그 해 초, 조 디마지오의 출발은 순조롭지 못했다. 5월 들어서도 타율은 3할에 머물렀다. 1년 전 3할5푼2리, 2년 전 3할8푼1리와 비교하면 한참 못미치는 수준이었다. 그가 속한 뉴욕 양키스도 덩달아 침체에 빠져 4위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때문에 1941년 5월 15일의 안타를 주목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대기록의 신호탄이었다. 게임이 진행될수록 그의 연속안타 숫자도 함께 늘어났다. 신문과 라디오가 흥분하기 시작한 것은 6월 중순, 그가 29경기...

[장상인의 일본 산책] 잠시 짬을 내 여행한 시모노세키(下關) 여정

[장상인의 일본 산책] 잠시 짬을 내 여행한 시모노세키(下關) 여정

↑ 일본 본토와 규슈 사이의 간몬해협(關門海峽)과 간몬교(關門橋)   by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시모노세키(下關)는 일찍이 서부 일본의 교통 요충지이자 무역의 중심지로 크게 번창하였던 항구 도시다. 일본은 1905년, 부산과 시모노세키(下關)를 왕래하는 관부연락선(關釜連絡船) 항로를 개설하여, 1945년 종전 때까지 대륙을 향한 관문으로 활용했다. 야마구치(山口)현에 해당되는 시모노세키는 해협을 사이에 두고 규슈(九州)의 모지(門司)항과...

이집트 나일강변에서 ‘로제타 스톤’ 발견… 이집트 5000년 역사 신비 풀려

1799년 7월 15일,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대가 나일강변의 전략요충지 로제타에서 요새 터를 파던 중, 한 장교가 문자들이 빽빽하게 적혀있는 가로 72㎝·세로 114㎝·두께 30㎝ 크기의 검은 현무암 석판 하나를 발견했다. 돌에는 54행의 그리스 문자와 이를 번역한 이집트 상형문자, 서민들이 즐겨쓰던 민중문자(현재의 아랍어)가 함께 새겨져 있었다. 나폴레옹이 중요한 돌이란 사실을 모를 리 없었건만 2년 뒤 영국군에 패배하는 바람에 돌은 영국으로 넘어가 대영박물관에 보관됐다....

제1차 십자군, 이슬람이 지배하는 예루살렘 460년만에 함락

638년 예수살렘이 이슬람의 수중에 넘어갔어도 예루살렘에는 이슬람과 유대인이 공존했다. 술탄(왕)도 기독교 순례자들을 마다하자 않았다. 그러나 11세기 초 반기독교적인 칼리프 하킴이 등장하면서 이곳을 둘러싸고 갈등이 고조됐다. 그는 성지 순례자들의 출입을 금지하고 예루살렘 골고다 언덕에 있는 성묘교회까지 파괴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성묘교회는 기독교인들에게는 성지의 상징이었고 성지 순례의 최종 목적지였다. 유럽 기독교인들이 격앙돼 있는 상태에서 기독교 세계를 위협하는 또...

이준 열사 헤이그에서 분사(憤死)

이준이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참가, 일제의 조선 침탈과 을사조약의 부당성을 세계에 알리고자 서울을 출발한 것은 1907년 4월 22일이었다. 전날 밤, 고종이 종친인 이준을 불러 “오늘밤 짐은 골육지친을 만나 국가 대사를 의탁하게 되니 기쁘기 한량없다”며 소회를 드러냈다. 부사(副使)였던 이준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난 정사(正使) 이상설과 함께 당시 러시아의 수도 페테르부르크로 가 이위종과 합류했다. 세 사람은 헤이그로 향하기에 앞서 러시아...

1930년대 최대 민중계몽이던 문자보급운동, 조선일보 사고(社告) 게재

“아는 것이 힘! 배워야 산다” “가르치자! 나 아는대로” 90%에 달했던 문맹을 없애고 민족정신을 일깨우기 위해 추진된 문자보급운동이 그 개막을 알린 것은 1929년 7월 14일자 조선일보 사고(社告)였다. 이날자 조선일보는 ‘제1회 귀향남녀학생 문자보급반’이라는 제목의 사고를 통해 귀향 학생들이 각 고장에서 한글을 가르칠 것을 제안했다. 실적이 우수한 학생에게 줄 1000원(圓)의 장학금도 내걸었다. 방학을 맞아 귀향하는 409명의 학생들 손에는 1쪽짜리 한글교재...

미군정청, 국대안(국립 서울대안) 발표… 좌익의 반대운동 본격화

1946년 7월 13일, 미군정 문교부장 유억겸이 “경성경제전문·경성법학전문·경성의학전문·경성사범 등을 합쳐 국립 서울대를 신설한다”는 내용의 ‘국대안(국립 서울대안)’을 발표하고, 8월 22일 미군정청 학무국이 국립서울대 설치령을 공포하면서 이른바 ‘국대안(國大案) 파동’이 시작됐다. 당초 파동은 학무국이 통합 개편될 해당 학교들과의 충분한 사전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한 데서 비롯된 논쟁적 성격이 짙었지만 좌익은 “국대안이 고등교육기관을 축소시키고 미국인을 총장으로...

미국의 아폴로와 소련의 소유즈 도킹 성공

1975년 7월 17일, 미국의 아폴로18호와 소련의 소유즈19호가 포르투갈에서 1150㎞ 떨어진 대서양 상공에서 도킹에 성공했다. 아폴로에는 토마스 스태포드 선장과 2명의 비행사가, 소유즈에는 알렉세이 레오노프 선장과 2명의 비행사가 타고 있었다. 도킹 전 아폴로보다 기동성이 떨어지고 덩치가 작은 소유즈는 대기 자세를 취했고, 아폴로는 도킹에 필요한 궤도와 속도를 취해 도킹을 성사시켰다. 도킹 3시간 후, 스태포드가 아폴로 해치를 열고 유영(游泳)하며 소유즈로 옮겨타자...

대한민국 헌법 공포

1948년은 ‘대한민국호(號)’를 진수시키기 위해 전 국민이 숨가쁘게 질주했던 한 해였다. 먼저 5월 10일 총선으로 198명의 제헌의원이 탄생하고, 5월31일 최고령자 이승만을 임시의장으로 한 역사적인 제헌의회가 개원됐다. 첫 본회의는 188표라는 압도적인 지지로 이승만을 정식 국회의장으로 선출했다. 이로써 3권분립의 한 축이 가까스로 자리를 잡았다. 이제 대한민국의 밑그림이 될 헌법을 제정할 차례였다. 누군들 경험이 있었을까, 당연히 시행착오가 따랐다. 6월1일 국회 내에...

美 맨해튼 프로젝트와 인류최초의 원자폭탄 실험

독일의 오토 한과 프리츠 슈트라스만이 베를린의 카이저빌헬름화학연구소에서 1938년 12월 22일에 우라늄의 원자핵 분열을 성공시켰다는 소식이 덴마크 물리학자 닐스 보어를 통해 미국에 망명 중인 엔리코 페르미와 레오 질라드에게 전달된 것은 1939년 초였다. 질라드가 아인슈타인을 설득해 핵분열이 군사목적에 이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알리도록 하고, 아인슈타인이 1939년 10월 루스벨트에게 편지를 쓰면서 미국의 원자력 연구도 비로소 본 궤도에 올랐다. 한동안...

美 프로야구 선수 조 디마지오 56경기 연속안타

그 해 초, 조 디마지오의 출발은 순조롭지 못했다. 5월 들어서도 타율은 3할에 머물렀다. 1년 전 3할5푼2리, 2년 전 3할8푼1리와 비교하면 한참 못미치는 수준이었다. 그가 속한 뉴욕 양키스도 덩달아 침체에 빠져 4위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때문에 1941년 5월 15일의 안타를 주목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대기록의 신호탄이었다. 게임이 진행될수록 그의 연속안타 숫자도 함께 늘어났다. 신문과 라디오가 흥분하기 시작한 것은 6월 중순, 그가 29경기...

[장상인의 일본 산책] 잠시 짬을 내 여행한 시모노세키(下關) 여정

[장상인의 일본 산책] 잠시 짬을 내 여행한 시모노세키(下關) 여정

↑ 일본 본토와 규슈 사이의 간몬해협(關門海峽)과 간몬교(關門橋)   by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시모노세키(下關)는 일찍이 서부 일본의 교통 요충지이자 무역의 중심지로 크게 번창하였던 항구 도시다. 일본은 1905년, 부산과 시모노세키(下關)를 왕래하는 관부연락선(關釜連絡船) 항로를 개설하여, 1945년 종전 때까지 대륙을 향한 관문으로 활용했다. 야마구치(山口)현에 해당되는 시모노세키는 해협을 사이에 두고 규슈(九州)의 모지(門司)항과...

이집트 나일강변에서 ‘로제타 스톤’ 발견… 이집트 5000년 역사 신비 풀려

1799년 7월 15일,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대가 나일강변의 전략요충지 로제타에서 요새 터를 파던 중, 한 장교가 문자들이 빽빽하게 적혀있는 가로 72㎝·세로 114㎝·두께 30㎝ 크기의 검은 현무암 석판 하나를 발견했다. 돌에는 54행의 그리스 문자와 이를 번역한 이집트 상형문자, 서민들이 즐겨쓰던 민중문자(현재의 아랍어)가 함께 새겨져 있었다. 나폴레옹이 중요한 돌이란 사실을 모를 리 없었건만 2년 뒤 영국군에 패배하는 바람에 돌은 영국으로 넘어가 대영박물관에 보관됐다....

제1차 십자군, 이슬람이 지배하는 예루살렘 460년만에 함락

638년 예수살렘이 이슬람의 수중에 넘어갔어도 예루살렘에는 이슬람과 유대인이 공존했다. 술탄(왕)도 기독교 순례자들을 마다하자 않았다. 그러나 11세기 초 반기독교적인 칼리프 하킴이 등장하면서 이곳을 둘러싸고 갈등이 고조됐다. 그는 성지 순례자들의 출입을 금지하고 예루살렘 골고다 언덕에 있는 성묘교회까지 파괴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성묘교회는 기독교인들에게는 성지의 상징이었고 성지 순례의 최종 목적지였다. 유럽 기독교인들이 격앙돼 있는 상태에서 기독교 세계를 위협하는 또...

이준 열사 헤이그에서 분사(憤死)

이준이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참가, 일제의 조선 침탈과 을사조약의 부당성을 세계에 알리고자 서울을 출발한 것은 1907년 4월 22일이었다. 전날 밤, 고종이 종친인 이준을 불러 “오늘밤 짐은 골육지친을 만나 국가 대사를 의탁하게 되니 기쁘기 한량없다”며 소회를 드러냈다. 부사(副使)였던 이준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난 정사(正使) 이상설과 함께 당시 러시아의 수도 페테르부르크로 가 이위종과 합류했다. 세 사람은 헤이그로 향하기에 앞서 러시아...

1930년대 최대 민중계몽이던 문자보급운동, 조선일보 사고(社告) 게재

“아는 것이 힘! 배워야 산다” “가르치자! 나 아는대로” 90%에 달했던 문맹을 없애고 민족정신을 일깨우기 위해 추진된 문자보급운동이 그 개막을 알린 것은 1929년 7월 14일자 조선일보 사고(社告)였다. 이날자 조선일보는 ‘제1회 귀향남녀학생 문자보급반’이라는 제목의 사고를 통해 귀향 학생들이 각 고장에서 한글을 가르칠 것을 제안했다. 실적이 우수한 학생에게 줄 1000원(圓)의 장학금도 내걸었다. 방학을 맞아 귀향하는 409명의 학생들 손에는 1쪽짜리 한글교재...

미군정청, 국대안(국립 서울대안) 발표… 좌익의 반대운동 본격화

1946년 7월 13일, 미군정 문교부장 유억겸이 “경성경제전문·경성법학전문·경성의학전문·경성사범 등을 합쳐 국립 서울대를 신설한다”는 내용의 ‘국대안(국립 서울대안)’을 발표하고, 8월 22일 미군정청 학무국이 국립서울대 설치령을 공포하면서 이른바 ‘국대안(國大案) 파동’이 시작됐다. 당초 파동은 학무국이 통합 개편될 해당 학교들과의 충분한 사전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한 데서 비롯된 논쟁적 성격이 짙었지만 좌익은 “국대안이 고등교육기관을 축소시키고 미국인을 총장으로...

미국의 아폴로와 소련의 소유즈 도킹 성공

1975년 7월 17일, 미국의 아폴로18호와 소련의 소유즈19호가 포르투갈에서 1150㎞ 떨어진 대서양 상공에서 도킹에 성공했다. 아폴로에는 토마스 스태포드 선장과 2명의 비행사가, 소유즈에는 알렉세이 레오노프 선장과 2명의 비행사가 타고 있었다. 도킹 전 아폴로보다 기동성이 떨어지고 덩치가 작은 소유즈는 대기 자세를 취했고, 아폴로는 도킹에 필요한 궤도와 속도를 취해 도킹을 성사시켰다. 도킹 3시간 후, 스태포드가 아폴로 해치를 열고 유영(游泳)하며 소유즈로 옮겨타자...

대한민국 헌법 공포

1948년은 ‘대한민국호(號)’를 진수시키기 위해 전 국민이 숨가쁘게 질주했던 한 해였다. 먼저 5월 10일 총선으로 198명의 제헌의원이 탄생하고, 5월31일 최고령자 이승만을 임시의장으로 한 역사적인 제헌의회가 개원됐다. 첫 본회의는 188표라는 압도적인 지지로 이승만을 정식 국회의장으로 선출했다. 이로써 3권분립의 한 축이 가까스로 자리를 잡았다. 이제 대한민국의 밑그림이 될 헌법을 제정할 차례였다. 누군들 경험이 있었을까, 당연히 시행착오가 따랐다. 6월1일 국회 내에...

美 맨해튼 프로젝트와 인류최초의 원자폭탄 실험

독일의 오토 한과 프리츠 슈트라스만이 베를린의 카이저빌헬름화학연구소에서 1938년 12월 22일에 우라늄의 원자핵 분열을 성공시켰다는 소식이 덴마크 물리학자 닐스 보어를 통해 미국에 망명 중인 엔리코 페르미와 레오 질라드에게 전달된 것은 1939년 초였다. 질라드가 아인슈타인을 설득해 핵분열이 군사목적에 이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알리도록 하고, 아인슈타인이 1939년 10월 루스벨트에게 편지를 쓰면서 미국의 원자력 연구도 비로소 본 궤도에 올랐다. 한동안...

美 프로야구 선수 조 디마지오 56경기 연속안타

그 해 초, 조 디마지오의 출발은 순조롭지 못했다. 5월 들어서도 타율은 3할에 머물렀다. 1년 전 3할5푼2리, 2년 전 3할8푼1리와 비교하면 한참 못미치는 수준이었다. 그가 속한 뉴욕 양키스도 덩달아 침체에 빠져 4위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때문에 1941년 5월 15일의 안타를 주목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대기록의 신호탄이었다. 게임이 진행될수록 그의 연속안타 숫자도 함께 늘어났다. 신문과 라디오가 흥분하기 시작한 것은 6월 중순, 그가 29경기...

[장상인의 일본 산책] 잠시 짬을 내 여행한 시모노세키(下關) 여정

[장상인의 일본 산책] 잠시 짬을 내 여행한 시모노세키(下關) 여정

↑ 일본 본토와 규슈 사이의 간몬해협(關門海峽)과 간몬교(關門橋)   by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시모노세키(下關)는 일찍이 서부 일본의 교통 요충지이자 무역의 중심지로 크게 번창하였던 항구 도시다. 일본은 1905년, 부산과 시모노세키(下關)를 왕래하는 관부연락선(關釜連絡船) 항로를 개설하여, 1945년 종전 때까지 대륙을 향한 관문으로 활용했다. 야마구치(山口)현에 해당되는 시모노세키는 해협을 사이에 두고 규슈(九州)의 모지(門司)항과...

이집트 나일강변에서 ‘로제타 스톤’ 발견… 이집트 5000년 역사 신비 풀려

1799년 7월 15일,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대가 나일강변의 전략요충지 로제타에서 요새 터를 파던 중, 한 장교가 문자들이 빽빽하게 적혀있는 가로 72㎝·세로 114㎝·두께 30㎝ 크기의 검은 현무암 석판 하나를 발견했다. 돌에는 54행의 그리스 문자와 이를 번역한 이집트 상형문자, 서민들이 즐겨쓰던 민중문자(현재의 아랍어)가 함께 새겨져 있었다. 나폴레옹이 중요한 돌이란 사실을 모를 리 없었건만 2년 뒤 영국군에 패배하는 바람에 돌은 영국으로 넘어가 대영박물관에 보관됐다....

제1차 십자군, 이슬람이 지배하는 예루살렘 460년만에 함락

638년 예수살렘이 이슬람의 수중에 넘어갔어도 예루살렘에는 이슬람과 유대인이 공존했다. 술탄(왕)도 기독교 순례자들을 마다하자 않았다. 그러나 11세기 초 반기독교적인 칼리프 하킴이 등장하면서 이곳을 둘러싸고 갈등이 고조됐다. 그는 성지 순례자들의 출입을 금지하고 예루살렘 골고다 언덕에 있는 성묘교회까지 파괴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성묘교회는 기독교인들에게는 성지의 상징이었고 성지 순례의 최종 목적지였다. 유럽 기독교인들이 격앙돼 있는 상태에서 기독교 세계를 위협하는 또...

이준 열사 헤이그에서 분사(憤死)

이준이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참가, 일제의 조선 침탈과 을사조약의 부당성을 세계에 알리고자 서울을 출발한 것은 1907년 4월 22일이었다. 전날 밤, 고종이 종친인 이준을 불러 “오늘밤 짐은 골육지친을 만나 국가 대사를 의탁하게 되니 기쁘기 한량없다”며 소회를 드러냈다. 부사(副使)였던 이준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난 정사(正使) 이상설과 함께 당시 러시아의 수도 페테르부르크로 가 이위종과 합류했다. 세 사람은 헤이그로 향하기에 앞서 러시아...

1930년대 최대 민중계몽이던 문자보급운동, 조선일보 사고(社告) 게재

“아는 것이 힘! 배워야 산다” “가르치자! 나 아는대로” 90%에 달했던 문맹을 없애고 민족정신을 일깨우기 위해 추진된 문자보급운동이 그 개막을 알린 것은 1929년 7월 14일자 조선일보 사고(社告)였다. 이날자 조선일보는 ‘제1회 귀향남녀학생 문자보급반’이라는 제목의 사고를 통해 귀향 학생들이 각 고장에서 한글을 가르칠 것을 제안했다. 실적이 우수한 학생에게 줄 1000원(圓)의 장학금도 내걸었다. 방학을 맞아 귀향하는 409명의 학생들 손에는 1쪽짜리 한글교재...

미군정청, 국대안(국립 서울대안) 발표… 좌익의 반대운동 본격화

1946년 7월 13일, 미군정 문교부장 유억겸이 “경성경제전문·경성법학전문·경성의학전문·경성사범 등을 합쳐 국립 서울대를 신설한다”는 내용의 ‘국대안(국립 서울대안)’을 발표하고, 8월 22일 미군정청 학무국이 국립서울대 설치령을 공포하면서 이른바 ‘국대안(國大案) 파동’이 시작됐다. 당초 파동은 학무국이 통합 개편될 해당 학교들과의 충분한 사전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한 데서 비롯된 논쟁적 성격이 짙었지만 좌익은 “국대안이 고등교육기관을 축소시키고 미국인을 총장으로...

미국의 아폴로와 소련의 소유즈 도킹 성공

1975년 7월 17일, 미국의 아폴로18호와 소련의 소유즈19호가 포르투갈에서 1150㎞ 떨어진 대서양 상공에서 도킹에 성공했다. 아폴로에는 토마스 스태포드 선장과 2명의 비행사가, 소유즈에는 알렉세이 레오노프 선장과 2명의 비행사가 타고 있었다. 도킹 전 아폴로보다 기동성이 떨어지고 덩치가 작은 소유즈는 대기 자세를 취했고, 아폴로는 도킹에 필요한 궤도와 속도를 취해 도킹을 성사시켰다. 도킹 3시간 후, 스태포드가 아폴로 해치를 열고 유영(游泳)하며 소유즈로 옮겨타자...

대한민국 헌법 공포

1948년은 ‘대한민국호(號)’를 진수시키기 위해 전 국민이 숨가쁘게 질주했던 한 해였다. 먼저 5월 10일 총선으로 198명의 제헌의원이 탄생하고, 5월31일 최고령자 이승만을 임시의장으로 한 역사적인 제헌의회가 개원됐다. 첫 본회의는 188표라는 압도적인 지지로 이승만을 정식 국회의장으로 선출했다. 이로써 3권분립의 한 축이 가까스로 자리를 잡았다. 이제 대한민국의 밑그림이 될 헌법을 제정할 차례였다. 누군들 경험이 있었을까, 당연히 시행착오가 따랐다. 6월1일 국회 내에...

美 맨해튼 프로젝트와 인류최초의 원자폭탄 실험

독일의 오토 한과 프리츠 슈트라스만이 베를린의 카이저빌헬름화학연구소에서 1938년 12월 22일에 우라늄의 원자핵 분열을 성공시켰다는 소식이 덴마크 물리학자 닐스 보어를 통해 미국에 망명 중인 엔리코 페르미와 레오 질라드에게 전달된 것은 1939년 초였다. 질라드가 아인슈타인을 설득해 핵분열이 군사목적에 이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알리도록 하고, 아인슈타인이 1939년 10월 루스벨트에게 편지를 쓰면서 미국의 원자력 연구도 비로소 본 궤도에 올랐다. 한동안...

美 프로야구 선수 조 디마지오 56경기 연속안타

그 해 초, 조 디마지오의 출발은 순조롭지 못했다. 5월 들어서도 타율은 3할에 머물렀다. 1년 전 3할5푼2리, 2년 전 3할8푼1리와 비교하면 한참 못미치는 수준이었다. 그가 속한 뉴욕 양키스도 덩달아 침체에 빠져 4위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때문에 1941년 5월 15일의 안타를 주목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대기록의 신호탄이었다. 게임이 진행될수록 그의 연속안타 숫자도 함께 늘어났다. 신문과 라디오가 흥분하기 시작한 것은 6월 중순, 그가 29경기...

[장상인의 일본 산책] 잠시 짬을 내 여행한 시모노세키(下關) 여정

[장상인의 일본 산책] 잠시 짬을 내 여행한 시모노세키(下關) 여정

↑ 일본 본토와 규슈 사이의 간몬해협(關門海峽)과 간몬교(關門橋)   by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시모노세키(下關)는 일찍이 서부 일본의 교통 요충지이자 무역의 중심지로 크게 번창하였던 항구 도시다. 일본은 1905년, 부산과 시모노세키(下關)를 왕래하는 관부연락선(關釜連絡船) 항로를 개설하여, 1945년 종전 때까지 대륙을 향한 관문으로 활용했다. 야마구치(山口)현에 해당되는 시모노세키는 해협을 사이에 두고 규슈(九州)의 모지(門司)항과...

이집트 나일강변에서 ‘로제타 스톤’ 발견… 이집트 5000년 역사 신비 풀려

1799년 7월 15일,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대가 나일강변의 전략요충지 로제타에서 요새 터를 파던 중, 한 장교가 문자들이 빽빽하게 적혀있는 가로 72㎝·세로 114㎝·두께 30㎝ 크기의 검은 현무암 석판 하나를 발견했다. 돌에는 54행의 그리스 문자와 이를 번역한 이집트 상형문자, 서민들이 즐겨쓰던 민중문자(현재의 아랍어)가 함께 새겨져 있었다. 나폴레옹이 중요한 돌이란 사실을 모를 리 없었건만 2년 뒤 영국군에 패배하는 바람에 돌은 영국으로 넘어가 대영박물관에 보관됐다....

제1차 십자군, 이슬람이 지배하는 예루살렘 460년만에 함락

638년 예수살렘이 이슬람의 수중에 넘어갔어도 예루살렘에는 이슬람과 유대인이 공존했다. 술탄(왕)도 기독교 순례자들을 마다하자 않았다. 그러나 11세기 초 반기독교적인 칼리프 하킴이 등장하면서 이곳을 둘러싸고 갈등이 고조됐다. 그는 성지 순례자들의 출입을 금지하고 예루살렘 골고다 언덕에 있는 성묘교회까지 파괴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성묘교회는 기독교인들에게는 성지의 상징이었고 성지 순례의 최종 목적지였다. 유럽 기독교인들이 격앙돼 있는 상태에서 기독교 세계를 위협하는 또...

이준 열사 헤이그에서 분사(憤死)

이준이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참가, 일제의 조선 침탈과 을사조약의 부당성을 세계에 알리고자 서울을 출발한 것은 1907년 4월 22일이었다. 전날 밤, 고종이 종친인 이준을 불러 “오늘밤 짐은 골육지친을 만나 국가 대사를 의탁하게 되니 기쁘기 한량없다”며 소회를 드러냈다. 부사(副使)였던 이준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난 정사(正使) 이상설과 함께 당시 러시아의 수도 페테르부르크로 가 이위종과 합류했다. 세 사람은 헤이그로 향하기에 앞서 러시아...

1930년대 최대 민중계몽이던 문자보급운동, 조선일보 사고(社告) 게재

“아는 것이 힘! 배워야 산다” “가르치자! 나 아는대로” 90%에 달했던 문맹을 없애고 민족정신을 일깨우기 위해 추진된 문자보급운동이 그 개막을 알린 것은 1929년 7월 14일자 조선일보 사고(社告)였다. 이날자 조선일보는 ‘제1회 귀향남녀학생 문자보급반’이라는 제목의 사고를 통해 귀향 학생들이 각 고장에서 한글을 가르칠 것을 제안했다. 실적이 우수한 학생에게 줄 1000원(圓)의 장학금도 내걸었다. 방학을 맞아 귀향하는 409명의 학생들 손에는 1쪽짜리 한글교재...

미군정청, 국대안(국립 서울대안) 발표… 좌익의 반대운동 본격화

1946년 7월 13일, 미군정 문교부장 유억겸이 “경성경제전문·경성법학전문·경성의학전문·경성사범 등을 합쳐 국립 서울대를 신설한다”는 내용의 ‘국대안(국립 서울대안)’을 발표하고, 8월 22일 미군정청 학무국이 국립서울대 설치령을 공포하면서 이른바 ‘국대안(國大案) 파동’이 시작됐다. 당초 파동은 학무국이 통합 개편될 해당 학교들과의 충분한 사전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한 데서 비롯된 논쟁적 성격이 짙었지만 좌익은 “국대안이 고등교육기관을 축소시키고 미국인을 총장으로...

미국의 아폴로와 소련의 소유즈 도킹 성공

1975년 7월 17일, 미국의 아폴로18호와 소련의 소유즈19호가 포르투갈에서 1150㎞ 떨어진 대서양 상공에서 도킹에 성공했다. 아폴로에는 토마스 스태포드 선장과 2명의 비행사가, 소유즈에는 알렉세이 레오노프 선장과 2명의 비행사가 타고 있었다. 도킹 전 아폴로보다 기동성이 떨어지고 덩치가 작은 소유즈는 대기 자세를 취했고, 아폴로는 도킹에 필요한 궤도와 속도를 취해 도킹을 성사시켰다. 도킹 3시간 후, 스태포드가 아폴로 해치를 열고 유영(游泳)하며 소유즈로 옮겨타자...

대한민국 헌법 공포

1948년은 ‘대한민국호(號)’를 진수시키기 위해 전 국민이 숨가쁘게 질주했던 한 해였다. 먼저 5월 10일 총선으로 198명의 제헌의원이 탄생하고, 5월31일 최고령자 이승만을 임시의장으로 한 역사적인 제헌의회가 개원됐다. 첫 본회의는 188표라는 압도적인 지지로 이승만을 정식 국회의장으로 선출했다. 이로써 3권분립의 한 축이 가까스로 자리를 잡았다. 이제 대한민국의 밑그림이 될 헌법을 제정할 차례였다. 누군들 경험이 있었을까, 당연히 시행착오가 따랐다. 6월1일 국회 내에...

美 맨해튼 프로젝트와 인류최초의 원자폭탄 실험

독일의 오토 한과 프리츠 슈트라스만이 베를린의 카이저빌헬름화학연구소에서 1938년 12월 22일에 우라늄의 원자핵 분열을 성공시켰다는 소식이 덴마크 물리학자 닐스 보어를 통해 미국에 망명 중인 엔리코 페르미와 레오 질라드에게 전달된 것은 1939년 초였다. 질라드가 아인슈타인을 설득해 핵분열이 군사목적에 이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알리도록 하고, 아인슈타인이 1939년 10월 루스벨트에게 편지를 쓰면서 미국의 원자력 연구도 비로소 본 궤도에 올랐다. 한동안...

美 프로야구 선수 조 디마지오 56경기 연속안타

그 해 초, 조 디마지오의 출발은 순조롭지 못했다. 5월 들어서도 타율은 3할에 머물렀다. 1년 전 3할5푼2리, 2년 전 3할8푼1리와 비교하면 한참 못미치는 수준이었다. 그가 속한 뉴욕 양키스도 덩달아 침체에 빠져 4위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때문에 1941년 5월 15일의 안타를 주목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대기록의 신호탄이었다. 게임이 진행될수록 그의 연속안타 숫자도 함께 늘어났다. 신문과 라디오가 흥분하기 시작한 것은 6월 중순, 그가 29경기...

[장상인의 일본 산책] 잠시 짬을 내 여행한 시모노세키(下關) 여정

[장상인의 일본 산책] 잠시 짬을 내 여행한 시모노세키(下關) 여정

↑ 일본 본토와 규슈 사이의 간몬해협(關門海峽)과 간몬교(關門橋)   by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시모노세키(下關)는 일찍이 서부 일본의 교통 요충지이자 무역의 중심지로 크게 번창하였던 항구 도시다. 일본은 1905년, 부산과 시모노세키(下關)를 왕래하는 관부연락선(關釜連絡船) 항로를 개설하여, 1945년 종전 때까지 대륙을 향한 관문으로 활용했다. 야마구치(山口)현에 해당되는 시모노세키는 해협을 사이에 두고 규슈(九州)의 모지(門司)항과...

이집트 나일강변에서 ‘로제타 스톤’ 발견… 이집트 5000년 역사 신비 풀려

1799년 7월 15일,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대가 나일강변의 전략요충지 로제타에서 요새 터를 파던 중, 한 장교가 문자들이 빽빽하게 적혀있는 가로 72㎝·세로 114㎝·두께 30㎝ 크기의 검은 현무암 석판 하나를 발견했다. 돌에는 54행의 그리스 문자와 이를 번역한 이집트 상형문자, 서민들이 즐겨쓰던 민중문자(현재의 아랍어)가 함께 새겨져 있었다. 나폴레옹이 중요한 돌이란 사실을 모를 리 없었건만 2년 뒤 영국군에 패배하는 바람에 돌은 영국으로 넘어가 대영박물관에 보관됐다....

제1차 십자군, 이슬람이 지배하는 예루살렘 460년만에 함락

638년 예수살렘이 이슬람의 수중에 넘어갔어도 예루살렘에는 이슬람과 유대인이 공존했다. 술탄(왕)도 기독교 순례자들을 마다하자 않았다. 그러나 11세기 초 반기독교적인 칼리프 하킴이 등장하면서 이곳을 둘러싸고 갈등이 고조됐다. 그는 성지 순례자들의 출입을 금지하고 예루살렘 골고다 언덕에 있는 성묘교회까지 파괴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성묘교회는 기독교인들에게는 성지의 상징이었고 성지 순례의 최종 목적지였다. 유럽 기독교인들이 격앙돼 있는 상태에서 기독교 세계를 위협하는 또...

이준 열사 헤이그에서 분사(憤死)

이준이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참가, 일제의 조선 침탈과 을사조약의 부당성을 세계에 알리고자 서울을 출발한 것은 1907년 4월 22일이었다. 전날 밤, 고종이 종친인 이준을 불러 “오늘밤 짐은 골육지친을 만나 국가 대사를 의탁하게 되니 기쁘기 한량없다”며 소회를 드러냈다. 부사(副使)였던 이준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난 정사(正使) 이상설과 함께 당시 러시아의 수도 페테르부르크로 가 이위종과 합류했다. 세 사람은 헤이그로 향하기에 앞서 러시아...

1930년대 최대 민중계몽이던 문자보급운동, 조선일보 사고(社告) 게재

“아는 것이 힘! 배워야 산다” “가르치자! 나 아는대로” 90%에 달했던 문맹을 없애고 민족정신을 일깨우기 위해 추진된 문자보급운동이 그 개막을 알린 것은 1929년 7월 14일자 조선일보 사고(社告)였다. 이날자 조선일보는 ‘제1회 귀향남녀학생 문자보급반’이라는 제목의 사고를 통해 귀향 학생들이 각 고장에서 한글을 가르칠 것을 제안했다. 실적이 우수한 학생에게 줄 1000원(圓)의 장학금도 내걸었다. 방학을 맞아 귀향하는 409명의 학생들 손에는 1쪽짜리 한글교재...

미군정청, 국대안(국립 서울대안) 발표… 좌익의 반대운동 본격화

1946년 7월 13일, 미군정 문교부장 유억겸이 “경성경제전문·경성법학전문·경성의학전문·경성사범 등을 합쳐 국립 서울대를 신설한다”는 내용의 ‘국대안(국립 서울대안)’을 발표하고, 8월 22일 미군정청 학무국이 국립서울대 설치령을 공포하면서 이른바 ‘국대안(國大案) 파동’이 시작됐다. 당초 파동은 학무국이 통합 개편될 해당 학교들과의 충분한 사전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한 데서 비롯된 논쟁적 성격이 짙었지만 좌익은 “국대안이 고등교육기관을 축소시키고 미국인을 총장으로...

미국의 아폴로와 소련의 소유즈 도킹 성공

1975년 7월 17일, 미국의 아폴로18호와 소련의 소유즈19호가 포르투갈에서 1150㎞ 떨어진 대서양 상공에서 도킹에 성공했다. 아폴로에는 토마스 스태포드 선장과 2명의 비행사가, 소유즈에는 알렉세이 레오노프 선장과 2명의 비행사가 타고 있었다. 도킹 전 아폴로보다 기동성이 떨어지고 덩치가 작은 소유즈는 대기 자세를 취했고, 아폴로는 도킹에 필요한 궤도와 속도를 취해 도킹을 성사시켰다. 도킹 3시간 후, 스태포드가 아폴로 해치를 열고 유영(游泳)하며 소유즈로 옮겨타자...

대한민국 헌법 공포

1948년은 ‘대한민국호(號)’를 진수시키기 위해 전 국민이 숨가쁘게 질주했던 한 해였다. 먼저 5월 10일 총선으로 198명의 제헌의원이 탄생하고, 5월31일 최고령자 이승만을 임시의장으로 한 역사적인 제헌의회가 개원됐다. 첫 본회의는 188표라는 압도적인 지지로 이승만을 정식 국회의장으로 선출했다. 이로써 3권분립의 한 축이 가까스로 자리를 잡았다. 이제 대한민국의 밑그림이 될 헌법을 제정할 차례였다. 누군들 경험이 있었을까, 당연히 시행착오가 따랐다. 6월1일 국회 내에...

美 맨해튼 프로젝트와 인류최초의 원자폭탄 실험

독일의 오토 한과 프리츠 슈트라스만이 베를린의 카이저빌헬름화학연구소에서 1938년 12월 22일에 우라늄의 원자핵 분열을 성공시켰다는 소식이 덴마크 물리학자 닐스 보어를 통해 미국에 망명 중인 엔리코 페르미와 레오 질라드에게 전달된 것은 1939년 초였다. 질라드가 아인슈타인을 설득해 핵분열이 군사목적에 이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알리도록 하고, 아인슈타인이 1939년 10월 루스벨트에게 편지를 쓰면서 미국의 원자력 연구도 비로소 본 궤도에 올랐다. 한동안...

美 프로야구 선수 조 디마지오 56경기 연속안타

그 해 초, 조 디마지오의 출발은 순조롭지 못했다. 5월 들어서도 타율은 3할에 머물렀다. 1년 전 3할5푼2리, 2년 전 3할8푼1리와 비교하면 한참 못미치는 수준이었다. 그가 속한 뉴욕 양키스도 덩달아 침체에 빠져 4위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때문에 1941년 5월 15일의 안타를 주목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대기록의 신호탄이었다. 게임이 진행될수록 그의 연속안타 숫자도 함께 늘어났다. 신문과 라디오가 흥분하기 시작한 것은 6월 중순, 그가 29경기...

[장상인의 일본 산책] 잠시 짬을 내 여행한 시모노세키(下關) 여정

[장상인의 일본 산책] 잠시 짬을 내 여행한 시모노세키(下關) 여정

↑ 일본 본토와 규슈 사이의 간몬해협(關門海峽)과 간몬교(關門橋)   by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시모노세키(下關)는 일찍이 서부 일본의 교통 요충지이자 무역의 중심지로 크게 번창하였던 항구 도시다. 일본은 1905년, 부산과 시모노세키(下關)를 왕래하는 관부연락선(關釜連絡船) 항로를 개설하여, 1945년 종전 때까지 대륙을 향한 관문으로 활용했다. 야마구치(山口)현에 해당되는 시모노세키는 해협을 사이에 두고 규슈(九州)의 모지(門司)항과...

이집트 나일강변에서 ‘로제타 스톤’ 발견… 이집트 5000년 역사 신비 풀려

1799년 7월 15일,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대가 나일강변의 전략요충지 로제타에서 요새 터를 파던 중, 한 장교가 문자들이 빽빽하게 적혀있는 가로 72㎝·세로 114㎝·두께 30㎝ 크기의 검은 현무암 석판 하나를 발견했다. 돌에는 54행의 그리스 문자와 이를 번역한 이집트 상형문자, 서민들이 즐겨쓰던 민중문자(현재의 아랍어)가 함께 새겨져 있었다. 나폴레옹이 중요한 돌이란 사실을 모를 리 없었건만 2년 뒤 영국군에 패배하는 바람에 돌은 영국으로 넘어가 대영박물관에 보관됐다....

제1차 십자군, 이슬람이 지배하는 예루살렘 460년만에 함락

638년 예수살렘이 이슬람의 수중에 넘어갔어도 예루살렘에는 이슬람과 유대인이 공존했다. 술탄(왕)도 기독교 순례자들을 마다하자 않았다. 그러나 11세기 초 반기독교적인 칼리프 하킴이 등장하면서 이곳을 둘러싸고 갈등이 고조됐다. 그는 성지 순례자들의 출입을 금지하고 예루살렘 골고다 언덕에 있는 성묘교회까지 파괴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성묘교회는 기독교인들에게는 성지의 상징이었고 성지 순례의 최종 목적지였다. 유럽 기독교인들이 격앙돼 있는 상태에서 기독교 세계를 위협하는 또...

이준 열사 헤이그에서 분사(憤死)

이준이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참가, 일제의 조선 침탈과 을사조약의 부당성을 세계에 알리고자 서울을 출발한 것은 1907년 4월 22일이었다. 전날 밤, 고종이 종친인 이준을 불러 “오늘밤 짐은 골육지친을 만나 국가 대사를 의탁하게 되니 기쁘기 한량없다”며 소회를 드러냈다. 부사(副使)였던 이준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난 정사(正使) 이상설과 함께 당시 러시아의 수도 페테르부르크로 가 이위종과 합류했다. 세 사람은 헤이그로 향하기에 앞서 러시아...

1930년대 최대 민중계몽이던 문자보급운동, 조선일보 사고(社告) 게재

“아는 것이 힘! 배워야 산다” “가르치자! 나 아는대로” 90%에 달했던 문맹을 없애고 민족정신을 일깨우기 위해 추진된 문자보급운동이 그 개막을 알린 것은 1929년 7월 14일자 조선일보 사고(社告)였다. 이날자 조선일보는 ‘제1회 귀향남녀학생 문자보급반’이라는 제목의 사고를 통해 귀향 학생들이 각 고장에서 한글을 가르칠 것을 제안했다. 실적이 우수한 학생에게 줄 1000원(圓)의 장학금도 내걸었다. 방학을 맞아 귀향하는 409명의 학생들 손에는 1쪽짜리 한글교재...

미군정청, 국대안(국립 서울대안) 발표… 좌익의 반대운동 본격화

1946년 7월 13일, 미군정 문교부장 유억겸이 “경성경제전문·경성법학전문·경성의학전문·경성사범 등을 합쳐 국립 서울대를 신설한다”는 내용의 ‘국대안(국립 서울대안)’을 발표하고, 8월 22일 미군정청 학무국이 국립서울대 설치령을 공포하면서 이른바 ‘국대안(國大案) 파동’이 시작됐다. 당초 파동은 학무국이 통합 개편될 해당 학교들과의 충분한 사전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한 데서 비롯된 논쟁적 성격이 짙었지만 좌익은 “국대안이 고등교육기관을 축소시키고 미국인을 총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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