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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보계의 전설’ 킴 필비, 소련으로 탈출
해럴드 킴 필비는 20세기 첩보계의 전설이다. 30년 동안 조국을 배신하고 적국을 위해 암약했던, 그래서 한때는 007로 유명한 영국 해외정보국(MI6)의 국장 자리까지 넘보았던 그의 완벽한 변신으로 영국 첩보계는 철저히 농락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필비는 1929년 영국의 케임브리지대에 입학, 대학에서 가이 버지스, 도널드 매클린 등과 어울리며 이른바 ‘5인의 고리(Rings of Five)’의 한 사람이 되어 서서히 공산주의자로 빠져들었다. ‘붉은 10년’으로 불리던...
日 고베 대지진… 6433명 숨지고 4만3792명 다쳐
1995년 1월 17일 오전5시46분, 일본 남동쪽 아와지섬에서 발생한 리히터규모 7.3의 강진이 불과 1분도 안되어 곤히 새벽잠을 자고 있는 고베시를 덮쳤다. 지진으로 고베와 오사카 일대 주민 6433명이 목숨을 잃고, 4만3792명이 다치는 참변을 당했다. 가옥만 24만 채가 무너지고 2500여 곳의 화재로 주택가는 폐허가 됐다. 한신고속도로는 받치고 있던 기둥이 동강나 엿가락처럼 휘어지고 부서졌으며 한 번도 멈추지 않았던 신칸센도 멈춰섰다. 2차대전 이후 일본 최대...
박정양 초대 주미공사, 미 대통령에 신임장 제정
↑ 박정양 1882년 한미 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고 조선 주재 미국 공사가 5번이나 교체될 때까지 조선은 미국에 공사를 파견하지 못했다. 비용도 비용이었지만 청국의 트집이 미국행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1887년에 이르러서야 박정양과 심상학을 각각 주미, 주유럽 전권공사로 임명했으나 청국의 반대는 여전했다. 조선에서 상전 노릇을 하던 원세개는 “청국과 사전 협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절계획을 백지화하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미국의 항의가 있고서야 마지못해...
빅토리아 영국 여왕 사망
1901년 1월 22일, ‘해가 지지않는 나라’ 대영제국의 상징이었던 빅토리아 영국 여왕이 82세로 행복한 죽음을 맞았다. ‘팍스 브리태니커(Pax Britanica)’가 종언을 고하는 순간, 국민들은 그와의 이별을 아쉬워하며 슬픔에 잠겼다. 역대 최장수 군주 빅토리아의 재위 64년은 영국의 확장사 그 자체였다. 그가 숨졌을 때, 전 세계 모든 대륙에는 영국 국기가 휘날려 지표면적의 20%가 그의 땅이었고, 세계인구의 25%가 그의 백성이었다. 1819년...
팔레비 이란 국왕 망명
“국민의 99.9%는 나를 지지하고 있다.” 팔레비 이란 국왕은 수십 년간 이 말만을 되풀이했다. 그럴만한 것이 그가 통치하는 동안 이란은 세계 강대국으로 비상하고 있었다. 풍부한 석유를 바탕으로 경제는 급성장하고 군은 최첨단 장비로 현대화됐다. 동서냉전의 지정학적 위치 덕에 미·소 양국으로부터는 부단한 경의가 쏟아졌다. 그의 꿈은 과거 페르시아 대제국의 영광을 되살리는데 있었다. 1963년 국가개혁을 기치로 백색혁명을 시작한 이래 토지는 재분배됐으며 도로·철도·항공망이...
중앙정보부, 위장간첩 이수근 체포
콧수염과 가발, 위조여권을 소지한 이수근이 처조카인 배경옥과 함께 김포공항을 빠져나간 것은 1969년 1월 27일이었다. 직항로가 없어 일본과 대만을 거쳐 홍콩에 도착한 시간은 자정이 다 되어서였다. 이틀후인 1월 29일, 홍콩 카이탁 공항에서 캄보디아로 가기 위해 비행기를 탑승하려했으나 수명의 한국인들에게 붙잡혀 홍콩 경찰에 넘겨졌다. 탈출 다음날에야 이 사실을 안 중앙정보부가 부랴부랴 재외 공관에 보낸 긴급전문을 받고 공항에서 이수근을 기다리고 있던 한국 영사관...
월맹(북베트남)의 ‘구정 공세’… 군사적으로는 패배, 정치·심리적으로는 승리
1954년 제네바협정 후 친미주의자 고 딘 디엠이 바오 다이 황제를 폐하고 월남을 장악했으나 ‘1956년도에 월남 전 지역에 걸쳐 단일통일정부를 수립한다’는 제네바 협정을 거부해 비난을 샀다. 월맹(북베트남)의 호찌민보다 인기가 없었던 그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미국은 고 딘 디엠이 월남을 실질적으로 장악하도록 막대한 양의 군사물자와 1만7000여 명의 군사지원 고문단을 상주시켰다. 1964년 통킹만 사건 후에는 대규모 지상군까지 파견해 어느덧 군사력이 월남군과 한국군을...
아돌프 히틀러 독일 총리에 취임… 인류에게 닥쳐올 대재앙의 서곡
☞ 히틀러의 독재와 연인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으면 클릭!! 1차대전의 패배와 경제난, 그리고 승전국의 무리한 요구로 독일 국민들이 절망과 굴욕감에 몸부림치고 있을 때 이를 이용해 아돌프 히틀러가 총리에 오른 것은 곧 인류에게 닥쳐올 대재앙의 서곡이었다. 86세의 힌덴부르크가 대통령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지만 권력은 이미 히틀러 손에 쥐어져 있었다. 1921년 군소 정당에 불과한 나치당(국가사회주의 독일노동자당) 당수에 선출된 히틀러는 무력감에 빠져있는 국민들의...
고종, 을사조약 반대 밀서 영국 트리뷴 특파원에 전달
을사조약이 체결되고 3개월이 지난 1906년 1월 29일, 고종이 벽안의 더글러스 스토리를 만났다. 스토리는 일본에서 을사조약 체결의 전말을 듣고 1906년 초 부임하는 일본 통감부 총무장관을 따라 한국에 들어온 영국 트리뷴지 특파원이었다. 고종은 ‘을사조약에 조인·동의하지 않았다’는 붉은 옥쇄가 찍힌 밀서를 스토리에게 전달했고, 스토리는 일본군의 눈을 피해 제물포항을 빠져나가 2월 7일 중국에서 밀서내용을 기사로 작성, 영국 본사에 송고했다. “한국의 황제는 실질적으로 포로...
인조, 청나라에 항복… 근세 역사상 일찍이 없었던 조선의 치욕
국호를 청으로 바꾼 후금이 정묘호란 발발 9년 만에 또 다시 조선의 국경을 넘으면서 병자호란이 시작됐다. 정묘호란 때 맺은 형제관계를 군신관계로 바꾸자는 청의 요구를 거부한 것이 청이 내세운 침략이유였지만, 이는 명분이었을 뿐 사실은 쓰러져가는 명나라를 치기 전 배후의 조선을 제압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1636년 12월, 청 태종이 12만 대군을 이끌고 중국 선양을 떠나 10여일 만에 서울 근처에까지 다다르자 인조는 봉림·인평대군 등을 강화도로 보내고 자신은 남한산성으로...
‘첩보계의 전설’ 킴 필비, 소련으로 탈출
해럴드 킴 필비는 20세기 첩보계의 전설이다. 30년 동안 조국을 배신하고 적국을 위해 암약했던, 그래서 한때는 007로 유명한 영국 해외정보국(MI6)의 국장 자리까지 넘보았던 그의 완벽한 변신으로 영국 첩보계는 철저히 농락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필비는 1929년 영국의 케임브리지대에 입학, 대학에서 가이 버지스, 도널드 매클린 등과 어울리며 이른바 ‘5인의 고리(Rings of Five)’의 한 사람이 되어 서서히 공산주의자로 빠져들었다. ‘붉은 10년’으로 불리던...
日 고베 대지진… 6433명 숨지고 4만3792명 다쳐
1995년 1월 17일 오전5시46분, 일본 남동쪽 아와지섬에서 발생한 리히터규모 7.3의 강진이 불과 1분도 안되어 곤히 새벽잠을 자고 있는 고베시를 덮쳤다. 지진으로 고베와 오사카 일대 주민 6433명이 목숨을 잃고, 4만3792명이 다치는 참변을 당했다. 가옥만 24만 채가 무너지고 2500여 곳의 화재로 주택가는 폐허가 됐다. 한신고속도로는 받치고 있던 기둥이 동강나 엿가락처럼 휘어지고 부서졌으며 한 번도 멈추지 않았던 신칸센도 멈춰섰다. 2차대전 이후 일본 최대...
박정양 초대 주미공사, 미 대통령에 신임장 제정
↑ 박정양 1882년 한미 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고 조선 주재 미국 공사가 5번이나 교체될 때까지 조선은 미국에 공사를 파견하지 못했다. 비용도 비용이었지만 청국의 트집이 미국행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1887년에 이르러서야 박정양과 심상학을 각각 주미, 주유럽 전권공사로 임명했으나 청국의 반대는 여전했다. 조선에서 상전 노릇을 하던 원세개는 “청국과 사전 협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절계획을 백지화하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미국의 항의가 있고서야 마지못해...
빅토리아 영국 여왕 사망
1901년 1월 22일, ‘해가 지지않는 나라’ 대영제국의 상징이었던 빅토리아 영국 여왕이 82세로 행복한 죽음을 맞았다. ‘팍스 브리태니커(Pax Britanica)’가 종언을 고하는 순간, 국민들은 그와의 이별을 아쉬워하며 슬픔에 잠겼다. 역대 최장수 군주 빅토리아의 재위 64년은 영국의 확장사 그 자체였다. 그가 숨졌을 때, 전 세계 모든 대륙에는 영국 국기가 휘날려 지표면적의 20%가 그의 땅이었고, 세계인구의 25%가 그의 백성이었다. 1819년...
팔레비 이란 국왕 망명
“국민의 99.9%는 나를 지지하고 있다.” 팔레비 이란 국왕은 수십 년간 이 말만을 되풀이했다. 그럴만한 것이 그가 통치하는 동안 이란은 세계 강대국으로 비상하고 있었다. 풍부한 석유를 바탕으로 경제는 급성장하고 군은 최첨단 장비로 현대화됐다. 동서냉전의 지정학적 위치 덕에 미·소 양국으로부터는 부단한 경의가 쏟아졌다. 그의 꿈은 과거 페르시아 대제국의 영광을 되살리는데 있었다. 1963년 국가개혁을 기치로 백색혁명을 시작한 이래 토지는 재분배됐으며 도로·철도·항공망이...
중앙정보부, 위장간첩 이수근 체포
콧수염과 가발, 위조여권을 소지한 이수근이 처조카인 배경옥과 함께 김포공항을 빠져나간 것은 1969년 1월 27일이었다. 직항로가 없어 일본과 대만을 거쳐 홍콩에 도착한 시간은 자정이 다 되어서였다. 이틀후인 1월 29일, 홍콩 카이탁 공항에서 캄보디아로 가기 위해 비행기를 탑승하려했으나 수명의 한국인들에게 붙잡혀 홍콩 경찰에 넘겨졌다. 탈출 다음날에야 이 사실을 안 중앙정보부가 부랴부랴 재외 공관에 보낸 긴급전문을 받고 공항에서 이수근을 기다리고 있던 한국 영사관...
월맹(북베트남)의 ‘구정 공세’… 군사적으로는 패배, 정치·심리적으로는 승리
1954년 제네바협정 후 친미주의자 고 딘 디엠이 바오 다이 황제를 폐하고 월남을 장악했으나 ‘1956년도에 월남 전 지역에 걸쳐 단일통일정부를 수립한다’는 제네바 협정을 거부해 비난을 샀다. 월맹(북베트남)의 호찌민보다 인기가 없었던 그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미국은 고 딘 디엠이 월남을 실질적으로 장악하도록 막대한 양의 군사물자와 1만7000여 명의 군사지원 고문단을 상주시켰다. 1964년 통킹만 사건 후에는 대규모 지상군까지 파견해 어느덧 군사력이 월남군과 한국군을...
아돌프 히틀러 독일 총리에 취임… 인류에게 닥쳐올 대재앙의 서곡
☞ 히틀러의 독재와 연인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으면 클릭!! 1차대전의 패배와 경제난, 그리고 승전국의 무리한 요구로 독일 국민들이 절망과 굴욕감에 몸부림치고 있을 때 이를 이용해 아돌프 히틀러가 총리에 오른 것은 곧 인류에게 닥쳐올 대재앙의 서곡이었다. 86세의 힌덴부르크가 대통령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지만 권력은 이미 히틀러 손에 쥐어져 있었다. 1921년 군소 정당에 불과한 나치당(국가사회주의 독일노동자당) 당수에 선출된 히틀러는 무력감에 빠져있는 국민들의...
고종, 을사조약 반대 밀서 영국 트리뷴 특파원에 전달
을사조약이 체결되고 3개월이 지난 1906년 1월 29일, 고종이 벽안의 더글러스 스토리를 만났다. 스토리는 일본에서 을사조약 체결의 전말을 듣고 1906년 초 부임하는 일본 통감부 총무장관을 따라 한국에 들어온 영국 트리뷴지 특파원이었다. 고종은 ‘을사조약에 조인·동의하지 않았다’는 붉은 옥쇄가 찍힌 밀서를 스토리에게 전달했고, 스토리는 일본군의 눈을 피해 제물포항을 빠져나가 2월 7일 중국에서 밀서내용을 기사로 작성, 영국 본사에 송고했다. “한국의 황제는 실질적으로 포로...
인조, 청나라에 항복… 근세 역사상 일찍이 없었던 조선의 치욕
국호를 청으로 바꾼 후금이 정묘호란 발발 9년 만에 또 다시 조선의 국경을 넘으면서 병자호란이 시작됐다. 정묘호란 때 맺은 형제관계를 군신관계로 바꾸자는 청의 요구를 거부한 것이 청이 내세운 침략이유였지만, 이는 명분이었을 뿐 사실은 쓰러져가는 명나라를 치기 전 배후의 조선을 제압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1636년 12월, 청 태종이 12만 대군을 이끌고 중국 선양을 떠나 10여일 만에 서울 근처에까지 다다르자 인조는 봉림·인평대군 등을 강화도로 보내고 자신은 남한산성으로...
‘첩보계의 전설’ 킴 필비, 소련으로 탈출
해럴드 킴 필비는 20세기 첩보계의 전설이다. 30년 동안 조국을 배신하고 적국을 위해 암약했던, 그래서 한때는 007로 유명한 영국 해외정보국(MI6)의 국장 자리까지 넘보았던 그의 완벽한 변신으로 영국 첩보계는 철저히 농락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필비는 1929년 영국의 케임브리지대에 입학, 대학에서 가이 버지스, 도널드 매클린 등과 어울리며 이른바 ‘5인의 고리(Rings of Five)’의 한 사람이 되어 서서히 공산주의자로 빠져들었다. ‘붉은 10년’으로 불리던...
日 고베 대지진… 6433명 숨지고 4만3792명 다쳐
1995년 1월 17일 오전5시46분, 일본 남동쪽 아와지섬에서 발생한 리히터규모 7.3의 강진이 불과 1분도 안되어 곤히 새벽잠을 자고 있는 고베시를 덮쳤다. 지진으로 고베와 오사카 일대 주민 6433명이 목숨을 잃고, 4만3792명이 다치는 참변을 당했다. 가옥만 24만 채가 무너지고 2500여 곳의 화재로 주택가는 폐허가 됐다. 한신고속도로는 받치고 있던 기둥이 동강나 엿가락처럼 휘어지고 부서졌으며 한 번도 멈추지 않았던 신칸센도 멈춰섰다. 2차대전 이후 일본 최대...
박정양 초대 주미공사, 미 대통령에 신임장 제정
↑ 박정양 1882년 한미 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고 조선 주재 미국 공사가 5번이나 교체될 때까지 조선은 미국에 공사를 파견하지 못했다. 비용도 비용이었지만 청국의 트집이 미국행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1887년에 이르러서야 박정양과 심상학을 각각 주미, 주유럽 전권공사로 임명했으나 청국의 반대는 여전했다. 조선에서 상전 노릇을 하던 원세개는 “청국과 사전 협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절계획을 백지화하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미국의 항의가 있고서야 마지못해...
빅토리아 영국 여왕 사망
1901년 1월 22일, ‘해가 지지않는 나라’ 대영제국의 상징이었던 빅토리아 영국 여왕이 82세로 행복한 죽음을 맞았다. ‘팍스 브리태니커(Pax Britanica)’가 종언을 고하는 순간, 국민들은 그와의 이별을 아쉬워하며 슬픔에 잠겼다. 역대 최장수 군주 빅토리아의 재위 64년은 영국의 확장사 그 자체였다. 그가 숨졌을 때, 전 세계 모든 대륙에는 영국 국기가 휘날려 지표면적의 20%가 그의 땅이었고, 세계인구의 25%가 그의 백성이었다. 1819년...
팔레비 이란 국왕 망명
“국민의 99.9%는 나를 지지하고 있다.” 팔레비 이란 국왕은 수십 년간 이 말만을 되풀이했다. 그럴만한 것이 그가 통치하는 동안 이란은 세계 강대국으로 비상하고 있었다. 풍부한 석유를 바탕으로 경제는 급성장하고 군은 최첨단 장비로 현대화됐다. 동서냉전의 지정학적 위치 덕에 미·소 양국으로부터는 부단한 경의가 쏟아졌다. 그의 꿈은 과거 페르시아 대제국의 영광을 되살리는데 있었다. 1963년 국가개혁을 기치로 백색혁명을 시작한 이래 토지는 재분배됐으며 도로·철도·항공망이...
중앙정보부, 위장간첩 이수근 체포
콧수염과 가발, 위조여권을 소지한 이수근이 처조카인 배경옥과 함께 김포공항을 빠져나간 것은 1969년 1월 27일이었다. 직항로가 없어 일본과 대만을 거쳐 홍콩에 도착한 시간은 자정이 다 되어서였다. 이틀후인 1월 29일, 홍콩 카이탁 공항에서 캄보디아로 가기 위해 비행기를 탑승하려했으나 수명의 한국인들에게 붙잡혀 홍콩 경찰에 넘겨졌다. 탈출 다음날에야 이 사실을 안 중앙정보부가 부랴부랴 재외 공관에 보낸 긴급전문을 받고 공항에서 이수근을 기다리고 있던 한국 영사관...
월맹(북베트남)의 ‘구정 공세’… 군사적으로는 패배, 정치·심리적으로는 승리
1954년 제네바협정 후 친미주의자 고 딘 디엠이 바오 다이 황제를 폐하고 월남을 장악했으나 ‘1956년도에 월남 전 지역에 걸쳐 단일통일정부를 수립한다’는 제네바 협정을 거부해 비난을 샀다. 월맹(북베트남)의 호찌민보다 인기가 없었던 그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미국은 고 딘 디엠이 월남을 실질적으로 장악하도록 막대한 양의 군사물자와 1만7000여 명의 군사지원 고문단을 상주시켰다. 1964년 통킹만 사건 후에는 대규모 지상군까지 파견해 어느덧 군사력이 월남군과 한국군을...
아돌프 히틀러 독일 총리에 취임… 인류에게 닥쳐올 대재앙의 서곡
☞ 히틀러의 독재와 연인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으면 클릭!! 1차대전의 패배와 경제난, 그리고 승전국의 무리한 요구로 독일 국민들이 절망과 굴욕감에 몸부림치고 있을 때 이를 이용해 아돌프 히틀러가 총리에 오른 것은 곧 인류에게 닥쳐올 대재앙의 서곡이었다. 86세의 힌덴부르크가 대통령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지만 권력은 이미 히틀러 손에 쥐어져 있었다. 1921년 군소 정당에 불과한 나치당(국가사회주의 독일노동자당) 당수에 선출된 히틀러는 무력감에 빠져있는 국민들의...
고종, 을사조약 반대 밀서 영국 트리뷴 특파원에 전달
을사조약이 체결되고 3개월이 지난 1906년 1월 29일, 고종이 벽안의 더글러스 스토리를 만났다. 스토리는 일본에서 을사조약 체결의 전말을 듣고 1906년 초 부임하는 일본 통감부 총무장관을 따라 한국에 들어온 영국 트리뷴지 특파원이었다. 고종은 ‘을사조약에 조인·동의하지 않았다’는 붉은 옥쇄가 찍힌 밀서를 스토리에게 전달했고, 스토리는 일본군의 눈을 피해 제물포항을 빠져나가 2월 7일 중국에서 밀서내용을 기사로 작성, 영국 본사에 송고했다. “한국의 황제는 실질적으로 포로...
인조, 청나라에 항복… 근세 역사상 일찍이 없었던 조선의 치욕
국호를 청으로 바꾼 후금이 정묘호란 발발 9년 만에 또 다시 조선의 국경을 넘으면서 병자호란이 시작됐다. 정묘호란 때 맺은 형제관계를 군신관계로 바꾸자는 청의 요구를 거부한 것이 청이 내세운 침략이유였지만, 이는 명분이었을 뿐 사실은 쓰러져가는 명나라를 치기 전 배후의 조선을 제압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1636년 12월, 청 태종이 12만 대군을 이끌고 중국 선양을 떠나 10여일 만에 서울 근처에까지 다다르자 인조는 봉림·인평대군 등을 강화도로 보내고 자신은 남한산성으로...
‘첩보계의 전설’ 킴 필비, 소련으로 탈출
해럴드 킴 필비는 20세기 첩보계의 전설이다. 30년 동안 조국을 배신하고 적국을 위해 암약했던, 그래서 한때는 007로 유명한 영국 해외정보국(MI6)의 국장 자리까지 넘보았던 그의 완벽한 변신으로 영국 첩보계는 철저히 농락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필비는 1929년 영국의 케임브리지대에 입학, 대학에서 가이 버지스, 도널드 매클린 등과 어울리며 이른바 ‘5인의 고리(Rings of Five)’의 한 사람이 되어 서서히 공산주의자로 빠져들었다. ‘붉은 10년’으로 불리던...
日 고베 대지진… 6433명 숨지고 4만3792명 다쳐
1995년 1월 17일 오전5시46분, 일본 남동쪽 아와지섬에서 발생한 리히터규모 7.3의 강진이 불과 1분도 안되어 곤히 새벽잠을 자고 있는 고베시를 덮쳤다. 지진으로 고베와 오사카 일대 주민 6433명이 목숨을 잃고, 4만3792명이 다치는 참변을 당했다. 가옥만 24만 채가 무너지고 2500여 곳의 화재로 주택가는 폐허가 됐다. 한신고속도로는 받치고 있던 기둥이 동강나 엿가락처럼 휘어지고 부서졌으며 한 번도 멈추지 않았던 신칸센도 멈춰섰다. 2차대전 이후 일본 최대...
박정양 초대 주미공사, 미 대통령에 신임장 제정
↑ 박정양 1882년 한미 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고 조선 주재 미국 공사가 5번이나 교체될 때까지 조선은 미국에 공사를 파견하지 못했다. 비용도 비용이었지만 청국의 트집이 미국행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1887년에 이르러서야 박정양과 심상학을 각각 주미, 주유럽 전권공사로 임명했으나 청국의 반대는 여전했다. 조선에서 상전 노릇을 하던 원세개는 “청국과 사전 협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절계획을 백지화하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미국의 항의가 있고서야 마지못해...
빅토리아 영국 여왕 사망
1901년 1월 22일, ‘해가 지지않는 나라’ 대영제국의 상징이었던 빅토리아 영국 여왕이 82세로 행복한 죽음을 맞았다. ‘팍스 브리태니커(Pax Britanica)’가 종언을 고하는 순간, 국민들은 그와의 이별을 아쉬워하며 슬픔에 잠겼다. 역대 최장수 군주 빅토리아의 재위 64년은 영국의 확장사 그 자체였다. 그가 숨졌을 때, 전 세계 모든 대륙에는 영국 국기가 휘날려 지표면적의 20%가 그의 땅이었고, 세계인구의 25%가 그의 백성이었다. 1819년...
팔레비 이란 국왕 망명
“국민의 99.9%는 나를 지지하고 있다.” 팔레비 이란 국왕은 수십 년간 이 말만을 되풀이했다. 그럴만한 것이 그가 통치하는 동안 이란은 세계 강대국으로 비상하고 있었다. 풍부한 석유를 바탕으로 경제는 급성장하고 군은 최첨단 장비로 현대화됐다. 동서냉전의 지정학적 위치 덕에 미·소 양국으로부터는 부단한 경의가 쏟아졌다. 그의 꿈은 과거 페르시아 대제국의 영광을 되살리는데 있었다. 1963년 국가개혁을 기치로 백색혁명을 시작한 이래 토지는 재분배됐으며 도로·철도·항공망이...
중앙정보부, 위장간첩 이수근 체포
콧수염과 가발, 위조여권을 소지한 이수근이 처조카인 배경옥과 함께 김포공항을 빠져나간 것은 1969년 1월 27일이었다. 직항로가 없어 일본과 대만을 거쳐 홍콩에 도착한 시간은 자정이 다 되어서였다. 이틀후인 1월 29일, 홍콩 카이탁 공항에서 캄보디아로 가기 위해 비행기를 탑승하려했으나 수명의 한국인들에게 붙잡혀 홍콩 경찰에 넘겨졌다. 탈출 다음날에야 이 사실을 안 중앙정보부가 부랴부랴 재외 공관에 보낸 긴급전문을 받고 공항에서 이수근을 기다리고 있던 한국 영사관...
월맹(북베트남)의 ‘구정 공세’… 군사적으로는 패배, 정치·심리적으로는 승리
1954년 제네바협정 후 친미주의자 고 딘 디엠이 바오 다이 황제를 폐하고 월남을 장악했으나 ‘1956년도에 월남 전 지역에 걸쳐 단일통일정부를 수립한다’는 제네바 협정을 거부해 비난을 샀다. 월맹(북베트남)의 호찌민보다 인기가 없었던 그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미국은 고 딘 디엠이 월남을 실질적으로 장악하도록 막대한 양의 군사물자와 1만7000여 명의 군사지원 고문단을 상주시켰다. 1964년 통킹만 사건 후에는 대규모 지상군까지 파견해 어느덧 군사력이 월남군과 한국군을...
아돌프 히틀러 독일 총리에 취임… 인류에게 닥쳐올 대재앙의 서곡
☞ 히틀러의 독재와 연인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으면 클릭!! 1차대전의 패배와 경제난, 그리고 승전국의 무리한 요구로 독일 국민들이 절망과 굴욕감에 몸부림치고 있을 때 이를 이용해 아돌프 히틀러가 총리에 오른 것은 곧 인류에게 닥쳐올 대재앙의 서곡이었다. 86세의 힌덴부르크가 대통령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지만 권력은 이미 히틀러 손에 쥐어져 있었다. 1921년 군소 정당에 불과한 나치당(국가사회주의 독일노동자당) 당수에 선출된 히틀러는 무력감에 빠져있는 국민들의...
고종, 을사조약 반대 밀서 영국 트리뷴 특파원에 전달
을사조약이 체결되고 3개월이 지난 1906년 1월 29일, 고종이 벽안의 더글러스 스토리를 만났다. 스토리는 일본에서 을사조약 체결의 전말을 듣고 1906년 초 부임하는 일본 통감부 총무장관을 따라 한국에 들어온 영국 트리뷴지 특파원이었다. 고종은 ‘을사조약에 조인·동의하지 않았다’는 붉은 옥쇄가 찍힌 밀서를 스토리에게 전달했고, 스토리는 일본군의 눈을 피해 제물포항을 빠져나가 2월 7일 중국에서 밀서내용을 기사로 작성, 영국 본사에 송고했다. “한국의 황제는 실질적으로 포로...
인조, 청나라에 항복… 근세 역사상 일찍이 없었던 조선의 치욕
국호를 청으로 바꾼 후금이 정묘호란 발발 9년 만에 또 다시 조선의 국경을 넘으면서 병자호란이 시작됐다. 정묘호란 때 맺은 형제관계를 군신관계로 바꾸자는 청의 요구를 거부한 것이 청이 내세운 침략이유였지만, 이는 명분이었을 뿐 사실은 쓰러져가는 명나라를 치기 전 배후의 조선을 제압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1636년 12월, 청 태종이 12만 대군을 이끌고 중국 선양을 떠나 10여일 만에 서울 근처에까지 다다르자 인조는 봉림·인평대군 등을 강화도로 보내고 자신은 남한산성으로...
‘첩보계의 전설’ 킴 필비, 소련으로 탈출
해럴드 킴 필비는 20세기 첩보계의 전설이다. 30년 동안 조국을 배신하고 적국을 위해 암약했던, 그래서 한때는 007로 유명한 영국 해외정보국(MI6)의 국장 자리까지 넘보았던 그의 완벽한 변신으로 영국 첩보계는 철저히 농락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필비는 1929년 영국의 케임브리지대에 입학, 대학에서 가이 버지스, 도널드 매클린 등과 어울리며 이른바 ‘5인의 고리(Rings of Five)’의 한 사람이 되어 서서히 공산주의자로 빠져들었다. ‘붉은 10년’으로 불리던...
日 고베 대지진… 6433명 숨지고 4만3792명 다쳐
1995년 1월 17일 오전5시46분, 일본 남동쪽 아와지섬에서 발생한 리히터규모 7.3의 강진이 불과 1분도 안되어 곤히 새벽잠을 자고 있는 고베시를 덮쳤다. 지진으로 고베와 오사카 일대 주민 6433명이 목숨을 잃고, 4만3792명이 다치는 참변을 당했다. 가옥만 24만 채가 무너지고 2500여 곳의 화재로 주택가는 폐허가 됐다. 한신고속도로는 받치고 있던 기둥이 동강나 엿가락처럼 휘어지고 부서졌으며 한 번도 멈추지 않았던 신칸센도 멈춰섰다. 2차대전 이후 일본 최대...
박정양 초대 주미공사, 미 대통령에 신임장 제정
↑ 박정양 1882년 한미 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고 조선 주재 미국 공사가 5번이나 교체될 때까지 조선은 미국에 공사를 파견하지 못했다. 비용도 비용이었지만 청국의 트집이 미국행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1887년에 이르러서야 박정양과 심상학을 각각 주미, 주유럽 전권공사로 임명했으나 청국의 반대는 여전했다. 조선에서 상전 노릇을 하던 원세개는 “청국과 사전 협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절계획을 백지화하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미국의 항의가 있고서야 마지못해...
빅토리아 영국 여왕 사망
1901년 1월 22일, ‘해가 지지않는 나라’ 대영제국의 상징이었던 빅토리아 영국 여왕이 82세로 행복한 죽음을 맞았다. ‘팍스 브리태니커(Pax Britanica)’가 종언을 고하는 순간, 국민들은 그와의 이별을 아쉬워하며 슬픔에 잠겼다. 역대 최장수 군주 빅토리아의 재위 64년은 영국의 확장사 그 자체였다. 그가 숨졌을 때, 전 세계 모든 대륙에는 영국 국기가 휘날려 지표면적의 20%가 그의 땅이었고, 세계인구의 25%가 그의 백성이었다. 1819년...
팔레비 이란 국왕 망명
“국민의 99.9%는 나를 지지하고 있다.” 팔레비 이란 국왕은 수십 년간 이 말만을 되풀이했다. 그럴만한 것이 그가 통치하는 동안 이란은 세계 강대국으로 비상하고 있었다. 풍부한 석유를 바탕으로 경제는 급성장하고 군은 최첨단 장비로 현대화됐다. 동서냉전의 지정학적 위치 덕에 미·소 양국으로부터는 부단한 경의가 쏟아졌다. 그의 꿈은 과거 페르시아 대제국의 영광을 되살리는데 있었다. 1963년 국가개혁을 기치로 백색혁명을 시작한 이래 토지는 재분배됐으며 도로·철도·항공망이...
중앙정보부, 위장간첩 이수근 체포
콧수염과 가발, 위조여권을 소지한 이수근이 처조카인 배경옥과 함께 김포공항을 빠져나간 것은 1969년 1월 27일이었다. 직항로가 없어 일본과 대만을 거쳐 홍콩에 도착한 시간은 자정이 다 되어서였다. 이틀후인 1월 29일, 홍콩 카이탁 공항에서 캄보디아로 가기 위해 비행기를 탑승하려했으나 수명의 한국인들에게 붙잡혀 홍콩 경찰에 넘겨졌다. 탈출 다음날에야 이 사실을 안 중앙정보부가 부랴부랴 재외 공관에 보낸 긴급전문을 받고 공항에서 이수근을 기다리고 있던 한국 영사관...
월맹(북베트남)의 ‘구정 공세’… 군사적으로는 패배, 정치·심리적으로는 승리
1954년 제네바협정 후 친미주의자 고 딘 디엠이 바오 다이 황제를 폐하고 월남을 장악했으나 ‘1956년도에 월남 전 지역에 걸쳐 단일통일정부를 수립한다’는 제네바 협정을 거부해 비난을 샀다. 월맹(북베트남)의 호찌민보다 인기가 없었던 그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미국은 고 딘 디엠이 월남을 실질적으로 장악하도록 막대한 양의 군사물자와 1만7000여 명의 군사지원 고문단을 상주시켰다. 1964년 통킹만 사건 후에는 대규모 지상군까지 파견해 어느덧 군사력이 월남군과 한국군을...
아돌프 히틀러 독일 총리에 취임… 인류에게 닥쳐올 대재앙의 서곡
☞ 히틀러의 독재와 연인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으면 클릭!! 1차대전의 패배와 경제난, 그리고 승전국의 무리한 요구로 독일 국민들이 절망과 굴욕감에 몸부림치고 있을 때 이를 이용해 아돌프 히틀러가 총리에 오른 것은 곧 인류에게 닥쳐올 대재앙의 서곡이었다. 86세의 힌덴부르크가 대통령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지만 권력은 이미 히틀러 손에 쥐어져 있었다. 1921년 군소 정당에 불과한 나치당(국가사회주의 독일노동자당) 당수에 선출된 히틀러는 무력감에 빠져있는 국민들의...
고종, 을사조약 반대 밀서 영국 트리뷴 특파원에 전달
을사조약이 체결되고 3개월이 지난 1906년 1월 29일, 고종이 벽안의 더글러스 스토리를 만났다. 스토리는 일본에서 을사조약 체결의 전말을 듣고 1906년 초 부임하는 일본 통감부 총무장관을 따라 한국에 들어온 영국 트리뷴지 특파원이었다. 고종은 ‘을사조약에 조인·동의하지 않았다’는 붉은 옥쇄가 찍힌 밀서를 스토리에게 전달했고, 스토리는 일본군의 눈을 피해 제물포항을 빠져나가 2월 7일 중국에서 밀서내용을 기사로 작성, 영국 본사에 송고했다. “한국의 황제는 실질적으로 포로...
인조, 청나라에 항복… 근세 역사상 일찍이 없었던 조선의 치욕
국호를 청으로 바꾼 후금이 정묘호란 발발 9년 만에 또 다시 조선의 국경을 넘으면서 병자호란이 시작됐다. 정묘호란 때 맺은 형제관계를 군신관계로 바꾸자는 청의 요구를 거부한 것이 청이 내세운 침략이유였지만, 이는 명분이었을 뿐 사실은 쓰러져가는 명나라를 치기 전 배후의 조선을 제압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1636년 12월, 청 태종이 12만 대군을 이끌고 중국 선양을 떠나 10여일 만에 서울 근처에까지 다다르자 인조는 봉림·인평대군 등을 강화도로 보내고 자신은 남한산성으로...
‘첩보계의 전설’ 킴 필비, 소련으로 탈출
해럴드 킴 필비는 20세기 첩보계의 전설이다. 30년 동안 조국을 배신하고 적국을 위해 암약했던, 그래서 한때는 007로 유명한 영국 해외정보국(MI6)의 국장 자리까지 넘보았던 그의 완벽한 변신으로 영국 첩보계는 철저히 농락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필비는 1929년 영국의 케임브리지대에 입학, 대학에서 가이 버지스, 도널드 매클린 등과 어울리며 이른바 ‘5인의 고리(Rings of Five)’의 한 사람이 되어 서서히 공산주의자로 빠져들었다. ‘붉은 10년’으로 불리던...
日 고베 대지진… 6433명 숨지고 4만3792명 다쳐
1995년 1월 17일 오전5시46분, 일본 남동쪽 아와지섬에서 발생한 리히터규모 7.3의 강진이 불과 1분도 안되어 곤히 새벽잠을 자고 있는 고베시를 덮쳤다. 지진으로 고베와 오사카 일대 주민 6433명이 목숨을 잃고, 4만3792명이 다치는 참변을 당했다. 가옥만 24만 채가 무너지고 2500여 곳의 화재로 주택가는 폐허가 됐다. 한신고속도로는 받치고 있던 기둥이 동강나 엿가락처럼 휘어지고 부서졌으며 한 번도 멈추지 않았던 신칸센도 멈춰섰다. 2차대전 이후 일본 최대...
박정양 초대 주미공사, 미 대통령에 신임장 제정
↑ 박정양 1882년 한미 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고 조선 주재 미국 공사가 5번이나 교체될 때까지 조선은 미국에 공사를 파견하지 못했다. 비용도 비용이었지만 청국의 트집이 미국행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1887년에 이르러서야 박정양과 심상학을 각각 주미, 주유럽 전권공사로 임명했으나 청국의 반대는 여전했다. 조선에서 상전 노릇을 하던 원세개는 “청국과 사전 협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절계획을 백지화하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미국의 항의가 있고서야 마지못해...
빅토리아 영국 여왕 사망
1901년 1월 22일, ‘해가 지지않는 나라’ 대영제국의 상징이었던 빅토리아 영국 여왕이 82세로 행복한 죽음을 맞았다. ‘팍스 브리태니커(Pax Britanica)’가 종언을 고하는 순간, 국민들은 그와의 이별을 아쉬워하며 슬픔에 잠겼다. 역대 최장수 군주 빅토리아의 재위 64년은 영국의 확장사 그 자체였다. 그가 숨졌을 때, 전 세계 모든 대륙에는 영국 국기가 휘날려 지표면적의 20%가 그의 땅이었고, 세계인구의 25%가 그의 백성이었다. 1819년...
팔레비 이란 국왕 망명
“국민의 99.9%는 나를 지지하고 있다.” 팔레비 이란 국왕은 수십 년간 이 말만을 되풀이했다. 그럴만한 것이 그가 통치하는 동안 이란은 세계 강대국으로 비상하고 있었다. 풍부한 석유를 바탕으로 경제는 급성장하고 군은 최첨단 장비로 현대화됐다. 동서냉전의 지정학적 위치 덕에 미·소 양국으로부터는 부단한 경의가 쏟아졌다. 그의 꿈은 과거 페르시아 대제국의 영광을 되살리는데 있었다. 1963년 국가개혁을 기치로 백색혁명을 시작한 이래 토지는 재분배됐으며 도로·철도·항공망이...
중앙정보부, 위장간첩 이수근 체포
콧수염과 가발, 위조여권을 소지한 이수근이 처조카인 배경옥과 함께 김포공항을 빠져나간 것은 1969년 1월 27일이었다. 직항로가 없어 일본과 대만을 거쳐 홍콩에 도착한 시간은 자정이 다 되어서였다. 이틀후인 1월 29일, 홍콩 카이탁 공항에서 캄보디아로 가기 위해 비행기를 탑승하려했으나 수명의 한국인들에게 붙잡혀 홍콩 경찰에 넘겨졌다. 탈출 다음날에야 이 사실을 안 중앙정보부가 부랴부랴 재외 공관에 보낸 긴급전문을 받고 공항에서 이수근을 기다리고 있던 한국 영사관...
월맹(북베트남)의 ‘구정 공세’… 군사적으로는 패배, 정치·심리적으로는 승리
1954년 제네바협정 후 친미주의자 고 딘 디엠이 바오 다이 황제를 폐하고 월남을 장악했으나 ‘1956년도에 월남 전 지역에 걸쳐 단일통일정부를 수립한다’는 제네바 협정을 거부해 비난을 샀다. 월맹(북베트남)의 호찌민보다 인기가 없었던 그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미국은 고 딘 디엠이 월남을 실질적으로 장악하도록 막대한 양의 군사물자와 1만7000여 명의 군사지원 고문단을 상주시켰다. 1964년 통킹만 사건 후에는 대규모 지상군까지 파견해 어느덧 군사력이 월남군과 한국군을...
아돌프 히틀러 독일 총리에 취임… 인류에게 닥쳐올 대재앙의 서곡
☞ 히틀러의 독재와 연인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으면 클릭!! 1차대전의 패배와 경제난, 그리고 승전국의 무리한 요구로 독일 국민들이 절망과 굴욕감에 몸부림치고 있을 때 이를 이용해 아돌프 히틀러가 총리에 오른 것은 곧 인류에게 닥쳐올 대재앙의 서곡이었다. 86세의 힌덴부르크가 대통령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지만 권력은 이미 히틀러 손에 쥐어져 있었다. 1921년 군소 정당에 불과한 나치당(국가사회주의 독일노동자당) 당수에 선출된 히틀러는 무력감에 빠져있는 국민들의...
고종, 을사조약 반대 밀서 영국 트리뷴 특파원에 전달
을사조약이 체결되고 3개월이 지난 1906년 1월 29일, 고종이 벽안의 더글러스 스토리를 만났다. 스토리는 일본에서 을사조약 체결의 전말을 듣고 1906년 초 부임하는 일본 통감부 총무장관을 따라 한국에 들어온 영국 트리뷴지 특파원이었다. 고종은 ‘을사조약에 조인·동의하지 않았다’는 붉은 옥쇄가 찍힌 밀서를 스토리에게 전달했고, 스토리는 일본군의 눈을 피해 제물포항을 빠져나가 2월 7일 중국에서 밀서내용을 기사로 작성, 영국 본사에 송고했다. “한국의 황제는 실질적으로 포로...
인조, 청나라에 항복… 근세 역사상 일찍이 없었던 조선의 치욕
국호를 청으로 바꾼 후금이 정묘호란 발발 9년 만에 또 다시 조선의 국경을 넘으면서 병자호란이 시작됐다. 정묘호란 때 맺은 형제관계를 군신관계로 바꾸자는 청의 요구를 거부한 것이 청이 내세운 침략이유였지만, 이는 명분이었을 뿐 사실은 쓰러져가는 명나라를 치기 전 배후의 조선을 제압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1636년 12월, 청 태종이 12만 대군을 이끌고 중국 선양을 떠나 10여일 만에 서울 근처에까지 다다르자 인조는 봉림·인평대군 등을 강화도로 보내고 자신은 남한산성으로...