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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 이민선 갤릭호, 하와이 도착

1903년 1월 13일, 우리나라 최초 이민선 ‘갤릭(Gaelic)호’가 오랜 여정으로 파김치가 된 86명의 한인들을 낯선 땅 하와이 호놀룰루에 내려놓았다. 서자의 설움이 싫어서, 예수쟁이라고 놀림받아서, 시부모를 안모실 것 같아서, 저마다의 이민 동기는 다양했지만 신천지에 거는 기대 만은 한마음이었다. 조선 말기의 혼란과 반복되는 가뭄과 홍수로 이미 많은 사람들이 식량과 일거리를 찾아 멀리 시베리아나 만주로 떠나고 있던 때, 마침 1830년대부터 노동집약적 사탕수수 농업을...

드레퓌스 무죄 주장하는 에밀 졸라의 ‘나는고발한다!’, ‘여명’지에 게재

1898년 1월 13일, 프랑스 작가 에밀 졸라가 일간지 ‘여명(黎明)’에 드레퓌스의 무죄를 주장하는 ‘나는 고발한다!’는 글을 기고하면서 불의에 맞서 진실을 규명하려는 한 지성인의 험난한 노정이 시작됐다. ‘여명’은 1897년 가을부터 드레퓌스 대위의 무죄를 주장하는 대대적인 구명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드레퓌스 사건은 1894년 10월, 드레퓌스 대위가 프랑스의 군 기밀문서를 독일 대사관에 제공했다는 혐의로 체포되면서 프랑스 전역을 들끓게 했던 진실을 향한 투쟁의 기록이다....

김상옥 의사 종로경찰서에 폭탄 투척

1923년 1월, 일본 경찰의 집요한 추격을 따돌리고 열흘간 신출귀몰하며 그들의 간담을 서늘케 한 이가 있었다. 김상옥 의사였다. 상하이에서 의열단으로 활동하던 김상옥이 압록강철교를 건너 국내로 잠입한 것은 1922년 12월이었다. 몸에는 권총 4정과 수백발의 실탄, 그리고 폭탄을 지니고 있었다. 1923년 1월 12일 저녁 8시, 김상옥이 조선인 탄압으로 악명을 떨치던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졌다. 일본 경찰과 매일신문 기자 등 7명이 죽거나 다쳤고 건물 일부도 파괴됐다....

딘 애치슨, ‘애치슨 선언’ 발표

2차대전 후 냉전이 몰아치면서 미국의 관심은 소련과의 전면전 대비였다. 소련이 전면전을 감행할 경우 극동에서는 주한 미군 2개 사단과 주일 미군 4개 사단으로 45개 사단을 동원할 수 있는 소련을 상대하기가 쉽지 않다는 쪽으로 비상전쟁계획안이 마련되고 있었다. 따라서 전쟁이 날 경우 주한미군 2개 사단으로 소련군의 진격을 차단할 수 없으므로 주한미군도 일본으로 철수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더구나 1949년 10월에는 마오쩌둥의 인민정부가 중국에 수립된 터라 이...

호남선 완전 개통

1914년 1월 11일, 3년8개월 동안 구간별로 시차를 두고 개통해온 대전~목포 간 철도노선 가운데 전북 정읍과 광주 송정리를 잇는 9번째 철도구간이 마지막으로 완공됨으로써 ‘호남선’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이어졌다. 경부·경의선이 정치·군사적인 목적으로 부설된 것과 달리 호남선은 이곳에서 생산되는 풍부한 농수산물을 타지역으로 연결해주는 경제적 필요성에 의해 부설됐다. 철도부설이 처음 논의된 것은 1896년 9월 프랑스의 한 회사가 경성~목포 간 경목선(京木線) 부설권을...

동로마 니카 반란

유스티니아누스는 로마법 대전을 편찬하고 콘스탄티노플(현 터키 이스탄불) 성소피아 성당을 건설하며 옛 로마제국의 영광을 되찾으려 노력했던 동로마의 황제였다. 그러나 결과는 기대만큼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탄압적이고 세금이 과다하고 지나친 기득권 축소가 빈부를 가리지 않는 반발을 불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계급과 종교에 따라 갈린 청색당과 녹색당 두 파벌은 사회불안 요소로까지 발전했다. 원래 전차경기에 출전한 두 팀의 옷색깔에서 기원한 이들 파벌은 어느덧 정치 정당처럼...

런던지하철 세계최초 개통

1863년 1월 10일, 영국 런던의 패딩턴과 훼링던 간 6㎞를 잇는 런던지하철이 세계최초로 개통되어 이날 하루 동안 4만 명이 지하 세계를 경험했다. 런던에서 지하철 건설 논의가 시작된 것은 1830년대였다. 최고조에 달한 산업혁명의 여파로 하루가 다르게 공장들이 늘어나고 있었고, 지방에서 런던으로 생활 터전을 옮긴 사람들로 거리는 늘 북적거렸다. 급격한 인구증가와 이에따른 도시의 팽창으로 이동수단이 절실했던 터에 1836년 런던과 그리니치를 연결하는 첫 여객철도가...

문학동인지 ‘백조(白潮)’ 창간

1922년 1월 9일, 3·1운동의 실패로 절망에 빠진 일군의 젊은이들이 문예와 사상을 펼칠 새로운 잡지를 만들자는 논의 끝에 순수 문학동인지 ‘백조(白潮)’를 창간했다. 편집인은 홍사용이 맡았지만, 발행인은 일제의 검열을 피해 외국인인 아펜젤러(1호), 미국인 선교사 보이스 부인(2호·1922.5) 그리고 러시아에서 망명한 훼루훼(3호·1923.9)를 내세웠다. 3호로 끝난 ‘백조’ 동인에는 휘문의숙 출신의 박종화·홍사용과 배제학당 출신의 나도향·박영희 등이 참여해 함께...

수필가 전혜린 31세에 자살

1965년 1월 10일, 번역문학가이자 수필가 전혜린이 31세 젊은 나이로 성급한 죽음을 맞았다. 심장마비설과 수면제 과다복용설 등 사인을 둘러싸고 설들이 무성했지만 사람들은 인습과 평범을 거부해온 한 작가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받아들였다. 평남 순천에서 태어나 서울법대에 입학할 때까지 만해도 전혜린은 명석한 두뇌를 가진 우수한 학생일 뿐이었다. 0점을 받은 수학과목으로 법대 입학이 위태로웠으나 다른 과목이 워낙 출중해 입학이 허용됐다는 일화가 전해질 만큼 그의 두뇌는...

日 메이지(明治) 천황 즉위

1867년 1월 9일, 무쓰히토(睦仁) 일본 천황이 15세 나이로 즉위했다. 가마쿠라(鎌倉)로부터 570여년, 도쿠가와(德川)로부터 260여 년 동안 천황을 대신해 전권을 휘둘렀던 막부제가 마지막 몸부림을 치던 때였다. 즉위 전부터 막부파와 반(反)막부파 간의 격렬한 전쟁을 목격하면서 시대의 급물살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었지만 무쓰히토의 즉위 후에도 소용돌이는 멈출 줄 몰랐다. 즉위한 그 해 12월이 되어서야 반막부파의 신정부군이 어린 천황의 권위를 빌어 ‘왕정복고’를...

우리나라 최초 이민선 갤릭호, 하와이 도착

1903년 1월 13일, 우리나라 최초 이민선 ‘갤릭(Gaelic)호’가 오랜 여정으로 파김치가 된 86명의 한인들을 낯선 땅 하와이 호놀룰루에 내려놓았다. 서자의 설움이 싫어서, 예수쟁이라고 놀림받아서, 시부모를 안모실 것 같아서, 저마다의 이민 동기는 다양했지만 신천지에 거는 기대 만은 한마음이었다. 조선 말기의 혼란과 반복되는 가뭄과 홍수로 이미 많은 사람들이 식량과 일거리를 찾아 멀리 시베리아나 만주로 떠나고 있던 때, 마침 1830년대부터 노동집약적 사탕수수 농업을...

드레퓌스 무죄 주장하는 에밀 졸라의 ‘나는고발한다!’, ‘여명’지에 게재

1898년 1월 13일, 프랑스 작가 에밀 졸라가 일간지 ‘여명(黎明)’에 드레퓌스의 무죄를 주장하는 ‘나는 고발한다!’는 글을 기고하면서 불의에 맞서 진실을 규명하려는 한 지성인의 험난한 노정이 시작됐다. ‘여명’은 1897년 가을부터 드레퓌스 대위의 무죄를 주장하는 대대적인 구명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드레퓌스 사건은 1894년 10월, 드레퓌스 대위가 프랑스의 군 기밀문서를 독일 대사관에 제공했다는 혐의로 체포되면서 프랑스 전역을 들끓게 했던 진실을 향한 투쟁의 기록이다....

김상옥 의사 종로경찰서에 폭탄 투척

1923년 1월, 일본 경찰의 집요한 추격을 따돌리고 열흘간 신출귀몰하며 그들의 간담을 서늘케 한 이가 있었다. 김상옥 의사였다. 상하이에서 의열단으로 활동하던 김상옥이 압록강철교를 건너 국내로 잠입한 것은 1922년 12월이었다. 몸에는 권총 4정과 수백발의 실탄, 그리고 폭탄을 지니고 있었다. 1923년 1월 12일 저녁 8시, 김상옥이 조선인 탄압으로 악명을 떨치던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졌다. 일본 경찰과 매일신문 기자 등 7명이 죽거나 다쳤고 건물 일부도 파괴됐다....

딘 애치슨, ‘애치슨 선언’ 발표

2차대전 후 냉전이 몰아치면서 미국의 관심은 소련과의 전면전 대비였다. 소련이 전면전을 감행할 경우 극동에서는 주한 미군 2개 사단과 주일 미군 4개 사단으로 45개 사단을 동원할 수 있는 소련을 상대하기가 쉽지 않다는 쪽으로 비상전쟁계획안이 마련되고 있었다. 따라서 전쟁이 날 경우 주한미군 2개 사단으로 소련군의 진격을 차단할 수 없으므로 주한미군도 일본으로 철수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더구나 1949년 10월에는 마오쩌둥의 인민정부가 중국에 수립된 터라 이...

호남선 완전 개통

1914년 1월 11일, 3년8개월 동안 구간별로 시차를 두고 개통해온 대전~목포 간 철도노선 가운데 전북 정읍과 광주 송정리를 잇는 9번째 철도구간이 마지막으로 완공됨으로써 ‘호남선’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이어졌다. 경부·경의선이 정치·군사적인 목적으로 부설된 것과 달리 호남선은 이곳에서 생산되는 풍부한 농수산물을 타지역으로 연결해주는 경제적 필요성에 의해 부설됐다. 철도부설이 처음 논의된 것은 1896년 9월 프랑스의 한 회사가 경성~목포 간 경목선(京木線) 부설권을...

동로마 니카 반란

유스티니아누스는 로마법 대전을 편찬하고 콘스탄티노플(현 터키 이스탄불) 성소피아 성당을 건설하며 옛 로마제국의 영광을 되찾으려 노력했던 동로마의 황제였다. 그러나 결과는 기대만큼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탄압적이고 세금이 과다하고 지나친 기득권 축소가 빈부를 가리지 않는 반발을 불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계급과 종교에 따라 갈린 청색당과 녹색당 두 파벌은 사회불안 요소로까지 발전했다. 원래 전차경기에 출전한 두 팀의 옷색깔에서 기원한 이들 파벌은 어느덧 정치 정당처럼...

런던지하철 세계최초 개통

1863년 1월 10일, 영국 런던의 패딩턴과 훼링던 간 6㎞를 잇는 런던지하철이 세계최초로 개통되어 이날 하루 동안 4만 명이 지하 세계를 경험했다. 런던에서 지하철 건설 논의가 시작된 것은 1830년대였다. 최고조에 달한 산업혁명의 여파로 하루가 다르게 공장들이 늘어나고 있었고, 지방에서 런던으로 생활 터전을 옮긴 사람들로 거리는 늘 북적거렸다. 급격한 인구증가와 이에따른 도시의 팽창으로 이동수단이 절실했던 터에 1836년 런던과 그리니치를 연결하는 첫 여객철도가...

문학동인지 ‘백조(白潮)’ 창간

1922년 1월 9일, 3·1운동의 실패로 절망에 빠진 일군의 젊은이들이 문예와 사상을 펼칠 새로운 잡지를 만들자는 논의 끝에 순수 문학동인지 ‘백조(白潮)’를 창간했다. 편집인은 홍사용이 맡았지만, 발행인은 일제의 검열을 피해 외국인인 아펜젤러(1호), 미국인 선교사 보이스 부인(2호·1922.5) 그리고 러시아에서 망명한 훼루훼(3호·1923.9)를 내세웠다. 3호로 끝난 ‘백조’ 동인에는 휘문의숙 출신의 박종화·홍사용과 배제학당 출신의 나도향·박영희 등이 참여해 함께...

수필가 전혜린 31세에 자살

1965년 1월 10일, 번역문학가이자 수필가 전혜린이 31세 젊은 나이로 성급한 죽음을 맞았다. 심장마비설과 수면제 과다복용설 등 사인을 둘러싸고 설들이 무성했지만 사람들은 인습과 평범을 거부해온 한 작가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받아들였다. 평남 순천에서 태어나 서울법대에 입학할 때까지 만해도 전혜린은 명석한 두뇌를 가진 우수한 학생일 뿐이었다. 0점을 받은 수학과목으로 법대 입학이 위태로웠으나 다른 과목이 워낙 출중해 입학이 허용됐다는 일화가 전해질 만큼 그의 두뇌는...

日 메이지(明治) 천황 즉위

1867년 1월 9일, 무쓰히토(睦仁) 일본 천황이 15세 나이로 즉위했다. 가마쿠라(鎌倉)로부터 570여년, 도쿠가와(德川)로부터 260여 년 동안 천황을 대신해 전권을 휘둘렀던 막부제가 마지막 몸부림을 치던 때였다. 즉위 전부터 막부파와 반(反)막부파 간의 격렬한 전쟁을 목격하면서 시대의 급물살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었지만 무쓰히토의 즉위 후에도 소용돌이는 멈출 줄 몰랐다. 즉위한 그 해 12월이 되어서야 반막부파의 신정부군이 어린 천황의 권위를 빌어 ‘왕정복고’를...

우리나라 최초 이민선 갤릭호, 하와이 도착

1903년 1월 13일, 우리나라 최초 이민선 ‘갤릭(Gaelic)호’가 오랜 여정으로 파김치가 된 86명의 한인들을 낯선 땅 하와이 호놀룰루에 내려놓았다. 서자의 설움이 싫어서, 예수쟁이라고 놀림받아서, 시부모를 안모실 것 같아서, 저마다의 이민 동기는 다양했지만 신천지에 거는 기대 만은 한마음이었다. 조선 말기의 혼란과 반복되는 가뭄과 홍수로 이미 많은 사람들이 식량과 일거리를 찾아 멀리 시베리아나 만주로 떠나고 있던 때, 마침 1830년대부터 노동집약적 사탕수수 농업을...

드레퓌스 무죄 주장하는 에밀 졸라의 ‘나는고발한다!’, ‘여명’지에 게재

1898년 1월 13일, 프랑스 작가 에밀 졸라가 일간지 ‘여명(黎明)’에 드레퓌스의 무죄를 주장하는 ‘나는 고발한다!’는 글을 기고하면서 불의에 맞서 진실을 규명하려는 한 지성인의 험난한 노정이 시작됐다. ‘여명’은 1897년 가을부터 드레퓌스 대위의 무죄를 주장하는 대대적인 구명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드레퓌스 사건은 1894년 10월, 드레퓌스 대위가 프랑스의 군 기밀문서를 독일 대사관에 제공했다는 혐의로 체포되면서 프랑스 전역을 들끓게 했던 진실을 향한 투쟁의 기록이다....

김상옥 의사 종로경찰서에 폭탄 투척

1923년 1월, 일본 경찰의 집요한 추격을 따돌리고 열흘간 신출귀몰하며 그들의 간담을 서늘케 한 이가 있었다. 김상옥 의사였다. 상하이에서 의열단으로 활동하던 김상옥이 압록강철교를 건너 국내로 잠입한 것은 1922년 12월이었다. 몸에는 권총 4정과 수백발의 실탄, 그리고 폭탄을 지니고 있었다. 1923년 1월 12일 저녁 8시, 김상옥이 조선인 탄압으로 악명을 떨치던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졌다. 일본 경찰과 매일신문 기자 등 7명이 죽거나 다쳤고 건물 일부도 파괴됐다....

딘 애치슨, ‘애치슨 선언’ 발표

2차대전 후 냉전이 몰아치면서 미국의 관심은 소련과의 전면전 대비였다. 소련이 전면전을 감행할 경우 극동에서는 주한 미군 2개 사단과 주일 미군 4개 사단으로 45개 사단을 동원할 수 있는 소련을 상대하기가 쉽지 않다는 쪽으로 비상전쟁계획안이 마련되고 있었다. 따라서 전쟁이 날 경우 주한미군 2개 사단으로 소련군의 진격을 차단할 수 없으므로 주한미군도 일본으로 철수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더구나 1949년 10월에는 마오쩌둥의 인민정부가 중국에 수립된 터라 이...

호남선 완전 개통

1914년 1월 11일, 3년8개월 동안 구간별로 시차를 두고 개통해온 대전~목포 간 철도노선 가운데 전북 정읍과 광주 송정리를 잇는 9번째 철도구간이 마지막으로 완공됨으로써 ‘호남선’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이어졌다. 경부·경의선이 정치·군사적인 목적으로 부설된 것과 달리 호남선은 이곳에서 생산되는 풍부한 농수산물을 타지역으로 연결해주는 경제적 필요성에 의해 부설됐다. 철도부설이 처음 논의된 것은 1896년 9월 프랑스의 한 회사가 경성~목포 간 경목선(京木線) 부설권을...

동로마 니카 반란

유스티니아누스는 로마법 대전을 편찬하고 콘스탄티노플(현 터키 이스탄불) 성소피아 성당을 건설하며 옛 로마제국의 영광을 되찾으려 노력했던 동로마의 황제였다. 그러나 결과는 기대만큼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탄압적이고 세금이 과다하고 지나친 기득권 축소가 빈부를 가리지 않는 반발을 불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계급과 종교에 따라 갈린 청색당과 녹색당 두 파벌은 사회불안 요소로까지 발전했다. 원래 전차경기에 출전한 두 팀의 옷색깔에서 기원한 이들 파벌은 어느덧 정치 정당처럼...

런던지하철 세계최초 개통

1863년 1월 10일, 영국 런던의 패딩턴과 훼링던 간 6㎞를 잇는 런던지하철이 세계최초로 개통되어 이날 하루 동안 4만 명이 지하 세계를 경험했다. 런던에서 지하철 건설 논의가 시작된 것은 1830년대였다. 최고조에 달한 산업혁명의 여파로 하루가 다르게 공장들이 늘어나고 있었고, 지방에서 런던으로 생활 터전을 옮긴 사람들로 거리는 늘 북적거렸다. 급격한 인구증가와 이에따른 도시의 팽창으로 이동수단이 절실했던 터에 1836년 런던과 그리니치를 연결하는 첫 여객철도가...

문학동인지 ‘백조(白潮)’ 창간

1922년 1월 9일, 3·1운동의 실패로 절망에 빠진 일군의 젊은이들이 문예와 사상을 펼칠 새로운 잡지를 만들자는 논의 끝에 순수 문학동인지 ‘백조(白潮)’를 창간했다. 편집인은 홍사용이 맡았지만, 발행인은 일제의 검열을 피해 외국인인 아펜젤러(1호), 미국인 선교사 보이스 부인(2호·1922.5) 그리고 러시아에서 망명한 훼루훼(3호·1923.9)를 내세웠다. 3호로 끝난 ‘백조’ 동인에는 휘문의숙 출신의 박종화·홍사용과 배제학당 출신의 나도향·박영희 등이 참여해 함께...

수필가 전혜린 31세에 자살

1965년 1월 10일, 번역문학가이자 수필가 전혜린이 31세 젊은 나이로 성급한 죽음을 맞았다. 심장마비설과 수면제 과다복용설 등 사인을 둘러싸고 설들이 무성했지만 사람들은 인습과 평범을 거부해온 한 작가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받아들였다. 평남 순천에서 태어나 서울법대에 입학할 때까지 만해도 전혜린은 명석한 두뇌를 가진 우수한 학생일 뿐이었다. 0점을 받은 수학과목으로 법대 입학이 위태로웠으나 다른 과목이 워낙 출중해 입학이 허용됐다는 일화가 전해질 만큼 그의 두뇌는...

日 메이지(明治) 천황 즉위

1867년 1월 9일, 무쓰히토(睦仁) 일본 천황이 15세 나이로 즉위했다. 가마쿠라(鎌倉)로부터 570여년, 도쿠가와(德川)로부터 260여 년 동안 천황을 대신해 전권을 휘둘렀던 막부제가 마지막 몸부림을 치던 때였다. 즉위 전부터 막부파와 반(反)막부파 간의 격렬한 전쟁을 목격하면서 시대의 급물살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었지만 무쓰히토의 즉위 후에도 소용돌이는 멈출 줄 몰랐다. 즉위한 그 해 12월이 되어서야 반막부파의 신정부군이 어린 천황의 권위를 빌어 ‘왕정복고’를...

우리나라 최초 이민선 갤릭호, 하와이 도착

1903년 1월 13일, 우리나라 최초 이민선 ‘갤릭(Gaelic)호’가 오랜 여정으로 파김치가 된 86명의 한인들을 낯선 땅 하와이 호놀룰루에 내려놓았다. 서자의 설움이 싫어서, 예수쟁이라고 놀림받아서, 시부모를 안모실 것 같아서, 저마다의 이민 동기는 다양했지만 신천지에 거는 기대 만은 한마음이었다. 조선 말기의 혼란과 반복되는 가뭄과 홍수로 이미 많은 사람들이 식량과 일거리를 찾아 멀리 시베리아나 만주로 떠나고 있던 때, 마침 1830년대부터 노동집약적 사탕수수 농업을...

드레퓌스 무죄 주장하는 에밀 졸라의 ‘나는고발한다!’, ‘여명’지에 게재

1898년 1월 13일, 프랑스 작가 에밀 졸라가 일간지 ‘여명(黎明)’에 드레퓌스의 무죄를 주장하는 ‘나는 고발한다!’는 글을 기고하면서 불의에 맞서 진실을 규명하려는 한 지성인의 험난한 노정이 시작됐다. ‘여명’은 1897년 가을부터 드레퓌스 대위의 무죄를 주장하는 대대적인 구명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드레퓌스 사건은 1894년 10월, 드레퓌스 대위가 프랑스의 군 기밀문서를 독일 대사관에 제공했다는 혐의로 체포되면서 프랑스 전역을 들끓게 했던 진실을 향한 투쟁의 기록이다....

김상옥 의사 종로경찰서에 폭탄 투척

1923년 1월, 일본 경찰의 집요한 추격을 따돌리고 열흘간 신출귀몰하며 그들의 간담을 서늘케 한 이가 있었다. 김상옥 의사였다. 상하이에서 의열단으로 활동하던 김상옥이 압록강철교를 건너 국내로 잠입한 것은 1922년 12월이었다. 몸에는 권총 4정과 수백발의 실탄, 그리고 폭탄을 지니고 있었다. 1923년 1월 12일 저녁 8시, 김상옥이 조선인 탄압으로 악명을 떨치던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졌다. 일본 경찰과 매일신문 기자 등 7명이 죽거나 다쳤고 건물 일부도 파괴됐다....

딘 애치슨, ‘애치슨 선언’ 발표

2차대전 후 냉전이 몰아치면서 미국의 관심은 소련과의 전면전 대비였다. 소련이 전면전을 감행할 경우 극동에서는 주한 미군 2개 사단과 주일 미군 4개 사단으로 45개 사단을 동원할 수 있는 소련을 상대하기가 쉽지 않다는 쪽으로 비상전쟁계획안이 마련되고 있었다. 따라서 전쟁이 날 경우 주한미군 2개 사단으로 소련군의 진격을 차단할 수 없으므로 주한미군도 일본으로 철수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더구나 1949년 10월에는 마오쩌둥의 인민정부가 중국에 수립된 터라 이...

호남선 완전 개통

1914년 1월 11일, 3년8개월 동안 구간별로 시차를 두고 개통해온 대전~목포 간 철도노선 가운데 전북 정읍과 광주 송정리를 잇는 9번째 철도구간이 마지막으로 완공됨으로써 ‘호남선’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이어졌다. 경부·경의선이 정치·군사적인 목적으로 부설된 것과 달리 호남선은 이곳에서 생산되는 풍부한 농수산물을 타지역으로 연결해주는 경제적 필요성에 의해 부설됐다. 철도부설이 처음 논의된 것은 1896년 9월 프랑스의 한 회사가 경성~목포 간 경목선(京木線) 부설권을...

동로마 니카 반란

유스티니아누스는 로마법 대전을 편찬하고 콘스탄티노플(현 터키 이스탄불) 성소피아 성당을 건설하며 옛 로마제국의 영광을 되찾으려 노력했던 동로마의 황제였다. 그러나 결과는 기대만큼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탄압적이고 세금이 과다하고 지나친 기득권 축소가 빈부를 가리지 않는 반발을 불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계급과 종교에 따라 갈린 청색당과 녹색당 두 파벌은 사회불안 요소로까지 발전했다. 원래 전차경기에 출전한 두 팀의 옷색깔에서 기원한 이들 파벌은 어느덧 정치 정당처럼...

런던지하철 세계최초 개통

1863년 1월 10일, 영국 런던의 패딩턴과 훼링던 간 6㎞를 잇는 런던지하철이 세계최초로 개통되어 이날 하루 동안 4만 명이 지하 세계를 경험했다. 런던에서 지하철 건설 논의가 시작된 것은 1830년대였다. 최고조에 달한 산업혁명의 여파로 하루가 다르게 공장들이 늘어나고 있었고, 지방에서 런던으로 생활 터전을 옮긴 사람들로 거리는 늘 북적거렸다. 급격한 인구증가와 이에따른 도시의 팽창으로 이동수단이 절실했던 터에 1836년 런던과 그리니치를 연결하는 첫 여객철도가...

문학동인지 ‘백조(白潮)’ 창간

1922년 1월 9일, 3·1운동의 실패로 절망에 빠진 일군의 젊은이들이 문예와 사상을 펼칠 새로운 잡지를 만들자는 논의 끝에 순수 문학동인지 ‘백조(白潮)’를 창간했다. 편집인은 홍사용이 맡았지만, 발행인은 일제의 검열을 피해 외국인인 아펜젤러(1호), 미국인 선교사 보이스 부인(2호·1922.5) 그리고 러시아에서 망명한 훼루훼(3호·1923.9)를 내세웠다. 3호로 끝난 ‘백조’ 동인에는 휘문의숙 출신의 박종화·홍사용과 배제학당 출신의 나도향·박영희 등이 참여해 함께...

수필가 전혜린 31세에 자살

1965년 1월 10일, 번역문학가이자 수필가 전혜린이 31세 젊은 나이로 성급한 죽음을 맞았다. 심장마비설과 수면제 과다복용설 등 사인을 둘러싸고 설들이 무성했지만 사람들은 인습과 평범을 거부해온 한 작가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받아들였다. 평남 순천에서 태어나 서울법대에 입학할 때까지 만해도 전혜린은 명석한 두뇌를 가진 우수한 학생일 뿐이었다. 0점을 받은 수학과목으로 법대 입학이 위태로웠으나 다른 과목이 워낙 출중해 입학이 허용됐다는 일화가 전해질 만큼 그의 두뇌는...

日 메이지(明治) 천황 즉위

1867년 1월 9일, 무쓰히토(睦仁) 일본 천황이 15세 나이로 즉위했다. 가마쿠라(鎌倉)로부터 570여년, 도쿠가와(德川)로부터 260여 년 동안 천황을 대신해 전권을 휘둘렀던 막부제가 마지막 몸부림을 치던 때였다. 즉위 전부터 막부파와 반(反)막부파 간의 격렬한 전쟁을 목격하면서 시대의 급물살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었지만 무쓰히토의 즉위 후에도 소용돌이는 멈출 줄 몰랐다. 즉위한 그 해 12월이 되어서야 반막부파의 신정부군이 어린 천황의 권위를 빌어 ‘왕정복고’를...

우리나라 최초 이민선 갤릭호, 하와이 도착

1903년 1월 13일, 우리나라 최초 이민선 ‘갤릭(Gaelic)호’가 오랜 여정으로 파김치가 된 86명의 한인들을 낯선 땅 하와이 호놀룰루에 내려놓았다. 서자의 설움이 싫어서, 예수쟁이라고 놀림받아서, 시부모를 안모실 것 같아서, 저마다의 이민 동기는 다양했지만 신천지에 거는 기대 만은 한마음이었다. 조선 말기의 혼란과 반복되는 가뭄과 홍수로 이미 많은 사람들이 식량과 일거리를 찾아 멀리 시베리아나 만주로 떠나고 있던 때, 마침 1830년대부터 노동집약적 사탕수수 농업을...

드레퓌스 무죄 주장하는 에밀 졸라의 ‘나는고발한다!’, ‘여명’지에 게재

1898년 1월 13일, 프랑스 작가 에밀 졸라가 일간지 ‘여명(黎明)’에 드레퓌스의 무죄를 주장하는 ‘나는 고발한다!’는 글을 기고하면서 불의에 맞서 진실을 규명하려는 한 지성인의 험난한 노정이 시작됐다. ‘여명’은 1897년 가을부터 드레퓌스 대위의 무죄를 주장하는 대대적인 구명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드레퓌스 사건은 1894년 10월, 드레퓌스 대위가 프랑스의 군 기밀문서를 독일 대사관에 제공했다는 혐의로 체포되면서 프랑스 전역을 들끓게 했던 진실을 향한 투쟁의 기록이다....

김상옥 의사 종로경찰서에 폭탄 투척

1923년 1월, 일본 경찰의 집요한 추격을 따돌리고 열흘간 신출귀몰하며 그들의 간담을 서늘케 한 이가 있었다. 김상옥 의사였다. 상하이에서 의열단으로 활동하던 김상옥이 압록강철교를 건너 국내로 잠입한 것은 1922년 12월이었다. 몸에는 권총 4정과 수백발의 실탄, 그리고 폭탄을 지니고 있었다. 1923년 1월 12일 저녁 8시, 김상옥이 조선인 탄압으로 악명을 떨치던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졌다. 일본 경찰과 매일신문 기자 등 7명이 죽거나 다쳤고 건물 일부도 파괴됐다....

딘 애치슨, ‘애치슨 선언’ 발표

2차대전 후 냉전이 몰아치면서 미국의 관심은 소련과의 전면전 대비였다. 소련이 전면전을 감행할 경우 극동에서는 주한 미군 2개 사단과 주일 미군 4개 사단으로 45개 사단을 동원할 수 있는 소련을 상대하기가 쉽지 않다는 쪽으로 비상전쟁계획안이 마련되고 있었다. 따라서 전쟁이 날 경우 주한미군 2개 사단으로 소련군의 진격을 차단할 수 없으므로 주한미군도 일본으로 철수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더구나 1949년 10월에는 마오쩌둥의 인민정부가 중국에 수립된 터라 이...

호남선 완전 개통

1914년 1월 11일, 3년8개월 동안 구간별로 시차를 두고 개통해온 대전~목포 간 철도노선 가운데 전북 정읍과 광주 송정리를 잇는 9번째 철도구간이 마지막으로 완공됨으로써 ‘호남선’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이어졌다. 경부·경의선이 정치·군사적인 목적으로 부설된 것과 달리 호남선은 이곳에서 생산되는 풍부한 농수산물을 타지역으로 연결해주는 경제적 필요성에 의해 부설됐다. 철도부설이 처음 논의된 것은 1896년 9월 프랑스의 한 회사가 경성~목포 간 경목선(京木線) 부설권을...

동로마 니카 반란

유스티니아누스는 로마법 대전을 편찬하고 콘스탄티노플(현 터키 이스탄불) 성소피아 성당을 건설하며 옛 로마제국의 영광을 되찾으려 노력했던 동로마의 황제였다. 그러나 결과는 기대만큼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탄압적이고 세금이 과다하고 지나친 기득권 축소가 빈부를 가리지 않는 반발을 불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계급과 종교에 따라 갈린 청색당과 녹색당 두 파벌은 사회불안 요소로까지 발전했다. 원래 전차경기에 출전한 두 팀의 옷색깔에서 기원한 이들 파벌은 어느덧 정치 정당처럼...

런던지하철 세계최초 개통

1863년 1월 10일, 영국 런던의 패딩턴과 훼링던 간 6㎞를 잇는 런던지하철이 세계최초로 개통되어 이날 하루 동안 4만 명이 지하 세계를 경험했다. 런던에서 지하철 건설 논의가 시작된 것은 1830년대였다. 최고조에 달한 산업혁명의 여파로 하루가 다르게 공장들이 늘어나고 있었고, 지방에서 런던으로 생활 터전을 옮긴 사람들로 거리는 늘 북적거렸다. 급격한 인구증가와 이에따른 도시의 팽창으로 이동수단이 절실했던 터에 1836년 런던과 그리니치를 연결하는 첫 여객철도가...

문학동인지 ‘백조(白潮)’ 창간

1922년 1월 9일, 3·1운동의 실패로 절망에 빠진 일군의 젊은이들이 문예와 사상을 펼칠 새로운 잡지를 만들자는 논의 끝에 순수 문학동인지 ‘백조(白潮)’를 창간했다. 편집인은 홍사용이 맡았지만, 발행인은 일제의 검열을 피해 외국인인 아펜젤러(1호), 미국인 선교사 보이스 부인(2호·1922.5) 그리고 러시아에서 망명한 훼루훼(3호·1923.9)를 내세웠다. 3호로 끝난 ‘백조’ 동인에는 휘문의숙 출신의 박종화·홍사용과 배제학당 출신의 나도향·박영희 등이 참여해 함께...

수필가 전혜린 31세에 자살

1965년 1월 10일, 번역문학가이자 수필가 전혜린이 31세 젊은 나이로 성급한 죽음을 맞았다. 심장마비설과 수면제 과다복용설 등 사인을 둘러싸고 설들이 무성했지만 사람들은 인습과 평범을 거부해온 한 작가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받아들였다. 평남 순천에서 태어나 서울법대에 입학할 때까지 만해도 전혜린은 명석한 두뇌를 가진 우수한 학생일 뿐이었다. 0점을 받은 수학과목으로 법대 입학이 위태로웠으나 다른 과목이 워낙 출중해 입학이 허용됐다는 일화가 전해질 만큼 그의 두뇌는...

日 메이지(明治) 천황 즉위

1867년 1월 9일, 무쓰히토(睦仁) 일본 천황이 15세 나이로 즉위했다. 가마쿠라(鎌倉)로부터 570여년, 도쿠가와(德川)로부터 260여 년 동안 천황을 대신해 전권을 휘둘렀던 막부제가 마지막 몸부림을 치던 때였다. 즉위 전부터 막부파와 반(反)막부파 간의 격렬한 전쟁을 목격하면서 시대의 급물살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었지만 무쓰히토의 즉위 후에도 소용돌이는 멈출 줄 몰랐다. 즉위한 그 해 12월이 되어서야 반막부파의 신정부군이 어린 천황의 권위를 빌어 ‘왕정복고’를...

우리나라 최초 이민선 갤릭호, 하와이 도착

1903년 1월 13일, 우리나라 최초 이민선 ‘갤릭(Gaelic)호’가 오랜 여정으로 파김치가 된 86명의 한인들을 낯선 땅 하와이 호놀룰루에 내려놓았다. 서자의 설움이 싫어서, 예수쟁이라고 놀림받아서, 시부모를 안모실 것 같아서, 저마다의 이민 동기는 다양했지만 신천지에 거는 기대 만은 한마음이었다. 조선 말기의 혼란과 반복되는 가뭄과 홍수로 이미 많은 사람들이 식량과 일거리를 찾아 멀리 시베리아나 만주로 떠나고 있던 때, 마침 1830년대부터 노동집약적 사탕수수 농업을...

드레퓌스 무죄 주장하는 에밀 졸라의 ‘나는고발한다!’, ‘여명’지에 게재

1898년 1월 13일, 프랑스 작가 에밀 졸라가 일간지 ‘여명(黎明)’에 드레퓌스의 무죄를 주장하는 ‘나는 고발한다!’는 글을 기고하면서 불의에 맞서 진실을 규명하려는 한 지성인의 험난한 노정이 시작됐다. ‘여명’은 1897년 가을부터 드레퓌스 대위의 무죄를 주장하는 대대적인 구명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드레퓌스 사건은 1894년 10월, 드레퓌스 대위가 프랑스의 군 기밀문서를 독일 대사관에 제공했다는 혐의로 체포되면서 프랑스 전역을 들끓게 했던 진실을 향한 투쟁의 기록이다....

김상옥 의사 종로경찰서에 폭탄 투척

1923년 1월, 일본 경찰의 집요한 추격을 따돌리고 열흘간 신출귀몰하며 그들의 간담을 서늘케 한 이가 있었다. 김상옥 의사였다. 상하이에서 의열단으로 활동하던 김상옥이 압록강철교를 건너 국내로 잠입한 것은 1922년 12월이었다. 몸에는 권총 4정과 수백발의 실탄, 그리고 폭탄을 지니고 있었다. 1923년 1월 12일 저녁 8시, 김상옥이 조선인 탄압으로 악명을 떨치던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졌다. 일본 경찰과 매일신문 기자 등 7명이 죽거나 다쳤고 건물 일부도 파괴됐다....

딘 애치슨, ‘애치슨 선언’ 발표

2차대전 후 냉전이 몰아치면서 미국의 관심은 소련과의 전면전 대비였다. 소련이 전면전을 감행할 경우 극동에서는 주한 미군 2개 사단과 주일 미군 4개 사단으로 45개 사단을 동원할 수 있는 소련을 상대하기가 쉽지 않다는 쪽으로 비상전쟁계획안이 마련되고 있었다. 따라서 전쟁이 날 경우 주한미군 2개 사단으로 소련군의 진격을 차단할 수 없으므로 주한미군도 일본으로 철수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더구나 1949년 10월에는 마오쩌둥의 인민정부가 중국에 수립된 터라 이...

호남선 완전 개통

1914년 1월 11일, 3년8개월 동안 구간별로 시차를 두고 개통해온 대전~목포 간 철도노선 가운데 전북 정읍과 광주 송정리를 잇는 9번째 철도구간이 마지막으로 완공됨으로써 ‘호남선’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이어졌다. 경부·경의선이 정치·군사적인 목적으로 부설된 것과 달리 호남선은 이곳에서 생산되는 풍부한 농수산물을 타지역으로 연결해주는 경제적 필요성에 의해 부설됐다. 철도부설이 처음 논의된 것은 1896년 9월 프랑스의 한 회사가 경성~목포 간 경목선(京木線) 부설권을...

동로마 니카 반란

유스티니아누스는 로마법 대전을 편찬하고 콘스탄티노플(현 터키 이스탄불) 성소피아 성당을 건설하며 옛 로마제국의 영광을 되찾으려 노력했던 동로마의 황제였다. 그러나 결과는 기대만큼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탄압적이고 세금이 과다하고 지나친 기득권 축소가 빈부를 가리지 않는 반발을 불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계급과 종교에 따라 갈린 청색당과 녹색당 두 파벌은 사회불안 요소로까지 발전했다. 원래 전차경기에 출전한 두 팀의 옷색깔에서 기원한 이들 파벌은 어느덧 정치 정당처럼...

런던지하철 세계최초 개통

1863년 1월 10일, 영국 런던의 패딩턴과 훼링던 간 6㎞를 잇는 런던지하철이 세계최초로 개통되어 이날 하루 동안 4만 명이 지하 세계를 경험했다. 런던에서 지하철 건설 논의가 시작된 것은 1830년대였다. 최고조에 달한 산업혁명의 여파로 하루가 다르게 공장들이 늘어나고 있었고, 지방에서 런던으로 생활 터전을 옮긴 사람들로 거리는 늘 북적거렸다. 급격한 인구증가와 이에따른 도시의 팽창으로 이동수단이 절실했던 터에 1836년 런던과 그리니치를 연결하는 첫 여객철도가...

문학동인지 ‘백조(白潮)’ 창간

1922년 1월 9일, 3·1운동의 실패로 절망에 빠진 일군의 젊은이들이 문예와 사상을 펼칠 새로운 잡지를 만들자는 논의 끝에 순수 문학동인지 ‘백조(白潮)’를 창간했다. 편집인은 홍사용이 맡았지만, 발행인은 일제의 검열을 피해 외국인인 아펜젤러(1호), 미국인 선교사 보이스 부인(2호·1922.5) 그리고 러시아에서 망명한 훼루훼(3호·1923.9)를 내세웠다. 3호로 끝난 ‘백조’ 동인에는 휘문의숙 출신의 박종화·홍사용과 배제학당 출신의 나도향·박영희 등이 참여해 함께...

수필가 전혜린 31세에 자살

1965년 1월 10일, 번역문학가이자 수필가 전혜린이 31세 젊은 나이로 성급한 죽음을 맞았다. 심장마비설과 수면제 과다복용설 등 사인을 둘러싸고 설들이 무성했지만 사람들은 인습과 평범을 거부해온 한 작가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받아들였다. 평남 순천에서 태어나 서울법대에 입학할 때까지 만해도 전혜린은 명석한 두뇌를 가진 우수한 학생일 뿐이었다. 0점을 받은 수학과목으로 법대 입학이 위태로웠으나 다른 과목이 워낙 출중해 입학이 허용됐다는 일화가 전해질 만큼 그의 두뇌는...

日 메이지(明治) 천황 즉위

1867년 1월 9일, 무쓰히토(睦仁) 일본 천황이 15세 나이로 즉위했다. 가마쿠라(鎌倉)로부터 570여년, 도쿠가와(德川)로부터 260여 년 동안 천황을 대신해 전권을 휘둘렀던 막부제가 마지막 몸부림을 치던 때였다. 즉위 전부터 막부파와 반(反)막부파 간의 격렬한 전쟁을 목격하면서 시대의 급물살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었지만 무쓰히토의 즉위 후에도 소용돌이는 멈출 줄 몰랐다. 즉위한 그 해 12월이 되어서야 반막부파의 신정부군이 어린 천황의 권위를 빌어 ‘왕정복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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